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9

알라딘: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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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공동체에 대한 고민 |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6
이현주,이계삼,박성준,유창복,이남희,윤구병 (지은이)철수와영희201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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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쪽
152*215mm
385g
책소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시리즈 '품' 편.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청소년들이 공동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동체의 순 우리말인 ‘품’이란 주제로 풀어냈다.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윤구병, 이현주, 이계삼, 박성준 등 저자들은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에서 윤구병 선생님은 왜 우리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현주 선생님은 종교라는 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품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계삼 선생님은 학교라는 품이 안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들려주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남희 선생님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가족의 범위를 주변과 이웃으로 더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창복 선생님은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주변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박성준 선생님은 인문학을 배우는 시민들이 함께 자율적으로 가꾸어가는 우정의 품인 길담서원 이야기를 통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왜 나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진지’를 만들어 학연이나 지연을 넘어선 가치관과 문화적 정서가 서로 통하는 평등관계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한다.


목차


머리말 - 보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한 우정의 ‘품’

1강. 서로 돕고 살아가는 힘 - 윤구병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자율성은 모든 생명체의 꽃이다
스스로 삶과 시간을 통제하라
서로 돕고 사는 힘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
손발을 부지런히 놀려라

2강. 틀 밖으로, 더 넓은 품으로 - 이현주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틀 밖으로 나가는 것
어떤 질문을 품고 사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틀 속에서 충분히 성숙해져야 한다
더 넓은 품으로 나아가자
학생이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

3강. 가족에 대한 따뜻한 상상 - 이남희
가족은 누구인가?
인구 정책과 가족계획의 변천
사실은 다 남의 가족하고 살고 있다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필요하다
누구와 이룬 가족이든 소중하다
누구도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4강.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 이계삼
학교는 왜 다니지?
학교라는 제도로부터 생겨난 역설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는 모두 다 불행해진다
우리 교육 문제의 근원
좋은 대학 나온다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은 아니다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질문하기, 빠져나오기, 홀로 존재하기, 친구 찾아가기
머리로 공부하고 몸으로 때우기
지금의 자리에서 용감하게 ‘작은 진지’를 만들자
땅에 발을 붙이고 더불어 굳건하게 살아가기
멀리 바라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실천하기

5강.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성미산 마을공동체 이야기 - 유창복
모두가 주인공인 성미산마을
성미산을 지켜낸 3·13 대첩
성미산 어린이집 공동육아 이야기
이해가 안 되는 차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내 아이에서 동네아이로, 방과후 교실에서 마을축제까지
성미산 마을살이 이야기: 성미산학교, 생협, 동네부엌, 작은나무 카페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다

6강. 현대적 서원을 함께 만드는 꿈- 박성준
품,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
「제1의 얼굴」과 「제2의 얼굴」
현대적 서원을 함께 만드는 꿈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불꽃같은 증언
길담의 벗들 - “작은 목소리, 작은 땀방울, 작은 사랑”
「작은 공간의 가능성」- ‘자율’과 ‘공율’
희망의 싹-새로운 시민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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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강. 서로 돕고 살아가는 힘 - 윤구병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로 태어났으니까 품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돕고 사는 힘들이 더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좋은 세상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2강. 틀 밖으로, 더 넓은 품으로 - 이현주
엄마 배 속에 있는 열 달 동안 우리의 생명 줄은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었어요. 그런데 나올 때가 되어서 산파 선생님이 탯줄을 끊고, 엄마가 나를 ‘품’에 안아 줍니다. 엄마의 배 속이라는 낡은 품에서 나와 엄마의 가슴이라는 새로운 품에 안기는 거죠.
3강. 가족에 대한 따뜻한 상상 - 이남희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도, 그저 마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도 가족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제시되는 가족도 있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굉장히 다양해요.
4강. 고래 배 속에서 살아남기 - 이계삼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그들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대하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세상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지배 논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중요한 거예요.
5강. 주민이 100명이면 마을이 100개 - 유창복
이해도 안 되는 차이를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차이라는 걸 제가 인정하게 됐고, 그 차이와 공존하는 감수성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협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힘든 협동의 과정을 이어 갈 수 있게 했던 것은 결국 소통이었다는 겁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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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24일자 어린이.청소년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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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최근작 : <대한민국 청소년에게>,<아가씨 피리를 부셔요>,<We Want to Be Real Christians 2> … 총 260종 (모두보기)

이계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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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밤낮없이 노동하는 부모님 밑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고, 밀양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마쳤다.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국어국문학과에 적을 두었으나, 주로 학과실과 야학에 머물렀고, 거리의 시위대에 휩쓸려 데모를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빈 강의실에서 토론을 하거나, 막걸리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끔 사회과학도서나 시집, 소설을 읽기도 했다.

야학과 학생회, 학생정치조직 활동 등으로 대학 4년을 다 보내고, 1994년 말에 군에 입대했다. 충남 계룡대에 있는 육본 헌병감실 상황실에서 상황병으로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육군 전체의 사건·사고를 매일 실시간으로 접수하고 ‘상황 보고서’와 예하부대에 내려 보내는 ‘사고 사례’ 만드는 일을 했다.

1997년 복학, 펑크난 학점을 때워 겨우 졸업하고, 1998년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거기서 교직 과정을 이수하며 교육잡지 『처음처럼』 편집 일을 거들었다. 교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송순재 교수님의 ‘교육사랑방’ 모임 말석에서 심부름하며 공부했고, 친구들과 교육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으며 교사의 꿈을 키웠다.

2001년 경기 김포 통진중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통진고를 거쳐 고향인 경남 밀양 밀성고에 이르기까지 11년간 중등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지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내내 활동가로 일했고,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도 활동했다.

『녹색평론』, 『한겨레』, 『교육희망』, 『우리교육』, 『오늘의 교육』 등 여러 매체에 교육과 사회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 이를 묶어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녹색평론사, 2009) 등 몇 권의 책을 냈고, 십여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2009년, 밀양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녹색평론』 독자모임, 농민회, 전교조, 어린이책시민연대 소속 회원들,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풀뿌리 협동 조직인 ‘밀양두레기금 너른마당’을 만드는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1기, 2기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2월 사직했다. 농업학교를 준비하려 하였으나, 그 무렵 발생한 밀양송전탑 故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으로 결성된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5년 12월, 녹색당 20대 총선 비례후보 선거에 출마하여 2번 순번을 부여받았다. 접기


최근작 :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고르게 가난한 사회>,<숨통이 트인다> … 총 18종 (모두보기)

박성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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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감옥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여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과 평화학을 연구했다.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와 ‘비폭력평화물결’ 대표로도 일했다. 지금은 길담서원 대표이다. 함께 강의하고 정리한 책으로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 『세상을 바꾸는 힘』, 『눈, 새로운 발견: 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까?』가 있다. 『모든 이의 집: 건축가 1년생의 첫 작업』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작 : <눈, 새로운 발견>,<세상을 바꾸는 힘>,<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 총 8종 (모두보기)

유창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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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가로 불리는 필자는 경남 합천 산골짜기에서 나고 서울에서 줄곧 자랐다. 성북구 미아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대에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20대 말에 결핵을 얻어 2년여의 투병 끝에 완쾌한 후, 30대에는 ‘큰돈’을 벌어 보겠다고 창업을 하고 사업을 했다. 큰돈은 못 벌었지만 사업은 제법 할 만했다. 30대 중반에 아빠가 되어, 자식 잘 키워 보겠다고 성미산마을에 깃들더니, 40대 내내 신나는 마을살이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 우연히 박원순 시장의 부름을 받고, 행정 언저리에서 50대를 다 보냈다. 정책으로 시작한 마을에서 협치를 거쳐 자치에 이르더니, 정치도 보게 되었다. 선량한 선출직의 선의에 기대어, 얻어 쓰는 권한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고 나름 성과도 맛보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결국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시민이 ‘권력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그 권력이 통제되고 시민이 주인 되고 주민이 주도하는 정치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 휴머니스트)에 이어, 8년 동안의 서울시 행정나들이에 대한 기록과 보고’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필자의 경력
현) 성공회대학 사회적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미래분과위원, 행정안전부 정책자문위원(지방자치분권 / 지역경제활성화), 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 부설 미래자치분권연구소 소장, 자치와 사람(자람) 공동운영위원장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성미산학교 설립위원장 / 교사대표 / 교감, 성미산마을극장장

필자가 쓴 책
우린 마을에서 논다(2010, 또하나의문화)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은 가능한가(2014, 휴머니스트)
마을정부를 말하다(2018, 행복한책읽기) 접기


최근작 : <시민민주주의>,<마을정부를 말하다>,<마을공동체> … 총 8종 (모두보기)

이남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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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영국여성참정권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의 역사와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관심이 많아서 자율적 여성모임과 강좌, 생활밀착형 여성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일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여성과 사회》 편집장, (사)여성문화예술기획 사무처장, 여성가족부 장관정책보좌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 운영위원, 유한회사 미디어일다 사원, (사)한국여성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성 / 사랑 / 사회》(공저, 2006), 《세계화 시대의 서양현대사》(공저, 2010), 《몸으로 역사를 읽다》(공저, 2011),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공저,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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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젠더와 사회>,<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세계화 시대의 서양 현대사> … 총 4종 (모두보기)

윤구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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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 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1988년에 어린이에게 읽힐 좋은 책을 출판하려고 “보리기획(지금의 보리출판사)”을 만들었다.
이후 변산에 자리를 잡아 변산공동체를 꾸리고, 교수 노릇을 그만두고 농사꾼으로 살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세중립 통일연방 코리아”를 앞당기기 위한 평화 마을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2016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에서 “우리 말글 으뜸 지킴이”로 뽑혔다.
쓴 책으로 「잡초는 없다」, 「실험 학교 이야기」, 「모래알의 사랑」, 「철학을 다시 쓴다」, 「꽃들은 검은 꿈을 꾼다」, 「내 생애 첫 우리말」, 「윤구병 일기」 들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빅북] 심심해서 그랬어>,<아픈 데 마음 간다는 그 말,>,<누리과정> … 총 1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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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전염병 전쟁>,<10대와 통하는 건강 이야기>,<어느 돌멩이의 외침>등 총 130종
대표분야 : 청소년 인문/사회 5위 (브랜드 지수 100,856점), 한국사회비평/칼럼 11위 (브랜드 지수 31,854점), 환경/생태문제 19위 (브랜드 지수 4,718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배우는 ‘품’ 이야기

이 책은 ‘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통해 청소년들이 공동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공동체의 순 우리말인 ‘품’이란 주제로 풀어냈다.
청소년기에 만나는 공동체인 품은 다양하다. 가족, 종교, 학교, 마을, 사회로 나누어지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품 안에서 청소년은 성장하고 갈등한다. 청소년은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내가 어떤 존재인지,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지, 사회에 나아가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라는 물음을 안고 산다.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윤구병, 이현주, 이계삼, 박성준 등 저자들은 이런 청소년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나는 왜 더불어 살아야 할까?”

