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9
애인/7장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예지(叡智)
*【叡】(밝을 예) 1. 밝다. 사리(事理)에 깊이 통함. 叡智. 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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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사물을 꿰뚫어 보는 뛰어난 지혜. 예지(叡知).
②우주(宇宙)의 본체(本體)인 이성(理性).
③기억력ㆍ상상력ㆍ사고력을 써서 이론적ㆍ실천적인 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정신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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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의 4단(四端)과 4덕(四德).
불교열반의 4덕 : 상(常, 항상), 낙(樂, 기쁨), 아(我, 나), 정(淨, 깨끗함)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8 June 2020 — 전문적인 지식이 넓어지면 학자가 되고, 작가의 예지(叡知)가 깊어지면 사상가로 진급(進級)합니다. 학자의 저술은 다른 학자에게서 빌려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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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소/프랑스 사상가 소설가>
10세 때에는 과자로 움직이고,
오꾸짱!!@mayareki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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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본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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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叡智)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흔히 독서(讀書)는 글을 통하여 빛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 들어가서 별을 찾는 탐구(探究)라고 합니다. 또한 서재에서 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소통이라 합니다. 이렇듯 독서는 깊은 체험을 통해 지식의 정수를 터득(攄得)하는 평생의 일입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만이 풍부한 지식을 장악(掌握)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문인이 말했습니다. “10년은 독서에 바치고, 10년은 여행에 바치고, 10년은 그 체험을 보존 정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보존(保存)과 정리에 10년씩 허비하기는 너무 낭비입니다. 빠르면 몇 년이면 족합니다. 대신 독서와 여행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면 좋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그 몇 배라도 많은 시간을 바쳤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한 백년을 살아야 하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문장은 고독이나 불행에 봉착(逢着)했을 때 비로소 걸작(傑作)이 나온다고 합니다. 심장을 파고드는 인생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은 생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때문에 피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보다 불우한 사람의 글이 더 감화력(感化力)이 있다고 합니다.
글짓기에서 체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없다는 말은 이와 같은 이치(理致)에서 나옵니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진리를 논증(論證)하다보면 논리적 사고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언어를 만들어야하고 그 언어를 또 설명(說明)하려면 논리가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는 언어에 의해 모호해지고 왜곡(歪曲)되며 잘못 표현되어 진리라는 것이 죽도 밥도 안 되고 맙니다. 지금까지의 대량의 글들은 많은 시비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조(思潮)를 만들어 내려면 또 새로운 학파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 학파가 많이 생길수록 모순당착(矛盾撞着)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해서 글은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나가 있으면 심지어 지식무용론(知識無用論)까지 나오게 됩니다. ‘현자(賢者)는 무언, 능자(能者)는 담화하고, 우자(愚者)는 논한다’는 말처럼 말을 많이 하면 그 사람이 경솔하고 어리석어집니다. 성현은 스스로 직접 체득한 삶을 말하고, 능자는 현자의 말을 하고, 우자는 능자(能者)의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언수궁(多言數窮)은, 말이 많으면 탈이 많다는 경구(驚句)가 생겨납니다.
인간은 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독서하는 서적이 있어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당(酒黨)은 술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마시고 취해서 유쾌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일 행락객(行樂客)이 꽃과 달이 없다면 무얼 즐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다행히 책이 있어 독서의 즐거움이 있고, 술이 있어 취하는 흥락(興樂)이 있고, 꽃과 달이 있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과 술과 꽃과 달을 즐기면서 노닐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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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36장
움츠려 들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크게 확 펼치게 되며,
쇠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드세게 강해지고,
떠나버리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더불어 친하게 함께 지내며,
빼앗으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잠시 동안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를 일러 미묘한 움직임을 알아채는 예지(叡知)라 하는데,
부드럽고 약하면서도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길 수도 있다.
그리고 물고기가 연못 밖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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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후의 세계(죽음 이야기) 3.-
사람은 육체와 생명 자아가 방출하고 있는 에ㅡ텔체가 유체의 중간에 위치해서 육체의 육체적, 물질적 구조를 통일적으로 유지시키고 옹호하는 작용을 하였습니다.
에ㅡ텔체가 이탈된 육체는 분해되고 마는 것으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육체 아닌 유체 영체 등 자아의 또 다른 자기표현의 몸을 구성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에ㅡ텔체는 타계의 거주자와 교통 연락을 할 수 있고,
영매들은 타계와 의사전달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육체 내부에서 서로 중첩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육체, 유체, 영체, 본체는 서로 침투하고 서로 겹쳐 있으면서 제각기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육체는 주로 욕망을, 유체는 감정을, 영체는 이성을, 본체는 예지(叡知)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에ㅡ텔체의 특징은 마음의 상태, 생각하는 것을 예민하게 반영합니다.
