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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7

도겐 사상 특집 ‘일본불교사연구’ 4호 나와 - 법보신문

도겐 사상 특집 ‘일본불교사연구’ 4호 나와 < 교학 < 학술·문화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도겐 사상 특집 ‘일본불교사연구’ 4호 나와

교학 입력 2011.04.06 14:37  댓글 0
일본불교사연구소(소장 김호성)는 최근 ‘일본불교사연구’ 제4호를 펴냈다.

 

‘도겐(道元)의 생애와 사상’을 특집으로 다룬 이번 논문집에는 
△도겐의 면수사법(面授嗣法)의 특징과 그 전개(김호귀) 
△도겐의 게송에 대한 고찰(정천구) 
△도겐의 불성이해(최현민) 
△도겐의 정전불법과 선종비판(中島志郞) 등 논문을 비롯해 
△근현대 불교개혁론의 지평(김광식) 연구논문이 실려 있다. 

또 서평과 평론으로 
△이찬수의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김영진) 
△나카자와 신이치를 통해 상상하기(심준보) 등 글도 게재돼 있다.

2023/04/06

2012 이찬수. **불교 없이는 신학도 불가능했다 - 불광미디어

불교 없이는 신학도 불가능했다 - 불광미디어

불교 없이는 신학도 불가능했다
불광출판사 
승인 2012.04.23

내가 만난 불교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고등학교와 대학 때는 집과 학교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교회였다. 그 시절 교회 생활은 즐거웠다. 
고교시절,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대학은 화학과로 진학했다.

광주항쟁의 후폭풍으로 캠퍼스에는 전투경찰이 상주하던 시절이었다. 최루가스가 매캐한 교정을 거닐며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이 커지던 어느 날, 속에서 솟아오르는 강력한 메시지에 사로잡혔다. 목사가 되어 소외된 이들과 함께 불의한 시대를 살라는 요청이었다. 한 번뿐인 삶, 나는 그 내면의 요청에 따르기로 용감하게 결심했다. 그 뒤 부전공 제도를 이용해 종교학과에서 신학 공부를 병행했다.

신학으로 시작했다가 종교학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종교학은 내게 낯선 학문이었다. ‘힌두교’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여러종교에 대해 배우면서 이른바 ‘타종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불교, 유교, 도교 같은 동양종교의 가르침은 나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근동종교, 유대교, 이슬람을 통해 기독교의 역사적 제한성 내지는 상대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불교의 매력은 대단히 컸다. 공空사상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상대적이고 관계적으로 보는 안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고 폄하하던 지난날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신학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불교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대학원을 종교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원에서는 특히 선과 화엄사상에 끌렸다. 『화엄오교장』에서 ‘육상원융’을 해설하며 나온 “기둥이 없으면 집도 없다.”는 식의 구절은 화두처럼 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학생에게 세상을 설명한답시고『화엄오교장』의 그 구절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는, 그 말에 다시 휩싸이게 되었다. 그 뒤 그 말은 정말 나의 일부가 되었다. “아!”하며 화엄경의 연기론적 혹은 성기론적 세계 해석이 순식간에 내 속에 녹아들어갔다. 이론이 몸으로 느껴지는 신기한 순간이었다.   

지눌의 선사상에 나타난 믿음信의 문제를 중심으로 석사논문을 썼고, 화엄사상에 대한 대표적 영어권 저술인『The Buddhist Teaching of Totality』도 우리말로 번역했다(『화엄철학』, 경서원). 그럴수록 세상을 ‘상대’적 혹은 ‘관계’적으로 해석하게 되었고, 하나 안에서 전체를 보는 안목도 생겨났다. 신도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보였다. 불교를 알수록 기독교가 더 잘 보인 것이다. 나는 불교와 기독교의 근저에서 상통하는 세계를 신앙의 근거이자 핵심, 학문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나는 초심에 따라 신학 석사과정을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박사과정에서는 일본 현대불교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탁월한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며 논문을 썼다. 박사 논문은 보완을 거쳐『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인간은 신의 암호』라는 두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논문에 담긴 신은 어느 한 편에서 다른 편을 거부하는 대립적 존재가 아니었다. 공空이라고 표현해도 상관없을, 만물의 존재원리이자 때로는 만물 그 자체이기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기독교인이었다. 
불교적 세계관은 나의 신학적 관심사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 
공사상과 합일하다시피 한 신관으로 갈등 해소를 위한 종교 간 대화에 힘쓰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소명처럼 생각되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신학 혹은 종교학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불교였다. 
불교로 인해 기독교적 세계관의 확장과 심화를 경험하면서 
애초에 품었던 목회의 길로까지 다시 들어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회에서 신자들과 불교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대학에서 불교학으로 강의를 하기도 하는 내게 
불교 없는 기독교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찬수.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한국 그리스도교 비평』등의 책을 썼고, 『화엄철학』,『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다』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강남대 교수이자 길벗예수교회 목사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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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부당 해직된 강남대 이찬수 교수에게 배운다-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참세상 현장기자석 :: 부당 해직된 강남대 이찬수 교수에게 배운다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인권연대 2007.01.02


이찬수 교수에 대한 강남대의 독선적 종교재판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교내외의 양심적인 목소리와 교육당국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남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강남대에서 ‘기독교적 창학이념’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이찬수 교수는 그동안 이화여대, 성공회대, 감리교신학대에서 기독교에 대한 강의를 이어나갔습니다. 

종교를 내세운 강남대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반종교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책위’는 열린시민강좌로 진행된 이찬수 교수의 ‘기독교와 현대사회’에 이어, 종교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강좌에는 우리 사회가 상호 이해 속에서 진정으로 소통하고 성숙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각계 전문가들의 특강도 준비돼 있습니다.
관용과 대화의 원칙으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걸어가야 할 참 길을 나누는 자리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주 최 : 강남대 이찬수 교수 부당해직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 일 정 : 2007년 1월 16일부터 매주 화.목 저녁 7시.
* 장 소 : 인권연대 교육장(4호선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에서 2분 거리)
* 수강료: 4만원(계좌입금: 국민은행 003-21-0712-089(예금주 오창익))
* 문의 및 접수: 인권실천시민연대(02-3672-9443, hrights@chol.com)
종교자유정책연구원(02-2278-1141, kirf@kirf.or.kr)


* 프로그램

1/16(화) 다양성, 진리에 이르는 지름길
1/18(목-특강)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대화 :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23(화) 文으로 化하다 - 한국종교문화론
1/25(목-특강) 불자는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가 : 윤영해/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1/30(화) 다르면서 같은 불교와 기독교
2/1(목) 종교적 다양성을 소화해 낸 신학 - 스미스, 힉, 라너의 신학
2/6(화-특강) 똘레랑스의 의의와 종교적 관용 : 홍세화/한겨레 시민편집인
2/8일(목) 하느님은 여러 종교를 이렇게 보실거야 - 성서적 타종교관






* 교재 및 참고문헌


이찬수, <종교로 세계 읽기>,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마이클 콜린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기독교 역사>, 시공사, 2001.
김광원 외, <기독교 바로 알기>, 선학사, 2002.
이찬수, <생각나야 생각하지: 사유, 주체, 관계, 그리고 종교>, 다산글방, 2002.
강남대학교교양교재편찬위원회, <기독교와 현대사회>, 강남대학교출판부, 1998.
그 밖에 파워포인트 자료들 및 뮤지컬 Jesus Christ Superstar




강사 소개

이찬수
이찬수 교수는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곳 신학분야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서로 ꡔ종교 신학의 이해ꡕ, ꡔ인간은 신의 암호ꡕ, ꡔ한국 종교문화 연구 100년ꡕ(공저), ꡔ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ꡕ, ꡔ생각나야 생각하지-사유, 주체 관계 그리고 종교ꡕ, ꡔ종교로 세계 읽기ꡕ 외 다수가 있습니다. 7년 동안 재직한 강남대에서 부당하게 해직되고, 현재 감신대, 성공회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희수
터키 국립 이스탄불대학에서 중동 역사와 문화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한국-터키친선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세계적인 이슬람 문화전공자로 유네스코 본부의 ꡔ세계이슬람 문화 총서ꡕ의 동아시아편 집필 책임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ꡔ이슬람: 9.11 테러와 이슬람세계 올바로 이해하기ꡕ, ꡔ이스탄불; 동서양 문명의 교류ꡕ, ꡔ한-이슬람교류사ꡕ 등이 있습니다.

윤영해
동국대학교 선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비교종교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해인사로 출가해 18년간 수행한 뒤 환속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ꡔ주자의 선불교비판연구ꡕ, ꡔ불교의 공동체 윤리ꡕ, ꡔ천수경과 기도법ꡕ 등이 있습니다.

홍세화
1979년에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로 망명 한 후 2002년에 귀국하였습니다. 현재 한겨레 시민편집인,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으며 ꡔ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ꡕ, ꡔ빨간신호등ꡕ, ꡔ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ꡕ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강남대이찬수교수부당해직사태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 www.hrights.or.kr/yichansu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 geulhangari.com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 geulhangari.com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

지은이 | 김진호 이찬수 이상철 유승태 김희선 김나미 정용택 홍정호 백소영 이숙진
발행일 | 2018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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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단체가 연합하여 열린 공동 강좌 ‘지금 여기로 걸어나온 십계’를 시작으로 기획되었다. 세 단체는 신앙인아카데미, 우리신학연구소(가톨릭),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기독교)인데, 개신교 단체와 가톨릭 단체가 함께하다보니 개신교와 가톨릭이 다루는 십계가 조금 다르다는 데서부터 논의는 시작되었다. 개신교와 동방정교의 십계명은 2계명으로 ‘우상 금령’을 넣었는데, 가톨릭에서는 이를 1계명인 ‘다른 신에 대한 신앙 금지’ 항목에 포함시켰다. 또한 개신교와 동방정교의 10계명은 ‘이웃에 대한 탐욕 금지’인데 가톨릭은 이를 두 개로 나누어 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 것’과 10계명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 것’으로 구분했다. 이 책에서는 가톨릭의 분류 방식을 따랐다.

