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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9

希修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을 결택(決擇)하자 - 홍사성

(20+) 초기불교 공부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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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을 결택(決擇)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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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아함 3권 《가미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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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나란타 동산 장촌나림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가미니라는 사람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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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하늘의 신을 섬기는 다른 종교의 사제들은 만일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그를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법왕이시니 부디 목숨을 마친 중생이 천상에 태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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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대답 대신 가미니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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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연못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크고 무거운 돌을 그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와서 합장하고 축원하기를 '돌이 떠오르게 하여 주소서'라고 했다. 그러면 과연 그 돌이 떠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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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많은 사람들이 축원을 했다고 해서 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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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경우는 어떠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병속에 들은 기름을 연못에 부어 넣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합장하고 축원하기를 '기름이 가라앉게 하여 주소서"라고 했다. 그러면 과연 기름이 가라앉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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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세존이시여.많은 사람이 축원했다고 해서 기름은 가라 앉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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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니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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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가미니여,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바르고 착한 일을 하지 않고 열 가지 나쁜 업을 지었다고 하자. 그를 위해 사람들이 아무리 합장을 하고 천상에 태어나라고 축원을 했다고 해서 그가 천상에 태어날 수는 없다. 그는 연못에 빠진 무거운 돌처럼 악도에 떨어지리라. 그러나 가미니여. 어떤 사람이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하고 열 가지 선한 업을 지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합장을 하고 그가 악도에 떨어지라고 저주를 했다고 해도 그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기름을 물에 가라앉히고자 하나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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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건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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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목련 존자는 효성이 매우 지극한 사람이었다.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나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왕사성에서 알아주는 부자로 항상 착한 일을 많이 했으나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나복은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뒤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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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창고에 재물이 가득했으나 3년 만에 벌써 창고가 비었습니다. 하오니 저는 이제부터 외국에 나가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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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복은 창고에 있는 돈을 꺼내 셋으로 나누고 한 몫은 어머니께 드려 집안을 보전케 하고 또 한 몫은 삼보께 공양하도록 했으며 나머지 한 몫은 장사밑천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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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어머니 청제 부인은 나복이 장사를 떠나자 아들의 당부와는 정반대되는 일만 골라서 했다. 수행자들이 오면 공양을 올리기는커녕 몽둥이로 쳐서 내쫓았으며, 재를 올리라고 남겨준 돈으로는 동물을 사다가 잡아서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나복의 집은 동물의 비명소리와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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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이렇게 악행을 하는 동안 나복은 장사길에 나선 지 3년 만에 큰 돈을 벌어 돌아왔다. 아들을 맞이한 부인은 그 동안 자신이 한 일을 감추고 삼보를 공경하고 착한 일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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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제 부인은 나복이 돌아온 지 이레 만에 갑자기 중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나복은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한 뒤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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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복은 열심히 공부해서 신통제일의 목련 존자가 됐다. 목련 존자는 신통으로 어머니가 태어났을 천상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목련이 부처님을 찾아가 여쭈었다. 부처님은 청제 부인이 살아서 인과를 믿지 않고 나쁜 업을 지었으므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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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신통력으로 지옥으로 찾아가니 과연 어머니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목련이 부처님을 다시 찾아 뵙고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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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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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보름 스님들이 해제하는 날 우란분재를 베풀어라. 그러면 지옥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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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목련이 우란분재를 베풀어 수행자를 공양했더니 그의 어머니는 지옥에서 벗어나 정토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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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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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로 제시한 두 경전을 비교해보면 금방 모순점이 발견된다. 《가미니경》에서 부처님은 철저하게 ‘개인이 지은 업이란 누가 대신 받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돌이 물에서 떠오를 수 없듯이 악업을 지은 사람은 악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반대로 선업을 지은 사람은 마치 기름이 물에 잠기지 않듯이 악도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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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의 《목건련경》은 이와는 정반대다. 목련의 어머니가 나쁜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진 것까지는 인과의 엄숙함을 설하고 있는 것 같으나 결론은 다르다. 목건련이 우란분재를 올린 공덕으로 어머니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되어 있다. 어머니가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해 아들이 대신 합장하고 복을 빌어준 공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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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가미니경》이 비유로 든 예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물 속에 가라앉은 돌이 떠오르고 연못에 던져진 기름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경전인데 발상과 결론이 천양지차로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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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전이란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의 기록’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성립한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이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말했다면 불설(佛說)은 일관성, 신뢰성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설사 방편이라 하더라도 결론 자체가 달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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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부처님은 여기서 이말 하고 저기서 저말 하는 사람이었던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부처님은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꾼 적이 없다. 문제는 불설을 표방하고 있는 경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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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경전 중에는 불설을 가탁한 위경(僞經)이 적지 않다. 효도와 관련된 《부모은중경》이나 앞에서 읽은 《목건련경》 등은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대표적인 위경이다. 이 위경이 부처님이 직접 설한 가르침으로 둔갑한 데서 모순이 일어난 것이다. 인도에서 찬술된 수많은 대승경전도 사상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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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위경을 위경인 줄 모르거나,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왜곡된 종교적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폐기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꼴’이 된 것이다. 한국불교의 경우 위경에 근거한 종교의례와 법사(法事)가 아니면 사찰운영이 안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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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방편이라 변명해도 이는 불교적 태도가 아니다. 

불교라는 이름의 무속교나 미신교, 또는 불교라는 이름의 유교나 도교적인 민간신앙를 불교라고 우기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동북아 대승불교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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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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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해답은 문제 속에 들어 있다. 그 해답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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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과 비불설을 결택(決擇)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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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택(決擇)은결단,간택(簡擇)(여러가지중 골라서택함)...

홍사성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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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불교 옹호론의 문제점 / 김종만

[14호] 2003년 03월 10일 (월)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635


1.들어가는 말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B.C.623∼B.C.544)이 개창한 종교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다.

불경은 중생구제의 목적과 방편에 대해 언급해 놓고 있으며 이것이 곧 불교의 교리다. 불자들은 부처님이 제시한 교리를 통해 참된 행복을 추구하고 구원의 길을 걷고자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사실을 거듭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최근 불교 내에서 진행된 기복불교 논란에 상당한 오해와 논리적 비약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평론》과 〈법보신문〉이 주도해 온 이 논쟁은 비판과 옹호라는 뚜렷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불교평론》은 2001년 여름호 특집 ‘기복불교를 말한다’에서 기복불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논의를 폈다. 이어 이 잡지의 주간 홍사성은 격월간 〈불교와 문화〉(2002, 1·2호)에 ‘기복신앙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의 글을 실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러한 기복불교 비판론을 비판하고 옹호론을 전개한 것이 〈법보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1면 머릿기사1)를 통해 기복불교를 비판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위라고 보도했다. 이어 기복불교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인사들의 기고와 칼럼을 지면에 반영함으로써 기복불교 비판론을 비판하고 옹호 논리의 개발에 앞장서왔다.

이러한 기복불교 비판론과 옹호론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다시금 처음부터 불교의 ‘근본’과 ‘본질’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한국불교에 있어서 기복신앙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는 신앙현상이긴 하다.

〈법보신문〉 ‘데스크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기복불교 아니면)“포교는 무슨 돈으로 하고 사찰은 어떻게 유지하며, 스님들은 무슨 돈으로 공부해야 하나……. (중략) 기복이 사라진 한국불교의 그 큰 빈 공간에 현실적으로 기복 대신 무엇이 채워질 수 있는지”2) 걱정될 정도로 기복불교는 한국불교에서 절대적 의미를 갖는 신앙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복신앙이 한국불교를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극복돼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기복불교는 아무리 교묘한 논리를 전개해도 불교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신앙체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복불교에 대한 비판과 옹호론이 맞서면서 대척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안타까움이다. 기복의 문제는 솔직히 말해 논쟁의 대상일 수 없다. 신앙의 행태가 기복으로 흐르고 있는 게 태반이라면 그 현상을 현실로 인정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불교의 본질 안으로 흡수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교리적으로도 타락과 왜곡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라면 반드시 극복 또는 시정돼야 한다. 따라서 기복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와 관련해 방법과 대안의 차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는 있어도 비판과 옹호라는 대척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불교의 미래를 위해,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전법도생(傳法渡生)의 역할과 기능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교조와 교리의 가르침을 환기시키려는 애정어린 비판은 꼭 있어야 한다. 역사의 발전적 동력은 바로 이 같은 비판적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인도 재래의 제사와 주술을 멀리하면서 불교를 개창했던 정신을 헤아려보면 이의 이해가 어렵지 않다.

