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

니야야 학파 - 위키백과, 니야야 바이셰시카(Nyaya-Vaises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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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야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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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야 학파(Nyāya)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의 하나로, 정리론(正理論) 또는 정리학파(正理學派)라고도 한다.

"니야야"란 법칙 · 규범 등을 뜻한다.[1] 《베다》 연구를 할 때의 여러 가지 변론이나 사고(思考)에 있어서 논증상의 법칙이나 규약이 설정되고 이러한 것에 관한 연구와 교의가 이윽고 한 학파를 이루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1] 그 성격상 "(윤회의) 원인을 밝히는 논리"라는 의미에서 인명(因明) 혹은 인론(因論)이라고도 부르지만 논리학적 연구는 힌두교의 다른 철학 학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1]

창시자는 고타마(가우타마 · 아구바다 · 足目)라고도 하나 분명치 않다.[1] 근본경전으로서는 《니야야 수트라》가 있으며 《정리경(正理經)》이라고 번역된다.[1] 《니야야 수트라》는 250~350년경에 편찬되었다.[2]

니야야 학파의 성립은 약 1세기경으로 추정된다.[1] 니야야 학파의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은 거의 바이셰시카 학파의 철학을 계승한 것으로 대체로 바이셰시카 학파와 유사하다.[1][2] 해탈론은 불교와 삼키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1] 다른 힌두교 철학 학파들과 마찬가지로 해탈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으며, 《니야야 수트라》에 정해진 참된 지식(眞知)의 대상인 16제(十六諦)를 바르게 알게 됨으로써 해탈이 달성된다고 주장하였다.[1]

니야야 학파의 사상에는 불교의 영향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논증 중심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인해 《베다》 신학의 주류들로부터는 냉담시되었다.[1] 10세기 이후에는 바이셰시카 학파와 융합되었다.[1] 13세기에 미티라에 강게샤(12세기?)가 나타나서 신니야야 학파를 창설하였다.[2]

어원[편집]

인도에서 논리학 연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명(因明)이라고 부른다.[2] 그러나 그것을 조직적으로 대성한 것은 니야야 학파이다.[2] "니야야"라는 낱말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이론(理論) 또는 정리(正理)이다.[2] 그것이 후에는 논리학적 연구 전반의 의미가 되었고 다시 학파명으로 되었다.[2]

기본 교의[편집]

니야야 학파는 약 1세기경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1] 니야야 학파의 우주발생론이나 극미론(極微論) 등의 자연철학과 형이상학은 거의 바이셰시카 학파의 철학을 계승하여 대체로 바이셰시카파와 유사하다.[1][2] 해탈론에 있어서는 불교와 삼키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1] 다른 철학 학파와 마찬가지로 해탈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으며 그것은 《니야야 수트라》에 정해진 참된 지식의 참된 지식(眞知)의 대상인 16제(十六諦)를 올바르게 알게 됨으로써 달성되고, 또한 고(苦) · 생(生) · 동작 · 과실 · 사지(邪知)를 마지막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없애 나가면 연쇄적으로 앞의 것이 소멸되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1]

해탈론[편집]

니야야 학파의 교의에 따르면, 인생은 (苦)에 번뇌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인간이 생존(生存)하고 있기 때문이다.[2] 인간이 생존(生存)은 인간이 활동(活動)을 하는 데 근거한다.[2] 그런데 인간의 활동은 여러 가지 결점, 즉 탐욕 · 미워함 등에 근본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이런 결점은 "오류(誤謬)의 지(知)"에서 비롯된 것이다.[2]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苦)의 근원을 추구해 들어가면, 결국 "오류의 지(知)"가 (苦)가 일어나는 궁극적 근원임을 알 수 있다.[2] 따라서 이 근본적인 오류의 인식(認識)을 제거하여 만유의 진실상을 인식할 것 같으면 자연히 고뇌를 이탈하게 된다.[2] 이것이 모크샤(해탈)이다.[2] 모크샤(해탈)에 이른 사람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다.[2]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계율을 준수하고 요가수행을 해아만 한다.[2]

니야야 학파는 바이셰시카 학파와 같이 한없이 많은 원자가 오랜 옛적부터 존재하여 불변불멸(不變不滅)이며 그것들이 합하여 자연 세계를 성립시키고 있다고 한다.[2] 또 아트만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논증하고 있다.[2]

인식론[편집]

니야야 학파에서는 정당한 지식을 얻기 위한 인식방법으로 다음 네 가지를 주장한다.[2]

  1. 직접지각(直接知覺)
  2. 추론(推論)
  3. 유비(類比)
  4. 신뢰할 만한 사람의 언어

이들 중 두 번째의 추론(推論)은 다음의 예와 같은 5분작법(五分作法)이라고 일컬어지는 논증 형식으로 이루어진다.[2]

  1. 주장(主張: 宗 · 종): 저 산(山)은 불을 가지고 있다.
  2. 이유(理由: 因 · 인): 그것은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3. 실례(實例: 喩 · 유): 어떤 것이든지 연기가 일어나는 곳에는 불이 있다. 비유컨대 아궁이와 같다.
  4. 적용(適用: 合 · 합): 연기가 일어나는 아궁이와 같이 저 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5. 결론(結論: 結 · 결): 따라서 저 산은 불을 가지고 있다.

네 가지 인식방법 중 세 번째의 유비는, 예를 들어, 물소(水牛)는 소와 같은 것이라고 가르쳐지고 후에 실물(實物)인 물소를 보고서 이것이 물소라고 아는 경우이다.[2]

네 가지 인식방법 중 네 번째의 신뢰할 만한 사람의 언어에는 《베다》가 포함된다.[2] 이 네 번째 항목과 관련하여 니야야 학파에서는 미맘사 학파 등의 어상주론(語常住論)에 반대하였는데, 니야야 학파의 이러한 반대 의견은 바이셰시카파와 그 입장이 동일하다.[2]

각주[편집]

  1. ↑ 이동: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힌 두 교 > 힌두교 > 힌두교 전사(前史) > 니아야파,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2. ↑ 이동: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정통바라문 계통의 철학체계 > 니야야 학파와 논리학,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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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셰시카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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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셰시카 학파(산스크리트어Vaiśeṣika팔리어Visesikā영어Vaisheshika)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의 하나로, 승론(勝論)으로 한역(漢譯)되어 승론 학파(勝論學派)라고도 불린다. 전통에 따르면, 바이셰시카 학파는 기원전 1세기경에 카나다(Kanada: 우르카 또는 카나브주라고도 한다)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창시자 카나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바이셰시카 수트라》는 이보다 후대에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

