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김조년.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김조년. Show all posts

2020/01/09

18 김조년 - 일상생활에서 퀘이커 신비(주의)와 도가의 신비(주의)의 만남 - 새로운 종교를 찾기 위하여



Backhouse Lecture 2018

일상생활에서 퀘이커 신비(주의)와 도가의 신비(주의)의 만남

- 새로운 종교를 찾기 위하여 -

김 조 년(Cho-Nyon Kim)




* 왜 나는 이 강의를 맡았는가? 모든 것은 변하고 또 변한다.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에서 항상 경험하는 것이 변화다. 관점도 달라지고, 세계도 달라진다. 민족도 국가도 종교도 철학도 그 내용이 달라지면서, 그것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달라짐은 때때로 있던 것들이 사라짐이지만 동시에 새로 운 모습으로 확장되는 것이요 풍부하여짐이다. 그래서 동시에 사라질 것은 사라지고 새 로운 것은 덧붙여진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과 정체성의 문제이 면서 새롭게 첨가되는 깨달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퀘이커를 만난 뒤부터 퀘이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어떤 것도 규정하거나 기준이나 신조를 만들려 하지 않는 퀘이커의 전통과는 아 주 먼 시도였다. 그러나 내가 퀘이커의 회원으로 정식 등록 된 뒤에도 이에 대한 노력을 끝없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퀘이커 됨이란 무엇인가를 내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하 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이미 형성된 퀘이커됨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찾는 자(seeker)로서의 진지한 자세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노력할수록 퀘이커들이 주장하고 살아가는 것들이 내게 구체적으로 잡히기보다

는 모두 추상적이었다. 막연하였다.

예를 들면, ‘내면의 빛’ ‘내면의 소리’, ‘내 안에 계신 그 님’. 퀘이커들이 말하는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불교와 유교와 도가와 한국 고유의 생활(민속)종교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옥황상제’, ‘용왕’ ‘염라대왕’이나 ‘극락’ 또는 ‘서방정토’ 따위, 또는 기독교인이 된 뒤 수도 없이 많이 들어온 ‘하느님’, ‘성령’, ‘메시아’, ‘그리스도’, ‘구 원’, ‘해방’이나,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Tao), ‘진인’(眞人), ‘자연’ 또는 불가(佛家)에 서 말하는 ‘내 안의 부처’나 ‘성불(成佛; 부처가 됨)’, 해탈 등이 모두 추상적으로 다가왔

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분명한 것이 없었다. 다만 이러한 추상개념들은 일상생활과 매우 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분명하였다.

그래서 그런 개념들의 설명이나 이해보다는 좀 더 일상생활과 긴 한 관계가 있다는 퀘이커들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더 끊임없이 궁금하였다. 다시 말해서 퀘이커가 매우 좋 아하고, 모두가 실천하려고 하는 말들, 즉 평화(Peace), 단순함(Simplicity), 평등 (Equality), 컴뮤니티(Community), 진리(Truth),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진실 (Integrity) 등도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이것들 역시 이해하고 실천하기에 매우 쉽지가 않다. 그 말들에 대해 매우 깊은 매력을 느끼지만, 그것들을 생활에 적용하여 실 천하려 할 때 매우 추상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그것들은 상황과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복잡해지고, 생활공동체는 깨지고, 평화보다는 다툼과 전쟁의 위험으로 가 득하고, 통합과 함께하는 삶보다는 분별, 분열이 가득하고, 점점 더 차등이 심화되며, 자 연파괴를 넘어 생명의 종말을 촉구하는 문명의 발달과 사건들이 많아지는 이 때에 이런 퀘이커의 전통처럼 내려온 삶을 실현할 길이 어디에 있는가? 특히 가장 단순하게 산다는 것이 곧 복잡하고 화려하게 살도록 규정된 현대문명사회에서 어떻게 그 삶의 전통을 지 키면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세계는 전과 같이 민족과 나라와 지역을 넘어 인류를 생각하고 전 지구를 하나로 보며 문화의 융합과 공존을 꾀하는 지금, 어느 한 종교의 종파성을 주장하고 추구하는 것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본다. 퀘이커는 어떤 종파성에 얽매는 것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끊 임없이 하여 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함은 물론 중요하다. 이러한 때 동양의 고전 중에서 가장 평화롭고, 단순하며,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아 끼고 귀하게 보며, 형식과 규범을 넘어 자연(도)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주장한 도가의 이론과 삶을 찾아보는 것은 퀘이커 종교성 확장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들을 비교하 는 것이 아니라 퀘이커를 보충하거나 확장하기 위하여 도가의 영성, 또는 신비를 살피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성과 신비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건들에서 들어나기 때 문이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내가 낳고 자란 한국사람들의 일반적 종교생활, 종교성과 나의 성

장을 살펴보고, 한국사회를 오래도록 이끌어 온 유교, 불교, 민속종교들의 진화와 새로 들어온 기독교의 토착과정을 간단히 살핀 뒤, 퀘이커가 추구하는 것들과 도가에서 추구 하는 핵심점들의 만남을 살펴본다. 그런 다음에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살아간 한국의 초기 퀘이커 중 한 사람인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살핀다. 마지막으로 퀘이커로서의 내 삶의 방향설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본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주로 질문 형태로 정리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주장이 아니라 내 궁금함의 표현이다. 이것은 나의 퀘이커 됨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요구이다. 이것은 동시에 미래의 퀘이커를 걱정할 만큼 젊 은 퀘이커들이 현격하게 줄고, 퀘이커들의 노화현상은 바로 직면한 문제다. 이것은 퀘이 커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러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바로 퀘이커 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종교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서 어떤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바로 전통적 퀘이커를 선전하고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화전통과 종교전통의 진수와 퀘이커의 진수를 접목시켜 확장된 종교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퀘이커의 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 다.

나는 퀘이커를 만난 것을 매우 큰 기쁨이요 다행한 일로 생각한다. 동시에 매우 큰 삶 의 부담으로 느낀다. 신앙과 그 믿음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하는 문제에서 퀘이커들이 모 범이 되어 그 흐름에 몸을 싣고 싶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점 에서 더욱 그러하다. 모든 것이 형식화한 세계에서 실제를 살고 싶은 맘에서는 내 자신 이 퀘이커를 만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 믿음에 성실하지 못하는 것에서는 내가 퀘이커라고 누구에게 말하는 것을 매우 주저스럽게 한다. 특히 초기의 퀘이커 선배들, 조지 폭스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는 그런 감동과 떨림과 진리에 대한 헌신의 움직임 을 경험할 수 없는 것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종교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흘 던 것같은 느낌이 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의 흐름과 기성종교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노력 등에서 사회 전체 는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느낀다. 그러한 때이지만 조지 폭스 등 초 기의 친우들의 삶은 매우 곤고하였으며 이상한 것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러한 상황 속에 서도 믿음을 지키려는, 곧 진리를 따르려는 그 삶은 매우 감동스럽다. 그것은 마치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과 같다. 내 자신도 그런 삶 속에 있고 싶다. 그 러나 지금은 매우 비종교적 사회분위기, 종교없는 종교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사는 느 낌이다. 물론 종교라는 조직과 교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많지만, 형식화한 종교에서 내용에 충실한 종교생활을 실천하는 수는 매우 적다. 동시에 종교, 정치, 경제, 문화, 학문, 일상생활의 친분과 교류에서 비종교적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는 듯하다. 이러 한 때 깊은 종교성을 띈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초기의 퀘이커 친우들이 가졌던 철저한 진리추구와 그 삶을 실 현하려다가 겪은 고난의 경험이 없다. 매우 평범하고 평이한 종교의 삶을 살아왔다. 그 러므로 내 말 속에서 종교성이 매우 희박하며,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을 찾기가 어렵다. 다시 말하면 형식적으로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몸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 속에 살고 있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 또는 내 속에 있는 빛의 작동을 따라서 내 일상생활을 이끌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이것은 일종의 철저하지 못한 내 삶의 모습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퀘이커의 삶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을 던져 주기가 쉽지가 않다는 점이다. 그러면 서도 이 강좌를 하겠다고 대답한 것은 단순히 이런 내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종교적 사회분위기, 문화체계 속에서 어떻게 종교와 비종교가 구별되지 않으면서도 진리를 실현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하여 우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펼치겠다. 그러니까 이 말 은 나의 퀘이커 깨달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묻 는 것이다.



1. 나의 성장과 내 주변의 종교성 나는 무종교적이지만, 유교적 가정생활의 전통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 가정은 유 교전통의 교육과 생활윤리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불교나 무속 또는 한국 적 샤마니즘의 생활풍속이 우리 가정에는 없었다. 우리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섬기는 무 속신앙의 전통을 우리 가정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점을 치거나 절을 찾아 부처에게 기도하고 시주하는 일이 없었다. 그분들의 언어생활에서 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

다. 그 대신 사람이 죽고 나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혼은 하늘로 날아가고 백은 땅에 묻힌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 때 사람이 살아 있 때는 하나였던 것이 어떻게 죽 은 다음에는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각각 자기들이 갈 곳으로 가는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다. 나는 그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지도 않았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그에 대 하여 자세히 설명하여 주신 적도 없다. 그러나 혼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할 때, 그 하늘 이라는 곳이 어디일까가 몹시 궁금했고 그것을 알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모르는 채 그 냥 자랐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집안에 차려놓은 빈소에 상징으로 만들어 놓은 혼백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면, 어른이 돌아가시면 집에는 빈소를 차렸다. 빈소에는 종 이상자로 만든 혼백함이 있었다. 그 안에는 청색실과 홍색실을 꼬아서 혼백을 상징하는 실무더기를 넣어두었다. 그러니까 빈소를 차리는 동안은 그 혼백상자가 죽은 사람을 상 징한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 빈소에 아침과 점심과 저녁 세 번의 상식(밥상)을 올렸다. 그 때는 언제나 혼백함을 열어서 죽은 혼령이 식사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완전히 상 징을 통한 의식행위(儀式行爲)지만 아주 진지하게 그 일을 하였다. 그리고 삼년이나 일 년이 되어 탈상할 때는 그 혼백함 속에 있는 청실과 홍실을 꺼내어 땅에 묻거나 불에 태 웠다. 백을 상징하는 청실은 무덤 앞에 묻고, 혼을 상징하는 홍실은 불에 태워 날렸다. 이렇게 하여 죽은 사람은 혼과 백으로 분리되어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는 예식을 치 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집에서 하는 유일한 종교행위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 은 엄 히 따지면 종교행위라기보다는 단순히 조상신을 섬기는 효도행위에 속하는 것이 었다. 그러니까 조선사회를 이끌어 왔던 유교, 그 중에서도 성리학계통의 신유교를 생활 윤리로 믿었던 가정 전통은 다른 종교행위에 대하여 배타적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신 유교와 성리학 전통과 위배되거나 배치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매우 크게 배척을 받았 던 조선시대의 전통이 우리 가정에는 일상생활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이변이 생겼다. 내 증조할머니의 큰아들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며

느리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큰 손자가 죽었다. 이에 그녀는 매우 크게 상심하였다. 이 때 예수교전도사를 만나서 기독교의 복음을 듣게 된다. 그 뒤 그녀는 매우 열심히 교회 에 나갔고, 기도를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기도 방식은 한국 전통가정의 기도방 식과 같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두 손을 모으거나 비비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젊어서 죽은 영혼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살아 남은 큰 아들의 안녕된 삶을 비는 기도였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몸을 단장하 고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사회의 생활신앙전통과 일치하는 행위였다. 가정 에 무슨 일이 있거나 어떤 사람이 아프거나 멀리 떠난 가족을 위하여 빌 때는 언제나 그 와 비슷한 기도를 하는 것이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일상문화였다. 그렇게 빌고 난 뒤 일 상에서 일을 하면서 찬송가를 입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 중 가장 많이 부른 것이 ‘예 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네’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전통은 그녀의 며느리에게 내려 졌고, 나중에는 손주며느리에게 전해졌다. 물론 그녀가 직접 그들에게 전도한 것은 아니 지만, 그런 가정의 영향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내 할아버지는 이런 기독교 신앙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큰 갈등은 아니었지만, 유교전통의 가정분위 기와 기독교 신앙이란 새로운 흐름 사이에 묘한 갈등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 론 내 증조할머니나 할머니는 철저한 기독교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 에, 유교식의 가정윤리나 조상에 대한 제사행위를 진행하는 데는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중국에 가톨릭이 전달되었을 때, 그리고 조선왕조 때 한반도 에 전달된 가톨릭과 유교 사이에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제사갈등 같은 것이 우리 가 정에서는 없었다. 나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미래의 삶이 나 일상생활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 고향 마을에는 불교사원도 없었고, 유교식 사당도 없었다. 향교나 서원이 있는 마 을이 아니었다. 내 고향마을은 한국 전통사회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양반들이 사는 곳 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조선사회의 철저한 유교식 예식이나 예법으로 마을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한 해를 시작하는 날 동네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산제당이 있었고, 성황당이 있었으며, 마을 입구에는 마을수호신으 로 장승이 세워졌었다. 많은 사람들은 절기에 따라서, 각자 자기집의 전통에 따라서 자 기들이 믿는 신에게 빌었다. 때로는 부엌신에게, 때로는 장독대신에게, 때로는 우물신에 게, 때로는 나무신에게 빌었다. 묘하고 큰 바위나 몇 백년 묵은 큰 나무나 깊은 골짜기 나 우물은 또한 기도터가 되었고, 그것들을 숭배하기도 하였다. 일종의 애니미즘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에게 신은 일상생활 속에 있었다. 어느 집에나 그 집을 지키는 지킴이, 즉 업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한국의 전통사회에는 기독교에서 말하 는 것같은 유일신 개념이 없었다. 신은 매우 다양하였고, 많았으며, 각각 기능을 담당하 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옥황상제라는 최고신이 있었으나 그것은 개념상의 신이었을 뿐,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기도의 대상은 아니었다. 물론 조상에 대한 숭배심은 매우 강했다. 조상이 돌아가신 날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제사를 지냈다. 이 런 모든 제사와 비는 행사에는 언제나 음식이 마련돼 있었고, 그에 해당하는 상징물을 마련하였다. 거기에는 일정한 그에 맞는 의식행위가 있었다. 그러할 때는 언제나 전통으 로 내려오는 신의 이름들을 상정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개별적이지 체 계를 갖춘 조직이 아니었다. 아플 때나 깊은 병에 걸렸을 때, 가정이나 한 사람에게 어 려운 일이 있을 때는 그들은 그들이 믿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이 것들은 조직되지 않은 일상생활의 종교적 예식행위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으로 기독교 교회에 나갔다. 매우 낯설었다.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목사의 축복기도를 받았다. 열심히 다녔지 만 의심스러운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 중에 왜 기도할 때 꼭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하 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자기가 빌고 기도하는 것이지, 꼭 누구를 대신 불 러서 그의 이름으로 내 기도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예수가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으로 비는 것이라 고 하였다. 내 죄를 그가 짊어지고 죽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점 이었다. 이것이 곧 십자가 신앙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그렇게 나를 대신 해서 죽을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요 그는 그인데 그가 어떻게 나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 그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교나 기도 또는 찬송가를 부를 때 피, 죄, 원죄, 죽음, 구원, 부활, 영생, 멸망, 지옥, 천당, 천사, 마귀, 싸움, 승리, 사랑, 평화 따위의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 피와 죄라는 말이 들어간 찬송가를 부를 때는 매우 거북스럽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찬송가의 내용들이 매우 전투적인 것이 많아서 함께 부르기가 많이 불편하였다. 사랑과 저주나 멸망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으며, 평화와 싸움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알 수가 없었다. 유교나 도가에서, 또는 일반 민속신앙에서는 원죄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 았기 때문에 기독교회에서 말하는 원죄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더욱이 이해하기가 힘든 것은 믿음이라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내가 받은 교육은 유

교식 윤리교육이었다. 그것은 성인을 모델로 하여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하는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아 가는 생활윤리를 매우 귀중한 것으로 알고 지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도덕적 흠결이 없이 사는 것을 매우 훌륭한 덕목으로 알고 지내기를 바랐

다. 인(仁)한 삶, 즉 자비와 사랑의 삶과 의(義)의 삶, 즉 정의로운 삶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과 모순을 어떻게 조화하면서 살 것인가를 배웠다. 오랜 논쟁의 유교전통인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냐 아니면 악한 것이냐 라는 결론 없는 논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 었지만,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무조건 모든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다는 것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무수히 많이 설교하였지만, 그것을 들으면서도 시원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2천 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예수라는 사람이 모든 사람을 원죄로부터 해방하기 위하여 대신 피를 흘려 죽었다는 것 이었다. 그는 아무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세상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와서 죄인들을 위하여 죄없이 피를 흘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믿으면 죄로부터 해방되어 구원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이름을 듣기 전에 살았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것을 모르고 모두가 다 멸망의 구 텅이 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인가? 아직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구원 은 없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다. 매우 심한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을 발견하 였다. 그것을 내가 따라 믿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천당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의 내세에 대한 이야기는 공포를 주기도 하지만 전혀 심각하게 다가오지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 는 서방정토, 또는 극락이라는 것과 같은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하였다. 물론 끊없는 윤 회를 말하는 불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같이 느껴졌다.

또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인간은 인격존재다. 인격이란 자기 자신을 결

정하는 아주 고유한 분야다. 그러니까 인격이란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어느 인간이든 남의 삶을 대신하여 살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지 않던 가? 그런데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나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으 면 크리스천들은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믿겨지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데, 그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믿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 러나 믿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맴도는 논리였다. 여러 신학적인 글들 을 읽을 때도 이 부분에 대한 논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 서 계속하여 교회에 나갔고, 기독교라는 틀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인격을 가진 나라는 존재와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과정이 곧 나의 기독교교회 생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는 중에 하워드 브린턴(Howard H. Brinton)의 책 『퀘이커 300년』이 함석헌의 번

역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하였다. 형식과 내용에서 상당한 공감을 가졌다. 물론 처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함석헌의 다른 글을 읽으면서 퀘이 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서울의 퀘이커 모임에 가끔 참석하고, 독일에 서 머무는 동안 퀘이커모임에 참석하면서 차차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면서 퀘이커 회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 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함께 독 일 북서부 4계회에서 회원이 되었다. 물론 이 때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서 왜 내가 퀘이커가 되는 형식절차를 밟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기도 하였다. 독일에 계 속하여 있겠다면 회원이 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면 회원이 아닌 데 퀘이커모임을 주관하는 것은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백을 하였고 인 터뷰를 통하여 정식 독일연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전에서 몇 친구들과 함께 퀘이커리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 하였다. 처음에는 매일요일마다 짧은 고요예배에 긴 공부를 하였다. 차차 고요예배 시간 을 늘려 한 시간의 고요예배를 마친 뒤에 한 시간 동안 공부를 하였다. 여러 참여자들이 정식으로 퀘이커 월회를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공부를 시작한 지 6년만에 대전 월회로 출발하고 FWCC에 등록하였다. 나는 종교경전을 다양하게 읽는다. 기독교의 성 경 신약과 구약을, 불교경전과 도가경전을 읽으며, 때때로 유교의 경전을 읽는다. 이러할 때 나의 기독교에 바탕을 둔 퀘이커 신앙에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고, 폭넓은 종교성을 얻게 된다. 이미 내 성장배경을 말하면서 밝혔듯이 내 삶 속에는 한국의 유교, 불교, 도 가와 민속신앙의 전통이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들에 대한 체계있는 공부를 정식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삶과 사회공기로서 내 속에 그것들이 들어와 있는 것을 느낀 다.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은 기독교와 퀘이커리즘의 삶이 나를 이끈다.



