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9

알라딘: [전자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알라딘: [전자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eBook]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노자가 말하는 인재경영의 道
웨이완레이,양셴쥐 (지은이),조영숙 (옮긴이)유아이북스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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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29.91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368쪽, 약 21만자, 약 5.5만 단어
가능 기기 : 크레마 그랑데, 크레마 사운드, 크레마 카르타, PC,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폰/탭, 크레마 샤인
ISBN : 978899815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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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책의 특징은 노자 사상에 정통한 중국의 정치학자와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또, 기업의 경영자는 바람직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경영 철학, 조직 관리 기법, 사람 관리 기법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 머리말...................................5p
■ 프롤로그..................................8p

도道의 장 하늘과 인간은 하나인가, 둘인가...................................17p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없다...................................19p
하되 하지 않은 것처럼 하라...................................30p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기업 문화...................................37p
사람을 근본으로 삼다...................................48p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경영...................................61p

덕德의 장 낮은 자가 가장 높다...................................71p
억지로 되는 건 없다...................................73p
무위란 무엇인가...................................86p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95p
결국은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103p
제도가 명분을 만든다...................................110p
사람을 잘 쓰는 법...................................118p
기초가 모든 걸 말한다...................................126p

유柔의 장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135p
노자와 손자의 모략...................................137p
부드러움과 권모술수의 공통점...................................147p
군대가 강하면 무너지고, 나무가 강하면 꺾인다...................................153p
멀리 보면 약한 게 약한 것이 아니다...................................166p
얻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175p
사람을 뽑는 데도 기발한 전략이 필요하다...................................182p
무력은 어리석은 자의 처세법...................................189p

무無의 장 아무 것도 잃을 것은 없다...................................196p
무(無)의 심오한 이치...................................199p
무는 유의 어머니...................................206p
없음이 곧 있음이다...................................215p
꿈 사고와 퍼지 사고...................................228p
의심이 창조를 낳는다...................................238p

반反의 장 극단을 넘어선 통합의 길...................................244p
경영의 역설...................................247p
음과 양이 어울리는 경영의 기술...................................255p
도는 사람의 보편적 이치...................................259p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것...................................265p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다...................................272p
화와 복은 서로 기대어 있다...................................278p

수水의 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284p
물 흐르듯 경영하라...................................287p
리더십이란 곧 영향력이다...................................294p
통나무와 같은 리더의 신용...................................305p
최고의 덕은 마치 골짜기와 같다...................................312p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어한다...................................318p
건강관리도 곧 실력이다...................................326p

■ 부록...................................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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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웨이완레이 (魏萬磊)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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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런민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칭화대학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30년대 재생파 학자들의 민족부흥 활동》, 《민족주의: 현대를 오가는 다섯 가지 길》 등이 있다.


최근작 :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총 2종 (모두보기)

양셴쥐 (楊先擧)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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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명문 종합대학인 중국런민대학(中國人民大學) 경영대학원 교수다. 주로 산업기업 관리, 산업경제, 기업문화, 중국문화와 기업경영, 중국고대 경영사상, 경영사례 등을 연구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경영에서 살아남기》, 《병법으로 보는 경영비책 10가지》, 《노자와 기업경영》, 《기업문화 신기록》, 《공자경영학》, 《손자경영학》, 《노자경영학》, 《삼국지 경영학》, 《한비자 이야기》 등이 있다.


최근작 :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 총 2종 (모두보기)

조영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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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 근현대사 전공으로 석사학위 취득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화중사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나를 성장시키는 한 방울의 눈물』『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등이 있다.



최근작 : … 총 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노자가 CEO라면 기업을 어떻게 경영했을까?

인류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노자》. 《노자》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노자》가 세상에 나온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로부터 경영의 지혜를 얻는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없듯이, 기업에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 바로 《노자》다. 이 책은 노자에 담긴 경영 사상을 여섯 가지 키워드, 즉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로 종합해 설명한다.


인류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노자》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노자 사상에 정통한 중국의 정치학자와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기업의 경영자는 바람직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 경영 철학, 조직 관리 기법, 사람 관리 기법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동양 고전과 현대 경영의 만남!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노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훌륭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또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노자》를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수많은 대가들이 《노자》를 모범으로 받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노자》는 5000여 자(字)로 지어진 짧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노자》는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 다음으로 많이 보급되었다. 《노자》는 기본적으로 동양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서양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198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연두교서에 《노자》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 미국인들에게 《노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일찍이 세계 10대 작가의 첫 번째로 노자를 꼽기도 했다. 이처럼 《노자》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끊임없이 읽히고 해석되는 인생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책의 특징은 중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와 경영학자의 만남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다. 저자 웨이완레이는 중국정치학자로 도가 사상에 정통한 인물이며, 양셴쥐는 기업 경영에 밝은 경영학자다. 두 사람은 《노자》에 나오는 구절을 학술적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기업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노자의 사상을 경영의 길잡이로 삼아 파나소닉을 일본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파나소닉 외에도 중국 최대 전자제품회사 하이얼과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 등 현대의 최고 기업들이 노자 사상을 기업 경영의 모범으로 삼았다.
저자가 주장하는 노자식 경영의 핵심은 바로 ‘무위(無爲) 경영’이다. 여기서 ‘무위’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고 순리에 따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노자가 말하는 훌륭한 경영자는 사람을 근본으로 삼으며, 인위적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매우 단순한 이치처럼 보이지만 실제 우리 사회의 경영자는 어떠한가? 물질적 이익에 눈이 먼 나머지 사람보다 업무 관리에 중점을 두어 직원들의 일에 일일이 참견하며 그들 위에 군림한다. 일부 경영자는 직원의 덕을 자신의 덕으로 세우며 업적을 과시하기 바쁘다. 노자는 최고의 지도자란 성과를 이루어도 드러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현대 경영학에 적용하면,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리더의 위치가 낮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共産黨宣言)》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 바로 《노자》다. 《노자》가 세상에 나온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 책으로부터 경영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듯이, 기업에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노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내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중국 문화의 근본은 모두 도가에서 기인한다. 《노자》를 읽지 않고는 중국 문화를 알 수 없다.
―루쉰(魯迅), 《광인일기》, 《아큐정전(阿Q正傳)》 등을 쓴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가

중국에 도가가 없었다면,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았을 것이다.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

노자는 중국 철학의 창시자이자 중국 철학사상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다.
―후스(胡適), 중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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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노자에게 배우는 인간관리의 지혜




노자는 5천여 자로 지어진 짧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내용이 다르다. 고전의 묘미는 그런 것이다. 언제 읽어도 읽는 당시의 나에게 어떤 면으로든 의미를 부여해준다. 색다른 느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주입된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나에게 세뇌되었기에 언제 읽어도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때로는 정독을, 때로는 발췌독을 하면서 어느덧 노자의 사상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명저다.



이번에 읽은 책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이다. '노자가 말하는 인재경영의 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런민대학 경영대학원 교수인 양셴쥐,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는 웨이완레이. 이렇게 두 명이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유가는 쌀가게, 불가는 백화점, 도가는 약국'이라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유가는 쌀가게와 같은데, 쌀은 중요한 식량이기 때문에 쌀가게가 문을 닫으면 우리는 일용할 양식, 즉 정신의 양식을 잃게 된다. 불가는 각양각색의 일용품이 갖추어져 있고 언제든지 가서 구경할 수 있는 백화점이다. 돈이 있으면 몇 개 사오면 되고, 돈이 없으면 한 번 둘러보고 오면 되는데, 그 속의 모든 것은 인생의 필수품이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도가는 약국이다. '병에 걸리지 않으면 평생 그것을 거들떠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일단 병이 나면 도가를 찾게 된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손뼉을 치게 된다. 지금껏 살아가면서, 바쁘게 살아갈 때가 아니라 지치고 힘들어 황폐해진 영혼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에나 노자 도덕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양셴쥐 선생의 <노자와 기업 경영>과 <노자 경영학>, 두 권의 책을 기초로 하여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도,덕,유,무,반,수, 이렇게 여섯 가지 법칙에 따라 내용을 편집하였다. 각각의 소제목 앞에는 노자 도덕경으로 시작하고, 현대인인 우리가 읽기에 부담없이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글 속에는 노자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다양한 사상과 일화가 담겨있어 읽는 맛이 풍부해진다. 저자의 학식이 광대함을 느끼게 된다.



노자의 사상과 현대 경영과의 만남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기업경영에 어떤 의미를 주어서 적용시킬지 궁금한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고 연결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노자의 사상과 경영과는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책의 집필이 참신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두 가지를 접목시켜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노자 도덕경이 두고두고 읽어볼 책인만큼 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온전히 잡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주기적으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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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2014-02-1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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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노자] 또는 [도덕경]은 노자가 지은 것으로 약 5,000자, 81장으로 구성되었고 크게 ‘도경’과 ‘덕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줄곧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라는 ‘무위자연’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데 자연의 질서를 인간세계의 질서에 적용시키려 했던 노자의 생각이 깊게 드리워져 있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노자의 사상을 연구하여 수많은 책으로 탄생되어 인생의 지침서나 처세술 또는 기업의 윤리와 경영에 적용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중 중국의 정치학자와 경영학자가 공동 집필한 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에서는 노자의 사상을 인재경영 측면에서 바라보고 현대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방법들을 설명하였는데 이 책의 특징은 [노자]에 담긴 경영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전달하고자 하였고, 특히 경영사상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후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도(道)








도라는 의미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실체이며, 우주의 생성원리이자 대원칙 그리고 인류 사회의 일종의 규범과 기준입니다. 도는 [노자]의 핵심 사상으로 형이상학적인 실체이지만 모든 만물은 도에서부터 생성되었으니 도를 근본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엄격한 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엄격하되 애정이 있어야하며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무위’를 강조하며 시대에 발맞추어 전진해야 하고 직원들 간에 동질감을 형성하고 자신감과 결의를 강화할 수 있는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영의 핵심은 사람을 잘 써야 하는데 개개인의 능력에 맞게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며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바탕으로 직원을 관리해야 하고 인적 자원 관리에 있어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선경영을 해야 만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덕(德)








