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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알라딘: 최소의 발견 이원 (지은이) 2017

알라딘: 최소의 발견
최소의 발견 

이원 (지은이)
민음사2017-11-17

책소개

25년 동안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말, 시가 가르쳐 주었다는 말, 시와 함께한다는 말……. 시와 시인에 대한 이 익숙한 말들에 담겨 있는 동사들, 그러니까 왔다거나 가르쳐 주었다거나 함께한다는 말들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안내하는 걸까? 그리고 그 방향은 시인 아닌 우리의 방향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른 걸까.

이원 시인은 25년차 시인이다. 다섯 권의 시집을 냈고 시집들은 저마다 실험적인 언어와 낯선 이미지들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했다. 차갑고 이지적인 언어로 현대 문명의 비인간화된 풍경을 그려낸 전위적인 언어 예술가. 시인 이원의 이미지다.

한편 인간 이원은 누구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원 시인이 쓰는 모든 안부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도 온도가 담겨 있다. 이토록 모던한 시인이자 이토록 따듯한 인간 이원의 언어주머니에는 어떤 다양한 단어들이 들어 있을까. <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25년 동안 시를 쓰며 알게 된 가장 작은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발명 노트이자 발견 노트이다.


목차

1부 이제 세상은 월요일, 오후의 시작
오동나무
포로교환
마네킹
한 마리의양
묵언
아리조나 카우보이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악의 꽃
나는 거리에서 산다

2부 맥박과 커서
순간
용접
속도
근원
시인의 손은 늘 어리둥절해야 한다
닿으면, 꽃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이미지와 놀다
오토바이, 모터사이클, 바이크
2095년 래퍼 구보 씨의 일일
‘그 꽃의 끝을 본다는 것’

3부 세잔의 방식으로
본다
‘사과’의 탄생
생각하지 않고 먼저 본다
쓰지 않고 먼저 그린다
언어를 지우지 않고 여백을 지운다
세잔의 손
나는 부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피 묻힌 손은 보여 주지 않는다

4부 기계가 좋다 무당이 좋다
지하철역
노란집
산 것/살아 있지 않은 것
콩알만 하게/뜨겁게 만져지는 것
언덕
춘수 선생의 ‘꽃’
최소주의
기계-무당 (1)
기계-무당 (2)

5부 격렬한 내부를 가진
오갈피나무와 부용과 코끼리와 앵두밭과-김춘수
김혜순 시/인을 구성하는 23개 또는 2023개의 거울
안상수 날개 사전
김행숙으로부터 김행숙으로까지
‘복자수도원’의 그이, ‘언니 하나님’ 되다-이진명
절벽을 더 높이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두루미-천남성’ 인간-조용미
사막에서 강영숙을 만나다
하드보일드-수도승-김경욱
이만하면 괜찮다, 시 하는 일-김사인
친구들이 가는 방향의 어딘가에서-세 편의 축사
네 개의 몸 또는 네 개의 이미지-오규원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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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초등학교 내내 석천(石川)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에 살았다.
“누군가 다소 진지하게 인생관을 물어 왔을 때 나는, 기회주의자는 아니고 ‘순간주의자’예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무 먼 시간은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고 보고 싶은 거 보며 살아요, 우리는 언제 사라질지 몰라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많이 웃었다. 물론 내 말은 농담조였지만 심정적으로는 진심에 가까웠다.” 

“스물 몇 살 때, 시 비슷한 것 하나 쓰면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다니며 보고 또 보고 했었다. 카페에서도 보고 버스에서도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혼자 낄낄거렸다. 스스로 의기양양해져 걸을 때에도 소읍의 불량배처럼 걸었다. 한 가지를 계속하면 더 사무쳐야 하고 더 단순해져야 하고 더 무모해져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할까. 지금부터 다시 그 시간으로 걸어가야겠다. 나는.”  

“시를 쓰면, 내가 세상의 어딘가와 닿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내게는 늘 세상이 낯설었다. 내가 바라고 있는 창밖이 낯선 것이 아니라 내 두 다리로 딛고 서 있는 창 안이 낯설었다. 자라 모르는 사람보다는 바로 옆 사람이 더 낯설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느낌은 죽음을 겪기 전부터 시작된, 태생적 불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세상 속으로 몸을 쑥 집어넣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직감했던 것 같다.”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나는 인간이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이보그다. 나는 단단한 것들, 물기가 없는 것들, 뿌리가 없는 것들 쪽으로 열린다. 그러나 220볼트용으로 개조된 몸을 가지고서도 물렁한 것들, 축축한 것들, 뿌리가 있는 것들에게도 느닷없이 몸이 열린다. 이렇게 두 정체성이 충돌하는 나는 울 수도 없는, 땀을 흘릴 수도 없는 한밤의 검은 거울과 같다. 내 삶과 언어는 인간과 사이보그라는 가파르게 균열된 몸의 경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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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원 (지은이) 

시 쓰는 생물이라고 적어본다. 시가 제일 어렵고 점점 모르겠고 그런데 사랑을 거둘 수 없다고도 적어본다. 시가 알려준 것들로 상당 부분을 지탱시키며 시간을 통과한다. 인간이 만든 색과 향을 좋아하며, 다름의 동시성이 깃드는 ‘모순’을 자주 뒤척인다. 마음의 등불이 꺼지는 순간이 있어 성냥을 모은다. 파란 머리를 가진 성냥인데 통마다 향이 다르다. 성냥이 곁에 있으면 불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 더보기

수상 : 2018년 시인동네문학상 , 2005년 현대시작품상
최근작 : <시를 위한 사전>,<나는 나무가 되고 구름 되어>,<나는 나의 다정한 얼룩말> … 총 3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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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지은이)의 말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자발적 능동성이 생긴다. 이 동선을 겪으면 필요라는 실용적 단어를 동화적 단어로 바꾸는 힘이 생긴다. 최소로 최대를 지탱시키는 마법을 갖게 된다. 최소라는 점이 들어 있어야 최대라는 풍경에 멈추게 된다는, 최대 속에는 이미 최소가 들어 있다는 비밀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므로 최소는 처음 선택이자 마지막 선택이다. 모든 것을 다 버려도 포기 못하는 그 무엇, 그러니까 뛰는 심장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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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
꼭 필요한 하나를 발견하기
미니멀리스트 시인 이원이 일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최소’의 시선들

25년 동안 시를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가 내게로 왔다는 말, 시가 가르쳐 주었다는 말, 시와 함께한다는 말……. 시와 시인에 대한 이 익숙한 말들에 담겨 있는 동사들, 그러니까 왔다거나 가르쳐 주었다거나 함께한다는 말들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안내하는 걸까? 그리고 그 방향은 시인 아닌 우리의 방향과 얼마나 같고 또 다른 걸까. 이원 시인은 25년차 시인이다. 다섯 권의 시집을 냈고 시집들은 저마다 실험적인 언어와 낯선 이미지들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했다. 차갑고 이지적인 언어로 현대 문명의 비인간화된 풍경을 그려낸 전위적인 언어 예술가. 시인 이원의 이미지다.

한편 인간 이원은 누구보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이다. 이원 시인이 쓰는 모든 안부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도 온도가 담겨 있다. 이토록 모던한 시인이자 이토록 따듯한 인간 이원의 언어주머니에는 어떤 다양한 단어들이 들어 있을까.『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자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25년 동안 시를 쓰며 알게 된 가장 작은 것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 대한 발명 노트이자 발견 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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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주의자의 생활

『최소의 발견』은 간결하고 심플한 생활 방식에 대한 시인의 예찬론이다. 이원 시인은 순간에만 집중하고 순간만 믿는 순간주의자다. 순간주의자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으로 몸을 확장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에 메어 있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 시인에게 ‘자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이러한 찰나에만 가능하다. 순간주의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준 ‘순간’들에 대한 기록. 첫 번째 발견이다.

닿고 있다는 느낌

‘닿다’는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 중 하나다. 시를 쓸 때 시인은 어떤 느낌일까. 닿고 있는 느낌이다. 이원 시인은 세상과 닿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좋아서 멈추지 않고 계속 썼다. 지하철 플랫폼에 앉아 열리고 닫히는 지하철 문을 보며 시를 쓰는 순간,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동굴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하철을 바라보는 순간, 시인은 시를 통해 순간을 알아채고 순간 안에서 시를 쓴다. 그를 시인으로 만드는, 어떤 닿고 있다는 느낌. 두 번째 발견이다.

깨끗하고 과장 없는

『최소의 발견』은 시인의 시론이자 예술론이기도 하다. 순간주의자인 동시에 최소주의자인 이원 시인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예술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림, 조각, 사진, 타이포그래피…… 예술은 많고 일상은 예술이다.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 그림과 조각과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 안에 누워 있던 예술에 대한 감각들도 깨어난다. 깨끗하고 과장 없는 최소주의의 시선으로 찾아낸 예술 감상기. 세 번째 발견이다.

시인의 사랑

시인은 사랑할 때 어떤 말을 할까? 시인의 촉수는 언제나 언어를 향한다. 그러므로 선배 시인 김춘수의 말투부터 동년배 시인 김행숙의 목소리까지, 존경하는 시인 김혜순에 대한 마음부터 아끼는 후배 김민정 시인에 대한 마음까지, 그가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며 오래도록 생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원 시인 특유의 언어 묘사로 전달된다. 다정한 관찰기이자 애정 어린 고백록. 네 번째 발견이다. 더 작고 더 많은 발견들이 당신에게 들키려고 숨죽이고 있는 지금, 이원의 발견을 읽으며 우리 각자의 삶을 위한 최소의 발견도 시작될 것이다. 접기



북플 bookple

평점 분포
    9.2
100자평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울림이 있습니다.
응축된 문장 속에 깊은 사유와 온기가 있는 이원 시인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 추천하고 싶습니다.  구매
kamang 2017-12-0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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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한 미사여서 미안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체˝라는 게 뭔지 정말 제대로 보여주네요. 최소의 글 속에 꼼꼼하게 숨겨둔 여백들, 같은 글을 몇 번 읽어도 좋습니다. 
풀 2017-11-2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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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시대에 무엇을 하는 시인인가 라는 질문의 무서움. 궁핍한 시대라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최소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어둠이 전부가 되면 지금이 어둠이라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 그걸 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 p.67 
amalia 2017-12-10 공감 (1) 댓글 (0)
     
시집들 만큼이나
최소의 발견들이네요
최소를 통해 최대를 창출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나는 나야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고 싶은  구매
sukhee1796 2018-12-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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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전체 (4)
     
닿을 수 없는 깊이

 겨울이 차지했던 공간이 사라지고 봄이 도착했다. 대청소를 계획하기도 하고 옷 정리를 하면서 시간을 입은 옷들을 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버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책, 그릇, 옷을 정리한다. 내가 모두 좋아했던 것들이며 한때는 집착할 정도의 욕심을 부린 것들이다.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고 할까. 그러니 이원의 산문집 『최소의 발견』은 끌리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거기다 시인의 산문은 언제나 묘한 동경이 있지 않은가. 미리 말하자면 이원의 시집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읽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원의 글을 처음 읽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항상 밤에 읽었는데 낮보다는 밤에 더 깊게 문장에 취할 수 있었다.

 최소는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다. 꼭 필요한 것을 발견하겠다는 의지다.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은 대부분 놓쳤다는 뜻이다. 가장 작은 것, 최소를 발견하기까지는 최대 속에서 헤매게 된다. 그러고 나면 최소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긴다. 최소의 발견만 하겠다는 능동성이 생긴다. (「서문」, 7쪽)

 ‘최소’라는 말을 떠올리면 아주 작은 것, 뭔가 부족한 것들이 따라온다. 그런데 시인의 글을 읽고 보니 가장 소중한 것이나 가장 놀라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지를 확립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으로 순간을 즐기는 삶이란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순간주의자가 되고 싶어진다.

 나는 정말 순간주의자다.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도 전생 같다. 나는 순간만 알겠다. 그래서 무모하다.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 아무 의미 없이 질러 대다 사라지는 아이들이 외마디 비명 같은, 신명으로 들끓어 오르는 무당의 맨발이 올라탄 작두 위 같은, 순간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러운 찰나가 좋다. 어쩌면 나는 순간에는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순간」, 48~49쪽)

 순간 궁금하다. 무엇이 시인을 순간주의자, 최소 발견자로 살게 만들었을까. 그것이 시의 원천이었을까. 어린 시절 경험한 가족의 죽음, 고독, 그리고 시. 하나의 사물을 통과해서 시를 품고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산문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남다른 시선, 모든 것이 시로 끝을 맺는 듯한 느낌이다. 시를 쓴다는 뜨거운 자부심과 함께 시와 닿는 순간을 위한 처절한 고통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를 쓰면 비명도 날개가 된다」, 35쪽)

 잘못 떨어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새벽이 늘어 간다. 창은 그때마다 아직 어둠을 삼키지 못했고 모니터의 흰 땅에서는 커서가 뛴다. 커서를 들여다보다 나는 내 맥박을 짚어 본다. 엇갈려야만 걸을 수 있는 오른발과 왼발처럼 맥박과 커서는 번갈아 뛴다. 간혹 같이 뛸 때도 있으나 커서의 호흡이 내 몸의 것보다 늘 조금 빠르다. 커서와 맥박이 엇갈리는 그곳이 내 언어들이 생겨나 꼼지락거리는 바로 그 지점이다. (「모니터를 새{鳥}로 만드는 방법」, 75쪽)

 우아하고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허투루 내줄 수 없는 시인의 감정을 일부만 보여준다고 할까. 한 번도 꺼내 보여주지 않았던 비밀의 조각과 함께 말이다. 시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시 비슷한 것을 쓰고 매일매일 가방에 넣고 꺼내 보았다는 스무 살 무렵의 시인을 만나고 화가 세잔에 대한 이야기, 그림을 통해 시를 말하는 시인. 그러므로 이 산문집을 읽는 독자는 시인 이원과 비밀을 공유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글은 더욱 그렇다. 시인 김춘수, 김혜순, 김행숙, 조용미, 김민정과의 인연과 그들을 향한 사랑. 소설가 강영숙과 김경욱과의 우정, 그리고 스승 오규원에 대한 존경까지.

 시인의 산문을 읽는다는 건 시를 읽는 그 이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것은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섣부른 자신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원의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뿐 아니라 그녀가 사랑한 시인의 시도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거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깊이라서 힘겨운 산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산문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최소의 발견』이라고 말하겠다.

 최초의 방이 자궁이라면, 최후의 방은 무덤인가. 방은 삶과도 연결되며 죽음과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방은 삶이며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은 죽음이며 죽음은 삶이다.  (「방에 앉아 방을 궁금해하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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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8-04-06 공감(2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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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 줄 것 『최소의 발견』 

『최소의 발견』은 시인 이원의 자신의 인생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아가 다른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아우르며 삶의 순간순간들을 담아낸 산문 책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순간주의자’라고 말한다. 너무 먼 시간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해서 잘 살자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마치 미래가 없을 것처럼 오늘을 마음대로 소비하자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세상, 태생적인 겁 많음과 어렸을 적 겪은 가족의 죽음. 그녀는 어쩌다 과거나 미래라는 시간까지 몸을 확장시키면 금방 불안해진다고 털어놓는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 건 아닐까. ‘최소의 발견’을 자신의 중심으로 삼아 일상의 어떤 순간이나 거기에 존재하는 감각, 꼭 필요한 하나에 집중하기로 한 것 말이다. 그러나 ‘최소’라고 해도 절대 얕봐서는 안 된다. 작가에게는 바로 이 ‘최소’는 곧 최대를 지탱시키는 마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지만 역시 그녀의 인생에 있어 ‘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서울 예대 2학년, 용기를 내어 가족사에 대한 시를 썼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에게 시는 낯선 세상 속 불안을 가라앉혀주고 어딘가와 닿게 해주는 연결고리다. 그리고 그녀는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살아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것만 봐도 우리는 작가에게 있어 시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생동감을 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삶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비명 지르고 싶은 시간들이 내게도 있지만 바로 그 순간 비명을 몸 안으로 넣고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비명이 삶을 일으켜 세워 준다는 것도, 비명이 내 날개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삶이 그리 비장하지 않은 것임을 안다. 시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p.35)
 
서로 한없이 달래고 쓰다듬어 주라는 말이 인상 깊다. 그러다 보면 저마다의 고통과 불안, 슬픔은 어느새 자신 편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 역시 남에게만 친절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본인을 좀 더 챙길 일이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상냥하고 너그럽게 대하기를. 그리고 자신의 아픔이나 약한 부분도 달래고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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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빛책갈피 2018-05-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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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단어들을 만났다.

이원 시인이 쓴 에세이를 읽었다. 재미있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서 리뷰를 남긴다. 이원 시인하면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가 생각난다. 워낙에 임팩트 있는 제목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데 바로 그 시인이 이번 가을에 에세이집을 냈다. 에세이를 읽어내려가는데 반가운 단어들이 등장했다. '산울림 소극장', '미도파 백화점', '오규원 시인',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 라는 단어를 보고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 보던 일이 생각나는데, 산울림 소극장은 대학로 소극장들과는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홍대 앞에 홀로 고고하게 자리잡은 채로 굉장히 문학성 짙은 연극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감성이 마구 샘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규원 시인 산문집에 나온 한 구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오규원 시인의 책을 찾아서 보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또한 반가웠던 이름으로 로버트 프랭크가 등장하는데 정말 그 당시는 사진 작가의 작품집을 보면서 논평하고 그랬다. 요즘은 로버트 프랭크 이름 들어보기 힘들다. 강렬한 흑백사진에 담긴 예술 세계를 탐구하던 그 열정이 생각난다. 사진에 담긴 작가의 정신을 배워 보려고 하던 기억이다.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이번 겨울에 이 책을 읽고 시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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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2017-12-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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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의 발견

나에게 시란 가끔 마음의 위안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것이지만 그리 오래 밀접하게 붙어서 나를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존재는 아니다. 
사실 글을 좋아하는 편이고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잠깐 멀어지면 어느 순간 잊혀져버린 존재가 되는 것이 글이고 책이다.
게다가 훨씬 짧게 읽을 수 있는 시조차 나의 마음을 오래 붙들어주지 못하는데..
그러나 최소의 발견 작가는 나와 달리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사람을 얻고 세상을 얻고 
자기 자신을 얻은 것 같다.
그것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작가님에게 시와같은 존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시의 매력을 알고 느껴본다면 새로운 세계를 접해보는 것이니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연관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의 발견과 반대되는 사례가 떠오르는 것 같다. 최근에는 훈민정음 혜례본을 가지고 국가에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시민이 있는데 그것을 보며 생각한 것은 어차피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텐데 뭐 저리 꼭 붙잡고 놓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조차도 그런 것이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떠나지 못한다.
그러니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본다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작가님의 세상과 만나보고 싶다면 최소의 발견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 접기
포기꺼져 2018-10-31 공감(0) 댓글(0)

2022/08/03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 조현이만난사람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 조현이만난사람 : 휴심정 : 뉴스 : 한겨레

“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등록 :2022-08-03
조현 기자
[이것이 K-정신이다] ④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네번째는 김언종(70)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다.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고 한자는 갈수록 읽을 기회조차 줄고 있다. 그러나 한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다. 국회에서도 이모(이아무개)를 이모(어머니의 자매)로 혼동하는 일이 벌어질 만큼 한자를 모르면 여전히 언어 소통에 장애가 크다. 전국의 지명과 산과 강이 하나같이 한자 뜻으로 이뤄졌고, 이름도 한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역사와 고문헌, 문학도 절대다수가 한자 기록문이다. 한자와 유학을 두 다리 삼아 살아온 김언종 교수를 지난달 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서재 도가재(道可斎)에서 만났다. 도가재는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뜻인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을 정도로 천생 유학도다.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과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평생 한문을 업으로 삼은 그는 <한자의 뿌리>, <한자어 의미 연원사전> 등의 저서와 <한자의 역사>, <역주 시경 강의>, <혼돈록> 등의 역서를 낸 한학자다.

하지만 왕십리역 부근의 오피스텔에 자리한 서재에서 전자칠판을 비치해놓고, 멋진 모자를 쓴 채, ‘한잘알’이란 유튜브도 혼자 운영하며 현대식으로 한자 공부를 하길 그는 권한다.