2. 한국의 종교다원성; 유교, 불교, 도교, 생활(민속)신앙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다원성을 가진다. 국가지배이데올로기와 생 활윤리로 유교, 불교가 오래도록 지배하였고, 도교와 민간신앙은 바로 이러한 외래 종교 들과 조화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이끌어 왔다. 다시 말하면 학자들의 주장들이 서 로 다르긴 하지만, 한국의 재래종교로 도가 또는 도교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중국에 서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 주장이 어떠한 것과 상관 없이 도가사상과 도교신앙은 한국인의 정서 밑바닥에 넓고 깊게 깔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중국과는 달리 도가 사상이나 도교신앙이 한국 역사상의 어떤 왕조의 국가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적은 없

다. 그렇지만 근 1천년 가까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역할한 불교나 그 뒤를 이어 유교가 역할하던 시대에도 이것들은 일반 사람들의 신앙과 생활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대적으로 볼 때 체계를 잡거나 거대한 세력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민간신앙 위 에 중국을 통하여 유입된 불교가 지배한 뒤,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인 유교가 유입되었 다. 이 두 이데올로기는 정치와 문화계에서 서로 충돌하면서도 공존하였다. 때로는 박해 를 받은 적도 있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거나 소멸된 적은 없다. 그러 니까 왕조가 바뀌거나 사회 질서가 기존 이데올로기로 지탱할 수 없이 되었을 때는 언제 나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종교가 들어와 새로운 기운을 사회에 불어 넣었다. 고대국가들 이 기틀을 잡기 시작할 때 민간신앙으로는 국가제도를 이끌거나 새로운 국민정신을 집합 시킬 능력이 없었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종교의 힘이었다. 한국에 불교가 유입된 것은 고대국가 형성과 틀을 같이 한다. 한반도에 있었던 왕조들을 이끈 종교와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는 불교였다. 그러나 달라진 사회와 국제간의 교류는 새로운 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하였다. 이 때 들어온 것이 신유교였다. 신유교는 조선 왕조의 굳 건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편협한 유교유일체제는 정신세계뿐 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경제, 정치생활에 매우 좁은 한계를 가지게 했다. 이 때 중국을 거쳐서 새로운 종교와 철학이 도입되었다. 그것이 바로 18세기 후반에 들어온 가톨릭이 었다. 아주 철저한 신분체계와 현실중심의 유교윤리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이들 은 기독교의 평등사상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잠자던 영혼들을 깨우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소식은 신분사회에 살던 그들에게 복음 이었다. 그러한 사상과 믿음은 지배계층에게는 기존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기상황으로 인식되었다. 이 때 개혁성향을 가지거나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엘리트집단들 이 새로운 사상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이들은 곧 일반 시민들의 삶을 향상시킴 에 새로운 종교이데올로기를 도입하기에 이르 다. 위기의식을 가지게 된 지배계층은 아 주 강력하게 새로 유입된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중국에서도 논란이 된 제식논쟁과 직결된다.

그 뒤 백년이 지나서 개신교가 새로 유입되었다. 가톨릭은 당시의 국가이데올로기인 유교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하여 매우 큰 저항에 부딪혀 상당히 많은 희생자를 낸 반면, 그 뒤 들어온 개신교는 전교의 어려움은 없었다. 의료와 교육과 자연과학기술을 가지고 들어온 개신교는 많은 일반 사람들과 왕조와 지배엘리트들에게 깊은 관심의 대상 이 됐다. 특히 왕조가 힘을 잃고 일본에 의한 강제 통합과 통치가 시작되면서 한국민의 민족의식과 개신교는 일치하는 활동을 하였다. 국권을 상실하여 발생한 민족의식과 새로 들어온 개신교는 공통의 관심사항을 가지게 됐다.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한국은 미국과 유럽에 문을 열게 되었고, 그들의 과학과 민주주의와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러한 것들은 민족주의와 함께 성장하였다.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개신교의 선교전략은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파고들었다. 이 때 전파되기 시작한 기독교의 사상은 이제까지 한 국을 지배했던 유교나 불교의 생활관습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이 때에는 한국 사회의 전통과 역사상에 있었던 종교체계들을 다시 정리하여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형성하려는 운동이 있었으나 크게 성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중 동학(東學)은 려오는 서양의 문물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신운동으로 민간에 깊이 파고들었으나 양반지배계층을 중심으 로 정치를 이끌던 세력에 의하여 철저하게 박해를 받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의 핵심 은 기존의 유교나 불교에서 주장하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그래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 간신앙으로 깊게 자리를 잡았고 널리 퍼졌다. 이 동학은 일본의 통치에 항거할 때 개신 교와 함께 민족 독립의 입장에서 공동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정부의 강력한 박해로 공개활동을 금지당했으며, 조직적으로 박해를 받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들 사이에는 상호 경쟁과 공존의 과정을 겪는다. 동학, 천도교 등으로 이름이 바뀐 이 신흥종교는 한 국의 전통사상과 기독교의 신과 인간에 대한 사상을 통합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었다.

결국 한국사회에는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재래종교와 기독교가 차례로 유입되어 사 회에 매우 중요한 정신활동과 일상생활에 큰 역할을 한다. 새로운 종교나 사상체계가 들 어왔을 때는 언제나 기존의 종교나 사상체계와 갈등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 나면서 새로운 사상체계는 과거로부터 전통으로 내려오는 기존의 정신세계와 사상체계, 그리고 생활습관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은 곧 신유교는 불교의 것을 흡수하 였고, 불교는 새로 들어온 유교를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맨 뒤에 들어온 기독교 역시 이미 이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불교와 유교 그리고 민간 신앙의 이데올로기와 생활습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논리와 교리 상으로는 서로 배치되는 점이 많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상생활에서는 서로 혼용하고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사상체계는 새로 들어온 사상체계를 부분적으로 받 아들여 자신의 것을 개선하였고, 새로 들어온 사상체계는 기존의 사상과 생활습관을 받 아들여 토착화하거나 정착하는 데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곧 갈등과 공존을 가능 하게 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혼용, 또는 혼합은 곧 다른 종교들이나 사상체계 들 속에서 자기 종교나 사상체계의 핵심사상의 일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완전 히 배제할 수밖에 없는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수용할 가능성이 큰 유사성이나 같은 점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갈등과 공존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가져오게 한다. 자신의 종교나 사상체계를 확정하고 유지하기 위하여는 다른 종교나 사상체계와 다르다 는 것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것들 속에 있는 핵심요소들을 활용하거나 차용할 수밖 에 없다. 그것은 곧 현실 종교의 모순과 딜레마를 나타낸다. 이것은 한국과 같은 다원종 교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고유한 종교를 가지고 다른 종교와 교섭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순수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것을 수용하 여 진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자리에서 극단적 진보론자들은 ‘모든 종교는 하나다’ 라는 것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다원성은 곧 종교일원성에서 만난다. 즉 개별 종교들의 다양한 차이들을 깊이 파고 들어갔을 때 궁극에서 만나는 것은 한 점이라 는 것이다. 바로 궁극의 그 한 점을 찾기 위하여 모든 종교는 각각 자기의 자리에서 자 기의 방식으로 출발하지만 궁극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의 다원성을 주장하고 인정하게 되는 데, 그것의 이면에는 종교는 하나라는 종교일 원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확신이 뒷받침한다. 바로 이 점이 종교의 진화와 다른 종교와의 대화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종교나 사상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한국의 것들은 중국의 것들과 매우 비슷한 점이 많

다. 중국으로부터 왔거나 중국을 통하여 왔기 때문이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왔지만, 불교와 가톨릭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다. 그것들은 이미 중국에서 많이 진화된 모습이 거나 토착화와 전교의 갈등을 경험한 뒤에 들어왔다. 그 대신 개신교는 부분적으로 중국 을 통하여 왔고, 큰흐름은 미국과 서양의 선교사를 통하여 들어왔다. 일찍 들어온 것들 은 민속종교와 갈등하면서 융화하였고, 뒤에 들어온 것들은 앞에 들어온 외래종교와 민 속종교와 갈등하면서 융화하였다. 그러므로 지금 존재하는 큰 종교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는 고유한 민속종교와 다른 외래종교들과 부딪치면서 융합된 복합성을 띈다. 그렇 게 하여 한국화한 것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내 개인 자신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옛날이 야기나 선조들의 이야기 또는 생활이야기를 통하여 유교, 도교, 불교와 민속신앙이 혼합 된 삶의 지혜, 체험, 학문, 도덕과 종교의 체험담을 정신적 양식으로 삼고 자랐다. 체계 있는 교육이나 종교행위로서가 아니라, 비공식 일반 삶의 이야기와 생활을 통하여 여러 종교들이 녹은 생활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러므로 내가 기독교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내 속에는 한국사회의 오랜 종교전통들이 녹아서 흘러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는 국가형성을 위한 정신적 기반으로 삼기 위하여 민속종교와 유, 불, 도 교의 사상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 영향은 그 뒤 국가가 형성되고, 견고하게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있었을 때에도 다른 사상들과 어느 정도의 갈등은 있었지만, 대개의 흐름은 서로 용납하는 분위기가 지배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3. 한국의 종교들과 기독교의 만남 어떤 종교가 되었든 새로운 지역에 전파 되어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면 순수하게 자기 자신만이 가지는 것을 주장하고 유지할 수가 없다. 종교가 어느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은 그곳의 긴 역사과정에서 형성된 문화 속에 정착되는 것을 말한다. 한 종교가 새로운 사 회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한 사회가 새로운 종교를 유입하 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때까지 그 지역에서 살아왔던 삶의 자세들, 생각들, 의 식(儀式)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또한 그들이 사용하였던 언어(개념) 속으로 들어가지 않 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전래되는 종교들의 변이가 일어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측에서 는 굉장히 심한 갈등에 부딪치게 된다. 때로는 대화라는 상황으로, 때로는 박해라는 양 상으로, 때로는 무관심이란 자세로 나타난다. 어떠한 상황으로 전개된다고 할지라도 이 미 그 땅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들과 관련을 짓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 새로운 종교의 전파다. 이런 과정에서 종교들은 새롭게 진화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한국은 다종교 사회다.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종교들이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됐고, 생활문화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새로운 종교가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에도 과거에 있었던 종교와 생활문화는 주류의 자리에서 곁 가지로 려 났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대로 삶과 생각과 제도와 의식 속 이나 밑바닥에 남아서 기능한다. 새로운 체제에서 살아남는 것과 새로운 지역에서 널리 퍼지는 것은 바로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접촉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접촉점이 바로 공 존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종교들의 대화가능성과 토착화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인류라는 것이 가지는 어떤 보편성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인류라 는 존재가 어떤 상황, 어디에 있든지 꼭 가지게 되는 공통의 종교성이 있다는 것을 말한

다. 이것이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근거가 되며, 모든 종교들이 다른 종교에 의하여 진화하는 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에 있었던 많은 종교들과 기독교를 비교해 볼 이유가 생긴다. 한국에 고유하게 오래도록 전통으로 내려오는 종교들과 기독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불 가능하고 의미가 없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개념들이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변화 되었으며, 같은 존재를 두고 각각 다르게 이름을 붙이고 있기도 하지만, 같은 이름을 쓰 는 같은 종교 안에서도 시대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라지기 때문이 다. 때로는 신, 하늘, 도, 절대자 따위로 각각 불리지만 그것들은 궁극존재 즉, 최초, 최 후, 지고하고 심오하며, 개인 안에 실재하는 존재라는 데서는 일치한다. 신앙의 대상으로 서 그것들은 그렇게 사용되어 왔다. 동시에 인간 삶의 실천에서도 역시 용어와 이미지가 각각 달랐다. 죄로부터 벗어나며, 고통을 넘어서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며,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넘어가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도 역시 같은 노력이었

다. 그러니까 믿음과 실천의 부분에서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가를 간단히 살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른 점과 비슷한 점 또는 같은 점을 간단히 살피는 것이 의 미가 있을 것이다.

유교와 도가 또는 도교는 중국에서 수입되었다. 불교는 중국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

왔다. 물론 중국에서도 많은 변화를 거치고, 새로 들어온 종교들과 공존하고 다투면서 변화된 것이었지만, 한반도에 들어온 각 종교들은 또 한 번 굴절 내지는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름을 쓰지만 내용은 매우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유교와 불교, 도교나 도가에서는 직접 신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인격존재로서의 신개념이 그들에게는 없지만, 신과 같은 기능과 역할을 하는 궁극존재는 있다. 그것이 바로 그것들의 종교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격신이라고 하지만 만남은 비인격적이고, 비인격신이라고 하지만 만남은 또 인격적이 다. 그러니까 신이 어떠하다는 것은 어떤 논리나 교리가 아니라 만남의 체험이라고 보아 야 한다. 비록 개념 설명에서는 인격과 비인격이라는 것이 구별 될 수 있는 것이지만, 만남은 모든 곳에서 인격적이라는 점이다. 그런 인격적 만남이 아니고는 결코 삶의 변화 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란 궁극존재와 직접 만남을 통하여 자신과 그가 하나 가 되는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교에서는 죄를 말하지 않는다. 물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각종 신들에게 빌고 기도 를 하지만, 그것은 죄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인간집단인 국가와 민족(종족) 의 안녕을 위한 것이며, 현세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인간과 집단이 할 일의 핵심은 하늘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었

다. 하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기수양, 곧 성인에 이르는 자기 닦음의 길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일이었다. 그 중 하나가 인 (仁)을 행하는 것이면서 조상을 숭배하는 일이었다. 이 부분에서 기독교와 큰 갈등을 일 으켰다. 조상에 대한 숭배는 종교행위는 아니지만 가족전통의 예식행위였다. 그 문제는 온갖 가족행사에서 항상 부딪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중국에서도 크게 부각된 것이었 고, 한국에서도 꼭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문제에 대한 가톨릭과의 갈등은 지금은 해소 되었으나 개신교와는 아직까지도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았다. 기독교인도 물론 조상에 대 한 생각을 깊이 하지만, 예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면서 동시에 상당한 유연성 을 가진다. 즉 상당한 부분 타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사회윤리문제에 서는 크게 부딪칠 문제가 아니다.

민속종교와 기독교의 관계: 샤마니즘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무교와 민속종교는 한국사 회에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것은 서양식의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신앙이 었다. 옥황상제라는 최고 신이 있었지만 그는 기도의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역, 종 족, 가족, 시대에 따라서 기도의 대상이 되는 신은 매우 다양하였으며 변하였다. 이 경우 모든 신들은 일종의 기능상의 신이었다. 다신인데 어떤 우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 능상의 문제로만 일상생활에 대두되었다. 이 민속신앙은 유교 불교 기독교의 예식과 생 활에도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그런 의미로 보면 민속종교 즉 무교는 지금도 살 아서 계속하여 생성되는 현대종교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정서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유교는 생활윤리로 작용할 뿐, 어떤 종교적 교육이나 체계있는 조직으로 존재하

지는 않는다. 사원이나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권위 있는 유교교사나 학파의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국이 유교사회라고 서양에서는 흔히 말하지만, 그것은 그냥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생활화된 문화들이 있기 때문만으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정당 한 것인지는 매우 궁금하다. 유교는 인간과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윤리를 강조하였기에, 그것이 곧 일상생활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교리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숭상하는 입장 에서가 아니라, 전통으로 내려오는 생활을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유교사회라고 할 때는 의미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맹자와 순자로 나뉘는 인간의 본 성이 선하냐 악하냐는 논쟁을 통하여 인간은 온전함에 다다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 정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수양을 추구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를 받아들임에도 계속된 자기성장과 성찰을 추구하는 것이 매우 자 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불교는 많은 사원이 있고 승려를 양성하는 학교가 많았다. 여러 해 전부터 학생수가 줄고 승려지망생들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신도들에게서 불교신앙은 크게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대학, 고등학교가 있고, 장례식을 치르는 기 관이 많다. 죽은 이를 위로하고 극락에 이르는 길을 찾고, 살아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상에서 힘든 이들이 고요함을 찾고 평안을 누리기 위한 프로그램 을 절에서 많이 진행한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고,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는 매우 강력한 희망을 일반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돈오(頓悟)나 점수(漸修)를 주 장하는 파가 있지만, 어느 것을 주장하든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상대 안에 절대가 있고, 삼라 안에 열반이 있으며, 속된 것 안에 성스러움이 있음을 인정하는 대승 불교의 입장이 한국불교에서는 강하다. 불교 내 종파들끼리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지 만, 불교와 민속종교인 무교와의 결합은 특이하다. 이것은 불교가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전파하는 전술의 결과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상숭배의 예식이 불교식으로 정착되기 도 하였다. 열반과 해탈의 전통과 서방정토나 극락을 그리워하는 정서는 구원과 천당을 말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게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도교는 별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당도 없고, 교사도 없다. 다만

일을 마친 사람들, 사회생활의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도 교나 도가적 삶을 흠모하여 추구하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매우 힘있게 삶을 영 위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삶은 자연에 순응하는 도가스러운 삶을 사는 것임을 천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바닥의 정서로 깔려 있기는 하지만,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특히 문명비판적 관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가철학은 현대인들의 쉼없는 삶, 끊임없이 급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무의미성을 체험할 때 도가에서 강조하는 관조와 놓음 의 삶은 새로운 숨통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기독교는 일반 교육기관을 많이 운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를 운영하며 특히 기독교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기관을 많이 운영한다. 병원과 각종 사회서비스기관을 운영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사회전반에 서 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현실에 깊이 관여하는 사회운동을 벌여 정치와 경제계에 깊이 관 여한다. 진보경향이 있는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가지지만, 보수경향 의 기독교는 개종과 선교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진다. 종교간 갈등은 이러한 분파에서 많이 심화돼 있다. 각 종교를 신봉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토착화를 생각하는 이들은 서로 교류가 많다. 에큐메니칼 차원의 기독인들은 다른 종교의 성직자나 신도들과 교류를 많이 한다. 그들 사이에서는 개종을 전제로 하는 논쟁은 지금은 별로 없다. 다만 자기 종교 속에 타종교 의 교리나 윤리를 어떻게 수용하고 인정하고 생활방법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한다. 진보 경향이나 보수 경향의 종교인들은 각각 자기들이 관심을 가지 는 부분들에 대한 공동대응을 많이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모임이 아니라 정치나 경제 또는 사회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에서 공통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종교 안에서 진 보와 보수 경향의 흐름들이 서로 교류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수와 보수 끼리, 진보와 진보끼리는 풀어야 할 문제들을 놓고 다른 종교들과 함께 할 때가 많다.





