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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8

알라딘: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김상일

알라딘: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 음행오행론으로 현대논리학의 난제풀어보기 
김상일 (지은이)지식산업사2005-03-23


 Sales Point : 153

463쪽
목차


모듬글: 의학과 기틀 전환

제1부 서양의학의 논리적 근거
1.철학의 논리와 의학의 논리
2.서양의학의 종말과 자기 언급
3.고침의 의학과 돌봄의 의학
4.한의학의 자기언급 논리와 탈의 논리

제2부 러셀 역설의 해법과 한의학의 논리
1.한의학의 논리와 러셀 역설
2.현대 과학의 논리와 한의학의 논리
3.러셀 역설의 순환적해법: 오행론과 12경맥론
4.음양과 논리의 탄생
5.경맥의 구조와 거짓말쟁이 역설

결론을 대신하여



====

저자 및 역자소개
김상일 (지은이)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에서 문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필립스대학교에서 석사를, 클레어몬트대학교 대학원에서 과정 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현재 클레어몬트대학교의 Center for Process Studies에서 Korea Project Director로 연구에 종사하며 남가 주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고 있다. 

역설이 학문의 모든 토대를 허물고 있기에 전공을 정해놓지 않고 학문하였다. 
‘역설’이라는 주제를 민족 고유성에서 찾기 위해 고민하며 책을 써왔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며 역설의 해의에 필생 골몰해 왔다.

『러셀 역설과 과학 혁명 구조』(1997), 『수운과 화이트헤드』(2001),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2003),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2005), 『역과 탈현대의 논리』(2006), 『대각선 논법과 易』(2012), 『대각선 논법과 조선易』(2013), 『周易 너머 正易』(2017), 『한의학과 현대 수학의 만남』(2018), 『철학의 수학소―역易과 우리말 ‘한’에 담긴 수학소의 재발견』(2021) 등은 모두 역설과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문제를 통해 민족 고유성을 찾고자 고민한 저서들이다.

 이러한 학문적 고민거리가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로 이어지게 되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책] <오징어게임>과 라캉의 욕망이론>,<<오징어게임>과 라캉의 욕망이론>,<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목회> … 총 4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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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과 라캉의 욕망이론 - 한국의 놀이 문화와 정신분석의 세계 ㅣ 김상일 사상 전집 4 
김상일 (지은이) | 동연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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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메타버스 시대의 신학과 목회 ㅣ 연세신학문고 11 
김상일, 허호익, 강원돈, 서정민, 김기대, 김동환, 김치범, 김종우, 박숭인, 박호용, 윤사무엘, 이명권, 이민형, 이정철, 조은석 (지은이) | 동연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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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철학의 수학소 - 易과 우리말‘한’에 담긴 수학소의 재발견 ㅣ 김상일 사상 전집 3 
김상일 (지은이) | 동연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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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부도지 역법과 인류세 - 그레고리력 개정과 부도지 23장 풀어 읽기 ㅣ 김상일 사상 전집 2 
김상일 (지은이) | 동연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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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모 데우스 너머 호모 호모 - 카오스모스로 모색해본 새 인간상 ㅣ 김상일 사상 전집 5 
김상일 (지은이) | 동연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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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학제적 연구 - 피타고라스 콤마에 대한 보편적 고찰 
김상일, 김영진, 김정엽, 김효근, 박미자, 설중환, 신현용, 여봉수, 우실하, 이원재, 이정우, 이진길, 조춘영, 창이 (지은이) | 솔과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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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악학궤범 新연구 - 한태동의 악학궤범 연구에 대한 이해와 고찰 
김상일 (지은이) | 솔과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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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학제적 연구 - 피타고라스 콤마에 대한 보편적 고찰>로 새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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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류문명의 기원과 한 - 문명의 기원, 근동近東이냐 극동極東이냐 
김상일 (지은이) | 상생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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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현대 수학의 만남 - 갈루아 군론으로 본 경락과 방정식의 구조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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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역 너머 정역 -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과 김일부의 정역의 비교 
김상일 (지은이) | 상생출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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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의 논리와 마야력법 - 첨단 이론으로 본 윷놀이와 마야문명 
김상일 (지은이) | 상생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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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의 한철학 - 개정판 
김상일 (지은이) | 상생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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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상 - 개정판 
김상일 (지은이) | 상생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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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즉다 다즉일 (一卽多 多卽一) 
한국정신과학학회, 김상일, 오강남 (지은이) | 히어나우시스템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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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논법과 조선역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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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 논법과 역 - 칸토어의 대각선 증명과 러셀 역설로 본 역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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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와 한사상 - 한류의 세계화를 위한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이도흠, 박성수, 김용환, 허호익, 강은해, 김주미, 정현숙, 조춘영, 김상일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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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 1 
김상일 (지은이) | 새물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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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 2 
김상일 (지은이) | 새물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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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충돌과 문명의 충돌 - 뇌 이론으로 문명의 새판을 짠다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7년 12월
25,000원 → 23,750원 (5%할인), 마일리지 1,2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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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과 탈현대의 논리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6년 10월
25,000원 → 23,750원 (5%할인), 마일리지 1,2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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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 음행오행론으로 현대논리학의 난제풀어보기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5년 3월
25,000원 → 23,750원 (5%할인), 마일리지 1,2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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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의 판비량론 비교 연구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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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의식 전개의 역사 - 켄 윌버의 초인격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사회와사상 13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4년 1월
10,000원 → 9,500원 (5%할인), 마일리지 5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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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불완정성 정리로 풀어본 원효의 판비량론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3년 6월
38,000원 → 36,100원 (5%할인), 마일리지 1,9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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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질병과 반사요법 
김상일 (지은이) | 빛과향기 | 2003년 6월
12,000원 → 10,800원 (10%할인), 마일리지 600원 (5% 적립)
세일즈포인트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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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수운과 화이트헤드 - 동학주문 21자에 대한 과정철학적 풀이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1년 2월
20,000원 → 19,000원 (5%할인), 마일리지 1,0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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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동학과 신서학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2000년 6월
18,000원 → 17,100원 (5%할인), 마일리지 9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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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초공간과 한국문화 
김상일 (지은이) | 교학연구사 | 1999년 2월
8,000원 → 8,000원, 마일리지 240원 (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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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한국의 덫이냐 돛이냐 
김상일 (지은이) | 한림미디어 | 1998년 9월
10,000원 → 9,000원 (10%할인), 마일리지 500원 (5% 적립)
세일즈포인트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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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러셀역설과 과학혁명구조 ㅣ 입장총서 36 
김상일 (지은이) | 솔출판사 | 1997년 8월
9,000원 → 8,100원 (10%할인), 마일리지 4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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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카오스시대의 한국사회 - 솔의신서 6 
김상일 (지은이) | 솔출판사 | 1997년 1월
10,000원 → 9,000원 (10%할인), 마일리지 500원 (5% 적립)
세일즈포인트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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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한철학 - 온누리학술총서 4 
김상일 (지은이) | 온누리 | 1995년 4월
6,000원 → 6,000원, 마일리지 60원 (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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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퍼지미 퍼지철학 퍼지인간관리 
이성은, 김상일 (지은이) | 전자신문사 | 1995년 4월
7,000원 → 6,300원 (10%할인), 마일리지 3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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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카오스와 문명 
김상일 (지은이) | 동아출판사(두산) | 1994년 7월
8,000원 → 7,200원 (10%할인), 마일리지 4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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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화이트헤드와 동양철학 
김상일 (지은이) | 서광사 | 1993년 5월
9,000원 → 8,550원 (5%할인), 마일리지 4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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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퍼지와 한국문화 
김상일 (지은이) | 전자신문사 | 1992년 8월
7,000원 → 6,300원 (10%할인), 마일리지 35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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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현대물리학과 한국철학 
김상일 (지은이)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1년 4월
6,800원 → 6,120원 (10%할인), 마일리지 34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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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한사상의 이론과 실제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1990년 11월
6,000원 → 5,700원 (5%할인), 마일리지 30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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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한사상 - 온누리 국학총서 5 
김상일 (지은이) | 온누리 | 1990년 4월
4,000원 → 3,600원 (10%할인), 마일리지 200원 (5% 적립)
 (1) | 세일즈포인트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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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밝문명론 - 사회와사상 13 
김상일 (지은이) | 지식산업사 | 1988년 7월
3,500원 → 3,320원 (6%할인), 마일리지 170원 (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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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한국신학/종교학 - 타종교와의 대화 관련 참고 문헌 목록