본고는 논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복에 한정해서만 그 옹호론의 잘못됨을 지적하고자 한다. 앞서의 논쟁들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정체성과 교리적 해석, 역사적 전개에 따른 불교의 신앙형태 변이 등에 대해서까지 확대하여 기복의 옹비(擁批)를 논하다 보니 궤도를 벗어나 설득력을 반감시켰기 때문이다.

2. 기복불교 옹호론의 제 문제

1) 기복과 작복의 혼동 문제
기복불교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많은 논자들은 기복을 매우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일례로 “수행방편과 근기 그리고 아홉 종류의 인간상을 유념하면서 ‘깨달은 즉 정법 아닌 것이 없고, 깨닫지 못한 즉 그가 엮어내는 자칭 정법 또한 삿된 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일깨움을 돌이켜보면 ‘기복신앙’만을 굳이 불교의 근본교리에 어긋난다고 단정할 수 없게 된다.”3)는 주장과 “어떤 일을 함으로써 그 대가로 복을 받자는 의식구조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신행형태를 기복불교라 정의하고자 한다.”4) 등이 그것이다.

이외 앞의 필자들과 함께 기복을 옹호하는 논자들의 공통된 견해는 기복신앙이 불교의 본질은 아니더라도 방편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행복을 추구하는 신앙행위가 기복이란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신앙적 정서에 의지한 기복의 정의일 뿐이다. 문제는 기복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 교리적 근거나 해명이 없다는 데 있다. 기복을 정당하다고 하려면 어디에 그런 가르침이 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옹호론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고 궁색하게 기복을 자꾸 작복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성철 교수의 글이다.

“우리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를 대하실 때 해탈의 가르침 이전에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를 차제설법이라 부른다. 또, 대열반 이후 사리탑의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심으로써 발복을 권하셨다.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탑을 조성하며 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복을 짓는 행위임은 초기불전 곳곳에서 발견된다.”5)

김교수의 이 글은 기복을 작복으로 해석함으로써 ‘기복=작복’이라는 오해를 부른다. 이러한 잘못은 이미 조준호 박사에 의해 지적되었다. 조박사는 “초기불교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는 김교수의 주장은 기복과 작복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중략) 이제까지 그의 다른 글을 통해서도 두 개의 용어를 같은 뜻으로 혼용해 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6)고 말함으로써 기복과 작복의 구분을 명확하게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기복과 작복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것은 교계신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기복불교 논쟁과 관련해 〈만불신문〉은 사설에서 “복 짓는 행위는 신앙행위이다. 그것을 부정하고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복불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복 짓는 행위도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7)고 주장하고 있는데 ‘복 짓는 행위’를 기복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복과 작복에 대한 개념의 혼동과 이해부족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기복이 무엇이고 불교에서 강조하는 작복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두 용어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게 파악돼야 올바른 기복 논쟁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복은 말 그대로 복을 받기 위해 절대자의 가피를 바라는 기도행위를 말한다. 불교는 교리적으로 기복의 방법에 의해 행복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불교에선 초월적 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특히 비불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부처님이나 보살을 신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논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스승이자 성인이지 중생들에게 그 어떤 초월적 능력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 보살들이 각각 중생구제의 서원을 밝히고 있는데 그 구원의 힘은 초월적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뼈를 깎는 정진과 원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신과는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기복은 이들 제불보살을 신격화하는 그릇된 신앙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불교는 중생이 종교에 의지하는 기본 목적인 행복추구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복이 신에 의지하는 여타의 종교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불교에선 작복(作福)과 수복(修福), 그리고 구복(求福)이 있다. 작복이란 말 그대로 행복해지고자 하거든 복 받을 일을 하라는 것이다. 불교는 연기사상을 골격으로 세계관과 인생관을 설명한다. 내가 짓는 복도 인과응보요 연기의 법칙에 적용된다. 지극 정성으로 기도했는데 영험이 나타났다는 말은 초월자의 힘에 의해서 가피를 받았다기보다 복 받을 만한 행위를 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작복인가. 그것을 부처님은 보시와 지계로 말씀하셨다. 보시가 나눔의 행복추구라면 지계는 절제와 금도를 통해 한결같은 평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끝없이 솟구치는 욕망을 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칫 유루복(有漏福)에 흘러 생사윤회를 거듭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무루복(無漏福=새지 않는 복)을 닦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다.

구복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보통 사람에게 행복이란 재산과 건강, 사랑과 장수, 명예와 같은 조건이 충족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세속적 행복은 유한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루복에 해당하므로 어디까지나 다함이 없는 영원한 행복인 무루복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 점은 불교에서 유루복을 무조건 무가치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복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 자체를 잘못됐다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경전에서는 복덕을 구족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대목도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하나인 아니룻다가 정진에 몰두한 나머지 앞 못보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친히 그의 옷을 꿰매주며 복덕을 짓는 일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구복의 한 좋은 예다.

불교에선 이처럼 복을 짓거나 닦고 구하는 행위를 권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덕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기복을 권하는 구절은 경전의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불자의 도리는 부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거나 누리는 방법’이 그릇된 사견과 수단을 동원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어쨌든 불교의 교리를 일탈하면서까지 기복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기복불교’가 아닌 ‘기복신앙’일 뿐이다. 기복은 불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기복불교라는 용어를 부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 방편론은 자기를 기만하는 변명이 아닌가
기복신앙을 옹호하는 논자들은 대부분 기복이 불교의 본질은 아니더라도 방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을 구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근기에 따라 행해지는 기복을 인정하고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작복불교로 이끌어 가는 게 순서가 아니겠느냐는 논지를 편다. ‘기복도 공덕 짓기의 한 방편이다’고 주장하는 성태용 교수의 글8)이나 “기복적 신행은 누구나 거쳐가는 일종의 과정이다. 기복이라는 뗏목을 택하여 불교에 입문했다고 해도 바른 공부가 이어지면 결국 저절로 소멸되는 운명을 지닌 신행행위라는”주장9)이 그것이다.

이 같은 논지는 일견 매우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기만하는 변명이 포함돼 있다. 즉 기복의 현실론에 빠져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목적이나 원칙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방편이 불교의 교의에 충실하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면 이는 참된 방편이 아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기복으로 출발해서 정법으로 돌아온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실제 사찰에서 기복 옹호론자들의 주장처럼 그렇게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방편이 잘못 적용되고 쓰여질 때 얼마나 위험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비불교적 신앙행태도 ‘불교의 것’인양 동화돼 버린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방편이란 이름을 앞세워 ‘점쟁이’도 포교의 전위대로 포장되는가 하면 ‘굿’과 ‘역술’마저 용인되는 현상까지 부르게 한다.
방편은 무지몽매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어떻게 일러주느냐 하는 문제다.

미혹한(無明)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어 내는 수단이 방편이다. 그래서 불교는 ‘사람을 바꾸는’ 역할과 기능을 가져야 한다. 불교입문은 바로 그러한 ‘사람 바꾸는’ 단초이며 시작이다. 그런데 ‘사람 바꾸는’ 역할 대신 미혹함으로 몰고 가는 행태가 바로 기복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방편을 쓴다 하더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것은 속임수에 불과할 뿐 오히려 중생을 더욱 미혹 속으로 몰아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방편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한다. 방편은 범어 우파야(upa?a)의 번역으로 (깨달음에)‘접근하다’ ‘도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좋은 방법을 써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교화방법’이라고도 하고 차별의 사상(事象)을 알아서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를 일컫는다는 것이다.10)

《법화경》 〈방편품〉이나 〈비유품〉에 따르면 우매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불난 집에서 철모르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희유하고 얻기 어려운 장난감’이 있다며 구출해내는 장면이 그것인바 이도 역시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과 비유의 예화다.

하지만 어느 경전에서도 기복을 방편으로 내세워 중생을 교화하는 예는 없다.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아함 《가미니경》에 나오는 얘기를 함께 음미해 보자.

