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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1711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평화만들기와 AVP 훈련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평화만들기와 AVP 훈련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평화만들기와 AVP 훈련

금강일보 admin@ggilbo.com

기사승인 2017.11.20 19:43:52
- 한남대 명예교수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몇 번 말하고 희망한 것이지만, 평생을 하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중에 ‘화평한 맘을 먹고 살아가는 것’과 ‘내 자신이 평화가 되는 것’이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평화활동이라고 확신하였다. 나 자신의 평화로운 삶과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사회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삶의 창조는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이것은 평화로운 사회를 이렇게 만들자고 외치면서, 내 자신이 평화 자체가 되는 삶의 수련이나 훈련은 떨어질 수 없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일 중 하나가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운동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거나 밖에 있는 온갖 폭력성을 비폭력 평화의 기운으로 바꾸어 살아가자는 운동이요 훈련이다.

1971년 9월 9일에 미국의 뉴욕 에티카 감옥에서 굉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70 달러를 훔쳤다는 죄명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캘리포니아 주 살러대드 교도소에서 10년간 수감생활을 하던 흑인 조지 잭슨(George Jackson)이 여러 번의 감옥개선과 감옥 내 민권운동을 하던 중, 탈옥을 시도하다가 간수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을 기념하여 수감자들이 봉기한 날이다. 이 감옥의 수감자 54%가 흑인이었고, 간수는 100% 백인이었다. 물론 다른 인종의 수감자들도 있었다. 이날 그들은 점심과 저녁식사를 거부하였고, 허술한 문을 부수고 간수 40명을 인질로 하여 교도소 운동장에서 모였다. 여기에서 5일간 인종차별이 없는 공동체를 스스로 꾸려나갔다. 이 광경을 현장에서 취재한 뉴욕 타임스 컬럼리스트 Tom Wicker는 ‘죽음의 시간’이란 책을 썼다.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된 이날들을 증언하는 책이다. 그러나 당시 뉴욕시장 넬슨 록펠러는 군사공격을 명령하고 기관총으로 사격하여 31명이 사살됐다. 물론 이때 인질로 잡혔던 간수 9명도 함께 사살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감옥 안에서 수감자들 스스로 항의방법을 바꾸고, 성찰하며, 바깥에서 감옥 안의 인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에티카 감옥은 폐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린 헤이븐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그린 헤이븐 감옥에서는 끊임없이 출소한 수감자들이 재범자가 되어 다시 수감되는 문제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때 폭력이 난무한 세상에서 스스로 평화롭게 살고, 감옥에 들어갈 폭력을 사용하지 않도록 자신의 자녀들을 평상시에 교육하고 양육하는 퀘이커 교도들에게 그린 헤이븐 감옥 당국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개입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렇게 하여 1975년 그들은 민권운동가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폭력성을 근본부터 비폭력 평화의 상황으로 바꿀 것인가를 실험하였다. 자신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양육하였던 것을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실험하였다. 그 결과는 매우 탁월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미국에 있는 여러 교도소에서 그 훈련방법을 도입하였고, 지금은 다른 나라로도 전달되어 세계에서 60여 개국에서 이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퀘이커교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 모든 종교와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한다. 우리나라에는 2007년에 도입되어 10년이 되었다. 나는 바로 이 운동에 몇 몇 친구들과 함께 처음부터 지금까지 참여해 온다.

금년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전 세계 AVP 활동가들 160여 명이 모여서 큰 워크숍과 회의를 하였다. 우리나라 활동가들 11명도 참여하였다. 나도 참여하였다. 각자 자기들의 나라와 사회에서 어떻게 그 운동을 전개했는가를 보고하는 시간이 많았다. 감옥에서 시작된 훈련과정이지만, 폭력을 원천으로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운동으로, 학교, 지역사회, 군대, 난민지역, 유치원, 가족공동체, 갈등지역 등에서 아주 다양하게 이 운동이 펼쳐지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이론을 펼치는 것도 아닌, 스스로 속과 겉에 있는 폭력성을 비폭력 평화의 기운으로 바꾸는 운동이다. 그 훈련 또는 수련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깊은 데서부터 폭력의 문화와 생활 속에 푹 쌓여 있으며, 스스로 폭력행사의 가능성 속에 있는가를 성찰한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그러한 폭력성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게 되는가를 경험한다.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험하고 실천한다. 이것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향한 도전이다.

