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8

알라딘: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알라딘: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 나를 위한 맹자인문학
박경덕 (지은이),안승희 (그림),김용옥 (추천)페이퍼스토리2016-01-11







































9.6 100자평(12)리뷰(4)
이 책 어때요?

전자책
11,200원
책소개
전국시대 중기에 살았던 맹자는 공자의 인, 의를 강조하면서 왕도정치를 주장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유교사상을 완성한 맹자의 신념과 철학이 담긴 <맹자>는 유가 철학의 추상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정치사상서로 한대와 송대를 거치면서 유학의 경전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맹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새로운 문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서로의 이익만 탐하는 체제나 문명 전체를 상대로 한 담론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건강한 세상, 아름다운 문명을 만들어가자는 위대한 인문 운동이다.

방송작가이자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 박경덕은 맹자가 전해 준 깊고 공감가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도올이 쉽게 풀어 쓴 원문 해설과 함께<맹자>의 지혜를 따라쓸 수 있게 해 <맹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추천의 글_인간의 조건 _도올 김용옥
작가의 말_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孟子·1 운명을 거역하라
내 식당이 아니다 내 인생이다
꺾이지 않는 한 움큼의 화살
그도 한 사나이, 나도 한 사나이
역천을 꿈꾸라 운명을 거역하라
맹모삼천 아니다 맹모사천이다

孟子·2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
비아야 세야! 비아야 병야!
하늘의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친구여 술잔을 들라!
지성이면 감천이다
내가 바다를 우습게 보면
욕심으로 망한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
매사에 감동하라
수치심,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우리

孟子·3 결국은 사람이다
다트 활쏘기 그리고 하느님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시키려고 할 때는
<강남 스타일> 성공의 비밀
집중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생겨먹은 대로 활짝만 피어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결국은 사람이다
시진핑과 맹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접기


책속에서



P. 21 잘나가던 위(魏)나라가 서쪽의 신흥국가인 진秦나라에 밀렸다. 훗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BC 259 ~ BC 210)의 그 진나라다. 위나라는 수도를 ‘대량(大梁)’ 땅으로 천도했다. 말이 천도지 쫓겨난 것이다. 나라의 이름도 양梁으로 바뀌었다. 굴욕적인 일이다. 천하의 패자에서 밀려난 양나라 혜왕(惠王)은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맹자를 초빙했다. 첫 만남에서 마음다급한 양혜왕은 “망해가는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강병부국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맹자는 양혜왕에게 사자후(獅子吼)를 날렸다.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면서, 지금 무슨 강병부국을 말하십니까? 인의(仁義)를 말해야지!” 접기
P. 22 피도 눈물도 없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치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세상이다. 국가조차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세금을 쥐어 짜내기 위해 여념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손님 지갑을 열어 보다 많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하필 이를 말하는가? 인의를 말해야지. 何必曰利? 仁義.”
진흙탕에서 개싸움하듯 이익만을 탐하는 세상에서, ‘인의’를 추구하겠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며 세상을 헤쳐온 장사의 신들은 말한다. ‘이’보다 결국은 ‘인의’라고. 접기
P. 66 호랑이는 호랑이답다. 개는 개답고, 쥐는 쥐답다. 그렇다면 인간,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힘없고 능력 없고 병들고 늙으면 자연에선 도태된다. 무리를 위해 추방시킨다. 그 무리의 안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도움받아야 할 그들을 함께 끌어안고 간다. 아니 그렇게 살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답다는 것의 시작으로 ‘차마 그
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차마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접기
P. 78 “天作孼猶可違,自作孼不可活.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나이다.“『맹자』에 이 구절은 두 번 반복해서 나온다. 그만큼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한 것이다.
P. 95 새해를 맞이하면 대부분 하는 일이 있다. 새 각오로 한 해의 계획을 세운다. 술 담배를 기필코 끊겠다. 몸무게를 몇 킬로그램 줄이겠다. 얼마를 저축하겠다. 책 몇 권을 읽겠다. 무엇을 배우고야 말겠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워 꼭 성공시키겠다…. 그러나 며칠 혹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좌절에 빠진다. ‘난 왜 항상 작심삼일로 끝나는 건가?’라고 고민하며 자책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할 일이 아니다. 자책할 일도 아니다. 대부분 계획을 세울 때 중요한 것을 빼놓고 세우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자초하는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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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경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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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구성의 아버지 . 작가를 가르치는 작가
‘라디오 데이즈’ 시절, 촌철살인 시사콩트로 전 국민을 울리고 웃기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를 1973년부터 23년간 집필한 베테랑 방송작가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간 MBC 방송아카데미를 비롯한 방송3사 아카데미에서 방송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쳐왔다.
박경덕 작가는 라디오 작가가 지녀야 할 가장 큰 자질로 우선 ‘ 말글’을 꼽는다. 일찍이 저자는 “라디오는 상상의 매체”라면서 “MC의 말을 들으면 그 내용이 상상될 수 있는 그림 같은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방송은 음악, 영화, 스포츠, 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스토리텔링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종합 문화 콘텐츠다. 그리고 라디오와 TV의 미디어 독과점 시대를 벗어나 바야흐로 1인 미디어 시대에 접어든 지금, ‘그림 같은 말글쓰기’는 새로 등장하는 모든 매체, 모든 형태의 글쓰기에서 더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 책은 박경덕 작가가 보낸 36년 방송 인생의 정수를 모은 것으로, 자신이 세상에 건네고 싶은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법을 통해 효과적, 감동적으로 알리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MBC 연기대상 작가상, 한국방송협회 한국방송대상 작가상, 한국방송작가협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3년 동안 매주 한 번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맹자 강의를 듣고 삶 깊은 곳에서 들려온 질문에 답을 얻어 얼마 전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를 펴냈다. 접기


최근작 : <프로작가의 탐나는 글쓰기>,<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 총 4종 (모두보기)

안승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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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1994년부터 애니메이션에 뛰어들어 TV만화『영혼기병 라젠카』, 『보리와 짜구』, 『쿵야쿵야』등을 만들었다. 작품으로『마술피리』,『하이디』,『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세상을 바꾼 상상력 스티브 잡스』등을 그렸다. 현재 만화「나이테 기행」을 연재 중이며 파주에서 만화, 그림책,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그림 그리기를 하고 있다.


최근작 : <도올만화맹자 1>,<나이테 기행>,<금난새의 만화 오페라 하우스 3 : 마술피리> … 총 9종 (모두보기)

김용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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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생물과, 철학과,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서 수학하고 대만대학, 동경대학에서 철학석사학위를 받고, 하바드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다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6년의 학부수업을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고려대학, 중앙대학, 한예종, 국립순천대학교, 연변대학, 북경대학, 사천사범대학 등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제자를 길렀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 왔으며 한국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왔다. 그는 유... 더보기


