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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 특집 ] 웰빙시대의 잘죽기(Well Dying) - 불교평론 2005년 겨울호

불교평론 제25호 2005년 겨울호 총목차 < 총 목차 < 기사본문 - 불교평론

불교평론 제25호 2005년 겨울호 총목차
기자명 불교평론   입력 2008.12.21

[ 권두언 ]
황우석 사태를 보는 불교의 눈 / 조성택

[ 특 집 ] 웰빙시대의 잘죽기(Well Dying)
웰빙시대에 왜 웰 다잉을 말하는가 / 오진탁
붓다의 죽음 / 안양규
선사들의 열반과 죽음 / 김영욱
부활, 웰 다잉의 한 해석 / 이찬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 강신표
근사체험(近死體驗)이란 무엇인가 / 최준식

===

"웰다잉으로 진정한 웰빙을" 박익순 기자
승인 2006.01.22 20:03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Print.html?idxno=230105


<불교평론> 겨울호 특집… 죽음의 문제 다각적으로 검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남의 일 같기도 하고, 내게는 멀고도 먼 훗날의 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고 보면,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죽음을 대비할수록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는 것이 죽음의 문제를 연구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불교계 대중학술지 <불교평론>는 2005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를 ‘웰빙 시대의 잘 죽기’로 정했다. 특집논문으로 안양규 동국대 교수의 ‘붓다의 죽음’, 김영욱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선사들의 죽음과 열반’, 이찬수 강남대 교수의 ‘부활, 웰다잉의 한 해석’,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근사체험이란 무엇인가’의 5편과 총괄논문격으로 오진탁 한림대 교수의 ‘웰빙 시대에 왜 웰다잉을 말하는가’ 등 6편이 수록됐다.


죽음준비는 삶의 교육

일찍이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한림대 오진탁 교수는 “웰빙의 참뜻은 웰다잉에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지 못했다면 잘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죽음을 기피하고, 남의 문제로만 인식하다보니 잘 죽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오진탁 교수.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병실에서 차가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여 튜브를 몸에 꽂은 채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품위 있게 죽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며 살기란 더더욱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 교수는 “암이나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위해 연금을 붓지만 정작 중요한 죽음준비는 남의 일인 양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역설적인 세태를 비판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죽음준비는 삶의 유한성을 자각케 해, 현재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소일하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신에 물음을 던지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죽음준비는 제대로 살기 위한 삶의 교육”이다.



'불방일'로 죽음 맞은 붓다

그렇다면 삶의 진면목을 깨쳤을 붓다나 선사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안양규 교수와 김영욱 연구원의 논문이 해답을 준다.

안양규 교수는 <열반경>에 나타나는 붓다의 죽음을 살폈다. <열반경>에는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 세상에서의 마지막 가르침과 입멸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붓다는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남긴 후 열반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열반경에서 붓다의 입멸 과정은 정각의 순간과도 같이 선정과 밀접히 연계된 것으로 그려진다. 즉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었던 것이다.





안양규 교수.




이러한 붓다의 모습에 대해 안 교수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붓다의 태도는 한마디로 ‘깨어있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을 대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애통해하지만 붓다는 무상한 육신 너머에 있는 열반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김영욱 연구원.




그렇다면 선사들의 죽음은 어떨까. 김영욱 연구원은 “선사들은 죽는 바로 그 순간을 삶의 한 형식으로 수용할 뿐 죽음에 대한 추상적 관념이나 그것을 극복하는 고답적 이야기는 늘어놓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을 질곡이나 해방으로 여기지 않는 선사들은 “그것에서 자유롭기 위해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으며, 화두를 놓치지 않듯 죽음의 순간까지 학인을 가르치고 점검하는 등 본분사를 주고받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부활과 열반

기독교에서는 웰다잉의 한 전형으로 부활을 꼽을 수 있다. 이찬수 교수는 부활을 통해 예수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들어 부활을 단순한 소생과는 구별했다. 이 교수는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진 생명의 사건이 볼 수 있는 것”이라며 “부활은 역사적 인물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듯 우리의 몸도 다시 살게 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불교평론 겨울호.




이어 이 교수는 부활과 열반을 비교했다. 이 교수는 “인과의 고통스러운 순환 고리를 끊어버린 데서 오는 안식으로서의 열반과 영생을 향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상태로서의 부활은 공통된 면이 있다”고 밝혔다.

<불교평론>에 실린 강신표 교수와 최준식 교수의 논문은 각각 우리 문화 속에서의 죽음과 근사(近死)체험을 다뤘다. 강 교수는 세상을 떠난 후의 상례(喪禮)와 제례 전통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살폈고, 최 교수는 서양에서 조사·연구된 의 근사체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근사체험의 진실성을 밝혔다.


박익순 기자 ufo@buddhapia.com

불교평론 10년 총목차 < 총 목차 < 기사본문 - 불교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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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평론 10년 총목차
기자명 불교평론   입력 2010.01.05 18: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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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겨울호 제1호 :::

[ 권두언 ]
불교지식사회의 새 지평을 위해 / 홍사성

[ 특집 1 ] 20세기 한국불교의 회고와 반성
불교사회운동의 갈무리와 터닦기 / 서동석
교단개혁운동의 명암 / 김광식
교육개혁, 그 멀고도 험한 여정 / 법인
한글대장경 번역사업의 공과 / 이미령
20세기 포교의 성과와 한계 / 유승무
불교복지사업이 걸어온 100년 / 김응철

[ 특집 2 ] 불교학 연구, 이대로 좋은가
‘종학주의’를 넘어서 ‘중도의 불(교)학’을 향해 / 고영섭
논쟁 부재와 긴장된 글쓰기 / 조병활
비교종교와 불교연구의 상관관계 / 윤영해
영국·일본의 불교학 연구 동향 / 안양규

[ 특집 1 ]
20세기 한국불교, 그 사상적 흐름은 무엇이었나
/ 홍사성, 종범스님, 최병헌, 정병조, 이봉춘

[ 쟁점 ]
승가의 범위, 어디까지인가 / 이종철

[ 해외불교체험 ]
다시 일어나는 몽골불교, 그 서글픔과 열정 / 김선정

[ 논 단 ]
불교에 인권이 있는가 / 안옥선
시민정치운동의 확대와 불교시민운동의 전망 / 조대엽
불교사상과 국제평화주의 / 조성렬
한국현대시의 선(禪)적 경향 / 김재홍

[ 기획연재 ] 불교에서 보는 철학, 철학에서 보는 불교 (1)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 김종욱

[ 서 평 ]
언어로 여는 언어 이전의 세계 한형조 지음, 《무문관, 혹은 ‘나는 누구냐’》 / 박영록
철학자의 삶, 수행자의 삶 ―《승려와 철학자》 /오진탁

 

:::  2000년 봄호 제2호  :::

[ 권두언 ]
새로운 세기에 불교가 해야할 일 / 홍사성

[ 특집 1 ] 한국 선불교의 제문제
한국선, 무엇이 문제인가 / 심재룡
한국 간화선의 형성과 변화 과정 / 최연식
선어록 독법의 문제점 / 신규탁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징 / 김종만
또 다른 선, 위파사나의 이해 / 김열권

[ 특집 2 ] 새천년에 대응하는 불교의 저력
‘신승(新乘)불교’ 도래론 / 정병조
미래사회에서 불교사상의 위상 / 유승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불교의 입장 / 김용표
정보지식사회의 도전에 직면한 불교 / 박승원
새 천년 한국불교의 도전과 비전 / 프랭크 테데스코

[ 논단 ]
시민운동에 보내는 불교의 고언 / 김성철
조계종 종권분쟁 연구 / 김경호
사찰불사의 몇 가지 과제 / 이기선

[ 기획연재 ] 불교에서 바라본 철학, 철학에서 바라본 불교
자연과 인간의 바람직한 관계 / 김종욱

[ 특별기고 ]
법정이 철학자에게 던지는 화두 / 허우성
21세기 대안사상으로서의 禪 / 이은윤

 [쟁점 ]
대승의 소승 폄하에 대한 반론 / 조준호

[ 해외불교체험 ]
중국불교 주마간산기 / 차차석

[ 자료발굴 ]
김법린과 피압박민족대회 / 김광식 

 

::: 2000 여름호 제3호 :::

[ 권두언 ]
도전적인 논쟁에 도전하자 / 홍사성

[ 특집 1 ] 불교와 페미니즘
왜 ‘불교와 페미니즘’을 말해야 하는가 / 안옥선
불교 페미니즘의 이상과 현실 / 하정남
불교 페미니즘의 회복을 위해 / 이창숙
여성의 관점에서 본 ‘여성성불론’ / 이현옥
한국 여성 불자의 위상과 역할 / 민성효

[ 특집 2 ] 한국불교 전통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불교는 회통불교인가 / 심재룡
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 김종만
조계종 법통설의 형성과정과 문제점 / 박해당
무엇을 위한 ‘수행’인가 / 주민황

[ 논단 ]
불교정화운동 연구 / 박희승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보는 불교적 관점 / 박병기
불교윤리의 응용 가능성 모색 / 허남결
현대불교미술이 나아갈 길 / 김창균

[ 쟁점 ]
육조단경, 어떻게 볼 것인가 / 정성본

[ 기획연재 ] 불교에서 보는 철학, 철학에서 보는 불교 (3)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1) / 김종욱

[ 해외불교체험 ]
100일 동안 경험한 미얀마 불교 / 강은애

[ 서평 ]
한 수행자의 구도·생명 에세이 / 전재성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나룻배 / 권기종

 

:::  2000년 가을호 제4호 :::

[ 권두언 ]
동양불교도의 세계적 책임 / 홍사성

[ 특집 1 ] 생명공학과 불교
생명공학의 현재와 미래 / 최원상
불교적 입장에서 본 생명공학의 윤리문제/ 이중표
생명공학의 도전에 직면한 불교의 윤회설 / 윤호진
인간복제와 불교교리는 모순되는가 / 최정규
생명공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입장 / 구경국

[ 특집 2 ] 불교 개혁운동 탐구
결사운동을 통해 본 불교개혁의 성격 / 김상영
1910년대 한국불교계의 유신론 / 김상현
현대 한국불교 개혁운동의 흐름과 그 특징 / 유승무
현대 아시아의 참여불교 운동 고찰 / 박경준

[ 기획연재 ] 불교에서 보는 철학, 철학에서 보는 불교 (4)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2) / 김종욱

[ 해외불교체험 ] 스리랑카
가난하지만 청정한 수행불교 / 송위지

[ 논단 ] 우리 시대에 필요한 불교철학
비교철학의 필요성 / 이병욱
왜 빠알리 니까야를 읽어야 하는가 / 전재성
사회정의 실천을 위해 불교가 해야 할 일 / 손혁재
전국신도회의 ‘조계종단 혁신재건안’ 연구 / 김광식

