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2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유교개념용어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   유교교리.

입학도설 / 천인심성합일지도
분야
유교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유교교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중용』에서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인 성(性)을 천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忄(心)’와 ‘生’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살려는 마음’·‘살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살려는 의지’는 인간의 지각(知覺)이나 의식(意識)을 초월한 본질적인 것으로서 깊은 잠에 들었을 때도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게 하는 근원자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성은 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본질과도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다.
다만 개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성이라 하고 만물 전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하늘의 작용이라는 의미로서 천명이라고 한 것이지, 성과 천명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면서 본질적으로는 전체적 존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감각 기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감각 기관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나를 구별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점차 인간은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라 하여 그가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한 대인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자라고 설명하였다. 이 때의 대인은 천인합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이미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인 천명의 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서 학문을 설정하고,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진기심자 지기성야 지기성 즉 지천의(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전체적 본질로서의 성을 다시 구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의 길을 진심(盡心)·지성(知性)·지천(知天)의 세 단계로 세분하였다.
『중용』에서는 성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을 제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心)을 다하여 성(誠)을 실천하고 천명의 성(性)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인간은 개체적 존재를 극복하여 전체적 존재를 실천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의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맹자는 ‘여천지동류(與天地同流)’라 하였다.
『주역』에서는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明]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序]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천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공자의 실천 세계도 또한 천인합일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존재하는 자로 봄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도출하게 되는데, 전국 시대 말기에 태어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던 순자(荀子)는 성선설이나 천인합일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의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투쟁하게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성악설을 제창하고 아울러 천인분리사상을 주창하여 인간은 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그 원리로서 예(禮)를 강조하였다.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는 “하늘도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천인합일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말(唐末)의 이고(李翺)는 천인합일의 방법론으로서 복성론(復性論)을 제창하고 다시 복성의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과 멸정(滅情)을 제시하였는데, 주돈이(周敦頤)에 이르러 이는 성(誠)의 실천과 무욕(無欲)으로 계승되고 또 복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서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주돈이의 사상은 다시 장재(張載)·정이(程頤) 등을 거쳐 주희(朱熹)에 이르러 성리학으로 완성되는데, 주희는 성의 실천과 무욕을 거경(居敬), 우주론을 궁리(窮理)로 집약하여 복성의 방법을 거경과 궁리로 정리하였다.
한국 유학에서는 천인합일사상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천인무간사상(天人無間思想)이 발달하였다. 천인합일이 천과 인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천인무간은 천과 인이 애당초 간격이 없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천인무간사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궁리보다도 복성의 직접적인 방법인 거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수양철학(修養哲學)과 지치주의운동(至治主義運動)과 같은 강렬한 정치적 실천 의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천인무간의 사상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긍정하게 되어 천의 의지를 인간이 따른다는 천 중심의 천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천이 따른다는 인간 중심의 천인합일사상으로서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발달하게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기동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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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关于儒学“天人合一”思想的现代诠释: 以“诚”和“诚实”为中心


한글판<유교문화연구>

2011, vol.1, no.18, pp. 37-62 (26 pages)

