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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 현대종교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 현대종교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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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8.02.22 11:28 입력

편집자 주: 이 글은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제6차 총회에서 정동섭 교수가 발표한 논문 내용이다.

 
  영지주의(gnosticism)와 이단
▲본지 편집자문위원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총재 
  가족관계연구소장; Ph.D.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가장 미혹하는 신앙의 양태를 영육이원론의 영지주의로 지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라”고 하였다(요이1:7).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예수는 신화다]나 [다빈치 코드] 등은 모두 영지주의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성격이 농후하다. 뉴에이지운동의 범신론적 성격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허호익, 2016).

  

영지주의란 영적 지식(gnosis)을 추종하는 동방 종교와 희랍철학과 신지학(theosophy),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혼합형태로 주후 80년부터 150년 사이에 초대교회와 경쟁했던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운동이었다. 영지주의는 엄격한 의미로 보면 종교도 아니고 순수하고 단순한 철학도 아니었으며 일종의 밀의적인 민중신앙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는 교회사 최초로 출현한 이단 가운데 하나다. 영지주의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해온 영지적인 사고와 개념 또는 분위기를 지닌 종교운동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다른 하나는 2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던 기독교 이단 종파를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지주의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지식을 통한 영혼의 우주적 구속을 가르친 사상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이성호, 2012).

  

영지주의는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나서,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가? 당시 교회는 영지주의에 어떻게 대처했으며 왜 이단으로 간주했는가? 현재 한국에는 어떤 영지주의 이단이 활동하고 있는가? 이단은 정통을 전제로 한다. 정통은 기원적이고 이단은 반영적이다.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를 표방하고 심오하고 놀라운 만큼 신비스러운 메시지를 선포했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구원과 영생이 믿음으로 말미암고 그 믿음이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즉, 역사적 개인(인격)이신 분에 대한 것을 믿은 것을 의미했다. 그분의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하신다는 의미는 각 기독교인에게 생사를 걸 만큼 중요한 진리였다(브라운, 2001). 정통은 일반적으로 우선순위를 역사에 두지만, 이단은 지식적 이해에 둔다. 그래서 정통은 신학자들 가운데 보다 신학적이지 못하고 보다 역사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지만, 이단은 보다 신학적이고, 보다 철학적이고, 보다 추상적이다. 골로새서와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와 가현설주의(decetism)에 대한 항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교주의와 율법주의와 함께 영지주의는 초대교회의 위협적 이단으로서, 믿음과 관련하여 지식을 과대평가하였다.

  

20세기 전반까지 이레니우스(Irenaeus), 터틀리안(Tertullian), 히폴리토스(Hippolytos), 에페타니우스(Epithanius)와 같은 이단전문가들(heresiologists)은 영지주의자(Gnostics)에 대한 일차적 정보원이었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이 성경의 의미를 조작하고 왜곡하여 기독교를 오도하는 것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특히 창세기와 요한복음, 그리고 바울서신을 자기들 목적을 위해 왜곡하였다. 이레니우스(Irenaeus)와 같은 교부는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종교적 혼합을 교회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성경해석을 왕의 아름다운 그림을 분해하여 여우의 그림으로 짜 맞추는 것에 비유하였다.우리는 영지주의라 부르는 사상이 고대세계를 휩쓸었던 극단적, 철학적, 영적 경향의 한쪽 측면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브라운, 2001). 영지주의가 일어났던 때는 사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던 상황이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는 ‘영지주의 이단’을 형성하여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

  

초대 교회 당시 교회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친 대표적인 이단들은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그리고 몬타누스주의이다. 여기에 대하여 교회는 신앙의 준칙을 확립하고, 감독의 사도권을 교회 내에 정착시키고, 정경을 확정함으로 응전하였다. 초대교회는 이단의 공격에 대하여 정경화, 신조화, 직분의 확립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다. 이단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을 더하거나, 그것에서 본질적인 교리를 빼는 것을 의미한다(계22:18-9). 영지주의와 몬타누스주의(신령한 예언)는 전자에 해당하고, 마르시온주의자들(구약적 요소를 제거)은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Clement, 150-215)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는 인물이다. 시몬 마구스는 사도행전 8장 9~13절에서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과 동일인물이며, 그는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부렸고, 많은 인기를 얻자 자신이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들었다. 시몬은 자신이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와 정통 기독교는 거의 동시대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이성호, 2012).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초기 기독교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단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에 있는 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성경 외의 문헌에서도 니골라당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165년 순교)이 Trailians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당을 멀리하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사랑하지만 중상적인 혀를 놀립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변증가 이레니우스(Irenaeus, 125–202)가 저술한 책「Adversus Haereses」에도 다음과 같이 영지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니골라당은 사도들에 의해 집사직을 처음으로 받은 자 니콜라스를 추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절제적인 방종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영지주의라 부르는 사상은 고대세계를 휩쓸었던 극단적, 철학적, 영적 경향의 한쪽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영적 형태로서 20세기의 실존주의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브라운, 2001). Mary Baker Eddy(1821-1910)의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는 현대판 영지주의이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the historian, 5 BC.)가 남긴 기록에서도 초대교회가 영지주의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도 요한이 성경에 남긴 다음의 말씀이 그 당시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 사상을 물리치기 위해 했던 말이라고 기술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1. 기독교 영지주의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 지방에서 영지주의 문서가 대량 발견됨으로써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처음에는 영지주의가 초기 기독교 내에서 발생한 하나의 기독교 이단사상이었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 간행된 활발한 연구결과에 의해 영지주의는 기독교 밖에서 시작되어 고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는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다.교회사에서 영지주의가 문제된 것은 2세기 이후였다. 영지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영지주의의 뿌리는 무엇인가?
 

⑴동양 종교 유래설이다. 조로아스터교, 신비종교, 점성술, 마술 등 동양종교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⑵헬라사상 유래설이다. 기독교 신앙이 신플라톤 철학의 흙탕물로 오염되었다고 보는 견해다. 동방종교인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Edward Conze). ⑶유대교 유래설이다. 유대교의 금욕적이고 묵시적인 종파 에세네파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⑷기독교 내부 유래설이다. 기독교 내부의 이단적 사상에서 유래했거나 1-2세기에 번창한 기독교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⑸고대종교 및 사상의 혼합설이다. 기독교 전파과정을 통해 일어난 일종의 혼합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 안에 침투해 복음을 변질시키려 했던 것으로 본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이원론, 동양의 신비종교, 헬라 철학, 유대교 사상 등 여러 요소가 기독교 교훈에 혼입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기독교 영지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에 침투하여 초기 기독교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이단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정이철).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졌던 사람이다. 

영지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신성이 공유되고 있다고 여기는 현대의 뉴에이지 운동의 원형이었다. 한국인들이 기독교에 개종할 때 무속신앙과 기독교 신앙을 혼합한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2. 영지주의의 일반적 특징

영지주의는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Gnosis에서 유래하였다. 일반적 지식이 아니라 신비적 합일을 통한 앎을 의미한다. 영지주의는 그 성격상 밀의적인 혼합종교이므로 그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너무나 다양하여 한 마디로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영지주의 자체는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공통된 일반적 특징을 몇 가지 간추려보자.

