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테의 수기 소득공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은이),
문현미 (옮긴이) 민음사 2005-01-15
==
책소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편소설이자 대표작 <말테의 수기>가 재출간되었다. 책은 사건이 아닌 상상과 기억의 단편만으로 삶의 본질과 인간 실존 문제를 탁월하게 형상화해 낸 일기체 소설. 릴케가 파리 생활의 절망과 고독을 통해 29살부터 쓰기 시작해 6년 뒤인 1910년에 출간한 것이다.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면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의 수기'로 체념 의식과 개개인의 고유한 삶과 죽음은 아랑곳없이 절망적인 대도시의 양상을 체험에서 담아낸 기록이다. 거리에 앉아 구걸하는 여자, 죽기 위해 자선병원을 찾아가는 인간, 죽음조차 대량생산되는 대도시의 비정함 등이 섬세하게 그려졌다.접기
목차
제1부
제2부
작품 해설
작가 연보
===
책속에서
아버지의 유해는 뜰을 마주한 방에 안치되었고 양쪽으로 촛불이 높게 켜져 있었다. 꽃 향기가 한꺼번에 울리는 여러 가지 소리처럼 섞여서 무슨 냄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아버지의 말끔한 얼굴은 무언가 조용하게 회상하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버지에겐 수렵관의 제복이 입혀졌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푸른 띠가 아니고 하얀 띠가 매여 있었다. 두 손은 마주 잡혀 있지 않고 비스듬하게 포개어져 있어, 부자연스럽고 무의미하게 보였다. 몹시 고통받았다는 이야기를 간단히 들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모습은 손님이 묵다가 떠나가 버린 방의 가구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죽은 모습을 그전에 이미 자주 본 듯이 느껴졌다.
밑줄긋기
P.42Cinema Paradiso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것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가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P.42Cinema Paradiso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추천글
장석주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있다> (문학의 문학 刊)
함정임 (소설가, 교수): 수기手記, 기억의 현상학적 환원 더보기
저자 소개
지은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릴케>,<[큰글씨책]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 총 216종 (모두보기)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릴케는 보헤미아 출신답게 평생을 떠돌며 실존의 고뇌에 번민하는 삶을 살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체코 프라하의 독일계 가정에서 1875년에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불우한 삶이었다. 첫딸을 잃은 어머니는 릴케를 여자처럼 키웠으며, 군인 출신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5년간 군사학교를 다녀야 했다. 몸이 허약했던 릴케는 사관학교를 중도에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으며, 프라하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학청년이었던 릴케는 뮌헨 대학교로 적을 옮긴 후 운명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정신적 문학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루 살로메와의 두 차례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릴케는 독일 화가마을 보르프스베데에 정착하였다. 그곳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화가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게 되고, 로댕의 제자였던 조각가 클라라 베스토프와 결혼하였다. 그 후 릴케는 파리로 가 로댕의 조수가 되었으며, 세잔의 작품에 탐닉해 그 구도적 작가정신을 닮으려 하였다. 파리 생활의 체험은 자전소설 《말테의 수기》에 담겼다. 러시아 여행의 성과는 《기도시집》, 보르프스베데 시대에 주로 쓴 시는 《형상시집》과 《신시집》으로 묶였다. 방랑의 삶을 계속한 릴케는 1922년 장편 연작시 《두이노의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완성하고, 51세가 되던 1926년에 스위스의 요양원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접기
