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4

埋葬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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埋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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埋葬(まいそう)とは死者の中に埋めることである。
墓地、埋葬等に関する法律においては「死体を土中に葬ること」として、いわゆる土葬を指す言葉として定義されているが、慣用的な用法としては火葬後の遺骨墓地納骨堂などに収納することを指す場合もある。

埋葬の歴史[編集]

原始人類の化石や遺跡は、時代が古くなるほど発見例が少なく、また破損や撹乱により原形を保っていない事も多く、彼らが埋葬行為を行なっていたかどうかの判定は困難であるが、わずかな証拠から、猿人・原人段階では埋葬は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北京原人ホモ=エレクトゥス)は食人を行なっていた可能性が指摘されているが、埋葬をした形跡は認められない。
埋葬という行為が成立するためには、死を理解する事。また死者のや来世を考えるといった抽象的な思考力の発達が不可欠で、アウストラロピテクスやホモ=エレクトゥス・ホモ=エルガステルの段階ではまだ知的能力がそこまで発達していなかったと考えられる。
最も古い埋葬の例はネアンデルタール人のものがよく知られており、埋葬の起源はおよそ10万年前にさかのぼる。発見されるネアンデルタール人類の化石は、事故や遭難のため埋葬される事なく遺棄されたと思われるものも少なくないが、洞窟内など特定の場所から何体もの骨格化石が副葬品と共に発見される場合も多く、彼らが死者を葬っていた証拠とされる。ただし、遺体を狙う食肉獣の接近を恐れて単に遺体を埋めて隠したに過ぎないとする反対意見もあり、彼らが本当に埋葬と呼べる行為を行なったかどうか、まだ意見の一致を見るに至っていない。
尚、ネアンデルタール人とほぼ同時期に既にアフリカや西アジアではホモ・サピエンスが出現しており、彼らも埋葬行為を行なっていた事は確かで、最古のネアンデルタール人に近い時代と考えられるジェベル=カフゼー人で埋葬が見られるが、これらのホモ=サピエンスは絶対年代がはっきりしないものや、石器などの文化遺物だけで人骨は発見されない場合も多く、確実な事はわかっていない。

日本の埋葬の歴史[編集]

日本では旧石器時代北海道美利河1遺跡湯の里遺跡の土抗など墓の可能性ある遺構が数例発見されている。
つづく縄文時代から埋葬行為が確認されている。集落内や貝塚などに墓域が設けられ、死者は土坑墓土器棺墓[1]石棺墓など土葬により埋葬されるのが一般的で、火葬や再葬が行われている例も確認されている。遺体の手足を折り曲げる屈葬と手足を伸ばした伸展葬の二形態があり、この時代では屈葬が主流であった。また、住居の内外に見られる深鉢形土器を埋納した特殊な施設である埋甕乳幼児の墓(または胞衣壺)である可能性も考えられている。縄文後期・晩期の東日本では、伸展葬や配石墓[2]、再葬[3]など多くの変化見られるようになる。また、環状列石などの配石遺構に造られた墓や周堤墓[4]などがある[5]
弥生時代に入ると、北九州を中心に甕棺と呼ばれる大きな甕に埋葬する例が確認できるほか、再葬墓と呼ばれる、いったん死者を地下に埋葬した後、白骨化した後に骨壺に収める例が確認されている。古墳時代にはいると、権力者は古墳と呼ばれる大型の墳墓に埋葬されるようになるが、庶民の埋葬については不明である。
奈良時代になると、仏教の影響から火葬墓が増えるが、庶民は絵巻物などの記述から、河原や道端に遺棄されたと見られる。
古代から中世にかけては、穢れの思想が強く、貴人の墓地管理も疎かであった。近世になると、庶民も墓を設け、先祖の供養をする。現在はほとんどの死者は火葬され、一族や家族の墓地に葬られる。一方で墓友という語や、都市部に於いてはロッカー式の墓地なども出現している。

西洋の埋葬の歴史[編集]

西洋諸国では現在も火葬より土葬が主である。死者はエンバーミングを施され、体を洗われて服を着せられ、棺に入れられる。その後参列者の前で墓地に掘られた穴に棺ごと埋められる。キリスト教の国々では棺は東西方向に埋められ、その際頭は西側に向けて埋められる。

埋葬する理由[編集]

  • 死者に敬意を表し、死後の世界で再生、往生、復活できるように願う。
  • それらを葬儀時のみならず継続的に行うならば、墓が残る埋葬は便利である。
  • 遺体が道端に転がっていると、見栄えが悪いので隠すという意味がある。
  • 遺体をそのまま放置しておくのは、衛生上もよくない。
  • 遺体の復活を恐れ、宗教的な措置をすると同時に物理的に脱出を困難にする。

埋葬する場所[編集]

  • 人里離れた場所に墓地が設けられ、埋葬されることが多い。
  • 日本では墓地埋葬法により、墓地以外の自宅の裏庭などに埋葬することはできない。違反すると死体遺棄罪として罰せられることもある。

埋葬後の遺骨[編集]

納骨堂に納める場合は半永久的に遺骨は残されるが、埋葬すると遺骨の殆どは風化し土に還ると言われている。土壌等によって左右されるが基本的に埋葬後30年経過後は遺骨は土に還される傾向にあり、何かの理由で埋葬地を掘り返したとしても遺骨が見つかる例は少なく、見つかったとしても埋葬時に比べ小さくなっている例が多い。一般的に墓地に遺骨を埋葬した場合においても、骨壺に入れた状態と墓の下の土壌部分に埋めるとでは遺骨の風化も大きな差が生まれ、骨壺に入れたままは骨の風化は殆ど起きない[6]が土壌部分に埋めると年数経過後には風化し遺骨とは判別できない例が多い[7]

