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7

알라딘: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알라딘: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은이)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10-06-19초판출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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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반양장본
344쪽
152*223mm (A5신)
482g
ISBN : 978898394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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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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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 규슈.시코쿠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이벤트


<여행할 땐 책> 김남희 작가와의 만남


12월 특별 선물! 본투리드 보온병(이벤트 도서 포함, 국내서.외서 5만원 이상)


이 시간, 알라딘 굿즈 총집합!





책소개
북으로 홋카이도에서 혼슈.규슈.시코쿠를 거쳐 남으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2년에 걸쳐 일본의 걷기 여행 코스들을 찾아 헤맨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신작. 한 나라에 대한 여행기로서는 이례적으로 2권으로 묶어내야 했을 만큼 일본 열도 전역의 주요 트레킹 코스를 총망라했다. 김남희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유려한 문체와 정감 넘치는 입담으로 마치 일본의 시골길을 직접 거니는 듯한 풍성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홋카이도에서는 꽃의 부도(浮島)라 불리는 ‘레분토’, 일본의 마지막 비경으로 세계적인 불곰 서식지인 ‘시레토코’, 일본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꼽히는 ‘후라노’와 ‘비에이’를 돌며 천상의 화원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혼슈에서는 3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우뚝 솟은 북알프스 ‘다테야마’, 후지산의 경이로운 면모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묘진가타케’와 ‘미쓰토게야마’(하코네)를, 규슈에서는 수령 1천 년이 넘는 삼나무만 2천여 그루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 섬’ 등을 오르며 자연의 장대한 야성미에 흠뻑 젖었다. 유혹하듯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으로 가 일본 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다.


목차


1부 홋카이도.여름
고운 님 앞세우고 말없이 걷고 싶은 꽃길 _ 레분토
호기롭게 시작한 야영은 하룻밤 소동으로 끝나고 _ 리시리토
불곰을 기다리며 울창한 원시림을 거닐다 _ 시레토코
아쉽게 놓쳐버린 일본 최대의 습지 산책 _ 구시로 습원
겨울눈 위로 여름꽃 피어나는 홋카이도의 지붕 _ 다이세쓰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든 거대한 조각보 _ 후라노와 비에이

2부 혼슈.가을
이글거리는 분화구와 깎아지른 절벽의 야성적 매력 _ 북알프스 다테야마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도시 _ 마쓰모토
에도 시대 나그네가 되어 찾아간 역참 마을 _ 쓰마고와 마고메

3부 혼슈.늦가을
눈 내리는 새벽길을 지나 가을의 절정 속으로 _ 닛코 센조가하라
긴긴 기다림 끝에 벼락처럼 나타난 후지산 _ 하코네 묘진가타케와 미쓰토게야마
고요한 가을빛처럼 이 땅에 평화가 내려앉기를 _ 히로시마 산단쿄
단풍과 함께 타들어가는 절간의 오후 _ 교토 다이몬지 산

4부 혼슈.겨울에서 봄으로
가도 가도 그리운 옛 도읍 _ 교토 아타고 산과 아라시야마
첨단 기술과 미신이 공존하는 수수께끼의 나라 _ 교토 구라마와 기부네, 히가시야마
경주를 닮은 옛 수도 _ 나라 공원과 도다이지
벗들과 함께한 문화유산 답사 _ 가마쿠라 덴엔 하이킹과 다이부쓰 하이킹
짧지만 강렬하게 벚꽃처럼 피고 싶어라 _ 교토 오하라와 기누카케노미치
접기