⑴영육이원론(dualism): 모든 영지주의는 이원론에 기초에 두고 있는데, 영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 영혼과 육체는 서로 존재론적으로 대립의 관계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영육 이원론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선악 이원론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존재론적 윤리적 이원론이 그대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에 적용된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이 고통을 당하고 죽는 까닭은 인간이 이 악한 물질세계에서 악한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육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인간 육신을 적대시하고 천시하는 영지주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극단적인 금욕주의로서 일체의 육식과 결혼을 금한다. 둘째, 이와는 정반대로 육신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적 방탕주의(반율법주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신앙적 고행이나 금욕은 구원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허호익, 2016). 영지주의에 의하면, 구원은 영적 각성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육신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영적 본향으로 귀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죽음과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영육간에 구원을 얻는다는 기독교의 구원론을 조잡한 것으로 배척한다. 영적 세계로의 귀환이라는 신화론적 구원론에 집착한다.


⑵육체의 감옥에 유폐된 영혼. 영지주의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천상의 영적 존재였다. 천상의 영적 존재였던 인간은 자신 안에 있던 ‘신적 불꽃’을 상실하고 지상의 물질세계로 추방되어 고통과 죽음의 운명을 지닌 육신의 감옥에 유폐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육신을 영혼의 감옥이라고 보았다. 사람은 자신의 추방과 유폐의 과정조차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가르친다. ⑶구원은 영적 깨달음에서 온다. 구원은 영적 지식의 각성에 의해 이뤄진다. 영적인 인간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이 자신이 영적 존재라는 각성에 이르게 되어야 구원을 얻는다. 영적 각성은 영적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영지를 중시한다. 영지, 영적 비밀에 대한 지식을 중시한 것이 영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성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고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지식, 신적인 것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적인 지식을 말한다. 합일의 지식이며 구원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성취하는 자기인식(깨달음)의 행위이다.

영지주의 이원론은 구원론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물질(육체)에 갇혀 있다. 따라서 이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참다운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득도(깨달음)를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영지주의에 따르면(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영지주의다), 진정한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나 행함이 아니라 참지식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영지주의자들은 윤리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율법에서의 해방과 양심의 해방을 강조한다. 이 지식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 비밀스럽게 전수된다고 주장하였다.영지주의는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한 종교운동이다. 영지주의는 상징적인 의식, 신비적인 예식, 무술적인 형식의 가르침을 도입하여 사변적 우주론을 대중화했다. 우주론적 신화, 헬라와 동양의 이교적 철학사상, 기독교의 진리를 융합한 대중운동이었다.
 

⑷영지주의는 분파가 다양하다. 기독교인, 유대교인, 이교도들이 각각 영지주의의 다양한 그룹과 분파를 형성하고 있었다. 2세기에 들어와서는 영지주의와 기독교 신앙이 혼합되어 기독교적 영지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기독교 영지주의자가 바로 마르시온(Marcion)이었다. 그 가르침의 단순성과 기독교와의 유사성 때문에 많은 추종자를 얻게 되었다. 154년에 로마를 방문했던 주교 폴리갑은 마르키온을 만나 토론한 다음, “나는 네가 확실히 사탄의 맏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단죄하였다. 이때 반영지주의 신학자로 활약한 것이 바로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이었다. ⑸반(反)권위적, 반(反)성직계급적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권위주의와 성직계급제도를 거부했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원은 ‘신적 불꽃’을 지니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에게 국한된다는 점에서 선민적 운명론이며, 은밀한 비밀이라는 점에서 밀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불만계층에도 많은 매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3. 영지주의의 교리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신과 인간과 구원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의 다양한 견해를 단순화하거나 일반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공통적 특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⑴이원론: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철저히 구분하는 이원론적인 사고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물질의 영역은 물리적 세계의 영역이다. 불완전하며, 일시적이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정신의 영역은 ‘이데아’의 영역, 영구성, 완전성, 사실성의 영역이다. 정신의 영역이 물질의 영역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정신은 진흙으로 된 육체 안에 갇혀 있으며 거기서 해방되기를 갈구하고 있다. 종교적 이원론에는 절대적 이원론과 완화된 이원론이 있다. 전자는 두 가지 원리가 영원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으로 본다. 후자는 선의 원리가 종국에는 악의 원리를 멸할 것이라 주장한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와 헬라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에 기인한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존재의 영역을 구분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다. 정신적이며 영원한 관념의 세계와 일시적이며 물질적인 감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는 참으로 존재하는 실재이며, 후자는 존재의 상실을 의미하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영지주의, 특히 금욕주의 영지파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물질과 영,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을 이원화시키는 것이 영지주의의 일반적 특징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따라 인간을 영적인 인간과 혼적인 인간으로 분리하기도 한다.
 

⑵하나님: 다신론적 신관을 견지했다. 그들은 미지의 하나님(unknown God)과 데미우르고스를 구분했다. 마르키온이 창조주와 구속주, 또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율법과 복음의 하나님을 구별하고, 후자를 영지주의 하나님으로 간주한 반면, 전자를 유대인의 하나님으로 취급했다. 영지주의는 일반적으로 두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이원론적 신관을 견지했다. 이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산물이었다. 영지주의를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참 하나님은 창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신화적 사고와 헬라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플라톤은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변형한 것”이라고 했다. 피조된 세계는 악하다고 보았다. 영지주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무감각한 비인격의 하나님이다(근광현, 2003). 영지주의 세계관에서는 ‘모나드’라고 하는 우주의 궁극적 ‘신성’이 존재하며, 이것으로부터 하위의 신들이 ‘발출’되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신성’으로부터 방출되어 나온 하위의 신적인 존재들을 ‘아이온’이라고 하며, 기독교의 하나님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여긴다.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의 초월신관을 가리켜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지성, 그리고 전능성을 훼손하고 있는 잘못된 신관이라고 비판했다. 사도 요한이 성경에 남긴 다음의 말씀은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을 물리치기 위해 했던 말로 이해되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⑶인간: 영지주의는 인간이해에 있어서도 교회의 전통적인 교훈이나 성서해석과 입장을 전적으로 달리한다. 특히 인간의 기원과 타락문제에 있어 이해를 달리했다. ①하나님의 인간창조를 부정한다. 창세기의 인간창조 이야기를 신화나 알레고리로 이해하고 그들 자체의 창조신화를 제시했다. 천상의 세계에 거주하던 영적 존재가 어떤 치명적 사건으로 인해 세계로 떨어져 육신을 입게 된 것에서 인간이 기원했다고 본다. ②인간구성에 대한 3분설적인 이해다. 영지주의는 인간을 육, 혼, 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육과 혼은 물질세계에 속하는 반면, 영은 신적 본질에 속한다. 인간에게는 참 하나님에게 속하는 부분, 즉 신적 불꽃이 있다. 그것이 육과 혼과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는 영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세 부분으로 보는 3분설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3분설은 2분설과 더불어 정통교회도 받아들이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3분설의 자의적인 적용이다. 아담과 하와는 실제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기질과 영적 기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아담은 인간의 마음과 정서 영역인 혼을 대변하고, 하와는 인간의 신적 기원을 알고 있는 영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3분설을 인간계층의 분류에도 적용했다. 이교도를 육적 인간에, 유대교와 기독교도를 혼적 인간에, 그리고 참된 기독교인, 즉 영지주의자는 영적 인간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복음을 통해 계시하셨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구원은 그 내용에 있어서 전인적인 구원이 아니라 영혼만의 구원이다. 성경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이 엄격하다. 신과의 합일은 영적인 삶의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하나가 되어 God-man이 되면 서로를 구분하거나 차이점을 밝힐 수 없게 된다(Watchman Nee)는 것은 성경적인 사상이 아니다. 워치만니에 따르면, 인간은 세 부분, 즉 속사람(영), 겉 사람(혼) 그리고 제일 바깥의 사람(육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 사람들은 겉 사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정서도 지적 사고도 하나님이 소유한 성품과 동일하지 않다. 오직 영만이 하나님과 관계한다. 영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자아 또는 혼은 깨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혼합되어야 한다. 이는 성경적 주장이 아니다. 워치만니(Watchman Nee)의 사상적 제자 권신찬은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로써 영이신 하나님과 접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③인간영혼의 선재설이다. 인간의 영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기 전부터 천상세계에서 영적 존재로 선재했다고 주장한다. ④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화적 해석을 한다.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지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해준다고 본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유혹하여 그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각성하게 했으며 하와와 아담이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얻은 것이 영지라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하와를 아담보다 우월한 존재로 간주한다. 영지를 얻은 최초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지주의는 인간의 기원이나 본성과 타락에 관한 성경의 증언을 부정했으며, 역사적 사실을 신화로 취급하여 교회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인간관을 제시하였다.