덕이란 도가 형상화된 실체입니다. 즉, 도는 본체이며 덕은 그 쓰임입니다. 덕의 근원은 도이며 사회, 정치, 인생에서 도가 작용하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결국 도는 덕을 통해서 인간세상의 사회, 정치, 인생, 윤리 등을 이야기합니다. 노자는 도에서 말한 무위를 덕에서도 경영의 최고의 원칙이라고 여기고, 법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도법자연을 경영이 추구해야 할 철학적 가치라고 주장합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억지로 하지 않는다.”라는 높은 덕을 바탕으로 방법을 얘기하는 ‘무위’ 관념에서 나아가 목적을 의미하는 ‘위’의 효과를 포함한 위무위 사상을 경영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노자] 제60장에 나오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라는 구절은 나라를 다스릴 때 백성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비유적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사업을 경영하는 일 또한 작은 생선을 삶듯이 처리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즉 경영자는 직원관리에 힘쓰고 자신의 언행에 주의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노자의 위무위 사상은 여러 구절을 통해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조직기구의 설립과 관리 조직 결정과 인사업무 및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는 구절이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아랫사람을 겸손하게 대한다는 뜻인 것처럼 리더십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유(柔)








여기에서는 부드러운 법칙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용병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여 어떤 사람들은 [노자]를 병서라고도 일컫습니다. 과연 다른 병서와 견줄만한 내용이 담겨있을지 의문스럽지만 손무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하니 내용이 모두 병법은 아니지만 인정해줄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자의 전략과 전술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상’,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사상’, ‘얻고자 하면 주어야 한다는 사상’, ‘기발한 전략을 써서 승리한다는 사상’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용병술이 경영에 도입을 합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 라는 대표적인 명언을 통해 부드러운 경영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여 적극성과 창조성을 이끌어 내어 기업 내에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결과를 얻습니다. “수컷을 알면서도 암컷을 지키면 기꺼이 천하의 계곡이 된다.” 구절처럼 공격과 수비를 조절하면서 경영관리를 해야 만이 기업의 경쟁력이 꾸준히 유지 될 수 있고 그 외 지나친 경쟁은 삼가야 한다는 경영의 지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無)








무는 천지를 형성하지 않았지만 곧 천지를 형성할 물질이며 반대개념인 유는 천지가 형성한 후 만물이 생겨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노자가 제시한 유와 무는 도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도라는 것이 만물이 생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의 가치는 기업 경영의 전반에 활용되고 있는데 기업이 힘들어졌을 때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라는 노자의 사상을 통해 독려할 수 있고, 어떤 문제를 볼 때 무가 제시하는 방법론을 통해 전체를 고려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며, 기업을 경영할 때 무를 통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성공했을 시에도 무의 실천을 통해 겸손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와 무가 서로를 낳고, 무에서 유가 생긴다는 말에서 기업성장과 관련된 창조적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창조는 인류활동에서 끊임없이 실행되어 왔던 것으로 기업에서는 생산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따라서 기업을 잘 경영하려면 올바른 ‘도’의 가치관이 필요한데 창조성이 바로 갖추어야 할 가치관입니다.








반(反)








‘되돌아가다’ 라는 뜻의 ‘반’은 서로 반대되면서도 어울리는 대립 통일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는 반대 방향으로 전환되고 발전하다는 의미로 자연으로 복귀한다는 뜻도 됩니다. 이런 반은 노자의 변증법적 사상을 나타내는 방법인데 그 예로 위에서 살펴 본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 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와 같은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반 이론처럼 역설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항상 부딪히는 문제인데 이는 노자의 변증법적인 사상이나 모순 관계의 기술을 연구하여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립되는 관계 속에서 양자택일의 방법이 아닌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를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수(水)








[노자] 제8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는 구절이 있습니다. 노자는 사람을 물에 비유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미덕을 만들었고, 최고의 덕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은 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낮은 곳을 선택하고, 고요하며, 인자하고, 믿음이 있으며, 잘 다스리고,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며, 때를 보아 행동하는 물의 성질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장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특성을 살려 한 마디로 물의 경영 철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리더인 경영자의 수양하는 방법과 다른 여러 책에서도 배워 왔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조건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용을 쌓아야 하며 넓은 도량과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타인의 단점과 장점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입니다.








깊고도 깊은 철학을 맛본 후...








그동안 자기관리 및 경영책을 읽으면서 가끔씩 고전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던 책을 접해 왔었습니다. 그런 책을 읽으면서도 노자나 공자의 사상들이 얼마나 현재에 우리들에게 깊이 있게 다가 설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의문은 해결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알고 있던 지침이나 방향을 제시한 책의 내용이 상당수 이 책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노자의 사상이 현대 기업 경영의 원리에 조화를 이루어 매우 적절하게 적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경영자들이 이 원리와 사상을 이용해 실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들도 말입니다. 수천 년을 뛰어 넘고서도 지금까지 이용되고 사람들이 실천하는 노자의 사상을 보며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번 독서는 얼마나 전투적으로 책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이 그어진 많은 흔적들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메모지와 접혀진 페이지들이 그 증거를 대신합니다. 제대로 처음 접해 본 노자의 사상이기에 정독을 몇 번에 걸쳐 했습니다. 사실 담겨진 내용의 모두를 가슴에 담아두기엔 저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생존 발전에 있어 사람이 가장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방편인 사람 경영의 방법들이 이 책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기업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직원을 이용가치로만 생각하고 운영하고 있는 경영주가 이 책을 읽는 다면 아마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비전과 가치창출을 위한 기업을 만들고 싶은 경영자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매우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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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답 2014-02-1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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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노자>는 전 세계에서 ‘성경’과 ‘공산당선언’ 다음으로 많이 보급된 책이다. 중국 내에서 이 책과 관련된 저술만 해도 1700가지 이상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노자’에 대해 “내가 훌륭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노자’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도 ‘노자’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로 가득 차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은 중국청년정치대학 중문과 부주임으로 중국사회 생활사, 근현대 정치사상사, 정치심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는 웨이완레이와 중국의 명문 종합대학인 중국런민대학 경영대학원 양셴쥐 교수가 ‘노자’에 담긴 사상을 도(道), 덕(德), 유(柔), 무(無), 반(反), 수(水)라는 여섯 가지 키워드로 나누고, 이를 현대 기업 경영에 적용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가지 법칙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도(道)의 법칙이다. 도는 ‘노자’의 핵심 사상으로 노자의 모든 논의는 도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에도 엄격한 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덕(德)의 법칙이다. 덕이란 도가 형상화된 실체이다. 즉, 도는 본체이며 덕은 그 쓰임이다. 덕의 근원은 도이며 사회, 정치, 인생에서 도가 작용하는 것이 덕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결국 도는 덕을 통해서 인간세상의 사회, 정치, 인생, 윤리 등을 이야기한다. 셋째는 유(柔)의 법칙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용병술을 경영에 도입한다. 공격과 수비를 조절하면서 경영관리를 해야 만이 기업의 경쟁력이 꾸준히 유지 될 수 있고 그 외 지나친 경쟁은 삼가야 한다는 경영의 지침을 전한다.



넷째는 무(無)의 법칙이다. 무는 ‘노자’의 중요한 개념이다. 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실체의 무로, 확실히 실재하는 무를 말한다. 둘째는 허상의 무로, 있는 듯 없는 듯 불확실한 무를 말한다. 셋째는 유를 내포한 무로, 무에서 유가 생겨나고 유에서 다시 무가 생겨난다는 의미다. 다섯째는 반(反)의 법칙이다. 노자는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반은 노자의 변증법적 사상을 나타내는 방법인데 그 예로 위에서 살펴 본 ‘유와 무가 서로를 낳는다.’ 와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와 같은 구절을 들 수 있다. 여섯째는 수(水)의 법칙이다. 노자는 물을 좋아해서 사람을 물에 비유하여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미덕을 만들었고, 최고의 덕을 갖추고자 하는 사람은 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자는 최고의 지도자란 성과를 이루어도 드러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현대 경영학에 적용하면,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리더의 위치가 낮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기업이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방편인 사람 경영의 방법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므로 현대의 기업가들은 이 책으로부터 경영의 근본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없다면, 기업에 역시 쓸모없는 사원은 없다.



이 책을 통해 ‘기업 경영은 사람 경영’이라는 말처럼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하게 될 때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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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014-02-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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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를 읽고




기업을 경영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사라는 말이 있다. 현대와 같이 다양한 직업군과 그리고 다양한 생각이 공유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경영방향과 맞는 인재를 뽑고 이를 관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지금 만나게 된 책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는 정말 고전에서 얻은 지혜를 담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책이다. 인재관리를 어떻게 하고, 이를 통한 경영 사상을 들려주기 위해 노자의 사상에서 여섯 가지 부분을 가져온 저자들의 깊은 지식이 돋보인다. 그 여섯 가지를 따라서 이 책을 읽어가면 다음과 같이 경영에 꼭 필요한 덕목들과 그 덕목들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를 깨우치게 된다.

첫째, 도의 장, 하늘과 인간은 하나인가, 둘인가?

이 장에서 인재관리의 기본이 되는 하나의 화두를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無爲”이다. 도를 근본으로 삼고 ‘함이 없지만 또한 하지 않음이 없다(無爲而無不爲)란 말을 원칙으로 삼은 노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무위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 무위의 핵심은 ‘만물이 자연을 따르도록 도우나 감히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기업 경영을 함에 있어서 대세를 따라야 하며 억지로 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덕의 장, 낮은 자가 가장 높다.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이를 다투지 않는 덕이라고 하고, 남의 힘을 활용하는 것이라 이른다. – 노자 제 68장

이 책에서는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라는 말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교훈을 예기하고 있다.

1) 지인(知人)의 중요성

“타인을 아는 것이 곧 지혜로움이라면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知人者智 , 自知者明)

2) 사람을 쓰는 기준은 도라는 견해

3) 사람을 잘 구하다라는 개념

4) 선결이라는 개념

5) 말 없는 가르침이라는 개념

셋째, 유의 장,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을 예기하는 부분이었다.

노자의 생각에 가까운 부드러운 경영이란 사람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이다. 부드러운 경영을 도입하여 사람들의 적극성과 창조성을 이끌어내려면, 우선 구성원들이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중략) 부드러운 경영을 하는 조직에서는 경영자의 권력이 마치 물과 같아서 경영자의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격려, 감화, 계발, 선도 등의 형태로 조직의 공통 가치관과 문화 및 사내 분위기 등에 의해 발휘되는 전체적인 경영 효과는 조직 운영에서 높은 효율과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한다.

