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4

希修 '내려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take personally 않는 '바삭함'이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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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놓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take personally 않는 '바삭함'이 중요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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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의 말에 내가 불쾌함을 느낄 때 어떤 외국인 친구가 "Don't let yourself feel down with that"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내가 미국에서 문화차이를 느꼈던 순간들 중의 하나로 선명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자기 감정에 책임지기'라는 개념 자체가 내겐 아예 없었던 것. 비슷한 표현으로 "Whoever has a problem has a problem"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들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방식으로 너는 행동해야 한다"고 타인에게 요구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뜻. (또 다른 어떤 외국인 친구가 어떤 남성과 연인 관계를 끝낸 후에도 잠정적으로 그 남성 집의 방 하나를 렌트하고 있었는데, 그 남성의 새 여친이 그 집에 드나드는 것에 대해 내 친구인 구 여친이 불평하자 그 남성이 한 얘기가 저거였다.) 심지어 불교도, 우리의 감각 (5감+의식)은 우리의 업 때문에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자극을 잠재의식 중에 적극적으로 찾아헤맨다고 말한다. 똑같은 경험을 10명이 하면 그 반응 (해석, 감정 등)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개인차는 각자가 스스로 공헌하는 부분, 그러므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상대방 비난도 자기 비난도 하지 말고 그저 상황 개선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이런 논리는 "내가 한 행동을 성추행으로 여겨 불쾌했다면 그건 너의 문제일 뿐"이라는 식의 피해자 비난으로 악용될 위험이 농후하기에 타인을 향해 해서는 안 되지만, 개인의 자기성찰용으로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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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내려놓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바삭하게 유지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서로 온갖 기대, 간섭, 비교를 많이 하고 매사를 take personally 하며 '끈끈함'을 '인격적 훌륭'으로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는데, 이런 문화 탓에 모두가 피곤하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내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고 믿는다면 나 역시 세상 사람 모두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 교류 중 뜻밖의 언행을 상대가 보여 나로서는 좀 놀라거나 민망할 경우 '아, 이 사람은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하고서 거리 조정을 하면 간단하련만, 그 사람의 장점을 내 자신에게 주입하면서 억지로 억지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 =내게 보이는 것보다 더 좋게 해석하려고) 무리를 한다. 몇 번 이러고 나서는 어느 순간 갑자기 혼자 울컥하기도 한다. 나로서는 '섭섭한 것도 참았다,' '나름 노력했다' 생각하기에 상대도 그만큼의 노력을 보일 의무가 있다고 토라진 아이의 심정이 되는데, 정작 상대의 언행은 내 기대에 못 미치니 이젠 갑자기 상대가 이기적이라는 둥 하면서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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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이게 정말 상대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아니면 서로가 많이 다를 뿐인 것인지,' '상대의 문제라면 나는 혹시 저렇게 행동할 때가 없는지,' '나는 앞으로 상대와 얼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낼 것인지' 정도만 생각하고 치우면 좋으련만, 마음이 좀더 바삭한 사람이라면 받지 않을 상처를 굳이 구구절절 서사를 만들어 가며 스스로 받아 놓고는 상대에 대한 원망을 마음 깊이 새긴다. 상대는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시그널을 상대방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나의 욕심 때문에 무시하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놓고는, 내 욕심이 실망으로 귀결되자 이젠 갑자기 그 사람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 실제보다 좋게도 나쁘게도 해석할 필요 없건만, 상대는 그냥 그 자신으로서 존재할 뿐이니 그저 '그렇구나' 하면 충분하건만, 나 혼자 내 정서적 필요와 욕망에 따라 그 사람을 실제 이상으로 미화했다가 실제 이하로 평가절하했다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탐진치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애초 내 마음이 너무 끈끈했기에 생기는 일이며, 부처님이 사랑/pema에 대해 부정적이셨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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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잠자리가 욕심나서 내 마음을 끈적하게 유지하면 파리가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이 와서 달라붙는다. 그러나 나비나 잠자리를 붙잡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면 내 마음엔 파리라는 실망이나 상처가 박제될 일도 없다. 내 마음을 바삭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나비든 파리든 와서 잠시 앉았다가 다시 날아갈 뿐. 그러나 내 마음 자체가 끈끈하면, 아무리 내려놓고 아무리 떼어내도 대상만 바꾸어 가면서 계속 집착하느라 내 마음은 온갖 불필요한 것들로 언제나 어지롭고 번잡할 수밖에 없는 것. 남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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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이런 저런 상처를 받고 어릴 때 한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기도 쉽다. 그럼에도 경험의 처리는 자신의 책임 (≠탓)이다. (사회적 구제가 필요한 일인 경우라 해도 그 주장/운동을 시작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세상에는 음주운전이나 사기 같은 범죄들이 엄연히 존재하니 살다 보면 억울한 피해를 입는 경우들도 생기지만, 내가 어떤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내가 필연적으로 피해의식을 정체성으로 삼아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실천은 말보다 훨씬 어렵다.) 분명한 건, 실제로 내가 남보다 많은 부당함을 겪었다 해도, 그걸 피해의식으로 발달시키면 결국은 내 정신과 나의 여생마저 망가지고 내 주위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괴롭히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피해의식이라는 것은,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나 자신의 주체성을 스스로 망각/무시하고서 내 삶이 마치 '남이 처리해 줘야 하는 망친 요리'라도 되는 듯 스스로 취급하는, 최악의 자기모욕인 것. 이승의 삶은 머리카락에 불붙은 것 같은 위급상황이라고 불교는 비유하는데, 내 자식의 업조차 내가 대신 어떻게 해 주지 못 하는 것이 삶의 조건임을 기억해야, 서로 간의 경계와 각자의 독립성을 최대로 존중해야, 배려를 당연시 않는 appreciate과 소비/착취 아닌 연대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또 어느 정도의 오해와 실망은 인간사에 불가피하며 내 감정에 대해 남이 함께 책임져 줄 수 없음 역시 현실로 받아들여야, 그래야 평화도 행복도 가능해진다. 내 스스로 평화/행복을 선택하지 않는데 80억 인구가 합심하여 내 마음을 평화롭게/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은 결코 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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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updated her status.

