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5

동아시아 속의 한국 불교 사상가

동국대학교 - 불교문화연구원

제목2011년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속의 한국 불교 사상가”
등록일2012.07.30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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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아시아 속의 한국 불교 사상가

일시

2011년 12월 23일(금) 10시 ~ 18시

장소

대한불교조계종 역사문화기념관(조계사 경내)

주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원장 김종욱), 인문한국(HK) 연구단

후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일정

 

1. 기조발제: ‘Korean Buddhist Thought in East Asian Context

발제로버트 버스웰(미국, UCLA)

2. 주제: ‘원효의 화쟁론과 종밀의 원융설

발표양웨이종(중국남경대 교수)

3. 주제: ‘동아시아 화엄사상에서 의상과 법장의 위상

발표김천학(한국금강대 교수)

4. 주제: ‘원측과 규기신라 유식과 당대 유식의 동처와 부동처

발표고영섭(한국동국대 교수)

5. 주제: ‘승랑과 승조

발표김성철(한국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6. 주제: ‘지눌과 도겐남송·고려·일본 13세기의 동아시아 선종

발표나카지마 시로(일본하나조노대 교수)

7. 주제: ‘제국에 맞서기니시다와 만해

발표허우성(한국경희대 교수)

독도를 누가 지킬 수 있나 군인인가, 시인인가? 2008

미디어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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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누가 지킬 수 있나
군인인가, 시인인가?

2008-08-14 (목) 00:00

이학종 | urubella@naver.com


허우성 교수(경희대)가 ‘재미있는’ 제목의 논문 한 편을 썼다. 어쩌면 재미라는 표현보다는 ‘의미심장한’, 아니면 ‘튀는’ 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논문의 제목은 ‘누가 독도를 지킬 수 있을까. 시인인가 군인인가?’다. 일단 제목부터가 심상찮다. 사실 이 제목이 기자가 이 논문을 읽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허 교수의 발제는 관념적이고 감정적이고,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는 결코 독도를 지킬 수 없으며, 반드시 일정한, 적어도 자기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세력을 갖추어야 함을 만해의 일관된 소신과 입장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이 시인들이 만해마을 옆을 흐르는 하천의 돌들 만큼이나 많이 운집한 만해축전의 ‘21세기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됐으니, 허 교수의 이 못말리는 ‘튐’은 용기인가 만용인가?

허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국가’편에서 ‘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하자고 주장한 이래 시인의 역할에 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플라톤을 대변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어 시인들의 감상적 안일함을 논박한다.

“진리에 비해 저열한 것을 제작함으로써 그(시인)도 화가와 같으며, 혼의 최선의 부분이 아닌 같은 수준의 (저열한) 부분과 함께 지냄으로써 이 점에서 닮게 되네. 이래서, 훌륭하게 다스려질 국가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이제 정당하게 되었는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대변해 시인을 ‘화가처럼 실재 이하의 것을 제작하고 혼의 저열한 부분을 일깨우고 강화하면서 이성적인 부분을 파멸시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인은 측정하는 것, 계산하는 것, 계량하는 작용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지적 능력이 모자라다는 것인데, 사람의 혼에도 최선의 부분, 곧 이성적 부분으로 헤아리는 기능이 있고, 이것이 개인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나 다른 저열한 부분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민감한 대목을 논문에서 소개한 허우성 교수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막연한 절창만 나열할 것이 아니라 근현대 최고의 시인 만해가 주창한 것처럼 세력의 중요성을 오늘날의 적지않은 시인들이 간과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파헤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허 교수는 예서 그치지 않고 2005년 역시 독도문제가 불거졌을 때, 독도를 찾아간 시인들의 모습을 자신의 논문으로 불러들인다.