이번 장에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예기하면서 너무 정공법으로 치고 나가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독점으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들이었다.

넷째, 무의 장, 아무것도 잃을 것은 없다.

다시 한번 더 노자의 사상의 심오함을 느끼데 되었던 장이다. 무의 심오한 이치와 더불어, 무가 유의 어머니라는 이야기에서 들려주는 창조적 사고의 힘은 창조라는 개념을 다시 바라보게 해 주었다. 없음이 곧 있음이기에 포괄적으로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지혜가 나오는 것이며, 이를 통해 기존에 있어왔던 습관적인 사고의 패턴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다섯째, 반의 장, 극단을 넘어선 통합의 길

이 부분에서는 음양의 기술, 조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 준다. 다음의 글귀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장이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요,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이다.” <노자> 제 26장

경거망동함을 경계하며, 조급해 하지 말 것을 말하는 이 부분에서 이성경영과 감성경영의 관계까지도 살펴보게 된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바로 제단하지 않고, 이를 지켜보고 현실에 맞도록 통합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장자의 다음의 글이 가슴에 남는다.

“저것에도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고, 이것에도 하나의 옳고 그름이 있다”

여섯째, 수의 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흐름 경영을 이야기 하는 이 장에 강조되는 부분은 스스로를 덕으로써 다스리고, 자신을 낮추며, 사사로운 욕망을 줄여 신용을 쌓는 것이 리더의 자격을 이루는 하나의 길이라고 예기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을 수, 물로 마치는 데 있어서 저자들은 노자의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의 장이며, 그러하기에 이런 물의 흐름, 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고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의 한문으로 쓰여진 책들을 현대의 가치와 기준에 적합하게 재해석하고 읽기 쉽도록 세상에 내어 놓아준 저자들의 노고가 책의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단지 논어 한 권에 국한하지 않고, 손자병법이나 장자의 글들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현재 경영학의 시류나 리더쉽을 예기하는 다양한 서적들의 문구를 인용하여 노자의 사상과 비교해 보여주는 부분들도 정말 인상적인 부분들이었다. 이 책 한권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과 책들을 본 듯하며, 인재경영을 함에 있어서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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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mangun 2014-03-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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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경영관리]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 웨이완레이 와 양센쥐 작가는 근현대 정치 사가 이고 경영학 교수이다. 합작 해서 중국의 고전을 재 해석 하면서 이를 시대 흐름에 맞게 적용 하며 경영에 합목적인 방식으로 접목 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 보이다. 이력을 좀더 보니 , 노자 뿐만 아니라 손자 , 공자 ,한비자 , 삼국지가 고루 나오니 이 역시 시리즈의 산무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은 기우 일까 .







아뭏든 노자를 기본으로 한 책 쓰기 이니 만큼 우리 독자들은 노자에 대하여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아래 위키디파아의 힘을 빌어 노자의 실체에 대한 구연 설명을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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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은 《사기》에서 노자로 상정되는 인물이 3인이 있다고 하였다. (老子 韓非列傳). 첫째로 이이(李耳, 자는 담(聃=老聃)를 들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공자(禮)를 배운 사람이며, 도덕의 말 5천여 언(言)을 저작한 사람인데 그의 최후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에 든 사람은 역시 공자와 동시대의 노래자(老萊子)로서 저서는 15편 있었다 한다. 세 번째 든 것은 (周)의 태사담이라는 사람으로 공자의 사후 100년 이상 경과한 때에 진(秦)의 헌공과 회담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노자는 은군자(隱君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노자라고 하는 이는 은자로서 그 사람됨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세에 노자라고 하면 공자에게 예를 가르쳤다고 하는 이이(李耳)를 생각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이라고 하는 인물은 도가의 사상이 왕성하던 시기에 그 사상의 시조로서 공자보다도 위인(偉人)이었다고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전설일지도 모르겠다.[모호한 표현]펑유란(馮友蘭)은 노자가 전국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이에 근거하여 노자가 실존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도덕경 죽간본(BC 300년경) 이전일 수밖에 없으며 한비자(BC 280~BC 233)가 도덕경을 인용하였으므로 한비자보다 앞선다. 또 도덕경에는 유가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는 백서본(갑본은 전국시대 말기, 을본은 한나라 초기) 이후가 반유가적인 것이며 죽간본은 덜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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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약 기원전 600 여년 전의 사람으로 추정 되니 , 지금으로 부터 2000 년 전의 전설상의 인물이 되겠다.. 예수님보다 약 1000 살 정도 앞선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보면 되려나 ... 또한 노자의 말의 전함이라고 일컽는 도덕경의 개요는 다음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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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노자》(老子道德經이라고도 한다)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거기서 기술되고 있는 사상은 확실히 (道)의 본질, 현상계의 생활하는 우수한[모호한 표현] 철학인 것이다. 예컨대 도를 논하여 이렇게 말한다. '도(道)'는 만물을 생장시키지만 만물을 자신의 소유로는 하지 않는다. 도는 만물을 형성시키지만 그 공(功)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는 만물의 장(長)이지만 만물을 주재하지 않는다'(10장). 이런 사고는 만물의 형성·변화는 원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며 또한 거기에는 예정된 목적조차 없다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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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러한 무위 자연의 법칙을 현세의 경영학에 접목한 기업이 여럿 눈에 뛰는 것이 특이 하다 . 일본의 경영의 신 마스시타 고노스케가 일으킨 파나소닉이 그러하고 , 미국 GM , 등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물흐르듯 순리를 강조 하여 인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인문학에 혹은 철학에 견줘서 이야기 하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나 독일의 당대의 천재적 철학가 니체에 이르르면 그의 사항은 유심론인지 아님 도에 대한 사고 방식은 오히려 유물론에 가까운 무신론에 연결 되는 것이기도 하며, 자연처럼 그러한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거슬을수 없음을 확고히 한다.







그 ( 노자)가 춘추 시대 ( 기원전 770 ~ 403 년 ) 의 초나라의 철학자로 생각 한다면 , 진나라로 통일대국이 완성 되기 전의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로 봐야 하며 , 그 정재의 회호리의 한축에 있엇음을 감안 한다면 , 당대를 사는 ㅡ혹은 생존 할 수 있는 인간세상 지혜의 덕목은 과연 무엇일가 하는것이 나의 화두 이기도 하다.







당연히 , 군주와 왕권이 있고, 군사와 백성이 있어서 제 나라의 군민들을 먹여 살리거나 전쟁에서 이겨야만 살아 남는 뛰어난 계략과 지모가 있는 철학자와 정치가가 살아 남는 세상이니 만큼 저마다의 처세술은 남달랐지 안았을가 생각해 본다.







현재의 경영학 및 기업가의 존망도 사실 내부를 들여다 보면 , 춘추 전국시대의 이합 집산과 다를 게 없을 수도 있다, 배경만 첨단 IT 문화와 컴퓨터 , 펜과 , 두뇌로 싸움으 하는 것일 뿐 ,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낙오 하면 기업이 망하는 것은 2000 년전의 춘추 전국시대의 각 나라의 패망사와 닮아 있다...







그 먼 역사의 공간을 뛰어 넘으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지혜로 감동받는 부분들이 바로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에 있지 않을가 한다..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도 , 배신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성공의 열정 또한 기업주 입장에선 사람들에게 얼마나의 동기 부여를 주는 가에 따른 결과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다만 , 공자 , 손자 , 한비자 ,묵가 , 노자 장자 등의 자신들만의 정치 , 철학의 사상이 다른 관계로 제 각각 다른 전략을 채택 하였을뿐 , 근본적인 세상 정치와 민세 지탄을 바라보는 본질은 같지 않았을까 한다...그때 그때 판세에 따른 정세 결정을 누가 얼마나 적절히 하였는지가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에 달렸을 뿐이지만 말이다.







사실, 100년을 버티는 노송은 나무의 쓰임새 모적 자체에 벗어난 경우에만 살아 남아서 혹은 간택 되지 않아서 300년 500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저력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노송의 역설은 경영학 입장에서는 어떤 해석이 가능 할 것인가...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뒤집어 말하기는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구석은 있다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 하다면, 사람을 적재 적소에 배치 하여 최고의 효율을 올리게 하는 방법 그 것이 바로 노자의 철학 그본을 아우르는 현대 경영학적 전술이 아닐까 ..







과연 오늘날의 기업 들도 그러한가 반문해 본다... 대개의 기업들은 필요한 부분만을 취사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언재가 빛을 볼 인재를 위해 10년 20년을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 이라고 판단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 그 시간 낭비되는 요소의 뒤집어 보기를 잘 하면 정답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달란트가 달라서 이를 인정해주고 알아봐 주는 집단에 충성을 하게되는 본능이 있다.. 조조의 지략에도 , 몽고메리 장군의 지략에도 , 알렉 산더 대왕의 돌격대에게도 몸 바쳐 충성을 다하는 전위병 들이 있었기에 가능 한 승리 들이다...







그 옛날 , 거의 2600 년전의 미이라속에 있는 전설속의 노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사마천의 언을 빌려서 다시 보든 듣든 곱씹어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화두는 < 인간이란 어떠한 방식으로 행동 하고 사고 하는 존재 인가 > 라는 속성에 대해서만큼은 오늘날 아무리 진화론이 진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 그본 인간 양식 패럳음을 꿰 뚫어 보는 철인의 눈매를 피해 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에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감동을 받았을 터이고 , 그 깐간한 독일의 철인 , 초 자아의 꿈을 위치는 니체 에게 까지도 영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산 계곡 속으로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 내리는 순리를 깨치는 순가 그 누군가는 히말라야에서 벌써 태평양 바닷가를 거니는 노자의 발자국을 볼수 있지 않았을까 .....< 책력거99 > 느끼다.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 주간경향

[국학이야기]천인합일은 통치사상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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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시대부터 내려온 민주주의의 뿌리 “백성이 하늘이다”

“단 한번이라도 그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참으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생긴다. 아래 있는 뭇 백성들은 지극히 약해 보이지만 힘으로 겁을 줄 수도 없고, 지극히 어리석어 보인다 해서 지모(꾀)로써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그들은 복종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곧 떠나가버린다. 떠나고 붙는 것이 털끝만큼의 여유도 허락지 않는다.”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정보위(正寶位)’의 한 구절이다. 고려왕조를 빼앗은 이성계의 역성(易姓)혁명을 천명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조 초기의 선비들, 특히 정도전은 정몽주를 통해 처음으로 접한 맹자의 혁명사상에 경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맹자의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의 영향임에 틀림이 없다. 백성이 제일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가치관은 가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다.

