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希修 April 2018 - Apr 2020 命理學 공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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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20 April 2018  · Shared with Public

< 命理學 공부 이야기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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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평생토록 끊이지도 변하지도 않고 이어져온 관심/호기심 분야가 바로 '영성'인데, 11~12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세계에서 3차원도 완벽히 이해 못 하는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온갖 착각을 일으키는 왜곡된 감각을 갖고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는 감히 기대도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인.간.끼.리. 상대할 때는 서로의 공통분모인 이성과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 다만 혼자 놀 때는 이 이상 재밌고 이 이상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발견 못 했을 뿐. 그러나, again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결국 모든 것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일 뿐이기에 "아무 것도 100% 믿지 않고 그 무엇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가 신조.


 (드루킹 사건으로 "옴마니파드메훔"과 송하비결 비웃는 얘기들이 요즘 페북에 자주 보이는데, "옴마니파드메훔"과 송하비결은 비웃음의 대상이고 불경, 기독경과 "내 탓이오" 기도문은 존중의 대상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음. 교리의 수준 차이라는 것이 물론 있지만 이 판단도 상대적일 뿐. '진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다수결'로 결정될 일 역시 아니고.) 


하여간 기독교, 불교, 힌두교, 도가철학과 뉴에이지 영성까지 표면만 살짝 훑고 결국은 한 달 전 명리학에 입문. (물론 명리학뿐 아니라 모든 초자연적 현상들에 대해 어릴 때부터 관심은 늘 다분했음.) 서당개도 3년은 되어야 풍월을 읊는다는데 명리학 알파벳도 아직 마스터 못 한 단계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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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과 종교가 "너 자신부터 제대로 알라"고 가르치지만 이게 쉽지가 않은 바, 그래서 주위의 객관적인 피드백이 필요한데, 내게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 아무리 정직 정확하고자 해도 그들 역시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 게다가 각자 자신의 감정/입장에 의해 덧칠까지 된 견해일 뿐. 


그래서 난 일단은 사주라는 것을 '삶이라는 집을 지어올리기 위한 토대이며, 남탓하기 전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비춰보는 거울'로 생각하기로. 마치 건강관리를 위해 혈액검사 결과를 참고자료로 삼듯이. 그러나 명리학 역시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왜곡된 감각으로 만든 이론틀인지라 100% '맞는' 것도 미래까지 세세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며, 이 거울의 어느 부분에 어떤 색깔의 때가 묻어 있고 어느 표면이 어느 만큼 휘어 있는지도 우리의 이성과 감각으로 알 수 없을 것임을 기억하고자 함. (명리학이 '맞지' 않는 이유를 분석한 책을 먼저 읽은 이유.) 현재 내가 발견하는, 명리학의 또 다른 효용으로는, '타인을 자신만의 잣대로 판단/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 못 하지만, 명리학을 공부하면 나의 가치관/취향에 근거하여 상대를 보기보다 '저 사람은 어떤 모양의 그릇을 타고 났기에 저런 언행이 나오는가?'에 관심을 갖게 되며, 이건 다시 말해 '판단'/'평가'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노력/집중하게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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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명리학의 철학적 바탕이며 한의학을 비롯 중국 문화 제반의 척추라고 할 수 있는 음양오행을 보다 보니, 오행간의 상호작용이 마치 인간관계나 정치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특히 '合'이라는 것도 결국 그 이면에선  하나의 '剋' 작용과 또 다른 '剋' 작용의 만남일 뿐이라는 점 (지금 내가 보는 책에선 그렇게 설명) 등이 너무 재밌음. 즉, 음과 양은 늘 서로 꼬여서 존재하기에 동전의 앞면-뒷면같은 구분조차 사실상 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자가 반복한 얘기였는데, 삶 역시 이분법적 사고로는 온전한 이해가 불가하며, 合이든 剋이든 刑沖破害든 변화의 원동력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그 근원 철학이 너무 재밌음. 결국 '변화' 자체가 '살아 있음'의 본질이며 그렇기에 '완벽한 균형'이라는 것은 영원히 도달 못 할 '추구의 대상'일 뿐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인간만이 삶을 '변화과정' 아닌 '정지사진'으로 파악, 집착하면서 '좋고 싫음'만 생각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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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Jumi Yoon

타고난 선생의 피는 속일수가 없소~~ ㅋㅋㅋ 좋은건 혼자만 간직하지 못하고 꼭 설파해야 직성풀리는 본성. 영업이사도 벌써 달았을 능력인데... 아깝기도 해. 언니~ 도에 경지에 이르는 그날까지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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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타고난 그릇이 접시라서 담고 지낼 수 있는 용량이 모기눈물만큼인지라, ㅎㅎ.. 암튼 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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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en Kim

재미지죠. 나중에 실력이 늘으시면 더 놀라운 일들이 많을겁니다. 한 가족을 살펴보면 사주팔자도 대물림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아시면 더 놀라실거에요. 부모와 자식사이에 내려오거든요. 저도 저희 집 명식 보고 되게 놀랐었는데요, 이게 저희 집만 그런게 아니더라구요. 한집안에 공통적인 코드가 있습니다. ㅋㅋ 통계로 나온 결과다보니 분명 유전적인 면도 녹아들어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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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명리학의 세계로 전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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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en Kim

Hee Kim 누가보면 제가 무슨 되게 도사같이 보이겠어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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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wan Lee

옛날 과학이죠, 오로지 인간의 천연 sensor 에 의존해서 자연을 설명하려고 했었을때 말이죠. 열심히 배우시고 다만 신비주의에는 빠지지 마시고, 물론 그러기엔 너무 이치를 많이 아시니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담에 재미나게 이야기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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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2 > 4주8자 분석은 이를 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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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는 집을 자알 지어올리기 위해서, 내게 주어진 땅의 지반을 분석하는 일. 집을 지으면서 '이 재료를 쓰니 잘 안 올라가더라' 등의 시행착오를 통해서도 그 지반의 성격을 물론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될 것이나, 다양한 분석 방법을 활용, 참고해서 나쁠 것 또한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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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日干) 포함 8명이 뛰는 운동경기 (삶)에서 우리 팀원의 성격, 기량, 서로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평가를 '타인'으로부터 들어보는 일. 그 '타인'은 바로, 살아오는 동안 수십억 수백억 명의 삶을 관찰한 1,000살쯤 되는 할아버지=명리학. 할아버지 말씀 스타일이 난해하여 10명이 통역하면 10명 모두 각자 다르게 통역한다는 것이 난점이고, 연세도 많으셔서 사고방식이 '다소' 고루하시니 "이 여자는 성격이 너무 강해서 좋은 아내감이 아니"라고 하시면 '아, 이 여자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려면 아내를 지배하려 들지 말고 파트너/동업자 대우를 해줘야 하겠구나'라고 해석하는 센스가 필요. 1,000살 드신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지금 남녀차별하십니까?"라고 따지는 건 '불손해서 잘못된 행동'이라기보다 그저 '미련한 짓'. 어차피 농부가 똑같은 씨앗을 똑같이 뿌려도 옥토는 싹을 틔울 것이나 자갈밭이나 가시덤불은 길러내지 못하는 것.


명리학 할아버지가 1,000여 년에 걸쳐 관찰 축적한 데이터와 그로부터 추출해낸 패턴을 어떻게 소화 활용하느냐도 결국 각자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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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 공부를 해서 좋은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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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행 모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니, 나와 같은 일간을 보면 동지의식이 느껴져서 좋고, 나와 다른 일간을 보면 '이 사람과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 서로에게 이러저러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즉 상대를 내 취향에 의해 재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리고 그 상대와 건설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법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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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가 타고난 결함/결핍을 8글자를 통해 보게 되고, 그 결함/결핍이 그 당사자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게 될지 상상하게 되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최소한 연민은 갖게 되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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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실은 외부 아닌 내 자신으로부터 왔음을, 그러므로 남 탓/원망할 시간, 에너지로 내 자신의 관점, 태도, 습관의 교정에 집중해야 함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어서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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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을 해주어 좋네" "을 해서 나쁘네" 운운하지만 그건 단기적인 평가일 뿐, 장기적으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단기적인 작용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생'과 '극'이 본질적으로 전혀 별개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동전의 앞뒷면일 뿐임도 알게 해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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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3: 나나 잘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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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 즈음하여 역을 공부하면 큰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공자가 말했다는데, 자기 주제파악에 참고하여 큰 실수 예방하려면 (정확도는 50%라고 일단 치고서) 2~30대쯤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는. (봐주는 사람이 아무리 '용하다' 한들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라면 100% 정직하게 말해주기 어려움. 확실히 맞으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욕먹을 각오를 하겠는지? 결국 주제파악도 실천/수행도 오직 본인만 할 수 있는 일. 누군가 아무리 자상하게 일러줘도 어차피 자기 그릇의 크기만큼밖에 할 수 없는 일.) 주제파악 전혀 안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살아올 수 있었음에, 주어지고 허락되어온 것들에, 늘 곁에 있는 인연과 만난 공부에 감사할 뿐. 芻拘 (풀로 만든 강아지)같은 생명을 둘이나 데려와 놓았으니 (배짱도 좋지) 더구나 겸허해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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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4: 삶은 파도타기(surf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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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또는 '지혜로운'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오염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배우자의 불륜을 알고도 직시가 두려워 모른 척 한다든가, 아니면 권모술수, 편법, 비굴함 등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든가 그런 맥락에서 주로 쓰이더라는.) 정말로 현명하게 지혜롭게 사는 건 이론적으로는 사실 무척 '단순'한 것 같음. 즉, (a) 현실개선을 위한 노력은 노력대로 하더라도 '상황이 더 나빴을 수도 있었음 (could have been worse)'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우선 갖는 것, (b) 불필요한 뻘짓하다 오히려 문제만 자초하는 꼴은 되지 않는 것, (c) 복을 짓지는 못 할 망정 스스로 굴러 들어오는 복마저 걷어차지 않는 것 (나를 아껴 주고 도와 주는 사람의 시간/노력/마음을 귀하게 여길 것). 그런데 이 '단순'한 세 가지가 정작 실천은 무척 어려움. 나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남들에겐 다 보여도 내 자신에겐 절대 안 보이는 법이고, 누군가 아무리 공들여 설명해 줘도 내게는 안 와닿기에. (거북이가 물고기에게 육지동물 얘기를 해 준다고 해서 물고기가 그 모습을 실제로 자기 머리 속에서 그려 낼 수 있는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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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 자신에게 정직하게 산다는 것과 (2) 자신을 극복한다는 것 사이의 딜레마에 놓이게 되는데.. 자신의 타고난 그릇의 모양새와 크기 고대로 살다 보면 자신의 어리석음/한계로 인한 시련을 오롯이 겪게 될 테고 (그 시련은,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 스스로 창조하거나 끌어당기는 것. 대개의 인간들은 주위 사람 탓만 하지만.), 생겨난 그릇을 이제 와 바꾸기란 초인적인 자기 부정/제어를 요하는 일이고.. 어쨌거나 대다수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고생스러운 일이니 '시련'이라 불리는 것일 텐데, 그거 피하자고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면서 겉으론 좀 순탄할 수 있다 해도 내적으로까지 정말 만족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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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ㄱ) 일단은 내가 타고난 그릇을 잘 알아야 하고, (ㄴ) 1과 2 사이 어느 지점 즈음에서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어려움의 '양'이 아닌 '종류'에 대한 선택. 1~2 사이 어느 지점을 선택하든 어려움의 총량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어려움/기회비용을 기꺼이 선택하고 껴안는 '용기'가 필요. '마음의 평화'라는 건, 기회비용을 껴안는 그 용기를 내고 스스로 불평불만을 멈출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듯), (ㄷ) 그 후엔 그 목표 균형점에 이르고 또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끊임없이 갱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듯 - 마치 파도타기처럼.

타인/환경/세상을 내 뜻대로 바꾸기란 불가능하므로, 남 비난/원망할 시간/에너지까지 살뜰히 긁어모아 (파도타기에서 바다 탓을 한다면 바보짓일 뿐),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만 집중해야 하는 듯.

'세상 모든 일은 일어날 만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내가 바라는 일 또한 일어날 만해지면 일어날 것이다'라는 '대자연/우주에 대한 신뢰' (이것이 바로 '無心'/'無爲'라고 나는 생각한다)의 태도를 갖고서 말이다. 그러니 모든 건 결국, 항상, 언제나, '니 자신부터 제대로 파악하라!'로 돌아오는 듯. 이게 안 되면 아무 것도 근본적인 해결/개선이 안 되는 것이고, 이 문제만큼은 그 누구도 도와 줄 방도가 도무지 없는 것.. 이 과제에 있어 명리학만큼 도움되는 것이 또 있을런지..

무위 [ 無爲 ] 도가사상의 근본개념의 하나. 도가사상에서는 일체 만물을 생성ㆍ소멸시키면서 그 자신은 생멸을 초월한 초감각적 실재나 천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도>의 존재방식을 체득한다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데, 그 <도>의 존재방식을 나타내는 것이 <무위>라는 개념이다. <무위>라는 것은 인위의 부정을 의미하는데,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인간적 영위를 <위(僞)>로서 부정한 것에, 천지자연의 이법에 그대로 따르는 참된 <위(爲)>를 실현하는 것이며, 정확하게는 <무위의 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위 [無爲]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무위 [ 無爲 ] (1) 중국 철학에서 주로 도가(道家)가 제창한 인간의 이상적(理想的)인 행위.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는다. 유가(儒家)는 목적 추구의 의식적 행위인 유위(有爲)를 제창했으나, 도가는 유위를 인간의 후천적인 위선(僞善)ㆍ미망(迷妄)이라 하여 이를 부정하는 무위를 제창했다. 또 역설적으로 ‘무위에서야말로 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뒤 도가만이 아니라 유가도 무위를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적인 자연행위, 완성적 행위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중세 예술론의 근본개념이 되었다. (2) 불교에서, 여러 가지 원인ㆍ인연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닌 존재(asam skrta). 시간적인 생멸변화(生滅變化)를 초월하는 상주(常住)ㆍ절대의 진실로,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으로도 사용된다. 무위는 생멸 변화가 없는 모든 법의 진실체를 설명하는 말로 위(爲)는 위작(僞作)ㆍ조작(造作)이란 뜻이다. 인연에 의한 위작ㆍ조작을 떠나서 생주이멸의 변천이 없는 진리. 열반ㆍ진여ㆍ법성ㆍ실상과 같은 뜻이다. 《구사론(俱舍論)》에는 허공(虛空)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의 3무위를 말하나 그 분류방법은 경전에 따라 다양하다. 반대는 유위(有爲)이다. 선종(禪宗)에서 사용되는 의미는 아무런 행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행위에 있어 물고기가 물속을 가듯이, 새가 창공을 날듯이 걸림이 없는 행동을 말한다. 무위가 가진 수행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지식과 욕심에 따라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오히려 세상에 대위(大僞)ㆍ대란(大亂)을 가져오게 되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무리하지 말고 자연법칙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위야말로 인간의 이상적인 행위이며, 무위에서 완성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위 [無爲] (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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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命理學 공부 이야기 #5: 명리학의 가치와 운명의 '극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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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업을 쌓은 '나'와 현세에서 이 글을 쓰고있는 '나'는 과연 동일한 존재인가?"라는 문제는, 범위 한정을 위해 이 글에서는 일단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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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모두 '각자가 타고난 초기 조건과 패턴이 분명 있고, 4주8자는 이 조건/패턴을 상징하는 기호 체계이며, 이 패턴이 삶의 각 영역/층위에서 프랙탈(fractal)처럼 반복 발현된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할 거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1) 그럼 나는 왜 이런 조건/패턴을 타고 났고, (2) 극복/변화 가능한가?'가 될 터.


(1)에 대한 답으로 아마 유신론적 종교들에선 '신의 뜻', 불교에선 '업', 힌두교의 不二論 혹은 非二元論 (Non-Dualism) 학파에서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듯. 인간이 이에 대한 '정답'을 알아낼 방법은 없으니 (2)로 넘어가자면, 극복/변화도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을 나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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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극복'/'변화'는, 우리가 현세의 삶에서 이런 조건/패턴을 타고난 이유가 된 '그 무엇'의 힘을 능가하는 정도의 노력이 쌓여야만 가능할 듯. 예를 들어 업/윤회 이론을 따르자면, 나의 현세 조건을 만들어낸, 전생에 걸쳐 켜켜이 쌓인 업이, 짧은 기간의 노력만으로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수십년도 '짧은 시간'에 불과할 수 있음) 180도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 더 많은 전생을 가진 사람의 더 오래된 업일수록, 소멸이나 방향전환도 그만큼 더 힘들 수밖에 없을 테고. 하지만 현세의 초기 조건 결정에 전생의 업이 작용했다면, 나의 현재 역시 미래/내세에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일관된 논리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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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 사람이 살면서 행하고 가졌던 모든 생각, 감정, 말, 행동은 그 사람의 얼굴, 음성, 에너지장 ('아우라'라고도 부르는) 그리고 우주에 흔적을 남긴다고 나는 본다. 바로 그렇기에 사주도 관상도 타당성과 효용을 갖는 것이고 동시에 "사주, 관상, 수상, 족상보다 心相"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며, 업, 윤회, 아카식 레코드, 愼獨, 끌어당김의 법칙 (Law of Attraction) 등등의 일맥상통하는 개념들이 나온 것이 아닐지. 그러므로, 내가 타고난 조건/패턴의 얼마만큼이 현세에서 극복/변화 가능한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결국은 바위도 뚫는다"는 말 역시 잊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다만 그 바위를 움푹 패이게는 할 수 있어도 현세에서 완전히 뚫리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으니, 노력은 노력대로 하되 그 노력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私心/欲心 가라앉힌 빈 마음' (無心, 無爲)이 필요할 듯. 운명의 '극복'/'개척'은 어쩌면, 타고난 조건/패턴을 바꿔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초기 조건/패턴을 받아들이고 모든 불평을 그만두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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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라는 것은 현실에서 가시화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아우르는 기호 체계이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현실에서 상징을 찾아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도 동일한 상징이 미래에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발현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래서 "지난 일은 맞혀도 앞 일은 못 맞힌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각 현상/작용에 대한 이론이 그 디테일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야말로 십인십색)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기며, 명리학 이론 자체의 태생적 한계 (『비의 이론 사주 궁합의 비밀을 밝힌다』 라는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로 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면도 있는 듯.