“동해바다에 있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2005년 한국의 시인들은 떼를 지어 배를 타고 독도를 둘러보고 시집 한 권을 남겼다. 강은교 외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인들이 펴낸 이 시집의 제목은 『내 사랑 독도: 독도 바위를 깨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문학세계사)이다. 이 시집에서 민족시인 고은을 비롯해 강은교, 신경림 등 시인 44명은 이구동성으로 독도사랑을 외치고 있다. 시인들이 독도를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우리 땅, 조국, 우리의 혼, 겨레, 막내 자식, 아기, 혈육, 피, 국토의 분신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마치 주석처럼 덧붙인다.

“한국의 시인들은 신체의 일부인 독도를 지키자고 민족감정을 부추기고 의분과 용기를 일으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태부족이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교술과 해군술의 강화도 요구했어야 했다. 독도가 우리 자체의 일부임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킬 만한 세력을 양성할 대책도 수립했어야 했다. 의분만으로 그치게 되면, 그것은 자칫 우리에게 실제로 없는 힘이 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파토스만 부추기고 계산하고 따지는 이성적인 부분은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런 시인은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이다.”

허우성 교수는 결론을 내리는 부분에서 다시 만해를 끌어들인다.

“망국에 대한 만해의 울분과 한은 깊었다. 그는 조선이 패배자가 된 일에 대해서도, 그런 처지를 견디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끓어오르는 통분을 억제하지 못했다. 만해는 조선인에게 자유의 수호신인 세력이 없었으므로, 자유와 생명 그리고 민적(民籍)에의 권리를 빼앗겼다고 보고, 민족이 자신의 독립 국가를 세우고 영위해 나가는데 필수적인 세력을 갈망했고, 세력의 상징적 인물로 전략과 전술이 특출한 이순신과 을지문덕을 내세우기도 했다.”

요즘 만해를 계승한다고 하는 자들은 생명과 평화가 귀하다고 말하면서도 세력의 필요성에 대해 별로 발언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한 허 교수는 “생명과 평화는 칭송하는 것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오늘날 만해를 계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단정한다.

허우성 교수가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쓴 문장은 어쩌면 해당되는 시인들에 대한 뼈아픈 할과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기사를 맺는다.

“만해에게 강자와 채권자의 권리주장이 만들어 내는 인과의 힘은, 한겨울에 살을 에어 낼 것처럼 휘몰아치는 북풍과도 같았다. 만해는 그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동양 평화를 위해서라도 자기를 보존할 만한 세력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자들이 힘으로써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앗아가기 전에 그것들을 지키는 것은, 나중에 망국의 한을 품거나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것보다 백번 나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물어보는 것이다. 누가 독도를 지킬 수 있을까, 시인인가 군인인가? 그런데 오늘날 야만적 문명이 정말 끝이 났다면, 시만 읊어도 된다.”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 허우성

[기고]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

오피니언
시론·기고
[기고]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
허우성 경희대 철학과 명예교수·비폭력연구소장
입력 2019.05.07

티베트의 현대사는 비극적이다. 1950년 중국의 티베트 침략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점령과 탄압은 일본 제국의 조선 통치보다 더 잔인해 보인다.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1935~ )는 중국의 침략 이후로 100만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중국 정부가 실시한 정책의 결과로 죽었다고 했다. 그는 1957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의 자유 투사들에게 가한 잔혹 행위에 대해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십자가형, 생체 해부, 희생자들의 창자를 들어내거나 손발을 자르는 일은 보통이었다. 심지어 머리를 베거나 태워 죽이고, 죽을 때까지 때리거나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다." 출가 승려에 대한 추악한 성적 고문도 기록하고 있다.

민족주의자라면 대개 이런 비인간적 행위에 대해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고,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원수로 규정하기 쉽다. 그리고 중국의 압제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한 저항군을 의사(義士)로 추앙하고, 압제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한 100명 이상의 승려나 청년들의 혼을 높이 기릴 것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사뭇 다르다. 자서전에 슬픔은 있는데 분노가 안 보인다. '간디에 대한 찬사'라는 제목의 노벨상 수락 연설(1989년)에서도 그는 중국의 압제는 비판하면서도 다음의 기도로 연설을 마치고 있다. "나는 억압자와 친구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해, 인간적인 이해와 사랑을 통해 좀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우리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적대감이나 분노 없이 티베트의 참상을 세계에, 그리고 중국의 선량한 인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자서전을 썼다고 했다. 그에게 기록은 미래를 위한 것이지, 과거사에 대한 분노나 청산, 복수심 때문이 아니다.

