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2

김은호의 황색 그리스도Yellow Christ 혹은 붓다 그리스도Buddha Christ

김은호의 "부활 후"

김은호의 부활 후

lutheroak 2020 4 14 0437

부활하신 그리스도 1962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작 
1962년 비단에 채색 79×52㎝
서울 YMCA 소장

1938년 작품이 소실되자 1962년에 재 제작.

이덕주 교수 설명

이당이 붙인 그림 제목은 부활후復活後이지만 나는 이 그림을 
황색 그리스도Yellow Christ 혹은 붓다 그리스도Buddha Christ
라고 부른다 

이유는 전체적으로 그림 색깔이
아시아 색깔인 황토색혹은 금색으로 이루어졌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전통 불상佛像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당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 이당은 세필화의 대가로서 순종 황제의 어전을 그렸던 궁중 화가였다 어려서부터 서울 안국동 교회에 출석하였고 서화 미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삼일운동 때 독립신문을 돌리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출옥한지 얼마 안 된 1924년 총독부에서 주최한 조선미술박람회에 부활후라는 작품을 출품
하여 3등을 받았는데 그 때 그린 그림은 부활 직후 그리스도와 함께 좌우에 베드로와 야고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그린 3폭 병풍 형태였다 삼일운동 직후 우리민족의
부활소망을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그림은 1938년 미국 플레밍출판사에서 출판한
「Each with His Own Brush」라는 제 3세계 미술 작품집에 수록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토착성화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당은 이 그림을 기독교청년회에 기증하여 현관에 걸려 있었는
데 1950년 한국전쟁 때 건물과 함께 소실되었다

1960년 들어서 기독교청년회관을 다시 세우려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그 실무를 맡아 보았던
전택부全澤鳧 총무는 건축 기금 모금운동의 방편으로 유명 화가들을 찾아가 그림을 부탁하
였는데 이 때 이당에게도 그림을 부탁했다 이당은「Each with His Own Brush」에 실린
그림 사진을 바탕으로 30년 전에 그렸던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러나 이번엔 양쪽의 제자들은
빼고 그리스도만 그렸다 결국 삼일운동 직후 민족의 독립을 그리며 그린 그림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민족 상황에서 재건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족의 의지를 나타낸 그림으로 부활되었다



그림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당 특유의 세필細筆로 묘사 된 머리칼과 수
염 그리고 세마포 주름 등에서 중국 북화北畵 전통에 충실한 인물화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염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의 얼굴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하기 어렵
고 시선을 어느 한 곳에 고정하지 않도록 처리한 것에서 종교화의 신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뜯어보면 그리스도의 표정이나 자세에서 불교의 아미타불阿彌陀佛 입상
立像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머리 뒤의 배광背光과 왼쪽 어깨를 드러낸 견의肩衣 자연
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과 맨발 등이 그렇다 백제 미소의 압권이라는 서산 마애석불磨崖石
佛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그리스도의 손 모습이 불상 이미지다 불상에서는 손의 모양手
印에 따라 그 선포하는 메시지가 다른데 펴서 올린 오른손은 시무외인是無畏印이라 하
여 중생들아 두려워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역시 펴서 아래로 내린 왼손은 여원인
如願印이라 하여 네 소원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중에 시무외인은 그리
스도께서 부활 후 여인들에게 나타나 내니 두려워 말라마2810 하신 말씀 여원인은 제
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요157고 하신 말
씀을 연상케 한다 다만 불상에서는 오른손 손끝이 어깨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에 반해 이당
은 어깨위로 올렸으며 왼손 역시 불상에서는 손끝이 아래를 향하나 이당은 위를 향하게 하였
다 그리고 손바닥의 못 자국으로 부활 후의 그리스도를 묘사하면서 맨 발을 통해 그의 선
자리가 거룩한 곳출35임을 암시하였다

[이당이 의도적으로 불상을 원용해 그리스도상을 그린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전통불화의 필법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 그리스도를 그릴 때 몸에 익숙한 방식으로 그리다 보니 불상 흔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며 불상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기 보다는 그것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함으로 변화된 양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그림을 한국 기독교 토착 성화의 걸작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우리 문화와 전통에 익숙한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 나의 교정
영어 책은 플레밍 출판사가 아닌 플레밍Daniel J Fleming이 편찬 Friendship Press 출
판이다
httpsarchiveorgstreameachwith00flem#pagen5mode2up
Each with his own brush contemporary Christian art in Asia and Africa
archiveorg





[천지성공 강독] 1장 천지성공이란 무엇이며 지금은 어느때인가 - 증산도(Jeung San Do) 공식 홈페이지

[천지성공 강독] 1장 천지성공이란 무엇이며 지금은 어느때인가
 - 증산도(Jeung San Do) 공식 홈페이지



성공하는 인생을 위하여
우리는 어느 때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인류 통일문화의 대경전, 도전道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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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성공 가이드북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천지성공 가이드북



천지성공 가이드북


제1장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천지성공 - 하늘땅과 함께하는 성공, 한민족의 문화원전 '도전' 강독시리즈 1 
안경전 (지은이)대원출판사2011-02-19



정가
11,000원

Sales Point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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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17-08-02

329쪽
목차


제1장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성공하는 인생을 위하여
2. 우리는 어느 때에 살고 있는가
3. 상생의 도로써 밝아오는 인류의 미래
4. '인류의 새 문화 이야기' 원전, [도전道典]

제2장 우주의 가을이 오고 있다
1. 우주의 사계절과 인간농사
2. 선천과 후천: 상극에서 상생으로
3. 가을개벽으로 열리는 새 세상

제3장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증산 상제님
1. 온 인류가 받들어온 상제님
2. 상제님은 누구신가
3. 인간으로 오신 상제님

제4장 인간과 신명 세계
1.인간의 참모습과 죽음 이후의 삶
2. 상제님이 밝혀주신 신명 세계
3. 왜 조상신을 섬겨야 하는가
4. 지금은 인간과 신명이 해원하는 때

제5장 내가 이제 하늘도 땅도 뜯어고쳐
1. 천지공사란 무엇인가?
2. 상제님이 짜신 새 역사의 판도
3. 상제님의 종통 전수: 도운 공사

제6장 가을개벽을 넘어 구원의 길로
1. 가을 대개벽의 실제상황
2. 세계는 이렇게 구원된다.

