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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 현대종교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 현대종교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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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8.02.22 11:28 입력

편집자 주: 이 글은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제6차 총회에서 정동섭 교수가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본지 편집자문위원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가족관계연구소장; Ph.D.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가장 미혹하는 신앙의 양태를 영육이원론의 영지주의로 지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하였다(요이1:7).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예수는 신화다]나 [다빈치 코드] 등은 모두 영지주의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성격이 농후하다. 뉴에이지운동의 범신론적 성격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허호익, 2016).

  

영지주의란 영적 지식(gnosis)을 추종하는 동방 종교와 희랍철학과 신지학(theosophy),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혼합형태로 주후 80년부터 150년 사이에 초대교회와 경쟁했던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운동이었다. 영지주의는 엄격한 의미로 보면 종교도 아니고 순수하고 단순한 철학도 아니었으며 일종의 밀의적인 민중신앙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는 교회사 최초로 출현한 이단 가운데 하나다. 영지주의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해온 영지적인 사고와 개념 또는 분위기를 지닌 종교운동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다른 하나는 2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기독교 이단 종파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지주의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지식을 통한 영혼의 우주적 구속을 가르친 사상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이성호, 2012).

  

영지주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나서,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가? 당시 교회는 영지주의에 어떻게 대처했으며 왜 이단으로 간주했는가? 현재 한국에는 어떤 영지주의 이단이 활동하고 있는가? 이단은 정통을 전제로 한다. 정통은 기원적이고 이단은 반영적이다.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를 표방하고 심오하고 놀라운 만큼 신비스러운 메시지를 선포했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구원과 영생이 믿음으로 말미암고 그 믿음이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즉, 역사적 개인(인격)이신 분에 대한 것을 믿은 것을 의미했다. 그분의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하신다는 의미는 각 기독교인에게 생사를 걸 만큼 중요한 진리였다(브라운, 2001). 정통은 일반적으로 우선순위를 역사에 두지만, 이단은 지식적 이해에 둔다. 그래서 정통은 신학자들 가운데 보다 신학적이지 못하고 보다 역사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지만, 이단은 보다 신학적이고, 보다 철학적이고, 보다 추상적이다. 골로새서와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와 가현설주의(decetism)에 대한 항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교주의와 율법주의와 함께 영지주의는 초대교회의 위협적 이단으로서, 믿음과 관련하여 지식을 과대평가하였다.

  

20세기 전반까지 이레니우스(Irenaeus), 터틀리안(Tertullian), 히폴리토스(Hippolytos), 에페타니우스(Epithanius)와 같은 이단전문가들(heresiologists)은 영지주의자(Gnostics)에 대한 일차적 정보원이었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이 성경의 의미를 조작하고 왜곡하여 기독교를 오도하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특히 창세기와 요한복음, 그리고 바울서신을 자기들 목적을 위해 왜곡하였다. 이레니우스(Irenaeus)와 같은 교부는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종교적 혼합을 교회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을 왕의 아름다운 그림을 분해하여 여우의 그림으로 짜 맞추는 것에 비유하였다.우리는 영지주의라 부르는 사상이 고대세계를 휩쓸었던 극단적, 철학적, 영적 경향의 한쪽 측면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브라운, 2001). 영지주의가 일어났던 때는 사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던 상황이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는 ‘영지주의 이단’을 형성하여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

  

초대 교회 당시 교회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대표적인 이단들은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그리고 몬타누스주의이다. 여기에 대하여 교회는 신앙의 준칙을 확립하고, 감독의 사도권을 교회 내에 정착시키고, 정경을 확정함으로 응전하였다. 초대교회는 이단의 공격에 대하여 정경화, 신조화, 직분의 확립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단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본질적인 교리를 빼는 것을 의미한다(계22:18-9). 영지주의와 몬타누스주의(신령한 예언)는 전자에 해당하고, 마르시온주의자들(구약적 요소를 제거)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Clement, 150-215)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는 인물이다. 시몬 마구스는 사도행전 8장 9~13절에서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과 동일인물이며, 그는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부렸고, 많은 인기를 얻자 자신이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들었다. 시몬은 자신이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와 정통 기독교는 거의 동시대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성호, 2012).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초기 기독교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단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에 있는 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성경 외의 문헌에서도 니골라당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65년 순교)이 Trailians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당을 멀리하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사랑하지만 중상적인 혀를 놀립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변증가 이레니우스(Irenaeus, 125–202)가 저술한 책「Adversus Haereses」에도 다음과 같이 영지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니골라당은 사도들에 의해 집사직을 처음으로 받은 자 니콜라스를 추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절제적인 방종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영지주의라 부르는 사상은 고대세계를 휩쓸었던 극단적, 철학적, 영적 경향의 한쪽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영적 형태로서 20세기의 실존주의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브라운, 2001). Mary Baker Eddy(1821-1910)의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는 현대판 영지주의이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the historian, 5 BC.)가 남긴 기록에서도 초대교회가 영지주의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도 요한이 성경에 남긴 다음의 말씀이 그 당시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 사상을 물리치기 위해 했던 말이라고 기술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1. 기독교 영지주의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지방에서 영지주의 문서가 대량 발견됨으로써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처음에는 영지주의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발생한 하나의 기독교 이단사상이었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 간행된 활발한 연구결과에 의해 영지주의는 기독교 밖에서 시작되어 고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는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교회사에서 영지주의가 문제된 것은 2세기 이후였다. 영지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영지주의의 뿌리는 무엇인가?
 

⑴동양 종교 유래설이다. 조로아스터교, 신비종교, 점성술, 마술 등 동양종교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⑵헬라사상 유래설이다. 기독교 신앙이 신플라톤 철학의 흙탕물로 오염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동방종교인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Edward Conze). ⑶유대교 유래설이다. 유대교의 금욕적이고 묵시적인 종파 에세네파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⑷기독교 내부 유래설이다. 기독교 내부의 이단적 사상에서 유래했거나 1-2세기에 번창한 기독교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⑸고대종교 및 사상의 혼합설이다. 기독교 전파과정을 통해 일어난 일종의 혼합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 안에 침투해 복음을 변질시키려 했던 것으로 본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이원론, 동양의 신비종교, 헬라 철학, 유대교 사상 등 여러 요소가 기독교 교훈에 혼입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기독교 영지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초기 기독교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단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정이철).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졌던 사람이다. 

영지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신성이 공유되고 있다고 여기는 현대의 뉴에이지 운동의 원형이었다. 한국인들이 기독교에 개종할 때 무속신앙과 기독교 신앙을 혼합한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2. 영지주의의 일반적 특징

영지주의는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Gnosis에서 유래하였다. 일반적 지식이 아니라 신비적 합일을 통한 앎을 의미한다. 영지주의는 그 성격상 밀의적인 혼합종교이므로 그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너무나 다양하여 한 마디로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영지주의 자체는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공통된 일반적 특징을 몇 가지 간추려보자.

⑴영육이원론(dualism): 모든 영지주의는 이원론에 기초에 두고 있는데,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영혼과 육체는 서로 존재론적으로 대립의 관계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영육 이원론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선악 이원론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존재론적 윤리적 이원론이 그대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에 적용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이 고통을 당하고 죽는 까닭은 인간이 이 악한 물질세계에서 악한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육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인간 육신을 적대시하고 천시하는 영지주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극단적인 금욕주의로서 일체의 육식과 결혼을 금한다. 둘째, 이와는 정반대로 육신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적 방탕주의(반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신앙적 고행이나 금욕은 구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허호익, 2016). 영지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영적 각성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육신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영적 본향으로 귀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죽음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영육간에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구원론을 조잡한 것으로 배척한다. 영적 세계로의 귀환이라는 신화론적 구원론에 집착한다.


⑵육체의 감옥에 유폐된 영혼. 영지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천상의 영적 존재였다. 천상의 영적 존재였던 인간은 자신 안에 있던 ‘신적 불꽃’을 상실하고 지상의 물질세계로 추방되어 고통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육신의 감옥에 유폐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육신을 영혼의 감옥이라고 보았다. 사람은 자신의 추방과 유폐의 과정조차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가르친다. ⑶구원은 영적 깨달음에서 온다. 구원은 영적 지식의 각성에 의해 이뤄진다. 영적인 인간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이 자신이 영적 존재라는 각성에 이르게 되어야 구원을 얻는다. 영적 각성은 영적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영지를 중시한다. 영지, 영적 비밀에 대한 지식을 중시한 것이 영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성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고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지식, 신적인 것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적인 지식을 말한다. 합일의 지식이며 구원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성취하는 자기인식(깨달음)의 행위이다.

영지주의 이원론은 구원론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물질(육체)에 갇혀 있다. 따라서 이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참다운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득도(깨달음)를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따르면(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영지주의다), 진정한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나 행함이 아니라 참지식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영지주의자들은 윤리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율법에서의 해방과 양심의 해방을 강조한다. 이 지식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 비밀스럽게 전수된다고 주장하였다.영지주의는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한 종교운동이다. 영지주의는 상징적인 의식, 신비적인 예식, 무술적인 형식의 가르침을 도입하여 사변적 우주론을 대중화했다. 우주론적 신화, 헬라와 동양의 이교적 철학사상, 기독교의 진리를 융합한 대중운동이었다.
 