그들은 유학에 새 기풍을 일으켰다. 그것은 군왕도, 사직도 바꿀 수 있지만 백성은 변치(變置)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백성은 하늘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은 하늘의 질서를 인간의 도덕원리로 삼는 천명(天命)과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새로운 철학체계로 삼아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게 했다. 이러한 사유체계는 조선초기의 세종대왕이란 성군을 낳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왕의 자리는 귀하고 높지만, 그 자리(位)를 지키는 방법은 패도가 아닌 인(仁)이어야 했다. 그 자리를 얻는 것도 어짊(仁)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을 있게 한 원동력

이 말은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변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혁명의 논리다. 천지는 만물을 생(生)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을 삼고, 만물을 생하는 마음이 천지의 큰 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仁)이라고 여겼다. 천명을 대행하는 군주는 천지처럼, 인간 세상사가 생산적일 수 있도록 어진 마음을 갖출 때 치자로서 그의 보위(寶位)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인자인야(仁者人也)’, 즉 어질다는 것은 사람답다는 말이다. 백성을 사람답게 여기는 것이 인(仁)이다. 그래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의 마음이 올바를 때 백성의 마음도 편하다. 임금은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을 그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덕이며 인(仁)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나 군주의 뜻을 따라 백성이 대신한다. 이 생산이 군주의 권력 기반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정신이기도 하다.

이런 천인합일 사상은 맹자 이전인 단군시대, 환웅시대에 시작됐다. 하늘의 형상이 사람이라는 생각은 천부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천지만물이 하나에서 시작하고 천지의 기운이 사람이 됐다는 사유체계는 세종대왕의 “백성이 하늘이다”란 정신으로,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으로 면면히 전승되었다.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천지 마음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명제다.

이형래〈세계역사문화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0109&code=116#csidx986bb8e37605ce8b3a1818e616c3c65

[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 시니어신문


[사자성어] 천인합일(天人合一)
 이상만 전 성균관도덕부흥운동본부장 
승인 2017.04.25

하늘에는 해와 달과 무수한 별이 공존하고 있듯이 땅에는 온갖 만물이 상존하고 있다. 이 중에 가장 핵심은 하늘의 해와 땅의 사람이다. 이 점에서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뭇 사람에게 공감대를 주었다. 전장에서 핀 애정과 우정을 밀도 있게 그림으로서 하늘 향한 인간 정서의 무한함을 보여 준 걸작이다.

마치 땅콩을 쪼개보면 두 개의 콩이 가지런히 있듯이 남녀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고, 언제나 고소한 맛이 변함없다는 점에서 한 쌍의 연인은 땅콩을 많이 닮았다.

천인합일(天人合一), 요즘에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가면 「귀천(歸天)」이라는 작은 찻집이 있다. 알만한 시인과 유명 예술인들이 들르는 조용한 그곳은 천진(天眞)한 모습으로 살다간 천재(天才) 시인 천상병의 부인이 운영하는 명소이다. 천상병 시인은 어눌한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1993년 4월 28일 향년 63세에 서둘러 하늘로 갔다. 가장 확실하게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 “귀천(歸天)”을 영원히 남기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967년 당시 정보부 요원들이 남산 부근 그 악명 높은 지하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대학 시절 친구의 수첩에 천상병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물고문과 성기에 충격을 가하는 전기 고문을 받고 불치의 정신장애라는 심신의 상처를 안고 6개월 만에 나왔다. 권력 남용의 어눌한 세태에 한 천재의 운명을 지탱케 해주는 것은 오로지 한 잔의 막걸리였으며 측은하게 여기는 몇몇 문인 동료뿐이었다.

서울의 중심 거리 종로에 가면 대로 옆에 달린 뒷길 피맛골이 있었다. 그 옛날 말달리던 큰길을 피해 드나들던 소시민의 정든 골목길이다. 10여 년 전에 성균관에서 만난 의형인 수필가 신용철 형을 따라 작은 ‘소문난집’ 주점을 자주 가게 되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우연히 피맛골에서 만나면 용철 형에게 손을 불쑥 내밀며 ‘형, 막걸리 사 먹게 천원만!’ 했다던 천상병이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행려시인의 고달픈 삶을 살았던 모습이 새삼 아른거린다. 그런 와중에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되내이는 깊은 심중의 소리가 시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단 천 시인만이 아니리라. 극한 상황을 겪고 살아온 많은 민초들이 의지할 곳은 오로지 하늘이었다. “하늘이시여 굽어살피소서”,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 맙소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느님이 보우하사” 이렇듯 상황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은 저 높고 넓은 푸른 하늘이었고 말없는 하느님이었다.

진정한 인간만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에 아부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정녕 인간의 탈을 쓴 것인가? 왜, 편을 가르고 상대를 모함하고, 자기만이 잘났다고 교만해야 하는가? 왜, 무엇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왜, 양민을 수탈하고 관직을 사고팔고 탐관오리의 길을 자행했는가? 왜, 비리에 물들고 비정한 도시의 삶을 재물로 향유하려는가?

역사상에도 민초가 들고 일어나면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권력 남용하는 부패한 관료를 지탄하고 심판하며 정의(正義)를 바로 세웠다. 여기서 천벌(天罰)이 생겼고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 성립했으며 천둥 번개를 치며 만물을 깨우듯이 천인합일이 실증된 것이다.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람으로 살다 하늘나라로 간다. 육신은 썩어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하늘 향한 마음은 자유를 노래하며 영원히 남아 풍운(風雲)처럼 구천(九天)을 맴돌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권력에 의지하지 않고 대권에 집착하지 않고 이념갈등에 물들지 않고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과 같이 높고 넓은 깨끗한 마음을 배우고 천리(天理)에 순응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가르치지 않는 교육자는 스스로 반성하여 양심선언을 하고, 새 정치인은 하늘·땅·사람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춘추대의 정신으로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세종과 정조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애민(愛民)정책을 추진한 천인합일 하는 정치가 아쉽다.

옛날처럼 모든 백성이 받들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부활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스스로 이 땅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같은 하늘 아래 세계시민으로서 하늘 사랑으로 거듭나는 일이 남아 있다.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상고 시대 선조의 가르침인 홍익인간 재세이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는 인생의 나침반이 있으므로 좋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하늘과 사람이 하나 되는 하늘로 다시 돌아갈 수가 있다.

                                      <다음은 경천애인(敬天愛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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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 네이버 블로그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 네이버 블로그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  중국철학사   
2013. 9. 6.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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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에서 아주 중요한 명제가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이것은 중국고대의 많은 현인과 지사들이 추구하던 최고의 경지이기도 했다. 맹자는 중국철학사에서 천인합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해석을 하였는데, 그의 천인합일사상은 두 가지 기본적인 함의가 있다.

 
첫 번째로, 하늘의 기본적인 개념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지만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소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냈다면 하느님의 뜻이고, 가능성이 없는 일을 해냈다면 운명이다.(莫之为而者, 天也; 莫之致而致者, 命也.)" 이런 천명은 사람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비록 직접적인 인격신의 의미는 아니지만 "하늘은 말하지 않지만 행위와 사실로 그 뜻을 표시한다." 그의 움직임은 가끔 사람의 주관적인 바램과 의지, 행위와 반대된다. 걸출한 사람을 키울 때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최종적인 목적은 결국은 사람을 위해서이다. "이런 것을 통하여 그의 경각성을 높이고 마음다짐을 굳게 하며 갖지 못한 재능을 갖추게 한다. (所以動心忍性, 曾(增)益其所不能.)"(『고자하(告子下)』) 하지만 사람 쪽에서 볼 때 사람은 그 주관적인 호오정감(好惡情感)을 버리고 하늘에 순종해야만 하늘이 내리는 중임을 담당할 자격이 있다.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번창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順我者昌, 逆我者亡"(『이루상(离婁上)』)

 
능원자(陵園子)의 천인합일에 대한 견해는 이러했다. 즉 심성(心性)의 관점에서 하늘과 인간의 관게를 밝히고 사람이 외부에 대한 필연적인 관계를 주관적인 의식(마음)으로 전환하여 내적으로 인의도덕적 본성(성(性), 하늘(天))의 관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천인합일은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알고 하늘을 아는 심성적 체험으로 변화․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마음을 다 한 자는 그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심상(儘心上)』) 맹자가 말하는 마음(心)은 그의 본심이거나 양심을 말한다. 그 속에는 인․의․예․지의 도덕본성이 포함되어 있기에 또 "인의의 마음(仁義之心)"이라고 한다. 이렇게 마음․본성은 또 "천작(天爵)" 또는 "하늘이 넘겨 준(天之所於我)" "대체(大體)"라고 불린다. 때문에 마음․본성․하늘은 같은 개념이다. 또 이런 의미에서 맹자는 "萬物皆備于我"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았다. 만물의 본성은 모두 하늘이 부여한 것이며 천성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 본성 즉 하늘을 체험하면 만물의 본성은 통하여 사람과 만물을 하나로 융합하는 천일합일이라는 최고의 경지를 실현할 수 있다. 사람한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에 "다시 돌이켜 보아도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에 거짓이 없어 즐겁기만 하다. (反身而誠, 乐莫大焉)" (동상) 맹자의 마음․본성․하늘이 하나가 된다는 관념의 영향으로 후기 유학자들의 심성철학은 기본적으로 이 길을 따랐다.

 
맹자는 사람은 자기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면 하늘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자기의 심성을 수양하는 것은 바로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의 천인합일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는 사람과 하늘은 기본적으로 같기에 서로 감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하늘에는 사계절이 있고 사람은 사지가 있고 하늘에는 매년 360일이 있는데 사람의 골격은 360개 이다. 또 하늘은 둥글고 사람의 머리도 둥글며 하늘에는 오행이 있고 사람은 오장이 있기에 하늘은 사람의 증조할아버지인 셈이다. 그는 또 유별에 따라 고찰해 볼 때 하늘과 사람은 같은 부류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천인합일설의 정통적인 의견이다. 이런 천인합일설은 또 "천인상부(天人相副)"라고 하는데 사람은 하늘의 사본이고 하늘은 사람의 范型인 것이다.