“여전히 국어사전도 70% 이상이 한자어다. 가령 분수나 대수, 기하학 같은 수학 용어들도 한자를 알면 이해가 빠르다. 한자를 모르면 뜻은 모른 채 소리만 따라 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그는 “한문 뜻글자는 칡뿌리처럼 곱씹으면 씹을수록 진국이 우러나기에 철학적·인문학적 사유를 깊게 해서 샤머니즘 감성에 치우친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이성적으로 보완해주었다”며 “산골까지 서당이 생겨 당대 유럽보다 오히려 지식층을 두텁게 해서 케이(K)인문의 틀을 다져주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를 한자나 유학 근본주의자로 알면 오해다. 그는 유학의 본고장 안동 출신이면서 다산 정약용이 변화를 거부한다며 칭했던 ‘안동답답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가 하면, 유학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김언종 교수의 서재인 도가재 편액. 김언종 교수 제공―우리에게 유학은 무엇인가?

“유학이 2000년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의 식자들은 3경(시경·서경·역경)까지는 다 능숙하게 알지 못해도, 사서(논어·맹자·중용·대학)를 안 읽은 사람은 없었다. 공자는 차별 없이 남을 자기처럼 아끼는 살 만한 대동사회를 만들려고 했다. 공자의 생활철학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만 한다면 계층 차이와 상대적 빈곤, 전쟁 같은 세상의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그러나 유학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과 국민의 20% 정도 되는 양반들의 이념에 머물렀다. 조선시대 백성의 40~50%는 노비나 상민이었는데, 차별받는 이들이 유학을 좋아할 리 없었다. 공자는 대문 밖에 나가면 모든 사람을 귀빈으로 대하라고 했다. 그가 ‘똥 푸는 사람’이어도 말이다. 백성들을 부리더라도 황제가 제후를 대하듯 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중봉 조헌을 비롯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노예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면 통상 200~300명의 노비를 거느렸다. 다산 정약용조차 <목민심서>에서 ‘민란을 쉬 진압하지 못하는 것은 노비 숫자가 적기 때문’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버지가 양반이더라도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도록 한 종모법을, 서얼 출신인 영조가 종부법으로 바꿔 양반인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게 한 뒤 노비가 적어져서 민란을 진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임진왜란도 지도층들이 싸운 것이 아니라 서애 류성룡이 꾀를 내어 노비들에게 면천을 시켜주겠다고 구슬려 노비들을 동원해 극복한 면이 있는 것이다.”

―유학은 왜 제사와 문화엔 남았지만 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나?

“조선시대 유학의 영향은 고급 공무원과 양반들에게만 해당됐다. 조선의 지배자들이 공자의 뜻을 거슬러 노비와 상민, 서얼, 여성을 차별하고, 자기들만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무속과 무속화한 불교에서 위안을 얻었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를 보면,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고 했다. 70살 가까운 아버지 공흘과 10대 후반의 어머니 안징재가 야합, 즉 정상적인 혼인이 아닌 관계를 가져 공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공자야말로 처는커녕 첩의 자식도 못 된 셈인데, 공자를 하늘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차별을 자행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유튜브 ‘한잘알’에서 논어를 강의하고 있는 김언종 교수. 유튜브 ‘한잘알’ 갈무리―공자의 유학이 왜 변질되었나?

“공자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가 풍부한 분이었다. 그런데 주자는 강력한 불교를 밀어내기 위해 공자를 석가모니와 같은 절대적 초월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공자의 부드러운 유머를 지우고, 의도적으로 공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공자의 제자였던 자로와 번지마저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빈천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공자는 가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며 안빈낙도를 권했다. 그런 실천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영의정을 여섯번이나 했으며 훗날 다산이 ‘청백리의 표상’이라 칭송했던 오리 이원익은 ‘물질은 남에게 양보하고, 정신적인 것을 가져라’ 하며 이를 실천했다. ‘힘든 일엔 앞장서고, 나눠 먹을 때는 뒤에 서라’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다산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이 실학을 주창했는데 조선은 패망했다. 한국실학학회 회장도 한 다산 전공자로서 이를 어떻게 보는가?

“노론과 남인 집권세력에서 소외된 이들이 실학파와 이용후생학파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돼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시대를 극복해보려 애를 썼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쳐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했다. 성호 이익의 책도 출판조차 되지 못하고, 다산의 책이 출판된 것도 1930년대에 와서였다.”



한학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조선 패망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

“견제세력이 없으면 나라가 힘들어진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아무리 바른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니 속이 터져서 49살에 돌아가신 것인지도 모른다. 훌륭한 인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어도 그걸 활용 못하니 국란을 맞은 것이다. 서인 가운데 노론들이 막 나갈 때 젊은이들이 소론을 만들어 견제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이미 숙종 때부터 막 나가 더 일찍 망했을 수 있다. 영조·정조 때까지는 그나마 당파가 있어 견제가 됐다. 뱀눈은 앞만 보지 위와 옆을 못 본다. 순조 때부터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도정치로 견제세력이 사라져 뱀눈들이 지배했다. 일제 식민사관이 가르친 대로 당파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왕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했던 선비 정신이 사라지고, 당파와 견제와 비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뱀눈들이 전횡을 일삼다가 망한 것이다. 나도 아내가 견제하지 않았으면 좋아하는 막걸리만 마시다가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한자가 필요한가?

“한 정치인이 무운을 빈다고 한 것을 두고, ‘승리하기를 빈다’가 아니라 ‘운이 없기를’이라고 해석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한자 뜻을 모르면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안 쓰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 한자 뜻을 알면 기미독립선언서를 한글로 읽어도 뜻을 알 수 있지만 한자를 모르면 읽을 줄 알아도 그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이 중국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데도 왜 한문을 함께 쓰겠는가. 우리도 한자를 2000자만 알면 나머지는 유추해서 알 수 있어서 그 유익함이 무궁무진하다. 세종대왕이 말한 ‘어린 백성’ 즉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으려면 한자를 알 필요가 있다. 한자는 2000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국어 구실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 한자는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한국인들이 ‘음주가무’에 능한 기질대로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만약 한자 공부를 해 깊이를 더한다면 철학과 문학 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드날릴 수 있을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대동사회 꿈꾼 공자의 유학, K인문의 틀 다져”
인문 사상 종교, 중국서 꽃 피고 한국서 열매 맺어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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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유튜브로 동양 정신문화 정수 익힌다"
기자명 이욱신 기자
입력 2021.03.02 12:54
수정 2021.03.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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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사서삼경' 강의 통해 유가 핵심 사상 배워"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사는 대동사회 원리 공부"
"한자 배우면 고전 익혀 옛사람과 벗 될 수 있어"
▲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전통시대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한자(漢字)를 받아들임으로써 선진 문명의 정수를 빠르게 흡수해 우리 문화의 발전과 성숙에 크게 활용했다. 그 중에서 유가(儒家)의 대표적 저술인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국민들의 정신세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는 4일부터 유튜브를 통해 대중을 상대로 한 사서삼경 강의를 함으로써 동양 고전의 지혜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인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를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나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편집자 주>.


김언종(金彦鍾) 교수는 2018년 2월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직 정년 이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는 실학 연구자들의 연구모임인 실시학사(實是學舍)에서 2017년에 돌아가신 설립자 벽사(碧史) 이우성(李佑成) 선생(전 성균관대 교수)의 유지를 받들어 경학반을 이끌고 있다. 현재 10여명의 소장 학자들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최후의 역작인 『상서고훈(尙書古訓)』을 번역하고 있다.

수요일에는 고려대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한학의 기초가 되는 중국 고대 은주(殷周)시대 고문자(古文字)의 변천과정을 살피며 글자 하나하나의 형태와 음을 익히게 해 한문고전 연구에 들어선 후학들의 기초를 다져주고 있다. 또 수요일 저녁에는 고려대 평생교육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학의 대표적 고전인 사서삼경 강의를 했었다. 2013년에 시작된 이 강의는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쉬고 있지만 매회 수강생이 200명을 넘길 정도로 인기 강좌였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서가에서 책을 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코로나시대 유튜브 강의로 대중의 쉬운 한자 접근 도와

궁즉통(窮則通)이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했던가. 대중강연이 힘들어지자 비대면으로도 다수의 수강생을 만날 수 있는 유튜브가 눈에 들어왔다.

김 교수는 유튜브 채널 '한자 잘 알려주는 노인(한잘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언어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한자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그때 그 때 시사와 관련된 한자어를 풀어 보이고 있다. 보통 10분에서 15분 분량으로 일주일에 두 세 편이 올라오기도 하는 영상에는 당시 뉴스의 중심이 된 인물의 이름, 시사용어, 고사성어 등에 쓰인 한자 하나하나의 생성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과거 일간지에 다년간 시사한자 뜻풀이 기고를 한 경험이 있는 만큼 당대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법한 한자를 추리는 데는 남다른 감각이 있기도 하다. 지난해 추석에 '가황(歌皇)' 나훈아(羅勳兒)의 공연이 뜨거운 화제 속에 방영된 뒤에는 관련 영상을 띄우자 구독자가 배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한자 익히면 동양 문명 정수 마음껏 즐길 수 있어…단계 밟아 배우면 어렵지 않아

김 교수는 "한문을 익혀 놓으면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중국 황하문명 이래로 3000년 동안 위대한 선각자·지식인들이 글로 남겨 놓은 귀중한 보물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며 "'상우고인'(尙友古人·위로 옛사람과 벗을 한다)이라는 말처럼 공자·맹자·묵자·양주·주자·왕양명 등 무수한 사상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8만여권 8억자에 이르는 『사고전서(四庫全書)』와 우리 조상들 문집을 정리한 방대한 분량의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을 통해 중국과 우리의 전통시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고 한문 공부의 묘미를 소개했다.

이어 "'한문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예전에 '한문에 문법이 없다'고 생각해서 기계적으로 문장을 외우기만 했기 때문"이라며 "우선 한자 하나하나의 생성원리를 배워 개별 한자의 뜻과 음에 대한 감을 익힌 다음 요즘 학생들에게 익숙한 영어 문법처럼 한문 문법을 배우고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을 숙독한 뒤 다른 한문 문헌으로 공부 범위를 넓혀 갈 것"을 권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를 만나 이 시대 사서삼경 공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사진=김현수 기자

◇사서삼경, 대동사회 꿈꾼 유가 사상 핵심 배울 수 있어

김 교수는 "사서삼경 가운데서도 특히 사서(四書)는 12세기 중국 송대 주자가 신유학을 정립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 이래로 사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상도 이해할 수 없는 독존적 지위를 누리게 됐다. 중국의 주류 사상이 된 유학에 대한 지지나 비판, 융합 모두 사서에서 비롯된다"며 사서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사서삼경의 정신은 『논어(論語)』 「이인(里仁)」편에 나오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에 집약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공자가 지향한 '도(道)'는 어떤 종교성을 띄는 신비한 원리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사회 모든 구성원이 공평하면서도 조화롭게 사는 행복한 사회 즉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살 수 있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원리·원칙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런 공자의 생각을 항상 되새기며 개인 연구실을 '도가재(道可齋)'로 이름 붙였다.

첫 교재인 『논어』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묻자 김 교수는 「자장편」에 나오는 '기생야영, 기사야애'(其生也榮,其死也哀) 여덟글자를 든다. 이는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의 삶에 대해 내린 평어(評語)이다. 공자와 한 시대에 태어나 공자의 영광스런 삶을 함께 할 수 있었음이 무한한 영광이었고 수많은 허망한 삶과 달리 돌아갔을 때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슬퍼했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김 교수는 "누구나 이런 삶을 지향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과 한 시대를 사는 것이 치욕이거나 누군가가 죽었을 때 '축 사망(祝 死亡)'이라도 외치고 싶은 경우가 빈번한 메마른 요즘 세상이기에 이 여덟 글자는 심금을 울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방통행식 강연이 아닌 시청자도 실시간 참여하는 소통형 강연 목표

이번에 진행할 유튜브 사서삼경 강의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서 9시까지 실시간으로 방송한다. 유튜브 채널에 기록물로도 계속 남아 전 세계 어디서나 필요할 때마다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게 됐다. 대략 『논어』 1년, 『맹자』 2년, 『중용』·『대학』 각 1년, 『시경』·『주역』 각 2년, 『서경』은 중요부분만 뽑아 6개월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과거 한 강연에서 어떤 청중이 처음부터 계속 졸기만 해서 그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 갖은 재담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끝날 때까지 깨우지 못해 자신의 강연 능력을 한탄하기도 했다는 김 교수는 "이번 사서삼경 강의는 절대 지루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고전 문장의 원뜻을 살리면서도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고사를 풀어내는 '이야기 사서삼경'이 될 것이란다. 또 일방적인 강의전달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질문도 받고 때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관심있는 시청자들도 참여해 대화도 하는 입체적인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학계도 전문가 그룹에서만 읽히고 일반인에게는 잘 안 알려지는 연구논문만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대중을 상대로 한 기고·강연·유튜브 활동 등도 학문 활동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 번역은 논문보다 학문적으로 저평가 받다가 지금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학계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대중 교양 강좌 활동과 저술에 긍정적 평가를 한다면 대중성과 전문성 모두 갖춘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자·저술가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언종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다산의 장·단점 모두 기술해야 총체적 접근 가능…'박문약례' 자세로 학문 연구

『논어』에 대한 중국·한국·일본의 다양한 학설을 종합해 비교 분석한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40여년 동안 이를 널리 알린 김 교수는 "다산 선생은 위대한 분이었지만 학설에 있어 소소한 문제점도 없지 않다"며 "그 동안 국내 다산학 연구에서 금기사항처럼 여겨진 다산의 한계점도 드러냄으로 다산을 좀 더 다각도로 연구해 후배들의 학문 연구에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다산 주역 해석의 문제점을 꼽는다. 주역 해석은 크게 주역에 담긴 윤리·도덕적 의미를 궁구하는 '의리학'(義理學)과 사물의 현상을 부호화 혹은 수량화해 사물의 관계와 변화를 추측하는 '상수학'(象數學)으로 나뉜다.

다산은 이 중 상수학에 몰입해 주역 한 구절 한 구절이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 메커니즘처럼 이뤄진 완벽한 구조라고 믿었고 세상원리가 이에 정확히 반영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략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주역 본문 속에 삼라만상과 모든 우주 현상의 원리가 반영돼 있다는 것은 주역 공부를 하면 할수록 믿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과거 고전을 달달 외울 정도로 사서삼경을 숙독한 선배 학자가 수업 시간 전에 꼭 다시 한 번 강의 할 부분을 숙독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도 그렇게 하려 노력한다는 김 교수는 후학들에게 "평균수명이 90을 바라보는 시대이니 만큼 '박문약례(博文約禮)'라는 공자 말씀처럼 60대 중반까지는 전공이라는 뚜렷한 중심 말뚝을 박아 놓고 학문의 외연을 넓혀가되 정년 이후로는 이를 수렴·정리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를 얻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언종 교수 약력
▲1952년 경북 안동 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대만 국립사범대 석·박사 ▲경희대 중어중문학과 전임강사·조교수 ▲고려대 한문학과 부교수·정교수 ▲한국실학학회 회장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고전번역학회 회장 ▲『정다산논어고금주원의총괄고징(丁茶山論語古今註原義總括考徵)』, 『한자의 뿌리』1·2권 등 저서, 『한자의 역사』·『다산의 경학 세계』 등 역서 다수 ▲현 고려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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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회통’ 능력자…4차혁명 날개 달고 한류로 피었다

등록 :2022-05-11 
조현 기자 사진

[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① 불교학회 명예회장 김성철 동국대 교수

김성철 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첫번째는 한국불교학회 명예회장인 김성철(64)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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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서부이촌동 김성철 교수 연구실. 몇평 안 되는 좁은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테라코타들이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 등의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김 교수가 직접 빚은 것들이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을 보고 조각에 꽂혔다.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의사를 하다가 불교학자가 되어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틈틈이 테라코타를 만들고 있다.

서울대 사대 학장과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지낸 선친 김종서 교수가 가끔 모시고 온 탄허(1913~1983) 스님을 어린 시절 집에서 만나곤 할 만큼 불연이 있던 그는 불교학에도 열정을 불태워 가산학술상, 불이상, 청송학술상, 반야학술상, 탄허학술상 등을 휩쓸었다. 또 원효대사보다 150년이 앞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상가로 꼽히는 고구려 승랑대사에 대한 연구로 ‘한국연구재단 10년 대표연구성과’를 이룬 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연구실 한쪽에는 그가 만든 명상 기계가 있다. 마음챙김을 더욱더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발명한 것이다. 그는 뭔가 하나에 빠지면 아무도 못 말리는 덕후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해보는 것이나,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기질 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어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자기가 못하면 아이들이라도 시킨다. 영어, 수학, 미술, 피아노, 태권도 등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게 한다. 옆집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운다면 자기 자식도 시키고 싶어하는 게 한국인이다.”

그는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하나로 꿰려는 게 불교의 왕도인 화엄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한다. “화엄의 핵심은 일즉일체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또 화엄은 누구나 다 부처님이라고 한다. 화엄경에 나온 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 즉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진 분이다. 모두가 부처라니, 우리 각자도 모두 보려고 하고 직접 해보려 한다. 옆으로만 회통하는 것이 아니다. 위부터 바닥까지 알려고 한다. 미국인들은 자기네 대통령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선 정치도, 교육도 다 자기 소신을 가지고 알려고 하고 주장을 한다.”

그는 “정보통신, 디지털 혁명이 바로 화엄의 시대에 조응하는 것이어서 한국인의 기질에 딱 맞는다”고 말한다.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지전능하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인터넷과 게임과 메타버스 등으로 시공을 넘어 회통하는 것이 한국인의 심성에 부합해 4차 혁명이 가져올 미래는 한국인의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한 일문일답이다.





2020년 8월31일(한국시각) ‘2020 엠티브이(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다이너마이트’ 퍼포먼스 장면. 빅히트뮤직 제공

―한국불교의 특성, 즉 ‘케이(K)불교정신’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에 한국 불교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일 때 육당 최남선은 한국 불교를 한마디로 ‘회통’으로 정의했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은 원효에 대해 ‘화쟁 국사’라고 했다. 원효가 여러 다툼을 조화롭게 만들어, 대립과 분열을 넘어 화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라의 원측도 당나라에 유학해 처음엔 유식학의 개조인 법상과 승변으로부터 배우고,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귀국하자 그에게 다시 배워 구유식과 신유식을 회통시켰다. 고려 보조지눌도 선(禪)과 교학을 회통했다. 보조지눌은 원돈성불론을 통해 선과 화엄의 최고 경지가 같다고 했다. 조선시대 선승인 서산대사도 불교·유교·도교 삼교회통론을 설했다. 탄허 스님도 유불선과 기독교까지 회통하지 않았는가. 다른 나라 불교와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런 회통이다.”

―회통이 불교 고승들만의 특성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는 등의 문과적 성과만 이룬 것이 아니다. 그는 장영실 등의 젊은 과학자를 등용해 천문관측기구인 대·소간의, 일성정시의, 혼천의, 시간을 재는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들고 측우기를 제작해 서울과 지방의 강우량을 측정하고, 수표로 하천의 수위를 재게 하고, 역서와 천문도도 제작해 천문 지리 등의 과학기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또 음악에도 조예가 남달랐다. 새로 편경을 만든 후 첫 아악 연주를 들은 세종대왕이 ‘편경 소리는 맑고 고우며 조율도 잘 되었는데, 12음률 중 아홉째 음률의 편경 소리가 좀 높으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어서 박연이 편경을 세밀히 조사했더니 그어놓은 먹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음이 반음 높았다고 한다. 절대음감을 지닌 세종대왕의 날카로운 모습이다. 세종대왕은 문과 이과와 예술까지 가리지 않고 넘나들었다. 이순신 장군도 백전백승의 장수이기만 한 게 아니다. 난중일기를 보면 그는 글에서도 대단한 실력파다. 조선의 선비들은 글만 쓰지 않았다. 문인화를 그렸다. 난 정도는 칠 줄 알아야 선비라 할 만했다.”





영화 <천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회통과 종합은 어떤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보나?

“화엄이다. 불교의 왕도라는 화엄은 모든 것을 껴안는다. 일즉일체, 즉 ‘하나 속에 모든 게 들어간다’고 본다. 일본인들은 법화경을 가장 중시한다. 중국은 원각경, 열반경 등을 많이 본다. 그러나 한국은 화엄경을 어마어마하게 본다. 한반도에서 대부분의 주석서는 중국의 고승들의 저서에 대한 것들인데, 화엄경만은 다르다. 방대한 화엄경을 210자로 간추린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대해서는 김시습을 비롯한 후대의 주석들이 많다.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화엄경 주석들을 모은 신화엄경합론을 탄허 스님이 말년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낸 것에서도 화엄경에 대한 정성을 알 수 있다.”

―고승들이 아닌 일반 승려들도 그런 회통의 경향이 있는가?

