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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3

알라딘: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2020

알라딘: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 불교의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
 종교와젠더연구소 총서 1  
선일,고승희,김신명숙,안양규,옥복연,이미령,주수완,최명희,최우혁 (지은이),종교와젠더연구소 (엮은이)동연(와이미디어)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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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348쪽153*225mm512gISBN : 978896447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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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의 이해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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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 불교의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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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_ 명법스님 / 법만스님 / 이인자 / 박병기 / 조현 / 솜분 충프람리
머리말 _ 옥복연

제1부╻경전에 나타난 마야왕비

마하마야(MahāMāyā), 그녀는 누구인가? ― 초기 경전을 중심으로 / 선일스님
I. 붓다가 될 보살을 인도한 보살은 어디에?
II. 부처님의 부모
III. 마하마야(Mahāmāyā)의 생애
1. 마하마야(Mahāmāyā)
2. 불모(佛母)로 선택받은 마하마야
3. 아살하(Āsāḷhā) 보름, 마하마야의 임신
4. 정해진 법칙, 담마따(Dhammatā)의 마하마야
5. 위사카(Visākhā) 보름, 마하마야의 출산
6. 마하마야의 죽음
7. 사후(死後)의 마하마야
IV. 붓다로 인도한 보살, 마하마야

대승경전이 들려주는 마야왕비 이야기 / 이미령
I. 붓다의 어머니를 말한다는 것
II. 마야왕비를 말하는 대승경전 세 가지
1. 지옥의 괴로움을 묻는 󰡔지장경󰡕
2. 슬픔으로 가득 찬 󰡔마하마야경󰡕
3. 구도자를 일깨우는 󰡔대방광불화엄경󰡕 속의 󰡔입법계품󰡕
III. 마야왕비, 구도자에서 선지식으로

제2부╻생애사를 통해 본 마야왕비

심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마야왕비의 꿈 / 최명희
I. 여성적 가치관의 시대를 열다
II. 마야왕비의 꿈 해석하기
1. 마야왕비의 이름에 나타나는 심리적 상징성
2. 마야왕비의 꿈으로 나타나는 상징들
3. 코끼리의 상징
4. 하얀 코끼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5. 숫자가 나타내는 상징
6. ‘땅’은 존재의 뿌리 영역을 상징한다
7. 어머니의 상징
8. 마야왕비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III. 마야왕비, 여성 영웅의 상징

보살의 탄생과 마야(摩耶, Māyā)왕비의 죽음 / 안양규
I. 보살이 선택한 어머니 마야왕비
II. 마야왕비의 임신과 출산
1. 보살의 어머니 선택
2. 마야왕비의 수태와 태몽
3. 임신 중 마야왕비의 건강 상태
4. 마야왕비의 출산
III. 마야왕비의 죽음 원인에 관한 논의
IV. 보살의 잉태를 서원한 마야왕비

제3부╻불교문학에 나타난 마야왕비

인도 미술에 등장하는 마야왕비의 도상학 / 주수완
I. 마야왕비, 석가의 탄생을 세심하게 준비하다
II.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마야왕비의 다양한 모습들
1. 회임
2. 출산
3. 카필라성으로의 귀환(종원환성從園還城)
4. 상사점간相師占看
5. 도리천에서의 마야왕비
Ⅲ. 마야왕비의 숭고한 신앙적 위상

한국 역사 속 마야왕비 신앙 ― 인도, 일본의 사례를 포함한 여신 신앙의 관점에서 / 김신명숙
I. 한국 역사에서 주변화된 마야왕비
II. 한국 역사에 나타난 마야왕비
1. 지리산 성모와 마야왕비
2.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마야왕비
3. 일본과 인도의 마야 신앙과 출산의 여신
4. 한국역사 속 마야 신앙 다시 보기
III. 불교 여신 혹은 여성 부처로서의 마야부인

조선시대 불교회화로 만나는 마하마야와 여성 신도들 / 고승희
I. 팔상도八相圖로 만나는 마야왕비
II. 불화로 재현된 마야왕비와 여성 불자들
1. 석가모니 생애를 그린 ‘팔상도’와 마야왕비
2. 조선시대 ‘팔상도’의 의미와 마야왕비의 묘사
3. ‘팔상도’에서 존경과 경배의 대상으로 재현된 마야왕비
4. 조선시대 불화 조성의 주체: 여성 발원자 및 시주자
III. 민중들의 존경과 경배의 대상 마야왕비

제4부╻마야왕비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

마야왕비에 대한 불교여성주의적 재해석 / 옥복연
Ⅰ. 여성이 지워진 불교사에서 마야왕비 찾기
Ⅱ.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이야기의 복원
1. 여성이 지워진 역사는 미완의 역사
2. 여성의 관점으로 복구되어야 할 여성의 이야기들
3. 지워진 여성 이야기를 복원하는 방법
Ⅲ. 마야왕비를 통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극복
1. 가부장적 모성에서 사회적 모성의 보살로
2. 부정한 몸에서 천신이 보호하는 성스러운 신전으로
3. 열등한 여성에서 대원과 지혜를 갖춘 뛰어난 스승으로
4. 불모(佛母)이자 성모(聖母)인 마하마야
Ⅳ. 마야왕비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 회복하기

가톨릭교회의 성스러운 어머니, 나자렛의 마리아
: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와 마야왕비 비교 연구 / 최우혁 미리암
I. 마리아를 향하여

II. 성경 안에서 만나는 마리아
1. 마태오복음
2. 루카복음
3. 요한복음
4. 사도행전

III.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 받는 인간 여성 마리아
1. 동정녀 마리아(Beata Virgine) ― 역사적 예수의 어머니
2. 교회의 원형, 교회의 어머니 ― 처녀이신 어머니(Virgo-Mater)
3. 말씀을 품고 낳은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Mater Dei)

IV. 남성 서사 안의 젠더 역할과 여성성의 모델
1.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Immaculatae Conceptionis)
2. 시온의 딸, 부르심에 응답한 젊은 여성
3. 일상의 고통을 성찰하며 극복한 여성
4. 하늘에 오르신 분(Assumptio): 시공을 초월하여 현존하는 신앙의 동반자

V. 거룩한 생명의 담지자 성모 마리아

부록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 / 성평등불교연대
1. 왜 마하마야 페스티벌인가?
2. 마하마야를 위한 헌시
3.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 개최 현황
4. 마하마야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성평등불교연대’ 소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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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마하마야는 장차 깨달음을 성취할 보디삿따Bodhisatta에 의해 어머니로 선택되어졌다는 점이다. 어머니 마하마야는 청정한 오계를 실천함으로써 어머니로서의 청정한 몸이었고, 깨달음의 진리를 품을 수 있는 정신을 소유했다는 증거이다. 과거 수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완전히 닦은 바라밀들은 ‘정해진 법칙’(dhammatā)에 의해 선택된 불모佛母로서 자질이며 덕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덕성들이 곧 보디삿따를 잉태하는 모태이자, 정등각자로 키워내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하마야는 부처님의 생모生母로서의 덕성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생명을 잉태하는 자의 모범이라 할 것이다. 즉 청정한 계행戒行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절제함으로써 생명들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태동시키고, 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과 타인, 모두를 품는 덕성을 성장시키며, 마침내 진리의 눈을 뜨게 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표상인 것이다.
선일스님 _ <마하마야(MahāMāyā), 그녀는 누구인가? ― 초기 경전을 중심으로> 중에서  접기


지금 붓다의 어머니를 말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뜻밖에도 불교 경전 곳곳에는 붓다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있다. 생모인 마야왕비도, 양모인 마하파자파티도. 특히 마야왕비의 경우, 붓다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불전에서는 그 존재감이 꽤 묵직하다. 오래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되고 싶다고 발원한 이래, 붓다가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윤회를 거듭해왔는데, 그 세세생생에 마야왕비는 그의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야왕비가 보통의 여인일 수는 없다. 그녀 역시 오래전부터 부처의 어머니가 되겠다고 다짐(발원)을 한, 또 한 사람의 구도자이다. 마야왕비가 룸비니동산에서 숫도다나왕의 아들(싯다르타)을 낳은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루어질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마야왕비가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지장보살본원경」(지장경), 「마하마야경」 그리고 「대방광불화엄경」 속의 「입법계품」을 중심으로 마야왕비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하나씩 살펴보겠다.
이미령 _ <대승경전이 들려주는 마야왕비 이야기> 중에서  접기


마야왕비의 꿈은 정신의 구조와 발달의 여러 단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성 중심 시대, 의식 중심 시대는 남성 중심 사회를 이끌었다. 남성적 가치관은 외부 세계 발전을 위하여 큰 공헌을 하게 된다. 문화와 문명의 높은 성공은 이성적 힘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모든 자연의 이치는 음과 양이다. 그 이치를 벗어나는 일은 죽음이다. 남성적 가치관은 여성적 가치관과 함께하지 않으면 정신도, 사회도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루어 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여성적 가치관이 내부 세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정신세계가 가지고 있는 보편타당한 숙명이다.
최명희 _ <심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마야왕비의 꿈> 중에서  접기


붓다의 생모인 마야Māyā왕비에 관한 체계적이고 독립적인 연구는 국내 ? 외 학계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교 문헌 자체만 보더라도 마야왕비에 관한 내용은 대승불교 시대에 생성된 문헌에서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가톨릭교의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 비교하면 불교에서의 마야왕비는 주요한 신앙의 대상도 아니고, 긴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마야왕비는 붓다를 낳은 생모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주요한 인물로 여겨지지 않은 이유는 불교의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굳이 한 특성을 언급하자면 불교의 기본 성격이 인물보다는 법法을 중시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사실상 붓다의 전기도 붓다의 입멸 후 수백 년이 지난 이후에야 나타난다. (중략)
불타전은 마야왕비가 건강하였으며 보살의 탄생이 허물이 아니라는 것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왜 마야왕비가 일찍 목숨을 마쳤는가를 논의하였다. 이를 본 고에선 아홉 가지로 정리하여 살펴보았다. 마야왕비의 죽음은 자칫하면 붓다의 위대성에 오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불타전 작가들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안양규 _ <보살의 탄생과 마야(摩耶, Māyā)왕비의 죽음> 중에서  접기


그렇다면 종교적 위상을 떠나 종교미술에서의 성인의 어머니의 이미지는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위상이 중요한 만큼 다양한 성모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수태고지’, ‘예수의 탄생’, ‘성聖 모자母子’ 그리고 ‘피에타’에 이르기까지 주로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양 끝의 과정마다 성모는 중요한 의미로서 등장하고 있다. 그밖에도 ‘가나의 혼인잔치’라는 예수 기적의 장면 중에 등장하는 경우나 혹은 ‘성모의 장례식’처럼 성모의 죽음 자체를 다룬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등장인물로 그려진다.
이에 비교하자면 마야왕비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태몽을 꾸는 장면’ 그리고 ‘룸비니에서의 출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후 ‘카필라성으로의 귀환’, ‘아시타선인의 예언’ 등도 석가 출산 직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그 이후의 불전 장면에서는 마야왕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일찍 세상을 떠나 도리천에 태어난 마야왕비를 위해 석가모니께서 도리천에 올라 설법하셨다는 설화 속에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정도를 추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마야왕비는 직접적으로 석가모니의 생애에 출생을 제외하고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은 것 같지만, 우선 출생 그 자체에 있어 숫도다나왕과 마야왕비는 그 덕행과 공덕으로 인하여 선택되었다는 점, 석가모니의 회임 이후 지금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훌륭한 태교로 석가모니의 마지막 삶을 준비하는 데 있어 완벽한 역할을 함으로써 드러나지는 않지만 매우 적극적으로 석가의 탄생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마야왕비가 등장하는 불교미술 작품들을 통해서 옛 불교도들이 마야왕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중략)
이처럼 미술 속에 나타난 마야왕비의 행적을 통해 우리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자식에 대한 태도, 불교에 대한 서원 그리고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준다고 하는 점에서 불교사에서 마야왕비의 위상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주수완 _ <인도 미술에 등장하는 마야왕비의 도상학> 중에서  접기


한국 불교계에서 마야왕비의 위상은 지나치게 주변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마야왕비의 존재감과 위상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녀에 대한 역사 기록 역시 여성사나 여신의 역사 전반이 그러하듯 매우 빈약해서 그러한 추정이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마야왕비를 직접 언급하거나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사료들 그리고 같은 불교 문화권이었던 일본의 경우를 보면 그러한 추정이 억지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이다.
(중략)
여신이든 여성 부처든 마야왕비를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일은 특히 현대 여성 불자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불교의 성평등적 재구성이라는 과제와 관련해 그녀의 새로운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마야왕비의 출산의 여신으로서의 측면은 불교의 오래된 여성 몸에 대한 혐오, 섹슈얼리티 기피 문제를 극복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주수완 _ <인도 미술에 등장하는 마야왕비의 도상학> 중에서  접기


조선시대 불교회화에서 표현된 마야왕비는 어떤 모습일까? 또 어떤 여성들이 실재적으로 불화 조성에 적극 참여하였을까? 마야왕비의 상징성은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항상 찾아볼 수 있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팔상도’에서 매우 우아하고 귀족적인 풍모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는 마야왕비는 「석씨원류응화사적」, 「월인석보」 등 여러 문헌들과 사적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마야왕비가 석존의 어머니로서 뿐만이 아닌 그 당시 민중들의 염원과 힘을 규합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로 존경받고, 경배의 대상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승희 _ <조선시대 불교회화로 만나는 마하마야와 여성 신도들> 중에서  접기