책에서 윤구병 선생님은 왜 우리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현주 선생님은 종교라는 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품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계삼 선생님은 학교라는 품이 안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을 들려주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이남희 선생님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사례를 들어 설명하며, 가족의 범위를 주변과 이웃으로 더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창복 선생님은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주변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박성준 선생님은 인문학을 배우는 시민들이 함께 자율적으로 가꾸어가는 우정의 품인 길담서원 이야기를 통해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아가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왜 나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진지’를 만들어 학연이나 지연을 넘어선 가치관과 문화적 정서가 서로 통하는 평등관계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한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품’ 이야기

이 책은 여러 분야에서 공동체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실천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준 강의를 토대로 한 것이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가파른 경쟁의 사닥다리를 타고 있는 청소년들은 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원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철수와영희 펴냄), 『몸, 태곳적부터의 이모티콘』(궁리 펴냄),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 펴냄),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철수와영희 펴냄), 『세상을 담은 밥 한 그릇』(궁리 펴냄)에 이어 출판된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에서 진행된 강좌의 여섯 번째 강연집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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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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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품이란 무엇일까? 리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문명은 이전과 달리 급속도로 성장한다. 물질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근대 국가가 출현하게 되고 이전과 달리 민족주의가 심화되면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인간이 아닌 '개인'이 출연하게 된다.


'개인'의 등장으로 인권의식이 더 높아지고 공동체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진 공동체를 '국가'가 메우게 된다. 오늘날 '국가'는 그 형태는 민주정이지만 이전의 왕정보다도 더 강하고 넓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성장한 인권의식과 '개인'의 탄생이 결코 온전한 자유의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푸코의 말처럼 근대의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로워보이지만 실상 감옥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의 메세지를 받아들여 스스로 검열하는 개인의 모습은 공동체의 품에서 벗어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보여준다.


근대를 상징하는 것은 바로 시간표다. 이전까지 시간이란 자연이 정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시간은 자연이 아니라 자본가가 지정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교육에도 밀려왔다. 물론 근대 공교육의 성립은 이전 엘리트 사교육을 극복하고 아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진보다. 그러나 근대 학교가 시간표를 정해 아이들의 리듬을 무시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많은 교육자들의 비판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통제의 반대말은 자율이다. 자율이란 스스로 규칙을 정해 실천한다는 뜻이다. 학교에도 자율학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율이란 것이 허울 뿐이라는 건 그 자율학습을 계획하는 교사들도 알고 있다. 진짜 자율학습이라면 왜 야자 폐지를 반대한단 말인가.


윤구병 님의 말처럼 자율은 교육이 추구해야할 궁극목표 중 하나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자율성을 길러주고 있는가? 이에 대답은 자율성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다르겠고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건 이런 자율성을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기존 체제의 승리자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협동 역시 미래에 꼭 필요하다고 명사들이 말하는 능력이다. 협동을 위해서는 말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또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억제되고 통제된 분위기에서 겉핥기가 아닌 진정한 협동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령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협동능력을 길러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동물이다. 인간의 한자어에 사이를 뜻하는 한자가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무리를 짓고 인간은 협동을 한다. 언어의 경우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원숭이나 다른 똑똑한 동물도 어린아이 수준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천만, 몇 억이 넘는 개체가 협력할 수 있는 종은 오로지 인간이다. 협동능력이 미래에 중요한 능력이 된다 했지만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협동능력은 중요했다. 오늘날 개인이 중요시되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 능력을 길러주는 곳은 이제 학교 뿐이다.


이 책에는 가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체 중에 아직도 무너지지 않은 단위는 오로지 가족 뿐이다. 그러나 그 가족도 요즘은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4가구 중에 1가구가 단독가구라는 통계는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생산을 위한 힘을 재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쉼터라는 점에서 가족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요즘 공동체란 말은 너무 흔해졌다. 그러나 진정한 공동체는 찾기 어렵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엄마 품에 안기 듯 사람은 공동체의 품에 안길 수 있어야 한다. 성미산은 그런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동체다.


공동체가 공동체 답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은 연민의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다른 사람을 안타깝게 여길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점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너무 쉽게 친구를 배제해버린다.
유창복 님의 말처럼 공동체에서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갈등이 없다면 그 공동체의 건강에 대해 의심해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는 것이다.


학급은 운명공동체다. 미우나 고우나 1년간 떠날 수 없는 공간이자 품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서로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공감할 것인가. 이건 교사에게 필연으로 다가오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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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로그스 2018-04-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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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 가톨릭일꾼



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 가톨릭일꾼



평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박충구
승인 2018.11.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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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 거부의 평화신학 이해, 재세례파 신앙을 중심으로-4

재세례파 신앙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평신도 영성운동, 즉 퀘이커 신앙운동과 만나면서 그 평화주의적 실천 지평을 넓히게 되었다. 퀘이커들도 재세례파 교도와 유사한 핍박을 받았으나 순교적 차원까지 고된 고난은 겪지 않았다. 그들은 국왕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국가주의나 애국주의의 폭력성과 전체성을 거부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투옥되는 역경을 겪었다. 이는 18세기 계몽이후 시대에서 그리스도의 평화사상을 지켜나간 운동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만일 이들도 16세기에 태동되었다면 무수한 순교의 반열에 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2005/6년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퀘이커 수도원에서 9개월 동안 지내면서 퀘이커 평화운동을 배울 기회를 가졌다. 그 곳을 거쳐 간 인물로서는 함석헌 선생, 한명숙 전총리/박성준 교수 부부, 비폭력 평화운동을 전개해온 박성룡 박사, 그리고 정지석 박사가 있다. 재세례파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후터리안, 형제단, 아미쉬 공동체 등과 더불어 퀘이커 교도 또한 이 세상에 흔한 ‘폭력의 평화’를 거부한다.

폭력의 평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모든 양태의 폭력을 포기하는 것의 일환이다. 폭력의 길은 예수의 길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일러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할 원수와 적이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John George Fox

문화와 그리스도: 평화주의 전통

에른스트 트뢸취는 소종파 유형, 신비주의 유형, 그리고 교회 유형의 신앙 운동 중에서 교회유형을 선호했다. 교회 유형을 선호하는 이는 정당한 전쟁 이론을 수용하며, 국가주의에도 얼마만큼 헌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의 기호에 맞는 행위를 선택한다. 교회 유형은 대중을 끌어 모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중과 함께 권력과 물질적 부유함도 누린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번영과 위세 등등함을 생각해보면 된다. 나는 기독교 윤리학자로서 이런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유형의 기독교는 유럽에서 미주에서 쇠퇴일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트뢸취의 제자격인 헬무트 리챠드 니버는 그의 <문화와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에서 트뢸취와는 달리 기독교 역사를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상관적 관점에서 문화의 그리스도, 문화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문화에 적대적인 그리스도, 문화와 갈등하는 그리스도, 문화를 개혁하는 그리스도라는 다섯 유형론으로 분류하고 초기 기독교와 재세례파 운동을 문화에 적대적인 그리스도 유형으로 규정했다.

자연 위에 인위를 섞어 이룩한 모든 제도와 문명 구조를 문화라 한다면 소종파 신앙운동은 이 모든 문화를, 특히 탐욕과 폭력 문화를 누리기보다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성향을 가진다. 이는 소종파 신앙 운동이 죄의 구조를 피하여 분리주의적 원칙(Separation Principle)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리챠드 니버가 선호하는 유형이 칼뱅적인 개혁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평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여겨진다.

평화주의 유산을 재평가한 베인튼(Roland Bainton)은 그의 책 <Christian Attitudes Toward War and Peace>(1960)에서 구약 성서적 ‘샬롬’과 신약 성서의 ‘에이레네‘, 예수의 평화적 가르침을 지켜온 전통이 기독교 신앙의 초기부터 연연히 흘러오고 있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에 앞서 1947년 평화 연구가들도 인류의 평화주의적 유산에는 예수의 평화주의 전통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이후에는 반전평화주의 운동에 크게 기여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한국 교회의 종교문화 속에는 권력정치와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유산이 생략된 기독교 변종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선교적 호전성과 더불어 정치권력과 연대하는 종교유산만 팽배하다.

이런 현실은 한반도의 평화를 지체시키고 반평화적인 군사주의와 권력정치를 지지 후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역사가 예수의 평화적 가르침을 따라 신앙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을 되례 교회가 외면하게 하거나 핍박하는 교회 문화를 낳았다.


Quakers: The Quakers were founded by John George Fox of Drayton in Leicestershire (1624-1691).

평화주의 그룹은 언제나 소수였다

나의 입장(나는 기독교 후기, 종교 후기 시대에서의 기독교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감히 평가를 내린다면 나는 소종파 신앙인이 지니고 있는 예수의 평화사상은 시대가 변하고 바뀌어도 마르지 않는 영성의 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정의없는 정당한 전쟁을 뒷받침해온 국가주의와 결탁한 교파신학은 언제나 예수의 평화사상을 망각하거나 요더가 “예수의 정치“에서 언급한 바, 예수의 가르침을 이런 저런 변명을 앞세우며 규범으로 삼지 못하는 불실함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릇된 전통에 반하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독교 평화주의 사상적 흐름은 여전히 미약하다.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세계시민이기도 하다. 1947년 평화교회 유산을 이어받은 퀘이커들은 그들이 2차 세계대전 중에 보인 평화주의적 실천으로 인류애를 증진시킨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스도인이 국가에 헌신하며 애국주의자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하느님 나라 지평을 실천범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있어서 국가주의의 본질은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로 간주될 수도 있다. 국가주의가 요구하는 애국주의와 군사주의가 결합하면 편협한 반평화적 충성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종교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종교적 증오와 혐오가 생산되고, 국가주의가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곳에서는 인류의 보편적 사랑이 증발한다. 이 오류를 시정하고 비판할 수 있는 지평은 평화주의, 비폭력 무저항적 평화주의다. 요더의 표현을 빌어온다면 ‘덕스러운 소수자의 평화주의‘(Pacifism of Virtueous Minority)다.

이 평화주의를 증언하고 실천하는 것은 간혹 국가주의적 충성보다, 교파적 교리주의를 향한 충성보다 그 기여 범주에서 반지름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련의 평화주의자들은 지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을 변명하고 해명해야 했다. 국가 권력 앞에서, 동료 신앙인 앞에서, 그리고 견해가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앞에서 왜 그들이 평화주의자로 살아야 하는 지를 해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소수였기 때문이다.

평화란 오늘날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

지난 1983년 뱅쿠버에서 모인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보전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했고, 199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정의, 평화, 창조 보전을 위한 제안 문서"를 냈다. 주류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1998년 하라레 총회에서는 “폭력을 극복하는 10년(The Decade to Overcome Violence)” 운동을 결정했고, 2011년 이 운동을 총 결산하면서 “정의로운 평화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소수자들이 주장하던 평화가 그동안 전쟁을 지지하고, 심지어 거룩한 전쟁에 나서는 것을 독려했던 교회에서도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평화란 오늘날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명령이라는 평화주의적 가치에 더 많은 교회들이 동의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기를 수 천기 장착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류사회는 ‘더 큰 평화’를 지향해야만 전지구적으로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 전쟁론, 종교 전쟁론을 외치던 교회들 속에서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의 가르침을 새롭게 평가하고, 예수의 비폭력 평화가 초대교회와 중세 이후 소종파 교도들의 신념과 삶에서 참된 평화주의적 실천 지평을 찾는 일이 폭넓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한국 사회나 교회는 남북의 적대적 대립 구조 아래 평화주의 사상보다는 정당한 전쟁론을 더욱 쉽게 수용했고, 근본주의자들은 아직도 십자군 전쟁 이념을 신앙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의 평화주의자들 역시 지난 날 과거의 소종파 신앙인이 그러했듯이 국가 앞에서, 그리고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앞에서 “왜 나는 평화주의자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왔었다.