 
송나라의 장재(張載)는 하늘은 넓은 허공(虛空)인데 허공은 기이다. 사람은 기가 모여 생긴 것이다. 사람의 정신과 본성은 기 안에 있는 고유한 존재이다. 때문에 "천인일물(天人一物)"이다. 즉 그는 하늘과 사람은 같은 존재물이라고 했으며 "천인합일"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정호와 정이는 사람은 기가 모여 된 것이고 기 안에는 이가 있고 이는 기의 지배자이며 이 이는 바로 하늘의 이치라고 하였다. 사람의 본성과 마음이 바로 하늘의 이치이기에 하늘과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이지 둘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에 "합(合)"이란 말을 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여 천인합일설을 더욱 철저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동중서는 주로 형체의 외부구조로부터 하늘과 사람이 일치하다고 말하였고 송대의 유학자들은 사람의 정신에서 천인합일 또는 천인위일, 천인일체를 논하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사람은 하늘이 낳은 것이고 사람의 본성은 하늘은 부여한 것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주돈이는『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태극을 음양으로 가르고 음양을 오행으로 가르며 음양오행의 정화가 모여서 사람이 되었으며 오행의 성질이 사람의 본성을 구성한다고 하였다. 왕부지는 그의 논리가 천인합일의 근원을 철저히 해석하였다고 보았다.

 
 
 
[출처] 66 천인합일(天人合一)은 가능한가?|작성자 초보작가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 - 성(誠)과 성실(誠實)을 중심으로-
关于儒学“天人合一”思想的现代诠释: 以“诚”和“诚实”为中心


한글판<유교문화연구>

2011, vol.1, no.18, pp. 37-62 (26 pages)

UCI : G704-SER000000346.2011.1.18.003


발행기관 :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분야 :
인문학 >
유교학윤사순 /Youn, Sa-Soon 1


1고려대학교



초록


천인합일사상은 안신입명(安身立命)을 지향하는 ‘유학의 궁극적 이상’임과 아울러 유학 사상을 사실상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유학의 한 대표적 특징’이다. 그런 만큼 이 사상에 대한 현대적 해석은 유학의 현대적 실용성을 탐색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유학 가운데서도 천인합일을 가장 구체적으로 논한 서적은 『중용』인데, 거기서는 그 실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만 그 성(性)을 다 할 수 있고, ....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병립(參)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성(誠者)은 천도(天之道)이고. 성하려는 것(誠之者)은 인도(人之道)”라고도 한다. 

이로 보면, 천인합일의 성취방법은 두 가지로, 
  • ‘성(誠)에 기초한 진성(盡性)’의 방법과 
  • 인도를 천도에 합치시키는 ‘원리(原理)차원’의 방법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의 구사로 천인합 일을 구현하려 할 때, 그 구현을 불가능한 듯이 보이게 하는 사유가 발견된다. 
  • 그 하나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이질적 성(性)이므로, 그것들의 일원화(一元化)를 전제한 천인합일은 구현될 수 없지 않느냐는 사유이다. 
  • 또 하나는 도(道)로서의 ‘리(理)’개념의 의미 가운데는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이 드는데, 이것들 또한 동일하지 않은 의미이므로, 인도와 천도의 원리적 합일에 난관으로 인지된다.

 이것들의 극복이 천인합일의 성취에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먼저 알아야 할 점으로, 이 두 가지 사유는 특히 사회의 대인차원에서 선악(善惡)의 야기를 감안하여 ‘본성’과 ‘기질성’을 이분화한 관점에서 고려되는 사유이지, 자연에 대한 대물차원에서 고려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천인합일 논의는 물성인 기질성이 가치중립(價値中立)임을 전제 하고, 본성과 기질성의 원천인 생명(生命)자체의 ‘생성현상(生成現象)의 특성’만을 논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두 문제의 해결은 다 형식논리를 벗어나 ‘생성논리’를 적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 첫째 본성을 대표하는 인(仁)이 그 본래의 애인(愛人)의 의미를 간직하면서도, 그것을 대물차원에로 확대하여 애물(愛物)과 생의(生意)와 생물(生物), 및 산물(産物) 의미로 운용해야 한다. 이는 본성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기질성과 동일시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 둘째 우주 생명체관에 입각하면, 그 생명체(有機體)에서 소이연과 소당연이 ‘하나의 일치된 상태’로 생성함을 본다. 

생명체의 생성은 각 부분으로는 일종의 기계론적•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듯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치 목적론적•당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논자가 생성논리라고 한 것은 이러한 이론을 가리킨다. 천인합일을 성취시키는 기본요건인 ‘성(誠)’의 개념에 대한 해석도 성찰할 부분이다. 일찍이 주희는 성(誠)의 의미를 ‘진실무망(眞實而無妄)’으로 해석했다. 
이는 적합한 해석이지만, ‘정성’의 의미로 미루면, 사실적 ‘진실’ 의미와 함께 티(瑕疵) 없는 ‘순수(純粹)’ 의미를 더해야만 그 의미가 더 충실해진다고 논자는 판단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성(誠)의 진실이라는 객체적 성격과 함께 그 주체적 의지적 성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誠)을 구현하려는 태도는 곧 성실(誠實)이다. 

성실할 때 인의(仁義) 같은 선한 본성이 발현된다. 성실은 본성 발현의 근본조건이다, 이는 성(性)이 성(誠)의 조리에 해당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성실이 그 조리인 성(性)을 드러내는 사실은 성(誠) 자체와 아울러 성실(誠實)을 원리화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상이다. 성(誠)자체는 ‘진실과 순수함’의 가능태로서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현인 성실은 ‘진실함과 순수함’의 현실태로서 당위적(요청적)으로 주체화된 보편성 객관성(곧 조리)을 띠는 점에서 인도라 할 수 있다. 성(誠者)이 천도이고 성실의 태도가 인도라는 규정은 이런 사유에서 나왔다고 해야 한다. 성(誠) 또는 성실(誠實)을 천인합일 성취를 위한 기본원리로 규정하는 사유는 성실이 천인합일 성취의 ‘핵심적 열쇠(키워드)’임을 가리킨다. 성실의 이런 위상은 붇다(佛陀)의 경지를 초래하는 선(禪)에 견줄만하고, 노장사상의 자연 상태를 가능케 하는 무위(無爲)에 견줄만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천인합일 경지에서 이루는 안심입명의 내용이 불교나 노장사상의 것과 다르다. 성실로 뒷받침되는 안심(安心)은 일단 불안해소를 이룬 점에서 ‘행복(幸福)의 상태’임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불교의 무심, 노장사상의 망아나 무아와 달리, 이 상태의 행복은 소아적 이기심으로 인한 방황을 끝내고 대아적 이타가 가능해진 ‘여유로운 심리상태’이다. 이는 성실이 주는 활력(活力)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상태임을 시사한다. 입명(立命) 또한 운명에 순종하는 순명(順命)을 넘어, 운명의 충실화를 도모하는 무명(務命)과, 운명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개명(開命)에 든 내용이다. 이런 점은 유학이 지닌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실제적인 특징의 바람직한 실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지에 든 ‘성인상(聖人像)’도 노장과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聖人)과 다를 수밖에 없다. 노자의 무위로 이룬 진인(眞人), 불교의 고통과 고뇌에서 해탈한 불타와 변별되는 인간이 이 경지의 성인이다. 그는 이미 ‘생명의 광장’에 들어선 까닭에, 일생 동안 생성적인 자강불식을 하면서, 사회와 자연에 대해 스스로 ‘무한책임 의식’을 지니고, 항상 ‘공인(公人)의 태도’로 살아가는 성숙한 인격자이다. 이런 인간상이 오늘날 요청되는 인간상임은 물론이다. 성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품을 고양하고, 화해로운 사회를 이루면서, 우주 자연의 균형 있는 생성을 저해하지 않고, 그 자연과도 조화로운 생활을 기하려는 ‘천인합일사상’이야말로 현대사상으로서 이용해야 할 실학적인 실용성을 충분히 지닌 사상이다. 현대의 실상을 정시할 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为了探索儒学在现代的可用性,笔者试图用现代的理念诠释儒学的终极理想“天人合一”思想。之所以考察此思想是因为笔者认为“天人合一”思想是儒学思想的代表性特征。自古以来,儒学者们把“天人合一”视为理想的原因在于认定此境界使“安身立命”成为可能,并且已经在现实里实现之。《中庸》提示了实现天人合一的方法论,即“唯天下之至诚,为能尽其性。能尽其性,则能尽人之性。能尽人之性,则能尽物之性。能尽物之性,则可以赞天地之化育。可以赞天地之化育,则可以与天地参矣。”进而言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由此看来,天人合一的成就方法有二:以“诚”为基础的“尽性”之方法和将“人道”与“天道”合而为一的原理层面上的方法。通过实践躬行,可以使“天人合一”变为可能,这就是《中庸》所蕴含的思想。当用上述两种方法来实现“天人合一”时,就会发现如下困难:一,由于人性和物性相区别,二者又具有异质性,而此异质性是阻碍其一元化的因素;二,由于“理”这一概念所蕴含的“所以然”与“所当然”之涵义的不同,因此“人道”和“天道”的原理性合一也难以实现。以上两种因素成为“天人合一”所需解决的课题。这里需要正确理解的是,无论是人性和物性的异质性还是“所以然”和“所当然”的区别,都属于社会对人的层面的因素,而不是自然界里对物层面的因素。以上均源自将“本然之性”和“气质之性”视为异质、二分化的思维。而“天人合一”应该在作为物性的“气质之性”价值中立的基础上,只探讨“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源泉-生命本身“生成现象的特点”即可。因此,只要脱离“形式讨论”而进行“生成讨论”,那么以上两种问题的解决就成为可能。进行“生成讨论”时“本然之性”和“气质之性”的二分化思维问题才得以解决。首先,将代表本然之性的“仁”理解成“爱人”,同时把“仁”扩展到对物层面上,运用在“爱物”、“生意”、“生物”以及“产物”里。这既保存了本然之性,又使之等同于气质之性。其次,根据宇宙生命体观,从生命体(有机体)里可观察到“所以然”与“所当然”同一化的现象。虽然生命体的生成呈现出机械的、必然的生成过程,但是整体上看仍属于有目的的、当为的现象。笔者所指的生成探讨就是指此理论。使“天人合一”成为可能的基本因素“诚”之概念也成问题。朱熹则将“诚”解释为“真实无妄”。这种解释算很恰当。笔者则在此基础上添加事实的“真实”涵义与无瑕疵的“纯粹”涵义,认为只有这样,“诚”之概念才能变得更加充实。这是因为只有这样,“诚”之“真实”这一客体性格和其本来的主体意志性格才得以体现。此时仍需准确把握“诚和性的关系”。“性”即是指“诚”的体现-“诚实”之“法则性条理”。“诚实”实现其条理的“性”的过程就是“诚”与“诚实”原理化的过程。“诚者天之道,诚之者人之道也”,也出自此思维。将“诚”和“诚实”视作是成就“天人合一”之原理的思维,已将“诚实”看作成就“天人合一”的关键所在。“诚实的地位”也在于此。这时的诚实可与使佛教的理想境界“佛陀”成为可能的“禅”相匹敌,也可与使老庄思想的理想境界“自然”成为可能的“无为”相媲美。只有这样,才能重新解读以诚实为基础的“天人合一”之境界。此境界无疑与“安身立命”即“安心立命”有关,但是此时的“安心立命”有别于佛教和老庄思想的“安心立命”。以诚实为基础的安心可消除不安的状态,使个人达到“幸福的状态”。这有别于佛教的无心和老庄思想的忘我和无我。儒学的此状态下的幸福结束了因小我的利己心而彷徨的状态,使之进入“大我的利他”的“充裕的心理状态”里。这表明“诚实”所带来的“活力”开启了人生新的生活。“立命”则超越了服从于命运的“顺命”,包含使生命更加充实的“务命”和不断开拓命运的“开命”之内涵。以上皆是儒学所蕴含的现实的、实用的、实际的特点最理想化的实现状态。此境界里的“圣人像”也区别于老庄和佛教的圣人。与老子的无为的“真人”和佛教的超脱了痛苦和烦恼的“佛陀”相区别的人就是儒学里所讲的圣人。他由于已进入“生命的广场”,一生都自强不息,对社会和自然怀有“无限的责任意识”,以“公人的态度”生存下去的成熟的人格体。此形象无非是现今社会所需的。以诚实为基础、提高自身的人品、构建和谐的社会、顺应宇宙自然的均衡状态、与自然协调发展的“天人合一思想”才是当今社会所需的实学的、实用性的思想所在。面对现代的状况,我们不得不承认此思想。