부처님이 가미니라는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 마을의 촌장이 부처님을 찾아와 “어떤 종교인들은 기도를 하면 병든 사람도 고칠 수 있고 악한 일을 한 사람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데 당신도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고 물었다. 부처님은 그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촌장이여, 가령 저 호수에 어떤 사람이 돌을 던졌다고 합시다.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 합장하고 ‘돌맹이여, 떠올라라’ 하고 기도를 했을 때 과연 돌맹이가 떠오르겠습니까?” 촌장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촌장이여, 저 호수에 어떤 사람이 기름을 부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모여서 합장하고 기름이 물 속으로 가라앉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름이 가라앉겠습니까?” 촌장은 역시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그에게 말했다.

“촌장이여, 그와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돌맹이는 떠오르지 않고 기름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처럼 기도를 한다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거나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촌장은 이를 바로 알아 이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 신비와 능력을 기대했던 가미니의 촌장에게 부처님은 어떤 것이 정법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 《가미니경》의 얘기가 들려주는 교훈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기복은 절대 방편으로 수용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방편이 강을 건너는 데 필요한 ‘뗏목’같은 것이라면 강을 건넜을 때 뗏목은 버려야 된다. 하지만 기복은 뗏목의 구실조차 할 수 없는, 차라리 신기루에 가깝다. 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뗏목이 방편일 수는 없다. 기복은 강을 건너 주지 못하는 뗏목이자 중생을 나약하게 만드는 신기루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다.

방편이란 이름으로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까지 포용하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다음 지적은 적지 않은 설득력을 던져준다.

“불교라는 깃발을 들지 않는다면 모를까 불교를 불교이게 하려면 폭넓은 관용주의 못지 않게 무엇이 원칙이고 진리인가를 거듭 확인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방법과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 ‘무당과 점쟁이가 포교의 첨병’이라는 식의 발상은 무책임하고 백해무익하다. 목적이 좋다고 수단을 무시하거나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원칙을 포기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그것이 원칙을 넘어서는 것일 때, 목적과 상관없는 것일 때,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난다. 대승불교의 포용주의가 무당불교가 되고 선불교의 자유주의가 도덕적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11)

‘기복을 넘어 작복’으로 가자고 하는 주장에는 방편론이 들어 있다. 그러나 처음부처 빗나간 방편론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 한국불교의 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기복을 방편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목적이나 원칙보다는 현실과 대중의 구미만을 생각하는 대중추수주의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방편은 깨달음과 관련한 훌륭한 교화방법에 가까운 것이지 기복과 주술 등 타력(他力)에 의존하자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3) 일부 사례를 들어 기복불교를 옹호하는 논리의 문제점
기복과 관련해 불자를 현혹시키는 또 다른 문제는 일부 사례를 들어 기복불교를 옹호하는 자세다. 과거에도 기복신앙의 흔적이 있었다거나 남방상좌부도 기복신앙이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기복신앙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요, 그러니 괜찮다는 식의 논리다.

예를 들면 울만 파트리크(미국 UCLA 강사) 씨는 〈법보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초기 부파불교 시대에도 기복신앙은 있었다’12)고 밝히면서 한국불교의 기복현상도 나무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송위지 교수는 최근 《불교평론》에 기고한 ‘상좌부 불교의 역사와 전통’이란 글에서 “상좌부 불교에도 기복신앙이 있었다.”13)고 밝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앞서 인용한 김성철 교수도 〈법보신문〉 기고문에서 ‘초기불교에도 기복신앙의 흔적이 전해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대로 복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기복형태를 띤 신앙행위가 초기불교시대에 있을 수도 있다. 시대가 흐르고 경제관념이 바뀌면서 복전에 대한 인식변화도 있었을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또 비교적 초기불교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는 남방 상좌부에도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현상의 흐름을 놓고 기복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례로 불전에는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배반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데바닷타가 몇 차례에 걸쳐 부처님을 위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다고 해서 불교에서 배반을 정당하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 논리로 초기불교 혹은 부파불교 시대에 기복의 역사가 있다고 해서 기복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방불교에도 기복신앙이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런가 하면 기복신앙 문제를 종교현상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예를 들면 김용표 교수는 초기불교에도 기복신앙이 있었다는 주장을 견지하면서 이를 종교사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종교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사상은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앙하는 이들의 마음은 초역사적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현대종교학은 ‘신앙의 존중’과 ‘다른 신앙형태에 대한 구조화된 감정이입’이라는 방법론을 견지하면서 종교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14)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불교신앙에서 나오는 여러 잡다한 신앙행위까지 종교사학적 안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교수의 이 주장은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종교사학적 관점이란 종교현상에 대한 배경과 의미를 분석할 뿐, 그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가치판단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떤 입장에 서서 ‘현상학적으로 그러니 옳다’라며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기복 옹호론자들의 논지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과거에 그런 사례가 있었으므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요 보편적이고 괜찮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 그것의 ‘옳고 그름’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하나의 현상으로만 남는 게 아니라 후유증과 부작용 등 역기능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불교의 신앙형태는 불교의 정법에서 일탈해서 비법이 아니면 불교를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지 오래다. 본말전도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기복불교에 대한 일말의 옹호론은 거듭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왜 초기불교에 주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유를 잘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원칙과 상식 수준의 궤도를 일탈해 있는 현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학원을 설립해도 건학이념이 있게 마련이다. 한 단체를 창립해도 개창정신과 설립지표를 내세운다. 이것은 훗날 관련단체의 중심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불교의 현실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면 불조의 혜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땅히 초기불교를 주목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3. 기복신앙 극복을 위한 제언

1) 교리에 따른 신행활동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설법하기를 결심하고 밝힌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증일아함경》 10권 〈권청품〉에 의하면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낡은 믿음을 버리라.”
부처님이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낡은 믿음’이란 무엇인가. 당시 인도사회는 대개의 종교가 그렇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숙명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숙명론(宿命論), 전능한 신의 뜻에 결정된다는 신의론(神意論), 모든 것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는 우연론(偶然論)이 그것인데, 부처님은 기존의 이런 관념과 인식을 배격하고 있다.15)

낡은 믿음에 대한 배격은 인도사회에서 신불교운동을 제창했던 암베드카르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암베드카르는 불교신자로 입문할 때 계율의 준수 등을 선서하는 의식을 동반하는데 , 그 선서는 마라디어로 22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처음 8항목은 “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마헤슈와라(창조 유지 파괴를 맡고 있는 힌두교의 세 신인데 이 가운데 마헤슈와라는 시바신을 말한다)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또한 숭배하지도 않는다.”는 등 힌두교와 그 관습을 거부하는 서약이었다. 이러한 옛 신앙의 부정 위에서 불교도로서의 올바른 생활을 서약했던 것이다.16)

암베드카르의 이 같은 서약은 과거 인도불교가 힌두교에 동화돼 차츰 쇠망의 길로 접어든 교훈을 거울삼은 것이다.

암베드카르는 미래사회에 알맞은 종교의 조건으로 ① 도덕성을 기초로 할 것, ② 과학과 이성에 모순되지 않을 것, ③ 사회생활의 기본적 신조인 자유·평등·우애를 인정할 것, ④ 빈곤을 축복하지 않을 것(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는 사상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상이다)의 4개항을 제시했다.17)

이중 ② 항 과학과 이성에 모순되지 않을 것이란 내용은 최근 종교학자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국불교의 신행 현실은 어떠한가. 부처님이나 보살을 신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그 앞에서 복을 비는 기복신앙은 불교의 본질 자체를 왜곡하는 것이다. 기복주의 요소가 얼마만큼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기복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공격을 당하고 있는 처지이다.

《불교평론》(2002, 여름·가을호)에서 마성 스님은 ‘초기-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에 대한 검토’를 통해 만해 한용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인용해 논지를 전개했다. 필자도 한때는 〈조선불교유신론〉의 내용을 암송하고 다닐 만큼 ‘불교의 변화’를 강렬히 원했던 사람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만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이 교계 현실에선 그저 ‘고전’ 속의 구호로만 취급되고 있는 현실을 접하고 낙담을 금치 못했었다. 만해는 독립운동가로, 시인으로만 만족해야 했지 그가 염원했던 불교혁신의 꿈은 거대한 절벽에 부닥쳐 사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해와 암베드카르가 훌륭한 인물로서 세인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기존 ‘낡은 종교(관념과 인식이라고 해도 좋다)’를 배격한 데 있다. 불교의 본질을 회복시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뜻이 절대로 중단돼서는 안 된다. 본질로의 회복은 그 어떤 것을 변화시키고 혁신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한국불교의 신행 현실로 보아서는 분명 그렇다.

