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いっさいの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放下着(ほうげじゃく)」の教え | キナリ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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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っさいの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放下着(ほうげじゃく)」の教え


いっさいの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放下着(ほうげじゃく)」の教え

心穏やかにすごしたいのに、思うようにいかない。あるべき姿や、やるべきことに縛られて、毎日が息苦しい。それはもしかしたら、思い込みや決めつけ、執着があなたを窮屈にしているのかもしれません。そんなときは「放下着(ほうげじゃく)」という禅のことばに触れてみましょう。いっさいの思慮分別を捨て去れば、心の重荷から解放され、穏やかになれるという教えです。2020年02月25日作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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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の重荷を抱えていませんか

出典:unsplash.com
心の重荷を解くには、その正体が何なのかを知ることです。思い込みや決めつけ、執着、こだわり――それらに気付くことで初めて、心の重荷を解くことができるのです。
禅のことば、「放下着」は、いっさいの執着を捨て去ることの大切さを教えてくれます。

目次
「放下着」の教え
思い込みや執着に気付こう
暮らしのなかで実践したい「放下着」

「放下着」の教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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わたしたち人間は「欲」というものがあり、手放す、捨てるという行為が苦手です。それは、物質的なものだけでなく、思考や過去の記憶といった形のないものも同じ。捨てたくても捨てきれず、悩むのです。
そんなときは「放下着」という禅のことばに触れてみましょう。

いっさいの執着を捨て去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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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下着」とは、「いっさいの執着を捨て去りなさい」という意味です。所有している物だけでなく、過去の経歴や成功体験、思い込みや決めつけといった思慮分別をも捨て去る。もう捨てるものがない、もはや捨てきったという自負までも捨てなさい、という意味が込められています。

執着が心を曇らせ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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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の象徴である所有物、しがみついている過去のキャリア、依存している人間関係、必死に保ち続けているプライド、肩書、正しいと思っていること……。これらは人生を窮屈にする執着に他なりません。
あなたの心を曇らせている執着の正体は何でしょうか。

捨て去ると生きることが楽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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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分には不要なもの、邪魔なものであっても、捨て去ることは難しいものです。しかし、その山を越えれば、生きることが今よりもぐんと楽になります。

物を捨てると、本当に必要なものが見えてきます。
過去の栄光を捨てると、新しい道が見えてきます。
執着にしがみつかなくても、わたしたちは生きていけるのです。

思い込みや執着に気付こ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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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べき思考」に固執したり、当たり前と信じて疑わないことを守り続けたり、世間の常識を鵜呑みにしたり……。無意識に自分を縛っていることはありませんか。
まずは、無意識の思い込みや執着、こだわりに気付くところから始めましょう。

「べき思考」で自分を窮屈に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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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うするべき」「ねばならない」「これが正しい」という思い込みにとらわれていないでしょうか。良かれと思っていることでも、こういった「べき思考」は手間や負担を増やすだけです。「良い○○(妻、母といった役割)であるべき」「こうするのが当たり前」というのも同じで、あなたの心を窮屈にしてしまいます。

当たり前と信じて疑わないことを、守り続け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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育った環境で学んだことが全てで、それが当たり前と思っていることは多いものです。「洗濯物は昼間の外に干すもの」「食事は三食必ず手作りするもの」というように、信じて疑わないことはないでしょうか。「自分は仕事をしているのに、専業主婦の母親をロールモデルにしていて、葛藤から抜け出せない」といったことも同様です。

“常識”をアップデートできてい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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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スタイルは千差万別で、世間の常識がそっくりそのまま自分の常識だとは限らないものです。「あると便利なもの」と世間では認知されているけれど、わが家には邪魔なものかもしれません。まとめてやるのが効率的なことが、実は自分には合っていないかもしれません。こういったアップデートできていない“常識”はないでしょうか。

暮らしのなかで実践したい「放下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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暮らしのなかにため込んでいるもの、不要なもの、役に立たないもの……。これらを捨て去る「放下着」を実践するには、具体的に何をすればよいのでしょうか。
物質的なものだけでなく、家事や仕事、人間関係などの面からも、あなたを苦しめる執着を手放していきましょう。

物の「放下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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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かったもの、もらいもの、思い出ものなど、捨てようと思っても躊躇してしまうものですよね。そういったものは、既に役割を終えていると考えてみましょう。
高かったものは、とうに旬が過ぎています。もらったものは、気持ちを受け取った時点で役目を終えています。思い出のものは、形がなくなっても心の中に生き続けています。

物は使ってこそ意義のあるもの、使わないものは執着の塊でしかないのです。

家事の「放下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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当たり前だから、正しいと思っているからという理由で、やり続けている家事はありませんか。
掃除の手間を増やす、マット類やラック類をなくしてみる。煮沸消毒が面倒なふきん類を、使い捨てのウエスに変えてみる。洗濯物をたたむ作業をやめて、吊るす&丸める収納に変えてみる。

「こ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もできない」という罪悪感そのものも、きれいに捨て去りましょう。

仕事の「放下着」

出典:www.pexels.com
フリーランスでもない限り、自分の仕事を自由に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は難しい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裁量の範囲で不要な雑務をなくしたり、取り組み方を改善したり、環境を整えたりすることは可能です。