제7장 후천 조화선경과 참된 성공의 길
1. 신천지 조화 선경
2. 하늘땅과 인간이 함께 이루는 천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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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안경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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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큰 희망인 개벽문화를 선도하고 상생의 새 세계를 열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역주자는, 21세기의 중심 화두를 개벽과 상생에 두고 앞으로 열리는 가을철 후천 영성문화의 참모습을 전하는 저술과 강연활동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참된 성공과 행복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특히 역주자는 지난 30여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인류 시원문명의 원전이자 한민족 신교문화의 경전인 『환단고기』 역주본을 출간하고, 전국 대도시와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우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환단고기』 북 콘서트>를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있다.
환국, 배달, 조선 이래 민족의 모태종교인 신교神敎의 맥을 이은 증산도 진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1998년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를 개설하였고, 2007년 한韓문화 중심채널인 STB상생방송을 개국하여 민족문화 창달에 힘쓰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인류 창세 역사와 시원문화를 밝히다>,<한민족 창세역사의 성지, 강화도를 가다 The History of JOSEON, the Dangun’s Nation (영한본)>,<한민족 창세역사의 성지, 강화도를 가다> … 총 56종 (모두보기)


마이리뷰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공



천지성공, 세상에 성공이란 말이 많은데 천지성공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신 분이 많을 겁니다. ‘권력은 유한해도 돈은 무한하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만큼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이 최고의 권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도 예전 같지 못합니다.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던 재력의 권위가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시위가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돈에 대한 인류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금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력도, 돈도 한계가 있다면 이 세상에 진정한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무너지지 않는 성공이란 없을까요? 그 해답이 천지성공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인간과 만물을 낳아 기르는 천지는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뭇 생명과 함께 할 영원한 생명의 부모입니다. 천지성공이란 ‘천지와 함께 성공한다. 천지와 함께 영원히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지금부터 결코 무너지지 않는 성공, 인생에서 진정으로 성공하는 방법, 천지성공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서점에 가면 성공학 책으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 책들에는 대자연의 변혁 문제에 대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에 과거 30년, 40년 전에도 100대 기업인 경우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도태된 기업들은 하나같이 시대의 흐름, 트렌드 때를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변하는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이 변화의 가장 큰 요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역사는 인간만이 만들어 간다는 착각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동양에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를 뒤바꾼 큰 사건이나 큰 흐름에는 자연의 변화라는 손길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가 다른 것도 동서양의 자연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른 생활 방식의 차이 때문입니다. 동양의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환경은 순환론적인 사고를 낳았고, 중동의 유목문화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낳았습니다. 중세의 혹독한 추위로 인해 페스트가 극성을 부려 중세가 끝나고 근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삼림자원의 부족을 대체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만든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동서양의 힘의 우위와 제국주의 흐름을 만들며 세계사를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온난화, 자원고갈, 물부족 등 인류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모른다면 진정한 성공을 할 수 없겠죠. 천지성공이란 바로 우리가 어느 때에 살고 있느냐, 천지가 어떤 변화를 하는 시점에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어느 때에 살고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전에 한 가지 전제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것에는 하나의 공통된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에 보면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 있습니다. 얼핏 다르게 보이는 두 학문을 연구하는 이유는 미시 세계와 거대 세계를 구성하고 지배하는 공통된 원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곧, 미시세계를 연구하면 거시세계의 속성도 알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생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그마한 정자와 난자에는 한 인간이 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소인간인 셈이죠. 유전공학 발전으로 체세포를 떼서 동물복제도 합니다. 작은 세포에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프랙탈이라는 도형을 아실 겁니다. 거대 세계와 미시 세계가 꼭 같은 모습으로 생긴 도형들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간이란 것도 미시 시간이든, 거대한 시간이든 공통된 속성이 있습니다. 순환한다는 것과 층을 이룬다는 겁니다.


시간의 속성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단위가 하루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 낮에 높이 떴다가 저녁이 되면 어두워졌다가 다시 다음날 해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하루 시간이 돌아가서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12번 모이면 1년이 됩니다. 1년은 다시 계속 되풀이 됩니다. 그러면 1년이 끝일까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은 분은 여기서 바로 답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1년이 모여서 이루는 더 큰 단위가 있습니다. 바로 우주 1년입니다.













지구가 하루에 360도 자전하면서 태양을 한 바퀴 돌아 360도 공전하면 129,600도 1주기를 완성하고 이것이 1년이 됩니다. 이 1년이 다시 129,600년을 반복하면 이것이 바로 우주 1년이 됩니다. 지구 1년보다 더 큰 주기에 대한 문화는 동서양 각 문화권에 다 있습니다. 인도에도 있고 서양에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직선적인 시간관에 사로잡혀 잊고 있었고 믿지 않았을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하루가 순환하면서 시간이 이루어진다면 더 큰 시간도 순환하는 게 맞습니다. 역으로, 본래 시간의 큰 단위가 순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을 규정하는 하루라는 시간 단위도 순환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하나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죠.