沖이니 凶神이니 하는 것들도 대개는 '안 좋다'고 보지만, 이런 것들도 좋게 작용하는 경우는 吉神이라 불리는 것들보다 오히려 더 큰 福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인간이 대자연을 이해하고자 만든 이론이 음양오행이고

이걸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 명리학인데,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이론이 완벽할 수 있겠나.


노벨상 수상한 경제학 박사라고 해서 늘 100% 정확한 경제전망을 내놓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 전문의가 홍길동을 상담하여 그의 심리/의식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같은 기간동안 홍길동을 알아온 가족/친구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보다 미세하게 높을 뿐이건만, 오로지 명리학에 대해서만 '100% 정확도'를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체가 나는 오히려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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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沖이나 凶神이 '좋은' 결과가 되려는지 '나쁜' 결과가 되려는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미래 예측을 위해 명리학을 과신/맹신할 게 아니라

자신이 받은 이승의 삶과 그 속에 들어있는 시련을 통해 성찰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그 '숙제'를 이해하기 위한 수양의 도구로 명리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지.


예를 들어,


내 사주에 傷官이 있다면 내가 평소에 타인을 대할 때 얼마만큼의 존중/신중을 갖고 대하는지를 늘 유념한다든가,


내게 木이 없다면 木의 마음인 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든가,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인은 일부나마 타인 아닌 내 자신/운명 속에 있으니

남 원망을 그만둔다든가 하는 식으로. (개인적인 원한을 품지 말라는 것일 뿐, 범죄행위를 당하고도 신고조차 하지 말고 자책을 하라는 얘기는 물론 아님.)


매순간 새로 깨어나는 명징한 의식과 사사로움 없는 마음이, 부적, 옷색깔, 풍수지리 등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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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종교나 철학은 '이상적인 인간형' 하나 (예수, 석가, 공자 등)를 정해 놓고서 무조건 그 롤모델을 닮으라고 말하는데 비해,


명리학은 고유한 개개인이 자신의 타고난 모습과 결함/결핍/한계를 직시하고서 거기서부터 한 걸음씩 시작하도록 도와 주며, 바로 여기에 명리학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건강관리를 위해 혈액검사 결과를 참고하듯 (심장병에 취약한 체질이라는 분석이 심장병에 걸릴 거라는 '예언'은 아닌 것) 그런 참고자료 역할 이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묘수'를 명리학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대자연이 내게 준 숙제를 따돌리겠다는 교만이고 욕심일 듯.


(기본적으로 나는, 한 사람이 평생 겪어야 할 어려움의 '양'은 정해져 있지 않나 싶다. 어려움을 겪는 방법의 '종류'는 변화가 가능해도. 예를 들어 "네 성격 바꾸지 않으면 이혼 가능성이 크다"고 누가 한들, 타고난 성격을 바꾸기도 어렵거니와, 천성을 바꾸는 노력에 들어가는 수고와, 이혼 때문에 겪어야할 스트레스는, 그 크기가 결국 서로 엇비슷하지 않겠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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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과 우주의 탐구에 헌신한 모든 분들의 노력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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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공부 이야기 #6: 명리학은 '삶의 해결사'가 아니라 '이승에서의 숙제 해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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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의 세포 수는 37개조라고 한다. 각 세포들이 조직과 장기를 이루어 세포, 조직, 장기 등의 서로 다른 차원에서 서로 다른 톱니바퀴로서 딱딱 아귀가 맞게 돌아가야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인체가 이렇게 복잡하고 신비로우니 임신 기간동안엔 당연히 태아의 건강이 최우선 관심사였고, 한 사람이 '대충 멀쩡하게' 태어나는 자체도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지를 그야말로 뼛속 깊이 느꼈었다


- 매일 매일.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글자 그대로 무수히 많은데, 그것들에 대해 읽다보면 '그래서 어떤 종교들은 이승을 형벌의 장소로 보는 것이지' 이해도 가고, 뉴스에 나올 만한 정도의 사건은 평생 한 번도 안 겪고 가는, 그 정도의 삶도 실은 감사한 일이지 싶다. 마치 '대충 멀쩡하게' 태어나는 것이 그 자체로 이미 기적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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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기적에 감사 못 하고 "안 예쁜" 외모나 "나쁜" 머리에 대해 한탄하는 엄마들을 보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는데, 평범 이상의 삶을 살면서도 자기 삶에 감사하지 못 하고 불평뿐인 사람 (자기 비하는 겸손이 아니고 오만이다), 또 자기 손으로 선택한 배우자에 대해 늘 험담/비아냥만 하는 사람을 볼 때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단적인 예를 들어, 고아는 그 사주에 부모복 없다 나오고 그 고아의 부모 사주를 보면 또 자식과 인연이 없다거나 혹은 젊어 질병/사고를 조심해야한다 나오고, 이런 식으로 마치 퍼즐이라도 맞추듯 그렇게 서로 맞아떨어지게 만나는 경우가 많음을 보면, 배우자와의 궁합까지 보지 않고 본인 사주만으로도 현재의 혹은 지나간 결혼생활까지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음을 보면, 모든 원망, 한탄, 불평은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건만.


"각자 자기 업에 꼭 들어맞는 부모, 배우자, 자식, 수명, 재물 복 등을 자기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여 이승에 오는 것이고, 그 조합을 겪어내는 것이 이승에서의 내 '숙제'이니, 그러므로 남 탓 말고 용서해야하는 것"이라는 가설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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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주팔자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a) 건강관리에 무관심하게 살 경우 어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보여주는 혈액검사같은 것;


(b) 한 개인이 올라탄 '운명'이라는 이름의 기차가 가진 스펙과 관성에 대한 연역적 분석;


(c) 돈, 명예, 학업, 재능, 건강, 부모, 배우자, 자식, 친구/동료 등 내 삶의 무수한 톱니바퀴들이 서로 아귀가 맞는지에 대한 분석 (사주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톱니바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 하면 가난하게 되고, '돈'이라는 톱니바퀴가 하나도 없어도 다른 모든 톱니바퀴들이 정확히 들어맞게 돌아가면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게 살고 그런 것임. 어떤 요소들이 8자를 채우고 있는지 그 각각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각 요소들 간의 '관계'와 '전체적인 어울림'이 중요한 것임);


(d) 나무의 잎 모양만 보고서도 그 나무가 어떤 기후에서 자라야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듯이 그렇게 한 인간이라는 '자연물'의 여러 측면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상징/기호들의 체계;


(e) 이승에서의 내 '숙제'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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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간은 자연물이되 자연법칙을 100% 따르지는 않는 변칙적인 존재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예외'/'문제'들과 '경이로움'의 원천이다.


또 명리학 자체의 이론적 한계도 있을 테니 사주 분석은 70% 정도 맞는다고 생각해야하는데, 어느 부분이 '맞는' 70%에 속하고 어느 부분이 '안 맞는'/'잠복중인' 30%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이 상징/기호 체계를 그 70%나마 누가 정확히 해독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 이런 난점들이 있으니 맹신해서는 안 되고 신중해야하는 것. (30%라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엄청 큰 숫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 세수하면서 거울에 자기 얼굴 비추어 보듯 그렇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 수양도구로서는 다른 어떤 종교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일반 종교나 철학은 '이상적인 인간형' 하나 (예수, 석가, 공자 등)를 정해놓고서 무조건 그 롤모델을 닮으라고 말하는데 비해, 명리학은 일단 자신의 타고난 모습과 결함/결핍/한계를 직시하고 욕심을 비우라고 가르친다. 자신을 정확히 보고 욕심을 비우는 이상의 수양이 있겠는지?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현실과 한계를 일단은 받아들인 후 내 사주의 부족한 부분으로 인한 욕심/갈등/고통은 내 마음의 수양을 통해 다스리겠다"라는 태도로 명리학을 대해야 하늘도 도와주지, "수양 말고 부적같은 손쉬운 방법을 통해 내 사주의 부족함을 기어이 채우겠다"라는 기복신앙적 욕심은 있던 복마저 쫓아내는 '삿됨'( = '우주에 맞장 뜨는 오만/반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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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11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의식/감각으로 뭘 믿든 뭘 무시하든 각자의 자유이긴 하지만, 뭔가를 무시하려면 일관되게 무시하고, 정보를 얻어 혜택을 좀 받고 싶다면 겸허히 존중하고, 둘 중 하나만 제대로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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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겸허하게 존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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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cember 2018  ·< "기운이 크다/강하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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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다 우연히 꼬리로 큰 물고기를 쳐봤자 큰 물고기를 아프게 하지는 못 한다. 하지만 큰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가 작은 물고기를 치는 건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나 아픔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힘이나 사회적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조심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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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힘/덩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것일 때. 흔히 "기가 세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한 예일 수 있겠는데, 이것이 후천적인 의지/노력 혹은 단순히 개성의 문제가 아님을 명리학 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명리학에선 기운이 큰/강한 사람에게 활인업을 하라고 얘기하는데, 기운이 큰/강한 사람은 사고를 치거나 실수를 할 경우에도 결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므로 그 기운을 이왕이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용하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며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본인의 삶자체가 부침심하고 험난해질 수 있다는 것. (삶이란, 다양한 '각도'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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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에 나타나는 기운은 나도 강한 편인데, 남들과 똑같은 '실수'를 해도 그 결과는 좀 더 큰 '피해'가 될 수 있음을 전엔 몰랐었다. 상처받는 쪽의 자존감 문제만은 아닐 수 있음에 대해 둔감했던 것. 겉으로 보기엔 내가 '어깨깡패'도 아니니, 내 승질 더러운 거 인정 않고서 '누구에게나 성격상의 장단점이 있지 않나' 정도로만 합리화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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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큰/강한 기운'이란 건 영어로는 어찌 번역하면 좋을까. 'Big/strong energy'라 하면 신체적인 에너지나 열정이 많다는 의미로 들려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틱낫한 스님도 옆에만 가도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분이니 작거나 약한 기운은 분명 아니지만, 그 온화한 분을 'strong'이라고 표현하는 건 너무 안 어울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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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rd or strong 이 더 와닿아~~ or firm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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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capacity (용량), potential (잠재력), 이런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딱히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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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nal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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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pacity는 뭔가 해낼수 있는 ability로 느껴져. 현실적느낌. 기랑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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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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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기가 쎄게 태어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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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르셨어요? 위장술에 성공한 건가요,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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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라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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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워낙 기가 없이 태어나서...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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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답을 듣고 왜 신이 나는 건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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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나눠드릴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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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리학 하룻강아지의 운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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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관찰한 결과인 음양오행이론을 인간사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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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운까지 고려하면 사주의 조합은 최대 120만여 가지가 나온다 하고 그렇다면 현재 지구상의 최소 6~7천명씩이 동일 사주를 공유한다는 것인데, 주지하다시피 세상 그 어떤 두 사람도 동일한 삶을 살지는 않으니 사주가 삶의 전부를 설명/예측 못 함은 두 말하면 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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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리학이 발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이론적 구멍을 메꾸기 위해 자의적으로 땜질된 부분들도 없지 않고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음. (어느 학문인들 한계가 없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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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간은 '자연물'인 동시에 다른 자연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의식수준이 높을 수. 있.는. 존재라서 (인간의 의식 자체가 氣이고 神),

'운명' ( =내가 올라탄 자동차가 갖고 있는 '케파', 속도, 향하고 있는 방향)도 변화/창조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 ("사주보다 관상, 관상보다 심상"이라는 것도 결국 의식수준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됨.)


다만, 실제로 모든 인간이 '높은 의식'이라는 가능성을 실현하지는 못 하기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이는 결과적으로 소수이고 다수는 그저 자연/운명에 이끌려 다니는 피지배자로서의 성격이 더 강한 삶을 산다고 봄. 아무리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해도 타고난 조건들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전혀 아니고 ('좋은' 것의 효과는 늘리고 '안 좋은' 것의 영향은 줄이는 정도 뿐),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그 의식수준의 가능성조차 타고나는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음. (부모가 알콜중독, 도박, 폭력 등의 온갖 문제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는 자녀들의 경우 뇌 자체가 물리화학적으로 다르다고 뇌과학도 말하는데, 만약 그런 뇌를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라면 그게 바로 '운명개척의 가능성을 타고난 운명'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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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주가 '결코 무시만은 할 수 없는 무언가'임을 이해하는 이들은 크고 작은 결정에 임할 때마다 사주에 의지하려고 하는 습관이 생김.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특정인의 사주를 10명에게 가져가면 10명의 해석이 다 다르다는 사실. (60갑자 각각의 글자가 일종의 기호/부호라서 추출할 수 있는 정보량이 엄청남.)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명의 해석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 않고, 내 사주에 대한 10가지 해석의 집합과 다른 특정인에 대한 10가지 사주 해석의 집합은 성격이 전혀 다르기에 "사주 다 소용 없어!"라고 단순화만도 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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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러므로 내 생각에, 사주 분석의 효용은, 자신을 바로 보고 마음을 비우도록 도와 주는 데에 있는 것 같다는. 가령, 내 꿈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NASA 연구원이 되는 것인데 아무리 공부해도 대학 갈 만한 성적이 도통 안 나오더라, 그래서 사주를 봤더니 공부는 내 길이 아니더라, 이럴 경우, 어차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학자의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좀 수월해진다는 것. 내 아이의 성격이 워낙에 유별난데 사주에도 그렇게 나온다면 "넌 대체 성격이 왜 그 모냥이냐?"라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이 아이와의 관계만 오히려 악화시킬 원망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런 자식의 부모가 된 것도 서로의 운명이 퍼즐처럼 들어맞기 때문. "알고 보면 삶에서 남탓할 일은 별로 없다"라는 것이 명리학과 업이론의 기본 입장. 천주교의 "내 탓이로소이다"도 이래서 나왔나 싶음.)

물론 나의 타고난 성향과 한계같은 큰 틀은 사주를 안 보고 자신을 잘 관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뻔한 현실조차 내 맘에 안 들면 부정하고 시비걸고 싶은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인데, 게다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 남들에게 나를 평가해달라 한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경험이나 나에 대한 감정/이해관계에 바탕하여 나를 평가할 터. 인간의 그런 주관성을 배제했다는 것이 바로 명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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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럼 내 삶의 주인으로 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궁극적으로, "운명 = 내 업으로 인해 이승에서 내가 받은 숙제"라는 자각이 우선인 듯.


'업'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축적된 결과물일 뿐이므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닦아나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닐 테고. 또, 현재 내 삶에서 작용하고 있는 업의 힘을 바꾸거나 새로운 동력을 구축하기까지 얼마만한 노력과 시간 (여러 생의 윤회가 될 수도 있는)이 필요한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노력은 노력대로 하면서 내 노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순응하고 받아들일 밖에. 이런 노력 없이 아무리 '용한' 역학자들 쫓아다녀 봐야 뾰족한 방책같은 건 어차피 없다는 것이 내 생각. (쉽게 피할 수 있다면 그게 '운명'이겠나.)


또 '오행'의 '行' 글자 자체가 '변화'를 의미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길흉'은 어차피 상대적 표면적 판단일 뿐이며, 원리상 길은 흉에서 나오고 흉은 길을 내포하니,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사실 역시, 당장은 안 와닿더라도 늘!!! 명심해야 함. (현재 자신의 불만/스트레스가 되는 '문제'가 알고 보면 더 큰 문제를 막아 주는 '액땜'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부디 기억하시기를. 이래서 기독교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 하고 옛말에도 웃는 얼굴에 복이 온다 하는 게 아닐까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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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주분석이 고등학교 때 하는 적성검사 정도의 참고자료는 될 수 있고, 하나의 이상향에 모든 인간들을 억지로 끼워맞추려 하는 다른 철학들과 달리 명리학은 각 개인을 그만의 고유한 사정 속에서 바라봐 준다는 장점이 있기에, 누구나 한 번쯤 공부할 가치는 있다고 나는 생각. 게다가 돈 내고 상담 받는 이들은 좋은 얘기를 듣고 싶어 하니 업으로 사주풀이를 해 주는 분들 역시 가능한 좋은 쪽으로 말해 주고 싶을 터. 이런 면을 고려하지 못 하고 '긍정적'인 쪽으로만 철썩같이 믿으면 안 보느니만 못 한 결과가 될 수도 있는 일. 게다가 '운명'이라는 것 자체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이기에, '수양' 차원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 몸으로 책임지는 것 이외의 '해결책'이나 '개운법'은 없다고 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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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o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 (Why Life Seems Unfair) - Teal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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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길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난중에 만나면 잘 한번 풀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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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자해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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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명리학 공부까지 하다가 다시 불교로 돌아온 이유.