4. 기독교 또는 퀘이커에서 주의할 도가사상의 핵심

도가에서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라고 할 수 있는 도(道, Dao)는 유한한 우리 인 간의 생각, 연구, 언어, 느낌으로 적절히 표현할 수 없는 존재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 터 나왔다는 도는 무한히 신비롭고 오묘하다. 모양이 없고 이미지가 없다. 이름도 없고 성질도 없다. 그러므로 객관적 인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성적 사유나 추 리로서 인식할 수가 없다. 다만 상징으로만 이야기 될 뿐이다. 이미 도라고 말한 도는 도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이라고 이름한 순간 그것이 이름과 실재가 일치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이다. 결국 부정을 통하여 실재를 인식하고 경험하고 느껴야 하는 존재다. 다 시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함으로 도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이 없는 퀘이커에서 예배나 일상생활에서 하는 고요히 함은 불교에서 하 는 참선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은 혼탁해진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방법 이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궁극적 진리를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 맘을 깨끗이 하는 것이 첫째 길이다. 그 다음에 모든 집착을 버리고 무심의 상태로 접어드는 일이다. 그렇게 하 여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초월한 궁극의 실재로서의 무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한다. 내면의 세계를 직관하므로 그 속에 있는 불성을 만나는 일이다. 이것 은 기독교 수행자들이 드린 기도, 즉 마음을 비워 생각과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오로지 내맡기는 것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고요한 중에 찾고 말씀 을 기다리는 퀘이커의 예배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기부정을 통한 새로운 만남을 의미한다. 부정을 통한 절대긍정에 도달하려는 도가의 사상체계는 퀘이커 리즘을 확장하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도가의 사상체계를 세 가지로 크게 나누어 정리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의미

가 있다고 본다. 관계 또는 사회윤리의 실천으로서의 무위, 박(樸; 소박, 단순), 도 그리 고 근본으로 돌아감을 간단히 살펴본다.

도덕경을 읽을 때 일반 사람들이 가지는 자신감, 위로감은 무엇일까? 거기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 지극한 경지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진실되게 하면 다 이룬 것이 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다 시 말하면 사람이 도달해야 할 고정된 단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의 능력 상황 처지에 따른 진실된 과정을 중요하게 본다는 말이다. 어린아이와 청장년과 노인이 도달 할 기준을 일정하게 설정할 수가 없다. 각자 그들에게는 각각 다른 기준이 제시된다. 다 양한 기준은 곧 다양한 사람들의 그들 나름의 기준과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가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도가의 신비체험은 황홀한 것이 아니라, 어둡고 중립적이며 불확실하다. 그래서 믿음 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직접 체험에 근거한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체험 이란 단순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삶의 신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간단 히 도가철학을 원칙과 역동적 힘과 행위 또는 삶의 실천자세를 나누어 생각하여 본다. 우선 도(道, Dao)에 대한 이해다. 도는 궁극적 절대실재로서 초월적이면서 내재적이다.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것의 어머니다. 자애롭고 생산하는 실재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이미지를 그릴 수 없는 무의 존재다. 부정으로서만 설명이 되는 없음의 존재다. 들어도 들을 수 없고, 보아도 볼 수 없으며,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냥 작용만 볼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의 원천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까 맣고 까만 카오스다.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주 묘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꼭 설명이 필요하다면 텅 비어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깊은 골짜기, 가장 낮은 넓고 깊은 바다, 어머니 또는 낮은 곳으로만 흘러드는 물을 들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계시성과 구원성을 가진다. 그래서 영생의 개념을 가진다. 구원과 영생은 자기의 힘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도는 어떤 특정한 상층계급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도의 나타남과 실현은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 지만 언제나 일상성이다. 그것은 일종의 로고스이면서 길이다. 길은 곧 길을 가는 것이

다. 원칙과 삶이라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 원칙이 실제 생활에 적용되는 것은 상대성과 평등성이다. 균형을 잡기 위한 작용은 언제나 상대세계를 이용하면서 그것을 넘는 절대 적 평등성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귀함이나 천함이 없고, 높고 낮음이 없으며 빠르 고 느림이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도(道)가 작용하거나 인간들이 그 도를 따라 올바르게 활동하고 생활하는 자세

는 바로 무위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뒤의 문맥이나 흐름을 보면 ‘하지 않음으로 함’이란 모순스런 해석이 된다. 도는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그릇이나 연못에 물이 차면 넘쳐흐르듯 이, 길이 기울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듯이,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하면 새싹이 돋아나 듯이, 더위가 극에 달하면 차차 기온이 내려가고, 추위가 극에 달하면 기온이 올라가듯 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억지로 인간의 힘을 더하여 작용하지 않게 하 는 일이다. 이것은 때를 기다리는 일이요, 기다릴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다. 지나치 게 문명과 제도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규제하거나 이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무위는 도덕과 예법과 형식을 떠나는 삶을 추구한다. 아나키스트적 삶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드럽고, 자비롭고, 겸손하며, 약하고 비우는 삶의 자세는 무위의 한 가 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다툼과 폭력의 사회양상이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모순스런 용어, 즉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러한 삶은 원초적 상태, 즉 박(樸, natural disposition)으로 돌아가야 가능하다. 박의 상태는 쉽게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소박 단순한 것이다. 그것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 물이 들여지지 않은 상태,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의 상태, 영아와 같은 상태, 뿌리로 돌아간 상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다섯 가지 색은 눈을 멀게 하고, 다 섯 가지 소리는 귀를 어둡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은 입을 더럽힌다. 이러한 꾸밈들은 사 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여 탐심에 가득한 삶으로 이끈다. 그것이 잘못된 문명과 삶을 유 발하는 시작이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언제나 투박하지만 갈고 닦이지 않은 원시상태를 희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타고난 생명본질인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이미지로 표시하고 설명해보자. 도가의 신비주의와 궤이커 신비주

의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것을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퀘이커 신비주의와 도가의 신비주의의 만남에 대한 설명을 위의 이미지

를 통하여 할 수 있다. 퀘이커를 상징하는 Q자는 퀘이커의 믿음과 실천을 의미한다. Q글 자의 O부분은 믿음, 원칙을 의미한다면 ~는 생활실천을 의미한다. Q자 중 O에 해당하 는 것은 신, 퀘이커식 표현으로는 내면의 빛, 내면의 소리, 내면의 스승을 의미한다. 그 것은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 Tao)와 같다. 이것이 어떻게 생활에 작용하는가? 퀘이커들 은 기다리고 찾는다. 그 행위는 일상이나 예배시간이나 깊은 침묵으로 연결된다. 고요히 함으로 말씀을 기다리고, 내면의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어떤 행동이나 활동이 아니다. 그것을 도가식으로 말하면 무위(Wuwei; 無爲)다. 하지않음의 함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말로 하면 성령이 내려질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일이다. 그렇게 하여 신, 내면의 빛, 또는 도에 다다르는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때 활동이 일어난다. 이 활 동이 작동하는 방법은 단순성, 단순함이다. 그것을 도가에서는 박(樸; Po´)이라고 한다. 박은 전혀 작업을 하지 않은, 깎지 않은 그냥 통나무다. 그것을 의역한다면 단순함이다. 순수함이다. 있는 그대로,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모습 이다. 그러니까 도가 일상생활에서 실현되고 실천되려면 무위, 즉 하지않음의 함으로서 도를 체득해야 한다. 그것을 체득한 다음에는 아주 순수하고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어 떤 문화나 교양이나 기교를 섞지 않은, 받은 그대로 살아가는 일이다. 퀘이커의 삶의 증 언이란 바로 단순함, 순수함에서 시작된다. 퀘이커의 증언이 되는 Peace, Equality, Integrity, Community는 바로 Simplicity를 기반으로 한다. 이것이 곧 퀘이커와 도가의 만남의 핵심이면서, 두 체계가 만나는 지점이다. 바로 그 점에서 두 사상체계와 삶의 체 계는 만난다. 이렇게 볼 때 퀘이커가 동양사상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가 있다. 이렇게 하여 퀘이커가 확장되고 진화할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종교는 그래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자란다. 완성된 교리가 없다. 그것이 살아있는 종교의 핵심이다. 이러 한 종합된 삶을 살고자 한 사람이 함석헌이다. 함석헌이 주장하는 씨의 자세와 삶이 바 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이러한 도가적 사상체계를 어떻게 기독교적 체계와 합 하여 자기의 삶으로 이끌었는가?



5. 함석헌(Ham Sok Hon)의 삶과 사상; 종교적 신비와 일상생활 한국의 초기 퀘이커요 현대사상가인 함석헌의 종교사상과 삶에 대한 간단한 고찰이 필 요하겠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를 접촉하고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 길 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처음 장로교인으로 시작하고 성장하였고, 일본에서 유학할 때 우 찌무라 간조로부터 ‘무교회신앙’을 배우고 상당한 기간 그 안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원숙 기에 퀘이커가 되었다. 한국의 퀘이커는 함석헌의 영향이 크고, 나 자신도 그에게서 받 은 영향이 크다고 믿는다.

“나는 학교에서 전공하는 것이 역사, 윤리, 교육이었으므로 그 방면의 책을 읽어감에 따라 종교를 차차 과학적인 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그럼에 따라 기독교는 결코 유일의 종교가 아니요, 종교 중의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었다. 동경에 있는 동안 처 음에는 『기탄잘리』를 읽은 것이 시초가 되어 타고르의 책을 계속해 읽었다. 범신적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내 신앙하여 가는 데 아무 지장이 되는 것을 느끼지 않고 좋았다. 타고르를 읽다가 간디를 읽게 되었다. (…) 우찌무라 선생의 영향으로 칼라일을 읽었다. 『옷의 철학』은 몇 번 읽었다. 그도 교회에 갇힌 이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에서 알게 되어 러스킨을 읽었다. 그도 교회주의는 아니지. 톨스토이는 전부터 읽는데 그는 물론 교회에서 파문을 맞았으니 말할 것도 없다. 우찌무라 선생도 십자가 신앙을 고조하느니만큼 톨스토이는 참 신앙이 아니라 했지만, 나는 우찌무라 선생을 전적으로 존경하면서도 그 점만은 불복이다. 또 선생의 소개로 쉬바이쩌를 알고 읽게 됐는데 쉬바 이쩌는 결코 정통 신자는 아니다. 오산에 교사 노릇을 하는 동안에 동경서 받은 영향으 로 무교회적인 독립 신앙의 입장에서 성경을 원문에 따라 연구해 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역사는 줄곧 웰즈(H. G. Wels)의 문화적인 자리에서 보아왔고 과학에 충실하면서 옛 신앙을 건질 수 있는 데까지 건져보자는 고등비평학자의 정신을 따랐다. 그렇게 성경 을 보았다. 역사에서는, 그 때 한창 성한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을 전혀 눈감고 아니라 할 수는 없어 알대로 알아보려 애썼다. 그 결과 근본에서 틀린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현 실적인 면에서 어느 부분의 진리를 가진 것으로 단정했다. 《성서조선》 사건으로 서울 감 옥에 있는 동안 불교 경전을 조금 읽었다. (…) 그러는 동안에 불교와 기독교와는 근본에 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후 늘 공부하면서도 감히 손을 못 대 던 『노자』를 읽기 시작했다. (…) 피난 중에 해를 두고 이름만 듣고 보지 못한 『바가밧 기타』를 우연히 헌책집에서 발견했을 때 기쁘던 생각, 인도교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 고 읽을수록 종교는 하나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장자』를 읽기 시작했다. 점점 껍질 이 좀 떨어지는 듯함을 느꼈다. (…) 이렇게 오는 동안 역사적 예수를 믿느냐 하는 것, 속죄는 어떻게 해서 되느냐 하는 것, 하나님은 정말 인격신이냐 하는 것, 영원한 생명, 하늘나라는 무어냐 하는 의심이 새롭게 일어났다. (…) 나는 지금 종교는 하나다 하는 생 각이다. (…)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생각은 켸켸묵은 생각이다. 허공에 길이 어디 따로 있을까? 끝없이 나아감, 한없이 올라감이 곧 길이지. 상대적인 존재인 이상 어차피 어느 한 길을 갈 터이요, 그것은 무한한 길의 한 길밖에 아니 될 것이다. 나는 내 가는 길을 갈 뿐이지, 그 자체를 규정할 자격은 없다. 이단은 없다. 누구를 이단이라고 하는 맘이 바로 이단이람 유일의 이단일 것이다.”[1] 이런 선언 뒤에 그는 자기의 독자적 신앙노선을 걷는다.

무교회와 헤어지는 데는 우선 자신보다는 인생 전체를 보자는 것, 앞에 올 것을 보자

는 것, 무엇에 들어붙지 말고 자유하자는 것,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되어 보자는 맘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니 나만이 아버지 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진리의 산에 오르는 길은 매우 많은 것이 눈에 보였다. 걷는 그 자신에겐 이 길 외엔 딴 길이 없단 말이지 객관적으로 그 길만이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많은 사람 이 얼마든지 기어오르는 길이 있다. 절대의 자리에서 하면 길은 유일의 길이다. 하지만 상대의 자리에서 하면 무한한 길이다.(9, 예: 314) 상대의 세계에 있는 ‘종교’, 기독교는 이제 그에게 여러 종교 중의 한 종교일 뿐이다. 그러니깐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라는 것은 상대계의 좁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겸손해야 한다. 개별종교는 하느님을 담을 만큼 크지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제자를 삼고, 사도를 뽑은 것은 최소 한의 껍질을 가지는 상징행위였다. 그래서 함석헌도 가능한 한 상징으로 시작된 ‘엉터리’ 를 붙잡지 말고 자유의 영으로 살자는 것이었다.(9, 예: 315)

그래서 그에게 참 길은 너도 나도 기독교도도 이교도도 다 같이 더듬어가는 길이다. 나만이 아들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은 동물희생을 했지만, 이제 네 신조희생을 해야 할 것”(9, 예; 317)이라는 것이다. 정통이냐 미신이냐는 나와 하느님 사이에서만 알 뿐이다. 획일이 아니라 내 소리를 내자는 것이 참찾아 나가는 길이다.(9, 예;318) 나만을 위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믿고 세계가 구원되어야 한다. 장차 오는 세대를 위해 믿는 믿음이 정말 구원하는 믿음이다. 나(진리)는 지나간 모든 인류 속에 있고, 장차 올 인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멸망할 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9, 예; 318-9) 만인 구원론이다.

함석헌은 새시대에 맞는 종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지금의 종교들은 새 시대에 맞 지 않는 낡은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로: 1) 기독교 교리의 완성, 2) 점점 제도적으로 되 어 가는 점, 3) 공세적이 되지 못하고 수세적이라는 점, 4) 점점 더 피안적이 되어가는 점, 5) 내분이 심하다는 것이 바로 새 종교를 필요로 하는 징표라는 것이다.(3, 새종: 221-222) 낡은 것은 새 것을 예견하고 주문한다. 썩음이 지극하거나 충격이 강력할 때 새로운 흐름은 솟아오른다.

이 시대가 새로운 종교를 낳을 ‘그때’가 멀지 않다는 표시의 두서너 가지 징표가 있다.

1) 현대의 전쟁의 성질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2) 원자학의 발달이다. 3) 세계관 문제다. 4) 생명공학의 발달이요, 5) 전 세계가 하나의 연결망 속에 있다는 점이다.(3, 새 종: 223-228)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게 될 새종교는 어떤 모습일까?

그 새 종교의 모습을 그려보면 대강 이렇게 나타날 것이라 한다. 모습을 그러보는 것

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맘에서 새 종교는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1) “그 얼굴의 테두리를 말한다면 둥글 것이다. 하나란 말이다. (....) 모든 종교는 하나다 하는 것을 거 부하는 종교는 앞으로 몰락할 것이다. (....) 세계를 온통 한 집안으로 만드는 말씀을 주실 것이다. (....) 앞으로 세계는 하나 될 터이요, 그것을 위해서 한 종교가 있을 것이다.” 2) “그 담 그 얼굴의 빛깔을 말하면 무색일 것이다. 더 합리적이 되어간단 말이다. (....) 이 이성의 문제는 과학에 대한 문제다. (....) 과학도 종교도 다 생명의 자라가는 일면인데 이 날까지 반대방향에서 서로 욕을 하며 파 들어간 셈이다. (....) 이기고 지고의 감정에 붙잡 혀 있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못 간다. 과학이 이긴 것도 종교가 진 것도 아니다. 영원무 한의 세계에 들어갈 때까지의 종교요 과학이지, 들어가면 이도 아니요, 저도 아니다.” 3) “이것은 인간관에 관한 문제다. 사람이 그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문제다. (....)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자연세계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이 제 자신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 하는 데 가서 맺힌다. (....) 미래의 종교는 이 지친 인생을 다시 일으키는 종교여야 할 터인데, 그렇기 위하여서는 그 분열된 인격을 재통일 하는 새 인간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을 뚫려 비친다고 하였다. 육이 영의 거침이 되는 것도 아니요, 영이 육을 배척하는 것도 아닌 인간이다.”(3, 새종: 229-235) “미래의 종교는 인격의 종교, 논리의 종교기 때문에 맘의 종교요, 맘의 종교기 때문에 깨달음의 종교다.”(3, 새종: 239) 그것은 언제나 ‘시재(時在, now-here)’, 이 지금-여기에 산다.(3, 말 씀: 143) 지금-여기가 바로 현실이다. “종교는 현실을 잊어버림이 아니다. 현실을 건지는 것이다. 현실을 건지기 위해 가장 작은 정도의 조직이 필요하다.”(3, 말씀: 145) 거대조직 이 아니라, 최소한의 조직과 형식이 필요할 뿐이다. 미래의 종교는 시재의 종교이기에 지금-여기를 놓고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은 구원이 될 수 없고, 회개가 될 수도 없다. 잠 꼬대에 지나지 않는다.(3, 말씀: 146) 물론 목적은 하늘에 있다. 하늘에 오르잠이 종교의 길이다. 그러나 땅을 박차지 않고 날아오르는 새는 없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도 이루어지이다’ 한 것은 바로 시재를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3, 말씀: 146)

그래서 현실의 종교라면 현실을 사는 민중, 밑을 중하게 여긴다. “정말 종교는 민중을

취하고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니오, 불러일으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아무도 악과 싸우 지 않고 선한 영이 될 수 없는 한, 현실에 눈을 감을 수는 없다. 죄악은 곧 현실적 사실, 현실은 곧 죄악적 존재, 죄악은 사회적 현상인 것이므로, 산 종교는 사회악과 죽어도 마 지않는 싸움을 싸우는 민중의 조직적 활동이다. (....) 현실의 죄악과 싸워 이김으로 나타 나는 하나님, 그것이 곧 그리스도다. 우리 종교는 현실적 과학적이어야 한다.”(3, 말씀:

146-7) 그렇다면 어떻게 현실과 싸울 것인가?

싸울 목표는 둘이다. “하나님과 민중. 둘이 하나다. 하나님이 머리라면 그의 발은 민중

에 와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발이 땅을 디디고 흙이 묻은 것, 그것이 곧 민중이다. (....) 하나님 섬김은 민중 섬김에 있다. 가장 높음이 가장 낮음에, 가장 거룩함이 가장 속됨에, 가장 큼이 가장 작음에 와 있다. 진리는 민중에 있다. 민중이 하나님의 발이라 하는 말 은 민중은 보이는 전체란 말이다. (....) 발을 씻음은 민중을 씻음이다. 절대 거룩한 하나 님, 그에게는 문제가 있을 것 없고, 더러워진 발인 민중을 깨끗이 하면 된다. 그래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는 민중이다. 작지만 크다. 작다는 것은 낮단 말이다. 하늘에 비하면 말할 수 없 이 낮지만 땅에서는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교회요, 나라요, 문화요, 세계요, 그것은 다 이 밑바닥 위에 세운 건축에 지나지 않는다.”(3, 말씀: 147-8) 이 민중, 이 씨을 일으키는 하나되는 믿음으로 지극히 작은 조직이 필요하다.(3, 말씀: 149) 그래서 그는 이미 퀘이커 를 만나기 이전에 퀘이커가 돼 있었고, 그래서 만나서 서로 같다는 것을 확인하였을 뿐 이다.