[ 샤캬 디타 대회 참가기 ]
여성불자의 힘, 새로운 불교의 가능성 / 운월

 

:::  2000년 겨울호 제5호 :::

[ 권두언 ]
전도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 홍사성

[ 특집 1 ] 티베트 불교 그 신비와 오해를 넘어
지혜와 자비의 이중주, 티베트 불교 / 주민황
서양에 부는 티베트 불교의 열풍 / 이동호
달라이 라마, 그는 누구인가 / 김충현
티베트와 중국. 그 선연과 악연의 역사 / 김성수
한국불교속의 티베트 불교 / 허일범

[ 특집 2 ] 불교와 통일운동 그리고 북한불교
통일운동에서 불교의 역할 / 조성렬
불교 통일운동의 현 단계 / 조병활
북한불교의 어제와 오늘 / 이지범
북한의 사찰과 불교문화재 / 이정

[ 세미나 중계 ]
간화와 돈오를 넘어 새 정체성 만들기 / 한형조
출가와 재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시론 / 홍사성

[ 서 평 ]
종교사상의 지평에서 본 선불교와 주자/ 신규탁

[ 논 단 ]
한국 불교학, 그 반성과 전망 / 이혜숙
사이버 불교 신행의 현 주소 / 박수호
천태지관의 현대적 의의 / 최기표

[ 쟁 점 ]
회통불교론은 허구의 맹종인가 / 이봉춘

[ 해외논단 ]
왜 여성은 ‘아라한’이라 불리지 않았는가 / 엘리슨 핀들리

 

::: 2000년 가을호 제6호 :::

[ 권두언 ]
현대 불교학이 타파해야 할 화두 / 홍사성

[ 특집 ] 불교가 보는 환경과 생태
중도와 상생을 위한 불교 환경론 / 고영섭
생태와 욕망, 그리고 불교적 상상력 / 김판동
생명살림·생태적 삶을 위한 불교의 역할 / 박석동
21세기 한국의 환경 주소―국민의 정부의 환경정책 비판 / 양장일

[ 집중조명 ] 유럽과 미국의 수행 단체
불교, 서양에서 꽃피다 / 진우기

[ 문화시평 ]
타란티노 영화에 나타난 불교적 시간의식 / 하재봉

[ 기 획 ] 간화선 논쟁의 몇 가지 관점
간화선의 본질과 수행구조 / 정성본
다시 간화선을 말한다 / 월호
위파사나와 간화선의 교집합적 접근 / 송위지
천태 4종삼매, 그리고 간화선·위파사나 / 이병욱

[ 논단 ]
생명과학·생명윤리·종교 / 김승철
아나키즘의 불교적 특성 / 방영준
주살(誅殺)된 달마―엽기 문화의 한 읽기 / 황호덕

[ 해외논단 ]
화엄철학은 어떻게 일본의 정치이데올로기가 되었는가 /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 최연식 옮김

[ 자료발굴 ]
이종욱의 〈초혼문〉과 〈대동단 활동의 동기〉 / 박희승

[ 서평 ]
니시다 철학과 불교철학 / 이찬수
허우성,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 2001년 여름호 제7호 :::

[ 권두언 ]
불설과 비불설을 결택하자 / 홍사성

[ 특집 ] 기복불교를 말한다
기복불교는 불교인가 / 조준호
기복불교는 왜 생겨났는가 / 황인규
기복불교의 실태와 문제점 / 한명우
기복주의를 넘어 공덕주의로 / 유동호

[ 문화시평 ]
21세기 불교문화 개화의 조건 / 주강현

[ 해외불교체험] 일본
생활불교의 빛과 그림자 / 박보경

[ 기 획 ] 종교와 정치 그 갈등과 유착의 관계
정교분리 담론과 정교유착의 현실 / 이진구
불교의 이상정치론과 역사적 실제 / 차차석
독일 기독교 민주당의 이상과 현실 / 한승완
일본불교의 정치실험, 공명당의 한계와 비전 / 조성렬
한국의 정치문화와 종교문화 / 채규철

[ 논단 ]
승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한 담론 / 정각
세계 불전 전산화의 현황과 과제 / 김재성

[ 현대 불교사 탐구 ]
이청담과 ‘조계종 유신 재건안’연구 / 김광식
조계종 종무행정 제도 변천 고찰 / 조기룡

[ 해외논단 ]
정치적 시각에서본 붓다의 생애 / 잠농 통프라스트 , 이마성옮김

 

::: 2001년 가을호 제8호 :::

[ 권두언 ]
한글불교를 제창하며 / 홍사성

[ 특집 ] 일제하 한국불교계의 항일운동
개항기 불교계의 현실인식 / 정광호
일제의 불교정책과 친일문제 검토 / 김순석
일제하 불교계의 독립운동 전개와 성격 / 김광식
만해 한용운의 정교분리 원칙 / 장석만
기미독립선언서 ‘공약삼장’ 집필자에 관한 고찰 /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 나타난 만해의 독립사상 / 고명수

[ 시론 ]
연기론적 시각으로 본 미국 테러 대참사 / 송위지
한글대장경의 완간의 의미와 과제 / 김용섭

[ 논단 ]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한 재고 / 박재현
94년 불교개혁운동의 반성적 점검 / 김봉준
현대적 사찰건축과 전통의 구현 / 김개천

[ 인물비평 ]
눈뜬 승가를 기다리는 세상속을 걷다 / 정웅기
실상사 도법,정토회 법륜스님

[ 해외불교체험 ]
고난의 땅에 핀 연꽃 / 김규현

[ 쟁점 ] 제 3의 수행법 어떻게 볼 것인가
정법왜곡은 또 다른 훼불이다 / 진현종
대안 수행법을 주목해야 한다 / 동준

[ 해외불교논단 ]
법화경과 종교적 관용 / 진 리브스 , 김승철 옮김

[ 서평 ]
―우리불교학의 정체성 찾기 / 석길암
: 심재관지음 〈탈식민지시대의 우리 불교학〉
―한국불교의 종자를 찾아서 / 강창호
: 한국 유학생 인도학 불교학 연구회 〈 일본의 한국불교학 연구동향〉

 

::: 2001년 겨울호 제9호 :::

[ 권두언 ]
전통을 부정하자 / 홍사성

[ 특집 ] 서양철학과 불교, 그 접점과 경계
칸트와 불교에 있어 존재와 인식 그리고 실천 / 최인숙
니체와 불교 그리고 해체철학 / 박경일
하이데거와 불교의 만남 / 김종욱
불교와 화이트 헤드 철학의 동이점(同異點) / 장왕식

[ 논단 ]
일본불교의 한국불교 인식 / 김천학
이슬람과 불교 그 악연의 역사 / 문을식
화엄의 세계와사이버 세계의 구조 비교 / 조윤호
불이사상과 미래문명 / 이찬훈

[ 세미나 중계 ]
현대 불교학의 과제와 해결방향 / 김성철
불교와 직업노동 그리고 시민정치 / 박세일
불교의 욕망관과 경제문제의 인식 / 정기문

[ 논평 ]
‘기복불교를 말한다’를 말한다 / 박영록

[ 해외논단 ]
불교는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 피터 하비, 심재관 옮김

[ 서평 ]
―禪의 철학적 해명 / 이병욱
변상섭 지음 〈禪, 신비주의 인가 철학인가〉(컬쳐라인)〉
―무시와 배척의 대상, 묵조선을 되살리다 / 이덕진
김호귀 지음, 〈묵조선 연구〉(민족사)

 

::: 2002년 봄호 제10호 :::

[ 권두언 ]
벌거벗은 임금님을 위하여 / 홍사성

[ 특집 ] 왜 종교 다원주의 인가
종교다원주의란 무엇인가 : 그 역사적 배경과 현재 / 배국원
기독교에서 보는 종교 다원주의 / 이정배
불교에서 보는 종교 다워주의 / 이희재
그리스도교의 불교이해 : 변선환의 불교관을 중심으로 / 이찬수
한국불교의 기독교 바라보기 / 윤영해

[ 쟁점 ]
체계불학의 몇가지 문제점 / 서재영
―김성철 교수의 〈현대 불교학의 과제와 방향〉을 읽고
‘기복신앙’문제의 본질적 과제 / 마성

[ 해외불교논단 ]
동물에게도 공민권이 있다 / 폴 왈도, 박서연 옮김

[ 기획 ] 이단 불교도들의 또 다른 초상
데바닷다 그는 정말 악인이었는가 / 원필성
신행, 중국불교 최초의 민중불교주의자 / 이상현
신돈, ‘요승’의 이름뒤에 숨은 개혁자의 모습 / 정선용

[ 논단 ]
경허의 법화와 행리, 그 빛과 어둠의 이중주 / 이덕진
인도 불교부흥 운동의 현실과 한계 / 이지은
불교의 불살생계 입장에서 본 국방의 문제 / 이재수

[ 해외불교체험 ]
저잣거리를 밝히는 청정승가의 빛 / 서상문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1)
베살리 결집의 십사논쟁과 정법(淨法) / 이자랑

 

::: 2002년 여름―가을호 제11,12호 :::

[ 권두언 ]
목적을 위한 방편이어야 한다 / 홍사성

[ 특집 ] 대승불교의 경전 찬술 어떻게 볼것인가
대승 경전 찬술의 배경과 과정 / 안성두
천태교판론의 한계와 현대적 의의 / 이병욱
중국불교의 위경(僞經) 제작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진무
불설―비불설 논의의 전개과정 / 김철
대승비불설론과 현대의 경전 해석학 / 김용표

[ 쟁점 ]
초기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에 대한 검토 / 마성

[ 현장보고 ]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의 2백일 / 김동훈

[ 기획 ] 서구불교의 가능성과 과제
서구인들은 왜 불교에 관심을 갖는가 / 최종석
서양 불교의 지도자들 / 진월
서구 불교학의 연구 방법 추이 / 심재관
서구불교의 가능성과 한계 / 최종남

[ 논단 ]
사형제도를 사형시켜야 하는 불교적 이유 / 연기영
대승사상과 한국 불교 영화 / 정재형
불교계 친일 행적, 어떻게 볼것인가 / 이재형

[ 해외불교논단 ]
비선형적 상호 인과율로서의 연기 / 조에너 메이시, 이중표 옮김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2)
밀린다 왕과 나가세나 비구와의 대론 / 문을식

 

::: 2002년 겨울호 제13호 :::

[ 권두언 ]
불교도는 과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가 / 홍사성

[ 특집 ] 상좌부 불교의 이해
상좌부 불교의 역사와 전통 / 송위지
남방 상좌부 불교의 수행체계 / 김재성
상좌부 불교의 현황 / 난다라타나
상좌부 불교의 주요 수행처와 스승들 / 김열권