상제님께서는 "나는 생장염장 사의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도 아침에 일어나서 낮에 일하고 저녁에 돌아와 밤에는 쉽니다.
지구 1년에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 길러서 가을에 걷고 겨울에 쉽니다.
인간의 일생은 태어나서 청소년기에 자라고 장년기에 수확을 걷어 노년기에는 쉽니다.
문명도 발생했다가 융성하고 쇠퇴기를 거쳐 망하는 주기를 밟습니다.
이 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순환하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순환하지 않으면 종말 밖에 없습니다. 돈도 순환하고 유통되고 흘러야지 어느 특정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다수를 소유하면 결국 망합니다. 월가 시위는 못가진자 99%가 가진 자 1%에 항거한 시위입니다. 이게 더 심해지면 금융자본주의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환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기가 순환되지 않으면 감기 걸리고, 체하고, 담석 생기고, 혈액이 순환되지 않으면 죽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가 흘러 다니고 순환해야 건강합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어느 때에 살고 있을까요? 우주 1년 중 어느 시점, 어느 변화의 단계에 살고 있을까요? 이것을 아는 것이 천지성공의 첫째 비결입니다.


지금은 바로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하추교역기입니다. 우주 겨울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빙하기입니다. 그러니 우주 겨울이 아닙니다. 가을은 모든 것이 화평한 평화낙원인데 현재는 그렇지 않은 세상입니다. 우주의 봄에 인간이 생겨나는데,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지도 한참 지났기 때문에 봄도 아닙니다. 지금은 온난화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우주 여름의 극기에 와 있습니다. 여름의 끝이라는 것은 곧 가을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주 가을. 이 단어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가을철 추운 계절이 왔는데 가을에 맞지 않게 짧은 팔 입고 다니면, 갑자기 찬바람이 불 때 감기 걸립니다. 우주의 환절기인 하추 교역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주 하추 교역기의 변화를 두고 일찍이 종교에서는 종말, 말세라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없습니다. 종말은 직선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종말이 아니라 개벽입니다. 가을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말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우주 여름과 가을이 넘어갈 때 변화가 너무도 크고 충격적이기 때문이며, 이 변화 후의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지 못해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11년 일본대지진, 2010년 아이티대지진, 지구온난화 이런 모든 것들은 우주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전조입니다. 곧 더 큰 변화가 닥친다는 싸인입니다.


동서양 성자와 예지자들은 이때의 변화를 어떻게 이야기 했을까요?

기독교에서는 “새 하늘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요한계시록」)
불교에서는 “일월성신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온 대지가 진동한다.”(『월장경』)
도교에서는 “천지가 뒤집어지고 별들이 자리를 옮긴다”(『음부경』)
이슬람교에서는 “태양이 은폐되어 빛이 사라지고 별들이 빛을 잃고 떨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예지자들 중에서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의 시간에 큰 이동이 있을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지구 자전축에 변화가 있다”
마더 쉽튼은 “파도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만큼 높이 솟아올라 해안을 할퀴어 댈 테고”
남사고는 “하늘이 변하고 땅이 흔들린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의 대변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종교의 믿음과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티에 지진 났을 때 종교 믿는다고 살았습니까? 알고 대피하면 살고 모르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개벽의 일부입니다. 진정한 개벽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종교에서 말한 종말의 실상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종말은 아닙니다. 끝에 새로운 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새 세상을 가지 못한 사람에게 이번 대개벽기의 죽음은 진짜 종말입니다.


천지성공은 이 우주의 개벽기에 살아남아 천지와 함께 영원히 성공하는 것입니다. 우주 가을은 인간이 꿈꿔왔던 이상 세계와 평화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후천이라고 하는데, 후천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1,000살 가까이 되고, 모든 사람이 석가, 예수, 공자 이상의 깨달음을 얻어 투쟁과 성남과 욕심이 없는 세상이며, 모두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세상입니다. 이것을 각 종교에서는 대동세계, 용화세계, 낙원 등으로 이야기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하지 못한 돈과 권력 등이 주는 일시적인 성공을 찾으십니까? 아니면 천지의 때를 알고 대비하여 인류가 꿈에 그리던 후천 세상에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행복을 원하십니까? 후자를 원하신다면 『천지성공』 이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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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세 2011-12-05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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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 – 다른백년

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 – 다른백년


주요섭의 [다시 생/명]
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주요섭 2022.01.14 0 COMMENTS


대전환기란 무엇보다 사상적 대전환기이다. 그러나 사상의 전환은 신체의 전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자기생산을 겨우겨우 뒤쫓아가는 신체와 그 신체를 뒤따르지 못하는 정신의 괴리가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불안과 죽음정치로 이어진다. 자각은 고사하고, 가벼운 질문조차 내뱉기 어렵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2022년 1월 대선판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 공격에서 그것을 절감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운동은 이론과 실천의 최전선이다. 이슈, 행동, 활력, 영향력, 대중적 참여 등 모든 면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생명-문화적 현상이다. 지난 수년간 목격했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들이 떠오른다. 광화문 퀴어페스티벌, SNS에서의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강남역·대학로 여성 혐오 규탄집회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사실은 가정, 학교, 기업, 골목길 등 모든 삶의 현장이 페미니즘-운동의 전선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대전환시대의 가장 치열한 사상적, 실천적 전위다.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온다