우리가 왜 폭력성을 갖게 되었는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떻게 폭발하는가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본다. 이 운동과 훈련을 통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하여 본다.


  • 일단 우리는 모두 자신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 동시에 다른 사람을(사물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 최선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 반응하거나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 그리고 모든 것에서 비폭력스러운 해결의 길을 찾는다. 
  • 즉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의 길을 찾는단 말이다. 

이것을 기초로 활동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평화로운 기운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한다.

일단 이 운동은 모든 사람 속에는 폭력성을 비폭력으로 바꾸는 힘(Transforming Power)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 운동은 적대관계에 있거나 서로 통하지 않는 그룹이나 집단 또는 사람들과도 함께 펼칠 필요가 있다.

  • 이것은 어떤 종교의 교리도 아니고, 깊은 철학의 이론도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삶이다. 
  • 이 길이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이나 국가들 사이에서도 찾아진다면 분명히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은 잘 닦여질 것이라 믿는다. 
  • 다시 말하면 평화는 어떤 제도로 확립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장도 아니고 막연한 희망도 아니다. 
  • 그것은 아주 단순한 실제 삶이다. 그 삶은 어느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수련과정이다. 
  • 평화는 그런 수련과정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로 올 것이다.

2016/12/11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2009년 12월 15일 김조년 드림

늙은 전사의 노래 권총이야기 |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 - Daum 카페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퀘이커이야기
권술룡|조회 98|추천 0|
2009.12.31. 09:02
http://cafe.daum.net/kwonsay/H7Jy/18

<고백>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


대전퀘이커 공부모임이 5주년이 되는 날,
이제 '공부'를 떼고 정식으로 <대전 퀘이커 모임>으로 출범 합니다,
그간 참여하셨거나 애정과 관심을 가지신 친우들...그리고 서울모임에서
그리고 대구의 시작모임에서도 와 주셔서 모두 40여명이나 모여
작은 잔치 자리에 함께 하였지요,

이중 몆분은 퀘이커로 살기로 하였고
350여년의 퀘이커 역사에 전세계에 겨우 40만의 소수의 무리들,
세계평화운동의 핵심에는 늘 한줌밖에 않되는 퀘이커가...
그리고 고난속에 있었지요,

이날 6,25전란 직후인 60전 한국에 첫 퀘이커를 시작하여 그후
함석헌선생님이 참여한 이행우(80여세)선생님이 카나다에서,
그리고 대전퀘이커 공부모임을 처음 열게 시작해준 박성준선생과
매월 서울서 와주신 오철근선생등,,
그리고 독일에서 퀘이커가 되어 돌아와 이끌어 온 김조년/이종희님1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들이 였지요,
40명가까운 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엿지요,

서울모임 60년...5년준비한 <대전모임> 그리고 시작된 <대구공부모임>으로 3개 모임으로
<년회>가 때가오면 앞으로 가능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회운동의 직임들을 모두 내려놓고 서울 삼청동에서 <길담서원>을 어렵게 꾸려가시는

박성준선생은
'한반도 중심인 대전에서 5년이나 기다리며 준비한 이 모임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그리고
영성을 키우는 큰 역활을 할것이라!" 고 <대전퀘이커 모임>의 출범의 의미를 부여, 격려했다,

<세계기독교 고전 20선>중에 한권인 <퀘이커>창립자 <조지 폭스의 일기>를
함께 읽어가는 동안 옷깃을 여미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의 생애내내 태산같은 파도와 맛서서 끊임없이 시대의 불의와 어둠, 열악한 감옥과
죽음의 위험, 테러와 고난에 찬 비 타협의 전도순레의 생애는 <퀘이커>이름 그대로 몸을 떨게 합니다,
사람의 영혼과 정신과 의기가 이렇게 높을수도 있구나! 하는 떨림이 였습니다,


소수의 작은 무리가 얼마나 높은 이상과 결기로 세상의 태풍의 눈으로 평화의 진군나팔수가 될수있기를! 소망하며 어떻게 키울것인가?!