고정적이 아니고 유동적 입니다. 시공을 초월하되 자아가 운용하는 기관입니다.
살았을 때 육체 구석구석에 일체를 이루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생명핵심과 함께 육체를 벗어나 영의 세계에 살게 됩니다.
영의 세계도 우리의 현계에 침투되어 있습니다.
죽으면 영혼은 옹색하고 둔중한 육체에서 벗어나 보다 맑고 경쾌한 의식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백년 뒤엔 내 살과 피는 한 방울의 물이 되여 갈증 난 나그네 목을 적셔 주겠지 !
육체를 떠난 영혼은 자기 시체에서 150cm 정도 높이에 떠서, 보고, 듣고, 비약하고(날고), 음식을 운감 하고(먹고), 의사를 전달하는 5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은 자기가 죽었는지 ?
잘 모릅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부터 아주 편안하고 시원하고 경쾌한 기분으로 자기 시체를 바라보고 가족들이 울고 있으면 자기는 편하다고 울지 말라고 하나 산 사람은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예지(叡智)
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
흔히 독서(讀書)는 글을 통하여 빛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 들어가서 별을 찾는 탐구(探究)라고 합니다. 또한 서재에
서 우주와 대화를 나누는 소통이라 합니다. 이렇듯 독서는 깊은 체험을 통해 지식의 정수를 터득(攄得)하는 평생의 일입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만이 풍부한 지식을 장악(掌握)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는 영감을 불러와야 지고(至高)의 예지(叡智)
와 만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식이 넓고 재주가 많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옛 문인이 말했습니다. “10년은 독서에 바치고, 10년은 여행에 바치고, 10년은 그 체험을 보존 정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보
존(保存)과 정리에 10년씩 허비하기는 너무 낭비입니다. 빠르면 몇 년이면 족합니다. 대신 독서와 여행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면 좋습니
다. 욕심 같아서는 그 몇 배라도 많은 시간을 바쳤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한 백년을 살아야 하
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문장은 고독이나 불행에 봉착(逢着)했을 때 비로소 걸작(傑作)이 나온다고 합니다. 심장을 파고드는 인생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
은 생활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때문에 피눈물이 나도록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보
다 불우한 사람의 글이 더 감화력(感化力)이 있다고 합니다.
글짓기에서 체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없다는 말은 이와 같은 이치(理致)에서 나옵니다. 상식으로 돌아가서 진리를 논증(論證)하다보
면 논리적 사고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논리를 전개하다보면 언어를 만들어야하고 그 언어를 또 설명(說明)하려면 논리가 따라야 합
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는 언어에 의해 모호해지고 왜곡(歪曲)되며 잘못 표현되어 진리라는 것이 죽도 밥도 안 되고 맙니다. 지금까지
의 대량의 글들은 많은 시비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조(思潮)를 만들어 내려면 또 새로운 학파가 생기게 됩니다. 여러 학파
가 많이 생길수록 모순당착(矛盾撞着)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해서 글은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할 학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나가 있으면 심지어 지식
무용론(知識無用論)까지 나오게 됩니다. ‘현자(賢者)는 무언, 능자(能者)는 담화하고, 우자(愚者)는 논한다’는 말처럼 말을 많이 하
면 그 사람이 경솔하고 어리석어집니다. 성현은 스스로 직접 체득한 삶을 말하고, 능자는 현자의 말을 하고, 우자는 능자(能者)의 말
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언수궁(多言數窮)은, 말이 많으면 탈이 많다는 경구(驚句)가 생겨납니다.