남북의 대결구도가 서서히 걷히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나 종교계 안에는 정당한 전쟁론자와 성전론자들이 한반도 반평화 세력으로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 교회가 변하고 있듯이 한반도의 구성원들과 종교들도 서서히 기독교 평화주의 유산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앞당기기 위하여 오늘의 평화주의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한 시점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충구 교수
감신대 기독교윤리학과
저서로 <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예수의 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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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총리, 그리고 박성준 선생님...

한명숙 총리, 그리고 박성준 선생님...



한명숙 총리, 그리고 박성준 선생님...

丹風 젤큰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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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총리님.
감히 묻고 싶습니다.
운동권의 대모라 불리우던(실은 당신이 대모였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시위대의 방어행위를 향해 엄단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희생되면서 당신이 운동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그렇게 국가의 부당한 폭력을 경험하였음에도 이제 당신의 엄단의지에 따라 엄청난 폭력을 당할 과거의 당신의 동지들, 그리고 이 땅의 청년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당한 것은 국가의 부당한 폭력이고 당신이 엄단으로 지시한 것은 정당한 것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남편을 빼앗겼다는 것만을 부당하게 여겼을 뿐 이 땅의 모순과 내몰려 있는 민중과는 하등상관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또, 그렇다면 5월 4일 연행된 사람들 가운데 아이엄마, 부부 등이 있어 어린이날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남편을 빼앗긴 것만이 중요하고 부모를 빼앗긴 아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까.
더 나아가 당신은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보십니까? 국방부에서는 거의 폭도수준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군인이 시위대를 향해 돌격하여 곤봉을 이용하여 폭행하는가 하면, "진압 명령만 있었으면 다 쓸어버릴텐데..." 따위의 말을 내뱉는 군인들이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는 윤광웅 국방장관을 내버려 두십니까? 당신의 남편은 과거 이들보다 더욱 죄질이 나쁜 간첩혐의로 무려 13년이나 복역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당신 남편의 복역사건은 지금에 와서 매우 부당했던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했던 당신이 지금 그들을 범죄자로 보십니까?
더구나, 당신은 당신 남편을 정신적 스승이라 부르며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 남편은 평화학자이지요. 평택 미군기지 확장문제를 처리하는 정부의 방식이 과연 평화적으로 보입니까? 비평화적이라면 평화적 해결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할 의지는 있습니까?
박성준 선생님.
요즘 마음의 고초가 심하실 것입니다. 부인의 일로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게 된 점 진정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총리 인준 당시 당신은 언론을 향해 "총리 남편 됐으니 내조 잘해야죠"라는 말씀을 하셨기에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퀘이커 교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퀘이커 교도들은 평화를 매우 사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평화운동가 톰 폭스가 소속된 곳이 퀘이커 교회가 메노나이트 교회와 함께 만든 '크리스천 피스메이커(Christian Peacemaker Teams,CPT)'라는 단체로 알고 있습니다.
CPT는 비폭력 직접행동 평화단체로서 이라크 뿐만 아니라 전세계 분쟁지역 곳곳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PT는 톰의 살해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무슨 일을 저질렀던지 간에 그들을 비인간화 시키거나 비방하는 경향을 버리기를 요청"한다는 메시지를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평화학 겸임교수로 재직중에 있으며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화학자로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문제, 그리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간인과 군 또는 경찰간의 충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게 된 결정적인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한명숙 총리에 대한 내조를 잘하시겠다고 하셨기에 묻는 것입니다.
한 총리는 강력한 법집행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내조를 잘 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이 성추행, 인권침해를 당했으며, 당시 경찰의 목적은 시위해산이 아닌 진압이 목적이었던 듯 수없는 폭행과 폭언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경찰청 인권위원조차 "피바다"였다고 증언할 정도로 참혹했던 현장입니다.
그에 대해 한 총리는 "이번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말로 얼버무렸을 뿐 아니라  “주민들과의 성의있는 대화노력과 빈틈없는 이주민 대책을 추진하라”면서 “특히 현지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국민들에게도 정부조치의 불가피성과 이주자 지원대책 등 지원내용을 적극 홍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주민들과 성의있는 대화노력이 선행하여야 하는것 아닙니까? 폭력으로 짓밟는것보다 우선한 것이 대화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한 총리의 언행에 대하여 평화학자로서 입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조를 잘 하시겠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었습니까?
괜히 선생님의 명예를 금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제가 선생님과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여러 사람과 문의하고 고민하였습니다만...
이 대답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공회대, '나는 좌파, 마르크시스트, 사회주의자'ㅣ 청강한담

www.thinkpool.com/MiniBbs/ViewPost.do?action=read&hid=greenhill&cid=mini&ctg=8&viewType=1&sn=635284







Re : 성공회대, '나는 좌파, 마르크시스트, 사회주의자'ㅣ 청강한담 2006/12/02 09:07:33

http://mini.thinkpool.com/greenhill/635284

金成昱 이재정 장관과 성공회대학교-(2) 나는『좌파』『마르크시스트』『사회주의자』 성공회대 교수 중에는 스스로를 『좌파』『마르크시트』『사회주의자』로 밝히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재정 통일부장관 내정자는 80~90년대 소위 『기독교 사회주의』실현을 내걸고 성공회대학교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는 성공회신학교(~93년)를 성공회신학대학(93년~94년), 성공회대학교(94년~)로 성장시키면서 88년에서 2000년까지 각각 교장, 학장, 총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2004년 6월16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성공회교의 근본이념은 평등과 관용에 기초한 「기독교 사회주의」라고 설명하면서 『제가 88년 학교를 처음 맡았을 때 이 학교를 통해 신학적·교육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이념은 「기독교 사회주의」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기독교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학교를 사회적 평등·南北 대화와 평화·男女 인간평등을 실천하는 곳으로 규정하면서 『성공회대의 역할은 우수한 엘리트가 아닌 역사와 세상을 보는 판단력을 갖춘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李내정자는 左派학자들을 대거 등용, 대학을 左派논리의 産室(산실)로 만들었다. 신임교수 임용 시 학생운동이나 투옥경력은 「결격사유」가 아니라 「우대사항」이 됐다.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가석방된 신영복氏는 풀려난 다음 해 성공회신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특채됐다. 역시 통혁당 사건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풀려난 한명숙 총리의 남편 박성준氏는 2001년부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혁당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하여 중앙당(中央黨)인 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아 건설된 남한 내 지하당(地下黨)으로서, 신영복·박성준氏는 통혁당의 살아남은 최고위급 간부들이다. 『좌파색깔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신영복氏는 지난 6월2일 정년퇴임 시 교단을 떠나는 소회를 묻자 『진보적 학풍의 성공회대였기 때문에 좌파의 「색깔」이 확실한 나 같은 사람이 안정적으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다』며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던 것들이 가장 큰 추억이며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젊은 사람들과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1월17일 연세대에서 민노당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의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자. 그는 자본축적을 근본적 모순체제로 비판하며 자본주의 체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며 누가 누구를 테러했는지 세계적 빈국이 강대국인 미국에게 무차별 공격으로 무너졌다. 세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구조는 자본주의 열강이 만들어 낸 구조다. 참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사회 논리적 구조 뿐 아니라 이런 체제가 인간적 관계 그 자체를 황폐화 시켰다... 자본주의 체제, 종속적 자본주의, 천민적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갈 것인가? 나도 몰라. 그러나 논리적 이론적 사고를 한다면 비인간적 근본적 모순구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자본 축척은 근본적 모순체제다. 和(화)의 철학을 기초해서 만들어 가야한다. 억압적 구조에서 취약역량을 가지고 희망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이다. 힘들어도 샛길은 없다. 사회를 바꾸어 내자. 정말 황폐화된 인간관계 삶의 일부로서 실천해야한다. 운동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행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것이다》 9·11에 『당해 싸다. 통쾌하다는 반응?』 한명숙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氏는 2003년 11월 <週刊기독교(1509호)> 인터뷰에서 자신을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마르크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1년 계간 <새길 이야기> 겨울호 인터뷰에서도 자신을 『마르크시스트 크리스챤』이라고 표현했다. 아내가 여성부 초대 장관에 취임한 이후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월간중앙 인터뷰에선 『마르크시스트이냐』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피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으나 이 답을 우리 사회에서 수용할 준비가 안 됐다』 朴교수는 출소 후 反戰平和(반전평화)를 내 건 反美색채의 저술 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이슬람의 지하드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 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라며 심지어 9·11테러에 대해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 이었다(以上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고 주장했다. 그는 「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는 글에서 『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안전을 남의 손, 外勢(외세)·강대국 미국에 맡겨놓고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착가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며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회대 교수들의 저술에 나타나는 주장 중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시대에서보다 확장된 지적 지평 위에서 근대 社會主義(사회주의) 이념이 품어 온 긍정적 불씨들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근대 社會主義(사회주의) 이념이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 역사의 국면마다 취해 온 이러저러한 구상과 전략은 오늘의 확장된 지적 지평 위에서 우리가 선별적으로 채택하거나 기각할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과거의 지적·실천적 유산의 성과 위에 서되 그것을 넘어서 자기의 시대와 주체적으로 맞서려 최선을 다하는 것이 「社會主義(사회주의)」라는 오랜 이름에 자신의 고통과 열망을 결합시켜 온 수많은 사람들과 실천적으로 연대하는 길일 것이다.(신정완 교수.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 중 「사회주의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세계화를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는 결코 인류 역사에 진보를 가져올 수 없으며 거꾸로 돌리는 이념체계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오늘날 세계화가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발전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유권자들의 경제적 생존과 모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과 공공의 복리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기업가적 자유와 경쟁에서의 승리가 우선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승리자의 권리가 관철되며 경재의 패배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조장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의 공동체의식을 약화시킨다. (유철규 교수.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의 쟁점들」 중 「신자유주의」》 http://www.chogabje.com 2006-12-02,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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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세미나참가후기] 배는 물 위에 떠 있어야죠.
2003.04.23 | 한수정

[세미나후기] 나눔문화 10차 세미나 '내 안의 평화찾기, 우리 안의 평화만들기'에 참가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빛이 있다. 진실이 있다."