그는 놀랍게도 때때로 중국 관리들을 명상의 대상으로 삼아 "그들의 분노, 의심,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 나의 사랑, 나의 자비, 나의 용서를 주었다"고 했다. 그에게 용서는 가해자가 반성하고 난 다음에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는 거다. 이런 사랑과 자비의 기술법은 불교에서 온 것이다. 그는 민족의 생존보다 티베트 영적 전통, 즉 불교 문화를 더 중시하고 있다. 중시하는 이유는 특히 그 문화를 말살하려는 중국인들을 위해서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불교를 세상에 다시 한 번 알렸다.

현대 한국인은 이제 일본을 가리키며 '우리'에 포함할 수 있을까? 달라이 라마에게 묻는다면 파안대소하며 '일본과의 갈등은 주로 과거사에 관한 것이고, 침략도 억압도 없는 지금, 함께 미래를 그려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반문할 것 같다. 민족주의라는 문화 유전자가 강고한 이유는 생존 욕구 때문일 거다. 하지만 평소에 이웃과 화평을 유지하는 것도 생존에 이롭다. 한국 정부가 비자 발급을 해주지 않아서 오지 못하는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며 우리 마음이 좀 넓어진다면,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내 안의 화(火)를 돌보고 안아주라 / 허우성 < 해외불교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내 안의 화(火)를 돌보고 안아주라 / 허우성 < 해외불교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내 안의 화(火)를 돌보고 안아주라 / 허우성
기자명 허우성   입력 2022.09.24 
추모 특집 / 틱낫한(釋一行) 스님

— 틱낫한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

필자는 틱낫한 스님(1926~2022)을 오래전에 친견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중반 하와이대학 유학 시절 캠퍼스 강당에서 스님의 강연을 듣고, 그 직후 스님이 베트남 난민들의 처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잠시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이 모두 명절을 맞이하는 아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마냥 싱글벙글하며 그를 환대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하나의 경이였다. 아,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니! 

이제 그분이 떠나셨다. 

필자는 그의 여러 책을 읽어보았고 The Sun My Heart를 《마음모음》(2004, 나무심는사람)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적도 있다. 여기서는 Anger: Wisdom for Cooling the Flames(2001, Riverhead Books, New York)에서 몇 부분을 골라서 번역 소개한다. 각자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화, 증오, 원한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보자는 의도다. 번역하면서 행복했다.


당신은 여전히 고통과 화의 기슭에 서 있다. 왜 당신은 이쪽을 떠나 저쪽 기슭으로, 화가 없는 평화와 해탈의 기슭으로 건너가지 않는가? 그곳이 훨씬 더 즐겁다. 왜 몇 시간, 하룻저녁, 심지어 며칠 동안 화를 내며 지내는가? 당신을 피안으로 재빨리 건네줄 수 있는 배도 있다. 그 배는 바로 알아차림의 호흡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찾고 고통, 화, 우울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것들을 향해 미소를 짓게 하는 수행이다. 우리는 이렇게 고통을 극복하고 피안으로 건너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유다.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화 · 절망 · 질투 · 미망이라는 정신적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 이 독(毒)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한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님을 배운다. 우리의 몸은 마음이고, 동시에 마음은 몸이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분리할 수 없으니, 화는 정신적 실재만이 아니다. 불교에서 몸과 마음의 형성을 나마루파(名色)라 부른다. 그것은 심리 · 신체(psyche-soma)라는 한 물건이다. 동일한 실재가 때론 마음으로 때론 몸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화, 좌절, 절망은 우리의 몸 그리고 먹는 음식과 관련이 크다. 화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먹고 소비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식사는 문명의 단면이다. 우리가 음식 재료를 만드는 방식, 음식의 종류, 먹는 방식은 문명과 많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은 평화를 가져오고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 안에 화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우리가 광우병에 걸린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속에 화가 들어 있다. …… 우리는 달걀이나 닭고기를 먹을 때 거기에도 화가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안다. 화를 먹으니까 화를 낸다. 오늘날 닭은 걷거나 뛸 수도 없고 흙 속에서 먹이를 찾을 수도 없는 대규모 현대식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 그들은 좁은 닭장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한다. 밤낮으로 서 있어야 한다. …… 닭들은 화가 나 있다. …… 우리는 먹는 음식으로 화를 키울 뿐만 아니라 눈과 귀와 의식을 통해 소비하면서도 화를 키운다. 문화상품의 소비도 화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소비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잡지에서 읽는 것,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에도 독성이 있다. 그 안에 화와 좌절이 들어 있다. ……신문 기사, 심지어 대화에 화가 많이 들어 있기도 하다.