기복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불교의 근본교리와 괴리돼 있다는 점이다. 앞서 예로 든 《가미니경》의 지적처럼 아무리 기도를 해도 호수에 빠진 돌은 떠오르지 않고 기름은 가라앉지 않는다. 한국불교가 기복의 신행형태를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 같은 부처님의 말씀(교리)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사찰마다 교양대학을 개설해 운영하고는 있으나 깊숙이 들여다보면 기복을 방편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다시 말해 기복이 방편이라고는 하지만 아예 방편으로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리의 체계적 습득은 부처님의 일대기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모르고 《지장경》이나 《화엄경》이나 《능엄경》을 공부한다는 건 초등과목을 건너뛰고 대학원 수준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부처님의 생애를 알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상과 가르침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신도들을 상대로 한 교리교육을 위해 관련 커리큐럼을 마련하고 교리와 신행을 함께 가도록 하는 지침 제정도 검토해볼 일이다.

2) 사찰재정의 투명화와 보시의 공덕
기복불교를 탓할 때 가장 염려하는 문제의 하나가 사찰재정이다. 기복이 부정됐을 때 사찰재정이 압박을 받을 게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계종단뿐 아니라 군소종단의 대부분 사찰에서는 기복을 조장하는 각종 재와 기도, 역술과 부적 등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여기에 기와불사, 인등불사, 입시기도, 영가천도, 생전예수재 등 기복불사들이 기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만일 사찰들이 신도들의 길흉화복을 빌어주는 기복불사를 하지 않으면 사찰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할 정도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기복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지는 이 점에 착안해서 기복을 불교의 경제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법보신문〉의 데스크는 기복불교 척결을 주장하고 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며 “그럼 포교는 무슨 돈으로 하고 사찰은 어떻게 유지하며 스님들은 무슨 돈으로 공부하나. 기복불교를 타도하자고 하기에 앞서 한국의 모든 사찰이 어떤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운영돼야 하는지, 기복이 사라진 한국불교의 그 큰 빈 공간에 현실적으로 기복대신 무엇이 채워질 수 있는지를 현실성 있게 제시했으면 한다.”18)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기복이 없으면 절에 돈이 들어오지 않고 각종 불사도 되지 않으니 입 다물라는 주장이다. 이는 한마디로 억지 주장이자 비불교적 발상이다. 부처님은 청정수행과 설법으로 교단을 운영했다.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분들은 부처님이 사주나 관상, 기복을 가르쳐서 교단을 운영하지 않았음을 왜 외면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불교는 부처님을 모델로 하는 종교다. 형식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정신이나 내용이 바뀌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이 했던 그대로 정법에 의한 방법으로 교단이 운영된다면 교단재정 확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따라서 사찰재정의 위협을 내세워 기복을 옹호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포교문제도 마찬가지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교단재정은 포교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재정이 풍부하면 그만큼 복지 교육 등 제 분야에 걸쳐 건실한 투자를 기할 수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사찰재정이 기복을 중심으로 한 물량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생산노동에 종사하지 않고 걸식(탁발)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했다. 재가불자들 역시 수행자들에게 기꺼이 음식을 보시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그것은 기쁜 마음으로 행해지는 자비였고 수행자에 대한 존경과 귀의심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후대에서처럼 어떤 거래적 조건이 부가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인식의 확산이 이루어지면 사찰재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시대에서 사찰재정과 연계해 기복을 옹호하는 것은 물량주의의 확대와 다를 바 없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주장이 아니다. 대신 불교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과 덕목이 불자들 사이에 폭넓게 주입돼야 할 것이다. 보시와 자비는 다름 아닌 ‘현실세계의 극락화’라는 대승불교의 지향과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보시의 지계를 사찰재정과 결부해 일정형식으로 제도화하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

3) 정법의 불교를 하자
우리 나라 근·현대의 교육영향도 있겠지만 흔히 종교와 구원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대부분 서양식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기복과 관련해서도 ‘개신교와 카톨릭도 기복이 성행하는데 불교계에서만 유독 문제삼는다’며 볼멘 소리를 하는 경우도 나온다.

이는 불교를 여타의 종교와 동질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그릇된 견해다. 여타의 종교가 신에 의지해 자신의 구원과 행복을 비는 일은 문제삼을 게 없다. 그러나 불교는 다르다. 불보살을 신으로 간주해 복을 비는 행위는 불보살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불교는 서양종교와는 달리 ‘이성과 과학’에도 모순되지 않는다.

‘낡은 믿음’을 버리고 부처님 법을 따르는 것이 정법의 태도다. 정법을 지키지 않은 불교의 모습은 인도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불교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래 이성과 지혜의 종교였던 불교는 인도 재래의 주술주의와 기복주의를 ‘중생구제의 방편’이란 말로 받아들이면서 변질과 왜곡을 거듭하다가 결국 힌두에 동화되면서 소멸되고 말았다. 부처님이 그토록 비판했던 주술과 기복에 훗날의 불교도가 빠져들면서 불교의 역사를 단절시킨 것이다.

이를 교훈 삼아 한국불교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정법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정법대로 신행되지 않는 불교는 겉모습만 불교일 뿐 그것은 사이비에 다름 아니며 타락한 불교다. 정법신앙의 뿌리가 내리지 않고는 불교 본래의 기능을 수행해 내기란 어렵다. 정법이란 비법(非法)이 아니란 뜻이다. 정법은 모든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부처님의 뜻에 따른 진리의 교시다. 따라서 정법이 신앙의 수단이 되고 믿음의 방편이 돼야 한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기복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이의 극복방안에 대해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종교는 이 같은 인간의 바람과 염원을 실현시키려는 기능을 담지하고 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부처님이 성도 후 처음 설법을 하신 사성제와 팔정도의 내용도 바로 괴로움을 끊고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는 길을 밝히신 것이다.

사성제란 괴로움의 현실을 알고(苦諦)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야 하며(集諦) 괴로움이 멸한 상태를 증득해야 하고(滅諦) 괴로움을 멸하는 도를 닦아야 한다(道諦)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중생들이 영원한 행복을 이루려면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행복의 길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불자들이 지나치게 기복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복은 앞서도 말했지만 그 어떤 초월적 신에 의지해 행복을 갈구하는 행위다. 불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른 종교와는 입장을 달리 취하고 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신의론(神意論)에 의지하는 여타의 종교에서나 있을 법한 기복신앙이 지혜와 이성을 앞세우는 불교에서 횡행하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일부 기복신앙 옹호론자들은 초기 부파불교 시대에도 기복신앙은 있었다’거나 다른 나라에도 기복신앙이 있으므로 한국불교의 기복현상도 나무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현상의 반영이지 불교가 그것을 용인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불교의 교리 어디에도 기복을 권장하는 가르침이 없다면 이런 주장들은 옳지 않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복을 문제삼는 데 대해 한국불교 안에 있으면서 한국불교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그 수준을 의심케 한다. “한국불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문제 있는 한국불교 내부에서 기득권을 버리지 못하고 초기불교 지상론을 편다면 그 행위는 과연 옳은 것인가? 비겁함이고 이율배반이다.