최근작 : <동경대전 2>,<동경대전 1>,<노자가 옳았다> … 총 97종 (모두보기)
김용옥의 말
『맹자』는 인간됨의 출발이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맹자』라는 서물(書物)에 담겨 있는 맹자의 생각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맹자』라는 책을 읽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의 공통감(共通感), 뭐 그런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 안에서 스스로, 저절로 발현되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푸른 벌판을 아장아장 거니는 아기도 돌멩이나 썩은 나무 조각보다는 꽃이나 나비와 같은 생명체의 정교함에 더 호기심을 보이거나, 그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성향이 있다.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이 인간의 염색체에 내재하며, 결국 인간은 그러한 감정을 통해서 고귀하게 된다는 것을 설파한 생물학자 윌슨의 ‘바이오필리아’도 아마 그 같은 인간의 조건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을 확충해나가면 저기 저 북한산에 우뚝 서 있는 인수봉 바위도 결코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인수봉을 느끼고, 인수봉이 나를 느끼는 느낌의 홍류 속에 우리가 말하는 ‘도덕’이라는 것이 있다. 하물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느낌이야 새삼 말해 무엇하랴!
도덕이란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기 위해 만든 규범윤리가 아니다. 도덕은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이며, 그것은 전 우주 생명과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도덕이야말로 동아시아 문명이 서구 문명을 리드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이며, 그것은 정신 가치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물질적 생존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 우리는 도덕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잘 살 수 있다.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도덕이야말로 중국 문명이 21세기 인류 역사를 선도해 나가는 기준이 되어야 하며, 조선 민족이 통일조국을 창조하여 인류에게 희망을 던지는 횃불의 연료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박경덕은 내 주변 사람들이 흔히 ‘자용선생(子庸先生)’이라 부른다. ‘선생’이란 무협소설에 나오는 ‘와룡선생’을 일컫는 기분으로 부르는 애칭이고, ‘자’는 내 제자라서 붙는 접두사고 ‘용’은 그가 『중용(中庸)』을 사랑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자용선생은 MBC 전성시기에 전국민의 사랑을 받은 <싱글벙글 쇼>에서 매일 강석과 김혜영의 유쾌한 입심을 통하여 쏟아진 언어의 주인공이다. 그 시시콜콜한 각 방면의 코믹하고도 신랄한 언어들을 23년 동안 혼자 골방에서 주조해낸 마술사가 바로 자용선생인 것이다. 그 자용선생이 요즈음 동양고전에 푹 삶아져서 말랑말랑 익어가고 있다. 그 첫 성(聲)으로 내놓은 작품이 바로 『맹자』를 주제로 한 이 책이다. 방송계에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그의 교육을 받았거나 직·간접으로 그와 연이 안 닿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의 섬세한 표현력과 연출력은 사계의 고전이다. 그의 마법 같은 손에서 펼쳐지는 동방고전의 세계가 우리나라 정치·사회·경제·예술 등 모든 분야에 새로운 심미안과 생명력과 도덕성을 부여해줄 것을 확신하며 격려와 추천의 간곡한 마음을 여기 담는다.
- 한선(寒蟬)이 처절하게 울어대는 이 밤, 낙산 천산재에서

박경덕(지은이)의 말
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2014년 10월, 중국 지린 성 연변대학교에서 강의하시던 도올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연변대학교 초청으로 한 학기 동안 학부, 대학원, 교수를 대상으로 세 개의 강의를 하고 계셨다. 중국어로 진행하는 강의는, 한국에서도 늘 그랬듯이 강의실을 뜨겁게 달구며 학생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겼다. 안내를 해준 대학원 조교는 강의를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열정적인 선생님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매번 충격 그 자체라고 했다. 도올 선생님은 강의로 바쁜 일정임에도 열흘간의 10월 연휴에 맞추어 역사 속 고구려의 실체를 확인하는 ‘고구려 기행’을 기획하셨다. 그 답사팀에 합류하는 행운을 얻어,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인 만주 벌판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성(『위서(魏書)』에는 ‘흘승골성’으로 되어 있다)을 찾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신화처럼 소개된 “안개 걷히니 홀연히 세워졌다”는 흘승골성(紇升骨城)은 랴오닝 성 환인의 오녀산에 세워졌다. 아침 햇살에 찬연하게 빛나는 흘승골성의 모습과 규모를 확인한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구려 건국을 고대사의 신화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화가 아니었다. 실제였다. 두 번째 수도였던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현의 국내성에서 만난 광개토왕비는 사진 속 광개토왕비가 아니었다. 앞에 서니 그 장엄함에 숨이 막혀왔다. 장대한 광개토대왕 능과 아들 장수왕 능에서 고구려의 배포와 힘을 보았다. 촬영이 금지된 지안박물관[集安博物?, 중국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물의 대부분이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 고구려 유물들의 섬세함과 화려함은 백제 이상이었고, 1만 2,000여 기에 이르는 고구려 고분은 제국의 거대한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유적지에서 선생님의 설명으로 만나는 고구려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와 만주의 광대한 영토에 고구려가 제국을 이루고 우뚝 서 있었던 시절,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며 크고 작은 국가들로 지리멸렬했다. 짧게는 20년, 길게 쳐도 백 년을 넘긴 국가가 없었다. 대륙의 저들은 하루살이처럼 오가는 ‘변수’였지만, 고구려 제국은 700년을 변함없이 버티고 서 있는 ‘항수’였다. 중국을 힘겹게 통일한 수양제(隋煬帝)와 당태종(唐太宗)이 사력을 다해 고구려를 치려고 나선 까닭이다. 고구려와 만나며 경험한 또 다른 충격이 있다. 국내성의 배후성인 환도산성(丸都山城)을 찾았을 때다. 산성을 감싸고 도는 웅장한 산세, 그 앞을 흐르는 압록강 지류인 통구하, 그리고 그 사이 평야에 펼쳐진 거대한 규모의 고분군을 마주한 순간, 대장부의 기상과 숨결이 느껴졌다.
닷새간의 고구려 기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은 일행들에게 소감을 물으셨다. 고구려에서 맹자의 대장부를 보고 느꼈다는 것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맹자는 전국시대 추(鄒)나라 사람이지 중국 사람이 아니다. 맹자는 대장부, 인종과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누구나 꿈꾸는 인간다운 인간을 말했다. 맹자는 모두가 함께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왕도의 국가를 말했다. 역사 속 패도의 중국 왕조를 말하지 않았다. 700년 제국을 이루면서도 지리멸렬했던 대륙을 탐내지 않았던 고구려다. 패도를 추구한 제국이 아니라, 왕도의 제국이었다. 고구려 기행을 통해 보고 느낀 고구려의 기상에서, 대장부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구려 제국이 끝나고 신라 발해의 남북조시대를 거쳐 고려를 지나며 조선에 이르는 동안 영토는 잔뜩 쪼그라들고 말았지만, 대장부의 기개와 기상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조선의 밑그림을 설계한 정도전의 힘은 『맹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인에 거하며, 예에 처하며, 의의 길을 걷는 대장부’를 꿈꾸었다. 그들의 그런 기개와 삶의 태도가 조선을 500년이나 이어가게 한 힘 중 하나였다. 근대사와 현대사의 수많은 질곡 가운데서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면 분연히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 한 수많은 의인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동학혁명, 4.19 혁명, 6.10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세상을 만들자는 대장부의 꿈은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상식과 행동을 만들어왔다.
도올 선생님은 『맹자』 강의를 통해 책 속에 글자로 박제돼 있던 맹자에 피를 수혈하고 영혼을 불어넣으셨다. 『맹자』가 죽은 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로 다가왔다. 맹자가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셨다. 정수리를 치고 오는 맹자의 말씀에 가슴이 끓어올랐다. 맹자의 뜨거운 마음이 전해졌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누고 미완의 거친 글이지만, 이 책이 『맹자』를 처음 만나는 입문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위로가 필요한 시간,
나를 위한 맹자인문학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대하여
전국시대(기원전 403년~221년) 중기에 살았던 맹자는 공자의 인(仁), 의(義)를 강조하면서 왕도정치를 주장한 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유교사상을 완성한 맹자의 신념과 철학이 담긴『맹자』는 유가 철학의 추상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적인 정치사상서로 한대와 송대를 거치면서 유학의 경전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맹자』에 대한 이야기는 “오십 보를 도망가나 백 보를 도망가나 도망간 건 마찬가지”라는 의미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공동묘지 옆에 살게 된 맹자가 제사놀이를 하는 걸 본 맹자 어머니가 시장 옆으로 이사했더니 이번엔 장사놀이를 하는 통에 서둘러 서당 옆으로 이사가니 공부를 했다더라”는 ‘맹모삼천(孟母三遷)’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그러나『맹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렇게 가볍고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맹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새로운 문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서로의 이익만 탐하는 체제나 문명 전체를 상대로 한 담론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건강한 세상, 아름다운 문명을 만들어가자는 위대한 인문 운동이다.
조선의 밑그림을 설계한 정도전의 힘은 『맹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맹자가 제시하는 ‘인(仁)에 거하며, 예(禮)에 처하여, 의(義)의 길을 걷는 대장부’가 되고자 했다. 그들의 그런 기개와 삶의 태도가 조선을 500년씩이나 이어가게 한 힘 중 하나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지식인의 필독서가 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맹자』는 그렇게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수많은 상식적인 판단과 행동을 만들어왔다.『맹자』를 읽는 것은 ‘세상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우리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맹자』의 지혜를 읽고 쓰다
방송작가이자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는 박경덕은 인터넷 도올서원 ‘후즈닷컴’에서 김용옥 선생의 동양고전 강의를 통해『맹자』를 새롭게 만났다. 도올의『맹자』강의를 듣고, 읽고, 토론하면서 책 속에 글자로 박제돼 있던『맹자』가 죽은 글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로 다가왔다. 맹자가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하듯 정수리를 치고 오는 맹자의 말과 뜨거운 마음이 전해졌다. 작가는 맹자가 전해 준 깊고 공감가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혼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할 때『맹자』를 읽고 따라 쓰면서 마음에 큰 힘이 되었으며 일상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고민의 상황에 맞게 맹자의 지혜를 빌렸다.『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는 도올이 쉽게 풀어 쓴 원문 해설과 함께『맹자』의 지혜를 따라쓸 수 있게 해『맹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맹자』를 만나다, 일상의 혁신을 꿈꾸다
『맹자(孟子)』는 인간됨의 출발이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맹자』라는 서물(書物)에 담겨 있는 맹자의 생각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맹자』라는 책을 읽어서 얻게 되는 ‘지식’이 아니다. ‘나’라는 인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의 공통감(共通感) 같은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도덕적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잘 살 수 있다.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도덕이야말로 21세기 인류 역사를 선도해 나가는 기준이 되어야 하며, 인류에게 희망을 던지는 횃불의 연료가 되어야 한다.
『맹자』를 통해 만나는 사상가 맹자는 부드럽고 자상한 인물이다. 권위적인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어떤 위인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물이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라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지도자란 모름지기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와 같은 큰 담론도 있지만, 외국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독서는 왜 해야 하는지, 왜 세상일이 자꾸 꼬이는지, 일이 꼬일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거칠고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시시콜콜한 삶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조언해준다. 삶의 마디마다 힘든 선택을 해야 하고 고비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며 스스로 헤쳐나가야 함을 알려준다. 맹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말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대장부다. 자신의 내면을 다듬어 세상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욕심을 줄여, 더불어 함께 즐거워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대장부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지혜다. 접기