대전환은 무엇보다 신체적이다. 실제적이고 실존적이다. 코로나19의 대전염병과 기후재난은 직접적인 고통의 원인이 된다. 디지털기술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신체를 재-지배하고 재-구성한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은 모바일과 디지털 기기에 길들여진다. 사회적으로도, 예컨대 사랑과 가족과 노동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뒤흔든다. 적응하기에 바쁘다. 거꾸로 길들어짐에 무감각하다. 사회·경제·문화적 이중화(dualization)는 우리의 실존을 두 개의 차원으로 갈라놓았다.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묘사하듯이 혹 천국과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칼끝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세계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움직임도 매우 분주하다. 생명운동들도 여기에 응답하려 한다(생명의 움직임이라는 의미에서 ‘생명-운동’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운동은 항상 생명운동들이었다. 이미 수많은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나름의 몸짓과 감각과 언어로 활동을 전개해왔다. 수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구글 검색과 유튜브 검색에서 만날 수 있는 생명운동들은 주로 기독교 생명운동과 가톨릭 생명운동이다. 그리고 가끔 새마을운동중앙회의 생명살림운동이다. 적어도 구글 검색과 유튜브에서는 한살림의 생명운동도 없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나 생명평화결사의 생명운동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생명운동은 낙태반대운동, 동성애반대운동 등 이미 보수 기독교운동에 의해 전유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출현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운동들은 또 다른 삶의 형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적’ 생명운동이며,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정동적’ 생명운동이며, 매 순간 자신을 또 다른 차원으로 변신시키는 ‘트랜스’ 생명운동이다. ‘몸-생/명’의 관점으로 말하면, 감응 체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회적 경험의 형식을 창조하는 ‘감응’과 ‘우형’의 생명운동들이다. 절망(絶望)과 선망(羨望) 사이, 희망(希望)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페미니즘-운동이 그것이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페미니즘–운동

페미니즘-운동은 각비(覺非)의 사유를 실천한다. 치열하게 저항하되, 대안을 특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페미니즘-운동은 이를테면, 생명의 원초적 저항이다. 매 순간 일상화된 신체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고, 구조화된 신체적 위협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페미니즘 고유의 생명 감각을 ‘생명의 사유’로 발전시키고 사회적 실천을 생산한다. 수천 년 고착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고 결혼·가족 제도를 균열시키고 있다. 켜켜이 쌓인 고통만큼이나 내공도 단단하다.

페미니즘은 정신의 운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신체의 운동이다. 몸의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몸의 운동’이다. 살아있는 몸 안에서 저항의 생명력이 폭발한다. 페미니즘-운동에서 몸은 사유와 실천의 원천이다. 또한 ‘몸-생/명’의 그것처럼, ‘표층의 몸’과 함께 ‘심층의 몸’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체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진보적 사회운동이 ‘생각의 운동’이거나 ‘재현적 모델의 운동’이라면 페미니즘은 ‘느낌의 운동’, ‘살아있는 삶의 운동’이다. 이념의 운동이 아니라, 경험의 운동이다.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인간을 체험케 하는 운동이다.

또한 진보적 대안운동은 투명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불투명하다. 혼란스럽고 분열적이고 우발적으로 경험된다. 또한 페미니즘은 쉽사리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 너머를 상상하고 실험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대안’을 만드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평’을 여는 운동이다. 사상, 이론, 방법, 에너지, 조직 등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다.

페미니즘은 인식론적 장애물을 넘기 위해 몸부림친다. 구성적 사유를 한다. 젠더는 물론이거니와 개념과 제도, 그리고 신체와 자아마저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개념과 제도와 자아를 발명하고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은 권력과 정치를 회피하지 않는다. 집단적 결정과 권력의 역동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역동의 근거와 실제는 몸이다. 정동이다. 제도와 법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절 때마다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들어간다. 대화를 나눌 때와 호칭과 대화에서, 결혼을 고민할 때, 매 순간이 정치다.

페미니즘은 생태적이다. 굳이 에코-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적 억압과 계급적 착취와 깊게 관련되었음을 몸으로 알아차린다. 연민의 감각으로 지구-생명공동체를 재창조한다. 나아가 우주-생명공동체를 상상한다.



페미니즘은 ‘다시 개벽’ 운동이다

페미니즘-운동은 페미니즘 운동들이다. 수많은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들이 다양한 사상과 활동으로 기존의 생명운동과 사회운동을 자극한다.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충격한다. 기존의 생명운동은, 이를테면 개체 중심적 생명운동이었다. 생명의 세계관은 관계와 연결을 강조했으나 그것은 개체적, 유기체적 생명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생명의 그물』이라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 제목이나 ‘인드라망의 그물’ 은유도 개체와 개체의 연결을 중심으로 하는 개체적 생명관을 반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 특히 정동이론을 수용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라는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유기체적 생명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사회/자연의 경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기체라는 생명형식은 분명 실제적이지만, 동시에 유기체 역시 하나의 구성적 생명형식인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개체적 자아를 전제로 하는 유아론(唯我論)적 감각을 훌쩍 넘어서려 하고 있다. ‘탈아(脫我)’의 체험을 사회화하려 한다. 페미니즘의 생명 이해는 생명의 개체성을 전체로 하는 ‘생명권-재산권’ 개념과 ‘생명의 존엄’이라는 관념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와 생명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개체 중심의 민주주의 담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트랜스’의 관점으로 인간과 생명을 다시 보도록 자극하고 있다. 영성과 우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문명전환운동이다. 150년 전 오만 년 옛 질서를 급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동학의 ‘다시 개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지점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운동으로 인해 ‘문명전환’이라는 거대담론이 고담준론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에서부터 변혁적 힘을 얻게 되었다. 전통적인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성애적 사랑만을 고집하는 것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가족제도도 바뀌고 결혼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부계 가족문화는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의 형식과 돌봄체계가 재구성되고 있다.