목차
서론

1계명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신이 하나’라는 말에 대한 범재신론적 해석 │ 이찬수

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신의 이름을 둘러싼 전통, 상상, 그리고 진실 │ 이상철

3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
체제의 분할 전략을 넘어서: 안식일 정신과 기본소득운동 │ 유승태

4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 공경의 계명과 아동 학대 │ 김희선

5계명 살인하지 말라
서바이벌의 체계를 척결하라: 사회적 타살로서의 자살에 관하여 │ 김진호

6계명 간음하지 말라
이성애 가부장제 없이는 불가능한 간음 제도 │ 김나미

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악마는 뒤처진 자부터 잡는다 │ 정용택

8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살리는 말의 주인이 되라: 말이 말 같지 않은 시대의 말에 관하여 │ 홍정호

9계명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가부장제로부터 성과 사랑을 해방하라 │ 백소영

10계명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
탐욕의 다수결인 시대, 우리 안의 탐욕 │ 이숙진

보론 역사로서의 십계명 /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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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미국의 목회신학자 도널드 캡스는 본인 자신이 아동 학대라는 주제에 대해 심화된 연구를 하게된 계기가 바로 ˝종교가 아동 학대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된다.˝ 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학대를 정당화하는데 종교가 사용되었다면, 치유와 정의를 불러올 수 있는 자원 역시 종교에서 찾을 수 있을까? 89p - :Dora
이 법은 과거의 주체들인 ‘조상‘이 아니라 현재의 주체들인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 법의 표현들은 [출애굽기]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그 법은 과거의 법이 아니라 현재의 법이다. 즉 그 법령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의미는 현재의 경험 속에서 재해석된 것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을 성찰하게 한다... 더보기 - iamjune
‘하나‘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면, 유일신론과 범재신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는 사실상 ‘전체‘이자 ‘근원‘을 나타내기 위한 수학적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37쪽) - iamjune
문득 나는 제2계명에 대한 데리다식 독법이 진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를 교리적.교조적 음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가 찾을 수 있어? 그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일까?˝라는 의심의 해석학 내지는 ˝틈과 균열의 존재론으... 더보기 - iamjune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생산성의 기준에 대한 암묵적 합의는 이른바 ‘생산적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영국적으로 열등한 사회적 지위에 머물게 하며 이들의 희생과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ㅣ 만든다는 점에서, 노동 과정 자체를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안식일의 참 의미를 되찾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73쪽) - iam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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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서가 법 속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오늘의 시대정신을 담아 성서의 법들을 이해할 것인가

개신교 신자든 가톨릭 신자든 혹은 비신자나 타종교인이든 십계명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교회가 십계명 암기를 신자됨의 통과의례로 삼고 있고 많은 이가 십계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조차 ‘십계’를 깊게 사유하고 성찰의 소재로 삼는 일은 매우 낯설다. 이 책은 십계에 대한 이런저런 오해와 해석을 뛰어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맥락을 투과하여 십계를 새롭게 읽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세 단체가 연합하여 열린 공동 강좌 ‘지금 여기로 걸어나온 십계’를 시작으로 기획되었다. 세 단체는 신앙인아카데미, 우리신학연구소(가톨릭),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기독교)인데, 개신교 단체와 가톨릭 단체가 함께하다보니 개신교와 가톨릭이 다루는 십계가 조금 다르다는 데서부터 논의는 시작되었다. 개신교와 동방정교의 십계명은 2계명으로 ‘우상 금령’을 넣었는데, 가톨릭에서는 이를 1계명인 ‘다른 신에 대한 신앙 금지’ 항목에 포함시켰다. 또한 개신교와 동방정교의 10계명은 ‘이웃에 대한 탐욕 금지’인데 가톨릭은 이를 두 개로 나누어 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 것’과 10계명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 것’으로 구분했다. 이 책에서는 가톨릭의 분류 방식을 따랐다.

오늘날 십계명을 새로 읽다
십계를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영화 「십계」(1956)나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처럼 십계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많고, 이러한 영화가 나온다는 건 십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여러 사람에게 흥미로운 소재로 다가왔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탓인지 혹은 이미 대중에게 형성되어 있는 틀에 박힌 십계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십계는 홍해를 가르는 물길 이야기와 관련된 스펙터클한 스토리 이상을 끌어내지 못한다. 요컨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십계는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않고 성찰되지 않는” 대표적인 소재다. 이렇듯 십계를 단순한 흥미로운 스토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신앙적인 숙고와 성찰의 소재로 묻고자 할 때, 처음 고려했던 점은 그것이 성서 자체의 신앙 속에서 어떤 고민을 담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성서에서 십계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두 텍스트(「출애굽기」 20장, 「신명기」 5장) 가운데 「신명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님께서 이 언약을 우리 조상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 당신들과 함께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_「신명기」 5장 3-4절

여기서 그 대상은 ‘현재’의 주체들, 즉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다. 과거의 법이 아닌 현재의 법이다. 즉 법령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의미는 현재의 경험 속에서 재해석된 것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을 성찰케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우리는 십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책에 담긴 각 계명에 대한 열 가지의 이야기는 그 결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각양각색이지만, 오늘 우리 시대의 맥락과 무관하게 경직된 의미로 해석되어온 교회의 십계 독법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우리 시대의 현실적인 고민거리들을 십계의 항목 하나하나와 새롭게 대면시켜 재해석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 책 전체를 꿰뚫는 저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역사로서의 십계를 넘어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_「마가복음」 12장 29-30절

1장 「‘신이 하나’라는 말에 대한 범재신론적 해석」에서는 1계명(“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을 다룬다. 주님이 오직 한 분이라거나 신이 하나라는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단순한 숫자로서의 하나라는 것을 넘어 신이 철저한 헌신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실천적 요청의 표현이다. 이 글에서는 많은 기독교인이 야훼/주님이 한 분이라는 말을 수량적으로만 이해하고 ‘하나’의 의미를 성찰하지 않으면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1계명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신이 하나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를 오늘날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결국 ‘신이 하나’라는 말은 ‘전체’, 즉 신이 모든 곳에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잘 살린 신론이 ‘범재신론’은 다신론, 유일신론, 범신론, 무신론을 모두 포괄하고 넘어서는 개념으로, 유일신론의 폐기이자 재해석이고 동시에 완성이다.
2장 「신의 이름을 둘러싼 전통, 상상, 그리고 진실」은 2계명(“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을 데리다식 해체론적 독해 방법을 통해 해석한다. 이는 2계명을 교리적·교조적 음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가 찾을 수 있어?”라는 의심의 해석학 내지는 틈과 균열의 존재론으로 신을 바라보려는 시도다.
3장 「체제의 분할 전략을 넘어서: 안식일 정신과 기본소득운동」은 3계명(“안식일을 거룩히 지내라”)을 다룬다. 인간의 쉼을 위한 안식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동의 경계를 살펴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안식일과 노동 문제를 오늘날 임금소득과 생활소득의 괴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연결 짓는다. 상처받은 마태복음 공동체가 자신들의 고통에 대한 성찰과 승화의 과정에서 나와 적을 가르지 않는 보편 윤리를 선택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시대 빈곤의 현장과 연대하는 실천으로써 기본소득을 바라봐야 한다.
4장 「부모 공경의 계명과 아동 학대」는 4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을 다루면서 부모 공경과 아동 학대를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무조건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교회의 계명이 과연 합당한가? 이 글에서는 부모로부터 폭력을 경험하는 아이들이 주일에 교회에 가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낄 공포를 중심으로, 계명을 듣는 ‘대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이때 오히려 교회는 부모 공경을 순종의 계명으로 가르침으로써 부모의 폭력을 정당화할 여지가 있다. 교회의 참역할은 무조건적으로 계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들에 대한 치유다.
5장 「서바이벌의 체계를 척결하라: 사회적 타살로서의 자살에 대하여」는 5계명(“살인하지 말라”)을 다루며 살인 가운데 오늘날 가장 문제가 심각한 ‘자살’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스도교는 자살에 적대적이다. 자살은 살인에 포함되지 않았고, 자살 자체는 아주 잘못된 행위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요즘, 5계명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살을 부추기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 이에 맞물린 서바이벌 사회와 그 사회가 초래한 절망 등이 만연한 상황에서 우리가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계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8장 「살리는 말의 주인이 되라: 말이 말 같지 않은 시대의 말에 관하여」에서는 8계명(“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을 다룬다. 이 계명은 모든 형태의 거짓말을 금지하는 도덕주의적 선언이 아니라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말, 특히 고대 이스라엘 재판에서 상대를 억울하게 피해자로 만드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즉 부와 권력을 독점한 이들에게 맞서 맨몸으로 대응하는 이들 편에 서서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법률의 역사화’를 시도한 것으로, 곧 ‘법의 말’을 통한 대중의 주체화 시도다. 이러한 법의 말을 넘어 참말이 일으키는 사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타자의 말이 놓인 맥락 속으로, 우리가 함께 서 있는 자리로 용기 있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6계명 “간음하지 말라”, 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9계명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10계명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의 네 가지 계명은 서로 같은 맥락에 있다. 이웃의 집, 소, 나귀, 남종, 여종 등을 넘어 아내까지도 남편의 소유로 보았던 가부장적 문화에서 만들어진 이 계명들을 오늘날 그대로 따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인다.
6장 「이성애 가부장제 없이는 불가능한 간음 제도」는 6계명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의도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고대 사회에서 ‘간음하지 말라’의 대상은 여성에 한정되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 맘대로 다뤄질 수 있었다. 이러한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는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후기자본주의, 이성애 가부장제,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과연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7장 「도둑질하지 말라」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의 청중은 사유재산이 있고, 법적·종교적으로 권리를 가진 성인 남성이다. ‘도둑질하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가나브’를 당대의 시대 상황을 반영하여 ‘유인하여 노예로 만들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7계명은 소규모 자영 농민들에 대한 지배 엘리트들의 전방위적인 수탈, 곧 토지 강탈에서 고리대를 통한 노예화로 이어지는 ‘인간 도둑질/도적질’ 금지를 위한 계명이다.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역시 언제나 야만적인 체제의 희생자는 가장 뒤처진 자들이다. 십계명이 본래의 취지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사회 변혁 운동이 필수적으로 선행되거나 동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9장 「가부장제로부터 성과 사랑을 해방하라」에서는 9계명(“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계명은 있는데, 왜 ‘남의 남편’에 대한 계명은 없을까? 가부장제 문화였던 전통사회의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 이 계명을 새롭게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성서의 권위를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계시로서의 보편 복음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10장 「탐욕의 다수결인 시대, 우리 안의 탐욕」에서는 10계명(“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을 통해 우리 안의 탐욕을 본다. 자본과 소비 욕망, 시장이 중심이 된 이래로 ‘지구 이웃’들은 풍요와 번영의 희생물이 되었다. 이는 이웃의 소유를 탐냄으로써 얻어진 풍요다. 서로의 관계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러한 삶이 존재로 사는 방식이며 우리는 인간을 넘어 지구 모든 존재에게로 이러한 구조를 확정하는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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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기다리는 책.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 셋이 함께 만들었는데 개신교 신학일반으로 분류되어 있다. 분류와 통계의 한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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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