그들은 응당 그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한국불교 내에서 한국불교 때문에 누리고 있는 알량한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19)거나 기복을 비판하는 이들을 ‘몬스터’(괴물을 말함)로 지칭하며 “기복을 타도하려고 주장하려거든 기복불교로부터 오는 일체의 혜택에서 벗어나는 자세를 꼭 보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몬스터’라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다면.”20) 등 상식 이하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문제는 누가 지적해야 하는가? 이교도들이 해야 하는가? 다른 외국 사람들이 지적해야 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교도가 하면 괜찮고 불교인이 하면 안 된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또 ‘혜택받은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고 충고까지 곁들이고 있는데 이 충고의 저의가 비판론을 재갈 물리고 기복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불순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 치졸한 논리는 마치 개발독재시대의 경제적 성장으로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그때의 문제점을 말하면 안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필자는 이러한 일련의 옹비론을 지켜보며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나 정법의 수레바퀴를 바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제2·제3의 만해 스님이나 암베드카르 같은 인물들이 계속 배출돼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정법의 당간이 바로 서느냐 이대로 비법이 횡행하느냐 기로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서다. 거듭 강조하건대 정법으로의 회귀는 이 시대 우리 불자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책무다. ■

김종만
대전대학교 국문과 졸업. 〈불교신문〉 취재편집차장을 거쳐 〈법보신문〉 편집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月刊 佛陀〉 대표로 있다. 논문으로 〈오도송(悟道頌)에 나타나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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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希修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대승불교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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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6 hrs ·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 대승불교의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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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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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법보신문〉의 지면을 통해 전개되었던 ‘초기-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유익한 논쟁이었다. 첫째는 불교계 내의 가장 민감한 교리적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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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이를 계기로 앞으로 불교학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를 계기로 진지한 학자들과 일반 불자들이 한국불교의 문제점에 대해 공석과 사석에서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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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무엇이 불교적이고 정법에 근거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보다 깊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온갖 비불교적 요소가 판을 치는 불교계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보다는 미래의 성과가 더욱 기대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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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논쟁은 전개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낸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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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처음에 보여주었던 논점의 진지함이 논쟁이 과열됨에 따라 주제 자체보다는 인신공격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로 인해 논쟁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아쉽게 종결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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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논쟁의 마당을 제공하고 이끌었던 (법보신문〉이 논쟁을 마무리하면서 사설을 통해 마녀 재판식 결론을 내린 것은 매우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과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 사설은 논쟁이라는 형식을 빌어 〈법보신문〉이 의도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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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쟁을 주의 깊게 지켜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논쟁은 결코 아직 승패가 가려진 것이 아니다. 이제 겨우 논의의 주제가 설정된 단계에 불과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주제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재검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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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을 통해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어느 쪽의 주장이 미래의 한국불교 발전에 보다 도움이 되는 견해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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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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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의된 주요 주제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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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붓다로 돌아가자는 것이 문제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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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논쟁은 동국대 불교학과 김용표 교수의 기고문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이번 논쟁의 주된 쟁점은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김용표의 지적처럼, 역사적·철학적·해석학적 통찰이 필요한 난제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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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 혹은 초기불교에서 찾으려는 흐름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이유는 불교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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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불교의 정신은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역사적인 붓다의 삶 속에서만 드러난다. …… 초기불교라든가 대승불교라든가 하는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적인 붓다의 삶이라는 사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단정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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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어떤 형태의 불교이든지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석가모니불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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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적으로 후대에 성립된 대승불교가 정법의 기준이라도 되는 듯한 기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정법의 잣대란 원래의 불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순리이지, 거꾸로 현재의 잣대로 원래의 불교를 진단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사상사(思想史)의 흐름에도 역행되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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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성철 교수는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속에는 분명 초기불교를 낮추어 보는 대승불교 전통의 편향된 시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답습하고 있다. 즉 초기불교는 불완전하고 미완성이었는데, 대승불교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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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각은 중국에서 고안된 종파적인 교판론(敎判論)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교판론은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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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학에도 역사의 개념이 도입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스다니 후미오가 지적했듯이, 역사의 개념을 전적으로 무시한 교상판석(敎相判釋)에 근거한 작업은 모두가 그릇된 전제 위에 선 것이다. 그런 전제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기에 그러한 교상판석에 근거한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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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아직도 인도불교는 서론에, 중국불교는 본론에, 한국불교는 결론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상좌불교도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붓다로부터 2,50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종갓집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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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기들이 신봉하는 불교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의 호교론적 입장은 두 전통의 불교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계속된 충돌만 있을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조준호가 제시한 “초기불교는 초기불교로서 대승불교는 대승불교로서 각각 ‘불교의 귀결’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서로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맥락은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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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바라보는 각도가 다를 뿐 동일한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주명철의 지적처럼, “오히려 대승불교는 세존의 깨달음과 자비의 가르침의 정신을 더욱 충실히 실천하였지 진리를 부정하거나 존재를 부정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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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이 점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대승불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초기 불교주의자들도 초기불교만이 진리이고, 대승불교는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불교가 초기불교의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주장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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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필자는, 현재의 한국불교가 그 원래의 대승불교에서 많이 일탈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에서 완전히 초기불교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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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주장은, 지금 이 시점에서 부처님의 불교, 즉 붓다의 본래 정신을 가능한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교적 전통과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현재의 상좌불교도 원래의 초기불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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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필자는 부처님의 불교를 하자는 것이지, 남방 상좌부 불교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상좌불교도들도 교단이 어지러울 때에는 언제나 원래의 불교 모습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한다. 불교의 정통성과 기준은 오직 석가모니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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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흥기의 배경도 ‘붓다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 않은가! 부파불교가 사회적 실천이라는 붓다의 근본 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에 원래의 붓다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외침이 대승불교 운동이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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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의 한국불교 현상들은 오히려 그러한 대승불교의 본질 혹은 정신을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붓다의 원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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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를 강조하는 것은 대승불교를 똑바로 잘하기 위함이다.”라고 필자가 주장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러한 취지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불교를 정법(正法)의 토대로 더욱 굳건히 올려놓기 위해 붓다로 돌아가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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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가 부처님의 불교를 생각해 보자고 제의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잘못된 것인 양 매도하려는 분위기는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붓다로 돌아가자는 것이 과연 큰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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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태도는 정당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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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대승불교의 경전관(經典觀)에 관한 문제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승경전의 불설·비불설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떠한 일방적인 입장으로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경전의 불설·비불설 그 자체를 논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 대승경전 전체를 비불설이라고 완전히 배제한다거나 부정하는 것도 편견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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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까지 대승경전의 비불설을 주장한 적이 없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는다. 대승경전은 비록 붓다의 친설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상적으로 매우 훌륭한 측면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을 드러낸 부분도 있는 것이다. 김성철의 주장과 같이 대승불전이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도 필자는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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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대승경전과 관련하여 홍사성이 주장한 내용은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태도는 이 시점에서 새롭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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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승경전 찬술자들이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이해했다”라고 정직하게 말하지 않고,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고 함으로써 붓다의 친설과 자신의 설을 구별하지 않은 것은 지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대승경전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찬술자들의 부정직한 태도를 지적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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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승경전 찬술자들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마치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으로 가탁(假託)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승불교의 성립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종교사학적으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그 자체는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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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 진현종과 김성철은 크게 반박하고 있다. 진현종은 나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대승불전 찬술자들의 태도에 오히려 치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붓다와 그 제자의 관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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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붓다도 아라한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포함시켰다. 즉 불교교단에서 붓다는 첫번째 아라한(阿羅漢)이었다. 그는 어떠한 구별도 없이 다른 아라한들과 같이 한 명의 아라한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이 최초로 고타마의 가르침에 귀의한 다섯 고행자(pan?avaggiya)의 개종 이후, 붓다를 그들 중의 하나로 계산하여 당시 세상에는 여섯 아라한이 있었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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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대에 오면 처음 깨달음을 이룬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의해 나중에 깨달음을 이룬 제자와는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초기경전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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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깨달았다는 점에서는 아라한과 동등하다고 말했다. 단지 다른 점은 붓다는 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개척한 선구자인데 반해서, 아라한들은 붓다가 밟았던 길을 따라서 같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아라한들은 붓다누붓다(buddha ubuddha), 즉 완전히 깨달은 자(正等覺者) 다음에 깨달음에 도달했던 사람들이라고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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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스승의 가르침에 의해 제자가 스승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지라도 스승과 동등하다고 자만한 흔적은 초기경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제자들은 한결같이 붓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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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상수 제자였던 사리뿟따(Sariputta, 舍利弗)는 “그리고 존자시여, 제자들은 지금 길을 쫓아서 나중에 그 길을 구현하는 자로 살 것입니다”라고 했다. 비록 사리뿟따는 당시에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의 예는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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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후대의 대승경전 찬술자들은 석가모니불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전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행위와 태도가 진현종의 주장처럼 겸손해서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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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경전이 출현하기 이전에도 논장(論藏, Abhidhamma Pit.aka)은 있었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논장은 기원전 3세기경 제3결집 때, 목갈리뿟따-띳사(Moggaliputta-tissa) 장로에 의해 편찬된 《논사(論事, Kathayatthu)》로 알려져 있다. 