불교에서 경전이 집필되기까지는 ‘수백 명의 비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엄격하게 심사해서 불설佛說로 승인하는 ‘결집結集’ 과정을 거친다. 즉 경전이란 비구들에 의해서 경전에 포함될 내용이 선택되고, 기록되고, 암송되어 후대로 전승되는데,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 마야왕비의 이야기가 일부 초기 경전과 대승경전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한적인 자료만 봐도 이처럼 위대한 여성이 또 있을까 감탄할 정도이지만, 그녀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없다.
이웃 종교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탄신일부터 승천일까지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축일을 만들어 경배하고 있는데 비해,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왕비의 위상은 참으로 미약하기 그지없다. 불교인들이 붓다의 탄신일을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김에도 불구하고 왜 마야왕비는 지워지고, 축소되고, 또 잊히고 있을까? 지워진 마야왕비의 이야기를 어떻게 발굴해서 유용한 과거로 재해석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위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 글은 불교사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왜 잊히고 있으며 지워진 여성의 역사를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인지 등에 대해 불교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마야왕비가 단지 꼴리아국의 공주, 숫도다나대왕의 부인, 싯다르타의 어머니라는 종속적인 위치가 아니라, 불모佛母이자 성모聖母인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MahāMāyā로 위상을 정립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불교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는 열등하고 부정적인 여성관을 극복하고, 여성 불자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며, 유용한 여성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완전한 불교 역사가 새로 쓰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옥복연 _ <마야왕비에 대한 불교여성주의적 재해석> 중에서  접기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석가모니 싯다르타에 의해 탄생한 종교가 불교이다. 이 싯다르타를 낳은 분이 뛰어난 여성인 마야왕비이다. 가톨릭교회의 예수그리스도는 마리아라는 성스러운 여성에게서 탄생했으니, 가톨릭이나 불교의 지도자는 여성들에게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마리아나 마야부인은 역사적 존재인 예수와 붓다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도 유사하지만 단지 그들을 낳은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그녀들 스스로의 삶 안에서도 위대함, 혹은 거룩함을 만날 수 있는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다.
(중략)
오늘날 불교에서는 위대한 여성인 마야왕비를 경배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붓다가 도솔천에서 어머니로 선택했던 뛰어난 여성 마야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마야를 우리 시대에 조명하여 위대한 어머니 마야를 통해 자비와 지혜를 배우며, 경전의 왜곡된 여성상을 바로잡고 여성의 자존감을 확대하고자 함이다. 이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마야부인을 이해하고, 그녀를 경배하고 존경하게 됨으로 여성 불자들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길이 될 것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각기 다른 종교를 만날 수 있게 하는 여성적 ? 모성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나자렛의 마리아를 향한 공경의 역사는 역사 안에서 인간 이해의 차원이 성숙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제 그 첫발을 떼는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향한 그리움을 종교적 신앙 안에서 키워나가는데 전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불교에서 찰나적 존재라고 하는 인간임에도 존재의 신비를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을 이해하는데 위대한 어머니 마야는 하늘과 땅의 관계 안에서 신비를 간직한 존재로서 새로운 빛과 지혜를 드러낼 것이다.
최우혁 미리암 _ <가톨릭교회의 성스러운 어머니, 나자렛의 마리아: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와 마야왕비 비교 연구> 중에서  접기


전 지구적으로 여성 인권이 중시되고, 성평등이 국가 정책의 기반이 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이 땅에 마하마야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성모聖母 마야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다수 신도가 여성인 현실에서 마하마야의 위대함을 통해 여성의 자존감을 높이 세우고, 불교사에서 잊혀지거나 축소된 여성의 역사를 다시 발굴해서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생명존중 사상과 평등사상, 비폭력 평화사상을 실천한 마하마야를 현대 불교 여성의 롤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재가 여성의 위대함을 통해 불교 내 성평등 문화를 확산시키며, 남성을 포함하여 여성들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마하마야와 같은 고귀한 품성을 적극 개발하여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성평등불교연대 _ <위대한 여성, 마하마야 페스티벌> 취지문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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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우리는 이성에 기반한 추론과 공감에 기반한 배려를 통해 도덕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배려는 추론에 밀려 오랜 시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고, 그 결과 자신의 이익을 잘 계산하는 사람을 양산해내는 비극과 마주하고 있다. 배려는 모성에서 가장 잘 드러나고, 그 모성의 상징은 주로 그리스도교의 성모 마리아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 책은 붓다의 어머니 마야왕비를 우리 시대와 사회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인식과 실천의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불교 윤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서 우선 반갑고,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 박병기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알라딘: 김신명숙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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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의 선택 - 이프 여성경험총서 2  
김신명숙 (지은이)이프(if)2007-06-26

344쪽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여성학/젠더 > 여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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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의 지은이 김신명숙의 ‘
보통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교감할 수 있는 쉬운 페미니즘 입문서’. 
대화체로 쓰여져 읽기 편안하며, 책 끝에는 본문에 소개한 페미니스트 32명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히 소개해, 페미니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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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알파 걸! 알파 우먼?

1.나 여자 불안하게 떠도는 이방인
‘나 만의 방’은 어디에
너는 네 몸이고 그 몸의 주인은 네가 아니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사적인 여자, 공적인 남자
나는 왜 이렇게 못났나요?
남자의 말, 여자의 침묵

2.사랑 그 축복 속의 함정들
남자의 권력이 섹시하다
자신부터 먼저 사랑하라
사랑은 승인받는 게 아니다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이상적인 관계를!
냉정하게, 두려움 없이

3.성, 외모 하나이지 않은 오르가즘을 찾아서
순결은 없다!
질 오르가즘의 신화
포르노는 음란물이 아니다
성폭력, 섹스와 폭력 사이의 혼돈
낙태,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여성의 몸 안에서 하는 자위
아름다움의 성정치
‘나만의 아름다움’을 믿어라

4.결혼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개를 살까? 결혼을 할까?
결혼식장엔 결혼이 없다
시끄러운 결혼식을 두려워말라
평등하고 행복한 결혼을 위한 혼전계약서
주부혁명을 선포하라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주부, 살리미
가사노동의 정치
고부관계의 민주화
동거, 강한 여자의 선택
이혼, 자유와 고통의 이중주
두 배로 행복한 재혼 만들기

5.직업 '남편'은 잊어라
여자 일/ 남자 일, 차별의 매트릭스
남성 가장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성희롱, 감정노동
'평생의 일'을 생각하라
여성적 가치가 미래의 힘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
여우를 위한 정치

6.엄마 되기 해방된 엄마 행복한 아이
모성, 축복과 부담 사이
노동시간을 줄여라
빼앗긴 모성을 찾아서
처녀가 애 낳은 회사

남자에게
32개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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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만약 미혼모라는 멍에 없이 누구나 원하는 대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미혼부에게도 양육의 책임이 법적으로 부과된다면, 모든 아기가 똑같이 축복받으며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면, 또한 육아가 여성에게만 전담돼 여성들에게 자기 삶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는 사회라면, 중요한 공적 의제 혹은 공적 영역에서 아이를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모든 아이들이 태어난 사회경제적 조건에 상관없이 행복하게 클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님은 아마 지금 행복한 임신부로서 출산일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p127 중에서

여자들이 차별을 극복하고 동등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통념이 깨져야 합니다. ‘남자 애인’ 못지 않게 ‘여자 친구’도 여자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필요하다면 남자들이 정치적 동성애로 결속돼 있듯 ‘정치적 레즈비언’이 돼보는 것도 좋고요.-p259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신명숙 (지은이) 

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신성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신학)Goddess Stdies)분야를 홀로 개척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대학강사. 2013년 국내 최초의 여신학 분야 박사논문을 썼다. 이후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추적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
2018년 5월 출간한 『여신을 찾아서』(판미동)를 통해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순례 등을 한국사회에 소개했다. 과거 강력했던 한국여신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여신이 신앙의 중심에 있었을 때 여성 역시 존중되었고, 성과 계층 모두에서 평등한 사회가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접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여성관음의 탄생>,<여신을 찾아서> … 총 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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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지은이)의 말
알파 걸들의 앞에는 알파 우먼으로 향하는 거침없는 직선코스가 아니라 가부장제라는 오래된 미로가 놓여 있습니다. 여성들은 대개 길잡이도, 지도도 없이 이 미로 속을 헤매다 길을 잃기 십상이지요. 그 제도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면서 님들을 움직이고 있는지 이제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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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언니'가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사소한 물건 하나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선택이 그물처럼 얽혀 개인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어떤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인지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하거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길이 나에게 최선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김신명숙의 선택>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심리치유에세이라고 하면 좋을까? 우리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을 돌아보게 된다. 책은 하나의 문제를 놓고 상황을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혜안을 가져다 줄 것이다.

막 대학원에 입학한 여성의 남자친구는 복학생에다 결혼은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라 낙태는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그 후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할 길 없어 보이는 여성은 살아있는 생명을 자신의 의지로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피임을 제대로 못한, 적극적으로 거절하지 못한 데 대한 상처가 컸다. 남자친구도 미안해 하지만 자신이 겪는 고통의 10분의 1도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약 남자들이 피임에 대해 철저한 공동책임 의식을 갖고 여자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포기할 줄 아는 양식을 가졌다면, 폭력적 섹스가 사라지고 성행위의 주도권을 '임신하는 몸'을 가진 여자들이 가지고 있다면, 공식적 발표만으로도 한 해 34만여 건에 이른다는 낙태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누구도 '순결을 지키지 못해 낙태를 자초했다'는 식으로 당신을 힐난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는 겁니다. 성인인 님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 자유로운 주체니까요. 오히려 시대착오적 순결 이데올로기가 여자들로 하여금 '성 경험이 많은 여자'로 몰릴까봐 철저한 피임 준비나 요구를 못하게 해 원치 않는 임신을 부르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요? - 126쪽

세상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낙태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을 여성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나야 할 아기가 축복은커녕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참혹한 일이 한 해 그토록 많이 일어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엄마와 아이는 물론, 남성에게도 슬픈 일이지만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수술을 받는 당사자일 것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과 그릇된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더 이상 낙태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만들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낳지 않을 아이라면 만들지 않아야 한다. 생명을 두고 실수 어쩌고 하는 일은 정말이지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이 부담스럽고 두렵다?

오래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있고 내년이면 서른이라 결혼 얘기가 구체적으로 오가지만 결혼하기 두려운 여성이 있다. 결혼 후 있을 아이문제, 시가문제, 가사노동 문제 등이 여성에게 훨씬 더 큰 부담으로 던져질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하다는 여성의 고민은 결혼 전 대부분의 여성이 생각하는 일이다.

저자는 평등하고 행복한 결혼을 위해 혼전계약서를 함께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사실 결혼 전에 혼수를 보러 다니느라 분주하게 보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혼전계약서에는 주택 공동명의 등 재산관리나 수입관리에서부터 가사와 육아, 일상생활을 꾸리는 문제, 시가와 처가 관계 문제, 성생활 문제 등 결혼생활에서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부부 간의 합의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혼하게 될 경우 어떤 원칙에 따라 재산이나 아이 문제 등을 정리할 것인지, 또 폭행이나 속이기, 외도 등 불상사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대가를 치르기로 할 것인지 등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 176쪽

저자는 '계약서에 담는 항목이 꼼꼼할수록 남자친구 뿐 아니라 스스로도 어떤 결혼생활을 기대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며, 둘의 입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런 논의들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결혼이 두렵다면 저자는 잠시 결혼을 미루라고 권한다. '시야가 흐릴 때는 굳이 앞으로 나가기보다 눈을 감고 쉬는 편이 낫다'고 남자친구의 재촉에 쫓기지 말고 자신의 느낌과 판단을 존중하라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사랑과 성, 결혼과 직업, 엄마 되기에 걸쳐 많은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고, 마지막 부분에는 본문에 소개된 페미니스트 32명의 생애와 사상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 태어나 차별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복하게 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은 태어났다. 걷잡을 수 없는 불행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척박한 땅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책은 여성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교재로 남성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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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차 2007-07-14 공감(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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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편하지 않은 친구..

정직하게 나는 에세이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서른도 채 못된 사람들의 성공일기를 읽다보면 괜스레 내 낯이 붉어지는 듯 하다. 그래도 김용택의 사람도 좋았고, 빌브라이튼의 재미있는 세상도 괜찮았다. 요는 공명에 있는 거 같다. 나와 같이 눈을 맞추고 다정히 이야기해주는 에세이류는 어떤 소설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여성주의 책은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고, 빈약한 독서경험에 몇몇 소설책들이 더있지만 현경님의 책들과 페미니즘의 도전, 이갈리아의 딸들 정도가 생각난다. 모두 다 꽤나 흥미롭게 읽었고, 페미니즘의 도전은 열권을 사서 주변에 강제로 읽히기도 했으며, 이갈리아의 딸들은 대학때 세미나를 했으니 꽤나 꼼꼼히 여러번 읽었으니 기억이 난다.

자 서설이 길었지만 여기 김신명숙의 선택이 있다. 서평신청을 해서 공짜로 받았는데, 너무 좋았다는 평가를 내어놓을 수 없어 참 내 마음도 아쉽다. 그래서 변병조가 길어졌고, 한편으로 조심스럽다. 처음 두단락을 읽고는 솔직히 그만 읽고 싶었다. 이 책은 이러저러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저자가 대답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대답해주고 있는 이 사랑하는 언니는 내 주변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언니이기 보다는 저 멀리 라디오 DJ 같은 느낌이다.

물론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나를 사랑하고, 나의 인생 설계를 기반으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조직해야 하며, 자매애로 연대해야 한다는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몇몇은 여성주의자가 아니라도 말할 수 있고, 몇몇은 여성주의 시각이기는 하나 저 멀리 뜬 구름을 잡는 듯 하다. 그리고 나머지는 꽤나 익순한 논리들이다. 좀 더 논쟁적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책은 술술 잘 읽히며, 군가산제나 포르노에 대한 글은 꽤나 흥미롭게 읽었고, 마지막에 여성주의자들을 쭉 정리해줘서 여성주의운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점은 참 좋았다.