⑷영지주의는 분파가 다양하다. 기독교인, 유대교인, 이교도들이 각각 영지주의의 다양한 그룹과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2세기에 들어와서는 영지주의와 기독교 신앙이 혼합되어 기독교적 영지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기독교 영지주의자가 바로 마르시온(Marcion)이었다. 그 가르침의 단순성과 기독교와의 유사성 때문에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었다. 154년에 로마를 방문했던 주교 폴리갑은 마르키온을 만나 토론한 다음, “나는 네가 확실히 사탄의 맏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단죄하였다. 이때 반영지주의 신학자로 활약한 것이 바로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이었다. ⑸반(反)권위적, 반(反)성직계급적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권위주의와 성직계급제도를 거부했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은 ‘신적 불꽃’을 지니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에게 국한된다는 점에서 선민적 운명론이며, 은밀한 비밀이라는 점에서 밀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불만계층에도 많은 매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3. 영지주의의 교리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신과 인간과 구원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다양한 견해를 단순화하거나 일반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공통적 특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⑴이원론: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물질의 영역은 물리적 세계의 영역이다. 불완전하며, 일시적이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정신의 영역은 ‘이데아’의 영역, 영구성, 완전성, 사실성의 영역이다. 정신의 영역이 물질의 영역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정신은 진흙으로 된 육체 안에 갇혀 있으며 거기서 해방되기를 갈구하고 있다. 종교적 이원론에는 절대적 이원론과 완화된 이원론이 있다. 전자는 두 가지 원리가 영원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으로 본다. 후자는 선의 원리가 종국에는 악의 원리를 멸할 것이라 주장한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헬라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에 기인한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존재의 영역을 구분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다. 정신적이며 영원한 관념의 세계와 일시적이며 물질적인 감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참으로 존재하는 실재이며, 후자는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영지주의, 특히 금욕주의 영지파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물질과 영,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을 이원화시키는 것이 영지주의의 일반적 특징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따라 인간을 영적인 인간과 혼적인 인간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⑵하나님: 다신론적 신관을 견지했다. 그들은 미지의 하나님(unknown God)과 데미우르고스를 구분했다. 마르키온이 창조주와 구속주, 또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율법과 복음의 하나님을 구별하고, 후자를 영지주의 하나님으로 간주한 반면, 전자를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취급했다. 영지주의는 일반적으로 두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이원론적 신관을 견지했다. 이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산물이었다. 영지주의를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참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신화적 사고와 헬라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플라톤은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변형한 것”이라고 했다. 피조된 세계는 악하다고 보았다. 영지주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무감각한 비인격의 하나님이다(근광현, 2003). 영지주의 세계관에서는 ‘모나드’라고 하는 우주의 궁극적 ‘신성’이 존재하며, 이것으로부터 하위의 신들이 ‘발출’되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신성’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하위의 신적인 존재들을 ‘아이온’이라고 하며, 기독교의 하나님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여긴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의 초월신관을 가리켜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지성, 그리고 전능성을 훼손하고 있는 잘못된 신관이라고 비판했다. 사도 요한이 성경에 남긴 다음의 말씀은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 했던 말로 이해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⑶인간: 영지주의는 인간이해에 있어서도 교회의 전통적인 교훈이나 성서해석과 입장을 전적으로 달리한다. 특히 인간의 기원과 타락문제에 있어 이해를 달리했다. ①하나님의 인간창조를 부정한다. 창세기의 인간창조 이야기를 신화나 알레고리로 이해하고 그들 자체의 창조신화를 제시했다. 천상의 세계에 거주하던 영적 존재가 어떤 치명적 사건으로 인해 세계로 떨어져 육신을 입게 된 것에서 인간이 기원했다고 본다. ②인간구성에 대한 3분설적인 이해다. 영지주의는 인간을 육, 혼, 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육과 혼은 물질세계에 속하는 반면, 영은 신적 본질에 속한다. 인간에게는 참 하나님에게 속하는 부분, 즉 신적 불꽃이 있다. 그것이 육과 혼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영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세 부분으로 보는 3분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3분설은 2분설과 더불어 정통교회도 받아들이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3분설의 자의적인 적용이다. 아담과 하와는 실제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영적 기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아담은 인간의 마음과 정서 영역인 혼을 대변하고, 하와는 인간의 신적 기원을 알고 있는 영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3분설을 인간계층의 분류에도 적용했다. 이교도를 육적 인간에, 유대교와 기독교도를 혼적 인간에, 그리고 참된 기독교인, 즉 영지주의자는 영적 인간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복음을 통해 계시하셨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구원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전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혼만의 구원이다. 성경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 엄격하다. 신과의 합일은 영적인 삶의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하나가 되어 God-man이 되면 서로를 구분하거나 차이점을 밝힐 수 없게 된다(Watchman Nee)는 것은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워치만니에 따르면, 인간은 세 부분, 즉 속사람(영), 겉 사람(혼) 그리고 제일 바깥의 사람(육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 사람들은 겉 사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정서도 지적 사고도 하나님이 소유한 성품과 동일하지 않다. 오직 영만이 하나님과 관계한다. 영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아 또는 혼은 깨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혼합되어야 한다. 이는 성경적 주장이 아니다. 워치만니(Watchman Nee)의 사상적 제자 권신찬은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로써 영이신 하나님과 접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③인간영혼의 선재설이다. 인간의 영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기 전부터 천상세계에서 영적 존재로 선재했다고 주장한다. ④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화적 해석을 한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지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해준다고 본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하여 그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각성하게 했으며 하와와 아담이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얻은 것이 영지라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하와를 아담보다 우월한 존재로 간주한다. 영지를 얻은 최초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지주의는 인간의 기원이나 본성과 타락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부정했으며, 역사적 사실을 신화로 취급하여 교회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인간관을 제시하였다.

 

현대의 영지주의: 대부분 영지주의자는 이원론자들이다. 이들은 물질과 육체는 본래 악한 것으로 보았으므로 성육신을 부정했고 영혼만은 순결하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삼분설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육신한 예수와 그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이니”(요이 1:7)라고 말하며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을 경계하고 있다.“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현대판 영지주의 신천지. 오늘날에도 영지주의 이단이 있다. 자기들만 갖고 있는 영적 비밀을 깨달아야 구원받는다고 유혹하는 신천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교주 이만희가 자칭 보혜사이기 때문에 성경의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을 알려주고 풀어줄 수 있다고 한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믿을 수 있고, 믿은 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지신행). 성경의 비유와 계시록의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지식을 아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서 성령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단 교주들은 자신을 보혜사, 동방의 감람나무, 이슬성신, 약속된 목자, 사도 요한격 목자, 즉 이긴 자, 만왕의 왕, 만유에 대주재, 총회장 등으로 신격화한다. 

 

영지주의 이단 구원파. 정통 교회는 모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박옥수는 『죄사함, 거듭납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포교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2』p.50 기쁜소식사)라고 강조한다. 성경은 분명히 “회개하여…죄 사함을 받으라”(행2:38)고 말씀하고 있다. 박옥수는 의지적 회개가 없이 자신의 죄가 사해진 것을 “의지와 관계없이 수동적으로”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영지주의적 이단사상으로 많은 이들을 미혹하고 있다. 정통 교회는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도 성품은 여전히 사함 받은 죄인이라고 가르치나, (우리는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 박옥수는 신분과 성품이 한꺼번에 의인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회개로 시작하여 회개로 끝나는 종교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무지한 박옥수는 죄 사함을 깨달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교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은 것이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신분상 의인이지만, 성품상으로는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 지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딤전1:15)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으면 구원받는다고 미혹하는 박옥수 집단도 대표적인 영지주의 이단이다. 구원파는 매우 성경적인 듯 보이지만 신학적 오류에 빠진 집단이다. 신구원파라고도 불리는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는 죄사함의 복음을 깨닫고 거듭납과 죄사함을 받으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된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에게 거짓된 위안을 주고 있다(최태영).

 

신인합일: 기독교 영지주의는 신자들이 ‘영적인 지식’(깨달음)과 ‘영적인 안내자’(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 안에 잠재된 신성이 되살아나서 우주의 궁극적 신성과 일치됨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지주의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신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만일 인간이 정말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른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땅에 있는 피조물인 인간이 초월자이시며 절대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기도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는 신자들이 “깨달음”과 영적인 세계에서 내려오는 순간적인 ‘영적인 섬광’(spark)을 통해 자기 안에 내재된 신성이 각성하여 자신도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굳이 다른 신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원파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더 이상 기도가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영지주의 사상에 비롯된 것이다(정이철, 영지주의와 구원파 교리, 2014).

 

⑷그리스도: 이와 같은 잘못된 타락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졌다.

①삼위일체 하나님의 부정이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믿지 않고 천상적인 존재인 에온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리스도는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가르쳤다. ②성육신 교리의 부정이다.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물질과 육체는 참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다. 

 

가현설(docetism): 외견상으로 사람으로 보인 것뿐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에 대해 언급한 것(요일4:2-3)은 가현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가현설은 물질은 악하며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헬라사상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육체를 가졌을 경우, 그의 신성에 손상이 갈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 받게 되었다. 1세기 말 케린투스(Cerintus)는 그리스도와 예수를 구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단순히 인간성과 일시적 병존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이었던 반면, 그리스도는 세례받을 때 그에게 내려온 신적 존재였다.”

 

③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환상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한 의미의 육체일 수 없고 육체의 모습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인간 예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가현설적 기독론(docetism)을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한 육체일 수 없고 단지 육체의 모습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었다. ④부활한 그리스도의 육체적 실재의 부정이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육체적 부활과 같은 정통교회의 일반적 신앙을 소박한 오해로 간주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⑸구원: 영지주의는 구원이 지식(깨달음)에 의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①구원은 영의 해방과 귀환이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구원은 물질적인 것과 연합됨으로 육체 속에 갇혀 이 세상에서 데미우르고스와 그 세력들의 지배 아래 있는 영이 해방되어 본래의 거처, 천상계로 귀환하는 것이다. ②구원을 지식을 통해 성취된다. 영지주의는 구원이 예수의 희생적 죽음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영지, 즉 세계와 에온들과 참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함으로 이뤄진다고 보았다. 이들은 믿음과 관련하여 지식을 과대평가한다. 엘리트를 위해 보다 높은 지식 즉, 비밀적인 지식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브라운, 2001). 구원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박옥수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친다. 박옥수는 정통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의지적인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전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구원파를 영지주의적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류광수 다락방도 죄인임을 인정하고 이를 통회하는 회개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고 다만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원죄와 자범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단전문가들은 다락방이 지방교회의 삼분설과 박옥수의 깨달음, 그리고 김기동의 귀신론이 혼합된 영지주의 이단이라고 분별하고 있다.

 

③인간계층에 따라 구원의 가능성이 좌우된다. 최하층인 육적 인간, 즉 이교도들은 어느 경우에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멸망 받을 인간이다. 중간층 혼적 인간은 신앙을 가졌으나 영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구원받을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는 인간이다. 최고층 영적 인간은 참된 기독교인으로 영지로 구원을 얻은 인간이다. 영적 인간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 예수의 교훈을 파악해 깨닫기만 하면 된다.