 

현대의 영지주의: 대부분 영지주의자는 이원론자들이다. 이들은 물질과 육체는 본래 악한 것으로 보았으므로 성육신을 부정했고 영혼만은 순결하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삼분설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육신한 예수와 그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이니”(요이 1:7)라고 말하며 영지주의자들의 활동을 경계하고 있다.“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4:1-3).

 

현대판 영지주의 신천지. 오늘날에도 영지주의 이단이 있다. 자기들만 갖고 있는 영적 비밀을 깨달아야 구원받는다고 유혹하는 신천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교주 이만희가 자칭 보혜사이기 때문에 성경의 비밀스러운 영적 지식을 알려주고 풀어줄 수 있다고 한다. 신천지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믿을 수 있고, 믿은 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지신행). 성경의 비유와 계시록의 감추어진 비밀스러운 지식을 아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서 성령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단 교주들은 자신을 보혜사, 동방의 감람나무, 이슬성신, 약속된 목자, 사도 요한격 목자, 즉 이긴 자, 만왕의 왕, 만유에 대주재, 총회장 등으로 신격화한다. 

 

영지주의 이단 구원파. 정통 교회는 모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뢰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박옥수는 『죄사함, 거듭납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포교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2』p.50 기쁜소식사)라고 강조한다. 성경은 분명히 “회개하여…죄 사함을 받으라”(행2:38)고 말씀하고 있다. 박옥수는 의지적 회개가 없이 자신의 죄가 사해진 것을 “의지와 관계없이 수동적으로”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영지주의적 이단사상으로 많은 이들을 미혹하고 있다. 정통 교회는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은 후에도 성품은 여전히 사함 받은 죄인이라고 가르치나, (우리는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 박옥수는 신분과 성품이 한꺼번에 의인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는 회개로 시작하여 회개로 끝나는 종교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무지한 박옥수는 죄 사함을 깨달음으로만 의인이 된다는 교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은 것이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신분상 의인이지만, 성품상으로는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 지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딤전1:15)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으면 구원받는다고 미혹하는 박옥수 집단도 대표적인 영지주의 이단이다. 구원파는 매우 성경적인 듯 보이지만 신학적 오류에 빠진 집단이다. 신구원파라고도 불리는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는 죄사함의 복음을 깨닫고 거듭납과 죄사함을 받으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된다고 주장하여 사람들에게 거짓된 위안을 주고 있다(최태영).

 

신인합일: 기독교 영지주의는 신자들이 ‘영적인 지식’(깨달음)과 ‘영적인 안내자’(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 안에 잠재된 신성이 되살아나서 우주의 궁극적 신성과 일치됨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영지주의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신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착각하게 된다. 만일 인간이 정말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른다면,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기도는 땅에 있는 피조물인 인간이 초월자이시며 절대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기도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는 신자들이 “깨달음”과 영적인 세계에서 내려오는 순간적인 ‘영적인 섬광’(spark)을 통해 자기 안에 내재된 신성이 각성하여 자신도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으므로 굳이 다른 신에게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원파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더 이상 기도가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영지주의 사상에 비롯된 것이다(정이철, 영지주의와 구원파 교리, 2014).

 

⑷그리스도: 이와 같은 잘못된 타락에 대한 이해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졌다.

①삼위일체 하나님의 부정이다. 영지주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믿지 않고 천상적인 존재인 에온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리스도는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가르쳤다. ②성육신 교리의 부정이다.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육체는 하나님의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물질과 육체는 참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다. 

 

가현설(docetism): 외견상으로 사람으로 보인 것뿐이지, 실제로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에 대해 언급한 것(요일4:2-3)은 가현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가현설은 물질은 악하며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헬라사상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육체를 가졌을 경우, 그의 신성에 손상이 갈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단으로 정죄 받게 되었다. 1세기 말 케린투스(Cerintus)는 그리스도와 예수를 구별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은 단순히 인간성과 일시적 병존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이었던 반면, 그리스도는 세례받을 때 그에게 내려온 신적 존재였다.”

 

③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환상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한 의미의 육체일 수 없고 육체의 모습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인간 예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실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가현설적 기독론(docetism)을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몸은 진정한 육체일 수 없고 단지 육체의 모습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었다. ④부활한 그리스도의 육체적 실재의 부정이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육체적 부활과 같은 정통교회의 일반적 신앙을 소박한 오해로 간주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⑸구원: 영지주의는 구원이 지식(깨달음)에 의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①구원은 영의 해방과 귀환이다. 영지주의에 따르면, 구원은 물질적인 것과 연합됨으로 육체 속에 갇혀 이 세상에서 데미우르고스와 그 세력들의 지배 아래 있는 영이 해방되어 본래의 거처, 천상계로 귀환하는 것이다. ②구원을 지식을 통해 성취된다. 영지주의는 구원이 예수의 희생적 죽음이나 예수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영지, 즉 세계와 에온들과 참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함으로 이뤄진다고 보았다. 이들은 믿음과 관련하여 지식을 과대평가한다. 엘리트를 위해 보다 높은 지식 즉, 비밀적인 지식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브라운, 2001). 구원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박옥수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구원이라고 가르친다. 박옥수는 정통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회개와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의지적인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전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구원파를 영지주의적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류광수 다락방도 죄인임을 인정하고 이를 통회하는 회개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고 다만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원죄와 자범죄가 다 용서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단전문가들은 다락방이 지방교회의 삼분설과 박옥수의 깨달음, 그리고 김기동의 귀신론이 혼합된 영지주의 이단이라고 분별하고 있다.