평점
분포

9.6







살아있는 자에게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그래서 읽어볼만 하다.
kingaura 2016-02-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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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타민과 같은 이야기들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책으로 최소 2번이상 읽으려고 하는 책입니다.
고리대금업자 2016-04-06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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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사상을 저자의 일상으로 불러들여 삶의 방향타로 삼은 생활 에세이..
bada0915 2019-08-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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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할 때 이 책은 혼자되게하고 맹자를 만나게 한다. 여타 인문학도서와는 다르게 작가의 글 맛이 맛깔난다. 정민작가가 쓴 책과는 비교되는 점이다. 아카데미 취업현장에서 직접 청년들을 만나면서 쓴 글이라 작가의 마음씀씀이가 세심하다.
아몬드 2016-06-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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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 나를 위한 맹자인문학



_박경덕 저/도올 김용옥 해설/안승희 그림 | 페이퍼스토리











최근 혼밥, 혼술 외에 혼영, 혼행 등 혼자 해결하고 혼자 움직이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덩달아서 혼술, 혼밥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기도 하지만, 차라리 혼자 먹고, 노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제목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때문에 혼밥, 혼술 이야기가 먼저 생각났다. 그렇다면 혼자인 나에게 맹자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 박경덕은 방송작가, 글쓰기 강사로 소개된다. 도올 김용옥의 『맹자』강의를 듣고 어지간히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맹자』를 다시 읽고, 토론하면서 책 속에 박제된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졌다고 한다. 박경덕이 쓰고, 도올이 쉽게 풀어 쓴 원문 해설이 함께 실려 있다.







“『맹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렇게 가볍고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맹자』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새로운 문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서로의 이익만 탐하는 체제나 문명 전체를 상대로 한 담론이다.”







책은 ‘운명을 거역하라’,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다’, ‘결국은 사람이다’ 의 세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맹자』에 나오는 삶의 지혜들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에 적용시킨 점이 독특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 부분들이 많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혜왕은 맹자에게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하셨다는 인사말과 함께, 장차 내 나라에 무슨 이로움을 기대해도 되겠냐고 묻는다. 이에 맹자가 답한다.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오늘 우리의 상황에 대입시킨다. 체인점이나 식당의 사장이 “우리 가게가 지금 망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익을 내서 이 가게를 다시 살릴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맹자는 “쓰러져가는 가게를 구하겠다면서, 왜 이익을 이야기하는가? 인의를 말해야지!”라며 호통을 친 거나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맹자가 말하는 인의(仁義)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어짊과 의로움’이다. 도덕(道德)이 동의어로 쓰인다. 맹자가 말하는 ‘인(仁)’이란 남을 측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이타심이고, ‘의(義)’란 스스로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껴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다. “진흙탕에서 개싸움하듯 이익만을 탐하는 세상에서, ‘인의’를 추구하겠다는 생각이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르며 세상을 헤쳐온 장사의 신들은 말한다. ‘이(利)’보다 결국은 ‘인의(仁義)’라고..”







『맹자』를 읽는 것은 ‘세상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공감이 간다. 홀로인 ‘나’도 소중하지만, 세상 속의 ‘나’를 어떻게 바로 세우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더욱 많이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책에 실린 맹자의 글 중에 특히 이 부분을 마음에 담는다. “내가 남을 그토록 사랑했는데, 사랑해준 그가 나를 친하게 생각지 아니하면 나의 ‘인(仁)’을 반성하라. 내가 사람을 다스렸는데 다스려지지 아니하다면 나의 ‘지(智)’를 반성하라. 내가 남에게 ‘예(禮)’를 다했는데, 그가 나에게 응당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경(敬)’을 반성하라.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구하라, 나의 몸이 바르게 되면 천하의 사람들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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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8-05-07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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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仁 : 남을 측은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이타심.
義 : 스스로 부끄러움, 수치심을 느껴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

친구 : 자신의 신분과 직위와 재산마저 같이 나눌 수 있어야 친구라 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현재 나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다. 이러한 친구가 생기기를.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 크게 노력하지 않고 나 하나 잘 되기에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이후에 나의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될 사람에게 이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호연지기
浩然之氣
크고 넓게, 왕성하게 뻗친 기운.
(키워나가는 것이다. 나는...나의 경우에는..글쎄?)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에 깊이 수긍한다.

도올 김용옥의 제자인 박경덕씨가 맹자의 일부분을 쉽게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만족.

이번 책에서 가장 힘이 되고 와닿았던 맹자의 글귀는 이것이다.

彼, 丈夫也, 我, 丈夫也. 吾何畏彼哉?
피, 장부야, 아, 장부야. 오하외피제?

그도 한 사나이, 나도 한 사나이. 내가 왜 그를 두려워하리?

앞으로의 나의 인간관계에서 큰 도움이 될 만하다. 직위, 생김새, 체격,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겁먹지 않고, 동등하게 대응하는 데 용기를 줄 것이다.
˝피 장부야 아 장부야. 오하외피제?˝




맹자 만세다!!!!!