옮긴이: 문현미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사랑이 돌아오는 시간>,<바람의 뼈로 현을 켜다> … 총 14종 (모두보기)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학과와 독일 아헨대학교(문학박사)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집으로 『기다림은 얼굴이 없다』 『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 『아버지의 만물상 트럭』 『그날이 멀지 않다』 『깊고 푸른 섬』 『바람의 뼈로 현을 켜다』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 등과 번역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문학선집』(1권∼4권) 안톤 슈낙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등을 펴냈으며, 박인환문학상, 풀꽃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백석대학교에서 백석문화예술관장으로 문학과 그림이 함께하는 예술의 현장을 일구며 국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접기
4
=====
100자평
구매자 (1)전체 (4)
===
공감순
hsislee 2013-01-17
2~3번 정독한다 하더라도 완전 이해가 어려운 책. 명사들이 권장하는 책이고 널리 알려져 읽어봤으나 너무 난해하고 형상화가 어렵다. 번역의 한계도 있어보이고, 세월을 흘려 두고 볼 일이
=====
마이리뷰쓰기
구매자 (6)전체 (16)
======
평범 속의 비범 2005-07-12
1980년대, 5공화국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우리는 한때 릴케의 <말테의 수기> 속으로 도피한 적이 있다. 도피라기 보다는 말테의 수기 초반부에 나오는, 파리에서 방황하는 말테와 우리를 동일시한 적이 있다. 뒷부분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말테의 그 한서린 듯한 가난과 죽음에 대한 독백에 모두들 가슴을 쳤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에피소드 <돌아온 탕아>에서의 릴케의 독특한 사랑 해석에 전율을 느끼며 그 어려웠던, 아팠던 80년대 고비에 우리는 이 말테의 수기를 칙처럼 캐먹으며 살아남았다. 40여 개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부분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마음속에 가져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그러므로 현대소설의 효시로까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책: 어려우니까 읽는다. 쉬운 길은 피해 가리라.
공감 (34) 댓글 (0)
진교왕 2021-08-20
니체와 만나고 14살 연상의 살로메를 연모하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앙드레 지드를 만나고, 로댕의 비서로 1년간 일한 적이 있는 릴케. 라이너 마리아 릴케,윤동주가 별을 헤이며 노래한 이도 릴케였지요.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가 28세부터 6년간 쓴 일기체 소설 <말테의 수기>를 읽어봤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란 첫문장으로 시작하는데,<지하로부터의 수기>처럼 내면 세계를 다룬 문장들이 아름다우나, 난해하고 몹시 지루합니다.
소설이지만 줄거리가 없고, 사건이 아닌 상상과 기억만으로,71개의 소주제가 릴케의 시선으로 그려집니다. 공포, 얼굴, 생명, 죽음, 아침, 달, 시(poet), 도서관, 질병, 불안 등등으로 삶의 본질을 논합니다.
줄거리가 없는데, 설마(?) 하면서 믿지 못하는 사람도 더 있을 겁니다. 릴케가 파리에서 보낸 암담한 생활의 여러 단편적 수기가 모아진 형태인데 어느 글에선 ˝여러 주제가 상호보완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새로운 모티브로 끊임없이 변주된다˝라고 멋있게 말하던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처음 맛 본 평양냉면처럼 슴슴한 맛.
나중에 그 의미를 찾게 될지도 모르는 숨은 보물찾기 같은 책으로 명하고 읽자마자, 책꽂이 맨 윗칸에 꽂아두었습니다.
공감 (12) 댓글 (0)
kinye91 2017-04-06
너무도 유명한 이름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러나 이름만큼 그의 작품을 읽지는 않았다. 그냥 릴케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다른 시인들의 시에 등장하는 릴케, 또는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릴케.
읽지 않아도 너무 유명한 작가, 릴케. 그의 시집을 한 권 읽었고, 소설집을 한 권 읽은 것이 전부. 이 말테의 수기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늘 미루기만 했던 책.
드디어 읽었다. 읽으면서 릴케의 이 작품이 왜 유명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테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서양의 문화,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커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릴케라는 이름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고나 할까.
릴케와 관련된 여인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를 중심으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도 하겠지만, 말테의 수기에서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다.
조금은 환상적인 부분이 있는 이야기들도 등장하고 있으니, 사실적인 내용만이 실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릴케의 삶을 잘 알고 있다면 이 말테의 수기를 흥미있게 읽어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이러나 저러나 내게 이 말테의 수기는 이런 문장들로 기억될 것이다.