< I Start Living My 'Own' Life Only When I Fully 'Own' Responsibility for My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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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something undesirable and incomprehensible happens, we keep searching for ANY explanation, even an untestable one. Some examples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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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 must have done something bad in my previous life. - A mistaken deterministic view of karma.
(2) I must have chosen and voluntarily brought this karma to this life as a homework to do. - A Vedantic view.
(3) I must have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created this myself by being a vibrational match to it. - Law of attraction.
(4) This must be a part of God's bigger plan.
(5) No reason, no one's responsibility, purely accidental. I just had a bad luck, which means that our lives are meaningless and at the mercy of the whim of the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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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of the above may look comforting to a person 'A' while it sounds totally unacceptable, upsetting and insulting to another person 'B'. There is no way for us to know which of the above is 'right'. Maybe each of those five has a grain of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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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tter what, the only thing I believe is that I am 'the first' one (if not 'the only' one) who can be 'responsible' (≠ 'at fault') for my life in the sense that it's no one else's inherent duty but my own to start changing my life in the direction of my preference. When we have an undesirable experience, sometimes (not always) we ourselves have made some kind of contribution to it even if the experience is not at all our 'fault' or we did have a good intention (in our deceitful deluded narrow mind anyway). Until we realize and learn how we have facilitated the condition and how we can improve and refine the ways we think, talk and behave, the experience may repeat itself. (A positive/wishful thinking does not help here except only clouding our eyes with illusions or delusions.) When we see a pattern in our experiences, it is a sign that we should reflect on ourselves instead of complaining. Things that happen in my life are not always for my 'fault', and yet I am the only one who is 'responsible' for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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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f the change which needs to be made is societal, I should be the one who initiates it by finding people who see the cause. Even if (1) should be true, I don't believe it means that I have to stay helpless just being 'punished' by exploitation or abuse. Instead, in order to end the vicious cycle, sometimes I have to let myself flow into a different direction. (The Buddha also said that your past karmas and present choices keep interacting to form your present and future.) I may be a 'victim' in a sense, but wishing what did happen had not happened is a waste of time and energy. Also, if the victimhood dominates my identity or my mind, it will only aggravate the situation for others around me as well as for myself. Me living out of the victimhood is like me treating my life merely as a mistake/mess of someone else and just waiting for him/her to take care of the mistake/m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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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all inter-connected to one another. Still, the liver cannot do the job of the stomach no matter how much the liver 'loves' the stomach. Each and every one of us has brought a set of accumulated karmas to this birth, so there will be limit to how much we can 'help' each other. The fact is, ultimately, we can only help one another to help oneself. Viktor E. Frankl's words seem to me to be the epitome of 'humaneness'.
“Fundamentally, therefore, any man can, even under such circumstances, decide what shall become of him - mentally and spiritually. He may retain his human dignity even in a concentration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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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ibility -- Teal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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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Without Your Story?" -- Byron Katie, Soren Gordh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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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明淑, Sungsoo Hong and 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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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감정의 상태는 전적으로 저기책임이라는데 동감..미국의 쿨한 정서적 베이스가 자기 감정조절에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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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쵸. '끈끈한'을 '인격적으로 훌륭한'과 혼동하는 한국 문화에서 28년이나 살고 나니 이게 쉽게 바뀌지는 않지만, 생각이라도 이렇게 하면 서로 불필요한 기대로 서로 부담주는 일은 확실히 좀 줄어드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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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들이 흔히 "미국 사람들 순진/단순하다"고 말하는 것도, 저런 무언의 온갖 기대와 은근한 심리적 조종/압박 같은 걸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덜 하고 살아서 그런 듯 해요. 그런 단순함과 직설적인 특징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볼 땐 좀 무례하게 느껴지는 때도 없지는 않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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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希修
       묶이지 않으니 관계에서 자유롭겠죠. 부러운 편이에요. 자신에게도 알맞은 형태로 접목시키고 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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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내려 놓아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그리 생각했지만 고치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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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신우
       어느 사회/문화에서 나고 자라느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겠죠. 이걸 진작에 깨달았으면 인간관계로 인한 그 많은 에너지/시간의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ㅎㅎ. 그래도 뭐 이제라도 '뭣이 중헌디?'를 생각하며 살아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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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도 증명해준, 법성게가 말한 세상의 실상은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코로나도 증명해준, 법성게가 말한 세상의 실상은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코로나도 증명해준, 법성게가 말한 세상의 실상은