한국신학/종교학 - 타종교와의 대화 관련 참고 문헌 목록

타종교와의 대화 관련 참고 문헌 목록종교다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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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2

허호익*.218.50.64

  • -타종교와의 대화

  • 김광식, 타종교와의 대화와 토착화신학, 현대와 신학, 87,11
  • 이정배, 토착화 신학과 생명신학, 기상, 91,6
  • 이정배, 토착화 신학에서 본 민중신학과 민족신학(1), 기상,94,9,10
  • 박종천, 민족통일과 토착화 신학의 미래, 기상, 88,9
  • 김용복,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 기상,91,6
  • 문영숙, 동학의 인간관:인간관의 토착화, 95,5
  • 김광식, 종교다원주의와 토착화, 현대와 신학, 94,6
  • 한국 그리스도 사상 제1집-한국 그리스도 신앙의 현실/토착화 선구자들의 사상, 서울:한국그리스도사상 연구소 출판부, 93,9
  • 한인철, 종교전통간의 대화-유형론적 접근, 세계의 신학, 92,겨울
  • 홍정수, 타종교 상황에서의 예수의 유일성, 종교신학연구, 92,12
  •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신학, 변선환 학장 은퇴기념 논문집 편찬위원회, 한국신학연구소,92,10
  • 김영환, 종교다원주의와 한국토착화 신학, 목회와 신학, 92,7
  • 김경재, 종교다원론의 해석학적 조명, 철학과 현실, 92,여름
  • 김균진, 타종교와 기독교의 관계, 신학논단, 93,10
  • 김지철, 한국문화신학에 대한 비판, 기상, 91,12
  • 이정배, 다원주의기독론과 토착화 신학, 복음과 문화-신앙과 신학 제8집, 기독교서회 91
  • 김광식, 한국토착화신학의 형성사, 기상,91,6
  •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신학, 한국신학연구소, 94.3
  • -문화신학관련
  • 편집부,문화신학의 역사적이해, 기상, 95.4
  • 정치신학과 문화신학, 변선환,사목, 84.5
  • 서광선, 폴틸리히 이후의 문화신학, 기상,83,9
  • 김경재, 한국문화신학서설, 세계와 선교,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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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1

실천신학 - 개신교의 성만찬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삶 / 심광섭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실천신학 - 개신교의 성만찬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삶 / 심광섭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개신교의 성만찬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삶 / 심광섭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세례 성찬수정삭제조회 수 3006 추천 수 157 2005.07.21 21:17:19
허호익*.218.50.78http://theologia.kr/board_service/33850







개신교의 성만찬이해와 그리스도인의 삶
교회와세계 [제235호] 2005년 06월

심광섭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성례전(성사, sacraments), 특히 성만찬1) 의 행위와 신학적 이해와 관련하여 현실 개신교 기독교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동기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정교회 기독교, 가톨릭 기독교 그리고 성공회 기독교와 비교할 때 현실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복음설교를 성례전보다 앞세웠던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과 무엇보다 성만찬 예배를 소홀히 한 한국에 선교된 개신교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개신교 교회에서 성만찬을 통한 예배의 갱신과 예배에서의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적 상보관계를 주장하고,2)  또 실행하는 교회가 늘어가는 추세이나,3)  전반적으로 봤을 때 아직도 개신교의 예배는 말씀 중심의 예배라는 판단은 틀린 판단이 아닐 것이다. 매주, 혹은 매달 한 번의 성만찬을 행하는 교회도 늘고 있으나, 대개의 교회에서는 일 년 중 중요한 교회 절기에 서너 번 성만찬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 글이 생동적인 글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 한국 개신교회의 성만찬이해와 성만찬 실행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와 점진적인 형성 및 그 전망을 고찰해야 하겠으나, 현재 매우 많은 교단으로 이루어진 개신교회를 일일이 경험적으로 고찰하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에, 개신교의 성만찬이해를 위해서는 종교개혁 신학자들로부터 교회일치를 추구하는 신학자들의 성만찬이해를 중심으로 검토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서도, 지속적인 성만찬 행위를 통해 어떻게 성도들의 삶이 그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지를 경험적으로 연구하지 못했음으로 중요한 신학자들의 성만찬 의미에 대한 연구 성과를 검토함으로써, 성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삶이 지향해야 할 의미와 가치 지평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글은 한국 개신교에서의 바람직한 성만찬과 성만찬 생활에 대한 경험적 연구가 아니라 규범적이며 미래적 전망을 내다보면서 서술하고 제시하는 방향의 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에서의 교회간 대화를 통한 화해와 일치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개신교 예배에서 성만찬에 대한 이해와 행위를 높이고 이를 통해 성례전 일반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높여, 교회 안에서의 예배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풍성한 성례전적 삶(sacramental life)을 회복함으로써 세상에서의 기독자의 삶을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장에서는 개신교회의 기원인 종교개혁자들(루터, 츠빙글리, 칼빈)과 그 이후 전개된 중요한 신학자들(웨슬리와 슐라이어마허)의 성만찬 이해의 중요한 초점들을 일별하고, 최근 교회일치에 크게 기여한 BEM문서의 신학적 의의를 논의하겠다. 2장에서는 개신교의 성만찬에서 새롭게 탐구되는 성만찬의 의미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와 가치 지평을 모색하겠다. 그러나 이 글의 무게 중심은 1장보다는 2장에 있다.
 
 
1. 개신교회의 성만찬 이해
 
폴 틸리히(Paul Tillich)에 따르면, 개신교 신학에서 성례전에 대한 물음은 다른 어떤 신학적 물음보다 처음부터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물음이었고, 개혁자들 간에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한 물음이었다.4)  그도 그럴 것이 종교개혁은 중세 후기 가톨릭교회의 성례전적 체계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저항에 그 열정이 쏟아 부어지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도인의 공적 예배로 이루어진 삶은 성례전에 의해 점유되고 있었다. 성례전은 신자를 치리하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 체제였다.
 
종교개혁자들이 가한 비판의 초점은 중세 후기의 가톨릭이 기독교를 객관화하고 우상화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의 성례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은, 기독교 첫 천년 동안 무려 30여개의 성례전으로 무성하게 자랐고 중세 후기(1439년)에 7개로 압축 제정되었던 성례전의 숫자를 다시 한번 대폭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성만찬에 대한 이해는 종교개혁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이견을 낳아, 급기야 종교개혁교회가 루터파, 재세례파, 개혁파, 영국교회 등으로 분열되는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대한 만찬 앞에서 형제들이 싸우고 결국 갈라진 것이다. 그 후 개신교회는 말씀 중심의 예배와 신앙생활 속에서 점점 신앙생활의 성례전적 차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개신교에서 성례전에 대한 이해와 실행이 박약해져 아사 직전까지 온 것 같다. 틸리히는 이러한 상황을 개신교가 “성례전의 죽음”(the death of the sacraments)을 불안에 떨면서 지켜보고 있는 위기의 상황으로 말한다.
 
거시 역사적 관점에서 교회의 끊임없는 개혁과 쇄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성례전적 차원을 회복해야 하며, 따라서 성례전의 문제가 현재 개신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16세기의 분열의 상황에서 벗어나 통합과 일치에로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교회와 신학자들이 노력해왔고 그 가능성은 점점 현실화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서로 가르고 또 오늘날 교회들 사이의 화해 노력을 무효화하는 위험스러운 요인들을 이해하기 전에는 지난 500년의 뒤엉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이런 요인들을 핵심적으로 알기 위해 성만찬에 대한 개신교의 핵심적 견해들과 쟁점들을 일별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중세 가톨릭과 종교개혁자들의 성만찬의 이해에 대한 쟁점은 성만찬의 재료인 떡과 포도주가 언제(시간), 어디서(공간) 어떻게(방법) 성물/성체가 되느냐는 것인데, 가톨릭은 실재론을 따라 설명했고, 종교개혁자들은 대개는 유명론을 따라 설명했다. 그러나 이른바 실재론과 상징론은 고대 교회에서부터 존재했던 입장이다. 본래 성례전의 행위에서 상징(Signum)과 상징된 은총의 내용(res) 상이에 성사적 결합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성만찬 사건의 효과적-실재론적 측면과 의미론적-영적 측면이 근원적으로 연합된 채 출발했는데, 게르만인들이 기독교에 들어오면서 두 측면이 나뉘게 되었다는 점이다.5) 실재론(변형론, 화체설)의 입장은 초기 교부들에게서 발견되며 9세기 코비의 라드베르투스(Radbertus of Cobi)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걸쳐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확인되고 트렌트 공의회(1551)에서 절대화된다. 상징론 또한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에서 출발하여 중세기 라트람누스(Ratramnus)와 라바누스 마우루스(Rabanus Maurus)에 의해 발전되어 츠빙글리(U.Zwingli)에게까지 이른다. 또한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가톨릭의 말씀과 신앙이 배제된 성만찬을 반대했다.
 