그렇다. 문명사적 대전환기, 페미니즘-운동으로부터 배운다. 19세기 중반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는 ‘다시개벽’이라고 말했고, 그의 후계자 해월 최시형은 ‘후천개벽’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리고 20세기 벽두에 또 다른 방식으로 동학의 계승을 자처했던 강증산은 ‘양(陽) 개벽’에 빗대어 ‘음(陰) 개벽’을 주장하며 또 다른 인류사적 서사를 발명했다. 21세기 페미니즘은 기존의 질서에 격렬히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개벽’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며 새로운 질서를 추동하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재난의 자연-인류사적 대전환기 속 ‘인간 이후’의 지구-우주적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기구원의 사상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 놀라운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기생산’의 역량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한다. 일상화된 공포와 불안과 불합리에 치열하게 맞서면서, 또한 국가권력과 거대기업 같은 거대 권력에 대해 저항하면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언어를 생산해낸다. 활동과정에서 수많은 또 다른 삶의 형식들을 발견하고, 발명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생명으로 재-창조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기해방-자기구원’ 운동이다. 수운 최제우는 깨달음 체험을 한 후, 집에 있던 여종 둘을 해방한다. 한 명은 며느리로 또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노비들에게 그것은 이를테면, ‘타력 해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즘은 ‘자력 해방’이다. 자기가 자기를 해방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다. 페미니즘은 ‘자기구원-의 사상’이다. 그리고 ‘자기구원의 세계들’을 발명하고 있다.
주요섭

주요섭(사발지몽). 생명과 전환을 화두로 오랫동안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왔으며, 최근에는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를 중심으로 감응(感應)과 우형(又形)을 키워드로 하는 ‘또 다른’ 생명사상·생명운동의 태동을 탐문하고 있다.

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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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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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대전환, 또 다른 세계감의 출현

1. 종말의 감각, 확실성의 종말

2. 소환되는 생명담론, 응답 없는 생명운동

3. 또 다른 ‘생각/느낌’의 지도 그리기



II. 또 다른 이론과 운동으로부터 배우기

1. 진리의 종언, 인간의 종말

2. 체계이론: 현실은 항상 ‘구성’된 현실이다

3. 정동이론: 행동 이전에 ‘정동’이 있다

4. 페미니즘: ‘트랜스’, 우리에겐 n개의 성이 있다

5. 성찰: 생명사상·생명운동에 관한 몇 개의 물음표



III. 또 다른 생명의 세계관 설정하기

1. ‘생/명’으로 생명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2. 생명은 ‘생’이다

3. 생명은 ‘명’이다

4. 생명은 ‘/’이다

5. ‘몸-생/명’의 세계관, 감응과 우형의 생명활동



IV. 또 다른 생명운동을 실험하기

1. 왜 ‘생명’운동이었을까?

2. 사회는 재-발명되어야 한다

3. 판/마당과 사건 만들기

4. 카오스 생명과 시/민 주체성

5. 저항과 꿈꾸기의 사회운동



V. 다시 생명, 또 다른 세계의 태동

1.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온다

2. 대전환의 사상들

3. 살아있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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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1

주요섭 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

(5) Facebook: 이무열 enopSordstth5 2 chm0370mha43 1 66 h 18052g9iuc3t6cl66ffgfht92hch73   · 생명과 전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발지몽(주요섭)선배님에 오랜시간 공들인 책이 나왔습니다. (전통)생명사상과 사회과학을 횡단하며 전환을 위해 물건 하나를 내놓으려한 고민과 열정을 아는 이로서 한껏 축하드립니다. ‘초월적 돌파’를 화두로한 생명과 전환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서울 외에 대전과 전북에서도 북 토크를 준비 중이라 하니까 이번 북 토크에 함께 못해도 너무 아쉬워 마세요. 참고) 책은 4월20일부터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고 현장에서는 저자 싸인본으로 판매합니다. 서울은 김지하선생님과 연이 있는 #카페마고 에서(예전엔 살롱 마고) 북토크 신청은 아래로 https://forms.gle/Pihxd44uUiVwi2L88 All reactions:33You, 강길모, Sunghwan Jo and 30 others 9 comments 5 shares

생명과 전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발지몽(주요섭)선배님에 오랜시간 공들인 책이 나왔습니다.
(전통)생명사상과 사회과학을 횡단하며 전환을 위해 물건 하나를 내놓으려한 고민과 열정을 아는 이로서 한껏 축하드립니다.
‘초월적 돌파’를 화두로한 생명과 전환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서울 외에 대전과 전북에서도 북 토크를 준비 중이라 하니까 이번 북 토크에 함께 못해도 너무 아쉬워 마세요. 😊
📌 참고) 책은 4월20일부터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고 현장에서는 저자 싸인본으로 판매합니다.
서울은 김지하선생님과 연이 있는 #카페마고 에서(예전엔 살롱 마고)
북토크 신청은 아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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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이집트 여행기 ① - 이집트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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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이집트 여행기 ① - 이집트 피란

