2021/08/03

한국신학/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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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신학/삼재론 - '한국 신학은 무엇인가?' ...ㆍ새로운 '천지인 신학' 소개, [한국기독공보] 2013.4.29.

천지인신학/삼재론 - '한국 신학은 무엇인가?' ...ㆍ새로운 '천지인 신학' 소개, [한국기독공보] 201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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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학은 무엇인가?' ...ㆍ새로운 '천지인 신학' 소개, [한국기독공보] 2013.4.29.천지인신학조회 수 5193 추천 수 33 2013.05.01 09: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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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학은 무엇인가?'

[2897호] 2013년 04월 29일 (월) 11:41:36 [조회수 : 164]   박만서 기자  mspark@pckworld.com

한국조직신학회 전국대회 개최
우리 상황에 맞는 한국 신학 연구 힘쓰자
'민중신학'에 대한 현재적 평가ㆍ새로운 '천지인 신학' 소개
"세계신학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신중 기해야"
 
한국적 상황에 맞는 한국신학을 정립하기 위한 연구과제가 각 신학회별로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조직신학회(회장:김흡영)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조직신학회는 지난 4월 20일 서울 서초교회에서 열린 제8회 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에서 '한국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답을 구했다. 이번 주제와 관련해서 회장 김흡영 교수(강남대학교)는 '과연 우리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한국신학이 더 이상 남에게서 수동적으로 배우고 모방하는 신학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자립적인 연구와 통찰을 통해서 부족하더라도 당당하게 제소리를 내며 글로벌 신학의 미래를 이끌어 가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신학의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한국조직신학의 정립을 위한 원칙으로 첫째 한국적 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한 고백 및 해설이 있어야 하고, 둘째 서구신학으로부터의 독립, 셋째 한국신학이 세계신학으로부터 고립이 아닌 글로벌 신학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한 주체로의 참여 등을 강조했다.
 
이러한 질문 아래 진행된 전국대회에서는 대표적인 한국신학으로 꼽히는 '민중신학'에 대한 현재적 평가와 함께 새로운 한국신학의 가능성으로 '천지인 신학'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민중신학은 여전히 유효한 신학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한 이재정 교수(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는 민중신학자 1세대인 안병무 박사가 말한 '예수가 민중이고 민중이 예수'를 인용해서 민중신학을 설명하며, "민중신학자들은 민중과 예수를 적어도 하나의 틀에서 구별하지 않는다. 민중을 예수의 구원의 수단이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건들이 민중의 사건속에서 재현되는 것이며 민중의 사건 속에서 생명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에 덧붙여 "여전히 민중신학이 전통적인 신학의 규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교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인가"와 함께 "실제로 민중신학이 역사와 사회의 변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과거 발전 과정을 돌이켜볼 때 역사는 과연 민중의 힘에 의하여 변혁되어 왔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민중신학은 사회와 역사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 또는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교회와 신학이라는 틀이나 고정된 텍스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조명하고 해석하고 밝혀져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 연구 과정에서 또 오늘의 시대에서 민중이 누구인지 분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지적하면서 "역사의 변화를 갈망하거나 이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민중일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결론적으로 "조직신학의 방향으로 과거 시대에서 형성된 문맥에서 신학의 단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창조적 문맥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며 방향을 제시했다.