[ 논단 ]
사형제도를 사형시켜야 하는 불교적 이유 / 연기영
원불교와 진각종의 교세 성장 요인 분석 / 정성운
가톨릭과 티베드 불교의 의례 비교 / 최로덴

[ 집중인터뷰 ] 강남포교원 20년 이끈 성열스님
용기있는 원칙, 아름다운 원칙 /노귀남

[ 시론 ]
‘불교와 불교학의 실용성’에 대한 한 생각 / 안옥선
새로운 불교미술이 나아갈 길 / 이기선

[ 해외논단 ]
불교는 페미니즘이다 / 리타 그로스,정미숙

[ 기획 ] 재가 불교운동의 현황과 전망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사적 개관 / 최연
대학생 불교운동의 어제와 오늘 /김남수
여성 불교운동의 흐름과 과제 / 이윤수
직장,직능 신행단체의 현황과 과제 / 박용규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3)
공사상을 둘러싼 중관, 유식 양 학파의 논쟁 / 남수영

[ 서평 ]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선불교를 보다
박재현 〈깨달음의 신화〉,푸른역사, 2002 / 최원섭

 

::: 2003년 봄호 제14호 :::

[ 권두언 ]
새로운 강물이 흐르게 해야 한다 / 조성택

[ 특집 ] 초기불교를 다시본다
왜 초기 불교를 주목해야 하는가 / 이중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 : 욕망의 지멸,자유,자비 / 안옥선
초기 불교 교단의 종교의식과 생활 / 이자랑
대념처경을 중심으로 본 초기 불교 수행법 / 미산
초기경전에 나타난 재가자의 위상과 신행생활 / 조준호
붓다운동으로서의 초기불교 시대 전법활동 / 김재영

[ 집중인터뷰 ] ‘금강경 결제’ 논주 각묵스님
금강경 제대로 읽어야 외도적 발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이성수

[ 선학탐구 ]
선종은 왜 민중불교를 지향하였는가 / 이은윤

[ 쟁 점 ]
기복불교 옹호론의 문제점 / 김종만
대―소승 논쟁의 비판적 성찰 / 조용길

[ 논 단 ]
불교에서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이유 / 윤영해
도심포교당의 유형과 성공사례 분석 / 김응철
참여민주주의와 불교 / 손혁재

[ 국제행동회의 참관기 ]
전쟁은 크게 인(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이승환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4)
삼예사의 논쟁 : 돈점론의 티베트 불교적 전개 / 안성두

[ 서 평 ]
―‘덕 윤리’의 패러다임으로 본 불교 / 임성택
안옥선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 불교시대사 2002
―불교의 불이(不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 한자경
김종욱 〈용수와 칸트〉 운주사 2002

[사색과 성찰]
절집에서 선거해야만 하나 / 법인
사찰 경영마인드 유감 / 윤원철
탄허스님의 예언과 정보통신 문화 / 김성철
불교에 근본주의가 필요한 까닭 / 홍사성


::: 2003년 여름호 제15호 :::

[ 권두언 ]
3보 1배 그것은 감동이었다 / 조성택

[ 특집 ] 현대사회와 불교윤리
계율에의 불복종 / 박정록
불교와 전쟁:불살생과 대량살생 /심재룡
현대사회에 있어서 불교계율의 의미 / 박호남

[ 논 단 ]
구술사 연구의 필요성 : 현대불교의 공백을 메우자 / 김광식
정신분석학과 선, 그리고 쇠고기 매운탕 / 박치완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김성철
철학함과 문헌학 : 불교학 방법론에 대한 성찰 / 강종원

[ 집중인터뷰 ] 요기싸르의 시인 김지하
상생의 화두를 찾아서 / 대담 조성택

[ 시 론 ]
세계화 시대의 전쟁을 보는 불교적 시각 / 류승무,임운택

[ 해외논단 ]
아시아의 종교적 전통에 나타난 불교 생태학 / 데이비드 킨슬레이,원병관 옮김

[ 기 획 ] 불교와 예술
생활속의 불교음악을 위한 제언 / 박금표
시간,경계 :세잔느,다빈치,그리고 용수 / 홍성기
진언과 다라니가 불교무용에 끼친 영향 / 능화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5)
청변과 호법의 공유논쟁 / 김치온

[ 선학탐구 ]
선은 종교인가 / 오강남
선종형성의 경제사상적 배경 / 이은윤

[ 서 평 ]
원전으로 읽는 금강경 / 이건준
각묵스님 지음 〈금강경 역해〉(불광출판사,2001)

[사색과 성찰]
제 통일 방안의 무궁지실 오류 / 김상일
자존심이 그리운 세상 / 이종철
불교적으로 산다는 것 / 엄성민
결혼, 이혼, 그리고 불교 / 문을식

 

::: 2003년 가을호 제16호 :::

[ 권두언 ]
불일(不一)이라야, 불이(不二)가 산다 / 조성택

[ 특집 ] 조선불교유신론의 21세기적 의미
조선불교유신론 집필의 배경과 개혁방향 / 정광호
조선불교유신론의 소회(塑會) 폐지론과 선종의 정체성 / 서재영
조선불교유신론과 현대 한국불교 / 김광식
근대 계몽철학과 조선불교유신론 / 허도학
조선불교유신론과 만해의 문학관 / 고명수
조선불교유신론에서 근대적 세계관 읽기 / 이도흠

[ 쟁 점 ]
기복불교 논쟁의 발전방향에 관한 제언 / 윤남진

[ 논 단 ]
깨달음에 이르는 글쓰기를 위하여 / 최재목
불교 생태학과 포스트 모더니티 / 김종욱
서구에서의 불교의 미래 / 조성택

[ 선학탐구 ]
선종 형성의 문화사적 배경 / 이은윤

[사색과 성찰]
불교계가 집단 아상(我相)에 빠져 있다 / 한형조
진정한 반미 / 최준식
농자 천하지 말본 / 종명
비우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김광원
고양이의 시대,고양이를 닮은 사람들 / 전기철
‘불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가 / 곽효준

[ 해외불교논단 ]
계율과 계율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담론 / 루이스 고메즈 지음 , 최은영 옮김

[ 3회분재 ]
장기이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 (1) / 곽만연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6)
고행에 대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논쟁 / 김미숙


::: 2003년 겨울호 제17호 :::

[ 권두언 ]
붓다의 성도(成道)의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자 / 조성택

[ 특집 ] 현대 한국불교의 비판적 성찰
초기불교의 사상,윤리성에 비추어 본 한국불교 / 김종명
키치로서의 불교 / 원신연
21세기 인문학으로서 불교철학의 가능성과 전망 / 이도흠
불교 NGO 의 현실과 과제 / 이영철

[ 집중인터뷰 ]
올곧은 현실참여 이끄는 정토회 법륜스님
불교시민운동의 새로운 길, 수행과 운동을 하나로 / 노귀남

[ 시 론 ]
누가 허물없이 자살할 수 있는가 / 안양규

[ 논 단 ]
삼독기법(三毒機法)으로 벗어나는 길 / 박치완
서산대사, 그리고 호국불교의 가능성 / 김근호
대혜종고의 공안선 비판과 간화선에서의 지(知)의 문제 / 박재현
늪, 늪의 글쓰기 / 최재목

[사색과 성찰]
악업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 성담
자살을 권장하는 사회, 삶의 의미를 읾은 개인 / 김도공
사찰 안내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이지중
이제 바른 법행(法行)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 태경
소박한 밥상의 아름다움 / 이승환

[ 세미나 중계 ]
일제의 한국강점과 불교 / 최병헌

[ 자료발굴 ]
한암(漢岩)의 자전적(自傳的) 구도기 ‘일생패궐’(一生敗闕) / 윤창화

[ 해외불교논단 ]
불교 인식론과 프래그머티즘 / 리차드 헤이즈,성청완

[ 3회분재 ]
장기이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 (2) / 곽만연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6)
성유식론에 나타난 종자(種子)의 유래에 관한 논쟁 / 이동우


::: 2004년 봄호 제18호 :::

[ 권두언 ]
무엇이 웰빙인가 / 조성택

[ 특집 ] 깨달음과 수행에 관한 몇가지 관점
깨달음이 불교의 목적인가 / 홍사성
선(禪)의 깨달음, 그 정체와 문제점 / 김성철
깨달음의 불교에서 행복의 불교로 / 조성택
수행도의 다양성과 깨달음의 일미 / 안성두

[ 시 론 ]
탄핵을 탄핵한다 / 손혁재

[ 세미나 중계 ]
비구니 팔경계 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법인스님

[ 논 단 ]
고은의 만해론을 비판한다 / 이재형
불살생에 관한 불교의 이상과 현실 / 문을식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불교관 / 유호선
매트릭스에 나타나는 불교적 상징들 / 이은비
승조(僧肇)의 존재에 대한 사유방식과 자유 / 김영진

[사색과 성찰]
‘납골사업이 불교정신인가 / 김기덕
오래된 미래를 생각한다 / 최은영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 / 김호성
거울에 비친 내 속살림 / 진월

[ 해외불교논단 ]
불상생의 기원에 대한 고찰 / 람버트 슈미트하우젠,김성철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8)
영혼에 관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논쟁 / 김미숙

[ 자료발굴 ]
조선 불교 학인 대회록과 불교개혁 / 김광식

[ 3회 분재 ]
장기이식에 관한 불교적 관점 / 곽만연

[ 종교학 다시보기 ]
종교란 무엇인가 / 최준식

[ 서 평 ]
죽음.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 이덕진
오진탁, 〈죽음 , 삶이 존재하는 방식 〉(청림출판,2004)


::: 2004년 여름호 제19호 :::

[ 권두언 ]
종교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 조성택

[ 특집 ] 현대사회를 향해 불교가 말한다
갈등 해소, ‘화쟁’이 길이다 / 이도흠
자본주의와 빈곤, 그리고 무소유 / 박경준
생태계 위기극복을 위한 사성제적 접근 / 김종욱
폭력, 끝까지 거부해야 할 이유 / 하정남
교육, 욕망의 재생산에서 연기적 자각으로 / 박범석

[ 시 론 ]
‘짱’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 / 문을식

[ 세미나 중계 ]
생태에 대한 선사상적 고찰 / 서재영
4·3사건과 제주불교계의 피해 현황 / 한금순

[ 쟁점 ] 간화선과 위빠사나, 그 접점과 경계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다른가 / 각묵
위빠사나와 간화선, 다른 길 같은 목적 / 김재성
위빠사나에 대한 몇 가지 오해 / 조준호