 

③인간계층에 따라 구원의 가능성이 좌우된다. 최하층인 육적 인간, 즉 이교도들은 어느 경우에도 구원을 얻을 수 없는 멸망 받을 인간이다. 중간층 혼적 인간은 신앙을 가졌으나 영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구원받을 수도 있고 멸망할 수도 있는 인간이다. 최고층 영적 인간은 참된 기독교인으로 영지로 구원을 얻은 인간이다. 영적 인간은 구원에 이르기 위해 예수의 교훈을 파악해 깨닫기만 하면 된다.

 

도덕, 윤리, 죄를 초월하는 영지주의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의 구원파가 인간의 구원을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이나, 구원받은 이후 육신으로 짓는 죄가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통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보지만, 영지주의는 인간이 영, 정신(혼), 육체,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구원파도 인간을 ‘영적인 인간’(Pneumatics), ‘정신적인 인간’(Psychics), ‘육체적인 인간’(Hylics)으로 구분하는데, 영지주의 사상과 매우 유사한 부분이다. 영지주의는 자신들이 속하여 있는 영적인 인간 부류가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적인 인간’으로 분류하면서 이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육체적인 인간’부류는 영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구원파가 신자들이 ‘구원에 관한 깨달음’을 통해 거듭난 이후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영혼과는 무관하고 더 이상 죄가 아니라는 구원파의 가르치는 것도 영지주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영지주의 사상은 악한 물질세계 속에 속박되어 있는 자신의 신성에 대해 무지, 무감각한 상태에서 살던 사람에게 ‘영적인 깨달음’, 또는 신성을 일깨우는 ‘순간적인 섬광’이 임하면 궁극적 영적 실체와 일치되어 진다고 한다.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영지주의 이단은 ‘영적 안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신인합일’의 길로 들어선다고 가르친다. 인간이 신인합일의 경지에 들어서면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완전하게 초월하고, 악한 물질세계로부터 더 이상 영향받지 않는다는 이론적인 주장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는 영적인 지식을 얻어 신성의 세계를 향하는 해탈한 인간에게는 더 이상 인간 세계의 도덕과 윤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영적 지식을 통해 물질세계의 운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영적 지식을 통하여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이미 물질세계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육신이 무슨 일을 할지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론도 성립된다. 그래서 영지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는 각종의 쾌락과 방종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극도의 금욕생활이 나타나기도 했다. 구원받은 후로는 완전해졌고, 육체로 범하는 죄가 더 이상 영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구원파의 가르침은 영지주의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4. 반영지주의 교부들


영지주의의 주요교리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중대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들의 창조론, 구원론, 신론, 기독론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부정하거나 위협했다. 물질세계를 영원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저급한 존재에 의해 이루어진 잘못된 결과로 간주하는 창조론은 물질세계를 긍정하는 유대기독교 신앙을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영지주의는 믿음이 아닌 지식에 의해 구원을 얻으며, 육체적인 몸의 구원과 부활을 부정했다. 최초로 영지주의를 논박한 사람은 저스틴(Justin)이었다. 마르키온에 대해 귀신들에게 영향을 받은 자들로 간주했으며, 시몬 마구누스(행8장)의 교리를 사악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경멸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반(反)이단 문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이레니우스의 <이단논박>이다. 그는 전통과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여 이단들을 논박했다.

 

터톨리안(Tertullian, 150-220)은 서구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라틴교부였다.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영지파들을 신랄하게 책망하고 비판하였다. 클레멘트(Clement, 150-216)는 “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거나 기독교인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 ‘참된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논박하였다. 오리겐(Origen, 186-254)은 단순한 신앙에 반대하고 올바른 성경해석을 통한 지식을 높이 평가했다.

 

현교(顯敎)와 밀교(密敎)


종교는 크게 현교와 밀교로 구분된다. 현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모두 공개되어 있고 의사결정이 민주적이고 예산과 결산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반면에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의 일부는 외부자에게 공개되고 그 일부는 내부자들에게만 공개되는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영지주의는 밀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단 사이비는 대부분 밀교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집회 참석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고 교리와 의식과 제도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감춰진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내용을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가르친다. 신천지 교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심지어 전도방법과 같은 내부유인물이나 분서의 유출도 철저히 금하고 있다. 밀교는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재정관리가 불투명 하는 등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이러한 표리부동의 ‘비밀단체체제’는 밀교적 성격을 띠는 이단사이비집단의 전형적 특징이라 하겠다. 신천지는 현대판 영지주의 집단으로서 교리와 제도와 의식의 일부가 외부인들에게는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는 밀교의 성격이 강하다.

 

신천지는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구원관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신천지 12지파에 속해야 신천지 예수교장막성전에 등록되며 144,000명에 녹명되고 이들만이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된다고 믿고 시인하게 한다. 6개월간의 성경공부를 마칠 즈음에 지금까지 배운 계시의 실상이 바로 마지막 때의 메시아요 보혜사인 이만희를 통해서 밝힌 구원의 진리임을 이야기한다. 신천지 집회는 신천지 교인에게 발급되는 ID카드를 소지한 자에게만 허용된다. 보편적인 교회는 교회의 일치와 가정의 화합을 위해서 바른 교훈을 전하는데, 현대판 영지주의 밀교인 신천지는 신앙의 이름으로 가정의 해체와 교회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영지주의


교회사적으로 거의 모든 이단은 자신들만 바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공교회를 혼란시켰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랬고 몬타니즘이 그랬으며 근래 한국교회의 문선명, 박태선, 이만희, 박옥수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이장림의 10월 28일 재림론도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이나 “구원의 비밀”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것은 류광수 다락방 전도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류광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무슨 “비밀”무슨 “비밀”이니 하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복음의 비밀”, “구원의 비밀”, “전도의 비밀”,  “일꾼 키우는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등과 같은 말이다. 류광수는 자기 또는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지식 그노시스(gnosis)를 갖고 있다고 호도한 것이나, 문선명, 박태선, 이만희, 안상홍 등 사이비나 이단들이 천국행을 보장받은 집단인 것처럼 기성교회를 미혹했던 현상과 별다를 바가 없다.

 

한편 “현대 국학과 뇌과학의 창시자”로 자처하는 “대선사 일지 이승헌”은 1985년 단학선원을 설립하고 2002년 이를 단월드로 개명하였다. 이승헌의 단학은 신일합일의 천화사상과 종교혼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승헌은 “진정한 ‘나’는 우리 내면에 있는 순수한 영혼의 불꽃, 바로 ‘神性’이다”고 주장하고, “모든 인간의 참 의미와 삶의 참 목적은 이 신성을 깨닫는 데 있다”라고 강조하였다. 단학을 통해 인간의 완성이 이뤄지는데, 인간완성의 3단계는 육체의 완성, 정신의 완성, 천지인 조화의 완성인데, 이 마지막 단계가 천화라고 한다. 이승헌에 의하면, 단학수련을 통해 신성을 밝히 깨닫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단학수련을 통해서 우주의 신성과 여러분의 신성이 만나는 순간이 깨달음이요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승헌의 신선도는 신일합일을 통해 구원을 얻을 뿐 아니라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단월드는 영지주의가 한국에서 신흥종교의 옷을 입고 재현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결론