6. 항상 자라는 종교와 인생; 절대구원에 이르기까지 함석헌은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뜻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기독교국가나 기독 교사회를 만드는 것이 의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민족에게 부여된 사명을 완 수하는데 그 책임을 맡겨 준 것이라고 판단한다. 불교가 못한 것 유교에게, 그것이 못한 것 기독교에게 책임을 맡겨 주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을 기독교가 다하지 못할 때는 다 른 것에게 그 자리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하나의 목적이 아 니라 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수단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단순히 자기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구로 선택한 것과는 다르다. 모든 종교는 하느님 앞 에 평등하다. 다만 그가 노는 역할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는 선생에게서 해방되고, 남의 종교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고, 자기 종교를 가지고 싶었다. 즉 ‘내 생각, 내 믿음’을 가지기에 맘을 모았다. 이렇게 되어 그는 서대문감옥에 있는 동안 크게 달라졌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 만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 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여기에 곁들여서 내 태도를 결정하게 한 것이 세계주의와 과학주의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국가주의를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요, 독단적인 태도를 내버리고 어디 까지 이성을 존중하는 자리에 서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듯한 때는 과학 편을 들어 그것을 살려 주고 신앙은 그 과학 위에 서서도 성립이 될 수 있는 보다 높은 것을 찾아

야 한다는 것이다.”(1, 뜻: 17-18) “성한 혼에 모든 종교는 다 하나님 말씀”(죽, 열: 280)인 것처럼 문제는 ‘하나님의 입’이요,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다.

오직 제 종교만을 가지자는 한 사람의 노력에서 세상의 구원을 본다. ‘제 종교’란 하

느님과 맞대결하는 종교, 그래서 신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자 즉 중간자 없이 하느님과 마주 서는 한 신자만을 요구한다. “그리스도는 누구를 대신 시키지 않는 다. 누구를 대신 내세우지도 않고 누구의 대신 노릇을 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 는 인격, 그것이 그리스도다.”(죽, 열: 285) 하느님 앞에 직접 서고자 하는 그는 기독교인 으로서 노자와 장자를 좋아하고(끝: 56), 생명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진리가 있다면 그 것은 ‘모든 인간은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였다는 간디를 좋아하였다.(끝: 62) 동 시에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을 통하여 궁극적 긍정인 영원한 긍정에 도달한다는 칼라일 을 통하여 절대긍정주의자가 된다.(끝: 58)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네가 이제 알아서 살다 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로 해 봐’ 하고 하느님이 준 자유를 사랑한다.(끝: 68) 이 렇게 그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그 자유하는 개인은 독 불장군이 아니라, 전체를 나타내는 개인이다. 그래서 그러한 개인과 전체의 융합이 중요 하다. 현실 속에 나타나는 하느님은 바로 개인의 삶 속에서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나 타낸다.(끝: 역, 150)

하나라는 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그 다 음 것도 그와 같으니 이웃 사람을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걸 받 아가지고 베드로와 바울이 ‘머리는 예수요, 우리는 다 몸이다’ 라고 말한다. 머리는 제일 높고 몸은 낮다는 것이 아니고, ‘우린 다 하나다’ 하는 걸 말하는 거다.”(끝: 고, 192-3) 개인과 전체는 함석헌에게서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한 개인 속에 다른 개인이 들어 있고, 다른 개인 속에 들어있는 내가 전체를 이룬다. 개인은 전체의 표현이면서 전체는 개개인 을 모아 놓은 것 이상의 역동성이다. 개인이면서 전체, 전체를 중심에 두면서 개인을 자 유롭게 하는 영성공동체를 함석헌은 새로운 종교의 모습으로 본다. 그것을 그는 퀘이커 에서 느낀다.

가능하다면 평화주의자 예수의 삶을 따르자는 것이다.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퀘이커의 성경읽기기 때문에 전쟁을 반대하는 일에 투신한다.”(3, 퀘: 154) 그런 퀘이 커는 동양사상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석헌은 언제나 노장사상과 불교의 선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특히 노장사상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데 크게 공헌하기도 하였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벌이는 행동은 목숨을 걸고 하는 수밖에 없다. 양심을 때리는

데는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내 몸으로 폭탄이 되는 거다. 특히 평화주의자의 구령은 ‘자 기희생’이다. 죽자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정성으로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느님이 역

사하실 것을 믿는 것이다.(3, 퀘: 165-6)

타종교와 대화를 좋게 보고, 노장사상이나 불교를 통해서도 하느님은 자기를 계시한다 고 본다. 함석헌은 타골과 간디를 읽으면서 보편주의적 입장에 서게 되었다. 꼭 기독교 에만 진리가 있다는 입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자기 종교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 다. 적어도 도덕적인 종교라면 진리는 하나이고 같은 거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즉 종

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입장이다.(3, 퀘: 155)

그는 언제부터 노장을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그리스도교와 같은 차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 두 사이에 충돌은 없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가까 워 오면서부터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인간의 사회 살림이 근본 에서부터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경계가 달라지 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방식과 사회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달 라지면 어떻게 달라질까? 종교의 역할이 무엇일까? 종교는 새로운 문명이 나오려고 할 때 앞장을 서서 지도하려고 할까? 문명에 앞장서서 인류를 건진다고 하는 성현들이 말한 것처럼, 과연 기존 종교들이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40세 때 그 대답을 부정적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현존하는 종교는 못할 거라고 보았다. 종교 들이 정치에 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2차 대전이란 것이, 지금까지 있던 대국주의, 대 국가주의, 혹은 국가지상주의, 정부주의, 지배주의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관 이 새로워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민중을 위해 있는 국가라야지 민중이 국가를 위해 서 존재해야 된다는 그따위 국가는 없어져야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뜻이라면 이를 위해서 동양사상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3, 퀘: 156-7)

그렇게 하여 그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불교의 해탈도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것 으로 본다. 기독교에서는 죄, 인도식으로 표현하면 무지라고 표현하지만, 인간으로서 하 는 자리는 한 자리라고 본다. 이렇게 볼 때 그들 사이에는 충돌될 요소가 아무 것도 없

다. 아마 기독교에서 찾는 하느님이라고 하는 자리를 노자 장자가 말한다면 도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그걸 관념적으로 분석하지 말고, 실제로 믿는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그 자리가 그 자리 아니겠느냐고 본다.(3, 퀘: 158)

함석헌은 내세에 대하여 ‘있다’거나 ‘없다’는 것으로 부정한다거나 긍정하는데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궁극 목적은 사람이 영원 무한에 도달하는 거라고 본다. 죽어가지고 부 활한다는 것보다 ‘예수는 부활해 가지고 죽었다’고 함석헌은 본다. 죽어도 죽지 않는 생 명을 찾는 것이다. 즉 부활이란 나긴 물질적인 것으로, 육적인 것으로 났지만 생명이 인 간에게 와서는 소위 정신적이라고 하는 데까지 갔다. 아직도 물질적인 것을 완전히 벗어 나지 못하지만, 몸이라는 것은 죽은 후에 무슨 형식으로 되겠는지 그 때 가봐야 알 것이 니까 모르지만, 믿음으로 인해서 그 어느 세계에 올라갈 수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수 와 소크라테스 같은 이가 나왔다는 것은 정신계가 있다는 증거다.(3, 퀘: 159-160) 그러니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세라는 것은 오늘의 세계를 시간적으로 연장해서 죽은 후에도 영원히 호화로운 생활을 가지기를 열망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어서 하늘나라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높은 데 올라가는 것, 그것이 하늘나 라 가는 것이다.(3, 퀘: 160) 그래서 명상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는 비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채우는 것을 통하여 진리의 자리에 선다.(3, 퀘: 169) 이것에서 기독교와 선이 만 나게 된다.

“미국의 어느 신학교에 갔더니 노장사상을 모르고서는 신학을 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 더군. (…) 하나님이란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다는 그것 얼마나 높은 사상이야요? (…) 이보다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원의 세계입니다. 이 우주의 본의가 무엇인고 하니, 온 갖 꽃과 수만 가지 식물이나 곤충들만 보더라도, 다원의 세계이지요. 왜 이처럼 다원적 이냐는 샤르뎅이 다 지적했지만, 우주의 근본원리가 다(多)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여럿 입니다. (....) 이 단계에서 인류가 생각할 것은 다원적으로 하면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나 하는 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원하는 바일 거요. 생명의 목표가 그런 거니까.”(3, 퀘: 172) 다원, 전체, 하나, 동양과 서양, 기독교, 불교, 선, 노장 따위를 구별하는 것을 그 는 싫어한다. 관념으로는 나눔이 될는지 모르지만, 삶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 속에 포섭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한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종교는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에게 종교는 완성된 것이 없다. 계속하여 변하고 흐르며 새롭게 달라진다. 그래서 과정의 종교, 길 위에 있는 믿음이요 자라나는 것만이 있다. 그것은 생 활종교라야 그 길을 따를 수 있다. 신도 미완성이요 자라는 것으로 보는 그에게 현실종 교와 믿음이 완성되어 나타날 수는 없다. 끊임없이 되어갈 뿐이다.



7. 함석헌의 기독교이해와 다른 사상체계 함석헌의 기독교이해는 동양사상과 긴 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의 예수 이해 와 동양철학의 관계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가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정 리하고 주장한 씨이란 것은 ‘맨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맨사람의 좋은 예가 예수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없다.” 예수에게서 맨사람은 ‘어린아이’ 였다. 어린아이가 되는 그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태어남은 어머 니 탯집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다시남이 아니다. 꼭같이 육으로 낳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시남은 영으 로 낳는 것이다. 다시남은 곧 그렇게 낳는 것을 통하여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으로도 다시 나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다시 나고, 모 든 것에서 다시 낳는 것이 곧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것을 동양에서도 함께 말하였다. 특히 노장사상에서는 동심론(童心Q)에서 이것에 깊이 관여하였다. 어린아이로 상징되는 그는 현덕(玄德)한 사람이다. 노자 28장을 보자.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知其雄 受其雌 爲天下谿, 爲天下谿 上德不離 復歸於嬰兒). 수컷(하늘, 양)을 알고 암컷(땅, 음)을 수호하면 천하의 생명수 인 골짜기의 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덕인 자연을 잃지 않고, 영아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함덕지후 비어적자(含德之厚 比於赤子). 덕을 돈후하게 품게 되면 마치 영아와 같이 된다. 벌이나 독충이 쏘지 않고, 맹수나 새들도 덤비거나 쪼지 않는다. 이것이 노자가 보는 맨사람이다. 혹시 함석헌은 씨을 이 지경의 사람들로 본 것일까? 지극히 부드러우면서도 어린아이의 손아귀와 같이 단단하게 잡고, 부드럽기 한이 없어서 물컹한 듯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함유하는 영아. 부드럽고 약함으로 주변을 다 정리하는 어린아이. 동심(童心)은 진심(眞心)이요, 진심은 최초부터 있었던 맘, 곧 흠이 없는 동심 이라는 것이지 않을까? 그 진심을 잃으면 참 사람, 즉 맨사람으로서의 씨을 잃는 것이 다. 이것이 씨의 맘이지 않을까? 함석헌은 기독교에서나 노자가 추구하는 진실된 사람 을 그것으로 본 듯하다. 조금 더 노장사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살펴보자. 함석헌은 노장이해, 아니 노장의 삶의 자세를 이렇게 이해했다.

“노자ㆍ장자는 한마디로 이 현상세계를 초월해 살자는 것이다. 초월한다는 말은 결코 내버린다는 말이 아니다. 이 현상계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양으로 꿈도 아니요, 허망한 것도 아니요, 내버려야 하는 악한 것도 아니다. 노자ㆍ장자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이 현상의 세계는, 그 안에 태어난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피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런 것, 자연적인 것이다. 자연이므로 필연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2]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 태도가 문제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생각하므로 알게 되고(知), 좋고 나쁘고가 판가름되며(情), 그에 따라서 선택하고 버리고가 나타난다(意). “그럴 때 이 생각하는 나와 나를 둘러싸는 세계 또는 그 안에 있는 나와 마찬가지로 생 각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상대에서 절대를 보아 절대에서 상대가 나왔음을 안다. 그렇게 함이 현실을 초월함이 다. 절대도 영원 무한, 상대도 영원 무한, 상대에 살면서 절대에 하나 되기 때문에 ‘현지 우현’(玄之又玄)이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 속에서 그대로 절대와 하나 되기 때문 에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노자ㆍ장자의 삶은 도에서 시작되고 도에서 끝난다. 끝이 시작이요, 시작이 끝이다.”[3]

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기 때문에 그것은 원인 없는 원인이다. 스스로 그런 것, 곧 자 연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음, 곧 무라고 하기도 한다.”[4] 그 도를 깨달으려면 어 떻게 하면 될까? 노자는 지적으로는 허무(虛無), 적막(寂寞), 염담(염淡)을 강조했고, 실 행으로는 무위(無爲), 유약(柔弱), 부쟁(不爭), 복귀(復歸)를 말했다.[5]

이렇게 주장한 노자를 평화주의자로 이해한다. “노자처럼 시종일관 순수한 평화주의를

부르짖은 사람은 없다. 더구나 살벌한 부국강병주의의 춘추전국시대였다.”[6] 노자는 무위 로 하자는 것, 정치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을 실제 삶에서 실현한 이가 장자다. 무치의 정치가 그것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의 삶의 원리에 적용된다. 즉 모든 생 명존중과 생명의 자기통치능력을 믿는 믿음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장자는 가난했지만, 벼슬을 싫어했고, 제삿집 돼지로 사느니 차라리 시궁창에서 뒹구

는 돼지가 좋다고 했다. 높은 관직을 주어 모시려는 왕이 보낸 사자에게 그것을 강조해 말한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앉는 대신 포악한 지배자의 착취 아래 사는 씨을 건져주기 위하여 불같은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임금, 학자, 호걸, 영웅이라는 존재들이 그의 붓끝에서는 한갓 지푸라기도 되지 못해 한다. 이러한 전통은 예수의 삶과도 통한다. 함 석헌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그의 유명한 논설 ‘들사람 얼’(야인정신)에서 잘 표현한다. 이러한 정신은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아와 아모스 같은 선지자의 삶에서 그 모 범을 본다. 함석헌의 국가주의비판은 이러한 노ㆍ장의 무치의 정치와 예수의 하늘나라 개념에서 따온 것임이 분명하다. 현실세계에 살면서, 그것을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으면 서 새로운 참의 세계와 나라를 꿈꾸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상들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



8 퀘이커로서의 나의 삶 나는 퀘이커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믿음과 실천을 꼭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아니 하나로 보는 퀘이커로서 그러한 전통을 내 자신이 지킬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깊은 회의가 온다. 특히 옛날에 비하여 사치스럽게 살 수밖 에 없는 오늘과 같이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과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무엇 일까? 태어남 자체가 환경파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과연 자연 생태계를 파괴 하지 않고 사는 길이 무엇일까? 처음부터 끝까지가 오로지 경쟁과 다툼을 부추기는 삶의 패턴에서 함께 살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 지나치게 체계화하고 조직화한 사회에서 과연 자연스럽고 바람과 같은 영의 인도를 받아서 살 수 있을까? 점점 국가주 의가 굳어져 가는 현대 사회에서 인류는 하나의 생명체계 속에 있다는 믿음과 철학을 어 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맹세를 하지 않고, 서약하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삼아왔던 퀘이 커의 삶을 모든 것이 서류와 사인으로 이루어지는 디지털화한 사회에서 어떻게 자기 양 심을 주장하면서 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할 때는 내 숨이 막히는 듯하다. 그 러나 그러한 답답하고 꽉 막힌 듯한 현실에서 작은 활로를 찾아 나가는 것이 또 퀘이커 가 찾아나갈 길이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느낌으로 잡는 실천 가능한 좁 은 길을 찾는 것이 계시를 기다리는 삶이요,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신비로움이 되지 않 을까? 그러니까 신비함이 없는 듯한 삶에서 신비체험을 할 수 있는 날카로운 기다림이 필요한 시기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다음과 같은 삶의 자세로 내 삶을 이끌고 싶다.

한반도는 한 민족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와 두 나라로 갈 라져서 다투는 현실 속에 있다. 나는 전 인류는 민족과 개별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는 철 학과 믿음 속에서 현상태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에 깊 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하여 일단 내 개인이 먼저 평화가 되고, 화평한 맘으로 살아갈 것을 노력할 일이다. 그것과 동시에 주변의 사람들과 화평한 삶을 나눌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하여 일단 나는 내 얼굴과 맘 속에서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함을 실천하려고 한다.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관용하는 훈련을 쌓아야 함과 동시에 획일화하려는 전통과 사회흐름과 대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것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캠페인을 벌이려 한다. 그것은 좌우의 이 념이나 노선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어떤 전쟁도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진 늙은이들과 함께 전 국토를 순례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던 지역을 찾아서 평화의 기운 을 불어 넣는 일을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동시에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 들이다. 이것을 실현하는 순례의 길을 걷고자 한다.

평화의 기운은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창의적으로 비폭력과 평화의 상태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함을 느낀다. 내 자신이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활동 가로 참여하면서 직접 경험한 결과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돌보고, 모든 문제를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과 빠르게 반응하고 행동하기 전에 깊게 생각하여야 하고, 최선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을 자신의 개인 생활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훈련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그것은 내 자 신이 AVP훈련가로 여러 번에 걸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확신하게 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워크숍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중요한 생의 과제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일반 시민과 비폭력 평화사상에 대한 연구와 강좌와 포럼을 통한 평화분위기 의 확산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적대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신뢰가 없는 자도 그것이 있 는 자처럼 신뢰하는 부드럽고 유연한 삶을 일상에서 훈련하는 일이다. 그것은 부드러움 이 강력함을 포섭하고, 유연함이 경직된 것을 녹인다는 도가철학의 일상화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특수한 사람만이 그러한 훈련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반 사람이 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곧 사람들에게 내면의 빛이 있다는 것, 내면의 스승이 있다는 것, 불성을 가지며 도와 접촉 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의 믿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일상의 신비체 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신비는 곧 지극한 정상생활이다.