[사색과 성찰]
외로운 노인들을 바라보며 / 원욱스님
자비와 창업 사이에서 / 서인범
길에서 만난 부처 / 김봉현
꽃미남 붓다 / 김수정

[ 논 단 ]
열반에 대한 해석의 문제점 / 황순일
불교는 육식을 금하는 종교인가 / 마성
화엄적 글쓰기 / 최재목
왜 일하며 수행해야 하는가 / 종명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9)
설일체유부의 유위4상을 둘러싼 논쟁 / 황정일

[ 종교학 다시보기 ]
(2) 종교의 특질 / 최준식

 

::: 2004년 가을호 제20호 :::

[ 권두언 ]
종교는 과학적 진보를 제한할 수 없다 / 조성택

[ 특집1 ] 생명산업과 생태윤리, 그 불교적 모색
생명복제 대한 불교윤리적 모색 / 박병기
불교는 인위적인 생명조작을 허용하는가 / 홍욱희
배아 복제에 대한 불교적 관점 / 곽만연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산업 / 박병상

[ 시 론 ]
‘천성산 살리기’ VS ‘지율 스님 살리기’ / 윤제학

[ 논 단 ]
형이상학과 반 형이상학의 만남― 근대유럽정신과 불교 / 박진영
농지개혁과 불교계의 대응 / 김광식
하르샤는 불법왕(佛法王)인가 / 공만식

[사색과 성찰]
일상의 바닥에서 만난 불교 / 고인환
새로운 안거문화, ‘재가논강’ / 박희승
골목길, 자동차에 빼앗긴 아이들의 삶터 / 정성운

[ 특집 2 ] 윤회, 사실인가 믿음인가
고대 문명사회와 인도에서의 윤회 / 김형준
초기 불교에서 본 ‘무아의 윤회’ / 안옥선
윤회의 공간적.시간적 조망 / 김성철
남북조 불교의 윤회설 수용과 갈등 / 차차석
윤회없는 불교는 가능한가 / 최은영

[ 기획연재] 종교학 다시보기 (3)
왜 종교인가 / 최준식

[ 해외불교논단 ]
자본의 폭주에 대한 불교적 진단 / 술락 시바라크 저, 김미숙 역

[ 서 평 ]
연기법의 서구적 수용 / 고형일
― 조애너 메이시 지음, 이중표 옮김 〈불교와 일반 시스템이론〉 불교시대사

[ 권말기획 ]
중국불교의 돈점(頓漸)논쟁 / 김진무


::: 2004년 겨울호 제21호 :::

[ 권두언 ]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세계화 / 조성택

[ 창간 5주년 특별 좌담 ] 불교 지성의 새 지평을 여는 첨병이 되라
미산(중앙승가대 교수) / 한형조(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유승무(중앙승가대 교수·본지 편집위원) / 조성택(고려대 교수·본지주간)

[ 특 집 ] 한국불교를 다시 생각한다
‘통불교’ 담론을 통해 본 한국불교사 인식 / 조은수
간화선을 위한 변명 / 박재현
기복, 한국불교 본연의 모습인가 / 이기운

[ 시 론 ]
출가자 감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유승무

[ 논 단 ]
데리다의 철학사상과 불교(1) / 김형효
공안의 기호학적 분석 / 이승훈
헤겔의 《종교철학강의》와 불교 / 박진영
불이사상과 불교미학 / 이찬훈

[사색과 성찰]
호국불교, 나라를 지키는가 정권을 지키는가 / 헨릭소렌슨·최원섭 옮김
어느 견공의 죽음 / 박도
출가를 생각하다 / 김치온
칡뿌리에 대한 단상 / 차상엽

[ 세미나 중계 ] 참선(간화선)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하나의 극단, ‘최고의 수행법’ / 호진

[ 자료 발굴 ]
《포교법 개설》에 나타난 근대불교의 포교 / 김광식

[ 기획연재 ] 종교학 다시 보기 4
인간에게 종교가 필요한 진짜 이유 / 최준식

[ 해외불교논단 ]
젠 오리엔탈리즘의 시작―니시다와 교토학파 / 버나드 포오레, 김수정 역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11
사문의 권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최정규


::: 2005년 봄호 제22호 :::

[ 권두언 ]
지율스님이 얻은 것과 잃은 것 / 조성택

[ 특 집 ] 한중일 불교의 근대성을 해부한다
한중일 불교의 근대성 수용경로와 차이점 / 김경집
중국의 근대화와 불교 / 김제란
일본의 근대화는 왜 불교를 필요로 했는가 / 스에키 후미히코
근대 한국불교의 한 진경(珍景) / 심재관
한국불교 근대화의 두 얼굴 , 만해와 성철 / 김종인
중도와 서구적 근대성 넘어서기 / 유승무

[ 시 론 ]
불교계 친일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순석

[ 세미나 중계 ]
한국 불교의 세계화 방안 / 미산

[ 논 단 ]
데리다의 철학사상과 불교(2) / 김형효
하이데거, 무 그리고 불교 / 박진영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 사띠는 무엇인가 / 조준호
춘원 이광수의 친일 논리 / 김광식
쿠차불교의 역사와 성격 / 한지연

[사색과 성찰]
불교문화재는 성보문화재가 아니다 / 문무왕
물의 본래면목 / 이진섭
나는 회색이다 / 오진영

[ 서 평 ]
문명사적 관점에서 다시 보는 티벳 / 강종원
― R.A 슈타인 저, 안성두 역 〈티벳의 문화〉 (무우수,2004)..

[ 해외불교 논단 ]
탈현대 불교학의 새 방향 / 시모다 마사히로, 김재성 옮김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12)
천태의 제종(諸宗)비판은 정당한가 / 이병욱


::: 2005년 여름호 제23호 :::

[ 권두언 ]
우리가 선도하는 화엄적 기술문명 /김성철

[ 특 집 ] 인터넷 시대의 불교
불교의 사이버 사회 대응 양상―종교학계의 이론적 논의 종합 / 김응철
불교인의 사이버 신행과 특징 /박수호
불교 사이트의 현황과 문제점 / 김재경
한국의 사이버 교회와 영상 예배의 현황 / 허호익
원불교 원티스(WTIS) 구축의 현재와 미래 / 이한메
가톨릭의 인터넷 활용 실태와 한계 / 박문수

[ 시 론 ]
불교문화재 보존, 종단의 특단이 필요하다 / 문명대
개혁 없이 불교 미래 없다 / 박광서

[ 세미나 중계 ]
선사들의 삶을 통해 본 동물의 도덕적 지위 / 서재영

[ 논 단 ]
현대 불교미술의 시대미감과 창의성 / 윤범모
메를로―뽕띠의 철학과 보조지눌의 간화선 / 박진영

[사색과 성찰]
불자의 실천 생활이란 과연 무엇인가 / 박노자
햄버거 하나에 담긴 생명체의 수는 / 문윤정
놀이와 장엄 / 이성도
불교학교를 설립해야 한다 / 이학송

[ 서 평 ]
인물로보는 불교사 / 김천학
―《인물로 보는 일본 불교사》, 김호성 옮김 (서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 해외불교 논단 ]
불교생태학의 덕(德) 윤리적 접근 / 데미안 키온, 배상환 옮김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13)
용수와 니야야학파의 논법논쟁 / 문을식


::: 2005년 가을호 제24호 :::

[ 권두언 ]
다시 챙겨야 할 욕망이라는 화두 / 조성택

[ 특 집 ] 불교와 성(性)
율장을 통해 보는 ‘욕망 끊기’ / 철우스님
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 정성준
정신과 상담을 통해 살펴본 불교와 성 / 최훈동
불교영화속의 섹스, 어떻게 볼 것인가 / 송희복
불교미술에 나타난 성(性) / 박영택
불교문학은 여성을 어떻게 보았는가 / 임종욱

[ 시 론 ]
불교의 눈으로 본 남북관계의 흐름 / 고유환

[ 퇴임강연 ]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철학 / 김형효

[ 논 단 ]
1554년 금강산 청년 율곡과 어느 노승의 대화 / 한형조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본 한국불교의 돈점논쟁 / 서명원
看看話禪, 간화선 다시보기 / 변희욱
간화선과 화엄, 단절을 넘어 회통으로 / 김방룡
한국 불교계 신문의 현상과 과제 / 신관호

[ 해외불교 논단 ]
환경윤리와 불교 : 고의성의 관점에서 / 피터 하비 ― 배상환 옮김

[사색과 성찰]
고인 고통을 걷어내니 맑은 내가 있구나 / 마가
2005 만해축전 세계평화시인대회 참가기 / 박시교

[ 서 평 ]
시대에 맞는 불교의 퓨전 / 최원섭
사티쉬 쿠마르, 이한종 옮김 〈부처와 테러리스트〉 (달팽이,2005)..

[ 세미나 중계 ]
한국불교학회 여름 워크숍 / 박익순

[ 권말기획 ] 논쟁의 불교학 (14)
소소계(小小戒)에 관한 논쟁 / 이자랑

 

::: 2005년 겨울호 제25호 :::

[ 권두언 ]
황우석 사태를 보는 불교의 눈 / 조성택

[ 특 집 ] 웰빙시대의 잘죽기(Well Dying)
웰빙시대에 왜 웰 다잉을 말하는가 / 오진탁
붓다의 죽음 / 안양규
선사들의 열반과 죽음 / 김영욱
부활, 웰 다잉의 한 해석 / 이찬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 강신표
근사체험(近死體驗)이란 무엇인가 / 최준식

[ 시 론 ]
종교와 선거 / 금강스님

[ 기획 ] ‘불교와 사회포럼’ 창립세미나
창립기사― 창립취지문
발제 ― 불교와 현대사회 / 조성택
논평 ― 한국 불교전개의 두가지 방식 / 김종욱
발제 ― 불교와 정치 / 박세일
논평 ― 아상에 결박된 정치 벗어나기 / 이각범
발제 ― 불교와 경영 / 노부호
논평 ―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 / 손기원

[ 논 단 ]
율장은 금서인가 / 마성스님
백학명의 불교개혁과 선농불교 / 김광식
일본 불교사회복지의 발전과 한국불교에의 시사 / 박광준
공안언어의 사회적 담론가능성에 대한 상념 / 박진영
조선전기 관세음보살의 응신묘법의 도상과 그 창조적 재현 / 강소연
틱낫한의 플럼빌리지 선수행 고찰 / 김은종

[사색과 성찰]
空間畏怖, 그리고 無有恐怖 / 김징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은 삶 / 최협
깨달음에 적절한 몸이 있는가 / 문윤정

[ 초청강연 ]
서구불교학의 연구의 과거와 미래 / 도날드 로페즈, 조은수 번역

[ 세미나 중계 ]
불교생명윤이 정립을 위한 공개 심포지엄 / 박익순


::: 2006년 봄호 제26호 :::