시에 대하여, 시인에 대하여 한 구절들.
...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한다. 동물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 (26-27쪽)
릴케는 시인이 되었다. 소설가가 되었다. 그는 작가가 되었다. 작가가 되기까지 그가 경험한 일들, 그런 일들이 이 말테의 수기에 나와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말테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다. 그 과정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작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라고 보면서 읽으면 된다. 그렇게 읽으면 책에 나오는 유럽의 역사, 문화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해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작가로 탄생하게 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한 작품을 읽었다. 다음에는 그의 예술론이 담겨 있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로댕론'과 '젊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야겠다. 그에게 한 발 더 다가가도록.
공감 (11) 댓글 (0)
corcovado 2016-03-16
말테의 수기는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읽었다.사실 그렇게 읽을 책은 아니다.가볍게 산책가듯이 이부분에서 책을 덮고 다음날 이어서 읽을때 머리속에서 ˝옛다,지난이야기˝하고 기억을 되살릴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이어읽으려고 앞부분을 복습하다가 `어?처음보는 대목인것같은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그러니까 지난˝이야기˝가 없다는 얘기다.도대체가 줄거리가 없다.이것을 ˝소설˝이 아니라 ˝수기˝라고 부르고 싶은데 책속 주인공은 릴케가 아니라 ˝말테˝라는 작자다.고로 어쩔수 없이 소설이라고 받아들인다.기어이 ˝줄거리˝라고 우겨야 한다면 아마 ˝말테가 파리라는 큰도시로 가서 느낀 환멸감을 수기로 쓴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릴케는 책속에 ˝말테˝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말테˝는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근데 그 과거회상의 대목에서 자꾸 릴케와 겹친다는것이다.(9살까지 여자아이로 키워진 릴케와 `소피`라는 여자애로 분장하고 엄마와 장난치는 말테)무튼 이 ˝말테˝는 필력이 어마어마한데 예컨대 ˝빈 종이같은 기분으로 들어갔다˝던지 ˝벽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 하듯이˝라던지 ˝환자가 녹색 가래를 피 어린 눈꺼풀 속에 뱉은 듯 보이는 그 지짐거리는 눈˝이라던지 등등.셀수도 없이 ˝으아니!이런 기똥찬 묘사를!˝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구절들을 사용했다.
말테는 파리에서 굉장한 실망감을 느낀것같다.보통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자들이 과거에 더 매달리기때문이다.근데 말테는 과거에 대해서도 썩 우호적이진 않다.그냥 단지 적어도 과거의 사람들은 인생자체에 ˝죽음˝이 자연스레 따라오는것을 안다는 부분을 언급할뿐이다.(지금의 사람들은 죽음이 질병에 붙어오는것이라 생각한다고 썼다.)그럼 과거도 그다지 별로고 현재도 그다지 별로고.대체 뭘 쓰려는 것인가?글쎄다,나는 릴케가 아니니 알 길이 없지만,모든게 다 변해버린것에 대한 씁쓸함(예나 지금이나 더 좋을게 없지만)을 기록해둔것같다.책중에 귀족이었던 여인의 아버지의 이야기에서,˝아버지는 어느 아파트에서 돌아가셨다.˝라는 한구절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귀족으로서 땅과 집을 소지했던 사람들이 모든것을 빼앗기고 도시의 아파트로 내몰려 살았다는 이야기에 겨우내 가까워져 맘속으로 그 변화를 느끼게된 대목이었다.또한 현재의 우리를 떠올리기도 했다.옛날엔 다들 자기의 집 한채씩은 갖고있었다.근데 지금은 다들 서울이나 서울인근에서 남의 집을 빌려쓴다.책속의 문장을 인용하자면˝아버지는 어느 월세방에서 돌아가셨다.˝가 되는것이다.말테는 이런 변화에 ˝공포˝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읽는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거기에 ˝슬픔˝을 더하면 될것같다.