덜컹이는 전철 안에서, 짧은 토막 독서용으로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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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09-23 공감(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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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입문서

우리나라 작가가 쓴 페미니즘 입문서로 돋보이는 책이다.

 

책의 구성은 여성들이 겪는 일상 문제들에 대해

상담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일상의 문제들을 개인의 것으로 함몰시키지 않고

페미니즘 이론을 쉽게 끌여들여 설명함으로써

나의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닌,

여성 모두가 가부장제의 사회 현실로 인해 겪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여성억압의 역사와 현실과

이를 직시하고 개선하면서 새로운 세상, 전복된 가치체계를 꿈꾸는

페미니즘의 시각에 대해 눈뜨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결코 '이즘'에 끝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라는 걸 직시하게 한 점은

그간 논리적으로 확고하게 무장한 채로 실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작가의 역량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또한 일상에서 겪게되는 여성들의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을 통해 

페미니즘의 주요 논제를 빠짐없이 다루고 있는 점이

무엇보다 훌륭하다.

 

책 말미에는 유명한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의 생애와 저작들을 소개하며

스스로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다. 

 

작가의 열정과 능력이 잘 버무려진 책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건 제목.. 제목을 붙인 이유야 알겠지만 시선을 끄는 맛이 너무 없다.

많은 이들에게 읽히려면....^^

작가의 유명세를 빌리고 싶었겠지만 책 표지에 작가의 사진을 꼭 넣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달리 했다면 책이 지닌 무게에 더 어울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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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스 2007-08-07 공감(1)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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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의 선택 새창으로 보기
사랑하는 언니가....

  여성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주체자로서의 나와 사랑과 성, 외모, 결혼, 직업고민등을 가진 고민  상담자에게 사랑하는 언니의 따뜻한 위로와 힘을 주는 안아줌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어떤 이들에겐 반감이 생기는 책이 될것이고 또 어떤 이들에겐 깊은 공감과 위로와 힘이 생길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반감과 공감의 경계에서 고민스러워 하는 책이 될 성 싶다.

  며칠전 티비 예능오락 프로에서 남자 연예인들이 아내와 다툼.싸움 후에 화해를 청하는 자신의 방법에 대해 말하는것을 본적이 있는데 출연자중 한 사람이 자신은 싸움이 있은 후에 아무렇지 않게 더 일상적으로 아내에게 농담과 우스개를 던지면 스르륵 풀려지더라는 말 을 하는 것이었다. 출연자중 여자 출연자가 없는 이유에서 일까 다른 출연자들 모두 공감하며 자신들의 사례를 쏟아내며 꼭 그 방법이 화를 푸는 적절한 방법인양 말을 하는게 아닌가. 물론 그리 흐지부지 아무일 없듯이 넘어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남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화가 풀어지고 마음이 풀어진것이라고 보여질 지 모르나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과 사과나 이해가 없다면 아내들의 마음 속에 이번에도 차곡 차곡 쌓인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은 얼렁 뚱땅 넘어가졌을지 모르나 내게는 결코 다 풀리지 않았기에 앙금처럼 남아 어느 순간에고 불쑥 튀어나와 다시 나를 분노에 휩싸이게 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말이다.

이런 일례만 보더라도 부부싸움은 그날 밤에 잠자리로 푼다 하는 남자들의 어리석은 생각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것이고, 평등을 비웃으며 다름과 차이는 인정하지 않는 그것들에 화가 남도 사실이다.

 

성차별을 겪지 않고 가정에서도 커왔고 별달리 사회에서도 느끼지 못한다는 여성들 또한 존재하니 오히려 뿌리 깊은 차별과 당연시 속에서 성차별을 당하고도 그것이 차별인지 깨닫지 못하게끔 악습과 인습 속에서 살고 있는것이 아닐까.

어린아들의 바지춤을 내리고 길거리나 식당 어디를 가리지 않고 보란듯이 자랑스럽고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사내아이 소변을 보게 하는 엄마들을 무수히 많이 봐왔는데 그런 행동들이 어릴적 부터 남성 성기에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마초증후군을 무의식 속에 심어주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행동을 시키는것 역시 여성이라는것이기도 하겠다.

대중교통들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다리를 쫘악 벌리고 지나치게 당당한 얼굴로 앉은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자신들은 남자이고 남자이기 때문에 신체 구조상 다리를 벌릴 수 밖에 없다 라는 변명을 하면서, 이건 마치 자기들 다리 사이에 2.5톤짜리가 있는것도 아니면서 무슨 대단 한 것이 있기라도 한듯 무의식 속에서도 타인에게 불쾌와 불편을 안겨준다. 그러고 보자면 여자들은 다리를 모아 앉는 것이 여성다움의 상징이며 여성의 신체 구조 때문이란 말인가. 타인에게 불쾌와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함이며 인간으로서의 예의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여성들도 다리 벌리고 아무렇게나 앉으면 당연히 편하다. 그러지 않는 것은 그것이 예의 이기 때문인것이다.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비난 받는 이유중에 하나는 분명 잘못 된 것임에도 당연시 되어온 많은 것들을 같은 여성들이 외려 나대는 여자 잘난척 하는 여자로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이 좋은게 좋은거지 하는 식으로 포기 하고 재고조차 하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자신을 존중하고 잘못된 일임에도 당연시 되어온 많은 것들에 포기 하지 않으며 극복해가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과연 이것이 비단 여성만을 위한 것이며 잘난척 하는 여자란 비난을 받아야하는 것이란 말인가.

경계가 모호하고 구분이 명확 하지 않으며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고 정답이 없기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폄하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경계들의 언저리를 지나고 있을 뿐 명확하지 않고 정답을 알지 못한다.

 

그런 중에 이 책은 그 경계를 구분지어주지도 명확히 해주지는 못했지만 지쳐 있는 마음이 아픈 여성들에게 위로는 될 수 있을 듯 하다.

힘내라. 당신은 소중하다. 당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가져라. 스스로에 주체성을 가지고 능동적이며 포기 하지 말아라. 변하기 위해 노력해라. 당당해져라.자부심을 가져라. 권리를 알고 주장하라...(등등..)

는 식의 수없이 들어온 말들과 상투적인 권고가 아닐 수 없음에 아쉬움이 남는것도 사실이다.

책의 본문보다도 뒷부분의 32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생애와 업적을 읽는 중의 즐거움이 컸다. 세밀하지 못하다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음에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나도 고치고 너도 고치고 우리다 고치면 좋은 세상 오지 않겠느냐 이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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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2008-09-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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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명숙의 선택 : 언니의 충고과 격려 새창으로 보기
 여성학. 이란 말을 들으면 매우 앞서가는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느낌과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지게 이상을 말하는 지나친 현실주의자라는 양가감정이 든다. 이시대를 살고있는 젊은 세대인  20대의 여성인 내가 느끼는 것도 이러한데 좀 더 나이든 기성세대들은 오죽할까. 솔직히 읽기 전에는 큰 기대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책이 주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식의 명령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세상에 흠없고 한계없는 사람이 없는데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단지 저자라는 이유로 해라조를 쓰는 책은 정말이지 그 내용을 떠나서 꼴불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아주 조심스럽게 제가 여러분의 언니가 될께요. 라는 문장을 읽고 솔직히 좀 어이없었다고나 할까. 표지의 자신감있는 모습이며 제목이 주는 강렬함과는 달리 마치 대화하는 듯 쓰여진 내용들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술술 쉽게 잘 읽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나 또한 나보다 오래살고 나를 이해해주는 언니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진걸까?

 본인은 여자다. 그래서 여자에 대해 많이 알고 이 세상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하다는 그 사실을 잘 느끼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생물학적인 여자이기 이전에 사회에 의해 키워진 여자인지라 내가 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나도 모르게 참고 있었다. 그것이 나는 놀라웠다. 내가 이렇게 무지할 줄이야. 바보같다는 생각과 지금이라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든다.

 사실 현실을 바꾸기란, 특히 한사람의 힘으로 바꾸기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면 변화가 오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정말 세상은 남자에겐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규칙이 되고 진리가 된다. 그렇다면 왜 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는걸까?

 나는 요즘 '섹스 앤더 시티'라는 드라마를 본다. 거기엔 정말 이상적인 싱글 여성들이 4명 나오는데 그녀들은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사랑 앞에서도 당당하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에 들어가게 되면 조금 달라지지만 적어도 큰 틀은 그러하다. 이런 드라마에 여자들이 열광하며, 그리고 현실도 이러길 꿈꾼다. 그럼 현실을 그렇게 바꿀 순 없을까? 난 가장 놀라운 점은 성적인 자유다. 드라마 속 그녀들이 성적인 자유를 누린다면 우리도 누려야 하는거 아닌가. 아니, 성적 물란이 사회를 혼란 시킨다면 이건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것 아닌가. 왜 여자들에게만 순결과 정조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무언가 거대하게 변화를 꿈꾸지는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니 서로 조금 이해를 하고 생각을 바꾸자는 말이다. 누가 누구에게 져주자는 말이 아니다. 니가 누린다면 나도 누려야 한다.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은 마치 상담하는 듯 쓰여져 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할까. 마음을 다친 여성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당신들의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만으로도 나의, 여성으로써의 나를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인정해 주는 글쓴이의 말들은 정말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을 준다. 여성이라면 한 번 쯤은 이런 사람을 원하게 될 때가 있다. 엄마든, 언니든. 더욱이 전문적으로 여성의 권익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라면 더욱 신뢰를 준다.
 나는 사실 그렇게 차별받으면서 커 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모르는 무언의 차별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찾아서 알리는 게 어쩜 글쓴이가 바라는 바인지도 모른다.
- 접기
권선희 2008-10-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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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여성관음의 탄생-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알라딘: 여성관음의 탄생

여성관음의 탄생 - 한국 가부장제와 석굴암 십일면관음   
김신명숙 (지은이)이프북스(IFBOOKS)
2019-11-12

전자책으로 미리 읽기
정가 15,000원
336쪽

알라딘: 여신을 찾아서

알라딘: 여신을 찾아서



책소개

페미니스트이자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저자가 10년간 국내외 다양한 여신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담은 『여신을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김신명숙의 선택』 등의 베스트셀러를 쓰고 기자·방송진행자, 페미니즘 저널 《이프》 편집인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저자는 운명처럼 ‘여신’을 만났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의 크레타 섬 여신순례를 비롯해 제주도·지리산·경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10년간 국내외 다양한 여신문화를 답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모든 생명을 낳아서 품고 길러 온 생명력 자체가 여신이라고 말하며, 가부장제적 역사와 문화 아래 잊혔거나 억압된 여신문화를 새롭게 풀어냈다. 현대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여신’이 오늘날까지도 곳곳에 생생히 남아 있다는 사실, 여성의 내면·삶·공동체 안에서 치유와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내는 페미니즘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독자들의 삶에 심정적 지지와 흔들리지 않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여신을 찾아서   

여는 글| 동굴의 입구에서

1부 크레타에서

1. 삶의 고개를 넘을 때 여신은 손을 내민다
2. 여신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한다
3. 크노소스에는 지배, 차별, 전쟁이 없었다
4. 여신은 산, 물, 나무, 뱀, 새, 벌, 돌… 자연이다
5. 태어나라, 자라라,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
6. 여신은 변신의 신비이자 창조력이다
7. 여신은 위대하고 신성한 어머니다
8. 군대보다 사랑이 더 멋지다
9. 여신은 근원의 고향이다

2부 내 나라 내 땅에서

10. 제주의 여신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
11.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 제주의 뱀 여신
12. 꽃을 피우는 큰 어머니가 되어라
13. 서해바다에 사는 여덟 딸의 어머니
14. 지리산에는 하늘의 여왕이 산다
15. 고인돌에 사는 태초의 어머니
16. 왕권을 보증했던 여신들
17. 신성한 여근: 하늘과 땅의 뿌리
18. 첨성대는 반추상 여신상이다
19. 남산의 춤추는 여신: 상서로운 나선
20. 가야왕실의 시조신: 거북과 암소
21. 그 시절엔 인간세상이 태평했다

다시 여는 글| 여신서클: 여신은 어디에나 있다
후주
참고자료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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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지난 25년간 이끌어 온 크레타 여신순례가 한국에 여신 영성을 소개하는 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습니다. 이 책의 1부는 순례에 참가했던 김신명숙 씨가 쓴 기록입니다.
P. 12~13 모든 사람은 여성의 몸에서 탄생한다. 이 엄연한 사실에 여신의 뿌리가 있다.