이때 비로소 경·율·논 삼장이 성립되었다. 그후 부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이해한 견해들을 논서로 저술하여 후세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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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직 대승경전 찬술자들만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함에 있어서 논서의 저술가로 이름을 남기지 않고,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라고 가탁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당시의 부파교단에서 강력히 반발하였을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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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부파교도들은 ‘대승은 악마의 설’이라고까지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 대승교도들은 ‘부처님은 한 목소리로 설법하셨는데 대중이 여러 가지로 이해했다(一音異解)’며 대승이 부처님의 말씀임을 논증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설은 《유마경》에서 역설한 것인데, 원래는 대중부(大衆部)에서 부처님의 신통자재한 덕을 찬양하려고 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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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파교도들이 대승경전 찬술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극심하게 비난했던 증거들이 오히려 대승경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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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대승경전 찬술자들이 대승의 설이야말로 부처님의 진설(眞說)이므로 부파교도들의 반발과 주장에 동요하지 말라고 강조한 것이 그대로 대승경전 속에 기록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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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대승경전 찬술자들이 대승경전을 논서로 남겨두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불설·비불설 논쟁은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을 홍사성이 지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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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성철은 지금도 계속적으로 대승경전을 편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마스다니 후미오가 그의 저서 《불교개론》에서 현대에서도 새로운 경전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스다니 후미오의 주장은 위경(僞經)을 계속 생산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불교의 새로운 사상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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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후대의 불제자들이 더 많은 논소(論疏)와 주석서들을 저술하여 불교사상을 보다 풍부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러한 마스다니 후미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지, 김성철은 대승경전을 2000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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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의 주장대로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대승경전을 만들어 낸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불경의 의미는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자칭 깨달았다고 말하고, 궤변을 늘어놓아도 불설이 된다. 이렇게 계속해서 불경을 만들어낸다면 나중에 불설과 비불설을 누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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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경전을 옹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지금도 논소(論疏)나 주석서가 아닌 대승경전을 계속 만들어내자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인도와 중국에서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불설을 빙자한 위경(僞經)들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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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역사적 실증주의는 과연 잘못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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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불교학의 연구는 정말 잘못된 것인가? 진현종은,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는 그 본산지에서조차 이미 박살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실증주의는 사견과 망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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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친설은 초기불전에서도 신고층(新古層)이 있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 자체가 이미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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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역사적 실증주의를 배제하면 불교학은 물론 학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쟁 자체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논쟁도 어느 쪽의 주장이 더욱 더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접근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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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서구 불교학의 출발은 호교론적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초기의 서구 불교학자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부이거나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식민지 지배를 보다 확대하거나 공고히 하기 위해 인도학 불교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철저한 문헌비평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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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현대의 불교학이다. 초기경전 가운데 신·고층이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연구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초기경전에 신·고층이 있다는 진현종의 주장 자체가 이미 역사적 실증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논리적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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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이라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불교의 특질 가운데 하나가 합리성과 미신의 배제이다. 미즈노 고겐(水野弘元)은 “불교에는 불합리한 미신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또 수행의 방법도 단계적인 순서를 좇아 합리적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종교의 학설에서 그에 비견될 만한 것을 볼 수 없는 바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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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철은 “석존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대승불교는 석존의 명상적이고 신비적인 면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붓다를 비밀교의를 펼쳤던 신비주의자로, 그리고 대승불교를 신비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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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불교관은 자칫 불교를 신비주의로 이해하는 부류와 기복신앙을 조장하려는 부류에 편승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배제할 수 없다. 진현종은 부처님 자신도 실증주의적 입장을 거부했다고 했다. 이와 같은 주장을 거리낌없이 내두르고 있는 데에 그저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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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부처님은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를 부정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월폴라 라훌라(Walpola Rahula)는 “불교는 비관주의도 낙관주의도 아닌 현실주의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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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먼저, 불교는 비관주의도 낙관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어느 편이냐 하면, 불교는 현실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므로 현실주의적이다. 불교는 사물을 객관적으로 본다(如實知見). 불교는 헛된 기대 속에 살도록 우리들을 거짓으로 달래지도 않고, 온갖 종류의 가상의 공포와 죄책감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거나 괴롭게 만들지 않는다. 불교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주변 세계는 어떠한지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주며, 또한 완전한 자유, 평화, 평안 그리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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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붓다는 언제나 실증할 수 없는 것, 즉 진위(眞僞)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사후(死後)에 관한 일이라든가 미래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결코 말한 적이 없다.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종교가들의 주장과는 달라서 현실적으로 증명되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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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다. 즉 이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것,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능히 열반에 인도하는 것,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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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은 초기경전 여러 곳에서 되풀이되는 정형구로서, 붓다의 가르침의 기본적 성격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다. 붓다 가르침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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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존귀한 자에 의하여 잘 설해진 가르침(世尊善說法), 즉 ‘표현의 명료성(善說)이다.
- 두번째의 특징은, 경험적인 내용(現見)이라는 점이다.
- 세번째의 특징은, 특정한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 것(非時間的)이다.
- 네번째 특징은, 검증 가능성(ehipassika, 來見)이다.
- 다섯번째 특징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생활 조건(즉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은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 종교생활의 최종적인 목표나 효과(paramat.t.ha, 勝義)가 된다는 점이다.
- 여섯번째 특징은, 스스로 경험되는 것(paccattam. veditabbo, 自證)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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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둘째, 셋째, 넷째의 세 가지 항목은 붓다의 가르침이 리얼리스트(realist)의 사상이었음을 나타낸 것이라고 마스다니 후미오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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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붓다의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붓다가 설한 것은 모두가 인생의 현실 문제였으므로, 누구라도 편견 없는 눈으로 그 진상을 관찰한다면 그것이 헛되지 않음을 볼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붓다는 결코 환상을 말하지 않았다. 붓다는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또한 붓다의 법은 비밀리에 비밀법을 전한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 월폴라 라훌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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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a?arinibba?a-sutta)》에서 그는 상가(Sangha, 僧團)를 통제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고, 상가가 그에게 의지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가르침에는 비전(秘傳)의 교설은 없으며, ‘스승의 꽉 쥔 주먹(Ayariya-mut.t.hi, 師拳)’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몰래 준비한 어느 것도 결코 없다고 붓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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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히 말해서 원래의 불교에는 비밀리에 법을 전해준다는 따위의 신비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그러나 후대의 불교에 오면 신비적인 요소가 가미된다. 이에 대해 칼루파하나(David J. Kalupahana)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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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전수되는 것 중에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인 것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나 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교육의 본성이 불교에 관한 아주 최근의 설명에서처럼 지나치게 신비화됨으로써, 삭발하고 가사 장삼을 걸친 채 무언의 비전을 전수받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지 않고서는 법의 실천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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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에도 신(新)·고층(古層)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현종은 어느 것도 진짜 불설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무한급수의 불가지론(不可知論)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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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붓다의 말씀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 불교학의 목적이다. 학자들은 지금도 어느 것이 가장 붓다의 친설에 가까운 교설인가를 계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초기경전 내부에 신·고층이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 남아 있는 초기 문헌만으로도 붓다의 근본 교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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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붓다가 설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연기설·사성제·팔정도·중도 등의 기본 교설은 대·소승에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우리는 그러한 교리들을 통해 붓다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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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실증주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만일 역사적 실증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붓다의 탄생지, 열반지, 초전법륜지 등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인도나 동남아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곳이 역사적으로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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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대승경전들을 직접 설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진실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는 것도, 베살리에서 유마거사가 《유마경》을 설했다는 것도 역사적 진실이 아님은 자명하다. 이처럼 비역사적인 사실은 역사라고 믿고, 진짜 역사적 사건은 역사적 실증주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몽롱한 주장은 현기증을 유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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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모든 학문과 종교현상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실증주의에 그 바탕을 두지 않으면 신뢰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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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불다보살 신앙에 문제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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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대승불교의 신앙관에 관한 문제이다. 대승불교의 다불다보살(多佛多菩薩) 사상은 사상적으로 위대한 점이 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비불교적인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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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의 불신관(佛身觀)에 의하면 과거·현재·미래에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다불다보살 사상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보다 법신불(法身佛)이나 보신불(報身佛)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반 불자들은 대부분 대승불교의 보살을 거의 신적(神的)인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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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상은 자칫 잘못하면 범신론적(汎神論的) 유신교(有神敎)로 전락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불다보살 사상은 신앙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나 권위 혹은 대승이라는 이름으로 다불다보살 신앙을 포용함으로써 불교의 본질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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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다불다보살 신앙은 절대주의의 경향이 농후하다. 마스다니 후미오는 “불교에서 말하는 ‘붓다’란 기독교인이 말하는 ‘신(神)’과는 그 개념이 다르다. 그는 천지와 만물의 창조자가 아니다. 최고의 유일한 존재도 아니다. 인간에게 ‘절대 타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 불교인 중에는 마치 절대자를 대하는 것같이 붓다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붓다의 성격을 완전히 곡해한 것이며, 또 붓다 그분의 뜻에서도 빗나간 생각임이 명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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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그는 “대승경전이 붓다를 절대화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해서 거기에 담긴 많은 진리까지도 부정할 마음은 나에게 없다. 또 과거의 고승 대덕들이 도달한 종교적 경지에 대해서도 나는 겸허하게 고개를 숙일 아량을 갖고 있다.”라고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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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국에서는 교차로나 주택의 입구에 사면불(四面佛)이나 십일면(十一面)관세음보살상등을 수호신(守護神)으로 봉안하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매일 그 신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모든 재앙을 소멸하게 해달라고 빈다. 이러한 행위는 불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그릇된 신앙 행위임은 말할 나위 없다. 상좌부의 스님들도 이러한 비불교적 민간신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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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진현종은 불자들의 신관(神觀)과 외도들의 신관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주명철은 한술 더 떠서 “대승의 붓다관을 유신론이라는 잣대로 폄하하는 점은 인도 종교의 유신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편견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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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누가 인도 종교의 유신론에 대한 이해 부족과 편견인지 이 부분의 전공자들이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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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의 사찰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의 비불교적인 신앙에 대해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은 그의 저서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1910년 저술)에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면 관계로 여기서는 칠성과 신중에 관한 부분만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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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七星)은 더욱 황당무계해서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별을 상(像)으로 하여 받들 바에는 하늘에 있는 별이 매우 많은 터에 어찌 유독 칠성만을 위하는 것인가. 