지난 2월 중순 이집트에 다녀왔습니다. 이집트에서 보고 느낀 것 중 페친들에게 흥미가 있을 것 같은 제목의 글을 몇 개 올리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피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나시자마자 이집트로 피란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 첫 날 예수님과 그 부모가 피란 가서 살았을 것이라는 동굴과 그 위에 지어진 ‘아기예수 피란교회’라 불리는 콥트 교회도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그의 별을 보고 이스라엘로 찾아와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러 문의한 결과 그곳이 베들레헴일 것이라 일러주었습니다.
헤롯 왕은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를 찾거든 돌아와 자기에게 말해주면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향해 나서자 동방에서 본 그 별이 문득 앞에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여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가 (참고: 마태복음에는 아기가 말구유에 누워있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한편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해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후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개역 성경에는 애굽이라 했습니다)로 피하여 다시 지시가 있을 때까지 거기 있으라 했습니다. 요셉은 그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살았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자기에게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대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위에 있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다 죽이도록 했다고 합니다. (참고: 아기들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예수님과 모세를 등치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한 미드라시 서술기법이라고 합니다.)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이집트에서 요셉의 꿈에 나나타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으니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 갈릴리에 있는 나사렛에 정착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사실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이 가지고 왔다고 하는 선물 중 몰약이 뭔가 잘 몰랐는데, 이번 이집트 방문에서 몰약이 미라의 부패를 막는 항균제로 쓰이는 값비싼 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황금과 유향도 비싼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상가 중 한 분인 토마스 머튼은 이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풀이합니다. 예수님의 식구들이 이집트에 몇 년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거기 살 때 이 선물들을 팔아서 생활비로 충당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기독교 초기에 동방에서부터의 선물이 이처럼 중요하였던 것같이 2천년이 지난 오늘 기독교가 다시 활기를 되찾으려면 동방으로부터의 선물이 필요한데, 그것은 노장 사상이나 선불교 같은 동양의 정신적 유산이라고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예수님 식구들이 살았다는 곳에 가서 다시 떠오르는 생각의 한 토막이었습니다.

 (참고: 예수님 식구들이 살았다고 하는 곳은 이곳 말고도 여러 곳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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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이집트 여행기② -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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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행기② - 나그 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서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500 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Nag Hammadi)’라는 곳에서 발견된 ‘나그 함마디 문서’였습니다.  

 1945년 12월 어느 날,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이곳 산기슭에서 밭에 뿌릴 퇴비를 채취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속에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귀신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지만 금덩어리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항아리를 열어 보았습니다.  귀신도 나오지 않고 금덩어리도 없었습니다. 그 대신 가죽으로 묶은 열세 뭉치의 파피루스 문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고문서가 들어있는 항아리가 금으로 가득한 항아리보다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농부는 혹시 고문서라도 골동품으로 값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장에 가지고 가서 몇 가지 식료품과 맞바꾸었습니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이 고문서는 전문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4세기 초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을 통치할 통일된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그리스도교를 채택하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하느님, 하나의 종교, 하나의 신조, 하나의 성서’로 통일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325년 약 300여명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을 지금의 튀르키예 이스탄불 서남쪽에 있던 니케아에 모이게 하여 공의회를 열게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젊은 추기경 아다나시우스(Athanasius)가 예수의 인성만을 강조한 아리우스(Arius)파를 물리쳤습니다. 그는 그 여세를 몰아 그 당시 개별적으로 떠돌아 다니던 그리스도교 문헌 중 27권을 선별하여 그리스도교 경전으로 정경(正經)화했습니다. 그후 그는 한 걸음 더 나가 367년 자기의 신학적 판단에 따라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문헌들은 모두 파기 처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이집트 최초의 수도원 파코미우스(Pachomius)의 수도승들이 부적절하다고 지목된 도서를 수도원 도서관에서 빼어내어 항아리에 밀봉하고 산기슭에 묻어 두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문서 뭉치들 속에는 52종의 문서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 문서들은 모두 콥트어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콥트어 문서란 고대 이집트 말을 그리스 문자에다가 이집트에서 전해오던 글자 중 일곱 글자를 더해서 기록한 문서입니다. 이집트에는 콥트어를 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도 이집트 콥트 그리스도인들이 인구의 약 10%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 콥트어 문서는 본래 그리스어로 된 문서를 콥트어로 번역한 것들입니다. 이 문서들중 가장 잘 보존되고 가장 획기적인 내용을 포함한 것이 바로 󰡔도마복음서󰡕였습니다.  

 <도마복음>은 지금 성경에 포함된 공관복음서와 50% 정도가 평행을 이루는 내용이지만, 공관복음서와 달리 기적, 예언의 성취, 부활, 재림 등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로지 예수님의 어록 114개를 모아놓은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 속에 빛으로 계신 하느님을 아는 것, 이것을 깨닫는 ‘깨달음(gnōsis)’를 통해 내가 새사람이 되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경주라 할 정도로 유명한 룩소르(Luxor)에서 이집트 최대의 신전 카르낙 신전, 왕가의 계곡, 그 중에서도 새롭게 개방된 이집트 신왕국 제18대 파라오(바로) 아케나톤 왕의 부인 네페르티티의 무덤 등을 돌아보고 다음 날 버스로 5시간 걸려 이집트의 대표 휴양지 후루가다로 가는 길, 룩소르에서 북쪽으로 약 100 Km 떨어진 나그 함마디를 지나가면서, 저는 <도마복음> 해설서를 쓴 저자로서, 거기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꿀둑 같았지만, 이번 여행이 단체 여행이라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어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신 버스에서 마이크를 잠간 빌려 같이 간 분들에게 나그 함마디와 <도마복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습니다.