여신은 모든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넘어 전체를 감싸며, 뭇 생명과 존재들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남성 또한 여신의 일부다. 아들도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나 그녀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들의 심리를 형성하는 원초적 토대도 어머니다... 더보기
P. 31~32 오늘날 여신이 낯선 수수께끼로 남은 것은 불교와 유교가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결과다. 음사(淫祀)로 몰리고 미신으로 배척당하면서 우리 여신들은 힘을 잃고 달빛 아래로 숨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 곳곳에 낮은 포복으로 살아 있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자신의 고단한 삶을 집 앞의 산 할미, 물 할미, 돌 할미... 더보기
P. 205 늙어서도 행복한 엄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사회에서 대부분 어머니들의 내면은 늙어갈수록 무력해지면서 뒤틀린다. 사랑으로 키워준 어머니의 이런 노년을 대면해야 하는 딸들은 고통스럽다. 자신도 어머니가 된 딸이라면 그 심정은 더 복잡해진다. 늙은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찢기고 다시 만났다가 다시 찢겨나간다. 강... 더보기
P. 442 우선 눈길이 간 것은 첨성대가 우물이라는 인식이었다. 학계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가장 인정받는 견해다. 첨성대 맨 위에는 우물 정(井)자 돌이 2단으로 얹혀 있다. 중간 몸체에도 두 곳에 정자형 장대석이 걸쳐져 있다. 첨성대는 온몸으로 자신이 우물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물은 샘이나 연못과 함께 세계적으로 여신의 성소였... 더보기
P. 556 기적 또한 멀리 있지 않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거실의 화초가 물을 먹고 다시 생생해지는 것, 바로 그것이 기적이다. 해월의 가르침대로 어느 것 하나 신성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일상의 작은 일들 또한 하늘을 모시는 행위다. 가족을 떠난 수행처도 때로 필요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도 성스러운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하찮은 일로 무시당해 온 여성의 일, 그 숱한 보살핌의 행위들, 밥해서 먹이고 씻기고 아플 때 돌보고 텃밭을 가꾸는 일들이 얼마나 신성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왜 이제는 남성들도 그 일을 배워야 하는지를.  접기
추천글
김신명숙의 『여신을 찾아서』는 한국여신 연구에 이정표를 세운 ‘여성사적(Her-Storical)’ 작품이다.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반짝이는 오리지널리티로 가득하다. 지금 대한민국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남성들의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고발운동, ‘Me Too’는 고대 여신들의 힘이 다시 돌아오는 징표로 보인다. 지배와 종속, 폭력에 근거한 가부장적 문명은 보살핌과 돌봄, 자비에 근거한 여신 문명에 의해 치유되고 고쳐져야 한다. 신화적인 차원에서의 남성 신들은 역사적인 현실 속에서 남성지배를 정당화했다. 지고의 진선미가, 최상의 깨달음과 자유와 구원이 남성 신으로만 표현될 때, 여성들은 자기의 가장 깊은 존재에 깃들여 있는 영혼의 힘조차 잃게 된다. 여성들은 완전히 온전해지고, 최고의 자신이 될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여신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신성한 여성성(Divine Feminine)’을 회복하고 가장 자기다운 생명력이 뿜어 나오는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 21세기는 ‘남성적 깨달음(Enlightenment)’이 ‘여성적 현묘함(Endarkenment)’과 한몸이 되면서 분리와 분열을 넘어 통합과 합일의 문명을 열어갈 것이다. 아픔과 고통의 ‘Me Too’가 나도 여신이라는 자기실현, 자기 초월의 ‘Me Too’로 변화될 그날을 꿈꾸며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나는 이 세상에 왜 왔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지 존재의 목적에 목말라하는 모든 분들게 이 책은 ‘영혼의 묘약’이 될 것이다. 여신과의 만남에 모든 답이 있다. - 현경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교수, 세계평화위원회 자문위원)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장을 따라가면서 분명 느낄 수 있었다. 여신은 살아 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샘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었다가 숲이 되기도 하며 장작이 되었다가 불이 되어 나를 따스하게 매만져 준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나의 내면에서 바람처럼 나를 다독이는 여신의 힘,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전해 주는 여신의 힘. 우리가 함께 만나는 순간순간이 서로에게 여신이 된다. ‘일상의 행복’이란 함께 사는 삶에서 우러나온다는 깨달음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여신을 찾아 저 멀리 크레타에서 시작된 여행길이 자연스레 제주를 지나고 서해바다를 헤엄쳐 지리산을 오른다. 아, 나도 떠나고 싶다. 경주 남산의 여신처럼 춤을 추며 ‘삶의 고개’를 넘실대고만 싶다. - 은하선 (섹스 칼럼니스트, 《이기적 섹스》 저자) 
지난 25년간 이끌어 온 크레타 여신순례가 한국에 여신 영성을 소개하는 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습니다. (…) 김신명숙 씨가 얘기하듯, 선사시대 여신의 발견은 학문적 추구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가부장제적 문화와 종교에서 자라난 여성들에게 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의 발견은 심대하게 삶을 변혁시킬 수 있는 일입니다. - 캐롤 크리스트 (여신운동의 대모, 미국 아리아드네 연구소 대표)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8년 5월 19일자 '새로 나왔어요'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8년 5월 18일자 '출판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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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신명숙 (지은이) 

가부장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적 신성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신학)Goddess Stdies)분야를 홀로 개척하고 있는 연구자이자 대학강사. 2013년 국내 최초의 여신학 분야 박사논문을 썼다. 이후 여성적 신성의 관점에서 한국 여성관음의 역사를 추적해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
2018년 5월 출간한 『여신을 찾아서』(판미동)를 통해 여신의 역사, 여신문화, 여신순례 등을 한국사회에 소개했다. 과거 강력했던 한국여신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을 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여신이 신앙의 중심에 있었을 때 여성 역시 존중되었고, 성과 계층 모두에서 평등한 사회가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접기
최근작 : <붓다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여성관음의 탄생>,<여신을 찾아서> … 총 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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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선사시대 여신의 발견은 학문적 추구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가부장제적 문화와 종교에서 자라난 여성들에게 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의 발견은 심대하게 삶을 변혁시킬 수 있는 일입니다.
- 캐롤 크리스트 (여신운동의 대모, 미국 아리아드네 연구소 대표)

아픔과 고통의 ‘Me Too’가 나도 여신이라는 자기실현, 자기 초월의 ‘Me Too’로 변화될 그날을 꿈꾸며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 여신과의 만남에 모든 답이 있다.
- 현경 (살림이스트 라이프코치,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 여성신학 교수)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제주도에서 크레타까지,
모든 생명을 품는 ‘여신’을 찾아 떠난
페미니스트 김신명숙의 여신 문화 답사기

페미니스트이자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저자가 10년간 국내외 다양한 여신을 찾아 나선 이야기를 담은 『여신을 찾아서』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김신명숙의 선택』 등의 베스트셀러를 쓰고 기자·방송진행자, 페미니즘 저널 《이프》 편집인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저자는 운명처럼 ‘여신’을 만났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의 크레타 섬 여신순례를 비롯해 제주도·지리산·경주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10년간 국내외 다양한 여신문화를 답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모든 생명을 낳아서 품고 길러 온 생명력 자체가 여신이라고 말하며, 가부장제적 역사와 문화 아래 잊혔거나 억압된 여신문화를 새롭게 풀어냈다. 현대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지는 ‘여신’이 오늘날까지도 곳곳에 생생히 남아 있다는 사실, 여성의 내면·삶·공동체 안에서 치유와 변화의 힘을 이끌어 내는 페미니즘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독자들의 삶에 심정적 지지와 흔들리지 않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 줄 것이다.


“원초적 생명력, 보살핌과 치유의 힘, 주체적이며 자신을 긍정하는 여성들, 그 안에 여신이 있다.”
신이 여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삶
가부장제가 확립되기 이전의 평등한 사회, 신비롭고 풍요로운 생명력과 자연의 힘을 여신으로 섬겼던 미노아 크레타 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통찰을 준다. 크리스트가 매년 꾸준히 이끌고 있는 크레타 여신순례에 참여한 저자는 웅장한 딕티산의 딕티나, 그리스 본토와 달랐던 크레타 제우스, 미노아 바다의 여신 등을 새롭게 조명하며 고대의 여신신앙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인다. 또한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선악과와 이브의 이야기에서 뱀과 나무와 여성을 신성시했던 여신신앙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크노소스 궁을 여사제가 여신을 모시던 성소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이 여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 단순히 가부장제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길 희구하는 일은 아니다. 중요한 지점은 ‘여신’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현대사회의 억압적·대립적·위계적인 문화를 치유하고 바로잡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제주도는 살아 있는 여신의 섬이며, 첨성대는 신라의 여신상이다.”
최초로 밝히는 한국여신의 놀라운 허스토리
국내 최초로 여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잊혔거나 왜곡된 한국의 여신들을 새롭게 발굴하여 우리에게도 우리의 페미니즘과 여신이 존재해 왔음을 강조한다. 이는 서구에서 시작된 페미니즘과 여신운동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여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여신신앙을 적극적으로 읽어 내려는 작업이다. 가령 저자는 첨성대가 여신상이자 신전이며 금관가야 김수로왕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구지가가 여신신앙과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체의 곡선을 형상화한 첨성대의 가운데 뚫린 입구는 자궁을 뜻하며, 구지가 역시 구지봉 꼭대기에 신성한 성혈(性穴), 즉 자궁을 만들기 위해 흙을 파면서 부른 노래라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까지도 여신신앙이 활발하게 살아 있는 제주도에서 신당을 방문하고, 하늘의 여신인 성모천왕이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도 하고, 서해바다에서 개양할미를 만나기도 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마고할미·바리공주·심청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한국여신에 관한 이야기들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파편화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마고할미, 설문대할망 등이 그 원초적이고 거대한 신성을 되찾아 위대한 여신으로 부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신을 알고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곁에 항상 있었던 여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유한한 인간으로서 느꼈던 존재론적 불안, 여성으로서 또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한계를 ‘여신’을 만나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에도 힐링이 필요하다. 모든 생명을 품은 이 지구와 우주가 여신이며 우리 모두가 여신으로부터 나왔다는 걸 안다면, 우리의 삶은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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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을 찾아서 / 김신명숙 /판미동 새창으로 보기

그들은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p175-

책을 읽기에 앞서 행하는 나만의 의례(?)가 있다. 
아무 페이지나 읽으며 종이 냄새를 맡고 책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다 마주친 문장, 
'그들은 어머니를 죽였습니다.’
별안간 강렬한 감정이 올라와 울고 말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이제야 인정받았어....고맙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정받은 주체는 누구이며, 누구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일까... 

책은 저자가 크레타 여신 순례를 다녀온 1부와, 
한국에서 찾은 여신 이야기가 담긴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사실 나는 2부에 큰 관심이 있었지만
마시멜로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욕구를 지.연.시.키.며 1부부터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다. 

1부는 내가 좋아하는 부도지의 마고성처럼 
평화롭고 조화로운 여신의 나라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들어서 머리로는 알지만 
진짜 정말 어떤 세상일지 상상도 안가는 평화로운 세상,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런 세상이길 바라본다.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자식을 먹어 치우는 아버지, 
장성한 후 아버지의 권력을 탈취하는 아들, 
남신이 지배하게 된 신화의 세계는 
미노아 여신문명과 너무나 다른 권력투쟁의 시대를 증언한다. 
-p128-





크레타 순례에는 동굴이 많이 나온다.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여신의 자궁, 생명의 발현지. 

모든것은  그녀로부터 나오고, 그녀에게로 돌아간다. - 나선춤 , 스타호크. p114-

어둠을 벗어난 밝음에서는 모든 것이 생장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노화 즉 죽음을 향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밝음, 즉 양의 기운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성질이 있다.
뻗어나가며 확장하다 결국은 응축되어 궁극의 음, 
즉 어둠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다시 어둠에 머물며 생명을 기다린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여신의 동굴에 대해 읽으며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우물이 생각났다.
무의식, 변신, 변화 , 부활의 메타포, 우물과 동굴. 

자궁에 다시 들어가는 행위는 그곳에서 변환을 거쳐 재탄생한은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변화은 어둠을 통할 때 가능하니까요.
우리 문화는 흑백논리에 의해 빛과 어둠을 대비시키고 빛만 예찬합니다. 
어둠을 죄악시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요. 
그와 동시에 남자는 빛, 여자는 어둠과 연관돼 있어요. 
하지만 자궁과 땅속이 그러하듯 생명은 어둠 속에서 생겨납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어둡고 찬 흙 속에 있어야 하듯 
치유나 변환, 새로운 삶을 찾는다면 자기의 중심에 어둠을 품어야만 하지요. 
-p136-

우리가 신비의 길을 걸을 때, 
우리가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시작한 여행에 불필요한 모든 것,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다. 
오직 발가벗었을 때 우리는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버림의 상징으로 우리 각자는 어둠 속으로 변환의 자궁으로 돌을 던질 것이다. 
-p141-

죽음은 무가 아니야. 변환의 과정일 뿐이야.
-p149-





나는 가이아, 마고, 설문대할망 등 어머니 여신의 이야기가 좋다 . 
크로노스와 같은 태초의 신,거신족 마고할미.

마고할미는 한국 신화의 근원이자 첫머리다. 
그녀는 태초의 시간에 뿌리를 둔 창조여신으로 그리스 가이아 여신에 비견할 수 있다. 
-p365-


나는 여성의 문제와 미래에 관심이 많고 
여신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에게 젠더가 적용될까? 
젠더를 적용해야할까? 
또다른 의인화와 역할 놀이는 아닐까?
남신의 폭력성과 권력욕이 여신을 처참히 몰락시켰지만 
이제 여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니 남신은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걸까?

그녀는 편을 들지 않아요. 다만 우주의 균형을 유지할 뿐이죠.
-영화 아바타 중에서-

나는 여신이라는 의미가
생명력, 모성애 등의 능력을 포함한 여성성이 설명하는 것이지,  
‘여성'이라는 젠더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석심리학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남성 속의 여성, 여성 속의 남성, 
즉 자신의 성에 반대되는 이성의 속성을 뜻하는 용어다.
누구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지만 
오랜 관습과 사회적 역할 놀이가 이를 억압하고, 
강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저자는 ‘여신'이라는 조화와 평화의 메타포를 통해 
각자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인정하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풀 한포기가, 
나무 한 그루가, 
흙 한줌이, 
저 하늘이, 
이 지구가 
어머니처럼 보듬어 주고 있으니
외로워 말고 씩씩하게,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또하나,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는 마고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20180530, 글월마야 myam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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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월마야 2018-05-3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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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을 찾아서 새창으로 보기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모성원리가 지배했던 그 시절은 대체로 평화롭고 평등했다.