今のやり方に無駄はないでしょうか? もっと他のやり方はないでしょうか。デスクを整理整頓して、集中できる環境を整える。不得意な取り組み方ではなく、得意な方法で取り組んでみるなど、今すぐできることはありそうです。

人間関係の「放下着」

出典:unsplash.com
わだかまりやすれ違い、意見の食い違い、無理をしている付き合い、“いいね”しないと維持できない関係性……。自分を偽るような人間関係は、あなたも本意ではないはずです。

人間関係全てを捨て去るのではなく、小さな嘘、偽り、疑う気持ち、妬み、嫉みといった感情を捨て去りましょう。そうすれば、フラットな関係性を築けるはずです。

「放下着」の教えを胸に、心穏やかに生きる

出典:unsplash.com
いっさいの思い込み、執着を捨てる「放下着」の教えをご紹介しました。

心の重荷を解くには、その正体が何なのかを知ることです。そうすることで、自分には不要なものを捨て去ることができます。
あなたも「放下着」の教えに触れ、心の穏やかさを手にしてください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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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마음 온화하게 지내고 싶은데, 생각대로 가지 않는다. 있어야 할 모습과 할 일에 묶여 매일이 답답하다. 어쩌면 추측이나 결정을 내리고 집착이 당신을 비좁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때는 「방 속옷(호우게쟈쿠)」이라고 하는 선의 말을 접해 봅시다. 일체의 사려분별을 버리면 마음의 짐에서 해방되어 온화하게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2020년 02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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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출처 : unsplash.com
마음의 짐을 풀기 위해서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추억이나 결정, 집착, 고집――그들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처음으로 마음의 짐을 풀 수 있습니다.
선의 말씀, 「방 속옷」은, 일체의 집착을 버리는 것의 소중함을 가르쳐 줍니다.
목차
「방 속옷」의 가르침
추억이나 집착을 깨닫자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방 속옷」
「방 속옷」의 가르침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출처 : unsplash.com
우리 인간은 '욕심'이라는 것이 있고, 놓고 버리는 행위가 약하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고나 과거의 기억 같은 형태가 없는 것도 같다.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어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방 속옷」이라고 하는 선의 말을 접해 봅시다.
일체의 집착을 버리다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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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속옷'이란 '일부 집착을 버리세요'라는 뜻입니다. 소유하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경력이나 성공 체험, 추억이나 정돈 등의 사려 분별도 버린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다, 더 이상 버렸다는 자부심까지도 버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집착이 마음을 흐리게 하는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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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상징인 소유물, 달라붙고 있는 과거의 경력, 의존하고 있는 인간 관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자존심, 직함,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들은 삶을 비좁게 만드는 집착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집착의 정체는 무엇인가?
버리면 살기 쉬워진다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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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는 불필요한 것, 방해하는 것이라도, 버려 버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산을 넘으면 살아가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편해집니다.

물건을 버리면 정말 필요한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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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나 집착을 깨닫자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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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사고」에 고집하거나, 당연하다고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계속 지키거나, 세상의 상식을 가득하게 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묶고 있지 않습니까?
우선, 무의식의 추억이나 집착, 고집을 알아차리는 곳부터 시작합시다.
'해야할 생각'으로 자신을 비좁게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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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이것이 옳다”는 추억에 사로잡혀 있지 않습니까.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도, 이런 「야한 사고」는 수고나 부담을 늘릴 뿐입니다. 「좋은 ○○(아내, 어머니라고 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마음을 비좁게 해 버립니다.
당연하다고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계속 지키고 있다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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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환경에서 배운 것이 전부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습니다. “세탁물은 낮 밖에 말리는 것” “식사는 삼식 반드시 손수 만든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까. 「자신은 일을 하고 있는데, 전업 주부의 어머니를 롤 모델로 하고 있어, 갈등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을 업데이트 할 수 없습니다.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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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스타일은 천차만별로, 세상의 상식이 똑같이 그대로 자신의 상식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있으면 편리한 것'이라고 세상에서는 인지되고 있지만, 우리 집에는 방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정리해 주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 실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은 “상식”은 없습니까.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싶은 「방 속옷」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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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 들어가는 것, 불필요한 것,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이것들을 버리는 '방 속옷'을 실천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사나 일, 인간 관계 등의 면에서도, 당신을 괴롭히는 집착을 풀어 갑시다.
물건의 「방 속옷」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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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았던 것, 받는 것, 추억의 것 등, 버리려고 해도 주저해 버리는 것이군요. 그런 것은 이미 역할을 마쳤다고 생각해 봅시다.
높았던 것은 마침내 제철이 지나고 있습니다. 받은 것은 감정을 받은 시점에서 역할을 끝내고 있습니다. 추억의 것은 형태가 없어져도 마음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건은 사용해야 의의가 있는 것, 사용하지 않는 것은 집착의 덩어리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사의 「방 속옷」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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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계속하고 있는 가사는 없습니까.
청소의 수고를 늘리는, 매트류나 랙류를 없애 봅니다. 끓는 소독이 귀찮은 후킨류를 일회용 허리로 바꿔 본다. 세탁물을 접는 작업을 그만두고, 매달아 & 둥근 수납으로 바꾸어 본다.