 
1.1 루터
 
대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성만찬론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인격적 임재”(the real and personal presence of Jesus Christ), 혹은 공재설(consubstantiation)으로 명명하여 분류한다. 그러나 루터의 성만찬론은 일관된 것이 아니고 논쟁을 통해 변하고 발전한다.6)  루터의 <교회의 바빌론 유폐>(1520)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만찬을 삼중적으로 유폐시켰다고 주장하는 바, 평신도에게서 잔을 거두어들인 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포로가 된 개념인 화체설, 미사를 선행과 반복적인 희생이라고 가르친다는 점이 그것들이다.
 
루터의 성만찬 이해는 4단계로 발전하는 바, 첫 단계(1518-22)에서 그는 성만찬이 하느님의 말씀의 은혜의 상징으로서, 떡과 포도주를 봄(seeing)으로써 다른 사람들 및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며, 제정의 말씀을 듣고(hearing), 죄의 용서를 받아들이는(receiving) 차원을 강조한다. 둘째 단계(1523-24)에서 루터는 제정사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을 강조하여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주장한다. 셋째 단계(1524-25)는 그의 동료 안드레아스 칼슈타트(Andreas Carlstadt)와 츠빙글리(U.Zwingli)와 논쟁하는 기간으로서, 상징이론을 취하하고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가 소통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의 수단이 됨을 강조한다. 넷째 단계(1526-29)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용서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용서가 분배된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성례전 자체를 죄의 용서와 동일시한다. 제정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사적 몸 안에 그리고 몸을 통하여 용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속죄의 희생이 아니다. 그는 또한 성만찬이 사제에 의한 개인 미사가 아니라 공동체의 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루터는 고해의 관습을 지속시켰고, 이것이 성례전을 올바로 받게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다. 루터의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는 그리스도의 편재(ubiquity)를 가능케 하는 본성의 교류(commicatio ideomatum)에 의해 뒷받침된다. 성만찬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의 모든 삶이 진정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단서인데, 주의 식탁은 세상에서 불투명해진 그리스도의 임재를 거듭 새롭게 경험하기 위해 되돌아와야 하는 삶의 중심이다. 루터는 성만찬이 은총의 수단이라는 고전적 확신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떡과 포도주는 그것을 무심코 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은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만찬은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전달하며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임재를 교회 안에서 효과적으로 알리는 하느님이 선택하신 방법이다.
 
 
1.2 츠빙글리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는 루터가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가 화체설과 유사하다고 반박했다. 츠빙글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을 육으로 취하는 것 속에 죄의 용서가 있다는 루터의 주장은 신앙의 이해와 성서의 증언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만찬은 그 단어(Eucharist)가 의미하는 바, 감사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하는 자와 함께 누리는 공동의 기쁨이다. 츠빙글리는 제정사의 “이것은 나의 몸이다”(Hoc est corpum meum)의 ‘이다’(est)가 동일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미한다’, ‘상징한다’를 뜻한다고 주장한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에서 마음속에, 곧 명상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속에만 임하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인식할 뿐이다. 성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육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님으로 떡과 포도주는 상징일 뿐이지 상징이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임재는 오직 영적인 것이다. 성만찬은 교회가 하느님을 향해 드리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성만찬에서 성도들은 구원의 중심적 행위를 깊이 숙고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확인한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것이지 그의 인식을 생성해내는 것이 아닌 ‘신앙의 도우미’이다. 츠빙글리의 성만찬론을 대개는‘기념주의’(memorialism)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투키에 따르면,7) 츠빙글리의 입장의 장점과 약점은 상징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다고 본다. 만일 상징을 통해 그것이 상징하고자 하는 실체 속에 깊이, 풍부하게 참여하지 못한다면, 성만찬은 신앙생활에 애매모호해질 뿐 아니라 객관적 경험보다는 신자의 주관적 감정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1.3 칼빈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제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그의 선임자인 루터와 츠빙글리의 장점을 선택하여 위할 수 있었다. 흔히 칼빈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중간 길을 걸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방식을 말하는 점에서만 루터와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루터에 더 가깝다. 칼빈이 보기에 츠빙글리는 성만찬 성물에 대한 강조가 약하고 루터와 가톨릭은 너무 강하다. 칼빈은 츠빙글리와 함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의 편재를 부정하고 하늘에 있다고 주장하나,츠빙글리와 달리 성만찬 성물은 성령의 거룩한 행위를 통해 그리스도의 권능을 전해준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가르침에는 성만찬식에서의 성령의 역할이 상당히 강조되고, 구체적인 성령임재의 기원(epiklesis)이 예전에 첨가되게 된다. 칼빈은 주님의 몸과 피에 참되고 실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은 이해되어야 할 사안이 아니라 경험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칼빈에게 성만찬 임재는 우리를 천국잔치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칼빈의 이러한 입장은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 혹은 ‘능력주의’(virtualism)라 불리운다. 개혁파의 예배는 지나치게 훈화적인 설교를 동반했고, 성만찬을 받기 위한 강도 높은 양심적인 자기 검증을 요구했기 때문에, 성만찬이 있는 날에 수찬을 피하는 신자들이 생기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
 
루터파와 개혁파는 성만찬을 성례전과 우리에게 그 약속(보라!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을 인치는 상징으로 간주하는 전통을 지켰다. 이것이 바로 루터와 칼빈이 설교와 성만찬을 매주 하길 원했던 이유다. 반면 츠빙글리와 재세례파는 만찬이 단지 규례일 뿐이며, ‘이것을 행하라’는 말씀을 지킴으로써 우리의 순종의 표시로 하느님께 드리는 일종의 신앙의 확증, 하느님을 향한 신앙적 표현을 통한 헌신의 확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츠빙글리는 매주 설교와 분기별(부활절, 성령강림절, 가을 그리고 성탄절) 성만찬을 택했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가 임하는 공간의 문제를 중시했다. 그 장소가 하늘인가, 성만찬상인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성만찬 논쟁이 주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는 성만찬 신학에서의 은총과 믿음의 문제이다.8) 성만찬이 우리의 신앙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은혜의 수단인가? 아니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앙을 단지 표현하거나 지탱하는 방법인가? “성례전인가 규례인가?” 루터와 칼빈, 그리고 츠빙글리가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만일 성만찬이 정말 하느님의 선물이고 교회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잔치라면 어떠한 차원에서 신앙을 증대시키는 능력을 고찰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2장에서 답변을 모색하겠다.
 
 
1.4 영국교회와 웨슬리
 
영국교회의 대주교인 토마스 크랜머(Thomas Cranmer: )는 츠빙글리의 계승자인 하인리히 불링어의 입장을 따랐다. 그 후 영국교회는 말씀과 함께하는 성만찬을 연 3회(부활절, 오순절, 성탄절)로 규정하여 사실상 말씀과 성만찬을 분리하는 관행을 낳았고(1604년), 주간 성만찬 집행을 시행하고 화체설을 제외한 성만찬 이해를 받아들이는 입장도 있었으나 17-18세기의 합리주의적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성만찬에서의 모든 임재를 초자연주의적인 것으로 거부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츠빙글리의 기념주의가 지배적이 되게 되었다.
 
세속적으로는 계몽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교회적으로는 경건주의가 지배적이 된 세계 한 복판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 )는 성만찬을 소홀히 하는 분위기를 깨고 성만찬의식의 부흥을 일으켰다. 그는 일기에서 천 회 이상의 성만찬을 하였다고 기록했고, 동생인 찰스 웨슬리와 166개의 성만찬 찬송만을 만들어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9)  웨슬리의 찬송가 안에 나타난 성만찬 신학은 영국 교회의 성만찬 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의 혼합적 성격을 갖는다. 웨슬리 형제는 성만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분명히 했지만, 찬송가 가사에는 루터의 편재주의와 칼빈의 성령을 통한 임재가 다 나타난다.
 