関連項目[編集]

脚注[編集]

  1. ^ 小児用
  2. ^ 地上に石組みをもつ
  3. ^ 遺体を外の場所で骨にし、その後埋葬する。
  4. ^ 北海道に特有で、土手で墓域を囲んでおり、記念物的な性格を併せ持つ墓。例としてキウス周堤墓群
  5. ^ 中村大「埋葬」 小林達雄編『考古学ハンドブック』新書館 2007年1月 85-86ページ
  6. ^ 但し雨水が浸入し骨が水と反応し溶けて跡形も残らなくなる例はある
  7. ^ 酸性土壌ではそれが顕著ではある

参考文献[編集]

묘지 문화에 대하여

묘지 문화에 대하여



묘지 문화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엣날부터 지금까지 부모에 대하여는 효도를하고 부모 공경을 하는데는 세계에서 일등이다. 그러한 전통이 참 자랑스럽고 후세들에게 영구히 계승이 되길 바라고 있다.
효도하고 존경하는 그 부모는 또헌 반드시 죽어 주어야(Mortal) 되는 것이다.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죽은 부모를 땅에 묻고 그 죽음에 대하여 영역 표시를 하는것이 묘지인데 그 묘지도 사회직위와 빈부의 차이로 그 외관이 많이 다르고
돈많은 자식이 돈을 많이 처바르면 묘지가 좀 번드리리하고 돈없는 자식은 그저 화장으로 불살라 버리든지 초라하게 묘지를 맹그러 놓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사람이 되지고 나도 표시
가 난다.
경주에 함 가보면 신라시대의 왕이 죽어면 그 묘지를 큰 산등성이 모양으로 엄청나게 크게 지어저 있다. 그 부근에는 일반 서민들의 묘지를 보면 밥사발 하나를 엎어 놓은것 처름 초라하
고 애석하다. 용인자연 농원안에 이병철이 묘나 하남시의 정주영 묘도 보면 더럽게 호화판으로 돈자랑을 하고 있다. 땅 속에 되저 자빠저 있는 놈이 자기 배위에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
얼마나 돈을 처 발라 놓았는지 우째 알낀데..  저녘에 게속
큰 묘지나 작은 묘지앞에는 비석이 있는데 나같이 무식한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글인지를 쉬운 우리나라 말도 아니고 중국의 어려운 한자를 쓰 놓는다.
비석의 글은 남자의 묘에는 자기 아버지의 묘에는 한자는 어려워서 못쓰서지만 " 현고 학생 부군신위"  라고 또 자기 할배묘에는 "현 조고 학생부군신위"라고 쓰는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도 못배워서 죽어서라도 어려운 한자를 묘지비석에다 쓰 놓어면 못배운 한을 풀어보자는 것이겠지.
그르나 가끔 묘지의 비석에 " 아버님의 묘, 1909년, 2월 13 일에 돌아 가심. 아들 홍길동, 아들 홍말동,  딸 홍말순." 이라고 쓰여진것을 보았다.
부산 영락 공원에는 비석에 " 어머님, 그리운 어머님, 아들 만식이.큰딸 희선이, 작은딸 정선이" 라고 쓰여저 있는것을 보았다.
얼마나 좋은 글이냐, 이렇게 한글로 간결하고 함축성있게 적어 놓으면 땅속에 묻혀 있는 사람도 마음이 편할것이고  죽어 땅속에 묻혀 있는
시체나 살아 있는 자식들도 모두 모르는 어려운 한자를 비석에 쓰놓고  누가 일거 보라는 듯이 세워두면 어려운 한자를 알아야 읽고 해석을 하지.
무식한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여 죽어서 라도 어려운 한자를 묘지의 비석에 새겨두라고 했겠지..
현재 우리나라의 장사 지내는 것은 매장이 30 % 화장이 70 %로 선진국과 같이 이제는 화장으로 장례를 치루는 경향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자기 부모를 불에 구워 남은 재를 납골묘에
안치를 하든 물송장을 땅에 파묻든지 간에 100 % 매장에서 이제는 화장하는 경우가 70 % 까지 이르고 있다니 화장을 하여 빼가지를 납골당에 안치를 하는것이 좀 나은것도 같다.
화장한 뼈가루를 납골당에 보관을 한다는 것도 자식들에게 짐이되고 납골당이 무슨 뼈가루 전시장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양평군 용문면 이라는데 가보면 자연장이라는 것이 있는데 자연장 중에서 정원장이라는 것인데 수천평의 잔디밭에 아름다운 정원수 진달래, 백일홍. 할미꽃,소나무,빨간 작약등
수백 수십가지의 들꽃을 심어놓고 그 정원속으로 오솔길을 만들어 놓고 그 오솔길에서 1 미터 떨어진 곳에 그 잔디밭 땅 밑 약 20 센찌에다 뼈가루를 묻어 두더라.그리고 뼈를 묻고나서
그 자리에는 손바닥 만큼 크기의 번호가 적힌 동판에 " 아버님, 다음에 또 오겠음니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 자연 정원이 너무 아름답고 잘 관리를 하여 내가 죽어도 그곳에 묻혀서면 아무런 걱정도 안하겠더라.진짜로 편안한 지상 낙원이더라.
누구든지 장지 사업을 할려면 양평같은 자연 정원묘지를 만들어서 가로 세로 60 센치 를 분양하면 큰 돈을 벌수 있겠더라. 나는 물송장 매장을 하는것보다 화장을 하여 자연 정원장을 하
는것을 권하고 싶다. -- 아리랑 -- 