바이셰시카 학파는 실체[實, dravya, substance] · 성질[德, guṇa, quality] · 운동[業, karma, activity] · 보편[同, sāmānya, generality] · 특수[異, viśeṣa, particularity] · 결합[和合, samavāya, inherence]의 여섯 가지의 원리 또는 범주[六句義]를 세워서 현상계, 즉 우주의 여러 사물의 구성을 밝힌다. 그리고 이들 여섯 원리 중 첫 번째 원리인 실체에는  ·  ·  · 공기 · 아카사 · 시간 · 공간 · 아트만 · 마나스의 아홉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2]

명칭[편집]

학파의 명칭인 바이셰시카(Vaiśeṣika)는 특수 또는 구별을 뜻하는 비셰사(viśeṣa)라는 낱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학파가 세계 즉 현상계를 실체[實, dravya, substance] · 성질[德, guṇa, quality] · 운동[業, karma, activity] · 보편[同, sāmānya, generality] · 특수[異, viśeṣa, particularity] · 결합[和合, samavāya, inherence]의 여섯 가지의 원리 또는 범주[六句義]로 구별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바이셰시카(Vaiśeṣika)라는 말을 수승(殊勝) 즉 '뛰어나다'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이에 따라 승론(勝論)이라 불리고 있다.[3]

개요[편집]

바이셰시카 학파의 교의 또는 철학은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실재론적인 경향이 강하며 브라만교의 신학적 요소보다도 자연철학적인 색채가 짙다.[1] 모든 사물을 실체와 속성으로 나누고 이를 실체 · 성질 · 운동 · 보편 · 특수 · 결합의 6개 원리 또는 범주(範疇: 句義)로 설명하였다.[1]

실체로는 자연 · 생물 등 우주의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인  ·  ·  · 공기 · 아카사( · 허공 · 에테르· 시간 · 공간 · 아트만(我) · 마나스(意)의 아홉 가지가 있다.[1]  ·  ·  · 공기는 인(因) 상태로는 원체(元體: 으뜸이 되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의 미진(微塵: 미세 입자)으로서 불변이며 에는 향기에는 에는 색깔공기에는 촉감이 본래의 성질로서 화합 또는 결합한다.[1] 이것들은 극히 미세하여 감각할 수 없다.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복합해서 된 결과일 따름이다.[1]

 ·  ·  · 공기의 4원소의 극미체(極微體)는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화합 또는 결합이 없었고 또한 아트만과 극미체의 화합 또는 결합도 없었다.[1] 그러나, 아트만에는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잠재해 있으며 이것이 불가견력(不可見力)으로서 작용하게 되면 우주의 창조가 개시된다.[1] 그러나 창조된 세계는 일정한 기간을 지속하면 아트만의 불가견력에 의해서 4원소가 차례로 분리되어 다시금 극미체로 해체 · 분산하게 된다고 우주의 발생 · 지속 · 소멸을 설명하였다.[1]

이와 같이 우주와 인생을 설명함에 있어 물질 · 정신의 2원적 대립으로써가 아니고 또한 브라만을 유일절대로 하는 1원관(一元觀)도 아닌 다원적(多元的)인 관점에서 원소(즉, 실체· 속성(즉, 성질 · 운동 · 보편 · 특수· 관계(즉, 결합)의 측면으로 설명하였다.[1]

용어[편집]

바이셰시카 학파의 교의 또는 철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의 산스크리트어와 한글 번역어들 및 영어 번역어들은 다음과 같다.[1][2][4][5][6][7] 아래의 여섯 가지 원리 · 아홉 가지 실체 등보다 더 많은 원리 또는 실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들 여섯 가지와 아홉 가지로 구분한 것은 바이셰시카 학파에서는 이들이 윤회를 벗어나 "영혼의 자유"(모크샤 · 해탈)에 이르기 위한 구도의 과정에서 반드시 깨우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아홉 가지 실체는 실제적인 요가 수행을 통해 깨우쳐야(앎 · knowledge) 하는 것들("실체들")로, 수행 계위와 관련이 깊다. 바이셰시카 학파의 여섯 가지 원리 · 아홉 가지 실체에 대한 교의 또는 철학은 수행을 통해 실제로 깨우쳐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말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섯 가지 원리[편집]

  • 여섯 가지 원리: 빠다-아르타스 (Padārthas) · 여섯 가지 범주 · 육구의(六句義) · 6가지 카테고리 · Six Categories · Six Predicables
  • 원리(原理): 빠다-아르타(Padārtha) · 범주(範疇) · 구의(句義) · Category · Predicable
    여섯 가지의 원리 또는 범주가 있다. 산스크리트어 파다르타(Padārth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낱말의 의미(meaning of a word)"로 "구의(句義: 문자 그대로는 '낱말의 의미')"라는 한역은 이러한 문자 그대로의 뜻을 쫓아서 번역된 것이다. 바이셰시카 학파에서는 인식할 수 있는 것에는 이름(낱말)을 붙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낱말의 의미"라는 말은 "인식할 수 있는 것들을 그 유형(의미)에 따라 나눈 것(범주화한 것)"을 뜻한다. 영어 낱말 "프레디커블(Predicable)"의 사전적인 의미는 "주장할 수 있는(can be asserted)" 또는 "서술할 수 있는(can be predicated)"이다.
  1. 실체(實體): 드라브야(Dravya) · (實) · Substance · Eternal Reality
  2. 성질(性質): 구나(Guṇa) · (德) · Quality · Attribute
  3. 운동(運動): 카르마(Karma) · (業) · (行) · Activity · Action
  4. 보편(普遍): 싸만야(Sāmānya) · (同) · Generality · Genus
  5. 특수(特殊): 비세사(Viśeṣa) · (異) · Particularity · Species
  6. 내속(內屬): 사마바야(Samavāya) · 화합(和合) · Inherence

아홉 가지 실체[편집]

고대 원소

바빌로니아

공기 
에테르
 

그리스

 공기 
에테르
  

타트바 (인도 철학)

 바유 (바람) 
아파스 (물)아카샤 (허공)테자스 (불)
 프리티비(흙) 

오행 (동양 철학)