책은 내내 피폐한 얼굴로 담담히 이야기를 담아주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려 오열을 하게된다.실제로 읽는 동안 주체할수없이 크게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덤:보편적으로 ˝어렵다˝라고 평가한 책임을 알고 샀다.어렵사리 책에 질질 끌려가면서 `알것같기도 한데...`하면서 괜히 아는척을 하다가 책속 구절에 뒷통수를 시원하게 얻어맞았다.그러니까 말테가 한때 독서에 빠져 모든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는 책을 제대로 읽을수가 없었다는것이다.그럼에도 한권씩 필사적으로 매달려 뭔가 비상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고한다.이 구절들을 읽으면서 온몸의 ˝양심의 가책˝이라는것들이 모공 하나하나에서 쉼없이 뿜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공감 (7) 댓글 (0)
월천예진 2018-11-13
말테의 수기
책을 구입하고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다. 구입한 날짜와 구입경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을 적어두고 있다. 대학시절 혹은 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습관이다. 말테의 수기의 겉 날개를 열면 2005년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4월 28일. 오래된 책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책을 끼고 있노라면 이따금 눈과 목이 따가워진다. 2005년 그해 봄 4월. 나는 왜 이 책을 구입했을까.
말테의 수기는 이번이 두 번째 도전이다. 두 번째 읽기가 아닌, 도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책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백번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책은 정말이지 읽다, 라는 표현보다는 도전,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듯하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은 지금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말테의 수기는 어떤 책일까. 어려운 책이었다. 난해한 책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나는 책이었다고 고백한다.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신입생 시절, 들고다니던 문고판 서적에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책을 아니 그 책의 제목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꼭 내게 충언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느끼며 혼자 착각 속에서 즐거워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즐거웠던 기억은 거기까지.
말테의 수기는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첫인상을 살짝 뒤틀며 바꿔놓았다. 물론 완벽하게 바꿔놓지는 않았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면 이 책을 통해서도 역시 릴케가 지니는 시인으로서의 작가적인 심오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려 한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스토리의 연개가 부족하다. 기승전결을 따지기 어렵고, 절정이나 중심사건과 배경을 논하기에도 정돈되지 않는 서사가 이어진다. 오히려 이미지를 따라가며 서술하는 형식으로 읽혔던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소설 보다는 시 창작의 기법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시를 창작할 때 그 시작은 이미지를 찾는 것이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시 창작 시간에 친구가 자신이 쓴 소설에서 문장 몇 개를 가지고 와 산문시를 써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이 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도 소설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었을까. 교수는 이미지를 강조했었다. 책 말테의 수기는 그런 차원에서 들여다보면 모든 것들이 이미지화로 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나름의 자잘한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다면, 2부에서는 작가의 서선이 옮겨가는 대로 이야기가 직접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작가가 사과를 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는 빨갛고 꼭지는 갈색으로 아직 싱싱하다고 상상하자. 작가의 시선은 곧 누군가 이 사과를 먹게 될 것인데, 그 누군가의 삶을, 그의 하루를, 바로 옆에서 살펴보기 시작한다는 식이다. 그는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그의 옷차림을 남루하고 주름투성이며 밑단이 너덜너덜하게 풀려나간 낡은 잠옷을 입었다는 식이다. 이야기는 한없이 이어지고 다시 또 시선이 옮겨가면 새로운 곳에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는 형식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때문에 순간 한눈을 팔다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라며 이맛살을 찡그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릴케의 강렬한 장점 중에 하나인 그만의 섬세한 시선은, 끝까지 지루할지언정 독자들을 쉽게 놓아주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에서 나오는 문장은 무척 사실적인 동시에 감각적이고 현실적이다, 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작가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이야기는 소설이나 시나 작품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공통으로 요구되는 ‘관찰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인물을 관찰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시대를 관찰하며, 인물을 둘러싼 사건을 관찰하는 일이 그 과정이다. 이 과정이 바로 릴케가 말하는 <보는 법을 배우다>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파리에서 보았던 암울한 현실은 책의 시작을 더욱 무겁게 끌어내고 있다. 병원이 등장하고, 병원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간의 삶에서 어두운 면들을 들추어내어 카메라 렌즈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듯 세밀하고 상세해서 그래서 더욱 질척이는 듯하다.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보였다. 죽음이란 그리고 삶이란, 혹은 실존이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말테라는 주인공의 어린시절의 회상과, 직접 경험하고 혹은 전해들어왔던 기괴한 경험과, 기억들의 이야기가 내 기억에 남는다.