최고의 개운법이 mindfulness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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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재가 들어와 일간과 합을 할 때 남성인 명주의 마음이 여자문제로 인해 흔들릴 수 있으나, 그걸 '사건'으로 발전시키느냐 아니냐는 엄연히 본인의 선택.

(b) 본인이 사주상 지나치게 신왕/신강할 때 부인의 건강이 약해지거나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명주가 부인에게 잘 하여 해로하는 경우들도 많음.

(c) 번듯한 직장 멀쩡히 다니다 갑자기 때려치고 나와 치킨집을 차린다든가, 본인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혹은 잘난 척 하다 자기 팔자 스스로 볶는다든가 하는 게 상관운인데, 근신 수성하고 '찾아온 기회'도 회의적 시각으로 꼼꼼히 검증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기간 중에도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음.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매사 생각하는 게 좋은 게 결코 아님. 상관이 용신도 아니데 상관운에 '긍정적'으로 사고하면 망상에 빠져 무리하다 망하기 딱 좋음. 불교적 관점에서도 번뇌는 부정적이라고 봐야지 번뇌도 긍정적으로 보면 뭐 하자는 거? 이래서 소위 뉴에이지 영성이 어설픈 것이고, 뉴에이지는 '수행법' 아닌 '진통제'에 불과.)

(d) 어떤 사람이 범죄자가 되기 너무 쉬운 사주라 해도,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본인에게 좋을 수는 결코 없음. 그 성장과정과 환경이 최악이었다는 등의 緣起 조건들을 참작하여 인간적인 연민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사주가 그래서 그렇게 산다"와 "그래서 그렇게 사는 것이 실제로 본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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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뭔가 눈에 띄는 기운이라는 것은 분명 있고

타고난 조건/한계/경향성을 절대 무시도 못 하지만,

본인이 마음 다잡고 신독하며 산다면

팔자나 운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음.


당뇨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를 타고났다 해도 평소 꾸준히 섭생하고 운동하면 당뇨가 병으로 실현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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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게 있는가?라는 주제의 한 시사프로를 명리학 공부 시작 전 본 적이 있었는데,


하는 사업마다 망하는 남성이 "내 생각엔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고, 그 부인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선택을 본인이 해 놓고서 팔자탓 한다"고 하고.


그걸 보면서 '저 두 시각 둘 다 맞을 가능성은 혹 없을까?' 하는 생각이. 근데 명리학 공부 하다 보니, 상반되어 보이는 그 두 시각이 정말 동일 동전의 앞뒷면인지도 모르겠다 싶더라는. 즉, '안 해도 되는 선택을 굳이 하게끔 만드는 그 생각/마음'에 바로 '운명'의 열쇠가 있는 것.


그렇기에, 자기 팔자를 알아도 mindful 하지 못 하면 타고난 가능성의 최저치로 사는 것이고, 자기 팔자를 몰라도 mindful 하면 타고난 가능성의 최고치로 사는 것. 자기 삶에서 가능한 최고치와 최저치는 사주를 보든 안 보든 어차피 안 변하며, '그릇'의 크기/격은 그 명주의 판단력과 사고/행동 방식을 보면 명리학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짐작은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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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도/적중률에 대해 흔히

"사주보다 관상,

관상보다 수상/족상 (손금/발금),

수상/족상보다 심상"이라 하는데

그 말이 맞다 보이고,


다만 '심상'이라는 건 흔히 생각하는 '착함'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마음을 다스리는 mindfulness,

즉 '지혜'의 문제이며,

철학 심리학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식'도 당연히 도움이 될 수 있음.


(생각이나 지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생각/지식이냐가 중요한 것이고 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게다가, '왜 사람마다 서로 다른 건강과 재능으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최저치/최고치를 갖고 태어나는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업과 윤회'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름 바꾸고 어쩌고 하면서 변두리만 간지럽힐 게 아니라 핵심으로 직진하여 업을 닦는 정공법이 최선의 대책. 어떤 문제에 있어서든 당장은 더 '느려' 보이는 '교과서적인' 방법이 사실은 가장 확실하기에, 그러므로 효과 대비해서는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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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fulness가 메인이고

사이드로 명리학 공부를 하시면 물론 더 좋겠지만

둘 다 하시기는 힘들 텐데,


어차피 타인은 인격수양의 측면에서 사주해석 못 해 줍니다.


"애초에 니 그릇이 작아 많이 담을 수도 없으니 그 허영심 버리고 잘난 척 그만 해라" 이런 말을 어떻게 남이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부디 mindfulness라도 공부하시기를.


'능력자'가 하사하는 특혜에 의존하지 마시고,

본인의 身口意를 직접 다스림으로써 본인 福은 본인 손으로 경작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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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묵스님 위빠사나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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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용이 아니라 먹는 목적이라면, 케잌에서 중요한 건 데코레이션보다 원재료의 퀄리티 아니겠나" (20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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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Dying 준비: 업 이해와 명상" (20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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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자체가 '무한대의 어리석음과 무한대의 욕망을 갖고 있는 아귀'라는 데에서 모든 문제가.." (20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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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Sure You Know What You Are Saying, for What and How" (20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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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게 운명 극복/개선의 핵심" (2020.6.8) https://www.facebook.com/keepsurfinglife/posts/1121236154915133?notif_id=1591639660642744&notif_t=feedback_reaction_gene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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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Is Pragmatic, Not Moralistic" (202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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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를 내 스스로 돌보지 않는 한, 난 평생 외롭고 서러울 뿐" (20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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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지옥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말의 의미" (20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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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光年 높이의 산에서 등반중 조난 당했을 때 구출되는 방법"

(2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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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측하는 여러 학문/기술들에 대한 나의 생각"

(20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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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태어나 짐승으로 죽는 것. 최대의 비극이자 공포"

(20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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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to Wake Up and Become Truly Ethical" (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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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식'" (20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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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 Ways to Help One Another" (20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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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인격자'" (20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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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ment You Entirely Give Up Your Own Rational Mind, Anything and Everything Becomes a Superstition Irrespective of the Label" (20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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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화합!을 원한다면 비판!을 잘 하고 또 잘 받아 들여야" (20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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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훤히 보이지만 정작 내 자신에겐 안 보이는 나의 진짜 속마음" (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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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Whoever Discourages Questioning or Critical Thinking Cannot Be Farther from Truth" (20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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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라는 단어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 (20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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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어떤 인간관계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는 그 상대의 '입뻥끗'에 기울이는 섬세함의 수준으로 측정 가능"

(20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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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라는 나이 속에서 이미 자라고 있는 노인의 모습들"

(20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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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Meant Well-Delivered Timely CRITICISM Is Essential to HARMONY, Buddhism Says" (20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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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은 동등하다고 보는 민주주의조차 생각들 사이의 우열은 인정하며, 그 우열을 논리로써 가르자는 게 바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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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다루는 데에 미숙한' 아이들에 대한 서천석 박사님의 글에 내가 추가하고픈 불교적 관점"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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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빈익빈 부익부"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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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ful vs. Unhelpful Path/Teacher"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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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Mindfulness, the Unlucky Might Get Unluckier"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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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의 후회, 참회, 자비"

(20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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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의식 상태와 운명"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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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Honest with Yourself without Believing Your Stories" (20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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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Not Mathematics; Ideals Are Not Formulae" (20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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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불만은 본질적으로 태도의 문제이며 자기 복 갉아먹는 일" (201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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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보다 훨씬 거대한 잠재의식/무의식" (2019.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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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 Love without Attachment" (201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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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fulness : What and Why?" (201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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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ood Communication Is Critical to a Good Relationship or Friendship"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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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tart Living My 'Own' Life Only When I Fully 'Own' Responsibility for My Life" (20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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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You Find Outside Yourself Cannot Be Yours" (2018.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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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가장 큰 도움" (201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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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You Are Before What You Do" (20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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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e Love/Compassion for Any Person Irrespective of Age or Gender" (2018.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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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독특해지고 차별화되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점점 변합니다." (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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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Labels; You Will Be Mislead" (2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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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Your Own Child, Too" (2017.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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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을 예측하는 여러 학문/기술들에 대한 나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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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측하는 기술을 대개 '점성술 占星術'이라 부름.


한 사람이 태어날 당시의 별자리의 배치가 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준다, 라는 동서고금의 공통된 전제에서 출발.

자연의 다섯 가지 기운 (오행)이 역시 자연물인 인간의 흥망성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살피는 것이 사주명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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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한 1년 반 공부했는데..


99% 사주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사주가 50%밖에 안 맞는 사람도 있고.

. 이것은 첫째로는 명리학 자체의 한계. 인간이 불완전한데 인간이 만든 이론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을 터.


(대운까지 고려하면 사주의 조합은 120만여 가지. 그렇다면 현재 나와 동일한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의 수가 이 지구상에 6천 6백 명이나 된다는 것인데, 실제 삶은 마치 얼굴처럼 저마다 다 다르기 마련.) 자세히 들어갈수록 이론도 각양각색이라서, 특정인의 사주를 10명이 풀이하면 그 10개의 풀이가 다 다르게 나온다는 말도 그래서 있는 것.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명의 해석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들도 적지 않고, 내 사주에 대한 10가지 해석의 집합과 다른 특정인에 대한 10가지 사주 해석의 집합은 성격이 전혀 다르기에 "사주 아무 소용 없어!"라고 결론짓기도 무리.) 이런 이론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그래서 '점 占'을 또 따로 쳐서 보충하는 것. (내 생각에 육효나 타로 등의 점은 아마도, 어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현재의 기운을 읽어서 당사자가 궁금해 하는 문제에 이 기운을 적용하여 예측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는. 사주명리는 인생전반의 궤적을 예측하는 데에 비해, 점술은 단기적 미래만을 내다볼 수 있으나 정확도는 더 높을 수도 있음.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운'이라는 것에는 나 자신의 생각/태도가 가장 중요. 물론 자신의 생각/말/행동 습관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나 습관/태도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꾼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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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같은 것이 어떤 사람은 잘 맞고 어떤 사람에겐 잘 안 맞고 하는 둘째 이유는,

근본적으로 미래가 완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 예를 들어, '술취해 정신을 잃은'( =타고난 본능/성향대로 사는) 운전자의 자동차( =삶)가 언덕에서 굴러내려오고 있을 경우, 그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에 근거하여 10분 후 혹은 1시간 후 그 자동차가 어디께에 도달하려는지 짐작이 가능. 이것이 바로 온갖 종류의 '역학 易學'이 존재하는 원리라고 나는 생각. 그러나 운전자가 정신을 차리고 매초 매순간 fully mindful한 생각/말/행동으로써 새로운 업을 짓는다면, 그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를 변화시킬 수 있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출생 순간에 관찰된 자동차 진행 방향+속도에 근거한 미래 예측은 빗나갈 수밖에. 실은 현재의 경험의 질 자체도 경험자의 태도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음. (이렇듯 '운명'은 바뀌는 것이기에, 바로 그래서 운명학을 '바꿀 역'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여 '易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봄.) 물론 '나'라는 운전자가 올라탄 자동차의 진행 방향과 속도는 과거 무수한 전생들로부터의 업인데, 그렇게 쌓인 관성이 하루아침에 180도 바뀔 리는 절대 만무하고, 내가 현재 기울이는 mindful한 노력의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 몇 분, 몇 겁(eon), 혹은 몇 생(rebirths)이 걸리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바로 그렇기에 현재 자신이 올라타고 있는 관성이라도 일단 알아 보기 위해 사주같은 것을 보는 것. (해석의 어느 부분이 맞고 어느 부분이 틀린지 알 수 없다, 라는 위험이 물론 수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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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미래 자체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바로 그래서 부처님도 모든 종류의 점성술을 금지하신 것. 무당도, 점술사도, 역학인도, 모든 종교인들도, 하나같이 자신들은 타인을 '돕기' 위해 그 일을 한다 말하고 아마 대부분은 그것이 '진심'이겠지만,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무관하게 그 누구도 남의 업을 어떻게 해 줄 수 없다, 라는 것이 부처님의 시각. 심지어 부처님은 "나조차도 너를 도와 줄 수 없다.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네 자신의 수행뿐"이라 하셨으며, 부처님이 우리를 돕는 방법은 가르침을 남기신 것뿐. 또, 초기경전을 보면, 운명을 점치는 행위는 악업 중에서도 무거운 악업에 속한다는 사실을 유추 가능.

(e.g., Sutta Nipata Sammāparibbājanīya-sutta, Sutta Nipata Tuvataka-sutta, Dīgha Nikāya Sāmaññaphala Sutta.


그래서 명리학 공부도 기초만 하고서 포기, ㅎ.) 한 사람이 타고난 경향과 살면서 만나게 되는 것들의 결코 적지 않은 부분들이 생년월일시만 갖고도 예측되기에 (명리학 공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종류/양의 정보가 추출 가능),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지 못 하고 남탓/세상탓으로 삶을 허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명리학 공부!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


그러나 우리가 이승으로 가져온 플롯들 사이의 개인차가 왜 이렇게 큰 것인지, 나의 현재와 미래를 개선시켜 나가려면 나의 생각, 말, 행동을 어떻게 개조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교가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 가장 멀고 '뻔해' 보이는 '교과서적인 방법'이 알고 보면 언제나 가장 빠르고 실패위험 가장 작은 '지름길'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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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사람이 없으면 모두 無혹은 空인거죠. 다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이론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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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적지 않은 승려들이 '카르마의 과학'이라는 명분(?)으로 명리학을 팔아 돈벌이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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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3 June 2018 · Shared with Public

< 命理學 Leads to Compas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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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spirituality or philosophy schools have you look at people as a human 'race' or 'species' and demand that everyone should try to take after only one model, e.g., Jesus Christ, Gautama Buddha or Confucius. Since it is too difficult, we end up forgetting about it in everyday life. Instead, we see people through the small window of our own values and interests, sitting in the prison built with the bricks of concepts. They say truth will make you free, but even the people who have extensive and profound knowledge are still in the prison. Their prisons are just bigger (yes, a lot bigger) than those of less knowledgeabl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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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contrast, 命理學 (ming-li-xue) does encourage you to look upon each person as a unique being, and it is supposed to show you what kind of deficiency, imbalance and challenges he has to deal with in life. (Obviously, you should take it as a reference instead of believing/trusting it.) Since you see others in terms of their challenges, not of how well they fit your value system or a cookie cutter like Jesus or Confucius, you can be less biased by your own concepts. You also understand how someone's 'flaws' will 'victimize' himself first before anyone else, thereby being more compassio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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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had misanthropy for the past few years, right or left, religious or anti-religious. I've been just disgusted by human nature and mocked THE presupposition which underlies all kinds of men's endeavor, i.e., humans should prosper. I still think that such an idea is simply our own self-centered wish, which an extraterrestrial being would not see the necessity of. We are all geniuses at complaining and blaming but will never know how to be grateful or content. But, 命理學 helps me with my misanthropy although I'm only in the very beginning stage of learning its alphabet. Contempt, hatred or grudge is another form of attachment, which will keep me from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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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7 September 2019 ·



< 3 Levels of 'Forg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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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ou are the 'evil' perpetrator, and I am the 'innocent' victim. Nevertheless, I graciously choose not to revenge on you because I am morally superior to you and God/ Nature will judge you anyways. But you should still kneel down to kiss my feet and beg for my for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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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verything that has happened between us was because of the seeds I planted unknowingly. My fault, my fault, my fault." (命理學 cannot predict the details of our lives, but it still has such a great value to show us how there is nothing we should complain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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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e both got entangled in the cycle of suffering not for a malice but for the lack of wisdom. So I hold onto no grudge, no guilt, no regret, no heartbreak but only compassion for both of us. If we change ourselves at here and now, both our pasts and our futures will also change. So, let us now finally set each other free. I bless you." (Feeling guilty or overly responsible is in fact a delusion of grand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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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d the above story from someone wise, and I totally agree. Until we reach (3), we will keep running the wheel of suffering through a great number of rebirths. And yet, we cannot force (3) either, because it will only be a faking then. Thus, we are just what we are at any given moment, we cannot be anything other than what we actually are at any second, and we simply keep trying what we can do within our limits. The seeds of good conduct will lead you to a good teaching. And the seeds of wisdom will enable you to understand the teaching and actually walk the path. If we keep walking the path even at the speed of a snail, eventually we will be able to reach (3). Just as you telling someone to become smarter does not make him any smarter, you judging someone or telling the person to be forgiving does not help him at all either. If you want to help him, instead of sticking out uninvited advice, live a life youself to become a good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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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pping water hollows out a stone, not through force but through persistence, not by intensity but by being cons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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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Shared with Custom < 내가 명리학 공부 그만 두고 불교에 올인하게 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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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6 hrs  · Shared with Custom