그러나 현대생활, 특히 문명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일상의 쉼이 부족하고 깊은 숨쉼이 부족하다. 그래서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과 분위기에 끌려가면서 힘 들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느 철학자가 분석했듯이 현대사회는 피로사회다. 나 에게는 피로를 느끼는 그들을 이끌고 평안한 곳으로 안내할 능력과 비전이 없지만, 그분 들과 친구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물론 나는 특별 상담사도 아니고, 갈등해결사도 아니며, 그와 같은 훈련을 쌓은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립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방황하는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은 맘이 참으로 많다. 그것이 내 나름으로 진리와 함께 살아가는 길이라고 느낀다. 그런 접촉, 만 남은 일대일의 개별만남도 가능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통한 소그룹으로 만날 수도 있 다고 확신한다. 아주 지극히 당연한 진리 안에서 살고 싶다. 즉 모든 것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관습도 다르고, 옷도 다르며, 생활하는 모습도 다르다. 그 다름은 하나의 큰 희망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것이 하나의 근원에서 나와서 종국 에는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살고 있 는 지역의 시냇물은 가까운 산골짝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그것은 곧 내 농토와 내 집의 마시고 사용하는 물을 제공한다. 나는 그 물 때문에 산다. 그러나 그 물은 흐르고 흘러 서 거대한 바다에 이른다. 바다는 한없이 넓지만 하나의 바다다. 거기에서 하나가 된다. 결국 모든 실개천과 강을 거쳐서 바다로 흘러든 물은 한 물로 친하게 지낸다. 모든 물은 곧 친구들이다. 이런 비유를 우리의 논의인 종교와 생활, 신앙과 실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종교의 핵심들은 각각 문화와 시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출발하고 다르게 실천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추구하는 궁극은 하나에서 만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결 국 친구다. 유대교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민속종교가 곧 한 물에서 친한 친구로 살되 자기의 고유한 전통과 삶의 길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평화의 다리를 놓는 일을 하는 것이 내 과제 중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리의 종류는 각종 분야별로 다양할 것이다. 나는 적어도 3 가지의 참여를 통하여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Quaker 그리고 Amnesty International의 적극활동가로서 국경 없는 삶으로 다리를 놓은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다른 문화 종교, 사람(인종), 문명, 관습 따위를 직접 간접으로 경험하 고, 그 속에서 알짬을 찾아서 새롭게 배우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열린 자세에서 항 상 찾아가는 자의 삶을 이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

[1] 함석헌; 이단자가 되기까지, in: 함석헌,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전집 4, 1983, 한길사. 195-7

[2] 함석헌: 함석헌 저작집 24, 『씨의 옛글 풀이』, 한길사 2009, 34쪽)

[3] 위의 책, 36쪽

[4] 위의 책, 37쪽

[5] 위의 책, 37쪽

[6] 위의 책, 39쪽

2013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제21호 2013년 여름, 살림이야기


[ 길을 묻다, 길을 가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

“모든 이의 내면에 빛이 있습니다”

진행 주요섭\사진 홍진훤








“참 조심하고 조심하자고 했다. ‘생각의 씨’ 하나 던져 뿌려 보자는 심정으로 나도 생각하고 그도 생각하는, 아니 우리 시대가 함께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맘으로 편지를 썼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듯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매일의 다짐이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67)은 2011년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년퇴임을 두어 달 앞두고, 제자 450여 명에게 매일 아침 써 보냈던 편지글을 모아 《청춘에게 안부를 묻다》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의 머리말에 제자들에게 편지를 쓴 마음을 싣고 있다.
어른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어린 이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이 길이 옳으니 따라오라고 다그치기 좋아하지 않던가. 그런데 김조년 선생은 어린 제자들을 ‘같이 생각하는 벗’으로 대우하며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보이니 다른 어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함석헌 선생의 가장 성실한 제자


씨알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은 가장 성실한 제자로 꼽히는 김조년 선생은 독일에서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26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문을 연 김조년 선생의 연구실 ‘옹달샘터’는 대전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대흥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김조년 선생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직접 내려주었다.


살림이야기_ 한남대 교수직에서 퇴임하신 지 이 년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어떤 일에 주력하십니까?
김조년_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학기마다 대학원이나 학부 강의를 한 과목씩 맡아 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퇴임하면서 연구실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저걸 다 어디에 두나 하다가 이곳 옹달샘터를 마련했어요. 마침 명상춤 수행공간을 찾던 아내가 옆방을 씁니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그전부터 하던 대로 <씨의 소리>를 격월간으로 계속 발간하면서, 올해는 《함석헌 전집》을 개정해서 펴내려 합니다. ‘정본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게 일이 큽니다.


부인 이종희 선생은 명상춤 안내자로서 유명하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전통에서 비롯한 명상춤은 종교의 벽을 넘어 고요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영성훈련의 입문과정인데, 부부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이종희 선생은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명상춤을 배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명상춤 수행모임을 연다. 또한 1970년 함석헌 선생이 창간한 <씨의 소리>는 1980년 7월 군부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1988년 12월에 복간하여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맡아 격월간으로 내고 있다.








살림이야기_ 환경운동연합과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에도 참여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퇴임하시고 새로 시작한 일들도 있으실 텐데요.
김조년_ 단체활동에서도 물러나서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일이, 하나는 자존감이 부족하여 방황하는 탈학교 청소년들, 또 하나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런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직은 마음만 있어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고전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30~40대 주부들이 자아정체감 때문에 방황을 많이 한다고 해요. 지인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고전을 읽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에밀》과 《장자》를 읽었고 지금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또, 격주마다 ‘옹달샘터 낭독회’를 열고 있습니다.


옹달샘터 낭독회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저녁 두 시간 남짓 열리는데, 낭독자가 한 시간 가량 낭독하고, 그 뒤에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낭독하는 동안 음악가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5일로 꼭 1년이 되었다. 6월에는 서울에서도 낭독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조년_ 가을쯤에는 함석헌 사상 강좌를 열 예정입니다. 그리고 퇴직 교수들과 함께 ‘거리의 사회학’ 강좌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강좌에서 물어보았는데,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함석헌 선생은 폭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생명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사독재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지요. 1980년대에는 글을 쓰거나 발언할 기회도 모두 차단당했어요. 그래서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는 제자로서 선생의 생각을 좀 더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선생의 글들은 교과서에 실리기에도 손색이 없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못해왔지요.


김조년 선생이 함석헌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14일 동안 삭발 단식하던 함석헌 선생에게, 고등학생 김조년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이 고등학생에게 진지하게 답장했다. 편지 교류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유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고, 그 소년은 스승이 창간한 잡지를 다시 내고 사상 연구와 평화 실천 면에서 스승을 이어가고 있다.






살림이야기_ 20여 년 동안 내온 <표주박통신>은 요즘 안 하십니까?
김조년_ 퇴임 후에 이제까지 한 번도 못냈어요. 최근에 자꾸 묻는 사람들이 생겨요. 이제 안 하느냐, 오래도록 못 받았다 이런 얘기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요. 사실 다른 것들은 내게 맡겨진 일이고, 내 일은 <표주박통신>인데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해온 일이거든요.


<표주박통신>은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했다. 1984년 독일에서 귀국하여 사회사상사 수업을 맡았는데, 당시는 대학생들이 수업에만 열중할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때 30명의 학생들에게 주소를 받아 못 다한 강의 내용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이듬해 ‘막스 호르크하이머’에 대한 내용을 편지로 보내며 <표주박통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홀수 달 마지막 날 편지를 썼다. 친구, 친지, 동료 등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자우편으로도 보내며 2쪽짜리 편지가 36쪽 책자가 되었고 독자도 3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다.


권위와 형식에 굴복하지 않는 퀘이커


함석헌 선생은 한국에서 많지 않은 ‘퀘이커’로서도 유명하다. 김조년 선생 역시 부인과 함께 퀘이커로, 매주 일요일 아침 옹달샘터에서 퀘이커 예배를 한다. 스승이 퀘이커라고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독일에 유학하던 때 함석헌 선생이 베를린을 방문하면 동포들과 퀘이커들을 꼭 찾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뜬 뒤에야 지역 모임에 나가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전에서 퀘이커 공부 모임을 하면서도 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퀘이커가 되었다.



“퀘이커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글쎄 저도 그게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라며 웃었다. 퀘이커는 350여 년 전 기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에 생겨났다. 특히 영국 국교의 형식성,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삶이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조지 폭스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종파이다. 퀘이커들은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이가 윌리엄 펜이다. 펜은 북아메리카 델라웨어 강 서쪽, 지금의 펜실베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영국의 개척자들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내며 땅을 차지했는데, 펜은 인디언 공동체와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고 공존하기로 했다.


김조년_ 퀘이커는 “오직 진리에만 복종하고, 형식과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퀘이커들은 “너나 나나 같은 권위의 사람이다. 그러니 무릎을 꿇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에만 복종한다” 이랬다고 해요. 그러니 미움을 사서 감옥에 많이 갔겠지요. 감옥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나쁜 곳에 갇히곤 했답니다. 퀘이커들이 감옥에서 나와서 한 것이 감옥개선운동입니다.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할 곳이다’라고 적극적인 운동을 벌입니다. 본인들이 고생을 해봤으니까요.


퀘이커는 ‘신과 나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달리 성직자나 예언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믿음이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직책이 되거나 영속적인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크리스트교 사이에서도 한때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김조년_ 퀘이커는 종교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이겨내고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평화종교라고 불릴 정도이지요. 평화운동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비폭력으로, 그리고 ‘원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적대적인 존재라고 해도, 생명은 국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국가란 한시적인 보호 조직일 뿐 영속적이지 않아요. 그러니 인간의 생명은 국경을 초월하지요. 적대국의 사람도 나의 형제이므로 싸움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거부’입니다.






살림이야기_ 학교일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을 해왔고,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겠지만, 퇴직한 뒤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김조년_ 살면서 순간순간 계속 돌아보아야 되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보다는 공동으로 함께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혼자 고요히 생각도 하지만 공동의 불이 비추도록 함께 기원하거든요. 촛불 하나보다는 둘셋 겹치면 더 밝게 비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개인으로서는 이상대로 살아왔지만, 작은 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실천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두 번째 아쉬움은 제가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에게 막 강요를 못해요. 모든 사람은 다 내면에 스승이 있듯이 누구나가 똑같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게 열리면 스스로 하게 되어 있는데, 막 다그쳐야 할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사회의 큰 약점 중 하나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맘으로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스스로 마음에서 막 솟아올라서 하는 것이 진짜지 하며 망설이곤 합니다. 젊다면, 해 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림이야기_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과에서 오랜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학문이나 학과가 사회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김조년_ 저는 두 가지 희망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좋은 학자가 되면 좋겠다. 두 번째는 좋은 교사가 되면 좋겠다. 처음에는 좋은 학자면 족할 것 같았는데, 한국에서 강단에 서고 학생들과 접해 보니 학문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대학생들도 학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게 더 많은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두 가지가 다 실패야. 학문적으로 그렇게 업적을 쌓지도 못했고, 이론을 개발하거나 탁월한 연구를 내놓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공부할 때 ‘내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게 중요하다는 것만은 깨달았지요.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내가 왜 여기에 사회학을 공부하러 왔나 하는 갈등을 많이 느꼈어요. 사회학이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건데, 나는 한국에 속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어느 강좌에서도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독일의 사회학은 독일사회라는 재료를 가지고 독일의 학문적인 칼로 그 사회에 맞는 이론을 만드는 거예요. 나의 재료와 칼은 모두 한국에 있다, 여기에서 다만 그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금속공학을 배우듯이 방법을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또한 한국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회를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판단력으로 판단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하잖아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기의 생리, 즉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는지 알게 해 주어야 해요. 그 자세를 유지하려고 해 봤는데, 뭐 좀, 실패했나 싶기도 하고.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고전을 한두 줄씩 읽자


살림이야기_ 한국사회에서 최근 청년들이 공동체나 공유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생활에서도 공동주거나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조년_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게 좋으냐 나쁘냐를 이야기하는 건 사실 의미가 없어요. 뭐라고 하든 달라지는 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판단은 우리의 몫일 텐데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단순히 나 개인의 확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똑바로 혼자 살면 되지, 사회가 어떻게 되든 간에”라는 생각이 확장되어 “우리들끼리만 멋지게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은 아니었으면 하죠. 삶은 빛이 되어 주변에 확산되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내가 옳은 삶을 살면 사회에도 옮음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함석헌 사상의 하나이지 싶은데. 함석헌 선생은 개인과 전체는 하나, 시간과 영원도 하나, 생과 사도 하나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정당한 삶은 사회개혁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살림이야기_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하면 가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가족공동체에서 꼭 지키는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김조년_ 아이가 둘 있는데, 딸이 결혼하여 외손녀가 있고,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깥에서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되겠죠. 제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압력을 받은 것 같지는 않은데…. 집 안팎으로도,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삶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참 힘든데요.


살림이야기_ <표주박통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오셨습니다. 우리 《살림이야기》 독자들에게 한 말씀 나누어 주세요.
김조년_ 가장 핵심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살림은 생명의 표현이지 않습니까? 생명은 누가 하라고 하고, 하지 말라고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속에 생명의 힘이 차면 폭발하듯 나오는 것처럼, 한살림에 참여하는 모든 개개인이 건실한 생명력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먹을거리를 갖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생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철학하는 힘을 갖도록 성장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로 자기 건강을 챙기는 먹을거리 운동일 뿐이지, 우리 생활 전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또 하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는데 자꾸 내부가 복잡해집니다. 전부 좋은 일을 하려 모였는데 왜 그럴까? 요사이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영성이 부족하다”라는 게 그 이야기지요. 영성이란 말이 어려운데, 옛부터 조상들이 쓴 말로 바꾸면 ‘덕’이겠다 싶습니다. 우리에게 덕이 부족한 거예요. 남을 날카롭게 지적할 줄은 아는데 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 오히려 더 큰 것을 해친다는 걸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뭉뚝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노자의 이야기로 밝음이 너무 강하면 눈을 해치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다 그렇지요. 그럼 ‘저놈은 안 하는데 나 혼자 하면 손해 안 보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글쎄요,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어요?


살림이야기_ 공부하는 이들이나 사회운동가들 외에 평범한 생활인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은 삶일까도 큰 고민입니다.
김조년_ 우리 학생들에게도 추천하는데, 가정에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시간을 정해 두고, 부부나 또 같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과 고전 한두 구절씩을 함께 읽어 보세요. 많이 말고 한두 구절만. 그러고 나서 해설하거나 토론하지 말고 명상을 합니다. 우리 부부도 일요일마다 함께 명상하고 평소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알려주곤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자고 합의하여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아니에요. 살다 보니까 둘이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조합원이라면 의식이 더 높겠지요. 또한 조합원을 받아들일 때 기초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삶은 각자 자기의 몫이지만, 삶이 더 재미있어지는 공부를 할 기회를 주면 좋지요.








김조년 선생은 고전을 현대 고전과 과거의 고전 등 두 가지로 나누어 추천한다. 현대 고전이란 신문과 잡지를 말한다. 기자들이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쓰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책이나 교과서는 이미 낡은 것이다. “4년 동안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공부보다 나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의 고전으로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함석헌 선생의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씨에게 보내는 편지》을 함께 추천했다. 특히 <씨의 소리>의 권두언을 모아 엮은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생의 마감을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주는 유언 비슷한 간절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생각이 깊은 어른을 만나면 자꾸 이것저것 삶의 고민에 대한 답을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김조년 선생은 한발 물러서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저도 궁금하니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상대의 의견을 구한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빛이 있으니,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서로 모여 함께 각자의 빛을 찾으면 더 좋을 것이다.



↘ 주요섭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으로 생명사상(모심)과 협동운동(살림)에 대한 연구와 교류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841



자유알림판 -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자유알림판 -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즉문즉설]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10/23(금)
2009.10.20 | 생명평화결사



즉문즉설(卽問卽說)
우리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다.

즉문즉설(卽問卽說)이란?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하는 방식이 아닌, 청중이 질문을 하면 강연자가 적절한 답을 하는 방식입니다.

▪ 사 회 : 김재형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 보따리학교)
▪ 순 서 : 시작->노래공연 또는 영상상영(20분)->강연자소개(10분)->
즉문즉설(2시간30분)*중간에 한차례 휴식->소감나누기(자유롭게)


즉문즉설(2) 김조년 (표주박통신 발행인, 생명평화결사 포럼위원장)
▸ 때 : 10월 23일(금). 오후 6:30~9:30
▸ 곳 : 장충동 분도빌딩 5층 교육관

-.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석헌 옹과 20년간 편지를 주고 받았다. 독일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교수로 재직한지 얼마 안되어 어수선한 정치상황으로 인하여 강의를 진행하지 못하자, 못다한 강의를 교내신문과 편지로 보내기 시작한 것이 표주박 통신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는 한남대 교수로 대전지역의 평화운동과 명상가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퀘이커 대전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 저서로 '성찰의 창문으로 바라본 세상'(1998.세훈)/ '사랑하는 벗에게'(2007.동연)/
역서로 '카토 본트여스 판 베이크(난 내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2007.바이북스) 등이 있다.

-. 표주박통신 http://pyojubak.hannam.ac.kr

■ 10/30(금) 마사키 타카시 (일본 환경운동가, waㅣk9 순례자)
■ 11/5일(목) 한명숙 (전 총리, 민주당 상임고문)
■ 11/8일(일) 홍신자 (웃는돌 대표, 춤명상가)

즉문즉설에 대한 의견이나 강연자 분들께 질문이 있다면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영상과 내용은 추후 홈페이지에 올리겠습니다.

문의 : 061-351-1950(사무국), 010-6410-5238(김재형)
생명평화결사 http://lifepeace.org

2019/09/29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 이로운넷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 이로운넷






원주에서 근·현대 사상가 한자리에서 만난다

이로운넷 원주=김선기 주재 기자
승인 2019.09.16



사상가 다석·씨알·무위당 선생 사상 고찰을 위한 강좌와 포럼 잇따라 열려
원주 무위당학교,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특별강좌 17일부터
무위당학교 생명사상포럼도 10월 10일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

대표적인 한국 근·현대 사상가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강좌와 포럼이 잇따라 개최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운영되는 강원도 원주의 무위당 학교(교장 황도근 상지대 교수)에서는 9월 17일부터 10월 8일까지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를 주제로 특별강좌를 연다.

무위당학교 특별강좌 '근대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알림 웹자보.

특별강좌에서는 다석 유영모(1890 - 1981) 선생과 씨ᄋᆞᆯ 함석헌(1901-1989) 선생,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17일과 18일에는 대한성공회 윤정현 사제가 ‘다석 유영모의 생애와 사상’, ‘다석 유영모의 씨알들의 빈탕맞춰놀이와 우리말 유희’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24일과 25일에는 한남대 김조년 명예교수가 ‘씨ᄋᆞᆯ 사상의 형성과정’, ‘씨ᄋᆞᆯ 사상과 평화세계’를 주제로 강연한다. 10월 1일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무위당과 환대의 사상’을 주제로 강연하며, 10월 8일에는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최시형에서 장일순으로’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특별강좌는 매회 오후 6시30분부터 무위당기념관(원주시 중앙로83 밝음신협 3층)에서 진행된다.

10월 10일 13시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되는 무위당학교 생명사상 포럼 알림 웹자보.

‘다석 유영모, 씨ᄋᆞᆯ 함석헌 그리고 무위당 장일순’이라는 부제가 달린 무위당학교 생명사상포럼은 10월 10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된다.

△다석의 생애와 사상(정양모 신부) △말로 가르치지 않는 스승, 무위당(경희대 전호근) △씨ᄋᆞᆯ, 멈춰진 시간에서 생성하는 정신으로(김대식 함석헌 평화연구소 부소장) △함석헌과 찰스 테일러의 공동체주의(유현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위원장) △장일순의 모심과 동학의 侍(구태환 상지대 초빙교수)를 주제로 강연과 발표가 이어진다. 이후에는 황도근 교수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황도근 무위당학교장은 “다석과 씨ᄋᆞᆯ, 무위당 선생은 밖에서 활동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근·현대 사상가로 모두 탁월한 대중적 소통력을 가지고 있었고, 철학을 서민들과 함께하는 대중 강연과 자유로운 사유로 사상을 정립해 나갔으며 특히, 함석헌 선생과 장일순 선생은 시대정신과 서민들의 아픔을 몸으로 채화하고 저항하는 삶 속에서 사상을 실천했다.”라며 “외적인 급성장 속에서 정신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이분들의 사유와 철학을 통해 우리가 갈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강좌와 학술포럼은 무위당학교와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이 공동 기획·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문의는 무의당 기념관(033-747-4579)으로 하면 된다.