 

도덕, 윤리, 죄를 초월하는 영지주의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의 구원파가 인간의 구원을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나, 구원받은 이후 육신으로 짓는 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보지만, 영지주의는 인간이 영, 정신(혼), 육체,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구원파도 인간을 ‘영적인 인간’(Pneumatics), ‘정신적인 인간’(Psychics), ‘육체적인 인간’(Hylics)으로 구분하는데, 영지주의 사상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다. 영지주의는 자신들이 속하여 있는 영적인 인간 부류가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으로 분류하면서 이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적인 인간’부류는 영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구원파가 신자들이 ‘구원에 관한 깨달음’을 통해 거듭난 이후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영혼과는 무관하고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구원파의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영지주의 사상은 악한 물질세계 속에 속박되어 있는 자신의 신성에 대해 무지, 무감각한 상태에서 살던 사람에게 ‘영적인 깨달음’, 또는 신성을 일깨우는 ‘순간적인 섬광’이 임하면 궁극적 영적 실체와 일치되어 진다고 한다.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은 ‘영적 안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신인합일’의 길로 들어선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신인합일의 경지에 들어서면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하게 초월하고, 악한 물질세계로부터 더 이상 영향받지 않는다는 이론적인 주장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는 영적인 지식을 얻어 신성의 세계를 향하는 해탈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인간 세계의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영적 지식을 통해 물질세계의 운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 지식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육신이 무슨 일을 할지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도 성립된다. 그래서 영지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는 각종의 쾌락과 방종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금욕생활이 나타나기도 했다. 구원받은 후로는 완전해졌고, 육체로 범하는 죄가 더 이상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4. 반영지주의 교부들


영지주의의 주요교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들의 창조론, 구원론, 신론, 기독론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하거나 위협했다. 물질세계를 영원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저급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 잘못된 결과로 간주하는 창조론은 물질세계를 긍정하는 유대기독교 신앙을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영지주의는 믿음이 아닌 지식에 의해 구원을 얻으며, 육체적인 몸의 구원과 부활을 부정했다. 최초로 영지주의를 논박한 사람은 저스틴(Justin)이었다. 마르키온에 대해 귀신들에게 영향을 받은 자들로 간주했으며, 시몬 마구누스(행8장)의 교리를 사악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경멸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반(反)이단 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이레니우스의 <이단논박>이다. 그는 전통과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여 이단들을 논박했다.

 

터톨리안(Tertullian, 150-220)은 서구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라틴교부였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영지파들을 신랄하게 책망하고 비판하였다. 클레멘트(Clement, 150-216)는 “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거나 기독교인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참된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논박하였다. 오리겐(Origen, 186-254)은 단순한 신앙에 반대하고 올바른 성경해석을 통한 지식을 높이 평가했다.

 

현교(顯敎)와 밀교(密敎)


종교는 크게 현교와 밀교로 구분된다. 현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모두 공개되어 있고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예산과 결산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반면에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의 일부는 외부자에게 공개되고 그 일부는 내부자들에게만 공개되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영지주의는 밀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단 사이비는 대부분 밀교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집회 참석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고 교리와 의식과 제도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감춰진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내용을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가르친다. 신천지 교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심지어 전도방법과 같은 내부유인물이나 분서의 유출도 철저히 금하고 있다. 밀교는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재정관리가 불투명 하는 등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이러한 표리부동의 ‘비밀단체체제’는 밀교적 성격을 띠는 이단사이비집단의 전형적 특징이라 하겠다. 신천지는 현대판 영지주의 집단으로서 교리와 제도와 의식의 일부가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는 밀교의 성격이 강하다.

 

신천지는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구원관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신천지 12지파에 속해야 신천지 예수교장막성전에 등록되며 144,000명에 녹명되고 이들만이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된다고 믿고 시인하게 한다. 6개월간의 성경공부를 마칠 즈음에 지금까지 배운 계시의 실상이 바로 마지막 때의 메시아요 보혜사인 이만희를 통해서 밝힌 구원의 진리임을 이야기한다. 신천지 집회는 신천지 교인에게 발급되는 ID카드를 소지한 자에게만 허용된다. 보편적인 교회는 교회의 일치와 가정의 화합을 위해서 바른 교훈을 전하는데, 현대판 영지주의 밀교인 신천지는 신앙의 이름으로 가정의 해체와 교회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영지주의


교회사적으로 거의 모든 이단은 자신들만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공교회를 혼란시켰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랬고 몬타니즘이 그랬으며 근래 한국교회의 문선명, 박태선, 이만희, 박옥수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이장림의 10월 28일 재림론도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나 “구원의 비밀”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것은 류광수 다락방 전도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류광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무슨 “비밀”무슨 “비밀”이니 하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복음의 비밀”, “구원의 비밀”, “전도의 비밀”,  “일꾼 키우는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등과 같은 말이다. 류광수는 자기 또는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지식 그노시스(gnosis)를 갖고 있다고 호도한 것이나, 문선명, 박태선, 이만희, 안상홍 등 사이비나 이단들이 천국행을 보장받은 집단인 것처럼 기성교회를 미혹했던 현상과 별다를 바가 없다.

 

한편 “현대 국학과 뇌과학의 창시자”로 자처하는 “대선사 일지 이승헌”은 1985년 단학선원을 설립하고 2002년 이를 단월드로 개명하였다. 이승헌의 단학은 신일합일의 천화사상과 종교혼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승헌은 “진정한 ‘나’는 우리 내면에 있는 순수한 영혼의 불꽃, 바로 ‘神性’이다”고 주장하고, “모든 인간의 참 의미와 삶의 참 목적은 이 신성을 깨닫는 데 있다”라고 강조하였다. 단학을 통해 인간의 완성이 이뤄지는데, 인간완성의 3단계는 육체의 완성, 정신의 완성, 천지인 조화의 완성인데, 이 마지막 단계가 천화라고 한다. 이승헌에 의하면, 단학수련을 통해 신성을 밝히 깨닫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단학수련을 통해서 우주의 신성과 여러분의 신성이 만나는 순간이 깨달음이요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승헌의 신선도는 신일합일을 통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단월드는 영지주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의 옷을 입고 재현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영지주의는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한 종교운동이었다. 교회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 신앙신조와 권위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영지파의 비의(secret teaching)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신약정경, 사도적인 전통, 사도적 권위가 정립되었다. 영지주의 도전으로 신학활동이 촉진되었다. 따라서 많은 반영지주의 교부들이 배출되어 올바른 신론, 기독론, 인간론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인 동시에 진정한 하나님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영지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이단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혼합주의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우리에게 지적해주는 동시에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생존을 걸고 확립한 성서적 기독교 진리를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참고문헌

근광현. [기독교 이단 길라잡이]. 누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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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날드 맥컬리 ․ 제롬 바즈. <인간, 하나님의 형상>. 홍치모 역. IVP, 1992.

박용규. “류광수 다락방 연구보고서,”[종교와 진리]. 2017년 6월호.

이성호. “이단의 출현과 교회의 응전,”<개혁신학과 교회>, 교려신학대학원, 2012.

정동섭.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죠이선교회, 2010.

정이철. “세월호 사건으로 다시 살펴보는 구원파: 정상적인 기업정신이 없는 이단집단에 의한 예고된 참변,”[바른 신앙]. 2014.

해롤드 브라운.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 라은성 역. 그리심, 2001.

허호익. [한국의 이단 기독교: 주요이단의 계보와 교리 비판]. 동연, 2016.

2021/08/03

알라딘: 한국의 이단 기독교 - 주요 이단의 계보와 교리 비판 허호익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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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단 기독교 - 주요 이단의 계보와 교리 비판   
허호익 (지은이)동연출판사2016-11-04

전자책 22,000원 

600쪽

책소개

현재 한국 사회는 시계 제로이다. 바로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되는 국정 농단 사태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대부터 영세교의 교주인 최태민과 관계를 갖다가 최태민 사후 '그의 영적 후계자'이자 딸인 최순실에게 온통 농락당한 사건이다. 이단이 바로 그렇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정상적인 사고나 생활을 못 하도록 만든다. 한 나라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조차도 그 손아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한국에 유독 많이 난립하는 기독교 이단에 대해 고발하고 그 실체를 밝히는 일은 많은 송사나 죽음의 위험까지도 무릅쓴 일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을 눈앞에 둔 노신학자, 저자 허호익은 이제껏 연구해 온 이단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사회에 막대한 악영향력을 행사하며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정을 붕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한국교회가 이단의 교리와 전도 전략을 분별하여 경계심을 가짐으로써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경건한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 한국교회의 이단 기독교 연구 현황
I. 한국 개신교의 이단 기독교 연구 단체
II. 예장 통합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운영지침’(2007)
III. 예장 통합의 ‘이단사이비 표준 지침과 사례’(2008)
IV. 한국교회의 이단 규정 및 철회에 관한 논란
V. 한기총 전현직 주요 간부의 이단 연루설 논란
VI. 이단 연구의 새로운 과제

제2장 | 김성도의 ‘새주교’와 한국 이단 기독교의 뿌리
I. 김성도 권사, 한국 이단 기독교의 뿌리
II. 김성도의 입신(入信)과 신앙생활
III. 직통 계시 사건과 출교 처분
IV. ‘새주파’의 형성과 ‘성주교’의 창립
V. 김성도의 재림 예수 교리
VI. 원죄의 성적 타락론과 피가름 교리
VII. 병자 치유와 생수 교리
VIII. 김성도 후손들의 통일교 합류

제3장 | 한국 이단 기독교의 피가름 교리의 계보
I. 서론
II. 백남주의 ‘천국 결혼’과 ‘거룩한 성교’
III. 황국주의 피가름 교리와 혼음
IV.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와 성체(聖體) 복귀론
V. 문선명의 피가름 교리와 생식기 교리
VI. 정득은의 「생의 원리」와 성혈 전수 및 영체교환 교리
VII. 박태선의 「오묘」의 혈액정화 교리와 섹스 안찰
VIII. 피가름 교리의 최근 계보 : 변찬린, 박윤식, 정명석, 박명호

제4장 | 「격암유록」의 위작과 한국 이단 기독교의 종교혼합주의
I. 「정감록」과 「격암유록」
II. 「격암유록」의 위작 경위
III. 「격암유록」의 주요 논지와 서술 방식
IV. 박태선의 신앙촌과 「격암유록」
V. 통일교의 문선명과 「격암유록」
VI. 조희성의 영생교 승리제단과 「격암유록」
VII. 이만희의 신천지 장막성전과 「격암유록」
VIII. 도참사상과 기독교 이단들의 종교혼합주의

제5장 | 문선명의 통일교 집단의 최근 교리와 통일교의 세습
I. 문선명의 통일교 집단(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연혁
II. 2000년대의 문선명 신격화 과정
III. 천정궁 입궁 훈시(2006)
IV. 축복 가정과 평화통일가정당(2008)
V. 「평화훈경」 훈독과 영계보고서(2008)
VI. 통일교의 후계 구도와 문형진의 통일교 세습(2008)
VII. 문선명 사후 통일교의 모자 갈등(2015)
VIII. 문선명 일가의 비리 및 갈등과 통일교의 이단성