< 내가 명리학 공부 그만 두고 불교에 올인하게 된 이유 >

(명리학 얘기를 몇 번 쓰긴 했었지만..) 사주 공부를 하게 되면 주위 가까운 사람들의 명식을 저장해 놓고서, 책에 무슨 이론이 나올 때 그 이론이 내 지인들의 실제 사례에도 정말 적용이 되는지를 확인하면서 공부한다. 잘 보는 분들은 물론 세세한 부분들까지 예측을 하겠지만, 내 경우엔 그저 그 사람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지위 (여러 경우들이 있고 예외도 있지만 음양의 전반적 조화가 나쁘지 않으면 대개는 세속적 관점에서도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게 된다), 성향/개성, 그리고 어떤 대운이 도움이 되는 운이냐 안 되는 운이냐 이 정도 대충 '추측' ('판단'도 못 되는)하는 수준에서 공부를 그만 두었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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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한 '詐欺'사기는 아니고 분명 뭔가의 '경향성'이 있긴 있고 삶과 세상을 들여다 보는 전혀 색다른 종류의 tool로서의 가치도 무시 못 하지만, '과학'이라 불릴 요건들은 다들 아시다시피 못 갖추고 있으며, 깊이 들어갈수록 이론도 계속 가지치기 해 가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 "시어머니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가 됨.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엔 사주 풀이가 60~70% 정도 맞는 듯 한데, 물론 99% 사주대로 사는 이들도 있고, 사주가 40%밖에 안 맞는 경우도 있음. 70%가 맞는다 해도 풀이의 어느 부분이 맞고 어느 부분이 틀리는지 알 수가 없기에, 30%의 오류 가능성을 무릅쓰고 그 풀이에 의지해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건 너무 무모하다고 나는 생각. 그러니 현실적 효용 가치는 사실 작다고 느꼈음. (그래서 처음엔 당연히도 내 아이들의 사주를 가장 열심히 들여다 봤는데, 성격적 특성 정도 파악한 이후로는 아이들 사주도 안 봄. 필요이상의 선입견을 갖고서 아이들을 키우게 될까봐 걱정도 되고, 또 내 운명도 아닌 다른 존재의 운명을 감히 내가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서. 대신, 나도 아직 초보일 뿐이지만 애들에게 불교철학을 나름 깨작깨작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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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위 사람들의 언행방식, 사고방식, 어떤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나쁘다'거나 '비도덕적'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에 비추어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들이 실제로도 나중엔 별로 바람직하지는 못 한, 그리고 때로는 주위 사람들까지 귀찮게 하거나 폐를 끼치는 결과로 귀결되는 일이 왕왕 있었음. 그러고서 그 사람의 명식을 보면, '아, 저 사람의 복이 이 정도밖에 안 되어서, 스스로 복을 피하고 문제를 좇느라 뜬금 없이 저런 결정들을 내렸었구나' 싶더라는. (물론 지난 일 돌아보며 내리는 판단은 끼워 맞추는 식이 되기 십상.) 
이 말은, 평소의 생각/언행 방식을 관리하면 복은 키우고 화는 줄일 수 있다는 얘기 - 어느 정도 한계 내에서. 이걸 사람들은 대개 착하게 산다, 마음을 다스린다, 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이게 그런 착함 혹은 정서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합리성, 즉 이성의 문제인 것 같더라는. 즉, 어떤 건물에 이미 치킨집이 있는데 그 건물에 또 치킨집을 내면서 '열심히 하면 난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욕심은 '합리적 사고' 아닌 '소망 사고'일 뿐이며, 어떻게 해야 자신의 치킨을 차별화하고 어떻게 가게 운영을 효율화하는지에 있어 '섬세'를 넘어서는 '정밀'이 없다면 손발만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 봐야 뻔한 결과이고 아무리 '착해' 봐야 무소용. 그리고 아무리 여기 저기 기웃거려 봐도, 'new 업 짓기' (과거 업이 소금이라면 현재 업은 물. 물의 양에 따라 짠 맛의 농도가 달라짐)인 '생각/언행 방식의 관리'에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더 합리적이고 더 정교한 프로그램을 나는 못 찾겠더라는. (힌두교, 도교, 대승불교가 뒤섞인 소위 New Age 영성이 당장 기분 up 시키는 데에는 최고이지만, discipline 으로서의 체계는 1도 없음.)


(3)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통제 불가능한 '운'이라는 요소를 절대 무시 못 하며, 어떤 집안에서 어떤 부모에게 어떤 건강상태나 적성/능력을 갖고 태어나는지 자체가 실은 그 사람 삶의 윤곽 형성에 이미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런 것도 사주에서 나오더라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존경할 만한 인격이 전혀 아니라 평생 쌓인 상처와 한이 많은데, 막상 사주를 보니, 아버지가 아예 딴살림 차리고서 원가족에게는 생활비 한 푼 안 주어도, 엄마가 벌어오는 돈 아버지가 노름이나 사업으로 다 날려도 하나도 놀랍지 않은 사주여서, 아버지가 최소한 딴살림 안 차리셨고 월급봉투도 집으로 갖고 오셨다는 자체만으로도 실은 감사해야 하는, '객관적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충분히 이해 가지만 사주를 보면 "그래도 아버지로서는 그만큼이나마 최선을 다 하신 거네요. 아버지께 감사하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도 있더라는. 

다른 예를 들어, A는 그 누구와 결혼을 해도 심지어 '놀던' 사람과 결혼을 해도 결혼하고 나면 그 사람이 최소한 나에게는 성실하고 자상한 배우자가 되고, 반대로 B는 그 누구와 결혼을 해도 아무리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과 결혼을 해도 막상 내게는 안 좋은 배우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그런 얄궂은 운명도 있으며, 자신의 사주가 얼어죽을 듯 너무 추워 그래서 여자를 밝히는 남자의 경우엔 도덕만 갖고 그를 비난하기가 어렵더라는. (모든 바람둥이들에게 이런 사정이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님.) 

그렇다고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게 바람둥이로 사는 것이 과연 미래에 혹은 내세에 본인을 위한 최선인가?하면 이건 또 전혀 별개의 얘기. 그러니, 최대한 바르게 살되, 타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는 신중하고 겸허해야 할 것 같더라는. 그러니, '살면서 불평이나 원망할 일은 하나도 없구나!' 싶고 (명리학 공부의 최대 효용. 남 원망할 필요 없다는 건 개인적 종교적? 차원의 얘기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여전히 비판도 하고 필요하다면 고소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 - personal한 감정 없이!), 이런 타고나는 '운'이 神의 뜻이라기 보다는 업 (전생에 지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짓고 있는) 때문이라고 보는 설명이 내게는 좀더 타당한 듯 들리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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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그 전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들 중에서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철학'일 뿐!이었던 불교에 확신이 생기면서 올인하게 되더라는. (근데 종교적 문제에 관심 많은 나의 이런 성향이 사주에도 나오고, 집중하는 시기도 대운과 우연히? 맞아 떨어지니 또 신기하달 밖에.


 이름에 쓰는 '수'는 秀나 壽가 대부부인데 修를 쓴 것도 아마, 작명해 주신 분이 이런 성향을 미리 보셨기 때문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나도 아주 옛날부터도 내 이름이 이유 없이 걍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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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어떤 유명 배우가 자살할 당시의 대운이 내가 39~48살일 때의 대운과 같은 형국이었음 - 홍수가 나서 산이 붕괴하는. 근데 그 분은 유명인이다 보니 온갖 고통을 더 심하게 겪다가 그런 선택을 했고,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난 돈관리도 남편시킴 -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귀찮아서리) 전업주부로 집에만 있다 보니 사고 칠 일 자체가 아예 없고, 걍 소소하게 부리는 오지랖에서 상처받고, 의사들조차 알아내지도 어떻게 해 주지도 못 하는, 죽을 병은 아니지만 또 엄청 짜증나는 희한한 증상들과 시체 수준의 저질 체력 때문에 계속 괴롭다가, 그래도 운동 열심히 해서 어찌 어찌 겨우 넘겼음. 이 말은, 운이라는 것을 무시도 못 하지만, 노력과 근신에 따라서는, 동일 운에 누구는 자살도 하고 누구는 골골 하면서도 큰 사건/사고 없이 넘길 수도 있고 그렇다는 얘기.

.그러니 여러분, 塞翁之馬와 盡人事待天命을 늘 기억하면서 산다면

사주같은 거 안 보셔도 됩니다.

다만, 종교든 철학이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사고/언행 방식만큼은 늘 점검하셔요.



그냥 막연히 '착한'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학문적 지식을 많이 쌓는 것과도 좀 다르고,

'사고/언행 방식의 관리' ('긍정적 vs. 부정적' 뭐 이렇게 단순화만도 할 수 없는)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얘기는 재미로만 들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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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옹지마 塞翁之馬

1.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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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 ]

(다할 진, 사람 인, 일 사, 기다릴 대, 하늘 천, 목숨 명)

요약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 결과는 운명에 따름.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는 오직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중심은 앞부분에 있지 뒷부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후회하거나 미련을 갖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라는 말이니까요.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수(修)는 ‘행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 (다할 진, 사람 인, 일 사, 기다릴 대, 하늘 천, 목숨 명)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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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 [ 盡人事待天命 ]

요약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한자성어.

盡 : 다할 진

人 : 사람 인

事 : 일 사

待 : 기다릴 대

天 : 하늘 천

命 : 명령할 명



《삼국지(三國志)》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劉備)의 촉(蜀)나라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위(魏)나라와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는 제갈량(諸葛亮)으로부터 위나라의 조조(曹操)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예전에 그에게 신세진 일이 있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결국 관우는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의 군대를 포위하고도 퇴로를 열어주고 달아나게 하였다. 제갈량은 다 잡은 적장을 살려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간청으로 그를 살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



애초에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우에게 조조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관우에게 조조를 죽일 계략을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고 조조의 생사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진인사대천명은 이처럼 사람이 일을 행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수인사대천명’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 뒤에 하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비슷한 뜻으로 모사재인성사재천(謨事在人成事在天)이라는 성어가 있다. 명(明)의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고사로, 촉(蜀)나라의 제갈량이 숙적인 위(魏)나라의 사마의(司馬懿)와 공방전을 벌이던 때였다. 제갈량은 호로곡(葫蘆谷)이라는 계곡으로 사마의의 군대를 유인하고 불을 질러 군대를 몰살시키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마의 부대는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제갈량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말하기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 달렸으나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렸도다.(謨事在人, 成事在天.)”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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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많아 (하고 싶은?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은데 시간이 너무 결릴 것 같아 시작을 못하겠네요.

그래도 시작을 해 보자면,

1] 의미가 있는 이름을 지어주신게 인생에 영향이 클 수가 있다는 것.

2] 그리고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운명에 대하여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원망이나 한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 그러나 한국에는 <한>이라는 것이 많은 개인들, 그리고 사회나, 역사까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건 분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왜 분석을 하려고 하는가 하면, 사람들의, 그리고 사회의 자기분석을 도아,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오게될지 않을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 원망이나 한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20대에 (우울증, 고독으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을 했다는 것. (이 때는 이미 카나다에서 이민자로서 대학 생활) 그런데 느낀 것이 부모는 일제시대에 일본대학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자신들이 자식들의 교육이나 장래를 위해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자체를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라고 했으니), 나는 not happy (불행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라고 생각하여, 자살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자식을 갖지 않아야 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된 것. 이 세상에 생명을 가저오는 것은 불행을 늘일 찬스를 늘이는 것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을 더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러나 그 후의 인생의 코스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요.

3] 그런데 왜 나 자신이 그런 상태로 되었나는 아직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고, 언제인가 죽기전에 그 퍼즐을 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걸하기 위해서는 가족사의 정신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선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정신분석. 그걸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배경, 그의 부모 (나의 조부모)의 분석도 필요할 것 같고요. 

4] 자기분석을 위해서는 불교가 유용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사회적인 형성이라는 면에서는 사회학이 유용하겠지요. 둘을 합치면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5] 저도 하늘의 뜻보다는 업이라는 풀이에 끌리는데요, 개인의 전생에 대하여는 모르겠고, 부모의 업이 자식과 관계가 될까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있습니다. 대대로 물려가는 정신문제(?)가 있는가, 나에게 있는가? 그런 의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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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아~ 그러시군요..
저는 정말 명리학의 알파벳 정도 공부한 수준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 합니다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취약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역시 사주에 나옵니다. 특정시기동안에만 우울하셨다면, 십중팔구 대운의 영향이었을 테구요.

요즘은 조부모나 부모가 오랜 기간 특정 종류의 정서상태로 생활하면 그게 후세에게도 유전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긴 하던데, 이게 얼마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명리학에서는 팔자에도 유전되는 면이 있다고 말하기는 합니다. (본인 사주만 놓고서도 조부모, 시댁식구들, 이모, 삼촌, 손사손녀 등에 대해서까지 정보를 유추할 수 있고, 잘 보시는 분들은 실제로 부모 사주의 특징을 대충 맞히시더라구요.) 그런데 또 어떤 면으로는 이게 '신기'한 얘기가 아닌 것이, 힌두교에서도 불교에서도, 본인이 가진 업에 따라 그 '시나리오'에 맞는 부모를 선택해서 어머니의 몸으로 들어온다고 말하거든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를 들어, 내 부모에게 심장병이 있어 나 역시 '부모 때문에!' 그 질병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내가 가진 업/시나리오상 내가 심장병에 걸려야 하기에 그런 조건을 가진 부모/환경을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내가 어린 나이부터 가족들 생계를 책임질 팔자라면 (연예인들 중에 종종 이런 경우들이 있죠) 나는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부모를 선택하여 이승으로 오게 됩니다. 그렇기에 '남 원망할 것 없다'는 것이죠. 

이 관점에 의하면, 부모와 조부모의 정신분석은 환경/緣에 대한 설명일 뿐 보다 근본적인 因에 대한 규명일 수는 없는 것이구요. 암튼, 원망/한이 많아 자신의 삶과 화해하지 못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특히 명리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불교에도 워낙 많은 종파/학파들이 있고 입장도 각기 다릅니다만.. 부처님은 '탐진치 질병'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처방하는 의사라고 스스로를 비유하셨고, 타니사로 스님은 비행기의 제작/작동 원리를 이해한 후 비행기를 정비하는 일에 불교수행을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을 거치면서 스스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켰듯이, 그렇게 자신의 의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불교수행인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공부이기도 하구요. 이것을 '정신분석'이라고 부른다면 그렇게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물론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분석과는 다르지만요.

서당개 풍월 읊는 수준으로 몇 말씀 드려 보았네요. 앞으로도 종종 댓글로 이렇게 대화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애도 MOURNING

애도 [ MOURNING ] [정신분석용어사전]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 애도는 주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사별)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일컫는다. 애도의 지배적인 기분은 고통스러운 것이고, 이러한 기분은 외부 세계에 대한 흥미의 상실, 상실한 대상에 관한 기억에의 몰두, 새로운 대상에게 투자할 수 있는 정서적인 능력의 감소 등을 수반한다. 정상적인 애도는 병리적인 것이 아니며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은 상실에 적응하고 관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다.


애도 과정에 있는 사람은 비록 현실 검증 능력을 유지하고 있고 사랑하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처음에는 상실한 대상에 대한 애착을 거두어들일 수 없다. 대신, 그는 현실을 부인하고 상실한 대상의 정신적 표상에 매달림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이로 인해 대상의 상실은 자아의 상실로 변형된다. 그러나 애도 과정의 단계를 통과함으로써, 이러한 자아상실은 차츰 치유되고 정신적 평정은 회복된다. 애도 작업은 서로 관련된 3개의 연속적인 단계를 거치며, 한 단계에서의 성공은 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1) 상실과 상실의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대처하는 단계. 
(2) 상실한 대상에 대한 애착과 동일시를 철회(탈집중)함으로서 적절한 애도를 수행하는 단계. 
(3) 개인의 성숙 수준에 맞는 정서적 생활로 복귀하며, 흔히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단계(재집중).


나이와 상관없이, 정서적 성숙의 수준, 고통스런 정서를 견디는 능력, 자율적인 자존감 조절 능력, 상실한 대상에 대한 의존의 정도, 상실이 발생한 상황 등과 같은 내적 및 외적 요인들이 애도 과정을 수행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아동일 경우, 자기와 대상 항상성의 수준, 죽음의 구체적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 고통스런 정서를 견디는 능력, 부모와의 지지적 관계 경험을 포함한 발달적 요인들에 따라 애도의 결과가 달라진다.


상실한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에도 애도라는 용어를 사용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조국의 자유 혹은 이상에 대한 신념과 같은 추상적 실체에 대한 표상을 상실할 때도 슬픔과 애도가 발생할 수 있다. 사고나 외과 수술로 인해 신체 일부를 상실하거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적 능력을 상실할 때에도 애도는 필요하다. 그밖에도 마음을 쏟았던 무생물적 대상(예를 들면, 집), 안정감의 원천이었던 어떤 것(직업), 중요한 분리(이혼, 친구의 이사, 자녀의 독립, 분석의 종결)와 같은 상실들도 애도를 필요로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정상적 애도와 우울증을 구별하였지만, 많은 정신 분석가들은 우울증과 병리적 애도를 보다 정확히 구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우울증은 대상 상실이 아니라 생물학적 병인에 의해 야기된다. 병리적 애도 반응 중에는 방어적으로 애도를 하지 않거나 애도 반응의 기간을 연장시키는 것 등이 있다. 볼칸(Volkan)은 이것을 “대상과의 연결됨”을 통해 상실한 대상의 표상을 영구히 간직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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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wlby, J. (1969년). Process of mourning. IJP, 42:317-340.

Deutsch, H. (1937년). Absence of grief. PQ, 6:12-22.