“그렇다. 한국 불교 선방의 참선 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뜨겁다. 그런데 1989년 거해 스님의 <깨달음의 길>이란 책이 나와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알려지자 수많은 수행자들이 미얀마와 타이의 위파사나 수행처로 달려가 수행했다. 위파사나 수행 전통이 가장 잘 전해내려온 미얀마엔 전세계에서 수행 명상하러 온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한국인들이 가장 많다. 또 티베트불교가 알려지자 너도 나도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수행처들이 있는 북인도 히말라야로 가서 수행했다. 남방불교나 티베트불교 스님들은 다른 불교를 기웃거리지도, 다른 수행법을 해볼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수행자들은 다르다. 화두선이 그만 못해서가 아니다. 가장 수승한 화두선을 하면서도, 새로운 것이 보이면 그것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한가지에 만족하지 않는다. 남이 배운 것은 나도 배우고 싶어 한다. 탄허 스님이 미래 불교는 한국이 이끌 것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모든 불교를 회통시킬 수 있어서다.”

―한국인들의 종교 신앙에서도 독특성이 있는가?

“통상 종교 제도 속에 들어가면 다른 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인의 주체성은 유별나다. 종교마저 초월한다. 자기가 종교보다 더 중요하다. 조직에 그대로 순응하기보다는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시킨다고 그대로 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하면 종교도 활용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종교도 버린다.”





넷프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제공

―통상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듣는 게 ‘빨리빨리’라고 하는데, 성급하고 빠른 게 한국인들의 기질은 아닌가?

“급격한 경제성장기에 뭐든 빨리빨리 하려는 것은 한국만은 아니다. 일본에도 1960년대 도쿄올림픽 때 총알택시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원래 일 중독이 아니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우리도 저 나라들처럼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빨리빨리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고, 내 시대가 아니면 자식 시대라도 잘살게 하려고 빨리빨리 서둘렀다.”

―일본만 해도 대를 이어 장인이 되는데, 한국인은 뭐든 빨리만 하려고 하지 대충대충 건성으로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한국인들이 경부고속도로도 아랍의 항만공사도 최단기간에 완성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기질이라기보다는 빨리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은 오히려 종교도 학문도 끝장을 보려 끝까지 파헤치는 근성이 남다르다. 신라·고려의 불교가 그랬고, 조선 유학의 퇴계와 이이가 그랬다. 사토 시게키라는 일본의 불교학자는 성철 스님 당대에 일본엔 90점짜리 스님들만 있는데, 한국엔 간혹 100점짜리 스님들이 있다고 한 바 있다. 한번 수행이나 깨달음에 목적을 정하면 일생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끝장을 보려는 심성이 작용한다. 확철대오해야 한다며 생명을 거는 분들이 한국 불교엔 있다.”

―일제가 한국인들을 비하할 때 썼던 것이 조선시대 당파끼리 싸운 당쟁이다. 그 이후에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한국전쟁을 겪고, 지금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이것도 한국인의 심성에 기인한 것인가?

“원효대사보다 150년이 앞선 고구려의 승랑대사는 달마대사 일화에 나온 양무제와 더불어 중국 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고승인데, 무쟁법사로 불렸다. 한국 불교 간화선의 뿌리인 남종선의 육조 혜능-마조도일-임제의현-오조법연-대혜종고는 승랑의 삼론학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했다. <진서>에는 승랑에 대해 ‘무쟁(無爭·다투지 않음)을 몸에 익히고 행하는 분이어서 미리 말하는 법도 없었고 생각을 짜내어 이치를 만들지도 않았으며, 상대를 보아야 비로소 응했고, 적을 만난 다음에야 움직여, 철저하게 대기설법 응병여약으로 교화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화엄경의 핵심인 무의무득, 즉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것도 포착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생각을 중화시켰다. 승랑은 굶주린 생명들까지 모두 거두어 그의 방 안에는 거위와 오리, 닭과 개 등 온갖 축생들이 함께 생활했는데, 승랑이 잠들 때면 모두 고요해졌다가 함께 밖으로 나갈 때는 요란하게 울고 짖으며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런 무쟁의 도인에 이어 다투는 쟁론을 화해하게 한 원효의 화쟁 정신이 면면이 내려오는 게 한국의 정신사다. 분열과 갈등이 아니라 무쟁과 화쟁과 회통이 우리의 뿌리다.”





원효대사 영정.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끼리 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면면히 이어져온 그 정신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개인 개인이 주관을 회복할 때 남도 나와 같다는 공감력이 생기며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화해시키고 회통시킬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객관이란 미명으로 무한비교하고 경쟁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갈등하게 한다. 화엄으로 마음을 수습해서 주인이 되면 무쟁과 화쟁의 통찰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더 높은 한국 정신을 고양시키려면, 이제 끝없이 바깥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데서 그치지 말고 나아가 자신을 성찰하고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한류 드라마와 영화, 음악에 세계인들이 호응하는 이유는?

“역시 문화에서도 회통하는 능력이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주목을 끄는 것도 노래와 춤만이 아니다. 영상이 가미되어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가지만으로는 어필하기 어렵다. 영화도 드라마도 케이팝도 종합예술이다. 종합예술에서 우리의 회통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한류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머리를 지닌 한국인들이 음악과 미술뿐 아니라 윤리와 도덕, 풍습과 눈치를 종합시켜 만들어낸 것들이다. 특히 서구 예술문화가 퇴폐적인 게 많았지만, 한류는 권선징악적이어서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권에서조차 거부감이 없다. 또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문화 예술에 유입되어서 기틀을 다진 것도 한류에 크게 기여했다. 독재시대에 학생운동에 참여한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 다녀와 공직이나 대기업에 취업할 수 없어서 문화 예술계에 적잖이 진출한 것이 그 분야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1978년작 영화 <호국 팔만대장경>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셨던 탄허 스님이라면 ‘케이정신’을 무어라고 말했을까?

“40여년 전 정치적 혹한기임에도, 탄허 스님은 한국의 미래를 낙관하면서, 한국인이 도덕적으로 세계인을 선도한다며 정역에 근거해 한국의 세계적 사명을 제시했다. 탄허 스님은 도덕적 인재가 나와서 인류를 선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자 같은 인물이 다시 나와서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는 이제 아니다. 한 인물이 아니라 한류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발전에서도 민주화에서도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되는 나라다. 다른 나라를 침탈해서 자신의 부를 이룬 게 아니라 도덕성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을 이룬 한국이야말로 세계인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케이 문화다. 백범 김구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한류가 아닌가.”

―우리가 잊고 있는 선조들의 케이정신으로 현대에 되살려야 할 점은?

“전문적인 치밀성이다. 우리 민족은 건성건성 하지 않았다. 팔만대장경보다 더욱 더 자랑스러운 것은 그 책임자인 수기 스님이 대장경을 판각하면서 편찬한 30권의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이다. 이 교정별록은 고려팔만대장경 편집의 저본으로 사용한 초조대장경과 송판대장경, 그리고 거란판대장경 등 3개 판본을 대조해 여러 가지 착오를 바로잡고 그 자료를 수록한 것이다. 수기대사는 처음부터 기준 판본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3가지 판본을 서로 비교하여 가장 정확한 것을 택하는 입장을 취했기에 고려대장경은 그 내용이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훗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과 중국의 빈가정사대장경도 우리의 고려대장경을 그 모본으로 삼았다. 총 66종의 경, 율, 론을 검토해 번역자, 권수, 주석, 제목을 검토하고, 경전이 위경인지 진경인지를 판별하고, 누락된 경전을 보충하고, 섞인 경전을 바로잡고, 글자와 행, 문구의 오류를 바로잡아 치밀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고려대장경이 한 글자의 오류마저 용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수기대사의 교정별록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이 교정별록과 서양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비교해보고, 현대문헌학으로 보면 후자가 수기대사보다 200년 뒤에 만들어졌음에도 오자가 많아 쓰기 어려운 반면 수기대사의 교정별록은 지금 보아도 틀린 게 없이 놀라운 정도라고 한 바 있다. 상감청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문적 깊이와 정교함으로도 끝장을 보는 정교함이 있다. 우리의 그 정교함을 되찾아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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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정신이다]
③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세번째는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과 이선경 차기 주역학회장 부녀다.
















이동준(85)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겸 유학대학원장,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장을 지냈고, 한국사상연구원 설립자이자 원장이다. 그의 집안은 한국 철학의 기둥이다. 부친 학산 이정호(1913~2004)는 ‘정역’(조선 후기 김항이 <주역> 원리를 독자적으로 이해해 주창한 역학사상) 연구의 일인자였다. 학산의 애제자이자 도반이고, 이 교수의 손윗동서인 류승국(1923~2011) 전 정신문화연구원장은 우리 문화의 원류인 동방문화를 밝힌 주역이었다. 이 교수의 딸 이선경(55) 박사는 대만국립정치대학에서 주역을 연구한 뒤 <한국주역대전> 편찬팀장을 거쳐, 차기 주역학회장으로 선임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과천에서 부녀를 만났다. 이 교수가 지어 40여년을 산 단독주택은 학산이 말년에 함께 머물고, 류승국이 자주 드나들던 집이다.

학산은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과를 거쳐 의예과에서 의학도 공부한 수재였다. 해방 뒤 일석 이희승이 서울대에 국문학과를 재건하자며 그를 세번이나 찾아왔으나 응하지 않았다. 대신 계룡산에 들어가 3년간 정역을 만든 김항의 조카 덕당 김홍현으로부터 정역을 전수하였다. 그가 세상에 드러낸 정역은 조선의 패망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적 자존감이 꺾인 한민족에게 희망의 싹을 틔웠다. 우리나라가 세계 변화의 중심이 되어, 조화로운 화합 시대인 후천 시대로 세상을 이끈다는 정역은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국수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쯤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한국이 선진국이 되고 한류가 세계를 휩쓸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교수는 사상과 문화에 대해 “중국에서 꽃이 활짝 핀다면 한국에선 열매를 맺는다”며 한국 정신을 ‘다양성의 조화’라고 결론짓는다.



정역 연구의 일인자였던 학산 이정호.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사상은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때로는 상반된 길을 달렸지만, 궁극적으로 이질성의 통합과 다양성의 조화라는 특징을 지녔다. 천지인 삼재라든가, 유불도 삼교를 포함한 풍류도 등 고대 정신에도 포용성과 통합성이 두드러진다. 또한 형이상의 정신과 형이하의 물질의 양면적 사고가 깔려 있으며, 어느 일면으로 기울어지다가도 다시 양면으로 통합하는 성격을 지닌다. 유불도(교) 모두가 이 땅에 들어온 뒤 그랬다. 한국 사상이 지향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의 존엄과 인격의 존중이다. 그것이 한국인의 성격과 가치관의 중핵이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평화와 인(仁·사랑)을 지향하면서도, 기질적으로는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무사도 정신이 지배하고, 중국은 좋아도 싫어도 ‘하오하오’ 하며 원만한 군자를 지향한다면, 한국인은 백이숙제와 같은 의리학파가 뿌리내려 불의에 항거하는 선비정신이 강하다. 그래서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돈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돈을 줘도 ‘누굴 거지로 아느냐’면서 돈을 내던지는 게 한국인이다. 학문을 하면서도 목숨을 내거는 게 선비다. 가치중립을 지향한다면서 누군가 자기 새끼를 죽이고 있는데도 ‘난 <중용>이나 읽을게’ 해선 선비라 할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과 700명의 의사를 보라. 700명은 무사나 농부가 아니라, 모두가 선비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이선경 박사는 “우리나라엔 경학 고문헌 가운데 역(易)에 관한 것이 가장 많을 정도로 고대부터 정신의 저류에 주역을 비롯한 역의 사유 방식이 흐르고 있었고, 근대에 정역의 등장으로 또 한번 사고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맞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문일답이다.



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명륜당에서 류승국의 박사학위 수여식 때 학산 이정호와 류승국 전 정신문화연구원장.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한국 철학에 역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선경(이하 경) “한국, 한국인의 사유 방식에서 역학적 사고방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훈민정음과 태극기를 봐도 그렇다. 류승국은 갑골문을 통해 상고대 동이의 ‘인방족’과 ‘어질 인(仁)’이 한국사상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어질 인(仁)’의 인도주의는 단군신화, 최치원 풍류도, 성리학의 태극, 훈민정음, 동학의 인내천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정역에서는 황극이라는 인간론으로 점을 찍었다. 중국에서 황극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표준이었지만, 정역이 말하는 황극은 보통의 인간이 절대주체로 선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18째 아들인 담양군의 13대손인 연담 이운규로부터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남학 창시자 광화 김치인, 일부 김항 세분이 동문수학했다고 하는데?

이동준(이하 준) “연담이 세분을 불러서 이걸 하라고 했다기보다는 최제우는 선도를 중심으로 법을 펴고, 김치인은 불교를 중심으로, 김항은 유교를 중심으로 법을 펴는 특별한 사명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다 알 수 없다. 연담은 실학자 이서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06년 ‘학산 이정호와 정역’에 대해 학술 발표를 하고 있는 류승국.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정역은 어떻게 공부를 했나?

준 “학산과 도원(류승국) 등 8~9명이 계룡산 향적산방에 모여 밤엔 영가(음·아·어·이·우 노래)를 하고, 무도(춤)를 했다. 무도를 하다 신명이 나면 튀어 오른다. 영가 무도를 하면 동물과 자연물도 감응한다고 했다. 영가를 하면 그 소리를 들은 호랑이가 찾아왔다가 사람이 눈에 띄면 휙 사라진다고 했다. 겨울에 나가 보면 눈 위에 큰 발자국이 있었다.”

―정역이란 무엇인가?

준 “김항이 36살 때 연담 이운규에게 화두를 받고 54살에 정역의 세계를 깨쳤다. 복희 문왕 팔괘는 봄여름, 정역은 후천 시대인 가을 결실기를 제시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간방(艮方)이 정역에서 중심이 되면서 간방 중심의 세상이 열리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봄여름 성장기엔 경쟁이 심해 모순이 대립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다툼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어른이 된다. 그런 여름이 가야 가을이 온다. 진(팔괘의 ‘震’, 현실에선 중국)이라는 것은 번성하고 화려하게 드러난다. 정역에서 보면 중국이 꽃이라면 우리나라는 열매다. 중국에서 핀 꽃들이 여기에 와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단군 이전 ‘구이’족이 가진 동방문화의 기반에서 유불도와 기독교까지 받아들여 통합했다고 했는데?



이동준 한국사상연구원장이 부친인 학산 이정호가 역의 원리로 밝혀낸 훈민정음의 원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준 “강자가 약자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함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역에서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음양의 조화)의 시대가 온다고 봤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음의 시대가 지나면 양의 시대가 도래한다. 고려 시대엔 가요와 문학이 발달했다. 조선 시대는 고려의 문화예술을 당하지 못했다. 반면 고려는 조선 시대의 철학을 당하지 못한다. 고려는 악이 발달했고, 조선은 예가 발달했다. 고려 말에 자유로움이 심해져 너무 문란해지니 조선 시대는 예법으로 다스린 것이다. 그러자 학문·철학은 발달했지만 부드러움은 사라졌다. 다시 뼈에 살을 붙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체능이 보완되어야 영육쌍전(정신과 육신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온전해진다.”

―학산이 말한 훈민정음의 핵심은?

준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制字解)에 ‘천지의 도는 하나의 음양오행일 뿐’이라고 했다. 해례본은 역리와 성리학으로 설명되니 언어학만으로 해명이 어렵다. 1940년대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엔 훈민정음의 원리를 알 수 없었다. 1970년대 초 국립중앙도서관이 세계에 알릴 첫번째 우리 책으로 훈민정음을 정한 뒤 이창세 관장이 국문학자들을 찾아다녀도 역학을 모르니 제대로 해설할 수 없었다. 그러자 일석 이희승이 대전으로 학산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훈민정음의 구조 원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정음 글자에는 음양, 오행, 천지인 삼재 그리고 하도의 원리가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뿌리 깊은 인도주의 정신 및 영육쌍전 사상이 뼈대가 되는 원리가 담겨 있다.”



2019년 미국 캔자스대학에 방문교수로 간 이선경 박사가 한국 사상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사상연구원 제공

―태극기의 원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경 “류승국이 ‘우주 만유의 근원이 태극인데, 내 주체가 남의 주체이니 남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 것은 기초적인 설명이다. 태극 모양은 동지부터 하지까지 밤낮 길이의 변화를 말한다. 45도 각도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비율을 그리면 자연의 리듬을 따른 태극 문양이 된다. 태극 문양은 우리 고대부터 있었다. 태극을 중국 것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음악에서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틀이지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고 그리스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역도 보편적인 사유의 틀이다. ‘기원이 어디냐’보다 그것이 우리 삶 속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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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등록 :2022-06-07 18:16수정 :2022-06-08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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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자세히 보기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연재[한겨레-플라톤아카데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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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2

[도올김용옥] 도올주역강해 3강 - 주역점에 필요한 4가지, 괘상 괘명 괘사 효사 - '역경'은 공자의 작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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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 zorba
fool zorba
15 hours ago
아...제가 이럴줄 알았습니다. 주역이 너무 어려워 계사전을 먼저 읽으면서도 뭔가 헤매고 있음을 감출수가 없었는데 오늘 도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뒤통수를 씨게 한 방 얻어 맞은듯합니다. 앞으로 도올 주역강해 열심히 듣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방향을 바로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19


막시무스
막시무스
14 hours ago
감사합니다. 젊어서부터 해 보려던 주역공부를 선생님의 노고로 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30여년 전에 주역책을 구입해 놓고는 방치해 두었는데 지난주에 도올 선생님의 책을 구입해 놓았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강의를 들어가며 제대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10


삼인정
삼인정
14 hours ago
도올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재미로 노년을 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관리 잘 하시어 통쾌한 강의 오래오래 이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1


정보원
정보원
14 hours ago
도올선생님 강의 최고입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잘듣고있습니다

8


유대종
유대종
15 hours ago
인류의보배 
도올 선생님
감사합니다

11


畯.
畯.
14 hours ago
교수님!!!
오늘도 강의를 듣고 있어요. 
늘 좋은 정보 많이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휴가는 "도울 주역 강해"로 
지낼 예정 입니다. 
혹시 강의실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가요?👏👏👏👏👏👏

9


김종호
김종호

13 hours ago
책과 함께 듣는 강의, 요즈음 위안이 되고 즐거움이 됩니다. 주역의 핵심을 파고 들어가는 짜릿함이 느껴집니다.

5

도올TV

Investor Lee
Investor Lee
12 hours ago
도올 선생님의  책을 읽다보면  또한번  감탄하게 된다.
알기쉬우면서도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조선말을  가장  잘  구사하는  철학자이다.

3


리애
리애
16 hours ago
책 구입하고 열심히 강의 듣고 공부하겠습니다

7


김명구
김명구
13 hours ago
강의 잘 들었습니다 도올선생님 감사합니다^^
키포인트:경과 전을 이해하라

3


화니별
화니별
6 hours ago (edited)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님의 후손입니다.
선생님~존경합니다.
주역으로 봤을 때, 끊임없이 삶을 공부하면 더 현명한 하늘과의 질문과 답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신이내린개도사
신이내린개도사
14 hours ago
다시 공부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셔요...^^

5


전동일
전동일
15 hours ago
명쾌한 해설 감사합니다.

6


룽따
룽따
14 hours ago
선생님 감사합니다 ^^

5


Yeop Leem
Yeop Leem
15 hours ago
도올주역강해를 구입했습니다. 잘 배우겠니다. 감사합니다.

6


초님파
초님파
14 hours ago (edited)
선생님의 강의가 책의 어느 페이지 인지 본 동영상에 자막이나 동영상을 재생하기전 설명란에 가끔 대략적으로 띄워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아니면 텍스트를 안보고 강의만 쫓다보면 책은 사놓고 강의만 듣고 끝나는 경우도 많을듯 합니다 이번 강의는 꼭 책을 들고 읽고 익혀서 대과가 없는 삶의 자세를 배우겠습니다

6


사인師蚓 성현빈
사인師蚓 성현빈

12 hours ago
49:00 계사전을 '구라 중의 구라'라고 일갈해버리시는 그 단호함! 평생을 타협 없이 치열하게 공부하셨기에 가능한 자신감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나의 철학 여정은 철학의 권위, 그 문명의 허세를 해체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강의에서도 민을 생각하시는 선생님의 우환의식이 절절히 느껴져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진실로 선생님께서는 순과 같은 대효이십니다.

2

도올TV

서영식
서영식
14 hours ago
강의 감사합니다

4


미래예 언
미래예 언
11 hours ago
도올선생님 감사합니다!!