화가 나면 당신 자신에게 돌아가 화를 잘 보살펴라 ……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마라. …… 집에 불이 나면 가장 급한 일은 집에 불낸 방화범으로 보이는 사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 불을 끄는 것이다. …… 당신이 그를 쫓는 동안 집은 홀랑 타버릴 것이다. …… 따라서 화가 났을 때 다른 사람을 계속 상대하거나 말다툼하거나 벌주려고 하면, 모든 것이 화염 속에서 타는데 방화범을 쫓아다니는 사람과 똑같아진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속의 불을 끌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를 주셨다. 즉, 알아차림 호흡과 알아차림 걷기, 화를 안아주는 방법, 우리 생각의 본성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사람도 아주 괴로워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매우 유용하며 부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것이다.

화는 아파서 울부짖는 아기와 같다. 아기는 아기를 안아줄 엄마가 필요하다. 당신은 당신의 아기인 화의 어머니다. 알아차림 호흡의 수행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아기를 안아주는 어머니의 에너지가 생긴다. 화를 안아주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기는 즉시 편안해진다.

저 엄마는 누구인가? 살아계신 부처님이시다. 알아차림의 능력, 이해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능력은 우리 안의 부처님이시다. 우리가 알아차림을 할 수 있을 때마다, 그것은 정말로 우리 안의 부처님을 만든다. 당신 안에 부처님이 있으면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당신 속의 부처님을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을 알면 만사형통이다.

당신의 화는 꽃과 같다. 처음에는 화의 본성도 원인도 모른다. 그러나 알아차림의 에너지로 그것을 안아주는 방법을 안다면 화는 자신을 열기 시작한다. 당신이 좌선을 하거나 호흡을 따라가거나, 걷기 명상을 하면 알아차림의 에너지가 생겨서 화를 안아줄 수 있다. 10∼20분이면 당신의 화는 당신에게 자신을 연다. 그러면 당신은 홀연 당신이 내는 화의 진정한 본성을 보게 될 것이다. 화는 단지 잘못된 생각이나 미숙함 때문에 일어났을 수 있다.

화가 나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당신의 모든 고통에 대해 상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당신 안에 있는 화의 씨앗이 고통의 주요 원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우리 모두의 의식 깊은 곳에 화의 씨앗이 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화의 씨앗이 사랑이나 자비의 씨앗보다 더 큰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과거에 수행을 하지 않아서 화의 씨앗이 더 클 수 있다. 우리가 알아차림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면, 우리가 얻는 첫 번째 통찰은, 우리의 고통과 불행의 주된 원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화의 씨앗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고통에 대해 그 사람을 비난하기를 멈춘다. 상대방은 부차적인 원인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부처님은 결코 우리에게 화를 억제하라고 조언하신 적이 없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으로 돌아가 화를 잘 돌보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내장, 위장, 간과 같이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멈추고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화나지 않은 척하지 마라. 고통받지 않는 척하지 마라. 상대가 당신에게 귀한 사람이면, 당신은 화가 났고 괴롭다고 고백해야 한다. 조용히 그에게 말하라.