Freud, S. (1917년). Mourning and melancholia. SE, 14:243-258.

Furman, E. (1974년). A Child’s Parent Dies. New Haven: Yale Univ. Press.

Pollack, G. H. (1961년). Mourning and adaptation. IJP, 42:341-361.

Volkan, V. (1981년). Linking Objects and Linking Phenomena. New York: Int. Univ. Press.

Wolfenstein, M. (1966년). How is mourning possible? PSOC, 21:9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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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애도 [MOURNING]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미국정신분석학회, 이재훈)

2020/07/08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그들은 ‘똥간나 새끼’로 살았다 - 경향신문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그들은 ‘똥간나 새끼’로 살았다 - 경향신문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그들은 ‘똥간나 새끼’로 살았다
김진호 선임기자2014.07.25

정전협정 61년 맞아 되짚어 보는 국군포로 4만여명… 남쪽선 ‘외면’ 북쪽선 ‘학대’ 남북정치에 희생돼 철저히 잊혀진 존재로

“한국군을 1만명 이상 섬멸하라.” 마오쩌둥이 격노했다. 정전협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6월18일 새벽, 이승만 정부가 기습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특별명령을 내린 것이다. 마오는 “정전협정 조인을 반드시 늦춰야 하며, 언제까지 미룰지는 상황 전개를 보아 결정할 수 있다”는 명령을 덧붙였다.


한국전쟁 중 국군의 7대 패전의 하나로 불리는 금성전투는 국군포로 문제와 질긴 인연이 있다. 정전협정 협상 막바지에 중국은 영토와 명분을 건졌고, 한국은 모두 잃었다. 6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는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유엔군 사령부는 한국 정부와 군대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가.” 그 끝에 나온 것이 마오의 진격 명령이었다.



정전협정 61주년을 맞아 ‘돌아오지 못한 국군’ 문제를 다시 들춰본다. 금성전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강 지류인 금성천은 강원도 평강군에서 발원, 김화군에서 합류하는 강이다. 전선은 북쪽으로 반원형으로 올라가 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 20병단을 주축으로 한 6개 군단과 인민군 2개 군단의 공세에 국군 2군단의 4개 사단과 미 제9군단 휘하 국군 수도사단 및 제9보병 사단이 배치됐던 전선은 무너졌다. 훙쉐즈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의 회고록 <중국이 본 한국전쟁>에 따르면 이 전투 이후 우리가 잃은 영토만 192.6㎢에 달한다. 사람은 더 잃었다. 포로 문제 끝에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전투는 또 다른 포로를 낳았다.


한국전쟁 중 중국인민지원군이 국군포로들을 이송하는 장면. 포로들의 입성이나 용모가 깔끔하게 나오지만 실제는 달랐다. 포로로 붙잡혔던 국군 및 유엔군 병사들은 그나마 중국군의 포로대우가 북한 인민군에 비해 덜 잔인했다고 회고한다. | <그들이 본 한국전쟁1> 눈빛출판사 제공

국군 및 유엔군 포로들이 전선에서 이송됐던 경로. 녹색선이 국군포로, 붉은선이 유엔군 포로의 호송경로다. 호송 중 사망자가 많아 ‘죽음의 행진’이라고 불렸다.

■ 이승만, 반공포로 석방 도박으로 희생 늘어


양융 중국인민지원군 제20병단 사령관은 <양융 상장>에서 한국군 등 5만2783명을 섬멸했고, 그중 2836명이 포로라고 밝혔다. 이 책에서 ‘섬멸했다’는 말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말이다. 아군 전투사에 따르면 7월12~27일 전사자와 실종자는 5569명이다. 실종자의 상당수가 전사자로 처리된 것을 감안하면 국군포로는 2836~5569명 사이다. 이승만의 도박이 없었으면,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전후 함경북도 학포·고건원·하면·고참·주원·유선·무산·용양·온성·아오지 탄광 등지에서 ‘똥간나 새끼’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1990년대 이후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국군포로 80명의 대부분이 7월 전투에서 붙잡혀 함경북도 지역 광산에 근무했었다. 2008년 북한인권정보센터가 심층면접한 20명 가운데 절반도 금성전투 지역에서 포로가 됐다.


■ 중국 마오쩌둥 격노… 금성전투 벌어져


한국전쟁은 교전보다는 협상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말로 싸우는 전쟁(A Talking War)’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싸우다가 쉬고, 쉬다가 싸웠다(打打停停, 停停打打). 정전협상은 1951년 7월8일 시작해 만 2년을 끌었다. 그중 1951년 12월11일 착수한 포로의제에만 20개월이 걸렸다. 전쟁은 좀 더 빨리 끝날 수 있었고, 더 많은 국군포로가 귀환할 수 있었다. 1953년 4월20일~5월3일 판문점에서 상병포로 교환이 있었고, 같은 해 6월8일 “송환을 원하는 모든 포로는 60일 이내에 송환한다”는 포로교환협정이 조인됐다. 정전협정이 조인만 남겨둔 상태에서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은 수만명의 추가 사망자와 수천명의 추가 포로를 낳았다. 금성전투 후 7월19일 속개된 정전협상장에서 유엔군 측은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를 강하게 꺼낼 수 없었다.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미완의 전쟁으로 남아 있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투 종결의 가장 기본적인 절차인 포로 문제조차 정리되지 않은 채 61년이 흘렀다. 이러한 반인도적 상황은 유독 한반도에서만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핵심에 ‘사람’을 부수적인 고려사항으로 경시했던 이념적, 정치적 타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반공포로 2만7000여명의 석방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 무엇이었건 간에 난관에 봉착했던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였다. 미국은 1953년 8월8일 결국 상호방위조약 최종안에 가조인을 했다.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렵사리 끌어낸 합의를 깔아뭉개는, 막무가내식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사람을 내버리고 조약을 얻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남북한의 어떤 정권도 미귀환 국군포로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라면, 국군포로야말로 철저히 잊힌 존재들이었다.


미귀환 국군포로가 대규모로 발생한 가장 큰 원인은 북한 인민군의 뒤틀린 포로정책 때문이었다. 정전협상이 시작되기 보름 전인 1951년 6월25일 북한군 총사령부가 전쟁 발발 1주년을 맞아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한 국군 및 유엔군 포로는 10만8257명이었다. 빨치산 활동을 했던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 기관지 ‘승리의 길’ 12호도 같은 숫자를 제시했다. 그러나 1951년 12월18일 유엔군 측이 북에 건넨 공산포로 명단은 13만2474명(인민군 9만5531명)이었던 반면에, 공산 측이 통보한 국군과 유엔군 포로의 수는 1만1599명(국군 7142명)에 불과했다. 북한은 정전협상 개시 보름 전에 스스로 발표한 숫자의 10%에 불과한 포로 명단만을 내놓고 생떼를 부렸다. 국군과 유엔군 측은 실종자 중 포로가 최소한 62%인 6만2000명이 돼야 한다는 통계추정치를 들어 나머지 5만여명의 국군포로 송환을 촉구했다. 공산 측은 “5만여명을 이미 석방했다”고 맞섰다.


북한 인민군이 1951년 6월 국군 및 유엔군 포로 수가 8만5428명이라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했던 것과 비교해도 설명이 안되는 대목이다. 중국군은 포로를 4만6062명으로, 러시아 측은 5만5800명으로 추산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실제 귀환한 국군 및 유엔군 포로 1만3444명과는 최소 4만명 이상의 차이가 있다. 국방부가 1997년 10월 발표한 실종자 4만1971명과 비슷한 규모다. 이러한 자료들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정전 61주년을 맞아 지난달 펴낸 <6·25전쟁과 국군포로>에 근거한 것이다. 정부는 1994년 조창호 소위의 귀환을 계기로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그동안 국방부 내부 보고서와 전문가들의 논문만이 있었을 뿐 번듯한 책 한권 나오지 않았다. 조성훈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이 펴낸 이 책은 국군포로 문제의 기원에서부터 현황 및 향후 대책을 망라한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정전 후 북에 남은 국군포로들은 어떻게 됐을까.


북한 인민군이 한국전쟁 발발 1주년에 즈음해 전선에 뿌린 선전전단. 1951년 5월22일까지 국군 및 유엔군 포로수를 8만5428명으로 명시하고 있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제공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탁자 앞에 앉은 사람)과 북한 인민군 남일 대장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 포로들 질병·기아·혹한·노역 ‘참혹한 삶’


국군 및 유엔군 포로는 대부분 평안북도 의주 근처의 천마·강계·만포·벽동 일대의 수용소에 수용됐다. 포로들은 전선에서 일단 포로수용소로 이동했지만 포로 규모를 위장하기 위해 수용소 간에도 이동이 많았다. 특히 전선에서 첫 수용소로 이동하는 과정은 ‘죽음의 행군’이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한다. 부상이 악화되거나 질병과 기아, 혹한, 북한군의 살해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러졌다. 한 국군포로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했다”고 기억했다. 경북 영덕에서 포로가 된 국군 제3보병사단과 수도사단 포로 300여명이 함경남도 고원에 도착했을 때는 생존자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동 중 하루 옥수수 한 개로 끼니를 때웠다. 고원 읍내 제일인민학교에는 국군포로들의 시체가 마른 고기처럼 널려 있었다고 한다. 포로 대우는 북한 인민군이 중국인민지원군에 비해 더욱 포악했다. 이동이 어렵거나 저항하는 포로들을 즉결처형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지는 않지만 이동 중 또는 수용생활 중 유엔군 폭격의 희생자들도 발생했다. 국군포로 중 상당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북한 인민군에 자원입대하는 길을 택했다. 북한은 이들을 ‘해방전사’라고 치켜세우며 부족한 병력자원으로 활용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52년 9월2일자 첩보 보고서에 따르면 국군포로 중 수천명이 소련으로 끌려갔지만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국군포로들은 전후 북한 전역의 도로, 철도, 주택 복구와 각종 건설사업에 동원됐다. 1956년 재배치됐지만 대부분 광산노동자로 60세가 될 때까지 살인적인 강제노역에 종사해야 했다. 북한 입장에선 체제 불안 세력이기에 끊임없는 감시와 처벌의 대상이기도 했다.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가 정전을 불과 23일 앞두고 포로가 됐던 허재석씨(83)는 아오지 탄광에서 환갑을 맞았다. 중국을 통해 탈북한 그는 2008년 <내 이름은 똥간나 새끼였다>라는 자서전을 통해 “지하 4000m 막장에 들어가면 숨쉬기도 바쁘지만 우리 포로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하는 기계가 되어 묵묵히 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침 식사는 북한의 일반주민인 동료 광부들의 3분의 1에 불과한 좁쌀밥 반공기에 소금국으로 때웠다. 정년 뒤 경비원 등으로 생활했지만 1990년대 중반 덮쳐온 식량난 속에서 국군포로 가족들의 삶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012년까지 80명의 국군포로가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였다.


■ 살아남은 자들 남 “변절자” 북 “해방전사”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측 정부는 납북자 문제와 함께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북측은 협의 자체를 거부해왔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범주에 넣어 126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그중 93명이 확인이 안된다고 답해왔다. 결국 17건의 국군포로 가족 상봉만이 성사됐으며, 그나마 북한은 이들이 해방전사라고 강조했다.


남으로 내려온 국군포로들도 그다지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귀환국군용사회 창립 1주년 행사가 열린 지난 4월23일 유영복 용사회 회장은 “만약 내려오지 않았다면, (남에서는) 우리를 두고 변절자나 투항자라고 낙인찍었을 것”이라면서 “북에서 비참하게 죽은 전우들 몫까지 당당하게 증언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늙었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난다”는 그의 고백처럼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는 데다 많은 경우 북에 두고온 가족이 있기에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활동하지 못한다. 젊어서는 이중, 삼중의 감시 탓에 탈출을 꿈꾸기가 어려웠다.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경험이라도 전해야 한다”는 다짐에는 그들이 살아온 한 맺힌 일생이 담겨 있다. 귀환 국군포로들은 너나없이 ‘대한민국 군인의 명예’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들의 명예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격을 지켜주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스스로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군 포로, 김정은 상대 손배소 승소…한국 법원, 북한 관련 재판권 첫 행사 | Voice of America - Korean

한국군 포로, 김정은 상대 손배소 승소…한국 법원, 북한 관련 재판권 첫 행사 | Voice of America - Korean




한국군 포로, 김정은 상대 손배소 승소…한국 법원, 북한 관련 재판권 첫 행사
2020.7.7 4:40 오전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 건물. (자료사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노역을 했던 한국 군인들이 한국 법원에 북한 정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겼습니다. 한국 법원이 김 위원장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해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7일 한모 씨와 노모 씨가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한 씨와 노 씨에게 각각 2천100만원, 미화로 약 1만7천500달러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한 씨 등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돼 정전 후에도 송환되지 못하고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며 2016년 10월 소송을 냈습니다.

노 씨는 2000년, 한 씨는 2001년 각각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소송을 주도한 민간단체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는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한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씨와 노 씨는 재판에서 “50년 가까이 이뤄진 장기간의 불법 행위는 인권말살적”이라며 “북한이 원고 1인 당 6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강제노역 피해를 본 시기에 통치자였던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으며 자손인 김 위원장이 손해배상 채무를 상속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속 비율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책임져야 할 손해배상금은 원고 1인당 2천246만원”이라며 “이 가운데 일부 금액을 청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소장을 접수한 지 약 2년 8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첫 변론준비 기일을 열어 심리한 결과 북한과 김 위원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북한 정부와 김 위원장에게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어 결국 법원은 소장을 공시송달한 뒤에 사건을 심리했고, 이 때문에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할 때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입니다.

피고에게 소장을 공시송달하고 사건을 심리할 경우 원고 측이 제출한 증거만을 바탕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이 과정에서 피고 측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게 됩니다.

재판이 끝난 직후 한 씨는 “국군포로 문제에 한국 정치권이나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아 섭섭했지만 어쨌든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물망초 소속 구충서 제이앤씨 대표변호사는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북한에 지급할 저작권료 약 20억원을 현재 법원에 공탁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채권 압류와 추심 명령을 받아내 추심한 금액을 한 씨와 노 씨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2005년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협약을 맺어 ‘조선중앙TV’ 영상을 비롯한 북한 저작물을 사용할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급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까지 약 8억원이 송금됐으나 이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송금이 막히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 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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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영교
2020.6.23 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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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김영권
2018.4.17 1:30 오전