(참고로 이후에 중용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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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행복 2017-11-2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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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기록









더 나은 삶을 원한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경쟁이 도처에 깔려 있다. 상대를 짓밟고 일어서는 일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스펙을 쌓고, 그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듯 산다. 나보다 나은 친구들을 스스로 재단하며 그러한 친구를 사귀면 나 스스로가 그럴듯한 사람이 된 것 처럼 여긴다. 어딘지 핀트가 어긋난 삶의 태도는 스스로가 쌓아올린 ‘경쟁의 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 경쟁의 벽을 좀 더 견고히 쌓아올리길 종용한다.






“지성을 다해야 하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지성은 재물이나 복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찮은 생각이나 사소한 말, 소소한 행동에도 지극한 정성을 들이라는 의미다.”

- 박경덕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 135p-






박경덕 작가는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의 말을 응용하면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태도는 우리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과는 동 떨어져 있다. 재물이나 복채에 성심을 다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맹신한다. 그래서 인지 박경덕 작가의 저 한 구절, 삶의 태도에 대한 진단은 크게 와닿았다. 그것은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들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은 삶을 향한 태도에 가장 좋은 것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지성을 다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찮은 생각이나 사소한 말, 소소한 행동에도 지극한 정성을 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에는 섬세한 언어가 가득하다. 작가 스스로의 삶의 사소한 것들을 펼쳐내고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시 삶으로 체화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 결국, 사소한 기록도 차근차근 모이면 방대한 기록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나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삶을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일,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책에는 그러한 걸음이 가득하다. 보고 나의 것으로 체화해 발걸음을 같이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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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2016-02-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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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맹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했다. 그런데 맹자는 이 선택에 명쾌한 답을 내렸다. 죽어도 좋고 아니 죽어도 좋을 때 죽는 것은 나의 참된 용기를 상한다.



헬조선에서 살아남는 것이 이토록 힘들지라도 용기를 건넨다. 그리고 우리는 꽤 오래 버틸 수 있다. 평소 공자, 맹자의 글에 대해 복잡하고 고지식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경쟁 구조에 익숙해진 생활패턴이지만 느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만들었다.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도 공감을 바탕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의미있는 책이다.

‘지금 혼자라면 맹자를 만나라’는 죽은 글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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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2016-06-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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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동경대전 2

알라딘: 동경대전 2

동경대전 2 - 우리가 하느님이다  | 동경대전 2  
김용옥 (지은이)통나무2021-04-11원제 : 東經大全

양장본576쪽

책소개

최근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낸 <동경대전> 초판본의 완역이자, 가장 상세한 주석서이다. <동경대전>은 1824년에 태어나 1864년 봄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수운 최제우라는 한 인간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 그가 죽기 직전까지 한문으로 쓴 문장을 모은 일종의 문집이다.

그 시기는 그가 동학을 창도하여 민중 속에서 실천적 삶을 살았을 때였다. 문집이니까 당연히 사상을 전달하는 논설형식으로 쓴 철학적 문장뿐 아니라, 시문이나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수운이 추구하는 동학의 사상체계, 그리고 수운의 예술적 감성까지 총체적으로 담겨있는 문헌이다. 이 <동경대전>은 결국 해월에 의해, 수운의 저술 그대로 동학의 경전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수운의 <동경대전>을 도올 김용옥이 심혈을 기울여 번역하고 해설하여, 수운 사상의 본래 모습과, 그 사유의 깊이가 어느 정도까지인지, 그가 가르치는 동학이 과연 무엇인가를 상세하게 서술한 노작이다. 이 책은 또 조직적 활동에 따라 동학이 민중 속에서 퍼져나가면서 벌어지는 우리 역사의 사건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연표가 정리되어있다.

동학과 더불어 진행되는 피눈물 나는 우리 근현대사의 온갖 영욕과 애환이 담겨있는 방대한 "동학연표"이다. 그리고 또 이 책에는 동학 경전으로서 <동경대전>에 상응하는 수운 자신의 한글저작인 <용담유사>, 그 유일한 목판본이 원본 그대로 실려있다.


목차
동경대전東經大全 제의題義 11
내가 역해하는 <동경대전> 텍스트에 관하여 15

Ⅰ 포덕문布德文 18
Ⅱ 동학론東學論(논학문論學文) 102
Ⅲ 수덕문修德文 154
Ⅳ 불연기연不然其然 192
Ⅴ 축문祝文 210
Ⅵ 주문呪文 214
Ⅶ 입춘시立春詩 220
Ⅷ 절구絶句 224
Ⅸ 항시降詩 228
Ⅹ 좌잠座箴 230
ⅩⅠ 화결시和訣詩 236
ⅩⅡ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 250
ⅩⅢ 강결降訣 270
ⅩⅣ 우음偶吟 274
ⅩⅤ 팔절八節 286
ⅩⅥ 제서題書 294
ⅩⅦ 영소?宵 297
ⅩⅧ 필법筆法 306
ⅩⅨ 유고음流高吟 318
ⅩⅩ 우음偶吟2 321
ⅩⅩⅠ 통문通文 324
ⅩⅩⅡ 통유通諭 330
ⅩⅩⅢ 사식四式 340
ⅩⅩⅣ 해월발문海月跋文 348
ⅩⅩⅤ 검결劍訣 356
ⅩⅩⅥ 필송畢頌 362

【동학연표】 366
동학연표 참고문헌 537

<용담유사> 계미중추북접신간 567~540

찾아보기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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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1 “동경대전”이라는 책제목은 1880년 6월 14일 인제 남면 갑둔리에서 처음 간행될 때 동학의 경전을 다 모아 상재한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데 원래는 문집의 체제로 기획되었던 것이다.
P. 16 경진초판본은 수운이 필사한 수고본手稿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문자상의 모든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P. 23 수운은 자신의 포덕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는 글을 써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1861년 7월 중순경에 지은 글이 바로 <동경대전>의 서두를 장식케 된 이 포덕문이다.
P. 33 수운은 “선·후천개벽”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수운이 활약한 1850·60년대에 조선땅의 사상가들의 의식세계에 자리잡지 않은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P. 40 중국인들에게도 “선·후천개벽”이라는 말은 의미를 갖지 않는 자형의 조합일 뿐이다. 이 말은 오로지 조선의 민중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우리 민중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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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용옥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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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생물과, 철학과, 한국신학대학 신학과에서 수학하고 대만대학, 동경대학에서 철학석사학위를 받고, 하바드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다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6년의 학부수업을 마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고려대학, 중앙대학, 한예종, 국립순천대학교, 연변대학, 북경대학, 사천사범대학 등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제자를 길렀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 90여 권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베스트셀러들을 통해 끊임없이 민중과 소통하여 왔으며 한국역사의 진보적 흐름을 추동하여왔다. 그는 유... 더보기
최근작 : <동경대전 2>,<동경대전 1>,<노자가 옳았다> … 총 9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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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동경대전 2>,<동경대전 1>,<이성의 기능>등 총 110종
대표분야 : 불교 8위 (브랜드 지수 68,586점), 고전 27위 (브랜드 지수 79,56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도올 김용옥, 드디어 <동경대전> 역주 완성!
“번역 자체가 깨달음의 과정이었고 해후의 역정이었다!”
<동경대전>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성경이다!