  (木) 
 (水)  (火)
 (金) (土)

오대 (일본)

 공기 (風) 
 (水)무극 (空) (火)
  (地) 

오대 (티베트 · 본)

 공기 
에테르
  

중세 연금술

 공기 
아조트
 
수은소금

v • d • e • h

  1. (地): 프르트비(Pṛthvī) · 프르티비(Pṛthivī) · (地) ·  · Earth
  2. (水): 아프(Ap) · (水) · Water
  3. (火): 테자스(Tejas) · 아그니(Agni) · (火) · Fire
  4. 공기(空氣): 바유(Vāyu) · (風) · 바람 · Air
  5. 아카사(空): 아카사(Ākāśa) · (空) · 하늘 · 허공(虛空) · 에테르 · Akasha · Ether · Aether · Æther
  6. 시간(時間): 칼라(Kāla) ·  · Time
  7. 공간(空間): 디크(Dik) · 방위(方位) · Space
  8. 아트만(自我): 아트만(Ātman) · (我) · 영혼(靈魂) · 자아(自我) · Self · Soul
    참고로, 불교에서는 아트만을 (我)라고 한역한다.
  9. 마나스(意): 마나스(Manas) · (意) · 마음 · (心) · Mind
    참고로, 불교의 유가유식파에서는 마나스(Manas)를 (意) 또는 말나식(末那識)이라고 한역하며, (心)은 제8아뢰야식의 다른 이름 중 하나이다. 윤회의 주체이며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의 업력을 함장하고 있다는 면에서, 바이셰시카 학파의 아트만은 유가유식파의 제8아뢰야식, 즉 (心)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이하다.

원소·극미체·원자[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김사업 (1989). 《제칠말나식의 성립과 그 체성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석사학위논문.
  • (영어) Bernard, Theos (1947).《Hindu Philosophy》. Philosophical Library, New York.
  • Chattopadhyaya, D. (1986). 《Indian Philosophy: A Popular Introduction》 (영어). People’s Publishing House, New Delhi. ISBN 81-7007-023-6.
  • Radhakrishnan, S. (2006). 《Indian Philosophy, Vol. II》 (영어). Oxford University Press, New Delhi. ISBN 0-19-563820-4.

각주[편집]

  1. ↑ 이동: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힌 두 교 > 힌두교 > 힌두교 전사(前史) > 바이셰시카 학파,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바이셰시카 학파: Vaisheshika學派 승론(勝論)으로 한역(漢譯)된다. 기원전 1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하나 창시자 카나다(우르카 또는 카나브주라고도 한다)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뱌이셰시카 수트라>는 약간 후대의 것으로 생각된다. 자이나교의 영향을 받아 실재론적인 경향이 강하며 바라문교의 신학적 요소보다도 자연철학적인 색채가 짙다. 모든 사물을 실재와 속성으로 나누고 이를 실(實)·덕(德)·업(業)·동(同)·이(異)·화합(和合)의 6개 범주(範疇:句義)로 설명하였다. 실체는 실구의(實句義)로서 대표되며 또한 자연·생물의 두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땅·물·불·바람·하늘·때·방향·아(我)·의(意)로 나뉜다. 땅·물·불·바람은 인(因) 상태로는 원체(圓體)의 미진(微震)으로서 불변이며 땅에는 향기, 물에는 맛, 불에는 색깔, 바람에는 촉감이 본래의 덕으로서 화합한다. 이것들은 극히 미세하여 감각할 수 없다.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들이 복합해서 된 결과일 따름이다. 땅·물·불·바람의 4원소의 극미체(極微體)는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는 결합이 없었고 또한 아트만과 극미체의 결합도 없었다. 그러나, 아트만에는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잠재해 있으며 이것이 불가견력(不可見力)으로서 작용하게 되면 우주의 창조가 개시된다. 그러나 창조된 세계는 일정한 기간을 지속하면 아트만의 불가견력에 의해서 4원소가 차례로 분리되어 다시금 극미체로 해체, 분산하게 된다고 우주의 발생·지속·소멸을 설명하였다. 이와 같이 우주와 인생을 설명함에 있어 물질·정신의 2원적 대립으로써가 아니고 또한 브라만을 유일절대로 하는 1원관(一元觀)도 아닌 다원적(多元的) 면에서 원소·속성·관계의 측면으로 설명하였다."
  2. ↑ 이동: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정통바라문 계통의 철학체계 > 바이셰시카 학파,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바이셰시카 학파: Vasesika 學派 바이셰시카 학파의 개조(開祖)는 카나다(별명 울루카, 전 150 ? ∼전 50 ?)라고 하는 사람이다. 기원 50∼150년경에 이 학파의 근본 경전인 <바이셰시카 슈트라>가 편찬되었다. 바이셰시카 학파의 한역(漢譯)으로서는 <승론(勝論)>·<위세사(衛世師)>·<폐세사가(吠世史迦)> 등이라 쓴다. 이 학파는 우리들의 지식을 성립시키는 근거로서는 직접 지각(直接知覺, 現量)과 추론(推論, 比量)만을 인정한다. 여러 철학파가 일반적으로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데 대하여, 이 학파는 성전에서 얻는 지식을 추론에 의하여 얻어지는 지식의 일종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독립된 지식근거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 어상주론(語常住論)을 배척한다. 일반적으로 언어와 의미와의 결합관계는 편의적·습관적이어서 선천적 혹은 항구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하한 지식도 전부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학파는 실체·성질·운동·보편·특수·내속(內屬:實·德·業·同·異·和合)이라고 하는 여섯 가지의 원리(原理:句義)를 세워서 현상계의 여러 사물의 구성을 밝힌다. 실체로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원소(元素=四大)와 허공(虛空)과 시간과 방위(方位)와 아트만(我)과 의(意)라는 아홉을 내세우고 있다. 이 4원소에는 각각 성질이 다른 무수한 원자(原子)가 있다. 원자는 단순미세한 것으로 구체(球體)를 이루고 있어 불멸이다. 성질로서는 색(色)·향(香)·미(味)·가촉성(加觸性, 觸)·수(數)·양(量)·별이성(別異性, 別體)·결합(結合, 合)·분리(分離, 離)·저쪽(彼體)·이쪽(比體)·지각작용(知覺作用,覺)·쾌감(快感,樂)·불쾌감(不快感, 苦)·욕구(欲求, 欲)·혐오(嫌惡, 瞋)·의지적 노력(意志的 努力, 勸勇)이라는 17가지를 인정한다. 운동으로서는 상승·하강·수축·신장·진행의 다섯 가지를 인정한다. 보편과 특수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최상의 보편은 유성(有性)인 것이요, 이에 반하여 극한에 있어서의 특수(特殊)는 원자(原子)속에 있어 보편을 포함하지 않는다. 유성(有性)과 극한(極限), 특수와 중간에 있어서 표준을 세우는 방법에 따라서 동일물(同一物)이 보편으로도 되며, 또한 특수로도 된다. 그런데 성질과 운동, 보편과 특수는 본래 불상리(不相離)인 것으로서 실체에 내속(內屬)한다. 따라서 이 내속이라고 하는 관계를 독립된 원리로 간주한다. 이것은 보편도 아니며 특수도 아니다. 이 학파에 의하면 <베다 성전>은 일단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베다의 내용을 쫓아서 행동할 것 같으면 다만 과보(果報)로서 생천(生天)을 가져오게 할 뿐이고 윤회(輪廻)의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다. 해탈하기 위해서는 바이셰시카의 6원리의 연구와 실수(實修)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트만이 암매(暗昧)해진 것은 뜻(意)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므로 뜻을 제어하는 요가의 수행(修行)을 중심으로 하였다. 요가에 의해 전생(前生)으로부터의 여력 즉, 불가견력(不可見力)을 소멸시키면 해탈이 실현된다. 그 경지에 있어서는 아트만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실체로서 존재한다. 후에 바이셰시카 학파에서는 혜월(慧月 550 ?∼650 ?)이 <승종10구의론(勝宗十句義論)>(玄裝譯)을 저작하였다. 10구의(十句義)란 6구의(六句義) 외에 보편이면서도 특수한 것(俱分), 가능력(可能力:有能), 무능력(無能力:無能), 무(無:無說)을 말한다. 그는 보편을 유성(有性)에만 한정시키고 특수를 극한에 있어서의 특수에만 한정하였기 때문에 그 중간자(中間子)를 별도로 세운 것이다. 가능력(可能力)은 실체·성질·운동이 그 결과를 생기게 하는 능력이요, 무능력은 그것이 없는 것이다. 또 우주를 지배하는 주재신의 존재를 승인하게 되었다."
  3.  김사업 1989, 37쪽.
  4.  Radhakrishnan 2006, 183–86쪽
  5.  Chattopadhyaya 1986, 169쪽
  6.  Bernard 1947, 46-47쪽
  7.  "구실(九實)"[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네이버 백과사전》. 2011년 4월 23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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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실재론에 대한 니야야 바이셰시카(Nyaya-Vaisesika)의 입장과 불교의 반론
Standpoint of Nyaya-Vaiseska on Universal Essentialism and Counter Argument of Buddhism
원혜영 ( Hye Young Won )
간행물 : 한국불교학 57권0호
간행물구분 : 연속간행물
발행년월 : 2010년 08월  페이지 : 301-326(26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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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할 것 없이 보편이 실재하느냐의 여부와 그것의 현상세계와의 관계는 실재론자와 유명론자, 개념론자들 각각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치열하게 논쟁되었다. 
본고에서는 보편실재론이 주장하는 보편의 실재성에 관한 이론을 검토하고, 불교도의 반론과 이에 대한 답변의 과정들을 바탕으로 한 문제들을 살펴본다. 