“이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는 죄책감 그 자체도 깨끗이 버리자.
일의 「방 속옷」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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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가 아니라면 자신의 업무를 자유롭게 통제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량의 범위에서 불필요한 잡무를 없애고, 대처방법을 개선하거나, 환경을 정돈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지금의 방법에 낭비는 없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책상을 정리 정돈하여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정돈한다. 불의의 대처 방법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방법으로 임해 보는 등,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관계의 "방 속옷"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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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엇갈림, 의견의 엇갈림, 무리를 하고 있는 사귀, “좋아요” 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관계성… 자신을 거짓하는 인간 관계는 당신도 본의가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인간 관계를 버리는 대신 작은 거짓말, 거짓, 의심, 질투, 질투 같은 감정을 버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플랫한 관계성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 속옷」의 가르침을 가슴에, 마음 온화하게 사는
일종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 (호게 짱)"의 가르침
출처 : unsplash.com
일체의 추억, 집착을 버리는 「방 속옷」의 가르침을 소개했습니다.

마음의 짐을 풀기 위해서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당신도 "방 속옷"의 가르침을 만져 마음의 온화함을 손에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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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下着(ほうげじゃく)の意味は? 枡野俊明さんや平井正修さんの解釈 【心に響く禅語】 | 知のソムリエ

放下着(ほうげじゃく)の意味は? 枡野俊明さんや平井正修さんの解釈 【心に響く禅語】
更新日:2020年11月25日
公開日:2016年10月14日心に響く禅語




 執着心を捨てて、心穏やかに生きる。禅語の「放下着」には、こんな意味があります。「放下」は「捨てる」、「着」は、「何々しなさい」という命令形で、「放下着」は、「捨てなさい」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日常生活で、この「放下着」を実現するのはなかなか大変ですが、ぜひとも心掛けたい禅語です。

 建功寺(神奈川県)住職の枡野俊明さんは、著書「おだやかに、シンプルに生きる」の中で、「放下着」という禅語が生まれた経緯を説明しています。

 一人の禅僧が、師にたずねます。「放下着と言いますが、もう私はすべてを捨てきったという思いでいます。もはや捨てるものは何もありません。これ以上、何を打ち捨てろというのでしょうか」と。師はこれに対して、「捨てきったという思いさえも捨てなさい」と答えます。
 
 枡野さんは、「なかなか難しい禅問答ですが、それほどまでに、人間の心にとって捨てきるということは難しいことを表しています。執着心を捨てることが、ひいてはおだやかな心につながっていく。それがわかっていても、人はついさまざまなことに執着してしまうものです」と、「放下着」の難しさを説明しています。

 そのうえで、枡野さんは、「放下着」について、「『すべての思慮分別や経験などもいっさい捨てなさい』と教える言葉です」と解説しています。ビジネスパースンに向けても、「過去のキャリアや成功体験にしがみつくことは、仕事を後退させることと同じです」として、「放下着」の勧めを説いています。

枡野俊明さんの本「禅、シンプル生活のすすめ」を読んで 禅は深くてやさしい「生きる知恵」の宝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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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生庵(東京都)住職の平井正修さんも著書「男の禅語」の中で、この禅僧の厳陽(ごんよう)尊者と趙州禅師の対話を紹介したうえで、「何にも執着を持たず、一切をさっぱりと捨て去ること、無一物に徹すること。しかしそれは至難の業です。だから、『すべて手放しました』と言って、悟り臭さのようなものが残っているうちは、まだまだなのですね。何も言わずとも、なぜかその人と一緒にいると、まわりの人間がよき感化を受けていく。そんな人が本物なのでしょう」と書いています。

 平井さんは、男性よりも女性のほうが捨てるのが上手であることを指摘、「『ものと一緒に思いも捨ててしまう』というのはなかなか効果的な方法です。片づけや整理整頓も、まずは捨てなければ進みません」として、「まずは目に見えるものを捨てることから、始めてみればいい」と、「捨てる」ことを勧めています。

 ものを持たない生き方をしているミニマリストにも通じるものでしょう。

 私は4年前、海外駐在などのため、20年以上ほとんど住んでいなかった自宅マンションを全面リフォームしたことがあります。不要なものも多く、ひとつひとつ捨てるのに多大なエネルギーを費やしました。貯めこんでいても、役には立たない。運気を下げてしまうこともある。そんな思いを強くしました。

 最低限、必要なものに絞って生活する。そして、ものよりも、心穏やかに生きることを優先する。「放下着」の意味をたびたび、かみしめ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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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功徳とは? どんな意味の禅語? 「小さな努力を積み重ね、人生を豊かにする」「見返りを期待しない」 

정신교육(교재)

나 아닌 내

내, 아는(알려지는) 대상 속엔 없는, 무언가를 아는 내 자신입니다. 
아는 주체인 내 자신을 모르고, 알려지는 나를 내 라고 여겨짐(혼동)을 착각이라 한다. 
모든 내면적 장애의 근본 원인이다.


