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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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교사상사 -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  | 知의 회랑 16
김용태 (지은이)성균관대학교출판부2021-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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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쪽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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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 - 나는 존재하는가
음악과 과학 - 피타고라스에서 뉴턴까지
일제 사진엽서, 시와 이미지의 문화정치학
문화 상징으로
책소개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전개된 불교적 사유의 지형을 탐색하고 복구해나간 연구서다. 사실 불교는 조선시대에도 그 생명력을 연면히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선(禪)과 교(敎)의 사상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게 종교적 활로를 넓혀가면서 나름의 사회적ㆍ문화적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엄밀한 자료 분석과 비교지성사의 방법론으로 조선 불교사상의 전체상을 온전히 재구성해내기 위해 진력한다. 먼저 지난 100년간 축적된 조선시대 불교 연구의 성과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불교사상을 선과 교의 융합과 계승의 관점에서 분석해나간다. 이어 조선의 불교를 이끈 고승(高僧)들의 사상과 실천을 구체적으로 재정립한 뒤,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역사적 문맥 속의 시대 지향과 의례 형태 그리고 신앙의 양상들을 포괄하여 불교사상의 외연을 확장하고, 제도의 변화까지 고려하여 불교사상이 전개되는 사회적 함의를 짚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도출하기 위해 전통과 근대의 가교인 조선 불교에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는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성리학 일변도의 조선시대 사상사에 대한 성찰적 계기를 함께 모색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여섯 번째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조선시대 불교 연구 100년의 재조명>
제1장 식민지기: 한국불교 전통의 조형과 굴절
제2장 해방 이후: 연구의 재개와 새로운 모색

<제2부 불교사상의 계승과 선과 교의 융합>
제1장 불교와 유교의 교체와 전통의 유산
제2장 선과 법통: 청허 휴정의 기풍과 임제법통의 선양
제3장 교와 강학: 이력과정 불서와 화엄의 전성시대

<제3부 조선 불교를 빛낸 사상과 실천의 계보>
제1장 불교의 선양과 종통의 확립
제2장 계파를 대표하는 화엄학의 맞수
제3장 유불 교류의 장에서 선 논쟁이 펼쳐지다

<제4부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
제1장 호국의 기치와 불교의 사회적 역할
제2장 세속 의례의 수용과 신앙의 외연 확대
제3장 염불정토의 확산과 내세의 이정표

에필로그
참고문헌ㆍ주ㆍ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서구 근대학문은 인간 이성의 중시와 과학적 탐구에 의해 출발하였고, 신의 섭리나 전근대적 인습이 굴레에서 탈피하여 합리와 객관의 길을 개척하였다.



ㆍ한국과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세계를 한데 묶는 개념어로 한자문화권 외에 유교문화권이 흔히 쓰이지만, 필자는 유교보다는 불교문화권이 실제 역사상에 훨씬 더 잘 맞는다고 여겼다. 이는 불교가 2,000년 전에 중국에 들어온 이래 1,5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동아시아와 함께해왔고, 또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전통이기 때... 더보기
P. 89~90 ㆍ삼국시대 이후 고려까지 불교가 융성하면서 사상과 문화의 꽃을 피웠지만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 들어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불교가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실제 역사상과 전혀 배치되는 인식은 아니다. 다만 고려시대에도 정치이념은 불교가 아닌 유교였고, 종교문화 면에서도... 더보기
P. 338 ㆍ조선에서 승단의 계율과 세속의 윤리가 충돌하는 가운데 충의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당시 상황이 절박했던 탓도 있겠지만 국초부터 유교화를 추진해온 조선적 토양에서 파생된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부모를 버리고 출가한 승려가 군주를 위한 의무까지 다하지 않는다고 하여 효와 충을 저버린 부류라고 비판해왔다. 또 불교는 중화에... 더보기
P. 361 ㆍ숭유억불로 상징되는 조선시대에 불교가 존립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토왕생과 내세의 추복을 기원하는 종교적 기능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식 상장례(喪葬禮)는 유교식으로 점차 대체되어갔지만, 불교식 관습을 준용해온 왕실 제례(祭禮)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을 정도로 불교전통의 권위가 한순...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용태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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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 어린 민족주의자이자 원조 ‘환빠’였던 10대 말에 잃어버린 고대사를 찾겠다는 포부를 안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차츰 지속가능한 전통, 보편적 역사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교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불교 자체를 잘 알지 못했던 탓에 서울대학교와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두 번의 석사과정을 마쳐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조선시대와 근대 불교사를 공부하고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HK(인문한국) 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영문 한국 불교사 Glocal Hi... 더보기