제6장 | 안상홍 ? 장길자의 ‘하나님의교회’ 집단의 교리
I.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의 연혁
II. 성령시대의 하나님의 새 이름 안상홍
III. 다윗의 예언으로 오신 재림 예수 안상홍
IV.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부부 신관
V. 안상홍의 신부 장길자와 하나님 어머니 교리
VI. 하나님이 세운 교회와 배타적 교회론
VII. 시한부 종말론의 오류
VIII. 하나님의교회의 국제적 물의와 이단성

제7장 | 이만희의 신천지 집단의 교리 ·257
I. 이만희 신천지 집단의 연혁
II. 재림 예수 이만희
III. 육으로 오신 보혜사 이만희
IV. 삼위일체론의 왜곡
V. 왜곡된 성서관과 실상풀이
VI. 진리의 성읍인 신천지와 배타적 교회론
VII. 신천지 12지파 144,000명의 배타적 구원론
VIII. 영육일체 신인합일의 왜곡된 영생론
IX. 신천지의 이단성

제8장 | 이만희의 신천지 집단의 포교 전략과 교육과정
I. 문제 제기
II. 신천지의 포교 교리와 전략
III. 신천지의 포교 대상자 섭외와 전략
IV. 복음방 교육의 주제, 목적, 방법
V. 무료 성경신학원 교육의 주제, 목적, 방법
VI. 신천지의 비밀 성경공부의 밀교적 성격
VII. 신천지의 위장 포교와 가출사례

제9장 | 박옥수의 구원파 집단의 구원론과 교회론
I. 구원파의 계열과 박옥수(기쁜소식선교회)
II. 박옥수 구원파의 구원론
III. 박옥수의 배타적 교회론
IV. 구원파의 이단성

제10장 | 변승우 집단의 교리와 예언 및 신유 사역 ·385
I. 큰믿음교회(현 사랑하는교회)의 연혁
II. 변승우의 주요 교리
III. 무분별한 예언사역과 치유사역의 문제점
IV. ‘사랑하는교회’로 개명한 큰믿음교회의 이단성

제11장 | 류광수의 다락방 집단의 교리와 전도전략
I. 류광수 다락방(세계복음화전도총회)의 연혁
II. 류광수 다락방 집단의 주요 교리
III. 다락방 전도운동 선교전략 및 해외활동
IV. 다락방전도총회의 이단성과 이단 해제 논란

제12장 | 영세교의 최태민과 그의 영적 후계자 최순실
I. 비선 실세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II. 여러 종교를 두루 이용한 영세교 교주 최태민
III. 최태민의 ‘육영수 여사 현몽’과 박근혜와의 만남
IV. 사이비 목사 최태민과 대한구국기도단
V. 최태민의 비리와 박정희 대통령의 친국
VI. 근령과 지만 남매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 탄원서
VII. 최태민의 영적 후계자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VIII.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혼합적인 신앙 양태

부록
I. 영지주의의 기독교 왜곡과 사도신경의 형성
II. 이승헌의 단학의 신인합일론과 단월드의 종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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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호익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신학박사: 조직신학 전공)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연세대학교 백낙준 명예총장 비서 역임
한국기독교학회 총무 역임
한국문화신학회 부회장 역임
한국조직신학회 회장 역임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역임
현대종교 편집자문위원
대전신학대학교 교수 퇴임

『한국의 이단기독교』, 동연, 2016 -2017년 세종도서(우수학술도서) 선정
『이단은 왜 이단인가?』, 연세신학문고 007, 동연, 2016.
『안티 기독교 뒤집기』, 연세신학문고 006, 동연, 2015.
『이자익 목사의 목회와 영적 리더쉽』, 동연, 2014. -제1회 이자익 학술상 수상도서
『야웨 하나님』, 동연, 2014.
『예수 그리스도 1, 2』, 동연, 2010. -제2회 대전신학대학교 학술상 수상
『통일을 위한 기독교 신학의 모색』, 동연, 2010. -제3회 한국기독교학회 소망학술상 수상
『신앙, 성서, 교회를 위한 기독교 신학』, 동연, 2009.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귀츨라프의 생애와 조선 선교활동』,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9.
『길선주목사의 목회와 신학사상』, 대한기독교서회, 2009.
『단군신화와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2003.
『예수 그리스도 바로보기』, 한들출판사, 2003.
『현대조직신학의 이해』, 대한기독교서회, 2003.
『그리스도의 삼직무론』, 한국장로교출판사, 1999.
『성서의 앞선 생각 I』,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V. G. Simkhovitch, 『예수의 사상과 역사적 배경』, 대한기독교서회, 1980.
K. S. Latourette, 『기독교의 역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2. 접기

최근작 : <신천지부터 통일교까지>,<천지인신학>,<한국 문화와 천지인 조화론> … 총 2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영세교 최태민과 그의 영적 후계자 최순실

“여러분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로 이끄는 이단을 몰래 끌어 들일 것입니다.
… 또 그들은 탐욕에 빠져 그럴듯한 말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털어 갈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1-2절)

현재 한국 사회는 시계 제로이다. 바로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되는 국정 농단 사태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대부터 영세교의 교주인 최태민과 관계를 갖다가 최태민 사후 ‘그의 영적 후계자’(본서 469-508쪽에서 규정한 용어)이자 딸인 최순실에게 온통 농락당한 사건이다. 마치 위에 있는 성경 구절처럼.
이단이 바로 그렇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정상적인 사고나 생활을 못 하도록 만든다. 한 나라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조차도 그 손아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한국에 유독 많이 난립하는 기독교 이단에 대해 고발하고 그 실체를 밝히는 일은 많은 송사나 죽음의 위험까지도 무릅쓴 일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을 눈앞에 둔 노신학자, 저자 허호익은 이제껏 연구해 온 이단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사회에 막대한 악영향력을 행사하며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가정을 붕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한국교회가 이단의 교리와 전도 전략을 분별하여 경계심을 가짐으로써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경건한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주요 이단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기독교 이단과 그 교리들은 실로 방대하다. 특히 근래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이단 기독교들을 망라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김성도의 ‘새주교’, 백남주의 ‘천국 결혼’과 ‘거룩한 성교’, 황국주의 피가름 교리와 혼음,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와 성체(聖體) 복귀론, 문선명의 ‘통일교’, 정득은의 「생의 원리」와 성혈 전수 및 영체교환 교리, 박태선의 「오묘」의 혈액정화 교리와 섹스 안찰, 피가름 교리의 최근 계보: 변찬린, 박윤식, 정명석, 박명호, 박태선의 ‘신앙촌’, 조희성의 ‘영생교’와 승리제단,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장길자의 ‘하나님의교회’, 박옥수의 ‘구원파’와 기쁜소식선교회, 변승우 집단의 큰믿음교회(현 사랑하는교회), 류광수 ‘다락방’(세계복음화전도총회) 그리고 ‘영세교’의 최태민과 그의 영적 후계자 최순실까지.
이 많은 이단들에 대해 그 뿌리와 계보는 물론 세세한 교리적 문제와 그 행태를 파헤쳤으며, 더 나아가 조직신학자이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의 전력을 발휘하여 신학적 진단과 함께 신학 형태별 분류(신론적 이단, 기독론적 이단, 성령론적 이단, 삼위일체론적 이단, 성경론 및 계시론적 이단, 교회론적 이단, 구원론적 이단 등)도 꾀하였다.

이 책을 펴내며

최근 영세교(靈世敎)의 교주였다가 사이비 목사가 된 최태민과 그의 딸 최순실로 인해 빚어진 국정 농단은 대통령의 임기 말에 폭로되곤 하였던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와 차원을 달리한다. 사이비 종교들에 의해 자행될 수 있는 온갖 비리적 행태들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에 온 세계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는 한 개인과 가정의 몰락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를 혼란시키고 나아가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사적 실체를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슬픔과 분노를 가지고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현재 내외적으로 삼중적 위기에 처해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정통 기독교’의 교세가 침체하고 사회적 공신력이 저하되어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덩달아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고 거짓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안티 기독교’의 세력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100개가 넘는 ‘이단 기독교’ 집단들이 경쟁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기성교회의 신도들을 미혹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은 「이단은 왜 이단인가」(허호익 지음, 2016)의 후속 작업으로서 한국교회사를 통해 이단이 형성되고 계승되어 온 역사와 계보 그리고 이단들의 주요한 교리의 문제점과 그들의 전도전략을 소개한다. 이단의 교리와 전도 전략을 분별하여 경계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이단의 미혹으로부터 경건한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접기

2021/07/21

현대 한국의 안티 종교운동 강돈구



J. Daesoon Acad. Sci. 2017; 29:241-278

pISSN: 1598-3439

DOI: https://doi.org/10.25050/jdaos.2017.29.0.241
Article
현대 한국의 안티 종교운동
강돈구
1 , * , †
Anti-religious Movements in Contemporary Korea
Donku Kang 1 , *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

Received: Oct 12, 2017 ; Accepted: Oct 30, 2017

Published Online: Dec 31, 2017
초록


이 논문은 한국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의 대대적인 표출 현상(안티 종교운동)을 정리하고 유형화한 뒤 그 의미를 분석한 글이다. 이를 위해 먼저 현대의 범세계적인 종교변동부터 살폈다. 세계종교는 지구촌 의식 출현에 영향을 받아왔다. 그 결과 그들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유지한 채 여러 종교의 공통 기반 위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하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려들거나, 전통을 재창조하려하거나 혹은 현대에 맞게 변용시키거나, 혁신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거나, 민족주의와 결탁하거나 하는 여러 유형으로 중첩되어 나타나곤 한다.

세계종교에서 살필 수 있는 이러한 변동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관찰되는가? 대체로 현 시대의 한국 종교상황은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나 혁신 요구, 소수종교에 대한 공격, 학계와 언론의 종교 개혁 요구, 종교무용론 전파, 유튜브 등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종교 비판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종교 비판은 안티 종교운동으로 읽혀진다. 종교 외적으로는 서구 학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종교무용론이나 과학 또는 역사적 관점에서의 종교 비판 이론이 서점을 중심으로 전파되고 있으며, 종교 내적으로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자신의 내부를 반성하고 새로운 초종교적 영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과거에도 물론 종교 일반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그 내용과 맥락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 운동은 분명 새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개신교가 주요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변동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aims to classify broadscale anti-religious movements in Korea based on critical public sentiment and analyze the meanings of these movements. To carry out the research, global religious changes that have occurred in modern times were closely looked into first. The world religions have had an influence on the world’s religious awareness. As a result, they intend to acquire universality on their own individual grounds while keeping consistency with the past. This phenomenon used to appear to retain the identity, recreate tradition, transform itself to fit in the present times, pursue innovation, or even become overshadowed by other forms of thought such as when religions have collided with nationalism.