불교에 의하면, 꿈, 착각, 상상적 대상들은 피상적인 의미에서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자연적 혹은 선천적인 구성이다. 달리 말해서 보편은 개별 이성의 제멋대로의 구성이 아니라 그들에게 본래적인 개념 구성의 자연적 경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은 경험적 실재(samvrtisat)라고 불린다. 보편은 다른 한편으론 궁극적인 自相(svalaksanas)과도 구별된다. 

이러한 궁극적 관점에선 보편은 상상적 대상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인간 이성의 본래적 구성이라는 가정은 불교 인식론에서 필수적이다. 어떠한 보편성 혹은 유사성도 가지지 않는 절대적 특수들에 대한 존재론을 견지하는 불교도의 경우 이러한 가정 없이 언어의 사용과 관념이라는 공통된 이해, 일반적 인식들은 설명될 수 없다. 우리는 사고 속에서 심지어 개체로부터의 추상화를 통해서 보편을 구별하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보편에 그 실재성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실재론자는 무비판적으로 다른 인식의 대상인 개체와 구별되기 때문에 동일적 인식의 대상으로서 보편이 그 자신의 존재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와 같은 가정은 경험에 의해서도 논리에 의해서도 보증될 수 없는 것 같다. 보편과 개체는 결코 소와 말과 같이 다른 대상들로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편은 개체가 없이는 인식되지도 않는다. 개체적 대상들에 대한 우리의 동일한 인식들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실재로서의 보편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개체에 의해서 드러난 보편적 특성들에 기초해서 설명가능하다.

Philosophers who advocate either essentialism and nominalism or conceptualism in both Eastern and Western societies have constantly argued about whether Samanya exists or not, and how that question is related with the phenomenal world. This paper aims at examining theories on the substantiality of samanya and investigates the counter argument and answers of Buddhism on this matter. Samanya for Buddhists is subjective not in superficial terms such as dreams, illusion and imagination but in more profound terms such as the natural or innate form of human reason. In other words, samanya is not a random form of individual reason but a product of natural tendencies of the essential concept. Therefore, samanya is called samvrtisat. Also, samanya is separated from ultimate svalaksanas. In this ultimate perspective, samanya is not there are absolute specifics that do not have universality or similarity, without this assumption, they cannot explain common recognition through language and ideas. It is said that samanya is separated through the abstraction of individual beings in humans` thoughts, but this does not mean that samanya is given to the actual existence of beings. Essentialists assume that samanya has its own being as the object of the same recognition because it is separated from other objects of recognition uncritically. However, this assumption is not supported by either experience or logic. Samanya and individual beings are not recognized as different concepts such as cows or horses and the former is not recognized without the latter. It is unnecessary to assume samanya as another existence to explain the same recognition on individual beings because they are explained based on the universal attributes that appear in each individual being.