16 comments

Yeongwook Kim
저는 기독교도가 아니지만 너무 흥미로워요. 교수님책도 읽었지요.
Reply8 h
차춘희
비교 종교학자로써 모든 종교에서 결국 깨달음을 강조하며 여러면으로 알려 주신것 같습니다.
저또한 박사닝의 뜻에 공감하며 많이 와 닿았고 영성을 쌓아가는데 도움을 받습니다
특별히 기독교 경전으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는 도마복음을 읽으며 현대인들의 영성에 많은 영향의 발돋음을 할수 있는 계기와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것라 확신합니다
Reply8 hEdited

Reply7 h
浩于禪師
비기독교인으로써 참 정말 헷갈리오.
한때는 "예수는 없다"는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비기독교인들에겐 예수는 실재 존재하지 않는가 보구나 . . .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통적 기독교를 비난하는 추세이다가 또 요즘엔 다시 기울어가는 기독교를 살려야 한다는 둥. .
이 게시글처럼 기독교를 신격화, 성역화를 다시하고.. 도대체 님의 기독교에 대한 관점은 뭐요? 뭐(기독교)가 있네 . . 없네 . . 아무 실제 생산성이 없는 관념적인 논설만 하시지말고 이제 그만 현실을 즉시하는게 인생적 의미를 찾는 길이 아닐까요?
예수 백날 외쳐봐야 .. 일반 무신론자,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메아리일뿐이며, 현실적으로 예수가 밥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옷 입혀주는 것도 아니고, 잠 잘곳을 공짜로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잖우?
평생을 남의 것(예수)에 매달려서 보내셨음 이제는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존재를 알 수 있는 '천지인'을 연구함이 더 낫지않을까요?
이 인간사회에는 가치있고 현실적인 일이 많아요. 즉, 기아구제, 고아구제, 환자구제, 기후변화/환경보전, 전쟁을 피하는 방법, 남북통일, 전염병대책, 빈부격차해소문제, 마약방지대책, 교통사고방지대책, 남녀불결혼문제, 병치료문제, 학폭예방문제 등등. 실제 뭐 의미있고 현실적인 문제해결 연구를 합시다. 차라리 한민족 역사연구, 한철학과 선도를 연구하시든가 . .
서양과 북미주에선 거의 사라지는 예수교 애기는 그만 합시다. 미국의 와싱톤수도권에서 제일 큰 '와싱톤중앙장로교'의 전임 '이원상'목사는 강대상에서 종종 ". . 영화를 지상에 쌓지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목소리 높혀 외쳐대더니 자기 자신은 몰래 캐나다에 고층빌딩을 자기명의로 사놓았다가 걸려서 다시 팔았지요.
한국의 부패목사들, 해외의 부패 목사, 신부, 승들애기 백만번 해봐야 내입만 더러워지는 것 아니오? 직접 들은 이원상목사의 행태만 봐도 기독교로는 세상문제가 해결이 않되요.
차라리 유교가 좀 낳죠? 효도와 애족심을 길르니까 . . 기독교인들 부모에게 옛날 한민족들처럼 요즈음 효도하지 안하잖아요?
아니면 세속오계와 부자유친, 부부유별, 붕우유신, 장유유서, 군신유의 등 삼강오륜을 가르치는 우리 것인 '선도'가 훨씬 나을듯해요.
요즘 북미주 사람들이나 특히 현대 한국인들이 어디 사람입니까?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즐비하잖아요?
현실은 우리가 이 지구를 떠나게 된다는 점을 잊지말고 우리 것이나 음미해보시우그려. 약속한 재림도 안하는 예수연구한다고 더 이상 얼마 남지않은 인셍허비마시고 우리 것이아 연구하고 심신수련합시다 그려 .
옛날엔 한국인들 대다수가 얼마나 좋았수? 어디에 살든 옛날의 한국인들이 그립구려. . 당시엔 우리 것인 '삼강오륜'에 매달려서 온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좋았던 것 아니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거악들이 아주 소수로 이따금씩 있었던 것은 빼고 . .
좋은 내것을 버리고 남의 것(외국 종교와 문화)에 매달리고 숭배하고 쫒아갔다가 결과가 오늘날에 한국의 정서만 완전 망가진 결과를 가져왔지 . . . 오호통재라!!! (끝)
Reply5 hEdited

하중조
<도마복음서> 발견 유래와 신약성경 정경화 작업을 한, <아타나시우스> 추기경의 기독교 국교화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심, 예수를 살려고 안간힘 하는 신앙고양에 큰 도움 됩니다, 
교수님! 개인적으로 귀한 글, 공유하겠습니다, 평화!
Reply2 hEdited

2023/04/10

Qi Gong by Howard Choy Belinda Henwood - 1998

Qi Gong by Howard Choy &amp; Belinda Henwood - 9780732909512



Qi GongHome
Non-Fiction
Health & Lifestyle
Alternative Therapies







AuthorsHoward Choy &
Belinda Henwood
ISBN9780732909512
Published01 / 08 / 1998
BindingPaperback
Pages160

Qigong (pronounced chee-goong) is an ancient Chinese system of meditation and movement dating back to 2500 BC. 'Qi' is the vital life force or energy and 'gong' the study or cultivation of skill or knowledge. Just as feng shui is concerned with the cultivation of qi or energy in our environment, qigong is the study and cultivation of qi in our bodies.

Like acupuncture and tai chi, qigong exercises are designed to unblock and strengthen the flow of qi through the meridians in our bodies, enhancing feelings of wellbeing. As well as helping people to cope with the stresses of daily life, qigong can aid the healing process with particular exercises addressing particular problems such as lower back pain, fatigue, asthma or heart palpitations.