십계는 율법 즉 윤리 도덕의 영역인데 인문학적 고찰(나에게는 인문학적이 낭만적으로 들린다)이 왜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인문학적‘이란 말이 내포하는 의미와 범위가 넓다는 것도 안다. 그보다 현실적, 사회학적, 시의적, 시대상황적, 운동으로서 복지적 고찰이 맞는 듯...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착적 십계의 해석은 남용될 수밖에 없다. 결국 희생자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고찰은 계속 되어야 한다.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이찬수 2015

알라딘: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기 
이찬수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5-08-31


양장본320쪽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목차
1부_ 깨달음의 길에 서다
01 인연에 따르다 : 불교의 인간론
02 믿음과 용기, 그리고 깨달음 : 지눌의 신심론과 틸리히의 신앙론

2부_ 불교와 기독교 서로 만나다
03 법신불 일원상과 범재신론 : 원불교의 일원주의와 세계주의
04 모두 절대무 안에 있다 : 니시다의 철학과 기독교
05 창조적 만남과 궁극적 일치 : 길희성과 타나베의 신학과 철학
06 두 종교를 동시에 살아가다 : 불교적 그리스도인 니터의 고백
07 신학을 불교화하다 : 야기의 불교적 신학
08 불교를 수용하며, 신학을 변호하다 : 발덴펠스의 자기 비움의 신학

3부_ 두 세계를 다시 보다
09 종교는 해석이다 : 스힐레벡스의 신학적 해석학: 모든 종교는 해석이다
10 오늘 우리의 구원과 해탈 : 어느 불교적 신학자의 구원관
11 비종교적인 그러나 종교적인 : 비종교인 리영희가 보는 기독교와 불교
12 90점 불교와 70점 기독교 : 두 종교에 대한 애정어린 요청과 희망



책속에서
P. 37 지눌 선사상에서 믿음과 앎은 깨달음, 즉 돈오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지눌이 믿음과 앎의 해석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과 만나는 체험 후에 원돈신해문, 즉 원돈교에서의 믿음과 앎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세히 밝혔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선에서 강조하던 돈오를 믿음과 앎이라는 언어로 해석함으로써 화엄의 선화(禪化) 및 선의 화엄화를 꾀했고, 선의 언어로 화엄을 해석함으로써 선의 실천 속에 화엄을 포섭하려고 했던 것이다. 원돈신해문은 믿음과 앎을 통해 깨달음으로 들어간다는 선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드러내 주는 것임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 및 앎과 깨달음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눌 선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접기

P. 69 법신불은 구체적 “상징” 또는 “나타낸 바”의 차원과 단순히 동일시할 수 없다. 법신불은, 경험적으로는 불타에게서 알려졌으되, 논리적으로는 그 불타 및 다양한 불보살들의 존재론적 근거로, 또는 다양한 불들을 정말 불이게 해 주는 원천으로 상상된 개념이다. 상상되었다고 해서 그저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려면 먼저 그 깨달음의 존재론적 근거를 확인해야 하기에 나온 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본원·심인·본성 등의 언어는 모두 깨달음의 존재론적 근거로 요청된, 일체의 구체적 형상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근원 혹은 원천이다.  접기

P. 151 한국인은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다양한 종교 사상들을 녹여 내고 있는 한국 안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왔고, 여전히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종교 사상들을 매개로 해서 기독교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안에 녹아들어 가 있는 한국의 종교가 한국의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해 준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한국 종교가 이미 온전히 담아 왔던 그리스도성이 기독교 안에서 자기부정적으로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종교는 그저 기독교를 토착시켜 주는 단순한 매체나 고리가 아니라, 기독교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미 충분히 말해 주는 한국적 매개가 된다. 물론 기독교 역시 한국 종교가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미 충분히 말해 주는 또 다른 매개가 된다. 이들 간의 차이는 도리어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해 주는 ‘절대매개’로 작용하는 것이다.  접기

P. 186 (일본의 신학자) 야기는 이러한 불교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성서와 십자가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죄 없는 사람(=예수)이라 해도 한 인간이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십자가는 본래적 실존으로 이끄는 매개이고 성서는 실존의 근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교의 말씀 안에서만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저에서도 그분을 만난다.”고 야기는 말한다. 그러한 신념으로 야기는 실존의 근저, 통합에의 규정의 장을 제시하면서, 장의 신학을 세웠다. 모든 개체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하고 조화한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야기는 장이라는 개념을 빌려 신학적으로 전개했다.  접기

P. 254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불교와 기독교의 개개 ‘형식’ 내지 ‘제도’를 벗기고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불교와 기독교란 따로 없다. ‘너’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천적 삶에는 종파가 따로 없는 것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하는 원천적 사실에 종파 간, 성별 간, 지역 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있는 인간의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미 깨달아 있어 부처와 하나 되어 있는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미 천주를 모시고 있어(侍天主) 있는 그대로 하늘과 같은 존재인 인간(人乃天)의 원천적 실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더보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은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그리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 출판사 서평

깨달음에서 서로를 경유하여 다시 자신에게로
이 책은 ‘세계적 차원의 종교들이 균질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도 대립과 조화 사이를 오가는 기이한 종교 왕국’인 한국에서 태어난 한 신학자의 자기 고백과 그에 관한 부연이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했다. 나는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불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인도의 신학자 파니카의 말을 빌려 표현한 대로 불교와 기독교가 궁극적 차원에서는 만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저자는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고립되고 배척당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그의 신학 역정과 신앙 모색은 멈추질 않았다.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심층
이 책은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 가령 공(空)과 하느님, 열반과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와 보살, 기도와 염불 등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다르지만 조화한다’라는 말은 “군자는 상대와 조화하면서 차이도 인정한다(君子和而不同)”는 공자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언어와 관념을 넘어서는 근원의 세계, 궁극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적 그리스도인, 폴 니터의 불교
저자는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신학자로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1939- )를 예로 든다. 니터 또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대표적 신학자이다. 니터는 신학자로서 불교 언어를 치열하게 소화해, 신학적 양심에 솔직하게 녹여내어 고백하는 데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저자는 태생이 기독교인이고 일급 신학자이지만, 두 종교를 단순 병렬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로 녹여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웅변적이고 체험적으로 보여준 니터를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이자 불교학자라고 명명한다. 그 밖에도 원불교 사상과 기독교, 쿄토학파와 기독교, 한국의 길희성과 타나베 비교 등을 통해서도 이점을 구명한다.

90점의 불교와 70점의 기독교
저자는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해서 불교가 90%쯤 완성된 종교라면, 기독교는 70%쯤 완성된 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속적 수치를 넘어서서 불교가 정말로 깊고 넓다면 ‘밖’의 것을 소화해 받아들이는 태도를 좀더 확연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밖을 받아들이려면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모자라는 30%를 채우려는 기독교인의 노력 이상으로 공부를 심화하여 부족한 10%를 채워야 한다. 기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는 딱히 ‘성인이랄 것도 따로 없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의 진리’를 공유하며 인류 정신계를 선도할 수 있는 공동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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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3137호/2015년9월16일자]
“바른 해석으로 종교간 배타성 없애고
서로 회통하는 노력, 종교인 앞장서야”

입력 2015.09.14 
기자명 안직수 기자 jsahn@ibulgyo.com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이찬수 지음 / 모시는 사람들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이찬수 교수는 신학자다. 강남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불교를 공부한다는 이유로 해직돼 긴 법정 싸움 끝에 복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배경을 지닌 이찬수 교수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했지만, 한국인임을 발견하고 불교를 공부했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불자가 되었다”는 고백처럼, 왜 종교가 서로 회통해야 하는지를 쓴 책이다.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한 이 교수가 불교와 기독교의 교리를 비교분석하며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저자는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이지만, 심층으로 들어가면 서로 통하는 점이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공(空) 사상과 하나님, 열반과 하나님의 나날, 그리스도와 보살의 개념과 역할, 기도와 염불을 통한 체험과정 등을 비교하며 “부처님과 예수님이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들었던 신학자로 미국의 폴 니터를 예로 든다. 신학자인 폴 니터는 불교를 공부하고는 신학적 양심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으며 독보적인 비교종교학의 성취를 이뤄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이자 불교학자로 분류되는 폴 니터는 “두 종교를 하나로 녹여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체험을 직접 보여준 학자다.

또 원불교 사상과 기독교, 쿄토학파와 기독교, 한국의 길희성과 타나베 비교 등을 통해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한다면 불교가 90% 정도 완성된 종교라면 기독교는 70% 쯤 완성된 종교다.” 그런 점에서 불교가 밖의 것(기독교 등 다른 종교 사상)을 소화해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좀 더 확고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기독교는 불자보다 더 노력해 부족한 30%를 채워야 ‘성인이랄 것도 따로 없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의 진리’를 공유하며 인류 정신계를 선도할 수 있는 공동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찬수 교수의 주장이다.

“일본의 신학자 야기는 불교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성거와 십자가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다. 아무리 죄 없는 사람이라도 한 인간이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개체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하며 조화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빌려 야기는 신학을 전개했다.”

이찬수 교수가 불교를 공부한 이유는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인이니까 한국 사회를 이끈 불교를 알아야 했단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기독교가 된 내면에는 한국의 종교, 불교가 있다. 이미 불교에서 기독교가 말하려던 것을 충분히 말해주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한국인에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찬수 교수에게 불교와 기독교라는 형식의 구분은 의미없는 일이다. 종파도, 성별도, 지역간 차이도 없다. 형식과 제도라는 틀을 벗고 내면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편 불교학에 대한 개론서이기도 하다. 불교의 인간론, 지눌스님의 신심론과 틸리히의 신앙론 비교에 이어 니사다, 길희성, 타나베, 니터, 야기 등 세계적 비교종교학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모든 종교는 해석이다. 바른 해석을 통해 배타성을 없애고 서로를 보려는 노력을 종교인들이 앞장서 해야 한다. 다른 종교를 공부하라.” 이찬수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와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일본)WCRP평화연구소 등을 지냈다. 그동안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종교로 세계 읽기>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등을 펴냈다.

[불교신문3137호/2015년9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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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이찬수 저, 모시는 사람들)
에큐메니안 편집부 | 승인 2015.09.03

   
▲ 『다르지만 조화한다 :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2015.8.31, 이찬수 저, 출판: 모시는 사람들, 가격: 16,000

 <책소개>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이면서 화엄철학과 선(禪)불교를 공부한 저자가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내면에서 상통하는 종교적 본질을 밝힌 책이다. 이 책은 불교적 언어가 불자에게 주는 의미와 기독교적 언어가 기독교인에게 주는 의미의 정도가 다르지 않음을 말하면서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더 깊어지는 종교 공부와 수행을 이끌어 내고, 그리고 신앙의 거룩함을 일깨운다.