2019/09/11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사람으로 산다는 것 : 님과 함께 노닐다 가는 것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사람으로 산다는 것 : 님과 함께 노닐다 가는 것 - 금강일보

금강일보
승인 2019.09.09 



한남대 명예교수



어느 누구나 다 참답게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아주 형편무인지경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남들이 평가하는 사람일지라도, 가만히 그를 만나 이야기를 진정으로 나누다보면, 그도 역시 참답게 살고 싶은 맘이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사람이 사람답게 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몸부림치면서 살아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송기득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신학자요 철학자다. 신학 중에 그는 민중신학에 집중한 이로 분류된다. 그는 신학을 ‘인간화신학’ 즉 ‘인간에 대한 신학적 연구’로 축소하여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신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기독교란 이름과 제도와 교리로 포장된 것들을 벗기려는 노력을 일생 동안 하였다. 그와 같은 노력을 예수도 꼭같이 하였다고 그는 본다. 그래서 오랜 세월 연구한 것이 ‘역사의 예수’였다. 실제 살았던 예수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관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참 삶을 말하는 신학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온갖 신화와 거짓을 벗겨 낸 ‘인간화신학’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그는 신학은 곧 인간에 대한 학문이면서 인간이 함께 꾸리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학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한 평생을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간 삶이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사는 데 그는 참 귀한 길잡이들을 만난다. 그 삶의 길은 평탄하지가 않았다. 병마, 가난, 불의, 부조리 따위와 만나는 고통과 고난의 길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을 모르더라도 삶은 고통이라는 것을 그는 젊어서 깨달았다. 그런 고통의 길에서 만난 김하태, 유영모, 함석헌, 안병무, 서남동, 유동식 등은 매우 놀라운 사상의 눈을 새로 뜨게 한 이들이다. 그것보다도 더 훨씬 전에 그의 육신의 삶을 살게 하여준 어머니, ‘간호 천사’ 김정숙, 결핵 의사 여성숙, 사랑하는 아내 정순애 등은 바로 가장 힘든 시절 그를 일으켜 세운 천사들이었다. 그의 일대기를 들으면 참으로 놀라운 부러움이 있다. 그렇게 긴 세월 그가 살아가는 굽이굽이마다 만난 참으로 귀한 스승들이 그에게 그렇게 많이 있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삶을 통하여 그는 아주 놀라운 신학과 신앙을 펼친다. 사람의 신학과 감사와 사랑의 신앙이다.

특히 유영모, 함석헌, 안병무와 교류하면서 민중(씨???)을 알고, 동학의 수운, 해월 선생의 글을 통해서 신이 어떻게 사람 속에서 활동하는가를 정리하고 살아간다. 틸리히와 불트만은 통하여 사람 예수와 궁극의 실재를 정리한다. 사람은 하느님을 모신다(侍天主). 그 하늘, 즉 하느님을 속에서 잘 길러야 한다(養天主). 그렇게 된 하느님을 살려내고 살아야 한다(生天主). 그것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자세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이것을 살아가는가 하는 일이다. 그것을 그는 하느님과 함께 노니는 것(遊天主)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엄하고 위대해서 두려워하고 공경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사람을 지옥과 천당에 보내려고 판단하는 재판관이 아니다. 그는 권위를 상징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사랑과 구원을 뜻하는 어머니라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모든 아들 딸들은 다 사랑하고 살려줘야할 존재지, 처벌과 응징의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지옥은 없다고 믿고 말한다. 모두가 다 구원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라면, 참 사람이라면 감사하는 일 뿐이다. 서로 사랑하는 일 뿐이다. 그것은 곧 하느님과 함께 거닐면서 노는 일이다. 노래하고 춤추고 기뻐하고 시를 쓰고 함께 어울려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는 실제로 참 큰 고통이 일생 동안 따랐다. 젊어서 결핵을 깊이 앓게 된 이후로 세상 끝날 때까지 그와 함께 한 고통은 불면증과 두통이었다. 이 두 병을 없애달라고 하느님께 수도 없이 많이 기도했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또는 두통이 심할 때마다 그는 무섭게 글을 썼다. 이상하게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하였고, 머리가 아파서 몽롱한 상태에서도 생각은 명료하였고, 논리가 정연하게 잡혔으며, 참을 펼치기에 적절한 비판력이 발동하였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는 문장이 나왔다. 쉴 사이 없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글은 그를 삶이 고통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 고해 그 자체가 곧 삶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을 그는 참으로 고마워하면서 살았다.

70세가 다 되어 시작한 잡지 《신학비평》과 《신학비평너머》를 통하여 참 인간의 삶을 신학적으로 탐구하고, 감추는 것 없이 그대로 펼쳤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 매일 아주 간절하고 절절한 편지를 써서 열권이 되는 책으로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들과 아는 이들을 죽기 전에 만나 미리 살아 있을 때 장례를 치렀다.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을 뜨기 한 주 전 사랑하는 제자들이 찾아와 모인 자리에서 3시간 이상의 열띤 강의를 펼쳤고, 그가 봉직했던 목원대학교에 삼천만원의 장학금을 냈고, 북한의 결핵환자들을 돕는 유진벨 재단에 이천만원을 후원하였다. 그리고 스승 김하태로부터 물려받은 강의의자를 사용하다가, 대를 이을 아끼는 제자 이정순 교수에게 물려주었다. 하느님과 함께 노니는 삶에는 고통과 영광과 아픔과 치유가 차이가 없음을 증명하고 그는 훨훨 춤추듯이 날아갔다. 그는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 곁에 누워 ‘없는 하느님’과 영원히 춤추며 노닐 것이다

2019/07/02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참 찾아 가는 길에서




한남대 명예교수





엄밀히 살피고 따지면 사람이 제대로 살아가는 것은 참을 찾아 나가는 길이라고 본다. 혼자서 살든, 작은 가족이나 공동체나 또는 좀 큰 나라나 국제 간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 역시 참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그러고 보면 지금 온갖 지역에서 일어나는 국경갈등이나 경제갈등 같은 것들은 수준 낮은 단계의 살림살이 다툼에서 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 살림은 한 생명, 한 삶을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우리 인류의 역사가 진행돼 오는 과정이나 문명과정을 보면 점점 더 한 삶으로 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경제, 정치, 군사, 과학, 학문, 예술, 종교 등의 차원들에서 보면 어느 하나도 개별국가나 작은 단위의 고립된 상태에서는 결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UN이란 조직을 만들고, G20이니 OECD니 하는 국제조직들이 비록 지금은 좀 삐거덕거리면서 나간다 할지라도 원래가 모든 나라들이나 족속들은 그들 개별단위로는 결코 참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 강대국이라는 것들이 벌이는 행태가 약소국가들이라는 집단들의 대응논리를 유발하면서 온갖 분야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다.

즉 자기들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아주 좁은 정책에 매어 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옳은 철학이나 사상의 실현에서가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어떤 욕심, 즉 권력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에서 오는 오기스러운 행동의 표출이라고 본다. 그런데 모순스럽게도 개인들이나 개별국가들의 욕망충족을 위한 지나친 행동들은 이상스럽게 참에게 다가가는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워 트럼프가 세계 모든 나라들과 벌이는 경제 전쟁이나 국경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그들 국민들의 속 좁은 이기주의를 촉발하여 계속 집권하겠다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행동들은 다른 모든 나라들 역시 자기 나라 중심의 정치와 경제정책을 펼쳐야 함을 촉발한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나라들은 자기국가중심의 국수주의나 폐쇄주의로 나간다.

당분간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여 과격한 일부 보수주의 경향의 지지와 박수를 받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와 같은 것들은 지나간 낡은 것들의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에서도 그렇게 좁은 테두리, 국가나 민족이나 종파라는 것의 테두리 안에서는 결코 참다운 삶, 서로 돕고 사이좋게 사는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경험한다.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입장에서 주장하던 세력이 물러간 뒤에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이 무섭고 무거운 자기중심주의의 행동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렇게 시대는 밝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밝아지는 시대에 일어나는 참으로 불미스러운 사건들, 즉 범죄자를 홍콩에서 북경으로 인도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홍콩시민들의 거대한 시위, 난민이 되어 아메리카에 대한 꿈을 담고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려던 스물다섯 살의 아버지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발레리아가 한 셔츠 속에 들어 있는 채 강물에 빠져 죽은 사건이나, 날마다 일어나는 난민들이 삶의 자리로 들어가려다가 수도 없이 많이 체포되고 되돌려 보내지는 사건들은 국경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참 삶의 자리에 등장하게 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그런 데다가 최근 한 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기업에 기여한 것이 없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종차별발언에 융단폭격을 가하듯이 일반 여론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밝은 세상을 일러주는 예다.


솔직히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퇴출되고 차별을 받는다면 그 기업들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은 너무나도 불을 보듯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 경제에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동일한 임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인종차별의 발언은 그 스스로 정치계를 떠나겠다는 고별인사와 같은 성격의 망발이다. 참의 자리에서 볼 때 그것은 낡고 낡은 노예제시대에서나 나올, 그 소리로 표를 얻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세상을 잘못 읽은 천박한 소리다.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패권주의식의 지배논리와 대결논리에서 보면 놀라운 파격으로 보이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저께 판문점에서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 트럼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김정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등 대척점에 있는 세 나라 정상이 만난 깜짝스러운 일은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전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는 정겨운 장면이다.

언제나 갈등 당사자들이 만나서 평화로 가는 길을 논의할 때, 어떤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 살리고 존중하는 맘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의 길로 접어든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치노선의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평화롭고 전쟁 없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참의 자리에서 다툼 없는 이야기를 속 열어놓고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도 없고, 외부의 압력에 의하여 체제가 위협받을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몹시 어려운 경제제재를 펼칠 필요도 없다. 참의 자리는 단순한 자리다. 참의 자리에서 본다면, 언젠가는 국경이라는 것이 묽어지다가 사라지고, 국가나 민족이나 종파라는 것들도 묽어졌다가 사라질 것이다.

모든 정책들과 실천은 바로 이러한 참의 자리로 가고 있는 한 여정에 있다는 생각으로 펼쳐지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페이스북] [유튜브] [카카오채널]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2019/02/10

농촌과 목회 | '북한'의 검색결과



농촌과 목회 | '북한'의 검색결과



북한 (12)
농촌과 목회 56호(2012년 겨울호)2018.03.30
농촌과 목회 61호(2014년 봄호)2018.03.30
농촌과 목회 65호(2015년 봄호)2018.03.22
농촌과 목회 42호(2009년 여름호)2017.11.14
농촌과 목회 23호(2004년 가을호)2017.11.08
농촌과 목회 21호(2004년 봄호)2017.11.08
농촌과 목회 17호(2003년 봄호)2017.10.13
농촌과 목회 11호(2001년 가을호)(2)2017.10.13
농촌과 목회 10호(2001년 여름호)2017.10.13
농촌과 목회 7호(2000년 가을호)2017.10.13
농촌과 목회 56호(2012년 겨울호)
2018.03.30 16:47, 053호-056호(2012)



1390_2012_겨울호_56_권두언_북방의끓는가마가안보이는가?_한경호
1391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생명의강을다시흐르게하라!_최병성
1392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강정,생명과평화가무엇이더냐?_서성환
1393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생명과평화의눈으로보는원전건설_이승무
1394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골프장건설로아파하는사람,생명체들_박순웅
1395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한반도평화의위기와통일선교_김병균
1396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이야기_잔잔하게두드린농촌목회이야기_김영진
1397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이야기_금모래(金砂)교회이야기_한양호
1398_2012_겨울호_56_도시작은교회이야기_취리(取利)하는자들을찾아서_박성구
1399_2012_겨울호_56_귀농이야기_기쁨과행복을주는귀농생활_이종란
1400_2012_겨울호_56_팔당이야기_팔당농민들의삶과투쟁_서규섭
1401_2012_겨울호_56_마을만들기_지역을살리는협동조합만들기7단계_이인우
1402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자와건강_병알아보는값_임락경
1403_2012_겨울호_56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4)-한국교회의연합운동에대한단상_장의성
1404_2012_겨울호_56_목회단상_품이넓은사람-돌아본농촌목회7년8개월_손은기
1405_2012_겨울호_56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1406_2012_겨울호_56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송장벌레_
1407_2012_겨울호_56_축산분뇨처리_가축분뇨의액비처리를통한 _이명규
1408_2012_겨울호_56_탈핵과에너지_한국에서의에너지전환,현황과전망_박진희
1409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북한농업과농촌의활동체계와현실_채경희
1410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분단을치유하는소통의해설사_김이경
1411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북한선교전략으로써말씀치유(Logotheraphy)가 가지고있는가능성_임헌만
1412_2012_겨울호_56_과학과종교_현대유전학으로풀어보는창조와진화_정찬선
1413_2012_겨울호_56_농정_농업회생과식량주권을위한대선정책제안_농목연대






1390_2012_겨울호_56_권두언_북방의끓는가마가안보이는가_한경호.pdf

1391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생명의강을다시흐르게하라!_최병성 .pdf

1392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강정,생명과평화가무엇이더냐_서성환.pdf

1393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생명과평화의눈으로보는원전건설_이승무.pdf

1394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골프장건설로아파하는사람,생명체들_박순웅.pdf

1395_2012_겨울호_56_이명박정부에서의생명과평화_한반도평화의위기와통일선교_김병균.pdf

1396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이야기_잔잔하게두드린농촌목회이야기_김영진.pdf

1397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이야기_금모래(金砂)교회이야기_한양호.pdf

1398_2012_겨울호_56_도시작은교회이야기_취리(取利)하는자들을찾아서_박성구.pdf

1399_2012_겨울호_56_귀농이야기_기쁨과행복을주는귀농생활_이종란.pdf

1400_2012_겨울호_56_팔당이야기_팔당농민들의삶과투쟁_서규섭.pdf

1401_2012_겨울호_56_마을만들기_지역을살리는협동조합만들기7단계_이인우.pdf

1402_2012_겨울호_56_농촌목회자와건강_병알아보는값_임락경.pdf

1403_2012_겨울호_56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4)-한국교회의연합운동에대한단상_장의성.pdf

1404_2012_겨울호_56_목회단상_품이넓은사람-돌아본농촌목회7년8개월_손은기.pdf

1405_2012_겨울호_56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1406_2012_겨울호_56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송장벌레_.pdf

1407_2012_겨울호_56_축산분뇨처리_가축분뇨의액비처리를통한 _이명규.pdf

1408_2012_겨울호_56_탈핵과에너지_한국에서의에너지전환,현황과전망_박진희.pdf

1409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북한농업과농촌의활동체계와현실_채경희.pdf

1410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분단을치유하는소통의해설사_김이경.pdf

1411_2012_겨울호_56_북한바로알기_북한선교전략으로써말씀치유(Logotheraphy)가 가지고있는가능성_임헌

1412_2012_겨울호_56_과학과종교_현대유전학으로풀어보는창조와진화_정찬선.pdf

1413_2012_겨울호_56_농정_농업회생과식량주권을위한대선정책제안_농목연대.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53호-056호(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56호(2012년 겨울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55호(2012년 가을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54호(2012년 여름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53호(2012년 봄호) (0) 2018.03.30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61호(2014년 봄호)
2018.03.30 16:35, 061호-064호(2014)



1508_2014_봄호_61_권두언_한국교회파괴의주범,공로주의_한경호
1509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다석유영모선생의성경이해와영성_박재순
1510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함석헌선생과21세기한국교회_이은선
1511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탈(脫)중심의신앙인김교신_신익상
1512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한국인자신의교회설립자최태용_박숭인
1513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장공김재준목사의신학과지향_김희헌
1514_2014_봄호_61_농촌목회이야기_지켜야할현장,구성중앙교회이야기_배중훈
1515_2014_봄호_61_농촌목회이야기_‘나눔의집’을통한지역섬김이야기_국충국
1516_2014_봄호_61_농사이야기_유병태집사의농사이야기_유병태
1517_2014_봄호_61_농촌목회자와건강_쑥_임락경
1518_2014_봄호_61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9)-야훼하나님과이스라엘_장의성
1519_2014_봄호_6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1520_2014_봄호_6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노린재_
1521_2014_봄호_61_성경과농사_농사용어속에나타난성서신학(4)_이영재
1522_2014_봄호_61_새로운복음_도마복음읽기(1)_한석진
1523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스리랑카의생명농업_LalithGunathilaka
1524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지구를치유하는생명농업_NishanthaGunaratne
1525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생명과삶을위한오리사농민들의투쟁_VincentRajkumar
1526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자바의농촌교회와유기농업_SuwartoAdi
1527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지역의전통적지혜와생물다양성_JunpiterPakpahan
1528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태국그리스도교회의사회개발및사회적단위에서행하고있는유기농업체제_NuttapongManeerkorn
1529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캄보디아에서의생태-경제-교육-선교모델_SornSarath
1530_2014_봄호_61_남북농업교류_남북한농업기술협력과정과방향_곽강수
1531_2014_봄호_61_농업과공동체_공동체삶의기초,농업_강동진
1532_2014_봄호_61_협동조합_협동조합,이렇게만들었습니다_정성회
1533_2014_봄호_61_치유와삶_운봉자연치유센터이야기_김경수
1534_2014_봄호_61_핵에너지_원자력에대한거짓신화와진실_KNCC
1535_2014_봄호_61_3ㆍ1운동_3ㆍ1운동95돌기념남북공동합의문_KNCC






1508_2014_봄호_61_권두언_한국교회파괴의주범,공로주의_한경호.pdf

1509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다석유영모선생의성경이해와영성_박재순.pdf

1510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함석헌선생과21세기한국교회_이은선.pdf

1511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탈(脫)중심의신앙인김교신_신익상.pdf

1512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한국인자신의교회설립자최태용_박숭인.pdf

1513_2014_봄호_61_한국기독교사상의광맥을캐본다_장공김재준목사의신학과지향_김희헌.pdf


1514_2014_봄호_61_농촌목회이야기_지켜야할현장,구성중앙교회이야기_배중훈.pdf

1515_2014_봄호_61_농촌목회이야기_‘나눔의집’을통한지역섬김이야기_국충국.pdf

1516_2014_봄호_61_농사이야기_유병태집사의농사이야기_유병태.pdf

1517_2014_봄호_61_농촌목회자와건강_쑥_임락경.pdf

1518_2014_봄호_61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9)-야훼하나님과이스라엘_장의성.pdf

1519_2014_봄호_6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1520_2014_봄호_6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노린재_ .pdf

1521_2014_봄호_61_성경과농사_농사용어속에나타난성서신학(4)_이영재.pdf

1522_2014_봄호_61_새로운복음_도마복음읽기(1)_한석진.pdf

1523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스리랑카의생명농업_LalithGunathilaka.pdf

1524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지구를치유하는생명농업_NishanthaGunaratne.pdf

1525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생명과삶을위한오리사농민들의투쟁_VincentRajkumar.pd

1526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자바의농촌교회와유기농업_SuwartoAdi.pdf

1527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지역의전통적지혜와생물다양성_JunpiterPakpahan.pdf

1528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태국그리스도교회의사회개발및사회적단위에서행하고있는유기농업체제_Nu