윤사순 /Youn, Sa-Soon 1


1고려대학교

초록

천인합일사상은 안신입명(安身立命)을 지향하는 ‘유학의 궁극적 이상’임과 아울러 유학 사상을 사실상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유학의 한 대표적 특징’이다. 그런 만큼 이 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유학의 현대적 실용성을 탐색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유학 가운데서도 천인합일을 가장 구체적으로 논한 서적은 『중용』인데, 거기서는 그 실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만 그 성(性)을 다 할 수 있고, ....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병립(參)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성(誠者)은 천도(天之道)이고. 성하려는 것(誠之者)은 인도(人之道)”라고도 한다. 이로 보면, 천인합일의 성취방법은 두 가지로, ‘성(誠)에 기초한 진성(盡性)’의 방법과 인도를 천도에 합치시키는 ‘원리(原理)차원’의 방법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의 구사로 천인합 일을 구현하려 할 때, 그 구현을 불가능한 듯이 보이게 하는 사유가 발견된다. 그 하나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이질적 성(性)이므로, 그것들의 일원화(一元化)를 전제한 천인합일은 구현될 수 없지 않느냐는 사유이다. 또 하나는 도(道)로서의 ‘리(理)’개념의 의미 가운데는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이 드는데, 이것들 또한 동일하지 않은 의미이므로, 인도와 천도의 원리적 합일에 난관으로 인지된다. 이것들의 극복이 천인합일의 성취에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먼저 알아야 할 점으로, 이 두 가지 사유는 특히 사회의 대인차원에서 선악(善惡)의 야기를 감안하여 ‘본성’과 ‘기질성’을 이분화한 관점에서 고려되는 사유이지, 자연에 대한 대물차원에서 고려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천인합일 논의는 물성인 기질성이 가치중립(價値中立)임을 전제 하고, 본성과 기질성의 원천인 생명(生命)자체의 ‘생성현상(生成現象)의 특성’만을 논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두 문제의 해결은 다 형식논리를 벗어나 ‘생성논리’를 적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첫째 본성을 대표하는 인(仁)이 그 본래의 애인(愛人)의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대물차원에로 확대하여 애물(愛物)과 생의(生意)와 생물(生物), 및 산물(産物) 의미로 운용해야 한다. 이는 본성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기질성과 동일시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둘째 우주 생명체관에 입각하면, 그 생명체(有機體)에서 소이연과 소당연이 ‘하나의 일치된 상태’로 생성함을 본다. 생명체의 생성은 각 부분으로는 일종의 기계론적•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목적론적•당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논자가 생성논리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론을 가리킨다. 천인합일을 성취시키는 기본요건인 ‘성(誠)’의 개념에 대한 해석도 성찰할 부분이다. 