 
1.5 슐라이어마허
 
슐라이어마허(F.Schleiermacher: 1768-1834)는 프로이센의 교회 연합을 그의 <신앙론>에서 신학적으로 성취했던 인물로서, 성만찬 이해에서도 가톨릭은 포함하지 못했으나 루터파와 개혁파 사이의 차이를 연결하는 이해의 가교를 세운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슐라이어마허가 놓은 가교의 특징은 성만찬 부분의 이미 첫 명제에서 드러난다. 그는 이론적인 논쟁점에서 시작하기보다 실제적으로 성만찬 행위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에서 출발한다:“그리스도인은 성만찬을 향유함에서, 그리스도가 제정한 후에 그의 살과 피를 그리스도인에게 베풂으로써 영적 삶을 본질적으로 강화한다.”10)
 
영적 강화에 대한 욕구는 종교적 태도가 주기적으로 갱신되면서 충족되어야 한다. 바로 이 사건이 공중예배의 성만찬에서 일어나는데, 성만찬은 “예로부터 공개적 예배의 최고 정점이다”(§139.2,342). 성만찬은 무엇보다 신자의 공동체성을 강화한다. 성만찬은 경건한 개인성과 상호주관성이 상호적으로 구성됨을 가장 탁월하게 전달하고 강화하는 행위이다. 성만찬은 신도들 간의 차별을 제거함으로써 공공성을 제고하는 바, 여기에 성만찬의 독자성이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떡과 그리스도의 몸, 포도주와 그리스도의 피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매우 실천적으로 생각한다. 이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는 영적 삶의 강화를 위하여 필수적이다. 그리고 공동체적 행위의 성취를 방해할 수 있는 차이점들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의도는 이처럼 처음부터 새로운 합의의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경험을 강하게 강조하고, 성만찬 행위의 영향과 결과를 강하게 강조함으로써 처음부터 교의학적 입장을 무력화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교의학적 입장을 넘어 성만찬교리의 공통점을 두 입장을 제한함으로써 얻는다.: “성만찬에서 피와 포도주, 몸과 떡 사이의 상관관계와 관련하여 개신교회는 한편으로, 오직 이 관계를 향유의 행위와 무관하게 보려는 자들에게 대하서만 반대한다. 다른 한편 이 관계에도 불구하고 떡과 포도주의 향유와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영적 향유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을 반대한다.”11)
 
교리적 차이가 성만찬의 향유를 방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성만찬은 제정한 말씀을 듣고 떡과 포도주를 향유함으로써 영적 삶을 강화하는 데 있다.
 
 
1.6 BEM 문서
 
WCC의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분열된 교회들이 가시적인 일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들의 세례와 성만찬과 목회(교역)에 대하여 기본적인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는 1982년 페루의 리마에서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50년의 고심 끝에 교회들의 광범위한 일치 기준들을 작성한 것으로서, “그렇게 상당히 광범위하게 서로 다른 전통을 지닌 신학자들의 세례, 성만찬, 직제에 관하여 화목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현대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일”12)
 
이라고 평가된다. BEM문서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진행되어 왔기에,13)  여기서는 이 문서의 에큐메니칼 신학적 의의만을 언급하겠다.:
 
1)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언제나 기념, 임재, 희생의 세 단어를 중심으로 되어 왔는데, 이 문서는 기념과 임재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모든 피조물들을 위하여 그가 이루신 모든 일들과 함께 이 기념 속에 임재하며 우리와 친히 교제를 나누신다.”[성만찬 6항]; “성만찬은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하시는 그리스도만이 유일무이하게 드릴 수 있는 희생의 성례전이다”[성만찬 8항]
 
오랫동안 개신교회에 성만찬이해에 대한 기념주의적 입장이 지배해온 이유는 개신교의 공식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계몽주의적 이성주의가 지배하면서, 개인적 신앙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및 부흥운동의 영향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만찬 성물에서 과거의 사실, 갈보리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는 황량한 환원주의적인 기념주의에서 벗어나, 성만찬의 성물 속에 현재 임재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예전 속에서 다양하게 강조하고 있음이 나타난다.14): “당신의 성령으로 그것들을 성별하사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당신 아들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성령안에서 새롭고 영원한 삶을 위한 거룩한 음식과 음료가 되게 하소서”(성공회);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다”(루터란); 떡과 잔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의 사귐이 되길 간구한다(장로교); 떡과 잔을 나누면서 목사가 “당신을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당신을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피”임을 말한다(감리교); “그리스도의 몸, 하늘의 떡 / 그리스도의 피, 구원의 잔”(성공회); 당신을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몸, 당신을 위해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피“(루터란과 장로교)
 
2) 성만찬의 사효성(ex opere operato/opus operatum)과 인효성(ex opere operans/opus operantis)의 문제에서 객관적인 차원과 주관적인 차원의 중요성을 갈파하여 상보적인 관계임을 말한다: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임재가 개인의 신앙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분별하기 위하여 신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일치하고 있다.”[성만찬 13항]
 
3) 설교와 성만찬의 관계에서 개신교는 설교를 항상 우위에 놓았으나 이 문서는 “성만찬은 교회 예배의 중심적 행사”[성만찬 1항], 양자가 상보적인 관계임을 말한다: “언제나 말씀과 성례를 포함하고 있는 성만찬은 하느님의 일을 선포하고 기념하는 것이다”[성만찬 3항];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이 성만찬의 내용 바로 그것인 것처럼, 또한 선포된 말씀의 내용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성만찬과 선포된 말씀은 서로를 보강한다. 즉 올바른 성만찬 거행은 말씀선포를 포함한다.”[성만찬 12항] 말씀중심의 예배가 목회자의 일방적 행위라면 성만찬은 동동한 상호참여의 의미가 있으며 생동감 넘치는 신령한 예배로 나갈 수 있다[율석교회 가흥순 목사의 경험].
 
4) 성만찬에서 삼위의 역할 특히 서방 교회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성만찬과 성령의 관계성을 강조한다.[성만찬 14항, 23항, 17항]
 
5) 성만찬과 하느님의 나라(통치)를 강조함으로써[성만찬 22항] 예수의 죽음에 고착되다시피 한 이해에서 벗어나 세상을 위한 진정한 화해의 선교[성만찬 20항], 세상 안에서의 정의와 진리 추구[성만찬 17항] 및 새창조[성만찬 18항]가 강조된다.
 
6) 성만찬을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시킴으로써,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와 함께 살아가며, 그와 함게 고난당하고, 또 의롭게 된 죄인으로서 그분을 통해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성만찬 10항].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섬기는 종, 타자를 위한 존재로 부름을 받는다[성만찬 24항]
 
7) 성만찬은 성도들의 일치뿐 아니라 지역교회와 온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며[성만찬 19항], 모든 사람들과의 일치를 추구하게 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잔치에 초대하셨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같은 떡을 떼고 같은 잔을 나누는 충분한 교제를 통해 연합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선교적 증거는 개별적인 차원에서나 공동체적 차원에서나 모두 약화된다.”[성만찬 26항]
 
8)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만찬의 집례는 안수받은 교역자가 행하나, 성만찬은 그리스도로부터 은사로 받은 것이며, 교역자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대신하는 것이다[성만찬 29항]. 그러나 정의롭고 평등한 사랑의 사귐을 위해서 더 나아가 우리는 “행동의 의미 자체보다 누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예식이나 전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특정한 성직계급만이 이것을 하고 주교만이 저것을 하는 가부장제도가 만들어 낸 문제들을 되풀이하는 것이다.”15)
 
9) 성만찬의 횟수에 관하여, 성만찬은 자주 거행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것일 경우 적어도 매주일 행해져야 한다[성만찬 30, 31항]
 
 
2. 성만찬을 통한 그리스도인 삶의 새로운 형성
 
성만찬의 지속적인 실행과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형태(Gestalt)로 되어 가는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 지속적인 성만찬 행위를 통해 어떻게 성도들의 삶이 그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형성되어가는지를 경험적으로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요한 신학자들의 성만찬의 의미에 대한 연구 성과를 검토함으로써, 성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삶이 지향해야할 의미와 가치 지평을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성례전은 하느님의 부르심으로서의 교회적 삶과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형성하는 결정적 거점들이다. 칼 바르트는 세례를 그리스도적인 삶의 정초로 성만찬을 그리스도도적 삶의 갱신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찬례는 성찬생활이 되어야 한다. BEM문서는 성만찬의 의미를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Eucharistia)’, ‘그리스도를 기념(Anamnesis)’, ‘성령의 임재(Epiklesis)’, ‘성도들의 교제(Koinonia)’, ‘하느님 나라의 잔치’로 의미부여하고 있다.16)
 