최수운은 누구이고? 동학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 두 권으로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최근 최초로 그 모습을 드러낸 <동경대전> 초판본의 완역이자, 가장 상세한 주석서이다. <동경대전>은 1824년에 태어나 1864년 봄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수운 최제우라는 한 인간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 그가 죽기 직전까지 한문으로 쓴 문장을 모은 일종의 문집이다. 그 시기는 그가 동학을 창도하여 민중 속에서 실천적 삶을 살았을 때였다. 문집이니까 당연히 사상을 전달하는 논설형식으로 쓴 철학적 문장뿐 아니라, 시문이나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글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수운이 추구하는 동학의 사상체계, 그리고 수운의 예술적 감성까지 총체적으로 담겨있는 문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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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없는 서인•노론 중심의 보수가 집권하던 시절. 19세기 암흑기의 한국을 온전히 밝히는 인간평등사상의 결정판, 동학. 유형원 이후의 개혁 사상과 함께 자주적인 근대화로 갈 수 있었던 사회 개혁의 열쇠. 김용옥 판 동경대전으로 19세기 한국 철학을 길어올리다.  구매
청아한아이다 2021-04-0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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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느님이다. 플레타르키아의 신세계.  구매
꼬뮨 2021-04-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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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가 동학교도요.그의 자손인 조부와 조고모가 역시 천도교 교당을 정기적으로 다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다.나이 60을 목전에 두니..새삼 조상님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일단 1권만 사서 훓어봤다. 2권을 봐야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도올 선생님이 큰일 하신 것 같다. 건강하십쇼.  구매
duri2023 2021-04-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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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입니다.  구매
김씨 2021-05-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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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인 너무도 상식적인 무극대도 새창으로 보기 구매
도올선생의 "동경대전" 역주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인공감미료에 익숙해진 우리네 입맛처럼 나의 사고 방식도

말초를 자극하는 화끈하고 매력적인 서사와 정치한 논의를 탐하고 있었던 것 같다.



(※ 2021년 4월 16일자 원불교신문 대각개교절 도올선생 특별기고문 

"눈보라 휘날리는 봄바람 속 다시 듣는 대각의 노래" 중 도올선생이 쓴 한 문장으로 

"동경대전" 독서 후 이런 나의 헛헛한 마음을 빌어 표현한다면 

바로 (이 책 동경대전은) "뭔가 그랜드한 느낌을 주는 난해성 같은 것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되는 듯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첨가물의 가미를 전혀 배제한 채

상식적 이기만 하고 철저히 인간적인 모습만으로 채워가고 있다.

수운의 고뇌는 (주자학적인 명분으로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가르침인) 도학道學도 

(초월자를 명분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가르침인) 서학西學도 

전부 벗어버린 인간 회복의 통음이었다.



이런 상식적인 얘기만으로 수만명, 수십만명 백성을 도륙할 이유로 삼은 그들은 

대체 이 땅의 누구였고, 건너온 뉘놈 이였던가?

다른 화해와 수렴이 전혀 가당치 않았던 이유는 또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당시도, 현재도, ...... 

지금까지도 아프다.

이제는 해원解寃이다~!  

謹拜



188. (테르툴리아누스 曰) 불합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덮어놓고) 믿는다.

(※ 이 말은 문장의 '믿음'에 강조점이 있지않고, '불합리'에 방점이 있다.)



199. 서학의 근원적인 수직적 사고는 불연의 사기성에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불연의 사기성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수직적 권위주의의 상징태이며

이것을 수용할 경우 우리 민족은 왕정적 사유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깊은 우려를

수운은 죽음 직전에까지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 이 부분에서 도올선생은 말을 많이 아끼고 있는 듯하다. 

동학이 갖는 사회적, 정치적, 사상적 영향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단으로 생각된다.

특히 "왕정"이라는 단어는 도올 선생의 1987년 양심선언문(왕정이냐? 민주냐?)과 단식 돌입의 인식을 되불러 오는 듯하다. )



200. 인류 지성사의 발전은 결국 불연을 기연화하는 과정이었다.



292. (수운) 그는 조직에 대한 얘기나, 권세에 관한 얘기나, 믿음에 관한 얘기가 일체 없다. 

상식적 인간의 상식적 생각, 그 속에 깃든 비범한 혁명적 사유를 가르치려고만 노력한다. 





P.S. 

1. 나에겐 "불연기연"과 "좌잠" 편이 특히 그윽하게 다가왔다.

뒤에 붙은 연표는 보다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이토록 아둔한 치자놈과 교활한 뉘놈이 다시 있을고...... 



2. 2021년 4월 16일자 원불교신문 대각개교절 도올선생 특별기고문 

"눈보라 휘날리는 봄바람 속 다시 듣는 대각의 노래" 기사글

☞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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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hfire 2021-04-1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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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교리 justification

 Sung Deuk O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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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목회) 선교사의 일상과 "아이고 시원하다"]

다음 지도는 1902년 3월 한 달 간 마페트( S. A. Moffett, 마포삼열) 목사가 순회 전도 여행을 하면서 이제 막 세워지기 시작한 교회들과 미조직 교회들을 방문하고 세례를 주고 학습교인을 받아들이고 사경회를 한 자취를 나타낸다. 

당시 지명과 거리를 제대로 알려면 대동여지도를 이용하는 게 최고다. 선교사들도 대동여지도나 여지도를 들고 다녔으므로...

봄과 가을에 이런 여행을 두세 번씩하고(그래서 관리하는 교회가 여러 군에 걸쳐 수십 개에서 나중에는 60~70개 정도), 겨울에는 거주하는 선교지부(station)가 있는 도시(마페트의 경우 평양)에 지내면서 도사경회를 인도하고 시내 교회 목회, 교육 등을 하고, 여름에는 장마와 질병 때문에 사역을 쉬면서 문서 작업 등을 했다.

지도에서 평양을 출발하여 1(순안)--2(순안 북창)--3(순안 자로: 그 바로 옆 자모산성이 바로 임꺽정이 한때 활동하던 본부)--4(숙안 자작: 1903년 한경직 출생지: 그는 어릴 때 마페트의 영향을 받았다)--5(숙천 성내)--6(안주)--7(숙천 사산)--8(영유 버들골) 등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온다.

순안북창 사경회에서 마 목사가 칭의 교리를 설명하고 이미 심판을 받고 석방되었다고 하자, 듣고 있던 한 노인은 "아이고, 시원하다"라고 외쳤다. 진리를 깨달은 이의 감격 어린 이 말에 마페트는 희열과 전율을 느꼈다.

안주에서 다시 숙천으로 내려오는 길, 청천강 을 건너는 계곡에는 해동이 되면서 온통 얼음이 떠다니며 서로 부딪혀 깨지고 녹아 내리고 있었다. 길은 온통 진흙탕이었다.

마페트가 이 무렵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선교사로서 한국학 학자가 될 것인가, 전도자로 남을 것인가였다.  성경번역자회 위원으로 두 번이나 임명받았으나, 그는 자신의 사명이 전도와 목회에 있다고 확신하고, 한국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문서 작업에 매달려 한국학 학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변변한 저서 한 권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What is my duty? What is my calling in the decidedly limited time? 주어진 이 짦은 시간 안에 꼭 해야 하는 일, 주께서 부르신 나만의 소명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는 하루다..

 (7년 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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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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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稱義, 영어: justification, ) 또는 의화(義化, 의롭게 되다)는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하나님에 의해 의로워진 행위, 과정, 상태(the act, process, or state of being justified by God)이며,[1]인간이 죄의 책임과 처벌로 부터 의롭고 자유롭게 여겨지는(made or accounted just, or free) 하나님의 행위이다.[2] ‘의롭게 됨’ 또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음’을 뜻하며, 기독교 신학에서 속죄을 통해 죄의 용서와 내면적 쇄신과 동시에 죄인들이 의로워졌다고 선언받는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행위없이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서 칭의 개념이 명확하게 되었다.