죽은 자를 본다는 것은 행운일까. 충격일까. 신비일까. 공포일까. 책은 종종 죽은 이들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곤 한다. 그것이 환영인지, 사실인지. 현실 같은 비현실을 보여주는작가의 이야기에 그저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영혼 그리고 환영과 같은 것들을 인지하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의 심리를 반영하는 인간의 내적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아이가 지니는 보통의 평범한 두려움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이 숨겨놓은 채 드러내지 않는 내적 두려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어른들은 영혼 앞에서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기도 한다.
글이 너무 무겁다. 책이 워낙 분위기를 압도하다보니 내가 쓰는 글도 질척이는가 싶다. 조금 가볍게 가보자. 말테의 수기에는 인간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삶. 그보다 앞선 죽음. 많은 수의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이 모든 암울한 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포함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끝으로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여담 한가지를 말해보자.
우리는 별 헤는 밤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을 알고 있다. 갑자기 동주 이야기는 왜 끄집어내는가, 한다면 내가 기억하는 동주의 시중에 바로 말테의 수기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이 들어간 시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인 윤동주가 릴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직접 확인하게 된 부분을 인용으로 남겨본다. 어떤 면에서는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시인 윤동주는 ‘자아’ 라는 주제에 더 침잠하고 집중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는 소녀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꼬리가 달린 길쭉한 구식 문자로 나직하고도 날씬하게 씌어진 이름들을, 그리고 그들보다는 나이든 여자 친구들의 어른이 된 이름들을, 그 이름을 불러보면 약간 운명의 음향이 따른다. 약간은 실망과 죽음의 음향도
-말테의 수기p50」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일부....-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의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정말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전기 요법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말테의 수기 p64」
-윤동주 시 ‘병원’ 일부-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자세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는 전문가들에게 가서 들어봐야 할 일이고, 감상과 느낌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적는 나로서는 여기까지만 잡담을 정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차후에 릴케와 윤동주에 관한 책을 찾아봐야 할 듯싶다.
책 말테의 수기를 읽다가 정확하게 가운데 부분이 쩌억 갈라지는 사고 아닌 사고가 있었다. 오래된 책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누렇게 빛바랜 종이하며 갈라져 찢겨져버린 책이 안쓰러운 것까지 어쩌랴.... 이건 분명 여담이다.
공감 (4) 댓글 (0)
kelly110 2015-09-18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84432356
이 책을 두 번 읽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특별한 사건도, 줄거리도 없이 이어지는 내용에 도무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어령님이 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아직도 나에게 어렵다.
일기 같은 형식을 띠고 주인공이 가는 장소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이 생각한 것들이 묘하게 접목되어 있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릴케가 당시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죽음과 생명이 늘 스며 있는 파리의 거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작가가 투영된 주인공은 지저분하고도 죽음이 어디에나 있는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 살기 위해 들어온 파리에서 그는 죽어간다. 그는 살러 온 것인가? 죽으러 온 것인가?