전국대회에서는 한국신학으로 허호익 교수(대전신학대학교)가 주장하는 '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을 소개했다. '한국신학의 새로운 모색-왜 천지인 신학인가?'를 제목으로 주제연구를 발표한 허 교수는 우선 한국신학을 △자생적으로 창안된 한국신학 △주체적으로 도입한 한국신학 △해석학적으로 모색된 한국신학 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허 교수는 특히 해석학적 원리와 방법으로 연구된 다양한 한국 신학자들의 토착화 신학을 나열하고, "토착화 신학이 한국의 재래 종교와 사상과 만남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응답이라면, 민중신학은 1970년대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의 도전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허 교수가 이번 전국대회에서 소개한 '천지인 신학'의 근거를 '십계명'과 '주기도문'의 신학적 해석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한태동박사의 주장을 인용해 "십계명은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 사이의 바른 관계에 관한 계명이다"라고 소개하면서 "따라서 안식일은 천지인의 삼중적 삼중관계의 회복 강화 지속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주의기도에 대해 "예수님 자신의 생애 동안의 강조점과 주제를 요약한 매우 초기의 것임에 틀림없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전의 주제와 강조점들이 아름답게 요약된 것"이라고 전제한 후 "주기도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기도의 구조가 어떤 의미에서는 십계명의 구조와 일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십계명과 주기도문의 상응관계는 칼빈과 칼 바르트를 비롯한 서구의 여러 신학자들에 의해 이미 주장된 바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천지인 신학의 신학적 기초를 △개인ㆍ사회ㆍ생태의 통전적 구원론 △그리스도의 신성ㆍ인성ㆍ우주성의 삼성론 등을 들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삼성론과 삼중적 구원론은 수직적 영성적 대신관계, 수평적 연대적 대인관계, 순환적 친화적 대물관계의 회복과 지속과 강화를 지향하는 천지인의 신학과 원리에 상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전통적 서구의 이원론적 사상에는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이 대립적인 실체로 분열되어 신성의 포기와 자연의 파괴와 인격의 소외라는 인류문명의 생존과 관련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1939년 세계적인 토착화 신학 논의를 접하고 우리가 서양에서 배운 신학이 서양적 토색을 띄고 있어 우리의 정조(情操)와 맞지 않는 것이 적지 않다해서 함부로 '조선적 신학'를 제조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김인서의 경고를 상기하며, 한국신학의 조심성을 강조했다.
 
이번 조직신학회 전국대회에서 한국신학에 대한 과제를 제시한 것은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함으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주제 설정을 설명한 김흡영 교수의 주장대로 한국신학이 서구신학으로부터의 독립과 동시에 세계신학으로부터 고립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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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신학/삼재론 - 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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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이란 무엇인가?천지인신학조회 수 8345 추천 수 389 2003.08.28 22:04:44
허호익*.67.151.113http://theologia.kr/board_chungeein/2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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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저서 "제6장 천지인 신학 가능성 모색" 참고 바람** 



한국 기독교인은 '한국인 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으로 성서와 기독교신학의 구성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한국문화의 구성원리를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서의 구성원리 역시 하나님께서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바른 수직적 영성적 관계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바른 수평적 연대적 관계와 인간과 자연(또는 물질) 사이의 바른 순환적 친화적인 관계"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과  불순종과 육욕 때문에 이 삼중적인 관계가 불편하여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삼중적인 관계를 회복하시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것이다. 이러한 성서의 삼중적 삼중관계는 십계명과 주기도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원리는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한국문화의 구성원리로서 최근 조자룡, 김지하, 우실하 등에 의해 널리 인정받는 천지인 조화의 삼태극적 구조의 삼재론과 상응 한다.