등록 :2020-12-23

[짬]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교수



치과의사에서 불교학자로 변신해 일가를 이룬 김성철 동국대 교수를 지난 18일 서울로7017 부근에서 인터뷰했다. 사진 조현 기자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 속에 하나 있네’, ‘한 점 크기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네’라는 <법성게>는 오랫동안 뜬구름 잡는 소리나 은유적 시구절 정도로만 여겨졌다. 코로나19라는 티끌보다 작은 바이러스가 이 세상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불경의 왕’이라는 60권본 화엄경을 의상대사가 7언30구·한자 210자로 요약한 <법성게>는 팔만사천경의 고갱이라고들 한다. 이를 해설한 <화엄경을 머금은 법성게의 보배구슬>(도서출판 오타쿠 펴냄)을 최근 낸 김성철(63)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불교학회 명예회장)를 18일 만났다.

‘한 점 티끌 속에 온 우주 담겨 있네’
뜬구름 잡는듯 은유적 시구 7언30구
의상대사 요약한 ‘법성게’ 해설서 내
“스마트폰이 전지전능 화엄시대 열어”



부친과 교유한 탄허 스님 모습 감명
치과의사 그만두고 불교학에 심취







“탄허 스님(1913~83)이 앞으로 초등학생도 화엄경을 공부하는 화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을 때 ‘설마 그럴 리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하나에 세상이 들어온다. 세계가 회통하고 있다. 화엄의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알려주기 이전에 정보통신혁명으로 ‘우주 법계가 나와 다르지 않은 화엄의 세계를 열었다’고 그는 말한다. ‘화엄’은 워낙 방대해 자칫 뜬구름 잡는 관념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그의 책은 수학과 과학까지 동원한 체계적 길라잡이다. 불교학자로서는 드문 이과 출신답다.

김 교수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서울대 치대를 나와 치과의사를 하다가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불교를 전공했다. 같은 치과의사인 부인에게 “2년만 불교책을 원 없이 보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떠난 길이 본업이 돼 이제 정년을 2년 앞두고 있다. 그는 불교 공부를 하게 된 공을 부인에게 돌렸다.

‘불교학’은 그에게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서울대 사대 학장과 서울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지낸 선친 김종서 교수가 가끔 모시고 온 탄허 스님을 어린 시절 집에서 만나곤 했다. 성인의 풍모지만 겸손하기 그지없이 ‘하심’(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일관했던 탄허 스님의 모습은 어린 그에게 깊게 각인됐다.

그는 고교 2학년 때까지 그림에 심취해 미술반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는 밥 먹고 살기 어렵다. 치과의사는 몇 시간만 일하면 나머지는 원하는 불교책도 원 없이 읽고, 참선도 할 수 있다”는 어른들 말에 치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래서 치대를 다닐 때도, 치과의사로 일 할 때도 틈만 나면 불교책을 보고 참선을 했다. 그렇게 열망했던 공부이기에 그는 삶을 위한 ‘불교학’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제2의 붓다’로 불리는 용수의 중관학으로 석·박사를 했다. 용수는 그에게 직업인으로서 불교학자가 되기에 앞서 삶의 길을 제시해줬다.

“처음엔 나도 불교 공부를 하면 일부 선승처럼 막행막식을 해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런데 용수의 ‘대지도론’을 6개월간 필기를 해가며 읽다 보니, 불법엔 진제만이 아니라 속제, 즉 절대불변의 진리인 진제와 세속적 진리인 속제 둘 다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을 알았다. 진제만 추구하면 사견에 빠져 가치판단을 상실하기 쉽고, 속제만 추구해 계만 지키고 착한 일에만 집착하면 성불할 수 없다. 육바라밀 수행을 통해 둘 다 챙겨 이웃도 내 자식을 보살피 듯 보듬고, 공(空)에 대해서도 자각해야 한다는 게 용수 보살의 안내였다.”

그는 한 때 ‘뇌 과학’에 심취한 적도 있었다. 뇌 과학은 불교적 깨달음이나 임사 체험조차 뇌가 일으키는 반응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전에는 모든 것을 아는 마음이 뇌에서 작동한다고 여겨 뇌가 삶의 구심점인 줄 알았는데, 뇌 역시 모든 현상을 만드는 다양한 조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불교학 연구 열정을 불태워 가산학술상, 불이상, 청송학술상, 반야학술상 등을 휩쓸었다. 또 원효보다 150년이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상가로 꼽히는 고구려 승랑 스님에 대한 연구로 ‘한국연구재단 10년 대표연구성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2000년부터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불교문화대학장, 불교사회문화연구원장, 티벳장경연구소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지냈다.