希修 3 July Well-Dying 준비: 업 이해와 명상


希修
3 July at 13:04 ·



< Well-Dying 준비: 업 이해와 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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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등을 통해 도달 순간을 조금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는 이 시기를 위해, 평균수명이라는 것은 그저 숫자일 뿐 당장 내일 닥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위해 우린 어떤 준비를 하며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서당개 풍월 읊는 수준으로 또 멍멍 한 번 해 보자면.. (제가 푸는 썰은 걍 '저런 견해도 있구나' 듣고 잊어 버리시고요, 대신 제 공부 진도가 조금씩 나갈수록 풍월도 가끔 수정/업뎃은 해 드리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재미로만 들으셔요. 저의 이해는 아비담마와 타니사로 스님의 견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만, 오류는 모두 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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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적으로라도 건강한 상태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기 위해 미움, 애증, 원망, 짜증, 후회, 슬픔, 증오, 서러움, 비웃기, 비꼬기 등을 평소부터 최대한 절제/자제할 것. (특히, 진지한 비판도 아닌 그저 습관적인 험담/불평은 자기 복 걷어차는 일.) 물론! 이게 생각대로 안 되니 문제인데.. 자신의 생각/판단/감정에 최대한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자신의 감정에 탐닉/과신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님), 자신에게 정직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이런 저런 비용 (남들의 간섭, 오해, 비난 등)에 대해서는 불평 말고 의연히 감수해야 하며, 감정 자체를 다스리려 하기보다 애초에 업이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 - 부정적 감정에 집착 않는 일에 있어 업의 이해가 큰 도움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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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연히! 명상도 해야. 명상을 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죽음과 관련한 부분만 언급하자면.. 31 윤회 세계들 중 내세에 어느 차원에 태어나느냐는 이승에서 죽을 때의 의식 상태가 가장 결정적이고 (뭐 대단한 선업이나 악업을 짓지 않고 고만고만하게 살았다는 전제 하에), 그 내세에서 사는 동안 행운이 더 많이 따르느냐 불운이 더 많이 따르느냐는 현세에서 내가 선업을 더 많이 지었느냐 악업 (탐진치에서 기인하는 생각/말/행동)을 더 많이 지었느냐가 결정. 그리고 죽을 때의 의식이라는 것은, 투병과정에서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2-1) 자신의 몸과 생각/감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마치 생물학자가 현미경으로 바이러스와 면역세포 사이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듯이 그렇게 관찰하면서 그 속에서 12연기의 원리를 찾아내어 '책에서 읽은 지식'이 아닌 '자기 심신을 관찰함으로써 스스로 발견해 낸 direct knowledge'를 얻느냐 아니면 동물처럼 멍한 의식으로 지내다 가느냐?, 그리고 (2-2)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집착, 죽음이나 사후에 대한 두려움, 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恨, 온갖 생각 등이 마음에서 끝없이 일어나도 그걸 끝없이 release 하느냐 못 하느냐?를 말함. (평생 바르게 선하게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살았다면 죽을 때도 불안과 후회가 적을 것.) 물론! 평소 심신이 건강하고 비교적 편안할 때도 부정적 감정의 release가 어려운데, 생전엔 상상도 못 했던 수준의 고통과 공포가 엄습하는 삶의 마지막에 이걸 하기란 거의 절대적으로 불가능. 바로 그렇기에! 평소에 꾸준히 명상을 해 두어야 하는 것이며, 또 그래서 명상 (meditation)을 'practice' (연습, 실천)이라고도 부르는 것임. 즉, 죽음에 닥쳐 명징한 의식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distraction 요소들을 제거/최소화한 평소 상태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이 명상의 의의들 중의 하나다, 나는 이렇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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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의 무한반복에서 벗어나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팔정도의 8요소가 고루 발달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하되, 훈련과정에서는 바른 견해/의지 (요소 1, 2) => 계율 (3, 4, 5) => 명상 (6, 7, 8)의 순서로 중점을 두면서 그 8요소를 계발해야 하는데.. 공부를 통해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1단계 '바른 견해'이고, 순서대로 8요소/단계를 모두 거친 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결국 '바른 견해'에서 해탈을 성취한다고 함. 즉, 위에서 언급한 direct knowledge와 release가 해탈의 마지막 관문이며, '이성의 한계'라는 건 8요소를 모두 만랩으로 발전시키고 또 균형을 이루고 난 후, 말하자면 9단계에서나 걱정할 일. 부처님의 가르침 전부를 정확히 이해하는 이 하나만도 수만 생이 걸릴 수도 있는 어려운 일이건만 (이승에서 1단계 하나 완성하는 것조차 사실은 무척이나 '야무진' 꿈일 뿐), 9단계는 고사하고 0.5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0.1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이성의 한계", "부처든 불법이든 상에 사로잡히지 마라" 운운하는 거 들으면 애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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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론과 사무량심: 사회적 차원은 일단 제거한, 개인적 차원에서만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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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hanti-forgiving-용서: '정의실현'은 karma가 할 것이므로 내 손으로 복수/처벌하고 싶은 마음은 깨끗이 버림. 재발방지를 통해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법적 처리가 필요하다면 하되, 미움이나 恨같은 personal한 감정은 갖지 말라는 뜻. '관계회복'/'화해'와 전혀 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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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metta-goodwill-慈: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업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탐진치를 줄여 나감으로써) 스스로!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기분을 맞춰 주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돌봐 주거나, '편한'/'친한'/'즐거운'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일은 metta의 핵심과는 무관 - 반드시 상충하지도 않지만. 서로를 옭아매는 온갖 기대, 원망, 집착, 소유욕 등으로 귀결되기가 너무나 쉽고 본질적으로 감정적인 pema-love-사랑을 부처님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셨음. (뉴에이지에서는 heart가 head보다 우월하다 말하지만, 부처님은 냉철한 이성과 비판적 사고를 중시하셨음 - 탐과 진도 실은 치/무지/망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당연한 결과. 물론, 위에서 얘기했듯 9단계에 이르면 이성마저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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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karuna-compassion-悲: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고통/불운을 종식시키기를 바라는 마음 or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돕고자 하는 마음. (아기가 죽어 울고 있는 여인 Kisa Gotami에게 부처님은 따뜻한 위로 대신 "마을에 내려가 일가 친척 누구 하나 죽은 적 없는 가문을 찾아 내어 그 집에서 겨자씨를 빌려 가져오라"는 말씀을 하셨음. 그동안 윤회해 온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이승에서의 100년은 찰나에 불과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교하는 자체도 무의미하니, 이런 괴로움이 싫다면 더이상 헤매지 말고 어서 해탈하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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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mudita-empathetic joy-喜: 상대방이 지혜를 통해 스스로! 복을 짓기를 기원하는 마음 or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상대방의 행복에 대해 함께 기뻐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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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upekkha-equanimity-捨: 현재의 노력만으로 당장 달라질 수 없는 부분 (현재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희석되지 않는 과거 업의 결과라든가, 타인의 선택이라든가)에 대한 인내심,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이에 대한 평정심 (도박 끊을 생각조차 아예 없는 사람 때문에 속 끓이지 말고 도박을 끊으려는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 아직 못 끊고 있는 사람이나 도와 주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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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31 윤회계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 무한정으로 베풀어야 하는 마음이라는 뜻에서 자비희사의 넷을 四無量心이라고 부르는데, 이 넷과 용서는, 업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이해만 하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일어나는 마음/태도임. '착함', '자기희생', '무조건/무한정 잘 해주기' 뭐 이런 게 아니며, 감정적/'인간적' 차원 아닌 업으로 관통해야 바른 해석. 불교는 '신앙'을 통한 '구원'의 종교가 아님. 당신의 해탈은 당신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을 뿐, 부처님조차 당신의 업과 해탈에 대해 어떻게 해 줄 방도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며, 스스로 지은 악업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든가 스스로 짓지 않은 선업의 결과( =복)를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불교는 출발. 그 어떤 종교적 의식을 하더라도 아무리 간절히 기원하더라도 무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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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karuna-compassion을 '상대의 감정을 무조건 옹호해 줌' or '함께 슬퍼함'으로 해석하는 것은 '悲'라는 번역에서 기인하는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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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mpassion' usually means that you suffer together, but 'karuṇā' does not. A physician needs to understand his patients, but, if he suffers with his patients, he won't be able to help them. ... ... A bodhisattva should be able to have the kind of love (such) that (she) can (be) happy for her and understand the suffering of other people, in order to be able to help them out ... ... If you are a psychotherapist and if you have enough joy, love, patience and understanding in you, ... you won't be overwhelmed by the suffering of those who come to you. - Thich Nhat Hanh
https://www.youtube.com/watch?v=C-wa1cvoJ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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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A true compassion is not about commiserating. Avoid commiserating with other people’s problems, so that you don’t get caught in their mental construct. - Eckhart Tolle
https://www.eckharttollenow.com/new-home-video/default.aspx?shortcode=y1f1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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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ovie.v.daum.net/v/2020070206030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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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V.DAUM.NET

죽음 앞에서 마주한 인간의 욕망과 상처 '욕창'
※ 스포일러 주의 겉으로만 봐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다가 안에서 곪고 패이고 깊어진 상처를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거다. 혹은 작은 틈을 파고들어 크기를 키워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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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서천석 선생님의 글] https://www.facebook.com/drsuh/posts/1372911782729839
소위 '공감'이라는 것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게 내게는 들리는, 그리고 위의 Kisa Gotami의 예에서 부처님이 실천하신 것에도 가장 가까운 견해. 아이도 감당해야 할 것 (현실직시와 책임)을 어른들은 오히려 하기 싫어 온갖 변명과 회피를 해 댄다는 이 아이러니. 바로 그렇기에, 자신의 이기심, 찌질함, 실수 등을 정직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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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9단계는 고사하고 0.5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성의 한계", "이원론적 사고" 걱정하는 건 그러니까, "똥배까지 빼고 나면 남자들이 저를 너무 쫓아다녀 삶의 평화가 깨질 테니 그거 걱정스러워서 못 빼요" 내가 이런 말 하는 것과 똑같은 코미디. 9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상에 집착하면 안 된다"라는 명제 자체도 또 다른 '상'일 뿐.
그렇다고 "그럼, 아무 생각이나 많이 하면 할수록 무조건 더 좋은 것이냐?"하면 그건 또 아님. '어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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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고영범 (지은이)

레이먼드 카버 - 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고영범 (지은이)arte(아르테)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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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쪽135*210mm477gISBN : 978895098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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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아메리칸 체호프,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카버. 저자 고영범은 국내에 나와 있는 유일한 카버 평전의 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평전 번역을 계기로 카버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을 두루 읽으며 한 시대의 문학 풍경을 조감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폭넓은 시선은 이 책의 밑바탕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저자는 카버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야키마에서부터, 문학적 수련기를 보낸 치코와 아르카타, 대학 사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최하의 생활을 이어간 새크라멘토를 거쳐,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평생 원하던 삶을 비로소 누리며 말년을 보낸 시러큐스와 포트앤젤레스까지 카버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붙어 있어야 할 '삶'과 '사람'과 '사랑'이 결렬되고 또 말라붙고, 그래서 고통받은 것이 카버의 삶이고, 그 고통의 기록이, 그 결렬의 봉합 가능성을 보려 한 것이 그의 문학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 책은 카버의 주요 소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시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소설과 출발점을 공유하고 있고, 이야기 형태로 발전하기 전의 아이디어나 상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둘러싼 내외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매개가 된다. 그것은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비추어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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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PROLOGUE 삶과 사람과 사랑, 그 사이에서



01 카버의 나라로 가는 길

02 아버지의 월급 시절 - 카버 문학의 고향 야키마

03 현실의 불들에서 익어가다 - 카버의 수업 시대

04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 작가와 가장으로서 살아남기

05 새로운 소설의 기수 - 주류 문단으로 입성

06 다시 바닥으로 - 술과 사고의 나날

07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사내 - 재생을 위한 마지막 침몰

08 몸 안의 술을 말리는 동안 - 상실의 시간

09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 『대성당』의 성공

10 그레이비 시절 - 내 작은 배 위에서



EPILOGUE 사랑이라는 이름의 부드러움과 광기



레이먼드 카버 문학의 키워드

레이먼드 카버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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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카버는 1938년 5월 25일 미국 오리건주의 클래츠카니라는 조그만 타운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2일 워싱턴주 바닷가에 위치한 소도시인 포트앤젤레스에서 죽었다.

가드너는 윤리적 소설이란 ˝인간의 가치를 시험하려 시도하되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거나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아니라, 어떤 것이 과연 인간을 가장 충만하게 만드는지를 찾으려는, 진정으로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라 규정한다. 따라서 윤리적 소설이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충만한 이해... 더보기 - mongsil

일상적이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할 것, 필요한 정보를 감추어두지 말 것, 묘사, 즉 모방의 기록은 인물과 사건의 표면에 집중해서 정확하고 간결하게 할것 따위를 모토로 삼았는데, 이는 그의 철학이 문장과 단어 차원에나타난 일종의 실천 지침이었던 셈이다. - mong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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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읽었다!

카버의 인생과 문학, 그가 살았던 세계를 생생하고도 흥미롭게 다룬 여행기이자 전기이자 에세이인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시들이 그 답일 수도! -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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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고영범 (지은이)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겸임교수와 경성대학교 영화과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에 거주 중이다. 지은 책으로 『에어콘 없는 방』을 비롯한 여러 편의 희곡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공역)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십 분짜리 영화 학교』『불안』이 있다.

최근작 :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레이먼드 카버>,<에어콘 없는 방> … 총 1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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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세탁소옆집>,<페르메이르>,<더 포스터 북 by 에곤 쉴레>등 총 336종

대표분야 : 추리/미스터리소설 19위 (브랜드 지수 70,214점), 에세이 26위 (브랜드 지수 192,15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카버의 삶과 문학 세계를 찾아서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김중혁 등

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스승



불안하고 위태로운 소시민들의 일상 속 균열을

간결하고 단단한 문체로 그려낸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카버의 나라를 찾아가다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아메리칸 체호프,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카버. 우리에게는 영화 〈숏 컷〉(1993)의 원작자로 먼저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카버의 문학적 수련기인 1960년대 미국 문학에서는 토머스 핀천, 존 바스 같은 포스트모던한 작가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카버는 이런 사조와 대척점에 서서 사실적인 기법으로 미국 소시민들이 처한 불안정한 일상을 그려나감으로써 1970∼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선배 작가들인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와 달리 그는 주로 블루칼라의 삶에 관심을 두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주변부 인생들의 신산하고 어둡고 뒤틀린 이면을 현란한 실험이나 기교 대신 단순하고 평이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으로 담아냄으로써 ‘미국판 노동문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미국의 보르헤스라 불리는 도널드 바셀미는 카버의 작품에 대해 “강하고, 독창적이고, 진실로 가득 차 있으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라고 상찬한 바 있다. 카버의 작품들을 직접 번역하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카버를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라며 존경했고, 국내에서도 김연수, 김중혁 같은 작가들이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는 등 ‘작가들의 작가’로 통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고영범은 국내에 나와 있는 유일한 카버 평전의 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평전 번역을 계기로 카버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을 두루 읽으며 한 시대의 문학 풍경을 조감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폭넓은 시선은 이 책의 밑바탕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저자는 카버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야키마에서부터, 문학적 수련기를 보낸 치코와 아르카타, 대학 사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최하의 생활을 이어간 새크라멘토를 거쳐,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평생 원하던 삶을 비로소 누리며 말년을 보낸 시러큐스와 포트앤젤레스까지 카버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붙어 있어야 할 ‘삶’과 ‘사람’과 ‘사랑’이 결렬되고 또 말라붙고, 그래서 고통받은 것이 카버의 삶이고, 그 고통의 기록이, 그 결렬의 봉합 가능성을 보려 한 것이 그의 문학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 책은 카버의 주요 소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시까지 소개하고 있다. 카버는 우리에게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와 소설 창작을 늘 병행해왔다. 오십 평생 동안 여섯 권의 시집에 총 306편의 시를 선보였으니, 결코 과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시는 대부분 소설과 출발점을 공유하고 있고, 이야기 형태로 발전하기 전의 아이디어나 상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둘러싼 내외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매개가 된다. 그것은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비추어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것이다.



카버의 살과 뼈와 피를 만든 야키마에서부터

글쓰기와 낚시를 하며 평생 원하던 삶을 누린 포트앤젤레스까지,

‘나쁜 레이먼드’와 ‘착한 레이먼드’의 자취를 따라가다



카버를 찾아가는 여행은 야키마에서 출발한다. 미국 북서부 지방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캐스케이드산맥 아래 위치한 야키마는 광활한 계곡 지대로서, 카버의 아버지는 이곳에 있는 목재소에서 톱날을 다루던 노동자였다. 카버는 이곳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무겁고도 엉성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이는 야키마의 광대한 자연과 함께 훗날 그의 문학 세계를 이루는 핵심이 되지만, 어린 카버는 새로운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야키마를 늘 떠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작가를 동경했다. 야키마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어린 나이에 메리앤 버크와 결혼한 카버는 작가가 되기 위해 야키마를 떠난다. 저자는 야키마 기행에서 카버가 경험했던 가난과 그의 몰취향적 성향, 그리고 두꺼운 덮개 밑에 감정을 숨긴 것 같은 무심한 태도 같은 것의 연원이 이 소도시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실감한다.



카버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치코주립대학에 이어 훔볼트주립대학에 들어감으로써 본격적으로 문학적 수련기를 거친다. 치코에서 만난 존 가드너를 통해 모방의 진실성을 강조한 ‘정직한 허구(honest fiction)’라는 창작 모토를 배우고, 또한 읽어야 할 작가들과 소위 ‘작은 잡지(little magazine)’들을 두루 소개받음으로써 문학의 세계로 한층 깊이 들어간다. 훔볼트주립대학에서 만난 리처드 데이는 카버의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감을 북돋워줌으로써 카버가 작가로 성장해가는 데 심리적 지반이 되어준다. 하지만 카버가 처한 경제적 지반은 매우 허약해서 제재소에 일자리를 얻어 학교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저자는 카버가 치코에서 2년을 보낸 뒤 훔볼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넘었던 고도 3000미터의 산길을 따라 넘으며 갓 스무 살의 젊은 그가 마주했던 인생의 급커브들을 반추해본다.



대학 사회를 떠난 이후 카버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생활 전선과 마주한다. 이 시절 카버는 백화점 완구 조립 일을 하다가 해고당하며, 그 후 전기마저 끊기고 집세도 못 내는 등 최하한선의 생활을 이어간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말 그대로 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맛본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만남은 카버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이 된다. 리시는 일찍부터 카버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새로운 소설’의 기수로 그를 중앙 문단에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그의 주요 작품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세 권을 모두 편집했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작가의 원고를 재창작에 가까울 만큼 편집하여 문학적 스캔들을 낳기도 했다.



낭만적 열기로 가득한 1960년대가 물러가면서 카버의 작품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환상을 넘어 환멸을 경험하면서 이제 카버의 어둡고 기이하게 현실주의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독자군이 형성되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1977년에 술을 완전히 끊기 전까지는 “인생이라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던” 고통의 연속이었다. 두 번의 경제적 파산, 메리앤과의 불화,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알코올중독이 그를 옭아맸다. 카버는 알코올의존증이 심하던 이때를 ‘나쁜 레이먼드 시절’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재생을 위한 마지막 침몰’의 시절이었다.



마침내 시러큐스대학의 종신 교수로 부임하면서 카버는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낸다. 오랫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알코올중독이라는 긴 터널에서도 빠져나온 터였다. 이곳에서 4년을 보낸 그는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을 받게 되면서 미련 없이 교수직을 내려놓고 두 번째 아내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포트앤젤레스로 가서 평생 원하던 삶을 누린다. 그는 이 시절을 잘 구운 고기 위에 얹어 먹는 소스인 그레이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저자는 카버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으로 읽는다. 카버는 『말엽의 단편』이라는 시에서 이번 생에서 원한 것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었다고 선언한다. 그 사랑은 운이 좋아 얻은 따뜻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대상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집착했던 광증이었을 수도 있다. 이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랑을 카버는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모두 경험했을 것이고, 이를 세밀화처럼 그려나갔다. 그 세밀화는 삶과 사람과 사랑 사이에서 평생 서성일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체호프 #단편소설 #에드워드 호퍼 #대성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제발 조용히 좀 해요 #고든 리시 #야키마 #미국 서부 #숏 컷 #버드맨 #김연수 #하루키 #존 치버 #더러운 리얼리즘 #존 가드너 접기


100자평

레이먼드 카버 삶이 힘겹고 피로하다.