따라서 천지인의 조화라는 삼태극의 원리로서 성서와 신학의 여러 주제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천지인의 신학은  영육 이원론적 구조에 기초한  서구 중심의 인류 문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들의 대안적인 사상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인 서구의 이원론적 실체론으로 인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이 대립적인 실체로 분열되어 신성(神聖)의 포기와 자연의 파괴와 인격의 파탄이라는 인류문명의 생존과 관련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성적 대신관계, 연대적 대인관계, 순환친화적 자연물질관계라는 삼중적 삼중관계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의 바른관계를 회복하고 마음과 몸의 바른 관계와 나아가서 물질과 정신의 균형적인 발전을 지향하는 영성신학,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정의와 평화의 상생신학이나, 남성과 여성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여성신학, 자연과 인간의 바른 관계를 지향하는 창조의 보전과 생태학적 신학을 모두 아우르는 해석학적 원리가 바로 천지인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제3세계신학의 주제로 등장하는 백인우위의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racism), 남성우위의 여성 차별(sexism), 서구 문화 중심의 문화적 차별은 모두 위계적인 시원적인 사상에서 비롯된 소외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일의적 논리의 독단은 폭력과 대응폭력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이원론적 비실체론으로 대립적 갈등을 해소하고, 비시원적 순환론으로 차별과 소외를 극복하고, 다중적 논리로서 일의적 논리적 독단에서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지향하는 비시원적인 천지인의 조화와 전개를 지향하는 천지인의 신학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문화의 뿌리사상이면서 동시에 전통문화의 구성원리로서 널리 맥을 이어온 천지인의 조화 원리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바른 관계, 인간과의 수평적인 바른 관계, 자연(또는 물질)과의 순환적 바른 관계의 조화를 지향하는 전향적인 해석학적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한국토착화 신학과 달리 천지인 삼중적 삼중관계를 해석학적 원리로 삼아 그 성서적, 신학적 근거 뿐만 아니라 목회적 근거를 통전하려고 한다. 천지인 신학의 목회적 근거로서 무엇보다도  필자의 모교회인 포항제일교회(김광웅 목사)의 표어가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자연과 함께"이며, 협동목사로 섬긴적인 있는 새벽교회(이승영 목사)의 표어는 "하나님께 영광, 이웃과 평화, 자연에게 긍휼"이며 그리고 생명목회를 지향하는 덕수교회(손인웅 목사)의 목회철학 역시 삼애 목회로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이다.  



마지막으로 "천지인 신학(Theocosmoandric Theology)"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처음 사용하는 것으로서 R. 파니카의 우주신인론적 체험(Cosmotheandric Experience) 또는 우주신인론적 영성(Cosmotheoandric Spiritualisty)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들은 제가 쓴 글들을 참고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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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익
February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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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군신화에 대한 기독교 신학적 이해가 필요한가?

1985년의 단군전 건립 계획과 1999년 단군상 건립으로 인하여 한국기독교에서 단군신화를 바라보는 눈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밝힌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가 상고사에 대한 학문적 검토 없이 단군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은 자칫 반민족적인 행위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단군신화를 단순히 하나의 신화나 특정 종교의 교리와 관련된 문헌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중요한 자산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고 제언하였다.

그러나 단군신화와 기독교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인은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이라는 실존적 역설"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을 보아도 성서가 번역되면서 구약성서의 여호와 엘로힘을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신명인 하나님으로 번역한 일이다. 이 하나님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과 같은 뜻이다. 장병일은 이점을 분명히 하였다.