또 그것이 여래(如來)의 화현(化現)인 때문이라 한다면, 천지·일월과 삼라만상이 똑같이 부처님과 일체(一體)일 터인데, 하필 칠성만이 그렇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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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제자(佛弟子)로서는 여래의 참된 상(像)을 받드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멀리 부처님의 화현(化現)에게까지 숭배의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번거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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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神衆)은 부처님께서 영산(靈山)에 계실 때에 호위하는 임무를 띠고 항상 따르던 신의 무리니, 불법(佛法)을 보호함이 실로 그들의 책임인 터이다. …… 비유컨대 승려는 상관과 같고 신중은 호위 순경과 같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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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에 한 상관이 있어서 손을 맞잡고 꿇어앉아 도리어 호위 순경에게 머리를 조아려 애걸한다면 약자에게 쩔쩔매는 그 꼴을 웃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니, 우리 승려들은 어찌 이것만을 보고 자기를 보지 않는 것이랴. 지금 남에게 뒤질세라 신중에게 몸을 굽혀 복을 비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나는 그 가치의 전도(顚倒)를 견디기 어려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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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두 신관의 차이를 비교할 필요도 없이 한국불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비불교적인 잡다한 신앙들은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할 잘못된 신앙 형태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도 만해 한용운은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선구자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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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대승불교 흥기와 함께 불교 속에 습합된 다불다보살 신앙은 다분히 유신교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한 신앙이 맹목적으로 강조될 경우 불교의 본질에서 벗어날 염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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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도들이 다불다보살 신앙을 통해 불교의 본질로 돌아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불교 교리에 무지한 일반 대중들이 자칫 잘못하면 미신이나 유신론으로 빠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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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기복을 부추기는 것이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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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논쟁과 아울러 제기되는 문제는 기복신앙이다. 대승불교에서는 기복신앙이 용인되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다행히 주명철은 “한국불교의 기복문제는 대승불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단, 교파, 기성체제 속에서 대승불교를 잘못 이해하고 적용한 후학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불교의 문제를 오로지 대승불교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좋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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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주장했던 내용과 동일하다. 필자도 한국불교가 대승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기복 위주의 잘못된 신앙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코 대승불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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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기복(祈福)과 작복(作福)을 혼동하고 있는데, 만약 같다고 하면 이렇게 논쟁할 필요도 없고 기복을 두 손 들고 맞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지면을 통해 자세히 언급하였음으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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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사실은, 기복의 대안이 작복이다. 조준호의 지적처럼 “작복은 백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작복이야말로 대사회적으로 불교의 위치를 당당히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반복적인 외침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한국불교 분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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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만해 한용운도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복은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부처님도 원래 화복의 주관자가 아니시니, 빌어 본대도 복을 얻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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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기복신앙을 작복신앙으로 전환하자는 데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기복신앙을 비판·부정하면 마치 한국불교가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몇몇 사람들의 과민한 애종심이 문제이다. 그리하여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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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리적·이론적으로는 기복신앙이 불교에서 용인되지 않는다. 그 잘못된 신앙을 어떻게 해서든 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기복의 대안인 작복도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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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준호는 기복신앙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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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예경(禮敬)의 대상이지, 화(禍)는 물론 복을 내리는 기도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나아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물질적인 기대나 세속적인 욕망을 채워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불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의 기능에 있어 ‘기복’이야말로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어느 종교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종교의 중심 경전에 근거한 본연의 입장과 대치되는 대중적 차원의 신앙이 병존(竝存)하는 이중적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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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불교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느 종교나 신행에 있어서 분명히 이중적 구조의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지성인들과 미디어 종사자들이 앞장서서 기복신앙을 옹호하거나 조장 혹은 부추겨서야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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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미신적·주술적·비밀교적인 그리고 무속적 기복신앙은 불교가 아님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 명백한 사실을 왜 억지로 비호하고 권장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현실적으로 기복신앙을 갑자기 개선하기가 어렵다 할지라도 점차 개선해야 한다는 태도가 불교도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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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의 언론은 기복신앙을 권장하거나 부추기기보다는 오히려 출가·재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잘못된 신앙을 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기복신앙을 권장하는 것이 옳은가? 어떤 주장이 더 미래의 불교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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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잘못된 전통까지 고수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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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의 사설에서는 “불교의 특성 중의 하나가 전파 당시 그 나라의 고유한 신앙을 습합하며 정착한 데 있다는 것은 재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초기경전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는 원리주의적 주장을 펴는 것은 폭력이다.”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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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1910년에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을 지었다. 만해는 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한국불교 속의 비불교적 신앙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불가(佛家: 조선불교를 말함)에서 숭배하는 소회(塑繪 : 절에 모신 일체의 등상과 그림을 말함)는 가리어 혼란이 없어야 하겠고, 간략하여 번잡하지 않아야 하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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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해 이전에 이미 “소회(塑繪)는 미신에서 나온 거짓된 모습이니 전부를 들어 소각함이 상책이다. 그리하여 절을 깨끗이 해서 암흑 시대의 미신을 일소하고 진리를 배양하여 불교의 새 나라를 고쳐 세워야 한다.”는 보다 과격한 주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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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릇 모든 종교는 어느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 기존의 신앙을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질적인 종교와 사상이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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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라는 토양에서 잉태된 불교가 동쪽 끝에 위치한 한반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재래 민간신앙을 습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민간신앙을 배제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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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래는 단순히 종교사상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함께 전래된다. 외래문화가 들어오면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가지다가 점차 시간이 경과하면서 토착문화와의 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탄생되고 그것이 정착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한국불교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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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형성된 한국불교 나름의 문화사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화현상 자체를 좋다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다만 그러한 과정을 거침으로 인해 원래의 불교, 즉 불교의 순수성 혹은 정체성이 희석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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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정당화하거나 찬양하는 듯한 논조는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는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교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명제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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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백이 넘치던 옛 선사들이 한국불교 속에 남아 있는 산신각, 용왕각, 독성각 등을 철거하기 위해 탱화를 불살랐던 일화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이러한 행위는 한국불교의 문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만해 한용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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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염불당의 폐지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불가에서 숭배하는 소회(塑繪)의 철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주장 가운데 극히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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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치도 않는 신들 앞에 종처럼 무릎 꿇어 아첨하고 있으니, 소회(塑繪)를 받드는 폐단이 이에 이르러 극단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능히 만천하의 이런 소상(塑像)들을 불살라 날려보내고 물에 던져 가라앉혀서, 다시는 세상에 머물지 못하게 하여, 우리 종교의 진리로 돌이켜 흠이 없게 할 것인가. …… 설령 불교를 미신이라고 한다 해도 부처님을 미신하는 것으로 족한 터이다. 어찌 아침에는 부처님을 미신하고, 저녁에는 나한(羅漢)을 미신하고, 또 칠성(七星)을 미신하고, 또 시왕(十王)을 미신하고, 또 신중(神衆)을 미신하고, 또 천왕·조왕·산신·국사(國師) 따위를 미신함으로써 일정한 신앙이 없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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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지금의 필자와 같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불교계 내부에서도 열린 시각으로 일찍부터 한국불교의 문제점들을 지적해 왔다. 만해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전혀 통용될 가능성이 없는데, 1910년대에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는가? 그 장벽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러한 토착화된 문화 혹은 종교현상은 불교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점을 필자는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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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 잘못된 부분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야만 한국불교가 바르게 되는가? 이를테면 가문의 명예를 빛낸 인물도 있지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인물도 있을 수 있다. 비록 가문을 더럽혔다고 해서 그 가문의 출신이 아닌가? 그 옳고 그름은 후대에서 판단할 몫이다. 잘못된 부분을 두둔하거나 변명한다고 잘못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부분대로, 잘된 부분은 잘된 부분대로 인정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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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의 역대 조사나 사상가, 그리고 한국의 고승 중에서도 본의 아니게 부처님의 뜻과 반대되는 주장이나 행동을 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그 잘잘못을 따질 수 있어야 한다. 과문의 탓인지는 모르나 부처님께서는 후회할 나쁜 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만일 부처님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잘못된 부분에 대해 비판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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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처님께서는 안거(安居)가 끝나는 마지막 날의 자자(自恣, pava?an.a?에서 나의 허물을 보거나 발견한 사람은 지적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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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붓다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대중 앞에 발로 참회해야 한다. 이것이 불가의 전통이다. 허물은 덮어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잘못된 전통을 고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인가? 그 잘못을 지적하면 한국불교의 전통과 자존심을 짓밟는 것인가? 그 잘못을 덮어두면 한국불교의 전통과 자존심을 세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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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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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가 〈조선불교유신론〉을 주창할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과 같은 한국불교의 분위기에서도 한국불교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현재 초기불교 정신에 따른 한국불교 실태 파악이 수용되기는커녕 오히려 매도하려는 분위기는 더더욱 한국불교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참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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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직까지도 한국불교가 지적으로 성숙해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한국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주된 세력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주장들을 외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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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록 표면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불교를 올바르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으며 미래 지향적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번 지상 논쟁을 지켜 본 많은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한다. 잘못된 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올바른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올바른 것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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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한국불교 정체성 논쟁에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침묵하는 쪽이 오히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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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현실적으로 제도권 불교에 영합하고 편승하여 상대방을 공박하려는 태도 또한 훗날의 비판을 면키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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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새로운 한국불교의 모습은 언젠가는 올 것이고, 그러한 분위기는 굉장한 수준으로 성숙되고 있어 희망적이다. 새살이 돋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불교를 가속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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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한국불교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초기불교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자 한다. 기복신앙으로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불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오늘의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그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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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재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교 한국 분교 교수 및 팔리문헌연구소 소장. 마산 가야사 주지.
http://www.rip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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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댓글들도 반드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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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L.OR.KR