목차

1 성경의 용어들과 의미

2 교파별 해석

2.1 개신교

3 역사적 논의

3.1 종교 개혁이전

3.2 종교 개혁이후

3.3 청교도

3.4 새 관점 논의

3.5 칭의교리 공동선언

4 같이 보기

5 참고문헌

5.1 영어문헌

5.2 독일어

6 국내 문헌

7 각주

8 외부 링크

성경의 용어들과 의미

구약성경에는 칭의(의화)대한 용어는 히츠디크(צדקה, zedaqah)로서 대부분의 경우 어떤 사람의 지위가 율법의 요구와 일치한다고 법적으로 선언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 23:7; 신 25:1; 잠17:15; 사 5:23). 신약성경에는 명사(δικαίωσις)는 동사 디카이오(δικαιόω)의 명사형이다. 어떤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다는 의미이다(마 12:37: 눅 7: 29; 롬 3:4). 의(Righteousness, Justice)는 올바름, 표준에 대한 일치등으로 정의된다. 이 말은 성서적인 용법(用法)은,두 가지의 중요한 점에서 현금의 용법과는 다르다. 즉, 말의 의미의 범위와, 의가 그것에 의해 측량되는 규범에 한정된다. 근대의 용법에서는, 의는 윤리적인 성질에, 윤리적인 표준에의 일치에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표준은 사회 또는 집단의 규범에 의존하며 상대적이다. 하지만, 성서적인 용법에서는 그 표준은, 시종 일관하여, 하나님의 의(義)이지, 사회의 규범은 아니다. 성서적 사고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중심적인 표준에 의해 지배되어 있는 까닭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의라는데서 시작할 경우에만, 의의 개념을 이해할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의란, 먼저 하나님의 성질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올바름이라든가 신성(神聖)하심의 일이다. 주위의 제국의 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멋대로나 기분내키는 대로 하시지 않고 부당한 요구도 않으시며, 고집세게 행동치 않으시며 그 취급에 있어서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또 그 백성으로부터 올바른 행위를 요구하시고 그 율법에 의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인간의 의는, 이같이 하여, 가장 세찬 규범에 의해 평가되고, 그 최고의 윤리적인 결정에 달한다. 둘째번으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행위이시고, 하나님께서 세계 중에 그 의를 확립하시는 방법이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변명하시고, 그들 위해 의를 수립하신다는 생각을 발전케 하고 있다. 이같이 하여 의의 윤리적 의미에, 구원적인 의미, 즉 하나님께서 그 백성 위해 성취하시는 해방, 혹은 구원이 더해진다. 셋째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행위에서 결과, 즉 그 목적의 성취이다. 이 양상(樣相)은 이 말의 종말론적 성격을 강조하고, 이스라엘의 메시야적 희망 즉 [의가 존재하는] 세계에의 동경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바울이 복음을 하나님의 의의 계시로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의 동적(動的)인 성격에 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 위해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의의 행위이다. 이것은, 윤리적 요구를 늦추는 것을 지시하지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산상수훈이 보여주고 있는대로 윤리적 감각이 예리해짐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길의 비젼이며 그 길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의헤 대한 요구가 만족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자기 중심성 때문에, 그에게 요구되어 있는 진실한 하나님 예배와 봉사를 성취할 수가 없다. 그는 다할 수 없는 요구에서의 죄책에 의해 고통받고 그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요구에서의 죄책에 의해 고통받고 그 생명으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자기 중심성을 스스로 깨쳐버릴 수 없는 때문에, 씩씩하게 사는 의자가 꺾이고 만다. 하나님의 의의 성취는, 다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시는 때만 가능하다. 이 일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있어서 의인(의로운자)이라고 교시 되는 것이다. 의는 이처럼 제1의적으로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이 그 자신의 거룩하심에 적합하도록 인간에게 요구하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고, 이 행위의 결과, 즉, 이 의를 이웃 사람에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하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Warren A. Quanbeck:Righteousness). 의로 역된 원어는 수종이나 되는데, 히브리어 명사에 있어서는 [체데크](남성형)와 [체다-카-](여성형)의 2어가 전형적이고, 남성형 117회, 여성형 155회 씌어져 있다. 이 밖에도 [공의]로 많이 역된 [미슈파-트]가 있는데, 이것은 [재판], [판결]등도 의미하는 넓은 의미의 말로서, [의]의 의미에 있어서 상기의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씌어진다. 다만 [미슈파-트]가 경우에 따라서는 [체데크][체다-카-]보다 윤리적인 의미가 승한데 대해, 이것은 법적 의미가 우월하다. 그리스어 명사에 있어서는 [의]로 역된 원어가 [디카이오-마 dikaivwma](dikaioma)가 10회, [디카이오-시스 dikaivwsi"(dikaiosis)가 2회 씌어져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구약에 있어서의 [의]의 개념의 연장으로 이해되는 것으로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또는 이에 기초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한(예켄대 사랑과 같다) 관계개념이다. 이 말은 바울서신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신학적 개념인데, 기타의 문서에 있어서는 비교적 나오는 수도 적고(34회), 당시의 유대교의 사상적 공유재산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칭의(Justify, Justification )는 본래 법률의 용어의 하나로 재판에서 무죄로 인정되는 일을 말한다. 즉 이 말은 법률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내리는 일을 의미하고 있는데, 성서에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 있어서, 죄없는 올바른 자, 의로운자로서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신앙)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바울의 복음신앙의 중심이고, 근본원리이다.구약 시대에는,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율법을 준수하는데 있었다. 구약에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두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인간은 율법의 요구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고, 따라서 율법에 의해서는 구원얻지 못할 뿐더러, 죄의 자각(自覺)이 생길 뿐이다(롬 3:20). 이에 하나님은, 인간을 의롭다 하는 새로운 방법을 취하셨다. 그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한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죄 위한 대속제물로 삼으신 것이다. 인간은 다만 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의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다. 이 구원의 역사(役事)에 의해, 하나님은 그 자신의 의를 관철하시고, 인간도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다(롬 3:21-26). 신자의 새 생활은, 모두 이 의롭다함을 얻는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다(롬 5:1-).→의(義). 원어는 구약에서는 동사[차-다크 qd'x:(tsadaq)]의 사역태(hiph 형)의 번역으로서 [의롭다 한다]가 씌어지고, 특히 하나님의 품성에대해(사 50:8,vindicate), 또는 야웨의 종의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인용되어 있다(사 53:11,to be accounted righteous). 신약에서는 [디카이오- dikaiovw (dikaioo) 의롭다함]이 수동태(dikaiou'sqai)로 씌어져, [의롭다 함을 얻는다](is justified)로 역되어 있다. 주로 그리스도에 의한 죄사함과 구원을 나타내고(롬 3:28,5:1,9,갈 1:16기타), 특히 수동형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절대적 은혜에 의함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3]


교파별 해석

칭의론(의화론, 義化論)에 있어서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 각 교파마다 현저한 차이가 있다. 루터교와 칼뱅교에서는 선행 없이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사람이 칭의된다고 보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감리교에서는 세례를 통해 현세에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산 후에야(성화) 구원이 완성된다고 본다. 신학 용어로는 가톨릭적 의화를 실효적 의화(justificatio effectiva)라 하고, 개신적 칭의를 법정적 칭의(justificatio forensis)라고 한다.


개신교

칭의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교리의 근본적인 개념이다(ein Grundbegriff der protestantischen Lehre).[4]칭의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게된 핵심적인 신학 주제이며[5][6] 믿음으로 의롭함을 입는 수동태형으로 이신칭의라고 부른다.[7] 기독교 신학에서 칭의란(Justification in Christian theology), 하나님이 죄인의 상태의 인간을 의인의 상태로 옮기는 행위이며, 죄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옮겨진 인간의 조건이 변화된 것이며, 특별히 프로테스탄트 경우에는 회개한 죄인에게 의인의 상태로 하나님이 무죄를 선언하는 행위(the act of acquittal)이다.[8] 루터는 로마서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의 개념에서 칭의가 율법의 행위와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어거스틴을 통하여 확신하게 되었다(Aber ich wil bej S. Augustino bleiben, sonderlich aber bej dem herrn Christo, der do hatt das wortt der warheit).[9]


역사적 논의

종교 개혁이전과 종교 개혁이후에 이 용어의 의미는 변화를 해왔다.