키워드

천인합일(天人合一),
진성(盡性),
성실(誠實),
천도(天道),
인도(人道)

天人合一, 盡性, 誠實, 天道, 人道

참고문헌(10)

KCI에서 이 논문을 인용한 논문의 수는5건입니다.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유교개념용어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   유교교리.

 정의
유학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학설.유교교리.

내용

『중용』에서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인 성(性)을 천명과 동일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忄(心)’와 ‘生’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살려는 마음’·‘살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살려는 의지’는 인간의 지각(知覺)이나 의식(意識)을 초월한 본질적인 것으로서 깊은 잠에 들었을 때도 심장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게 하는 근원자인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성은 한 개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동일한 것이며, 또한 만물에 내재되어 있는 생(生)의 본질과도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개체의 본질이 바로 전체의 본질인 것이다.

다만 개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성이라 하고 만물 전체의 본질을 가리켜 말할 때는 하늘의 작용이라는 의미로서 천명이라고 한 것이지, 성과 천명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체적 존재이면서 본질적으로는 전체적 존재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은 합일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감각 기관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 감각 기관은 육체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나를 구별하는 쪽으로 작용하여 점차 인간은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은 상태의 인간이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대인자 불실기적자지심자(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라 하여 그가 이상적 인간으로 설정한 대인은 갓 태어난 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하는 자라고 설명하였다. 이 때의 대인은 천인합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맹자는 이미 전체적 존재로서의 본질인 천명의 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과제로서 학문을 설정하고,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또 ‘진기심자 지기성야 지기성 즉 지천의(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전체적 본질로서의 성을 다시 구하는 과정으로서 학문의 길을 진심(盡心)·지성(知性)·지천(知天)의 세 단계로 세분하였다.

『중용』에서는 성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을 제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 능히 자기의 성을 다하니 자기의 성을 다하면 남의 성을 다하고 남의 성을 다하면 물(物)의 성을 다하며 물의 성을 다하면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그 작용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心)을 다하여 성(誠)을 실천하고 천명의 성(性)을 다시 구하여 천인합일이 되면 인간은 개체적 존재를 극복하여 전체적 존재를 실천하게 되는데, 그러한 때의 인간 행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맹자는 ‘여천지동류(與天地同流)’라 하였다.

『주역』에서는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일월(日月)과 그 밝음[明]을 합하고 사시(四時)와 그 차례[序]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을 합하여 천지와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라고 한 공자의 실천 세계도 또한 천인합일의 세계로 이해할 수 있다.

천인합일사상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존재하는 자로 봄으로써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을 도출하게 되는데, 전국 시대 말기에 태어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하려던 순자(荀子)는 성선설이나 천인합일사상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투쟁의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투쟁하게 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성악설을 제창하고 아울러 천인분리사상을 주창하여 인간은 천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인간 사회의 조화와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고 그 원리로서 예(禮)를 강조하였다.
한대(漢代)의 동중서(董仲舒)는 “하늘도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이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천인합일사상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말(唐末)의 이고(李翺)는 천인합일의 방법론으로서 복성론(復性論)을 제창하고 다시 복성의 방법으로서 성(誠)의 실천과 멸정(滅情)을 제시하였는데, 주돈이(周敦頤)에 이르러 이는 성(誠)의 실천과 무욕(無欲)으로 계승되고 또 복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서 우주론이 전개되었다.
주돈이의 사상은 다시 장재(張載)·정이(程頤) 등을 거쳐 주희(朱熹)에 이르러 성리학으로 완성되는데, 주희는 성의 실천과 무욕을 거경(居敬), 우주론을 궁리(窮理)로 집약하여 복성의 방법을 거경과 궁리로 정리하였다.
한국 유학에서는 천인합일사상보다 더욱 밀도가 높은 천인무간사상(天人無間思想)이 발달하였다. 천인합일이 천과 인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 천인무간은 천과 인이 애당초 간격이 없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천인무간사상에서 나타나는 한국적 특징으로는 궁리보다도 복성의 직접적인 방법인 거경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의 수양철학(修養哲學)과 지치주의운동(至治主義運動)과 같은 강렬한 정치적 실천 의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천인무간의 사상은 인간의 감정까지도 긍정하게 되어 천의 의지를 인간이 따른다는 천 중심의 천인합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천이 따른다는 인간 중심의 천인합일사상으로서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이 발달하게 된다.



 집필자
집필 (1996년)
이기동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

동양포럼/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오늘의 한국에서 ‘나이 듦’을 함께 생각한다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0.09.27 
김양식 박사의 신간 나이듦, 가슴 뛰는 내일 서평




[동양일보]우리는 우리 주변이나 가깝게 있는 것들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 그러나 거기서 뜻하지 않는 값진 보물을 다른 사람이 찾아내고서야, 비로소 뒤늦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의 선도 아래 동양일보의 기획 사업으로 추진했고, 나와 유성종 전 충청북도교육감이 각각 주간(主幹)과 운영위원장을 맡아 동양포럼을 관리한지 5년이 되었다. 그 동안 정상혁 보은군수가 대표적인 장수마을의 특성답게 ‘노년철학 국제학술회’를 주최하고, 동양포럼이 주관한 ‘한일 노년철학 대화회의’가 6차에 걸쳐 진행된 성과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충북학연구소장 김양식 박사의 최신저서 <나이 듦, 가슴 뛰는 내일>(수류책방, 2020)은 저자 자신이 ‘책을 펴내며’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한일 노년철학 대화회의’의 제2차 회의에 참석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성찰과 독자적인 관점·입장·견해를 다양·다원·다층으로 표출하고, 특히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하게 나이 드는 삶의 지혜를 간명하게 제시해 준 마음 흐뭇한 역작이다.

더구나 그것이 어느 먼 곳에 있는 낯선, 그래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고명인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같은 고장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일상적 생활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고장사람의 친근한 숨결·삶결·살결이 담긴 글모음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진실을 깨우쳐 주는 것은 먼 곳에서만 높은 곳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나이 들어간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어 이 세상을 아주 떠나게 될 때까지, 한 순간도 멈춤 없이 한결같이 계속해서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삶이란 나이 듦이다. 그런데 ‘나이를 잊고 산다’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직 철모르는 삶’일 수밖에 없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70대까지는 나이를 잊고 살았다. 그러나 80대에 들어서면서 내 인생도 잘 생각하여 보면, 결국 나이 듦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나이 듦인 것인가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이, 그냥 바쁘게 살았구나, 좀 더 뜻있게 나이 들 수도 있었을 터인데,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준비를 하고 80대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후회막급, 지금에야 그런 회한을 거듭해보아도 소용이 없다. 김양식 박사는 이제 막 60대에 들어선 신중년 OPAL세대에 속하는 활기차고 긍정적 마음의 습관을 지닌 충북학 연구자이다.

그에게 다가오는 인생 3막의 인생설계를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동년배와 보다 젊은 세대를 위해서, 열심히 살피고 끈질기게 연구한 각고의 노력의 성과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싶어 한다. 나는 그가 여기 소중히 여기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사인여천(=사람을 섬기되 하늘 섬기듯 한다)’의 정신과 실천의 삶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의 책을 읽으면 전문가들의 권위의식도 없고, 누구처럼 현학적 오만도 없다. 그저 자기가 절차탁마를 통해서 ‘나이 듦’의 뜻과 보람을 진솔하게 전해준다. 그는 힘주어 그러나 겸허하게 말한다. ‘이 책에서 지향하는 나이 듦은 조화로운 삶을 통해서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으로, 궁극적인 목표는 노년초월이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슈 초인이 되는 길이자, 대자유의 세계에서 생의 마지막을 향유하는 것이다’라고.

그렇다. 김양식 박사의 규정대로, ‘60대~70대는 인생의 황금기일 것이다.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이다. 가을이니 곱게 물들어야 하고 무르익어야’하겠지. 그는 자기가 속한 나이 세대에 충실하게 나이 듦의 보람과 목표를 성심껏 제시하고 있다.