책속에서



P. 21 곧 어두워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해 여덟 시간 코스로 들어선다. 이곳부터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가 흘깃 얼굴을 드러낸다. 풍경에 취해 걸음은 절로 느려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바람에 몸을 내맡긴 꽃들과 꼭 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흙길, 엎어놓은 ... 더보기
P. 37 홋카이도를 떠올릴 때면 늘 겨울의 눈 쌓인 풍경이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겨울, 삿포로와 오타루를 여행했다. 겨울의 홋카이도는 듣던 대로 눈의 나라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고 굵은 눈발이 하루 종일 흩날리곤 했다. 흔적도 없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는 폭설은 경이로웠다. 눈은 쌓이고 또 쌓여 홋카이도 전체를 설국으로 만들고 ... 더보기
P. 118~119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조건은 이렇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곳. 산으로 둘러싸인 곳.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규모. 너무 번잡하지도 너무 적막하지도 않은 분위기. 도시로서의 편리함을 갖추었지만 미적 품격도 느껴지는 곳.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 마쓰모토는 그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이 도시는 동서남북이 모두 산에... 더보기
P. 178~179 에이칸도를 나와 ‘철학의 길’로 접어든다. 주택가 한가운데 비와코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 길이다. 붉게 물든 벚나무가 늘어선 양쪽으로는 예쁜 가게며 카페, 식당이 눈길을 끈다.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여름밤에 이 길은 또 얼마나 정겨울까. 이 길이 철학의 길로 불리게 된 이유는 교토 대학의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 ... 더보기
P. 198~199 오늘은 나 혼자 교토를 돌아다니는 날. 집에서 가까운 아라시야마로 향한다. 아라시야마 역에 내려 도게쓰쿄(渡月橋)를 건넌다. 오이가와 강 위에 걸린 이 다리는 ‘달님이 건너는 다리’라는 예쁜 이름을 지녔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1272년, 나들이에 나섰던 천황이 “환한 달이 다리를 건너가는 듯하구나”라고 탄복한 후 새 이름을...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남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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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 다른 나를 찾고 싶다는 갈망, 더 많이 감사하고, 좀 더 겸손하고, 더 자주 웃는 자신을 보고 싶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멀리 갈 수 없을 때도 책을 읽고, 멀리 떠나가서도 책을 읽는 그녀는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 말한다. 너무도 매혹적이라 책을 읽다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 책, 삶을 바꾸는 한 번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 오롯이 책을 위해 떠나는 여행…. 이 책은 그렇게 여행지와 그녀를 연결해준 책에 관한 이야기다. 읽다 보면 떠나고 싶고, 읽다 보면 또 ... 더보기


최근작 : <여행할 땐, 책>,<길 위에서 읽는 시>,<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총 24종 (모두보기)
인터뷰 : 자유로운 삶과 결혼한 도보여행가 - 2008.06.24
SNS : //twitter.com/walkingonmyway


Editor Blog
[7월 1주] 돌아온 이야기꾼, 황석영 장편 <강남몽> 출간 l 2010-07-02

강남몽황석영지음 / 창비"황석영이 아니면 불가능할, 압도적 서사로 그려낸 강남형성사"강남이라는 단어가 지명이 아닌, 어떤 상징으로 사용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꿈처럼 무너져 내린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출발한 압도적인 이야기를 들고 황석영이 돌아왔다. 연예계에서 시작해 화류계에서 꽃을 피운 김진의 세컨드 박선녀, 만주 벌판의 밀정에서 출발해 친일의 총아로...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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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불량소년, 날다>,<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아이를 빌려드립니다>등 총 98종
대표분야 : 청소년 소설 11위 (브랜드 지수 110,70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풍경에 취해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2년 만에 펴낸 걷기여행 신작

북으로 홋카이도에서 혼슈.규슈.시코쿠를 거쳐 남으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2년에 걸쳐 일본 최고의 걷기 여행 코스들을 찾아 헤맨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신작. 한 나라에 대한 여행기로서는 이례적으로 2권으로 묶어내야 했을 만큼 일본 열도 전역의 주요 트레킹 코스를 총망라했다. 김남희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유려한 문체와 정감 넘치는 입담으로 마치 일본의 시골길을 직접 거니는 듯한 풍성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최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일본 여행기들이 주로 접근이 용이한 유명 도시나 관광명소를 무대로 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탐색해 들어간다. 보통 일본 하면 도쿄, 홋카이도 하면 삿포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에 그런 유명 도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들을 찾고 싶었고,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여행한다는 건 진한 화장을 한 게이샤의 무표정한 얼굴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일 같았다. 몸에 밴 친절과 예의 속에 감춰진 진심을 들여다보고픈 갈망. 그런 내 시도는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길 위에서 만난 일본은 매혹적이었다. 사람들은 상냥했고, 음식은 담백했고, 시골 마을 구석구석에 전통문화가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 놀랍도록 잘 보존된 자연 환경이 부러웠다. 여행을 할수록 나는 이 나라가 좋아졌다. 가까이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다니, 이토록 거대한 자연이 남아 있다니……. (‘프롤로그’에서)