종교 개혁이전

초대교회과 중세 스콜라주의의 개념이 포함된다. 로마 가톨릭의 칭의는 일시적인 면보다 과정에 치우친다. 즉, 유아세례를 받게 될 때 칭의가 시작되고, 하느님의 은혜가 주입되어(의로움의 주입) 그들의 삶의 습관과 행위에 변화가 생기며, 마지막의 칭의는 전적으로 수혜자의 행위에 의존된다. 즉, 칭의와 성화가 복합적으로 혼합된 형태로 남게 되어,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하지만, 신자의 행위는 결코 완전한 의를 갖지 못하고,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 구원의 확신이 결여된 상태를 유지한다.[10]


종교 개혁이후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이후 칭의론은 중요한 원리였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칭의를 처음으로 주장하였다. 루터의 사상과 일치한 장 칼뱅은 칭의의 개념을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본다. 그의 구원론의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이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의 행위의 의로부터 제외되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을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의로 옷 입고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 아니라 의인으로로 나타난다. 이것이 칭의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로운 것처럼 그분의 총애 속으로 받아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이 칭의가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11]


청교도

존 오웬은 칭의의 라틴어인 justificatio 와 justifico 의 의미가 '사람 안에 내재적으로 의롭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칭의와 성화 (기독교)를 혼동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즉, 헬라어인 '디카이오수네'를 해석하여 '법정적인'(forensic)의미로, 보다 객관적인 법정에서의 선언적 의미로 재해석하였다. 또한 의의 전가의 의미도 강조하여, '자다크'라는 의로움의 히브리어가 의롭다고 선언하다는 의미임을 주장하였다.[12]


새 관점 논의

칭의에 대한 바울의 새 관점이 영국의 E. P. 샌더스, 톰 라이트, 제임스 던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되어 논쟁으로 부각되고 있다. 새 관점(New Perspective)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세기 유대주의에 근거하여 바울의 서신을 해석한다. 종교 개혁가 루터와 칼뱅에 의해 주장된 이신칭의론(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비판하고 칭의를 미래의 완성적 종말에 강조를 한다. 구원에 있어서도 칭의의 행위적-종말론적 요소를 새롭게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개신교의 법정적 칭의라는 핵심적인 주장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함으로써 큰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


칭의교리 공동선언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교는 1986년에 루터교-로마 가톨릭 합동위원회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몇 차례의 모임 끝에 1993년에 칭의(의화) 교리에 관한 문헌의 초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에 합동선언문 초안을 작성, 1997년에 합동선언문은 완성했으나 내부 합의 등 여러가지 문제로 공식 발표가 연기됐다. 그러던 중 마침내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그에서 당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위원회 카시디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 연맹의 크라우저 회장이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에 서명했다.[13] 그리고 2006년 7월 23일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여기에 동참하여 세 교파가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 연맹과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Jointed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이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하였다.[14]


같이 보기

속죄

구원 (기독교)

구원론

영원 칭의론

참고문헌

영어문헌

Phillip Edgecumbe Hughes (1982). Faith and Works: Cranmer and Hooker on Justification. Morehouse-Barlow Co.

Robert D. Preus (1997). Justification and Rome. Concordia Academic Press.

Thomas P. Scheck (Author), Joseph T. Lienhard S.J. (Foreword), Origen and the History of Justification: The Legacy of Origen's Commentary on Romans, 2008,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Hans Küng, Justification: The Doctrine of Karl Barth and a Catholic Reflection

Tom Wright, 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

독일어

Wenzel Lohff, Christian Walter: Rechtfertigung im neuzeitlichen Lebenszusammenhang. Studien zur Interpretation der Rechtfertigungslehre. Gütersloher Verlagshaus Gerd Mohn, Gütersloh 1974.

Wilfried Härle, Eilert Herms: Rechtfertigung. Das Wirklichkeitsverständnis des christlichen Glaubens. Göttingen 1980 (UTB 1016).

Johannes Brosseder: Reformatorischer Rechtfertigungsglaube und seine Kraft im ökumenischen Gespräch der Gegenwart. Ausgewählte Beiträge zur ökumenischen Theologie aus drei Jahrzehnten Christine Funk e. a. (Hg.), Frankfurt am Main 1999, ISBN 978-3-87476-347-9. (35 Beiträge)

Horst Georg Pöhlmann: Abriß der Dogmatik. Ein Kompendium. Gütersloh, 6. Aufl 2002, Kapitel X, ISBN 3-579-00051-9.

Hans-Martin Barth: Dogmatik. Evangelischer Glaube im Kontext der Weltreligionen. Ein Lehrbuch. Gütersloh 2. Aufl. 2002, S. 528–550;562-577, ISBN 3-579-05325-6.

Friedrich Hauschildt, Udo Hahn (Hrsg.): Rechtfertigung heute. Warum die zentrale Einsicht Martin Luthers zeitlos aktuell ist. Lutherisches Kirchenamt (VELKD), Hannover 2008, ISBN 978-3-9812446-0-1.

Markus Witte (Hrsg.): Gerechtigkeit, Themen der Theologie 6, UTB 3662, Mohr Siebeck, Tübingen 2012, ISBN 978-3-8252-3662-5.

국내 문헌

앨리스터 맥그래스, 하나님의 칭의론

김용주, 칭의, 루터에게 묻다

존 파이퍼, 칭의 논쟁

앨리스터 맥그래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이신칭의

박영돈,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마이클 호턴, 칭의논쟁

박재은, 칭의, 균형 있게 이해하기

각주

 Merriam-Webster Dictioanry

 dictionary.com/

 디럭스 바이블, "의(義):Righteousness, Justice"

 "Rechtfertigungslehre"

 E. Wolf, "Die Rechtfertigungslehre als Mitte und Grenze refomatorischer Theologie," EvTh 9 (1949-50), 298-308

 Schwaz, "Luthers Rechtfertigungslehre als Eckstin der christlichen Theologie und Kirche"

 Justification CHRISTIANITY, Encyclopædia Britannica

 Justification CHRISTIANITY, Encyclopædia Britannica

 “Martin Luther, Augustinian By Richard D. Balge” (PDF). 2017년 9월 7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9월 7일에 확인함.

 Horton, Michael Scott. (2011). 《The Christian faith :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Mich.: Zondervan. 622쪽. ISBN 978-0-310-28604-2.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3.11.2

 Beeke, Joel R., 1952-. 《A Puritan theology :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Michigan. 496쪽. ISBN 978-1-60178-166-6.

 칭의교리 공동선언 다시보기

 “감리교·루터교·로마 가톨릭 ‘의화 교리 공동선언문’발표”. 한국일보. 2006년 7월 25일. 2017년 9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칭의연구

Thomas Kothmann: Einig in der Rechtfertigungslehre?. München 1993.

Gemeinsame Erklärung zur Rechtfertigungslehre

Kritischer Aufsatz zur Gemeinsamen Erklärung zur Rechtfertigungslehre von Bernhard Kaiser (PDF-Datei; 299 KiB)

SELK: Kritische Stellungnahme der Selbständigen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zur Gemeinsamen Erklärung zur Rechtfertigungslehre (PDF; 24 kB)

Hirtenwort von Kardinal Lehmann zur Gemeinsamen Erklärung

Aktuelle Literatur zur Rechtfertigung(slehre)

Fachartikel zur Rechtfertigung im Alten Testament in: Michaela Bauks / Klaus Koenen (Hgg.), Das wissenschaftliche Bibellexikon im Internet (WiBiLex), 2007ff.

[1] - Illustration, welche Präsuppositionen im Spiel sind, wenn christliche Theologen sich mit "Rechtfertigung" beschäftigen.

공동선언 자료

칭의교리에 대한 공동선언과 감리교회, 기독교타임즈

루터교-로마가톨릭 칭의교리 공동선언, 바로 알리기, 기독신문

칭의교리 공동선언 역사 신학적 조명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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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hristian theologyjustification is God's righteous act of removing the condemnation, guilt, and penalty of sin, by grace, while, at the same time, declaring the ungodly to be righteous, through faith in Christ's atoning sacrifice.