어제 저녁(4월 22일)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10번째 나눔문화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움직이는학교"라는 방식으로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함께 마음모으기 시간을 가진 후, 박성준 선생의 제안 대로 '일상속에서 느끼는 평화'에 대해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발표하는 것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30초에서 1분가량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마음 편히 듣는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좀 높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성준 선생은 "내가 어떤 말을 할까를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것"을 이야기했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럽기는 했지요.^^

박성준 선생은 다음과 같은 짧은 '마중물'꺼리를 이야기했는데,
"이번 전쟁을 보면서, '힘만 있으면 다냐?'라는 막막함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무력감속에서도 희망을 찾기위해 모인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힘!이라고 생각한다. 평화(平和)에서 화평할 和자는 '벼(쌀)가 입(口)마다 고루 나누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는 배고픔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1세계 학자들은 전쟁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이야기하지만, 3세계에서는 '전쟁 없는 상태라도 우리에게 평화는 없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소극,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인간마음이 평화로운 상태로 갈 수 있을까가 많은 사람들의 고민으로 등장하고 있다. 증오나 폭력으로는 문제해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지난 9·11의 메세지였다. 증오와 악순환의 시발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이런 악마적인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나도 솔직히 막막하다. 여러분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라며, 발표자의 임무를 참가자에게 떠넘기면서^^ 난상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한인교포사회를 조직하자', '대안에너지를 개발하자'는 정책적인 제안부터 자연과학과 경영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꿰뚫는 임성원 소장의 '사람 마음이 좋은 것을 원하는 각성의 수준이 임계치에 거의 다다랐고, 그래서 곧 좋은 사회 될 것'이라는 - 물론 이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엄청난 과학과 경영의 예제들을 들이댔었다. - 도담(道談)에 가까운 주장까지 다양한 참가자의 층위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의 평화운동에 대한 사례들을 이야기할 때는 미국의 퀘이커(Quaker)들에 관련한 이야기가 단연 참가자들의 흥미를 끌었는데요. 퀘이커는 우리나라에는 '무교회주의자'로만 알려져있지만 미국에서 흑인노예폐지운동, 여성참정권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평화운동의 선구적인 그룹이며, 퀘이커라는 명칭은 재판정에서 판사가 '진리에 몸을 부르르 떠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빈정댄것을 애칭화하여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평화활동뿐만 아니라 이런 평화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이 내거는 슬로건은 단 하나,
"모든 사람안에 빛이 들어있다. 진실이 들어있다"가 그것인데요. 이 큰 슬로건 외에는 다른 생각과 종교, 견해에 대해 열려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부디스트 퀘이커(Budhist Quaker)가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종교에 기반한 평화운동이 가지는 한계도 있겠지만, '영성에 기반한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0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을 위해 '공식적인 세미나'를 마치고, 이어 2부리그^^가 진행되었습니다. 본토론에서는 조용히 계시던 ID 살클리님과 송영섭님을 주축으로 지식에 갈증난 7~8명이 모여 진행된 토론에서는 촛불시위부터 반전평화시위까지의 흐름과 성과 등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평화운동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서 심도깊은 이야기를 진행하였습니다. 새벽 1시까지요. (쩝. 자세한 이야기를 이 곳에 다 옮기지 못함이 안타까울 분입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명쾌한 결론을 얻은것처럼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나와 우리를 넘어 저 먼 곳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무슬림들의 고통을 함께느끼며 '세계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사실자체가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배가 물위에 떠 있어야지, 배 안에 물이 있으면 안되겠지요.
평화를 사랑하는 내가 평화로운 사람이어야지, 전쟁같은 맘으로 평화운동 하면 안되겠지요.
이상 세미나후기를 마치겠습니다.


** 참가하신 다른 분들도 후기올려주시면 좋겠네요.

한국신학/종교학 -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 박성준



한국신학/종교학 -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 박성준

“21세기의 문턱에서 民衆神學을 다시 생각한다.”
--‘民衆’ 理解의 새 지평을 모색하며--
박 성 준
1999. 11. 3


一. 문제제기


서남동은 한국민중의 ‘恨’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 주제로 삼는 독특한 기여를 했다. 나는 ‘한’을 민중신학의 핵심 주제로 설정하는 데 대하여 서남동에게 확고한 지지를 보내왔고 그 점에 있어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나는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한울님’(동학=崔水雲) 또는 ‘내재하는 빛’(the Light within) (퀘이커=George Fox)을 민중신학적 성찰의 중심에 놓는, 그래서 ‘한’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핵심되는 주제로 삼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얼개를 구상해 보게 되었다. 민중의 ‘한’이라는 하나의 핵심에 편중되면 역사창조 주체로서의 민중의 생명력(자율성, 자주성, 창조성, 자기 구원의 주체성)이라는 다른 하나의 핵심이 가려지거나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중 안에 있는 ‘恨’은 보면서 민중이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빛’(=그리스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민중의 일면 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서남동이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의 언어인 ‘한’을 제시한 것은 옳다. 그러나 이제는 지배자의 언어인 ‘죄’에 대해서 민중 안에 있는 ‘빛’을 제시할 차례이다. 민중의 ‘한’과 함께 ‘빛’을 보고 그 상호관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면서 그 양자를 민중신학의 중심에 역동적으로 위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남동의 신학에서 민중의 ‘한’과 ‘고난’이 민중의 ‘메시아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능력’이라는 기독교의 正統 敎義에 있었다. 민중의 메시아성을 이렇게 대속적 능력 쪽으로만 치우쳐 이해할 것이 아니라 민중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빛과 창조력에도 동시에 주목하면서 그 메시아성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무가 이따금 언급하며 경탄해 마지않았던 민중의 자기초월의 능력은 ‘초월’이면서 동시에 민중에게 본래 ‘내재’하는 생명력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씨(함석헌)인 민중의 속 깊이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 가능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씨의 살아 숨쉬는 보배로운 생명력, 그 경이로운 역동성에 새삼 눈뜨고 이를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면서 21세기와 새 천년(the New Millenium)의 ‘새 민중신학’을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나는 결코 민중에 대한 美化나 낭만화(romanticize)를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민중을 말해야 한다. 낭만화된 관념 속의 민중, 비현실화되고 박제화된 민중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민중, 질긴 생존력으로 일상의 삶의 터전에 뿌리내린 ‘생활하는 주체’로서의 민중을 있는 그대로 다루어야 한다. 자기 속에 ‘한’을 품고 살지만 ‘빛’도 품고 살아가는 온전한 민중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서남동, 안병무의 민중이해에 다음과 같은 점들을 보완하거나 새롭게 추가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첫째로, 함석헌의 민중 이해로부터 ‘씨’을 받아들이되 <ㅇ  ㄹ>의 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深化 發展시킨다. 즉 <ㅇ>은 초월적인 하늘을, <  >는 내재적인 하늘을,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나타낸다고 그가 스스로 설명해 놓은 그 각 項을 적극적으로 탐구해서 한층 더 심오하고 풍부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사상적 源泉(resources)으로서는, 한쪽으로는 東學이라는 큰 사상의 젖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함석헌 자신이 훗날 그 멤버가 되었던 퀘이커의 사상, 그 중에서도 특히 초기 퀘이커 사상(Early Quakerism)이라는 큰 광맥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둘째로, 민중의 목마름의 重層구조를 천착하는 것이다.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 곧 민중의 영성은, 예컨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日常의 안전과 편안함, 경제적 안정 등에의 갈망이라는 層位가 있는가 하면, 우정과 고독, 사랑의 아픔과 번뇌, 인간관계의 어려움에서 오는 고민 등의 層位가 있으며, 영혼의 虛飢, 생애를 통해 지속되는 인격의 성숙과 자기완성에의 渴求, 진실과 진리를 향한 목마름, 疾苦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등의 層位, 이렇게 複雜하고 重層的이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


셋째로, 민중신학은 ‘사건’의 신학을 보완하기 위해 ‘사건’과 ‘日常’을 손의 앞뒤면 처럼 설정하여, 사건과 일상이 갖는 각각의 의미와 함께 둘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련성을 올바르게 밝힐 필요가 있다. 민중은 1970년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연쇄적으로 분출하는 활화산 기슭에서, 또는 언제 터질지 모르게 꿈틀대는 화산맥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민중은 아마도 더 많은 일상의 시간을 너른 들녘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갈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여름 한철 가뭄에 강바닥으로 스며들어 소리 없는 지하수로 흐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땅 속으로 흐르는 지하수가 없다면 장대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샘의 분출은 있을 수 없다. 물이 콸콸 솟는 샘은 실은 땅 속을 흐르는 저류(the underground stream)와 연결되어 그것에 의해 지탱되고(sustained) 있는 것이다. 사건과 일상의 관계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사건’의 신학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가 요청된다.


넷째로는, 민중 공동체 운동이다. 이거, 저 70년대, 80년대부터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그러나 질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민중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운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근본적으로(radically) 다시 묻고,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






二. 민중 이해의 새 지평


1. 민중신학의 先驅: 함석헌의 씨 사상


함석헌은 씨의 은유로 역사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根幹이 되는 사람, 곧 민중을 나타내고자 했다. 민중은 씨이다. 태어난 그저 그대로인 씨, 풀씨 같은 존재. “씨이란 다른 거 아니고 자연이지요. 문명은 결국은 자연에서 멀어져 가는 방향이고(참 문명이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러니깐 지금은 사람의 큰 잘못이 자연을 잊어버리고 자연에 반항하고 하는 건데, 근본의 절대적인 의지랄까 그게 곧 자연인데, 자연 속에 있는 건데----”(“씨의 소리, 씨의 사상” <씨의 소리> 76년 9월호)


씨은 이 끝에서 보면 있는 그대로인 ‘나’이고 저 끝에서 보면 하나님이라고 한다. 결국 민중 곧 씨과 하나님은 이 끝과 저 끝으로 서로 연결된, 둘이 아닌 한 <>이다.


“민중이 뭐냐? 씨이 뭐냐? 곧 나다. 나대로 있는 사람이다. 모든 옷을 벗은 사람, 곧  사람이다. 은 실(實), 참, real이다.............정말 있는 것은, 은, 한  뿐이다. 그 한 이 이 끝에서는 나로 알려져있고, 저 끝에서는 하나님, 하늘, 브라만으로 알려져 있다.”(“씨의 설음”, 함석헌 전집 제4권, 66면)


나아가, 함석헌은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을 불러내자고 한다. 그렇게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불러내느냐가 문제다. 속에는 다 개인의 행위와 역사의 사건으로 영향을 입지 않는, 입힐 수 없는 혼이 잠자고 있다. 그것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씨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것은 일할 터를 찾고 일할 거리를 기다린다. 그것을 능히 알아 불러내어 동원하면 산을 옮길 수 있고 바다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전집 제4권 129면)


이와 더불어, 씨은 마땅히 ‘남의 종교’가 아닌 ‘내 종교’를 가져야 한다. “(불교와 기독교가) 다 위대한 종교지. 하지만 남의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우리 초가삼간 보다 작은 집이다. 내 종교가 큰 종교지, 내 것이 되지 못한 종교...........종교의 허울이 무슨 위대한 종교일 수 있을까? 제 종교만이 큰 종교다. 제 종교를 가진 한 사람만 있어도 온 세상이 다 구원될 것이다.”(“씨의 설음”, 전집 제4권 65면)


“큰 것은 하나님이요, 큰 것은 나다. 하나님과 직접 연락된 내가 ‘한’ 곧 큰 것이요, 그 직선을 종축으로 삼으면 온 우주를 돌릴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까지 뚫리지 못한 종교, 나와 하나님을 맞대주지 못하는 종교는 참 종교 아니다. 나의 종교가 종교다. 교도(敎徒)가 있는 것은 종교 아니다. 참 종교는 한 사람의 신자를 가질 뿐이다...........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하라..........아무도 이 결혼의 중간에 서지 마라.”(“씨의 설음”, 전집 제4권, 65면)


민중은 자기 속 깊이에 계신 하나님, 그 창조적인 생명과 무한한 힘의 源泉에 깊숙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민중 곧 씨은 자기 속의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 한다. 그 하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한다. 내 안의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해답을 간절히 구하고 거기에 맞추어 각자 자기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재정립하고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를 관철해야 한다.