이번 ‘법성게 해설서’는 그의 연구와 활동의 결집체라 할 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 문명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의 고통을 살피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실현이다. 숨어서 성폭력을 행사하거나 동물을 학대해도 다 드러나는 시대다. 전지와 전능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화엄장 세계의 비밀인 법성게는 어느 곳에 있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도록 깨닫게 하는 길잡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people/975666.html?fbclid=IwAR12AhWiIuQbAG2aPUklOwvuoAtegLQ0L95N3cJkrbUEsiO3W_kc-ocnVaQ#csidx3e0ee03612eced88599987da8f24595


[eBook] 화엄경을 머금은 법성게의 보배구슬 - 한 톨 먼지 속에 온 우주가, 한 찰나 생각 속에 억겁의 세월이  pdf 
김성철 (지은이)도서출판 오타쿠2020-11-10



화엄경을 머금은 법성게의 보배구슬


전자책정가
15,000원

책소개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김성철 교수의 법성게 해설서. 법성게는 화엄경의 핵심을 7언 30구 총 210자로 요약한 화엄일승법계도의 게송으로 의상스님의 저술이다. 저자는 각 문구의 전거를 화엄경에서 일일이 찾아 제시하였고,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포함하여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국내에서 이루어진 법성게 주석서 및 두순, 지엄, 법장, 징관, 이통현 등 화엄가들의 저술 들을 참조, 인용하면서 해설하였다. 아울러 이들 주석서에 실린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아비달마교학이나 중관학과 같은 다른 분야의 불교사상은 물론이고 현대과학이나 서양철학, 미술이론, 정책론, 정신분석학, 뇌과학, 진화생물학 등 인접학문의 다양한 이론들과 연관시켜서 법성게의 각 문구를 해석함으로써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였다.


목차

책머리에 3
차 례 9
일러두기 16
화엄일승법계도(법계도인) 17
법성게 法性偈 19

Ⅰ. 법성게 이해를 위한 기초지식 21
1. 법계도인(法界圖印)의 탄생 21
2. 법계도인 기하학의 상징적 의미 25
법계도인의 전체적인 모양에 대한 문답 26
법계도인에 적힌 낱글자에 대한 문답 28
3. 법성게의 과문 28