The means of justification is an area of significant difference amongst the diverse theories of atonement defended within Roman Catholic, Eastern Orthodox and Protestant theologies.[1] Justification is often seen as being the theological fault line that divided Roman Catholicism from the Lutheran and Reformed traditions of Protestantism during the Reformation.[2]

Broadly speaking, CatholicMethodist and Orthodox Christians distinguish between initial justification, which in their view ordinarily occurs at baptism (as with the Catholicism and Eastern Orthodoxy) or the New Birth (as with Methodism), and final salvation, accomplished after a lifetime of striving to do God's will (sanctification).[3][4][5]

In Catholic doctrine, righteousness is "infused", i.e., God "pours" grace into one's soul or, "fills" one with his grace more and more over time; faith as is shown through charity and good works (fides caritate formata) justifies sinners.

In Lutheran and Reformed doctrine, righteousness is imputed (λογίζομαι, "logizomai") to the inherently ungodly, by grace, through faith in the cross of Christ. Reformed Christianity teaches the concept of fiduciary faith, that is, that "faith alone suffices for justification, and that consequently the observance of the moral law is not necessary either as a prerequisite for obtaining justification or as a means for preserving it."[6] Therefore, a righteousness from God is viewed as being credited to the sinner's account through faith alone, apart from works, being based solely on the blood of Christ.

In Methodist doctrine, imputed righteousness is received during justification and imparted righteousness is communicated through sanctification.[7][8] Partaking in the means of grace (works of piety and works of mercy) are integral to sanctification,[9] as is the keeping of the moral law contained in the Ten Commandments.[10] The desired state is Christian perfection, also known as entire sanctification (the second work of grace),[11][12] described as being "habitually filled with the love of God and neighbor" and as "having the mind of Christ and walking as he walked".[13]

Yet, in Roman Catholic, Lutheran, and Reformed doctrine, as well in Methodism and Eastern Orthodoxy, anyone who has been justified will produce good works as a product of faith, just as a good tree produces good fruit.

For Lutherans, justification can be lost with the loss of faith; for Catholics, justification can be lost by mortal sin.[14][15] For Methodists (inclusive of the holiness movement), salvation can be lost with the loss of faith or through sinning (cf. conditional security).[16][17] The Reformed tradition generally holds that justification can never truly be lost; for those who have been justified, will certainly persevere to the end by faith.

Contents

New Testament[edit]

Jesus used the idea of ransom, or redemption when referring to his work on earth (Matthew 20:28Mark 10:45).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triumph over Satan and death) provide justification for believers before God. His righteousness becomes theirs, and his death becomes an offering to God in their place, to pay for all of their sins. According to Protestants this justification is by faith alone – not through good deeds – and is a gift from God through Christ. According to Catholics and Eastern Orthodox we are justified by God's grace which is a free gift but is received through baptism initially, through the faith that works for love in the continuous life of a Christian and through the sacrament of reconciliation if the grace of justification is lost through grave sin.

The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JDDJ), signed by both the Lutheran World Federation and the Roman Catholic Church on 31 October 1999, clearly stated that "consensus in basic truths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exists between Lutherans and Catholics."[15] In Roman Catholic and Lutheran doctrines, as expressed under section 4.7 no.37, "we confess together that good works – a Christian life lived in faith, hope and love – follow justification and are its fruits. When the justified live in Christ and act in the grace they receive, they bring forth, in biblical terms, good fruit. Since Christians struggle against sin their entire lives, this consequence of justification is also for them an obligation they must fulfill. Thus both Jesus and the apostolic Scriptures admonish Christians to bring forth the works of love."

The declaration states that several theological views on justification held by Lutherans and Catholics, though not apparently similar to each other, are in fact explaining the same "basic truths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at different angles.

An example can be cited from section 4.7 no. 38–39, "when Catholics affirm the 'meritorious' character of good works, they wish to say that, according to the biblical witness, a reward in heaven is promised to these works. Their intention is to emphasize the responsibility of persons for their actions, not to contest the character of those works as gifts, or far less to deny that justification always remains the unmerited gift of grace", in comparison with "the concept of a preservation of grace and a growth in grace and faith is also held by Lutherans. They do emphasize that righteousness as acceptance by God and sharing in the righteousness of Christ is always complete. At the same time, they state that there can be growth in its effects in Christian living. When they view the good works of Christians as the fruits and signs of justification and not as one's own 'merits', they nevertheless also understand eternal life in accord with the New Testament as unmerited 'reward' in the sense of the fulfillment of God's promise to the believer."

Suppose a brother or sister is without clothes and daily food. If one of you says to him, "Go, I wish you well; keep warm and well fed", but does nothing about his physical needs, what good is it?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But someone will say, "You have faith; I have deeds." Show me your faith without deeds, and I will show you my faith by what I do.

D. James Kennedy explains this verse:

James is dealing with people who profess to be Christians, and yet they don't evidence the reality of their faith by their works [deeds]. Over, and over again... people will say they have faith and they don't have works, and James is saying that real faith always produces works as a result... The question is, 'A man may say that he has faith, but will that faith justify him?' If it is just a 'said' faith—no, it won't![18]

Paul[edit]

It was Paul who developed the term justification in the theology of the church. Justification is a major theme of the epistles to the Romans and to the Galatians in the New Testament, and is also given treatment in many other epistles. In Romans, Paul develops justification by first speaking of God's just wrath at sin (Romans 1:18–3:20). Justification is then presented as the solution for God's wrath (Romans 3:21–26Romans 5:1). One is said to be 'justified by faith apart from works of the Law' (Romans 3:28). Further, Paul writes of sin and justification in terms of two men, Adam and Christ (Romans 5). Through Adam, sin came into the world bringing death; through Jesus, righteousness came into the world, bringing justification unto life (Romans 5:15–17). In this connection, Paul speaks of Adam's sin being 'imputed' or 'accounted' (Greek ελλογειται) and speaks of justification as acting in analogy to sin (Romans 5:13Romans 5:18). In chapter 8, Paul connects justification with predestination and glorification (Romans 8:30). He further states that those who are justified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love of Christ (Romans 8:33–39). Several of these passages are central in the debate between Roman Catholics, and the various streams of Protestantism (while there is broad agreement on justification by faith, there is no complete doctrinal uniformity on justification among all Protestant denominations), who can understand them in quite different ways. In Galatians, Paul emphatically rejects justification by works of the Law, a rejection sparked apparently by a controversy concerning the necessity of circumcision for salvation (Galatians 2:16Galatians 5:4; see also Romans 5:1–12 and Council of Jerusalem). He also adds that the only thing that counts is the "faith [which] works by love"(Galatians 5:6).

Other New Testament writers[edit]

The Epistle to the Hebrews also takes up the theme of justification, declaring that Jesus' death is superior to the Old Testament sacrifices in that it takes away sin once for all (Hebrews 10). In Hebrews, faith in Jesus' sacrifice includes steadfast perseverance (Hebrews 10:19–31Hebrews 12:1). James discusses justification briefly but significantly,[19] declaring that a faith that is without works,[20] a fruitless faith (cf. Matthew 7:17) cannot be a justifying faith, because faith is made perfect or completed by works (James 2, especially James 2:22; see also Romans 4:11). Indeed, works are required for justification because "man is justified by works, and not by faith alone" (James 2:24), though the sense of the word justified in this passage is disputed.[21] The writer of James emphasizes the Jewish belief that faith and deeds go together. However, in James, it is possible that justification is referring to how believers are to behave as believers, not how an unbeliever becomes a believer (i.e., salvation).[22] Faith without works is counterfeit. The faith must produce good fruit as a sign lest it become the occasion for self-justifi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