씨 속에, 곧 내 속에 잠을 자고 기다리고 있는 나=하나님(‘나라’, I am.)을 일깨우고 ‘불러내자.’ 그리하여 하나 하나의 씨은 함께 새 시대, 새 나라를 바로 지금 새 천년의 시작과 함께 힘차게 열어가야 한다.






2. 퀘이커 사상과 민중신학의 만남의 가능성


퀘이커는 17세기 중엽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 시대는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격동의 시대, 혁명과 변화의 시대였다. 당시 영국 국교회에서는 외적인 종교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었고, 국교에 반대하는 침례파와 장로회파의 교회들은 신앙을 성경의 권위나 공식적 신조와 대체로 동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의식이나 신조에 염증을 느끼게 된 수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갔다. 혹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사람들은 개인적 체험의 종교,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갈구하고 있었다.


죠오지 폭스(George Fox, 1624-1689)도 그런 사람들--당시 영국에서는 그들을 ‘구하는 자들’(seekers)이라고 불렀다--중의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그는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했다. 製靴工의 徒弟, 소먹이 목동 등으로 지내는 동안 홀로 고요한 묵상에 잠기는 습관을 익혔고, 성경을 읽고 깊이 생각에 잠겼으며, 온 피조세계의 오묘하고 미세한 소리에도 예리하게 반응하곤 했다. 열 아홉 살 때에 집과 부모의 곁을 떠나 절절한 목마름으로 진리를 찾는 영적 여행(spiritual journey)에 나섰다. 4년간의 영혼을 달구는 숱한 시험과 연단 끝에 Pendle Hill이라는 작은 山頂에서 그는 드디어 진리를 깨닫고 환상(vision)을 보았다. 그때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썼다:


“그들(성직자들)에게 걸었던 나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외적으로는 내가 의지할 아무 것도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어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 나는 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시니, 그는 너의 처지에 맞게 말씀하신다.’(‘There is one, even Christ Jesus, that can speak to thy condition.’)라는 것이었다. 이 소리를 듣자 내 가슴은 歡喜雀躍하였다. ........ 주님을 향한 나의 갈구,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지식에의 열망은 더욱 거센 불길로 타올랐다.” (Fox, 11)


그가 얻은 다음과 같은 진리는 재래적이고 인습적인 신조들(creeds)과 날카롭게 충돌하는 것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나님의 그것을 지니고 있다.”(that of God in everyone) 이것이 퀘이커 신앙의 精髓이다. 우리 각자의 깊은 속에 하나님의 씨앗(the Seed), 하나님의 영(the Spirit), 그리스도(the Christ), 내면의 빛(the inner Light)을 지니고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직접--즉 성직자나 교회의 儀式이나 어떤 다른 매개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역사적인 예수가 기름부음을 받아 (신적인) “그리스도”가 되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계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영속된다는 것(the continuing revelation). 이것이 그의 새로운 깨달음의 내용이었다. 자기 자신 속에 불타오르는 이 깨달음(revelation)을 지니고서, 죠오지 폭스는 세상를 향해서 힘차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돌아섭시다. 자기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러한 (즉 하나님을 모신) 존엄한 존재로서 살아갑시다.”라고.


그 깨달음을 근거로 그는 오늘날 The Religious Society of Friends (Quaker는 별명이다.)로 알려진 신앙적 結社의 기치를 올렸다. 죠오지 폭스는 거듭 거듭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몸소 가르치시기 위해 오셨다.”(Jesus Christ is come to teach his people himself.)라고 외쳤다. 이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이 ‘the Second Coming of Christ'를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하시 하처에 육신적으로(physically) 재림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민중의 마음 속에 이미 ‘내면의 빛’, ‘씨앗’, ‘하나님의 영’이 들어있음으로 해서 이미 ‘그리스도’가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죠오지 폭스의 새 진리를 따라 새 사람으로 변화된(transformed) 수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 그리스도가 그 시대와 사회의 불의와 폭력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내면의 빛과 씨앗, 영을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단지 私的인 내면의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변화된 남녀들이 새 삶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밖으로 사회와 역사 속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운동을 뜻했다. 초기 퀘이커들(Early Friends)은 당대의 사회에 불을 지피는 불씨의 전령이었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 온갖 종교집단, 모든 사회조직에 불을 붙였다.


죠오지 폭스는 17세기 영국인이었지만 오늘의 우리들과 우리 시대를 위해서도 빛을 던져주는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사람만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깊은 개인적 경험과 메시지, 그리고 초창기 퀘이커들의 묵시록적인 삶과 행동은 우리 시대의 긴박한 필요에도 절실하게 말을 걸어오는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함석헌은 1970년대 초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의 펜들 힐(Pendle Hill; A Quaker Center for Study and Contemplation)에서 퀘이커의 회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씨 사상을 전개한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지만, 나 자신이 비교 검토해 본 바로는 그의 씨 사상의 핵심 내용은 퀘이커 사상과 酷似하다. 민중신학의 창시자 격인 서남동과 안병무에게 미친 씨 사상의 영향을 생각할 때, 민중신학과 퀘이커사상의 만남은 일찍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과 더불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에 주목할 수 있다면 주체로서의 민중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민중을 세계와 역사의 중심에 세우는 데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동학의 전통으로부터 배우기:


우리는 이제 19세기 말엽 한반도에서 출현한 동학운동, 그 중에서도 1860년-98년의 水雲 崔濟愚와 海月 崔時亨, 그리고 갑오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난 후 동학의 재건을 의도했던 甑山 姜一淳의 사상과 실천에 주목할 차례다.


동학은 19세기말, 조선의 봉건제가 한계에 도달, 근대사회로 이행되기 시작하는 세기말적인 일대 전환기에 피어난 한국사상문화종교의 꽃이고, 조선의 근대역사가 시작되는 發源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1) 동학이 창시되던 1860년 당대의 조선의 현실에 대한 수운의 인식은 개인과 사회, 국가와 세계 질서의 모든 차원에서 총체적 위기 그것이었다. 조선왕조는, 지배층의 부패와 타락, 신분제의 문란(紊亂), 도탄(塗炭)에 빠진 민중의 잦은 봉기와 사회적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양세력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과거의 중국 중심의 질서가 무너지고 구미제국의 근대문명이 압도해오는 가운데, 전통적 종교인 儒佛仙은 정신적 지주나 새로운 사회이념의 기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윤리와 가치규범의 붕괴, 사상의 혼돈, 민중의 정신적 방황이 극도에 달한 시대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조선사회에는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여 민중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있었다.


절망과 암흑의 시대, 바로 그 한가운데서, 수운은 先天문화 질서의 종말과 후천개벽의 새 문화, 새 시대의 도래를 예감했다. 수운은, 동양문명의 해체와 몰락, 서양문명의 침략적 폭력성을 확인하면서, 전통적 지배이념인 朱子學을 대체할 새로운 道學을 갈구했다. 그는 前人未踏의 새 길, 동서양의 기존의 종교와 사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원리를 찾아내어 新天地, 新文明을 구현하고자 고난에 찬 구도의 길을 홀로 걸었다.


“庚申年에 이르러 전하여 오는 말을 들으니 서양사람들은 한울님을 위한다는 뜻으로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그들의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의 교를 널리 퍼뜨린다는 것이므로, 나는 과연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느니라.”<東經大典, 前編 五>


“서양사람들은 전쟁을 하면 이기므로 쳐서 빼앗아 그들의 뜻대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다. 이리하여 천하가 다 멸망한다면, 어찌 입술이 상하여 없어지면 이가 시려 견디기 어려운 것과 같이 되지 아니하겠는가.” <東經大典, 前編 九>





본격적인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6년째 되던 1860년 음력4월, 그의 나이 37세 때 그는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해 得道에 이른다. 그의 신비체험은 한울님 마음과 하나가 된 경지에서 ‘天語’를 듣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한울님과의 사이에 문답 형식으로 여러 달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내용을 냉철히 반성 체득하면서 일년 여에 걸쳐 동학의 신관, 세계관, 인간관, 修行法 등을 글로 체계화해 나갔다. 득도한 이듬해(1861년) 6월부터 그는 布敎에 나섰다. 득도로부터 체포되기까지 불과 2년 6개월 사이에 수운은 漢文體의 <東經大典>과 한글로 된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게 되었다.


수운의 가르침은 고통과 시련에 찬 현실을 극복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그 시대의 민중들의 가슴에 심었다. 사방에서 그의 소문을 듣고 그의 거처인 경상북도 慶州 龍潭亭으로 찾아오는 민중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수운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따랐다.


1864년 3월 수운은 41세의 나이로 斬首刑에 처해졌는데, 세상을 어지럽게 한 邪術의 傀首라는 죄목이었다.


수운의 제자이자 동지였던 해월은 道統 承繼 후 殉道할 때까지 30여년 간 가시밭 길을 걸으며 조선 땅에 동학을 뿌리내리게 하는 데 헌신했다. 그는 ‘人乃天’, ‘事人如天’의 교의로써 교도들을 지도하는 한편, 지배권력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接’조직을 확장해나가다가 1898년(72세) ‘左道亂正’의 죄목으로 스승 수운의 뒤를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2) 동학의 인간 이해의 핵심은,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데 있다. 사람이 곧 한울님, 한울사람, 섬김 받아야 할 신령한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이 이러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될 때 자기 자신과 타인을 지극히 공경(敬人)하게 되고 한울님을 공경(敬天)하게 되며 한울님의 뜻을 이 세상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주체로서 바로 서게 된다. 즉 현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분의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신령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한울사람(God's person)을 통해서만 사회와 세상의 聖化(한울나라의 실현)가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주체성은 우주 가족의 일원으로서 더 큰 생명인 우주를 어버이로서 섬기며(敬物), 우주 자연계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相生(서로 살림)의 삶을 살아야 하는 책임적 존재이다.


동학에서는 지금까지 저 밖에 있는 신(God without)을 향해 놓았던 祭床과 位牌를 나를 향해(向我) 돌려놓도록 하는 새로운 祭祀法을 창안했다. 이것을 ‘向我設位’라고 하는데, 저 밖에 있는 초월적 신을 상정한 인류 문명 문화 樣式의 일대전환과 정신개벽을 이로써 상징한다.


또한 ‘同歸一體’라고 하여 후천개벽운동의 동반자들의 공동체, 새 인간(한울사람), 새 천지(한울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인류문명사의 새 지평을 열어가고자 하는 신령한 도덕적 주체들의 공동체를 제시한다. 이 공동체는 타종교 공동체의 전통을 존중하며 관용의 정신과 개방적 태도로써 후천개벽의 역사를 창조해나가는 길동무(道伴)들의 공동체이다. 동학에서는 특히 생활의 주인이자 新天地 창조의 주역으로서의 여성의 지위가 강조된다.