“창조주인 히브리명인 엘로힘(P문서)은 한국의 신명인 하나님으로 개명한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 어원이 바로 단군신화의 환인의 고유한, 하나님, 혹은 하느님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 조상대대로 전승되어온 하나님 신앙 때문에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 기독교의 여호와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번역함으로 단군신화의 환인 하나님 바로 기독교의 여호와 엘로힘 하나님이라는 신앙으로 토착화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신앙의 토착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는 것이 성서 번역상의 논쟁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듯 그 기본 의미는 한국 고유의 신명으로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桓因)을 지칭한다. 환인에 관해서 하나님설, 천부설, 천신설 등이 주장 되었지만 그 기본 내용은 동일하다. 환인은 하나님으로서 천부요 천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천신 사상은 북방유목민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 기독교는 누가 뭐래도 단군신화를 통해 계승된 하나님 신앙 전승의 토양 위에 성서의 여호와 엘로힘 하나님 신앙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천지신명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쉽게 전파되고 수용되고 뿌리를 내려 세계 선교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단시간의 내의 급속한 교세 성장을 이룬 것이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천자(天子)라 하고 일본에서는 왕을 천황(天皇)이라 하였기 때문에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히 천신에 대한 하나님 신앙이 약화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리 보다 훨씬 먼저 전해 졌으나 늘리 전파되고 수용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인들의 경우는 단군신화에 내재된 하나님 신앙을 끈질기게 계승하여 왔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이 쉽게 전파되어 뿌리내리는 아주 중요한 통로가 된 것이 분명하다. 한국문화의 구성원리인 단군신화와 성서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만남이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930년대부터 생겨난 ‘조선적 신학’에 대한 자의식이나, 1960년대의 ‘토착화 신학’이나. 1970년대의 민중신학이나 그리고 1980년대의 문화신학 등은 “복음의 씨앗과 문화의 토양”의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하여 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동안 성의 신학, 효의 신학, 풍류신학, 상생신학, 언행일치의 신학, 한(恨)의 신학, 민중신학, 물(物)의 신학 등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해석학적 원리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사유의 원리로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단군신화에 나타난 천신이 환인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지모신인 웅녀와 짝을 지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천지인의 조화의 원리'는 삼태극의 원리에 상응하는 북방 유목인 삼수분화의 세계관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가장 시원적인 사상이고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저 왔으며 기층문화와 표층문화에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그래서 공시적이요 통시적이요 통전적인 가장 한국적인 사유의 원리이다. 그리고 단군신화의 천지인의 조화의 원리는 또한 성서와 기독교 신학의 원리, 즉 하나님과 바른 관계(개인구원), 이웃과의 바른 관계(사회구원), 자연 과의 바른관계(생태구원)의 원리와도 상응한다.

단군신화가 케케묵은 우리 민족의 옛날 이야기인데, 오늘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세계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문할 수 있다. 이제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인”으로 자리 매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천지인의 조화라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단군신화의 삼재론은 서구 중심의 인류 문명이 안고 있는 심각한 현안들의 대안적인 사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서구의 이원론적 실체론으로 인해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몸과 마음, 정신과 물질이 대립적인 실체로 분열되어 신성(神聖)의 포기와 자연의 파괴와 인격의 파탄이라는 인류문명의 생존과 관련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천지인 조화의 원리에는 화이트헤드가 새롭게 모색한 비본체론적인 유기체 철학의 원리와 비시원적인 과정철학의 원리가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가장 최근의 서구 철학과 현대물학의 원리와 상응하는 점이 많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천지인의 역동적 조화의 원리는 다이나믹 코리아로 표상되는 삼태극의 원리로서 천지인의 신학의 해석학적 원리를 삼아 한국신학의 세계화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직적 영성적 대신관계, 수평적 연대적 대인관계, 순환적 친화적 대물관계라는 삼태극의 원리를 회복하는 것만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인이면서 동시인 기독교인이며 동시에 세계인”이라는 삼중적인 실존 구조 속 있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천지인의 조화의 삼재론과 기독교적인 천지인 신학의 역설적인 만남을 통해 새롭고 통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적인 한국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최요한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문제는 ‘사도바울’이었다는 뼈아픈 깨달음

(3) 아둘람온라인공동체 | Facebook

최요한
1trS1 SnJptulsneocendmyms atoer ef12:l4dgre3  · 
※ 지난 주 카톡으로는 글을 남기고, 페이스북에는 글을 남기지 않았네요... 이 글 올리고 곧 2편도 용감하게 올리겠습니다.