일찍이 주희는 성(誠)의 의미를 ‘진실무망(眞實而無妄)’으로 해석했다. 이는 적합한 해석이지만, ‘정성’의 의미로 미루면, 사실적 ‘진실’ 의미와 함께 티(瑕疵) 없는 ‘순수(純粹)’ 의미를 더해야만 그 의미가 더 충실해진다고 논자는 판단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성(誠)의 진실이라는 객체적 성격과 함께 그 주체적 의지적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誠)을 구현하려는 태도는 곧 성실(誠實)이다. 성실할 때 인의(仁義) 같은 선한 본성이 발현된다. 성실은 본성 발현의 근본조건이다, 이는 성(性)이 성(誠)의 조리에 해당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성실이 그 조리인 성(性)을 드러내는 사실은 성(誠) 자체와 아울러 성실(誠實)을 원리화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상이다. 성(誠)자체는 ‘진실과 순수함’의 가능태로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현인 성실은 ‘진실함과 순수함’의 현실태로서 당위적(요청적)으로 주체화된 보편성 객관성(곧 조리)을 띠는 점에서 인도라 할 수 있다. 성(誠者)이 천도이고 성실의 태도가 인도라는 규정은 이런 사유에서 나왔다고 해야 한다. 성(誠) 또는 성실(誠實)을 천인합일 성취를 위한 기본원리로 규정하는 사유는 성실이 천인합일 성취의 ‘핵심적 열쇠(키워드)’임을 가리킨다. 성실의 이런 위상은 붇다(佛陀)의 경지를 초래하는 선(禪)에 견줄만하고, 노장사상의 자연 상태를 가능케 하는 무위(無爲)에 견줄만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천인합일 경지에서 이루는 안심입명의 내용이 불교나 노장사상의 것과 다르다. 성실로 뒷받침되는 안심(安心)은 일단 불안해소를 이룬 점에서 ‘행복(幸福)의 상태’임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불교의 무심, 노장사상의 망아나 무아와 달리, 이 상태의 행복은 소아적 이기심으로 인한 방황을 끝내고 대아적 이타가 가능해진 ‘여유로운 심리상태’이다. 이는 성실이 주는 활력(活力)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상태임을 시사한다. 입명(立命) 또한 운명에 순종하는 순명(順命)을 넘어, 운명의 충실화를 도모하는 무명(務命)과, 운명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개명(開命)에 든 내용이다. 이런 점은 유학이 지닌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실제적인 특징의 바람직한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지에 든 ‘성인상(聖人像)’도 노장과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聖人)과 다를 수밖에 없다. 노자의 무위로 이룬 진인(眞人), 불교의 고통과 고뇌에서 해탈한 불타와 변별되는 인간이 이 경지의 성인이다. 그는 이미 ‘생명의 광장’에 들어선 까닭에, 일생 동안 생성적인 자강불식을 하면서, 사회와 자연에 대해 스스로 ‘무한책임 의식’을 지니고, 항상 ‘공인(公人)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숙한 인격자이다. 이런 인간상이 오늘날 요청되는 인간상임은 물론이다. 성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품을 고양하고, 화해로운 사회를 이루면서, 우주 자연의 균형 있는 생성을 저해하지 않고, 그 자연과도 조화로운 생활을 기하려는 ‘천인합일사상’이야말로 현대사상으로서 이용해야 할 실학적인 실용성을 충분히 지닌 사상이다. 