이 물음은 누구에게나 해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모두 죽게 되지만 사는 동안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누리며 살아있음을 감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서울 시내 도로를 운전하고 가다가 문득 ‘100년쯤 전에 이곳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다들 죽고 땅에 묻혔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한 지점을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릴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해 감격하고, 사유했던 주인공의 생각을 빌어 자신을 투영한 릴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읽어 봐야겠다.”
-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쪽)
- 나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 밤새도록 앉아서 글을 썼던 것이다. (23-24쪽)
-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46쪽)
-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어딘가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한 장의 빈 종이 같은 기분으로 건물들을 죽 따라 다시 대로를 걸어 올라갔다. (82쪽)
- 명성이라는 것은 발전해 나가는 인간에 대한 공식적인 파괴이며, 군중이 그 사람의 공사장에 몰려들어 쌓아올린 돌들을 밀어내 버리는 그런 것입니다. (92쪽)
공감 (3) 댓글 (0)
동탄남자 2008-09-07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먼저 떠오르게 하는 시인 릴케...
재미 있는 사실은 본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번째 책은 이 책이 아니라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였던 것이 2005년1월15일자로 바뀌어 등록된 것이 신기하다.
여러가지 사연이 있겠으나 어쨌든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선택한 이 책..
<hr>
일기와 같은 이 소설은 절망과 고독의 파리 생활에 찌들어 있던 스물 아홉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서른 다섯에 완성한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덴마크의 젊은 시인 말테 라우리치 브리게가 암흑같은 파리에서의 생활을 일기쓰듯이 써내려간 작품으로 다소 몽환적이고 우울하며 줄거리 또한 딱히 정해진 것이 없이 오락가락 한다.
굳이 이 작품의 주제를 찾는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말테는 무명시인으로 덴마크 귀족 출신 28세 청년이다. 그것은 노르웨이의 오프스토펠더의 고독한 삶을 소재로 하면서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자신의 암울한 파리 생활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공감 (1) 댓글 (0)
요셉아저씨 2011-04-06
<<말테의 수기>>는 남성이면서도 여성적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온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풍부한 감수성과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험한 대도시의 빈곤과 침체 가운데서 큰 충격을 받은 작가는 자신의 정신적 충격과 위기감 가운데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말테'를 탄생시킨다.
<<말테의 수기>> 가운데서 독자는 한 문학 소년이 경험하는 빈곤과 죽음의 공포를 수기를 통해서 읽게 된다. 문화의 중심지이자 번영의 상징이였던 프랑스 파리의 어두운 면은 대도시라는 팽창하는 물질의 이질적인 모습과 그 가운데서도 고독을 맛보며 절망을 경험하며 문학적인 자아를 찾으려는 문학 소년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문명 사회 가운데서 방황하는 인간상을 뛰어난 작가의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준다. '로뎅'을 통한 새로운 관점과 시선을 배운것과 문호로서의 뛰어난 문체가 하나로 만난 그 순간을 보여주는 <<말테의 수기>>가운데서 독자는 삶의 본질과 인식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9월 11일 툴리에 가에서 접한 삶을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에 대하여 죽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시작하는 <<말테의 수기>>를 통해서 세밀한 환경과 인물 묘사기법은 작품을 통해서 리얼리티를 더해주며 '화자'가 바라본 '파리'의 한복판으로 독자들은 초대한다. '수기'라는 독특한 형태로 전개되어 나가는 독특한 소설의 진행 방식가운데 매력적인 문체와 문학가로서의 통찰력은 고독과 방랑의 시인으로 불리우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의 경험과 생각을 담고 있기에 독자는 풍부한 상상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말테'와 함께 그곳에 머무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 처럼 화자 '말테'의 일기 형태로 글이 전개되며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되기 보다는 '말테'의 기억의 단편들이 하나하나 연결되어 소개된다. '말테'의 풍부한 감수성과 통찰력은 문학가로서 그리고 작가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관계되어진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바를 '말테'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 제 1부에서 화자는 내면의 탐구 가운데 죽음과 관계하여 사람들을 생각하며 신의 존재와 인간에 대하여 고민한다. 