중국에 여와 신화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우리나라의 마고할미도 마찬가지로 여신과 같은 존재라는 건 몰랐어요.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신화와 역사속의 여신의 흔적과 증거를 기록했습니다. 남성이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 여신을 숭배하는 시대는 평화로웠다고 해요. 여신은 모성 존중과 자연에의 사랑을 표현한다고 되어 있어요.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가 단군 이전에 홀로 여신으로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요.
한반도에서 출토된 신석기 여신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옛 동아족 지역에서 불쑥 나타난 우하량의 거대한 여신은 한반도 여신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보라고 속삭인다.p.90

 



 크레타 섬의 미노아 사회와 크로노스 성소에 깃든 여신에 대해서 자세히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크레타 섬으로 제주도를 꼽습니다. 제주 무신도의 특징이 뱀 이미지라는 것까지 크레타 섬과 무척 흡사하다고 해요. 심지어 시집갈 때 뱀신을 모시고 가는 마을도 있었답니다.


제주에도 설문대할망이나 자청비, 가믄장아기 등 많은 여신들이 있다.

더구나 놀랍게도 크레타 섬 여신상과 유사한 무신도도 있다.p.263

 지리산 성모천왕은 고려 개국을 이끈 배후가 되었다고 해요. 호국신이기도 했고 병을 낫게하는 신통력을 가진 존재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지리산 천왕인 성모가 도선을 시켜

왕건의 할아버지 작게건이 제왕의 땅에 터를 잡도록 했다.
지리산 성모는 무엇보다 호국신으로 여겨졌다. p.345 


신라에 대여신 서술성모가 있었고 여왕이 통치권을 갖는 배경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가야에는 정견모주가 있었고 그녀가 대가야의 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의 왕 뇌질청예를 낳았는데,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p.510-511


이 책은 여신 신화에 대한 발자취를 추적하여 크레타 섬을 비롯해 여신과 관련된 유물이나 증거가 있다면 끈질기게 찾아내서 기록으로 남긴걸로 보여요. 여신은 생명탄생, 치유, 자연, 보호 등의 따뜻한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유물, 건축물, 지형 지물도 의미를 갖고요. 남성성과 평화, 공존, 이해를 할 수 있는 여성성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의 내용처럼 여성이 먼저 올바른 기준을 세워 남성과 화합하여 인권 회복을 이끌고 세상을 치유하는 변화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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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파스 2018-10-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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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을 찾아서 

어릴 적 읽었던 신화 이야기에서는 남성 신이 중심이었다. 간혹 헤라와 같은 여신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에도 남성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남아있다. 그래서 첫 문장부터 흥미로웠다.


인류 최초의 신은 여자였다.

작가의 경험을 시작으로 그녀 앞에 나타난 '여신'을 따라 시작된 순례길은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 제주도까지 이어졌고 그 길에서 작가 만큼이나 나도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하늘은 남자, 땅은 여자라는 오랜 유교적 관점에서 살아왔기에 하늘에도 여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모르는 낯선 세상과 그 곳에서 펼쳐질 '신성한 여성'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이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건 여신에 대한 이론과 지식만을 담은게 아니라 저자의 순례길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 순례길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만난 여신 이야기까지 마치 여행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책 곳곳에 소개된 사진은 여신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신은
위대하고 신성한 어머니이다.

저자는 어두운 동굴 순례에서 생명의 순환을 이해하며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현재의 여성을 바라보는 미적 기준을 탈피하여 고대 여신상들을 보며 새로운 아름다움과 여성에 대한 신성함을 깨우쳤다. 또한 특히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와 딸의 애증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솔직한 자기 고백에 나와 대입해보며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우리 모두가 꽃이다.

크레타 순례길에서 신화와 역사를 배웠다면, 우리나라 순례길에서는 자식을 위해 한없이 희생하는 모정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박한 신당 안에 모셔진 수성당 개양할미와 여덟 딸. 전쟁과 왜란 등을 겪으며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는 생명을 바라봐야 했던 지리산 성모천왕. 금기시하는 여성 성에 담긴 성스러움과 풍요의 상징.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 숭배 이야기까지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여행서와 역사서를 동시에 읽으면서 머릿속 저장고가 푸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나눠 싸우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 기준에서는 도통 대립하는 이유가 이해 안되는 일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모성과 어머니로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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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80 2018-05-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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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을 찾아서 새창으로 보기
이 책은 단순히 역사속에서 사라진 여신을 찾아 그 모습들을 조명하는 그런 글은 아니었다. 작가가 크레타 섬과 한국에 있는 여신관련 장소들을 술례하며 보고 듣고 느낀점들을 적은 여행서에 가까웠다.
책 표지에 보면 첨성대를 제외하고는 전부 알 수 없는 모양들이 나오는데 이 모양들이 모두 여신들에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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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상했던 책의 내용과는 많이 상이한 부분이 많았다. 내가 생각 했던 부분은 고고학적으로 잊혀진 여신의 모습들을 찾아내고 재 조명해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순례길을 통하여 여신들을 만났다는 것과 그것에서 얻어지는 환희에 대한 내용이 주였다. 그리고 크레타섬에서는 순례길의 안내를 만났던 가이드와의 영적 교감과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알게되는 여신들에 관한 작가의 감정등을 주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 김신명숙은 현재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여신영성에 입문한 후 '여정'이라는 꽃이름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근데 여신영성은 무엇일까하는 궁굼증이 생겼다. 그래서 열심히 네이버를 찾아봤다. 그런데 모르겠다. 우선 '영성은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이라는 뜻인데 그럼 '여신이 갖고 있는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을 말하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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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기독교의 동정녀 마리아와 그의 어머니인 안나에 대해 것을 설명듣는 부분이 있다.
"안나와 요아킴은 결혼해 부유하고 신실한 삶을 살았으나 자식이 없었다. 낙담한 요아킴은 하느님께 기도하러 광야로 갔다. 그동안 집에 남겨진 안나도 아이를 주신다면 하느님에게 바치겠다며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때 한 천사가 안나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놀라운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렸다. 요아킴도 기도 중 역시 천사의 예고를 듣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안나는 딸을 낳았고, 매우 기뻐하며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마리아가 세 살이 되었을 때, 그들은 그녀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그곳에서 양육되도록 맡겼다." 고 '야고보 원복음서'에 담겨 있다고 한다. 나도 이런 내용은 처음 듣는 것 같다.

"여신은 모든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넘어 전체를 감싸며, 뭇 생명과 존재들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남성 또한 여신의 일부다."라는데 꼭 여신에게 모든 대표성을 부여하여야하는 이런 풀이가 오히려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황소머리와 뿔도 여신상징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얘기를 듣고 보니 자궁-나팔관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여신상징으로 사용되었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다고 한다. 좀더 권위자의 의견이나 관련 문헌등의 예시가 있었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원조격이 크레타 섬의 신화라고 한다. 그래서 제우스와 다른 그리스 신들의 조금은 다른 신화적 이야기들이 나와 있다.

크레타 섬의 얘기보다는 역시 한국 관련된 얘기가 좀 더 편하기는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할망이라는 단어부터, 마고할미, 바리공주, 성모천왕, 삼승할망 등 우리나라의 여신들이 많이 소개되어진다. 그리고 정말 놀랐던 점은 첨성대가 여성의 몸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입구가 없고 가운데 네모난 창구만 있는데 이는 여근에 해당한다고 한다.

소설 "영혼의 새"에서 주인공 클라라는 미국에 입양돼 미국인으로 자란 후 한국에 와서 정체성의 혼란기를 겪지만 놀라운 여행을 통해 신석기 시대 여성조상을 만나고 나서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글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신석기 여신문화를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한다. 솔직히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나에게는 참 어려운 책이었다.
작가는 30대에 페미니스트가 되고, 40대에 여신을 만났고, 50대에 국내 최초로 여신학 박사논문을 썼다고 한다.
아직 나에게는 페니니즘은 어려운 학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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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sunheo 2018-05-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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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도서 추천 여신을 찾아서 새창으로 보기
솔직히 난 이 책을 통해서 여신이라는 존재와 여신 순례단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되었다. 

책 중간에 리츄얼(Ritual)이라며 의식을 치르는 장면들도 나온다......! 
의식은 내가 원하는 내용은 아니기에 뒤에도 몇번이나 나오지만  

글때 마다  후다닥 읽고 걍 넘어갔다. 

크레타에서 크노소스 궁이라고 하여 미노타우로스  
신화로도 유명한 미노스왕을  바로 떠올렸다. 하지만  
1900년에 발굴을 하였을 때 여신상이나 여성들을 묘사한

 유물들이 나왔다는것에 대해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여신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또한 크노소스 궁에서 미노스왕에 있는 이 왕좌는 우리가 

지금껏 봐온 왕좌와는 차이가 분명이 있다. 그래서 일부학자들은 

이 방이 여사제의 방으로 보인다고도 말한다. 터무니 없는 소리같지는 않았다.  

중간중간에 설명하는 내용의 사진을 넣기에 글과 비교해보면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몰랐던 크레타 문명의 유적들도 

되게많이 알게되서  이 점을 정말 많이 좋았다! 



208-209P 에는 수메르 여신 이난나가 신랑 두무지를 기다리면서 

부르는 노래를 보는 순간 낯 뜨겁기는 했지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성 행위와 그때 그 시절의  
성행위는 의미가 다를 것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But 2부에 첨성대가 모성의 상징여신상이자 신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이 부분은 내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제대로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  


-우리 문화는 흑백 논리에 의해 빛과어둠을 대비시키고

 빛만 예찬합니다.어둠을 죄악시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오. 

-기억되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그리고 우리는 기억을 통해

 죽은 사람과도 연결되며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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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2018-05-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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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법학자의 신화 읽기 새창으로 보기
진보 법학자의 신화 읽기 최근들어 신화에 관련된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여신들, 여신을 찾아서, 그리스로마신화 등등... 오늘 또 한 권의 책을 추가한다. 박흥규의 <제우스는 죽었다>이다. 신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책이 필요하다. 하나는 볼핀치의 책처럼 신화 자체를 들려주는 책이다. 다른 한 권은 그 신화가 어떤 의미와 사회학적 맥락에서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즉 해석된 책이다. 제우스는 죽었다는 해석하는 책이다. 여신을 찾아서와 여신들은 동일한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다. 제우스는 죽었다는 신... + 더보기
낭만인생 2018-11-18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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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신화 새창으로 보기
하늘은 남신? 아니 여신이다.영도 할매제주도 할망신은 원래 여신이었다.  조지스 켐벨의 <여신들>을 읽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오늘 김신명숙의 <여신을 찾아서>을 읽는데 역시 재미있다. 결국 여신은 원래의 신이었고, 농업의 신이었다. 가부장적 남성 신들은 전쟁과 살인 폭력을 일삼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신은 다른 것이 하나다. 
낭만인생 2018-10-09 공감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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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야 김부타스와 여신 숭배 운동 새창으로 보기
새로나올책을 보니 한겨레출판에서 마리야 김부타스, [여신의 언어]를 번역 발행한단다. 책소개는 아래와 같다.  여성신화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마리야 김부타스의 역작.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실제 인류 역사의 증거인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신화의 세계를 파헤치며, 그동안 남성적 시각에 갇혀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 신화의 세계를 발굴한다.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500여 컷의 다채로운 유물 사진을 통해 신화의 풍요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이 책은 신화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책장에 꼭 꽂아놔야 하는 책으로 자리 ... + 더보기
anathema 2015-05-21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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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북스 스크랩 2018-05-19 새창으로 보기
#매일경제 #북스 #새책 #신간 #스크랩•아이러니 위에 피어난 `미국인의 삶`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17392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 읽는 `3대 키워드`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17394•언어의 물레를 돌려…`천년의 유산`을 빚는 사람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317385•`억` 소리나는 작품들의 매혹적인 뒷이야기 http://news.mk.c... + 더보기
五車書 2018-05-2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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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김철수
2012.05.11 | 조회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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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일본사회 그리고 종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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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나라, 일본
필자가 일본에 대해 얘기할 때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속은 모른다’는 한국 속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속담에는 자연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는 조심하고 조심하란 경구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일본사회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 것 같다. 자연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화산, 지진. 자연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곧 믿지 못한다. 대신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끼리 믿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자신이 속한 집단 내부 구성원끼리의 믿음이지만.

작년에 일본열도 동북지방에서 큰 쓰나미가 덮쳐 일본 역사에 전무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런데 사람들은 슬픔을 딛고 조용히 사후대처를 해 나가고 있다. 소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메이와쿠 문화’라 칭송도 들으면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일본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를 종교에서 찾고 있다. 필자는 일본종교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왔다. 왜? 일본사회를 이해하는데 종교(문화)는 필수라 보기 때문이다. 종교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발견되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종교가 아닐 것이다. 섬나라인 일본에는 해외로부터 갖가지 종교가 흘러들어왔다. 자생적 종교라 믿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인 신도(神道)도 그 중 하나이다.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신도 등 갖가지 종교문화에서 구성되어진 사고방식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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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가. 일본사회에는 종교도 참 많다. 마치 ‘종교의 전시장’ 같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에게 “당신의 종교는?” 하고 물으면 “무종교”라고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은 세계에서도 예를 찿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종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단지 병존하여 있는 전시장이 아니라, ‘토착적이고 외래적인 종교적, 문화적 전통들이 일본인의 고유한 신앙, 감정, 접근방식에 따라 서로 섞이고 짜인 일종의 직조물’과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신의 나라, 곧 수많은 가미[神, 精靈]로 가득 찬 나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일본인은 종교에 이상스럽게 무관심’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특정 종교를 갖고 있다고 응답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30% 전후에 지나지 않는다. 2005년 8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이 조사한 〈종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고 답한 사람이 75%에 달했고(그러나 ‘신불神佛에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54%였다), ‘종교를 믿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23%였다. 곧 ‘종교를 가진 인구’는 1979년 조사에서 34%였던 것과 비교하면 11% 감소한 것이다. 이는 근 30년 간 거의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의 91%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50% 이상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라고 응답하는 비율과 비교해 본다면, 일본인의 종교 귀속의식은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세적이며, 풍부한 종교적 생활
그러면 도대체 일본인의 종교관은 어떤 것일까?
일본사회에는 신도, 불교, 기독교, 신종교 등 각종 계통의 종교단체가 400개를 넘고, 그 활동도 사회 전체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여러 면에서 ‘종교적’인 심성과 행위를 보여준다. 경제나 정치,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종교를 제외해버리면 그 의미(meaning)가 상실되어 버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면 유명한 신사를 찾아 참배한다. 불교의 성지인 고야산(高野山) 등에서 특정 기업의 번영을 기원하는 기업공양탑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가정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장상이나 불단, 신단(神棚, 가미다나)들, 그리고 각종 종교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출생, 결혼, 장례식 등 각종 통과의례들.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사회에서 공양(供養)의 확대현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선조나 죽은 자에 대한 공양, 그리고 유산, 중절, 사산된 태아[水子みずご, 미즈고]에 대한 수자공양(竪子供養). 그러한 공양시설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전국유산아(流産兒) 무연(無緣) 공양탑(生長의 家에서 1961년 건립), 오사카에 세워진 73미터나 되는 수자공양탑[辯天宗冥應寺] 등은 모두 낙태아의 위패를 제사하고, 지장(地藏)을 만들어 제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쿄에는 페트(애완동물)공양탑도 있고, ‘00家愛犬之墓’라 적힌 납골당도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는 인형공양도 있으며, 최근 못쓰게 되어버린, 곧 생명력이 다한 게임기 공양도 있다.