정명론이란? - 코트뱅크 (일어한역) 공손룡의 명실론

정명론이란? - 코트뱅크



정명론 (읽기) 세이메론

일본 대백과 전서(닛포니카) 「정명론」의 해설

정명론
세이메론


중국, 전국시대에 성행하고 명실론이라고도 하며, 명칭 과 실질과의 일치를 지향하는 사상. 
정치사상적인 것논리학적인 것의 두 경향이 있지만, 전자가 주류가 되고 있다. 

정명론 의 발단은, 정치의 급무는 이름을 바로 잡는 것에 있어서의 공자 (공오쿠)의 주장이지만(『논어』자로편(시로헨)), 그 구체적 내용은, 예를 들면 군신부자가 각각 군신부자답게 그렇다고 하는 것으로(동상 안연편), 명칭에 어울리는 실질이면 좋은 통치가 행해진다고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로씨 춘추』 정명·심분(しんぶん)이나 『신자(しんし)』 대체로 등 여러 편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론적 정명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름(직무)에 어울리는 형태·실(실적)을 ​​요구해 군주가 신하를 독책한다는 형명참동의 정치사상을 창안한 것이 법가 이다. 
정치론적 정명론은 '관자(칸시)' 심술, '장자(준시)' 정명, '한비자(칸피시)' 정법 등의 여러 편으로 보인다. 이후, 특히 송대 이후, 명분론 으로서 전개한다.

 한편, 명가의 공손룡 등이 공자의 정명사상을 일반 사물에 적용한 것이 논리학적 정명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손 용자』에는 명실론도 있지만, 백마론의 백마는 말이 아니다든가, 견백론의 단단하고 흰 돌은 2개라고 하는 주장에, 그 정명론의 특징이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흰색이란 색, 말이란 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말이란 모양에 대해 말하기 때문에, 색 플러스형의 백마는 말 즉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단단한 돌이라고 알 때는 흰 돌은 의식을 받지 못하고 흰 돌로 의식될 때는 단단한 돌은 지각되지 않기 때문에 견백석은 1 또는 3이라고 하는 설을 물리친다. 

이것에 대해 하쿠바 비마에 대해서는, 묵가(보쿠카)는, 「묵코」 소토리 (쇼토리)편으로, 하쿠바를 타든지 하마(리바)(쿠로마)를 타더라도, 말을 탔다고 하니까 하쿠바는 말이라고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이름과 열매와의 논리적인 논의는 『장자』 정명편에도 보이지만, 썰자는 이러한 논의에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분석의 정밀함은 인정하지만, 불필요한 불급의 논의라고 해서 정치적, 실용 적 입장에서 부정한다. 그 이후, 논리학적 정명론은 신(魯)의 魯勝(로쇼) 등으로 보이지만, 대개 수렴해 정치론적 정명론이 주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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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다 타키오]

『제교 아키라 차저 『경사 하치론』(1932·관서원)』 ▽ 『다카다 쥰 저 『논리사상』(『강좌 동양사상 제4권』 소수・1967・도쿄대학 출판회)』 ▽ 『우동저 , 사와다 타키오역 『중국 철학 문제사 책』(1977·야치요 출판)』

출처 쇼가쿠칸 일본 대백과 전서(닛포니카) 일본 대백과 전서(닛 포니)
디지털 대사천 「정명론」의 해설

세이메이-론【정명론】중국 철학 에서 물건의 명칭을 그 실태 에 맞게 정확히 하고자 하는 학설 . 춘추전국 시대공자 를 비롯한 유가묵가 에 의해 주창되었다.

출처 쇼가쿠칸 디지털 오사이센 정보 | 범례
세계대백과사전 제2판 「정명론」의 해설

세이메론【정명론】
후기 미토학의 조토다 하 타니 의 청년기의 논문으로, 때의 노중 마츠다이라 정신에 주어졌다고 한다 . 1791년(寛政3)고. 정명이란 명분을 바로잡는 것, 즉 군·신이든 아버지·아이라는 인륜상의 지위 에 고유한 본분 이 이행되도록 하는 것을 말하며 유교 특히 송학 에서 강조된 관념 이다. 본서 는 송의 사마광의 《자치통감 (시지츠암)》 서두의 정명론을 밑돌아 군신 상하의 명분을 바로잡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막부 가 천황을 존중하면 다이묘 는 막부를 존중하고, 다이묘가 막부를 존중하면 번 사는 다이묘를 존경하고, 결국 상하 질서가 유지되게 된다고 존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출전 주식회사 평범사 세계대백과사전 제2판에 대해서 정보
세계대백과사전 내 정명론 의 언급

【대의명분】에서


… 의는 예악에 속한다고 하는 배회학의 견해가 미토학의 기저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대의란 질서가 실현될 수 있는 궁극의 제도를 의미한다. 명분이라는 개념을 정면에서 논한 후지타 유타야의 《정명론》(1791)에서도, 이러한 시점이 일관하고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논에서는 일본에 질서가 있을 수 있는 근거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하의 별이 이름으로 명확하게 존재한다는 점에 요구된다. …

격물궁리지학, 격치지학, 격치학 그리고 과학 -서양 과학에 대한 동아시아의 지적 도전과 곤경

격물궁리지학, 격치지학, 격치학 그리고 과학 -서양 과학에 대한 동아시아의 지적 도전과 곤경- < 한림과학원 < KISS

격물궁리지학, 격치지학, 격치학 그리고 과학 -서양 과학에 대한 동아시아의 지적 도전과 곤경-
From gewu qiongli to kexue -The Predicament of East Asian Intellectuals in Understanding Science-

김선희 ( Seonhee Kim )

발행기관 : 한림과학원
간행물 : 개념과 소통 17권0호
발행년월 : 2016년 06월
페이지 : 119-157(39pages)
개념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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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키워드 보기
격물궁리 격치 격치지학 격치학 과학 박물학 유서 명물도수 예수회 서학 
gewu qiongli gezhi gezhixue kexue bowuxue leishu mingwu dushu Jesuits Western Learning