영지주의는 신비적 지식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려 한 종교운동이었다. 교회는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과정을 통해 신앙신조와 권위체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영지파의 비의(secret teaching)를 논박하는 과정에서 신약정경, 사도적인 전통, 사도적 권위가 정립되었다. 영지주의 도전으로 신학활동이 촉진되었다. 따라서 많은 반영지주의 교부들이 배출되어 올바른 신론, 기독론, 인간론이 확립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간인 동시에 진정한 하나님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영지주의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이단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혼합주의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우리에게 지적해주는 동시에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생존을 걸고 확립한 성서적 기독교 진리를 잘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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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Sep 08, 2014 PTSA 기고글



기독교의 기원과 영지주의



1. 들어가면서

기독교 이단으로 지목된 영지주의(Gnosticism)와 관련 문서들은 기독교의 기원을 푸는데 귀한 정보원으로 신약학계에서는 연구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파생하였는데, 그 지식은 단순한 지식이 아닌 구원에 관한 지식(salvific knowledge)을 뜻합니다. 최근 영지주의 문헌 가운데 하나인 <도마복음> 해설서를 김용옥 교수와 오강남 교수가 내놓으면서 한국 교계와 학계에서도 영지주의는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신학계의 때늦은 관심에 비해 서구 학계는 이미 60년 전부터 영지주의문헌에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연구는 1945년 발견된 영지주의 문헌의 보고인 나그함마디에서 다량의 영지주의문헌이 발견되면서부터입니다. 그 문헌의 발견과 동시에 역사적 예수 연구도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기원을 푸는 한 열쇠가 되는 영지주의를 간략히 소개하려 합니다.

2. 한 현대판 영지주의자와의 해후

영지주의는 2000년전에 사라진 것이 아닌 지금도 곳곳에 그 잔재들이 여러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0년 전 남가주 업랜드(Upland)에서 살 때, 아랫집 미국 사람의 집에서 목요일마다 모임을 가지길래 궁금하던 차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임의 리더인 그와 대화하던 중 그의 여러 이야기에 영지주의적 요소가 강해서 ‘그노시스(gnosis)’와 ‘노스티시즘(Gnosticism)’이란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모른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고전이 된 한스 조나스(Hans Jonas)의 <The Gnostic Religion>(영지주의 종교)이란 책을 주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 주었지요. 이 친구가 그 책을 일주일 동안 읽은 후, 저를 찾아와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신앙이 그 책이 소개해 주고 있는 영지주의와 분명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인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자신의 신앙의 뿌리를 찾은듯 흥분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가 제게 보여준 그들의 두꺼운 경전의 저자와 기원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책을 열어 보았을 때 성경에서 발견하는 여러 지명과 인명뿐만 아니라 복잡한 우주도와 가르침의 체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 종단의 본부는 시카고에 있다고 하면서 내년 중에 그들의 경전에 해당하는 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할 것이라는 귀뜸을 해 주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영지주의의 한 뿌리를 그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대판 영지주의자와의 예기치 못한 뜻밖의 해후였습니다.

3. 헤븐스 게이트(Heaven’s Gate)와 영지주의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이런 형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심지어 영화 <Matrix>(메트릭스)가 보여주는 세계관도 이런 영지주의적 요소와 함께 기독교와 불교적 세계관이 뒤섞인 혼합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1997년 3월 26일 남가주 샌디에고(San Diego)에서 집단 음독자살한 39구의 시신이 한 집에서 발견되어 세계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가담했던 컬트(cult)는 <Heaven’s Gate>라는 신흥종교로 영지주의에 그 뿌리가 잇닿아 있습니다. 고대의 영지주의는 소위 정통 기독교처럼 신앙의 대상으로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단지 불교의 붓다(Buddha)처럼 진리를 가리키는 이인 천상의 계시자(heavenly reveler) 정도로 여겼다면, 이들 Heaven’s Gate 신도들은 예수님 대신 UFO가 구원의 지식(salvific knowledge)을 끊임없이 지상으로 전해주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이 지구를 탈출하여 다른 세계로 가려고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이 택한 것이 자살이었지요.

이 세상으로부터의 엑소더스(exodus)를 위해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영지(gnosis)를 활용하여 영혼의 여행길을 떠난 것입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웃음 머금은 채 말이지요. 육체를 덧입고서 그 중력으로 떨어진 이곳 지구를 탈출하여 그들이 본래 있던 천상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패스워드(password)와 같은 영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영지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믿은 그들은 그런 깨달음이 없는 이 세상을 뒤로하고 극단적 자살을 통해 다음 세상으로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영지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관문을 통과하여 그들이 다다르고 싶은 신과의 합일을 위한 본래의 천상적 영역으로 이동하려고 하였지요. 이것을 우리는 ‘영혼의 여행'(the journey of soul)이라 합니다. 모든 영지주의 종교는 이 세상을 탈출하여 저 세상으로 가는 이러한 구원의 여정을 상정합니다.