[ 권두언 ]
다종교 사회와 종교자유 / 조성택

[ 특 집 ] 바람직한 불경번역과 현대적 소통모델 찾기
좌담 ― 바람직한 불경번역과 현대적 소통모델 찾기
번역은 아무나 하나―얌폴스키의 돈황본 육조단경 영역(英譯) / 박성배
한글대장경 역경사업의 문제점과 과제 / 박종린
리즈 데이비스와 빨리 경전협의 성과 / 황순일
경전연구소의 번역과 교열과정을 통해 바라본 팔리경전의 우리말 옮김 / 정준영
불교용어의 표준화는 왜 필요한가 / 이평래
불교용어 표준화의 문제점 / 김재성

[세미나 중계]
세계각국의 경전번역 실태 밑 체계에 관한 연구학술발표회 / 노병철

[ 기획연재 ]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1) / 오강남

[ 기 획 ]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의 대응방식 문제없나
사회양극화에 문제에 대한 불교적 처방 없나 / 정천구
불교생명운동의 맥락과 천성산살리기 그리고 비판적 성찰 / 이정호
황우석 사태로 본 불교윤리의 대 사회적 대응전략 제고 / 허남결

[ 기 고 ]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와 불교 / 정용도
삼소회의 세계 종교성지 순례기 / 진명스님

[ 논 단 ]
궁즉적 실재에 대한 불교적 관점과 물리학적 관점 / 김성구
아쇼까왕의 복지사상 연구 / 성운스님
불교와 자이나교의 불살생론 비교 / 김미숙
떠오르는 장례문화 수목장(樹木葬) 문제점은 없는가 / 조동섭

[ 서 평 ]
한일 불교사를 어떻게 볼것인가 / 고영섭
일본사상의 핵을 찾는 스에키 후미히코의 ‘일본불교사’와 관련하여

[ 기획연재 ] 문화속의 禪 1
차와 선의 융합 , 다선일미 정신 / 박동춘

[사색과 성찰]
늙은 감나무와의 대담 / 한승원

[ 강연중계 ]
깨달음의 세계와 생활세계 / 조성택


::: 2006년 여름호 제27호 :::

[ 권두언 ]
불교문화― 일상성과 소통을 위한 불교 / 조성택

[ 특 집 ] 재가불교를 생각한다
프롤로그 / 성태용
재가자는 출가자에 비해 하열한가 / 박경준
재가자의 해탈은 어디있는가 / 허우성
수행과 삶은 둘이 아니다 / 박영재
원불교 재가자로서의 삶과 수행의 조화 / 최영돈
오늘날의 재가불자교육을 돌아본다 / 이영철
이상적인 재가 불교를 위한 제언 / 성태용

[ 기획연재 ]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2) / 오강남

[ 자료발굴 ]
백제성왕의 일본왕 겸임과 불교포교 / 홍윤기

[ 논 단 ]
진각국사 무의자 선시의 미학 / 학해스님
불교출판의 현황과 과제 / 홍사성
한국 영화속의 불교, 그 미래와 방향사이 / 우봉규
호탄불교, 접근을 위한 첫걸음 / 한지연
8차교육과정 개편에 따른 초중등학교 도덕―윤리교과서의 불교(종교)관련 내용에 관한 개선 방향 / 김형중
녹색장묘문화를 향한 불교복지의 실천체계 / 박희택
한국 종교문화 현실에 비춰본 한국 종교의 미래 / 박문수
섬같은 불교, 피자같은 불교 / 이민용

[ 서 평 ]
간화선으로 가는 바른 길 / 이덕진

[ 기획연재 ] 문화속의 禪 2
건축에 스며든 선의 정신 / 김홍일

[사색과 성찰]
남북을 떠도는 도난 문화재들 / 장용철

[ 세미나 중계 ] 동국대학교 건학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지식기반 사회와 불교 생태학’ / 김철우

[ 강연중계 ]
불교와 그리스도교, 그 소통을 말하다 / 서명원


::: 2006년 가을―겨울호 제28―29 합본호 :::

[ 권두언 ]
초심으로 돌아가며 / 조성택

[ 특 집 ] 불교와 민족주의
프롤로그 / 최연식
한국 근대 민족주의와 불교 / 박노자
근대 중국 불교와 민족주의 / 김영진
천황제 국가의 형성과 근대불교의 파행 / 원익선
민족불교와 불교적 보편주의 / 서재영

[ 논 단 ]
종교평화문제에 관한 사회복지법제론적 검토 / 박희택
조선시대 왕실여인들은 사찰의 ‘대화주’였다 / 탁효정
콤플렉스와 한국불교의 사회적 위상, 그리고 종교적 자유 / 이정훈

[ 서 평 ]
인도불교사의 종합적 고찰 / 이병욱
― 호진스님의 〈인도불교사〉를 읽고
―책으로 바라본 쩡옌 스님의 인간불교사상과 그 실천 / 이상미

[사색과 성찰]
스스로 건너는 九江 / 김성부

[ 기 고 ] 2006, 윤이상의 숨결찾기
―독일 ‘자택’과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를 다녀와서 / 장용철
―교육, 예측 가능성에 대한 회의 / 백선혜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이란 무엇인가 / 고명석

[ 기획연재 ]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3 / 오강남


::: 2007년 봄호 제30호 :::

[ 권두언 ]
봉암사 결사를 다시 생각한다 / 조성택

[특집] 불교와 예술
불교와 영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 장선재
악보 위에 펼친 화엄세계 / 김경진
선(禪)과 그림-송대(宋代) 선화(禪畵)를 중심으로/ 김현정
현대 대중예술의 이론과 그 불교적 해석 / 이도흠

[시론]
조계종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수경스님

[논단]
신자유주의하의 이주 노동자와 노동 및 가치를 둘러싼 문제 / 이경천
운강석굴 조영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성격 / 문무왕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불교적 접근과 과제 / 박광준

[해외불교]
간다라 미술과 대승불교 / 미야지 아키라

[서평]
《일본불교의 빛과 그림자》를 읽고 / 마성(摩聖)

[사색과 성찰]
썩어야 산다 / 노공
성지순례의 의미 / 원욱
한류(韓流)의 ‘한’ 덫인가 돛인가 / 김상일
불교의 생애 (The life of Buddhism) / 이민용

[집중 인터뷰]
동서를 회통하는 철학자, 김형효 / 마해륜

[세미나중계]
간다라 불전도(佛傳圖)와 불교 도상(圖像) / 유근자

 

::: 2007년 여름호 제31호 :::

[ 권두언 ]
죽음을 다시 생각한다 / 조성택

[특집]
응용불교, 미래를 준비하는 화두 / 김영욱
생명운동과 불교생태학의 소통을 위한 제안 / 이정호
불교사회복지의 현황과 전망 / 권경임
실천적 모색으로서 응용불교윤리학의 가능성 / 허남결

[시론]
17대 대선, 불교계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 손혁재

[기획시리즈]
4.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는 더 깊은 의미 / 오강남

[논단]
민국시기 불교 간행물에 게재된 한국불교 사료에 대한 고찰 / 황신추안
미적인 것은 종교적인 것인가 / 명법
중국불교교판사상사 / 성원 스님

[사색과 성찰]
친구 / 방민호
잊혀지지 않는 기억 / 박치완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 향해스님
한국 비구니계에 거는 기대와 주문 / 이병두

[세미나중계]
진언(Mantra)과 불교수행 / 황순일

[해외불교]
불교철학과 문헌학, 전통과 혁신 그리고 지성사의 경계 / 로렌스 맥크레이·파리말

 

::: 2007년 가을호 제32호 :::

[ 권두언 ]
‘좋은 벗들의 모임’을 기다리며 / 홍사성

[특집]
보살과 금욕 : 왕과 상인들의 불교 / 루이스 랭카스터
승려의 성적행위는 왜 금지되었는가 / 아상가 틸라가란트
감각적 욕망에 대한 대승의 윤리적 담론 / 야오밍차이
금욕으로 깨달음을 얻는가 / 유키 시라마네
금욕은 시대착오인가? / 로버트 버스웰
유교적 세계관과 성욕의 절제 / 노영찬

[기획시리즈]
5. 초대 교회 형성과 발전 / 오강남

[논단]
들뢰즈로 〈벽암록〉 읽기 / 채운
청규는 제2의 율장인가 / 향해

[사색과 성찰]
인연의 덫에서 자유롭기 / 이석심
자전거에도 ‘불성’이 있다?! / 고미숙
진정 붓다는 없는 것인가? / 차차석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들 / 김상현

[세미나중계]
불상보기,종교적 차원과 심미적 차원 / 이주형

[해외불교]
베르나르 포르의 선불교 / 성청환

[서평] 《중국 근대사상과 불교》를 읽고 / 석길암

[기획시리즈]
16. 요기니 딴뜨라들의 기원에 대한 논쟁 / 이용현

 

::: 2007년 겨울호 제33호 :::

[ 권두언 ]
현대적 교상판석을 세워야 할 이유 / 홍사성

[특집]
동남아 상좌불교의 역사와 현황 / 마성(摩聖)
생활종교로서의 동남아 불교 / 김영애
동남아 불교는 소승인가 / 송위지
정치에 나타난 동남아 불교의 힘 / 김홍구
불교적 상징과 미얀마 정치 / 장준영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특징과 그 의미 / 홍석준

[기획시리즈]
6. 중세 그리스도교의 전개 / 오강남

[해외불교]
전쟁과 테러리즘 / 데미언 키론. 허남결

[올해의 논문]
삼론가의 호칭과 승랑의 고유사상 / 김성철

[사색과 성찰]
잃어버린 순수감각 / 노귀남
겨울날의 행복론 / 이진영
불교, 정치, 그리고 현실인식 / 조명제
행동보다 사유의 깊이가 문제 / 김형효

[논단]
한국 불교 설화에 나타난 욕망과 깨달음 / 이도흠
한국 불교학에 대한 한 불교학자의 소회 / 권오민

[서평]
나의 경계, 나의 한계로부터의 자유? / 박치완

[세미나중계]
대법원 육비구 할복(六比丘 割腹)사건 / 박부영
봉암사 결사의 정신과 퇴옹성철의 역할 / 서재영 

 

::: 2008년 봄호 제34호 :::

[ 권두언 ]
이명박 정권이 순항하기를 바라며 / 김성철

[특집]
소수자와 빈자를 위한 불교적 모색 / 이도흠
불교는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는가 /  이승욱
동성애에 대한 불교의 관점― 역사적 사례와 잠정적 결론 /  허남결
소수자 새터민 문제와 불교의 대응 / 노귀남
이주노동자 문제와 불교 /  김영진
불교의 장애인 인식 /  방귀희
한국사회의 재소자와 교도소 포교 /  황수경