<출판사 서평>

깨달음에서 서로를 경유하여 다시 자신에게로
이 책은 ‘세계적 차원의 종교들이 균질적인 세력을 형성하면서도 대립과 조화 사이를 오가는 기이한 종교 왕국’인 한국에서 태어난 한 신학자의 자기 고백과 그에 관한 부연이다;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했다. 나는 나 자신이 한국인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임을 그만두지 않은 채 한 사람의 불자가 되어서 돌아왔다.” 인도의 신학자 파니카의 말을 빌려 표현한 대로 불교와 기독교가 궁극적 차원에서는 만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저자는 신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과정에서 고립되고 배척당하는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그의 신학 역정과 신앙 모색은 멈추질 않았다.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심층
이 책은 불교와 기독교가 표면상 외형상 전혀 다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심층에서 서로 통하는 면이 더 크고 깊다는 사실을 해명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종착점, 가령 공(空)과 하느님, 열반과 하느님 나라, 그리스도와 보살, 기도와 염불 등은 결국 동등한 체험의 깊이를 나타내며, 붓다와 예수가 말하고자 했던 세계도 결국 동등하다는 것이다. ‘다르지만 조화한다’라는 말은 “군자는 상대와 조화하면서 차이도 인정한다(君子和而不同)”는 공자의 말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언어와 관념을 넘어서는 근원의 세계, 궁극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기독교가 절대유의 차원에 서 있다면, 불교는 절대무의 차원에 서 있으나, 절대는 절대로 통하는 법이다. 

불교적 그리스도인, 폴 니터의 불교
저자는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들며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신학자로 미국의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1939- )를 예로 든다. 니터 또한 불교를 창조적으로 소화해낸 대표적 신학자이다. 니터는 신학자로서 불교 언어를 치열하게 소화해, 신학적 양심에 솔직하게 녹여내어 고백하는 데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저자는 태생이 기독교인이고 일급 신학자이지만, 두 종교를 단순 병렬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로 녹여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웅변적이고 체험적으로 보여준 니터를 종교다원주의 신학자이자 불교학자라고 명명한다. 그 밖에도 원불교 사상과 기독교, 쿄토학파와 기독교, 한국의 길희성과 타나베 비교 등을 통해서도 이점을 구명한다.

90점의 불교와 70점의 기독교
저자는 종교의 깊이와 넓이를 수치화해서 불교가 90%쯤 완성된 종교라면, 기독교는 70%쯤 완성된 종교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세속적 수치를 넘어서서 불교가 정말로 깊고 넓다면 ‘밖’의 것을 소화해 받아들이는 태도를 좀더 확연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밖을 받아들이려면 관심을 갖고 공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모자라는 30%를 채우려는 기독교인의 노력 이상으로 공부를 심화하여 부족한 10%를 채워야 한다. 기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면, 종국에는 딱히 ‘성인이랄 것도 따로 없는 확연무성(廓然無聖)의 진리’를 공유하며 인류 정신계를 선도할 수 있는 공동의 길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본문 소개>

지눌 선사상에서 믿음과 앎은 깨달음, 즉 돈오와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지눌이 믿음과 앎의 해석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였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과 만나는 체험 후에 원돈신해문, 즉 원돈교에서의 믿음과 앎으로 들어가는 문을 상세히 밝혔다. 다시 말해서 전통적으로 선에서 강조하던 돈오를 믿음과 앎이라는 언어로 해석함으로써 화엄의 선화(禪化) 및 선의 화엄화를 꾀했고, 선의 언어로 화엄을 해석함으로써 선의 실천 속에 화엄을 포섭하려고 했던 것이다. 원돈신해문은 믿음과 앎을 통해 깨달음으로 들어간다는 선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을 드러내 주는 것임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 및 앎과 깨달음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지눌 선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본문 37쪽>

(일본의 신학자) 야기는 이러한 불교와의 만남에서 인간은 성서와 십자가의 직접적 도움 없이도 본래성을 획득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죄 없는 사람(=예수)이라 해도 한 인간이 타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략) 십자가는 본래적 실존으로 이끄는 매개이고 성서는 실존의 근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교의 말씀 안에서만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저에서도 그분을 만난다.”고 야기는 말한다. 그러한 신념으로 야기는 실존의 근저, 통합에의 규정의 장을 제시하면서, 장의 신학을 세웠다. 모든 개체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하고 조화한다는 불교적 가르침을 야기는 장이라는 개념을 빌려 신학적으로 전개했다. <본문 186쪽>

차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불교와 기독교의 개개 ‘형식’ 내지 ‘제도’를 벗기고그 내면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불교와 기독교란 따로 없다. ‘너’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천적 삶에는 종파가 따로 없는 것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하는 원천적 사실에 종파 간, 성별 간, 지역 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미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있는 인간의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미 깨달아 있어 부처와 하나 되어 있는 원천적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이미 천주를 모시고 있어(侍天主) 있는 그대로 하늘과 같은 존재인 인간(人乃天)의 원천적 실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문 254>

<목차>

1부_ 깨달음의 길에 서다

01. 인연에 따르다 : 불교의 인간론
02. 믿음과 용기, 그리고 깨달음 : 지눌의 신심론과 틸리히의 신앙론

2부_ 불교와 기독교 서로 만나다

03. 법신불 일원상과 범재신론 : 원불교의 일원주의와 세계주의
04. 모두 절대무 안에 있다 : 니시다의 철학과 기독교
05. 창조적 만남과 궁극적 일치 : 길희성과 타나베의 신학과 철학
06. 두 종교를 동시에 살아가다 : 불교적 그리스도인 니터의 고백
07. 신학을 불교화하다 : 야기의 불교적 신학 08 불교를 수용하며, 신학을 변호하다 : 발덴펠스의 자기 비움의 신학

3부_ 두 세계를 다시 보다

09. 종교는 해석이다 : 스힐레벡스의 신학적 해석학: 모든 종교는 해석이다
10. 오늘 우리의 구원과 해탈 : 어느 불교적 신학자의 구원관
11. 비종교적인 그러나 종교적인 : 비종교인 리영희가 보는 기독교와 불교
12. 90점 불교와 70점 기독교 : 두 종교에 대한 애정어린 요청과 희망

<저자 소개>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남대 교수, 대화문화아카데미 연구위원, (일본)WCRP평화연구소,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고,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동서양 사유 구조의 공통성에 대해 탐색해오면서, <인간은 신의 암호>,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종교로 세계 읽기>, <한국 그리스도교 비평>,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 <믿는다는 것>, <생각나야 생각하지>, <일본정신> 등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종교철학에 기반한 평화학의 심화와 확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서 종교평화학 관련 논문들과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녹색평화란 무엇인가」, 「재난과 평화」 등의 공저서를 출판했다.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

이찬수 한국 기독교회는 반공주의가 곧 신앙이던 시절이 있었다.

(2) Facebook

이찬수

#평화와_신학_포럼 단행본에 들어갈 원고 한편 마무리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한국 기독교회는 반공주의가 곧 신앙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흐름이 있으니 갑갑하다....)

반공주의를 내세워 베트남전 참전을 찬양하고, 한국군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했으며, 한국인의 죽음이 아닌 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공감은커녕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적'은 그냥 사물이었다. 그냥 죽여도 되는...

공산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지만, 정작 전쟁에서는 졌다.
그래놓고는 진지하게 반성해본 적도 없다.
 
반공의 '반'이 뭔지, 신앙이 뭔지,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성해본 적이 없으니 여전히 그 타령이다.
 
예나 이제나 자기집단중심적이고, 타자는 도외시하거나 적처럼 간주하곤 한다.
언제 그 수준을 벗어나려나...ㅠ

'반'의 논리를 '용'의 논리로 전환시켜가는 일이 평화운동이다.
예수의 말대로 "평화를 만드는 이가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 반대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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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omments


吴东日

귀한 자료 받아 볼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찬수

吴东日 별로 귀하지 않은 자료라 드리기도 민망합니다만, 메신저로 보냈습니다~

吴东日

이찬수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


김새빛

교수님 책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니시타니 케이치의 사상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교토학파의 철학을 더 깊게 공부하려고 불교의 공사상도 다시 공부하고 있는데, 공부하면 할수록 더 하나님을 깊이 있게 만날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찬수

김새빛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를 읽으셨나요? 
알기 쉽다니, 저자가 아니라 독자의 역량이 책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일듯요...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의 니시다와 타나베 부분도 읽어봐주세요. 
기독교와의 연게성을 좀 더 정리한 글이라서요.. 
<메이지의 그늘>의 6장을 보면 교토학파의 정치철학적 한계도 일부나마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구요. 교토학파를 공부하신다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김새빛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좋은 책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덕분에 기독교의 복음이 한층 더 잘 설명되는 듯해서 너무 좋습니다. 다른책도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Taechang Kim

반공 반일 반미 반중 숱한
<반(反)>으로엮어진 우리의
사상-철학-종교를 <포월包越>
쪽으로 역동변혁하는 일에서
알찬 평화실현사상-철학-종교
의 산출을 기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폭공감합니다.


이찬수

Taechang Kim 평화 이론까지는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교정볼 때 라도 포월론으로 보완해야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Taechang Kim

이찬수 좋은 책 만드셔서 한중일평화포럼같은 대화모임을 가동시켜 보자구요. 이찬수교수님의 저작 속에 파묻혀 있는 지적 보화를 대화를 통해서 공공지로 전환해 공감 공유의 폭을 넓히고 공통이해의 심도를 더 깊이할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뜻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Myung-kwon Lee


훌륭한 또 하나의 일을 마무리 하셨군요.
걸음이 눈부시네요 ㅎㅎ



이찬수

이명권 '평화와 신학 포럼'이라는, 아주 좋은 연구자들모임에서 만드는 책입니다. 저는 멤버 중의 한 사람으로서 졸고 한편 낸 거구요
^^

===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이찬수 (지은이)
다산글방2003-12-10

263쪽

제1부 서양을 동양으로 포섭하다 : 쿄토학파
제2부 허무의 극단까지 가다 : 니시타니 케이지의 주요 사유를
제3부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일본의 사상과 문화, 동아시아의 종교와 평화 연구자.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일본의 철학자 니시타니 케이지와 독일의 신학자 칼 라너의 사상을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일본)코세이 가쿠린 객원교수, (일본)중앙학술연구소 객원연구원, (일본)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 대우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일본정신』,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교토학파와 그리스도교』, 『다르지만 조화한다』, 『평화와 평화들』, 『사회는 왜 아픈가』, 『아시아평화공동체』(편저), 『평화의 여러가지 얼굴』(공편저), 『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공저), 『北東アジア·市民社会·キリスト教から観た平和』(공저), 「비전(非戰), 반군국주의, 비핵화로서의 평화: 일본 평화개념사의 핵심」, 「平和はどのように成り立つのか」, 「北朝鮮の民間信仰」 등 80여 권의 단행본(공저서, 번역서 포함)과 9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현재 인권평화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일하면서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메이지의 그늘>,<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 … 총 60종 (모두보기)



2023/02/05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원불교편 김경일교무 : 네이버 블로그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원불교편 김경일교무 : 네이버 블로그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원불교편 김경일교무

석두 김경일

2013. 8. 20

한국 종교, 물질·성장주의에 빠져있다
도재기 기자 


ㆍ전문가들 5대 종단 비판 분석
ㆍ‘한국 종교를 컨설팅하다’ 출간

‘한국의 종교들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각 종교 전문가들이 주요 종단들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분석,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꼬집은 책이 출간됐다. ‘종교의 제자리 찾기’를 강조하는 <한국 종교를 컨설팅하다>(모시는사람들)다.