정신교육(교재)
2020. 2. 24.

1. 정신교육, 왜 필요한가 - 그 이유와 목적.

2.. 정신이,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3. 저 자신을 깨닫기.

4. 제 본분을 깨우치기.

5. 아는 것(주체, 행위, 객체=意識)

6. 현명과 우매,

7. 자유(自由)와 유자(由自)

8. 실험과 확인.

9.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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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교육(敎材)'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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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교육, 왜 필요한가- 그 이유와 목적.2020. 2. 25.

사람이 하는 일을 기능별로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겠다.

1. 생명체의 본성(本性- 유전자에 입려된)이 하는 생명체로서의 성장, 유지관리 이다.

2. 생명체의 두뇌가 하는 심성(위의 1에 소용되는 정보(識)와 평판(意)의 생성과 실행) 활동이다.  

3. 생명체의 정신이 하는 자성(스스로 하는)으로 위의 본성을 보조하고 심성을 통제하는 활동이다.


위의 1 본성(本性)은 본래 부터 죽는 순간까지 불변이고, 생명이 스스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이나 정신은

보조 작용을 할 수 있을 뿐이고 그로써 필요, 충분하다.

2. 심성(心性)은 본성(本性)을 보조하는 기능이 최우선이니, 본성에 장애가 되지 말아야 한다.

3. 자성(自性-자유, 자율)은 심성이 본성에 기여하는지 장애를 유발하는지 점검, 예방, 시정하여야 한다.


위의 세 기능 중에서 교육과 훈련의 필요가 가장 중시되는 기능이 무엇인가는 자명해 진다.

생명(본성)은 교육의 필요도 없고, 교육할 타 기능도 없다, 그냥 그대로 보조만 해 주면 족하다.

마음(심성)은 컴퓨터(두뇌)에 생성되는 자료(정보와 판단) 같은 것 으로, 스스로 누구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자가 될 수 없다.

결국, 본성을 보조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 정신만이 교육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있고, 그럴 필요도 있는 대상이다.


본성이 하는 본능적인 일은 상대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고, 무조건 존중되어야 할 일 이다.

심성이 하는 의식적인 일은 본성을 기준으로 하여 (상대적) 비교, 평가, 선택, 판단, 결정등이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한바,

그런 상대적인 평판을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정신의 자성(스스로 하는 일) 이다.


이상으로, 정신의 역할, 그 비중이 엄청나게 중차대(重且大) 하다는 것이 이해되리라.

동시에, 그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정신의 능력 계발이 긴요하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도 필요한 이유도, 목적도 이해되리라. 

마음이 잘못 되어서 본성을 위시한 인생에 도움은 적고 해로움이 크다면, 그걸 예방, 시정, 교정하는 역할을 정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 60억이 넘는 인류가 살고 있다.

각 자의 마음대로 살려고 한다.

그러면 어찌 되겠으며, 지금도 어떤 상태로 인류가 공존하고 있는가?


공존 공영이냐, 공멸이냐의 갈림이 개인마다의 마음에 달려 있고,

그 마음의 목적 방향이 그 정신이 결정하기에 달려 있고,

그 정신의 -공존 공영으로의- 결정은 교육과 훈련으로만 가능하다.


함께 잘 살래!?.

함께 공멸할래 !?  

===
2. 내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2020. 2. 24.

내가 어디에 있는가?

1. 태허(太虛)라는 영구(無始無終), 부한, 불변, 절대의 텅빔(宇라 하자)에,

2. 공(空 ; 불교적 용어), 또는 [콩알 우주]라는 질량불변(質量不變)인채로, 항상변화(恒常變化)하는 와중(渦中)에 있는(宙)라 하자),

3. ㅇㅇㅇ 은하계, 태양계, 지구, 한반도, 세종시에 살고 있는,

4. 한 사람의 두뇌 속에 있다는 것은 자인(自認)할 수 밖에 없다.

(이 사람이 살아 온 기억이 두뇌 속에 있고, 그 것을 내가 알려면 두뇌 속의 그 기억 가까운 곳에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내가 어디에 있는가는 알았지만, 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모를 뿐만 아니라 알 길이 전혀 없다.

왜냐, 내가 내를 알려면 아는 자(주체)로서 알려지는 자(객체)를 알아야 하는데,

내가 하나이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둘이라고 가정해도, 알려지는 자를 "아는 자는 하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는 자 하나가, 동시에 아는 자(주체)와 알려지는 자(객체)로 두 곳에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그래서 내가 스스로 내 자신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면, 바로 그 묻는자 자신이 내 이다.

대답은 "내가 내다", "내가 내 자신이다", "내가 내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내가 아는 것 일체가 내 아니다" ,

"내가 내 자신이라고 안다는 것이야 말로, 그 것이 내 자신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내(自) 아닌 것(他)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름을 무엇이라 지어서 자칭(自稱)하느냐 뿐 이다.


남이사 내를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저 사람의 정신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구나", 어떨 땐 "술이 취하여 정신이 (거의)없구나" 할 때도 있으니,

내 또한 내 이름을, 사람들의 보편적, 객관적인 이름을 따라 "정신"이라고 하자.