2


june kim
june kim
13 hours ago
너무나 감사합니다 늘건승하십시요 ~~^^

2


Jh J
Jh J

13 hours ago
 ₩12,000
감사합니다.

3

도올TV

한국사진작가협회 탈퇴
한국사진작가협회 탈퇴
12 hours ago
도올님은 정말 대학자십니다.

1


구글좋아ᄒ
구글좋아ᄒ

16 hours ago
1등!!! 매일 기다립니다. 선생님 강의만 알림 설정해놨어요 ㅎㅎ

6

도올TV

이강연
이강연
13 hours ago
좋아요 수고 하십니다

3


하늘님
하늘님
13 hours ago
감사합니다

2


TheMusicmalife
TheMusicmalife
12 hours ago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습니다.

1


kj lee
kj lee
15 hours ago (edited)
동양인들이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 = 주역
동양인들이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에 기준한 행동 양식의 설명 = 유교, 도교, 중국화한 불교
로 설명할 수 있나요? 그렇기 때문에 동양의 철학은 극렬한 반목이 없어보이는 듯한 이유일 수 있을 듯하며 그렇게 타 종교에 대해서도 반목하지 않는 심성이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6


별땅
별땅
16 hours ago
돌선생님몇칠 을못들어왔네요수고하네요감사합니다

5


흥호 이
흥호 이
15 hours ago
퇴문 10철 이덕홍은 주역에 밝았는데 나의 방조였다..

5


느끼는심리학교실
느끼는심리학교실
13 hours ago
👍

3


G S
G S
9 hours ago
💓



이삼봉
이삼봉
3 hours ago
'무슨 종교를 믿든 혹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든 살아있는 동안에는 일단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약과 영양제를 먹는 것보다 음식을 골고루 잘 씹어 먹는 것이 건강에 더 좋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치의학 이론에 오류가 많아서 그 이론으로 만든 치약은 효과가 거의 없고 그래서 많은 치주 질환이 발생하므로 치과는 장사가 잘 되고 있어요. 
그래서 '얼굴이 밝은 성직자는 가짜다'의 저자가 산중에서 수행하면서 야생동물은 평생 치석과 치주질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구해서 칫솔이 필요 없는 신개념 치약을 만들었습니다. 

이 치약(길몽웰빙치약)을 사용하면 치아와 잇몸이 야생동물처럼 강해져서 평생 치석과 치주질환이 발생하지 않으며 잇몸통증과 시린이가 사라지고 코골이와 치매도 예방된다고 하네요.
 치아가 나빠지면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건강에서 시작되고 건강은 치아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치아와 잇몸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려우므로 미리미리 관리해야 합니다.



leopardi Giacomo
leopardi Giacomo
12 hours ago
인간에게는 미래를 볼수 있는 혜안이 없다고 하는데 주역점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벗어날려는 시도 아닌지요?



Lambda
Lambda
14 hours ago
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ㅎㅎ

6


의열단 박재혁의사
의열단 박재혁의사
1 hour ago
이분은 강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는 
사명을 가지고 천상에서 내려 온 
천인이다.

어리썩은
( 얼이 썩은, 즉 영혼에서 혼이 썩어빠진,
 영 = 보편적 자아, 진아
혼 = 개별적 자아, 가아) 

인간들아
 몸 소중한 걸 알아야지 !

천지간에 최고 보물이거늘...

< 사후체험에 대하여... >

제 1 편 지옥의 세계

이승에서 맑은 마음으로
청정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사후에 영혼이 가는
영계는 아주 맑고 깨끗한 곳으로 보인다.

다른 이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많이 베푼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아늑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영계에 들어간다.

욕망과 번뇌에 깊이 물들지 않았던
이들은 날아갈 듯 개운한 기분으로
영계에 들어간다.

그러나 
마음이 탁했던 이들의 영혼들은
영계를 어둡고 으스스한 곳으로 느낀다.

영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서운 고통을 느낀다.

그들이 받는 고통은 
그들의 성품에 따라 또
살아서 행한 바에 따라 다르다.

탐욕이 심했던 영혼은
혹독한 추위를 느낀다.

꽁꽁 얼어붙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들은 덜덜 떨며 괴로와한다.

오만방자하고 남을 업신여기던
영혼은 

허공에서 검불처럼 휘날리다가
핏물, 독물, 뜨거운 모래에 뒤덮이는
느낌을 받는다.

입속으로 뜨거운 독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뜨거운 쇳물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독이 가득한 바다에서 허우적 거리기도 한다.

화를 잘 내는 영혼들은
칼이나 창으로 찔리는 
고통을 받는다.

도끼로 찍히고
작두로 잘리고
쇠 곤장으로 두들겨 맞고
톱으로 썰리는 고통을 당한다.

까닭없이 남을 원망하고
미워한 영혼들은
바위에 짓눌리고 
돌에 맞는 고통을 당한다.

독안에 갇혔다가
독과 함께 자갈밭에 던져지는
고통을 당한다.

남을 많이 속인 영혼들은
더러운 오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줌똥의 늪에 빠져 고통을 당한다.

간사하고 아첨을 많이 한 영혼들은
밧줄로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한다.

음욕에 빠진 영혼들은
활활타는 불길 속에서 고통을 당한다.

이런 무서운 고통들은 모두
각자 스스로의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음욕은 뜨거운 불기운을 일으키니
음욕에 빠진 영혼은
불길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탐욕은 한없이 빨아들이는 마음이니
탐욕스런 영혼은 얼음과 같아서
얼어붙는 듯한 고통을 당한다.

오만방자한 마음은 뽐내는 마음이니
허공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는
고통을 당한다.

간사한 마음은 남을 유혹하여
서서히 망가뜨리니
남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아서
자신의 목이 졸리는 고통을 당한다.

화내는 마음은
남에게 날카로운 살기를 쏘니까
그 살기가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된다.

원망하는 마음도
남에게 독한 기운을 쏘아 보낸다.
그 독기가 자신에게 되돌아와
돌에 맞는 고통을 당한다.

사후에 영계로 들어가는 영혼들은
살아 생전에 행한 바에 따라서,

즉 스스로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가는 곳이 정해진다.

악업을 행한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선업을 쌓은 영혼은 천상으로 올라간다.

천상과 지옥 모두 일체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지옥은 아비규환이다.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은
살아 생전에 저지른 죄업을
되돌려 받는다.

처절한 고통의 외침과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다.

살인을 저지른 영혼은
자기가 죽인 사람이 죽으면서 겪는
고통을 그대로 똑같이 당한다.

남을 때린 영혼은
자기한테 맞은 이의 고통을
그대로 똑같이 당한다.

힘없는 중생들을 죽이고
학대한 영혼들도 마찬가지다.

남을 슬프게 한 영혼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며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남을 억압한 영혼은
똑같은 억압을 느끼며
고통을 당한다.

남을 공포에 떨게 한 영혼은
똑같은 공포 속에서 벌벌 떤다.

모두가 스스로 뿌린 씨앗을
도로 거두어 들인다.

인과응보에는 티끌 만큼의 오차도 없다.

지옥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린 벌을 받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쳐다보기가 어렵다.

자신이 저지른 죄업에 합당한 고통을
모조리 받고나면
영혼은 지옥을 벗어난다.

그들은 귀(귀신 귀)가 된다.

귀들은 본래 가졌던 성품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진다.

음욕이 강했던 귀들은
바람에 실려서 이리저리 휘날린다.

살아서 상대를 자꾸 갈아치웠듯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휘날린다.

이런 귀들을 발귀라고 한다.

발귀들은 바람따라 휘날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방탕하게 만들고
음욕을 부추긴다.

탐욕이 심한 영혼들은
온갖 물건에 달라붙는다.

이런 귀들을 괴귀라고 한다.

괴귀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여 갖가지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부추긴다.

오만한 영혼들은 아귀가 된다.

아귀들은 극심한 허기를 느끼며
고통을 당한다.
또 사람들의 식욕을 한없이 부추긴다.

화를 잘내는 영혼들은 여귀라 한다.
여귀들은
화재가 일어나는 곳,
전염병이 도는 곳,
사고가 일어나는 곳,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배회한다.

간사한 영혼들은 이매귀라 하는데
온갖 축생에 붙어다닌다.

원한에 사무친 영혼들은 고독귀라 하는데
독을 품은 벌레들에 붙어다닌다.

고독귀들은 독충들이 독을 뿜어
다른 중생들을 괴롭힐 때 쾌감을 느낀다.

남을 억울하게 만든 영혼들은
역사귀가 된다.

역사귀는 힘든 일을 하는 곳에 
떠돌아 다니며 
고된 노역의 고통을 당한다.

남을 속이기를 좋아했던 영혼들은
몽염귀가 되어서 어둠 속에 숨어서
이리저리 떠돌아 다닌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숨기고 변명에 능한 영혼들은 전송귀가 되어서
무당에게 붙어 미래사를 알려주고
길흉을 점쳐준다.

영혼들은 지옥에서는
마음과 행위로 저지른 죄업의 과보를 받는다.

지옥을 벗어나 귀계로 들어오면
생각으로 지은 죄업의 과보를 받는다.

귀계의 영혼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업의 과보를 모두 받은 후에는 여러가지 짐승으로 태어난다.

축생이 되어서 
인간 세계에서 지은 빚을 갚는다.

남을 죽인 자는 죽임을 당하고
상처 입힌 자는 상처를 입는다.

원수끼리 서로 만나서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다.

축생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지은 죄업의 과보를 모두
갚은 이후에야 비로소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

사람으로 환생한 이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 업보를 받고
새로운 죄업을 저지른다.

온갖 번뇌망상과 탐욕에 빠져서
어둠 속을 헤매는 중생의
삶을 산다.

그리하여 이승의 삶을 속절없이 마감하고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


제 2 편 천상의 세계
< 천상의 여러 차원에 대하여>

탐욕을 버리고
번뇌를 씻은 영혼들은
천계로 올라간다.

천계는 여러 층이다.

더욱 크게 깨우친 영혼일수록
더 높은 천계로 올라간다.

즉 천상에서도 영혼들은
각자 스스로 마음을 닦은 정도에 맞는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가장 낮은 천계를
불가에선 사천왕천 이라 한다.
초기 기독교에선 제 1천 이라 한다.

1


2 nol
2 nol
13 hours ago
도올 선생의 지나간 저술등을 보면 동양의 역을 부정해 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이제라도 역에 관심을 가지신 것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수천년을 연구해왔고 지금도 평생을 주역을 연구하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대부분 역에서 자연의 이치를  찾고 있습니다. 점을 치려는 사람은 점쟁이들고 지금은 점쟁이들도 사주명리 등으로 풀지 이것으로 잘 점을 치지 않습니다. 역을 점으로 단정하고 부정하려는 논점을 만들기 위해 논어의  '五十', 사기의 '위편삼절(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의 가죽끈이 3번 끊어졌다는 뜻)'을 오류로 몰아 ,자의적 해석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납득이 안된다고 계사전을 모두 부정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려줘야지 무조건 엉터리라는 황당한 논리는 아전인수적인 논리라 하겠습니다. 도올선생의 종전의 저술이 모두 서양의 합리적인 철학과 연결되어 분석하니 경이 아닌 전(계사전)은 구라(엉터리)가 될 수도 있겠지요 . 후학들이 쓴 것은 맞지요.  온고이지신은 왜하는가? (우리의 조상들, 대학자들도 수백년을 공부하고 연구했던 주역임) 수천년의 그러한 해석, 풀이도 있었다 하고 그들의 사상도 존중해 주는 것이 학자적 태도임 설령 잘못된 것이라면 그들의 사상에 무엇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지적해 줘야지  내맘에 안든다고 모두 엉터리? 구라임?  그러한 논리라면 최수운의 하느님과 대화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이가?  내맘에 들면 진리고 그렇지 않으면 구라다?  대학 등에서 주역을 연구하는 동양철학 박사 등은 인생을 전부 헛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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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師蚓 성현빈
사인師蚓 성현빈

13 hours ago
현 대학이라는게 애초에 서양의 제국주의와 근대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작적 기관에 그 연원이 있는데. 그대야말로 불충분한 근거로 노선생의 노고를 매도하지 말고, 마음을 열고 도올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해봄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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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메
구르메
6 hours ago
그 대단한 동양 박사들이 공부한 주역을 밤날 천날 공부해봐야 자기인생 한치 앞도 못내다 보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도올선생님 께서는 주역을 통해 동양의 임의적 사유체계에 대하여 알려주시고자 강의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글쓴이 께서 천지의 섭리를 따지시고 싶으시다면 동네 철학원 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거기가면 같은 뜻을 품은 동료분들 많을텐데...



2 nol
2 nol
48 minutes ago (edited)
 @구르메  도올 선생의 학문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올 선생의 학문적 분석방법은 탁월하고 모든 학자들의 귀감이 될 만합니다.  문제는 주역을 점으로 단정 짓고 학문적으로 한단계 낮추려는 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계사전 또한 도올 선생이 처음 말씀하신 의리역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동이족인 복희가 팔괘를 그은 것이 점을 치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복희 팔괘를 새로운 형태로 배열한 것이 역경입니다. 팔괘를  점의 형태로 이끌고  설명한 것은 후대의 일입니다.  계사전은 복희팔괘와 문왕팔괘를 설명하는 것이 핵심적 내용입니다.  그 설명이 복희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복희의 의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대의 연구성과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와 함께 해온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음으로 양으로 문화적인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도올 선생께서 경의 괘효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복희팔괘 와 문왕팔괘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계사전은 복희,문왕팔괘의 이치를 후대의 사람들이 연구한 내용입니다. 도올 선생도 후대의 사람으로 하나의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계사전도 그런 관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동영상 강의 서두에 의리역과 상수역을 설명하셨습니다.  도올 선생의 설명에서 의리역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의리역에 가까운 계사전을 구라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구할 가치가 있은 것하고 구라하고는 천양지차인 것입니다.  제가  할일이 없어 쓸데없이 댓글을 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올선생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도올 선생의 학문이 곧고 강하기 때문에,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마찰이 나올 소지가 있는 부분은 시청자분들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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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9

임지영 신내림, 사기라는 사람들 필독...30만 무속인 90%가 서민 - 민중의소리

임지영 신내림, 사기라는 사람들 필독...30만 무속인 90%가 서민 - 민중의소리


임지영 신내림, 사기라는 사람들 '필독'..."30만 무속인 90%가 서민"


강경훈 기자 qa@vop.co.kr
발행 2011-11-11 14:18:14

가가



'똥습녀'로 유명세를 탔던 임지영이 신내림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최근 한 방송에서 임지영이 신내림을 받고 난 이후 일상에 대해 공개돼 누리꾼들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임지영은 신내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퍼포먼스적 삶을 살아왔던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임지영의 신내림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 중 일부는 신내림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신내림은 사기다"라는 다소 논점과 벗어난 주장들을 펼치고 있다.

임지영이 실제 신내림을 받았는지 아닌지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한 데서 나오는 이 같은 주장들은 국내 20~30만명에 이르는 무속인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임지영의 신내림 소식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과거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이 같은 편향적 인식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신내림인가, 사기인가-사람 잡는 선무당'이라는 주제로 방송된 한 방송은 수많은 무속인들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유는 임지영과 같은 무속인들이 신내림을 하는 행위를 마치 사기 행위처럼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이 방송이 나온 이후 세간에서는 신내림을 불신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고, 일부 누리꾼들은 무속인 사회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장영호 한국의샤머니즘 대표는 칼럼을 통해 "돈벌이에 급급한 선무당이 많으니 그런 선무당을 조심하라는 방송의 공영성은 존중하나, 대다수의 무속인은 사기꾼이고 그런 부류라고 시청자들에게 말하는 인식으로 비춰지지 않기 바란다'며 우려감을 표했다.

임지영처럼 신내림을 받는 행위를 수익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무속인도 있으나, 대다수의 무속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몇명의 사례가 전체 무속인 이야기로 비춰지게 될 까봐 깊은 우려가 든다"며 "몇명의 사례를 갖고 전체 30만의 무속인들이 다 똑같다는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심어줘선 안 되는데, 방송은 그런 부연 설명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제 임지영과 같은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무속신앙은 다른 거대 종교에 비해 자신들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대항력도 없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매우 낮다.

장 대표는 "제작진들이 그런 사실을 조사하고 방영하겠지만, 작가가 원고를 쓸 때 어떻게 썼느냐도 방송 진행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작용되기도 한다"며 "만약 이 방송이 얼마만큼 무속에 대해 이해하고 전문성을 가진 작가들이 심층구성해 짰는지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처럼 신내림을 받는 건 학술적으로 강신무권에 해당되는 예비 입무자들이 무병을 앓아 신을 받기 위해 통과해야 되는 입무 의례를 말한다.

장 대표에 따르면 임지영처럼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강신무권에 해당되는 무당으로,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된 사람들이다.

장 대표는 "이분들 또한 내림굿을 하고 신의 제자로서 숱한 고생과 풍파, 어려움의 과정을 극복하고, 오랜 세월을 신의 제 자로서 역할을 해 오신 분들"이라며 "내림굿의 산증인들이요, 무당으로서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의 내림굿이 잘못됐다면 현재의 무업을 영위하고 계실까 하는 반문을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영이 신내림 과정에서 받은 내림굿 과정에서 돈이 오고가는 데 대해 방송에서 문제를 제기했으나, 장 대표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장 대표는 임지영이 신내림 과정에서 받은 내림굿과 관련, "내림굿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많은 선생들이 참여해 부정을 가리고, 일월을 받아 신과 교통하고 예비 입무자에게 제대로 된 신이 강림하기 위해 치러지는 엄정한 의식"이라며 "이런 의식은 내림굿을 주재할 수 있는 무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방송은 임지영이 신내림을 받는 과정에서 받았던 '내림굿'의 비용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무속인들이 내림굿을 미끼로 거액을 챙긴다는 것.

하지만 장 대표는 "20~30만의 무속인들이 그런 돈을 받고 내림굿하고, 굿을 할 때 큰 돈을 받는다면 전부 졸부나 부자가 되어야 한다"며 "대한민국에 부르주아 무속인이 얼마 있는지 모르나, 전체의 90% 이상이 대부분 서민임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대다수의 신제자들은 그런 비용을 받고 내림굿을 하지 않는다"며 "형편에 맞게 양자간에 상식적으로 인정되는 금액을 합의해 굿값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초자연으로의 회귀, 신내림 < 삶과 마음 < 칼럼 < 기사본문 - 정신의학신문

초자연으로의 회귀, 신내림 < 삶과 마음 < 칼럼 < 기사본문 - 정신의학신문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병神病은 무당이 될 사람이 신내림을 받기 전 앓게 되는 병을 말한다. 무당이
될 어떤 소질이 있는 사람에게 발생한다는 이 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갑자
기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으로 발병한다.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이곳저곳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녀 보아도 원인이 밝혀
지지 않고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쯤 문복問卜을 하거나
굿을 해 무당으로부터 신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신병의 치료는 내림굿이라
는 입무 의례를 통해 어떤 강하고 선한 귀신을 불러내려 신병을 일으킨 나쁜 귀신
을 쫓아냄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당사자는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그
강한 귀신을 평생 몸주수호신으로 모시며 무당으로 살게 된다. 강신무降神巫
무당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운명을 지게 된다.
잘 알려진 배우 정호근씨나 박미령씨와 같은 경우에도 이러한 신내림을 통해 무속
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방송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정호근씨와 같은 경우 큰
딸과 막내아들을 잃은 뒤 신내림을 받게 되었고 박미령씨 역시 오랜 시간 신병을
앓다가 무속인으로 전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
신병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초자연적 정신신체 현상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무척 달라질 수 있다. 

신 귀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부분과 이것이
사람에게 씌이는-빙의되거나 내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 그보다는 애초에
이것이 논의가 가능한 부분인가에 대한 것까지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부분들로
가득 찬 영역이다. 안 그래도 과학과 인문학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현대 정신의학에 입장에서는 토속신앙에서 설명하는 이 현상에 대한 접근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애당초 종교인으로 귀의하면 치료되는 이 현상이 과연
의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병disorder disease인지에 대한 사실조차도 불분명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신내림의 과정은 사실 당사자가 괴로워하고 원치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정신적 원인이 분명한 경우가 많아 정신의학에서는 신병을 문화관련 증후
군의 일종으로 조심스레 분석하고 있다.