최근작 : <[큰글씨책] 토픽 한국사 12>,<[큰글씨책] 토픽 한국 불교사>,<토픽 한국 불교사> … 총 1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숭유崇儒의 시절에도
억불抑佛 당하지 않은 채
우리 사유와 심성의 한 축을 이뤄온
한국불교 전통의 원형을 찾아서

엄밀한 자료 분석과 비교지성사의 방법론으로
조선 불교의 전체상을 재구성하고
성리학 일변도의 조선시대 사상사를 성찰하다

유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왕조 500년, 불교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을까. 삼국시대 이 땅에 들어온 뒤 천년 너머 찬란한 융성의 세월을 보내고, 새로 맞은 이 낯선 왕조에서 불교는 결국 비주류ㆍ타자화되어 사상의 체제가 벗겨진 채 한갓 여염의 신앙 수준으로 밀려나버리고 말았을까. 이 의구심에 대한 해명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르며 전개된 불교적 사유의 지형을 탐색하고 복구해나간 연구서다. 사실 불교는 조선시대에도 그 생명력을 연면히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선(禪)과 교(敎)의 사상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게 종교적 활로를 넓혀가면서 나름의 사회적ㆍ문화적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엄밀한 자료 분석과 비교지성사의 방법론으로 조선 불교사상의 전체상을 온전히 재구성해내기 위해 진력한다. 먼저 지난 100년간 축적된 조선시대 불교 연구의 성과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불교사상을 선과 교의 융합과 계승의 관점에서 분석해나간다. 이어 조선의 불교를 이끈 고승(高僧)들의 사상과 실천을 구체적으로 재정립한 뒤,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을 총체적으로 재조명한다. 역사적 문맥 속의 시대 지향과 의례 형태 그리고 신앙의 양상들을 포괄하여 불교사상의 외연을 확장하고, 제도의 변화까지 고려하여 불교사상이 전개되는 사회적 함의를 짚어낸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도출하기 위해 전통과 근대의 가교인 조선 불교에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는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성리학 일변도의 조선시대 사상사에 대한 성찰적 계기를 함께 모색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열여섯 번째 책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불교는 이전에 지녔던 시대사조나 주류사상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그 지분을 완전히 성리학에 넘겨주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더구나 현재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통념과 상식 이면에는 근대기에 조성된 단절과 부정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요컨대 식민지기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사의 타율성을 강조하였고, 불교사에서도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의 아류에 불과하며 사상적 독창성을 찾기 어렵다는 인식이 주종을 이루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전통신앙으로서 굳건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교단조직과 사원경제의 기본 토대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불교는 현세의 안락과 내세의 명복을 기원하는 다양한 신앙수요를 창출하였고, 특히 조선후기에는 교육과 수행의 체계화, 법맥과 사상의 계승을 통해 선과 교, 의례와 신앙을 아우르는 종합적 전통을 구축해왔다. 오늘날 한국불교 전통의 원형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형성되었거니와 한국인의 사유와 가치, 문화와 예술 등에 미친 불교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해방 이후 1960년대부터 학계는 식민사학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 조선시대가 재인식되고 망국의 상징이었던 유교 또한 어느 정도 복권되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불교는 역사학이나 철학, 불교학 어느 쪽에서도 각광받지 못했고, 사상적으로 무의미하며, 학술적 담론이 거의 없는 연구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최근 들어 조선 불교를 사료에 입각해 원점에서 재조명ㆍ재평가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조선시대의 유구한 지적 전통을 탐색하는 사상사 분야에서 불교는 여전히 핵심 어젠다를 설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선〓유교’라는 도식과 선입견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고, 그래서인지 불교가 가진 사상적 기반의 확장성과 시대사조와의 소통 가능성, 수행방식과 종교적 역할 등에 대한 학술적 천착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구 저변 속에서 이 책은 탄생한다. 조선시대 불교의 다양한 사상적 지형에 대한 탐색이라는 대전제 하에, 여러 문헌에 나타난 불교사상의 온축과 계승, 시대사조에 부응하는 현실적 문제의식의 대두 등 불교 안에서 전개된 사상의 흐름을 면밀히 고찰하고, 비교지성사의 관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상사에 대한 총체적인 지형도를 그려내고자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네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1. 조선시대 불교 연구 100년의 재조명