처음엔 사전 준비 없이 그냥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다. 시코쿠만 걸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본 일본은 그동안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일본의 매혹적인 풍경들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보니 2년 사이에 아홉 차례나 일본을 드나들게 되었다. 정작 오랫동안 꿈꿔온 중남미 여행 계획은 뒷전으로 미룬 채.
홋카이도에서는 꽃의 부도(浮島)라 불리는 ‘레분토’, 일본의 마지막 비경으로 세계적인 불곰 서식지인 ‘시레토코’, 일본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꼽히는 ‘후라노’와 ‘비에이’를 돌며 천상의 화원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혼슈에서는 3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우뚝 솟은 북알프스 ‘다테야마’, 후지산의 경이로운 면모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묘진가타케’와 ‘미쓰토게야마’(하코네)를, 규슈에서는 수령 1천 년이 넘는 삼나무만 2천여 그루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 섬’ 등을 오르며 자연의 장대한 야성미에 흠뻑 젖었다.
어디 자연뿐인가. 도시 전체가 미적 품격을 갖춘 ‘마쓰모토’, 세월을 거슬러 에도 시대로 돌아간 듯한 역참 마을 ‘쓰마고’와 ‘마고메’, 일본 정원의 교과서로 불리는 소겐치 정원이 있는 ‘덴류지’와 대나무숲길 ‘지쿠린’, 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훌륭한 관광지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후인’,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이시다다미 돌길’(오키나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견되지만 오셋타이라는 특유의 공양 전통이 살아 있는 ‘시코쿠 순례길’ 등은 일본 문화의 단아하면서도 웅숭깊은 매력으로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자, 이래도 일본에 안 갈 테야?” 하고 유혹하듯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으로 가 일본 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꼼꼼한 성찰, 걷기 여행에 관한 빛나는 아포리즘은 덤이다. 접기

집중수행이 끝난 뒤 나는 물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요?” “네...



 집중수행이 끝난 뒤 나는 물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요?” “네...





7 hrs ·



집중수행이 끝난 뒤 나는 물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정말 몰라요?”
“네 저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아이를 사랑할 때 어떻게 해요?”
“저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줍니다. 시간과 마음. 물질을 아무 조건없이 계산없이 그냥 줍니다.”
“아이에게 하듯 본인에게 그렇게 하시면 돼요”

따귀를 맞은듯 잠시 얼얼해졌다. 이 기간동안 내스스로 등에 얼마나 많은 짐을 지웠는지 어린시절 부모의 책임을 떠안으며 그들의 결핍된 에고와 신념에 빨려 오래도록 허덕였는지 또 내 것이 아닌 투사에 휘둘리고 육체의 감각을 외면하고 억압해왔는지 그리고 손발을 노예처럼 다루며 몸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자신을 가꾸는데는 인색했는지 보았다.

문을 열면 거기 묻어두고 밀쳐두었던 상처들이 그대로 있었다. 다음 문을 열면 거기 그대로 불안해하는 아이가 다음문을 열면 두려워하는 처녀애가 상처받은 얼굴로 아무데도 가지않고 그냥 거기 그대로 앉아있다.
예기치못한 복병들처럼 잠복해있다 덮쳐 들어오는 이미지들에 눈물을 여러번 쏟아내고 들었던 물음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랑을 모르겠다는 마음을 아주 오랫동안 품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 전서 13장(성경)을 묵상하며 자기사랑에 대해 느낌 점을 기록해둔다.

자기사랑

사랑은 언제나
자신에 대해 오래 참을줄 알고 기다리며
사랑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사랑은 타인이 가진것을 시기해 자기를 열등하게 만들지 않으며 타인과 비교해 상대적인 우월감으로 자기 에고를 확장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상대에게 결핍을 채우려 들지 않는다.
사랑은 자기의 몸을 돌보며 아끼고
사랑은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고 존중한다.
사랑은 상호연결된 전체속의 개별적인 나를 인식할 줄 알고
사랑은 세상의 불의와 불공정과 타협하지않고 진실을 추구한다.
사랑은 자신에 대한 자책과 분노를 멈추며
사랑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수용한다.
사랑은 실패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흔들려도
자신에게 희망의 가능성의 보며
진리를 향한 자신의 참된 성장을 기뻐한다.