<한국 종교를…>은 대화문화아카데미와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회, 종교문화연구원이 지난 5~6월 6차례에 걸쳐 연 ‘종교대화 콜로키움’의 주제 발표토론 내용을 수정·보완했다. 책에서 종교학자와 종교인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5개 종단의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각 종단이 종교 본연의 자리와 역할을 찾기 위해 개선해야 할 일을 밝혔다.

소속이 다른 종교학자·종교인들이지만 종단의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은 상당히 일치한다.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강남대 교수·목사)은 종단들이 공통적으로 비판받는 부분을 머리말에서 요약했다. “수행이나 영성마저 상업화되고, 말로는 ‘성직’이라면서 실상은 ‘비즈니스맨’에 가깝고, 너나 할 것 없이 외형적 성장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조직·질서는 자본과 경영논리로 돌아가고, 경계해야 할 권력을 실제로는 추구하거나 독려하고, 개인의 솔직한 신앙은 굳은 제도 안에 함몰되고, 욕망과 신앙이 의식·무의식적으로 혼동되며, 이웃을 무시한 배타적 선교 언어가 난무하고….” 한국 종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천주교는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이 분석했다. 박 소장은 한국천주교가 당면한 문제로 신자수 증가 등 외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내부적으로 신앙활동은 오히려 활력을 잃었다는 점, 신자를 비롯한 교회의 중상층화로 가난한 자가 아니라 가진 자의 종교가 돼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점, 일방적 명령 체계에 따른 수직적 조직의 한계, 사제와 평신도간과 신부와 수녀 간 각종 차별문제 등을 지적했다. 천주교의 외적 성장을 보여준 ‘2005년 인구 센서스’ 결과를 세밀하게 분석한 박 소장은 “신자수의 증가는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초코파이 신자’가 급증한 탓”이라며 “각종 사목 관련 지표는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학력·고소득·대도시 신자들로 교회가 점점 중상층화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소외가 우려된다”며 “대사회 활동마저 상당히 위축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다양한 평신도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신교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인 김진호 목사가 맡았다. 개신교에선 역시 차이를 용납하지 못하는 근본주의적 자세, 배타성 등이 지적되고 감성적 성령운동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이 논의됐다. 김 목사는 ‘한국 개신교, 자리잡기와 자리찾기’란 주제 아래 그동안 전개돼온 개신교계의 성장주의, 근본주의 등의 뿌리를 근대성, 식민성, 배타성이란 개념을 통해 분석했다. 그는 “최근 작은 교회들 간, 작은 기구들 간의 네트워크 등 교회 안팎을 잇는 연결망이 작은 교회들의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사회를 횡단하는 수평적 연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는 작은 교회들은 기존의 배타성, 식민성 등을 청산할 수 있는 신앙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불교평론’ 이병두 편집위원은 불교계의 상업화·세속화 추세, 세상의 아픔 외면, 불사라는 이름 아래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대형 불상 조성 및 전각 건립, 과거에 없던 다양한 제사와 재(齋)의 도입, 출가자·재가자 및 비구·비구니 간의 갈등 등을 꼬집었다. 특히 고급 승용차를 타고 골프를 치는 일부 스님들의 행태, 사찰의 불투명한 재정운용 등도 지적했다. 이 편집위원은 “불교계 전반에 상업화·세속화 추세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불필요한 불사가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며자정을 촉구했다.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원불교100년성업회 사무총장)는 원불교의 문제점으로 교당의 영세성, 교무 후생복지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교무 지원자의 감소, 출가자와 재가자의 갈등, 남녀 교무의 결혼 관례상의 불평등성 등을 지적했다. 

또 김용휘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는 천도교인의 숫자 감소 등 끝없는 쇠락, 신앙 생활과 수도 생활의 괴리, 부실한 교육과 교화 등 천도교의 실상을 짚어냈다. 한국 종교의 전반적 현실을 비판한 최준식 종교문화연구원 이사장(이화여대 교수)은 “지금같이 계속된다면 한국 종교의 앞날은 ‘종교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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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 김경일

김경일 교무. 재가 출가의 벽을 넘어, 종교의 울을 넘어,남여노소 빈부귀천 유무식을 넘어 함께 하고 싶습니다. 선과 마음공부, 생태적 삶, 생명평화, 새로운 문명사회에 관한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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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불교 별 니시다와 스즈키, 제국주의 미화했다” : 뉴스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일본불교 별 니시다와 스즈키, 제국주의 미화했다” : 뉴스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일본불교 별 니시다와 스즈키, 제국주의 미화했다”

등록 :2021-08-04 
조현 기자 사진

‘불교평론’ 일본불교 실상 고발
니시다 기타로·스즈키 다이세쓰
20세기 세계적 불교학자 흔적 추적

2020 도쿄올림픽을 닷새 앞둔 7월18일 도쿄 하루미 지역 올림픽선수촌 인근 도로에서 극우단체가 차량을 이용해 확성기 시위를 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0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성화봉송로 지도에 독도를 일본 땅처럼 표기해 ‘평화의 제전’ 올림픽에서마저 제국주의적 마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불교계 대표적인 계간지 <불교평론>이 20세기를 대표하는 일본의 세계적인 불교학자들이 제국주의 이론 정립에 앞장섰다고 고발했다.

<불교평론>은 최근 펴낸 여름호 커버스토리 특집 ‘일본 불교의 특성과 실상’에서 니시다 기타로(1870~1945)와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의 친제국주의적 사상과 행보를 파헤치는 글을 게재했다. 이 특집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류 종교인 불교가 어떻게 제국주의 전쟁을 돕고 참여했는지 구체적인 자료들을 적시했다.



니시다 기타로. <한겨레> 자료사진

일제의 총동원령에 따라 우리나라 불교, 가톨릭, 개신교, 유교 등도 강압적 혹은 자발적으로 전쟁물자를 지원했으니, 일본 내 종교들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된 것은 별 신기할 게 없다. 그러나 니시다 기타로와 스즈키 다이세쓰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출가하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선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인가받고 이를 이론화해 서양에 전한 동갑내기 둘은 서양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불교인을 꼽을 때 1·2위를 다툴 만한 인물들이다.


니시다 기타로는 일본의 독자적인 철학을 형성한 대표적 사상가로, 교토학파의 개조(한 종파의 원조가 되는 이)다. 스즈키 다이세쓰는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 건너가 선불교를 서양인들에게 전한 서양 불교의 태두다. 그는 인류문명이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을 서양의 합리주의에 두고, 동양적인 직관, 곧 선 사상의 중요성을 알려 서구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인들이 선(禪)이 아니라 일본어인 젠(zen)으로 표기한 것도 그로 인해서다.



교토학파의 아버지인 니시다 기타로가 고뇌하며 걷던 ‘철학의 길’이 시작되는 일본 교토의 은각사 전경. 조현 기자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들이 제국주의가 약소국들을 침략하는 데 있어 전위대 구실을 한 데 반해, 불교는 ‘비폭력 평화의 종교’로 자리해왔음을 불교계는 자부해왔다. 하지만 이번 특집을 통해 불자도 언제든 제국주의와 폭력에 동원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나선 셈이다.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는 “니시다 기타로는 1944년 ‘일본의 국체가 바로 대승불교 참정신의 재현’이라고 주장했다”며 “니시다가 영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반대하고, 동양공영권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왕 중심으로 동아시아 각국이 단결해야 한다고 썼을 때, 그는 유사제국주의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니시다 기타로.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에서 발행된 니시다 기타로 기념우표.

최용운 서강대 연구교수는 “니시다는 1943년 5월 일본 군부로부터 대동아공영권의 지침에 대한 글을 요구받고 <세계 신질서의 원리>를 집필했다”며 “당시 도조 내각이 이를 수용해 중국, 만주, 필리핀, 타이, 미얀마 등의 대표가 참가한 ‘대동아의회’에서 채택한 ‘대동아공동선언’에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대동아공영권의 이론 자체가 니시다에 의해 최초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근대 세계 역사를 서양 제국주의의 역사라고 비판했던 그가 피지배국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치 않은 채 자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편승했던 행적은 그의 학문적 위업의 빛을 감쇄케 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니시다와 함께 교토학파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다나베 하지메(1885~1962)가 니시다와 달리 참회의 양심선언을 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다나베는 1946년 저서 <참회도로서의 철학>을 통해 전쟁 기간에 국가의 실책에 대해 어떤 반대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던 자신의 태도를 뉘우치며 철학자로서의 무력함으로 고뇌하던 중 불현듯 찾아온 참회를 통한 새로운 의식의 전환을 고백했다는 것이다.