How does Korean society perceive the changes that emerged in world religions? In general, the circumstances that Korea faces in this era tend to manifest themselves via the Internet, multimedia, and Youtube wherein they sound off on religion and this includes criticism of Christianity, demand for reformation, attack on minor religions, pro-reform academic circles and media, and the propagation of anti-theism. Criticism of religion is interpreted as an anti-religious movement. The secularism and anti- theism brought up by some Western scholars and critical theories of religion from scientific or historical perspectives are being spread through bookstores. Christianity is prone to reflecting on itself and trying to emphasizing a meta- religious spirituality. This in short, characterizes anti-religious movements in Korea.

Indeed, criticism against particular religions has also emerged in the past. However, anti-religious movements that have recently come into existence in Korea are in some regards unprecedented when compared to that of the past in terms of their patterns and context. Especially, the active anti-Christianity movement in general is definitely a new phenomenon. This research mainly focused on Christianity, but on-going anti-religious movements will be a major topic for further research that aims to understand the religious changes unfolding in Korea.


Keywords: 종교변동; 종교비판; 종교 대안운동; 종교 개혁운동; 무종교; 안티종교; 무신론; 진화론; 종교권력
Keywords: Religious change; religious criticism; secular-humanist movements; the Reformation; irreligiousity; anti-theism; atheism; the theory of evolution; religious authority/power

Ⅰ. 머리말

본 논문의 목적은 미디어와 책자 등을 통해서 현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의 대대적인 표출 현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웃 종교들 사이의 상호 비판적인 견해의 표출, 특정 종교의 자기 개혁적인 견해의 표출은 이전 시기에는 그다지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 유입 때 신라에서 있었던 전통 종교와의 갈등,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 전 시기에 있었던 불교에 대한 유교 측의 비판, 조선 후기 서학과 천주교에 대한 유교 측의 비판, 20세기 초 유교 전반에 대한 비판, 1920년대 사회주의 측의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적이 있다. 그리고 개신교 유입 이후 천주교와 개신교의 보이지 않는 상호 견제와 비판이 있었고, 이후에도 개신교의 전통종교와 소위 이단에 대한 공격도 끊이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 분위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양과 질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수준에 있다. 20~30년 전에만 해도 전혀 있을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를 ‘개독교’로 지칭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 그리고 ‘가나안 성도’1)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개신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전반적인 개혁 의지 또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유럽과 영미권에서도 이미 살필 수 있다.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보면 종교 전반에 대한 비판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이 유럽과 영미권에서도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종교 전반에 대한 비판 서적들은 대체로 영어권에서 발간된 책들의 번역본인 점을 감안해 보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종교 비판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함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일단 국내의 경우만을 살피는 것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자 한다. 차후에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우리나라의 경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티 종교운동’이라고 하면 도킨스(R. Dawkins) 등의 무신론 운동이나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티 개신교2) 운동을 주로 염두에 둘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들 이외에 종교 일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과 특정 종교에 의한 자기 개혁적이고 대안적인 종교 내적 비판, 그리고 특정 종교가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이웃 종교에 대한 비판 운동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Ⅱ장에서는 우리나라의 안티 종교운동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범세계적인 종교의 변동 추세를 개괄적으로 살필 것이다. 그리고 Ⅲ장에서는 본 논문의 주제를 염두에 두고 보다 좁혀 우리나라의 종교계의 현실을 개괄적으로 살필 것이고, 본 논문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Ⅳ장에서는 안티 종교운동의 내용을 유형별로 정리해 볼 것이다.

Ⅱ. 종교변동의 세계적인 추세3)

이제는 한국의 종교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의 종교도 세계적인 변화 추이와 무관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종교의 변동에 대한 인식은 세계종교의 변동을 아울러 고려할 때 보다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종교의 변동 가운데 특히 우리는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의 종교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상 변화는 항상 있어 왔으며 21세기 초반부인 현재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요즈음의 변화는 대체로 다양성과 깊이, 그리고 전방위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 변화의 양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현재에는 그 이전 시기와 달리 생태, 핵전쟁, 인구, 식량, 빈부의 차 등 그야말로 전지구적인 위협에 전면적으로 대처하여 그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의식이 증대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지구상의 그 어느 구석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구적인 시각에서 그 발생 원인을 찾고 해결 방안을 강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지구촌 의식의 출현은 세계종교의 변동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지구촌 의식의 출현과 함께 이제는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탈피하려는 경향도 동시에 증대하고 있다. 최근까지는 서구와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 종교간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느 종교도 우위적이고, 강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종교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다. 서구도 이제는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로, 그리고 기독교도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로 점차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거에는 세계종교(world religions)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으로 분류되었으나 이제는 중국종교와 일본종교가 포함되어 적어도 종교와 관련해 볼 때 동아시아가 보다 주목을 끄는 관심 지역이 되었다.4)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가 이제는 서구권이 아니라 제3세계에서 더 영향력이 커가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를 특징짓는 또 다른 개념으로 우리는 여전히 근대성(modernity)과 탈근대성(postmodernity)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근대성과 탈근대성이라는 개념의 의미와 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논쟁을 소개하거나 또는 그러한 논쟁에 끼어들고 싶은 의도는 없다. 하지만 사실이야 어찌되었든 ‘종교와 근대성’, 그리고 ‘종교와 탈근대성’이라는 주제 아래 요즈음의 세계종교의 변동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다.

종교와 근대성의 관계를 친화성(embrace), 비친화성(ambivalence), 배타성(exclusion) 가운데 어느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세계종교의 변동에 대한 인식은 각기 다르다.5) 그리고 현대종교의 변동을 탈근대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현대종교에 대한 이해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뉴에이지 운동과 같은 새로운 종교운동의 출현을 탈근대성의 증후로 설명하든지, 또는 특정종교의 입장에서 탈근대성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스스로의 종교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 등으로 전개될 수 있다. 비록 최근에 근대성과 탈근대성이라는 개념으로 세계종교의 변동 추이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비생산적이라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기는 하지만,6) 이러한 담론이 세계종교의 변동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현재 기독교는 거의 모든 나라에, 불교와 힌두교는 80여 개 국에, 유대교는 110여 개 국에, 그리고 이슬람교는 160여 개 국에서 활동하고 있다.7) 과거와 달리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종교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또는 다른 종교의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보다 쉽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는 이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또한 다른 종교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간 상호 이해의 증진이나 교류, 그리고 생태, 인권, 평화 등을 위한 공동 모임이나 기도회의 개최 등을 현대 세계 종교상황의 특징으로 지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교사상적인 면에서도 과거에는 특정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제는 여러 종교의 공통 기반 위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스미스(W. C. Smith)8), 힉(J. Hick)9), 슈온(F. Schuon)10), 길희성1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여러 이유로 인해 현재 세계종교는 과거와의 연속성을 유지한 채 다양한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종교의 이러한 변화 양상은 아래와 같은 유형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주변 상황의 변화를 완전히 외면하고 자기 종교전통의 테두리 안에 끝까지 머무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종교이다. 서구 기독교와 이슬람교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주의 운동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리고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종교(cult, sect 등)와 우리나라 개신교의 대부분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둘째, 전통을 창조적으로 복원하려는 양상을 보이는 종교이다. 대체로 이들 종교도 역시 보수적이고 우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전통의 재창조라는 측면에서 별개의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현대 힌두교운동과 개혁적 유대교운동, 그리고 불교에서 성지를 복원한다든지, 또는 수행 방법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셋째,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사상이나 의례, 조직 등을 적절히 변용시키는 종교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종교는 물론 다른 종교로부터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천주교가 미사에서 라틴어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생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교리에서 생태 관련 부분에 주목하는 것 등을 이 유형에 포함시킬 수 있다.

넷째, 현재의 세계적인 상황이 매우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비록 과거의 전통과 단절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좀 더 혁신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종교이다.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같이 이러한 혁신적인 변혁을 추구하기에는 성격상 어려움이 많은 종교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 예수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신관을 혁신시키려는 움직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실패에 그치기는 하였지만 유교의 종교화 운동12)을 이 부류에 포함시킬 수 있다.

다섯째,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해서 기존의 종교전통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종교이다. 아프리카의 수 천 개의 독립교회(African Independent Church), 일본의 신종교, 기독교 컬트와 섹트, 그리고 서구에서 활동하는 아시아 종교가 이 부류에 속한다. 새로운 종교는 역사상 항상 있어 왔지만 근래 세계적인 상황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종교의 발생 빈도는 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여섯째, 지구촌 의식의 증대로 종교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한편으로 종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한다면 종교의 토착화, 지역화, 지방화 현상을 모두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에서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그 지역에서 종교와 민족주의의 결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과 여러 소수민족을 포괄하고 있는 중국 등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세계종교의 변동 유형은 엄격히 구별된다기보다는 중첩적이다. 따라서 한 종교전통 내에서도 여러 유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위에서 제시한 유형들을 중심으로 세계종교는 과거 전통과의 연속선 위에서 나름대로 변화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한국종교도 대체로 위에서 제시한 유형을 중심으로 그 변동의 추이를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Ⅲ. 현대 한국종교계의 또 다른 현실

일반적으로 최근 한국종교계의 현실로는 신도 수의 변천을 중심으로 개신교와 불교가 쇠퇴하는 반면 천주교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거나, 또는 개신교 교회의 대형화 추세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 밖에 현대 한국종교계의 또 다른 현실로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몇몇 현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도 이광수 등에 의해 개신교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으로 예를 들어서 한국 교회가 너무 권위적이고 계층적이고, 목사들의 교육 수준이 낮으며,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의 내용들이 많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된 적이 있기는 하다.13) 그러나 개신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은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그 예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정종교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해도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 개신교의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 의해 일제하의 친일 문제, 그리고 이승만 정권 때의 정교유착 등이 제기되기는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이러한 지적은 학문의 울타리 내에서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현재 안티 개신교 사이트와 서적 등을 통해서 제기되고 있는 바이블과 교리, 조직 등 개신교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개신교 내부의 개혁적이고 대안적인 방안이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지금까지 개신교는 성장 위주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완상, 오강남, 길희성, 김용옥을 위시해서, 이제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개신교 전통 교리의 재해석뿐만 아니라 소위 대형교회의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개신교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실험적인 교회 운동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소위 소수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종교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다른 나라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개신교와 유사성이 있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개신교 중심의 집요한 공격은 몇몇 잡지와 목사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과거와 달리 공격을 받는 소수 종교의 입장에서 현행법에 의거하여 방어를 하고 있어 개신교 중심의 공격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개신교와 유사성이 있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개신교의 비판적인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소수종교의 탈퇴자들에 의한 해당 종교에 대한 비판도 역시 해당 종교의 현행법에 의거한 방어와 해당 종교의 적극적인 대처로 인해 그 양상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종교 관련 학자와 언론인들이 한국종교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14) 과거에는 적어도 종교학자들은 종교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예를 들어서 ‘종교 권력’이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종교 전반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학자들이 늘기 시작하였다. 종교학자들도 이제는 종교에 대한 애정을 지니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의 종교들이 그야말로 종교다워지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하기는 하나 특히 앞으로 점차 제도종교가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우혜란의 주장은 이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만 하다.15)