초록 보기

동아시아에는 엄밀한 의미의 ‘과학(科學, science)’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외부 세계에 대한 지적 확장과 리(理)에 대한 근원적 통찰을 의미하는 격물궁리(格物窮理)’의 전통이 서학 지식 유입에 따라 ‘격치(格致)’로 전환된 후에야 과도기를 거쳐 결과적으로 근대적 ‘과학(科學)’으로 재편성되었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일반적 평가를 넘어서 동아시아에서 격물궁리, 격치 등 과학이전의 개념과 범주들이 발화된 맥락과 지향을 검토함으로써 서양 과학에 대한 근대 초기 동아시아 지식인의 도전과 전환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래 성리학 에서 격물궁리는 외부 세계를 향한 지적 인식을 어떻게 마음에 내재된 근원적 원리[理]에 합치시킬 것인가를 묻는 환원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성리학적 ‘격물 치지’, ‘격물궁리의 전통에 균열을 낸 것은 16세기 말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였다. 이들은 자신의 철학과 신학을 ‘격물궁리의 학’으로 번역 하여 기독교와 유럽의 지식체계를 중국에 편입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격치가 성리학의 맥락에서 이탈하는 경향은 예수회와 관계없이 이미 시작된 현상 이었다. 14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사이 중국 지식인은 박물학적 유서(類書)나 의서(醫書)의 표제로 ‘격치’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외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의 탐구과정을 ‘격치지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서학을 포함해 다양한 지식 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인 명말ㆍ청초의 지식인들은 격치지학을 박학(博學)과 박물(博物)의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과의 온건한 접촉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결 단계에 접어든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 서양인에 의해 최신 서양 과학 이론들이 한역되자 점차 ‘격치학’이 서양의 근대 분과 과학들을 총 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격치로 표현되는 한 동아시아 지식인이 지적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격치는 「대학(大學)」에서 연원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서양의 전유물이 될 수 없었으므로 동아시아 지식인은 전통적인 격물의 이념 위에 서서 외래 지식에 접근할 권리와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최소한의 권리와 여유는 박물과 격치를 대체하는 ‘과학’의 등장으로 동아시아 지식장에서 서서히 소멸되었다. 

격치학에서 니시 아마네(西周, 1829~1897) 가 서구 문맥에서 전유한 신조어 ‘과학’으로의 전이는 현재의 우리에게 동아시아 에서 학문의 중심부가 변경되었음을 보여 준다. 

서양 과학은 일본이 직접 이룬 성취는 아니었지만 일본이 언어와 지적 정보를 선취하자, 지식의 중심부와 주변부가 바뀌게 된 것이다. 중국의 학문적 전통은 더 이상 동아시아 세계의 보편 과학 (universal)이 아니라 낙후된 지역 과학(local science)에 한정되었다. 지적 주체의 성격 역시 바뀌었다. 

격물을 통해 궁리를 체현하고자 했던 한 개인으로서의 동양 지식인은 문명의 선취자로서 독보적 권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던 서양뿐 아니라 지식의 형성과 체계화과정에서도 지식의 일방적 수용자ㆍ습득자로 격하되었으며, 특히 조선인은 제도화된 과학을 운용할 국가를 상실함으로써 삼중의 소외를 겪게 되었다.

It is generally accepted that East Asia did not have a well-defined concept of ‘science.’ After the introduction of Western Learning, however, there followed a transition period, during which the intellectual exploration of the external world through the Neo-Confucian tradition of gewu qiongli (the investigation of phenomena and the full comprehension of their underlying principles), together with the fundamental approach to understanding represented by li (the pattern principle), were transformed into modern science. This paper aims to discover the challenges facing early modern East Asian intellectuals by examining the traditional concepts and categories which were relevant to science, such as gewu qiongli. The transformation of such Neo-Confucian traditions was largely driven by Jesuit missionaries who entered China at the end of the sixteenth century. Thus, they tried to integrate the European Christian system of knowledge with the existing Chinese knowledge system by translating their philosophy and theology and framing it as gewu qiongli studies. In fact, some variation from the existing Neo-Confucian tradition of gezhi (格致) had already begun before the arrival of the Jesuits, particularly among the intellectuals of the late Ming and early Qing periods who used the term ‘gezhizixue (格致之學)’ to refer to boxue (博學, learning); later,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term ‘gezhixue (格致學, natural studies)’ replaced gezhizixue. During this period, however, gezhixue always referred to specific scientific disciplines, allowing East Asian intellectuals to approach the Western knowledge system via the traditional concept of gewu, since gezhi originates from the Confucian classic Da Xue (Great Learning ). However, with the emergence of the term ‘kexue (science)’ coined by Nishi Amane in the Western context, East Asian intellectuals became passive consumers of Western knowledge and the Chinese intellectual tradition lapsed into a backward and localized science.

UCI(KEPA)
I410-ECN-0102-2017-300-00030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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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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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성리학 그리고 다른 학통들 - 격물궁리(格物窮理)와 거경함양(居敬涵養)

정주 성리학 그리고 다른 학통들 - 대학지성 In&Out

정주 성리학 그리고 다른 학통들
고현석 기자
승인 2020.06.21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3강>_ 이승환 고려대학교 교수의 「정주 성리학 그리고 다른 학통들」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카오스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3강 이승환 교수(고려대 철학과)의 강연 중 정주 성리학의 핵심 내용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이승환 교수는 “동아시아 문명에서 근대 서구 문물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이른바 ‘문화의 정전’이라고 불릴 만한 사유 체계”로서 정주(程朱) 성리학(性理學), 즉 12세기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신유학(Neo-Confucianism)’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그 정주 성리학의 핵심 내용들, 목적과 지향을 확인한 다음 그러한 “성리학이 추구하는 양대 공부로서 격물궁리(格物窮理)와 거경함양(居敬涵養)”을 소개하고 그렇게 해서 성취되는 “최후의 인격, 이상적 관망자로서 성인(聖人), 그리고 성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왕도 정치의 이상”까지 다룬다. 그에 이어 “정주 성리학과 상산학(象山學), 심학(心學)이 어떻게 해서 갈라졌는가”, “성리학의 도학적(道學的)인 학풍이 사공학(事功學)의 공리주의적인 학풍과 왜 갈라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찰하면서 이들이 남긴 문제가 오늘날에도 “미해결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 지난 5월 23일, 이승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3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동아시아 문명의 정전, 정주 성리학

동아시아 문명에서 근대 서구 문물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이른바 ‘문화의 정전’이라고 불릴 만한 사유 체계를 꼽으라면 단연코 정주 성리학이 될 것이다. ‘정주 성리학’이란 12세기에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신유학’을 가리키는 말로, 성리학 사유 체계의 형성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정명도ㆍ정이천과 주자의 성을 따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은 공ㆍ맹의 원시유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불교ㆍ도교의 형이상학과 수양론을 유학 안으로 받아들여 송대에 새롭게 확립된 사상 체계를 말한다. 이 사상 체계는 인간의 본성(性)과 세계의 이치(理)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성리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송대에 정립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송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육상산ㆍ왕양명의 심학(心學)과 대비하여 리학(理學)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 두 학통은 단지 공부 방법론상의 차이일 뿐 궁극적으로는 ‘신유학’이라는 커다란 지적 흐름에 함께 속해 있다.