주의 깊게 읽고 난, 80대 후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소견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김양식 박사의, 그리고 그와 동년배들의 나이 듦에 이어지는 진짜 노숙년기 인생도 제발 ‘가슴 뛰는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때도 똑같이 가슴 설레는 나이 듦이 계속될 것을 믿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 80대~90대~100대는 웬지 원시반본하는 시기이다. 한 삶이 애초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시기이다. 계절로 따지자면 겨울이다. 겨울의 뜻을 아는가?

나는 봄도 여름도 가을도 나름대로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겨울이 좋다. 겨울은 흰 눈 덮인 땅속 깊게 모든 것이 저장되고, 거기서 새로운 생명의 태동이 예비되는 때다. 김양식 박사의 가을 예찬을 내 겨울송가와 오버랩시킨다.

80대 인생은 니체의 위버멘슈의 단계를 지나, 초월의 단계를 음미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 다음세대들과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숨김없는 대화를 나누는 시기이다. 미지의 새 삶을 시작하기 전에 이생을 품위 있고 우아하게 끝맺음할 수 있도록, 다음세대와의 인간적 성심을 다하는 최후의 사귐에 진력하는 시기임을 보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둘째는 김양식 박사가 왜 니체의 초인을 언급하고, 의암 손병희 선생의 ‘인내천’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니체 이후 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이 초인의 모습을 그리다가 마침내 최근에 와서 이스라엘의 역사철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말 그대로 직역하면 ‘인간신’ 또는 ‘인간 즉 신’)라는 신조어를 통해서 전망했고, 미래의 인간상, 아니 관점을 바꾸어 말하면, 나이 듦의 궁극적 경지를 묘사하고 있고, 그것이 전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보다 100년이나 앞서서 ‘인내천’을 설파했던 손병희 선생의 선견지명을 내세워도 좋지 않았을까? 의암 선생도 청주인이다. 청주에서 김양식 박사가 손병희 선생이 사람의 삶의 궁극적 실상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가운데, 마침내 만나게 된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을 터인데.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소감이 있을 테니까. 김양식 박사의 계속되는 나이 듦의 탐구를 기대한다. 80대의 김양식 박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까?

여기서 김양식 박사가 지금까지처럼, 아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삶과 나이 듦의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열어가기 위해서, 그러나 남의 나라와 사람들의 말과 글, 거기에 담긴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견해들에의 의존도를 반성적으로 줄이고, 보다 우리의 역사적 공동체험과 인간적 공유인식의 가능성과 실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주기를 기대한다.

한 가지 실례로 말씀드리면, 김 박사는 역사학자이고 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이 듦의 과정을 수운 선생의 ‘시천주’와 해월 선생의 ‘양천주’, 그리고 의암 선생의 ‘체천주’의 체험심화·공감확대를 통해서 마침내 의암 선생이 설파했던 ‘인내천’에 함께·더불어·서로 이르게 되는, 충분히 실존개벽적이면서 세상개벽적인 ‘다시개벽’을 함께·더불어·서로 실현시켜 나가는 존재·생명·인격의 3차원 상관연동으로 뜻풀이·자리매김·대화활동으로 해명해나가면 어떻겠는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소견으로는 활명삼소방을 통해서 꾸준히·한결같이·성심을 다해서 연재하고 있는 김용환교수의 ‘해월신사 법설·무체법경 단상’은 다른 어느 외국인 저작에서보다 우리 삶결과 숨결이 담긴 진실을 전해주고 있고, 가까운 곳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실존적 공감을 가능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보물이다.

함께 나이 듦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데 적지 않은 힘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가까운 사람들의 힘과 열과 에너지를 모으고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0년 9월 18일.







이 책은...

행복하게 나이 먹는 삶의 지혜를 소개하는 책, <나이듦, 가슴뛰는 내일>은 역사학자이자 명상가이며 문학박사인 김양식(60·사진) 충북학연구소 소장이 펴냈다.

책에는 인생 3막을 열어가는 삶의 태도 12가지가 담겨 있다.

김 소장은 책을 통해 △오늘이 내 생애 가장 빛나는 하루, 나이듦을 즐긴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 △언제 어디서나 미소 짓는다 △단순한 삶을 산다 △배우는 것을 즐긴다 △도전한다 △세상과 소통한다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한다 △나이 들어가는 미덕을 실천한다 △내면의 고요함을 즐긴다 △자연과 대화를 나눈다 △죽음을 초월한다 등의 12가지 습관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요가문화협회 부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 청주대 평생교육원 명상 강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리산에 가련다>, <한국 근대 사회변동과 농민 전쟁>, <근대 권력과 토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 <근대 현대 충북의 역사와 기억>, <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청주학 이야기> 등이 있다. 

동양포럼/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동양포럼/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 동양포럼 < 특집 < 기사본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불교에서의 존엄 개념

기자명 동양일보
입력 2021.01.24 19:18


기타지마 기신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동양일보]시작하며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씨가 백인경찰에 의해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인종적 만행의 영상이 SNS에 의해 전 세계에 발신되자, 인종차별반대 운동이 1960년대의 ‘공민권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전개되어,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BLM운동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그 근원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공민권운동을 지도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종차별에 저항한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이 계기가 되어, 1956년에 ‘앨라바마에서의 버스 인종분리는 위헌이다’고 하는 최고판결이 내려진 직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흑인은 사고를 정지시켜 복종하고 감각을 둔화시켜 현상에 만족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한 상태에서, 존엄과 사명이 있음을 새롭게 실감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몽고메리의 새로운 흑인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자존심을 새롭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획득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山本伸 外 共編, <ブラック・ライブズ・スタディーズ>, 東京: 三月社, 2020, 92쪽)



1963년의 버밍햄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행진하는 수백 명의 흑인에 대해서 경찰서장불 코너(Bull Connor)는 비라프스 목사에게 해산할 것을 명령했는데, 목사는 그것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서장은 부하들에게 방수(放水)를 위해 소화용 호스를 열라고 명령했지만, 부하들은 차마 하지 못했다. 흑인의 당당한 태도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무릎을 꿇은 채 코너의 경찰견이나 경봉(警棒), 소화용 호스에 맞서 자신의 육체와 영혼의 힘만으로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두려워하거나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코너의 부하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호스를 늘어뜨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山本伸 外 共編, <ブラック・ライブズ・スタディーズ>, 東京: 三月社, 2020, 94쪽)



여기에서 우리는 존엄의 구체적인 현현으로서의 비폭력이 적대자도 바꾸는 모습을 볼수 있다.

사실 킹 목사는 인도인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남아프리카에서 백인이 인도인을 차별한 근간에는 만족할 줄 모르는 물질적 욕구의 추구라고 하는 굳건한 자기중심주의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위협받는 경우에는‘서양근대문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방어의 최고 권리’로서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음을 간디는 파악했다.

이 자기중심주의의 포기 이외에 인간의 평화적상생의 길은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은 ‘서양 근대’의 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겨난 것이 인도의 토착사상에 기초한 ‘사티아그라하’ 운동이다.



1. 사티아그라하(satyaagraha) 운동에서의 ‘존엄’ 개념

1907년 인도인이 ‘암흑법’이라고 부르는 인도인 거주권을 박탈하는‘아시아인 등록법’이 남아프리카 트랜스발의 백인정부에 의해 입법화되었다.

이 ‘등록’을 거부하면, 인도인은 벌금이나 투옥 또한 강제송환된다. 간디는 이‘암흑법 철폐’를 위한 저항운동을‘사티아그라하’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고대 인도의 산스트리트어인‘사티아(satya)’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이 이외에도‘어떠한 위험도 없는 상태’즉 비폭력이라는 뜻이 있다(이 반대편에 있는 것이 폭력을 합리화하는 자기중심주의다).

동시에 우리에게 작용을 가하는‘신’이나 역사를 초월한 진실의‘존재’라는 의미도 있다. ‘아그라하(aagraha)’는‘고수하는 것’,‘열정’을 의미한다. 따라서‘사티아그라하’운동이란 비폭력에 의한, 역사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보편적 실재로서의 ‘진리’(신)의 작용(영성의 작용)에 의한 ‘자기중심주의’로부터의 탈각을 자타에게 모두 촉구하고, 존엄성을 지향하게 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간디에게 있어서 비폭력이란 ‘진리’에 이르는 길로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고통을 주거나 괴롭히거나 살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사회로부터의도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진리’는 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는데, 그 작용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자기중심주의이다. 이것을 제거하는 방법은 간디에 의하면 ‘지금까지 만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무력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자신이 ‘의도한 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간디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서술되어 있듯이, 크리슈나신은 모든 인간에 내재함과 동시에 초월적인 신으로, 개인을 뒤흔들고 동요시킨다.

억압하는 백인에게도 크리슈나신은 내재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주의로서의 아집을 버리기만 하면 상이한 자들끼리의 평화적 상생도 가능해진다. 억압자로서의 영국인(백인)과 피억압자로서의 인도인 사이의 대립의 극복은 어느 한편에 의한 다른 한편의 굴복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간디는 토착적 사상과 차별철폐라는 당면과제를 결합시켜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전개하였다. 거기에는 서구 근대에는 볼 수 없는 외부성으로서의 타자 우선, 타자를 매개로 한 자기초월, 자타동일, 인간의 이중화와 같은 시점이 존재하고, 자기중심주의의 어리석음에 눈을 뜨라!”는‘동요’를 일으키는 영성의 작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인도인 이슬람교도도, 최종적으로는 영국인(백인)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백인의 지지도 얻어서 최종적으로는‘암흑법’을 철폐시켜, 평화적인 상생사회의 출발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킹목사가 간디의 사상에 공명한 것은 거기에서 특정 종교를 넘어서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고, 평화상생으로의 길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초월적 신은 모든 인간에 신이 내재한다는 것을 영성의 작용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적대자도 자기 안에 내재하는신을 자각하도록 한다. 이 자각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자각이다. 이 존엄을 자각할 때 자기중심주의는 붕괴된다. 이 개념을 명확하게 제기한 것은 대승경전 <대반열반경>이다.



