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1

Yamamoto Tsunetomo - Wikipedia Hagakure

Yamamoto Tsunetomo - Wikipedia

Yamamoto Tsunet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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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amoto Tsunetomo
山本 常朝
BornJune 11, 1659
Japan
DiedNovember 30, 1719 (aged 60)
NationalityJapanese
OccupationSamurai, philosopher, writer

Yamamoto Tsunetomo (山本 常朝), Buddhist monastic name Yamamoto Jōchō (June 11, 1659 – November 30, 1719), was a samurai of the Saga Domain in Hizen Province under his lord Nabeshima Mitsushige.[1][2] He became a Zen Buddhist priest and relayed his experiences, memories, lessons, ideas, and aphorisms to the samurai Tashiro Tsuramoto [ja], who compiled them under the title Hagakure.

Early life and education[edit]

Yamamoto Tsunetomo was born 11 June 1659 to Yamamoto Jin'emon, then aged 71, and a woman whose maiden name was Maeda. He was the last born to the family, and regarded by his father as a superfluous addition who was intended to be given away to a salt merchant.[3] For most of his childhood, Tsunetomo was sickly and claimed doctors told him he would not live past twenty years old. Despite his fragile health, he was employed at age 9 to be a page for Nabeshima Mitsuhige. Tsunetomo's skills in literature led Mitsuhige to have him study under noted man of letters Kuranaga Rihei.[3]

In his twenties, Tsunetomo studied under the Zen Buddhist priest Tannen and the Confucian scholar Ishida Ittei, both of whom greatly influenced his philosophy.[4] The last major influence in Tsunetomo's education was his nephew Yamamoto Gorōzaemon, who was older than Tsunetomo and helped him get a position as a scribe in Edo and then in the imperial capital Kyoto in 1686. In 1687, Gorōzaemon took responsibility for a large destructive fire, leading to him and Tsunetomo both resigning from their positions. Tsunetomo returned to work for Mitsuhige.[5]

Buddhist priesthood[edit]

In 1695, Mitsushige retired due to ill health, and tasked Tsunetomo with finding a copy of a book of secret poetry instructions called Kokindenju. Tsunetomo obtained a copy in Kyoto and on 1 May 1700, presented it to Mitsuhige, who died two weeks later.[5] Tsunetomo intended to commit suicide to follow his master in death, but both Mitsushige and the shogunate as a whole had banned the practice. Instead of continuing as a samurai seeking minor positions, Tsunetomo became a Buddhist priest and his wife became a nun, living in a hermitage in the mountains.[5]

Hagakure[edit]

Later in life, (between 1709 and 1716), Tsunetomo narrated many of his thoughts to the samurai Tashiro Tsuramoto [ja]. Many of these aphorisms concerned his lord's father and grandfather Naoshige and the failing ways of the samurai caste. These commentaries were compiled and published in 1716 under the title of Hagakure (葉隠), a word that can be translated as either In the Shadow of Leaves or Hidden Leaves.[6][7]

The Hagakure was not widely known during the years following Tsunetomo's death, but by the 1930s it had become one of the most famous representatives of bushido taught in Japan. In 2011 a manga/comic book version was published Hagakure: The Manga Edition, translated by William Scott Wilson, adapted by Sean Michael Wilson and Chie Kutsuwada (Kodansha International Ltd., 2011).

Tsunetomo believed that becoming one with death in one's thoughts, even in life, was the highest attainment of purity and focus. He felt that a resolution to die gives rise to a higher state of life, infused with beauty and grace beyond the reach of those concerned with self-preservation. Some viewed him as a man of immediate action due to some of his quotes, and in the Hagakure he criticized the carefully planned Akō vendetta of the Forty-seven rōnin (a major event in his lifetime) for its delayed response.

Despite Tsunetomo's focus on death and military loyalty, he never fought in any battle and is noted as advocating ideals that were already a century out of date by his lifetime.[8]

Legacy[edit]

During Japan's militarist years in the 1930s and 1940s, soldiers hailed Hagakure as a key text for proper samurai behaviour.[9]

See also[edit]

Footnotes[edit]

  1. ^ Turnbull 2006, p. 71
  2. ^ Jansen 2002, p. 102
  3. Jump up to:a b Yamamoto, Tsunetomo (2012). "Introduction". In Wilson, William Scott (ed.). Hagakure: The Book of the Samurai with a Revised Introduction. Boulder: Shambhala. pp. xiii. ISBN 978-1-59030-985-8.
  4. ^ Wilson, "Introduction" (2012), xiv.
  5. Jump up to:a b c Wilson, "Introduction" (2012), xv.
  6. ^ Varley 2000, p. 211
  7. ^ Tsunetomo 2002, p. 15
  8. ^ Wilson, "Introduction" (2012), xvi.
  9. ^ Varley (2000), 212.