먼저 제1부에서는 식민지기 한국불교 전통의 조형과 굴절, 해방 이후 연구의 재개와 새로운 모색으로 장을 나누어 지난 100년의 연구사를 정리한다. 20세기에 근대불교학 연구방법론이 도입되면서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의 상이 조형되었다. 근대불교학은 자료의 집성과 유통, 문헌 및 역사학에 기반을 둔 실증적 방법론의 적용을 골자로 하며,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학문적 태도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식민지기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불교 연구의 기반을 닦고 이해 수준을 높인 반면,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폄훼의 도식과 부정적 타자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이렇게 조선시대 불교에 ‘억압과 쇠퇴’의 굴레가 덧씌워진다.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연구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한국의 역사전통을 바라보는 주체적 시각이 힘을 얻음에 따라 다양한 주제에 걸쳐 많은 성과가 나왔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조선시대 불교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연구 논저의 양과 질 모두가 도약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2. 불교사상의 계승과 선과 교의 융합
제2부에서는 왕조교체에 따른 패러다임의 전환과 숭유억불의 도식, 배불론(排佛論)과 호불론(護佛論), 사상과 신앙의 연속과 변화, 억불의 실상 등을 통해 조선전기 유불교체와 전통의 유산에 대해 살펴본다. 또한 서산대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기풍과 그의 주저인 『선가귀감(禪家龜鑑)』, 근현대까지 영향을 미친 임제법통(臨濟法統)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불교전통의 주축이 된 선과 법통의 문제를 고찰한다. 또한 승려의 교육과정인 이력과정(履歷課程)의 선교겸수(禪敎兼修)적 특징과 불서 유통, 화엄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대상으로 교와 강학의 특징을 파악한다.

3. 조선 불교를 빛낸 사상과 실천의 계보
조선시대에는 많은 고승들이 나와 사상, 수행, 신앙, 문화 등 불교의 다양한 전통을 이어나갔다. 이 책의 제3부에서는 조선후기 불교를 상징하는 고승, 교학과 선의 종장(宗匠)들을 추려서 이들의 활동과 사상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먼저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義僧軍)을 이끈 구국의 영웅으로 잘 알려진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과 선과 교를 회통한 종통의 계승자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을 불교의 선양과 종통의 확립이란 맥락에서 재조명하며, 계파를 대표하는 화엄학(華嚴學)의 두 맞수로 편양파(鞭羊派) 교학의 완결자이자 시대성을 공감한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과 부휴계(浮休系)의 적전이자 화엄학의 집성자인 묵암 최눌(黙庵最訥, 1717~1790)을 대비시켜 이들의 사상과 실천을 재정립한다. 또한 선 논쟁의 포문을 연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과 추사 김정희의 선을 둘러싼 논변, 그리고 긍선을 비판하고 여러 문인들과 수준 높은 교유를 나누기도 했던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의 선교병행론과 학예일치적 삶을 펼쳐 보이면서 조선시대 유불 교류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4.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
제4부에서는 ‘호국(護國)’의 기치를 든 의승군 활동의 딜레마와 호국불교 개념의 성찰, 국가 시스템 안에서 기능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 등을 검토한다. 이어 종법의 친족원리인 오복제(五服制)와 같은 세속 의례의 수용과 문파 및 계보에서의 권리와 의무 문제를 17세기 불교 상례집(喪禮集)을 통해 고찰한다. 또한 산신과 칠성신앙을 대상으로 조선후기 민간신앙의 포섭과 불교화 문제, 그리고 염불문의 성립과 염불정토의 대중적 확산 양상을 소개하면서 천주교의 도전을 이겨내고 내세로 가는 이정표를 끝까지 지킨 불교의 종교적 역할을 가늠해본다.