현대의 실상을 정시할 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为了探索儒学在现代的可用性,笔者试图用现代的理念诠释儒学的终极理想“天人合一”思想。之所以考察此思想是因为笔者认为“天人合一”思想是儒学思想的代表性特征。自古以来,儒学者们把“天人合一”视为理想的原因在于认定此境界使“安身立命”成为可能,并且已经在现实里实现之。《中庸》提示了实现天人合一的方法论,即“唯天下之至诚,为能尽其性。能尽其性,则能尽人之性。能尽人之性,则能尽物之性。能尽物之性,则可以赞天地之化育。可以赞天地之化育,则可以与天地参矣。”进而言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由此看来,天人合一的成就方法有二:以“诚”为基础的“尽性”之方法和将“人道”与“天道”合而为一的原理层面上的方法。通过实践躬行,可以使“天人合一”变为可能,这就是《中庸》所蕴含的思想。当用上述两种方法来实现“天人合一”时,就会发现如下困难:一,由于人性和物性相区别,二者又具有异质性,而此异质性是阻碍其一元化的因素;二,由于“理”这一概念所蕴含的“所以然”与“所当然”之涵义的不同,因此“人道”和“天道”的原理性合一也难以实现。以上两种因素成为“天人合一”所需解决的课题。这里需要正确理解的是,无论是人性和物性的异质性还是“所以然”和“所当然”的区别,都属于社会对人的层面的因素,而不是自然界里对物层面的因素。以上均源自将“本然之性”和“气质之性”视为异质、二分化的思维。而“天人合一”应该在作为物性的“气质之性”价值中立的基础上,只探讨“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源泉-生命本身“生成现象的特点”即可。因此,只要脱离“形式讨论”而进行“生成讨论”,那么以上两种问题的解决就成为可能。进行“生成讨论”时“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二分化思维问题才得以解决。首先,将代表本然之性的“仁”理解成“爱人”,同时把“仁”扩展到对物层面上,运用在“爱物”、“生意”、“生物”以及“产物”里。这既保存了本然之性,又使之等同于气质之性。其次,根据宇宙生命体观,从生命体(有机体)里可观察到“所以然”与“所当然”同一化的现象。虽然生命体的生成呈现出机械的、必然的生成过程,但是整体上看仍属于有目的的、当为的现象。笔者所指的生成探讨就是指此理论。使“天人合一”成为可能的基本因素“诚”之概念也成问题。朱熹则将“诚”解释为“真实无妄”。这种解释算很恰当。笔者则在此基础上添加事实的“真实”涵义与无瑕疵的“纯粹”涵义,认为只有这样,“诚”之概念才能变得更加充实。这是因为只有这样,“诚”之“真实”这一客体性格和其本来的主体意志性格才得以体现。此时仍需准确把握“诚和性的关系”。“性”即是指“诚”的体现-“诚实”之“法则性条理”。“诚实”实现其条理的“性”的过程就是“诚”与“诚实”原理化的过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也出自此思维。将“诚”和“诚实”视作是成就“天人合一”之原理的思维,已将“诚实”看作成就“天人合一”的关键所在。“诚实的地位”也在于此。这时的诚实可与使佛教的理想境界“佛陀”成为可能的“禅”相匹敌,也可与使老庄思想的理想境界“自然”成为可能的“无为”相媲美。只有这样,才能重新解读以诚实为基础的“天人合一”之境界。此境界无疑与“安身立命”即“安心立命”有关,但是此时的“安心立命”有别于佛教和老庄思想的“安心立命”。以诚实为基础的安心可消除不安的状态,使个人达到“幸福的状态”。这有别于佛教的无心和老庄思想的忘我和无我。儒学的此状态下的幸福结束了因小我的利己心而彷徨的状态,使之进入“大我的利他”的“充裕的心理状态”里。这表明“诚实”所带来的“活力”开启了人生新的生活。“立命”则超越了服从于命运的“顺命”,包含使生命更加充实的“务命”和不断开拓命运的“开命”之内涵。以上皆是儒学所蕴含的现实的、实用的、实际的特点最理想化的实现状态。此境界里的“圣人像”也区别于老庄和佛教的圣人。与老子的无为的“真人”和佛教的超脱了痛苦和烦恼的“佛陀”相区别的人就是儒学里所讲的圣人。他由于已进入“生命的广场”,一生都自强不息,对社会和自然怀有“无限的责任意识”,以“公人的态度”生存下去的成熟的人格体。此形象无非是现今社会所需的。以诚实为基础、提高自身的人品、构建和谐的社会、顺应宇宙自然的均衡状态、与自然协调发展的“天人合一思想”才是当今社会所需的实学的、实用性的思想所在。面对现代的状况,我们不得不承认此思想。