인간은 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독서하는 서적이 있어 즐거움이 있습니다. 주당(酒黨)은 술이 있어 말을 할 수 있고 마시고 취해서 유
쾌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일 행락객(行樂客)이 꽃과 달이 없다면 무얼 즐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게 됩니다. 다행히 책이 있어 독서의 즐
거움이 있고, 술이 있어 취하는 흥락(興樂)이 있고, 꽃과 달이 있어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과 술과 꽃과 달을 즐기면
서 노닐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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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筒俊彦:叡知の哲学 : 若松 英輔: 이즈쓰 도시히코 Toshihiko Izutsu and the Philosophy of Word: In Search of the Spiritual Orient
- 1968年新潟県生まれ。批評家、随筆家。東京工業大学リベラルアーツ教育研究院教授。
- 2007 年「越知保夫とその時代 求道の文学」にて第14 回三田文学新人賞受賞。
- 2016年『叡知の詩学 小林秀雄と井筒俊彦』にて第2回西脇順三郎学術賞受賞。
- 2018年詩集『見えない涙』で第33回詩歌文学館賞を受賞。
- 2018年、『小林秀雄 美しい花』で角川財団学芸賞を受賞。
- 2019年、『小林秀雄 美しい花』で蓮如賞を受賞。
『井筒俊彦 叡智の哲学』(2011)
2020-10-24 07:30:22
テーマ:読書時間
若松英輔『井筒俊彦 叡智の哲学』慶應義塾大学出版会、2011年、2014年第4刷
井筒俊彦の『意識と本質』(岩波文庫、1991年)を読もうと段ボール箱を開けたら、若松英輔氏の本が出てきた。これを読みながら、週末に心当たりの箱を開けて『意識と本質』を探そう。若松英輔氏の引用もページがないので本のどこに書いてあるか調べないといけない。
第六章 言葉とコトバ
第九章 『意識と本質』
第十章 叡智の哲学
井筒俊彦が使う「コトバ」が何であるかつかめないと読み続けるのが難しい。『意識と本質』にある「意識の構造モデル」をどう理解するかが重要だ。井筒俊彦は「コトバ」と「言葉」と使い分けるのは『意識と本質』以降であると若松英輔氏は云う。さらに「意味」がまたやっかいである。これらの「術語」を確認しながら読む準備をする。
若松英輔氏は云う。
「「意味」という言葉も、井筒俊彦が用いると、単語、文章、あるいは現象の指示内容ということに留まらない独自の術語となる。「意味」は混沌から生まれ出る存在の相貌、存在者の「顔」。一つとして同じものがない固有者である」(P379)。
若松英輔氏の指摘で「言語哲学としての真言」の講演録にあった「ヨハネによる福音書」に関する記述が削除されていたことが分かった。『意味の深み』に収録した「意味分節理論と空海」を読んでいて、「存在はコトバである」という命題にこれほど相応しいものはないと思われるが、何故か井筒俊彦は削除した。なお「存在」は絶対超越者の異名である(P221)。
若松英輔氏は井筒俊彦の訳を「言語哲学としての真言」から引いてくる。
「太始(はじめ)に〔中略〕コトバがあった。コトバは神のもとにあった。というより、コトバは神であったのだ。ありとあらゆるものがこれによって成り、およそ成り出たもののうち、ただひとつもこらによらずに成り出たものはなかった」(P219)
ギリシャ語による「ヨハネによる福音書」の最初にΕν αρχηι ην ο Λόγοςとある。「初めに言葉ありき」と昔は習ったが、αρχη(アルケー)は初め、始源、原理である。Λόγος(ロゴス)は言葉と論理。そのような日本語はないのでロゴスとする。すると「初めにロゴスがあった」とでも直訳してみる。ロゴスはキリストでありコトバであるとすれば、真言は大日如来でありコトバであると見事に符合する。
井筒俊彦が何故「ヨハネによる福音書」の記述を『思想』(岩波書店)に掲載する時に削除したのかは若松英輔氏も指摘以上のことは書いていない。
「「存在」が「存在者」を「創造」するとき、「存在」は「コトバ」として自己展開する。コトバとは事象が存在することを喚起する力動的な実在、すなわち存在を喚起する「エネルギー体」に他ならない」(P221)。
「コトバ」の比喩として若松英輔氏が以下に書いている。
「叡智(ヌース)も霊(プネウマ)も「心真如」も、彼には「コトバ」の姿をもって現れた。井筒俊彦の「コトバ」は、言語学の領域を包含しつつ超えていく。バッハは音、ゴッホは色という「コトバ」を用いた。曼荼羅を描いたユングには、イマージュ、あるいは元型が「コトバ」だった」(P222)。