This book gives an introduction to the concepts behind qigong and provides a series of photographed step-by-step exercises, including their individual health benefits. There are case studies of people who have 'cured' cancer and chronic fatigue and used qigong to manage multiple sclerosis. 'Qigong' also introduces you to the benefits of sexual qigong or the ancient Chinese 'art of the bedch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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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 thy Friend: Jenny Spinks - The Australian Friend

Know thy Friend: Jenny Spinks - The Australian Friend:

Know thy Friend: Jenny Spinks

5 Mar, 2023

KNOW THY FRIEND: JENNY SPINKS



Jenny Spinks


Peter Jones, Tasmania Regional Meeting



Jenny was born in 1951 into a Quaker family in England, with roots on her father’s side going back to the early days of Friends in Wensleydale. During the First World War her grandfather on her mother’s side had been imprisoned as a conscientious objector in Durham jail, and her grandmother was a suffragette. Both became convinced Friends and important role models for Jenny – having the courage to live being true to themselves.

Jenny and her younger sister Judy were born in Bristol where their father, Roger, worked as an engineer and their mother, Joyce, was a primary school teacher.

When Jenny was eight, Roger got a job as “Master on duty” at Ackworth (Quaker co-ed boarding) School – a major career shift. This was a hard but enlightening change for Jenny, moving from a middle class suburb in the South of England to a Yorkshire mining village, where her Primary School friends had very different lives from her.

Around this time her Mum, Joyce, spent 6 months in a Quaker “mental hospital” in York with a “nervous breakdown” – caused by medication for high blood pressure. When she came home, Joyce became Ackworth School’s Mistress on Duty.

With her parents in loco parentis to her peers, being a day student at Ackworth from 1962 had its challenges for Jenny. She became aware, in one Meeting for Worship, that she wanted to do any sort of work that supports people.

She moved, for sixth form, to boarding at Friends’ School Great Ayton and got the school involved in supporting SHELTER, the 1960s campaign for housing in England.

Jenny successfully applied to be a Quaker Overseas Volunteer at Wesley Girls High School in Ghana in 1969-70. Back home, she studied Social Administration at Nottingham University. After a year she had joined the University Peace Society and was on the path of Non-Violent Revolution. Jenny saw doing unpaid community work as her future.

In 1973 she moved to Pitsmoor, Sheffield and started nursing – a trade she planned to practice part-time in disempowered communities. Jenny became involved in the feminist movement, revelled in community living, grew food on an allotment and met her future Australian husband, Chris Allen. She helped organise the first National Women’s Health Conference – stirring her interest in midwifery, and was a founding member of the Association of Radical Midwives.

Ailsa (1978) and Peter (1980) were born at home in Sheffield. In 1981 the family moved to a village in Cornwall where Jenny was employed as a District Nurse/Midwife and Chris was house-husband. While there they were active in the village peace group and decided to visit Australia.

In 1984 they based themselves in Milton-Ulladulla in New South Wales and soon decided to stay in Australia. In 1985 and 1986 Jenny worked as a Nurse/Midwife in Amata on the Pitjantjatjara lands.

They moved to Koorool community farm in Tantawanglo near Bega in 1987, with three other households, building earth homes. Jenny and another midwife attended home births and Chris became involved in the campaign to stop logging. Jenny’s facial spasms started in 1988, and in 1992 she was diagnosed with Cranial Dystonia. When they prevented her from driving and she had to give up midwifery, she was grateful that Koorool had bought a Wholefoods business in Bega, where she could work.

During this time Jenny reconnected with Quakers. She went to Yearly Meetings with Ailsa and Peter who got involved with Junior Young Friends. Jenny saw herself as an isolated, newly convinced, Friend and started the Bega worshipping group. She also became involved in Re-evaluation Co-counseling, which has continued to provide a solid theoretical framework and practical support in her life.

Leading up to the millennium, Ailsa and Peter left home, and Jenny’s concern for the Simplicity Testimony developed. A Quaker visitor from India, Aziz Pabaney, stressed that we are not to “live simply” to release resources for developing countries, but to create space in our own lives for nurturing spiritual connection. This helped Jenny communicate her concern for the testimony.

A term at Woodbrooke College in the UK, visiting Aziz in Mumbai, Canberra Regional Meeting adopting Jenny’s concern for the Simplicity Testimony and Meeting for Learning support, led to her travelling by bus down the East coast of Australia visiting Quaker Meetings and isolated Friends ­– and eventually to her delivering the Backhouse Lecture in 2007

2003 saw Chris (newly employed by National Parks) and Jenny living in Bega, as founding members of Bega Eco Neighbourhood Developers Inc, a not-for-profit volunteer group whose aim was to create a socially and economically diverse ecologically sustainable neighbourhood integral to the town of Bega.

The Quaker Peace and Social Justice Fund provided seed funding that led to 10 of the 30 homes being owned by a social housing provider. By 2010 Chris and Jenny were living with their neighbours in eco-friendly homes. During this decade Jenny had supported the sale of the Wholefoods business to a Workers Co-operative – still a vibrant ethical enterprise.

Connections with family, friends and neighbours, caring for home and garden, supporting Chris write about koala country; and, most nourishing, being a Meeting for Learning facilitator are Jenny’s priorities now. Having been blessed with clear leadings through most of her life Jenny says she feels at sea.

“It seems I am now led to focus on the here and now with no goals to achieve except to age gracefully, and that is a challe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