자칭할 때는 "내", 또는 "내 자신"이라 하고. 


내는 두뇌 속에 있는 정신이다.

잠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내가 어디에 잠들어 있는 줄도 모르고, 깨어 나면 스스로  온갖 일을 한다.

===
3. 내가 자각(自覺, 生覺)하기.2020. 2. 24.

내가 하나이기 때문에,

내가 아는 주체로서, 내를 알려지는 객체로 삼을 길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고 나면- 너무나 쉬운 일 이다.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 하면 알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 한 일 이다.


그래서, 시대의 고금(古今). 양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 자신을 찾고, 만나서, 알겠다고 나섰지만

누구도 성공할 수 없을 수 밖에.

게다가 그 일이 성공할 수 없는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헛수고만 크게 하였지....  


그래서 "내가 내 자신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고, 왜 부가능한지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였던지,

그 후로는 "생각(生覺)하라, 깨달음(覺)을 내라(生)"고 가르쳤지만, "깨달음"이란 말의 뜻을 또 "말로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스스로 깨달아서 증득(證得)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하니, 도대체 깨닫기를 하라는건지, 말라는건지....

알지도 못 하는 일을 무슨 수로 하라, 한다는 건지.....,


필자는 아주 쉬운 방법을 하나 제시한다.

자, 심호흡을 한번 하고 지금 부터 내 스스로 무엇이건 해 보자.

단지, 내가 스스로 하고 말고를, 어떻게 하고 말고를 주도하면서 한다는 걸 잠시도 잊지 말고.


그렇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던 일을,

 "자, 멈추고 돌이켜 보자" 하고는 "내가 지금 조금 전에 한 일을 되 돌아 보고 있다"고 명확하게 말 하시라.

 그 다음엔 지금 무엇을 하고 있건, 그 일을 멈추자 하고는 일단 멈추자 하라.


그런 다음에 지금까지 한 "모든 일을 한 자가 누구냐(무엇이냐)?"를 확인해 보시라.

알고 있는 모든 일을 확실히 알고는, 그 일은 일단 제외하고 남는 게 무엇인가?

바로, 그 일을 한 자가만 남는다. "그게 바로 내 였고, 지금도 여전한 내 이구나" 하는 것이 깨달음, 자각이다.


두뇌에다 스스로 질문이나 명령하는 말을 걸어 놓고, 그 말을 내가 했구나, 그 말과는 따로 -그 어떤 말을 하건 말건-내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覺)을 만들어 냄(生)을 생각(生覺)이라 한다.

아는 일(知)이, 대상(객체, 他)를 향하여 [후랫쉬]를 비추어 나아 가는 일 이라면, 깨달음(覺)은 내를 향하여 [후랬쉬]를 되돌아 비춤(返照)과

같다.


쉬운 예를 들자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일을 무엇이 하는가?"

그 일을 하는 자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일"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 일 모두를 제외하고 나야, 그 일을 한 자를 알 수가 있다.

바로 두뇌 속의 내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고 하였음을 망각(忘覺)하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찾는 자는, 그 찾는 행위나 몸 표면에는 없다, 두뇌 속에서 찾자고 명령하고 있으니까.

걱정하는 나를 찾아 보라, 걱정 속에도 없고 걱정한다는 행위에도 없다, 두뇌 속에서 "걱정스럽다는 나"는 보고 알 뿐 이다.

깨달음을 왜 강조하고 권하느냐 하면, 깨닫지 못 하면 착각에 빠져서 내 일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라고 아는 모든 것은 -착각의 소산일 뿐-  내가 아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내 스스로 제외하고 나서 남는 유일무이한 내 이다.  

 


===
4. 제(自) 본분(本分)을 깨우쳐 알기.2020. 2. 25.

"깨우치다"를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쓰고자 한다.


깨다 : 단단한 것을 부수다, 둘러 싸고 있는 껍질을 까다는 뜻 이다.

우(愚) : 어리석음. (모르는 줄도 모름) 

치(痴) : 어리석음. (제가 알고 있는 그대로를 맹신, 맹종함)

깨우치다(脫愚痴) : 알려고도 못 하고, 고집불통인 정신자세를 깨고 나오다.


본분(本分) : 본래 부터 짊어 지고 있는 불변의 소임이다.


이 사람의 정신인 내 타고 난 본분이 무얼까?

이런 질문을 두뇌 속에 하려면, 첫째 내(自)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런 다음에 둘째, 내(自)를 무엇이 왜 만들었을까?를 -과학적 연구는 불가능하니- 논리적으로 탐구해야 하고,

셋째, "아하 그 것(내를 만든 자)이 그래서(그런 목적으로) 내를 만들었구나" 수긍할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까지

갖 가지 가설을 제시해 가면서 검토해야 한다.


이 사람을 만든 자는, 어차피 내가 알 수는 없는 이 사람 창조자 이다. (太虛? 空?, 콩알우주? 절대신?)

그가 이 사람 안에 내(自)라는 정신 기능을 만들었을까?

"내가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그래서 이 사람의 인생을 잘 살게 운전하라는 명령을 부여해서"

그걸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생명(生命 ; 본성대로 살개 하라), 운명(運命 : 두뇌(意識)를 잘 운전하라)이라고.