어떻게 大鵬위 높고 깊은 뜻으로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당당하고 여유로움으로...
느림과 태풍같은 행동으로 태산같이... 깃털같음으로...
불의의 시대를 꿰뚫어 나갈수 있기를 !,
'너의 삶으로 이야기 하라!"고 할수있기를 !,

일시; 12/20/일/15;00부터
장소; 대전,동구 용전동 (한남대뒤) 한숲아파트 112동 1902호 <한숲골방>
=====================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우님께,

우리가 2004년 12월 퀘이커 공부모임을 시작한 지 꼭 5년이 지났습니다. 모두가 다 이 짧지 않은 기간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때때로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만나면 좋았고 또 궁금하여 기다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해 말부터 정식 퀘이커모임으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 또 한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여러 친우님들에게 퀘이커모임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말을 떼고, ‘퀘이커모임’으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언제나 함께 했던 친우님께서 이 때 같이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다수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직에 가입하는 절차를 통하여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본인이 직접 함께 퀘이커 신앙정신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을 표현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내가 퀘이커로 살 수 있을까’, ‘그만큼 성숙되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정된 퀘이커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의 신앙고백을 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과 삶은 자라는 것이기에 그렇게 살아보자고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믿습니다. 어린아이가 사람으로 갓 태어나서 성숙된 사람으로 자라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하면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약속이요 진리를 찾아나가는 공동의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조직과 이름 없이도 살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최소한의 그러한 틀을 가지고 가는 것이 필요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틀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일단 함께 시작하겠다는 뜻을 저에게 주시면, 그날 같이 출발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넣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미처 맘을 정하지 못한 친우님들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부담 없이 전과 꼭같이 모이고 즐기고 감동하고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다만, 개미들이 이사할 대 앞에 가는 개미와 맨 뒤에 가는 개미도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다 한 개미군단에 속해서 한 길을 가는 무리들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잡아 보았습니다.

12월 20일 오후
15시: 고요예배
16시: 이러저러한 이야기 꽃
17시: 먹을거리 함께 나눔: 한밭레츠 두루부엌에 주문
18시: 우리끼리 하는 즐거운 마당; 음악, 춤, 기타

* 자기 악기를 하나 가지고 오셔서 연주하면 참 좋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건강하시고 평화롭기를 빕니다.