키워드

천인합일(天人合一),
진성(盡性),
성실(誠實),
천도(天道),
인도(人道)

天人合一, 盡性, 誠實, 天道, 人道

수지행자 팔정도(八正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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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약사여래 천일기도】
3/2 오늘은 200+55일차입니다.
팔정도(八正道)의 ‘正(바른)’은 ‘진실과의 일치’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 8가지 수단(道)으로 결국 진실과 일치해 지기에 ‘正(바른)’이 됩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이 느끼는 ‘나(에고)’는 생각이 지어낸 허상이고, 그러한 ‘나’에 기반을 두는 자기중심적인 심리, 육체적 행위는 결국 스스로를 고통 속에서 떠돌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방향의 삶을 되돌리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이와 같이 거짓이 유발하는 고통으로부터 진실로 되돌아가는 8가지 수단으로 제시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들은 이 길을 통해 거짓 ‘내’가 행했던 이러저러한 열망을 잠재움으로써 더 이상 피곤할 일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해체됨으로 온 전체로 화하는 자는 세상을 연민과 사랑으로 대합니다. 그는 이제 세상과 놀 일 만 남았습니다. 여러분, 노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어느 때 존자 사리푸트라는 마가다의 나라카촌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유행자 잔부카다카는 샤리푸트라를 찾아와 친절한 인사를 나눈 뒤 이렇게 물었다.
“존자님, 열반, 열반하는데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탐욕의 소멸, 분노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열반을 체득하기 위한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 있고말고요.”
“그 길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이 성스러운 팔정도야말로 열반을 체득하기 위한 길입니다. 즉,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선정입니다.
진실로 이 길과 방법은 열반을 체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상응부경전》
....
♣ 발원
내 마음에
들뜸의 감정이 사라지기를
무기력한 기운이 사라지를
경솔한 판단이 사라지기를
혐오하는 감정이 사라지를
그리하여, 내 마음에
평온한 감정이 깃들기를
깨어 있는 활발한 기운이 깃들기를
신중한 판단과 언행이 깃들기를 발원합니다.
이와 같이 발원한 공덕으로
모든 생명이여,
평화로우소서!
자유로우소서!
********
#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가는 멋진 법보시 : 이 메시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 천일기도를 함께 해보세요.
# 천일기도 동참 문의 : 실상사 종무소 (063-63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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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불교적 진리 리차드 라이트 [불교는 왜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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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진실과 아름다움 - 리차드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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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감각은 주는데
아름다움의 감각은 는다?
세상을 진실에 가깝게 볼때, 우리는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인간이 우주에 느끼는 연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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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불교도 종교인가? 리차드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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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by William James: “reli...” | Goodreads