Ⅱ. 교학과 논리, 과학과 예시로 푸는 법성게 33
1. 자신을 이롭게 하는 수행 33
A. 깨달음 그 자체를 나타내 보임 33
①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33
①-1. 법성 - 법의 본성 33
법이란? 33
십이처의 법들 34
십팔계의 법들 36
오온의 법들 38
오온, 십이처, 십팔계설의 주관적 시점 39
오온이 난해한 이유 43
≪구사론≫의 5위75법 44
법과 법계 47
법성이란? 49
‘눈’이라는 법의 본질 - 눈이 없다. 52
①-2. 원융(圓融) - 원융하여 56
①-3. 무이상(無二相) - 분별함을 용납 않고 57
큰방과 작은방의 예로 분석한 ‘무이상(無二相)’의 의미 58
②제법부동본래적 諸法不動本來寂 61
②-1. 제법(諸法) - 모든 법은 61
②-2. 부동(不動) - 부동하여 61
혜능 스님의 부동 64
≪중론(中論)≫ 제2장 관거래품(觀去來品)의 부동 65
우리 인식의 미분(微分)기능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68
승조의 <물불천론>에서 말하는 부동(不動) 71
②-3. 본래적(本來寂) - 본래부터 고요해서 75
③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80
③-1. 무명(無名) - 이름 없고 80
오온 각각은 정체불명이다. 81
십이처와 십팔계 낱낱은 정체불명이다. 82
세상만사는 정체불명이다. 86
③-2. 무상(無相) - 모습 없어 89
화엄학의 무상 91
시점에 따른 모습의 변화 - 무상 94
운동의 상대성과 무상 95
화가에게 보인 무상(無相)의 편린 96
③-3. 절일체(絶一切) - 모든 것이 끊겼으니 99
≪반야심경≫의 절일체 - 색즉시공 공즉시색 100
≪중론≫의 절일체 - 세간은 열반과 다르지 않다. 101
선(禪)의 절일체 - 육조혜능의 본래무일물 102
④증지소지비여경 證智所知非餘境 104
B. 연기의 원리를 드러냄 107
⑴ 연기의 본질을 가리킴 107
⑤진성심심극미묘 眞性甚深極微妙 107
⑤-1. 진성 - 참된 본성 107
⑤-2. 심심극미묘 - 아주 깊고 지극하게 미묘하여 109
⑥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110
⑵ 다라니의 원리와 작용에 의해 그런 법의 종류별 내용을 설명함 116
⑦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116
⑧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116
‘일체’를 노래하는 ≪화엄경≫ 116
‘하나’와 ‘일체’의 상즉, 상입을 노래하는 ≪화엄경≫ 118
‘열 개의 동전 세기’로 설명하는 상즉과 상입 123
수십전법의 향상과 향하, 래와 거 127
일중일체, 일즉일체의 구체적인 예시 131
의상이 예로 드는 일중일체, 일즉일체 134
사사무애의 법계연기와 언어도단의 선(禪) 137
모든 개념엔 테두리가 없다. 142
a. 우주 143
b. 시계 144
c. 욕심과 이드(id) 145
d. 시작과 끝 147
e. 살, 신경, 뇌 149
f. ‘뇌’는 모든 현상을 있게 하는 조건들 가운데 하나 151
g. 안과 바깥 153
h. 과거, 미래, 현재 154
i. 웃음과 울음과 홍조 155
j. 부처 156
k. 밥 156
l. 똥 157
모든 개념의 ‘보법적(普法的) 속성’ 157
모든 개념의 테두리가 무한히 열리는 이유 159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 162
보법의 실천적 응용 164
a. 영화배우와 탤런트의 명품연기 164