2009년 12월 15일 김조년 드림

2016/10/11

공동묘지와 공놀이터 - 김 조년

Daum 블로그




공동묘지와 공놀이터
- 김 조년 -

독일의 북부지방에 해당되는 곳에 바트 피르몬트(Bad Pyrmont)라는 작은 요양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철분이 섞인 물이 나오는 곳으로 요양지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이것 말고 독일 퀘이커들에게는 고향과 같이 느끼는 퀘이커하우스가 있다. 1792년부터 퀘이커들이 이 지역에 살게 되면서, 영국의 퀘이커가 헌금한 돈으로 지금의 퀘어커하우스를 지었다. 시의 변두리, 봄베르크가(Bombergallee)에 자리 잡은 아주 아담한, 사치스런 장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집이다. 여기에 퀘이커사무실이 있고, 도서관이 있으며, 잠잘 수 있는 곳과 관리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방들과 부엌과 작은 모임방이 있다. 물론 큼지막한, 원형은 아니지만 원형 비슷한 느낌을 주는 모임장이 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나무로 벽을 둘렀을 뿐이다. 가운데는 상황에 따라서 자리를 바꿀 수 있도록 비어 있고, 빙둘러 가면서 서너계단 정도의 약간 높은 턱 진 자리가 있다. 참여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서 둘러앉거나 마주 바라볼 수 있게 의자를 조절할 수 있게 돼 있다.
바로 이 퀘이커하우스에는 독일 퀘이커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퀘이커하우스의 정원 마당과 같이 생긴 곳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입구와 비슷한 높이로 돼 있고, 그 길을 받친 축대를 씨멘트로 처리하였다. 그 축대에 이어서 푸른 잔디나 작은 민들레가 피는 풀밭으로 평평하게 된 곳이 있다. 축대 벽은 거무스름하게 돼 있다. 이 벽에는 편지지만큼 큰 동판이 많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사람의 이름과 그가 출생한 날과 장소, 죽은 날과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부인의 경우에는 그가 결혼하기 전 성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어떠한 일을 하였으며, 어떤 직위를 가지고 있었거나, 어떤 영예를 가졌었다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그곳에 그렇게 이름판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독일 퀘이커들로서 죽은 뒤에 화장하여 그 재가 이 공동묘지에 뭍이거나 뿌려진 사람들이다. 퀘이커의 조상들이 뭍인 거룩한 곳이다.
그런데 이 장소에서 항상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바트 피르몬트 퀘이커하우스에서 모임이 있을 때, 즉 퀘이커들의 계절모임이나 연회가 있을 때는 가족들이 함께 온다. 어린아이들도 함께 올 때가 많다. 그 아이들은 돌보는 친우들에 의하여 산과 시내와 들로 다니면서 아주 즐겁게 놀고 게임을 하고 노래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시키지도 않고 지도하지도 않는 일이 벌어진다. 어린이들은 원래가 창의력이 출중하기에 스스로 놀이를 꾸미고 조직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 중 하나는 공이다. 아이들이 공을 어디나 가지고 다니면서 논다. 바로 이 공동묘지의 풀밭에서, 돌아가신 퀘이커들의 재가 뿌려지거나 뭍인 그 풀밭에서 신나게 뛰며 공놀이를 한다. 공놀이뿐만 아니라,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여러 가지를 즐긴다. 어디에도 죽음과 관련된 거룩함이나 엄숙함과 숙연함이 없다. 그냥 신나게 자기들의 생명력을 발산한다. 그것을 보는 어른들의 눈은 매우 자랑스럽고 대견스러워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한 어른이 모임에서 말하였다. 공동묘지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통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에서도 공동묘지에서 그렇게 자유롭게 놀게 하는 곳이 없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감동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았다.
옛날 내가 어려서 살던 고향 학산의 순양 마을 뒷동산에, 뒷골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동산에 큰 무덤들이 여럿 있었다. 소나무나 다른 나무들이 없던 그곳은 양지바른 곳으로, 산이 순하였기에 잔디가 잘 살아 있었다. 그 무덤 옆에는 아주 오래 된 큰 소나무가 두어 그루 서 있었다. 단오 때가 되면 동네사람들이 짚을 모아 동아줄을 틀어 그곳에 그네를 매었다. 내 어린 손으로는 두 손으로 잡아야 굵기를 잴 수 있는 굵은 동아줄이었다. 그것을 큰 소나무에 매고 그네를 뛰었다. 낮에는 일을 하느라 뛰지 못하지만, 저녁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나 어른, 여자나 남자 할 것 없이 그곳을 즐겼다. 밤늦게까지 그네 뛰는 소리가 마을을 즐겁게 하였다. 어떤 사람은, 아주 힘이 좋고 잘 연습이 된 사람은 까마득히 높이 올라가면서 앞가지에 달려 있는 솔잎을 입으로 따오기도 하였고, 궁둥이로 뒷가지를 치기도 하였다. 쌍그네를 뛰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걸작이었던지. 그러다가 단오날에는 그네뛰기 내기도 하였고, 하루를 아주 즐겁게 지냈다. 그리고는 그날 밤 그네 줄을 끊었다. 그 다음 날부터는 그네를 뛰지 않았다. 뛸 수가 없었다. 농사에 바쁜 때이기에 더 이상 그런 놀이가 불가능하였다. 또 큰 어른이 높게 그넷줄을 잘랐기에 어린 아이들의 손이 닿지가 않았다. 높은 나무에 두 줄 잘려진 그넷줄이 밑으로 내려뜨려져 있을 뿐이다. 그것을 볼 때는 섬뜩한 생각도 들었지만,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 끊어진 그넷줄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 도달하기 불가능한 먼 하늘나라처럼 느껴졌었다.