4. 중세 이후 영지주의의 잔재들

이러한 영지주의적 궤적을 밟아 올라가면, 그곳에는 16세기의 은밀한 비전 전수 모임인 장미 십자단(Rose Croix) 형제들과 그들로부터 매우 심대한 영향을 받은 프리메이슨단(Freemason)이 있습니다. 프리메이슨단은 이 세계를 영혼이 윤회의 가혹한 순환과정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지옥과 같은 곳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대의 온갖 음모이론이 제기될 때마다 그러한 음모를 일으키는 배후 세력으로 언급되는 이러한 프리메이슨단도 영지주의적 경향이 강하지요. 시인이며 견자였던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lake), 괴테(Goethe)의 파우스트(특히 2부에 영지주의적인 신화학과 형이상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적 경향의 신화와 윤회의 이론이 스며든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종교사상, 19세기 후반의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보들레르(Baudelaire. 자연의 모든 형태, 즉 외적인 자연과 인간의 자연적 천성과 모세의 율법에 반항하며, 버림받은 사람들, 즉 카인의 종족을 찬양하는 그의 시 세계에 담긴 유일한 희망은 세계 밖으로의 탈출입니다.), 그리고 단테(Dante)의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수집된 몇몇 영지주의적 테마를 이용한) 신곡, 독일 신비주의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에크하르트(Eckhart), 생물학과 인류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영지주의의 관점과 결합한 테이야르 드 샤르뎅(Chardin),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 등등이 이런 영지주의적 요소가 반영된 사상을 표출했지요. 세계의 부조리, 세계의 잔인함, 지옥 같은 지상의 거소로부터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 동류 인간들 사이에서 ‘이방인’이라는 소외된 느낌, 끈덕진 악의 편재 등은 영지주의적 주제들의 목록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카프카(Kafka)와 포크너(Faulkner), 그리고 카뮈(Camus)의 작품도 영지주의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5. 고대의 영지주의의 맥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으로서 유대종교의 우수성을 그레꼬-로마 세계에 선양하려한 필로(Philo),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어거스틴(Augustine)이 한 때 심취했던 페르시아에서 발원한 마니교(Manicheism), 나조라파라고도 불리우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유대, 그리고 마니교의 요소들이 한데 섞여 있는 메소포타미아 하부 지방의 만다교(Mandaism),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으로서 창조의 영원성과 무한히 계속되는 많은 수의 세계가 있음을, 그리고 영혼이 전생에 생존했었고, 그들이 육체 속에 추락했음을 설파한 교부인 오리겐(Origen), 바울의 열렬한 팬으로서 정통 교회로 하여금 신약 정경화(canonization) 작업에 박차를 가하도록 자극했던 마르시온(Marcion)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엠페도클레스(Empedokles)나 피타고라스(Pythagoras) 학파는 기독교적 영지주의의 선구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조물주는 열등하지만 악하지 않은 신으로 간주하면서 형이상학적, 종교적인 이원론을 옹호하며,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는 혼란과 악에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지상의 삶을 사는 동안 영혼은 “수없이 많은 악 밑에 깔려 있다.”고 주장한 플라톤(Plato)은 영지주의의 선조 중의 한 명이며, 그의 후계자로 영지주의자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플로티누스(Plotinus)도 영지주의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영지주의의 가르침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끼지 인류 사상사 속에서 둥지를 틀고서 모양을 달리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6. 영지주의와 기독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 문헌은 거의가 2세기 중반 이후의 것이지만, 학자에 따라서는 그 기원을 바벨론 포로기까지 추산하기도 합니다. 월터 바우어(Walter Bauer)에 의하면 주후 2세기에는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Asia Minor)에 영지주의자들이 소위 정통 크리스천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영지주의는 동양종교, 그리스 철학, 그레코-로마의 신비종교와 기독교의 교리가 섞인 일종의 혼합주의적 경향을 띤 기독교 이단이었습니다. 또한 물질과 육체를 죄악시 하고 영을 높이 평가하는 그들의 극단적인 이원론적 사상 때문에 물질세계를 창조한 구약의 야훼 하나님을 가장 저급한 신인 데미우르지(demiurge)로 간주하였습니다. 물질과 육체를 악하게 생각한 나머지 두가지 상반되는 그룹이 내부적으로 생겼습니다. 육체를 구원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기에 그 육체를 철저히 억누르는 금욕적 형태의 그룹과 육체적 탐닉에 전혀 상관치 아니하는 쾌락주의적 경향의 그룹으로 분화됩니다. 극과 극은 통하듯 실은 이 둘의 뿌리는 하나였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당대의 많은 대중들을 매료시켰고 2세기 중반까지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되었지요. 적어도 정통 크리스천들의 박해와 그들의 지적 종교로의 지나친 경도로 인하여 대중적 기반을 급격히 상실하기 이전에는 그랬습니다. 8층적 우주관에서 나중에는 365층으로 확대된 복잡한 우주관과 교리체계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성직자 계급 제도(hierarchy) 위에 구축된 가톨릭 입장에서는, 영지를 가짐으로써 예수와 제자들 사이의 간격이 없듯이, 다소 평등한 체제를 유지한 영지주의 그룹이 위협적인 이단으로 보여 졌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지주의 그룹이 내부에 어떤 영적 서열도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워낙 은밀한 그들의 행보로 대부분 그들의 가르침과 의식을 비판했던 교부들의 작품 속에서만 그들의 가르침의 일부를 간헐적으로 만나다가 1948년 (고대에는 케노보스키온으로 불렸던) 나그함마디(Nag Hammadi)라는 이집트 북부(우리가 보았을 때는 나일강 남부) 작은 촌락에서 주후 400년경에 정통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영지주의자들이 묻은 것으로 보이는 밀봉된 단지에서 가죽 장정 파피루스 코덱스 13권이 1945년 12월에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학계에서는 사해사본(Dead Sea Scrolls)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으로 여기는 바, 초기 기독교의 기원을 밝히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나그함마디 영지주의 문헌들은 유네스코(UNESCO)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지요.

영지주의는 소종파로 각 처에 흩어져 내밀하게 활동했는데, 시조 내지는 스승의 이름을 따서 불리우는 그들 그룹의 이름을 열거하자면, 영지주의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사도행전에 성령을 돈으로 사려했던 마술사) 시몬의 종파인 시모니안, 발렌티니안, 바실리디안, (도마복음, 도마행전, 도마서를 남긴) 토마스, 유대적 영지주의 그룹인 세티안 등이 있습니다.

7. <도마복음>(Gospel of Thomas)과 역사적 예수 연구

특히 <도마복음>은 말씀복음서 Q 복원에 박차를 가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에 불을 지폈지요. Q는 “자료” 혹은 “원천”을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신약학계에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자료로 사용된 예수님의 말씀어록으로 150년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그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해 왔던 자료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야기 형태가 아닌 어록 형식의 복음서인 도마복음이 발견되면서부터 Q 연구는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복음서는 이야기 형식의 복음서이기에 어록 중심의 비내러티브적(non-narrative) Q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고 회의적 반응을 보여온 학계에 이야기 형식이 아닌 어록중심의 도마복음이 발견되면서 Q연구와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엔진을 달게 되었습니다. 물론 Q 문서는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자료는 아닙니다. 지금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한 동안 그 두 복음서와 함께 역사적 예수 연구 관련 도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 어록(Jesus’ sayings)이 가진 비내러티브적 경향 때문에, 한 흐름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narrative) 형태의 정통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로 나아가고, 또 다른 흐름은 영지주의적(gnostic) 경향을 지닌 <도마복음>과 같은 소위 이단적 형태의 복음서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도마복음>을 읽다보면 불교의 붓다의 모습을 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영지를 얻는 순간(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해탈하는 순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의 간격은 사라지고, 동일한 영지를 지닌 동일한 부류가 되고 맙니다. 자신이 붓다가 되려면 자신 속에 있는 붓다를 죽이라고 설파하는 그런 불교적 색채의 기독교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계시적(revelatory) 종교가 아닌 계몽적(enlightening) 형태의 기독교가 <도마복음>에 꿈틀대고 있는 것이지요.

8. 신약성서와 영지주의

지금 있는 거의 대부분의 영지주의 작품들이 주후 2세기 이후의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발아상태의 영지주의가 신약성서 시대에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만개한 2세기의 영지주의 이전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기독교의 강력한 적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프로토노스틱주의(proto-Gnosticism)를 상정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영지주의적 요소와 한 판 힘겨루기 했던 그런 흔적들을 찾아본다면, 고린도전서의 바울의 적대자들의 주장 속에서, 금욕적 형태의 골로새서의 유대적 계열의 영지주의자들(2장),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도입하면서도 그들의 사상을 강하게 반격한 요한복음(이 때문에 요한복음은 오래 동안 정경의 자리에 들어가는데 힘겨운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할 것을 주장한 금욕적 형태의 영지주의를 반영한 디모데전서 4장 1-3절,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한 디모데후서 2장 16-18절(이러한 주장은 나그함마디 라이브러리의 The Treatise of the Resurrection, The Exegesis on the Soul, The Gospel of Philip에서 주창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언급한 요한 1서(2:22; 4:1-3)와 요한 2서(7절), 가인의 길을 행하는 자들을 질책한 유다서(11절), 계시록의 니골라당(2:15),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따르는 무리들(2:20) 등등이 영지주의적 사상과 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9. 나가면서

어떤 종교든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그 시원을 열었다고 한다면 영지주의 또한 악의 기원과 인간이 고통당하고 죽어야 하는 그 이유를 해명하는데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악의 기원이 되는 물질과 육체를 만든 구약의 야훼를 가장 저급한 신(Demiurge)으로 여기고, 그러한 물질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교리를 구축할 때, 그들이 특히 창세기를 집요하게 나름대로 석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할 것입니다.