b.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발우공양 164
c.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이벤트와 다면적 정책론 165
⑶ 구체적 현상을 소재로 삼아서 법의 종류별 내용을 밝힘 170
⑨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170
⑩일체진중역여시 一切塵中亦如是 170
일미진중함시방의 실례 174
보장엄동자(대위광태자)의 보살행으로 이룩한 화장장엄세계 176
실재의 최소 단위, 자상(自相)과 ‘점-찰나’ 182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화엄의 일미진 187
견도(見道) - ‘점-찰나’에 대한 직관 193
견도 이상의 성자에게 보이는 세상 198
≪화엄경≫의 저자는 견도 이상의 성자 201
사물을 보는 두 관점 - 국소성(局所性)과 편재성(偏在性) 203
사물의 편재성과 일미진(一微塵)의 함용성(含容性) 207
정보통신문명의 발달로 인해 드러나는 화장장엄세계 210
한국의 신종교에서 희구하던 정신문명 시대의 도래 213
마음의 정체를 푸는 열쇠 - 일미진중함시방 217
a. 마음의 기원에 대한 뇌과학 이론의 문제점 217
b. 일미진중함시방으로 푸는 마음의 정체 220
⑷ 세속의 시간에 적용하여 법의 종류별 내용을 보여줌 225
⑪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劫卽一念 225
⑫일념즉시무량겁 一念卽是無量劫 225
⑬구세십세호상즉 九世十世互相卽 233
찰나설의 논리적 문제와 방편적 효용 236
미진설의 논리적 문제와 방편적 효용 239
십세의 일념과 일미진의 방편성 240
⑭잉불잡란격별성 仍不雜亂隔別成 241
⑸ 수행 단계를 예로 들어서 법의 종류별 내용을 드러냄 252
⑮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252
부처와 천신과 아라한의 차이 252
부처님의 32상을 나타내는 상호업 254
≪화엄경≫ <범행품>의 초발심시변성정각 258
‘초발심시변성정각’에 대한 의상의 해석 261
육상의 의미와 초발심시변정각 265
깨달음 전과 후가 다르지 않은 수행자의 삶 269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272
?생사열반상공화 生死涅槃常共和 272
⑹ 이상의 내용에 대한 총론 281
?이사명연무분별 理事冥然無分別 281
색즉시공과 이사명연무분별 281
≪화엄오교지관≫의 사리원융문(事理圓融門) 282
≪화엄경문답≫의 이사명연무분별 285
?시불보현대인경 十佛普賢大人境 287
시불(十佛), 즉 시방불(十方佛)이란? 289
보현보살은 어떤 분이신가? 292
2.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수행 300
?능입해인삼매중 能入海印三昧中 300
?번출여의부사의 繁出如意不思議 305
우보익생만허공 雨寶益生滿虛空 306
중관논리로 분석한 비로자나 부처님의 중도법문 309
중생수기득이익 衆生隨器得利益 313
3.수행자의 방편과 얻게 되는 이익을 설명함 317
A. 수행의 방편을 밝힘 317
시고행자환본제 是故行者還本際 317
화엄경과 법성게의 본제 개념은 다르다 317
법성게 본제 개념의 전거 319
불교는 해체법이다. 321
파식망상필부득 ?息妄想必不得 324
무연선교착여의 無緣善巧捉如意 328
귀가수분득자량 歸家隨分得資糧 331
B. 얻게 되는 이익을 설명함 335
이다라니무진보 以陀羅尼無盡寶 335
장엄법계실보전 莊嚴法界實寶殿 335
궁좌실제중도상 窮坐實際中道床 335
구래부동명위불 舊來不動名爲佛 335
“내가 곧 부처다.” 341