바로 그 그네가 매달렸던 나무 옆에 있는 몇 상부의 산소들이 우리 어린아이들이 아주 즐겨서 놀던 놀이터였다. 그 산소의 주인은, 아니 그곳에 뭍인 분의 친척이나 후손들은 다른 동네에 살았던 모양이다. 우리가 그곳에서 그렇게 신이 나게 놀아대도 아무도 와서 꾸중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패를 갈라 온갖 놀이를 다 벌였다. 어느 무덤 꼭대기를 서로 차지하는, 일종의 진지나 고지 탈환전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봉분은 여지없이 우리 어린아이들의 발에 짓밟히고, 잔디들은 잎을 잃고 잔디뿌리만 밖으로 내보이기도 하였다. 어린 우리들은 뒹굴기, 구르기, 밀어내기, 깽깽이치기, 잔디썰매타기 따위 온갖 놀이를 그 무덤에서 하였다. 무서운 생각도 없었고, 그 밑에 누가 있어서 힘들어하거나 노여워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놀았다. 옷은 찢어지고, 단추는 떨어져 날아가 버리고, 꿰맨 잇으매들은 타개지고. 잠자는 그 분은 조용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평상시에, 아니 살아계실 때 아이들을 좋아하였던 분일까? 아니면 아주 싫어했던 분이었을까? 모른다. 그러나 유독히 그 무덤에는 아이들이 들끓었다. 놀기에 아주 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당이었다.
어느 날 내가 고향을 찾을 때, 그곳을 둘러보았다. 옛날 같이 놀던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곳에 지금은 나무들이 무성하여졌고, 잔디가 좋던 그 무덤가에는 겨우 햇볕을 받아 잔디라는 명맥만을 잇고 있었다. 전에 없던 비석과 상석이 놓였고, 매우 정성을 드린 듯한 느낌이 드는 무덤단장이 있었다. ‘효심’이 발동한 후손이 돈을 벌어 조상을 섬긴 것일까? 그 무덤 가 어디에서도 아이들의 노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떠난 무덤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거룩하게 느껴졌고, 엄숙하게 느껴졌다. 어떤 괴기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무덤이 아늑하거나 따뜻한 기운을 잃어서도 그러겠지만, 그곳에 와서 신나게 즐기고 놀 아이들이 그 마을에는 이제 더 없다. 60-70명 씩이나 되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겨우 10여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놀이패 한 짝을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시골이지만 시장에서 사온 장난감이 방안에는 늘비하게 많고, 알프스의 하이디를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방안에 놓여있다. 자연이 주던 장난감은 상품제품에 자리를 빼앗겼고, 푸르거나 금빛 나는 잔디에서 푸른 하늘을 벗삼아 놀던 열정은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록을 누비는 하이디를 방영하는 그것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바트 피르몬트 퀘이커하우스 앞 공동묘지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놀던 고향 뒷동산의 무덤가를 비교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죽음과 삶이 한 곳에 있는 곳, 가고 옴이 따로 있지 않는 곳, 죽어 잠잠함과 살아 약동함이 함께 있는 곳. 그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우리가 짓밟고 놀던 그 무덤의 주인은 기뻐서 날뛰었을 것이 아닐까? 지금 저렇게 푸른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면서 노는 철모르는 아이들을 그윽하고 흐뭇하고 기쁜 맘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이 있듯이. 무덤과 이이들은 가까워야 하는 것인가? 놀이터처럼 편안해야 할 무덤, 그 무덤을 안방이나 안마당처럼 생각하는 아이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수염을 쥐뜯고, 지엄한 할아버지 얼굴을 핧히고, 등과 어깨를 타고 넘던 손자들. 마치 무덤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러한 것들이지 않았을까?(05.11.07. 照)

이카루스의 날개에 매달려- 퀘이커 글 모음

이카루스의 날개에 매달려 - 퀘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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