[논단]
한국불교사의 순교승* / 황인규
불교미학의 기초개념* / 장미진
한국의 상좌부 불교 이해 수준 / 김홍구
일본의 동남아 불교 연구현황* / 석오진

[해외불교]
티베트 불교철학의 본질* / 마쯔모토 시로

[기획시리즈]
7.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등장 / 오강남

[서평]
空(공),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 김호성

[특별기고]
일과 수행이 하나되는 삶을 위하여 /  도법스님

[사색과 성찰]
다음 어느 생에 람보와 마루와 내가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 /  이인자 
경부대운하는 무엇인가 / 조건균
4부 니까야 읽기 운동을 제안한다 / 전현수
삶과 가치관에 대한 집착과 독선 / 대화스님

 

:::   2008년 여름호 제35호    ::: 
 
[ 권두언 ]
이명박 정부가 ‘주는 것 없이 미운’ 국민들 / 허남결

[특집]종교와 정치권력
종교권력 현상의 문제점 / 유승무
정치참여에 대한 출가자의 태도 / 마성
교회권력과 정치권력, 그 만남과 갈등의 역사 / 이진구
이슬람 신정정치의 이상과 그 변질 / 김영경
유교, 정치의 시녀 혹은 잔소리꾼 / 최재목

[논단]
불교의 공(空)사상과 노자사상의 비교 / 이병욱
출가와 재가가 나누어진 사상적 이유 / 조준호
유교법회(遺敎法會)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 / 김광식

[특별기고]
불교적 방황에 관한 한 보고서 / 최로덴
- 인도, 희말라야에서의 고행난행〔眞空〕과 즉신성불〔妙有〕

[세미나 중계]
온마음 상담과 연기론 / 윤호균
연기론의 인지치료적 활용 / 김성철

[사색과 성찰]
한글과 불교 / 장영길
닮고 싶은 사람 / 상현숙
신과 과학의 전쟁 / 이준
마음의 거리 좁히기 / 허지혜
우리 문화와 불교 / 심산
자연 보호는 인간 보호 / 림창홍
2008 티베트 항쟁의 발발 요인 / 정웅기

[기획연재]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⑧
근·현대 그리스도교의 전개 양상 / 오강남

 

::: 2008년 가을호 제36호  :::

[ 권두언 ]
종교편향 더 이상은 안 된다 / 황순일

[특집]  육식인가 채식인가
육식의 정치학 그리고 사회학 / 이도흠
종교문화로 본 육식과 채식 / 류제동
채식하는 서양인, 육식하는 동양인 / 현현
육식과 채식의 식품영양학적 비교  / 이승남

[진단]
불교문화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 김태식

[명시 감상]
고은의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 이상국
효봉선사의 〈사슴이 알을 품는 소식〉 / 효림스님

[논단]
성철 스님의 ‘오매일여론’ 비판 / 윤창화
무아를 체득하면 윤회는 없다 / 방경일
대승 수행의 근본 원리 / 신규탁
혜초의 후반부 생애에 대한 고찰 / 김규현
한국불교와 동남아불교 교류의 어제와 오늘 / 이치란

[사색과 성찰]
마당에 미꾸라지가 파닥이던 시절 / 임동확
맹목적 근대주의의 극복을 위하여 / 신승환
리더의 보살행 / 이태경
오디 / 김희준
인도불교 멸망사가 주는 교훈 / 이학종

[집중취재]
종단산하 법인관리 문제점과 개선 방향 / 유응오

[세미나 중계]
경허선(鏡虛禪) 다시 보기 / 변희욱

[기획연재]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 ⑨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그리스도교 신학 / 오강남

[논쟁의 불교학] 
미망사학파 자재신 논쟁의 불교적 요소 / 김보리 

 

::: 2008년 겨울호 제37호  :::

[ 권두언 ]
나라님의 나라인가 우리의 나라인가 / 석길암

[기획] 종교갈등, 해결의 길은 없는가
종교 갈등, 그 불행의 세계사 / 곽병찬
이웃 종교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 / 이거룡
종교 간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서 / 서명원
종교 편향과 차별 방지를 위한 외국의 사례 / 남태욱
한국 기독교의 불교 폄훼 일지 / 임연태

[특별인터뷰]
삭개오 작은교회 김경재 목사 / 김나미

[명시감상]
죽원 : 서산대사 / 효림스님
게눈속의 연꽃 : 황지우 / 이상국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
수상작 : 현장의 인도 구법과 현장상의 추이 / 남동신
수상소감 / 남동신
심사평

[기획특집 ] 불살생, 선택인가 당위인가
불교의 생명개념과 불살생계 / 김성철
불교는 왜 불살생을 권하는가 / 정덕스님
육식습관과 동물의 권리 / 허남결
통계수치로 본 동물의 희생 / 우희종

[사색과 성찰]
하나의 진리로 가는 다른 길들 / 구중서
불교논문유감 / 권오민
현대에 계율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규칠
우리 교육을 위한 성찰 / 박병기
티베트, 순례자의 죽음 / 김영진
종교와 폭력 그리고 정치 / 김호성

[논단]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 비판〉에 대한 비판 / 방경일
다시 응용불교학을 위한 변명 / 이혜숙
한국 불교, 왜 종교개혁이 필요한가 / 강병조

[세미나 중계]
불교와 사회참여 / 박광서

[강연초록]
동아시아에서 한국 불교의 역할 / 강연 : 로버트 버스웰, 정리 이상민

[기획연재]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독교 이야기 10
그리스독교의 오늘과 내일 / 오강남

[서평]
사상사를 통해 재조명한 근대 중국 / 윤영도
천샤오밍 외 지음 , 김영진 옮김 〈근대 중국 사상사 약론〉

 

::: 2009년 봄호 제38호    :::

[ 권두언 ]
다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이도흠

[기획특집] 종교와 돈
돈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과 역사적 전개  / 박경준
돈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과 역사적 전개 / 임채광
한국 불교의 시주 현황과 용도 / 이학종
한국 기독교의 헌금 현황과 용도 / 서병창
종교인 면세특권 그 기원과 현황 / 정웅기

[논단]
경전과 선어록 오류 해석에 따른 몇 가지 문제점 / 성본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적 대논쟁 / 석오진
불교 연구에서 고고학의 중요성 / 성청환

[특집] 불교속의 유교, 유교속의 불교
위진(魏晋) · 당대(唐代)의 불교와 유교 / 김용남
송대(宋代)의 간화(看話)와 격물(格物) / 변희욱
불교와 양명학(陽明學) / 송재운
신유학(新儒學) 수행론에 미친 불교 수행법 / 이승환
한국사회에서 유불(儒彿)의 교류 / 김용환
보살과 선비, 그 역사성과 현재성 / 박병기

[사색과 성찰]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남긴 것 / 김윤세
나눔의 역설 / 장기표
치유(Healing)의 불교 / 유자효
무보상의 윤리 / 장기홍
원효와 장자 / 김수중

[해외불교논단]
여래장 사상과 본각사상 / 마쓰모토 시로, 이태승 옮김

[시론]
팔레스타인 잔혹사와 이스라엘 가자 침공 / 홍미정

[북리뷰 Book Review] 
이론으로 체계화한 간화선 / 김호귀
찰나멸과 차이의 철학 / 김영진

 

:::  2009년 여름호 제39호  ::: 
 
[ 권두언 ]
걸림없음(無碍)의 지향 / 박병기

[ 특 집 ]  불교와 도교의 대립과 융합
불교와 노장의 사유 방법 동이점(同異点) / 허인섭
도가의 무(無)와 불교의 공(空) / 하유진
불교와 도교, 대립과 투쟁, 그리고 융합 / 최일범
도교의 도장(道藏)과 불교의 대장경 / 윤찬원
중국선에 미친 노장사상의 영향 / 김진무

[ 논 단 ]
생명문화 공동체를 위한 생명학 / 이기상
가톨릭의 아조르나멘토와 불교 / 곽병찬
근대불교학과 일본적 특수성 / 김용태
붓다는 왜 걸식을 했는가 / 이상호
한국 근대사회와 근대불교(Ⅰ) / 남태욱

[ 집중 탐구 ]
왜 달라이 라마인가 / 탁효정

[ 기 획 ]  한국불교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경전에 나타난 이상적 지도자상 / 김응철
총무원장은 이런 인물이어야 한다 / 이학종
조계종 선거, 이대로 좋은가 / 정성운

[사색과 성찰]
간디의 나라와 만해의 나라 / 황규호
살생 / 강병균
은혜의 인과 / 오명철
거룩함과 코믹함은 종이 한 장 차이 / 임동숙
행복에의 의지 / 동시영
한국불교의 사대주의에 대하여 / 박정진
부유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 / 이경
돈은 국가에 요구하라 / 김경호

[ 열린논단 ] 
한국 종교의 정치 종속성과 불교의 미래 / 김성철

[ 북리뷰 ]
일아 편역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 조준호
마츠모토 시로 저, 이태승 외 역 《티베트 불교철학》 / 양승규
성열 스님 저 《고따마 붓다》 / 황순일

 

::: 2009년 가을호 제40호  ::: 
 
[ 권두언 ]
무엇이 불교를 위한 길인가 / 석길암

[ 불교평론 창간 1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 ] 문명사적 대전환, 불교가 대안인가
기조발제: 문명사적 전환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불교와 서양의 대화를 통하여 / 이도흠
연기적 독존주의(緣起的 獨尊主義)와 열린 공동체
우리 시대의 공동체에 대한 불교적 모색 / 박병기
‘사성제’에 대한 정신분석적 해석
고통의 유형, 기원, 치료법, 의미에 대한 불교와 정신분석 관점 비교 / 이창재
자아중심적 세계에서 연기와 공의 불교적 세계로 / 조은수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동몽이상(同夢異床) / 유승무
탈현대철학의 도일성과 차이의 늪에서 벗어나기
희론(戱論)을 경계하고 참 진리를 참구하라! / 박치완
진화론과 뇌과학으로 조명한 불교 / 김성철

[ 특 집 ]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폴틸리히의 철학적 신학과 불교 / 김경재
불교와 화이트 헤드 / 김상일
다석 신학 속의 불교 / 이정배
《도마복음》: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잇는 가교(架橋) / 오강남

[ 논 단 ]
창조주의와 진화론의 논쟁에 비추어 본 불자의 과학관
다윈의 진화론 150주년에 부쳐 ― / 정윤선
선과 하이데거의 현존재 / 이승훈
《님의 침묵》 판본(板本)과 본문 비평 / 김용직
자비에 대한 동서 문화간 인식의 차이 / 이  준