「意味」もつかみきれない術語である。
「言葉は世界を意味的に「分節」する。また、意味分節はそのまま存在分節となる。なぜなら、「意味」とは事象に付される記号ではなく、「意味」が事象をつかむ、と井筒は考えるからである」(P228)。
書評 『井筒俊彦-叡知の哲学-』(若松英輔、慶應義塾大学出版会、2011)-魂の哲学者・井筒俊彦の全体像に迫るはじめての本格的評伝
『井筒俊彦-叡知の哲学-』(若松英輔、慶應義塾大学出版会、2011)は、哲学者・井筒俊彦の全体像に迫るはじめての本格的評伝である。
出版されてからほどなく読んだのだが、書評を書き上げることなく現在まできてしまった。しかもいったん書いておいた下書きのファイルをパソコン事故によって消去してしまったので、あらためて一から書き直してみることに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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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たしは大学時代からリアルタイムで井筒俊彦(1914~1993)の著作に親しんできた。
新刊が出版されるたびに単行本を買い求めてきた(・・そのほとんどが岩波書店だったのは、合庭淳という編集者が伴走者として存在したからのようだ)。著作や論文のすべてに目を通したわけではないが、次は何がでるのかいつも楽しみにしていた。だから、著作のほとんどは単行本でもっている。
最初はイスラーム関係からのアプローチであった。だが、あるとき大学生協の書棚に『神秘哲学』(人文書院)を見出して手に取ったとき、イスラームとはまったく畑違い(と見えた)古代ギリシアの哲学者たちを扱ったものであることを知ったときの驚き、そしてまたロシア文学にかんする単行本の存在を知り大学図書館で借りだしてみたこと。あまりもの守備範囲の広さには驚嘆するばかりだった。
大学学部でユダヤ史にかんする卒論執筆のために資料収集していたとき、「東印度に於ける回教法制」という戦時中の報告書を図書館で発見した。そしてその報告書が、右翼思想家とされていた大川周明のもと、東亜経済研究所で戦時中にイスラーム研究を行っていた井筒俊彦によるものであることを知り、井筒俊彦という人が単なる学者の域をこえていたことを知る。これは司馬遼太郎との対談ではじめて明らかにされたことだ。
そしてまたサルマン・ラシュディーの『悪魔の詩』を日本語訳したために、勤務先の筑波大学のキャンパスで暗殺された五十嵐一氏が、イランのテヘランの王立アカデミーにいた井筒俊彦のもとで研究活動を行っていたこともあとから知った。
これ以上書いても意味はない。30年前から井筒俊彦の読者であったといいたいだけだ。
本書の著者である文芸評論家の若松英輔氏は、会社経営のかたわら、井筒俊彦のすべての業績を網羅してフォローしているだけでなく、さらには単行本や著作集にも収録されていなかった文章を探し出して『読むと書く-井筒俊彦エッセイ集-』に編集している。
『神秘哲学』の第二部の読者は知っていても、一般には知られざる一面であった、井筒俊彦におけるカトリック神秘主義への傾倒に大きな光をあてたことは大いに評価したい。
若松氏自身は井筒俊彦と同じく慶應義塾出身で、しかもカトリックだそうだが、同じくカトリック作家であった須賀敦子へのまなざしは十分に納得いく。だが、カトリックの枠にとらわれることなく、イスラームや仏教もふくめた諸宗教への目配りが素晴らしい。
特筆すべきは、天理教の内側にいた宗教哲学者・諸井慶徳(もろい・よしのり)の再発見と、浄土宗の内側からでてきた山崎弁栄(やまざき・べんねい)上人について最後に言及していることだ。
偶然の機会によって古書店で出会ったという諸井慶徳の著作は、しかるべき人に発見された、しかるべき本であったといえよう。この知られざる宗教哲学者とその主著への言及が本書をより深く、より豊かなものにしてくれた。諸井慶徳と井筒俊彦の接点はなかったようであるが。
そしてまた山崎弁栄上人。恥ずべきことに、わたしは若松氏の文章を読むまで山崎弁栄上人にはまったく注目していなかった。数学者・岡潔(おか・きよし)が晩年に念仏に専念していたことは知られてるが、岡潔の先生の先生が山崎弁栄だったのだ。
「超在一神的汎神教」の境地に至った霊性の仏教者・山崎弁栄。著者は、井筒俊彦の最終的な境地をそこにシンクロさせている。
哲学とはギリシア語で愛知の学(ふぃろ・そふぃあ)である。それは、すべからく神秘哲学たるべきこと、絶対者との合一であり、魂についての学である。叡智世界に至る修道の道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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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書は井筒俊彦の全体像をつかもうとした試みであり、井筒俊彦の生涯と作品を読み込むための入門書にもなっている。日本が生み出した真の哲学者である井筒俊彦の全体像を知るためにぜひ読むことをすすめたい労作だ。