3) 강증산은 스무 살 무렵에 동학당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甲午동학혁명이 실패한 뒤, 시체가 가득 널려진 폐허의 강산을 여러 해에 걸쳐 편력했다. 그때에 그는 구천에 사무치는 울부짖음과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민중의 고통을 보았으며 민중이 그 얼마나 절실하게 생명의 회복을 바라고 있는가를 사무치게 절감했다. 따라서 간증산은 자기의 목표를 동학의 동세개벽 실패 이후의 민생의 재건과 활인(活人)에 두게 되었다.


갑오동학혁명이 민중반란의 조직적 확대를 통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함으로써 후천개벽을 실현하려 했다면, 강증산의 실천은 하나 하나의 이름 없는 민중들의 그날 그날의 먹고, 살고, 입고(衣食住), 고통받고, 병들고, 죽고, 두려움과 굶주림과 죽임 당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구체적인 삶, 곧 민중생존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매일 매일의 自助 自活의 작은 공동체 건설과 협동생활의 조직을 통해 후천개벽을 실천해 나가는 방향이었다.(김지하 사상기행, 2권, 206-9면 참조)


그렇다면 강증산의 사상과 실천은 ‘민중적 일상’의 신학화를 꾀하려는 우리들의 작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한울님의 신령한 본성을 몸 안에 모시고 있는 신령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하는 동학의 인간관은, 매개 사람 속의 빛, 영,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퀘이커 사상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민중신학은 퀘이커 사상의 인간이해로부터 배움과 동시에 동학의 인간관을 민중이해에 적극 도입함으로써 민중의 대상화, 객체화를 극복하고 민중의 ‘주체화’에 진실로 기여하는 큰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三. 민중적 영성론의 가능성:


1. 영어권에서도 spirituality란 말이 등장한 것은 지난 30년 어간의 일이라 한다. 이렇게 새로운 말이고 보니 한국에서는 그 용법이나 의미를 둘러싸고 적잖은 오해와 혼선이 있기 마련이었다. 처음에는 이 말이 카리스마 집회나 성령파 교회들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연유로 해서 민중신학자들은 애써 이 말을 기피했고 금기시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80년대에 들어와 남미 해방신학 쪽에서 spirituality라는 범주를 사용하여 심도있는 신학작업을 전개하는 것은 보고서야 새로운 관심과 눈으로 이 말을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중신학 내부에서 spirituality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드문 것 같고, 여전히 개념의 혼란이 가셔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 자신 아직 본격적인 공부가 부족하여 spirituality의 정의조차 내리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지만, 민중적 영성론의 필요성과 가능성의 예감만은 절실하다.


2. 함석헌은 씨의 속에 있는 것 곧 씨의 ‘혼’을 불러내자고 했다. 그렇게만 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것 같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씨의 혼’이라. 혹시 이것이 바로 민중의 영성 아닐런지? spirituality는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 그 존재를 관통하고 그 존재를 떠받치고 그 존재를 推動하는 영적 힘, 에너지, 불꽃과 같은 그 무엇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우리가 종교적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spirituality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spirituality는 기독교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의 영성, 무신론자의 영성도 있을 수 있다.(나는 사실 감옥에서 무신론자들의 심오한 영성에 무수히 접했다.)


3. 민중이 갈구해 마지않는 구원과 해방에의 타는 목마름이 바로 민중의 영성 아닌가. 나는 앞에서, 민중신학은 민중의 이 목마름을 ‘민중의 거룩한 갈망’(the holy longing of minjung) 또는 ‘민중 영성’(minjung spirituality)이라는 범주로서 다루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민중신학이 민중의 ‘恨’이라는 범주로 다루어온 영역과 크게 겹치는(overlap) 영역이어서 민중의 恨과 민중 spirituality의 관계와 구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4. spirituality는 우리의 日常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의 욕망과 애정, 고통과 슬픔, 고독, 야심과 좌절감, 불안과 초조, 공포와 희망 등등, 이 하나 하나가 spirituality와 깊이 관련된다. 어떤 사람의 영성은 그가 자기 속의 그 영적 에너지 혹은 불꽃을 가지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무엇을 행하는가와 깊이 관련된다. 즉 spirituality는 신앙이나 종교성과 관련된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매일 매일의 일상과 관련된 것이다. 사랑(compassion)과 자비(mercy), 평화와 화해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 참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갈구하는 정치적 각성, 깨어있는 양심, 도덕적 민감성 등은 민중적 영성의 불가결한 요소들(integral elements)이다.


5. spirituality는 개인적인 것 만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임과 동시에 사회적, 공동체적인 것이다. ‘나의 영성’과 동시에 ‘우리의 영성’이 존재한다. 개인주의에 물든 사회와 그 문화(individualistic culture)에서는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촛점이 맞춰지기 쉽다. 그래서 개인적 영성은 자칫하면 ‘개인주의적 영성’으로 頹落할 수 있다. 개인적 영성에만 집착하거나 매몰되면 영적 개인주의와 영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고 영적 우상숭배의 위험에 떨어질 수 있다. 반면에 공동체적 영성의 경우에는, 개인의 영적 생활(personal spiritual life)에 기울이는 집중력이 떨어질 때, 영적 메마름과 세속화라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개인의 영적 체험과 공동의 영적 수련은 상호 의존적이다. 서로 보완하고 서로 북돋아 준다. 민중신학은 개인의 영적 체험 또는 개인적 영성수련과 공동체적 영성 또는 영적 공동 생활(spiritual life together)에 같은 비중을 두어 이 양자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공동체적 영성은 함께드리는 예배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각자가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친 영적 생활의 밀도는 함께 드리는 예배의 質을 좌우한다. 하나님에게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묵상과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깊이를 더해갈 때, 개인과 공동체의 영성을 고양시켜주는 높은 질의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6. 밥상(식탁)공동체는 공동체적 영성의 실천 모델이 되며 민중적 영성의 엣센스를 집약한 것이다. 민중신학은 해월의 밥 사상과 향아설위의 밥상 차리기로부터 배우면서 다음과 같이 相生의 식사예법을 고안할 수 있을 것이다.


(1)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 (2)원을 그리고 둘러앉는다. (3)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손을 잡고 잠시 묵상(또는 짧게 한마디씩 기도)한 후 함께 담소하며 서두르지 않고 즐겁고 느긋하게 식사한다. (4)설거지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여한다. (5)음식찌꺼기는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서 거름으로 쓴다.


7. 민중적 영성은 서로 모시고 섬기는 相生의 영성이다. 그 엣센스는 겸허하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깊이 귀기울여 듣는 데(敬聽, mindful listening) 있다. 나의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열어 놓고 하나님에게, 자연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고요히, 정성을 다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민중신학에는 이 敬聽의 영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여겨진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서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증언자의 역할을 자임하다보니 민중, 씨에게 귀기울여 듣는 마음의 餘白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는 ‘말하는’(preaching) 종교지 ‘듣는’(listening)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큰 약점의 하나다. 하나님과 자연과 사람이 관계의 그물에 얽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상호의존하고 있는 이 우주와 세계 공동체 안에서 ‘敬聽의 spirituality’가 없이는 相生의 관계를 창조해나갈 수가 없다. 이제 21세기와 새 천년의 입구에서 기독교는, 그리고 민중신학은, 말하는 ‘입’으로부터 듣는 ‘귀’로의 radical한 파라다임 전환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예언자적 선포(prophetic speaking)는 중요하다. 그러나 예언자적 경청(prophetic listening)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예언자적 경청은 권력과 富에 억눌리고 빼앗겨온 자연과 민중, 곧 씨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씨에게 경청한다 함은 하나님께 경청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 같을 때, 더 깊숙이 귀를 기울여 고요히 기다려 보라. 소리 아닌 소리가 내 마음의 귀에 들려오지 않는가. 민중인 씨(들)에게 말과 설교를 가지고 가는 대신에 마음의 귀를 가지고 가본 사람은 안다. 경청하는 사람이 자신의 계획이나 용건, 판단이나 충고 따위를 완전히 접어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나를 내맡기는 방법으로 귀를 기울일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둘 사이에 싹튼다는 것을.


듣기에만 길들여져 있는 것으로 보였던 씨이, 그래서 자기 주견이나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듯이 보였던 민중이 비로소 가슴을 열고 이야기 꾸러미를 풀어놓기 시작할 때, 그(들) 자신 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와 꿈과 비전이 엉킨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오지 않던가. 이 새로운 관계, 새 카이로스 속에서 상처가 아물고 한풀이가 시작된다. 씨이 제 이야기에 스스로 격려를 받고 힘이 북돋아져 현재의 곤경을 박차고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열리고 문제에 해답이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함석헌이 말한 “씨의 혼(魂)을 불러내는” 방법이 아닐까.





四. 21세기, 새 천년기에 민중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민중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살림 공동체’ --


공동체 운동은 개인과 민족의 생존(survival)을 위해, 우리들의 문화와 지구 자체의 존속을 위해 비상히 중요하다. 현대 사회와 현대적 생활양식은 자연적 내지 가족적 공동체를 해체한 결과이다. 현대인의 삶은 파편화되었고 공동체 감각을 잃어버렸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고립되어 있고 까닭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편 그들은 사랑받고 싶어하고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찾고 있으며, 꿈과 理想을 서로 나눌 친구를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현대인은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동체, 그 중에서도 민중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공동체는 어떤 내용, 어떤 모습의 공동체일까? 우리는 김지하가 먼저 주목해서 그의 생명사상 체계 속에서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던, 그리고 안병무가 몹씨도 아꼈던 아름다운 우리말 ‘살림’을 붙여 ‘살림공동체’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살림’이란 무엇인가?


살림은 相生 즉 서로 살리기, 살림은 生命敬畏, 살림은 죽임의 반대, 살림은 물질의 나눔, 살림은 상호존중, 살림은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 살림은 거룩한 경청, 살림은 섬김, 살림은 그저 우리네 살림살이. 그럼 살림공동체는?


나는 살림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다음의 7가지 원리로 정리해 본다.


첫째로,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과 조화이다.


김지하식 표현을 빌리면, “개별 인격들의 자유로운 전체인 민중”의 공동체이다.


살림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이 존중된다. 개인의 자율성과 창조성이 진정으로 존중된다. 그러나 그 개인들이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전체를 형성하되 그 전체가 또한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는 탄력적인 전체를 이룬다. 이 자유로운 전체인 살림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창의성(individual initiative)과 공동생활(corporal life)의 규율이 조화를 이루며 개인적 생활영역과 공동 생활영역이 공존하고 균형을유지한다.


둘째로, 다양성과 차이가 존중된다. 인종, 성, 피부색, 민족, 종교, 사상, 문화, 언어, 음식, 관습 등에 있어서의 차이와 다양성이 권장되고 존중된다.


셋째로, 깊은 영성적 修行(spiritual practices in depths)과 활발한 사회적 관심과 행동(social concern and action) 간의 균형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이 균형을 강조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영성적 수행을 통해 사회적 불의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에 의해 야기되는 고통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노력하면서, 고통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참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일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또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이나 지구상의 다른 種(species)의 고통을 이용해서 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며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힘쓴다.