호주도 묘지부족 심각, 매장기간 강제 지정



호주도 묘지부족 심각, 매장기간 강제 지정




호주도 묘지부족 심각, 매장기간 강제 지정

김동원 기자 infois@naver.com
등록 2018.08.02 15:19:19

시드니를 주도로 하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가 사후 매장기간을 25년으로 제한하는 묘지이용법을 제정했다. 인구증가로 장차 매장장소가 없어질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기한이 만료되면 유해를 파내게 된다. 광대한 땅을 가진 호주에서 유해를 파낸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민도 많아 묘지난 해소효과를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 호주의 대표적묘지 '룩우드'모습뉴사우스웨일스주는 6월 말 기존 묘지·화장장법에 매장지를 영구이용할 수 있는 권리 외에 25년부터 99년까지 기간을 정해 한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조항을 추가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기간이 짧을수록 사용료를 싸게 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기한을 연장하지 않으면 무덤을 파헤쳐 다른 사람의 매장지로 사용한다. 파낸 유해는 처리 후 납골당 등으로 옮기게 된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최대 도시 시드니의 인구는 2011년 429만에서 2036년에는 642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주 당국은 인구증가 결과로 앞으로 사망자가 늘어 이대로 가면 2050년대에는 시내 매장장소가 소진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연간 5만명 정도가 사망하지만 화장은 66% 정도고 나머지 34%는 매장되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신자들은 화장이 일반적이지만 기독교도 중에는 화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매장 공간이 더 필요한 셈이다. 다만 기한부 매장이 널리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1867년 이래 300㏊의 부지에 약 100만명이 매장된 주내 최대인 시드니 서쪽 '룩크우드 묘지' 운영회사 최고경영자인 조지 심슨은 "희망하는 유족에게 기한부 매장권리를 제공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수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묘지난 대책으로 6층 짜리 '매장 빌딩' 건설도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연합뉴스]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다”…‘묘지 친구’ 찾는 일본인들 : 일본 : 국제 : 뉴스 : 한겨레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다”…‘묘지 친구’ 찾는 일본인들 : 일본 : 국제 : 뉴스 : 한겨레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다”…‘묘지 친구’ 찾는 일본인들

등록 :2019-04-26 18:17수정 :2019-04-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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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조기원의 100세 시대 일본

⑤ 변화하는 장례문화




도쿄 도심 LED조명 꾸민 납골당

“참배 와도 즐거운 기분 들도록”

자손 없어도 관리해주는 ‘영대공양’

이제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아

죽음 매개로 교류하는 ‘엔딩센터’

여성 전용 묘지도 인기 끌어

지난 18일 도쿄 도심인 신주쿠구에 있는 절 고코쿠지에 있는 납골당 ‘루리덴’에서 작은 불상들이 엘이디(LED) 조명을 내뿜으며 반짝이고 있다. 조기원 특파원

지난 18일 도쿄 도심인 신주쿠구에 있는 절 고코쿠지에 있는 납골당 ‘루리덴’에서 작은 불상들이 엘이디(LED) 조명을 내뿜으며 반짝이고 있다. 조기원 특파원

그곳은 마치 현대 미술 전시장 같았다. 지난 18일 일본 도쿄 도심인 신주쿠구에 있는 절 고코쿠지(幸國寺). 입구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니, 2046개의 작은 불상이 파란색과 노란색, 녹색, 분홍색 등의 엘이디(LED) 조명을 내뿜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루리덴’이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납골당이다. 유족이 입구에 있는 장치에서 망자 이름을 입력하면, 망자의 유골함 앞에 있는 불상에 하얀색 조명이 들어온다. 불상들 뒤에는 보통 납골당처럼 유골함들이 있다. 불상이 전면에 배치되어 있어서 유골함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고코쿠지 부주직(한국 절의 부주지에 해당)인 야지마 타이유는 “10년 전 일본의 사계절을 테마로 불상이 빛나는 방식으로 루리덴을 만들었다”며 “옛날 납골당과는 달리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게 했다. 참배를 와도 즐거운 곳을 만들자는 게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또 “스승인 주지가 처음 만들었는데 예전부터 불빛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빛은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한다. 조명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형태의 납골당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생전에 자신이 들어갈 납골당을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절반 정도”라며 “높이로 치면 가운데 불상 부분이 주요한 부분인데 그 부분은 거의 채워졌다”고 말했다.

생전 계약을 하러 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도쿄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다. 도쿄에 묻히고 싶지만 도쿄에 따로 개인 무덤을 만들기는 비용도 부담되고 이후 관리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루리덴에 유골을 모시는 비용은 보통 75만엔(약 750만원)이다. 생전에 본인이 계약할 경우 연간 9000엔의 연회비를 내야 하며, 사망한 시점부터는 받지 않는다. 유골 보관 기간은 33년이다. 보관한 지 33년이 지나면 루리덴 지하에 유골을 묻힌다.

대세가 된 ‘영대공양’

루리덴은 특이한 겉모습을 제외하면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납골당의 여러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우선, 도심지에 있어 접근이 편리하다. 지하철역과는 2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망자를 챙길 수 있는 자손이 없어도 절이 유골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이른바 ‘영대공양’(永代供養)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영대공양은 30여년 전부터 생겨나 유행한 말이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사망하면 화장한 뒤 절에 묘를 만들고, 대를 잇는 큰아들이 절에 묘 관리와 공양을 위한 비용을 내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불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매장보다는 화장이 주류였다.