후속 연구의 전망

한국불교의 역사적 특성을 파악하고 정체성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근대의 가교인 조선 불교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더구나 한국적 전통이 형성된 조선시대를 더 깊이 통찰하기 위해서는 유교라는 잣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불교를 비롯한 여러 프리즘을 통해 그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조선시대 불교적 사유의 지형을 다룬 이 책이 성리학 일변도로 규정되어온 조선시대 사상사의 한계를 넘어 전통사상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도출하고, 그 중층구조의 복원과 외연 확장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은 이유다.
책을 마치며 저자는, 조선시대 불교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재조명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한중일 삼국은 긴 시간 각자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1,500년 이상 동질적인 불교문화권을 공유해왔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유교ㆍ도교ㆍ기독교 등은 상존하던 경쟁 상대였을 뿐, 불교를 매개로 한 인적ㆍ물적 교류와 사상과 문화의 유통 및 확산, 정체성의 향유는 동아시아 세계의 지역성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조선시대 불교 연구로부터 동아시아의 근세를 다른 차원에서 독해하는 도전적 담론이 제기될 수 있는 전거로 작용한다. 접기



필독할 책

우리가 서구를 이해할 때, 기독교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인 만큼, 한국을 이해할 때 불교 역시 그렇다. 우리에게 조선의 불교는 네 글자인데, ‘숭유억불’로 조선 500년 불교의 총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근대 불교 연구사를 시작으로 조선 불교사를 집대성한 책으로 책 소개에서 볼 수 있듯, <조선시대 불교통사>를 쓴 다카하시 도루를 겨냥하고 있다. 꼭 사서 봐야 할 책이 늘었다. 묵직하고 단단한 책을 지향하는 知의 화랑 시리즈에 걸맞는 작업 같다.
두크나이트 2021-03-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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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이적(異蹟)을 행했나요 - 불교신문

부처님은 이적(異蹟)을 행했나요 - 불교신문

부처님은 이적(異蹟)을 행했나요
 승인 2008.10.04

문: 다른 종교에서는 교주의 신비한 행적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설교 등을 통해 이적을 강조함으로서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합니다. 그에 비해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신비한 행적을 잘 가르치지 않는데, 그런 기록이 없는 것인지요?

 

이적은 진실 포장한 상징적 사건

부처님의 삶 자체가 이적과 신통


답 : 여기 한 사건을 예로 들어 신통과 기적의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당시에 가장 큰 종교집단이었던 가섭 삼형제와 천명의 무리를 제자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신비로운 행적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타마는 불을 섬기는 집단의 지도자 우루빈나(우루벨라) 가섭을 찾아가 화룡(火龍)을 모시는 사당에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가섭은 화룡에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며 만류하다가 결국 허락을 하였다. 밤이 되자 화룡은 자기의 처소에 들어온 사문을 향해 불길을 토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광삼매에 들었다. 고타마의 몸에서도 불이 나오기 시작하여 밤새도록 사당은 불길에 휩싸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가섭과 제자들은 ‘안타깝게도 저 사문이 목숨을 잃게 되었구나!’하며 불쌍히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고타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당의 문을 열고 나왔으며, 놀랍게도 고타마의 발우 안에는 화룡이 작은 뱀처럼 되어 있었다. 가섭은 매우 놀랐으나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거듭해서 계속 신통을 겨뤘지만 계속 패했다. 이윽고 가섭은 자신이 고타마를 이길 수 없음을 실토하고 제자가 되었다.”