스즈키 다이세쓰. <한겨레> 자료사진

종교학자인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은 선을 ‘전투 정신’으로 결부시킨 스즈키 다이세쓰를 비판했다. 스즈키는 저서에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극기적인 선 수업의 계율적인 경향은 전투 정신과 일치한다. 전투하는 이는 언제나 싸움의 대상에 마음을 오롯이 쏟으며, 곁눈질해서는 안 되고 적을 부수기 위해 똑바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썼다. 이 원장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인 1938년 일본의 대륙 침략이 한창이던 때 스즈키가 이 글을 썼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또 “태평양전쟁 패전 후 스즈키는 일본이 사태를 잘못 파악해 큰 혼란으로 들어갔다는 문제의식을 갖기는 했고, 쇼와 일왕 부부에게 화엄사상을 가르치며 ‘다른 사물이 상처를 입으면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며 “그러나 그 상처 속에 조선인의 상처와 무고한 죽음들이 포함돼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1946년 도쿄 전범재판석에 앉은 도조 히데키(맨 왼쪽) 등 일본군 전범들. 수많은 부하들과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들 중 다수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다시 출셋길을 걸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는 “니시다와 스즈키는 깨닫지 못한 이들에 의한 역사적 현실을 깨달음의 논리로 너무 쉽게 긍정했다”며 “그러다 보니 전쟁의 희생자, 아수라장, 거짓과 폭력 같은 구조적 폭력과 민중의 고통을 마치 가상세계 대하듯 간과해 마침내 침략도, 전쟁도, 죽임도 무화시킨 채 결국 천황제와 군국주의도 긍정했다”고 비판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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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진재 이후 일본의 참여불교와 시민사회운동 시민사회운동 / 이현경
1. 시작하는 글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가 발생한 지 올해로 10년이 지났다. 대규모 쓰나미 발생으로 인해 해안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 다수의 해안지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도 6 이상이 발생한 미야기(宮城), 후쿠시마(福島), 이바라키(茨城), 토치기(栃木), 이와테(岩手), 군마(群馬), 사이타마(埼玉), 치바(千葉) 등 8현(県)을 중심으로 재해구조법이 적용된 곳만 해도 241시구정촌(市区町村)에 이른다.2020년 3월 1일 현재, 동일본대진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이현경 2021.06.27 23:05


21세기에도 ‘장식(葬式)불교’는 엄존하는가 / 김성순
들어가며: 일본불교에서 ‘장식(葬式)’의 문제의례는 교의에 근거하여 목적성과 정기성을 가지고 실천되는 일련의 조직화된 행위를 말한다. 종교 교단 안에서는 의례를 통해 구성원 간의 연대성을 창출하고, 종교 감정을 고양시키며, 신앙적 일체감을 확인하기도 한다.종교 의례 중에서도 죽음을 다루는 의례, 즉 상장례는 그 종교의 사후세계관 내지 내세관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장송의 방식에서는 망자와 그 친족이 믿는 종교의 타계관(他界觀)이 드러난다. 이처럼 장송의례는 한 민족 내지 문화권의 생사관이나 타계관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의식이라고 할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김성순 2021.06.27 23:01


모노(物)공양: 불교문화 콘텐츠의 일본적 변용 / 박규태
1. 들어가는 말: 개와 로봇에게도 불성이 있다?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주자학이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말한다면 불교에서는 불성을 내세운다. 일찍이 정조는 다산에게 개와 소와 사람의 성이 본연지성인지 기질지성(氣質之性)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다산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라는 주자학적 이원론 자체를 해체시키면서 “사람의 성은 사람의 성이고 개나 소의 성은 금수의 성일 따름”이라 하여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했다. 하지만 모리 마사히로(森政弘)라는 일본의 공학자는 동물을 “틈새가 없는 기계”라고 보면서 사람과 마찬가지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박규태 2021.06.27 22:59


교토학파의 사상과 교학적 성과 / 최용운
1. 머리말교토학파(京都學派)라는 명칭이 최초로 공적인 기록에 등장한 것은 이 학파의 개조(開祖)인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의 제자 토사카 준(戸坂潤, 1900~1945)이 1932년 한 신문에 게재한 〈교토학파의 철학〉이라는 기고문으로 알려져 있다. 교토학파가 지향한 학문적 특성이 불교 또는 일본적 관점에서 서양사상을 해석하고 비교하며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하는 것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철학, 불교학, 종교학 그리고 신학 등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두는 학자들이 속한 분야도 다양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학파에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최용운 2021.06.27 22:11


신불습합과 불교계의 신종교 / 권동우
1. 들어가는 말1868년 3월 28일, 메이지 정부는 ‘신불판연령(神佛判然令)’을 내리고 공식적으로 신불분리 정책을 실시한다. 이후 일본사회에서는 폐불훼석(廢佛毁釋) 사건과 더불어 신사와 사원을 분리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우두천왕(牛頭天王)을 제신(祭神)으로 했던 교토(京都)의 기온샤(祇園社)가 스사노오노미코토(速須佐之男命)를 제신으로 하는 야사카신사(八板神社)로 바뀐 것을 그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온샤의 제신이 스사노오노미코토로 됐다는 것 자체가 중세 ‘신불습합(神佛習合)’의 결과를 수용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권동우 2021.06.27 22:05


일본불교 교단의 현황 / 제점숙
1. 일본인의 종교의식과 일본불교와의 관계2020년 일본 문화청에서 편찬한 《종교연감》을 살펴보면 일본 종교의 대략적인 현황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서는 일본 종교를 크게 신도계, 불교계, 그리스도계, 제교(諸敎)로 대별하여 그 현황을 정리하고 있다. 신자 수를 살펴보면 신도계가 88,107,772명, 불교계가 84,835,110명,그리스도계가 1,907,757명, 그 외의 종교가 7,403,560명에 이른다. 여기서 신도가 종교인가에 대한 학자 간의 이견은 차지하더라도 일본인이 생각하는 대표적 종교가 신도와 불교임은 분명한 듯하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제점숙 2021.06.27 22:01


천황제, 군국주의 그리고 선(禪) / 이찬수
1. ‘천황교’의 탄생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봉건적 지방 분권 체제인 막부 체제였다. 그러다가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규슈(九州) 지방의 무사들이 메이지 천황을 앞세우며 메이지 정부(1868~1912)를 탄생시켰다. 이 정부에서는 천황을 권력의 정점으로 삼으면서 서양식 정교분리형 근대국가를 이루고자 했다. 국가의 이념적 통일을 위해 ‘일본적인 것’으로 신도(神道)를 내세우며,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기원이 되는 신과 그 후손인 천황을 숭배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책을 펼쳤다. 이를 위해 제사를 강조했고, 그 ‘제사의 정치학’의 정점에는 천황


일본불교의 특성과 실상 이찬수 2021.06.27 21:56

2022/11/27

Kang-nam Oh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 – 그 전개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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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 – 그 전개와 전망


11월16일 토론토 부근에 있는 University of Waterloo 한국문화 강좌 시간 특강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학교는 한국학 과목이 아주 활발하여 1년에 약 500명 가량의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서 영어로 한 강의 내용을 요약해서 페친들과 나누고 싶어 컴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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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목은 Korean Christianity: Past, Present and Future 였습니다.  한국 종교 전반에 대한 강의는 강의 담당 교수가 이미 다루었다고 해서 저는 기독교, 그것도 개신교의 배타성을 중심으로 강의했습니다.  영어 인용문은 혹시 참고하실 분들이 계실까 해서 번역과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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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선 시작하기 전에 미국 시카코 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유명한 요아킴 바흐 교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비진리를 증오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 자신의 믿음을 고양하기 위해 다른이의 믿음을 증오하고 비하하여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It is true that to love truth you must hate untruth, but it is not true that in order to exalt your own faith you must hate and denigrate those of another.  - Joachim Wach

개신교

개신교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Dr. John Ross(1842-1915)의해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본격적인 선교는 1884년 Dr. Horace N. Allen (1858-1932), Horace G. Underwood (1859-1916), Henry G. Appenzeller (1858-1902) 등의 도착으로 본격화.  그후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선교사들이 내한.
선교사들은 전도 뿐 아니라 교육기관과 병원등을 설립하고, 더러는 한국 독립운동을 돕기도 하여, 초기 선교사들과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개신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도시화와 경제적 관심의 고조와 함께 비약적으로 확장.
그러나 현 기독교인의 절대다수는 이른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이들의 특징은 성경 문자주의, 기독교만 진리 종교라는 배타주의.
무속에서 받아들인 새벽기도와 통성기도. 

개신교의 배타성

전통적으로 한국인들 일반은 여러 종교에 대해 관대한 편.  1886년 한국에 온 선교사 Homer B. Hulbert는 이런 한국인들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기술.
“독자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감이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원만한 한국인들은 사회에 나가면 유교인이 되고 철학적 사고를 할 때는 불교인이 되고, 위급한 문제에 봉착하면 정령숭배자(무속인)가 된다.  ….the reader must ever bear in mind...that there is no antagonism between the different cults…As a general thing, we may say that the all-round Korean will be a Confucianist when in society, a Buddhist when he philosophises and a spirit worshipper when he is in trouble. “
이런 관용적이고 심지어 혼합주의적인 태도가 근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는 반대로 이웃 종교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불교에 대해서는 심한 배타성을 보이고 있다.

몇 가지 예

30년 전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장이었던 변선환 목사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발언했다고 해서 교수직, 목사자격도 박탈당하고 결국은 교단에서부터도 축출되었다.
다른 한 가지 예는 강남대학교 이찬수 교수는 부처님에게 절했다는 이유로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
한 가지만 더. 어느 기독교 광신자가 김천 개운사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하고 기물을 파괴했는데, 서울기독교대학교 손원영 교수는 불교계에 사과하고 법당 복구비용을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 그 이유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  아직도 법정 투쟁 중.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나 철학사상을 배격해야만 하는 것으로 믿고 있는 듯.  마치 영국 시인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결코 만나지 못하리“(“East is east and west is west, and ne’er the twain shall meet.”)라고 한 말을 그대로 신봉하는 듯.
반세기도 전 독일의 종교학자 하일러(Friedrich Heiler, 1892-1967)가 한 말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런 배타적인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와 벨리알,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은 같이할 수 없다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One can hear such exclusivist theologians say over and over again that there is no communion between Christ and Belial, light and darkness, truth and deceit.)”


왜 배타적이 되었는가?
몇 가지 가능한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째, 그리스도교에 전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배타적 경향 때문.  그리스도교에는 오랫동안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Thomas Merton도 이를 지적,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교를 만날 때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상대적인 사상체계’ 혹은 경쟁적인 이데올로기, 혹은 이상한 세계관, 더욱 간단히 ‘거짓 종교’라고 치부했다.(When encountered the other faith, most Christians, “instinctively” reacted to it as “a rival system of thought’ or a ‘competing ideology’ or an ‘alien world view’ or more simply a ‘false religion’.)” 
둘째,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기본적으로 근본주의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는 점.  중국이나 일본에 들어간 선교사들에 비해 한국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은 ‘청교도적 열정과 웨스레적인 열성(Puritanic zeal and Wesleyan fervor)’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국에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휩쓸게 되었다. “fundamentalism held sway in the Korean peninsula.”
Homer Hulbert나 George Heber Jones, 그리고 Canada 선교사 James S. Gale(1863-1937, 이분은 성경번역, 사전편찬, 문학번역 등 한국 문화발전에 지대한 공헌) 같은 예외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근본주의를 개선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한국 전통 종교들의 도전에 접해보지 못했다.  한국 기독교는 한국 종교와 특별히 대화하거나 관계를 맺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한국 재래 종교의 더욱 깊은 뜻을 간파하지 못한 채 기독교 우월주의를 고수할 수 있었다.
넷째, 한국 교회의 최고 관심사는 될 수 있는대로 많은 헌금을 걷는 것. ‘성공한 교회’란 헌금액수가 가장 큰 교회.  따라서 내 종교만 올바른 종교, 다른 종교에 눈돌리지 말라는 태도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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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