다섯째, 종교무용론을 주장하는 영미권 서적들이 국내에 다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서구에서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의 창조론를 반대하고 진화론을 옹호하는 도킨스, 해리스, 히친스 등이 종교의 비합리성과 해악성을 논하는 전투적 무신론 관련 책들을 출간하였다. 이들의 책이 최근에 국내에 다량으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성격의 책들이 독자들로부터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였을 것으로 판단되나, 근래에 이들 책은 많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니체, 러셀 등 개신교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 서적들도 여전히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영화나 유튜브가 많이 만들어지고 유포되고 있으며, 안티 종교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다. 영화는 외국16)뿐만 아니라 국내17)에서도 만들어지고 있고, 유튜브는 주로 미국 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대체로 각 종교에서는 자신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홈페이지는 주로 각 종교의 공식적인 입장을 소개하고 있는 것에 비해 안티 종교 사이트에서는 각 종교의 비공식적이고, 비판적인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각 종교에 대한 지식이 주로 공식적인 홈페이지나 또는 각 종교의 성직자나 관련 학자들이 쓴 책자 등을 통해 유통되었으나, 요즈음은 안티 종교 사이트를 통해 각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도 여과 없이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편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종교에 대한 어찌 보면 조잡하고 왜곡된 지식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위험이 있다.

지금까지 본 논문과 관련해서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세계 종교변동의 상황과 아울러 한국 종교 상황의 또 다른 현실 몇 가지를 살펴보았다. 아래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Ⅳ. 안티 종교운동의 유형별 고찰

1. 종교 일반 비판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서구에서 제기되었고 따라서 주로 신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무신론’ 또는 ‘종교무용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학자가 쓴 무신론을 소개하는 글이 있기는 하나18),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종교무용론 관련 서적들은 거의 외국 서적의 번역본들이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유통되고 있는 서적들을 중심으로 종교 일반의 비판 내용들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합리적 비판

종교와 관련해서 이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학자로 우선 니체와 러셀을 열거할 수 있다. 니체의 『안티크리스트』는 원래 1895년에 출간된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박찬국 옮김, 아카넷), 2014년(나경인 옮김, 이너북) 그리고 2016년(두행숙 옮김, 2016)에 각각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의 말미에는 니체가 직접 작성한 ‘그리스도교 탄압법’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 이 책이 여러 차례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책은 니체 자신의 종교 편력, 그리고 니체가 책을 쓸 당시 유럽의 종교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니체가 아무리 저명한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종교 관련 주장이 보편적인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셀은 1956년에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글을 포함해서 15개의 종교 관련 글들을 묶은 책을 발간하였다.19) 그는 이 책에서 종교가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 주었고, 지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면에서도 해롭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증거에 입각해 확신하는 습관, 증거가 확실하게 보장하는 정도까지만 확신하는 습관이 일반화된다면 종교로 인한 폐해는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열린 가슴과 열린 정신을 가지도록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20) 러셀의 이러한 견해는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자의 종교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책으로는 해리스21)와 히친스22)의 책을 열거할 수 있다. 해리스는 기성종교가 비이성적이고 편협한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하였고, 히친스 역시 종교의 독선과 불관용의 측면을 비판하고,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택한 문화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모두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종교보다 이성을 중요시하는 합리주의의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2) 진화론적 비판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비판의 전형적인 예는 도킨스의 책23)에서 찾을 수 있다. 도킨스는 유전자에 토대를 둔 생명의 진화를 탐구하는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그리고 발생학을 전공하였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The God Delusion』이라는 이 책의 영어 제목에서 살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망상은 모순되는 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정신장애의 일종인데 신에 대한 믿음이 바로 망상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는 종교의 해악과 무용성을 설파하고, 종교보다 이성과 과학을 신뢰하고 신을 버려야 해방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하고, 종교의 대안으로 행복하고 도덕적이고 지적인 무신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Richard Dawkins Foundation)’24)을 설립, 무신론자들을 규합하여 무신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도킨스의 또 다른 책들로는 『눈 먼 시계공』 (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4), 『조상 이야기 –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이한음 옮김, 까치, 2005), 『지상 최대의 쇼』 (김명남 옮김, 김영사, 2009), 『이기적 유전자』 (홍영남ㆍ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2010),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 종교ㆍ신화ㆍ미신에 속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라!』 (김명남 옮김, 김영사, 201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ㆍ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바다출판사, 2012), 『에덴의 강』 I (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4), 『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이한음 옮김, 바다출판사, 2015), 『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가 선사하는 세상 모든 과학의 경이로움』 (최재천ㆍ김산하 옮김, 바다출판사, 2015), 『확장된 표현형 - 이기적 유전자, 그 다음 이야기』 (홍영남ㆍ장대익ㆍ권오현 옮김, 을유문화사, 2016),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 생명의 역사, 그 모든 의문에 답하다』 (김정은 옮김, 옥당, 2016),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1, 2』 (김명남 옮김, 김영사, 2016) 등이 있다. 한 사람의 책이 이렇게 꾸준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은 도킨스의 주장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이 우리나라에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웨이드의 『종교유전자』25)는 영어 제목 『The Faith Instinct: How Religion Evolved and Why it Endures』(2009)이 암시하고 있듯이, 종교는 인간의 진화적 성공에 필수적이었고, 종교행위는 진화적으로 형성된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보이어는 『종교, 설명하기』26)에서 종교는 정상적인 인지능력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부산물이고 신은 결국 인간이 창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노렌자얀은 보이어와 유사하게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27)에서 종교는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탄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3) 역사적 비판

종교 일반에 대한 역사적 비판은 주로 기독교의 예수를 대상으로 제기되고 있다.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예수 관련 이야기가 당시에 주변 지역에 존재했던 여러 신화적 이야기들이 유대식으로 각색된 것에 불과하며, 예수는 따라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신화적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8) 이들에 의하면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것이 기독교 초기에는 전혀 의미가 없었으며, 예수의 역사적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게다가 초기 기독교는 영지주의가 대세였고, 바울도 원래는 영지주의자였으며, 따라서 바이블의 꽤 많은 분량이 영지주의 입장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의미가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나아가서 문자주의 기독교가 역사적 거짓말이라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토대는 조만간 반드시 전복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9) 오강남이 예수 관련 이야기를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 신화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오강남의 견해는 이들의 주장과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30)

루벤슈타인은 이와 달리 오히려 나사렛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는데, 4세기의 가톨릭교회가 예수를 신과 가까운 위대한 인간이라는 아리우스의 입장 대신에 예수를 신과 동일 본질이라는 아타나시우스의 입장을 선택하면서 비로소 예수가 신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31)

이 밖에 예수는 로마군인 판테라의 사생아라거나,32) 또는 예수는 13세부터 29세까지 인도에서 활동했다거나,33) 그리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였다거나,34) 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반쯤 죽은 상태에서 끌어내려졌다고 주장하는 책35) 등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예수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대표하고 있다.

4) 비판에 대한 반박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박은 주로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 진행되고 있다. 2007년에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국내에 소개되자 이 책은 국내에 반기독교적 정서를 부추기는 데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러자 몇몇 개신교 관련 학자들이 종교무용론자들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여 개신교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종교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도킨스의 생각이 환상적이라고 주장하는 맥그라스 부부의 『도킨스의 망상』36)이라는 책이 번역되어 도킨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소개되었고 이어서 국내 학자들에 의해서도 도킨스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김균진은 도킨스의 과학적 무신론이 러셀의 과학적 실증주의와 유사하며 별로 새로운 점이 없다고 지적하고, 도킨스의 책이 사려 깊은 학자의 깊이 있는 전문 서적이 아니라 저널리스트의 대중 강연 원고들을 묶어 놓은 것에 불과하며, 도킨스가 신학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종교의 모든 긍정적인 기능들을 무시하고 오로지 문제점만 지적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37)

박일준은 도킨스의 종교 비판이 인격신과 기복적인 믿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고, 도킨스가 자연주의적이고 범신론적인 신앙을 옹호하고 있어서 오히려 도킨스의 주장 또한 자못 종교적이라고 말하고 있다.38) 김경재는 니체, 프로이드, 맑스, 도킨스와 윌슨의 종교무용론 및 폐기론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을 살피고, 이어서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개신교가 권위적 가부장문화에 침윤된 전통종교 모습에서 탈바꿈하여, 자비와 긍휼심을 핵으로 하는 모성적 종교의 영성에로 전화되어야 하며, 권력지향적 국가종교 이데올로기로부터 스스로 해방하여,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해방시키는 종교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39)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명』40)이 2010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서구에서 도킨스가 인터넷을 통해 무신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면, 암스트롱은 역시 인터넷을 통해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종교를 통해 인류의 화합을 도모시키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41) 그녀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이 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특정의 신 개념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하고, 알카에다와 같은 근본주의자들과 도킨스와 같은 전투적 무신론자들 모두를 비판하면서, 이성과 신앙이 모두 중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현재 도킨스 등의 종교 비판에 대해 일견 무기력하게 대응해 왔던 국내의 신학자들이 암스트롱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다시 소위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42), 암스트롱의 또 다른 책들43)이 꾸준히 소개되어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적인 정보를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암스트롱의 견해를 수용한 김진호는 비교적 최근에 도킨스 등이 비판한 종교가 유일신에 한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 비판 대상도 ‘잡설’에 불과한 창조론이나 창조과학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내 놓았다.44)