References[edit]

External links[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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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상조

출처 : 무료 백과 사전 "Wikipedia (Wikipedia)"
야마모토 상조
야마모토 상조의 무덤(사가시)

야마모토 상조(야마모토 츠네토모만지 2년 6월 11일 ( 1659년 7월 30일 ) - 누보 4년 10월 10일 ( 1719년 11월 21일 )는, 에도 시대 의 사무라이 사사  사.무사도의 서적 「하가쿠」의 구술자.「조초」이란 42세로의 출가 이후의 훈련으로, 그 이전은 「언제나」라고 훈련했다.통칭 카미에몬 , 배우호 는 후루마루 .

약력 편집 ]

만지 2년(1659년)에, 사가 성 시타 카타다에요코코지(현재의 사가시 미즈 가에 니쵸메)에서, 사가 번지 야마모토 카미에몬 시게스미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마에다 작 사에몬 여자.

상조가 자신의 살아남을 말하는 항이 『하가쿠』・문서 둘째에 있어, 그것에 의하면, 자신은 아버지 70세 때의 아이로, 태어나 약하고 20세까지 살 수 있어 라고 말했기 때문에, 소금 판매에서도 하려고 아버지는 생각했지만, 명부모의 다쿠 도서 (모토미, 시게스미의 대조 머리)의 “아버지의 피를 받아 끝없이 용서한다”라는 취하지 않고, 첫이름을 소나무 거북이라 불리며 9살 때 나베시마 미츠모 (사가번 2대 번주)의 소승으로 부름 받았다고 한다.

11세에 아버지에게 사별해, 14세 때, 미츠모의 小姓(이른바 子小姓치아)이 되어, 이름을 이치쥬로로 바꾼다. 연보 6년( 1678년 ) 20세에 전복하여 권지 병과 개명, 가방역으로서 서서역 돕기에 종사한다. 이 해에 타시로 진기 가 태어났다.

그동안 사생활 면에서는 20세 연장의 조카·야마모토 죠지에 엄격한 훈육을 받았지만, 권지무가, 와카  츠나모의 노래의 상대도 하는 것이 미츠모의 불흥을 걸어, 잠시 역면과 되었다. 실의의 이 무렵, 사가군 마츠세의 화장암에서 쇼연 화상으로 불도를 배우고, 21세 때에 불법 의혈액케짱(사로부터 제자에게 법등 이 접수되는 것)성가아코넨쥬(생전 장례식, 아사히야마 상조의 법호 를 받았다)를 신청하고 있다.

『하가쿠』에서 자비심 을 매우 중시하는 소지는 이때 풍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전후,  ·  · 불의 학을 굉장히 번 제일의 학자라고 불리면서 시모다(현재의 사가현 야마토마치) 마쓰우메무라에 한주하는 이시다 이치코 를 자주 방문해 가오루를 받았다. 이것도 나중의 『하가쿠』의 내용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텐와 2년( 1682년 ) 24세 때, 6월, 야마무라 롯타오 세이지의 딸과 결혼, 같은 해 11월, 서적 역을 배명. 28세 때, 에도 에서 서사물 봉행, 그리고 교토 어용을 명령받고 있다. 귀국 후 33세 때 다시 서적 역을 명령받는 생명에 의해 부모의 이름 "카미에몬"을 습명 했다.

5년 후의 겐로쿠 9년( 1696년 ), 또 교토 역을 명령받아, 와카 의 흔들림 깊은 광무의 숙망이었던 산죠 니시 실교 로부터의 고이마 전수 ( 고이마 와카집 해석의 비전을 받는 것)를 얻는다 이를 위해 이 잇따른 일에 교토 사가를 분주했다. 고금전수의 모든 것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원록 13년( 1700년 ) 드디어 이것을 받을 수 있어, 은거 후 중병의 바닥에 있는 광수의 베개에 전달해 기뻐해, 면목을 풀었다.

은거와 만년 편집 ]

같은 해 5월 16일, 번주의 광수가 69세의 생애를 닫거나, 42세의 이해까지 30년 이상 “집을 우리 혼자 짐”의 마음의기로 측근으로서 섬긴 상조는, 추복 금지로 순사 도 되지 않고 소원을 나서 출가했다. 5월 19일 번주의 보제 사인 조동종 고전 사의 양의화상에서 수계 , 면도하고 이름을 아사히야마 상조로 바꿨다. 7월 초순에 사가성하의 북쪽 10㎞의 야마지 내영사촌(현재의 사가시 가나다테초) 구로토하라에 아사히켄이라는 초안을 묶어, “묻는다의 도시바 츠유 젖어 무렵도 손수주봉의 소나무풍」이라고 읊고 은거했다.

타시로 진기가 상조를 모호히 물어 온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호나가 7년( 1710년 ) 3월 5일이다. 『하가쿠』의 말과 필기가 시작된다.

나중에 아사히 켄은 종수암이 되어, 미쓰모의 내실이 여기에서 추선 공양 하고, 자신의 묘소로 정했기 때문에, 상조는 삼가해, 정덕 3년( 1713년 ) 구로토바라로부터 서방 약 11킬로 의 오오쿠마(현재의 사가시 야마토초 석석)의 안으로 옮겨 살았다. 쇼토쿠 4년( 1714년 ) 5월, 가와쿠보 영주 신대 주선(광무 칠남, 후의 사가번 오대 번주 나베시마 종모 )을 위해서, 번주인 사람의 마음가짐을 말한 「서치」를 써, 다음 5년 , 상정한다.