일본의 전통적 장례문화 특징은 절과 ‘이에’(家) 제도였다. 일본에서는 사실상 절이 장례 관련 여러 의식을 독점하고 있다. 에도막부(1603~1867년)가 기독교 금지 정책의 하나로 모든 주민은 절에 등록해 기독교 신자가 아님을 증명하게 강제했기 때문이다. 또 남성 가부장이 호주로서 가족을 이끌고 대를 잇는 ‘이에’(家) 제도도 전통적 장례문화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더는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을 둔 장례문화는 존속하기 어렵게 됐다. 아들이 있다 하더라도 자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영대공양은 급속히 퍼졌다. 야지마 부주직은 “생전 계약자 중 절반 정도는 의외로 자손이 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니가타현에 있는 절, 묘코지(妙光寺)는 1989년 선구적으로 영대공양을 표방한 ‘안온묘’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절이다. 당시 독신자나 전통적 가족관계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90년부터는 해마다 여름에 생전 계약을 한 사람들이 묘지와 죽음을 주제로 축제도 열고 있다.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들이 묘지를 매개로 새로운 인연을 맺는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대공양을 내세운 납골당 광고는 이제 도쿄 지하철에서 흔하게 눈에 띌 정도로, 영대공양은 넓게 퍼졌다.

“가족 아닌 사람들 서로 의지”

22일 신주쿠에서 만난 이노우에 하루요(69) 도요대학 교수는 ‘묘지 친구’(墓友)를 만드는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노우에는 일종의 수목장 묘지인 ‘벚꽃장’의 기획과 회원 운영을 하는 비영리법인(NPO) ‘엔딩센터’ 이사장이다.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벚꽃장 묘지는 벚나무를 중심으로 만든 정원 형태 묘지다. 여러 사람의 유골이 함께 묻혀있는 공동묘지다. 자손이 따로 관리하지 않는 ‘비계승 묘지’를 표방한다. 생전에 교류해 친구가 된 이들이 같이 묻히는 것을 지향한다.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벚꽃장 묘지에서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에 하는 합동 제사의 모습. 엔딩센터 제공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벚꽃장 묘지에서 해마다 벚꽃이 피는 봄에 하는 합동 제사의 모습. 엔딩센터 제공

엔딩센터는 벚꽃장 묘지에 들어갈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아서 각종 강좌와 교류 행사를 한다. 대표적인 예는 마치다시 건물에 마련한 ‘또하나의 우리집’이라는 공간이다. ‘또하나의 우리집’은 회원들이 서로 모여 밥을 같이 해먹고 수다도 떠는 곳이다. 흔한 사랑방 같은 곳이지만 다른 점은 죽음과 묘지를 매개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교류한다는 점이다. 이노우에는 “회원들이 다른 곳에서는 하기 어려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엔딩센터 전체 회원은 약 3700명에 이른다. ‘또하나의 우리집’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은 60여명 정도다.

이노우에는 “일본 가족 중 가장 많은 형태가 ‘단독 세대’(1인 가구)다. 예전처럼 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서 절에 모시는 일련의 의식을 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돕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5년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 일반세대(시설 생활 세대 제외) 5333만여 세대 중 34.6%인 약 1841만 세대가 세대원이 1명뿐인 단독 세대였다.

사회학자인 이노우에가 묘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1981년 62살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우리 집은 딸만 둘이었고 모두 결혼을 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유골을 절에 일단 모실 수는 있지만, 딸은 대를 이을 수 없으니 절에 모신 유골도 언젠가는 유지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부장적 질서가 전제된 장례 문화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고, 1990년대에 ‘21세기의 결연과 장례를 생각하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결연’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장례를 매개로 인연을 맺는다는 의미에서 넣었다.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또하나의 우리집’에서 엔딩센터 회원들이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며 교류하는 모습. 엔딩센터 제공

도쿄도 마치다시에 있는 ‘또하나의 우리집’에서 엔딩센터 회원들이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며 교류하는 모습. 엔딩센터 제공

최근 일본에서는 여성 전용 묘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비영리법인 스노도롭이 2014년 사이타마현에 있는 절 안에 여성 전용 공동묘지 ‘나데시코’(패랭이꽃. 일본인들이 여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를 마련해 주목을 받았다. 유리에 패랭이꽃을 조각한 비석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주변엔 꽃을 심어 장식했다. 자손이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여성 전용 묘지의 인기는 남성 중심 질서에 대한 반발과 장례업 종사자의 새로운 수요 창출 목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난해 출간된 <요즘의 납골당>(이노우에 리쓰코 저)이라는 책에는 도쿄도 후추시에 있는 여성 전용 묘지인 ‘후추 후레아이파크’에 묻히기로 생전 계약을 한 62살 여성의 사례가 나온다. 프리랜서인 이 여성은 “나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독신’이지만 옛날식으로는 ‘시집 못 가고 나이 든 여성’이다. 지금까지 자유롭게 살았으니 무덤도 자유롭게 골라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책에 실려있다.

이노우에 엔딩센터 이사장은 한국은 일본 사례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 0.98명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한국이 일본보다 인구 고령 비율이 10% 포인트 이상 낮다. 그러나 저출산으로 시간이 지나면 고령 인구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결국 일본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 의지해서 무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한국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일본 특파원. 지난해 기준 일본은 총인구 1억2652만9천명 중 65살 이상이 28%(3547만1천명)인 초고령화사회입니다. 일본 사회를 취재하다보면 뉴스 대부분의 배경에 고령화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머지 않아 겪게 될 현실이기도 합니다. 초고령화사회 일본에서 보고 느낀 소소하지만 의미있는 삶의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garde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91697.html#csidx1efba235dbf3f0397da3c0132d1196c

종합뉴스 > 화장장 > 일본의 장례·묘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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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례·묘지 문화



글쓴이 : 한국장례신…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중에 하나는 '한국에는 왜 산이나 밭에 묘지가 많으냐'는 것이다. 반대로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주택가나 학교 앞 뒤에도 공동묘지가 있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두 나라 모두 유교 문화가 비교적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나라여서 서로 비슷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전혀 다르다.