종교적 배타주의는 물론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학자로서 하버드 세계종교 연구소 원장으로 오래 근무한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 교수도 지적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종교체계들은 외부인들에게 어리석거나 심지어 그로테스크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적어도 고려짝인 무엇처럼 보이기 마련이다.(“most religious systems seem quaint, if not silly or even grotesque, to outsiders.”)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근래 서양 기독교에서는 이런 배타주의가 오늘처럼 다문화적이고 다종교적인 시대에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유지될 수도 없다(neither plausible nor tenable)는 사실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하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John Hick: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하는 프톨레미적 시각(the Ptolemaic perspective)처럼 종교가 내 종교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종교적 프톨레미 시각을 버리고 내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모두 진리의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시각”을 채택해야 한다. 
Arnold Toynbee: “배타주의적 심성(exclusive-mindedness)”은 죄된 심성인데 그 죄는 바로 교만의 죄이다. 
Aldous Huxley: “다른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학적 제국주의도 영구적 세계 평화에 위협적 존재가 된다(Like any other form of imperialism, theological imperialism is a menace to permanent world peace.)”
Heinrich Ott, 기독교 배타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칼 바르트의 후계자인 하인리히 오트가 캐나다에 왔을 때 한 말: “인간적이란 것이 무엇을 의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모든 종교전통들의 공헌을 고려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Understanding what it means to be human cannot be done without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contributions of all religious traditions.)” 
Mircea Eliade: 세계적으로가장 유명한 시카고대학 종교학자: “실로 우리는 이미 전지구적 문화에 접근하고 있다.  오래지 않아 아무리 국지주의적인 역사가, 철학자, 신학자라 하더라도 다른 대륙, 다른 종교 신도들 출신의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기의 문제를 생각하고 자기의 신념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Indeed, we are already approaching a planetary culture, and before long even the most provincial historian, philosopher or theologian will be compelled to think through his problem and formulate his beliefs in dialogue with colleagues from other continents and believers in other religions.)  
Paul Knitter: 다른 이름으로는?(“No Other Name?”)
Max Müller: “하나의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
Hans Küng: “종교 간의 대화가 없으면 종교 간의 평화가 없고, 종교 간의 평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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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원주의를 위한 몇 가지 시안(Some Tips for Religious Pluralism)

첫째,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한국의 전통 종교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시각주의(perspectivalism)에 해당되는 화쟁론(和爭論)의 주창자 원효(元曉, 617-686)나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중심의 성학(聖學)을 강조하는 퇴계나 율곡 같은 분들의 사상체계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좀 더 광범위한 시각으로 보아, 한국 그리스도인들은(한국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세계 그리스도인들, 나아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15세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1401-1464)가 주장한 ‘반대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 혹은 ‘양극의 조화’의 뜻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칼 융은 이를 자각하는 것이 정신적 성숙의 극치라고 했다.
반대의 일치란 ‘빛이 파동도 되고 입자도 된다’고 하듯 ‘이것도 저것도’라고 하는 ‘도도주의’(both/and mentality)이다. 
사실 이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추구하는 이상이라 할 수 잇다.

몇 가지 예: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림이 올라오지 않네요.)


- 음양의 조화
   태극무늬
- 십자가 Cross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 David stern, the Star of David 
   세모를 두개 겹친 것
- Fish - Ixthus, ἰχθύς)
  두개의 원이 겹치는 것을 오려내 물고기처럼 보이는 것
- Swastika, "conducive to well-being" 
   불교의 만자























이 말은 세상에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상호의존 상호관계 속에 있다는 것.(Interdependence and inter-relatedness).
따라서 독립적으로 혼자만 진리라는 일방적 주장을 성립불가하다는 것. (No one religion is independent. No one is an island!)
셋째,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가 지금 퇴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는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실정.  탈종교화(Irreligion).  탈종교화의 대표. 스칸디나비아 3국(“Society without God”)을 비롯한 유럽.  심지어 미국에서도. 미국 고등학교 졸업생 중 69%에서 94%가 교회도 졸업한다고.  미국 보수 목사의 책 (Josh McDowell, The Last Christian Generation.)
John Shelby Spong 성공회 주교: 미국에서 제일 큰 졸업동창회는 교회졸업동창회.
많은 젊은이들, 종교는 no, 영성을 o.k. (Spirituality, but no Religion, SBNR)
이런 판국에 인습적이고 표피적 기독교만 진리 종교라고 외치는 것은 의미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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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까?

사라져 가는 표층종교를 대신할 21세기 대안 종교는. 무엇? 경외심을 강조하는 Aweism, 아하! 경험을 중요시하는 Ahaism.  우주에 편만한 신비에 눈 떠서 이를 보고 신기해하고 놀라워하고 경외하고 아하!하고 외칠 수 있는 심성, 감수성, 공감능력을 강조하는 새로운 종교,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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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종교학계의 거장 Huston Smith의 말: 우리는 다른이들의 종교에 귀 기울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경우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등은 ‘다른이들’의 종교가 아니라 ‘우리들의’ 종교, 적어도 우리들의 일부. 얼마나 더 주의 깊게 귀 기울어야 하겠는가? 서로 다른 종교는 경쟁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임(not competitive but complementary)을 깊이 깨달아야.
위대한 종교 사상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 ”모든 살아있는 종교의 깊이에는 종교 자체가 그 중요성을 잃어버리는 경지가 있다. (In the depth of every living religion there is a point at which the religion itself loses its impor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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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comments
박희승
잘 보았습니다!
(((_)))
Reply6 d
전병렬
상호보완적인 종교. 불교와 천주교입니다. 개신교, 이슬람교 제외. 힌두교 포함한 상호보완적 내외부적 신앙과 수행이 진정한 종교입니다.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좋아요
Reply6 d
Kang-nam Oh
전병렬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18 h


Sehoon Oh
잘 읽고 공유합니다.
Reply6 d
Kang-nam Oh
오세훈 고맙습니다.
Reply18 h


Minjeong Seok
저도 가서 직접 강연을 들을 수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렇게 포스팅으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Reply6 d
Kang-nam Oh
Minjeong Seok 이 글이 강연의 내용을 거의 옮긴 거나 마찬가지인데요. 암튼 감사합니다.
Reply18 h
Minjeong Seok
Kang-nam Oh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
Reply15 h


유인걸
한국인들에게 아직도 일신교가 완전히 소화되지 못하였읍니다.일신교란개념자체가 조선민족애게는 충격이었으니까요.
Reply6 d
이기동
좋은 글 감사합니다. 특히 기독교 자체의 배타성에 대해서 생각중입니다. 혹시 구약이나 신약성서, 또는 교부시대의 배타성에 대한 내용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종교가 집단을 이루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려면 배타성은 종교성 집단의 필연적인 귀결같습니다
Reply6 dEdited
Kang-nam Oh
이기동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 어머니가 저에게는 실존적 절대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남의 어머니를 폄하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이겠지요.
Reply18 h


최택진
복습하게 되는 기회여서 좋았습니다!
Reply5 d
최택진
국민일보 4월 여론조사 결과라네요! 1,000명 샘플. 코로나19로 더 짙어진 것 같아요. 신천지와 오십보 백보 같은 한국 개신교. 일반 국민들 의식 속에서 저런 인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거. 대안은 무엇일지? 음...
May be an image of text that says "종교별 이미지 친근한 불교 포용적인 상생하는 엄숙한 보수적인 이건한 세속적인 공감하는 개신교 배타적인 방적 도덕적인 헌신적인 진정성있는 희생적인 천주교 물질적인 위선적인 진보적인 보적인"
Reply5 d
Kang-nam Oh
최택진 좋은 자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신교가 문제네요.
Reply18 h


Kihyun Han
위대한 종교 사상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말: ”모든 살아있는 종교의 깊이에는 종교 자체가 그 중요성을 잃어버리는 경지가 있다. (In the depth of every living religion there is a point at which the religion itself loses its importance.)
저는 그래서 오염된, 한국교회의 '하나님'이라는 이름 대신 '다오라신'이라고 작명하여 부르고 있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종교가 있든 없든, 무슨 종교를 믿든, 성향이 어떻든)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에서 따온 것이지요.
표층종교에서 벗어나 심층종교로 나아가도록 깨달음 주시는 박사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Reply5 d
Kang-nam Oh
Kihyun Han 한 선생님, 오랜만에 반갑습니다. "다오라신"--재미있는 발상이네요. 배타의 정 반대 개념이네요.^^
Reply18 h


Hachun Sung
선생님, 조리있고 사려깊은 충언의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개신교(기독교)는 문자주의로 대표되는 종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 타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종교다원주의적 사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취지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한국 개신교인은 기독교를 근본주의로 선택했다면 그것을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면, 기독교를 버릴 지언정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이 주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그의 <조선사상사>에서 한국인은 사상의 순수성을 고수한다고 합니다. 주지하듯이, 불교가 들어오면 불교의 조선이 되고, 주자학이 들어오면 주자학의 조선이 되고, 기독교가 들어오면 기독교의 한국이 됩니다. 그 반대 방향은 우리 민중이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다음 세대가 기독교를 버리고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선택할 지언정 위와 같은 논의는 상당히 이상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Reply5 d
Kang-nam Oh
Hachun Sung 좋은 생각 감사합니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다른 종교를 거짓종교라고 규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은 사실 기성 종교, 표층 종교는 그 어느 것이든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18 h


이경일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한국의 기독교는 충분히 그리고 넉넉하게 그 특유의 배타성에 흠뻑 빠져 해어나오지 못하고 허둥데는 모습데로 살아가야할 운명인가? 심히 부끄럽고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Reply5 d
Kang-nam Oh
이경일 이 목사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ply18 h


Hum Kim
공부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eply5 d
Jeongwoo Bae
👍👏
Reply5 d
Hyuk Tae Kwon
교수님 요하킴 바흐 교수님 말을 이름과 함께 외워둡니다.
교수님 좋은 글을 이렇게 공개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자기 주장이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한 이런 글을 보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이기주의를 벗어난 극소수의 자부심으로 살아야겟지요.
Reply5 d
Kang-nam Oh
Hyuk Tae Kwon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쪽은 이제 여름이 되어 가겠네요. 좋은 계절 즐기시기 바랍니다.
Reply18 h
Hyuk Tae Kwon
Kang-nam Oh 예 교수님 세계에서 몰려드는 다양한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Reply16 h


Julie Jeong
오교수님,
이렇게 대중들에게 종교를 "논"해야 하는 것 조차도 저에겐 불편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머리 (Head, Brain)" 로 살고 있는 삶에서 "가슴 (Heart)으로 사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가르침이 있어야 하겠기에 오교수님같은 분이 계신다고 생각해요.
오교수님의 열정에 감사드려요.
Reply5 d
Kang-nam Oh
Julie Jeong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대화가 이어지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Reply18 h