이 책 지은이의 서사 구조가 정말 맘에 든다.  구매

munsun09 2019-12-18 공감 (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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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고단하게 살고 그러는 가운데 쓰고, 무너지고, 그러다 다시 일어서서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안락함과 명성을 얻고 누릴 즈음 세상을 떠난 카버. 그의 삶을 쫓는 이 애정어린 글들을 읽노라면 카버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어지고 카버가 살았던 그 공간까지 찾아가 거닐고 싶어진다.  구매

잠자냥 2019-11-17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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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 아팠던 책. 카버의 고된 삶은 그의 소설에서 반복 재생된다. 어느 게 현실이고 어느 것이 소설인지...그래도 말년의 카버가 알콜중독을 극복하고 스테이크 위의 풍미넘치는 크레이비 소스처럼 만족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구매

마콘도 2019-11-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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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어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내내 현실적인 문제들에 휘둘린 그의 인생이 인간적으로 더 다가오기도 하네요. 저의 재미없는 일상도 문학적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도한 자신감까지 생길만큼!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 되었어요!  구매

Tournesols 2019-12-3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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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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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레이먼드 카버 새창으로 보기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으로 처음 만났다. 장편 위주의 독서를 하다 조금씩 단편을 읽어보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로, 내게 카버는 작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를 쓴 작가였다. 불협화음 끝에 따뜻한 롤빵과 어렴풋하게 스며드는 희망. 그런 소설을 쓴 작가 말이다.







믿고 읽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카버가 출간된다길래 기대하고 있었다. 작품으로만, 그것도 역작이자 생전 마지막 작품집 <대성당>으로만 그를 만났기 때문에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드는 생각은 ‘그냥 작품으로만 그를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사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그것을 집필한 작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작품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이이기에 이런 작품을 썼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보통의 경우 인터뷰나 낭독회, 에세이 등에서 만나는 작가들은 ‘인간 누구‘라기보다는 ‘작가 누구‘의 모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런데 우리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을, 내밀한 면모를, 절망과 수치의 순간들을, 비윤리적인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그것도 날 것 그대로의 그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레이먼드 카버>는 다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카버라는 인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지역을 여행하고 그의 삶과 작품 등에 대해 풀어놓는 에세이다. 카버의 삶은 그 자신이 ‘나쁜 레이‘와 ‘착한 레이‘의 시대로 구분할 정도로 극단적이다. 두 번의 파산, 알콜중독, 흩어진 가족, 계속되는 가난. 내게는 오래도록 진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실제 그가 처했던 상황과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으니 함부로 논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에 쓰여진 바를 통해 내가 알게 된 카버는 뭐랄까, 책임감 없는 고주망태랄까. 개인사는 개인사니까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에게 조금 실망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훌륭한 작가가 반드시 훌륭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재미있었던 부분은 <사랑을 말 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편집자가 거의 개작하다시피 한 작품집이며, 결국 카버의 문체를 고스란히 살린 <풋내기들>이 그의 사후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편집자가 개작에 가까운 편집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독자로서는 두 작품집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또, 카버의 시! 한국에는 제대로 번역 소개된 적이 없지만 사실 카버는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거듭해서 들었다.







새벽에 마음이 심란해서 <대성당>을 다시 펼쳐 몇 편을 읽었는데 잘 쓰긴 잘 쓴다. 좋기는 좋다. 카버의 생애를 생각할 때면 찰스 부코스키(와 그의 페르소나 헨리 치나스키)가 떠오른다. 사실- 나는 부코스키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어디가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편이다. 너무 적나라하거든. 뭐랄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숨어서 읽는 것 같은 그런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아무튼 카버의 <대성당>을 다시 읽고 있고, <풋내기들>도 읽어볼 생각이다. 아직은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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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북스 2020-01-06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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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뜨거운 시간으로 졸여진 소스 같은 인생 새창으로 보기

아메리칸 체호프라 불리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다는 레이먼드 카버. 실은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도 그가 존경하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작품을 만나기 전에 작가의 삶을 먼저 알게 되는 것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다. 줄리언 반스의 말을 빌자면 "그림들을 이야기로 , 대화로, 가정사로 말해주는 자서전으로 취급하는 것"<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미술산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를 화가에 대한 작지만 중대한 배신이라고 표현했는데 다행히 클래식 클라우드의 <레이먼드 카버>를 읽는 독자들은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의 전처와 친구들 무엇보다 레이먼드 카버 본인의 증언대로라면 그의 작품 상당수가 정직한 글쓰기를 모토로 부모님, 특히 아내와 두 자식을 소재로 끌어다 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카버는 워싱턴주의 야키마에서 태어났다. 산과 들과 강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대자연, 가난한 제제소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인도로 시작한 사냥과 글쓰기로 점철됐던 소년기, 그리고 불행한 카버의 가정사가 야키마의 풍경에 덧씌워진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불안정한 수입에 기댄 가정생활은 평탄하지 않았고 그 시절 그곳의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9세쯤 술과 담배에 손을 댄다. 18세엔 16살인 메리앤과 임신해 살림을 차린다. 20세엔 이미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되기에도 어머니가 되기에도 너무나 어렸던 두 사람은 육아와 직장과 학업의 삼중고에 시달린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한 것처럼 성급히 만나 아이들을 키우게 된 남자애와 여자애가 알콜중독자가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할 때는 가난이 힘들어 술을 마셨고 수입이 좋을 때는 돈이 있어서 술을 마셨다. 작품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더욱 그랬다. 매일 같이 다투고 어쩌면 쌍방향의 외도로 서로를 엿먹이고 그런 와중에도 언제나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며 두 번이나 파산신고를 한 부모라는 존재가 지긋지긋했던 탓인지 큰딸이 가출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녀는 하루만에 되돌아와 구치소에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 했다. 술에 쩔어 널부러진 부모를 보석금을 주고 빼와야 했던 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알콜중독으로 삶이 바닥을 치던 것과는 별개로 카버는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80년대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우뚝서며 주류문학으로 편입했고 전미도서상 후보, 퓰리처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다. 그러나 그의 사후 이것이 그의 온전한 능력이었나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고든 리시, 카버의 능력을 알아본 잡지 에스콰이어의 소설 부분 편집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고든 리시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카버의 초고를 40프로 이상 덜어냈고 10여 편의 단편의 경우 결말을 싹 갈아치웠다.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카버에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별명을 안기지만 리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는지 카버는 내내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라고 인터뷰한다. 리시 또한 카버의 성공을 질투해서, 또 어쩌면 대성당이 그의 손을 떠나 출판된 것을 배신으로 간주하여, 내내 카버와 관련한 말을 떠들고 다닌다. "카버는 내가 만들었다. 대성당 이전의 작품들은 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시의 가까운 동료가 입 좀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조언까지 한 모양이지만 종내 인디애나주 주립대학의 릴리도서관 수장고에 카버와 관련하여 자신이 소장하던 자료를 매각하며 이 사실이 언론에 드러나게 만든다. 메리앤 이후 카버의 동반자였던 테스 갤러거가 카버의 초고를 다시금 출간하는 것으로 스캔들은 일단락 난다.







카버는 술을 끊었다. 거의 십년쯤. "다른 말로는 안돼. 왜냐면 딱 그거였거든, 그레이비. 그레이비, 지난 10년. 살아 있었고, 취하지 않았고, 일을 했고, 사랑했고, 또 훌륭한 여자에게 사랑받은, 11년"(p22, 그레이비라는 시에서) 지난한 시간 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인생이란 팬 위에서 카버는 요모조모로 구워지며 아프고 처참한 육즙을 뱉어냈다. 그 육즙이 모이고 모여 풍요롭고 깊은 맛의 그레이비가 만들어졌고 카버의 볼품없는 스테이크에도 행복의 맛이 스며든다. 카버가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고작해야 10여 년의 시간이었지만 그가 남긴 시를 보면 짧았던 이 시간에 카버는 충분히 감사했던 것 같다. 카버는 끝내 완결시킨 장편소설이 없었다. 카버가 화해하고자 노력했던 두 아이는 아버지, 할아버지와 같은 전처를 밟았고 큰딸은 아버지보다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카버가 죽은 딱 1년 후의 일이었다. 더러운 리얼리즘의 표본으로써 후대 작가들의 존경과 세계 각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그가 성공할 수 있게 뒷바라지한 메리앤이나 그의 작품 속에서 계속해 불행한 모습으로 얼굴을 비춰야만 했던 자녀들은 그가 받은 찬사를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훌륭한 작가가 꼭 훌륭한 인간은 아니라는 걸 레이먼드 카버를 통해 새삼스레 느낀다.











                                       

#레이먼드카버



#고영범



#아르테



#클래식클라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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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캔디 2019-11-1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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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 ˝레이먼드 카버˝ 새창으로 보기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한다는건 그만큼에 댓가가 존재한다.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한다는것은



누군가에게 그만큼에 의미를 남긴다.이책은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에 사랑을 받는것이리라



읽을때마다 좋다라는 말을 곱씹어 할수 있는건 그만큼에 가치를 알기에 느끼는 감정일것이다



인간에 감정이라는것은 억지로 강요한다고해서 생겨나는것이 아니라는걸 알기에.스스로 느끼고



깨달아야하는 가장 단편적인 요소가 존재하는게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어떤이는 그것을 부정할수도



있다.분명!!책을 좋아하고 책으로 무언가를 얻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이말이 무슨 말인지



알수 있을것이다.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3번째이야기...기획에서 개발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총 100편의 작가를 만날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줄것이라는 포부를 밝힌 진정한



거장을 만나는 시간..이제 13번째 여행이다.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책을 읽는다는건 몰랐던 사실을 깨달아가는 순간을 만난다는것은 그만큼에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주었다.무엇을 알고 무엇을 알아가는 순간과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작가의 인생을 알아가는것...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그길에



끝에는 주인공에 본모습과 마주하게 된다.책으로 떠나는 그 어느시절 여행으로 그 여행



어느곳에 존재하는 책과의 만남을 소중한 시간으로 완성하는 책!!책속으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아메리칸 체호프,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소설가"로 평을 받았던 레이먼드 카버에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설레는 일이었다.체호프는  러시아 소설가겸 극작가였다.지금까지도 단편소설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그를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체호프로 레이먼드 카버를 불렀다고



한다.그에 존재는 그만큼에 존재감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인물이다.1993년 개봉된



영화 숏컷으로 원작자로 알려진 작가로 유명하다.당대에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했던 카버는 자신의 처지에 비대듯



미국 소시민들이 그당시 처한 불안하고 힘든 삶들을 글에 표현함으로서 그 당시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리우며 자신의 글을 써나갔다고 한다.사람들이 동경하고



우상으로 알았던 웨밍웨이나 선배작가들의 글들과는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그



어느곳에서도 흔히 만날수 있는 도시주변 뒷골목의 음산한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



동떨어진 사회속으로의 부조화와 어둡고 뒤틀려버린 문장들을 써내려간 비판적인



글들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평범함으로써 그들을 문장으로 만들어 사람들에



마음속에 남는 글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그에 그들은 강한듯 독창적이면서 그



강함뒤에 사람들에 마음을 사로잡는 진실된 표현을 가득 실었으며 그 글들이



엄청난 효력을 냄으로써 오늘날 그에 글들을 읽어 내려가는 우리들에 순간순간들에



본질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어 자신만의 글들에 매료될수



있는 글들로 우리에게 다가온 인물이 바로 레이먼드 카버인것이다.



오늘날 많은 작가들에 문학적인 스승으로 불리기까지의 그에 삶들은 힘든 일상과



괴로운 나날들에 모습으로 영화와도 같은 스토리에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 북서부 지방 캐스케이드산맥 아래 위치한 야키마.그곳 광활한 계곡지대에서



태어났다.카버에 첫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카버의 아버지는 목재소 노동자로



가난한 가장이었으며 불운한 어린시절에 걸맞게 9살때부터 음산한 곳으로 향해



친구들과 술과 담배등에 취해 살았다고 한다.그런 음산한 삶에 젖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곳을 떠나고 싶은 열망은 가지고 있었으며 작가로서의 꿈은 시작되었다고



한다.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는 시점까지도 그는 야키마를 떠나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가장으로서의 무게까지 더한다.불운한 삶에 무거운 가장으로서의 무게까지



더한 그 삶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싶어했다고 한다.



알코올중독자로서 죽음에 문턱까지 다가선 그에 삶은 그 무엇도 끝이 날수 없었지만



인생에 반전을 맞이하며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카버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식주까지도 해결하지 못하는 삶까지 경험하면서도



자신이 하고자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얻어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것","제발 조용히 좀 해요"



"대성당"등등 대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클래식  클라우드에 이야기에 시작은 다양한 시점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작가에



삶을 들여다본다는 매력이 존재한다.저자는 레이먼드 카버에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카버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두 단어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비추어 이야기한다.사랑이라는 단어에 정의를 내리기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여정이라는걸



알고 있다.누군가에 사랑에 시점에서 이야기할수 있고 바라볼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닐까.사랑에 대한 애틋함과 교만함을 비추어 이야기하며 그 단어에



의미를 세밀하게 재조명하는 저자에 시선에 카버는 존재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에서 무엇이 있을까.그에 책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곳



그곳에서 사랑이라는 단어에 의해 변화하고 달라지는 인간의 소극적이면서



삶에 대한 사랑에 대한 열망들을 그대로 전하며 사랑으로의 길을 나선다.



책은 레이먼드 카버에 삶과 작가로서의 삶..그 모든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로



매력을 전하며 이 시대를 채워가는 또 하나의 인간의 자화상이자 거울과도 같은



의미로 다오는 작가에 전부를 이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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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우웅 2019-11-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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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새창으로 보기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카버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여행기이다.



주로 미 서부를 따라 그의 삶을 따라가는 여행은 이 낯선 소설가의 인생을 함께 더듬어보게 만든다.



나는 그에 대해 소설 <대성당>을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고 책장 한구석에 있는 대성당은



아직 펼쳐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엔



빨리 <대성당>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되었다.



그와 함께 하는 여행은 당시 미국 문학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경험도 동시에 안겨준다.



주로 노동자 계급의 삶에 관심을 두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생들을 글 속에 담아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스승인 거장의 삶은 왜 그토록 고단했을까.



궁핍했던 삶의 경험이 그를 소설가로 성공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저자는 지명도 낯선 야키마에서 출발한다.



카버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평생 원하던 삶을 누렸던



포트엔젤레스까지 이어지는 여행은 새로운 자극을 전달해준다.



술에 찌들어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카버는 그 시절을 나쁜 레이먼드 시절이라 불렀고



다시 삶에 안착했던 시간들을 덤으로 사는 시간이라 여기며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저자는 거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여정을 사랑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라 정의했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랑에 대해



경험하고 생각했던 바를 카버만의 글로 표현하고 그려냈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정의를 이해하고 찾아보는 것이 이제 내가 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막연한 희망보다는 불안한 우리들의 삶을 그려낸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인 커버.



그와 한 발짝 가까워지면서 그의 나라 미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만날 수 있는 멋진 책이었다.