먼저 장례문화를 보면 사람이 죽으면 한국처럼 빈소를 만든다. 조문객이 조문하러 온다. 일본에는 '오쯔야'라고 하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묵념하는 시간이 있다.

보통 그 시간은 1시간 정도다. 주로 스님이 주재한다. 남자는 검은 옷에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고 여성도 검은색 정장이다. 한국처럼 시간제한 없이 조문객이 오지 않는다. 부고장에 오쯔야 시간을 알려준다.

보통 오후 6~8시다. 음식 제공도 없다. 간단한 선물 정도다. 그 다음 날은 장례식이다.

장례식에서 우리와 다른 점은 시신을 공개하는 점이다. 참석한 조문객들이 모두 줄을 서서 차례로 죽은 이의 몸 위에 꽃을 바친다. 어떤 이는 얼굴을 만지면서 마지막 이별을 슬퍼한다.

장례식장은 동네마다 있다. 반면, 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다. 입원환자들의 감정을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고인의 생전 행적을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 분이 살아온 모습을 조문객들이 꼼꼼이 살펴보면서 유족과 조용히 담소하는 것도 볼 수 있다. 한국처럼 소리 내어 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화장장으로 향한다. 일본은 매장을 하지 않는다. 화장을 해서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공동묘지에 유골을 모신다. 일본은 동네마다 거의 공동묘지가 있다. 1인당 면적도 아주 좁다. 비석 하나와 작은 제단 하나 면적이다. 마치 이웃집에 가듯 묘지에 가서 꽃을 바치고 기도하는 모습이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의 산이나 밭에는 무덤이 없다. 있다면 옛날의 고분이다. 그래서 일본의 자연은 잘 보존되고, 생수가 깨끗하다는 말도 있다.

한국의 좁은 땅에 늘어나는 무덤을 보면서 일본의 묘지문화를 우리나라에서도 생각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에 녹색당 ‘큰 깃발’ 꽂다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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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매장이냐, 화장이냐” 장례 문화의 현주소

 蘇成玟 기자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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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장례 문화·묘자리 덕 보기 의식 여전…“나는 화장” 증가 추세

지난 9월 쌍용그룹 사보 〈쌍용〉은 그룹내 과장급 이하 30대 사원 1백50명을 대상으로 이색적인 설문 조사를 했다. SK그룹 최종현 전 회장의 시신 화장을 계기로 사내 직원들이 사망자의 시신 처리 방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려는 여론 조사였다.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매장(14%)보다 화장(78%)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그런데 부모의 시신 처리에 대한 응답에서는 화장(26%)보다 매장(66%)이 두드러져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 조사 결과는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는 한국 장례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나날이 잠식되어 가는 좁은 국토 때문에 언제까지 매장만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사랑하는 가족을 화장하자면 꺼려지는 현실. 응답자들은 한국인이 아니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이중적 의식 구조를 드러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응답자들이 자기 시신에 대한 처리 방식에서도 화장을 선호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응답자의 78%가 화장을 원한 것으로 공개되었지만, 질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화장하기로 결정했다’는 항목에 답한 경우는 27%에 그쳤다. 나머지 51%는 ‘화장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항목에 점을 찍었을 따름이다.

한국인들이 화장이라는 장례 방식에 거부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이유로는 우선 인체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하는 유교적 사고 방식을 들 수 있다. 어린이들의 수신서인 〈소학〉에 나오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몸을 함부로 다치게 하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이 오랜 세월 전해져 왔다.



그러나 화장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르다. 화장을 정식 장례법으로 택하고 있는 불교 교리에 따르면, 육신은 흙·물·불·바람 4대 원소로 구성되어 있어 영혼이 떠난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순리이다. 곧 불교에서 화장이란 육신을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행위일 따름이다. 불교의 근본 사상은 무아(無我), 즉 나라는 존재가 본시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신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이런 불교 가르침과 전통 때문에 화장은 특히 불교식 장례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중국에 처음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중국인들이 불교를 ‘부도(浮屠;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라고 불렀을 정도로, 화장은 시신을 매장하던 사람들의 눈에 특이한 장례법이었다.



인도는 석가모니가 출생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전통적으로 화장법을 택해 왔다. 무더운 지방이어서 시신이 쉽게 부패할 뿐만 아니라 매장할 경우 전염병이 생길 우려가 있어서 인도에서는 신분의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화장한다. 화장이라는 장례 방법은 이처럼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



현재 전국의 화장장 시설은 44곳. 한보광 교수(동국대 불교대학)는 지금처럼 유족이 보는 앞에서 시신을 시뻘건 화구에 밀어넣는 식의 ‘정나미 떨어지는’ 화장 시설로는 화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은 왜 오랜 불교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독 매장을 선호해 왔을까. 최 아무개씨(30·회사원)의 경험담을 들어 보면 매장 문화가 한국인의 삶에서 차지해 온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최씨의 고향은 경남 고성군 마암면이다. 4대를 모셔야 할 종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명절 때만 되면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마을 선산을 돌아다녔다. 보학(譜學)에 능통했던 조부인지라 직계 조상들의 이력쯤은 훤히 꿰고 있었다. 증조부와 고조부 무덤 옆에 서서 최씨는 선조들의 생애는 물론, 고향 선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4대조 이상 조상 이야기까지 조부로부터 전해 들었다.



최씨가 고교에 다닐 때 할아버지는 별세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 깊숙한 곳에는 이미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의식이 배어 있었다. 그에게 조상들의 묘소는 괴기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듯이 으스스한 기운이 감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길에도 할아버지 등처럼 기대어 쉬었다 갈 수 있는 포근한 안식처였다. 명절 때면 고향 선산에서 조상들의 산소에 절한 뒤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최씨는 자신의 눈길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겹치는 듯한,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힌 적도 많다.