부록 - 탄허스님의 예언과 정보통신 문화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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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성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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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저자는 법성게의 가르침이 4차산업혁명과 공명할 때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보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책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4차산업혁명과 함께 화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감각신경→ 중추신경 → 운동신경’의 3원 구조로 이루어진 인간의 신경망을 모사하여 ‘입력장치→ 중앙처리장치→ 출력장치’의 3원 구조를 갖는 컴퓨터가 탄생하였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과 같이 연결되면서 ‘무한입력→ 무한처리→ 무한출력’을 특징으로 하는 4차산업문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컴퓨터의 경우 키보드와 마우스 정도가 정보 입력장치의 전부였는데, 지금의 이 시대에는 이와 아울러 바코드, QR코드, CCTV, 마이크로칩, 음성인식장치, 얼굴인식 … 등 정보를 입력하는 장치와 방식이 극도로 다양해지고 있다. 즉 4차산업문명은 정보의 무한입력을 지향한다. 또 과거에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는, 인간이 미리 제작하여 설치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연역적 방식으로 작동할 뿐이었는데, 지금 이 시대의 인공지능은 Machine Learning 또는 Deep Learning 방식을 통해 귀납적 방식으로 데이터를 처리하여 프로그램 모델을 만들어내기에, 경험적 지식에서도 인간의 능력을 능가한다. 그야말로 정보의 무한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또 3D프린터, 드론, 로봇수술, 자율주행자동차 … 등 정보를 출력하는 방식 역시 한없이 다양해지고 있다. 정보의 무한출력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한입력, 무한처리, 무한출력을 특징으로 하는 4차산업문명의 시대는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을 닮아있다. 천개의 눈으로 고통 받는 중생을 찾아 살피시고, 천개의 손을 통해 갖가지 방식으로 그들의 고통을 보듬으시는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의 천안은 무한입력, 천수는 무한출력과 대비된다. 다른 용어로 표현하면 천안은 전지(全知, Omniscient), 천수는 전능(全能, Omnipotent)에 해당할 것이다. 4차산업문명은 전지전능을 지향한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누구나 부처님이고, 어느 곳이든지 불국정토로 변하고 있다. 외견상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가 아닐 수 없다. ≪화엄경≫의 가르침을 210자로 농축한 법성게의 비밀이, 본서를 통해 우리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4차산업문명과 공명(共鳴)함으로써,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어디든 세상의 중심이 되는 차방정토(此方淨土)가 이 땅에 실현되는 그날이 보다 앞당겨지기 바란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