[ 집중 탐구 ]
왜 틱낫한인가 / 진현종

[사색과 성찰]
관심(觀心) / 오세영
극과 극의 사유 / 윤창화
라다크, 다람살라, 그리고 백담사 / 이경철
불교문화 운동의 지향점 / 이영근
비명(碑銘)을 생각하는 날 / 임연태
겨울을 기다리는 소나무 / 전보삼
일상에서 행복 찾기 / 지혜경

 불교평론 편집부

2023/07/10

이은선 - 한일관계와 한국여성신학- 오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은선 - <한국信연구소 오늘, 23.07.10(월)> -한일관계와 한국여성신학- 오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 Facebook

7 h 
<한국信연구소 오늘, 23.07.10(월)>
-한일관계와 한국여성신학-
오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미쓰비시 일제 징용 배상 문제 등, 윤정부 들어서 한일관계가 다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 되는 것을 봅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도 유사했는데, 지금은 더욱 심각합니다. 당시 한국여성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한국여성신학 1세대들이 시작했던 한국, 재일본, 일본 여성들의 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 등으로 또 중단되었고, 오늘 여신협에서 포럼을 또다시 새롭게 이어간다고 합니다. 오늘 상황이 결코 변하지 않았고 더욱 심각해진 것을 생각하면 다행입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저는 왜 삼자 여성신학자들이 포럼을 이어가고자 하는지 썼고, 거기서 다케우치 요시미 등을들면서 그가 서양 제국주의를 되감자고 한 것의 의미를 살폈는데, 오늘 다시 보니 그때 저의 생각들이 그렇게 낡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아니 오히려 다시 더 정치하게 살피고 돌아보아야 할 관점들이 있어서 여기 다시 가져옵니다.
2020년에 낸 제 책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에 부록으로 싣기도 했습니다. 어제 안동 도산서원에 다녀오는 길 고속버스에서 이 서두글을 썼는데, 휴대폰 밧데리가 다되서 못올리고 오늘 올립니다. 혹 관심 있으신 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몇년 전 손주들 예쁜 사진도 만나서 올립니다. 긴 글입니다.
_________
2015.8.19-21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모임
<왜 여신협은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 포럼을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가?>
1.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총리와 빌리 브란트 서독수상의 무릎사죄
올해(2015년) 광복절 70주년을 이틀 앞둔 8월13일 한국의 아침신문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유관순 열사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수난 장소로 유명한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서, 당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민족의 혼 그릇’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크게 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장면을 본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곧장 예전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자기 조국의 죄를 무릎 꿇고 깊게 사죄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1970년 12월에 있었던 이 서독 수상의 ‘무릎 사죄’를 통해서 유럽인들을 포함한 세계는 독일인들에게 다시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그 한 해 전에 당시 적대에 있던 동독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는 선언을 한 빌리 브란트 수상은 그와 같은 일들을 통해서 유럽에서 독일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990년 독일은 통일국가가 되었고, 그 통일국가 독일은 다시 ‘유럽연합’(EU)을 탄생시켰으며, 지금 유럽은 이 지구촌에서 가장 풍성한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곳이 되었다.
2. 독일 통일과 유럽연합(EU)의 평화와 번영
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빌리 브란트의 이 무릎사죄를 보고서 “무릎을 꿇은 것은 빌리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전체였다”라고 썼다. 이후 독일은 말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폴란드 등에 대해서 엄청난 손해배상금을 마련했고, 한반도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국토를 폴란드에 돌려주었으며, 올해 1월 현 메르켈 총리가 또 다시 깊이 있는 언어로 언급하고 고백했듯이 독일은 지난 시간의 전쟁 범죄를 결코 잊지 않고 계속 사죄하겠다고 공표한다. 이러한 이웃나라의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은 폴란드도 주변의 다른 이웃 나라인 프랑스 등과는 달리, 미국조차도 의심스러워했지만, 독일이 다시 통일되고자 했을 때 기꺼이 함께 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거리의 폴란드인들에게 물어보면 하나 같이 과거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일을 더 이상 두 나라 사이의 특별한 일이라기보다는 인류 전쟁범죄의 일로 보면서 현재의 독일인들에게 그들 부모세대의 죄과를 계속 물을 수 없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독일은 지난 시간의 잘못을 깊이 사죄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면서 계속 언급하고, 그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통일을 이루어내면서 다시 유럽의 리더가 되었고, 이웃나라들은 그런 독일을 용서하고, 그 나라가 다시 유럽을 이끄는 것을 용인하면서 서로의 윈윈(win-win)을 구가하고 있다.
3. 동아시아의 경우와 다시 고조되는 긴장과 갈등
이러한 용서와 화해, 번영과 평화가 유럽 땅에서는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묻게 된다. 왜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가를. 왜 우리 동아시아에서는 그러한 용서와 회복이 일어나지 않고, 대신에 일본은 다시 우경화의 길을 가고, 과거에 했던 사과조차도 번복하려고 하며, 역사수정주의와 더불어 평화헌법 9조를 무화시키려는 군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가를. 한반도는 그보다 더 비참하게도 광복과 더불어 야기된 분단이 여전히 지속되어서 동시에 분단70주년을 맞이하고 있고, 남북한의 갈등과 긴장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통일 대신에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 상태는 더욱 고조되고 있는가를.
일본은 현재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도 과거사 문제로 위험하게 갈등하고 있고, 그 사이 세계 양대 헤게모니 중 하나로 떠오른 중국은 미국․일본과 대치하면서 동아시아에서의 긴장은 날로 더 심각해져서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번에 일본 미쓰비시사의 과거사 청산 노력과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의 피해자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와 보상을 하면서도 가장 큰 희생을 치르고 피해를 본 한국인들은 외면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최소한 인간적인 양식과 상식만이라도 가졌다면 어떻게 그러한 낯간지러운 유아적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묻고 싶었다. 그렇게 동아시아에서의 이웃 간의 우애와 평화는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 유럽인들과 아시아인들은 본래적으로 그렇게 다른 것인지, 그 핵심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 하토야마 전 총리의 무릎 사죄의 순간이 “일본의 가장 존엄한 순간”이라는 평이 나왔는데, 독일과 유럽의 경우처럼 그것이 한반도에서의 남북의 통일과 동아시아에서의 평화와 화합의 시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4.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일관계문제연구반>의 시작과 1년간의 일본 공부
지난 해 봄(2013.5.31(토))부터 우리회의 <한일관계문제연구반>이 천착해온 물음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존경하는 선배 정숙자 목사님이 여신협이 지난 1988년부터 2011년까지 23년간 20회를 이어오던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이어서 계속해 줄 수 없겠는가고 물어 오신 것을 계기로 <한일관계문제연구반>은 구성되었고, 우리는 우선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하는 일부터 시작하자는 취지로 모였다.
첫 책으로 성공회대 일문과 교수인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다, 2010>를 읽었는데, 그는 오랜 동안의 일본사회 경험을 토대로 왜 전후 일본 사회가 점점 더 우경화되어가고, 불안 ‘증후군’에 시달리는지에 대한 나름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해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일본사회의 여러 구체적인 문제들을 좀 더 가까이 알아볼 수 있었는데, 히로시마 체험, 일본 천황제 문제, 작은 나라 콤플렉스와 ‘일본 침몰’의 두려움, 오키나와, ‘위험한 북한’ 이야기 등 다양했다. 이 즈음해서 나카츠카 아키라가 지은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이라는 책도 접하면서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일본 근대사 역사소설을 지은 시바 료타로의 ‘조선관’과 그의 ‘메이지 영광론’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21세기 오늘날 다시 그러한 제국주의적 정신이 일본사회를 유혹하고 있다는 저자의 고발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유사한 맥락에서 한국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지은 <일본산고日本散考>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앞으로 한국사회가 당면할 가장 위험한 두 가지 일로 환경․생태훼손의 문제와 더불어 죽음의 일본문화의 유입일 것이라고 말하는 박경리 선생이 지금까지 반성 없이 이어져온 일본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반생명적인가를 고발하는 것을 들었다. 박경리 선생은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다.”
우리가 같이 읽은 책 중에는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인인 호사카 유지 교수의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라는 책도 있었다. 거기서 그는 선비의 ‘문(文)’ 문화와 사무라이의 ‘무(武)’ 문화의 차이로 한국과 일본 문화를 특징지으며 그 명암을 밝혔다. 그러면서 청일과 러일, 태평양 전쟁 등 아시아와 세계에서 군사행동을 일으켜온 일본이 인간심성에 대해 보다 더 관심을 가질 때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믿음을 비로소 가지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우리는 또한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가 지은 <일본정신>이라는 책을 통해서 짧게나마 <일본서기>에서부터 최근의 신영성운동까지 일본 종교문화의 뿌리와 핵심을 살펴볼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근대 일본의 신도(神道)와 야스쿠니 신사 등의 정신적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종교의 현세 중심주의가 어떻게 일본인 개개인의 삶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있어서 세속주의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면서 일본 천황제와 같은 국가신도, 조상숭배와 관련한 죽음과 혼령에 대한 의식, 마쯔리라고 하는 축제 등의 배경을 잠깐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한국의 경우 무속이나 유교를 모르고서 한국 문화를 안다 할 수 없듯이 신도(정령숭배, animism)를 모르고서 일본을 안다 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는 야스쿠니 신사(神社)가 메이지 유신 직후인 1868년 건립되어 8만여 개가 넘는 일본 전역의 신사들 가운데서 가장 방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전범 등 2004년 기준 246만 6532위에 달하는 혼령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5. 타께우치 요시미의 동아시아 이해와 한중일 삼국
그동안 우리가 읽은 책 가운데 특히 나 개인에게 깊은 인상을 준 책은 대안지성공동체 ‘수유너머’의 일원이었던 동아시아 연구가 윤여일 선생이 저술한 <사상의 원점-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를 생각하다>이었다. 그 책을 통해서 나는 일본의 중국문학가 다께우치 요시미(竹內好, 1910-1977)를 알게 되었고, 타께우치가 어떻게 중국의 루신(魯迅, 1881-1936) 이해를 통해서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근대화 과정의 차이를 밝히면서 근대 일본의 식민지성과 그와 연결된 침략성을 해석해내는지를 보았다.
다께우치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서구 근대의 출현 앞에서 자신들의 전근대성과 더불어 고통스럽게 씨름했지만, 중국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절망에 대해서도 절망하는 회심을 거쳐서 주체적인 혁명을 이루어냈지만 일본의 근대는 오히려 부단히 밖으로 향하는 ‘노예문화’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처지까지 연결해서 살펴보면,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은 서구의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고 나섰던 길에서 아시아의 ‘식민자’가 되었고, 패전으로 식민자에서 벗어나자마자 그러나 다시 미국의 ‘(준)식민지’가 되었다고 한다. 즉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겪고서도 일본은 역사적 사실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서, 예를 들어서 원폭을 오로지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강조한다거나 천황제를 폐지하지 못한 점, 그리고 오늘 아시아의 전쟁 위안부 문제에 서 드러나듯이, 그것은 ‘주체성의 확립’이라는 근대의 일에서 일본이 실패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이 오늘날 다시 미국이라는 서양 강대국과 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아시아를 얕보는 행위야말로 서구 제국주의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는 식민지성을 드러내주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다께우치는 「근대란 무엇인가」에서 말하기를,