 
2.1 감사로서의 성만찬
 
최근 에큐메니칼 영역에 성만찬을 “Eucharist(감사례)”의 용어로 표현하는 사례가 점증한다.17)  다른 표현들은 통일성보다는 차이와 거리를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가령, 가톨릭의 ‘미사’(The Mass)는 ‘Ite, missa est(가거라, 너는 보냄받았다.)’에서 온 표현으로서 교회의 중심적이고 사귐의 행위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며, 개신교에서 좋아하는 ‘주의 만찬(Lord’s Supper)’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지만 회고적 의미만을 드러내며, 성공회가 좋아하는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심원한 사귐과 교제를 강조하지만 성만찬의 다른 의미를 담지 못한다. 반면 ‘유카리스트’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감사와 기쁨으로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태도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Eucharist’는 그리스어 동사 ‘eucharisteo’에서 왔으며, ‘감사하다’는 뜻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처음교회에서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떡을 나누고 하느님을 찬양했으며, ‘감사를 올린다’와 ‘성만찬을 행하다’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사도행전 2:46-47; Didache 9, 14). 오늘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빠스카 신비에 대한 믿음은 개신교와 가톨릭을 막론하고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초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BEM 문서는 성만찬을 본질적으로 “하느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사의 성례전”이라고 정의하면서 “성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로서의 성만찬”에 첫째 의미로 내세우고 있다.18)  
 
감사의 강조는 신앙의 주관성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근대 자유주의 신학이 간과한 신앙의 객관적 차원을 보충한다. 감사는 항상 객관적 특성을 갖고 있는 바, 감사는 인간을 넘어 항상 하느님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일상생활에는 한탄하는 대신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는 기회는 수없이 많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감사는 자기 사랑(amor sui)과 자기 집착(incurbatus in se)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여 타자를 향한 에토스를 키워, 타자의 윤리를 가능케 한다.
 
 
2.2 기억으로서의 성만찬
 
개신교는 성만찬에서 기억/회상(anamnesis)을 강조했고 가톨릭과 정교회는 제정사에서 언급할 뿐이다. 최근의 연구에서 기억은 한갓 과거의 사건에 대한 회고적 반성(mere memorialism)이 아니라 성만찬에서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하고 승천한 주님의 현존에 대한 고백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늘에서의 종말론적 잔치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소망하는 미래적 기대를 의미한다.19)
 
감사와 기억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다. 유대인은 유월절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행위를 반복하여 기억하고 하느님께 감사한다. 그리스도인도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린다. 태초의 창조부터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에서 정점을 이루고 현재에 이르는 구원사를 낭독하는 것은 감사를 드리기 위함이다. 루가복음(루가22:19)과 바울 서신에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했다(I 고린토 11:24, 25). 여기서 기억은 그리스도의 실재를 새롭게 경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억은 구원 사건을 강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우리를 얽어맨 온갖 종류의 삶의 사슬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될 수 있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현재화한다.
 
고대교회와 동방교회는 장구한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성만찬 제정사를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창조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전날 밤으로 기억의 주파수를 제한함으로써 창조에 대한 기억과 새창조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다. BEM문서는 성만찬을 이스라엘의 해방됨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연결하여 교회의 새로운 유월절 식사, 즉 새 계약의 식사로 보고,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념(anamesis)일 뿐만 아니라 어린 양의 잔치(계 19:9)에 대한 기대라고 말함으로써 구원사의 기억에 대한 폭을 확장하고 있다.20)
 
이처럼 서방교회의 성만찬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사를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오도 카젤은 그리스도인의 일년과 매일의 삶은 구원사 전체를 새롭게 경험하는 주기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21)  개신교 성서 신학자 바클레이는 “우리의 복되신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다시 실현하기 위하여 기억하며,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기억한다”고 말한다.22) 정교회 신학자인 슈메만에 따르면,23) 최후의 만찬은 성만찬에서 목적(telos)으로서 갱신되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완성이며,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며 성취이다. 성만찬은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과 이적의 본질을 지속하는 것이며,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통해 이제 그는 자신을 사랑 자체로 내어준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의 사랑을 그의 나라로 드러내고 보증하며, 그리고 그의 나라는 사랑 안에 거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요한 15:9).
 
성만찬은 부활의 식사이다. 성만찬은 우리에게 나타나신 엠마오의 기념(Anamnesis)이고 우리 가운데 이미 희망 속에서 존재하는 천국의 잔치를 미리 맛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생애의 일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불균형이 발생한다. “오늘날의 성만찬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교회가 경험하는 전 범위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확증-겸비의 성육신, 가르침과 치료의 사역, 희생적인 죽음, 변화를 일으키는 부활, 교회와 세상에서의 임재, 그리고 궁극적인 의의 통치-을 통전적으로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24)
 
 
2.3 성령의 사역으로서의 성만찬
 
성서에서 만찬시 성령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처음교회와 동방교회에서는 성만찬시 성령의 초빙이 발견된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성만찬의 제정에서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중시함으로써 예배에서 성령은 주변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성만찬에서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 이는 츠빙글리이다. 그에 따르면, 성령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기 위해 역사한다. 오직 성령만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선사한다. 칼빈도 츠빙글리를 따라 성령의 역할을 강조한다. 성령은 교회에 부활의 주를 좀더 일반적인 방법에 의해서 경험케 하는 분이시다. 성령은 우리의 삶과 모든 피조물의 삶 속에 있는 보통의 떡과 포도주를 그 이상을 의미하도록 만드시는 분이며 궁극적으로 세계에 대한 성사적 이해를 가능케 하시는 분이다. BEM 문서는 삼위일체적 패턴을 따라, 성만찬을 성령의 초대로 자리매김해고 있다. 성령의 역할은 역사적 예수의 말씀을 현재화하고 생동적이게 하며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위한 성례적 상징이 되게 한다. 더 나아가 전체 성만찬의 행위는 성령을 초대하는 행위인 바, 성만찬은 성령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만찬을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균형잡힌 시도이다.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벨커는 성만찬을  창조하며 창조를 보호하며 또 다시 새롭게 창조하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Eucharistie), 십자가에 달렸고 부활했으며 재림할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억(Anamnesis), 우리를 살리고 해방시키시고 일으키는 성령을 부름(Epiklese)으로 이해한다.25) 성도는 성만찬에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창조물은 해방된 존재이고 존귀하게 된 존재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느님께 간구하고 감사드리며 찬양하면서 그들이 하느님의 창조적이고 동시에 새 창조적인 역사에 완전히 의존하면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4 사귐을 통한 하나됨으로서의 성만찬
 
신약성서는 성만찬을 koinonia, 곧 사귐과 교제로 기술하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koinonia) 마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koinonia) 먹는데, 그 이유는 “떡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떡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I 고린토 10:17)이기 때문이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한 몸인 통일성을 분별하는 일은 중요하다. 통일성에 대한 상징은 평화의 입맞춤이다(II 고린토 13:12). 서방교회는 신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미사를 진행하고 성만찬을 받는 횟수를 극미하게 줄이면서 강한 일체감을 상실했고 평화의 입맞춤도 성직자들에게만 국한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의 과제는 예배에서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신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참여함으로써 사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성만찬에서 루터가 변화된 떡과 포도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츠빙글리는 변화된 예배자가 관심이다. 회집된 공동체에 대한 츠빙글리의 관심은 매우 크다. 그리스도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신다. 재세례파에서는 성만찬의 본질은 미사나 성례가 아니라 사귐의 표현이라고까지 했다. 떡과 포도주 안에서의 사귐의 발견은 종교개혁 교회의 위대한 발견이다. BEM 문서는 성만찬을 신자들의 사귐으로 보면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가 충분히 드러나는 곳은 성만찬”이라고 했다. “성만찬의 축하는 항상 전 교회와 관계해야 하며, 전 교회는 각 지역 교회의 성만찬 축하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 출신의 에큐메니칼 정교회 신학자 존 지지울라스가 성만찬의 공동체는 탁월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이유도, 성만찬은 우리가 삼위일체의 참된 삶과 사귐과의 교제를 종말론적 진리의 특성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귐(koinonia)은 하느님과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패러다임이다. 그는 교회가 인간과 인간의 자연환경 사이에는 본래적 사귐이 있음을 알게 되길 원하며, 이러한 사귐을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 교회의 존재 자체가 사귐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6)
 