정신역동적으로 신병의 기제는 주로 투사projection로 설명된다. 투사는 자신이
감내하거나 해결하기 힘든 내적 갈등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방어기제이다. 잘
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탓과 같은 맥락의 방어기제인 투사는 사실 주변에서도 무
척 흔하게 볼 수 있다. 더 받아들이기 쉽고 더 해결하기 쉬운 외적요인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경우들 말이다. 신병의 경우엔 내적갈등과 심리적 괴로움이 시름시
름 앓는 증상과 같이 신체화somatization되고 이 신체화 된 갈등은 귀신이 들
린 탓이라는 신내림을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투사projection 된다는 것
이다. 감당하기 힘든 갈등이 초자연적 존재와 초자연적 현상으로 투사된다. 설명과
해결을 본질적으로 거부하는 초자연적 영역으로 갈등이 던져진다. 그리고 그렇게
갈등을 던져내 버린 주체는 괴로움을 한결 덜어내게 된다. 무거운 현실적 고민에
대한 설명과 해결의 어려움에서 방황하던 주체가 초현실적 신내림을 받을 것인가
에 대한 선택이라는 보다 받아들이기 편한 고민으로 전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다.

영화 곡성에 대한 인터뷰에서 나홍진 감독은 신과 악마와 같은 초현실적 존재 오
컬트나 종교적 객체를 끌어들인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세상에 어떠한 불행을 겪은 분들이 있지 않느냐. 사건 사고 소식을 보면 현실의
범주 안에서는 결론이 나 있다. 우리는 그분들이 어떻게 해서 불행을 겪었는지
알지만 왜 그분이 당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곡성은 여기서 시발된 영화다. 나는
현실적인 범주 밖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했다. 선과 악이 존재해야 했고 신이 등장
해야 했다.
인생은 공평하지 못하고 불행과 재앙의 방문은 피해자의 선악이나 잘잘못을 구별
할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운명처럼 흘러가는 인생의 굽이에서 고난과 죽음은 그
저 던져진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개연성도 인과율도 본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
는다. 그저 인생이란 원래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불행의 당사자로서는 이 무
자비한 불행의 추첨에 걸려버린 현실이 너무나 억울하다. 그 공허함을 받아들이기
도 온전히 나의 잘못으로 화살을 돌리기에도 너무나 분이 찬다. 어쩌면 곡성의 나
홍진 감독은 추격자 황해 같은 영화를 통해 무차별적인 눈먼 폭력으로 드러낸바
있던 삶의 공허를 받아들이는 방법으로 초현실로의 도피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
이 아니었을까 싶다. 삶의 괴로움을 초자연적 영역으로 투사하는 방법 말이다.

그러나 신병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나의 문제를 어쩔 수 없는 신의 문제로 돌
려버리는 미숙한 투사적 방어기제라고 진단하는 정신분석의 설명은 다소 잔인하
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갈등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을 잔인
하게 강요한다. 현실의 공허함과 나의 무력함을 잔인하게 직면시킨다.
해가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뉴스를 오르내리는 삭막한 현
실에서 초자연에 해답을 구하는 자세는 어쩌면 도리 없는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을 비난하기엔 각자의 삶
이 너무 각박해지고 있다. 다만 쉴 새 없이 휘청거리고 넘어지고 부딪히고 마는 각
자의 여정에서 필요한 것은 나를 정말로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나를 이끌어주는 나의 해답은 무엇인지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뭣이 중헌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말이다.


신내림의 진실 - 정연섭, 이유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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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내림굿 없이 스스로 무당이 되는 과정인 성무수업을 통한 신내림의 진실을 밝힌다

무속 전통과 무속 역사 어디에도 내림굿은 없다. 내림굿은 무당이 되는 입문법이 아니며 돈만 내면 내림굿으로 무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신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여기면 착각이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겠지만 내림굿으로 신을 받게 하는 행위와 내림굿으로 신을 받겠다라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신께서 내려주시기를 기원하는 굿은 있어도 세상에 신을 내리는 굿은 없다. 신내림은 신의 영역이고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신의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무분별한 내림굿의 피해를 막고자 보이지 않는 신과 조상을 통한 무속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신내림이라는 증상을 통한 무당의 성무과정이라는 것을 알리고 내림굿 없이 스스로 무당이 되는 과정을 소개하며 내림굿으로 피해를 보거나 현재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무속과 무당
1. 무속은 풍속이다
2. 무당이란 누구인가?
3. 무당의 종류
4. 무당이 되는 과정
5. 무당이 하는 일과 배우는 일
6. 신 선생님이 하시는 일

신내림의 진실
1. 내림굿(신굿)의 폐해
2. 내림굿의 진실
3. 신기란?
4. 신병과 무병의 차이
5. 신가물이란?
6. 신눌림(눌림굿)이란?
7. 신이 들어오시는 경로
8. 혼자서 하는 신내림 테스트
9. 무당이 모시는 신(몸주신,주장신,조상신)
10. 무속의 신들의 종류
11. 천신만신

무사자통(無師自通) - 스스로 신내림 하기(무당 되기)
1. 부정 치기
2. 허주 치기(허주 벗기기)
3. 몸풀이
4. 선생님을 찾아라
5. 자동강신
6. 가리하기(가림하기)
7. 안택 좌정하기
8. 스스로 말문열기
9. 신당 만들기 - 전안과 건립(걸립)

기도하기
1. 접촉과 수신
2. 전안기도
3. 허공기도
4. 허공기도 주의사항
5. 산신기도, 용궁기도 시 음식과 촛불
6. 영검과 재주

점사내기
1. 직감 단련
2. 수신(풀고 닦고) - 습을 알자
3. 령이란 무엇인가?
4. 중심 잘 잡아라
5. 선과 줄
6. 신점-기감점사
1) 신점 보는 법
2) 신점 볼 때 유의사항
3) 사람들이 점을 보는 이유
7. 신점을 잘 보는 방법

부적과 비방
1. 부적의 의미
2. 부적의 종류와 효과
3. 부적 용도별 분류
4. 부적 준비물
5. 부적 제작
6. 부적의 유효기간
7. 부적 수련
8. 부적의 배합요령
9. 비방

경문
1. 무속 경문 분류
2. 무속의 경문
3. 경문 순서

제식
1. 모든 제식의 기본구조
2. 제식의 종류
3. 현대의 굿은 치성이다
4. 무속굿의 종류
5. 굿 행법
6. 굿에서의 뒷돈
7. 무속의 대표적인 열두거리
8. 황해도 12굿거리

신내림 - 표제어 - 한국민속신앙사전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신내림 - 표제어 - 한국민속신앙사전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신내림
한자명
降神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용어

집필자 강정원(姜正遠)
정의

신이 무당에게 내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

내용

신내림은 한자로 빙의(憑依)·접신(接神)·강신(降神)·망아(忘我)로 표현되며, 
영어로는 possession 혹은 trance로 표기된다. 

신내림 상태가 되면 신이 무당의 몸에 내려와서 의식(意識)을 지배하게 되는데, 탈혼(脫魂)처럼 무당의 혼이 몸을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려서 자의식을 잃거나 의식이 변하게 된다.

 완전히 자의식을 상실하는 정신이상 상태가 아니라 주변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통제하는 반의식 상태로 간주된다. 신이 내리면 몸의 감각은 과도한 흥분상태에 들어가며, 전율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신내림은 입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치게 되며, 이를 신병 혹은 무병이라고 말한다. 한국 무교에서 신내림은 강신무의 굿 의례에서 필수적인 현상으로 무당은 신내림을 통해 초월적 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해 준다.

참조

빙의

참고문헌

Zur Struktur des Schamanismus (D. Schröder, Religionsethnologie, Akadenische Verlagsgesellschaft, 1964), 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 까치, 1998), 샤먼 (피어스 비텝스키, 창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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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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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참고하십시오.



 八賤
조선시대의 여덟 천민

기생
노비
승려
백정

무격
광대
공장
상여꾼

1. 개요2. 분류
2.1. 세습무2.2. 강신무3. 설명
3.1. 유래3.2. 특징3.3. 다른 종교와의 관계4. 구성
4.1. 무당이 되는 법
4.1.1. 세습 계열4.1.2. 강신 계열4.2. 굿4.3. 무구5. 무당의 종류
5.1. 세습무와 강신무5.2. 법사, 점쟁이5.3. 박수와 무녀5.4. 악사, 잽이5.5. 애동제자, 신딸/신아들6. 지역별 무당: 만신/화랭이/단골레/심방/소미7. 현대의 무당
7.1. 현대를 사는 모습7.2. 여러가지 문제7.3. 무당과 관련된 질병7.4.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8. 창작물의 무당
8.1. 푸대접 받는 직업8.2. 무당의 자식8.3. 기타8.4. 무속인/관련 캐릭터8.5. 무속인, 심령 관련 프로그램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휘두르는 칼에 악귀가 도망가네, 남색 두루마기에 너의 염원 싣고
쩔렁 방울 소리에 잡귀가 물러나네, 붉은 소맷자락에 무당의 정성이
춤추는 무당이여 신들린 무당이여...
- 산울림<무녀도> 가사 中
1. 개요[편집]
무당이란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을 뜻한다.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박수'라는 단어가 있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혼용되고 있다.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 나온 홍철릭 무복.[1]


굿을 하는 무당의 모습. 꽃갓, 무복, 신장대, 서울 지역에서 하는 이북굿의 무신도가 보인다. 6.25 전쟁 당시 월남한 북한 지역의 무당들에 의해 전해진 북방지역 굿. 서울 지역에서는 기존의 서울-경기도 지역의 굿과 북부지역에서 온 이북굿이 공존한다.

무당의 의례는 상당히 다양하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원색 천을 흔들며 을 추는 의례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정반대로 그저 앉아서 몇 시간동안 독경을 외는 충청도 방식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샤먼들은 비속(非俗)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행하는데, 이는 무당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죽은 돼지삼지창으로 꿰거나, 작두 계단을 올라타는 의례가 대표적이다.

2. 분류[편집]
무당의 대를 이어서 무당이 되는 세습 계열과 신내림을 받는 강신(降神)계열로 나뉜다. 어떤 계열이든 행사가 한번 이루어지려면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하고, 신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이 상당한 체력소모를 요한다. 무당 자체가 엄청난 단련을 요구하는 직업이고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정결하더라도 허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주술이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한 단어로 무당이라 일컫길 좋아하고, 지혜롭게 받아들여 몸과 마음에서 적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가꾸어 나가면 큰 병을 미리 고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올바른 지식과 지혜로 몸과 마음을 흩으리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간에 열이 가득차면 시력이 내려가고, 잠을 올바르게 취하지 못하면 환청을 듣기도 하는데 이를 지혜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1. 세습무[편집]
학자에 따라서 사제무라는 분류명을 쓰기도 하며, 고고학적으로는 정주문화의 발전으로 인한 마을사회의 어르신 내지는 현자의 개념이 발전한 지위로 본다. 마을의 운을 점치고 마을 구성원의 통과의례를 봐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정주문화가 먼저 발달했고 오랫동안 이어져온 한반도 남부 무교에서 세습무 특징이 자주 보인다. 현대 이전까지는 각 마을에서 신관에 가까운 입지를 지녔으나, 마을 축제의 전통이 대부분 사라진 현대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생존에 유리한 강신무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특정 지역의 역사적 신앙과 깊이 연관되고, 민속학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는 등의 혜택이 있다. 상기 문단에서 이미 비추어진 바와 같이 충청도는 이런 식, 어느 지역은 저런 식 등의 고장 특유의 무례(巫禮) 방식은 전적으로 세습무에 해당하는 서술이다. 대부분 절기에 따라 때 되면 행사를 진행하는 데다, 국가로부터 지원도 받으니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그러나 부모가 세습 계열의 무당이 아니라면 세습무에는 발도 들여놓을 수 없다. 대신 계보나 서열이 분명하여서 본인을 어필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신분이 보장된다. 한편, 도시화로 인해 지역 무속이 쇠퇴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도 세습 계열의 무당들에게 좋지 않은 전망을 준다. 대신 신앙의 색채를 낮추고 지역 축제 개념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세습무 무당들도 있다.


현대의 세습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별신제. 출처는 영상 참조. 신관에 해당하는 제주, 굿을 하는 무녀, 다양한 도우미들이나 주민들의 역할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틀어서 하나의 '당골판'=신도들의 모임에서 각 무당들이 지니는 역할을 볼 수 있다.

2.2. 강신무[편집]
철저히 프리랜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행사 등에 초청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홍보전략을 사용하며 행사[2]가 없을 때에는 신점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신점을 계기로 연을 만들어서 행사를 유치하기도 한다. 즉, 일이 잘 안풀린다고 신점을 보러 온 사람에게 부적을 써주며 넌지시 "굿판을 벌이면 좋다"고 처방을 주는 것이다. 강신 계열 무당들의 또 다른 특징은 본인의 전문성을 고객이나 동료 무당들 사이에 상당히 어필한다는 것이다.

큰 행사를 치르는 경우 여러 명의 강신무들이 협업하는데, 따라서 이쪽 계열 무당들 사이에서 알음알음으로 본인의 전문성을 알리고, 다른 무당들의 전문분야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신점에 능하든지 작두타기에 능하든지 영업에 능하든지 자신의 일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덕분에 유명한 강신무들은 전문성이 매우 높다. 또한 실제 굿판에서 정해진 분업을 완벽히 해내고 다른 무당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눈치가 매우 중요하다. 행사 중에는 티를 내지 않지만, 뒤에서 무당들 사이에서 갈등이 표현화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다. 즉 팀워크를 잘하는 것이 강신무 계열 무당으로서 중요하다.

3. 설명[편집]
정식 명칭은 무속인(). 보통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여성 샤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당'이라는 표현은 한자어가 아니니 주의. 남성 샤먼은 박수, 박사 혹은 무격이라 불린다. 이 둘을 박수 무당이라 칭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한국의 샤먼들을 죄다 묶어서 무당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호칭이 다른데, 이북 지역이나 6.25 전쟁 당시 이북 출신 무당들에 영향을 받은 서울 지역에서는 만신,[3] 충청도에서는 법사/보살, 경상도에서는 화랭이[4]/양중, 전라도에서는 단골레,[5] 제주도에서는 심방, 소미 등으로 불린다.

영어번역하기가 애매한데, 일단 한자의 "巫" 를 가져와서 Wu 라고 부르거나 그냥 샤머니즘의 한 종류로 보아 샤먼(sham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영매(mediumship)와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 영매를 무당의 일부로 인식하였다.

무당은 민족적인 단어이자 일반 명사로 취급받는다. 현대의 무교인들이 지역에 상관 없이 자신을 호칭할 때는 불교도교의 영향을 받아서 남자는 법사/도사, 여자는 보살/선녀/무녀[6]라고 자칭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상으로는 종교가 아닌 상업적 서비스이기 때문에 면세자가 아니며 목사, 사제, 수도자, 승려와는 다르게 종교적인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한국 표준 직업 분류에 의한 직업 코드는 41622 정식 명칭은 점술 관련 종사원.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정식 직업으로 인식되어 무세(巫稅)를 걷기까지 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꽤나 위상이 높은 직업이었다. 신라시대차차웅은 무당을 뜻하는 말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 즉, 고대에는 대다수의 왕들이 무당을 겸했다. 원래 세계사적으로 고대 사회는 대부분 제정일치, 즉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사회여서 왕은 신관을 겸직했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천한 계통으로 취급했으며, 사이비 무당이 엉터리로 굿을 해 괜한 삽질 벌인다는 의미의 "선무당[7]이 사람 잡는다" 는 속담도 있다.[8]

현대에 들어서는, 사람은 생존을 위해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데 옛부터 이를 이용한터라 무속인들 대다수는 거짓된 무속인이라 보는것이 바람직하다. 불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겸비해 늘 바로 올바로 보는 식견이 필요하다.
3.1. 유래[편집]
한민족을 유목민족 전체 역사에 한국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포함시키려는 유사역사학자들의 단골 떡밥이 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떡밥으로 텡그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들의 주장에서 텡그리란 바로 환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위에서 나오듯이 텡그리 신앙은 지역에 따라서 특성들이 상당히 판이했으며, 천신(天神) 신앙 자체가 원래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신앙이었기 때문에 해당 주장은 무리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텡그리가 환인과 완전히 같다는 주장이 무리수인 것이지 아예 관련이 없는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굉장히 관련이 크다. 단군 왕검 할 때의 그 '단군'이 '텡그리'와 어원이 같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근거는 상당히 많다. 이건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제기한 주장이며, 일제강점기에 최남선[9]이 무당을 지역에 따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당골네'가 '단군'에서 온 말이라는 주장을 세우면서 같이 제기됐을 만큼, 상당히 오래된 설이다.

한민족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고(古)아시아계 민족[10]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의 발원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의 통설인데, 요서지역은 몽골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호와 인접해 있으니 자연스레 교류가 잦았을 테고 부여고구려발해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만주 일대를 통치하며 읍루거란선비족말갈돌궐 등 몽골계, 튀르크계, 통구스계 종족들을 포섭하거나 지배하면서 그들의 고유신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자연스레 했을 만큼 한국인들의 전통 신앙이 텡그리 신앙의 한 분파였거나, 최소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조선 영역에서 세워진 나라인 고구려 또한 북방계 몽골, 튀르크 부족들의 가한신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추정대로라면 고구려는 고조선 계승 의식과는 별개로 고조선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학술적인 논의는 유목민족 문화를 전부 한국사로 분류하려는 환빠성 주장과는 별개다. 오랜 과거에 A부족이 B부족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A민족의 역사=B민족의 역사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사실 어느 문화권이든 이와 비슷한 경우가 존재한다.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북방(시베리아)에서 유입된 수렵·채집·유목민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탄생에 중요한 기원이 되었다는 것 자체는 정설이며[11] 이 북방계 민족들이 샤머니즘이나 텡그리 신앙과 같은 시베리아-스텝 문화권 요소를 가지고 들어왔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하지만 환빠들의 주장이 빈축을 사는 이유는 여기서 선후관계나 포함관계를 대놓고 뒤집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조상이 북방계 유목민족의 한 갈래'인 것이지 '유목민족이 한국인의 한 갈래'가 아닌 것이다.

다른 국가 사례로 비유하자면, 영국과 미국은 모두 탄생 과정에서 앵글로색슨족 비중이 큰 국가라는 것은 당연히 사실이다. 하지만 환빠식 주장을 여기 맞춰 어레인지 하면 '미국의 주요 민족 집단인 앵글로색슨족은 영국인의 주류이기도 하니 영국인은 미국인의 한 갈래'라거나 앵글로색슨족이 게르만족의 한 갈래임을 내세워 '영국 뿐 아니라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인들도 미국인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 격인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한국인의 기원이 된 민족이 말타고 활쏘고 다니던 북방계 사람들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말타고 활쏘던 사람들이 모두 다 한국인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 즉, 오히려 우리가 동북아의 고대 범 유목문화에서 독자적으로 갈라져 나왔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비록 아직은 이 마저도 가설일 뿐인지라 일단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하다.

고대에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신라와 고려의 팔관회처럼 무속 신앙에 관련된 행사가 열렸다. 고려 초기까지만 해도 정식적인 사회 계급으로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리학이 국학으로 올라서자 철저한 탄압을 받았고, 근현대 이후로도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 하여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형편이다. 괴력난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무교는 토속적인 문화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종교의 모습을 잃고 지금처럼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았다.

일본의 미코를 포함한 동아시아 무녀들과 한국의 무당은 유래가 같은 것으로 보이나, 각 나라에서 전통 신앙을 대하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한국은 세습무의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민중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로 광대적인 문화가 발달했으나, 일본은 천 년 가까이 세습무들이 보존되고 체계적인 무교 문화가 정착되어 '무녀'라는 한자 표현을 널리 쓰고 전국적으로 정해진 복장을 입는다.

한국에서는 무당이 사회 제도에서 배척받고, 민중의 호감을 사기 위한 광대이자 주술사로서 살아남았다. 덕분에 박사, 무녀라는 '한자어'보다는 토속적인 표현인 '박수'와 '무당'으로 널리 부른다. 또한, 지방이나 개인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른 옷을 입는데, 무복이나 화려한 굿의 의복들을 참고하자. 단, 한국에서도 세습무의 전통이 남아있는 당골 문화는 일본의 미코와 개념이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의 무당은 일본의 무녀처럼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말이 퍼져 있는데, 일본에도 도호쿠 지역의 이타코(イタコ), 오키나와 류큐 신토의 유타(ユタ)는 한국의 무당과 마찬가지로 신내림을 받는다. 또 한국에서도 무교 행사가 치러져야 할 때는 부채춤[12]을 추는 아르바이트 무녀들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한국에서 무턱대고 무녀라는 표현이나 현대 무교 행사를 배척하는 것은, 무교가 얼마나 일반인들의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에 가깝다.