‘정주 성리학’이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문화의 정전으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ㆍ도교와 구별되는 유학 고유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불교와 도교가 개인적 차원에서 해탈과 초월을 추구하는 출세간적(出世間的) 사유 체계라면, 유학은 자기 도야와 자아 완성을 추구하는 개인적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규범적 방향을 제시하는 입세간적(入世間的) 사유 체계였던 탓에 장구한 시기에 걸쳐 동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사유 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리학이라는 사유 체계는 우주ㆍ자연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본성과 바람직한 삶에 대한 통찰,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에 기반한 이상 국가와 이상 사회에 대한 청사진까지 제공하였기 때문에 국가의 법ㆍ제도와 정치 이념, 사회 구성 원리와 윤리적 규범, 그리고 개인의 수양과 자기 완성에 이르는 폭넓은 지적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성리학적 사유 체계의 궁극 지향

신유학은 공ㆍ맹의 원시유학을 계승하여 수기(修己)에서 치인(治人)에 이르는 일 또는 내성(內聖)에서 외왕(外王)으로 나아가는 일을 학문의 궁극 목표로 삼았다. 즉 안으로는 성인의 인격에 이르고(inner sage-hood) 밖으로는 왕도 정치의 이상을 펼치는 일(outer kingship)이 송대에 들어 새롭게 흥기하던 사(士) 계급이 자신을 포함한 지배 계층 모두에게 부과한 문화적 사명 의식이었다.

수기치인과 내성외왕이라는 사명 의식은 신유학이 원시유학과 더불어 공유하는 핵심 가치이지만, 신유학자들은 특히 ‘수기’ 또는 ‘내성’의 영역에 절대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타인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 계급 자신이 성인에 가까운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성사 연구가들은 원시유학과 구별되는 신유학 고유의 특징을 “내면으로의 전환(Turning Inward)”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독서인 계층의 자각 운동으로 시작된 성리학은 장차 과거 시험을 통하여, 또는 재야에 남아서라도 백성들을 평안한 길로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지닌 예비 지도자들을 성인과 같은 지고의 인격으로 주조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성인이라는 지고의 위격(位格)에 이르기 위해서는 크게 두 측면의 공부와 노력이 요청된다. 하나는 객관 세계에 내재한 다양한 원리와 법칙 그리고 이유와 이치를 파악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무사(無思)ㆍ무위(無爲)한 천ㆍ지의 운행 방식을 본받아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심적 상태를 확보하는 일이다. 전자와 연관된 공부를 격물궁리(格物窮理)라 한다면 후자와 관련된 공부는 거경함양(居敬涵養)이다. 성리학에서 이 두 가지 공부는 새의 두 날개 또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어느 하나도 결해서는 안 되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간주되었다.


격물ㆍ궁리의 궁극 목표: 심여리일(心與理一)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性)과 세계의 이치(理)를 궁구하는 학문이다. 성리학자들은 천지ㆍ자연에는 불변하는 항상된 원리가 내재해 있다고 믿었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이 원리를 그대로 품부(稟賦)받아 자기의 본성(性)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성즉리(性卽理)”라는 명제다.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에 도달함)은 궁리(窮理: 이치를 궁구함)와 마찬가지 뜻으로, 객관 세계에 내재한 존재의 원리를 파악하는 일(所以然之故) 그리고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당위의 원칙(所當然之則)을 이해하는 일을 포괄한다.

격물ㆍ궁리의 궁극적 목표는 인격 주체가 객관 세계에 내재한 중다한 원리들을 파악하여 마침내 총체적 원리인 ‘천리’와 합치하려는 데 있다. 주자는 격물 공부의 목적이 ‘리’와 합치하는 데(合於理) 있다고 보고, 주체의 사고와 언행이 순연하게 ‘리’와 합치하게 된 상태를 심여리일(心與理一) 즉 “마음과 ‘리’가 하나가 된 상태”라고 표현한다.

심즉리(心卽理)는 주자의 경우, 격물 공부를 통하여 수많은 이치에 통달하게 될 때 주체의 마음은 ‘리’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의미이다.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사물마다 일정한 이치가 없는 것이 없다. 하루하루 공부하여 쌓임이 많다면 마음속에 저절로 [이치가] 관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곧 ‘리’이고, ‘리’가 곧 마음이어서(心卽理, 理卽心)” 몸가짐과 행동거지가 모두 ‘리’에 들어맞게 된다.

유학에서 인(仁)은 인간다움의 총칭으로, 성인에 해당하는 인격이 가지고 있는 지고의 덕성(supreme virtue)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에서 ‘인’은 아무에게나 허여(許與)할 수 있는 소소한 중덕(衆德) 중의 하나가 아니다. 성리학에서 인자(仁者)는 인간 세계에서 표준이 될 만한 모든 이치를 한몸에 갖추고 있는 ‘리’의 담지자다.

인자(仁者)에게 근심이 없는 까닭은 단지 인자(仁者)의 마음이 곧 하나의 도리(道理)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자는 어떤 일이 닥쳐와도 크거나 작거나에 관계없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마음에 갖추어진 각각의 ‘도리’로서 대응할 뿐, 일이 닥치기를 기다려 비로소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곧 ‘리’인 것이다(心便是理了)”.

주자가 ‘심즉리(心卽理)’라고 할 때 이 명제가 가리키는 내용은 다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학이지지(學而知之)의 자질을 지닌 범인들의 경우, 격물ㆍ궁리의 공부가 쌓이면 마음씀씀이와 행동거지가 모두 이치에 들어맞게 된다. 그리고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자질을 지닌 성인 또는 인자의 경우 그의 마음 씀씀이는 항시 도리에 부합한다.