1) 타자의 초대와 사귐
 
성만찬은 본질적으로 사귐의 식사이며 먹는 것과 축성의 행위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봉헌 예식과 영성체 예식은 분리될 수 없다. 성만찬은 단순히 함께하는 사랑의 식사, 교회 공동체가 같이 밥을 먹는 식사 이상이다. 그러나 교회가 성만찬과 사랑의 식사로서의 단순식사를 연결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성만찬을 표징적이고 상징적인 식사로만 이해하여, 사귐의 식사라는 성만찬식의 본질적 성격을 상실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성만찬은 공동의 참여를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중시되는 시간이다. 예배는 하느님과의 수직적 관계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연대 또한 중요하다. 성만찬은 사람들을 함께 모이게 하며 또한 그 연대를 공고히 한다.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의 구습이었던 사적 미사를 거부하고 전체 공동체의 회집을 전제로 하는 예배의 공공성을 강조했던 점도 같은 맥락이다.27)
 
교회의 근거는 하느님의 영이 ‘생명에로 초대하며 이 생명의 초대에 참여하는’ (In-Vitatio = in + vita) 성례전이다. 성례전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미지인 사랑과 교제로서의 영생을 제공한다. 다양한 삶의 초대(invitation)는 소통적 자유의 삶의 원형이다. 특히 약한 자와 눈에 띄지 않는 자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다양성을 보충할 수 있다. 초대란 자유로운 상호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삶(vita)에 머무름(in)이다. 초대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에 참여하도록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개방하며 나누고 서로 독려하려는 삶의 태도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구원은 거룩한 자들의 금식에서가 아니라 소외된 자들 죄인들과 함께하는 만찬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식탁공동체는 예수운동을 특징짓는다. 예수의 초대에서 제외된 사람은 없다. 예수는 선택된 자들의 거룩함(holiness)이 아니라 모든 자의 전체성(wholeness)을 추구한다. 특히 예수는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고 초대한다.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태오 11:19; 마르코 2:15; 루가 7:34)이며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루가 7:34)로 불리었다. 우리는 성만찬에서 이러한 예수를 초대해야 한다. 우리가 모셔들이지 않는 한, 그분은 언제까지나 낯선이로 남아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는 성찬례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부자들의 “부의 소유”가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영속화하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의 “자기 의”는 선의 소유이며, 이는 선한 자들과 나쁜 자들의 간격을 만들고 악의 구조적 틀을 고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초대와 잔치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상호 참여와 연대로써 고양된 알찬 삶, 성실(誠實)한 삶의 문이 열린다. 상호 참여로부터 공통의 삶, 선한 삶이 생성한다. 이제 비세례자에게도 ‘열려진 식탁(Open Communion)’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왔다.28)
 
하느님의 성례전적 초대는 새로운 삶으로서의 공동체인 인격 공동체를 창조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둔 예수와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은 교회의 공동체적 본질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교회의 위험과 희망을 암시한다.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의 그늘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이미 지금 부활의 생명력과 하느님의 미래를 맛보며 산다. 교회는 그의 잠재적 본질을 성례전적 현재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생명: 자연과 우주와의 사귐
 
성례전은 최후의 만찬을 형식적으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례전의 숫자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며, 그보다 생활 세계의 성례전성을 암시하고,29)  이것은 곧 ‘창조의 영이여 오소서!’ 라고 성령을 부르고(epiclesis) 성령의 현존을 인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일임을 암시한다. 교회는 떡과 포도주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양식에서 하느님의 영이 신비적적으로 다가옴을 인지하며 신앙과 삶의 길을 찾는다. 그러므로 성례전의 의미는 인간이 자연과 우주와의 사귐을 가능케 하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총에 있다. 교회는 성례전과 말씀 선포와 선교에서 유일한 성례전인 하느님의 영이 자연과 우주 안에 임재하심을 맞이하고 축하하며 증언함으로써 인간은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나왔다는 생명중심적 에토스를 키울 수 있다.
 
 
2.5 희생제사로서의 성만찬
 
성만찬을 희생으로 이해하여 온 역사는 매우 길다. 최후의 만찬은 희생적 언어로 가득하다: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개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오 26:28). 히브리서는 희생제사의 언어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한다. 중세의 신심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 지은 인간의 죄 값을 보상하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이 있었다. 여기서 루터는 반복적 희생으로서의 미사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스투키는 만일 사람이 형벌을 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성만찬이 죄를 속하는 희생이라고 보는 개념이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연옥에 있는 기독교인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제단에서의 이런 희생은 연옥에서의 기간을 감하여 죽은 자의 천국행을 재촉해준다는 것이다.30)  종교개혁 교회는 이처럼 사용되는 나의 죄를 위한 희생제사적 성격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죄의 고백은 강조했기 때문에 회개와 고백이 성만찬 안에 강하게 들어왔다. 그 후 성만찬은 갈보리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주관적으로 묵상하는 참회적인 예식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개인적 뉘우침을 유도하여[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405장)] 인간의 무가치성을 강조하는[이 벌레 같은 날 위해...(141)] 분위기가 압도하는 성금요일의 색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고조할 수 있다. 우리는 성만찬이 화해, 해방을 주는 즐거움과 평화의 식사가 아니라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억압의 원천으로서, 그리고 히스테리적이고 자기 학대적인 생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으로 이끌어가며 실제로 사람들에게 그러한 영향을 일으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31)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희생’(Sacrifice)과 희생제물(Victim)은 구분되어야 한다. 십자가 처형은 나사렛 예수가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처형되었음을 드러낸다: 1) 종교의 이름으로, 2) 지배적 정치체제의 이름으로, 3) 두 가지 법(율법과 로마법)의 이름으로, 4) 여론에 의해(“그 때 그들 모두는 소리쳤다: 그를 십자가에 달으시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의 본질, 곧 인간의 삶을 매우 해롭게 만드는 상황들을 조직적으로 위장시키고 집착하게 만드는 거대한 힘인 죄가 분명하게 폭로된 사건이다.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불의가 드러난다. 구속자이시며 해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바로 이러한 세상의 불의에 의해 희생되었음이 고해져야 한다.
 
 
2.6 사랑과 정의를 통한 해방으로서의 성만찬
 
성만찬을 사랑과 정의를 통한 해방으로 설명하려 한다면, 완고한 전통주의자와 보수적인 자본주의자들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32) 그러나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service of worship)는 곧 인간성을 섬기는 행위(service of humanity)로 이어져야 한다. 성만찬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가 물질이기 때문에 인간을 하느님과 연결할 뿐 아니라 우리의 동료 인간 및 자연과도 연결한다. 성만찬에서 축하되는 모든 사람의 통일은 인간을 동료 피조물과도 관계맺게 한다. 성례전은 사랑과 정의를 위한 일로 우리를 인도하는 데, 그리스도의 왕국은 교회의 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 밖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정의란 사회적 사랑이다.
 
벨커에 따르면, 성만찬이란 예수의 목표였던 사람과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사람과 사람들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함축된 축제이다.33) 성만찬에서만큼 하나됨과 평등과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곳은 없다. ‘여러분을 위한’에서는 구체성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에서는 보편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성만찬에서는 근본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이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서로서로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성만찬은 인간적인 하나됨이라는 사실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하나됨은 온갖 종류의 심리적,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사회적, 경제적, 생태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BEM문서에 따르면, 성만찬은 세상의 미래의 모습을 상징하는 바, 창조주에 대한 봉헌과 찬양,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우주적 교제,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상징한다.34)
 
장익 신부는 가톨릭의 세계성체대회를 “화해와 나눔과 일치의 잔치”35) 라고 설명하면서, 2차 대전 이래 4년 간격으로 열린 대회 주제들은 바로 사랑과 정의를 통한 평화의 실현을 위한 대회였음을 말한다:  
 