3.2. 특징[편집]

무당은 본래 특정한 마을의 신체를 모시거나, 몸 안에 받아들인 을 따르는 샤먼이자 축제를 주관하는 사제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세습무들의 세력이 사회적 방치 속에서 훼손되었기 때문에, 현대에는 점술퇴마부적굿, 각종 비방을 파는 종교 서비스가 되었다. 당연히 '신'에 대한 믿음은 존재하지만, 다른 종교와는 달리 체계적인 직급이 있는 사제들이 아니기에,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특이한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제로서 체계적인 직위가 없는 것이지, 도덕적인 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착각하여 단순한 무속인들과 명백히 무교의 종교 계율을 지닌 무당까지 주술사로 묶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에게 유명한 인물이면 누구든지 으로 만들어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당들이 믿는 신령은 귀신과 영혼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신' 을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는 체계적인 종교들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영혼' 을 인간의 영리를 위해서 이용하는, 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종교와는 많이 동떨어진 상업적인 사제의 개념에 굉장히 가깝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실화가 있는데, 선교사가 함경도의 한 무당에게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권유하며 야훼의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무당은 개종을 흔쾌히 받아들였는데, 다음 날 선교사가 다시 와보니 선교사에게 받은 예수 성화를 걸어놓고 무속신을 받드는 굿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 민속신앙(다신교)이 다른 신을 쉽게 받아들인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처럼 자국의 토속 종교가 체계를 잡고 뿌리를 내린 지역에서는 예수가 그냥 도교나 힌두교의 신으로 흡수되어 버릴 정도.

고대에는 크게 이름을 떨친 영웅이나 지도자들을 하늘이나 태양에 비교하며 신으로서 섬겼다. (참고: 환인해모수주몽) 사실 지금도 역사적 위인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는 많이 있어서 예를 들어 신라의 문무왕[13]장보고[14]나 고려의 장수 최영[15]조선의 이순신[16]임경업[17]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삼국지연의의 관우[18]나 더글러스 맥아더 같은 사람도 신으로 모신다.[19] 심지어는 가톨릭에서 성녀로 공경하는 잔 다르크와 예수 그리스도(!) 를 모시는 무당도 존재한다.(#)

물론 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모두 인간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옥황상제, 삼불제석칠성신도깨비산신령, 감흥신령, 부처미륵 등 천신, 자연신, 초월자적 존재도 많다. 한국 신화 문서 참고.

이는 샤머니즘의 자체가 현세구복적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평화와 인류애 같은 큰 문제는 전 세계의 샤먼(무당)들에게는 2차적인 문제로 취급되며, 눈앞의 인간들의 부귀영화를 이루어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 시즌만 되면 어디선가 무당이 유명 일간지 혹은 시사지와 인터뷰하며 "누가 차기 대권을 가질 것이다"라는 뜬금 없는 설을 내미는 무당들을 볼 수 있다. "찍어도 하나는 맞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대선 기간에 뜬금 없이 매스컴을 통해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은 제대로 된 무교의 무당이기보단, 사회적 중대사에 편승해 이목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뒷돈을 받아 홍보하는 사이비 무속인일 가능성이 높다.

대선 때 이목을 끌려는 케이스라면 당연히 될 법한 당선권의 후보를 꼽아봤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니 화젯거리가 안 되므로, 다른 후보를 고르게 마련이다. 홍보 목적의 경우 정상적인 거물 후보에겐 국민적으로 이미지가 영 좋지 않은 무속계의 주술적 예언을 내세워봤자 마이너스만 될 뿐이니, 역시 의뢰가 들어오는 건 당선 가능성이 없는 군소 후보로 한정될 것이다. 고로, 이런 발언을 하는 무속인이 진짜 당선될 법한 후보자를 지목할 일은 없을 수밖에 없다.

무교에서 바리공주는 무조신(巫祖神)[20]으로, 모든 무당들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이다.

3.3. 다른 종교와의 관계[편집]

유일신교 계통은 무속신앙과 관계가 영 좋지 않다.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무당을 좋게 보지 않는다. 가톨릭이나 정교회,[21] 온건성향의 개신교[22]에서는 그나마 부드럽게 대응하지만, 근본주의 계열에서는 강경하기 이를데 없다.

이미 구한말 때부터 이런 충돌이 잦아서 근대 문학의 소재로 쓰일 정도였다. 그 예로는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가 있다. 가톨릭의 경우 애초에 그 유명한 샤를마뉴가 게르만 박수무당을 완전 개박살내버렸다. 이 과정에서 작센족을 완전히 개박살내고, 그들의 주술에 대한 기록도 활활 태워버렸다. 서유럽에서의 씨족주의 약화에 큰 기여를 한 사건. 아울러 처리에 실패한 것들은 이리저리 비기독교적 요소를 제거해서 기독교화로 흡수해버려 관심이 뜸해보이는 것일 뿐이다.

반면, 무당들은 다른 종교에 별다른 감정이 없는 편이다. 고대의 다신교적 신앙들은 보편화한 종교와는 달리, 비판적으로 다른 것들을 보면서 정통성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그것조차 자기 안으로 혼합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고대 신앙의 모습이 현대까지 남아 있는 단적인 예가 바로 힌두교인데, 경전을 가지게 됨으로써 재구축을 하는 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속신앙이 통일된 교리와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보니 무당마다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에게 사막잡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소금을 뿌려서 쫒아내는 무당이 있고, 예수를 신으로 섬기는 무당도 있다.

한국에서 민속신앙의 영향력이 강했던 제주도의 경우, 구한말 정식 포교가 시작될 때, 가톨릭과 상당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재수의 난 당시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당했다. 이재수의 난을 전후하여 상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불교가 전파되던 시기, 기존 무속신앙과 새로 들어온 불교와 갈등으로 이차돈의 순교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수세기가 지나면서 불교와 무속신앙이 서로 융합하여, 무속에서도 불교용어와 개념들을 사용하고, 한국 불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가 들어오게 되었다. 몽골에서도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자, 기존 텡그리신앙의 샤먼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기도 하였으나, 나중에 서로 융합하게 된다.

현세구복적인 성향은 무당만의 특징은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종교적인 성향이 대부분 그렇다. 이북지역에 개신교가 들어오던 시기, 선교사들이 무당에게 전파하고, 무당을 따라서 동네 아녀자들이 교회로 가게 되어서 한국 개신교에는 샤머니즘이 유입되었다. 실제로 대형교회의 설교를 잘 들어보면, 샤머니즘의 현세적 기복신앙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몇몇 한국 불교 또한 달마도, 기와, 부적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는 민간신앙과 기독교를 혼합한 신흥 사이비종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4. 구성[편집]

신앙과 관련된 이상 어느 정도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감안하고 읽을 것. 아래는 흔히 무당계에서 알려진 구성이다.

4.1. 무당이 되는 법[편집]

4.1.1. 세습 계열[편집]

세습무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은 세습에 의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신통력 등을 따지기보다는 마을 대대로 무당 일을 하는 집안에서 부모가 무당이면 자녀들도 무당이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혈연 관계라도 신병을 앓다 내림굿을 받아서 신어머니(신아버지)-신딸(신아들) 관계를 맺어 활동하는 강신무들과 구분된다.

접신을 통하여 굿판을 진행하는 강신무와 달리, 세습무의 역할은 마을의 무속 신앙을 유지하는 구심점이었기 때문에 작두를 타는 등의 곡예나 묘기를 선보이기보다는 음악과 춤을 통해 마을에서 모시는 신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빌어 주는 의식을 진행하였다.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자주 관찰되는 형태의 무당이었으나,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관찰되지 않는 형태의 무당이다. 그러나 강릉단오제 전수자인 빈순애 회장처럼 강신무 중에서 일부가 결혼 등의 형태로 세습무 집안으로 들어가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있고,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진도씻김굿 전수조교인 송순단 명인처럼 강신무 출신이 세습무의 가무를 배워서 보유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형태로나마 세습무의 전통들이 유지되고 있다. 출처

4.1.2. 강신 계열[편집]

강신 계열의 무당이 되는 것도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을 받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자신이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다른 강신 계열 무당에게 신점 등을 보러 갔을 때, 강신무가 신을 알아보고 신내림을 받으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고명한 무당에게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서 이 문서를 보고 있다면, 우선 그것이 알고 싶다 1259회부터 보자. 사기꾼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을 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단지 수천 만원의 굿비를 뜯어내기 위해,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걸 알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조상님을 외치는데, 가뜩이나 근심 걱정을 가지고 무당을 만나러 온 사람은 안 속을 수가 없다. 정말로 신을 모셔야 할 팔자라면 한 사람의 무당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무당이 똑같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최소한 2~3명의 무당은 더 만나보고 결정하길 권한다. 프로그램을 본다면 알겠지만, 사기꾼 무당을 만나서 신내림의 잘못된 길로 들어가게 되면 다단계에 빠지는 것과 다름 없다. 수천 만원 돈이 깨진다!

먼저, 신내림과는 전혀 상관 없으면서 일부러 무당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궁금해하지는 마라. 무당이 된 사람은 자의보다는 신병이나 가족환경과 같은 타의에 의해 된 경우가 압도적이다. 즉,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며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한다.

일단 '무당의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병에 걸린다.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정신병이자 문화고유장애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시베리아 제 민족과 부랴트몽골 샤먼들 역시 한국과 유사하게 신내림을 받고 샤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학자들은 샤먼을 "북구 특유의 정신병적 현상"이라는 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 등의 연구를 참고하길 바란다.

귀신이 보이거나, 알 수 없는 고통이나, 각종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며 이를 무병(또는 신병)이라 한다. 대개 신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면 그런 현상이 사라지게 된다. 정확히는 신내림굿을 곧장 받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붙어있는 거짓 신령인 허주를 가려내고 올바른 몸주신을 맞이하기 위한 정화 기간을 갖기도 한다. 무당이 되고 싶지 않다면, 타 종교의 힘을 빌려 신병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더 신성한 힘으로 악귀의 병을 눌러서 치료만을 하고 끝내는 개념이다. 무속에서도 같은 개념으로는 누름굿이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신에게 직접 점지되어[23] 이런저런 수를 써도 운명을 피할 수 없어 무속인의 길을 밟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당이 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신병은 일종의 저주나 낙인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잡귀들이 무당이 될 사람을 알아보고 그의 몸을 차지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신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현대의학자들은 이러한 신병을 진찰해 본 결과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자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화고유장애"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이건 결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의 것이 아니다.

특히 부모, 조부모 세대가 무당이었을 경우, 자식이나 그 다음세대에 '무병' 등으로 신내림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당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절대 신내림을 받지 않길 바라지만, 어김없이 무병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외압에 의한 정신장애이기에, 그 외압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자식들은 아무래도 발병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신내림을 받았더라도 정식 무당이 되려면 오랜 학습이 필요하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을 신어머니/신아버지, 내림굿을 받은 사람을 신딸/신아들이라 한다. 신딸/신아들은 신어머니/신아버지를 스승 겸 부모로 모신다. 신내림을 받고 나서 무당으로써의 일(굿)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아직 굿 경험이 얼마 없는 견습생들은 '애동' 또는 '애동제자' 라고 한다.

간혹 무불통신(無不通神)이라고 해서 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계룡산 등의 명산에서 치성, 기도, 수행을 하면 내림굿을 하지 않고도 신이 내려온다. 이를 신내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굿 비용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일부 비양심적인 무당은 단순한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는 질환마저 무병이라 속이며 누름굿, 내림굿 비용을 뜯어내는 경우가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무불통신이 진정한 무당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정작 무당들 사이에선 무불통신도 내림굿은 필수다 가 정론. 신과 상호적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무불통신은 일방적 소통으로 내려온 해당 신은 몰라도, 자연의 여러 신과 소통하고 합의를 받는 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4.2. 굿[편집]

마을 행사이자 광대놀이이자 주술적인 기능을 겸하는 제사. 무당이란 말 자체가 굿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전국에는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굿이 있다. 각 지역마다 효험, 구성, 모시는 신령이나 입는 옷까지도 다르다. 굿 항목 참조.

4.3. 무구[편집]

무당들이 사용하는 도구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무당이 사용하는 도구도 지역별로 많은 종류가 존재한다.

※ 직접 휘두르거나 몸에 걸치고 사용하는 무구는 ●
※ 굿판을 장식하여 신령을 부르고 영혼을 대접하는 장식물은 ◎
  • 신칼●: 무당이 불러내는 신들의 힘을 나타내는 칼. 응원도구처럼 하얀 술이나 회전하는 금속장식을 붙여서 쓴다.
  • 무당방울 / 무당부채●: 불쌍한 영혼은 달래고, 나쁜 귀신은 쫓아내는 진혼용 무구. 1m가 넘는 색깔 천을 붙여서 화려하게 휘두른다.
  • 삼지창●◎: 굿판의 위치를 알리는 상징물. 신령들에게 바치는 제물(돈, 돼지, 옷감)을 꿰어놓는 표식이기도 하다.
  • 오색깃발●◎: 오방색 천을 붙여놓은 깃대이다. 부채와 삼지창의 중간적인 용도를 지닌다.
  • 작두●◎: 접신했을 때, 칼날 위에 올라타면서 무당과 신령이 하나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용도.
  • 악기류●: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잽이)들이 사용한다. 무당이 직접 이나 장구를 치면서 흥을 돋우기도 한다.
  • 경판◎: 주로 독경을 읊는 법사들이 사용하는 소도구. 화려한 예술품이다.
  • 지화◎: 종이꽃. 저승의 을 표현하는 장식물로서 영혼을 상징한다. 화려한 장식품.
  • 허개등◎: 동해안에서 신령들을 불러들이는 목적으로 높은 곳에 매달아놓는 등불이다. 화려한 장식품.
  • 신장대●: 신을 부르는 세습무의 무구. 일본 신토의 고헤이와 유사하다.
  • 무복●: 무당이 입는 옷. 보는 사람에게 환각을 주도록 불편할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한다. 무복 문서 참고.
  • 파라솔 & 비치볼: 본래 무당들은 '대'(삼지창)를 세울 때 '깃'(5색깃발)을 달아서 신령들에게 굿판의 위치를 알렸다. 하지만 현대 무당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인 강신무이며, 전통적인 재료에 집착하지 않다보니 흔히 구할 수 있는 장난감이나 일상용구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근처의 동네 점집에서 파라솔이나 비치볼을 본다면, 파라솔=삼지창, 비치볼=오색기라고 생각하자.
  • 장교 전투복●:무복을 현대판으로 어레인지한다고 해서 영관급 장교 계급장이 달린 전투복을 무복 대신 입기도 한다. 준장이 방문하게 되면 바로 벗는다 카더라.

이런 것들은 만물상이나 불교용품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 목록에는 없지만 자 모양 스티커가 있는데 불교와 상관도 없는 점집에서도 은근히 卍자를 깃발로 매달고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들이 이걸 보고 기겁하는 경우가 많다. 기사. 무속인들은 과거처럼 무구를 예전처럼 하나하나 주문제작하기보다는 만물상이나 불교상에서 무속인용 세트를 파는 걸 쓰는 경우가 늘면서 세트로 딸려오는 자 스티커를 붙이는 것. 실제 200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저술, 민속원에서 출판된 학술연구서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라는 책에 따르면 현대에 들면서 만물상을 통해 구입하거나, 무속인 단체에서 기계로 만드는 경우가 늘면서 예전처럼 개인이 주문 제작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5. 무당의 종류[편집]

5.1. 세습무와 강신무[편집]

한국의 무당은 주로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뉜다. 세습무는 사제무이라고도 부르며 신내림 없이도 마을의 축제를 대대로 배우고 물려받는 직책이다. 강신무는 신내림이 와서 자신의 몸 안에 신을 모시는 개인적인 형태의 무당을 말한다. 즉, 세습무는 특정한 지역의 신체를 모시며 대물림되는 축제의 신관에 가까우며, 강신무는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거나 세습무를 돕는 프리랜서 형태의 무당이다.
세습무와 강신무의 차이점
요소
세습무
강신무
신체
(神體)
마을의 성물, 성소, 신목
자신의 몸
생활
축제가 없을 때는 치성과 수행을 제외하면 일반인처럼 생활함
평소에도 몸속의 신을 위해 무복을 입고 치성하는 비율이 높음

본디 이남에서의 굿은 세습무들이 중심이었다. 강신무는 세습무를 도와 굿하는 날을 잡거나 대[24]를 세우거나 신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거나, 굿의 부수적인 작업을 전문적으로 단련하여 서로 분업하였다. 기본적으로 굿은 다양한 사설과 노래와 과 진행과정을 배워야 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이끌어가는 쇼맨십이 필요한데, 이는 어려서부터 혈족들의 굿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익힌 세습무라야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 받은 무당들은 대부분 세습무다.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된 경우도 있다. 강릉단오제: 빈순애 무당(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김윤수 심방(무당의 제주어)(세습무)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이들은 각각 선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의 며느리, 조카로 전승받은 세습무이다.

당연하지만, 세습무는 수백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전통이라서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현재 보존회를 만들고 문화재청에서도 관심을 받는 만큼 꼭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본인이 전수받겠다고 나서면 받아준다. 그러나 무형문화재 전수자를 인정받는데 말 그대로 평생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못 버티고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 진짜배기 무당이 되려면 수행만으로도 매우 어렵고 괴롭다.

물론, 강신무도 중요한 행사에 초청받는 분들은 인적문화재로서 꽤 중요한 지위를 지닌다. 예를 들면, 작두 계단을 잘 타거나 입담이 좋은 강신무는 다양한 축제마다 서로 모셔가려고 했을 정도로 전문성에서는 세습무보다 더 뛰어난 점이 많은 인력이었다. 세습무는 문화적인 가치가 높은 지역신앙의 중심, 강신무는 전문성과 고급기술로 살아남는 무당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습무들은 마을 축제가 없을 때는 평범한 동네 주민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감이 있다. 심지어, 마을의 바깥 일에는 무속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 편이다. 세습무들은 본디 마을 단위의 성소를 모시는 무당이었으므로, 마을 바깥에 대해서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애초에 자신의 당골판 바깥은 다른 종교 혹은 무당의 영역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않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강신무들은 평소에도 무복을 입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특유의 비즈니스적인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에도 잘 맞는 편이라서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근대 이후로는 세습무 전통이 파괴되어 버린 마을이 많아서, 강신무들이 지역 축제를 대신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세습무(사제무)들은 마을이나 공동체가 안정되어야 나타날 수 있는 종류의 무당이다. 반대로, 강신무들은 자신의 몸이 신체이기 때문에 몸만 있으면 신령을 모실 수 있으며, 항상 신전을 보살피듯이 수행에 돈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벌여야 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 최적화된 무당이 강신무였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다양한 문화가 파괴되면서 세습무는 남쪽에서만 그 명맥을 간신히 잇고 있다. 이는 한국전쟁 후 사회의 변천으로 기존의 민간 문화와 성소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강신무들은 지식이 부족해도 신기로 점을 치거나 신통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대다수의 무당들이 강신무이며 '만신' 이라는 이북식 표현도 많이 쓰인다.

5.2. 법사, 점쟁이[편집]

법사(독경쟁이)는 독경이나 주문을 읊어서 굿의 효험을 높이거나 귀신을 쫓으며 무경(무교의 경전)을 배운 사람이다. 점쟁이(역술인)는 굿은 하지 못하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이다. 본디 무당은 굿을 하는 사람만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새는 이들까지 무당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충청도 지역에서는 독경을 읊는 법사도 공식적으로 무당에 속한다. 당연하지만 법사도 무경만 읽는 건 아니고 주술의례를 행할 줄 안다. 다만 큰 굿을 할 때 보통 가장 중요한 강신을 여성 무당들이 할 뿐이다.

특히 충청도는 앉은굿(혹은 양반굿)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지방이다. 덕분에 전반적인 의례에서 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굿과 제사를 앉아서 진행하는 독특성을 띤다. 덕분에, 독경/주문을 중심으로 하는 법사와 강신을 중심으로 하는 보살(무녀)이 함께 굿을 행하며 비슷한 중요성을 지닌다.

현대에는 법사와 무당을 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법사와 무당은 엄연히 달리 취급 받았다. 신내림을 받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을 경을 외워서 법사를 한다고 송경법사라고 하였다. 여기서 수행이나 기도를 통해 영적인 능력을 틔운 도사에 가까운 법사를 영법사라고 하였으며, 신내림을 받은 법사를 영신법사라고 하여 각각의 법사의 역할을 달리 구분했다.

사회적인 부분에서 살아남기 유리한, 강신무를 겸하는 영신법사가 대부분이지만, 도교적 수행법에 몰입하거나 단순히 기도를 하다 무불통신으로, 특히 도사 신령과 접한 이들이 그대로 영법사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다.