넷째로, 일의 평등성(equality at work)을 추구한다. 공동체 내에서 일과 역할의 기능적 분화가 인정되나 신분이나 지위의 개념은 인정되지 않는다. 역할의 기능적 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공동체 성원간의 평등성의 저해 또는 약화를 방지하기 위한 방도가 강구되며 평등성을 높이기 위한 다방면적인 노력이 경주된다.


다섯째, 공동체성원 간의 인간관계는 동학의 ‘侍’(모심)을 기본정신으로 한다. 즉 누구든지 사람을 대할 때 그 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과 자세로써 대한다. 이것은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에 통하고, 베트남 출신의 스님 Thich Nhat Hanh이 강조해 마지 않는 ‘정념’(正念; ‘mindfulness’)와 일치하는 것이다.


여섯째로, 質素한 삶(plain life)을 산다. 질소한 삶이란 (1)자원과 물자를 아껴 쓰고 사치를 하지 않으며, (2)경제적 정의에 우선적 관심을 갖고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편에 서려고 노력하며, (3)기도와 묵상을 생활화한 삶의 방식을 말한다. 질소한 삶은 단순함(simplicity)을 소중히 여기고 餘白이 있는 삶을 사랑한다. 여기서 여백이라 함은, 일을 너무 많이 하거나 너무 바쁘게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면서도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알맞게 남길 줄 아는 여유를 말한다. 또한 너무 많이 말하지 않고 남이 말할 여지를 남기며 언제나 상대방에게 조용히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현대인의 삶의 병적 奔忙을 경계하면서 우리는 이따금 물어야 한다. “말씀이 들릴 만한 고요함이 있는가?”(Are there enough silence for the Word to be heard?)


일곱째로, 축제가 있는 공동체를 가꾼다. 축제(festival)와 祝賀(celebration)는 공동체 생활의 한 中心軸이다. 축제와 축하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생활의 시련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준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유한 나라 사람들 보다 축제를 더 사랑한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축제의 감각과 기술을 상실했다. 그것은 공동체의 전통을 상실한 것과 관계가 있다. 축제는 음식을 나누는 것과 함께 공동체 성원들에게 공동체의 참 의미를 손으로 만지듯이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축제는 생활 속에 일어나는 마찰과 사소한 분쟁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는 청량한 바람이 된다. 축제 속의 환희와 엑스타시(ecstasy)의 요소는 생명의 흐름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성원을 관통해서 흐르게 해주며 우리들의 가슴을 하나로 묶어 준다. 축제는 육체와 감각의 기쁨을 영의 기쁨에 연결시켜 주는 경이로운 시간이다. 따라서 축제는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 요소이다.


살림 공동체는 대안적 문화로서의 음악, 詩, 춤, 노래, 이야기, 연극 등을 적절히 생활 속에 도입한다. 노약자나 장해자 등 누구나 쉽게 배워서 출 수 있는 춤(universal dances)을 개발하고 쉬운 춤사위에 공동체의 정신을 나타내는 소박한 말을 붙여(곡에 가사를 붙이듯이) 일하는 틈틈이 함께 추기도 한다.





五. 에필로그


나는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Pendle Hill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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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호익

November 26, 2005
*.218.50.53
五. 에필로그
나는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Pendle Hill이라는 퀘이커의 공동체에서 지난 한해를 보냈다. 위에서 제시한 공통체像은 그 Pendle Hill을 모델로 하여 대체적인 윤곽을 그려본 것이다. 다만 Pendle Hill을 좀 더 민중적인 쪽으로 끌어당겼다고 할 수 있겠다.
살림공동체의 7가지 원리 하나 하나를, 구원과 해방을 절절히 갈망하는 민중의 가슴과 눈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면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들을 구체적인 공동체운동에 응용할 때에는 내가 몸담고 사는 사회현실과 자신의 문화전통, 그리고 공동체의 조건에 맞추어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중심부가 아닌 아시아 대륙의 동쪽 한 주변부에 떨어진 작은 씨들의 눈이 지금 터지고 있다. 민중이라고도 불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 그들이 자신 속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에 눈떠 깨어나고 있다. 그들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본이다. 씨들은 자신의 문화와 사상과 전통에 돌아가 그 토양에 튼튼히 뿌리를 내릴 것이다. 나아가 그들을 에워싼 동양과 서양의 온갖 문화, 문명, 사상, 전통들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하여 그들 자신의 잠재력, 생명력을 꽃피워 나갈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 새 천년의 새 문명, 새 문화, 새 인류의 도래를 예비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 곧 ‘살림 공동체’의 창조라는 가슴 뿌듯한 과제가 아시아의 민중에게 맡겨져 있다. 이 창조에서 민중신학의 몫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민중신학의 새로운 전개 가능성의 단초만이라도 전달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다.



<참고 문헌>
*Larry L. Rasmusen, ‘Earth Community Earth Ethics’, 1996, Orbis
*Ed. by Martin O'Connor, ‘Is Capitalism Sustainable?’, 1994, The Guilford Press
*Helena Norberg-Hodge,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1991, Siera Club Books. (한국어역: ‘오래된 미래’, 녹색평론사)
*Jean Vanier, ‘Community and Growth’, 1989, Paulist Press
*‘Faith and Practice’, 1997, Philadelphia Yearly Meeting
*Thomas R. Kelly, ‘A Testament of Devotion’, 1941, Harper Collins
*John Punshion, ‘Encounter with Silence’, 1996, QHS
*C. G. Jung, ‘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73, Vintage
*Douglas Gwyn, ‘The Covenant Crucified -Quakers and the Rise of Capitalism-’, 1995, Pendle Hill
*Edited and Introduced by Douglas V. Steere, ‘Quaker Spirituality, selected writings’, 1984, Paulist Press
*Patricia Loring, ‘Listening Spirituality’, 1999, Loring
*Ed. by David Cren and Eric & Helen Ebbeson, ‘Living Simply’, 1981, The Seabury Press
*Mark A. Burch, ‘Simplicity’, 1995, NSP
*Grace Kuto, ‘Harambee, African Family Circle Cookbook’, 1995, Book Partners
*Thich Nhat Hanh, ‘The Miracle of Mindfulness', 1975, Beacon Press
*Thich Nhat Hanh, ‘Living Buddha, Living Christ’, 1995, Riverhead Books
*咸錫憲全集, 1987, 한길사
*김지하전집(5), ‘생명, 이 찬란한 총체’, 1991, 동광출판사
*한글 東經大全, 1991, 동학연구원
*金芝何 思想紀行, 전2권, 1999, 실천문학사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 당당뉴스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 당당뉴스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전 세계에 평화의 물결을 이루자! 올해 10월, 세계평화행진 준비하는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
양재성 | hfmc1004@kornet.net





입력 : 2009년 04월 10일 (금) 22:08:56
최종편집 : 2009년 04월 10일 (금) 23:03:50 [조회수 : 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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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만난 사람

평화가 곧 길이다
때밀이 신학자, 평화운동가 박성용 박사

대담 양재성 목사 | 사진 심자득 목사


전 세계에 평화의 물결을 이루자
올해 10월, 세계평화행진 준비하는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

“언제나 평화는 어두움과 시작했죠? 2009년 시작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시작되었어요.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뽑은 법적 정당성을 가진 단체이며 실질적인 생계문제와 평화형성의 단체에 대한 가시적 조치에 대한 파레스타인의 요구가 전혀 먹히지 않은 절망적 상태에 직면해 왔습니다. 모든 생필품이 통제를 받고 있고 거대한 벽에 갇혀 있어요.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지요.”

새해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폭격에 대한 말로 말문을 연다.

“지금까지 어린이 300여명을 포함하여 900여명이 학살당했어요. 어린이 학교와 민간시설까지 하마스가 숨어있어서 폭격을 감행했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유엔의 평화안을 이스라엘은 거절하였고 미국과 가자지구 안에 무기반입을 금하는 법을 요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실질적인 인권과 복지문제에는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막힌 담벽 안에서 민중을 가둬놓고 하마스를 찾는다고 시가전을 벌이면서 토끼몰이식 사살을 감행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입니까?
2009년 10월 2일은 세계비폭력의 날이다. 비폭력평화물결에서는 세계평화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http://marchamundial.org/en)”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지난 1년여간 준비된 캠페인으로 금년 10월 2일 세계비폭력의 날을 시작으로 90일 동안 전 세계 16만km를 걸으며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전 세계시민의 염원과 행동을 모으게 됩니다. 한국은 10월 13일경에 3일간 들르게 되는 데 약 50여명의 외국인들이 올 예정입니다. 가자지구 공습은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가중시키고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어요. 이 캠페인에는 데이몬드 투투 주교, 브루스 개그논, 마이클 러너, 촘스키, 마르셀라 오소리오, 주빈 메타 등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금년 가을경에는 오바마 당선과 세계금융위기의 영향이 이명박 정부의 우익성향의 강성일변도의 현 분위기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 모멘텀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점에서 평화와 비폭력 세계행진은 하나의 좋은 기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화활동가를 양성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
평화를 생활화하는 현장을 일구어내야

박성용 박사는 군사보호지역인 강화도 양사면 철산리 철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강 건너로는 북한 전시마을이 보였고 마을 한 가운데엔 선전전을 할 수 있는 방송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쪽과 북쪽에서 선전전이 있었다. 남북 대립이라는 한복판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도 강했다. 그것이 오늘날 평화운동을 하게 한 동기가 되었고 대화신학에 관심을 갖게 했다.
박 박사는 덕수상고를 나와 은행에 취직을 하기도 하였으나 신학에 대한 강한 열망을 따라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갔고 대화신학과 토착화신학에 관심을 가졌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파송을 받은 곳이 이화령 근방 고사리마을 고사리교회이다. 그곳에서 7년 2개월간의 시골목회는 삶을 지치게 만들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결국 유학을 선택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1991년 가을, LA폭동을 경험했어요. 한인 점포 2,000개가 불에 탔고, 한인사회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기존의 영성과 자유에 대한 내 희망은 사회적 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평화에 대한 고민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실제 관심의 영역을 자유보다는 갈등과 폭력, 평화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그 당시 통일단체인 미주자주연합의 학교선배인 한호석 선생과 정기열 목사를 만나면서 통일운동에도 관여하게 되었어요. 이 단체는 당시 95년에 동포회의에서 자주연합으로 전환되었고 2000년엔 필라델피아 6.15 지부장을 맡아 일하면서 통일문제와 소수자 인권문제에 깊이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2001년 마지막 학기에 911 사태가 발생했어요. 이제 더 이상 평화문제는 지체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여졌어요. 박사학위 마지막 학기를 퀘이커의 영성원인 펜들힐(www.pendlehill.org)에서 지내며 그곳에서 평화세례를 확실히 받았어요. 완전히 삶에 정리가 되고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삶에로의 결단이라는 극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지요.”