“1960년 뮨헨대회는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베풀어진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셔 한 몸이 된 우리 또한 서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극도의 빈부격차 등으로 인한 불의와 내분에 시달리던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1968년에 열린 제39차 대회에서는 성찬의 신비를 무엇보다도 ‘사랑의 유대’의 원천이자 사명으로 제시했고, ... , 1976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41차 대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통찰로 심화된다. ‘성체와 인류 가족의 굶주림’이란 표어 하에, 인류의 굶주림을 채워주는 양식으로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인류 안에서 인류 가족과 함께 굶주리고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하는 몸으로 동시에 본 것이다”(169)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함은 떡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이 나뉘어지듯이 자기희생적인 나눔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이며, 동시에 그런 삶의 실행이다. 명상 인도자가 말라서 굳어버린 흙에 물을 쏟아 부으며 말했다.36)  “보십시오. 흙이 물을 받아들일 수 없고 아무 씨도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손으로 흙을 부순 다음 다시 물을 붇고 말했다. “부서진 흙만이 물을 받아들이고 씨가 자라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부서진 열린 삶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나눔의 삶은 정의와 사랑의 하느님나라를 자기와 일치시킨 삶이다. 그러므로 성만찬 참여자는 예수의 삶과 자기를 일치시킬 수 있으며, 이러한 면에서 성만찬은 온갖 형태의 왜곡, 폭력, 소외, 경제적 비참에 대항해 싸우도록 용기를 주는 장이기도 하다.37)
 
 
2.7 종말론적 의미
 
신약성서에서 성만찬이 행해지는 맥락은 매우 종말론적이다. 최후의 만찬의 제정 말씀에도 하느님 나라가 임박하게 올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나는 과월절 음식의 본뜻이 하느님 나라에서 성취되기 까지는 이 과월절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이제부터 하느님 나라가 올 때까지는...”(루가 22:16, 18).38) 하느님 나라도 식탁교제의 용어로 설명된다: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루가 22:30). 바울도 주의 만찬을 기대로써 이해한다: “여러분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I 고린토 11:26). 주의 만찬에서 주님의 임박한 오심과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기대한다. 주의 만찬은 창조와 구속에서의 하느님의 사역을 모아 궁극적 완성에 이르도록 몰아간다.
 
성만찬에서의 이러한 종말론적 분위기는 재세례파와 오순절 운동을 제외하고는 개신교회가 계승하지 못했다. 그러나 BEM문서는 “성만찬을 하느님 나라의 식사”로 보고 전 세계를 향한 선교를 고취함으로써 성만찬에서의 종말론이 살아나고 있다. 최근 개신회의 성만찬예문에는 종말론적 언급이 기도문에 포함되어 있다: 가령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승리로 오실 때까지 우리는 그의 하늘의 잔치를 베풉니다.” 성만찬의 종말론적 의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갖는 의미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희망이다.
 
 
2.8 성사적 세계관 속에서 성사적 삶의 지속적 실현을 위한 거점으로서의 성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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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영의 교회 이름은 불교+기독교, '재가수도+가나안교회'
 GMW연합 ・ 2021. 7. 27. 


1.

불교 사찰 열린선원에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는 해괴한 주장으로 소속 교단(감리교) 이단대책위원회에 회부되어 있는 손원영 전 서울기독대교수가 자신의 교회 이름을 불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재가수도가나안 교회>라고 하여 또 다시 불교사랑을 드러내며 종교혼합주의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서울기독대학교 정문 앞에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고 주장한 손원영 교수의 재임용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 모습



2021.7.17일자 뉴스1의 기사를 보면, 손원영 전 교수는 " 일부 부패한 한국 교회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교회를 '안 나가'는 신자들을 위해 '재가수도가나안공동체'를 만들었다. 집에 머물며 수련을 한다는 불교 용어인 '재가수도'에 '안 나가'를 거꾸로 한 '가나안'을 붙인 이름"이라고 하였다.



* 원문기사 보기https://www.news1.kr/articles/?4374178
'법당 훼손' 대신 사과했다 파면…복직 판결에도 4년째 이단몰이

사실 앞에 겸손한 민영 종합 뉴스통신사 뉴스1

www.news1.kr





▶손원영 전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교회인 '재가수도가나안공동체'주일 모임을 공지하고 있다



2.

손교수는 자신이 한 개신교인이 개운사 법당을 훼손한 사건에 대하여 자신이 대신 사과한 것 때문에 이단몰이를 당하는 것처럼 언론과 인터뷰 하고 있지만, 사실상 손교수의 핵심 과오는 과거 열린선원 사찰에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소속 감리교(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이철 목사)는 개운사 사건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선원 사건과 이후 파행적인 행동과 주장들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손교수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언론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는 과거 발언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옹호언론들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팩트는 철저히 외면하는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손원영 교수가 2018.12.9 열린선원에서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3.

손교수가 자신이 이단으로 규정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동일한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교수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명예훼손을 했죠. 사람들이 저를 머리에 뿔 난 마귀처럼 생각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저한테 가까이 오면 불이익을 당할까 다가오지도 못해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교수들인데 이제는 만나는 것도 어색해 합니다"라 고 하였다.

손교수의 주장이 소속 감리교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될 경우 타교단에서도 줄줄이 이단규정이 내려질 것이 확실하고, 손교수의 지금까지의 투쟁(?)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 뻔하다.

4.

손교수의 '불교사랑'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오래전에 없어진 주어사 절터를 방문하고서는 한국교회가 주어사를 재건하여 불교에 기증하자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 관련기사 상세보기

https://blog.naver.com/dreamteller/221994788173
신학대 교수 손원영, 그리스도교가 "주어사 절 재건하여 불교측에 기증하자" 황당한 제안

(*아래 글은 서울기독대학교 전 신학과 교수였던 손원영 가나안교회 목사가 6월 6일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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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손원영교수불법파면시민대책위원회'가 펴낸 책의 이름은 불교의 상징 연꽃과 기독교의 상징 십자가를 합친 <연꽃 십자가>이다



5.

손원영 전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문에 붙어 있는 "손원영은 개인 짐을 빨리 사찰로 옮겨라"고 하는 총원우회의 요구를 이행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6.

손원영 전교수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예술목회연구원' 주최로 11회 예술신학 콜로키움을 진행하면서 허호익 교수를 초청했는데, 허호익 교수는 소속 교단으로 부터 이단정죄를 받고 출교 및 면직 된 사람이다.


전 대전신학대 교수 허호익 은퇴목사는 자신의 책 <동성애는 죄인가>에서 '동성애 옹호'를 이유로 소속 예장 통합 교단에서 면직 및 출교 처분을 받았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슬림'은 사랑과 선교의 대상으로 보아야하고 '이슬람'은 거절해야 하는 것처럼, '불교인'은 사랑의 대상이나 '불교'는 배격해야할 사상인 것이다.

손교수는 너무 나갔다.



* 함께 보면 좋은 기사

https://blog.naver.com/dreamteller/221911114860
무당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재의 존재"라는 손원영 교수가 신학대 교수가 될 수 있는가?

(*아래 글은 서울기독대학교 교목실장인 박우삼교수가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홈페이지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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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면 좋은 기사2

https://blog.naver.com/dreamteller/222446685224
한국교회수호결사대, 감리교 이대위에 손원영 이단 규정 온라인 청원 시작

한국교회수호결사대와 시민단체들은 "예수는 육바라밀을 실천한 보살"이라는 주장 외 수많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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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손원영의 교회 이름은 불교+기독교, '재가수도+가나안교회'|작성자 GMW연합

2023/05/23

뭇 생명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정신

뭇 생명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정신

뭇 생명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정신
한국정신문화를 찾아서(2)

sy104@m-ecoonomynews.com
등록 2018.12.21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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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전(西紀前, 기원전) 24세기에 선포된 홍익인간 정신이 그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무려 3,000년 훌쩍 넘긴 서기 9세기의 인물 최치원에 이르러서야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어울려서 하나 되라’는 홍익인간 정신은 신라대에 와서 뭇 생명을 살리는 ‘접화군생’의 생명사상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자연과 함께 상생하자는 접화군생의 풍류도 정신은 그저 소중하기만 하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중심으로 생명사상을 알아본다.

학자들 간에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풍류도가 유불선삼교를 종합수용한 것이냐, 유불선 삼교 이전부터 있었던 우리 고유의 사상이냐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기자가 보기엔 인류 보편적 정신사적인 흐름으로 볼 때 우리의 고유사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홍익인간 정신을 가진 동이 사람들이 후대로 이어오면서 고유한 정신사상이 없었을리 없다. 공자가 살고 싶다는 나라, 군자국으로 불린 나라에서 왕조를 바꾸고 타민족들이 섞이고 부침하였다고 해도 정치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사상, 신념, 신앙이 없었을리 없다.