14110_p132_07현대사회는 합리화 및 효율화를 지향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특히 보이지 않는 음(陰)적인 세계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신세계를 찾고 있다. 이러한 마음의 갈망이나 불안감을 종교는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종교를 일러 ‘위협산업’이란 말까지 들릴 정도이다. 종교가 인간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여러 지역에 동물묘지[動物靈園]가 설립되어 번성하기까지 하고, 심지어 인형, 게임기의 생명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小)가족화 된 오늘날 개나 고양이 등이 자녀 형제와 똑같이 가족의 일원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그 대행 역할을 종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종교의 특이성에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특정 종교에 귀속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종교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에도(江戶)시대(17~19세기 중반)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 신사(神社)에 가서 신에게 출생을 알리고, 일상생활은 유교윤리에 따르다가, 죽었을 때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대개 남자아이는 출생 후 31일째, 여자아이는 33일째, 그리고 ‘7-5-3’이라 하여 남자아이는 3, 5살, 여자아이는 3, 7살 되는 해 11월 15일 신사참배를 한다.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씨신(氏神, 우지가미: 지역공동체가 숭배하는 신)에 대한 출생신고로 씨자(氏子, 우지코: 지역공동체의 신을 모시는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을 인정받기 위함이다. 신에게 아이의 성장을 보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으며, 지역공동체로서는 공동체의 일원을 맞아들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유교적 일상생활이 근대 서구적 양식으로 바뀌어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루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 첫날의 인사(初詣, 하츠모우데)는 신사에서, 결혼식은 교회에서, 장례식은 절에서 올리는 모습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다중신앙은 일본인에게 종교란 현세를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준다. 일본인에게 진리란 현실 그 자체이며, 현실을 넘어선 이념이나 법칙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절대라든가 보편이라든가 불변성 혹은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 모두가 그대로 진리일 뿐이며,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일본인의 사유방식은 이 세상에 완전히 절대적인 것은 없고 가미(神)조차 오류를 범한다. 진리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문화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흰 것과 검은 것을 분명히 하려 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싸울 때에도 양쪽 모두 이기고 졌다는 식의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이 곧 일본인이 고대로부터 형성하여온 ‘화’(和)의 관념과 통해 있다. 오갈 데 없는 섬나라에서 평화는 상이한 것들의 공존, 그것을 허용하는 관용성이 가장 현실적인 화(和)라고 보는 것이다.


신불습합(神仏習合)으로 이뤄진 신관
이런 화(和)의 정신이 종교에도 스며든 것인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부터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전까지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이었다. 신도와 불교가 나눠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불교사원(寺院) 내에 신사의 토리이(鳥居)가 있고, 하지만 대보살(八幡大菩薩), 신사의 신을 불(仏, 호토케)이라 부르는 사례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 근대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는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적절하게 지적하였다. 곧 일본은 고래로부터 ‘팔백만 신’을 숭배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석가도 예수도 일본에 오면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취급되어 버린다. 동시에 일본인은 해외의 사상을 변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바꿔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려 보라. 여기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 썩음의 신, 강의 신….

유바바 : “여기는 말이야, 인간이 올 곳이 아니야. 8백만의 신령님들이 지친 몸을 달래러 오는 목욕탕이란 말이다.”

일본에서 신을 ‘가미’(カミ)라 한다. ‘가미’는 선악, 귀천, 강약, 대소 그리고 초인적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든 위력 있는 존재를 뜻한다. 우주 삼라만상 가운데 위력을 발현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가미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실제로는 1천이 좀 넘는 신들이 보이고, 『고사기』에도 300개 이상의 신이 등장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의이다.

“가미는 우선 옛 기록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신이며, 또한 그 신들을 숭배하는 장소인 사원에 거주하는 정령들이다. 거기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 조차 없다. 그리고 조류, 짐승, 수목, 초목, 바다 같은 것도 포함된다. 옛날 관례로는 비일상적인 것, 초월적인 덕목을 지닌 것,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을 막론하고 ‘가미’라고 불렀다.”

‘팔백만 신’에서 알 수 있듯, 일본에 신의 수는 무수히 많다. ‘가미’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 다수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것은 천체, 산, 들, 강, 바다, 바람, 비 등 지수풍토 등을 비롯하여 새, 짐승, 벌레, 수목, 풀, 금속, 돌 등 자연현상이나 자연물에 붙여진 가미의 명칭이다. 위인, 영웅, 귀족 등이 가미로 여겨지기도 했다. 근세 말기에는 인간 자체를 가미로 모시는 이키가미(生き神) 관념까지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없어졌고, 신을 절대적 존재로 보지 않는 종교의 세속화와 세속의 종교화 토양이 조성되기도 했다.

일본인은 고대로부터 신과 부처들을 여러 가지로 짜 맞추면서 모셔왔다.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독점적으로 믿는 태도는 발달되지 않았다. 구미에서는 기독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일본인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 집안에 불단과 신단이 동시에 모셔져 있다. 출생해서는 신사에 가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기를 바라며, 죽어서는 불교식 장례식을 거치는 것이 보통 일본인의 삶이다.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행동을 볼 수 있다. 종교적 혼합이나 절충현상이 심하다. 정월에 신사를 참배하고, 춘분 추분을 중심으로 한 7일간이나 백중맞이(盆:봉. 8월 15일 조상을 제사하는 불사)에는 사찰, 크리스마스에는 교회, 때로는 신종교의 레크리에이션에 참가한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모순을 느끼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많으면서도 또 대다수는 ‘종교심은 중요하다’고 답한다. ‘무종교이지만 종교심은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가 생활 속에 파고들어 습관화되어 버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무종교라는 의미는 교단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파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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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역사연구가이자 작가인 이자와 모토히코(井沢元彦)는 일본인의 무의식에는 강렬한 원령(怨霊)신앙과, 원령을 발생시키지 않는 ‘화’(和)의 신앙이 있고, 신도는 그 위에 성립했다고 지적하였다. 불교도 결국은 원령을 진혼(鎮魂)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었으며, 일본인의 독특한 ‘언령’(言霊, 우리가 내뱉는 말속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말을 삼가야 된다는 믿음)신앙도 일본인이 무의식 내에 ‘화’(和)를 이루려는 사고구조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원령 신앙을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모노노케’(もののけ)는 사람을 괴롭히는 사령(死靈), 원령이다. 무차별한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는 숲의 원한이 낳은 재앙의 신 다타리 신의 저주, 그 저주를 풀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은 일본 원령신앙의 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사회의 종교현황
14110_p132_04그러면 교단종교를 중심으로 일본사회의 종교현황을 살펴보자.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종교 신자수는 신도계가 약 1억 580만명, 불교계가 약 8,900만명, 기독교계가 약 200만명, 그 외 약 900만명으로 합계 2억 600만명이 된다. 일본의 총인구가 1억 2천명 정도이므로 2배 정도의 신자수가 되는 것이다. 신도계와 불교계만으로도 거의 2억명이 된다. 이는 조사가 설문조사로 행해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단체의 신자수를 많게 신고하는 경향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에서는 신도, 불교의 신자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오랫동안 신불습합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메이지 초기에 신불분리(神仏分離)가 이루어진 후에도 신도와 불교 사이의 구별이 애매한 면이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신단[神棚]을 모신 가정에 불단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인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인 가정이 많다. 이처럼 신도를 신앙하는 자와 불교에 귀의하고 있는 자를 포함하면 2억명을 넘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리 생각하면, 신도와 불교 2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토착신앙이 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신도와 불교는 하나의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
신도는 크게 나눠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사신도(神社神道), 막말(幕末) 이래 형성된 교파신도(敎派神道) 및 종교단체를 결성하지 않고 가정 및 개인이 운영하는 민속신도(民俗神道)가 있다.

14110_p132_05신사신도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없고(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명확한 교의가 있다), 엄밀한 입신(入信) 규정도 없다. 씨자(氏子)로 들어가는 것이 이에 가깝지만, 신단[神棚]을 설치하거나 신사에 기부 및 제사(祭事)에 참여하는 경우를 신자로 보는 경우도 많다. 현재 종교법인이 된 신사는 약 8만개이며, 또 종교법인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숭경(崇敬)을 받고 있는 신사도 다수 있다. 이러한 신사에서 받들어지는 제신(祭神)은 흔히 팔백만 신이라 불리는 것처럼 실로 다양하며, 또 제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신사 중에는 신궁, 대사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신사들도 있으며, 이 중 신궁은 일본왕실과 관련된 신사이거나 역대 일본왕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교파신도계의 교단들은 신도의 종교전통 내에서 특정 조직자 창교자의 종교체험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신자가 형성되는 조직종교이다. 때문에 신종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흑주교(黑住敎), 출운대사교(出雲大社敎), 부상교(扶桑敎), 어악교(御嶽敎), 신리교(神理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이다.

불교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 대승(大乗)불교이다. 불교는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다.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 나라(奈良)시대(710~794)에는 ‘남도육종’(南都六宗)이라 하여 삼론종(三論宗), 성실종(成実宗), 법상종(法相宗), 구사종(倶舎宗), 율종(律宗), 화엄종(華厳宗) 등이 널리 퍼졌다. 가마쿠라(鎌倉)시대(1185~1333) 초기까지 일본불교는 8종이었다. 남도육종에 천태종, 진언종이 더해졌다. 그러나 가마쿠라 시대에 정착한 불교문화를 배경으로 호넨(法然)의 정토종, 신란(親鸞)의 정토진종, 일련(日蓮)의 일련종 등 일본인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불교가 형성되었다. 또 이 시기에 중국으로부터 임제종과 조동종도 전해졌다.
2차대전 이전에 종교단체법이 성립될 때 28종파로 정리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종교법인령이 성립되고 정부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수의 불교 교단이 분파 독립되어 2007년 말 현재 154개의 불교종파가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기독교의 일본 전도는 1549년 로마 가톨릭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 Xavier)가 일본에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7세기 초두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기독교를 금지하였고, 도쿠가와(德川) 막부도 철저하게 탄압을 하여 기독교도는 이후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 일본에 기독교의 본격적인 재포교가 준비된 것은 막말 경(19세기 초 중반)이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의 개국을 요구하면서 선교사들도 일본열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독교 신도수는 현재 세례를 기준으로 하여 공식적으로 전인구의 0.8%이다. 사비에르가 일본열도에 최초로 포교했던 직후의 시기에도 1%를 넘었었다. 현재 신자수가 1%를 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일본의 기독교 관계자는 이를 ‘1%의 벽’이라 부르고 있다. 이 비율은 구미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낮다. 또 한국 등 아시아 전체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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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자수가 적다고 해서 기독교가 일본의 문화, 사회에 점하고 있는 위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 기독교의 위상은 그 공식적인 신자수를 능가하는 위치에 있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불교에 이어 제2위의 종교이며, 기독교를 제외하고 일본의 종교를 말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기독교는 일본사회에서 문화적 사회적인 활동을 활발히 함으로써 일본 근대화의 추진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왔던 것이다. 다만 일본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명확한 입신(入信) 의례를 거쳐 종교조직의 회원이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점 등 때문에 공식적 신자수가 적게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교파별로 나누어 보면, 신자수가 제일 많은 교파는 가톨릭(구교)이다. 가톨릭의 총수는 45만명 정도로 일본 총인구의 0.3%이다. 프로테스탄트(신교)의 최대교파는 일본기독교단이다. 또 프로테스탄트 중에서 복음파라 불리는 교파는 구미권의 기독교에 비해서도 성서신앙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또 특정 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성서만을 보는 ‘무교회 운동’(지도자는 内村鑑三, 우찌무라 간산이 유명하다)도 있다. 그리스정교(일본정교회)의 신도수는 일본에서 1만명 전후로 추정되며, 또 여호와의 증인도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다.

신종교, 일본사회의 종교 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1991년), ‘행복의 과학’이 돌연 일본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를 주도한 자는 일본인들의 동경하는 도쿄대학의 법학부 출신이었고, 그가 쓴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도쿄돔에서는 그의 탄생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성황리에 치러져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행복의 과학’은 신종교였다. 소위 신종교가 종종 쓰는 수법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포교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1990년대는 세기말적 흐름이 일본사회를 지배하면서 제4차 종교 붐이 일어난 시기였다. 일본사회에서 이러한 종교 붐 현상은 몇 차례 있었다. 제1차가 막말유신기, 제2차는 2차 대전 패전 직후, 제3차가 1970년대였고, 바로 제4차가 1990년대였던 것이다.