장례 방식에 대해서는 최씨 역시 “묘지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나의 주검도 화장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를 화장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정서로는 부모가 스스로 화장해 달라고 유언하지 않는 한 자손이 먼저 부모에게 화장을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최씨가 성장하면서 겪은 체험은 이제 더 이상 보편적인 것이 못된다.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촌락과 선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친족간 유대와 조상 숭배 사상은 점점 엷어지고 있다. ‘매장’이라는 풍속만 남아 있을 뿐, ‘뿌리’라는 의식은 약해져 현실적인 괴리감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장현섭 교수(그리스도신학대학·사회복지학)는 그같은 현실적 괴리감이 극명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예로 95년 추석 연휴를 꼽는다. 당시 전국적으로 2천8백만명이 이동했는데, 이 가운데 연휴를 즐기려는 인파가 절반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었다. 90년대 들어서 임협이나 농협 등을 통해 묘지 관리를 대행하는 사업자들이 생긴 점도 조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드러낸다.



장교수는 〈죽음의 질 개선 방안〉이라는 소론에서 ‘현대 한국의 묘지는 전통 사회처럼 효 사상을 이어 주거나 가족 및 친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기능을 하기보다는 조상에게서 복을 구하려는 미신적 요소를 띠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 시대에 묘지 제도를 장려했던 근본 목적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장소를 통해 유교 이데올로기인 효 사상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풍수지리설(82쪽 상자 기사 참조)에 내포된 기복적 속성에서 이미 후세 장례 문화의 난맥상이 예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현대에 이르러 묘지 제도의 이데올로기는 약해지고 조상의 묘자리를 잘 써서 후손들의 안녕을 도모하려는 이기주의적 발상만 살아 남았다. 이는 전통적 매장 풍습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를 쉽게 개선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립 묘지, 대통령 80평·장병 1평 ‘차별’



하지만 묘지가 후손에게 주는 정서적 위안과 가족간 통합 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필도 책임연구원이 ‘한국형 가족묘’를 확대 보급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형 가족묘는 대개 납골함을 모아 한데 보관하는 방식이지만 ‘매장식 납골묘’를 이용하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줄이면서도 묘지가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매장식 납골묘는 석관 2개 위에 직사각형으로 봉분을 쌓고 그 옆에 납골함 16개를 나란히 설치할 수 있게 한 분묘 양식이다.



이씨는 화장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후손들의 삶의 질이 똑같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6·25 전쟁 후 폐허를 딛고 일어난 한국 민족의 저력에 조상 숭배 사상이 기여한 부분도 크다고 평가한다. 그는 “문제는 ‘체면과 과시’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다. 우리는 평소 그렇지 않다가도 혼례와 장례 같은 특정 행사 때에는 과용하는 풍습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은데도 매장만 고집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화장률은 전체 시신 처리의 20%). 일본·홍콩·네덜란드·영국 등은 화장을 주된 장례 방식으로 택한다(화장률 70∼98%). 대만·프랑스·미국 등 매장을 선호하는 나라도 있지만 한국과는 실정이 다르다. 일정 시한이 경과하면 납골하도록 하는 시한부 매장제를 의무화하고 있는 데다(미국 제외), 묘지 1기가 차지하는 면적이 2.5∼4㎡에 그쳐 법정 허용 기준조차 30∼80㎡에 달하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다.



적어도 무덤에 관한 한 그들에게 신분의 격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부산의 유엔 묘지에 안장된 외국인 전몰 장병의 묘소를 보면 장군과 사병이 똑같은 면적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천여 평짜리 묘지가 있을 정도로 불법 조성된 개인 호화 분묘들은 제쳐 놓더라도 국립 묘지 같은 국가적 기념 묘역에서부터 신분 차별을 당연시한다. 국립 묘지의 경우, 대통령의 묘자리는 80평, 장군은 8평인데 일반 장병은 1평이다.



기득권 세력부터 솔선하여 장례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지 못한다면 한국인들이 앓고 있는 이중적 의식 구조의 딜레마는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은 묘지천국, "장례문화 혁신 시급하다" - 데일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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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묘지천국, "장례문화 혁신 시급하다"

<김원섭 칼럼>  |  webmaster@dail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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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7  15: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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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섭 칼럼]올 추석에도 조상의 묘소를 찾아 절을 하고 묘를 살피는 성묘의 전통 풍속이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조상의 묘소를 중요하게 여겨 봄·가을에 묘를 손질하는 풍속이 전한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한식과 추석에는 가례에 의해 묘제를 지내고, 정초와 단오에는 간단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고 있다.



오늘날은 가족들이 한 곳에 함께 살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설과 추석 등의 명절이 아니면 전체가 모이기가 힘들다. 때문에 설과 추석에 자손들이 모여 조상에 대한 차례를 지내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조상을 모시는 지극정성으로 묘지문화가 발달하면서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기하급수식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 나라 전국토에서 묘지 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1%. 이는 주거 지역의 1/2배, 공업 지역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매년 약 9㎢(여의도 면적의 1.3배)씩 잠식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한반도는 ‘묘지 천국’이다. 



이미 ‘묘지 포화’ 상태다. 전국 산천 곳곳에 자리 잡은 분묘는 대략 1435만여 기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연고가 없는 ‘무연고 분묘’가 224만여 기(15.6%)다. 