그리고 사랑은 지금 이 순간 숨을 느끼고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것이다.

원본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13장1-13)

2019/12/10

조선적 일본군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적 일본군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선적 일본군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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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내용이나 감정적인 표현은 없는지,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여러 관점이 편견 없이 공정하게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2016년 7월)


육군특별지원병령(1938년 칙령 제95호)를 게재한 1938년 2월 26일조선총독부 관보

조선적 일본군인(朝鮮籍日本軍人) 또는 조선인 일본병(일본어: 朝鮮人日本兵) 또는 조선계 일본군인(朝鮮係日本軍人)은 일본 제국 육해군에 소속되어 군무원으로 복무한 조선인 군인, 포로 감시원 등 군인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한 군속 등이며, 그 중에서도 적극적인 협력자를 가리켜서는 조선인 BC급 전범(朝鮮人BC級戰犯)이라고도 부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군과 연합군에 의해 BC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의 처벌을 받았다.


목차
1개요
2모집
3군인 군속 통계
4일본군의 조선인 장성
4.1중장
4.2소장
5연표
6배상 및 보상
7참고 자료
8같이 보기
9각주
10외부 링크
개요[편집]

처음에 육군에 조선인이 대규모로 도입된 것은 1910년에 창설된 헌병보조원 제도에서였다. 헌병 보조원은 육군 일등을 졸업하고, 이등 졸업에 준하는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군속이었다. 1919년에 헌병경찰제도가 폐지되면 헌병보조원은 조선총독부 경찰의 경찰관으로 전관되었다. 1938년에 육군 특별지원병 제도, 1943년에 해군 특별지원병 제도가 각각 도입되었다.

특별지원병 제도 시행 이전에는 조선인이 일반 사병으로 육해군에 입대할 수 없었으며, 조선인 일본 군인은 홍사익으로 대표되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한 자, 이병무처럼 구 대한제국 군대에서 조선군인으로서 일본 제국 육군에 전입한 자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 해군사관학교, 해군기관학교 등 해군 사관을 양성하는 여러 학교는 시종 조선인의 입학을 인정하지 않았다. 1944년부터 징병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군인, 군속으로 일하게 된 조선인 군인, 군속은 ‘적국에 부역한 신민’으로 간주하여 일본인으로서 재판을 받았다. 상관의 명령에 따른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제받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조선인, 대만인의 전범을 만들어 낸 요인이 되었다. 버마 철도(태면철도, 泰緬鐵道) 건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정부가 〈제네바 조약〉을 지키겠다고 연합국 각국에 약속하면서 그에 따른 적절한 처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약에 반하는 명령, 처우, 실행 책임을 말단 군속에게도 물은 것이다.

조선인 전범은 148명 중 군인은 3명이었다. 1명은 홍사익 중장(사형)이었으며, 두 사람은 지원병이었다. 이 밖에 통역병도 있었던 조선인 16명이 중화민국국민당 정부에 의해 심판을 받았고, 그 중 8명은 사형을 당했다. 3,016명의 한국인 포로감시원 중 129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들 129명 전원이 포로수용소의 감시원으로 징용되어 타이, 자바, 머레이의 포로수용소에 배속된 군속이었다. 이들 중 14명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또한, 적국의 부녀자를 비롯한 민간인을 억류한 자바군 억류 장소의 감시에도 조선인 군속이 맡았기 때문에 네덜란드 법정에서도 전범이 되었다.[1]

조선인, 대만인 전범은 일본인이 ‘내지 송환’이 될 때 함께 일본으로 송환되어 스가모 구치소에 수용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일본인 전범은 형집행을 지속하도록 했지만, 조선인 전범 등의 국적이 이미 일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인과 대만인은 예외로 했다. 따라서 일본 정부에 석방을 요구했지만,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는 구금 당시 일본 국민이었기 때문에 형기를 마쳐야 한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가석방된 조선인 전범은 외국인으로 취급되어 아무런 생활 지원도 받지 못해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가석방 상태라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의지할 기반조차 없어서 온갖 차별에 시달리며 막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고, 생활고와 비관으로 자살한 이들도 있었다.[2]