독서인 계층인 ‘사’가 현자의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객관 세계에 내재한 수많은 ‘리’를 체득하는 일 즉 격물ㆍ궁리의 공부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러한 공부를 통하여 주체의 심적 상태가 객관 세계의 ‘리’와 합치하게 될 때 이를 “주체의 마음 상태가 객관 세계의 ‘리’와 하나가 되었다(心與理一)”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으로 자아를 주재하기: 거경ㆍ함양

성리학에서는 의식 활동에 깃든 경향성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아를 두 층위로 구분한다. 인간은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기’와 ‘리’의 합으로 이루어진 만큼, ‘기’적인 특성과 ‘리’적인 특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다.

‘기’적 특성이란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이 가지는 본능적 경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리’적인 특성이란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이 가지는 인격적 지향성을 의미한다. 현실 속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기’에서 연유하는 본능적 경향성을 충족시키며 살아가지만, 자아의 심층에는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격적 지향성이 간직되어 있다.

주자는 자아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는 인격적 지향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본연지성’은 ‘의리지성(義理之性)’이나 ‘천명지성(天命之性)’과 동일한 개념이지만, 특히 날 때부터 자아의 심층에 간직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본래성’에 주목해서 쓰는 말이다. 성리학적 수양론의 궁극적 목적은 자아의 심층에 잠재된 인격적 지향(본연지성)을 의식의 표층 위로 끌어올려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는 데 있다.

성리학에서는 신체에서 연유하는 본능적 경향성을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는다. 주자는 “외물의 유혹은 음식에 대한 욕구와 성적 욕구보다 더 심한 것이 없지만, 그 근본을 추구해보면 이러한 욕구는 진실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서 없애려야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사이에 천리와 인욕의 구분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성리학적 수양론의 관심은 신체(形氣)에서 연원하는 본능적 경향성을 자아의 심층에서 근원하는 인격적ㆍ문화적 지향에 의해 제어하려는 데 있다.

인격적 지향은 어떻게 본능적 지향을 제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경(敬) 공부에서 찾을 수 있다. ‘경’ 공부의 요체는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 속에서 외물을 향하여 분산되는 의식 활동을 내면으로 수렴하여, 본연지성에서 연유하는 순일한 의식이 뻗어나가게 하는 데 있다. ‘경’ 공부에는 다양한 설명 방식이 있지만 주자는 특히 의식을 하나로 집중할 것(全一集中)을 강조하고, 의식을 하나로 집중하면 자신에게 간직된 ‘본연의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경’ 공부는 의식의 동(動)과 정(靜)의 두 국면에 모두 걸쳐 있다. 의식의 지향 활동이 아직 개시되기 이전인 미발(未發)의 국면과 의식의 지향 활동이 이미 개시되어 활발하게 흘러가는 이발(已發)의 국면 모두가 ‘경’ 공부의 대상이 된다. 주자는 “미발 시에는 함양(涵養)하고, 이발 시에는 성찰(省察)하라”라고 말한다. ‘함양’은 원래 농사일에서 파종하기 전에 씨앗에 물을 흠뻑 주어 발아시키는 일을 의미한다. 아직 의식이 지향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경외의 자세로 순일한 인격적 지향의 싹이 발아할 수 있도록 방한(防閑)하고 기르는 노력이 바로 ‘미발 함양’이다. 의식의 지향 활동이 개시된 후에는 사유와 감정이 바르게(正) 흘러가는지 행여 삿되게(邪) 전개되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공정하게(公) 흐르는지 행여 사사로운(私)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않는지 살피는 일이 ‘이발 성찰’이다.

‘경’ 공부의 목적은 주체의 의식을 항상 순일하고 안정되게 유지함으로써 유사시에 사태를 정명(精明)하게 판단하고, 의리(義理)에 맞게 처신하며, 시비(是非)를 분명하게 분변할 수 있는 도덕적 성향을 도야하는 데 있다. 성리학에서 인간은 양극에 걸쳐 있는 존재이다. 신체적 층위의 자아와 인격적 층위의 자아가 그것이다. 수양의 목적은 자아를 더 높은 층위로, 더 고귀한 존재로 상승시키는 데 있다. 자아를 상승시키기 위한 노력의 여하에 따라, 인간은 그저 신체적 층위에 머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높은 층위 즉 인격적 층위로 나아갈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층위에 속하는 존재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주체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성리학에서 보는 인간은 생물학적 사물로 세상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만들어져가는 존재’이다. 인간을 수양을 통하여 향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 또는 ‘과정적 존재’로 바라보는 성리학의 수양론은 인간에 대한 물신화의 경향이 팽배한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여겨진다.


격물궁리와 거경함양
의 결과: 공정한 관망자로서 ‘성인’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성인’이라는 이상 인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격물ㆍ궁리와 거경ㆍ함양이라는 양대 공부가 요청된다. 격물ㆍ궁리를 통하여 객관 세계의 이치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확보하는 일은 ‘경’ 공부를 통해 공정하고 무사한 마음 상태에 도달하는 일과 더불어 윤리적 실천에 있어서 합리적 판단자가 갖추어야 할 필요ㆍ충분 조건을 구성한다.

합리적 판단자가 갖추어야 할 이러한 자격 요건은 이상적 관망자 이론(ideal observer theory / impartial spectator theory)에서 ‘이상적 관망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 요건으로 요청되는 무사의(無私意: disinterestedness), 공정성(impartiality), 그리고 객관적 사실에 대한 충분한 인지(well-informedness) 등의 자격 요건에 해당한다. 이상적 관망자 이론은 한 행위의 윤리적 타당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메타윤리학적 질문에서 비롯된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한 행위는 오직(if and only if) 이상적 관망자에 의해 옳다고 판정될 때만 옳은 것이고, 만약 이상적 관망자가 그르다고 판정한다면 이 행위는 그른 것이다. 이때 이상적 관망자의 요건은 위에서 든 바와 같이 무사의, 공정성, 객관 사실에 대한 충분한 인지 등으로 요약된다. 성리학에서 격물궁리와 거경함양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성인의 인격은 행위 세계의 원리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확보하고 대공무사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의 모든 일을 공정하게 조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이상적 관망자’에 다름 아니다.

행위 이론(action theory)의 관점에서 볼 때,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행위자의 모델은 천지(天地)와 성인(聖人)이다. 천지는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하지만 결코 의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으며, 성인은 만인을 보듬어주지만 결코 자의적이거나 사사롭지 않다. 비의도적이고 비작위적인 천지의 무심한 운행을 본받아 백성들을 이롭게 보살피는 이상적 행위자가 바로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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