이 둘이 내 본분인지 여하를 확인해 보자.

1. 내가 할 수 있고, 내 이외의 무엇이 할 수 없는 일 인가?

2. 내가 올바르게 하면 이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되고, 하지 않거나 잘못 하면 인생에 해로움이 되는 일 인가?

위의 두 가지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만이 가능하다면, 내 아닌 누구의 일 이라 할 수가 없으니, 내 본분이 아니라 할 수도 없다.


깨어 나 있으면서 자기로 부터의 생명과 운명 수행에 성실해야 하고 말고.

내 만의 유일한 본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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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아는 주체)가 스스로(自) 아는(觀) 것(意識).2020. 2. 26.

사람마다의 그 내가 아는 것이야 너무나 많지만,

"내가 아는 것" 이라는 말의 뜻은 거의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이, 내가 아는 것 이지" 하는 동어반복식으로 아는 줄 믿고 있을 뿐 이다.

이하의 설명을 듣고도, 과연 그리 알고 말는지...그의 결정이지만.


1. 내는,

그 사람의 내부에서 아는 일을 하는 기관, 즉 아는 행위의 주체이다. 

고로 내가 없으면 아는 일을 할 자가 없으니, 아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주체이기 때문에, 아는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없지는 않지만, 그 반대(내가 없이 아는 일이 있는)는 없다.


2. 아는,

내가 대상을 대(對)하여 아는(觀) 일 이다.

여섯 가지 식(識)과 두 가지 마음의 소리(意語)를 대(對)하여 아는 일을 본다(觀)고 한다. 

두뇌 속에서 떠 올려 본다, 들어 본다, 맡아 본다, 맛 본다, 만져 본다, 느껴(마음을) 본다 하는 등등이 모두 아는 일 이다.


3. 것.

내가(1), 아는(2), 대상인 것(3) 으로 두뇌 속의 내(1) 앞에 아는(2) 대상으로 등장해 있는 의식(意識)이다.

색성향미촉(前 5識) 다섯가지 정보와 인간관계에서 획득된 언어(문자) 정보(제6 述語識)과, 그 정보들에 부가되어 있는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말(意語)로 남으로 부터 전해 진 평판(제7 他意語), 내 자신이 만든 평판(제8 自意語),그리고 심층의식(제9 의식)이다.


내가 무엇이냐, 내가 무엇을 아느냐 하는 두 가지 질문은 밀접한 관련을 지을 수가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알면, 내 앞에 무엇이 있느냐를 알기 쉽고,

내가 아는 것이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를 알면, 그걸 아는 내가 무엇인가를 알기가 쉽기 때문이다.

아는 자와 아는(알려지는) 것은 가까이, 마주 대(對)하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 몰라도,

내가 온갖 기억이나 상상을 안다는 것, 그 기억이나 상상이 두뇌 속에 떠 올라 있어서 안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내 또한 두뇌 속 기억과 상상 가까이에, 마주 대(對)하여 있으면서 아는(觀하는) 내(自稱), 즉 정신(통상적 호칭)이라고 안다.


이상 내(주체), 아는(행위), 것(객체)을 정확히 이해하여,아는 모든 것이 [내 스스로 아는 의식]임을 명념하고,

특히 내 스스로(自) 깨달음(覺)을 놓지지 않아야 본분(生命과 運命 수행)에 충실할 수가 있다.

실제 그대로를 전부 아는 것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마음대로" 알면서 그걸 사실 그대로라 오인함을 경계,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 현명, 겸손, 신중, 침착, 성실등등은 아무리 강조, 명심해도 지나치다 할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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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정신), 현명(賢明)과 우매(愚昧).2020. 2. 27.

현명(賢明), "지혜롭고(賢) 사리에 밝다(明)"고?

"무엇이 지헤이고 사리이냐?" 물으면 뭐랄텐가?


우매(愚昧), "어리석고 사리에 어둡다."고?

역시 "무엇이 어리석음이고, 사리가 무엇인데?" 물으면 뭐랄텐가?


어차피 언어의 뜻은 그걸 사용하는 사람 개, 개인의 두뇌 속에 있지, 달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여기서는 내 나름의 뜻 이라고 제시해 보이련다.


정신의 아는 능력의 본원(本源)을 지혜라 하련다. 

자각능력, 탐구력, 관찰력, 기억력, 상상력, 사고력, 분석력, 종합력, 비교력, 평가력, 판단력, 추리력, 논리력, 반성력, 결정력 등등..

내가 하는,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의 원천을 지혜라 한다고.


본래의, 불변의, 원천(源泉)적 능력이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더(加)해 지고, 덜(減)해지지 않고, 본원에서는 변하지도 않지만,

현현(顯現)되는 능력은 정신이 스스로 계발해서 쓰기 여하에 달려 있다.