한국인 BC급 전범 기소자들은 1955년 4월 동진회(同進會)를 결성하고 명예회복과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 입법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쳐왔으며, 60주년이 된 2015년 4월 1일 현재 생존자는 이학래(90세, 일본 동진회 회장) 씨등 5명에 지나지 않는다.[3]

일본 통치 하에서 군무원으로 들어가 전몰자가 된 한반도 출신자 가운데 조선인, 일본군을 포함 약 2만 1000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다.
모집[편집]
인원[4]연도 지원자 입소자 선발율 지원배수
1938년 2946명 406명 16.2% 7.3배
1939년 12,348명 613명 4.9% 20.2배
1940년 84,443명 3,060명 3.6% 27.6배
1941년 144,743명 3,208명 2.2% 45.1배
1942년 254,273명 4,077명 1.6% 62.4배
1943년 303,394명 6,000명 1.9% 50.6배

군인 군속 통계[편집]

일본 후생노동성 (1990년, 1993년 반환 명단, 당시 후생성)의 통계[5] 에 따르면 조선인 군인, 군속은 24만 2,341명이며, 그 중 2만 2,182명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 또는 행방불명이 되어 귀국하지 않았다.
표1 각 지역별 인원과 사망자지역 분류
동원 복원 행방불명 또는
전사 행방불명 또는
전사율
조선[6] 전체
242,341명 240,159명 22,182명 9.2%
군인
116,294명 110,116명 6,178명 5.3%
군속
126,047명
110,043명
16,004명
12.7%

대만 전체 207,183명 176,879명 30,304명 14.6%
군인 80,433명 78,287명 2,146명 2.7%

군속 126,750명
98,590명 28,160명 22.2%

일본 본토 전체 7,814,000명 5,514,000명 2,300,000명 29.4%


BC급 전범의 재판의 결과[7]
표2. BC급 전범의 재판지역 유죄 사형
조선 129명 14명[8]
대만 173명 26명
일본 본토 5369명 922명

일본군의 조선인 장성[편집]
중장[편집]
홍사익(洪思翊)
조동윤(趙東潤)
이병무(李秉武)
조성근(趙性根)
니시카와 당이치 (西川潭一) (어담(魚潭)에서 개명)
이은(李垠)
소장[편집]
이희두(李煕斗)
우쓰모니야 긴고 (宇都宮金吾) (김응선(金應善)에서 개명)
왕유식(王瑜植)
연표[편집]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을사조약 (1910년 조약 제4호)
1917년 7월 20일 군사부조법 시행 (1917년 7월 19일 조선총독부법률 제1호, 칙령 제204호)
1918년 조선군인 및 조선군인 유족 부조령 (1918년 칙령 제299호)조선군사령부 조례 (1918년 군령 육 제4호)
1921년 조선군 군법 회의에 관한 법률 (1921년 법률 제86호)
1938년
3월 3일 육군특별지원병령 시행 세칙 (육군 정령 제11호)
4월 1일 국가총동원법 (1938년 법률 제55호) → 국가총동원법 및 전시 응급조치법 폐지 법률 (1945년 법률 제44호) 초록
4월 2일 조선총독​​부 ·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 규정조선총독​​부 · 육군병 지원자 훈련소 학생 채용 규칙 → 육군병 특별 지원