이같은 묘지문화가 이어지는 것은 바로 조상을 잘 모시면 성공한다는 관례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대선후보, 재벌들은 법을 어겨가며 왕릉처럼 묘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묘소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도 자리가 좋은 편이다. 실제 ‘사거용인(死居龍仁ㆍ죽어서는 용인이 최고)’이라고 할 만큼 이 일대엔 명당이 많다. 정몽주ㆍ채제공 등 역사적 인물의 묘는 물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모도 용인에 안장돼 있다.



그러나 일부 지관들은 이병철 창업주의 묘 자리가 좋지 않아 (묘를 쓴 뒤) 20년 후 삼성의 몰락이 시작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삼성은 위기에 몰렸다.



“선친묘만 바꿔도 대통령 난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장을 한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문이 들리자 김종필 총재와 이회창 총재도 이장을 했다. 그러나 천하의 명당이라는 곳으로 이장을 한 후 모두 정계를 떠났다. 이는 地氣를 보지 않고 관산법으로 명당을 골랐기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한테 패한 이회창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덕을 본 선친묘 이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특히 조상숭배에 대한 잘못된 관습으로 국민간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분묘설치가 마치 조상에 대한 효의 실천으로 여기는 소수의 계층이 건전한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공간을 빼앗아 가고 있다.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훼손을 막기 위해서도 장묘문화의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됐다.



그러나 위정자들과 재벌들의 장례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그래서 서울 동작동에 자리잡은 국립현충원부터 헐고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알링턴국립묘지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포토맥 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 D. C.와 마주보고 있다. 알링턴은 1864년 육군 장관의 명령에 따라 군사묘지가 되었다. 1864년 남군 포로가 처음으로 이곳에 묻힌 이후 독립전쟁 때 죽은 몇몇 장교들을 비롯해,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존 J.퍼싱 장군, 리처드 E.버드 제독,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로버트 E.피어리, 조너선 웨인라이트 장군, 조지 C.마셜 장군, 로버트 토드 링컨, 피에르 샤를 랑팡 소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존 F.케네디, 로버트 F. 케네디 등이 이곳에 묻혀 있다. 현재 16만 3,000명 이상의 병사가 묻혀 있는 묘역에는 1872년부터 전국의 국립묘지에 사용되기 시작한 단순한 묘비들이 끝없이 줄지어져 있다.



그리고 알링턴 국립묘지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추모공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웃 중국도 위정자들의 획기적인 장례문화로 묘지의 면적을 줄이고 있다. 주은래(周恩來) 전 수상 역시 화장과 산골을 택했다. 1976년 죽기 전 주은래는 “유골을 조국의 산하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에 따라 그가 학생시절을 보낸 천진시(天津市)와 황하 유역 등 세 곳에 나누어 공중에서 유회를 뿌렸다. 16년 후에 사망한 그의 부인 역시 그 뒤를 따라 남편과 만났던 추억의 장소였던 천진시의 한 냇가에 유회를 뿌리게 했다.



1997년 사망한 20세기 마지막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등소평(鄧小平)의 유회가 북경에서 비행기에 실려 유족과 공산당 간부들의 손에 의해 바다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지금 중국이 자랑하는 1백% 가까운 화장률은 이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솔선수범에 의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우리나라보다 화장률과 납골묘, 납골당 이용률이 월등히 높다. 또 장묘관련시설이 생활공간과 가까워 관광명소로 홍보될 만큼 우리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재벌중 유일하게 화장을 택해 납골당을 지어 사회에 환원한 최종현 전 SK그룹회장의 장례문화의 영향탓인 전통적인 매장방식이 점점 사라지고 화장, 수목장의 다양한 장례문화가 도입되고 있다.



덩치가 커진 봉안시설 역시 묘지와 마찬가지로 자연 훼손과 함께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친환경적 장묘가 점차 주목받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친환경 장묘는 자연장이다. 현재 정부에서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 중인 자연장 방식은 △잔디형 자연장(잔디장) △화초형 자연장(화초장) △수목형 자연장(수목장) 등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잔디장은 화장한 유골의 골분(뼛가루)을 잔디 밑이나 주변에 묻는 것을 뜻하며 화초장은 골분을 화초 밑이나 주변에 묻는 방식이다. 수목장은 골분을 나무 밑이나 주변에 묻는 방식으로, 이러한 수목으로 이뤄진 산림을 수목장림이라고 한다.



골분을 묻는 방법은 세 개의 자연장 모두 동일하다. 지면으로부터 30cm 이상의 깊이에 화장 골분을 묻으면 된다. 용기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흙과 섞어 묻어야 한다. 용기에 담아 묻을 때는 사용하는 용기가 생화학적으로 분해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장은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묘지가 주던 혐오감을 전혀 주지 않는다. 또한 면적을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자연 장지가 공원 같은 편안한 느낌으로 조성됐다.



현재 전국의 자연 장지는 지난해 기준으로 2021곳이다. 공설 52곳, 사설(법인·종교단체) 54곳, 개인·가족 1025곳, 종중·문중 881곳이다. 



개인·가족, 종중·문중 자연 장지는 직계가족 또는 종중·문중 구성원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자연 장지다. 특히 개인·가족 자연 장지가 많은 것은 정부가 2013년부터 주거·상업·공업 지역에서 자연 장지 조성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앞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 아래 유골을 묻어 모실 수 있다.