고로, 남이 충고나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대신하여 남의 지혜를 계발헤 주고 받거나, 감소케 하고 감소당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비유하자면, 동굴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비추는 등불(정신)의 빛(지혜)과 같아서, 그 등불을 쓰는 사람이 쓰기 여하에 따라서 비추어져서 알고 쓸 수 있는 보물이 찾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고로 지혜를 계발해서 쓰려면,

가장 먼저, 내(개인의 두뇌 속 정신)가 지혜라는 빛을 쓰는 등불과 같다는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잠 들면 등불이 꺼짐과 같고, 잠 에서 깨면 켜 짐과 같다고.

등불로 빛의 강약과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내 기능이고 역할이라고.


다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열거와 분류별 종합을 해 보자.

1.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감각신경을 움직여서 관찰(정보획득)을 해 보자. (예 : 눈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서)

2.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운동신경을 움직여서 (의식을) 실행해 보자.(예 : 손으로 이런 저런 일을 하기)

3.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언제, 어느 때를 기억해 내어서 보자.(예 : 초등학교 졸업식 장면을 추억하기)

4.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내일, 어디서, 무엇을 할지를 상상해 보자.(예 : 내일 몇시에.......거쳐서 병원에 가서...를 상상해 보기)   

5.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앞으로 어떻겟 살아 갈 것인가 여러가지 구상을 해 보자.(예 : 법관, 공무원, 군인, 농사꾼...)

6. 두뇌에다 질문을 걸어서 "그 사람을 그리워(또는 미워) 하면 무슨 효과가 발생하나?" 대답을 요구해 보자.

7. 두뇌에다 명령을 하여 "백해무익한 마음은 께끗이 청소하자"고 해 보자.

8, 두뇌에다 질문과 명령을 섞어 가면서 이런 저런 사고(思考)를 형성해 보자.

9, 두뇌에다 말을 걸어서 "내 자신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대답을 들어 보는 문답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처럼 해 보자.

10,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내 아니라고 부정(否定)하기를 끝까지 하고, 더 이상 부정할 것이 없을 때, 지금까지 모든 걸 내 아니라고 부정하던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보자. (있기는 있는데, 찾아지지 않는구나...바로 찾는 내가 내 이구나...깨닫기 까지)

11. 희망을 만들기, 희망을 스스로 버리기를 해 보자.

12. 누군가를 나쁘다고 말해 보고, 무언가를 좋다고 말해 보자, 그리고는 그걸 버리기를 해 보자.

13, 내를 무엇이, 왜 맍들었을까 질문하고, 내 스스로 납득이 되겠금 추리를 해보자.

14. 내게 삶을 도우라는, 운전하라는 명령을 누가(무엇이) 부여해 놓았을끼?

15. 우주란, 시간과 공간은, 만물의 시작은...등등의 말을 해 놓고 두뇌 속에서 그 답을 만들어 보자.

이하 무궁무진하므로 생략하련다.


이런 거의 무진장에 가까운 능력을 제대로 계발하여 쓰지 못함을 우매(愚昧)라 한다.

등불(정신)이 빛(지혜)을 제대로 밝히지(明) 못 하여, 어둑컴컴한 새벽같은 상태라는 비유로 우매라 한다.

현명한 정신, 우매한 정신이 다른 게 아니고, 본래의 실상으 ㄴ같지만, 단지 입고 있는 옷이 밝고 화려한 빛이냐, 어둑칙칙하냐의 차외와

같을 뿐 이다. (고로, 우매한 옷의 안 에는 현명한 잠재력이 계발해 쓰라고 대기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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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유(自由 = 내 스스로 말미암아)와 유자(由自 = 이유가 내를...)2020. 2. 29.

자유(自由), 글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내 스스로(自) 말미암아(由)"이지만,

쉽게 풀이하자면 "내 스스로 만드는 이유, 구실, 의도, 목적등등.."라는 뜻 이다.

내가, 이유등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지배한다는......


유자(由自), 통상적인 용어기 아니라, 위의 자유와 상반되는 뜻으로,

"이유, 구실, 의욕, 의도, 목적 등등이 내를 지배하는 것 처럼" 이란 뜻 이다.

이유가 내를 (사실상)지배한다는. 내가 이유에 지배당하면서 그런 줄 모르는 경우이다.


예컨대, 자살폭탄 공격에 나서는 사람의 정신이,

생생한 각성(生覺, 自覺) 상태에서, 자주적으로 이유와 목적을 만들어서 그걸 실행, 실현하는 경우라면 자유(자신의 이유)라 하고,

제가 알게 된 이유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정신 상태를 유자(이유에 종속적인 자신)라 한다는 뜻 이다.

대부분의 자살폭탄 공격자는 확신범적 자유에 빠진, 실제로는 그 자유에 지배당하는 유자(由自, 자유의 자식같은)에 불과하다.


정상적, 합리적인 정신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고집불통에 빠진 사람에게 물어 보라.

그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한다고 할까, 그 어떤 이유도, 목적도 없이 "무조건 내 하고싶은대로(그걸 자유라고) 할꺼야" 할까? 


용어나 풀이가 불완전 하여 이해하기 곤란하더라도, 대충 그런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는 이해되리라. 

자유와 유자의 사이에 "자유 같은 유자"라 할만 한 것이 있으니 바로 "자의(恣意)"이다.