화는 우리 안의 에너지 지대이면서 우리의 일부다. 우리가 돌봐야 하는 아픈 아기다. 가장 잘 돌보는 방법은, 화를 안아주고 돌볼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 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에너지 지대가 알아차림의 에너지다. 알아차림은 부처님의 에너지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고, 알아차림의 호흡과 걷기를 통해서 그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속의 부처님은 그저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재다. …… 에너지 지대 1은 화, 에너지 지대 2는 알아차림이다. 수행이란 알아차림의 에너지로써 화의 에너지를 인지하고 안아주는 거다. 폭력 없이 부드럽게 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화를 억누르는 행위가 아니다. 알아차림도 당신이고 화도 당신이므로, 스스로를 이들이 서로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면 안 된다. 알아차림은 선하고 옳고, 화는 악하고 틀렸다고 믿지 마라. …… 화는 부정적인 에너지이고 알아차림은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점만 인정하면 된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에너지를 돌보기 위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자아는 비아(非我)의 요소로 구성된다. …… 당신 자신 안에는 조상, 지구, 태양, 물, 공기, 당신이 먹는 모든 음식 등,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비아적 요소가 아주 많다. 이것들이 당신과 별개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들이 없으면 당신은 살 수 없다. 싸우고 있는 두 당사자들이 협상을 원하고, 양측이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상대 정당, 상대의 나라, 상대 국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 자신의 나라, 자신의 정당,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아와 타자는 별개가 아니다. 왜냐하면 양측의 고통, 희망, 화는 거의 같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비와 비폭력으로써 행동할 때, ‘둘이 아님(不二性)’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 당신은 아주 강해야 한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화가 나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처벌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 당신 안에서 자비심이 계속해서 성장하니 불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단신이었다. 그에게는 폭탄도 총도 정당도 없었다. 그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둘이 아님’의 통찰력, 자비의 힘에 따라 행동했다. 

알아차림의 에너지에는 통찰의 에너지와 집중의 에너지 두 가지가 있다. 집중은 우리를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주목하게 한다. 집중하면 보는 에너지는 더 강해져서, 통찰이라는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통찰은 항상 당신을 해방시키는 힘이 있다. 알아차림이 있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방법을 안다면 집중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중을 유지하는 방법을 안다면 통찰도 생긴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인지하고, 안아주고, 완화시킨다. 알아차림은 깊이 들여다보게 해서 통찰을 얻게 해준다. 통찰이 해방의 요인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변화시킨다. 이것이 화를 다스리는 불교 수행법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의식 깊은 곳에 화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 씨앗에 싹이 트지 않으면 …… 당신은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은 미소 짓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화가 당신 안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는 당신의 마음 의식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항상 당신의 장식(藏識) 안에 있다. 누군가가 당신 안에 있는 화의 씨앗을 건드리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화는 재빨리 거실에 나타난다. 선한 수행자는 화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사람이 아니다. 이건 불가능하다. 그는 화와 고통이 생기자마자 이것들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 당신은 당신의 화를 돌보기 위해 알아차림의 씨앗을 초대한다. 알아차림의 호흡과 걷기는 여기에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에서 대학 교수 한 사람이 플럼빌리지에 왔다. 그는 토머스 머튼과 나에 대한 책을 몹시 쓰고 싶어 했다. …… 나는 즉시 말했다. “왜 당신은 당신 자신에 관해 책을 쓰지 않습니까? …… 그것은 머튼과 나 자신에 대한 책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는 “아직 아무도 당신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나에 관한 책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당신이 당신 자신에 관한 책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자신을 불법(佛法)과 수행의 도구로 바꿔서 자유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책을 쓰세요. 그러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설거지나 상추 재배와 이어져 있다. 수행이란 깊은 알아차림과 집중으로 일상의 매 순간을 사는 법을 배우는 거다. 예술 작품의 구상과 전개는 정확하게 이와 같은 우리 일상의 수많은 순간에 일어난다. 음악이나 시를 쓰기 시작하는 시간은 아기를 분만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아기를 낳자면 아기가 이미 당신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 안에 아기가 없다면 책상 앞에 여러 시간 앉아 있어도 분만도 생산도 불가능하다. 당신의 통찰과 자비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 능력은 당신의 수행 나무에 피는 꽃이다. 이러한 통찰과 자비심이 꽃피울 수 있도록 우리는 일상의 매 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불교도들이 매일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지혜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당신이 쓴 것도 하나의 《반야심경》이다. 다른 보살이나 부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경이기 때문이다. …… 부디 자신의 《반야심경》을 지어 거룩한 장소에 보관하자. 그 경전을 자주 외도록 하자. 그러다가 화가 당신을 덮치고 당신이 제대로 화를 안을 수 없을 때 당신의 《반야심경》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집어 들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독송하자. 그러면 당장 자신으로 돌아올 것이며 고통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당신 스스로의 《반야심경》을 읽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수행자는 정말로 어머니처럼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고 인류와 세상에 뭔가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 각자는 자기 안에 아기, 즉 아기 부처를 품고 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의 아기 부처다. 우리는 아기 부처를 잘 돌보기 위해 알아차림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진실한 러브레터를 쓰고 다른 사람과 화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부처님의 에너지다. 진실한 러브레터는 통찰, 이해심, 자비로 쓰인다. 그렇지 않으면 러브레터가 아니다. 진실한 러브레터는 상대방 안에 변화를 이루고, 그래서 세상에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안에 변화를 이루기 전에, 당신 안에 먼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당신은 한평생 편지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