2004년 9월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장례식이 경기도 양평의 고려대 연습림에서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을 계기로 사회적인 주목을 받았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산 김 교수는 그의 유언대로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지금 죽은 사람들을 묻는 ‘묘지’가 ‘공원’이라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납골당이나 납골묘가 있는 묘지는 실제 ‘공원화’가 이뤄지고 있다. 떠나는 이에게는 편안하고 영원한 안식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고인을 마음껏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며 인공 폭포와 분수대, 조각공원 등을 설치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다. 따라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화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봉분을 하지 않는 시한제 묘지, 지정된 곳에 산골하는 방법 등 현대적 장묘문화에 대한 국민모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았듯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삶의 공간을 위해서 묘지를 공원화해 돌아가신 조상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장례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위정자들의 묘부터 공원화로 만들어라!.<김원섭 언론인>



<프로필> <1960년6월13일 (만56세), 경기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데일리메일 편집인, 편집국장 / 대국엔터테인먼트 대표 / 고려대학교 교우회 이사 / 경력=1997~1999 미디어오늘 편집장 / 1989~1997 국제신문 차장 / 2006~2009 CNB뉴스 편집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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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의 묘지문화(墓地文化) : 네이버 블로그

서양에서의 묘지문화(墓地文化) : 네이버 블로그

素朴한 日常



이재욱

2013. 9. 8. 12:34

이웃추가 본

1 댓글 5

블로그 카 대한민국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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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의 묘지문화(墓地文化)





그 특징을 몇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마을단위나 도시단위의 공동묘지를 운영한다(과거에는 성당의 뒷뜰을 묘지로 함께 활용

하였다)

2.마을 앞 공동묘지나 도시공원묘역의 전체적인 면적은 더 늘어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

면서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3.죽은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반드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공동묘지에 안장하도록 법으로 강제되어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화장장례문화가 거의 70% 선에 이른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기본

적으로 화장장례문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묘지면적이 해마다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를 가

지고 있는데 어떻게 서양에서는 수백년이 흘러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 크기의 묘지터를 유지하며 운영할 수가 있는 것일까?

 

나는 2차례에 걸쳐 약 10년간 유럽국가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들의 삶 깊숙한 곳

까지 파고 들면서 우리 국가나 국민들이 그네들로 부터 한 수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을 얻어 오기 위해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제도나 교육제도 등도 죄다 마찬가지다.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을 EU국가나 사회처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안정되고 평화로

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길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반드시 갖추어야할 요건이기도 한

것이다.

 

흘러가는 세월에 역사발전을 맡겨둘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역사발전의 시간을 단축시키

기 위하여 개혁도 필요한 것이다.

비록 그 큰 뜻은 나 자신이 직접 이루지는 못했지만 지난 7년 가까이 산골에 묻혀 살면서

도 우리나라나 사회가 그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들을 찾아 해왔던 것이 사실인데 개인적으로는 천국에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지옥에 떨어져 엄청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람들조차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린 세상.

 

EU국가들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이 땅에서는 아무런 꺼리낌없이 자행되고 일

상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토종주자전거여행을 다녀왔던 것도 4대강 사업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현장목소

리를 직접 듣고 민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 1차 목적이었지 국토종주인증서나

메달을 받기 위하여 다녀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두물머리(양수리)에 인접한 지역으로 조선시대 때 영의정이나 정의

정을 지냈던 아홉 정승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 해서 옛날에는 "정승골"이라고 불리우던 곳

인데 인근에는 최진실이가 묻혀 있는 갑산공원과 함께 2개의 공원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을 오다니다 보면 지속적으로 묘지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제 고향에 벌초를 다녀오면서 해마다 늘어나는 묘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

록 유럽국가들의 사례를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요즘은 친지들도 한 자리에 모이기도 쉽지 않은 것인데 이 산 저 산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

의 묘를 찾아 벌초한다고 하루해를 다 보내다 보니 정작 얼굴을 맞대며 안부조차 물어

볼 여유도 갖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가 바쁜 것이다.

서양의 가족묘지구조를 들여다보면 직4각형의 이태리 대리석 봉분(일종의 묘지 뚜껑 역

할)을 가지고 있고 묘지 내부를 들여다 보면 지하에 몇 개의 층으로 되어 있는 석실을 만

들어 여러 세대 가족들이 함께 묻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석실내부의 층들은 완전하게 밀폐된 형식이 아니어서 여러 층을 눈으로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마을묘지에 조상대대로 부터 물려온 가족묘가 없는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그

때는 다른 장소에 가족묘가 새로 만들어 지게 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이미 육신이 부패

한 오래된 선조의 뼈를 수거하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화장터에서 뼈를 화

장한 다음  뼈가루는 공동묘지에 입석형태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의 납골당에 보관하는 형

식으로 가족묘지의 빈공간을 만들어 최근에 죽은 자를 가족묘에 안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수백년이 흘러도 마을어귀나 도시인근 공원묘지의 터를 일정하게 유지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묘지터는 세멘트 담벼락이나 울타리가 처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묘지는 매일같이 다니는 마을어귀에 위치하고 있으니 주말이면 소풍을 가듯

이 조상들이 묻혀 있는 가족묘를 찾게 되고 늘 촛불이나 꽃들이 놓여져 있어 아름다운 묘

지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는 달리 공동묘지에 대한 선입관이나 두려움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

다.

 

특히,우리나라의 최대명절 추석과 비슷한 시점에 "죽은 자의 날"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데 이는 죽은 조상들을 기리는 날이라 우리나라의 추석제사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 마

을묘지에 전체 주민들이 모여서 야외미사형태의 공동행사를 진행한다.

1년 중에서 가장 많은 가족친지들이 묘지를 찾아 촛불과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를 해서 공

동묘지가 하나의 볼거리 구경거리가 될 정도라 밤에 일부러 공동묘지에 구경을 하러 가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우리 집안에서는 조상들의 유골을 죄다 수습해 화장한 다음 자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

는 도로변의 밭에다가 집안묘지를 새로 조성해 유지관리하는 방안을 논의 中에 있다.

 

친인척들 모두가 동의해서 뜻은 모아져 있는 것인데 실행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