소위 정통 기독교가 교리를 형성하는 과정에 영지주의가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여기서 두 가지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영지주의와의 대결 속에서 정통 기독교는 육체의 부활로 선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육체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다가 육체를 죄악시 하는 그들과의 논쟁 속에서 육체의 부활을 주장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무에서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도 영지주의자들과의 대결 속에서 나온 교리로 보고 있습니다. 실은 창세기 1장을 읽어 보면 ‘무(nothing)’가 아닌 ‘혼돈(chaos)’으로부터의 질서(cosmos)로의 창조입니다. ‘혼돈’은 nothing이 아닌 something입니다. 이것도 영지주의의 부정적인 물질관에 대한 하나의 반작용일 듯합니다.

최근 미국 서점에 가면 영지주의 관련 도서들이 북케이스(bookcase)를 부쩍 많이 차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아마도 댄 브리운 쓴 <다빈치 코드>가 준 영향도 있겠지요. 그리고 영지주의 관련 도서의 판매부수가 의외로 많다는 것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영지주의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고, 독자층이 넓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단이었지만 어쩌면 기독교의 기원을 살펴보는데, 그리고 기독교에 이래저래 영향을 준 중요한 사상의 한 뿌리로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어떤 종교와 사상도 진공(vacuum)상태에서 기원하여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1세기 가장 격렬한 상황에서 발원하여 로마제국의 박해을 견디어 내며, 강력한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과 투쟁하면서 그 사상과 체계와 조직을 갖추었습니다. 어쩌면 영지주의와의 격렬한 사상적 투쟁이 있었기에 그 이후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부상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원과 기독교의 원래적 에토스(ethos)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현대 교회가 자칫 기독교 복음의 원류에서 이탈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세계 학계의 방대한 영지주의 연구에 비해 연구 활동이 빈약한 국내에 영지주의 관련 문헌들이 소개되고 연구되어 기독교의 기원을 푸는데 세계 학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21/09/17

[도올김용옥] 동경대전 52 참혹한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꿀 '다시개벽' 아닐런가? - 개같은 왜적노...


폭풍전야
폭풍전야
21 minutes ago
선생님 다 좋은데요 천내인을 부인하면 인내천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서 이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것이 천내인이 될 것이구요 그럼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면 인내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진정한 수운 선생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인내천은 일반화 할 수가 없으며 내면적으로 우리의 고유의 사상과 마음가짐이 있는 사람만 인내천이 성립이 되는 것이지 토착왜구에게까지 전이시키면 자칫 그러한 토착왜구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고 그러면 무고한 인내천한 사람들이 피해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하늘님이 고통을 당하고 있나요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인내천과 관련해서 재정립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성완용
성완용
1 day ago
선천과후천은 분명 있음  ,, 봄과여름은 후천, 가을과겨울은 후천,, 곧음과양이 바뀌는것을 말함,,,  그러니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을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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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용
성완용
1 day ago
리와기는  신이 존재해야 이루어짐,,  과연 철학자는 왜 신을 모르는가,,,  삼신의 작용과 삼수의변화도    그러면서  모든철학은 우주가  신이것을 모르니,,,  곧 천지가  신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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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동래(紫氣東來) - "황제는 동쪽에서 왔다"
자기동래(紫氣東來) - "황제는 동쪽에서 왔다"
1 day ago
우리민족의 공통 정신•사상•정서에 대한 자각은,
우리 개개인의 정체성(IDENTITY를)을 가지는 것입니다.]
ㅡㅡㅡ​​
<우리민족의 공통 정신>
자연(하늘•땅)과 인간(사람들 세상)이 조화를 이루어 살아야 된다 = 삼신​

<우리민족의 공통 사상> 
"홍익인간(弘益人間​)하나니, 
제세이화(在世理化​)하게 만들어,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이룩한다"

<우리 민족의 공통 정서>
​1️⃣조상님 제사와 살아계신 부모님께만 엎드려 절을 한다.(제,祭)
​2️⃣스승님과 부모님 앞에서만 존경의 의미로 무릎을 꿇는다.(례,禮)
​3️⃣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면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어진마음, 정,情)​

2


최선식
최선식
1 day ago (edited)
수행이란  내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아는것 입니다.
그 과정에서창조주를 알게되고
12제국이란 그 깨닫는 단계가
12단계란 뜻이고
그것을 표시하는 석가탑이 열두칸이고 교회의 첨탑이 열두칸이며
우리의 꼬부랑할머니가 얼두고개를 넘어가고
자축인묘가  십이지신이  열둘 입니다.
마지막에 눈동자를 주시는데
이를 화룡점정 이라 합니다.
이런 글은 수행의 결과를 쓴 글이기에
수행을해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지식으로는 이해를 하지못합니다.
비유하면 처음 글을  알았는데
전문서적을 이해한다는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호흡으로 아랫배 단전에
기를 쌓는것 입니다.
모든분이 이루셔서 지혜에 막힘이
없으시길 기원합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도없다 하더라.

2


이삼봉
이삼봉
7 hours ago
진리는 간단명료하다. 
진리를 길게 부연 설명하면 그것은 모두 진리가 아니라고 보면 된다. 

철학이나 종교의 근본적인 목적은 올바른 가치를 밝혀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의 작동 원리를 모르면서 무엇을 기준으로 올바름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주의 이치를 모르면서 떠드는 철학자나 종교인들의 말은 모두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며 그 불완전한 존재의 인식기관으로 체득한 것도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명상이나 참선과 같은 체득 방식으로는 절대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종교인이나 수행자가 참선이나 명상을 통해서 얻었다고 하는 깨달음은 모두 환각이나 착각이다. 
왜 수행자들이 수천 년 동안 참선이나 명상을 했지만 명확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까? 
우주(대우주)와 생명(소우주)의 이치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데 아직도 과학 수준이 그 정도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귀로 소리를 듣지만 소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진동을 소리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눈으로 색깔을 보지만 색깔은 빛이 만든 현상에 불과하고 빛이 없는 밤이 되면 사라진다. 
온도가 높은 물체를 만져보면 뜨겁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온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분자의 진동이 커지면 뜨겁게 느낄 뿐이다. 
모든 물체의 무게는 중력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며 무중력 공간에 가면 무게는 사라진다. 
이와 같이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것들을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선과 악은 인간이 만든 단어에 불과하며 우주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힘에 의해서 작동하므로 대부분 악이 선을 이긴다. 
51%가 모여서 힘으로 49%를 제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지난번 대통령 탄핵에서 선이 악을 이긴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를 몰아낸 것이다. 
약한 촛불이 많이 모여서 강자가 되었으므로 세력이 약해진 기득권을 몰아낸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세상이 되려면 선한 사람의 숫자가 51%를 넘어야 한다. 