2. 종교의 내적 비판

위에서 살펴 본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이 대체로 종교무용론과 종교폐기론에 가깝다면 여기에서 살피려는 종교의 내적 비판은 종교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여, 종교가 앞으로 진면목을 갖추게 하자는 점에서, 그리고 대체로 종교 내부의 신자들에 의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비판은 종교무용론이나 종교폐기론과 그 성격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개신교 내부의 비판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개신교에 대한 개신교 내부의 비판으로 우선 개신교 사학자들의 비판을 살필 수 있다. 김승태는 일찍이 일제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친일 협력 사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일본 개신교가 1967년에 2차 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사실을 고백하고 반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에 비해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전혀 반성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45) 근래에 제기되고 있는 개신교 내부의 비판은 특히 개신교의 친정권적 행태에 집중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해방 공간에서 개신교는 반탁과 단정 수립 노선을 충실히 지지함으로써 이승만의 권력 장악과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거나,46)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이 한국전쟁을 기회로 남한에서 세력을 확장하게 된 과정에 주목하여 현재 개신교가 보수 반공주의의 주요 담당세력이라는 점을 지적하거나,47) 또는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등 특히 친개신교적 정권과의 야합을 지적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이들은 한국 사회의 숱한 병리 현상의 배후에 한국 개신교가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48)

개신교 사학자들의 비판 이외의 개신교 내부의 비판은 다시 크게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신학적 반성과 조직을 비판하는 목회적 반성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신학적 반성은 대체로 종교다원주의를 옹호하고, 신격화된 예수보다는 역사적 예수를 선호하고, 종교라는 제도보다는 소위 초종교적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길희성은 현재 강화도에서 ‘길희성과 함께 하는 공부와 명상의 집’이라는 심도학사를 운영하고 있다.49) 그의 주장 가운데 우선적으로 관심을 끄는 주장은 대속(代贖)이 아니라 대고(代苦)라는 주장이다. 내가 죄인이고, 정작 나 같은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나 대신에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고통을 받았다는 대고의 개념으로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이해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저 높은 곳에 두고 우러러 섬기는 대상으로만 삼지 말고 예수의 신앙, 예수의 삶을 따르는 개신교로 다시 태어나야 하며, ‘묻지마 신앙’을 넘어 진정성 있는 신앙을 위해 고민하는 ‘생각하는’ 개신교인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50)

오강남은 2009년에 도마복음 관련 책을 발간하였다.51) 그리고 그의 『예수는 없다』는 2001년에 발간된 뒤 40쇄를 거쳐 2017년에 개정판이 발간되었을 정도로 독자층이 나름대로 두터운 편이다52) 오강남의 주장에서 관심을 끄는 내용은 길희성과 비슷하게 역사적 예수를 강조한다는 점, 그리고 내 안에 신의 나라가 있고, 내 안의 ‘참나’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옥이 구약을 폐기하고 원죄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도마복음」의 역사적 예수를 역시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용옥도 길희성이나 오강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53) 도(道)의 신학을 주창하는 김흡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며 인간이며, 동시에 우주적 도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54) 우주적 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개신교가 앞으로 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바뀌어야 한다는 폴 니터의 주장을 상기시키기도 한다.55) 길희성, 오강남, 김용옥, 김흡영은 모두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종교에 조예가 깊고, 개신교와 동양종교의 회통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과거 유영모나 함석헌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56)

이들과는 달리 한국 개신교의 구원론에 대해 ‘아르뱅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신광은의 주장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57) 아르뱅주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뱅주의를 아우르는 신광은의 신조어이다. 신광은에 의하면 개신교 각 교파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주권) - 극단적/급진적 칼뱅주의 – 온건 칼뱅주의 – 수정 칼뱅주의 – 웨슬리식 아르미니우스주의 – 자유주의적 아르미니우스주의 – 펠라기우스주의 – 과정신학/열린 유신론 - (인간의 자유)>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58) 우리나라 개신교의 경우 예를 들어서 장로교는 칼뱅주의, 감리교는 아르미니우스주의, 그리고 침례교는 양쪽 모두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 개신교는 ‘아르뱅주의’에 의해 왜곡된 구원론을 신자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왜곡된 구원론은 무슨 짓을 해도 신은 나를 용서할 것이고, 나의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고 안전하며,59) 신자 자신들의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에 대한 철통같은 보장은 결국 윤리적 추진력을 소멸시키고, 나아가서 살인 면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60) 신광은에 의하면 아르뱅주의는 주창자가 없는 신학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추려는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가 공동으로 참여해서 만들어 낸 ‘유사신학’에 불과하다.61) 비록 신광은은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안신학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침례교에 몸담고 있는 신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주로 신학적 성찰에 의한 반성으로 주로 개신교의 구원론과 관련이 있다면, 제도적, 목회적 측면에서의 반성을 담고 있는 책들은 주로 개신교의 교회론과 관련이 있다. 교회론을 반성하는 책들은 그동안 의의로 많이 출판되었다.62) 류상태는 천주교인이 비판하는 개신교인의 모습이라는 전제 아래, “하나같이 종교적 교리로 중무장한 아집 덩어리들, 언제든지 싸움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성서를 외우고 공부하며 임전의 그날을 위해 교리의 칼날을 벼르고 있는 상종 못할 싸움꾼들, 평소에는 착하고 모범적인 친구이자 친지들인데, 종교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괴물처럼 돌변하는 무시무시한 싸움꾼들”63)로 개신교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류상태의 이러한 묘사에서 현재 개신교인들의 전형적인 부정적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사실 교회론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개신교의 모습을 반성하는 내용들은 과거 1917년에 이광수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류상태가 언급하고 있는 천주교인에 눈에 비친 개신교인의 이러한 모습이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태여 여기에 덧붙여서 말한다면 대형교회를 비판하면서 150여 명의 신자로 구성되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교회가 적절하다거나,64) 아니면 반메가처치 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65), 또는 제도에 얽매이기보다는 개신교가 소위 영성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가 우리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주장들이다.66)

개신교 내부의 위와 같은 성찰적 반성에 대해 여전히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몇몇 사람들이 재반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대체로 이들은 개신교 내부의 이러한 성찰적 반성들이 주로 인본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마디로 소위 ‘잡탕 영성’을 도모하는 것으로, 겉모양만 개신교인 ‘짝퉁 개신교’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67)

이상의 내용은 주로 개신교 내부의 발언이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개별 종단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성찰적 진단도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오만과 편견, 배타주의, 타자의 악마화, 권위주의, 이웃에 대한 무관심, 종교권력 등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68) 종교연구는 지금까지 종교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우선적으로 지향해 왔기 때문에 사실 개별 종단의 잘못된 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일을 삼가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종교들의 잘못된 점들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이들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종교들이 그야말로 종교다워지도록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한다는 종교연구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현상은 아니다.

3. 이웃 종교 비판

여기에서는 주로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이웃 종교를 비판하는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최근에는 대순진리회나 증산도 등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이제 좀 열기가 식은 듯하다. 해당 종단에서 적절한 대응을 한 탓도 있고, 또한 해당 종단이 이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시선이 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탈자들에 의한 이전 소속 종교에 대한 비판도 어느 정도 열기가 식어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천지, JMS, 단월드 등에 대한 개신교 측의 비판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으며, 이들 이외에도 근래에 중국에서 들어온 전능신교, 동방번개, 파룬궁에 대한 비판도 적극적으로 행해지고 있다.69) 개신교 측에서 보면 소위 이단은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에서 비롯한 새로운 종교들은 끊임없이 개신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것이다. 물론 종교사가 증명해 주듯이 새롭게 등장한 종교들이 어느 정도 세력을 확장하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최근에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전피연)’를 중심으로 ‘유사종교 피해방지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피연은 이 특별법의 대상으로 문선명(통일교), 박태선(천부교), 최태민(영세계), 조희성(영생교), 유병언(기독교복음침례회, 구원파), 이만희(신천지), 안상홍(하나님의교회), 정명석(기독교복음선교회, JMS)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전피연 관계자들도 이 특별법의 제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개신교 측에서 이러한 특별법의 제정을 위해서 현 시점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얼마 전부터 등장한 안티 개신교인들에 의한 개신교 비판은 미디어에서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개신교에 대한 이러한 집중적인 비판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 스탠딩 코미디언 조지 칼린(G. Carlin)이 기독교를 풍자하는 영상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그러나 조지 칼린의 이러한 기독교 풍자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종교적 상황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인해 이런 내용의 풍자가 얼마 전까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국내 제작 동영상을 인터넷 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70)

개신교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여러 개가 비교적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편이다.71) 비판의 내용은 앞의 4장에서 정리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72) 대표적인 개신교 비판 모임인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은 흥미롭게도 ‘바이블 19금 지정 촉구를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정도이다.73) 개신교를 비판하는 서적도 근래에 꾸준히 출판되고 있다. 저자들은 친개신교인이거나 탈개신교인, 그리고 가명을 쓰기도 하는데, 몇몇 책은 제목만 보더라도 개신교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이 주된 내용일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게 할 정도이다.74)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의 저자 쥐뿔개뿔은 소위 ‘반기독교선언’에서 개신교와 천주교 등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를 비판한다고 하면서,75) 동시에 대순진리회나 증산도를 기독교의 아류로 아울러 비판하고 있다.76) 그러면서 신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야웨가 아니라 우리 한국 전래의 하느님이라든가,77) 과거에 우리 한민족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그 하느님은 어떤 외적 형상도 없이 우리 한민족 모두의 마음 안에서 지난 만 년 간 존재해 왔다거나,78) 단군 시조의 역사는 밝혀지는 중이요, 일본 식민사관을 벗어난 학파들이 지금 자료를 모으고 연구중이라거나,79) 개신교의 단군상 철거 운동을 비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보면 특정 종교에 소속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이진구가 안티 개신교 진영의 비판 논리가 ‘문화적 민족주의’와 ‘세속적 휴머니즘’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 점을 아울러 감안하면 필자의 이러한 추측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80)