19세기 막말유신기, “에에쟈나이까”
19세기 일본사회에는 역사적인 거센 조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부터 러시아와 영국 군함들이 통상을 요구하며 다가왔으나 막부는 쇄국을 고집해 문을 열지 않았다. 백성들의 생활은 불안했다. 1853년에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黑船] 네 척을 이끌고 와 개항을 요구했다. 아니 위협했다. 결국 막부는 미국의 강화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일미화친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일본의 문을 개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민중들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민중들 사이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심리에서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참배하는 것이 대유행하였다. 이를 ‘오카게마이리’(お陰參り)라 한다. 이세신궁에 모신 신의 음덕을 바라는 참궁(參宮)이었다. 1830년의 오카게마이리는 약 500만명의 인파가 들끊었다. 오사카에서 이세(伊勢)에 이르는 길가에는 참궁을 위한 인파가 혼잡하였고, 그 사람들은 아마테라스 오오미가미(天照大神)의 신위(神威)를 받들어 미친 듯 “에에쟈나이까(いいじゃないか)”로 쓴다. 곧 “(세상바꿈이)좋지 아니한가”를 노래하고 춤추며 이세신궁으로 향했다. 이러한 참배물결의 큰 파도가 지나가면서, 봉건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1867년 막부는 정권을 천황에게 반납[大政奉還]했고, 조정은 천황정치의 부활을 정식 공포했다[왕정복고]. 이듬해 천황은 수도를 쿄토에서 도쿄로 옮기고 여러 가지 개혁을 단행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1868)이다. 이에 따라 신정부는 1869년에 다이묘(大名)들의 영지와 영내 백성들을 천황에게 반납하게 하고[版籍奉還], 1871년에는 종래의 번을 폐지하고 대신 전국을 현으로 나누어 중앙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했다[廢藩置縣]. 또한 메이지정부는 신사신도를 ‘국가의 종사(宗祠)’로 불교, 기독교와 달리 취급하여, 이세신궁을 정점으로 한 국가신도 체제를 확립하였다.
그래서 신사는 국가가 제사 및 보호 유지해야만 하는 시설이 되었다. 이러한 막말유신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흑주교(1814), 천리교(1838), 그리고 금광교(1859) 등 많은 신종교들이 출현하였다.

20세기 세 번의 종교 붐, ‘신들의 러시아워’
20세기에는 1945년, 일본의 패망 직후와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그리고 1990년대 세기말적 분위기에서 세 번의 종교 붐 현상이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직후 일본사회에서 국가신도가 폐지되었다. 천황 스스로가 신격(神格)을 부정(인간선언)하였고, 정교분리와 신교자유를 보장하는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일본종교사에 미증유의 변동이 일어난 시기였다. 히도노미찌, 대본, 혼미찌, 창가교육학회(1946년에 창가학회로 개칭) 등이 조직을 재건하여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동안 국가신도에 종속되었던 천리교와 금광교도 재출발하고 있었다. 또 생장(生長)의 가(家), 대일본관음교단(오늘날 세계구세교), 지우(璽宇, 1945), ‘무아(無我)의 춤’으로 인해 ‘춤추는 종교’로 일약 유명한 천조황대신궁교 등이 재건 재발족 개교되었다. 이처럼 전후부흥기는 여러 신종교들이 난립 경쟁 발전한 소위 ‘신들의 러시아워’ 시기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는 대체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낮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수출호조에 힘입어 일본 국내에서 풍요의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 시작된 신비 주술 붐은 소위 ‘신신종교’ 및 ‘작은 교단’의 유행현상으로 나타났다.

이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화가에는 ‘파친코점보다 그 수가 많다’라고 언급될 정도로 소교단이 배출되고 얼마 안돼 신신종교로 불리워질 정도로 대교단으로 급성장하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의 4번째 종교 붐은 세기말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세기말 때마다 찾아오는 종말론 이야기, 특히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예언 등은 서두에 보았듯이 행복의 과학 등과 같은 신종교들을 탄생시켜 주고 있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종교단체로 등록된 신종교 교단수만 보더라도 300여개가 넘고 있고, 신자수도 대략 인구의 1~2할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종교 교단들은 각종 교육기관 및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출판 문화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인 창가학회의 정계진출은 일본사회를 놀라게 하였고, 이 이외에도 PL, 영우회(靈友會), 입정교성회(立正校成會), 생장의 가 등의 신종교 단체가 정치와 끊임없이 관련을 맺어왔다. 또한 이러한 신종교 교단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식의 종교관
일전에 이름있는 한국의 기독교계 인사가 일본사회는 격조가 낮은 여러 잡신들을 모시기 때문에 벌을 받아 자연재해가 휩쓴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일본사회, 아니 일본의 종교문화를 잘 모르고 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종종 ‘풀 한포기, 나무 한 조각, 심지어 우리가 내뱉는 말[言] 한 마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식조사에서 ‘믿는 종교(교단)는 없으나 신불(神佛)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일본인이 응답이 다수라는 결과도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현대 일본인의 대다수는 실제로 종교의례에 참가하면서도 특정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하고, 스스로는 ‘무종교’(無宗教)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신 및 불(仏)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믿고 있지만 특정의 교단종교에 귀속하고 있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종교관과 일본사회의 종교 실태를 보고 있노라면, 필자는 차라리 ‘일본교’(日本敎)라 부르고 싶을 때가 많다. 일본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신앙, 팔백만신, 일상생활을 신도 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들, 어떤 종교가 들어와도 수용하고 녹여내는 습합(習合)신앙 등은 ‘일본교’라는 명칭을 무색치 않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인은 무종교라기보다 일본교라는 종교의 신도’ 라고 주장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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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불교평론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 / 이홍구

불교평론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 / 이홍구
특집 | 현대 한국불교 10대 논쟁
[62호] 2015년 06월 01일 (월) 이홍구  dagamsa27@hanmail.net
1. 머리말

   
이홍구
동국대 강의교수

현대 한국불교에서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에 대해서는 시기별로 크게 3시기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제1기에 해당하는 박경준의 논쟁은 대승불교 흥기 배경과 인도와 중국, 근대 일본의 대승(大乘) 불설·비불설론 논쟁의 대두와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인 연구 논문과 저술이 거의 없음을 지적하고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대승경전관의 정립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제2기의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흐름은 김용표가 〈법보신문〉 647호에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라는 특별기고를 투고하면서 촉발되었다. 제2기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주요 쟁점은 대승불교의 다불다보살 신앙에 대한 논쟁, 대승불교의 기복신앙, 대승 위경설에 대한 관점 차이, 대승경전의 저자 문제, 한국불교의 정체성 등이었다. 제2기 논쟁에서 홍사성, 마성 스님, 조준호, 전재성 등은 초기불교적 관점에서 주로 접근하고 있으며 김용표, 진현종, 김성철, 주명철 등은 대승불교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나름대로 대승불교와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논쟁의 주제가 너무나 큰 담론이고 논쟁의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의 부재와 논쟁의 장이 교계 주간지라는 제약적인 한계로 더 큰 성과를 도출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셋째, 제3기의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은 권오민이 〈법보신문〉 1008호에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탓”이라는 특별기고를 투고하면서 촉발되었다. 대·소승의 공통된 불설 기준에 대한 그의 주장은 전통이나 권위에 의지하지 말고 법성[진실]에 의지할 것을 전제로,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불설 논쟁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제3기 권오민이 촉발한 대승불교 정체성 논쟁의 주요 쟁점은 정법 기준에 대한 논쟁, 불설·비불설에 대한 관점 논쟁, 제 부파불교의 불설·비불설 논쟁, 대·소승 간의 불설·비불설 문제,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논쟁 등이었다.

권오민이 아함과 니까야는 부파에 의해 찬집(纂集)된 불설로서, 상좌부에서 편찬 전승한 경전이라는 주장에 대해 친설론을 가지고 반대하는 마성, 전재성, 황순일 등과 앞의 관점과는 별개의 입장에서 논평하는 조성택, 조인숙, 안성두, 이영철 등의 의미 있는 글들이 있었다. 이 논쟁과 논평은 불교학계에서 보기 드문 이변의 논쟁이었으며, 학자의 범위를 넘어 불교 일반에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권오민의 불설·비불설에 대한 논문의 본래 여러 주제와는 상관없이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친설·비친설론으로 변질되어 종파적 입장에서 다루어진 것은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1기부터 3기까지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이 결국은 21세기의 새로운 교판으로서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역할을 위해 필요한 접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주제, 범위, 방법 등에 많은 구체적 접근이 결여된 것이 아쉽다. 즉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의 핵심은 첫째, 불설·비불설 논쟁에서 경전은 특수한 사상 성향을 지닌 그룹에 의해 각기 별도로 편찬 집성되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둘째, 불교권 내적인 문제 제기로 교학과 신행의 체계성과 조직성의 결여를 해결해야 한다. 셋째, 불교권 외적인 문제 제기로 현대사회의 다기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에 대해 불교 신행의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근대불교학의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

1)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우월적 가치

고래로 불교의 제 경론을 그 뜻이 불완전한 것[不了義]과 완전한 것[了義], 은밀한 것[密義]과 분명한 것[顯了], 나아가 방편설(方便說)과 구경설(究竟說) 등으로 분별하게 되었고 급기야 후자로 해석된 경전에 근거하여 불교교파나 종파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불교경전은 특수한 사상 성향을 지닌 그룹에 의해 각기 별도로 편찬 집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불교사상사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이러한 불설·비불설의 문제의 흐름에 대해 김호성은 반복사관(反復史觀), 퇴보사관(退步史觀), 발달사관(發達史觀)으로 분류한다.

즉 퇴보사관은 초기불교의 우위적 관점에서 대승불교를 바라보는 것이고, 발달사관은 대승불교의 우위적 관점에서 초기불교를 바라보는 것이고, 반복사관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동등한 선상에 놓고 이해하는 것이다.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종파적 견해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마성 스님은 초기불교 지상주의자는 아니지만 퇴보사관적 관점에서 “불교의 정통성과 기준은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이다.”라고 한다. 또한 그는 “현재의 한국불교 현상들은 오히려 대승불교의 본질 혹은 정신을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붓다의 원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마성 스님의 이와 같은 관점에 대해 김성철은 발달사관적 입장에서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라고 한다.

이러한 퇴보사관이나 발달사관과는 달리 권오민은 “대·소승 경전 또한 모두 불설을 담고 있는 불교의 경전으로서, 같은 위상을 갖게 된다”고 하면서 문헌적 사료와 경전 형성의 역사적 한계를 근거로 삼아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권오민의 이러한 주장은 반복사관적 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3가지 다른 관점에 대해 제1기부터 제3기까지의 학문적 접근방법을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 경전해석학적 접근, 양 접근으로 구분하기가 애매한 경우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이란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 그리고 신앙의 문제를 다루는 근대불교학적 관점으로 합리주의(rationalism) 사상과 실증적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다.

2)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

대승경이 비불설이라면 아함과 니까야 또한 비불설이라고 하는 권오민의 주장에 대해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은 후대의 대승불교도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불설로 가탁한 것이라 보면서, 아함이나 니까야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친설임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권오민은 마성 스님의 비평을 학문보다 상식에 기댄 것이라 비판하면서 아함과 니까야에 대해 “초기경전인가, 유부 혹은 상좌부 경전인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상좌부에 대한 정통성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마성 스님의 주장에 대해 상좌부가 전승한 니까야만이 불설이고 정법이며 정통불교라는 맹목의 폐쇄적 신념은 사대주의라고 논평했다.

전재성은 아함이나 니까야도 부처님의 친설이 아니고 설일체유부나 상좌부에서 취사선택 편찬·결집된 것이라는 권오민의 주장에 대해 고고학·문헌학적 입증 사실을 토대로 아함과 니까야는 창작 아닌 리얼리티 자료로서 역사적 부처님의 친설이 담긴 고층의 경전이라고 논박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권오민은 전재성의 논리 근거인 고고학·문헌학적 입증 사실에 문제를 제기하며, 불설/비불설(혹은 친설/비친설)과 고층/신층의 문제를 서로 개입시키는 것은 전혀 엉뚱하다고 보았다. 뒤이어 황순일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친설이라는 잣대를 통해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를 놓고, 초기경전이 고타마 붓다의 말씀을 가감 없이 기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구전이라는 부파불교의 경전 전승의 전통으로 볼 때 어느 정도 붓다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권오민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렵지만 양 경전은 편찬 시기(BC.1~AD.5)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하였다. 또한 부파불교의 경전 전승 전통에서 왜 전문 암송 집단이 필요하였고, 부파마다 그러한 집단이 존재한 까닭은 무엇이며, 그들에 의한 의도적 개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다양성의 시대에 법성의 획일적 사유, 교조적 획일화, 믿음의 한계 등에 대해 지적하며 현대의 새로운 불교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3) 다신적 신앙과 기복설 문제

〈법보신문〉 648호에서 홍사성은 김용표를 세 가지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대승의 다신적 신앙은 불설과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은 다양한 시각의 통찰이 필요하다는 김용표의 주장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둘째는 대승불교가 깨달은 사람의 말을 불설로 인정하는 경전관을 반대하는 관점이다. 셋째는 모든 종교 현상은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승 시대에 제시된 관음·정토·지장·미륵신앙을 정법주의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대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뒤이어 〈법보신문〉 649호에서 진현종은 부처님 친설 고집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초기불교의 이성-합리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마성 스님은 역사적 붓다를 외면하면 외도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대승불교의 포용과 관용성 때문에 순수불교가 갈수록 희석되고 있다고 하였다. 심지어 그는 한국불교는 타락한 대승불교라고 지적하면서, 한국불교에 대해 ‘대승 옷 입은 힌두교’라고까지 신랄하게 지적했다.