<아둘람 가족분들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단순명료하게 나쁜 놈과 착한 분들이 나뉘던 시대가 지나고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하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제 삶의 뿌리였던 기독교 – 심지어 제 이름은 ‘요한’입니다 – 가 심각하게 비판을 받는 시대가 되다 보니 진짜 ‘기독교는 뭐지?’라는 질문이 제 뱃속에서부터 목구멍까지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징글징글했던 기존 기독교회에서 쫓겨나고 나서, 나름 대안교회라는 곳에 출석하기도 하고(거기서도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ㅠㅠ), 이리저리 치여 살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목사아들 돼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사역하고 있는 ‘벙커1’교회에 출석을 하기도 했지요. 요즘은 사정이 생겨서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가나안’ 교인이네요.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정리한 것을 글로 남겨 두지 않으면 그냥 휘발(揮發)되겠구나 하는 겁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5.18이 부정당하듯이 왜곡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대단해서도, 너무나 엄청난 주장이라서가 아니라, 돌들이라도 소리를 칠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 돌이 던져졌으면 어디에 어떻게 던져졌고, 누굴 맞춰서, 어떤 파괴력이라도 보였나, 하는 것을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몇 주 동안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중심으로 책도 읽고 생각을 깊이 했습니다. 도올 선생의 해석은 탁월했습니다. 제 생각과 맥이 닿는 부분이 있어서 좀 뒤적거려 보았더니 대략 10여 년 전에 썼던 글이 있네요. 지금 맥락에 맞춰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냥 이런 생각하고 사는구나 하고 여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10703 최요한
<생각 톺아보기1 - 20210704> 
바울이 죽어야 예수가 산다 : 문제는 ‘사도바울’이었다는 뼈아픈 깨달음 
문제는 바울
 1.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1:8~9)
 2.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요한14:6)
 3.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전4:2)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씀이라도 누가 읽는지, 언제 어떤 장소에서 반포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만, 기독교인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성경’에 분명히 들어가 있는 말씀입니다. 
  10여 년 전에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위험지역이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외교부에서 그렇게 막았었지만, 당시 정말 개념 없는 기독교인들이 정부를 속이고 넘어갔다가 납치되어 2명의 귀한 생명 희생되고 아까운 세금이 협상용으로 사용되는 ‘민폐’를 끼친 적이 있지요.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바로 ‘오직 예수’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인용한 성경말씀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온 세계 방방곡곡에 하느님 말씀이 널리 퍼져서 온 민족과 온 열방이 온리 지저스, 온리 하느님만 믿어야 하는 것, 부처니 이슬람이니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오로지 기독교 지상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 오직 예수님만 믿고 천국가자는 바로 그 핵심논리 말입니다.
  슬프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국민적 지탄을 받을 때는, 막상 납치당했을 때는 ‘선교’가 아니라 순수 ‘봉사’라고 하더니 지금 그때 살해된 두 사람의 ‘순교비’가 서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때의 이슬람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바뀌었기 때문일까요?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 선교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에는 조계사와 봉은사에서 잇따라 개신교인들 10여 명이 소란을 피웠다고 하지요. 바뀌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생각해 보면 조선 땅에 들어온 ‘복음’도 서양 선교사들이 대동강에서 목이 뎅강 떨어져 나가면서 전파된 것이지요. 그냥 분당샘물교회를 욕하거나 “개념 없는 개독교인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화가 나서 욕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순교와 순교자에 대해서 비하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물론 저는 순교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직도 버젓이 그 유가족들이 남아 있는데 도가 지나쳐서는 안 되지요. 제가 예전에 썼던 글을 이제 보니까 낯이 뜨겁습니다. 혹시라도 유가족분들이 그때의 제 글을 읽고 맘 상하셨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이 부분이 명백하게 ‘순교’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짚을 것은 짚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땅밟기(불교나 이슬람 사원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 말입니다.)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데도 그게 의미가 있다고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그쪽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지 않고 공격적인 선교를 진행한 것이죠. 
  이제 생각해 보니 대동강에서 예수를 전파하다 대원군의 잔인한 명령으로 살해당한 선교사님들의 순수성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분들의 배경에는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했던 제국주의의 시커먼 속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눈앞의 팩트가 전부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옛날에도 복잡다단했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복잡한 인간사입니다. 여기에 정치가 개입되어 있는 ‘종교’가 외피를 두르고 나타나면.... 사건이 커집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습니다만, 전 세계에서 이렇게 사고를 저지르는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요, 그 이유가 바로 ‘바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올쌤은 마가복음에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고, 그것으로 마가복음의 ‘베드로’는 끝났다, 라고 표현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초대교회 신자들이 떠받들어 교회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이제는 제대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베드로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그런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가장 큰 제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반석이라고 칭해서?(마태오 16장 18절)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초대교회에서 베드로를 초대 지도자로 삼아서 처음부터 엇나간 것은 바로 [바울-베드로 동맹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바울과 베드로가 동맹을 맺었고, 나머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어떻게 기독교가 ‘예수의 하느님 신앙’과는 전혀 다른 ‘예수에 관한 신앙’으로 변질되었고, 어떻게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나,를 제가 공부한 대로, 그리고 한국기독교에 비추어 해석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짬짬이 정리해서 글을 올리는 건데요, 혹시라도 팩트가 틀릴 수 있고 제가 착각했다면 지적해 주세요. 다만 기본적인 시각이 다르면, 맘이 상하실 수 있으니까 그냥 지나가 주세요. 서로에게 이롭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아직 많이 남았네요. 이만 총총.