카버는 그가 <말엽의 단편>에서 썼듯이, 자신이 평생 원해온 대로 스스로를 사랑받은 인간이라고 일컬을 수 있었고, 사랑받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평생의 삶을 통해서 성취한 것이 사랑이라면, 그가 세상을 두고 아주 떠난 뒤에도 남겨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사랑을 다시 자기들 삶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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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9-11-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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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화해는 아직. 새창으로 보기 구매

예술가와 예술 특히 작가와 문학을 완전히 구별할 수 있을까? 결과 중심이냐 과정중심이냐- 속죄나 반성이 완료될 수야 없더라도 최소한 노력했는가- 아니 그 전에 사람이 사람을 단죄하거나 평가해도 되는가- 늘 혼란스럽지만 그것은 부여잡은 이성이고 감정은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싫고 불편하다. 레이먼드 카버는 내게 좀 이상한 존재다. 글 속에서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기에 좋았고 위로 받기도 했다. ‘대성당’은 3번이나 읽은 몇 안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 중 한 이야기는 자주 생각난다. 내 아픔이 극심해서 누구도 용납할 수 없을 때, 뭐라도 해주고 싶은(혹은 받고) 마음이 될 때, 서로를 비난하고 괴롭힌 것이 어쩌면 오해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악다구니를 써서라도 기어이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 종종 그 단편을 떠올린다. 일단은 가보자고 용기를 내보자고 쭈뼛거리더라도 불편하더라도 시선을 맞춰보자고 다짐하곤 한다. 아마 그 때문에 더 실망하고 혼란스럽고 화가 나는 것일지 모른다. 여전히 그와 화해할 수 없다. 그의 삶을 작품으로 덮고 싶지도 않다. 다행인 것은 현명한 매리앤이 그 뒤를 잘 살아냈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보인가? 카버가 망친 사람이 카버 자신의 한 때와 매리앤의 한 때뿐이라면 화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까지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곤한다. 모두가 견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나도 카버를 안타깝게 여길지도 모른다. 카버는 자신의 상황과 환경이 불행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를 지탱하고 유지시키고 성장케 한 것은 카버 자신보다 외부요인(많은 사람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억울한지 미안한지 똑바로 말해보쇼, 어디! 라고 물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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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N 2020-01-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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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30 June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정경(正經)과 위경(僞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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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30 June at 01:38 ·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정경(正經)과 위경(僞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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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경(正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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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아함경, 열반경, 범망경, 법구경, 자타카, 백유경, 유교경, 밀린다왕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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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경(僞經) - 김진무의《위경연구(僞經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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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치자의 의도에 부합시키기 위한 것으로, 측천무후(則天武后) 시기의《대운경(大雲經)》 등.
- 통치자의 정치를 비판하기 위한 것으로,《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삼계교(三階敎)의 경전인《상법결의경(像法決疑經)》,《유가법경경(瑜伽法鏡經)》 등.
- 중국의 전통적인 윤리사상에 부합시키기 위한 것으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우란분경(盂蘭盆經)》,《수미사역경(須彌四域經)》,《청정법행경(淸淨法行經)》등.
- 특정한 교의(敎義)에 대한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으로, 《대불정수능엄경(大佛頂首楞嚴經)》,《대반열반경후분(大般涅槃經後分)》,《대통방광경(大通方廣經)》,《관세음삼매경(觀世音三昧經)》등.
- 현존하는 특정인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고왕관세음경(高王觀世音經)》,《승가화상입열반설육도경(僧伽和尙入涅槃說六度經)》,《권선경(勸善經)》등.
- 질병의 치료, 기복(祈福) 등의 미신을 위한 것으로,《사천왕경(四天王經)》,《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천지팔양신주경(天地八陽神呪經)》,《불설연수명경(佛說延壽命經)》,《불설칠천불신부경(佛說七千佛神符經)》등.
- 이밖에, 다라니경 등의 모든 진언과 신(神)이 등장하는 모든 경/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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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daum.net/BL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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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그러니까 결국 텍스트는 Pali Canon 혹은 Tipitaka 라고 불리는 것만 보시면 되는데.. https://en.wikipedia.org/wiki/P%C4%81li_Ca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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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런 텍스트를 직접 읽으면 그냥 옛날 얘기같을 뿐 그 의미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 할 가능성이 거의 절대적이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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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introductory lectures by Venerable Bodhi를 우선 들어 보신후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87WdHjb9rqU3hdbwLCE_9qwsGUq3If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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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부를 해 보고 싶다 하실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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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rable Thanissaro의 법문을 수시로 들으시면서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87WdHjb9rqU3hdbwLCE_9qwsGUq3If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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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사로 스님의 책을 쉬운 것부터 하나씩 읽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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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hammatalks.org/ebook_index.html 에서 무료로 다운 받으실 수도 있구요, 아래는 제가 캡쳐해서 만든 앨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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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 Strategy" by Venerable Thanissar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07473218623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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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 Heart Together" by Venerable Thanissar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07718949600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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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radox of Becoming" by Venerable Thanissar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12300657140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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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사로 스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그룹도 페북에 많으니 가입해서 종종 질문 올리셔도 되구요.
https://www.facebook.com/groups/10260856644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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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그룹에 올라온 게시물 중 일부를 모아둔 것입니다.
Teachings of Venerable Thanissaro
https://facebook.com/keepsurfinglife/albums/1042727616099321/

希修 30 June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을 결택(決擇)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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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30 June at 01:37 ·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을 결택(決擇)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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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아함 3권 《가미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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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나란타 동산 장촌나림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가미니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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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하늘의 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의 사제들은 만일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그를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법왕이시니 부디 목숨을 마친 중생이 천상에 태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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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대답 대신 가미니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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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연못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크고 무거운 돌을 그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와서 합장하고 축원하기를 '돌이 떠오르게 하여 주소서'라고 했다. 그러면 과연 그 돌이 떠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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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사람들이 축원을 했다고 해서 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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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떠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병속에 들은 기름을 연못에 부어 넣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합장하고 축원하기를 '기름이 가라앉게 하여 주소서"라고 했다. 그러면 과연 기름이 가라앉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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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세존이시여.많은 사람이 축원했다고 해서 기름은 가라 앉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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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니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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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가미니여,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바르고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열 가지 나쁜 업을 지었다고 하자. 그를 위해 사람들이 아무리 합장을 하고 천상에 태어나라고 축원을 했다고 해서 그가 천상에 태어날 수는 없다. 그는 연못에 빠진 무거운 돌처럼 악도에 떨어지리라. 그러나 가미니여. 어떤 사람이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하고 열 가지 선한 업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합장을 하고 그가 악도에 떨어지라고 저주를 했다고 해도 그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기름을 물에 가라앉히고자 하나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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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건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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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목련 존자는 효성이 매우 지극한 사람이었다.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나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왕사성에서 알아주는 부자로 항상 착한 일을 많이 했으나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복은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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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창고에 재물이 가득했으나 3년 만에 벌써 창고가 비었습니다. 하오니 저는 이제부터 외국에 나가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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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복은 창고에 있는 돈을 꺼내 셋으로 나누고 한 몫은 어머니께 드려 집안을 보전케 하고 또 한 몫은 삼보께 공양하도록 했으며 나머지 한 몫은 장사밑천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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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어머니 청제 부인은 나복이 장사를 떠나자 아들의 당부와는 정반대되는 일만 골라서 했다. 수행자들이 오면 공양을 올리기는커녕 몽둥이로 쳐서 내쫓았으며, 재를 올리라고 남겨준 돈으로는 동물을 사다가 잡아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나복의 집은 동물의 비명소리와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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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이렇게 악행을 하는 동안 나복은 장사길에 나선 지 3년 만에 큰 돈을 벌어 돌아왔다. 아들을 맞이한 부인은 그 동안 자신이 한 일을 감추고 삼보를 공경하고 착한 일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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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제 부인은 나복이 돌아온 지 이레 만에 갑자기 중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나복은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뒤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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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복은 열심히 공부해서 신통제일의 목련 존자가 됐다. 목련 존자는 신통으로 어머니가 태어났을 천상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목련이 부처님을 찾아가 여쭈었다. 부처님은 청제 부인이 살아서 인과를 믿지 않고 나쁜 업을 지었으므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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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신통력으로 지옥으로 찾아가니 과연 어머니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목련이 부처님을 다시 찾아 뵙고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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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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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보름 스님들이 해제하는 날 우란분재를 베풀어라. 그러면 지옥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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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목련이 우란분재를 베풀어 수행자를 공양했더니 그의 어머니는 지옥에서 벗어나 정토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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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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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로 제시한 두 경전을 비교해보면 금방 모순점이 발견된다. 《가미니경》에서 부처님은 철저하게 ‘개인이 지은 업이란 누가 대신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돌이 물에서 떠오를 수 없듯이 악업을 지은 사람은 악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반대로 선업을 지은 사람은 마치 기름이 물에 잠기지 않듯이 악도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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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목건련경》은 이와는 정반대다. 목련의 어머니가 나쁜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진 것까지는 인과의 엄숙함을 설하고 있는 것 같으나 결론은 다르다. 목건련이 우란분재를 올린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되어 있다. 어머니가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해 아들이 대신 합장하고 복을 빌어준 공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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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가미니경》이 비유로 든 예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물 속에 가라앉은 돌이 떠오르고 연못에 던져진 기름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경전인데 발상과 결론이 천양지차로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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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전이란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의 기록’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성립한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이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했다면 불설(佛說)은 일관성, 신뢰성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설사 방편이라 하더라도 결론 자체가 달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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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부처님은 여기서 이말 하고 저기서 저말 하는 사람이었던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문제는 불설을 표방하고 있는 경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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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경전 중에는 불설을 가탁한 위경(僞經)이 적지 않다. 효도와 관련된 《부모은중경》이나 앞에서 읽은 《목건련경》 등은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대표적인 위경이다. 이 위경이 부처님이 직접 설한 가르침으로 둔갑한 데서 모순이 일어난 것이다. 인도에서 찬술된 수많은 대승경전도 사상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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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위경을 위경인 줄 모르거나,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왜곡된 종교적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폐기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꼴’이 된 것이다. 한국불교의 경우 위경에 근거한 종교의례와 법사(法事)가 아니면 사찰운영이 안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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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방편이라 변명해도 이는 불교적 태도가 아니다. 불교라는 이름의 무속교나 미신교, 또는 불교라는 이름의 유교나 도교적인 민간신앙를 불교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동북아 대승불교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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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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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해답은 문제 속에 들어 있다. 그 해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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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과 비불설을 결택(決擇)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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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성
http://cafe.daum.net/hongsasung

2020/07/04

The Many Lives of the Medieval Wound Man – The Public Domain Review



The Many Lives of the Medieval Wound Man – The Public Domain Review



ESSAYS
The Many Lives of the Medieval Wound Man

By Jack Hartnell


Sliced, stabbed, punctured, bleeding, harassed on all sides by various weaponry, the curious image of Wound Man is a rare yet intriguing presence in the world of medieval and early modern medical manuscripts. Jack Hartnell explores this enigmatic figure's journey through the centuries.
PUBLISHED

December 8, 2016




A Wound Man from a late 15th-century manuscript, Bayerische Staatsbibliothek Cgm 597 — Source (CC BY-NC-SA 4.0).




Staring impassively out of the page, he bears a multitude of graphic wounds. His skin is covered in bleeding cuts and lesions, stabbed and sliced by knives, spears, and swords of varying sizes, many of which remain in the skin, protruding porcupine-like from his body. Another dagger pierces his side, and through his strangely transparent chest we see its tip puncture his heart. His thighs are pierced with arrows, some intact, some snapped down to just their heads or shafts. A club slams into his shoulder, another into the side of his face.





His neck, armpits, and groin sport rounded blue buboes, swollen glands suggesting that the figure has contracted plague. His shins and feet are pockmarked with clustered lacerations and thorn scratches, and he is beset by rabid animals. A dog, snake, and scorpion bite at his ankles, a bee stings his elbow, and even inside the cavity of his stomach a toad aggravates his innards.





Despite this horrendous cumulative barrage of injuries, however, the Wound Man is very much alive. For the purpose of this image is not to threaten or inspire fear, but to herald potential cures for all of the depicted maladies. He contrarily represents something altogether more hopeful than his battered body: an arresting reminder of the powerful knowledge that could be channelled and dispensed in the practice of late medieval medicine.





The earliest known versions of the Wound Man appeared at the turn of the fifteenth century in books on the surgical craft, particularly works from southern Germany associated with the renowned Würzburg surgeon Ortolf von Baierland. Accompanying a text known as the “Wundarznei” (The Surgery), these first Wound Men effectively functioned as a human table of contents for the cures contained within the relevant treatise. Look closely at the remarkable Wound Man shown above from the Wellcome Library’s MS. 49 — a miscellany including medical material produced in Germany in about 1420 — and you see that the figure is penetrated not only by weapons but also by text.





The Wound Man from Wellcome Library’s MS. 49 — Source (CC BY 4.0).




Scattered around him are numbers and phrases, indicating where in the text a particular cure might be found. Next to the spider, crawling up the Wound Man’s thigh, a phrase directs the reader to the appropriate paragraph for a cure: “Wo eine spynne gesticht, 20” (“When a spider bites, 20”). By the figure’s right hand: “10, Boss negeli” (“10, Bad nails”). Inside his left thigh: “38. Ein phil do der schaft notch ynne stecket” (“38. An arrow whose shaft is still in place”).





The Wound Man image was a convenient way for medieval surgeons to navigate their texts, but it was also an arresting reminder for both practitioners and patients of the vital knowledge contained within such manuscripts. It was living proof of the efficacy of the surgical enterprise, and a popular inclusion in medical works alongside a wide variety of related images that plotted diseases, the zodiac signs (see image below), bloodletting points, and anatomical schemes onto a similarly arranged human body. See, for example, this post from the Wellcome Library blog on the “Disease Woman” image.





An example of the Zodiac Man, from Heymandus de Veteri Busco's Ars computistica (1488), Wellcome Library MS 349 — Source (CC BY 4.0).




Living on today in libraries from Copenhagen to Munich, the strange figure of the Wound Man gives modern viewers a glimpse of the worrying injuries that the medieval body could receive through war, accident, and epidemic. But at the same time, it shows that medieval people did not think of themselves as helpless victims in the face of these assaults. Far from reinforcing the common perception of the European Middle Ages as a backwards and bloody period of human history, the Wound Man reminds us that it was in fact a period busy with innovative medical treatments, a vital link between the long-standing cures of the classical world and developments that were to follow in early Renaissance medicine.





And indeed, the remarkable manuscript image of the Wound Man did not fade with the medieval medical world that created it, instead finding a rich afterlife in the Renaissance and beyond. With the adoption of new print technologies in the second half of the fifteenth century, European book production underwent a major shift from handwritten manuscripts to the printed page. One book in particular, a Latin treatise first published in Venice in 1491 known as the Fasciculus medicinae (Little bundle of medicine), was the first to translate the Wound Man into printed form.





The Wound Man from the Fasciculus medicinae (1491), Bayerische Staatsbibliothek — Source (CC BY-NC-SA 4.0).




The figure still stands revealing his aggressive injuries, although certain elements have been refigured from their medieval German origins for the Italian Renaissance reader. The club hitting the side of his face has been transformed from a simple instrument into an elaborate mace. And rather than being a flat body floating in space, the figure stands firmly on the ground posed in an elegant “s”-shaped stance, reminiscent of Italian painting and sculpture at the time.





The text of the surgical treatise which the Wound Man always accompanied in its initial manuscript iterations also made the transition into print. It is included in all of the twenty-five or so editions of the Fasciculus, as are a series of floating text boxes around the figure which draw the reader’s attention to particular maladies and cures. The book as a whole was exceptionally popular, reprinted from Antwerp to Zaragoza, and translated into Italian, Spanish, and Dutch. Several deluxe, hand-drawn versions of the printed treatise’s woodblock images were even added to manuscripts.





The Wound Man from Wellcome Library's MS. 290 — Source (CC BY 4.0).




One such luxurious Wound Man copied from print into manuscript could perhaps be that found in a group of images bound into the back of a late medieval anatomical manuscript now in the Wellcome Library, MS. 290 (see above). This particularly artful figure is either drawn from the same model as the Fasciculus, or possibly stands as an interesting example in which technological progress was reversed: line drawings from the new technology of print could here have been converted and aesthetically amplified through colour and shading back into the old technology of hand-drawn manuscripts. If so, the process does not seem to have been without error. The Wound Man has lost many of his explanatory labels and his accompanying surgical text. Visual details, too, appear to have been lost in translation: a stone, which in the printed version strikes the top of the figure’s head, has been strangely refashioned into a miniature helmet.





Around the same time, the Wound Man was also appearing in German printed books, and his form was again being transfigured. In Strasbourg in 1497, he featured on the title page to a book by the surgeon Hieronymus Brunschwig (died ca. 1512) entitled Das buch der cirurgia (The book of surgery). Although he still presents his graphic wounds, he is thinner and with longer hair, but most importantly he is not accompanied by any text at all. Instead of acting as a specific index to a surgical treatise, as he did in medieval manuscripts, here the Wound Man represents something much grander: he stands as an embodiment of the very craft of surgery, proudly displaying the grievous injuries that the owner of such a surgical book was qualified to treat.





The Wound Man as featured in a 1911 facsimile of Hieronymus Brunschwig's Das buch der cirurgia (1497) — Source (CC BY 4.0).




This visual strategy continued to be employed by a number of surgical writers in the sixteenth century, and the image of the Wound Man was adapted to fit the shifting needs of the profession. In 1517, for example, the German military surgeon Hans von Gersdorff (died ca. 1529) included the Wound Man in his Feldbuch der Wundarznei (Fieldbook of surgery), the first such image to incorporate a pair of cannonballs striking the figure’s wrist and shin.





The Wound Man from Hans von Gersdorff's Feldbuch der Wundarznei (1530) — Source (CC BY 4.0).




Even as late as 1678, the London surgeon John Browne’s Compleat Discourse of Wounds included another new Wound Man, this time reworked into a dramatically vaulting neoclassical nude.





Engraving by Robert White featured in John Browne’s Compleat Discourse of Wounds (1678) — Source (CC BY 4.0).




The constant invocation of the Wound Man in surgical treatises for over three hundred years shows the capacity of this image to bring the reader into the gruesome yet serious space of the surgical professional. But it also speaks to the ability of the Wound Man to capture the attention of any reader who stumbled across him, even today’s most modern viewers: as his recent reappearance in the NBC TV series Hannibal suggests, the morbid wonder he encapsulates still holds true for viewers today, a medieval image catapulted across time into the twenty-first century.






Public Domain Works
Das Buch der cirurgia
Hieronymus Brunschwig1497

Internet Archive1911 facsimile edition
TEXTS
Anatomia, in English
Pseudo-Galen,15th century

Wellcome Library
TEXTS
Fasciculus medicine
Joannes de Ketham1491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TEXTS
Feldbuch der Wundartzney
Hans von Gersdorff1528

Internet Archive
TEX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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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Jack Hartnell is Andrew W. Mellon Lecturer and Postdoctoral Fellow at Columbia University, New York, where his research focuses on the visual culture of medieval medicine, cartography, and mathematics. He is preparing a book on the Wound Man, as well as an introduction to medieval medical visual culture soon to be published by the Wellcome Trust and Profile Books, entitled Medieval Bodie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