Quote by William James: “Were one asked to characterize the life of reli...” | Goodreads

William  James

“Were one asked to characterize the life of religion in the broadest and most general terms possible, one might say that it consists of the belief that there is an unseen order, and our supreme good lies in harmoniously adjusting ourselves thereto.”


― William James, The Varieties of Religious Experience

동학 마당 이천식천(以天食天)

동학 마당


3/2/2021 동학 마당
https://blog.daum.net/stardriver/461 3/6

검색
2017 20162015 2014 201420132013 2013


이천식천(以天食天)
  해월법설 24장은 ‘이천식천’입니다.
---
 처음 이 법설을 대하면 뭔가 좀 어색한 듯도 하고
무슨 말씀인지 얼른 감이 잘 잡히지 않는 것이 일반인들의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단원씩 끊어가며 같이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여기서 제가 설명하는 것은 저의 소견이오니
다만 참고만 하시고 취사선택과 첨삭교정은 독자 여러분의 몫임을 미리 말씀드려 둡니다.
원문을 옮겨 봅니다.
“ 내 항상 말할 때에 물물천(物物天)이요 사사천(事事天)이라 하였나니, 만약 이 이치를 시인 한다면 물물(物
物)이 다 이천식천(以天食天)아님이 없을지니, 이천식천은 어찌 생각하면 이(理)에 상합(相合)치 않음과 같으
나, 그러나 이것은 인심(人心)의 편견(偏見)으로 보는 말이요, 만일 하늘 전체로 본다하면 하늘이 하늘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동질(同質)이 된 자(者)는 상호부조(相互扶助)로써 서로 기화(氣化)를 이루게 하고, 이질(異質)
이 된 자(者)는 이천식천으로써 서로 기화를 통(通)하게 하는 것이니,...”
이 문장에서는 ‘물물천’과 ‘사사천’의 본뜻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글자에 마음을 빼앗겨 나름대로의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니
글쓴이의 본마음을 읽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물물’은 모든 물건들 즉 만물을 말하고,
‘천’은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하늘이 아니라 ‘가장 위대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천(天)’자를 잘 뜯어보면, 한 일(一)자 밑에 큰 대(大)자가 합쳐 된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한자(漢子)는 인류가 쓰고 있는 단 하나의 표의문자(表意文字)로
글자 속에 그 뜻이 함축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일자 밑에 큰 대자가 합쳤으니 ‘제일, 혹은 가장 크고 위대한’ 이란 뜻을 갖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물물천’이란 물건이란 물건마다 가장 위대한 것이요,
‘사사천’이란 일이란 일마다가 다 소중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도 그것은 어디엔가는  반드시 꼭 필요한 소중한 물건이 되며,
일이란 아무리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작은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커다란 문제를 불러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큰일 뒤에는 반드시 작은 일의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은 일마다 다 소중한 일 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물이 하늘처럼 위대하고 모든 일들이 하늘처럼 소중한 것이니 이 이치를 옳다고 여긴다면,
하늘이 하늘을 먹고 살고, 모든 일이 하늘이 하는 일이니 하늘처럼 소중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로써 하늘을 먹여 살린다(以天食天)는 말은 어찌 생각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으나,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치우친 고정관념 때문이며,
하늘(우주생명)전체적으로 본다면 온 우주생명(하늘)전체를 더욱 잘살게 하기 위하여
서로 같은 무리들은 서로서로 힘을 합하고 도와 무리 전체를 진화발전(氣化)케 하고
서로 다른 무리들은 유기적으로 먹고 이용하여 보다나은 생명을 진화발전하게 하는(以天食天 氣化通)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일면(一面)에서 동질적기화(同質的氣化)로 종속(種屬)을 양(養)케 하고 일면(一面)에서 이질적기화(異質的氣化)로써 종족(種族)과 종족의 연대적(連帶的) 성장발전(成長發展)을 도모(圖謀)하는 것이니,
총(總)히 말하면 이천식천은 곧 하늘의 기화작용(氣化作用)으로 볼 수 있는데, 대선생님께서 시(侍)자를 해의
(解義)할 때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라함은 하늘을 이름이요, 외유기화(外有氣化)라 함은 이천식천을 말한 것
이니 지묘(至妙)한 천지(天地)의 묘법(妙法)이 도무지 기화(氣化)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우주생명(하늘)은 한 쪽에서는 같은 무리들은 서로 돕고 힘을 합쳐 종족을 잘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또 한 쪽으로 다른 무리들과는 종속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종속적 발전이라 함은 사람이 농산물이나 가축들을 잘 살게 하여 길러서 먹음으로써
서로가 성장발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천식천이란 하늘(대우주생명)의 기화작용으로 볼 수 있는데,
수운 대선생님께서 시천주의 시(侍)자를 설명하실 때에
내유신령이란 하늘을(天心) 이름이요, 외유기화라 함은 이천식천을(氣化) 말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지극히 오묘한 천지의 먹이사슬 묘법이 모두가 기화에 있다고 설파하셨습니다.
기화란 내 몸 밖의 생명소를 내 몸 속으로 받아들여
나를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발전 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모든 물건과 모든 일이 다 하늘과 같다(物物天事事天)하셨으니
이천식천 또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한 이치인  것입니다.
우주생명(天)은 하나의 먹이사슬(以天食天)로 무한히 성장해가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합니다.
서로 같은 종족끼리는 경쟁을 하면서도 힘을 합쳐 종족의 무궁한 발전을 도모하고
서로 다른 것들끼리는 보다나은 생명이 하류의 것들을 보살피고 길러서 먹이로 씀으로써
한생명이 다같이 성장발전 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이천식천이요 자연의 섭리이며 천명인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의  최령자인 우주생명의 주인으로써
사람 아래있는 모든 생명을 (환경) 잘 보살피고 가꾸어서
온생명의 성장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동학의 지표인  경천명(敬天命)이요 순천리(順天理)이며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일일 것입니다.
                                    <080816. 2669. 15.6>
3/2/2021 동학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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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사천(以天食天)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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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과 칸트의 발견


이천사천(以天食天)