과학과 종교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인 책(제목; 얼굴이 밝은 성직자는 가짜다)이 나왔다. 
검색해서 목차만 봐도 왜 혁명적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새로운 우주의 원리와 그 원리에 부합하는 올바름의 기준과 인간의 본질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성경 속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해서 성경의 내용을 180도 바꿔놓는다. 
종교인이나 수행자가 이 책을 보면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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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승연
남이승연
1 day ago
다시, 동학입니다.

2


옥동호
옥동호
1 day ago (edited)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이 아니라 로마 카톨릭 예수회의 조선침략입니다.
임진왜란 때 100만명의 조선인을 학살했지만 기독교 포교에 실패합니다.
이런 역사도 모르고 기독교를 믿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진해에 세스페데스 공원이 있더군요.
개탄할 일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처음에는 예수회를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조선과 만주를 침략해 예수회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예수회의 요구엔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회는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합니다.
이로써 오다 노부나가는 평화의 순교자가 됩니다.
뒤를 이은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암살배후에 예수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살기 위해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해 예수회 교회를 세워 줄테니 더 많은 조총을 팔아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고니시 유키나카를 선봉장으로 기독교 신자만으로 구성된 부대를 조선침략의 일진으로 보냅니다.
고니시 유키나카는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조선을 침략해 단숨에 서울을 함락하고 평양까지 진격합니다.
임진왜란 중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사망하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막부는 대대적인 기독교 탄압을 합니다.
그래서 현재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일본인구의 0.5%입니다.

2021/09/16

도올의 서양철학사 강의 - YouTube 기독교사상사

도올의 서양철학사 강의 - YouTube

기독교사상사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6 중세 카톨릭철학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7 초기 기독교의 형성 과정 - 영지주의 Gnosticism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8 사도 바울의 철학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2 토마스 아퀴나스, 스콜라철학의 정점 - 안셀무스의 신의 존재론적 증명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3 박승찬교수의 토마스 아퀴나스 1 신앙과 이성의 조화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4 박승찬교수의 토마스 아퀴나스 2 신의 존재증명 - 아벨라르두스 'Sic et Non'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5 박승찬교수의 토마스 아퀴나스 3 창조주의 절대성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6 박승찬교수의 토마스 아퀴나스 4 윤리기준의 법정, 양심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8 토마스 아퀴나스 총정리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1 바울이냐 예수냐 - 브레데 '메시아의 비밀'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2 바울과 예수의 창조적 결합 - 바르트와 불트만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3 기독교 이해의 단서 - 연속과 단절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9 도올의 로마서강해 - 바울의 혁명사상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8 몰트만1 희망의 신학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9 몰트만2 판넨베르그 - 역사의 신학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6 근대 신학의 계보 - 슐라이어마허, 불트만 바르트 틸리히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7 폴 틸리히 - 신은 '궁극적 관심' 이다 Ultimate Conc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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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1 변화와 불변 - 끊임없는 형이상학과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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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2 신들림과 피타고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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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3 폴란드의 바웬사가 바꾼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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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4 모성애는 순수한 생리인가 문명의 도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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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5 폴란드기행1 - 러시아와의 투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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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6 폴란드기행2 마카롱, 자키르 후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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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7 폴란드기행3 -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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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8 폴란드기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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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09 좋음의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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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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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1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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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2 로고스 Logos -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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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3 만물은 불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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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4 반대되는 것들은 결국 같은 것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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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5 철학개론 1교시 - 철학은 전체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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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6 미케네문명과 파르메니데스 - 아가멤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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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7 파르메니데스, 사고의 혁명 -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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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8 종교 철학 과학 그리고 피타고라스 - 윤회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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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9 파르메니데스 존재론의 붕괴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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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0 스파르타라는 현실과 신화 - 플루타크 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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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1 소크라테스 - 플라톤과 크세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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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2 플라톤 - 이상국가, 동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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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3 뚜장옌과 글로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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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4 플라톤의 듀얼리즘 - 윤회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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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5 - 21세기 고구려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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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6 플라톤의 이데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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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7 플라톤의 오류 - 지식은 지각이 아니다 Knowledge is not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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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8 러셀의 기술이론1 Theory of Descri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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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29 러셀의 기술이론2 Theory of Descrip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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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0 삼국지의 문무와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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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1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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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2 삼국지의 천하삼분지계와 일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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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3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형상과 질료 form &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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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4 아리스토텔레스의 적도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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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5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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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6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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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7 희랍의 역사 - 헬라스Hellas, 그리스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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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8 아테네 문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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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39 이세돌과 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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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0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 삼단논법 syllog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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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1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과 견유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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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2 헬레니즘과 알렉산더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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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3 에피쿠로스학파 - 아타락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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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4 스토아철학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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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5 네오 플라토니즘 - 헬레니즘과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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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49 아리우스와 삼위일체론 - 아타나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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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0 아우구스티누스 St. Augustine - 고백의 철학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1 아우구스티누스 - 무로부터의 창조 creatio ex nihilo - 마니교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2 아우구스티누스 - 자유의지론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3 성염의 아우구스티누스1 신앙과 이성 - 이해할려면 믿어라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4 성염의 아우구스티누스2 삼위일체론 - 성부 성자 성령은 '관계개념'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5 성염의 아우구스티누스3 창조론과 시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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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6 철학은 무전제의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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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7 중국 대련기행1 고구려산성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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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8 중국 대련기행2 중국 조선족의 세계사적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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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59 중국 대련기행3 안중근과 여순 -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 러일전쟁 격전지 203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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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0 중국 대련기행4 고구려 오고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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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1 중국 대련기행5 고구려 비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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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7 보편자와 개별자 - 실재론과 유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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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69 중세철학의 진정한 종료 - 윌리엄 오브 오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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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0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 - 마키아밸리 *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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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71 김우창과의 대화1 - 서구 근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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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72 김우창과의 대화2 - 우리가 당면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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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3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U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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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4 초의선사1 차茶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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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5 초의선사2 정조와 경화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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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6 초의선사3 다산 정약용과 혜장(아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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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7 초의선사4 추사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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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8 베이컨, 아는 것이 힘이다 - 네가지 우상 Francis B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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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79 데카르트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방법론적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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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0 데카르트의 실체 substance 근세철학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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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4 데카르트의 이원론 - 매터와 마인드 matter &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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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5 스피노자1 '영원의 상 아래서' - 신=자연=실체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6 스피노자2 유일신관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7 스피노자3 에티카 - '정서' - 선도 악도 없다
[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0 스피노자4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 - 전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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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88 다시 개벽의 시작이다 - 불란서혁명과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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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1 파스칼 Pascal 신은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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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2 밴쿠버기행1 캐나다의 성립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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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3 밴쿠버기행2 죄책감을 느끼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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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4 라이프니츠1 모나드Monad - 대륙합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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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5 라이프니츠2 힘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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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6 라이프니츠3 단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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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97 존 로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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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0 칭따오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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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1 존 로크2 칸트보다 로크다 - 타불라 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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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2 안병무의 민중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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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3 존 로크3 인식론의 출발 The Theory of Knowledge = Episte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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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4 존 로크4 인간오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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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5 데카르트 로크 칸트 헤겔 - 근세 계몽주의 인간관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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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8 남북문제의 본질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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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김용옥] 서양철학사 강의 109 [종강] 제주도기행 - 슬픈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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