팔리문헌연구소




希修

Sejin Pak 참고하실 만한 글 몇개 올려 드리겠습니다.


希修

부처님을 따르던 제자들 중 기억력이 비교적 좋다고 소문난 이들 약 5백여명이 부처님 사후 모여 서로가 기억하는 부처님과의 일화를 대조, 기억이 일치되는 부분을 운문형식으로 확정하여 노래처럼 부르며 전파합니다. (글로 남기면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 등에 의해 훼손될 위험이 있어서요.) 이런 결집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3차 결집까지는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토씨 하나까지도 얼마나 중시했는가 하면, 영역본으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그 긴긴 텍스트를 수천 명이 동시에 순서대로도 외우고, 맨 뒷단어에서부터 거꾸로도 외우고, 한 단어씩 건너 뒤면서도 앞뒤로 외우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보존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른 후 문자로 기억되는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발견된 다른 판본들의 내용이 거의 완벽히 일치하게 됩니다.
암튼, 경전의 성립과정이 이렇다 보니, 경전의 내용도 제자들이 결집하여 기억을 기술한 그대로입니다. "이러저러한 날 이러저러한 곳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누구누구가 와서 이런 질문을 했고, 나는 부처님이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않은 이들, 시공간적으로 너무나 많이 떨어져 있던 이들이 무수한 입을 통해 전해들은 내용을 자기 나름대로 재창작하여 기록하면서 "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구절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죠. 읽는 이들은 당연히, 그 내용이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오해를 하게 되구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불교발전의 역사를 모르면 엄청 헷갈리고 엉뚱한 삽질을 하게 됩니다.)
위의 2.2. 단락은 대승경전의 이 integrity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대승경전 중에도 물론 '훌륭한' '작품'들이 많습니다만, 그 자체로 철학이라 볼 수는 있어도 부처님의 말씀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C4%81li_Canon
Sejin Pak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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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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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修

불교를 공부하시다 보면 차차 느끼시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의 양 자체도 워낙 방대하고, 그 내용도 상당한 지적능력, 특히 메타인지가 있어야만 이해와 실천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착한 일을 하며 공덕을 쌓으면 언젠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받고 태어나게 된다고 애초에는 생각했었습니다. 초기불교는 말하자면,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국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시켰듯, 인간이 그렇게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코딩방법에 대한 매뉴얼이라고 저는 비유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엘리트 아니면 그럼 일반 대중은 들러리냐?"면서 일반 대중을 위한 대승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처님 말씀에 대한 온갖 희석, 윤색, 창작들이 생겨나고, 그래도 여전히 일반 대중에겐 어려우니 "대중은 보시만 하면 그 보시받은 사람이 깨달아 해탈할 때 보시했던 사람도 그 등에 업혀 free ride로 함께 해탈할 수 있다"라는, 일종의 '구세주를 통한 구원의 종교'로 변질되게 됩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변질시켜 놓고서 "우리는 대중도 함께 데려가는 자비로운 大乘이고, 초기불교는 째째하게 혼자만 해탈하겠다는 小乘"이라고 폄하하여 부르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은, 나조차 너를 도와줄 수 없다, 너를 구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네 자신의 수행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가르침을 남기는 것뿐이라고, 부처님 본인도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특히, 대승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인도의 중산층 이상 상류층이었기에, 그들이 이미 젖어 있었던 proto 힌두교 사상이 자연스레 대승에 배어듭니다. 그리고 동북아로 와서는 도교, 유교, 토착신앙, 무속신앙 등이 모두 혼합되구요. 현재 한국의 99.9%의 사찰들에서는 제사상에 가격표를 붙여 가며 장사를 하고 있으니, 초기경전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실은 상좌불교를 '소승'이라며 폄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류의 신비주의와 의식/의례에 대한 집착을 나무라는 부처님의 모습이 초기경전에는 나오거든요.) 다행히 최근엔 한국에서도 초기불교를 지향하는 스님들이 한 두 분씩 늘어나고 있지만요..
Sejin Pak



希修

여러 주장들 중의 하나.. 불교는 애초에 '기복이나 대중 위로/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라기보다 각 개개인을 위한 수양방법으로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LHGc3JgvOg&list=PLpnKGM1FbJm6dnBBinOfd07k__h6fN2fb&index=2&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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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불교는 왜 사라졌을까? [BBS TV 자신감] 20회인도에서 불교는 왜 사라졌을까? [BBS TV 자신감] 20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