“노예는 자신이 노예라는 자각을 거부하는 자이다. 그는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진정으로 노예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되었을 때 완전한 노예근성을 발휘한다.”(윤여일, 289쪽)
일본 노예근성이 발휘되는 패권의 장이 아시아였고, 21세기 오늘날 평화헌법을 고치고 다시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려는 아베정권의 일본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이웃 나라 한국은 자신의 형제자매와 싸우느라고 자기 군대의 통수권까지 맡아달라고 미국에 사정하면서 그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해서 매년 약 10조원에 상당하는 전쟁 대금을 치루고 있다면, 미국의 반(半)식민지인 일본보다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겠다. ‘동아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미국의 지역정책에 따른 필요성에서 등장한 것이고, 미국중심적 지식권력구조로 전이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윤여일, 222쪽)
6.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와 마츠이 야요리의 사랑, 분노, 저항
다께우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식민지성을 뼛속까지 가지고 있는 아시아가 그 경험을 토대로 해서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아시아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신의 식민지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더불어 자신의 ‘식민자’에 대한 단순한 대치나 대립을 넘어서 그 식민자를 “되감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시아에게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이거나 한국의 경우에는 일제강점 36년도 그 대상이 되겠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가 자칫하면 작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와 같은 방식으로 전락할 위험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본다. 하지만 우리가 ‘주체성’과 ‘주체형성’을 한편으로 인간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그래서 부인할 수 없는 존재원리의 하나로 인정한다면 우리의 식민 경험(아시아)을 결국 우리 주체형성의 통로와 방법으로 써서 노예성의 상황을 넘어서야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한 구체적인 예의 하나를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여성운동가, 평화주의자, 아사히신문사의 정년을 채운 최초의 여기자 등으로 소개되는 마츠이 야요리(1934-2002)의 자서전을 통해서 볼 수 있었고, 우리 선배와 동료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20회를 거듭하면서 기적적으로 모여왔던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도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을 공부하는 기간 중에 우리가 이번 준비모임의 번역가와 통역자로 수고하는 김선미 선생의 번역으로 마츠이 야요리의 생명의 기록 <사랑하라 분노하라 용기 있게 싸워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마츠이 야요리는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였던 목사의 딸로 태어나서 스스로가 여러 가지의 차별과 소외를 경험한 것을 보았다. 동지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아사히신문사에 들어가서 여기자로서 많은 제약과 차별을 받았지만 당시 고도성장의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이면의 문제들을 파헤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후 활동영역을 아시아와 세계로 넓혀서 공해수출과 기생관광 등을 고발했다. 특히 70년대 한국이 박정희 독재정권 아래에서 시달릴 때 1977년 3월1일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면서 3․1독립운동의 날에 <아시아 여성들의 모임>을 발족시켜서 이후 동일방적의 여성들, 광주사건의 희생자들, 조화순 목사나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 한명숙 씨 등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이러한 일들로 그녀는 80년대 후반까지 한국행 비자를 얻을 수 없던 유일한 일본 기자였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가해자의 나라이기만 했던 일본의 여성을 통해서 그 일본에서의 일련의 사람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시장폭력에 저항하며, 과거 자신의 나라가 저지른 죄악을 들추어내면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고, 이웃 나라와 아시아와 세계의 약자들과 더불어 생명과 정의, 평화를 위해서 싸워나가는 건강한 주체성의 사람들인 것을 보며 나는 많이 배웠고, 나의 좁은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7.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의 지난 20여년의 발자취
우리가 이번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의 재개 탐색을 위해서 한 일 중의 하나는 지난 2011년 2월 제20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 23년간의 자료들을 두루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실로 놀라운 축적이었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선취되어서 다루어진 것을 보았으며, 출발의 문제의식과 진행된 과정의 주제들과 서로 공유한 문제점들이 결코 오늘날도 빛바랜 것이 아님을 보았다. 참으로 다양하고 핵심적인 사항들이 다루어졌는데, 제1회의 ‘권위와 영성’이라는 주제 아래서 일본 천황시스템과 한국 측의 민족 문제가 다루어졌고, 이후 동북아시아의 평화, 여성의 인권 문제와 더불어 정신대 문제, 매매춘, 재일 한국인들의 반인권적 상황, 1910-1935년 일제 강점기 하의 한일여성사,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 교회와 여성의 수난사, 성벽을 넘어서서 연대하는 여성의 역할, 기독교와 가족제도, 대안공동체, 한국인 피폭 피해자 문제와 재일교포 차별과 인권문제 등이 다루어진 레이시즘, 새로운 기독교여성문화, 동성애, 기독교의 부권제, 폭력과 기독교 등이 주제들이었다.
21세기 오늘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나름대로 답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지적되는 세 가지 물음, 즉 ‘국가(민족)’, ‘소유(경제)’, ‘성(가족)’에 대한 물음이 그곳에서 잘 선취되어 다루어 진 것을 보았고, 이러한 문제들의 배경에 어떤 종교적, 신학적 배경들이 있는지, 신론과 기독론, 인간이해, 교회론 등이 세 주체의 시각에서 탐색되었으며, 특히 재일한국인의 입장과 상황들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알게 되어서 감동한 것 중 하나는 마츠이 야요리가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와 관련하여 2000년 도쿄에서 열었던 ‘여성국제전범 법정’이 바로 이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에서 먼저 얘기되었다는 것이고, 어느 여성은 이 포럼을 참가한 것을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여서 목사가 된 경우도 있고, 특히 재일한국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23년간 이 일을 가능하게 한 모든 분들과 참석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8.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의 재개를 위한 새로운 주제들
이후 시간이 또 흘렀다. 그리고 세계와 동아시아, 우리 각자의 삶의 정황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사이 세계화는 더욱 진행되어서 이제 ‘지구인’이라는 말이 전혀 생소하지 않게 되었고,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세계의 정치 판도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라 하더라도 자본과 돈을 제일의 가치로 삼는 경제제일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이를 통한 환경파괴와 생태문제는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나는 지난 포럼의 마지막 회차에서 재일측의 신영자 목사가 그 20여년을 정리하며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결국 자신들이 깨달은 것은 ‘개(個)의 확립이 급선무다라는 자기 확인일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는 사실을 정숙자 목사님이 <한일관계문제연구반> 첫모임을 위해서 발제하신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 포름의 역사와 현안”( 2014.5.31, 여신협 사무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안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을 보고, 특히 우리가 신앙인과 종교인으로 모이고자 할 때는 이 언술에서의 의미를 결코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말은 결국 우리 삶은 그 정황이 어떻게 변하든 관건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고, 우리의 신앙과 신념, 우애와 결단으로 좌우된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되어서 그것은 다시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우리들의 건강한 ‘주체성’, ‘주체형성’의 물음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의 재개가 어떻게 한국과 재일, 일본의 사람들이 지금까지의 여러 차원에서 놓여있었던 노예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까의 물음이 되어야 하는가를 지시한다.
오늘 우리가 건강한 주체가 되는데 있어서 더 이상 예전처럼 국적이나 성별, 신체나 가족형태 등이 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또한 우리의 종교적 물음에 있어서도 기독교의 배타적 그리스도론이나 신론은 많이 극복되었고, 종교적 이중국적의 시대도 멀지 않고 새롭게 열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예전에 우리를 죽도록 힘들게 하던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을 본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면 그 주제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에게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점점 더 크게 위협받고 있는 사실이 제일 중하게 다가온다. 한미일 동맹은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고 이곳에서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켜서 언제 사용될지도 모르는 상상의 무기인 사드(Thaad) 미사일 등을 구입하고 유지시키는데 수조 원을 쓰게 하면서 이곳 민중들, 여성들의 삶을 더욱 심하게 옥죄어 온다. 따라서 이 땅의 평화와 군비축소 등의 문제는 우리의 긴급한 주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여전히 동아시아가 메여있는 서구 제국주의는 그 사상적 뿌리로서 유대 기독교 가부장주의적 신론을 그 극점에 가지고 있다. 우리 세 주체가 공동으로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가부장성과 전통적 배타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대안과 보완을 우리가 동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웃 종교 전통들에서 찾을 수 있는지, 한국과 일본에서 절대적 실체론으로 굳어져 있는 쇼비니즘적 민족주의와 천황제 시스템은 어떻게 해체해 나갈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에서의 개(個)와 공(公)의 관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맺을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철저히 노예화 되어있는 경제제일주의, 그와 더불어 생존을 찾아 떠도는 세계 무국적자의 문제,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정의의 문제 등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더불어 핵에너지 문제와 생태위기는 우리의 전통적인 국적과 민족의 문제를 무색하게 하면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을 촉구한다.
9. 마무리하며-우리 시대의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끈질기게 묻는 한/재일/일본의 여성신학
일찍이 한국의 안중근 의사는 이또 히로부미를 내세워 점점 더 죄어 오는 이웃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 앞에서도 그들도 본래적으로 평화를 원하고 세계 평화와 안녕을 바랄 것이라는 일본 민족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다. 일제 초기 무단 통치시기에 그 한국적 특성으로 인해서 가장 큰 희생을 치룬 한국 대종교의 초대 교주 나철(羅喆, 1863-1916)은 1904년 을사늑약 등으로 조선을 강점하려는 일본에 대해서 자신이 전라도 벽지의 한 선비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정치가와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면 그러한 침략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1904년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는 일을 용기 있게 감행하기도 했다. 오늘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던적 상황에서 종교와 신앙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 즉 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면, 우리가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면서 동아시아에서 모두를 위한 건강한 주체성을 세우고, 이곳에서의 평화와 안녕으로 세계 인류의 삶에 기여하는 일을 소망하며 꿈꿀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불가능한 것을 이루려는 신앙적 열정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리라. 전쟁과 무력과 물질의 힘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빼앗고, 예속시키려는 제국주의의 욕망 대신에 그러한 불의와 폭력에 분노하며 사랑하면서 용기 있게 싸웠던 우리 선배들을 따라서 우리도 같이 그러한 신앙의 길로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우리 그리스도 예수의 영과 하나 되게 하는 자매애가 우리의 인도가 되실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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