법사가 무당보다 희소한 직업이다. 덕분에 둘을 겸해서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위의 충청도 제사에서 법사는 전문적인 무경의 암송과 운율을 맞추는 법, 의례용구 만드는 법처럼 오랫동안 수준 높은 학습이 필요하다. 자연히 힘들고 지원자도 적다. 요즈음은 종종 인터넷 불교용품점에서 충청도 무교에서 쓰는 설경을 팔기도 하는데, 이러한 설위설경(설경)을 보면 토가 나올 정도로 복잡하다. 참고로 충청도의 설경은 직접 손으로 칼을 잡고 하나하나 뜨는[25] 게 원칙이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엄청 복잡하다. 보기만 해도 억소리 나올 정도.

5.3. 박수와 무녀[편집]

박수는 남자무당이다. 무녀는 여러 종류의 여성 무당을 한자어로 칭하는 표현이다.

박수의 어원은 백제 시대의 관직 박사라는 설도 있다. 현대에는 보통 무당이라는 표현으로 어우르는 경우가 많다.

5.4. 악사, 잽이[편집]

굿이나 무교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은 전문적으로 무교에 관련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필요하므로 무당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종종 남사당과의 연결고리도 있다.

5.5. 애동제자, 신딸/신아들[편집]

애동제자는 신기를 받았지만 아직 무당일을 하지 못하는 견습생을 뜻한다. 제자를 빼고 애동이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내림굿을 해준 무당과 받은 사람은 신딸/신어머니라는 관계로도 불린다. 남자의 경우, 신아들/신아버지라고 불린다.

6. 지역별 무당: 만신/화랭이/단골레/심방/소미[편집]

만신은 이북에서 영험하고 고명한 무당을 뜻하는 단어이다. 무당이 섬기는 신을 만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북식 무당들이 많이 남하하면서 한국에서도 무당의 별칭으로 자주 쓰이는 명칭이다.

화랭이는 경상도에서 무당을 돕는 보조적인 직위를 나타내는 호칭이다. 잽이(악사)도 화랭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어원은 고대의 화랑이라는 호칭이 천년 정도 지난 이후, 동성애적이고 신관적인 코드가 화랭이라는 호칭으로 열화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단골레는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부르는 호칭의 하나이다. 한 지역에서 오래 무당일을 하는 세습무와 그 신도들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쓰며, 현대 한국어에서 보편적으로 '한 곳에 자주 들르는 손님'을 뜻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심방은 제주도의 무당 구분 중 하나로서, 신의 아이라는 뜻이다. 세부적으로는 남녀에 따라 소나이심방(남)/예폔심방(여), 직책과 영력에 따라 다른 심방들을 이끌며 굿을 주도하는 심방을 수심방, 어느 굿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심방을 큰심방, 큰심방만 못한 평범한 심방은 족은심방, 수준이 매우 높아 본향당(제주도에서 마을의 신당을 부르는 말)을 관리하는 심방은 당맨심방이라고 한다.

소미는 제주도의 구분 중 하나로서, 영력이나 경험이 심방만도 못해서 간단한 굿이나 축원, 굿의 보조 일을 하는 주술사를 말한다. 육지의 화랭이와 비슷하다. 다만 소미도 소미 나름이라, 굿과 무악을 잘 알고 능력이 출중해 심방이 종종 실수해도 뒷바라지를 잘 해줄 수 있는 소미는 접소미(신소미, 수소미)로 불린다. 그렇지 못해 잡일이나 하는 소미는 폿소미, 혹은 안체포나 나른다고 안체포소미라고 부른다. 제주도에는 '심방이 서툴어도 굿을 할 수 있지만, 소미가 서툴면 굿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굿에서 소미의 역할은 중요하다. 서포터 없이 이길 수는 없는 법 아예 여러 심방들이 합동으로 굿을 하면서 심방과 소미 일을 돌아가며 하기도 한다.

7. 현대의 무당[편집]

7.1. 현대를 사는 모습[편집]

현대 사회는 옛날처럼 대놓고 천민 취급을 하는 유교시대가 아니며, 정말 어려운 수행을 받는 무당은 민족문화의 계승자로서 인정해준다.[26]

수입이 억대를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제법 있다. 굿 한판에 천만 단위의 돈을 벌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작은 굿이라도 명절 상차림의 곱 이상으로 가격이 들어간다. 당골에 한정하면 작은 굿은 수백만원짜리도 있지만, 굿 가격에는 무당의 인건비만 해도 상당하다. 한번 굿을 하면 무당만 있는 게 아니고 독경하는 사람, 상 차리는 사람, 심부름하는 사람, 또 주례하는 무당 혼자 감당이 어려울 경우 따로 초빙하는 무당, 북 같은 악기를 치는 사람 등등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들이 모여 움직이는 회사 같은 건데, 어쨌든 이 사람들에게도 인건비는 나가야 하므로 돈이 많이 든다. 정재계에서도 무당을 믿는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소문만 잘 나면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서울의 무교 문화는 순수한 남한의 문화가 아니다.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의 무속인들이 대거 남하하여 서울굿은 북한식과 옛 남한식이 뒤섞여 있다. 때문에 서울굿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북굿, 이북방울처럼 북한 지역의 흔적이 많다. 상을 차리는 순서나 열의 위치부터 주로 사용하는 무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지역별 특색이 있다.[27]

하지만, 불과 몇백년전까지 토속신앙의 전문가였던 무당과 그 무속은 기독교, 불교 등 기성 종교로써의 질서와 체계성을 갖추지 못한 채 미신으로 소비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현세주의, 현실주의자 성향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배격하려하지만, 실제로는 음성적인 형태로 소비되는 형태로 왜곡되어 살아남은 상태다.

한 때 tvN을 위시한 케이블 채널에서 인터뷰 대상으로 과도하게 선호하던 직종이었다.[28] 일단 전문직업에 속하는 만큼, 오컬트 프로그램에서 퇴마사로서 자주 등장한다. 물론 활약상은 작가들이 써놓은 각본에 따라서 다르다. 심지어 주작이 아니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였는지, 현지의 무속인을 섭외했는데 촬영 전에 각본 숙지가 잘 되지 않은 건지, 현지 무속인은 사건의 원인이 된 원혼의 실체를 밝힌 후 위령한다고 술을 원혼이 깃들었다(고 주장하는)는 나무에 뿌렸는데, 옆에서 주연을 맡은(?) 김X기 법사는[29] 그 원혼을 자신의 몸에 가두었다고 얘기했다. 또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귀신이 자주 목격된다는 녹음실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확인 과정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장나는 기이한 현상이 밝혀졌다. 그런데 잘 보면, 같이 출연한 퇴마사를 자청하는 무속인이 제작진이 확인하기 직전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대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이비 무당들에게 광고 혹은 뒷광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엉터리 무당들이 신내림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상황을 고발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한 사기꾼 무당은 모 엑소시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가로 시즌 당 6천만원 정도를 냈다고 인터뷰했다. 재방송을 통해 많은 인지도를 얻어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고.

아무리 고명한 무당이라도 자식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저주와도 같은 신내림을 자녀에게만큼은 피해갔으면 하는 연민과 세간의 시선이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모가 무당이면 그 자식에겐 필히 대물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식만큼은 절대로 무당이 되지 않길 바랐으나, 시간이 흘러 자식마저도 신내림을 받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린다. 사실 자식이 3D직업 종사하는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물론 반대로 어떤 무당의 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굿하는 걸 보고 자라 어머니가 평소에 하는 무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는데도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고 있었다. "정작 그 어머니는 생판 남을 신딸, 신아들로 삼고 물려주고 있다"고, 일제강점기 무속을 연구한 일본인 기록에 나와있다.

결론은 케바케. 그리고 그 일본인이 그 책에 진짜 무당과 가짜 무당을 구별하는 법을 썼는데,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분위기를 타도, 굿할 때 눈빛 바뀌는 건 가짜가 진짜를 못 따라한다고.

토요미스테리 극장의 실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고명한 무당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성이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의 직업이 창피하기도 하고, 미신을 전혀 믿질 않아서 어머니와 다툼이 잦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점을 쳐주거나, 아들의 책가방에 몰래 부적을 붙여놓는 바람에 어머니께 화를 많이 냈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은 성장해서 선원이 되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 나가려던 도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는다. 놀라서 급히 집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어머니는 멀쩡했다. 속았다는 사실에 아들은 화를 냈지만, 자기가 타려던 배가 침몰되는 바람에 동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실 어머니는 아들이 그 날 배를 타면 안 된다는 점괘가 나와서, 일부러 아들을 살리려고 꾀병을 부렸던 것이다. 아들이 배에 탔으면 아무도 안 죽었을 수도 있다(…)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점괘나 신기를 믿게 되었고, 자기도 무당이 되어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화를 냈다고 한다. 자기 자식만은 무당이란 직업을 갖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보라며 집에서 쫓아내더니, 그 날부로 아예 수십년을 해왔던 점집마저도 그만두었다고 한다. 무당도 가족 앞에서는 평범한 사람이다. 실제로 사연의 주인공이었던 그 어머니의 인터뷰까지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흠좀무.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의외로 정치인, 재벌, 사업가들이 무당이나 미신을 신봉하는 경향이 강하다. 높으신 분들이 무속인이나 역술인들과 교류가 잦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주변에 큰 사업이나 사회적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 성당, 사찰을 다니더라도 점집에 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단호하게 금한다. 출애굽기(가톨릭은 탈출기)에서 Suffer not the witch to live(너는 무당을[30] 살려두지 말라)라는 표현이 있고, 레위기에도 역시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는 구절까지 있다. 신약시대에도 바오로 등 사도, 교부들이 앞장서서 주술과 미신, 이단을 타파한 기록들이 많다.

불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와 섞여 에 산신당이 있다거나 하는 형태로 혼합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근본적으로 을 치고 미래를 보는 행위를 금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조선 말기 기행으로 유명한 경허선사도 제자 만공이 수행 중 잠시 타심통이 열려 점보는 스님으로 전업하자(?) 따끔하게 꾸짖고 올바른 길로 가게 지도했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불교가 오래 된 종교라 친숙함이 있는 바람에, 종단협에 소속되지 않은 불교 군소종단 쪽에서 무당 행세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점집 앞에 만() 자 깃발을 올리고 신당에 불상을 놓고 법당이라 부르고, 머리를 깎고 승복도 입으며 스스로 xx법사, OO선사라 칭하며, 한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현대에서는 다른 직업을 겸하는 무당이 많다. 투잡 타로 카드를 배워서 타로카페를 열고, 타로카드 단 하나만 보는 타 카페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본래 직업인 점괘사주팔자굿 등등과 겸하는 케이스가 제일 본래의 적성(?)을 잘 살린 케이스.

하지만 아예 상관없는 직업으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보험, 비즈니스 관련 직종이면서 무당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겉으론 식당주인처럼 소탈한 직업을 지닌 무당이라도, 사업 이야기에서 무속을 언급하면 의심부터 하자. 심지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이름이 있는 무당이라서 안심하고 찾아갔더니, 지방 조폭(!)에 연관된 무당이어서 돈을 뜯겼다는 경우까지도 있다.

대중적으로는, 간교하거나 웃긴 직업으로 유머거리가 되는 편이다. 외모에 반하면 안 되니까 전화해서는 안 된다

대체로 집값이 싼 단독주택가나 빌라촌에 사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동네의 집값이 떨어지면서, 멀쩡했던 주택이 무당 암자로 하나 둘 변하면서 무당촌이 되어버리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공장지대가 근처에 있으면 중국 조선족 식당이나 상점들도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간혹 낙후된 임대아파트 단지에도 무당이 사는 경우가 있다.

도축업자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VIP 고객이다. 일단 큰신을 받은 무당들은 신을 위해 제사를 매일 올리는데, 특히 산신을 모시는 무당들은 고기를 제사상에 꼭 올리다보니 산신을 위해 가장 질좋은 고기를 의무적으로 올린다. 이때문에 가장 값나가고 맛좋은 고기들을 가장 많이 사가는 사람들이 무당들이다. 이때문에 도축업자들 입장으로썬 최고의 단골손님이며, 만약 그 단골이 큰신을 모시는 무당이라면 알아서 돈방석에 올려주는 사람들이다.

7.2. 여러가지 문제[편집]

한국 전통문화라는 인식이 있어 주변에서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그에 걸맞은 인품을 지니거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격자들도 있다. 하지만 반감을 주는 사기꾼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 가족이 점에 빠져서 귀신 쫓아내느라 굿판을 벌인다고 전재산을 홀라당 날려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으나, 그래도 완전히 근절되고 있진 않다. 원래 "무당이 지나치게 돈을 밝히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무당과 혈연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신병[31]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남들에게는 판타지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이들에게는 당장 현실로 다가오면서, 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세간의 인식도 있어서 무당에게는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례가 공론화되는 일은 거의 없고,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례를 한 가지 들자면, 어머니가 무당인 어떤 사람은 어릴 적부터 귀신 같은 것이 온 세상을 뒤덮은 모습을 보며 살아야 했으며, 눈앞에서 친구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차려보니 친구에게 컴퍼스 바늘로 상해를 입히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워져 가는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 그런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런 정신병에 걸린 것과 다름없는 경험을 하는 무당 자녀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길거리에서 영혼이 맑아보인다며 접근하는 사람들 역시 사이비지만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종파이다. 대순진리회가 무당에서 발전한 아류? 그나마 맑은 영혼으로 신을 받든다고 하지만, 굿을 하지 않으면 가족 중 누가 죽는다느니, 조상신이 심하게 노했다느니 하며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 사람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많다.

물론, 이는 무당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대다수의 무당은 자기 수행 및 생존 비용이 필요한데, 굿판을 벌일 기회는 1년에 4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굿은 본래 마을 행사였기에 의외로 준비 비용이 비싸다. 결국, 전국적으로 프랜차이즈 형태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한, 작은 규모의 종교인들은 최대한 비싼 계약을 맺는 사업가 형태로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에게 받는 고해성사나 개신교 목사에게 받는 신앙상담도, 넓게 보면 카운셀링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게서 직접적으로 막대한 금전을 지불받는 방식은 체계화를 이룬 현대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적어도 고해성사나 신앙상담을 명목으로 금전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본래 어떤 종교든 교회 유지를 위하여 신자에게 어느 정도 금전적인 부분을 요구하게 되지만, 무당처럼 큰 액수의 금액을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현대 기준으로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일부 종교에서 문제가 있는 종교인(먹사)들의 일탈이 있다고 해도, 제 정신이 박힌 종교라면 직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강령은 아니다.

무당이 성직자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무당은 체계화된 종교의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오랜 기간 다듬어진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에게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묻고 상담을 받으러가는 느낌으로 무당을 만났다가는 무당의 개인적인 말빨에 휘둘려,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그 무당에게 심리적으로 구속된 상태로 돌아오기 쉽고, 진실로 자신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만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따라서 무당을 만날 때는 특정 분야(무속)의 사업자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계약서를 쓴다는 생각으로 만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곧 무당에게 내가 어떤 형태의 퍼포먼스를 원하는 지를 정확히 말하고 그 무당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면 거기에 드는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또한 무속인은 성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사이비가 많다. 무속인이 되는 것은 가톨릭/정교회/성공회 사제는 물론이고 개신교 목사나 불교 승려가 되는 것보다도 훨씬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범죄자들, 사회부적응자들이 무당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므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7.3. 무당과 관련된 질병[편집]

종종 무당의 활동을 눈으로 보면 찾아오는 증상에 대해선 신병 문서 참고.

7.4. 인간문화재도 많은 극한직업[편집]

실질적인 무당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다. 문화재청이나 전통협회에서 밀어주는 제대로 된 무당들도 많다. 특히 국제적인 유네스코에서까지 공인받는 무당들은 위의 사기꾼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문화재급 무당은 육체적, 정신적, 학문적으로 엄청난 수행을 통과한 초인들인데, 실제로 무교에 통달하려면 이게 과연 인간의 삶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고행 속에서 살아야한다.

진짜 무당은 엄청난 고행으로 만들어지는 전문직이다. 흔히 생각하는 개인 사업자 형태가 아닌, 제대로 자리를 잡은 무당 루트를 타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과 노래와 역사 같은 전통문화를 몸으로 수련하고, 관련연구자들과 교류하는게 기본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단순한 장사치와는 거리가 멀고, 국내외 문화단체에서 인간문화재로서 인정받은 무당들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분들은, 굿도 못 하면서 유명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사기꾼들보다도 인지도가 낮다. 높으신 분들은 문화재 보존이랍시고 세금(?)이나 축내는 사람들이라며 전통적인 무당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멸시받기 일쑤다.

대표적으로 만신 김금화 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기를,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서 미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국영사관 직원들이 김금화 옹이 차려입은 무복을 보곤 "나라 망신 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무대에 못 나가게 막았다.

이 때 다른 공연 다 끝나고 카펫 걷고 관객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판에 김금화 만신의 미국 공연을 제의했던 조자용 선생이[32]가까스로 미국 영사를 설득했고, 김금화 만신을 떠밀어서 무대에 올라갔고, 죽기살기로 한두 거리 굿을 하고 작두를 타 보였다. 결과는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의 기립박수.

김금화 만신은 무속인한테서 "당신은 신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더러 "그렇다, 당신 신 받고 무당되어야 할 팔자다"라고 받아주지 않고 "가서 절이나 교회(!) 다니면서 기도하고 살아라"하고 돌려보낸다. 기사

하지만 현실에서 노래, 독경, 까지 몇시간씩 해내는 완벽한 무당은 의외로 숫자가 적다. 무당을 마스터했다면, 돈벌이보다는 무당 자체에 의미를 두고 빡센 수행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사기꾼이 될 수 있는 수단이 널렸는데, 작두타기, 유리밟기, 몇시간씩 노래하고 춤추기 같은 고행을 10년 이상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종교라는 측면에서 볼 때 무당이 점유하는 지위는 사제 혹은 신관과 정확히 같다. 어떤 종교건 제대로 된 성직자라면 속세의 부귀영화와는 자기 직위에 맞는 최소한의 연만 두고 자기 수행과 수련을 하며 이는 무당도 예외가 아니다.

8. 창작물의 무당[편집]

8.1. 푸대접 받는 직업[편집]

일본의 무녀&음양사, 서양의 마녀/마법사드루이드가 해리 포터 시리즈[33] 등의 매체로 인해 신비한 이미지로도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의 무당은 창작물에서도 푸대접을 받는다. 도술은 신선도사홍길동이나 전우치, 기타 무협물이 더 유명하고, 무당은 약초 등 각종 재료를 이용해 물약 등 각종 약을 만드는 마녀/마법사, 드루이드[34]와는 달리 약을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병에 걸린 사람에게 굿을 하는 묘사가 나온다. 그래도 을 춰야한다는 걸 이용해 무용 관련[35]으로 엮어볼 수는 있지만 후술하듯이 무교 정보도 물론이고 국내 무속 춤 관련 정보도 취재 없이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그나마 영매 쪽을 살려볼 수는 있으나 오컬트 장르에서 퇴마사나 구마사제가 활약하는 데에 반해 무당은 취급이 좋지 않다. 사기꾼으로 나와 돈을 뜯어내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사악한 주술을 부려 저주를 내리는 악역을 도맡는다. 또한 입이 상당히 거친 욕쟁이에 상대를 향해 반말은 기본으로 달고 다닌다. 무엇이든 물어보살

또한 시종일관 잡귀의 소행이나 XX하면 부정탄다는 말은 하나의 정형화된 클리셰이다. 영화 곡성만 봐도 황정민이 맡은 무당은 나이 불문하고 상대방한테 반말을 찍찍 하고, 다소 거칠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다른 매체에 나오는 무당들도 대체로 비슷한 말투를 쓴다.

게다가 전설의 고향이나 퇴마물을 다룬 매체에서도 나름 '용한' 무당들이 괴이를 해결한답시고 나서다가 악령에게 역관광 당한다. 더불어 '내 힘으로는 답이 없다'는 대사를 치며 꽁무니를 빼는 것은 옵션. 무당이 데꿀멍하거나 버거워하는 일을 기성종교에서 해결하는 클리셰가 많다. 주로 신앙심이 깊은 승려나 사제 등이 일을 해결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검은 사제들과 퇴마록이 있다.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무당들 취급이 좋지 않고, 대신 가톨릭 신부들이 신앙의 힘으로 악령을 퇴치한다. <전설의 고향>은 특히 무당이 못하는 걸 지나가던 스님들이 나서서 다 해결해준다.