이러한 화자의 다양한 생각과 상념들은 기실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관점과 생각이 반영되어져 있다. 생과 사에 대하여 받아들임에 대하여 독자는 '릴케'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극적인 면들을 발견하며 <<말테의 수기>>를 읽게 된다. 반면에 제 2부에서는 운명과 사랑 그리고 내면적 부분들에 대한 체험에 관련한 농밀한 접근을 볼 수 있다. 로댕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발전한 '릴케'의 풍부한 문학적 소양과 소질은 2부를 통해서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남성이면서도 여성보다 더 뛰어난 감수성과 시적 감각을 타고 났다는 작가 '릴케' '로댕'을 비롯하여 당대의 거장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가운데서 맞이한 문학의 개화는 독일문학사에 뚜렷한 흔적으로서 자리하고 있으며 <<말테의 수기>>는 그러한 '릴케'의 수준높은 작품성을 접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공감 (1) 댓글 (0)
물결처럼 2013-09-09
아, 그러나 사람이 젊어서 시를 쓰게 되면, 훌륭한 시를 쓸 수 없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사실 감정은 일찍부터 가질 수 있는 거다), 경험이기 때문이다.-26~27쪽
더보기
공감 (1) 댓글 (0)
예신 2010-08-07
몇번씩 이 책의 제목을 들어보기만 했는데도, 이제서야 첫 장을 펼치고, 읽게 된. 우리에게는 익히 시인으로 유명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가의 책이다. 릴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토해 낸 듯해 보인다. 고독함.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일기체 소설이긴 하지만, 날짜가 지정되어 있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주인공 자신의 파리에서의 생활을 일기 형식을 빌어 쓴 글로 보면 되겠다.
주인공 브리게는 28살인 남성으로 파리의 6층에 자리잡고 있는 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이 브리게라는 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100페이지에 가서야 알게 된다.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의 소일거리란 책을 읽고, 국립도서관을 방문하고나, 산책을 하고, 가끔씩 병원에 가는 일뿐 그것이 전부이다. 특이한 점은 그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존재들을 가끔씩 본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존재를.. 아니면 개와 대화를 한다거나.. 이런 현상은 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 전부에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브리게는 자신의 유년시절과 일찍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한 이야기들을 언급할때면 유독히 더 고독스러워지는듯해 보인다. 그가 타인과는 다르게 목격한 특별한 현상을 그는 병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가 들르는 병원은 정신병원일 꺼라고 짐작된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파리의 고독한 풍경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게 묘사된다.
릴케는 자신의 인생을 이 책에 상당히 많이 반영하였다. 그가 어렸을때 엄마에 의해 여자아이처럼 보이도록 키워져 왔다는 것과, 릴케가 <로댕 연구>를 써달라는 위촉을 받고 파리 로댕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말테의 수기'를 썼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비록 로댕의 집에서 오래 지내지 못하고, 1년후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말이다. 시인 릴케의 고독.. 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역시 마지막이었지만 말이다. 끝이 아무런 결말도 없이. 그렇게 끝나버린다. 말테의 수기. 고독스러움이 한층 돋보이는 책이 아닐까 한다. 아무런 할일이 없는 가운데, 책만 읽고 싶다.. 라고 주인공 브리게가 읊었을때, 얼마나 동의했던가.. 후후..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 없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트렁크 하나와 책 상자 하나를 가진 채, 사실 어떤 것에도 호기심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집도 없고 상속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이 살아가는 생활은 도대체 어떤 생활일까. 최소한 추억이라도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누가 그것을 갖고 있나? 만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해도 그건 땅속에 묻혀버린 것과 같다. 어쩌면 사람은 그 모든 추억에 다다르기 위해서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나는 늙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p.24)
인생에는 초보자를 위한 학급은 없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처리해야 할 지극히 힘든 일이 있을 뿐이란다. (p.100)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