1529_2014_봄호_61_아시아생명농업포럼발제문_캄보디아에서의생태-경제-교육-선교모델_SornSarath.pdf

1530_2014_봄호_61_남북농업교류_남북한농업기술협력과정과방향_곽강수.pdf

1531_2014_봄호_61_농업과공동체_공동체삶의기초,농업_강동진.pdf

1532_2014_봄호_61_협동조합_협동조합,이렇게만들었습니다_정성회.pdf

1533_2014_봄호_61_치유와삶_운봉자연치유센터이야기_김경수.pdf

1534_2014_봄호_61_핵에너지_원자력에대한거짓신화와진실_KNCC.pdf

1535_2014_봄호_61_3ㆍ1운동_3ㆍ1운동95돌기념남북공동합의문_KNCC.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61호-064호(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63호(2014년 가을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62호(2014년 여름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61호(2014년 봄호) (0) 2018.03.30
농촌과 목회 64호(2014년 겨울호) (0) 2018.03.22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65호(2015년 봄호)
2018.03.22 15:51, 065호-068호(2015)



1608_2015_봄호_65_권두언_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이다_한경호
1609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국가란무엇인가?_유시민
1610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성경을통해보는국가_권진관
1611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근대서구사상에서의국가이해_박일준
1612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국가와시장사이에서정의를묻다_신익상
1613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삼평리농촌할매들에게국가는무엇인가?_백창욱
1614_2015_봄호_65_농촌목회이야기_무주가당교회이야기_김길선
1615_2015_봄호_65_농촌목회이야기_남부중앙교회와천안동산교회의교류이야기_박용태
1616_2015_봄호_65_농촌예수마을_농촌에들어가예수마을을일구는도시교회이야기_최재호
1617_2015_봄호_65_농부목사_농부가된이경한목사이야기_이경한
1618_2015_봄호_65_농촌목회자와건강_콩밥먹기싫다_임락경
1619_2015_봄호_65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13)-역지사지(易地思之)와황금율_장의성
1620_2015_봄호_65_목회단상_벼랑끝에서맞는봄-마을을교회로_이진
1621_2015_봄호_65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1622_2015_봄호_65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사마귀_
1623_2015_봄호_65_성경과농사(8)_롯의이농과아브람의귀농_이영재
1624_2015_봄호_65_새로운복음_도마복음읽기(5)_한석진
1625_2015_봄호_65_협동조합_협동조합운동을통한치유와화해의사역 _한경호
1626_2015_봄호_65_평화운동_퀘이커리즘과평화운동_정지석
1627_2015_봄호_65_농과인문학_농과인문학,농민은천민(天民)이다_서성열
1628_2015_봄호_65_북한농업_북한의농업문제,극복대안과전망_김철
1629_2015_봄호_65_치유와건강_내가만난순리치유_강상빈


1630_2015_봄호_65_동학이야기_민초(民草),혁명을말하다_박맹수



1608_2015_봄호_65_권두언_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이다_한경호.pdf

1609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국가란무엇인가_유시민.pdf

1610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성경을통해보는국가_권진관.pdf

1611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근대서구사상에서의국가이해_박일준.pdf

1612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국가와시장사이에서정의를묻다_신익상.pdf

1613_2015_봄호_65_국가란무엇인가_삼평리농촌할매들에게국가는무엇인가_백창욱.pdf

1614_2015_봄호_65_농촌목회이야기_무주가당교회이야기_김길선.pdf

1615_2015_봄호_65_농촌목회이야기_남부중앙교회와천안동산교회의교류이야기_박용태.pdf

1616_2015_봄호_65_농촌예수마을_농촌에들어가예수마을을일구는도시교회이야기_최재호.pdf

1617_2015_봄호_65_농부목사_농부가된이경한목사이야기_이경한.pdf

1618_2015_봄호_65_농촌목회자와건강_콩밥먹기싫다_임락경.pdf

1619_2015_봄호_65_목회단상_목회를하다보면(13)-역지사지(易地思之)와황금율_장의성.pdf

1620_2015_봄호_65_목회단상_벼랑끝에서맞는봄-마을을교회로_이진.pdf

1621_2015_봄호_65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1622_2015_봄호_65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곤충이야기-사마귀.pdf

1623_2015_봄호_65_성경과농사(8)_롯의이농과아브람의귀농_이영재.pdf

1624_2015_봄호_65_새로운복음_도마복음읽기(5)_한석진.pdf

1625_2015_봄호_65_협동조합_협동조합운동을통한치유와화해의사역__한경호.pdf

1626_2015_봄호_65_평화운동_퀘이커리즘과평화운동_정지석.pdf

1627_2015_봄호_65_농과인문학_농과인문학,농민은천민(天民)이다_서성열.pdf

1628_2015_봄호_65_북한농업_북한의농업문제,극복대안과전망_김철.pdf

1629_2015_봄호_65_치유와건강_내가만난순리치유_강상빈.pdf

1630_2015_봄호_65_동학이야기_민초(民草),혁명을말하다_박맹수.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65호-068호(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65호(2015년 봄호) (0) 2018.03.22
농촌과 목회 68호(2015년 겨울호) (0) 2018.03.22
농촌과 목회 67호(2015년 가을호) (0) 2018.03.22
농촌과 목회 66호(2015년 여름호) (0) 2018.03.22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42호(2009년 여름호)
2017.11.14 12:11, 041-044호(2009)

1061_2009_여름호_42_권두언_왜,대통령을의지하려하는가?_한경호
1062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교회복지선교현장이야기_좌담회
1063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아동,청소년들을위한복지선교이야기_김정운
1064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노인복지에대한접근,어떻게할것인가_유수상
1065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결혼이민자정책의바람직한방향과과제_고은영
1066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복지선교에대한성서적이해_이승열
1067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이야기_하나님나라의도구,용학교회이야기_박석종
1068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이야기_도‧농교류사업을꿈꾸는새로운목회_박재현
1069_2009_여름호_42_귀농대담_박후임목사의눈에비친땅과노동이야기_임혜난,유효민
1070_2009_여름호_42_청소년수련회_옥동교회청소년수련회이야기_엄용식
1071_2009_여름호_42_농촌사회변동_진통하는농촌사회_김조년
1072_2009_여름호_42_목회와역사의식_6‧25전쟁은무슨전쟁이었나?_김흥수
1073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자와건강_가축과축산_임락경
1074_2009_여름호_42_목회단상_기적은가까이에있다-약장수와목사_김일균
1075_2009_여름호_42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1076_2009_여름호_42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애기똥풀_
1077_2009_여름호_42_해외민중선교_노동자,빈민과함께한가나이(金井愛明)목사_스즈키
1078_2009_여름호_42_해외민중선교_가나이(金井愛明)목사에대한회고_최정석
1079_2009_여름호_42_불교와의대화_목회자가읽어본법구경(4)_장의성
1080_2009_여름호_42_농업과통일_북한농업개발사업의어제와오늘_이용범
1081_2009_여름호_42_신학과강단_욥의고난설화에대한논의_게르하르트폰라트








1061_2009_여름호_42_권두언_왜대통령을의지하려하는가_한경호 .pdf

1062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교회복지선교현장이야기_좌담회 .pdf

1063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아동청소년들을위한복지선교이야기_김정운 .pdf

1064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농촌노인복지에대한접근어떻게할것인가_유수상 .pdf

1065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결혼이민자정책의바람직한방향과과제_고은영 .pdf

1066_2009_여름호_42_농촌교회복지선교현황을진단한다_복지선교에대한성서적이해_이승열 .pdf

1067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이야기_하나님나라의도구용학교회이야기_박석종 .pdf

1068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이야기_도‧농교류사업을꿈꾸는새로운목회_박재현 .pdf

1069_2009_여름호_42_귀농대담_박후임목사의눈에비친땅과노동이야기_임혜난유효민 .pdf

1070_2009_여름호_42_청소년수련회_옥동교회청소년수련회이야기_엄용식 .pdf

1071_2009_여름호_42_농촌사회변동_진통하는농촌사회_김조년 .pdf

1072_2009_여름호_42_목회와역사의식_6‧25전쟁은무슨전쟁이었나_김흥수 .pdf

1073_2009_여름호_42_농촌목회자와건강_가축과축산_임락경 .pdf

1074_2009_여름호_42_목회단상_기적은가까이에있다-약장수와목사_김일균 .pdf

1075_2009_여름호_42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pdf

1076_2009_여름호_42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애기똥풀_.pdf

1077_2009_여름호_42_해외민중선교_노동자빈민과함께한가나이(金井愛明)목사_스즈키 .pdf

1078_2009_여름호_42_해외민중선교_가나이(金井愛明)목사에대한회고_최정석 .pdf

1079_2009_여름호_42_불교와의대화_목회자가읽어본법구경(4)_장의성 .pdf

1080_2009_여름호_42_농업과통일_북한농업개발사업의어제와오늘_이용범 .pdf

1081_2009_여름호_42_신학과강단_욥의고난설화에대한논의_게르하르트폰라트 .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41-044호(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44호(2009년 겨울호) (0) 2017.11.14
농촌과 목회 43호(2009년 가을호) (0) 2017.11.14
농촌과 목회 42호(2009년 여름호) (0) 2017.11.14
농촌과 목회 41호(2009년 봄호) (0) 2017.11.14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23호(2004년 가을호)
2017.11.08 16:36, 021-024호(2004)

0593_2004_가을호_23_머리말_‘먹을것’이없는세상_한경호
0594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생물책(00)란무엇인가?_김은진
0595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이생태계에미치는영향과대책_박병상
0596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식품,얼마나우리식탁을침범하고있는가?_이진아
0597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의기독교윤리적문제_박종균
0598_2004_가을호_23_농민과토지_하의삼도농민들의토지항쟁사_이문명
0599_2004_가을호_23_정의와생명_때가찼고(TheTimehascome)_세계개혁교회연맹
0600_2004_가을호_23_통일농업만들기_북한의축산과남북협력방안_지인배
0601_2004_가을호_23_생명공동체이야기_유기농업운동애서유기적삶으로_김병수
0602_2004_가을호_23_도농교류이야기_부산YWCA의생활협동운동이야기_윤신옥
0603_2004_가을호_23_생명농업이야기_한국생명농업운동의역사_최병칠
0604_2004_가을호_23_농촌목회이야기_찾아가는목회생활속에함께하는목회_유수상
0605_2004_가을호_23_1980년대기독교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_배윤호
0606_2004_가을호_23_도농교회간의교류_여름자연채험수련회를다녀와서_김형준
0607_2004_가을호_23_단체이야기_기독요생명운동네트워크창럽이야기_강상빈
0608_2004_가을호_23_해외농촌선교_한국농촌교회방문기_YahyaTirtaPrewita
0609_2004_가을호_23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0610_2004_가을호_23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쑥_
0611_2004_가을호_23_농촌목회자와건강_먹지말고참아라정_임락경
0612_2004_가을호_23_목회단상_아~녕하셰어~져오사니-쓸쓸하지않은빈자리-작은소자로오산주님_조일륜
0613_2004_가을호_23_이사람을보라_새로운미래를열어가는남상도목사_박주열
0614_2004_가을호_23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일제하YWCA의농촌운동_최민자
0615_2004_가을호_23_추수감사절설교_‘찌라도’감사_한철인
0616_2004_가을호_23_치유와목회_치유의은사_염기석
0617_2004_가을호_23_치유와목회_금식을통한치유와영성_김수영








0594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생물책(00)란무엇인가_김은진.pdf

0595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이생태계에미치는영향과대책_박병상.pd

0596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식품,얼마나우리식탁을침범하고있는가_이

0597_2004_가을호_23_유전자조작농산물(GMO)과농촌목회적대응_유전자조작의기독교윤리적문제_박종균.pdf

0598_2004_가을호_23_농민과토지_하의삼도농민들의토지항쟁사_이문명.pdf

0599_2004_가을호_23_정의와생명_때가찼고(TheTimehascome)_세계개혁교회연맹.pdf

0600_2004_가을호_23_통일농업만들기_북한의축산과남북협력방안_지인배.pdf

0601_2004_가을호_23_생명공동체이야기_유기농업운동애서유기적삶으로_김병수.pdf

0602_2004_가을호_23_도농교류이야기_부산YWCA의생활협동운동이야기_윤신옥.pdf

0603_2004_가을호_23_생명농업이야기_한국생명농업운동의역사_최병칠.pdf

0604_2004_가을호_23_농촌목회이야기_찾아가는목회생활속에함께하는목회_유수상.pdf

0605_2004_가을호_23_1980년대기독교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_배윤호.pdf

0606_2004_가을호_23_도농교회간의교류_여름자연채험수련회를다녀와서_김형준.pdf

0607_2004_가을호_23_단체이야기_기독요생명운동네트워크창럽이야기_강상빈.pdf

0608_2004_가을호_23_해외농촌선교_한국농촌교회방문기_YahyaTirtaPrewita0608_2004_가을호

0609_2004_가을호_23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0610_2004_가을호_23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쑥_.pdf

0611_2004_가을호_23_농촌목회자와건강_먹지말고참아라정_임락경.pdf

0612_2004_가을호_23_목회단상_아~녕하셰어~져오사니-쓸쓸하지않은빈자리-작은소자로오산주님_조일륜.pdf

0613_2004_가을호_23_이사람을보라_새로운미래를열어가는남상도목사_박주열.pdf

0614_2004_가을호_23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일제하YWCA의농촌운동_최민자.pdf

0615_2004_가을호_23_추수감사절설교_찌라도감사_한철인.pdf

0616_2004_가을호_23_치유와목회_치유의은사_염기석.pdf

0617_2004_가을호_23_치유와목회_금식을통한치유와영성_김수영.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21-024호(20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24호(2004년 겨울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3호(2004년 가을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2호(2004년 여름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1호(2004년 봄호) (0) 2017.11.08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21호(2004년 봄호)
2017.11.08 16:31, 021-024호(2004)



0542_2004_봄호_21_머리말_주체사상을알자_한경호
0543_2004_봄호_21_북한농촌선교를준비한다_북한의농엽현항_편집실
0544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FAO_WFP
0545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북한농촌선교어떻게할것인가?_최장원
0546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내가살았던북한사회_조상철
0547_2004_봄호_21_생명공동체이야기_주민생활협동조합이야기_장건
0548_2004_봄호_21_농촌선교와운동_강화환경농업농민회이야기_김정택
0549_2004_봄호_21_80년대기독교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_오덕훈
0550_2004_봄호_21_농목이야기_감리교농목의활동과역사_이헌
0551_2004_봄호_21_도농교회의나눔_영락교회여전도회와옥방교회_최명화
0552_2004_봄호_21_생명농업이야기_최병칠의생명농업이야기_최병칠
0553_2004_봄호_21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0554_2004_봄호_21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질경이_
0555_2004_봄호_21_세상바로보기_출애굽-선민의식의빛과그늘_미야다미쓰오
0556_2004_봄호_21_농촌목회자와건강_짜릿한안수기도_임락경
0557_2004_봄호_21_목회단상_농촌목회자의자존섬_박철
0558_2004_봄호_21_목회단상_아싸라삽시다-하나님아부지!_김재검
0559_2004_봄호_21_이사람을보라_21세기를준비하는농민주형로_김남철
0560_2004_봄호_21_성경과농업_농부이신하나님_박성원
0561_2004_봄호_2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1970-80년대YMCA농촌사업의전개와그성격_윤호충
0562_2004_봄호_2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대안(생명)농업의성서적기초_한경호
0563_2004_봄호_21_부활절설교_부활하신예수를생각하자_고정수
0564_2004_봄호_21_목회와치유_하나님나라회복으로써의치유_염기석
0565_2004_봄호_21_생명과교육_왜생명교육인가?_고제순
0566_2004_봄호_21_서평_건강한흙은건강한삶의열쇠_정진석








0542_2004_봄호_21_머리말_주제사상을알자_한경호.pdf

0543_2004_봄호_21_북한농촌선교를준비한다_북한의농엽현항_편집실.pdf

0544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FAO_WFP.pdf

0545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북한농촌선교어떻게할것인가_최장원.pdf

0546_2004_봄호_21_2003년북한의작황과식량수급전망_내가살았던북한사회_조상철.pdf

0547_2004_봄호_21_생명공동체이야기_주민생활협동조합이야기_장건.pdf

0548_2004_봄호_21_농촌선교와운동_강화환경농업농민회이야기_김정택.pdf

0549_2004_봄호_21_80년대기독교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_오덕훈.pdf

0550_2004_봄호_21_농목이야기_감리교농목의활동과역사_이헌.pdf

0551_2004_봄호_21_도농교회의나눔_영락교회여전도회와옥방교회_최명화.pdf

0552_2004_봄호_21_생명농업이야기_최병칠의생명농업이야기_최병칠.pdf

0553_2004_봄호_21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0554_2004_봄호_21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들풀이야기-질경이_.pdf

0555_2004_봄호_21_세상바로보기_출애굽-선민의식의빛과그늘_미야다미쓰오.pdf

0556_2004_봄호_21_농촌목회자와건강_짜릿한안수기도_임락경.pdf

0557_2004_봄호_21_목회단상_농촌목회자의자존심_박철.pdf

0558_2004_봄호_21_목회단상_아싸라삽시다-하나님아부지_김재검.pdf

0559_2004_봄호_21_이사람을보라_21세기를준비하는농민주형로_김남철.pdf

0560_2004_봄호_21_성경과농업_농부이신하나님_박성원.pdf

0561_2004_봄호_2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1970-80년대YMCA농촌사업의전개와그성격_윤호충.pdf

0562_2004_봄호_2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대안(생명)농업의성서적기초_한경호.pdf

0563_2004_봄호_21_부활절설교_부활하신예수를생각하자_고정수.pdf

0564_2004_봄호_21_목회와치유_하나님나라회복으로써의치유_염기석.pdf

0565_2004_봄호_21_생명과교육_왜생명교육인가_고제순.pdf

0566_2004_봄호_21_서평_건강한흙은건강한삶의열쇠_정진석.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21-024호(20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24호(2004년 겨울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3호(2004년 가을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2호(2004년 여름호) (0) 2017.11.08
농촌과 목회 21호(2004년 봄호) (0) 2017.11.08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17호(2003년 봄호)
2017.10.13 16:37, 017-020호(2003)



0434_2003_봄호_17_권두시_들리시나요?옛물소리_임의진
0435_2003_봄호_17_머리말_시대정신의전환_한경호
0436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농촌의여가문화와신앙생활_이정구
0437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5일근무,도시교회애바란다_김유석
0438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 5일근무,농촌교회에바란다_정태일
0439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 5일근무와도·농교회의연대방안_김수영
0440_2003_봄호_17_새시대의농촌목회_농사와함쩨하는농촌사역_이성호
0441_2003_봄호_17_광산촌선교_나의탄광촌복지선교활동_원응호
0442_2003_봄호_17_도시교회의농촌사랑_동신교회의농어촌선교활동_강동수
0443_2003_봄호_17_농촌공동체운동_새농촌건설운동,어떻게볼것인가?_유양종
0444_2003_봄호_17_농촌공동체운동_친환경농업과생태공동체운동_한경호
0445_2003_봄호_17_공동체운동과교육_키부츠의교육의원칙_아론야드린
0446_2003_봄호_17_시골교회짓기_전문가가보는농촌교회건축의설계_박대융
0447_2003_봄호_17_농촌목회와전례_전례와시간,동방정교회를중심으로_박순웅
0448_2003_봄호_17_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과정과반성_김종길
0449_2003_봄호_17_이사람을보라_농촌청소년들과더불어20년,이상출목사_김덕용
0450_2003_봄호_17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0451_2003_봄호_17_농촌목회자와건강_한국이개판_임락경
0452_2003_봄호_17_목회단상_성도의빈자리-교육관건축과중학생들_남두환
0453_2003_봄호_17_후배목회자들에게_내가겪은목회갈등이야기_임기석
0454_2003_봄호_17_단체소개_“한국농어촌선교회"_김종순
0455_2003_봄호_17_북한의농업_북한농업정책의변화_권태진
0456_2003_봄호_17_해외농촌현황_카자흐스탄의농업과농촌현실_정준모
0457_2003_봄호_1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기독교인농학자김성원(聲遠)_한규무
0458_2003_봄호_1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농촌교회와노인복지선교_조시현
0459_2003_봄호_17_부활주일_부활신앙인의삶_심현섭
0460_2003_봄호_17_어버이주일_핑계대지맙시다_김일현
0461_2003_봄호_17_농촌목회자의고전읽기_노자가예수를만날때_장의성
0462_2003_봄호_17_단편소설_인용사전_김학진
0463_2003_봄호_17_서평_[농민예언자김영원의들소리]_박동현