Jin Kaneko 세계 문화 유산으로 군함 섬 (하시 마)의 ​​취급에 대해 한국 측에 편 들어주는 소수의 일본인

(6) Facebook
"세계 문화 유산으로 군함 섬 (하시 마)의 ​​취급에 대해 한국 측에 편 들어주는 소수의 일본인을 다룬 것 같지만 ..."
 뭐 일본에는 이런 것을 말하는 사람도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는주지의 사실이지만, 대다수의 일본인을 설득 못하고있다 소수파군요. 이런 소수 의견을 기사로 다루어 소개하는 것에 대한 의의는 인정하므로이 점에 대해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 기사에서 "나가사키의 중국인 강제 연행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 장 · 신카이 智広 씨가 말하는 있는지 결함은 evidence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의 신념으로 단정 할 수 있겠지요.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강제 연행 · 강제 노동을 사실에 충분한 것으로 인식 될 수있는 evidence 네요.
 이것이 완전히 누락 한 채 신카이 智広 님의 개인 신념을 도도히과 피로되고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본 기사의 큰 문제 네요.
(여기까지는 본 기사의 독자 코멘트에 게시 됨.)
 글쎄, 신카이 智広 씨가 아니라 한겨레의 취재 · 보도의 자세쪽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또한 세계 유산 등록시 일본 정부가 UNESCO와 약속 한 것은 한국의 주문대로 역사를 개편하여 산업 유산 정보 센터는 그에 맞게 있으면 evidennce가 박약에서도 전시회로 취급 역사 인식 를 변경하라는 장이 수 - 이런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사람들 한국 정부, 한국의 언론 · 보도의 다수파 더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신카이 智広 씨는 여기를 착각하고있는 것이군요. 한겨레도이 착각이 있군요.
 뭐 UNESCO에서의 합의 내용이 매우 막연하고 꽈당에서도 취할 무지개 빛깔의 정치 · 외교에 흔히있는 문구가있는 것은 있습니다 만.
 또한 한국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역사 하나는 정부와 정치가 결정 보이지만 불행히도 일본은 그러한 생각은 취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그런 일을하지 - 여기도 모르는군요.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는 한일 정부 간 협의에서 "무엇이 올바른 역사?"를 외교적으로 결정하는 규칙과 관습, 여론의 합의는 전혀 없습니다. 이 한국과의 주요 차이점을 이해하십시오.
 즉, 정부와 정치인들이 역사를 만지는 재량을 가지고 있다고되어 한국과 일본은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보통 국가이기 때문에 역사 인식과 역사 서술에 옳은 일 일본 정부는 취급하지 않는다 (처리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있다). 이 점에서 한국은 중국과 북한에 가까운 나라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는 것. 뭐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그것은 학자의 논의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오고 있지요.
 그런 것으로, 한일 정부 간 협의 나 일본 정부와 UNESCO의 회담에서 일본 측이 약속 할 리가 없다 (약속을 할 수없는 것)을 약속했다고 마음대로 믿고 떠들고 그런데 있지요.