5월 4일 공포 (5월 5일 시행) 국가총동원법, 조선, 대만 및 사할린에 대한 시행 건 (1938년 칙령 제316호)
1941년 조선총독부 상이군인 요양소 관제 (1941년 칙령 제313호)
1943년 전시행정특례법 및 허가 인가 등 임시조치법에 대한 조선, 대만 및 사할린 시행 건 (1943년 칙령 제242호)7월 27일 해군 특별지원병령 (1943년 칙령 제608호)
1944년 조선 징병 검사 ⇒ 훈련 중에 종전
10월 28일 군수회사법 조선 및 대만에 대한 시행 건 (1944년 칙령 제605호) ← 군수회사법 (1943년 10월 31일 법률 제108호)
1945년 군사특별조치법, 조선과 대만 뉴 시행 스루노 건 (1945년 칙령 제256호)군사 특별조치법, 조선과 대만 시행에 대한 건 (1945년 칙령 제256호)전시 비상조치법, 조선과 대만 시행에 대한 건 (1945년 칙령 제377호)
1946년 조선인 중화민국인, 일본인 및 본적 북위 30도 이남(쿠치노시마도 포함) 가고시마 현과 오키나와 현에 있는 자 등록령 (1946년 후생, 내무, 사법성 령 제1호)
1951년
9월 8일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체결 (장소 : 샌프란시스코)
1965년한일기본조약〉 체결 (1996년 12월 18일 발효)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 협력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협정 체결 (1996년 12월 18일 발효)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른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 (법률 제144호) 공포 (1996년 12월 18일 발효)
1987년 대만주민 전몰자의 유족 등에 대한 조위금 등에 관한 법률 (법률 제105호) 공포, 시행
배상 및 보상[편집]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발효에 따라 일본 국적을 이탈한 조선인 일본군 (군속 포함)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부에서 1965년한일 기본 조약 및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 협력에 관한 일본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 제2조의 실시에 따라 〈대한민국 등의 재산권에 대한 조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본래 대한민국이 그 보상의 의무가 다양한 역사적 경위와 정치적 사정을 감안하여 평화 조약 국적 이탈자 등 〈전몰자 유족 등에 대한 조위금 등의 지급에 관한 법률〉 (법률 제114호 (1,2,6,7))에 의해 다음의 내용으로 조위금, 위로금을 지급했다. 또한 일본은 재일 한국인, 일본군 군인 군속 등에 대한 보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 경제 협력 협정에 의해 법적으로는 한일 양국 간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조약을 근거로 하여 일본 법원은 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들이 제기한 모든 소송에서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1991년 11월 12일 한국, 조선인 BC급 전범 피해자 7명은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져야 할 전쟁 책임을 대신했다고 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다.
1996년 9월 9일 도쿄 지방 법원에서 제1심 판결 청구를 전면 기각
1998년 7월 13일 항소심 판결 - 원고 청구 기각
1998년 10월 19일 대법원에 상고
1999년 12월 20일 대법원 판결 언도 - 상고 기각 · 판결 확정
참고 자료[편집]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이호경, 동아시아, 2007년 08월 15일 출판, ISBN 8988165845원서는 《朝鮮人BC級戰犯の記錄》 內海愛子
《조선인 BC급 전범》 우쓰미 아이코(內海愛子, 경초서방, 1982), (이호경 역, 동아시아출판사)
《해방 후 BC급 戰犯이 된 한국인 포로 감시원》(『한국근현대사연구』제29집, 2004년)
《BC급 전범재판과 조선인》 (김용희 『法學硏究』 제27집, 2007)
《해방 후 BC급 戰犯이 된 한국인 포로감시원 = 韓國人부虜視員に對したBC級戰犯處理と問題點》, 채영국 『한국 근현대사 연구(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Vol.29 No.- (2004)
《해방 전후 자바지역 한국인의 동향과 귀환활동》, 김도형 『한국 근현대사 연구』Vol.24 No.- (2003)
《한국인 B·C급 전범’ 재판과 피해보상 청구 소송》, 김은숙,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2001)
《戰爭과 犯罪》(War and Crime), 이동과, 서원대학 논문집, Vol.10 No.- (1981)
같이 보기[편집]
BC급 전범
각주[편집]

한국인 BC급 전범과 전범재판에 대하여 -재판과정을 중심으로-, 김범식, 2019년 10월 1일 확인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제5화, 누가 이 청년을 전범으로 만들었는가?) Archived 2015년 9월 23일 - 웨이백 머신,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2015년 3월 27일, 2015년 9월 23일 확인, 링크오류 수정 2019년 10월 1일
전범 멍에, 식민지 조선인 모임 동진회의 슬픈 환갑잔치, 2015년 4월 1일 연합뉴스
『朝鮮及台湾ノ現状/1 朝鮮及台湾ノ現況 1 REFCODE B02031284700』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Ref.B02031284700
第071回国会 社会労働委員会 第16号 昭和四十八年七月三日(火曜日)午前十一時十五分開会 (参議院)議事録 政府委員答弁より作成
1990년 후생성
중국과 소련 분 제외
ここでは군인군속だけを計上している。その他의 정의によれば、23명
외부 링크[편집]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선인 BC급 전범 148명 (일요서울)
전범이라 낙인 찍힌 조선 청년들, 알고 계세요?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