 


허우성 woohuh@hanmail.net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저서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과 역서로 데이비드 로이의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문명 정치 종교(마하트마 간디의 도덕 정치사상)》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경희대 비폭력연구소 소장. 본지 편집위원.                              

 

 허우성 woohuh@hanmail.net
 

2024/03/14

Jagadguru Adi Sankara Latest Telugu Full Movie 2013 Wiki entry


Jagadguru Adi Shankar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agadguru Adi Shankara
Film poster
Directed byJ. K. Bharavi
Written byJ. K. Bharavi
Produced byNara Jaya Sri Devi
StarringKaushik Babu
Nagarjuna Akkineni
Mohan Babu
Suman
Srihari
Sai Kumar
CinematographyS. Gopal Reddy
P. K. H. Das
Edited byGautham Raju
Music byNag Sri Vatsa
Production
company
Global Peace Creators
Release date
  • 15 August 2013[1]
Running time
130 minutes
CountryIndia
LanguageTelugu

Jagadguru Adi Shankara is a 2013 Indian Telugu-language biographical film written and directed by J. K. Bharavi that depicts the life of 8th-century philosopher Adi Shankara. The ensemble cast includes Kaushik Babu in the title role of Adi Shankaracharya, NagarjunaMohan BabuSumanSrihari and Sai Kumar. Some of Chiranjeevi's scenes from Sri Manjunatha (2001) were reused in the film.[2]

Plot[edit]

Adi Shankara is born at Kalady in Kerala to a Brahmin family. Soon after Adi Shankara is born, Agni the fire-god, says to Rudraksha Rushi that he has only 8 years of life. So, Rudraksha Rushi gives 24 years of life to Shankara from his span, at a cycle of every 8 years whenever Shankara's life is in trouble. After his father's death, Shankara shows his remarkable power in acquiring mastery over four Vedas at the age of eight. When he is caught by a crocodile in the Purna river, he seeks the permission of his mother to become a Sanyasi, and then only the crocodile leaves him. Reluctantly, his mother accepts his proposal and then the crocodile disappears.