 알기 쉽게 말하면, 한국 측이 역사 문제를 정치 · 외교 현안으로 제기해서 일본 정부는 그것을 취급 권한이 주권자에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낭비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한국 측이 일본 정부가 UNESCO에 약속 한 것으로 생각하고있는 내용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본이 약속 한 것은 세계 유산으로의 취지 (메이지 일본의 산업 유산)에서 분리하지만, 중일 전쟁 · 태평양 전쟁시기의 역사 유산으로도 취급한다는군요.
 한국과 신카이 智広 씨가 말하는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 연행 및 강제 노동을 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으면, 산업 유산 정보 센터는 전시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닐까?
"즉 스즈키 씨의 아버지의 케이스에서 강제 동원 된 사람들의 상황을 추측 할 수 없으며, 하물며 스즈키 씨 본인은 하시 마 떨어져 1942 년경 아직 8 세 또는 9 세와 어려서 노동 현장에 가거나 보고 한 것도 아니다. "(기사에서)
 신카이 智広 씨는이 기사 중이며, 산업 유산 정보 센터의 스즈키 후미오 씨의 증언 전시를 이렇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말하면 한국 측이 강제 연행 · 강제 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력한 evidence하고있다 구 然喆 씨의 증언도 같네요.
 당시의 하시 마 섬의 증언에만 트집 있지만, 산업 유산 정보 센터는 한국 측의 말 하시 마에서 일한 강제 연행 피해자의 증언과 具然喆 씨 등 강제 연행 및 강제 노동의 목격자 증언 검증시키고 싶다고 호소하는 것.
 당연히 원래 하시 마 주민의 증언처럼 산업 유산 정보 센터가 직접 증언을 수집하고 증언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수집 방법을 모르겠어요 과거의 증언을 그대로 유용 할 것 같은 부실은하지 않아요. 산업 유산 정보 센터로서 그 증언의 신빙성에 일정한 책임이있는 것이니까. 이것도 당연한 일.
 예를 들어, 具然喆 씨가 증언자로 한국에서 말해왔다 것은 사실과 모순되는 부분이 대량으로 있고, "정말 당시의 하시 마에 있었는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수준이다.
 이는 한국 측이 최대의 evidennce하고있는 위안부 증언과 같다. 위안부 할머니 (할머니)의 증언을 불가침, 궁금하지 말라 신앙의 대상으로 같은 받아 일본 측에 없다는 것과 같네요.
 산업 유산 정보 센터로는 이런 具然 喆証 말을 무 검증 채 사실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전시 등의 무책임한 수 없을 것입니다.
 트집 잡는뿐으로, 그러한 움직임을 안하고 있잖아?
 한국 측도 트집 잡는 것만으로, 산업 유산 정보 센터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있다 지요?
 트집 붙이는뿐만 아니라, 이런 자 사료를 전시 해 달라는 요구를하고 그 자본 사료의 신빙성을 산업 유산 정보 센터와 신카이 씨와는 다른 견해 · 인식을 가진 입장의 사람들과 함께 이 검증되면 어떻습니까?
 이번 UNESCO가 결의 한 권고를 무시하고 좋다고는 말하지 않지만,이 결의에 이르는 과정과 권고의 내용에 심각한 문제와 결함이있는 것은 이전 게시 한 거리.
 일본 정부는 그 문제점이나 결함을 상세히 설명하고 성의있는 반론을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당분간이 권고를 받아들이는 필요가 없다.
 덧붙여서,이 권고를 수용하고 말고도 세계 유산 협약에 세계 유산으로의 취급이 박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된다 (이런 이유로 세계 유산 등록을 말소되는 일은 조약 상 있을 수없는 ·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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