우호 원년( 1716년 ) 9월 10일, 타시로 진기가 「하가쿠」전 11권의 편집을 끝낸다. 야마이는 것 20년, 누보 4년( 1719년 ) 10월 10일, 61세에 몰렸다. 다음날, 안마에에서 노야키, 묘소는 하치노헤용운사 .

사세 의 노래:

무겁게 번거로워 지금은 라고 생각할 때 심문하는 후카야마의 안쪽보다 조용한 헤키 이끼의 하암벌레의 소리의 약함은 따뜻하고 저울을 겸해서 옆으로 들으려고 하는 것을

사료 편집 ]

출가 후 상조는 아버지 스미와 할아버지 나카노 카미에몬 청명의 각각의 상세한 연보를 제작해, 자신의 상세한 연보도 죽음의 2주전까지 계속 쓰고 있었다. 덧붙여 상조 자필 『연보』는 하은연구회 『엽은연구』 제2호에 농각되고 있다.

참고 문헌 편집 ]

서장 『하가쿠』와 야마모토 상아사  4 야마모토 상조의 생애와 경력 , p59~p88

관련 항목 편집 ]

외부 링크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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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画『リトル・フォレスト 冬・春』予告編



[신간] 번역전쟁·만족을 알다 | 연합뉴스

[신간] 번역전쟁·만족을 알다 | 연합뉴스



[신간] 번역전쟁·만족을 알다

송고시간2017-12-07


황희경 기자기자 페이지


IMF키즈의 생애·일본적 마음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 번역전쟁 = 번역가 이희재씨가 말을 상대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모습들을 드러낸다.

책에서 말하는 '번역'은 일반적인 의미의 글 번역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 말로 담아내는 것까지 확대한 개념이다. 저자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있는 말들이 의도적으로 왜곡됐을 수 있다는 시각에서 말들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포퓰리즘'으로 번역되는 영어단어 'populism'은 대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철도거품이 꺼지며 금융위기가 생겼고 그 불똥이 농민에게까지 튀었다. 농민들은 이에 토지 소유 제한과 철도 국유화, 금융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뜻을 대변해 줄 'People's Party'라는 정당을 만들었다. 원래 'populism'은 이 정당을 만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기들끼리 이르던 말로 자기비하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이 단어의 뜻을 제대로 담는 번역으로 '서민주의'를 제안한다.


이밖에 'privatization'은 소수 기득권자가 다수 서민을 고달프게 만드는 '사유화'이지만 '민영화'라고 고집하는 경우, 'war on terror'는 '테러 절멸전'이 아니라 '테러 양산전'인 셈이 많았다고 설명한다.ADVERTISEMENT


영한사전에서 '과두지배세력'으로 풀이되는 '올리가르흐'(oligarch)를 저자는 사회의 권력이 금력에서 나온다는 의미로 '금벌'(金閥)이라고 번역한다. 책은 'oligarch'는 영미 언론에서 러시아 현실을 그리는 데 쓴다는 점을 지적하며 '금벌'이 러시아에만 있는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궁리. 520쪽. 2만5천원.

▲ 만족을 알다 = 에즈비 브라운 지음. 일본건축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미국인 연구자인 저자가 현대인의 눈으로 일본 에도시대(1603∼1868)의 생활사를 재현한다.

저자는 에도시대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규정한다. 농촌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추구했다. 재활용과 재사용이 몸에 뱄고 경작지는 지형을 활용했으며 가옥은 검소하면서도 기능적이었다.

도시에서도 좁은 공간을 활용한 주택구조와 자재의 재활용, 놀랄 만한 수준이었던 상하수도 시설, 건축자재와 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표준화된 건축설계도가 사용됐다. 무사들은 검소하면서도 품격을 갖추려 노력했다.

당시 에도시대 삶을 묘사한 수백 컷의 삽화가 돋보이다.

달팽이출판. 정보희 옮김. 336쪽. 1만5천원.






▲ 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지음. 인터넷 미디어 프레시안의 기자 출신인 저자가 외환위기 속에서 10대를 보낸 'IMF 키즈' 30대 성인 7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외환위기를 통과해온 경험이 이들의 삶에 어떻게 새겨져 있는지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교집합을 조심스레 제시한다.

코난북스. 373쪽. 1만6천원.

▲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지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1996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에 살면서 관찰하고 연구한 일본문화와 일본인의 정체성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체념, 집단주의, 부끄러움과 수치, 죽음의 문화를 통해 일본 사회를 읽어낸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는지, 일본에는 유독 대를 잇는 장인들이 많은지, 일본 축구대표팀 유니폼에 까마귀가 그려진 이유 등을 담았다.

책읽는고양이. 240쪽. 1만4천원.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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