Shankara leaves for North India in search of a guru. Then he finds his guru, Govinda Bhagavatpada. Bhagavatpada teaches Shankara 'Jala Stambhana', 'Agnisthambana', 'Vaayusthambana' and 'Parakaya Pravesha' (leaving one's own soul and entering others) etc. skills. Soon, Shankara decides to preach his Advaita Vedanta philosophy to the people who are quarreling among themselves in the name of caste and religion. Shankara teaches a lesson to one such person, Kapalikudu, who is responsible for the quarrels among the people. In another sequence, a Chandala proves to Shankara that all the people are equal before God.

During his philosophical tour which spans the cities of SrisailamSringeriSrirangamPithapuramNashikKhajurahoUjjainKathmanduSimhachalamAravalliVaranasiMaduraiPushpagiriKurukshetraKhandwaDwarakaKumbakonamDraksharamamAjantaSomnathKolarKonarkMurudeshwaraKanyakumariBadrinathNanjangudGuruvayurDandakaranyaAlampuramShravanabelagolaSarnathChidambaramPuriTirumalaHaridwarTaxilaPrayagrajAyodhyaPatnaParliSrikalahasti and Bhimashankara, Shankara gets a chance to debate with Maṇḍana Miśra. While Miśra is about to give up, his wife Ubhaya Bharati challenges Shankara by asking some questions on sex and related subjects. As Shankara is a Sanyasi, he cannot answer her questions. He then asks for a recess of 15 days. He later does Parakaya Pravesha and enters the dead body of King Amaraka Maharaju. He then makes love with his wife and learns and gets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posed by Ubhaya Bharati. Although being a sage, he performs the rituals of his dead mother by invoking Lord Shiva. This factor irks the elders of his religion. However, they repent for their actions later. Finally, having occupied 'Sarvagnapeetha' of Kashmir, Adi Shankara walks through the Himalayas, gets salvation and merges into Lord Shiva. He is believed to merge into Shiva at present-day Kedarnath.

Cast[edit]

Extended Cameo Appearances

  • Mohan Babu as Rudraksha Rushi; who donates his 24 years of life span to Sankara.
  • Tanikella Bharani as AgniDeva, who teaches "Mruthyunjaya Manthram" to Sanakara and transforms Rudraksha Rushi's life span to Sankara.
  • Srihari as Guruji; A Rushi once a king who teaches Magic to Sankara.
  • P. Sai Kumar as Maṇḍana Miśra; debates with Sankara on the topic "Karma Gnana V. Kriya Gnana". Later becomes a disciple of Sankara and changes his name as Suresvaracharya.
  • Kamalinee Mukherjee as Ubhaya Bharati; Mandana Miśra's wife who sits as a judge in the debate; later challenges Sankara for her husband's defeat in the intellectual debate.
  • Nagarjuna as Chandaludu; lord Shiva in disguise removes Sankara's ego with his argument, Sankara tributes this incident with Chandala Stotram.

Cameo Appearances

Soundtrack[edit]

Jagadguru Adi Shankara
Film score by 
Nag Sri Vatsa
Released
  • 11 March 2013
Recorded2013
GenreSoundtrack
Length45:31
LabelAditya Music
ProducerNag Sri Vatsa

Music was composed by Nag Sri Vatsa. Music was released on ADITYA Music Company. The soundtrack of fourteen tracks was released by Paripoornananda Saraswati, on 11 March 2013.[3][failed verification] Some of the songs were composed by Adi Shankara and Vyasa.

No.TitleLyricsSinger(s)Length
1."Omkaram"VyasaShankar Mahadevan3:23
2."Akhila Charachara"VyasaUnni Krishnan3:52
3."Om Namah Shivaya"VyasaKarthik3:39
4."Bhaja Govindam"Adi ShankaraMadhu Balakrishnan3:52
5."Bhrama Ani Telusu"J. K. BharaviSreerama Chandra4:36
6."Sri Krishnaha"VyasaS. P. Balasubrahmanyam, Mani Nagaraj2:59
7."Yavadu Neevu"J. K. BharaviS. P. Balasubrahmanyam3:17
8."Lakshmi Padmalaya"Adi ShankaraSharath Santosh1:31
9."Soundarya Lahari"Adi ShankaraRanjith2:38
10."Lakshmi Nrusimha"Adi ShankaraTippu2:15
11."Veda Thandavam"VedasChorus1:29
12."Annapurna Ashtakam"Adi ShankaraS. P. Balasubrahmanyam4:36
13."Shankara Vijayam"VyasaChorus1:42
14."Shivoham"Adi ShankaraHariharan3:15
15."Chiranjeevi About Adi Shankaracharya"J. K. BharaviChiranjeevi2:13
Total length:45:31