물론 안티 개신교 운동에 대해 개신교 측의 대응 방안이 꾸준히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81) 그러나 이전 같으면 적극적이고 전반적으로 그 대응 방식이 제시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안티 개신교에 대응할 ‘인터넷 선교사’를 양성하자는 등 현재로서는 소극적이고 부분적인 대응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이제열이 그간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묶어서 『불교, 기독교를 논하다』82)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유일신, 창조, 섭리, 원죄, 악마, 내세, 천국, 지옥, 율법, 성서, 성령, 삼위일체, 구원, 회개,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들을 불교적 입장에서 비판하고 고찰한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는 같은 산을 오르는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오르려는 산 자체가 다르다고 하고, 불교적 관점에서 기독교 교리를 분석하여 불교의 위대성을 알리고자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83) 『법보신문』은 불교 신자들을 위한 신문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글이 『법보신문』에 게재되었을 때는 그다지 문제가 생길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성격을 지닌 책의 발간이 일회적일지 아니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글이 책으로 묶여서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 일반 사람들까지 볼 수 있게 된 상황은 이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을 살펴보았다. 과거에도 물론 종교 일반과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그 내용과 맥락에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개신교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반적인 비판 운동은 분명 새로운 현상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개신교가 주요 대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안티 종교운동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종교변동을 살필 수 있는 주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러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개신교는 급격히 변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인터넷 등 미디어에 대한 손쉬운 접근으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개신교의 부정적인 측면이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으면서, 이제부터는 개신교가 누려왔던 무소불위의 특권이 서서히 해체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좋든 싫든 앞으로 일반인들과 이웃 종교들의 개신교에 대한 여러 인식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개신교의 이웃 종교들에 대한 배타적인 인식도 상당 부분 줄어들고, 따라서 소수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자세도 서서히 바뀔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종교 연구를 업으로 삼는 필자로서는 안티 종교운동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물론 어느 한 편을 지지할 수 있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편치 않은 마음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민하면서, 끝으로 안티 종교운동 관련해서 필자의 몇몇 견해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첫째, 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종교관을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종교 비판이 이루어지는 곳과 때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니체와 러셀의 종교 비판은 니체와 러셀이 살던 곳과 때의 종교 상황을 염두에 둘 때 그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종교 비판자들은 대체로 자기 종교, 또는 자기 교파 선호적 입장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아울러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판의 내용만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보다는 우선 상대방의 신앙 이력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종교에 대한 비판이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 신앙을 밝히면서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비판의 내용이 적절한지의 여부를 직접적으로 따지기보다는 비판자의 신앙을 먼저 전제하고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둘째, 종교 비판의 대상이 어느 종교인지를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종교 일반 전체를 비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개신교나 천주교, 불교 등 특정 종교가 대상인 경우가 많다. 천주교는 하나의 종단으로 활동하지만, 개신교와 불교는 여러 교파나 종파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가 비판의 대상인 경우에도 구체적으로 장로교인지 감리교인지, 그리고 나아가서 장로교나 감리교에서도 어느 교단인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불교의 경우에도 불교로 존재한다기보다는 조계종이나 태고종, 천태종 등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어느 종단이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이 초, 중등, 대학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국가의 관련 기관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종교에 대한 지식은 개별 종교단체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의 종교 인구를 전체 인구의 대략 50% 정도라고 했을 때 이들은 많게는 1주일에 한번 씩 정기적으로 종교교육을 받고 있다. 현재 국가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종교편향 방지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는 하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최근에는 인터넷 등 미디어를 통해 종교에 대한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 일반이나 이웃 종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소위 이단에 대한 비판이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의 내용이 다양해진 반면 비판의 수준은 대체로 피상적이고,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비판은 견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 내용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 비판은 조롱, 또는 공격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비판이 보다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권 교육에서 그러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종교 관련 법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가칭 ‘종교법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된 적이 있었으나, 개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종단들의 반대로 실현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재정비된 종교 관련 법규를 통해 종교 비판이 종교 갈등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제도적으로 종교 전문 법조인과 공무원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학술기관도 신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가칭 ‘종교헌장’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5월에 ‘문화헌장’을 공표하였다. 문화헌장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내용은 “모든 시민은 … 종교 등에 의한 어떠한 차별도 없이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 “사회공동체는 더불어 사는 삶의 토대가 될 기본적인 문화적 가치들을 늘 확인하고 존중해야 한다.”, “문화다양성은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과 자주성의 토대이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다원성의 원리이며 평화와 공존의 기틀이다 … 시민은 나라 안팎의 다양한 문화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여 세계의 문화 다양성과 평화를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 “성적 소수자를 포함한 문화적, 종교적 소수자와 소수집단은 자기 의사에 반하는 문화 정체성을 강요받지 않는다.” 등이다.

문화헌장 가운데 ‘문화’를 ‘종교’로 바꾸어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우리나라의 종교 상황이 어떻게 변화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종교학계가 주축이 되고, 관련 기관이나 유관 단체, 그리고 종교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가칭 ‘종교헌장’을 제정, 공포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Footnotes


1. 교회에 ‘안 나가는’ 개신교인을 지칭하는 용어.


2.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를 기독교로 지칭하기도 하나, 종교학에서는 여전히 기독교를 천주교와 개신교를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이 부분은 강돈구, 「세계종교의 변동과 한국종교의 미래」, 『계간 사상』 44 (2000), pp.100-104의 내용을 보완한 것임.


4. 비록 영국에서 발간된 책들이기는 하지만 Jean Holm이 편집해서 출간하고 있는 주제별 종교연구(themes in religious studies)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 책들의 목차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시크교, 중국종교, 일본종교로 구분되어 있다. Jean Holm, ed., Attitudes to Nature (London: Pinter Publishers, 1994) 등 참조.


5. 종교와 근대성이 친화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로는 T. Parsons와 R. Bellah를, 그리고 비친화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로는 P. Berger를, 그리고 서로 배타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로는 B. Wilson을 열거할 수 있다.


6. James A. Beckford, “Religion, Modernity and Post-modernity” in Religion: Contemporary Issues, ed. by B. Wilson (London: Bellew Publishing, 1992), pp.11-23.


7. Pew Research Center, “Many Countries Favor Specific Religions, Officially or Unofficially”, Released Oct. 3, 2017 (www.pewresearch.org 참조).


8. W. C. Smith, Towards a World Theology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9. 존 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이찬수 옮김 (서울: 창, 1991).


10. F. Schuon, The Transcendent Unity of Religions (London: The Theosophical Publishing House, 1993).


11. 길희성,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 (서울: 민음사, 1994).


12. 1990년대 중반에 공자를 교조화하고, 의식과 조직을 일반 종교와 같이 정비하려고 하였던 유교운동. Kang Don-ku, “Traditional Religions and Christianity in Korea”, Korea Journal 38-3 (1998), pp.110-114 참조.


13. 이광수, 「금일 조선 야소교의 결점」, 『청춘』 11, (1917).


14. 이찬수 외,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 – 종교학자가 비판적으로 진단한 한국종교의 현재와 미래』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14); 김근수 외, 『지금, 한국의 종교 – 가톨릭ㆍ개신교ㆍ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서울: 메디치, 2016) 참조.


15. 우혜란, 「동시대 종교현상으로서 ‘유동적 종교(Fluid Religion)’에 대한 논의」, 『종교와 문화』 30 (2016); 우혜란, 「‘무종교 시대’는 오고 있는가」, 『불교평론』 19-2 (2017).


16. ‘스포트라이트’ 등.


17. ‘밀양’, ‘쿼바디스’ 등.


18. 강대석, 『무신론자를 위한 철학』 (서울: 중원문화, 2015).


19. 버트런드 러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송은경 옮김 (서울: 사회평론, 2017).


20. 같은 책, pp.13-14.


21. 샘 해리스, 『종교의 종말』, 김원옥 옮김 (서울: 한언, 2005); http://www.samharris.org.


22.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은 위대하지 않다』, 김승옥 옮김 (서울: 알마, 2008); http:// www.buildupthatwall.com.


23.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이한음 옮김 (서울: 김영사, 2007).


24. http://richarddawkinsfoundation.org; https://richarddawkins.net.


25. 니콜라스 웨이드, 『종교유전자 – 진화심리학으로 본 종교의 기원과 진화』, 이용주 옮김 (서울: 아카넷, 2015).


26. 파스칼 보이어, 『종교, 설명하기 – 종교적 사유의 진화론적 기원』, 이창익 옮김 (서울: 동녘사이언스, 2015).


27. 아라 노렌자얀, 『거대한 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홍지수 옮김 (서울: 김영사, 2016).


28. 티모시 프리크ㆍ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승영조 옮김 (서울: 미지북스, 2009).


29. 같은 책, p.386.


30. 오강남,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서울: 현암사, 2017).


31. 리차드 루벤슈타인,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 로마제국 말기의 참된 기독교를 정의하기 위한 투쟁』, 한일철 옮김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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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김흡영, 『도의 신학 Ⅱ』 (서울: 동연, 2012); 김흡영, 『가온찍기 – 다석 유영모의 글로벌 한국신학 서설』 (서울: 동연, 2013).


55. 폴 니터, 『종교신학입문』, 유정원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7).


56. 강돈구, 『종교이론과 한국종교』 (서울: 박문사, 2011) 참조.


57. 신광은,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서울: 포이에마, 2014).


58. 같은 책, p.161.


59. 같은 책,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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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추태화, 「기독교비평서에 나타난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신학과 실천』 27 (20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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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오규훈, 『153교회 – 공동체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이상적인 교회』 (서울: 포이에마, 2013).


65. 신광은, 『메가처치를 넘어서』 (서울: 포이에마, 2015). 메가처치(Megachurch)는 ‘여러 유료 시설을 부대사업으로 운영하는 기업화된 초대형 교회’ 또는 대체로 ‘주간 예배 참가 신도 수가 2,000명이 넘는 교회’를 말한다.


66. 김선주, 『한국 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서울: 삼인, 2009);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 (서울: 복있는 사람, 2012).


67. 프랭크 바이올라ㆍ조지 바나, 『이교에 물든 기독교』, 이남하 옮김 (서울: 대장간, 2011); 박태양, 『눈 먼 기독교 – 위기에 처한 현대 기독교 영성의 실체 보고서』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3); 김경집,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서울: 시공사, 2013).


68. 이찬수 외,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 – 종교학자가 비판적으로 진단한 한국종교의 현재와 미래』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14); 김근수 외, 『지금, 한국의 종교 – 가톨릭ㆍ개신교ㆍ불교, 위기의 시대를 진단하다』 (서울: 메디치, 2016); 강인철, 「한국사회와 종교권력 – 비교역사적 접근」, 『역사비평』 77 (2006).


69.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http://www.jesus114.org); 허호익, 『한국의 이단 기독교 – 주요 이단의 계보와 교리 비판』 (서울: 동연, 2016) 등 참조.


70. http://qqkorea.net/220813810410.


71. 김영동, 「반기독교운동의 도전과 선교」, 『장신논단』 38 (2010), pp.366-367.


72. 안티 개신교 사이트의 주요 비판 내용은 좀 오래되기는 하였지만, 쥐뿔개뿔, 『우리는 왜 기독교를 반대하는가』 (서울: 기독교비평카페, 2003)를 참조할 수 있다.


73. http://www.antichr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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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쥐뿔개뿔, 앞의 책, p.20.


76. 같은 책, p.99.


77. 같은 책,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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