옛 인도에는 사상가들끼리는 논쟁을 해서 우열을 가리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옛 문헌의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 사상논쟁은 대부분 많은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국가적인 인물이 논쟁자일 경우에는 국왕과 대신들까지도 참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논쟁에 진 사람은 승자에게 목숨까지도 내놓는 엄청난 일인데, 부처님과 가섭의 사건도 이 사상논쟁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우루빈나 가섭은 이미 국왕과 대중들의 귀의를 받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고타마도 출가이전부터 명성이 높았던지라 두 사람의 논쟁은 큰 관심사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가섭은 화룡과 같은 절대적 존재였고, 고타마는 아직 수행의 정도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논쟁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고타마가 무모한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위대한 가섭의 불길과 같은 위력 앞에 젊은 고타마가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그것은 자청해서 화룡의 사당에 들어가 불길에 타 죽으려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고타마의 존재는 빛나기 시작했고, 화룡 같았던 가섭은 작은 뱀처럼 초라해져 갔던 것입니다. 이미 백세가 넘은 위대한 존재인 가섭을 삼십대 후반의 고타마가 논쟁에서 이겨 제자로 삼은 것이지요.

이미 세상의 존경을 받는 탁월한 사상가로 하여금 자신의 사상을 버리고 다른 사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고타마가 가섭 삼형제를 제도한 일만큼 단 시간에 거대한 사상집단을 다른 사상체제로 바꾼 예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며 신통인 것이지요. 부처님의 삶은 그 자체가 모두 이적(異蹟)이며 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편케 하고 고통에 빠진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한 신통은 없는 것이니까요. 

송강스님 / 개화사 주지

 

[불교신문 2465호/ 10월8일자]

2022/11/13

이적(異蹟) - Google 검색

이적(異蹟) - Google 검색

2021. 9. 6. — 이적, 표적, 기사. 이 세 가지는 성경에서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① '이적'(異蹟)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
이적(異跡/異蹟):(1)기이한 행위의 흔적. (2)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
2007. 2. 28. — 이적(異蹟). 14년 동안 숲 속에서 고행을 하던 사람이. 마침내 물위를 걷는 이적의 힘을 얻었다. 너무 기뻐서 그는 스승을 찾아갔다.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HRV).
조선후기 문신·학자 홍만종이 단학설화를 인물별·시대별로 배열하고 평설을 달아 1666년에 간행한 전기. 키워드. 홍만종. 영역 ...
異蹟 뜻: 이적異蹟】 [이:-][명사]1 이상스러운 행적.2 = 기적2 (奇蹟).…. 異蹟. 자세한 국어 의미 및 예문 보려면 클릭하십시오.
2017. 7. 28. — 윤동주의 이적(異蹟). 발에 터분한 것을 다 빼어 버리고. 황혼(黃昏)이 호수(湖水) 위로 걸어오듯이. 나도 사뿐사뿐 걸어보리이까? 내가 이 호수가로 / ...
2017. 1. 22. — 329. 거지는 왕궁에 들어가서까지도 아주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 왕궁에서 그가 바라는 것은 고작 식은 밥 한 덩어리뿐이다.
제목 : 행복한 이적(異蹟) 그림크기 :29*21cm 재료: 종이에 한국화 물감채색 제작년도: 2018 ​작가 : 동화 김성순 " 발에 터부한 것을 다 빼어 버리고