굳이 따지자면 퇴마록의 경우는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준후가 무속인(도사)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데다(무속과 밀교 등 동양종교에 해박하다는 설정) 주요 등장인물들이 가톨릭 신자만 있는 아니고 불교나 무속, 중국 도교, 인도 힌두교에 일본의 신토이집트 신화드루이드교(켈트 신화)까지 등장하니 특별히 가톨릭 하나만 두드러지게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소설은 기독교(주로 개신교)도 깔 때는 엄청나게 깐다. 다만 박신부나 준후는 주인공이라 보정을 많이 받는 편이라 어찌저찌 해결하지만, 중간중간 짧게 등장하는 무속인들의 취급은 썩 좋지 않다. 그나마 장군신을 모시는 최철기 노인이 등장해 활약하지만, 이 사람도 결국 조연 그 이상의 비중은 없다.[36] 결정적으로 퇴마록에서 준후가 배워서 쓰는 술법 중 밀교나 도교계 술법에 비해 무녀 을련에게 배워 익힌 무속계 술법들은 대부분 수명을 깎아먹는다는 설정이 붙어있고 유독 이 점이 강조된다는 특징이 있다.

검은 사제들의 경우 무당들이 비록 악령을 퇴치하는 데에는 실패했어도, 적어도 신통력 자체는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중 등장하는 무당인 제천법사는 김범신 베드로 신부와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며 인간적인 교분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되며, 제천법사 일행은 빙의당한 소녀의 몸에 들린 마귀 중 격이 높고 기독교 세계관의 악마인 마르바스는 미처 눈치 못 챘지만 함께 붙은 한국 토종 마귀인 쌍두사 마귀는 감지해냈다. 다만 제천법사와 딸의 존재 자체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진 않으며, 둘은 작중에서 전투력 측정기로 소모되는 캐릭터이긴 하다.

심지어 아군으로 나오는 상황도 보기 힘들다. 김은정의 굿타임처럼 주인공으로 나오더라도 뭔가 심하게 비뚤어진 악질이거나 허당이거나 신통력이 시원찮은 개그 캐릭터. 현실에서 각종 편법으로 돈을 벌다 보니, 묘하게 주인공 보정을 못받는다.

그래도 가끔씩, 도덕적이고 신비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주로 웹툰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런데 외국 매체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이 토착 종교나 원시종교가 다소 부정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초에 불교나 기독교는 선교 과정에서 현지 종교와 퓨전이 되는 방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전도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사극의 경우 작중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대부분을 맞히는 신통함을 보여준다. 작중 등장인물의 병 하나도 못 고치고 "차도가 보이지 않습니다."라는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어의보다는 훨씬 낫다는 우스개도 있다. 물론 당대에는 바로 얼마 뒤에 벌어지게 될 사건들이고 시대가 훨씬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야 '그렇게 되었다'고 결론이 다 정해져 있는 일들이다. 해당 사극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건의 전개와 결말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시청자들 입장에서야 웃음이 나오겠지만, 작중 인물들의 시각에서 보면 용하기도 그렇게 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판자들도 진짜 무당이 얼마나 빡센 직업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다수의 창작물에서 선역으로 묘사되는 무당 캐릭터는 현실이라면 지역구 문화재급의 인적자원이다. 특히, 유명한 지역구의 굿거리를 맡는다는 설정이라면, 역사적인 가치까지 지니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중도탈락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고행을 평생 해온 사람들이니 그 노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별개로 국가 막장 테크의 단골 소스로 등장한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런데 당장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고 위세를 떨친 진령군이 있고, 삼국시대(중국) 촉한의 유선이 황호와 무당의 말과 점괘만 믿고 등애의 침략을 등한시 하다가 나라가 망하는 등, 실제 역사에서도 나라를 망치고 좌지우지하는 요사스러운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다.

최순실의 등장 이후로 사실상 무당의 이미지는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영세교는 무당과 전혀 관계없는 근본없는 사이비 종교임에도, 영세교에서 한국 미신을 여럿 따온 터라, 많은 사람들이 국정농단사태를 비판할 때 최순실을 무당으로 비유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 예로 광주에서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와 각종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공연이 있었다. 무속인을 초청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살풀이굿을 하자, 관중들이 "정부 비판 공연인 줄 알았는데 사이비종교 공연이었냐!!"며 욕을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굿이 끝나자 다들 돌아왔지만, 이것을 본 사회자가 "최순실 때문에 이제 한국 민속신앙에 뿌리를 둔 전통예술은 끝장난 것 같다"고 푸념했던 일화가 있을 정도.

무속인들의 모임인 무신교총연합회에서도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비판 때문에 참다 못해서 "최순실은 무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다"라고 강하게 비난하였다. 생명평화마을 대표 황대권[37]은 경향신문[38]에 "샤머니즘을 욕되게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따지고 보면 한국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가 한국에서 그렇게 빠른 시간에 성장하고 그 수많은 신자들을 거느리는 메이저 종교가 된 원인도 따지고 보면 샤머니즘의 원리에 기댄[39] 덕분이 아니었냐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8.2. 무당의 자식[편집]

무당의 자식, 가족, 화신이라는 캐릭터 분류가 있다. 현실의 사이비 무당으로 대표되는 사업자들의 부도덕한 속성을 제거하고, 전통적인 설정만 빌려와서 쓰는 사례. 중대한 클리셰의 하나로서 분류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설정이다. 현대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무당은 이런 캐릭터들이 많다. 현실에서 무당의 이미지가 나쁜 것도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진짜 무당을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강신굿을 할 수 있는 무당들은 최소 10년 이상 수행한 사람들인데, 웬만한 창작자들은 이런 삶을 묘사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한다. 애초 취재 없이 묘사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 무당에 대한 자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것들 중 쓸만한 자료들은 경우 대개 학술자료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묘사와 설명이 필요한 창작물에서 쓰려면 결국 무당들을 찾아 다니며 직접 취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무당의 핏줄, 가족'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무당이란 직업 자체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수행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식들에게도 물려주지 않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무당들이 많다. 하지만 동시에 무당은 세습무라 하여 대를 이어서 무당을 하거나, '무당의 자식'이라는 그 이유로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신내림을 받아서 강신무로 활동하게 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모자식의 세대 갈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여기에 현대 대중들의 무당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복잡한 형태의 대우까지 더해지면 '무당의 자식'이란 설정은 좋은 클리셰로 각색하기 쉽다.

이런 부류 가운데는 신학을 배워 가톨릭 사제 내지 개신교 목사(집사)가 되어서 자신의 '신실한 신앙심'(?)으로 무속 혹은 불교 등 '미신'에 빠져 살던 부모님을 감화시키고 개심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는 식의 간증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꽤 나온다. 물론 불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사교를 믿던 자들을 부처의 가르침에 귀의하게 하였다는 초기 불교의 전승도 있다. 위에 언급한 소설 무녀도처럼, 이런 식으로 무당과 무교와 연관이 없는 무당의 자녀/손주, 혹은 다른 종교 성직자/신자가 된 무당의 자녀/손주의 충돌을 소재로 한 창작물도 적지 않다.

8.3. 기타[편집]

일반적으로 무당, 즉 무속인이 쓴다고 여겨지는 무구나 부적 등을 전투에 활용하는 캐릭터의 비중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이런 영웅은 싫어의 헤이즈는 악령들을 봉인해 놓은 부적으로 인신매매범들을 제압, 구속한 적이 있다. 악령의 포켓몬 마스터 귀전구담의 그 여자 이야기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무당은 '그 여자'에게 비과학적인 힘을 통해 인생을 결정 지을 선택을 하게 하는데, 이처럼 주인공의 인생을 바꾸거나 점을 쳐 주인공의 미래를 예측[40]해 떡밥이나 복선을 뿌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주인공 역시 귀신을 보거나 다룰 수 있는, 일반적으로 영력이라 불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41]가 많다.

8.4. 무속인/관련 캐릭터[편집]

완전한 무속인은 ◆. 무당의 자녀/손주, 화신처럼 전통 무속의 설정만 빌린 캐릭터는 ◇.

무녀 문서와 함께 보면 좋다.

8.5. 무속인, 심령 관련 프로그램[편집]

공포체험보단 다분히 오컬트적인 성격을 띈 국내 프로그램이 많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들이 흔히 그렇듯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출연자들의 인격이나 자질도 전혀 검증이 되지 않았다.
제41조(비과학적 내용)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되며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에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방송분 전체가 대놓고 방송심의규정 제41조를 뭉갠 프로그램이고 실제로 경고까지는 줬지만 무사히 방영이 되었다.
  • 고스트 스팟 시즌 1, 2, 3 - (코미디TV 채널): 2008년때 국내 타 방송채널에 방영했던 공포체험을 즐기던 매니아들에게 꽤 인지도가 있었던 프로그램이다. 당시 무속인과 체험을 가진 독특한 프로그램들이 드물었을 때, 이 프로그램이 등장하여 큰 화제와 논란이 일어나서, 방송위원회에서 비과학적이고 종교적인 문화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릴 뻔 했던 적이 있었지만, 무사히 마지막 시리즈까지 전부 마무리 방영 하였었다.
  • 미스터리 헌터스 - (코미디TV 채널)
  • 트루스토리 레드아이 - (y☆star 채널)
  • 특종헌터스 공포특집 - (y☆star 채널)
  • 미스터리극장 위험한 초대 - (internet-TV채널)
  • 엑소시스트 - (tvN 채널)
  • 신 엑소시스트 - (리빙TV 채널)
  • 소름채널 - (유튜브 채널)
  • 베짱이엔터테인먼트 - (유튜브 채널)
  • 메이드인 스튜디오 - (유튜브 채널)
  • 기묘한 이야기기묘한 티비 -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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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청자들의 눈이 덜 아프도록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졌다.[2] 굿판을 현대적인 의미로 애둘러 '행사'라고 표현한다.[3] 이북에서 큰 무당을 부르는 말. 무당들이 섬기는 신을 만신이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북식 강신무가 대세가 되면서 널리 퍼진 말이다.[4] 굿할 때 악사와 보조적인 인원들도 화랭이라고 부른다. 같은 뜻의 말은 잽이.[5] 전국적으로 세습무를 뜻하는 단어로도 널리 퍼졌다. 무당의 신도들을 당골, 단골이라 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러한 신도 조직은 당골/단골판으로 불린다.[6] 시대에 상관 없이 주로 사회적으로 여성 무당을 칭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현대 한국에서는 사회적인 무교 행사가 적어서 '무녀'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다보니 '무당'이라는 민족적인 단어에 대비되는 일본식 호칭으로 생각되어 무녀라는 호칭을 꽤 엄격하게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나마 해를 품은 달도 있었고, 점점 분위기는 얕아졌다. 그래도 이 표현을 쓸 일이 잘 없긴 하다.[7] 설익은 무당, 즉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당을 의미한다. '서있는 무당' 이 아니다.[8] 비슷한 속담으로 '반풍수(어설픈 풍수지리 학자)가 집안 망친다'란 말도 있다.[9]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그 최남선이다. 사실 최남선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던 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일제가 강요하는 역사관'에 대항하여 독립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한국의 역사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었고, 특히 일선동조론에 대응하기 위해 상고사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독자적인 민족적 기원을 규명하려는 시도 역시 중시되었다. 최남선이 변절하기 전까지 가까운 사이였다고 알려진 신채호의 조선상고사가 이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산출물이다. 즉, 변절하기 전까지는 최남선의 행보 역시 한용운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지 끝까지 지조를 지킨 신채호에 비해 최남선은 중도에 포기하고 굴복했기에 후세에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 것 뿐이다.[10] 시베리아 원주민퉁구스계 제민족, 아이누족한민족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표현이다. 오스트랄로이드가 아시아로 진출 이후 가장 먼저 북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정착한 이들로 추정된다. 언어학적으로는 이들의 언어를 고시베리아 제어라고 하는데 비교언어학적으로 친연성이 입증된 언어군은 아니다.[11] 기존까지 한반도에서 살던 사람들은 일본열도로 밀려나 도래인이 되거나 이들 북방민족과 동화되었다. 반도 일본어설 참고.[12] 부채춤은 현대의 창작무용이다. 즉, 현대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치르는 무교 행사도 전통종교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비종교적이고 현대적인 민족 행사'를 통하여, 전통 무교에서 주술적인 행위를 줄이고 민족 종교의 체계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13] 죽어 동해의 용왕이 되어 왜구를 막은 설화가 전해지는 문무대왕릉은 무속인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14] 청해진이 위치했던 완도 일대 중심.[15] 목호의 난을 진압하러 제주도에 가던 중 추자도에서 어업 기술을 전수해 지금도 추자도에서 무속인들이 신으로 모신다.[16] 주로 통영, 진도 등 남해안 일대에서 숭배된다.[17] 연평도에서 조기 조업 대풍을 기원하며 제를 올린 풍습이 존재한다.[18]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들을 통해 들어온 역사가 깊은 신앙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관우신은 도교에서 매우 메이저한 신으로 취급되고, 국내에서도 실제로 관우신을 모시는 무속인은 꽤 흔하다.[19] 더글러스 맥아더 신앙은 1950-60년대 휴전 직후에 인천 지역에서 꽤 많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지금도 있다! 기사. 과거 양담배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 맥아더를 모시는 무당들이 양담배를 밀수하거나 고급 양주를 입수해서 제사를 올리다 뉴스에 난 도 있다.[20] 제주도에서는 따로 초공신이 무조신으로 섬겨진다.[21] 물론 가톨릭이나 정교회도 무속신앙이나 무당 자체에 대해서 교리적으로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다만 가톨릭은 한국에 들어온 시기가 오래 되고 현지화가 되면서 기존의 풍습을 어느 정도 존중하기에 놔두는 편이고, 정교회는 한국인 신자 수가 2천여명에 불과한데다 한국 정교회는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비슷한 사회적 노선을 걷고 있어서 온건한 편이다.[22] 개신교에서도 무속인을 좋게 안본다.[23] 꿈에서 신격이 현몽을 했다는 식으로[24] 굿이 시작될 때 신이 왔음을 알려주는 영검한 막대 형상의 상징물. 삼지창에 꿰인 돼지대나무 대 등등. 대가 똑바로 서면 신이 온 증거이니 굿이 잘 된다고 믿었다.[25] '판다'는 말은 잘 안 쓴다.[26] 만신으로 잘 알려진 김금화의 사례가 대표적이다.[27] 이것은 북한의 교회들이 남하했던 개신교도 마찬가지다.[28] 오늘날 tvN의 프로그램 편성과 방송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굉장히 의외지만, 본래 tvN은 2006년 개국 이래 선정적이거나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프로그램 편성, 잊을만 하면 터지는 사연 조작 등으로 비판을 많이 받던 흔하디 흔한 케이블 채널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아니, 사실 욕 먹던 케이블 방송사 중에서도 무속 사랑과 선정성 때문에 막장 케이블채널의 대표주자로 인식되어 가장 많이 욕먹던 방송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화성인 바이러스나 리얼스토리 묘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 당시 tvN의 성향과 수준을 말해주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KBS 출신의 신원호나영석 PD를 영입한 2011년~2012년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쇄신을 통해 지금의 위상을 구축하게 된 것.[29] 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공기중에 떠 있는 먼지가 빛을 반사한 탓에 카메라에 비친 반사광을 "영가의 실체"라고 대놓고 이빨을 깐 사람이다.[30] 또는 마녀. 맥락은 같다.[31] 정신질환과 관련한 유전인자가 대물림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32] 조자용 박사는 1926년생으로 호는 대갈. 본래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귀국해 건축가로도 명성이 있었으나, 중년 들어 한국민속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져 도깨비 관련 설화나 전통 민화를 수집하는데 힘썼다. 2000년 사망.[33] 마녀/마법사는 학원물 하위 장르인 마법학교 장르로 엮을 수 있는데, 동양풍 학교라도 도술학교(작품이 동화 하나밖에 없기는 하나 사람들이 한국형 호그와트라면서 상상하는 것도 잦다)나 무협물의 무림학교(학관)(비뢰도 천무학관, 드라마 무림학교 등)는 있지만, 무교는 보통 도제식 같이 1:1 교육으로 가고, "무속학교에 가면 무당이 될 수 있다"는 학원물로 만든다고 쳐도, 선술할 취재 문제 등으로 인해 써먹기도 힘들다.[34] 드루이드는 의학적, 약학적 지식 역시 필수 조건 중 하나이다.[35] 물론 칼날이나  위에서 을 춰야하니 판타지가 들어갈 수도 있다.[36] 국내편에서 박신부가 신부가 된 계기를 준 친구 차교수의 딸 미라는 정체불명의 강력한 악귀가 빙의된 상태였는데, 이를 해결하러 온 나름 용한 무당은 굿은커녕 무섭다고 도망을 가버렸고, 현암이 월향검을 얻은 산골의 덕산마을은 파계승 색귀가 짐승의 영혼을 부려 강력한 물리력을 이용해 여인들을 강간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데려온 무당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강간당해 참혹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된다.[37] 1955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유학하던 도중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람이다. 옥중서간을 모아 엮은 '야생초 편지'의 저자로도 유명하다.[38] 참고로 경향신문은 원래 가톨릭 계열의 언론사였다. 현대에도 가톨릭 성향이 있으나 사회적 소수자, 문화예술인 등의 메시지들을 잘 실어다준 신문사이다 보니 황대권 대표도 이를 선택한 듯 하다. 그리고 황대권 대표 본인도 가톨릭 신자다. 세례명은 대철 베드로. 본인의 호로 '바우'를 쓰고 있는데 베드로의 이름에서 따와 반석, 바위를 뜻하는 순우리말 호를 만든 것이다.[39] 기존의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주재신인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고치고, 샤머니즘의 기복신앙과 무당의 역할을 기독교식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당장 영세교만 봐도 최태민은 개종해 목사가 되기 전에는 박수무당도 했던 작자다.[40] 이는 매체에서의 점쟁이의 묘사와 마찬가지로 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작품에서 자체적으로 스포일러를 하는 등 스토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41] 당연한 사실이지만 작품에서 무당이 주인공이나 조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귀신을 보는 데에 실패하면 창작 소재로서 써먹기 어렵기 때문에 작품이 귀신이 존재하는 세계로 설정된다. 그래도 선술했듯이 무당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다.[42] 나중에 무당을 그만두기는 한다.[43] 1993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초판은 1994년 10월 10일에 나왔다. 삼성문예상(현 삼성문학상)을 1993년에 수상했다는데 출간 이전에 상을 받았는 지는 알 수 없다.[44] 다만 설정상 신아들이므로 ◇도 포함된다.[45] 초반에는 무당으로서의 힘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왔으나 말뚝이를 봉인하는 데에 힘을 써서 무당의 힘은 쓰지 못한다.[46] 조폭으로 있던 주인공이 우연히 신내림을 받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47] 작중 언급되기를 '남조선 애기동자'를 모신대나 뭐래나.[48] 원래는 세습무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오히려 본인이 령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49] 어머니도 마찬가지이다.[50] 월주의 전생.[51] 원래는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려 했으나, 갑자기 나타난 신령이란 존재 때문에 무당이 되었다.[52] 6화의 '장인증서'를 통해 이름이 잠시 등장했다.[53] 연예인 출신. 무당이 될 운명을 거부하려 했다가 연인을 사고로 잃은 뒤 무당이 되었다.[54] 정남의 앞에 나타나는 신령의 진짜 정체.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자만에 가득 차 있었던 탓에 작품 최종보스인 애드워드에게 살해당한 뒤 원혼이 이승에 남아 정남을 괴롭히고 있었다. 정남과 힘을 합쳐 애드워드를 무너뜨리고 정남이 진정한 무당으로 거듭나면서 본인도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게 된다.[55] 어머니가 무당일을 하고, 본인은 귀신을 볼 수 있으나 무당은 아니다.[56] 가끔씩은 원주민의 친구로도 나온다.[57] 무당일도 했었으며 본업도 이쪽과 관련있기에 그렇다.[58] 본인의 직업은 경찰이지만 무당이었던 외할머니를 닮아 귀신 보는 눈과 예지 능력 등을 타고났다. 이 힘을 사건 해결이나 범죄를 미리 막는 데 써 먹으며, 석연치 않은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기억을 추적해 간다.[59] 약간 애매하지만 무당집 가문 출신이기도 하고 최종장에서는 사촌 동생 세미 대신 신내림을 받았고 법운에게 완전한 무당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 표시를 한다.[60] 어머니가 무당이다.[61] 최철기옹의 형. 혼세편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62] 정확히 말하면 부적술을 배워 무당들처럼 부적을 쓸 수 있다.[63] 무당의 딸. 20살 성인이 된 이후에는 어머니와 같은 무당이 되었다.[64] 본업은 산신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