홍익인간 정신이 3,000여년이 흘러가는 사이에 좀 더 제도적, 관습적, 조직적체계로 발전했을 것이다. 홍익인간 정신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각 나라마다 국가적 필요성과 지리적 위치와 씨·부족적 기질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달랐을 것이다. 수당(隋唐)과 직접 전쟁을 치른 고구려는 기상과 용맹이 강조됐을 것이고, 신라는 화랑정신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최치원이 <난랑비서>에 언급한 풍류도는 비명의 주인공이 화랑이므로 화랑들의 정신사상과 관련돼 있을 것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밝히고는 풍류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접화군생’ 넉자만 기술했다. 그리고 풍류도는 유불선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며 유불선을 이용해 풍류도를 설명하고 있다.

선사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풍류도는 유불선처럼 가르침이 경전으로 체계화돼 있지는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최치원과 같은 학자가 만약 체계화된 내용이 있었다면 유불선에 빗대어 설명하기 전에 풍류도 정신의 일단을 밝혔을 것이다. 따라서 풍류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빈약한 사료들과 비교분석 하고 근·현대 가설들을 끌어대어 억지로 상상력을 발휘할 필 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랑비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빈약한 사료들이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홍익인간 정신이 실천적이었듯, 풍류도도 ‘접화군생’과 같은 근본적가치, 소박한 의례, 실천적인 내용의 강령 등이 거의 전부일지 모른다. 풍류도와 풍월도, 국선, 미륵선화 등 여러 호칭으로 나타난 것은 풍류도가 확립된 사상과 학파, 종교집 단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당시에는 한자를 쓸 수 있는 지식층도 극히 제한돼 있었으며 문자로 남기는 작업은 국가적 사업이었던 까닭에 기록이 많지 않았을 터다. 다시금 얘기하자면 너무 글자 하나, 일획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가 없고 대의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풍류도가 바로 화랑도가 아닐 것이다. 화랑도는 나라의 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초기엔 자연발생적으로 나중에 국가에 의해 풍류도 중에서 필요한 것만 취해 화랑도의 가르침이 형성됐을 것이다. 어떤 씨족, 부족집단이나 어린전사의 양성이 중요했을 터이다. 귀족, 성주의 자제들과 그 주위 낮은 계급의 자제들로 이뤄진 전사 양성습속(習俗)이 있었을 것이고 삼국 전란 시기에 ‘세속오계’와 같은 실천덕목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에도 풍류도와 화랑도와 같은 정신사상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이선경 교수는 풍류도는 삼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고유 정신사상이라며 그 근거로 최치원 이 쓴 <대숭복사비>의 내용을 제시했다. “우리 태평국(신라)은 승지이니, 사람의 성질이 매우 유순하고 지기가 만물을 생기게 하는데 모아졌다. 산과 숲에서는 말없이 고요하게 도를 닦는 무리가 많아 인(仁)으로써 벗을 모으고, 강과 바다의 물은 더 큰 곳으로 흐르려는 형세를 좇아, 선(善)을 따르는 것이 물 흐르는 것 같았다. 이런 까닭에 군자의 풍도를 드날리고 부처의 도에 감화돼 있는 것이, 마치 붉은 인니(인주)가 옥새를 따르고, 쇠가 거푸집 안에 들어 있 는 것과 같았다.”

이선경 교수는 또 <난랑비서>에서 풍류도의 핵심으로 언급 한 ‘접화군생’을 뭇 생명과 만나서 감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했 다. 이 교수는 풍류도는 이질적 사상들과 얼마든지 만나 대화할 수 있으며 인간을 넘어서 천지자연의 뭇 생명까지 감화시키는 생명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최치원의 <지증화상비명> 에도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생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선경 교수는 또 최치원의 <진감화상비명>을 인용하면서 통일신라인의 고유정신이 갖고 있는 개방성에 주목했다.

“도는 사람에게 멀지 않고 사람에게는 남의 나라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東人)의 자손들이 불교도 하고 유교도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계원필경 권2, ‘진감화상비명’)” 이 교수 는 “풍류도는 ‘접화군생’의 열린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늘과 땅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단군시대 신시(神市)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허호익 대전신대 교수는 <난랑비서>에 나오는 ‘국유(國有)’ 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허 교수는 「최치원의 <난랑비서>의 해석의 여러 쟁점」이란 논문에서 최치원은 당나라를 서토(西土) 서국(西國)이라고 부르고 신라를 동국(東國)이라 부를 만큼 신라의 주체적 자각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최치원이 <난랑비서> 서두에 ‘국유’를 명시한 것은 풍류도가 유불선이나 중국식 풍류 개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우리 민족 의 고유 사상임을 강조하기 위한 어법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풍류도는 중국에서 사용되던 색정적 풍류나 감흥적, 미학적 풍류도 아니며 은일형, 계절형, 순례형 풍류도 아니고 종교 신앙형 풍류라고 주장했다. 접화군생에 대해서도 최영성, 도광순 교수의 글을 인용해 초목이나 동물에게까지도 덕화를 베푸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경 교수를 지난 11월 초에 만났다. 이선경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역학자인 이원구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풍류도와 단군신화는 역학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한국문화의 원형적 상상력으로서의 역학」에서 풍류 도와 단군신화는 음양 대대와 천지인 삼재, 상생의 생명사상 이 풍성하게 녹아 있다고 말했다.




Q. 역학이라고 하면 보통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선경 안재홍 선생과 유승국 선생이 연구한 바가 있는데, 두 분의 선생님들이 역학을 중국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부여에서 수골 복사가 성행하고 나중에 은나라에서 갑골 복사가 이뤄졌습니다. 안재홍 선생은 태극이고 팔괘고 간에 역학은 중국 특유의 문화 산물이 아니고 조선적인 요소가 매우 많다고 하셨어요. 삼국지 위서 부여전에 부여인들은 전쟁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발굽을 보고 발굽이 갈라졌으면 흉하고 합쳐졌으면 길한 것 으로 봤다는 수골복사 기록이 나옵니다. 주역이란 본디 점치는 책인데, 북사가 동이에서 일찍 행해졌던 것이지요. 역학이 중국에서 체계가 잡혔지만 그 역학적 사고의 바탕은 동이 족이 이미 전해오고 있었다는 거지요.


Q. 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이선경 한국철학을 공부하다가 늘 역(易)에 걸리는 거예요. 역(易)의 사유를 모르니까, 한국철학, 성리학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리학의 이기론이라는 것도 주역과 닿아 있거든요. 동양학을 하면 항상 주역의 언어가 나옵니다. 대만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대만정치대학에서 역학의 대가이신 고회민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에게서 본격적으로 역학을 배웠습니다. 석사 논문은 「역경의 선(善) 사상 연구」 였습니다.


Q.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인데, 이원구 선생을 사상가로 규정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선경 실학파들은 주장은 있는데 철학이라고 할만한 이론체계가 미약합니다. 이원구 선생은 북학파와 비슷하게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의 육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음양변증론이라고 할 수 있는 ‘구도육사론 (九道六事論)’의 이론 체계를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인륜과 산업은 결코 떨어질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산업 속에서 인륜이 실현돼야 한다’는 주장을 독창적인 역학론으로 설파하셨습니다. 이원구 선생의 역학은 중국 역학의 수용과 이해의 단계를 넘어 독자적 역학 세계를 여신 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역학 사상이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요?

이선경 역학의 기본 원리는 ‘음양 대대(待對)’와 ‘소식(消息)’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대’란 대립된다는 말인데 음양, 즉 낮과 밤, 빛과 어둠처럼 대립돼 있지만 낮과 밤이 서로 연결돼 있지 않습니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보이는 것이죠. ‘소식’은 잦아들고 불어난다는 뜻인데요, 낮이 줄어들면 밤이 늘어나고 밤이 깊어지면 해가 솟아난다는 것이죠. 이것을 인간 세상에 빗대면 내가 존재하려면 나와 상반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 까. 미운 놈을 밉다고 죽이는 게 아니고 미운 놈은 함께 살아 가야 하는 상생관계라는 원리입니다. 역에 보면 비구혼구(匪寇婚媾)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적인 줄 알았는데, 혼인할 짝이더라는 말이죠.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여태까지 도적놈이라고 서로 대치했는데 좋은 기운이 돌지 않습니까. 우리는 대립자인 줄로 아는데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게 역학이 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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