마음(意)이긴 한데, 내 자유의 산물인 내 마음(自意)이 아니라, 두뇌 속에 멋대로 형성된 -경험적 습성과 학습의 소산인- 만든 자 불명의 마음(意)이 사실상 주인 노릇을 하는 경우이다. (일종의 방자한 마음이다) 


확고한 자각(自覺)으로 본분 수행을 위하여 구사하는 내 스스로의 합목적적인  자유를 진정한 [자유]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마음대로할 자유"는, 진정한 [자유]와는 정반대인 사이비 자유라 해야 옳다.

그래서 "(사이비)자유로 부터의 (내) 자유"니, "(사이비) 자유에 대한 (내) 자유"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 이다.


이 구별만 헷갈리지 않게 할 수 있으면, 그래야만 진실한 자유를 누리게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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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執着)하기와 내려 놓기(放下)를 할 줄 알려면.

집착(執着)하기와 내려 놓기(放下)를 할 줄 알려면.

집착(執着)하기와 내려 놓기(放下)를 할 줄 알려면.
2021. 5. 2.

사랍들이 더러 하는 말,

"마음을 단단히 다잡아라",
"마음을 내려 놓아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 뜻을 알기나 할까?
그 뜻을 모르는 줄을 알기나 할까?

마음이 마음이지,
단단히 다잡는게 단단히 다잡는거지,
마음을 내려 놓는게 내려 놓는거지...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마음이란 두뇌 속 어떤 정보(識 =기억이건, 상상이건, 직접 체험한 것 이건, 들은 것에 불과하건)에 부가되어 있는
비교,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언어 일체를 지칭한다.
그 무엇(識)에 부가되어 있는 크다는, 좋다는, 옳다는, 취하자는, 결정하자는 등등의 말이 모두 마음이다.

 집착(執着)이라 함은, 그 어떤 정보에 부가되어 있는 -위에 열거해 놓은- 마음(意)을 붙이기(着), 떼기(斷), 내려놓기(放下), 버리기(棄)를 할 수 있고, 해야 할 자(즉, 그 사람의 정신인 내 자신)가,
그 마음을 내 스스로 만든 내 마음이라고 오인하거나, 심지어는 내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상태를 잡음(執)이라고 하고,
그 잡음(執)의 결과로, 그 것이 마치 그(정신) 자신에게 착 달라 붙은(着) 것 처럼 된 환상적인 상태를 지칭한다.
 
예컨대, 누군가를 좋아하여 만나고 싶다거나, 싫어하여 꼴도 보기싫다 하는 마음(意)이 있을 때,
두뇌 속의 "그 누군가(識)"에 부가되어 있는 그 마음을 내 자신이 다루기 여하에 따라서 그 힘(?)이 정해 진다.

 그 기억이나 상상 자체는 정신이 스스로 직접 다스릴 수가 없지만,
그 것에 어떤 마음(意)을 만들어서 연결하건, 연결되어 있던 마음을 고치거나 바꾸어서 연결하건, 그 연결을 끊어 버리건 하는 일은 내가 하려면 무제한으로 가능하다.
단지 내 스스로 못 한다, 할 수 없다, 해도 안 된다고 하지만 않으면...  


좋아할 필요가 없다,

필요없는 것(사람)을 좋아하면 부작용, 역효과가 나기 쉽다 하고 마음 만드는 것도 내 자유이고,

좋은 걸 어떡해, 아무리 백해무익이라도 좋은데 어쩌라고...하면서 마음을 잡고 있기도 내 자유이지만, 과연 진정한 자유일까?.

 
나빠, 싫어, 미워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나빠, 싫어, 미워) 하니까 자기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불편이나 역효율이 생기는지 등을 검토, 확인하여
무해유익한 방향으로 마음을 다룰 수도 있고,
미운걸, 미워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 죽으리꼬!? 하면서 집착에 빠질 수도 있다.
 

"(그 인간, 생각만 나도 구역질 난다, 더럽다 더러워 툇, 툇" 하는 사람은 집착의 전형이다.

그런 다음에는 "미워할 가치조차 없다, 미워하면 내 인생에 백해무익이다" 하고 확인, 선언, 다짐함이 내려 놓음(放下)이다.

 

마음을 잡는 일은 잡는 줄도 모르고 잡으니 사실상 잡는다기 보다는 잡힘에 더 가깝다.
좋아하는 마음을, 또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가 잡을까 말까를 주체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알려지자 마자 번개처럼 내가 그 마음에 달라 붙는지, 그 마음이 내게 달라 붙는지 모를 지경이니까.

 
잡을 줄 알아야 잡지 않을 줄도 알고, 잡은 걸 놓을 줄도 알 수가 있다.
스스로 잡는 줄도 모르고, 사실상 잡힌듯 상테로선 안 잡기도, 잡은 걸 놓기도 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은 현명한 정신만이 할 수가 있다.


좋아해서 무익 유해하고, 나쁘다(싫어, 미워)여겨서 무익 유해한 마음을 가지다니, 내가 비보인가!?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지만 우매한 상태(바보)로는 누구도 못 한다.
달리 바보인가, 바보가 아닐 수 있는데도 바보짓을 하는 줄 모르니 바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