2.<대반열반경>에서의 불성과 존엄

<대반열반경> 제8권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體衆生悉有佛性)’, 즉 ‘모든 사람에는 불성이 내재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이 불성은 번뇌라는 자기중심주의에가려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가난한 여성이 자기 집에 금고가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붓다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비유는 번뇌를 가진 인간은 스스로는 자기에게 불성이 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은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붓다)의 영성의 작용에 다름 아니다. <열반경>에서의 ‘불성’은 산스크리트어 ‘붓다 다투(buddha dhaatu)’, 즉 ‘붓다가 되게 하는 근본 실체’의 번역어로 완성체로서의 ‘붓다 그 자체’를 의미하고, 그 내용은 ‘고귀하고 엄숙한’ 존엄성을 함축한다.

구체적인 개체로서의 인간과 불성의 관계에 대해서 신란(親鸞. 1173~1262)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불성은 곧 붓다 그 자체다. 이 붓다는 무수히 많은 모든 세계에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마음(心)이다. 인간은 이 마음을 통해 붓다에 의한 구제의 맹세를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이 신심(信心)은 곧 불성이다. 나에게 내재하는 이 불성은 초월적 세계의 붓다의 영성의 작용에 의해 자각된 것이기 때문에 초월적 세계의 붓다, 진여와 동일하다. 초월적 세계의 붓다와 나에게 내재하는 붓다는 불이일체(不二一體)의 관계에 있다. 초월적 세계의 붓다는 진여로서, 색도 형체도 없다”(<유신초문의(唯信抄文意)> 1250년)



신란에 의하면 초월적 세계에 존재하는 진여는 그 자체로는 작용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미혹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 자기를 한정시켜 개체의 형태를 취해서 현실세계에 나타난다. 따라서 이 현실세계에서의 모든 개체, 개개의 인간은 자기 안에 붓다를 모시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성으로서의 붓다의 영성의 작용, “자기중심주의의 어리석음을 자각하라!”고 하는 외침, 인간 석존에게 나타난 아미타불의 외침을 들을 때, 번뇌에 의해 불성이 가려져 있어도 누구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때 우리는 붓다와의 일체성, 절대자와의 일체성에 눈을 뜨는 것이다. 이 상태가 존엄성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버밍험에서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행진하는 흑인들로부터 존엄성의 구체적인 현현을 보았기 때문에 경찰들은 방수(放水) 명령을 집행할 수 없었다. 경찰들은 흑인의‘증오’가 아니라 당당한 모습, 존엄성(불성, 신)의 구체적인 모습에 저항하지 못한 것이다. 흑인을 탄압하는 경찰들에게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존엄성(불성, 신)이 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불성은 악인이나 불법을 매도하는 자에게도 내재해 있다.

정토경전 중에 가장 중시되고 있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은 “유제오악비방정법(唯除五逆誹謗正法)”, 즉 “악을 범한 자, 불법을 매도한 자는 붓다의 구제에서 제외된다”고 하면서도, 그런 행위를 한 자도 회심참회(廻心懺悔)하면 모두 구제받을 수 있다는 함축이 들어 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선도(善導, 613-681)의 <법사찬(法事讃)>(上)에 나오는 “방법천제회개왕(謗法闡提廻皆往)”, 즉 “죄를 범한 자도 불법을 매도하는 자도 회심참회(廻心懺悔)하면 모두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의 구체적인 예를 신란은 <대반열반경> ‘범행품(梵行品)’을 인용하면서, 아버지를 살해한 아사세(阿闍世) 왕자의 회심참회(廻心懺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탐욕에 의한 착란’으로 살해를 범한 것으로, 살해에 대한 자각과 참회가 있기 때문에 당신의 행위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석존으로부터 듣고, 아사제 왕자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에 세존을 뵙지 못했다면 셀 수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얻으신 공덕을 받들어서 중생의 번뇌를 끊고 나쁜 마음을 깨트리고 싶습니다.”

(親鸞, <顕浄土真実教行証文類(現代語版)>, 本願寺出版社, 296쪽)



아사세 왕자는 인간 석존에게서 붓다를 본 것이다. 그 붓다의 외침을 듣고 번뇌에 가려져 있던 내재적 불성은 활성화되고, 가해자였던 그는 진실에 눈을 뜨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인생을 결의한다. 존엄성을 회복한 아사세 왕자는 석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제가 틀림없이 중생의 온갖 나쁜 마음을 깨트릴 수 있다면, 저는 항상 무간지옥(無間地獄)에서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을 위해서 고뇌를 받게 되더라도 그것을 고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296쪽)



그리고 자신이 다스리는 마가다국(摩伽陀国)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 즉 진실의 깨달음을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아사세는 존엄성을 얻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의(侍醫) 지바(耆婆)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바여! 나는 목숨이 다하는 일 없이 이미 깨끗한 몸이 되었다. 짧은 목숨을 버리고 긴 목숨을 얻었고, 무상(無常)한 몸을 버리고 불멸의 몸을 얻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일으키게 하였다.(297쪽)



자기에게 내재하는 불성에 눈을 뜬 인간은 육신은 유한하지만 마음은 진실세계(정토)의 붓다와 같다. 신란은 그와 같은 인간을 내용적으로 ‘여래와 동등하고’ 현실의 모습으로서, 붓다가 되는 것이 정해진 ‘미륵과 같다’고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자대비’(광대한 타자 구제심)는 불성이라고 <대반열반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불성을 자각한 인간은 보답을 구하지 않고, 타자구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각’을 얻은 인간의 행동은 붓다와 일체가 된 행동으로, 미륵보살이 행하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거기에는 완성은 없고, 항상 완성을 지향하는 ‘탈피’가 계속된다. 그런 인간의 모습을 접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적인 ‘실감’이 존엄성이다.

불성의 자각은 불합리한 현실변혁을 위한 행동을 낳는다. 자기에 내재하는 불성을 자각한 인간은 외부성으로서의 붓다의 작용에 의해서 타자에게도 적대자에게도 동일한 불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의 상생의 근거가 생겨난다.



3. 불교에서 불성=존엄성의 현대적 의의

서양 근대는 초월적 신을 내재화하고, 그것을 이성과 양심으로 파악하였다. 서양 근대에서 인간은 이상과 양심을 안에 지니는 존재로,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내재화된 신은 개인의 마음 속에 한정되고, 개인의 양심과 일체화된다.

이것이 서양 근대의 개인주의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신은 교회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이성과 양심을 내재하고 있는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되는 국민국가로 이동되고, 세속국가 자체가 신적인 절대성을 체현한다. 이렇게 해서‘국가의 정의’라는 이름 하에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가 정당화된다.

이성·양심을 안에 지니는 개인이 자기를 묻는 경우, 자기(개체로서의 나)를 뿌리치고 그런 자기(개체로서의 나)를 보는 ‘또 다른 새로운 자기’를 탄생시키는 절대자, 즉 자기 객관화를 가능하게 하는 외부성으로서의 초월적 절대자는 부재하고, 이성·양심이 자기 내부에서 자기를 묻게 된다.

그 결과 자기 초월(현재의 자기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이성·양심은 쉽게 자기중심주의와 일체화될 수 있다. 수 있다.

현대 일본에서는 존엄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에는 ‘인간답게’, ‘나답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함축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자기객관화가 없는 외부성으로서의 타자와의 상호관계성을 결여한‘둘도 없는 나’를 강조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존엄’ 개념은 ‘인간의 내적 가치’이고, ‘자율개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경우에 초월적 존재와의 상호관계를 부정하면 자기중심주의라는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입장에 선 주체자로서의 인간에 주위 사람들은 영혼을 울릴 정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이‘나’를 살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체의 모든 기관에 대한 깊은 감사와 존경도 없을뿐더러, 자기와 일체화된 붓다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중심주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고수하는 것이 서구형 근대적 사고에 다름 아니다. 불성론은 인간에 내재하는 존엄성으로서의 붓다와, 그것을 자각하게 하는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의 작용에 의한 자아고집・아집으로부터의 해방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서양 근대에는 구조적으로 우열의 이항대립적 사고, 타자를 거부한 자아중심주의가 존재하고, 그것이 사회체제와 일체화되어, 마치 보편적 원리인 것처럼 세계에 퍼지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나 루터 킹 목사는 이와 같은 서양 근대의 틀을 넘지 않는 한, 억압이나 차별 그 자체의 철폐와 인간 상생 현실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의 길은 내재적 절대자와 외부성으로서의 절대자의 변증법적 통일의 논리이다. 이 논리에 기초한 행동이 서양 근대가 해결하지 못한 상이한 인간들 사이의 상생의 기반을 제한 것이다.



맺으며

오늘날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존엄론에는 내재와 초월의 상호관계를 심화시키는 시점이 희박한 것 같다. 그것은 학문 자체가 서양 근대에 특징적인 이항대립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항대립적 구조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대반열반경>의 불성론이다.

이 사상은 13세기에 가마쿠라신불교(鎌倉新仏教)의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인 신란(親鸞)에 의해 이론화되었는데, 일본에 정착하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반(反)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 불교 교단의 하나인 진종(真宗) 교단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 교단도 그와 같은 불성론을 기본적으로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민중 속에 정착하는 일은 없었다.

1945년 패전 후에 근대 천황제를 지탱한 국가신도(国家神道)의 부정과 서양 근대적 개인주의가 일본에 확산되는 가운데,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종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경원시(敬遠視)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거기에는 서양 근대는 종교를 지양(aufheben)했다고 하는 환상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존엄 개념을 종교와 관련시켜 심화시키는 방향은 주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내용에는 비폭력과 평화, 상호관계성, 차이와 평등의 병존, 공동체와 개인, 우애, 일즉다( 一卽多), 수복적 사법(修復的司法), 용서와 화해 등등, 오늘날의‘난제’를 해결할 개념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이 개념들은 하나같이 존엄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에도 종교와 관련지어 존엄 개념을 심화시키는 작업의 의미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다룬 <대반열반경>의 불성론에는 약자와 피해자가 존엄성을 획득하도록하는 용기부여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아사세의 회심참회’에서 볼 수 있듯이, 가해자와 강자도 구제받는 시점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성론에는 절대자의 내재와 초월의 상호관계성을 볼 수 있고,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시천주(侍天主)’ 개념과 상통하는 점도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불성론으로 위치지워지는 존엄 개념에는 오늘날 인간의 평화적 상생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서구 근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명확한 방향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번역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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