고영의
잘 읽었습니다. 오늘 신천지가 대구에서 대규모 집회를 대놓고 했다고 해요. 샘 말씀처럼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게 하는 시대네요 ㅜㅜ
Reply5 d
Kang-nam Oh
고영의 잘 읽어주셨다니 고마워요. 코로나는 잘 극복하셨겠지요? ㅎㅎ
Reply18 h


호우선사
오타; '결론' 부분의 '상호보와작임' -> '상호 보완적임'
Reply5 d
Kang-nam Oh
호우선사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고쳐넣었습니다.
Reply18 h


호우선사
영상 사료 및 문헌 사료상, 독일계 천주교 신부단이 이조선말에 많이 이조선에 파송되어 왔었슴. 유투브에도 영상 자료가 적잖이 남아 있슴.
Reply5 d
태영최
꾸벅
새벽에 기도하셨어요.
예수님께서!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새벽기도 한 거지요.
Reply5 d
류제동
근본주의 극복을 위해서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aladin.kr/p/QPlSY
경전이란 무엇인가
ALADIN.CO.KR
경전이란 무엇인가
경전이란 무엇인가
Reply5 dEdited
Kang-nam Oh
류제동 좋은 책 번역하셨네요. 많이 읽히기 바랍니다.
Reply18 h
류제동
Kang-nam Oh 고맙습니다.^^
Reply17 h


Joon Park
잘 배웠습니다. Exclusivity가 결국은 superiority로 발전한다는 것.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이와는 반대로 Christ의 humility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런 기독교는, 말씀해 오신대로, 처음부터 없었던 것지요.
Reply5 d
Kang-nam Oh
Joon Park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Reply18 h


Maria Roering
잘 읽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서로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말씀 좋았습니다. 그래야 다름 속에서도 같음을 찿아낼수 있기 때문이란 생각도 곁들여 봅니다. 감사합니다.
Reply4 d
Kang-nam Oh
Maria Roering 감사합니다. 상호보완적--좋은 말이지요.
Reply18 h


Richard C. Choe
Thank you for sharing your lecture notes, Dr. Oh. It was great to hear you in Toronto.
What would be the appropriate English words for 표층종교 and 심층종교?
Reply3 dEdited
Kang-nam Oh
Richard C. Choe 'Surface Religion' and 'Indepth Religion' may be close to 표층종교 심층종교. The proper English word for 심층종교 is mysticism. 
But "신비주의" is a misleading word in Korea, and that is why I call it "심층종교." 

It was nice to know that you heard my lecture in Toronto.
Reply18 h
Richard C. Choe
Kang-nam Oh Thank you, Dr. Oh. It was great to see you after so many years. Thank you for deepening and widening our understanding of who we are in relation to God and with one another. Peace.
Reply12 hEdited


Misael Park
https://cafe.naver.com/yooyoonjn/2406
오강남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 – 그 전개와 전망" Korean Christianity: Past, Present and Future
CAFE.NAVER.COM

오강남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 – 그 전개와 전망" Korean Christianity: Past, Present and Future
오강남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 – 그 전개와 전망" Korean Christianity: Past, Present and Future
Reply1 d
Kang-nam Oh
미사엘 님, "대립의 조화" "도도주의"의 상징 그림을 찾아서 넣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Reply18 h


Wan Hong Lee
대부분 목회자들이 교회를 이용하여 먹고 사는 일로 여기기에 교인을 세뇌하는 것이 현실이 아닐까요?
Reply13 h
지관

2022/11/11

이찬수 인간은 신의 암호칼라너의 철학적 신학..Karl Rahner

Facebook: · Shared with Only me 이찬수   · 지금까지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수십권 나왔다. 그중 굳이 한 권을 선택하라면 《》(분도)... 그 책이 출판 19년만에 얼마전 4쇄를 찍었다. 표지가 청록색에서 옅은 쑥색?으로 바뀌었고, 저자소개가 좀 상세해졌다. 어렵고 딱딱한 책이 한국의 신학 환경에서 3쇄 이상 팔렸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동서양 사유를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은 통한다는것을 심층에서 잘 보여주는 칼라너의 철학적 신학..
 라너에게서 배운 학문의 심층이 내 안에서 대승불교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범재신론적 사유로 이어졌다. 신의 보편적 내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살리려는 범재신론...

신학은 범재신론을 기반으로 할때에야 22세기를 맞이할수 있을 것이다. 범재신론적 시각에서 주요 성서 구절들을 풀어쓴 책이 《유일신론의 종말 이제는 범재신론이다》(동연)이다. 이 책도 몇일전 2쇄를 찍었다. 기쁜 일이다. 어디선가 두 책을 찾는 독자가 계속 있다니 더 기쁘다.^^ Share

알라딘: 인간은 신의 암호 - 칼 라너의 신학과 다원적 종교의 세계 이찬수

  • 알라딘: 인간은 신의 암호
    인간은 신의 암호 - 칼 라너의 신학과 다원적 종교의 세계 
    이찬수
    (지은이)
  • 분도출판사1999-03-10



    이 도서는 <인간은 신의 암호>의 개정판입니다.
    구판 정보 보기
    248쪽
    목차
    001. 라너 신학의 방법과 출발점 
  • 002. 라너신학의 근간 : 은총론 
  • 003. 하느님 체험과 초월론 
  • 004. 무한과 유한의 만남 
  • 005. 일상의 신학 
  • 006. 익명의 그리스도인 
  • 007. 신론, 그리스도론, 그리고 종교간 대화론 
  • 008. '대승기신론'의 신심론 
  • 009. 칼 라너의 신 체험과 니시타니 케이지의 공 체험
    ===
  • 이찬수 교수와 함께 하는 칼 라너 강좌
  • 갈리스도 10-20 15:19 | HIT : 2,288
  • 제목 - [모집] “인간, 그 심층 - 칼 라너의 신과 인간”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 글쓴이 - 인권연대


  • 인권연대 기획강좌
  • “인간, 그 심층 - 칼 라너의 신과 인간”

  •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20세기 가장 탁월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다. 평생 단행본, 논문, 논평문 등 4천편이 넘는 글을 남긴, 탁월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에게서는 전통과 현대, 철학과 신학, 인간학과 신학이 하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상은 깊고 넓다. 특히 그의 신학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결정하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반영되면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기초로 작용했고, 다시 세계의 개신교회에 영향을 주면서 문화적 다양성 및 다종교적 상황을 존중하는 사상적 기초로 작용했다.

  • 한국 그리스도교도 큰 틀에서는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불행하게도 특히 한국 개신교회가 여전히 자기중심성 및 우월성 속에 갇혀,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경직되어가고 있지만, 이것은 다종교 문화 속에서 성장해온 개신교회가 결국 제살을 깎아먹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의식이 성숙되어가면서 곧 꺼질 거품과 같은 자세이다. 이럴 때 라너의 사상은 적절한 이정표가 된다.

  • 무엇보다 라너에게 신학은 곧 인간학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지 그 깊이를 이천년 서양의 사상사적 맥락 속에서 진지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사상은 인간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신학은 하나의 교파적 학문이 아니라, 오늘날 누구나 숙지해야 할 인간학이 된다. 인권연대에서 그의 사상 강좌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적 중층성이 주는 난해함 때문에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지만, 그의 사상을 잘 들여다보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다종교, 다문화 상황에 처한 현대 사회에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가 제대로 보인다. 그의 사상적 깊이에는 불교 등 동양적 정신과도 만날 수 있는 서양적 기초도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 당연히 “종교편향”과 같은 유치한 행위가 일어날 리도 만무하다. <인간은 신의 암호 - 칼 라너의 신학과 다원적 종교의 세계>의 저자 이찬수 교수를 통해 그의 사상을 들여다보도록 한다.

  •    ● 일  시: 11월 3일~19일 매주 월, 수 저녁 7시 - 9시
  •    ● 장  소: 인권연대 교육장(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2분거리)
  •    ● 인  원: 선착순 30명(입금순 마감)
  •    ● 수강료 : 50,000(교재비 포함, 학생, 단체활동가 및 인권연대 CMS회원 20% 할인)
  •    ● 교  재 : ‘인간은 신의 암호’(이찬수 저, 분도출판사, 1999)
  •    ● 신청 및 문의: 인권연대 홈페이지(www.hrights.or.kr   02-3672-9443)



  • 프로그램
  • 11/ 3(월)    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 초월론(교재 1-2a장)
  • 11/ 5(수)    인간은 이래서 존엄하다 - 은총론(교재 2b-3장)
  • 11/10(월)  무한이 유한이 되다 - 육화론(교재 4장)
  • 11/12(수)  신이 일상 안으로 들어오다 - 구원론(교재 5장)
  • 11/17(월)  사랑이 구원이다 - 익명의 그리스도인론(교재 6장)
  • 11/19(수)  다양성은 필연적이다 - 종교간 대화론(교재 7-8장)


  • 강사 - 이찬수 교수
  • 이찬수 교수는 불교학과 신학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서로 "종교 신학의 이해", "인간은 신의 암호", "한국 종교문화 연구 100년"(공저), "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 "생각나야 생각하지", "종교로 세계 읽기" 외 다수가 있습니다. 7년 동안 재직한 강남대에서 부당하게 해직되고, 현재 감신대, 성공회대,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
    저자 및 역자소개
    이찬수 (지은이)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니시타니 케이지(西谷啓治)의 불교철학과 칼 라너(Karl Rahner)의 철학적 신학을 비교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학교 교수, (일본)WCRP평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코세이가쿠린 객원교수, 난잔대학 객원연구원, 성공회대학교 대우교수,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를 지냈고, 한국문화신학회 회장으로 일했으며, 한국평화종교학회 부회장, 인권연대 운영위원 등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동안 종교학, 죽음학, 평화학 등과 관련해 77권의 단행본(공저/역서 포함)과 88편의 논문을 출판했는데, 평화학과 관련한 책으로는 『평화와 평화들』, 『한국인의 평화사상1.2』(공편), 『평화의 여러가지 얼굴』(공편), 『아시아 평화공동체』(편저)를 비롯해, 『세계평화개념사』, 『아시아공동체와 평화』, 『평화의 신학』, 『세계의 분쟁』,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녹색평화란 무엇인가』, 『폭력이란 무엇인가』, 『재난과 평화』, 『탈사회주의 체제전환과 발트3국의 길』, 『사회주의 베트남의 역사와 정치』, 『양안에서 통일과 평화를 생각하다』, 『동아시아의 대동사상과 평화공동체』, 『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 1.2』, 『우리 시대 혐오를 읽다』 외 여러 권의 공저서와 번역서들이 있다.
    국가보훈처 산하에 있으면서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 소속된 보훈교육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평화 및 복지국가의 형성에 기여하는 보훈 연구와 교육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보훈과 교육>,<보훈, 평화로의 길>,<독립.호국.민주의 미래와 보훈의 가치> … 총 59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