2002년 한국에 돌아와 유네스코아태교육원에서 시민사회 실장을 맡아 3년여 기간동안 일했다. 마침 2년간 아시아 갈등문제를 조사하게 되었고 특히 필리핀과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직접 조사하면서 전쟁과 빈곤의 문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알았고 아시아의 평화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유네스코를 그만두고 진로를 모색하고 있을 때 비폭력평화물결의 대표인 박성준 대표의 제의로 비폭력평화물결 공동대표로 자리를 옮겨 평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2008년 11월 25일 청파교회에서 열렸던 기독교환경연대 주최 환경포럼에서 강연하는 박성용 박사 ⓒ 심자득


비폭력평화물결은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기구로도 전 세계70여개 회원단체가 있는 국제평화운동단체(www.nonviolentpeaceforce.org)이다. 무장하지 않고 훈련받은 국제시민들이 분쟁지역에 직접 들어가 갈등에 개입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전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비폭력 평화에 대한 전통적 모델은 간디의 사회방어와 사회변혁이 있는데 이제 새로운 제3자 개입모델이 국제평화운동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부터 시작한 이 모델은 상당히 좋은 결실을 얻고 있어서 UN에서도 국제평화운동의 5개 최상의 모델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러 갈등 해소를 위한 학습모델을 가지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있죠.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평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거의 대다수가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회에서 폭력과 갈등을 봅니다. 단순한 염원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지요. 사람을 죽이는 군인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재원 그리고 기관들이 협조하고 있습니까? 군대복역과 예비군 훈련, 대학에서 군사학과 각종 전략학 강의, 군산복합체와 씽크 탱크, 언론과 정치간의 결합이 수없이 그물망식으로 얽혀서 소수 지배 엘리트의 특정이익을 위해 대다수를 군사문화로 지배하고 있지요. 비폭력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일생을 건 훈련없이 비폭력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지요.
저의 기본 신념은 비폭력과 평화를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는 현장들을 일구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현장을 일구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의 양성이 시급하지요. 그런 사람의 양성은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훈련모델에 의해 창출될 수 있습니다. 간디가 좋은 예이지요. 비폭력 실천이라는 사티아그라하운동이 성공하게 된 배경은 그가 아쉬람공동체를 통해 같이 비폭력 훈련을 생활하고 서로 지원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간디가 기획하는 다양한 사티아그라하운동을 지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그냥오지 않습니다. 준비하고 사는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평화는 목적이자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평화의 한 걸음의 과정들이 곧 목적인 것입니다.”

나의 스승은 때밀이 일을 하셨던 나의 어머니
세상의 때를 해결하셨던 주님의 사역 따라…




박성용 박사의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때밀이였다. 때밀이를 하면서 자녀들을 키웠다. 박 박사는 자기 인생의 오직 한 분의 스승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때밀이 어머니다. ‘때밀이 신학’의 시작은 그러하다. 예수께서도 거룩한 하늘을 버리고 죄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어두움과 죄악을 해결하시기 위해서이다. 세상의 때를 해결하시는 것이 주님의 사역이었다면 기독교인들의 사역은 당연히 그 일이다. 때를 밀고 계신 어머니가 박 박사의 삶의 자리가 되었다. 영혼과 삶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었다.

박성용 박사는 평화운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개념으로 수많은 신학적 지식의 아카데미아 영역에서 일종의 회의주의에 있던 그가 하나님의 자비를 실재하는 현실로 경험한 것은 바로 평화운동의 사회적 밑바닥에서였다. 그것이 그를 여러 사회적 갈등이슈와 문제들의 파도속에서 지치면서도 힘을 얻고 사는 비결이었다. 평화를 위해 일하고 사색하고 현장의 소리를 듣는 곳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란” 그리스도의 말이 실제로 경험되는 실체로 다가왔다. 자비와 은총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과거에 수줍고 수동적이며 책상에 주로 앉아 있던 사색가로 하여금 이제 다른 형태의 적극적이고 의지를 지닌 부드러운 비폭력 투사로 바꾸어 놓았다.

“세상은 하나님의 실제를 알리는 암호입니다. 성과 속, 교회와 세상, 영과 육, 시간은 분리될 수 없지요. 24시간 하나님의 통치를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평화운동을 하면서 매 순간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도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영역을 넘어서서 계신존재입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평화에 대해 무지하죠. 깨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물량주의나 성장주의로 간 것은 본질을 상실하게 하였고 가치를 하락시켰습니다. 한국교회의 새로움은 진리에 대한 경험이 절실하며 근본, 본질에 대해 다시 서는 일이 절실합니다. 한국교회가 깨어나기를 성령이 탄식하고 있어요.

진리로 가는 길은 능동적 비폭력으로만 가능하며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가 생명평화에 대한 헌신과 결단으로 이끕니다. 저는 요한복음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거꾸로 이해합니다. 요한복음의 여러 차례의 ”나는...이다“라는 신비한 문법어의 본체는 실상 그것이 드러내는 길, 진리, 생명이 주어라는 데 있지요. 즉, 길, 진리, 생명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고 진리는 인식하고 생명을 사는 프락시스(실천)에서 신적 사랑의 경험을 비로소 알게 되고 거기에 그리스도가 현존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 발견되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삶의 실천은 진리이신 신을 경험하는 길이요-그리스도가 유일한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가는 길이 유일하게 비폭력과 평화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샬롬이 하나님의 존재성이기 때문이다-이는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는 상호순환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박 박사에게 영향을 준 책은 월터윙크(Walter Wink)의 책들(예,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과 간디의 책들이다. 간디는 ‘영원한 샘’이라고 극찬하였으며 영성과 실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분으로 비폭력을 가장 잘 실험하신 분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틱낫한의 평화, 노자의 도덕경, 퀘이커의 책들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사람으로부터 충격을 받은 것은 역사적 평화교회인 일반 퀘이커들의 일상에서 여러 평화활동을 운동가보다 더 심도 깊게 생활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한 미국에서의 경험이었다고 한다.

박성용 박사는 2009년 새해에도 할 일이 많다. 평화활동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평화훈련자료들을 번역하는 일, 평화교회를 위한 훈련교재 작업과 그룹들을 이끄는 일, “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이라는 국제모델을 감옥, 학교, 공동체에 적용하기 위한 국내 전문 진행자를 앞으로 3년간 아름다운 재단의 재정도움을 받아 50명을 목표로 키워내는 일, 평화활동가들과 비폭력직접행동 훈련커리큘럼 원서강독 모임을 진행하기,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을 조직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일, 7.27 한강 평화의 배 띄우기, 기독교평화아카데미 운영 등 집중력을 가지고 깊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이 시대의 예수를 보는 듯 정겹다.

▲ 국제 비폭력평화세력 회원단체들의 총회에서 장기 계획 수립을 위한 모임



국제시민평화세력의 출현
비 폭 력 평 화 물 결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
폭력의 실재에 대해서 간디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3억이 넘는 인도인들이 겨우 10만의 영국군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이 현실이 어떻게 가능한가?? 평생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저항과 건설적인 프로그램이란 적극적 비폭력의 실천이란 형태로 나타난다. 저항이란 ‘악에 대한 비협조’와 이를 위한 고난의 힘을 말하며 건설적인 프로그램은 현실극복을 위한 대안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가 확신한 것은 악에 ‘협조안하면 무너진다’는 것이며, 소금행진과 물레 돌리기 등에서 보듯이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사실상 제국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적극적인 비폭력 힘에 대한 것이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무기와 폭력의 지배와 강자의 논리를 넘어서서 부드럽고 약한 자들의 적극적인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간디는 1906년 9월 11일 지지자 3000명이 모인 남아공의 한 호텔 앞에서 사티그라하(the truth-force)를 선포하였다. 평화 건설은 미래나 목적이 아니라 지금이요, 수단이자 과정이다. 평화는 단지 염원이나 말, 토론이나 행사로 실현되지 않는다. 군인이 ‘적’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받고, 학문(군사학), 과학이란 도구(무기), 이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하는 수단(대학, 연구소, 국방부, 무기산업)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공동체(군사전문가, 학자, 정치가)들이 존재하듯이 사티그라하를 자신의 피와 살로 그리고 영혼속에 각인한 새로운 비폭력 평화군(상티 세나)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그는 암살당하기 직전에 말하였지만 그 꿈을 현실화하진 못하였다.

1999년 헤이그평화회의에서 이 꿈은 다시 살아났다. 데이빗 핫소(퀘이커평화활동가)와 멜 덴컨(공동체조직가)는 지난 세계대전이후 군사주의에 의한 평화가 실제로 가장 고비용저효율의 결과만을 얻었기에 국제평화운동에 새로운 전환, 곧 간디의 비폭력 평화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분쟁지역에서 평화인지력과 갈등해결의 능력을 갖춘 훈련된 시민평화세력(nonviolent peace-force)의 창설을 주창하였고, 이 국제단체를 따르는 30여개 나라에서 간디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한 단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2002년에 출현한 한국의 ‘비폭력평화물결 www.peacewave.net’이다.

2001년 9.11 사건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미명하에 분쟁지역에서 희생되는 90%가 무고한 시민임을 감안하여 이제는 무기와 군인이 아닌 시민이 시민을 방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 3자개입”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진행된 비폭력 평화운동의 흐름인 사회방어(social defense), 사회변화(social change)에 의해 군사갈등지역에서의 강력한 시민개입이라는 3번째 새로운 흐름으로서 비폭력 국제평화운동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단체는 현재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의 특별자문지위를 갖고 스리랑카, 필리핀, 과테말라 등의 여러 국제분쟁지역에서 갈등모니터링, 소년병의 구출, 인권운동가 보호와 동반, 활동지원과 자문, 국제단체와의 현지 활동가의 연결, 현지인 평화구축훈련워크숍과 갈등 중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대가 세상에서 보기 원하는 변화가 되라
한국에서 비폭력평화물결의 창설자인 박성준님(퀘이커)은 창립초기에 부드러움, 약함 그리고 경청의 힘을 기반으로 한 ‘움직이는 평화학교’ 및 열린 토론을 위한 ‘평화너른마당’ 그리고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참여를 위한 ‘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를 통해 한국에서 비폭력 운동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2006년에 직접 합류하면서 군인이 훈련받는 것처럼 비폭력 실천도 일생을 건 훈련과 생활에 대한 실제 적용을 하며 사는 평화일꾼이 필요하다는 신념에 따라 비폭력 힘과 실천에 기초한 ‘훈련’과 ‘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워크숍을 시민사회에 제공하여 장차 국내외 갈등분쟁지역에 직접 파견하는 시민평화군 이념을 실현할 초기단계를 마련하고 있다.

궁극적인 비폭력 평화시민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본 단체는 비폭력과 관련된 전문 활동가 양성을 위해 2007년부터 국제 훈련 모델인 ‘비폭력 대화(NVC),’ ‘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VP)’를 개설하고 그리고 2008년에는 ‘비폭력직접행동(Nonviolent Direct Education)’ 등의 훈련가 양성 워크숍을 개설하고 있다.
국제 비폭력 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용중인 비폭력 활동가 양성을 위한 ‘비폭력 영성과 실천’ 모델 그리고 개인의 내면적 자각에 기초한 진리공동체 형성을 위한 파커 팔머(Parker Palmer)의 교육모델 등 다른 몇 가지 모델도 소개하고 있어서 이들 모델을 구체화하여 개인과 사회 그리고 신앙공동체(교회)에 실제적인 변화를 잉태하고 자신의 삶을 걸고 헌신하는 비폭력 평화지기들을 양성하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비폭력평화물결 www.peacewave.net
 
▲ 국제 분쟁 지역에서 국제 비폭력 평화 세력의 활동 사진 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