Home Media[edit]

Producers planned in low expensive. Blu-ray studio took copy from producers. Later on 30 September 2013 HD DVD came in force. Later broadcast right acquired by Gemini TV.

Reception[edit]

Karthik Pasupulate of The Times of India, rated the film 1.5/5 and wrote: "The movie isn't great enough to be even funny." Pasupalate criticized the lead actor by stating, "Kaushik is an absolute disaster who when not looking dazed, looks intensely agitated."[4] 123Telugu.com which rated the film 3/5, opined, "‘Jagadguru Adishankara’ is a film that will appeal to elderly people and folks who are devotionally inclined." The reviewer, however, criticized the technical departments of the film such as VFX, cinematography and editi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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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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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정치와 고전(古典)의 대화
*  진보(자유와 행복의 확대)의 중심고리의 이동
1) 물질적 진보→사회적 진보→관념(사람)의 진보: 덕(德)
2) 관념계의 진보와 물질계와 사회적 자유의 유기적 관계; 1)의 피드백, 회향(廻向)
영성(靈性)의 사회화(社會化), 정신개벽운동 등의 물질적 사회적 전개
① 사람들 사이의 사이좋음; 공정(차별 폐지), 평등(자유의 보편화), 관용(연찬할 수 있는 사람)
② 좋은 생산력; 자연과의 관계, 이익과 경쟁을 넘어서는 동기와 생산관계
③ 생활양식과 행복관의 진보; 단순소박한 삶의 풍요
물욕(物慾)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理性) 예술적(感性) 영적(崇高) 가치를 신장하는 것을 통해서
3) 인류의 종적(種的) 위기와 진보의 증심고리의 변화→ 문명의 전환
*고전(古典)의 혜안(慧眼)
ㅇ공자 말하기를 "덕(德)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그것을 향해 돌고 있는 것과 같다."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 共之(2/1)
ㅇ “사람들을 이끄는데 법령으로 하고,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데 형벌로써 하면 사람들은  형벌을 피하려고 급급할 뿐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사람들을 이끄는데 덕으로 하고 예로 따르게 하면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2/3)
*덕(德)에 대하여
ㅇ“군자는 세상 모든 일에 옳다거나 옳지 않다고 미리 단정함이 없이, 오직 의를 좇을 뿐이다.”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4/10)
ㅇ“이단(異端)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2/16)
ㅇ공자가 자로에게 말하기를, “유야, 너는 육언육폐에 대해 들었느냐?”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앉거라. 내 너에게 말하여 주겠다. 인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어지고,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허황하여지고, 신의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의를 해치게 되고, 정직함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혹하여지고,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하여지고, 굳세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무모해진다.”
子曰 由也 女 聞六言六蔽 對曰未也 居 吾語女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17/8)
ㅇ자로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주께서 선생님을 맞아들여 정치를 하게 된다면,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정명(正名)을 하겠다.” 자로가 말하기를, “그렇습니까?  선생님의 생각은 너무 우원(迂遠)하십니다. 어찌 명(名)을 먼저 바로잡는다 하십니까?”공자 말하기를, “유(由)야, 너는 참 비속하구나. 군자는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 명(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불순하고, 말이 불순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은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을 바로 하면 반드시 말이 서고, 말이 서면 반드시 실행하게 될 것이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조금도 구차함이 없어야 할 따름이다.” 
子路曰 衛君 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 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13/3)
ㅇ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도덕경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