담마 주우

2018. 7. 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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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은 ‘하늘이 하늘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 
동질(同質)이 된 것은 상호부조(相互扶助)로써 서로 기화(氣化)를 이루게 하고, 
이질(異質)이 된 것은 이천사천(以天食天)으로써 서로 기화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相互扶助’ ‘以天食天’의 근본 취지는 ‘하늘이 하늘 전체를 키우기 위하여’인데, 이것은 소위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를테면 ‘밥이 사람을 키운다’는 밥이 주체가 되어 사람을 먹여 기른다는 것인데, 반면에 ‘사람이 밥을 먹는다’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대상으로서] 밥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부모가 나에게 젖을 먹인다’이고 후자는 ‘내가 부모의 젖을 먹는다’인 것입니다. 전자는 ‘부모가 [하늘인] 젖으로써 [하늘인] 나를 먹여준다’이지만, 후자는 ‘[하늘인] 내가 [하늘인] 젖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천지부모가 [젖인] 하늘로써 [나인] 하늘을 먹여 기른다’는 양육이지만, 후자는 ‘[내가] 하늘의 자격으로써 [젖인] 하늘을 먹겠다’는 권리입니다. 전자는 ‘하늘로써 하늘을 먹여 기른다’는 이천사천(以天食天)이고, 후자는 ‘하늘로써 하늘을 먹는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입니다.


‘食’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밥’ ‘음식’ ‘먹다’는 ‘식’ 그리고 ‘먹이다’ ‘양육하다’는 ‘사’가 있습니다. 이천사천(以天食天)의 ‘食’은 먹이고 양육(養育)할 ‘사’이고, 이천식천(以天食天)의 ‘食’은 먹을 ‘식’입니다.

대상을 하늘처럼 그리고 하늘로서 대우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만, 내가 하늘이니 대상인 하늘을 먹겠다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이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고등(高等)한 인간이 자신의 도구로서 하등(下等)한 밥을 먹겠다며 당연시하는 우월적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해월도 ‘하늘이 하늘을 키운다’고 했지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고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기른다’는 양천(養天)을 중심사상으로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이 양천(養天)이 바로 사천(食天)입니다.



이런 이천사천(以天食天)에 관련한 오해가 이천식천(以天食天) 이천화천(以天化天)으로 이어지고 이신환성(以身換性) 인내천(人乃天)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비록 ‘食’과 ‘養’(羊+食)이 같은 뜻일지라도 만일 이천양천(以天養天)이라고 한결같이 했으면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오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앞의 외유기화(外有氣化)와 이천사천(以天食天)을 연결해보겠습니다. 외부에 펼쳐진 기(氣)의 화신(化身)인 타자는, 주인공 자신의 내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거울로 비춰주는 하늘을 대행함으로써 하늘인 주인공으로 하여금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양육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타자라는 하늘을 도구로써 주인공이라는 하늘을 길러줍니다. 타자라는 하늘이 주인공이라는 하늘을 키운다는 것이고, 결국 ‘타자가 주인공을 먹는다’가 아니라 ‘타자가 주인공을 키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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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化 수련단계 기감활용과 처리

氣化 수련단계 기감활용과 처리

Biocracy and Democracy: Science, Ethics, and the Law | Politics and the Life Sciences | Cambridge Core

Biocracy and Democracy: Science, Ethics, and the Law | Politics and the Life Sciences | Cambridge Core

Biocracy and Democracy: Science, Ethics, and the Law
Published online b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7 May 2016

Lynton Keith Caldwell

Extract
Because some of the language that follows is unconventional, it may be useful to clarify terms at the outset. The term biocracy as used here has two meanings, or more accurately, has two aspects to an inclusive meaning. 

The inclusive meaning is the influence of life forces on human social behavior, notably political behavior. 

The first, and basic, aspect of biocracy pertains to the actual influence of life forces on human society whether or not perceived or understood. 
The second aspect refers to the perceived effects on society of the findings and applications of the life sciences. 

Perceived effects mayor may not be consistent with actual influences; they may nonetheless shape popular attitudes, values, beliefs, and behaviors. 
To the extent that life forces are deterministic they shape the character of societies. 
The extent to which human social behavior is biologically determined is largely unknown. At the very least, life forces appear to set limits within which human culture may select various o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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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Articles and Commentaries
Information
Politics and the Life Sciences , Volume 3 , Issue 2 , February 1985 , pp. 137 - 149
DOI: https://doi.org/10.1017/S073093840000109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