도올 “믿음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 - 불교신문

도올 “믿음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 - 불교신문

도올 “믿음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
 승인 2007.07.11

한국불교학회 여름워크숍 김용옥 교수 기조강연
 

“현실속 깨달음 유지 더 어려워…돈오돈수 신중히 거론”

초기불교에서 선불교까지 ‘믿음과 깨달음’주제로 논의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이고 깨달음은 또 무엇일까. 지난 7일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불교에서의 믿음과 깨달음’을 주제로 열린 한국불교학회(이사장 이평래) 여름워크숍에서는 초기불교에서부터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각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불교학자들과 도올 김용옥 세명대 석좌교수가 참석한 이번 워크숍에는 450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7일 서울 강남 봉은사 보우당에서 한국불교학회 여름워크숍이 열렸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참석한 이날 워크숍은 45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주제발표에 앞서 김용옥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모든 종교의 본질은 깨달음”임을 강조했다. “불교에서 믿음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일 뿐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의 기독교가 예수의 이적을 맹목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적은 예수의 주테마가 아니라 사랑을 촉발시키기 위한 방편적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깨달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도단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김 교수는 “깨달음은 의식의 현상으로 일회적이고 최종적인 사건으로 끝날 수 없다”며 “설령 깨달았다고 해도 현실 속에서 그 깨달음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에 얼른 깨달아 해탈한다는 돈오돈수를 너무 쉽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피력했다.

이어 ‘초기.부파불교에서의 믿음과 깨달음’에 대해 경북대 임승택 교수는 “초기불교의 수행은 점진적인 수행과 점진적인 깨달음의 입장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불교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믿음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며 “그 믿음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바른 지식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성제의 이치에 대해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대승불교에 있어 믿음과 깨달음’은 어떻게 변했을까.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안성두 연구원은 “유식학적 관점에서 보면, 대승에서 깨달음이란 ‘위없는 완전한 깨달음(無上正等菩提)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무상보리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3아승기겁이라는 세월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대승의 보살행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안 씨는 “진여의 깨달음 내지 인식이 지적인 통찰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 믿음 등 정서적 요소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유식학파의 문헌 속에서는 믿음의 요소가 직접적으로 해탈로 이끌 수 있다는 주장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도대승불교 중후기에 태어난 밀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진각대 허일범 교수는 ‘밀교에서의 믿음과 깨달음’에서 “밀교에서는 경궤와 불보살에 대한 믿음뿐만이 아니라 스승에 대한 믿음을 중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밀교적 의궤의 특성 때문이다. “의궤에 관한 연구나 수행을 하려는 자는 아사리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어 “불법을 전하는 아사리와 전해 받는 제자간의 믿음이 특히 강조되는 것”이다. 또 밀교에서 깨달음과 삼밀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꽃핀 화엄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화엄불교에서의 믿음과 깨달음’에 대해서 연세대 신규탁 교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믿는 믿음을 토대로 보현행원을 실천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수법장(643~712)스님의 교상판석에 따르면, 화엄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5교10종이다. 5교 가운데에는 ‘대승원교’가, 10 종에서는 ‘원명구덕종’이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신 교수는 “법성에 대한 돈오(頓悟)없는 돈수(頓修)는 사회복지에 불과하다”며 “무진법계에 대한 깨달음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한국불교를 관통하는 선종에서는 또 어떨까. 창원전문대 이덕진 교수는 ‘선불교에서의 믿음과 깨달음’을 통해 “선종에서의 믿음은 ‘내가 바로 부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부처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잘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간극을 매우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발심을 해서 신심을 길러 분심을 키우고 의심하면서 의정을 키워 의단이 돼 화두를 타파하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날 김용옥 교수는 “불교에 있어서 믿음과 깨달음은 분리될 수 없다”며 “불교의 믿음은 나의 깨달음의 가능성에 관한 끊임없는 자각”이라고 말했다. 또 믿음에 대한 강요나 전도 극성 없이 이어져 온 한국불교의 특성을 꼽으며 “우리나라 종교문화를 이끌어갈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