0434_2003_봄호_17_권두시_들리시나요옛물소리_임의진.pdf

0435_2003_봄호_17_머리말_시대정신의전환_한경호.pdf

0436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농촌의여가문화와신앙생활_이정구.pdf

0437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5일근무,도시교회애바란다_김유석.pdf

0438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 5일근무,농촌교회에바란다_정태일.pdf

0439_2003_봄호_17_주5일근무와도·농교회의선교적연대_주 5일근무와도·농교회의연대방안_김수영.pdf

0440_2003_봄호_17_새시대의농촌목회_농사와함쩨하는농촌사역_이성호.pdf

0441_2003_봄호_17_광산촌선교_나의탄광촌복지선교활동_원응호.pdf

0442_2003_봄호_17_도시교회의농촌사랑_동신교회의농어촌선교활동_강동수.pdf

0443_2003_봄호_17_농촌공동체운동_새농촌건설운동,어떻게볼것인가_유양종.pdf

0444_2003_봄호_17_농촌공동체운동_친환경농업과생태공동체운동_한경호.pdf

0445_2003_봄호_17_공동체운동과교육_키부츠의교육의원칙_아론야드린.pdf

0446_2003_봄호_17_시골교회짓기_전문가가보는농촌교회건축의설계_박대융.pdf

0447_2003_봄호_17_농촌목회와전례_전례와시간,동방정교회를중심으로_박순웅.pdf

0448_2003_봄호_17_농민운동_나의농민운동이야기,과정과반성_김종길.pdf

0449_2003_봄호_17_이사람을보라_농촌청소년들과더불어20년,이상출목사_김덕용.pdf

0450_2003_봄호_17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0451_2003_봄호_17_농촌목회자와건강_한국이개판_임락경.pdf

0452_2003_봄호_17_목회단상_성도의빈자리-교육관건축과중학생들_남두환.pdf

0453_2003_봄호_17_후배목회자들에게_내가겪은목회갈등이야기_임기석.pdf

0454_2003_봄호_17_단체소개_“한국농어촌선교회_김종순.pdf

0455_2003_봄호_17_북한의농업_북한농업정책의변화_권태진.pdf

0456_2003_봄호_17_해외농촌현황_카자흐스탄의농업과농촌현실_정준모.pdf

0457_2003_봄호_1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기독교인농학자김성원(聲遠)_한규무.pdf

0458_2003_봄호_1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농촌교회와노인복지선교_조시현.pdf

0459_2003_봄호_17_부활주일_부활신앙인의삶_심현섭.pdf

0460_2003_봄호_17_어버이주일_핑계대지맙시다_김일현.pdf

0461_2003_봄호_17_농촌목회자의고전읽기_노자가예수를만날때_장의성.pdf

0462_2003_봄호_17_단편소설_인용사전_김학진.pdf

0463_2003_봄호_17_서평_[농민예언자김영원의들소리]_박동현.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17-020호(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20호(2003년 겨울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19호(2003년 가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18호(2003년 여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17호(2003년 봄호) (0) 2017.10.13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11호(2001년 가을호)
2017.10.13 16:25, 009-012호(2001)



0256_2001_가을호_11_머리말_농사,화평과복의길_한경호
0257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민유토피아‘새하늘새땅’을향하여_이종록
0258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민복지에대한선교신학적이해_김은수
0259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촌교회를통한복지선교_김창렬
0260_2001_가을호_11_생명공동체이야기_산당교회와생명공동체이야기_한종현
0261_2001_가을호_11_생태마을만들기_문당리생태마을만들기100년계획_주형로
0262_2001_가을호_11_도시교회의선교징책_여의도순복음교회의농어촌선교정책_정재우
0263_2001_가을호_11_도·농교회사람나누기_함께살리는생명_이세우
0264_2001_가을호_11_농민과의료_안성의료생협이야기_유진상
0265_2001_가을호_11_광산촌선교이야기_황지중앙교회와광산촌선교_이상진
0266_2001_가을호_11_이사람을보라_등대선교회의안기창목사_손주완
0267_2001_가을호_1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0268_2001_가을호_11_농민독자의농사체험_고추농사단상_김순갑
0269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와건강_흙토,황토,백토_임락경
0270_2001_가을호_11_시골교회짓는이야기_아름다운시골교회를짓기위한제안_남기완
0271_2001_가을호_11_해외농촌선교이야기_정글(jungle)선교두번째이야기_오정면
0272_2001_가을호_11_농촌작은학교살리기_거친들에씨를뿌린자는들을잊기어렵나니_한희철
0273_2001_가을호_11_농민들의북한방문기_너무나그리운또하나의조국에서_한승아
0274_2001_가을호_11_새로운농촌선교전략_정주목회란무엇인가?_차흥도
0275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와영성_애니어그램영성이란무엇인가?_김영운
0276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창조질서회복을위한인간론_김춘기
0277_2001_가을호_11_민담“떡하나주면안잡아먹지”의_역사적현실과민중의희망_박정세
0278_2001_가을호_11_추수감사주일_범사에감사하라_김기중
0279_2001_가을호_11_농업인의날_땅에서나는열매를바라는농부_이성행
0280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의성경읽기_성경속에흐르는복음의원리_배광환
0281_2001_가을호_11_목회자의고전읽기_논어를어떻게읽을것인가?_장의성
0282_2001_가을호_11_농사정보_바이오농법이란무엇인가?_김종억










0256_2001_가을호_11_머리말_농사,화평과복의길_한경호.pdf

0257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민유토피아새하늘새땅을향하여_이종록.pdf

0258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민복지에대한선교신학적이해_김은수.pdf

0259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와복지선교_농촌교회를통한복지선교_김창렬.pdf

0260_2001_가을호_11_생명공동체이야기_산당교회와생명공동체이야기_한종현.pdf

0261_2001_가을호_11_생태마을만들기_문당리생태마을만들기100년계획_주형로.pdf

0262_2001_가을호_11_도시교회의선교징책_여의도순복음교회의농어촌선교정책_정재우.pdf

0263_2001_가을호_11_도·농교회사람나누기_함께살리는생명_이세우.pdf

0264_2001_가을호_11_농민과의료_안성의료생협이야기_유진상.pdf

0265_2001_가을호_11_광산촌선교이야기_황지중앙교회와광산촌선교_이상진.pdf

0266_2001_가을호_11_이사람을보라_등대선교회의안기창목사_손주완.pdf

0267_2001_가을호_11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0268_2001_가을호_11_농민독자의농사체험_고추농사단상_김순갑.pdf

0269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와건강_흙토,황토백토_임락경.pdf

0270_2001_가을호_11_시골교회짓는이야기_아름다운시골교회를짓기위한제안_남기완.pdf

0271_2001_가을호_11_해외농촌선교이야기_정글(jungle)선교두번째이야기_오정면.pdf

0272_2001_가을호_11_농촌작은학교살리기_거친들에씨를뿌린자는들을잊기어렵나니_한희철.pdf

0273_2001_가을호_11_농민들의북한방문기_너무나그리운또하나의조국에서_한승아.pdf

0274_2001_가을호_11_새로운농촌선교전략_정주목회란무엇인가_차흥도.pdf

0275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와영성_애니어그램영성이란무엇인가_김영운.pdf

0276_2001_가을호_11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창조질서회복을위한인간론_김춘기.pdf

0277_2001_가을호_11_민담“떡하나주면안잡아먹지”의_역사적현실과민중의희망_박정세.pdf

0278_2001_가을호_11_추수감사주일_범사에감사하라_김기중.pdf

0279_2001_가을호_11_농업인의날_땅에서나는열매를바라는농부_이성행.pdf

0280_2001_가을호_11_농촌목회자의성경읽기_성경속에흐르는복음의원리_배광환.pdf

0281_2001_가을호_11_목회자의고전읽기_논어를어떻게읽을것인가_장의성.pdf

0282_2001_가을호_11_농사정보_바이오농법이란무엇인가_김종억.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09-012호(20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12호(2001년 겨울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11호(2001년 가을호) (2) 2017.10.13
농촌과 목회 10호(2001년 여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9호(2001년 봄호) (0) 2017.10.13

2 Comments, 0 Trackbacks

이강민
2017.10.13 20:52 신고 EDIT/DEL REPLY
농촌과 목회 구독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이강민
2017.10.13 20:52 신고 EDIT/DEL REPLY
농촌과목회 구독방법좀 알려주세요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10호(2001년 여름호)
2017.10.13 16:24, 009-012호(2001)



0230_2001_여름호_10_머리말_농촌선교를활성화시키려면_한경호
0231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을위한새문명을지향하여_김용복
0232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농촌선교신학으로써의생명신학_이정배
0233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농업으로의회귀_이병철
0234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선교와목회적과채_천정명
0235_2001_여름호_10_생명공동처|이야기_송학교회와생명공동채이야기_엄태성
0236_2001_여름호_10_생태마을만들기_백운교회의생태마을만들기_남상도
0237_2001_여름호_10_도시교회의선교정책_새문안교회의농어촌선교정책_이상환
0238_2001_여름호_10_도·농교류이야기_단강과용두동,그얼싸안기_한희철
0239_2001_여름호_10_대안교육이야기_기독교적대안학쿄의과제와방향_홍순명
0240_2001_여름호_10_농촌교회와노인선교_가마골선교회의노인선교이야기_용석천
0241_2001_여름호_10_이사람을보라_유기농업의선구자,최병칠목사_손주완
0242_2001_여름호_10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
0243_2001_여름호_10_목회단상_촌에사는이야기_이화자
0244_2001_여름호_10_농촌목회자와건강_잡귀,귀신물러가라_임락경
0245_2001_여름호_10_시골교회짓는이야기_교회건축이렇게하지말라_남기완
0246_2001_여름호_10_해외농촌선교_몽골농업선교이야기_이혜식
0247_2001_여름호_10_북한농업바로알기_북한농엽의현실_정정길
0248_2001_여름호_10_해외농촌알기_중국농촌체제개혁과농촌사회실태_이정규
0249_2001_여름호_10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구약성서의절기와농사와의관계_김치홍
0250_2001_여름호_10_민담_꿩과나그네속의민중과희망_박정세
0251_2001_여름호_10_625_625를민족화해와대단결의날로삼자_이세우
0252_2001_여름호_10_맥추절_2001맥추절을지키라_박남규
0253_2001_여름호_10_광복절_미완의광복_노성철
0254_2001_여름호_10_농촌목회자의고전읽기_공자의군자론_장의성
0255_2001_여름호_10_농사정보_TAO농법이란무엇인가?_이명규










0230_2001_여름호_10_머리말_농촌선교를활성화시키려면_한경호.pdf

0231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을위한새문명을지향하여_김용복.pdf

0232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농촌선교신학으로써의생명신학_이정배.pdf

0233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농업으로의회귀_이병철.pdf

0234_2001_여름호_10_생명시대의농촌선교_생명선교와목회적과채_천정명.pdf

0235_2001_여름호_10_생명공동체이야기_송학교회와생명공동채이야기_엄태성.pdf

0236_2001_여름호_10_생태마을만들기_백운교회의생태마을만들기_남상도.pdf

0237_2001_여름호_10_도시교회의선교정책_새문안교회의농어촌선교정책_이상환.pdf

0238_2001_여름호_10_도·농교류이야기_단강과용두동,그얼싸안기_한희철.pdf

0239_2001_여름호_10_대안교육이야기_기독교적대안학쿄의과제와방향_홍순명.pdf

0240_2001_여름호_10_농촌교회와노인선교_가마골선교회의노인선교이야기_용석천.pdf

0241_2001_여름호_10_이사람을보라_유기농업의선구자,최병칠목사_손주완.pdf

0242_2001_여름호_10_자연과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박훈서.pdf

0243_2001_여름호_10_목회단상_촌에사는이야기_이화자.pdf

0244_2001_여름호_10_농촌목회자와건강_잡귀,귀신물러가라_임락경.pdf

0245_2001_여름호_10_시골교회짓는이야기_교회건축이렇게하지말라_남기완.pdf

0246_2001_여름호_10_해외농촌선교_몽골농업선교이야기_이혜식.pdf

0247_2001_여름호_10_북한농업바로알기_북한농엽의현실_정정길.pdf

0248_2001_여름호_10_해외농촌알기_중국농촌체제개혁과농촌사회실태_이정규.pdf

0249_2001_여름호_10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구약성서의절기와농사와의관계_김치홍.pdf

0250_2001_여름호_10_민담_꿩과나그네속의민중과희망_박정세.pdf

0251_2001_여름호_10_625_625를민족화해와대단결의날로삼자_이세우.pdf

0252_2001_여름호_10_맥추절_2001맥추절을지키라_박남규.pdf

0253_2001_여름호_10_광복절_미완의광복_노성철.pdf

0254_2001_여름호_10_농촌목회자의고전읽기_공자의군자론_장의성.pdf

0255_2001_여름호_10_농사정보_TAO농법이란무엇인가_이명규.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09-012호(20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12호(2001년 겨울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11호(2001년 가을호) (2) 2017.10.13
농촌과 목회 10호(2001년 여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9호(2001년 봄호) (0) 2017.10.13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농촌과 목회 7호(2000년 가을호)
2017.10.13 16:19, 005-008호(2000)



0156_2000_가을호_7_머리말_풀과성경_한경호
0157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세계화의사회경재적배경과역사_이명헌
0158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농엽의세계화,무엇이문채인가?_허헌중
0159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자본주의의세계화와신학의과채_채수일
0160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농업의세계화와그대안적노력_한경호
0161_2000_가을호_7_도시교회와농어촌선교_사랑의교회의농어촌션교정책_심현섭
0162_2000_가을호_7_생명공동체이야기_푸영교회와선한농부마을이야기_김경준
0163_2000_가을호_7_이사람을보라_변두리에서사랑의꽃을피운김범얼목사_손주완
0164_2000_가을호_7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편집실
0165_2000_가을호_7_목회단상_사랑의종_김종구
0166_2000_가을호_7_여름나물_학교가는길은자연학습장_박훈서
0167_2000_가을호_7_농민목회자와건강_추수감사절과초장절_임락경
0168_2000_가을호_7_시골교회짓는이야기_아주특별하게지은중원경교회_남기완
0169_2000_가을호_7_시골집짓기_인우재(隣愚齎)이야기_한희철
0170_2000_가을호_7_농촌과북한선교_국제옥수수재단과북한농업_임원택
0171_2000_가을호_7_해외농촌선교이야기_정글(Jungle)속의선교이야기_오정면
0172_2000_가을호_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하갈과이스마엘추방사건애대한농촌목회자의이해_한철인
0173_2000_가을호_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복음서의농촌선교적이해_나요섭
0174_2000_가을호_7_논두렁에서읽는성서_생명의씨뿌리기_정호진
0175_2000_가을호_7_한글성서번역_룻이야기_김태종
0176_2000_가을호_7_예배설교/추수감사주일_은혜를아는사람_여태권
0177_2000_가을호_7_농사정보_지렁이의생태와농업적이용방안_이주삼
0178_2000_가을호_7_농사정보_유전자조작생물채(GMO,무엇이문제인가?)_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0179_2000_가을호_7_독자의글_농촌교회전망에대한소고_박정도
0180_2000_가을호_7_독자의글_유기농공동체및생산자현황_편집실








0156_2000_가을호_7_머리말_풀과성경_한경호.pdf

0157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세계화의사회경재적배경과역사_이명헌.pdf

0158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농엽의세계화,무엇이문채인가_허헌중.pdf

0159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자본주의의세계화와신학의과채_채수일.pdf

0160_2000_가을호_7_세계화와농촌선교_농업의세계화와그대안적노력_한경호.pdf

0161_2000_가을호_7_도시교회와농어촌선교_사랑의교회의농어촌션교정책_심현섭.pdf

0162_2000_가을호_7_생명공동체이야기_푸영교회와선한농부마을이야기_김경준.pdf


0163_2000_가을호_7_이사람을보라_변두리에서사랑의꽃을피운김범얼목사_손주완.pdf

0164_2000_가을호_7_자연괴더불어사는지혜_농촌잠언_편집실.pdf

0165_2000_가을호_7_목회단상_사랑의종_김종구.pdf

0166_2000_가을호_7_여름나물_학교가는길은자연학습장_박훈서.pdf

0167_2000_가을호_7_농민목회자와건강_추수감사절과초장절_임락경.pdf

0168_2000_가을호_7_시골교회짓는이야기_아주특별하게지은중원경교회_남기완.pdf

0169_2000_가을호_7_시골집짓기_인우재(隣愚齎)이야기_한희철.pdf

0170_2000_가을호_7_농촌과북한선교_국제옥수수재단과북한농업_임원택.pdf

0171_2000_가을호_7_해외농촌선교이야기_정글(Jungle)속의선교이야기_오정면.pdf

0172_2000_가을호_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하갈과이스마엘추방사건애대한농촌목회자의이해_한철인.pdf

0173_2000_가을호_7_농촌교회의신학과강단_복음서의농촌선교적이해_나요섭.pdf

0174_2000_가을호_7_논두렁에서읽는성서_생명의씨뿌리기_정호진.pdf

0175_2000_가을호_7_한글성서번역_룻이야기_김태종.pdf

0176_2000_가을호_7_예배설교 추수감사주일_은혜를아는사람_여태권.pdf

0177_2000_가을호_7_농사정보_지렁이의생태와농업적이용방안_이주삼.pdf

0178_2000_가을호_7_농사정보_유전자조작생물채(GMO,무엇이문제인가)_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pdf

0179_2000_가을호_7_독자의글_농촌교회전망에대한소고_박정도.pdf

0180_2000_가을호_7_독자의글_유기농공동체및생산자현황_편집실.pdf


공감sns신고
저작자표시

'005-008호(20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촌과 목회 8호(2000년 겨울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7호(2000년 가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6호(2000년 여름호) (0) 2017.10.13
농촌과 목회 5호(2000년 봄호) (0) 2017.10.13

0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




SECRETCOMMENT
1 2 NEXT


공지사항

농촌과 목회 자료 리스트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70)
001-004호(1999) (4)
005-008호(2000) (4)
009-012호(2001) (4)
013-016호(2002) (4)
017-020호(2003) (4)
021-024호(2004) (4)
025-028호(2005) (4)
029-032호(2006) (4)
033-036호(2007) (4)
037-040호(2008) (4)
041-044호(2009) (4)
045호-048호(2010) (4)
049호-052호(2011) (4)
053호-056호(2012) (4)
057호-060호(2013) (4)
061호-064호(2014) (4)
065호-068호(2015) (4)
069호-072호(2016) (2)
073호-076호(201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