そこには膨大な知の集積とともに、それを突き抜けて探求された、たぐいまれな実り豊かな精神世界が待っているはずだ。
目 次
まえがき
第1章 『神秘哲学』-詩人哲学者の誕生
無垢なる原点
スタゲイラの哲人と神聖なる義務
預言する詩人
上田光雄と柳宗悦
第2章 イスラームとの邂逅
セムの子-小辻節三との邂逅
二人のタタール人
大川周明と日本イスラームの原点
殉教と対話-ハッラージュとマシニョン
第3章 ロシア、夜の霊性
文学者の使命
見霊者と神秘詩人-ドストエフスキーとチュッチェフ
前生を歌う詩人
永遠のイデア
第4章 ある同時代人と預言者伝
宗教哲学者 諸井慶徳
シャマニズムと神秘主義
預言者伝
第5章 カトリシズム
聖人と詩人
真理への実践
キリスト者への影響-遠藤周作・井上洋治・高橋たか子
第6章 言葉とコトバ
イスラームの位置
言葉と意味論
講義「言語学概論」
和歌の意味論
第7章 天界の翻訳者
コーランの翻訳
「構造」と構造主義
イブン・アラビー
老荘と屈原
第8章 エラノス-彼方での対話
エラノスの「時」
オットーとエリアーデ
伝統学派と久遠の叡智
第9章 『意識と本質』
「意識と本質」前夜
東洋へ
精神的自叙伝
「意識」と「本質」
コトバの神秘哲学
第10章 叡知の哲学
仏教と深層心理学-「無」意識と無意識
文学者の「読み」
真実在と万有在神論-西田幾多郎と山崎弁栄
あとがき
引用文献一覧
井筒俊彦年譜
著者プロフィール
若松英輔(わかまつ えいすけ)
1968年新潟生まれ。慶應義塾大学文学部仏文学科卒。批評家。㈱シナジーカンパニージャパン代表取締役社長。「越知保夫とその時代」で第14回三田文学新人賞評論部門当選。その他の作品に「小林秀雄と井筒俊彦」、「須賀敦子の足跡」など。『小林秀雄-越知保夫全作品-』、『読むと書く-井筒俊彦エッセイ集-』を編集。2010年より、三田文学に「吉満義彦」を連載中。
井筒俊彦の主著は岩波文庫に収録されており、いまでは簡単にアクセスすることができる。
そのなかでも『意識と本質-精神的東洋を索めて-』は、日本語で書かれた哲学書のなかでは一級品といっていいだろう。
禅仏教の修行から始まり、セム的世界をキリスト教、ユダヤ教、イスラームと経て、同時に古代ギリシアの神秘主義哲学、カトリック神秘主義を経て、最終的には大乗仏教思想の研究に至る生涯をそのまま書きつづったような井筒哲学のエッセンともいうべき内容である。豊饒の海というべきであろう。
しかも、シャマンの託宣をそのまま文字にしたような井筒俊彦の文章は、学術論文でありながらほとんど散文詩に近い。
その意味では慶應義塾の学部時代の師であった英文学者で詩人であった西脇順三郎、そして学部時代にその盟友である池田弥三郎とともに聴講した国文学者で歌人であった折口信夫(=釈超空)をも髣髴(ほうふつ)させるのがある。
意味はすぐにはわからなくても、ぜひその文章を味わってほしいと思う。
PS 『井筒俊彦-叡知の哲学-』の英訳版が2014年1月に出版
英訳版の Toshihiko Izutsu and the Philosophy of Word: In Search of the Spiritual Orient が LTCB International Library Selection No. 33 として、International House of Japan(国際文化会館)から2014年1月に出版されている。
英訳者のジャン・コーネル・ホフ(Jean Connell Hoff)氏が「井筒哲学を翻訳する」(『井筒俊彦-言語の根源と哲学の発生-(KAWADE道の手帖)』(河出書房新社、2014 所収)で書いているように、二年間をかけて完成したものだという。
LTCB International Library は、LTCB(=Long-Term Credit Bank of Japan:日本長期信用銀行)が国有化とその後の外史への売却によって消滅して以降も、社会貢献事業として存続しているようだ。いまは亡き LTCB の関係者としては、なんだか不思議な感じもしている。
機会があれば英訳版を覗いて見てみたいものだ。
(2014年11月3日 記す)
<関連サイト>
たまには「難解」に挑んでみたい-世界的な学者の業績・井筒俊彦の全集を読む(福原義春 日系ビジネスオンライン 2014年2月4日)
・・このような文章を書けるのは経営者出身とては福原義春さん(元資生堂会長)くらいだろう。こういう重厚な「教養」の持ち主がもっと増えるといいのだが・・・
井筒俊彦の主要著作に見る日本的イスラーム理解 (池内 恵、『日本研究.36』(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2007年))
・・イスラーム思想のなかでも、規範としての法学ではなく、「神秘哲学」に主体的な関心の中心を置いていた井筒俊彦のイスラーム理解。若手イスラーム研究者による、井筒俊彦の主体的関心のありかとそれが近代日本の知識人のイスラーム理解に与えた影響を論じた重要論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