김성철은 홍사성과 마성 스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기복-다불 사상도 엄연한 불교이고, 초기불교의 논리가 대승으로 귀결되었으며, 대기설법 정신이 새 사상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 보았다. 조준호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 대승이 아니며, 기복을 대승이라고 보는 김성철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초기불교는 초기불교로서 대승불교는 대승불교로서 각각 ‘불교의 귀결’이라고 보고, 기복을 죄악시하지는 않지만 다만 기복에서 작복으로 지향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전재성은 대승경전이 무상, 고, 무아의 니까야 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므로 대승경전은 초기불교 정신을 계승한다고 보면서 대승을 비불교로 보는 것은 역사·사상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주명철은 대승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석존 정신에 충실한 재해석이라고 전제하고 대승유신론의 폄하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대승의 여래 또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김호성은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과거7불’의 존재를 소개하고, 이러한 ‘과거7불’ 사상은 고타마 붓다라는 일불(一佛)에서만 불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의 본의가 아님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3. 현대불교학의 경전해석학적 접근

1) 불설론과 정법의 기준에 대한 논쟁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의 친설론을 부정하고, 상좌부 아가마와 니까야만이 친설이자 정법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대승경전의 정통성과 정법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승경전이 붓다의 가르침에 합치하느냐 합치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두 가지 전개 방향을 설명한다. 하나는 불설의 기준과 해석에 의해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논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파교단이 전승한 니까야와 아가마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하였다.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는 앞에서 설명했고,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증명하는 사의(四依)와 사대교법(四大敎法)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에 반해 현대학자들의 경전해석학에서 불교란 붓다의 가르침에서 발로하였지만, 그 가르침을 각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고 실천해 온 노력의 역사적 총체로 보는 관점이다. 먼저, 박경준은 친설론과 정법론에 대해 《대승열반경(大乘涅槃經)》을 토대로 종파와 교판적 관점을 벗어난 법(法)·의(義)·지(智)·요의(了義)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한마디로 불교는 붓다보다도 진리 그 자체를 지향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경전의 권위는 ‘붓다의 직설(直說)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대승열반경》에서는 “사람과 말과 식(識)과 불료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과 뜻[義]과 지혜와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친설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법론의 의미에 대해 사람[人]의 종파적 입장이 아니고 불법 자체의 관점, 말[語]의 언어적 입장이 아니라 의미론적 관점, 식별적 입장이 아니라 지혜의 관점, 불료의적 입장이 아니라 요의(了義)로 판단된 경의 진실의(眞實義) 관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권오민은 불설의 진위를 판단하는 잣대는 원래 4대교법이었지만 그들은 여기에 “법성에 어긋나지 않으면 불설이다”는 말을 더하여 수정하였고 나중에 다시 이를 근거로 “4의[依: 人·語·識·不了義]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의(義)·지(智)·요의(了義)에 의지하라”를 추가하였다고 설명했다. 즉 이 4가지를 통합하여 갖춘 것이 법성을 갖춘 것으로 불설 편찬의 근거는 불설이 아니라 법성이라고 하였다.

2) 대승경전의 역사적 필연성과 신화적·설화적 가공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불법을 펴신 이후로 승가와 재가는 시대에 따라 불교 신행의 정체성 내지 이상적인 신행 행태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여 왔다. 그러나 대·소승의 유부, 경량부(성실론), 중관, 유식 계통의 논서가 표면의 학설은 달리하였지만 불설의 정의에 관한 한 정확한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는, 먼저 신행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확고한 이해의 기반 위에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한 적극적인 대응을 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세 확장을 목적으로 신행활동을 강조하는 종단의 소아적인 발상이나 이익집단 결성을 목적으로 하는 개인들의 신행생활은 타파되어야 한다. 결국 불교 학문을 토대로 하는 신행 시스템 구축은 불교 고래의 그리고 불교 본연의 자리이타 지향적인 교리를 구현하는 자발적인 믿음과 수행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대표학자 가운데 한 명인 김용표는 대승경전의 본성에 대한 해석학적 탐색을 기초로 하여 현대 불교를 위한 창조적 대승해석학의 방향을 사상의 역사성 문제, 경전적 진리의 상황과 맥락적 진리(contextual truth) 성격, 무한히 열린 자유로운 해석 정신[불의 四種釋義]의 세 가지로 제시한다. 특히, 진리란 세간의 전통이나 언어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간 언어의 형태로 나타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론의 해석도 언제나 현대 서양해석학에서 말하는 선이해(先理解)와 일련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 조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호성은 대승경전에는 신화적·설화적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많으므로, 이성적인 초기경전보다는 믿을 만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반박하였다.

① 연기이므로 허(虛)이고 실(實)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가공의 형식-예술적 형식-을 통해서 더욱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보인다는 점에서 대승경전은 미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시(詩) 〈그림자 극〉을 통해서 말해보았다. ②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현실의 이야기는 무상하고 변하는 것이지만, 가공의 이야기는 불변의 것으로서 더 진실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허와 실이 서로 역전될 수 있음을 다시 시 〈드라마〉와 〈극락에서 온 메일〉을 통해서 중송(重頌)해 보았다. 시로 말한 것 역시 형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즉 대승경전의 신화적/설화적 가공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극락이나 아미타·지장·관음의 존재는 실로 초기경전의 교설에 반(反)하는 것이 아니라, 아공(我空)·법공(法空)으로 인해서 그 세계는 실재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3)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저자 문제

원래 경(經)의 원어(原語)인 Sūtra는 동사 siv 또는 sīv(꿰매다의 의미)에서 파생된 말로 실, 끈, 줄 등을 뜻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위로는 진리와 성현의 말씀을 꿰고[貴穿] 아래로는 중생(의 고통과 미망)을 거둔다는[攝持] 것이 경의 ‘근본 기능이요, 존재이유’인 것이다. 부처님이 자신의 가르침을 상류층의 언어인 베다(Veda)어가 아니라 각 지방의 민족어(民族語)로 전하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즉 초기불교가 친설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언어 인식과 표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언어가 되어 중생들의 개아적 언어 인식과 한없는 거리와 간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붓다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제자들로 하여금 법[진리]을 자각게 하려고 했을 뿐이지 자신의 말을 절대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박경준은 “본래가 성전 암송가로서 원시경전의 내용을 해박하게 꿰고 있었고 찬불승[讚佛乘: 佛傳文學]을 발전시켜 오기도 한 법사[法師: 다르마바나카]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하여, 내용적으로는 원시경전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구성과 형식, 문체와 체제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김호성은 철학적, 해석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4가지 다른 관점에서 대승경전의 저자 문제를 논증하고 있다. 첫째, 초기경전은 저자가 있고 대승경전은 저자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자의 표기에 의해서 저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유명사를 실체의 드러남으로 바라보는 미망일 뿐이며, 초기경전의 내용 즉 연기의 관점에 서게 되면 고유명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둘째, 대승경전의 저자들이 대승경전을 제작해서 후대에 많은 평지풍파를 가져왔다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하이데거-가다머 사제(師弟)의 철학적 해석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시간성/역사성의 개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보르헤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를 살펴봄으로써 전 주장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함/니까야를 똑같이 베낀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시공간의 컨텍스트가 반영되어서 이해될 수밖에 없으므로, 아함/니까야와는 다른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게 다르게 이해된 의미의 생성을 문자화(文字化)한 것이 대승경전이다.

즉, 대승경전의 제작은 시간성/역사성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셋째, 대승경전을 불설이라 칭한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에 대해 보르헤스의 또 다른 소설 〈틀뢴, 우크바,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전거로 내세워 “모든 책은 익명이며, 오직 한 사람의 저술”이라는 점을 말하였다. 넷째, 대승경전의 저자들이 스스로 이름을 당당하게 밝히지 않은 것은 붓다의 권위를 빌려서 그 책의 권위를 넓히고 자설(自說)을 좀 더 쉽게 널리 펼치기 위한 사욕(私慾)에서였다는 주장에 대해 심성사적(心性史的) 방법론과 ‘정황증거’를 가지고 논박하였다.

4. 바람직한 논쟁의 방향을 위한 조건과 과제

1) 화엄원융의 언어인식적 접근

앞에서 언급했던 대승경전이 참된 불설임을 증명하는 사의(四依)와 사대교법(四大敎法)에 대해 화엄에서는 언어인식적 관점으로 3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첫째, 법(法)과 의(義)에서 법 자체의 언어론과 의미론적 입장에 대해 상입(相入)의 무아론적 언어인식의 관점을 제공한다. 즉 무아적 언어인식의 경계는 수십전법에서는 중문(中門)의 상호포섭적 관계로 능구(能具)와 소구(所具)처럼 명칭[名稱: 言說]과 내포[內包: 意義] 간의 상호 주관적인 관계[否定的 同一視]를 가지고 무아의 의의를 나타낸 것으로, 주체와 객체의 상호 경합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명칭은 의의를 가지고 언설을 삼으므로 언설이 의의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언설이 언설이 아니다. 내포도 언설로써 의의를 삼으므로 의의가 언설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의의가 의의가 아니다.
둘째, 지(智)와 요의(了義)에서 지란 자신의 아뢰야식에 의거한 알음알이를 지양하고 지혜로 보는 개인적 깨달음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하면 요의는 깨달음 자체가 되는데, 여기에 대해 상즉(相卽)의 중도론적(中道論的) 언어인식의 관점을 제공한다. 즉 언어적 표현과 깨달음의 중도적 언어인식의 경계는 수십전법에서는 즉문(卽門)의 상호 환원적 관계로 근본[根本: 깨달음]과 지말[枝末: 언어] 간의 상즉인 관계[肯定的 同一視]를 가지고 중도의 의의를 나타낸 것으로, 근본과 지말의 상호 협력적 관계이다. 그러므로 지말은 오증(悟證)된 의의(意義)가 언어에 속한 것으로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작용하고,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설명한 것이다. 근본도 언설이 오증(悟證)의 표상(表象)에 속한 것으로 작용하면서도 늘 고요하고, 설명하면서도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 언어 매개를 통한 자비 실행이 교분(敎分)의 입장이라면, 언어가 단절되고 증득해서 얻는 경지가 증분(證分)의 입장이다. 하지만 증분의 침묵은 중생에게 들리지 않고, 교분의 언어는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의 의미를 담고 표현되는 언어이다. 그러므로 제불보살의 대자비 본원력의 바탕이 되는 부주중도적(不住中道的) 언어는 중생들의 눈높이에 따라 침묵과 언어가 공존하는 언어표현이다. 즉 연기분과 증분의 관계에서 언어의 궁극적 역할과 의미가 드러난 것이 부주중도의 언어인식이다. 따라서 초기불교가 친설이고, 대승불교가 불법이라고 하면 친설은 일(一)이자 증분, 법설은 다(多)이자 교분이 되어 상입상즉의 원융적 관계를 이룰 수 있다.

2) 학제간 연구와 한국불교의 실용적 좌표

현시대까지 초기불교와 아비달마, 소승과 대승, 상종(相宗)과 성종(性宗), 교종과 선종 등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인식되거나 다만 어느 일방에 의한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 방편(方便)과 구경(究竟)의 관계로서만 논의되고 있을 뿐 서로 간의 허심탄회한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불교권 자체 안에서 이러한 문제를 확인하는 방법도 좋겠지만, 초기불교의 가치와 대승불교 및 대승경전관 및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논쟁의 방향 설정을 위해 학제간 연구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불교와 학제간 연구에는 다양한 분과가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화엄원융의 3가지 언어인식적 관점을 바탕으로 3가지 접근을 제안한다. 첫째, 4대교법 가운데 법과 의의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개아와 무아의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심리언어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인지과학적 관점을 기초로 하는 신경·심리언어학의 접근법에서는 1968년 초개인심리학 이전의 서양철학과 서구심리학의 개아를 강화하는 언어인식의 심리언어학적 의미를 평가한다. 그리고 무아의 언어인식적 관점 제공을 위해 유식불교의 12연기 언어인식 메커니즘과 무아의 정문훈습을 통한 제8식의 변화 양상을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제간 연구를 통해 개아와 무아의 의식 및 무의식의 관점에서 언어인식의 긍정성과 부정성의 양면성과 한계성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둘째, 4대교법 가운데 지와 요의의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개아와 무아의 통합적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통합심리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이러한 연구는 서양과학의 심리학과 동양문화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불교학의 만남이자 진정한 융합을 시도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통합심리학에서 말하는 의식의 각 층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한국불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설정하고 접근할 것이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즉 인간존재의 구성 요소인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1차원적 상호침투의 이질적 등계층의 홀로그래프적 언어인식, 다차원적 상호침투의 홀로키적 온우주론의 언어인식, 절대정신 등이 중요한 테마이다. 1차원적 상호침투는 화엄의 상입, 다차원적 상호침투는 상즉, 절대정신은 법성과의 비교고찰이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4대교법을 아우르는 법성의 현시대적 의미를 보다 객관화하기 위해 집단의 언어인식적 관점을 토대로 하는 과학철학과의 학제간 연구이다. 왜냐하면 현시대에 경험주의적 과학지상주의자와 유물론적 실증주의자의 전통 경험과학적 진리관이 일반인들을 혼미하게 오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불교 정체성 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학제간 연구 가운데 하나인 과학철학(科學哲學, philosophyofscience)은 과학을 대상으로 하는 철학으로, 철학과 과학을 대비해 생각해볼 때 몇 가지 점에서 고려의 대상이 된다.

3)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필요성 제기

오늘날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에 대한 통합시각을 제안하고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개념 설정을 위해 신행(信行)의 의미를 교학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도 있고, 신행의 관점에서 교학을 평가할 수도 있으며, 양쪽 모두 동등한 가치 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신(信)·해(解)·행(行)·증(證)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현대 한국에서 제기되는 ‘신행’ 관련 논의의 틀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불교권 내적인 문제 제기로서 통불교적인 한국불교의 속성으로 야기되는 신행의 체계성과 조직성의 결여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불교권 외적인 문제 제기로, 현대사회의 다기한 문제에 대한 불교 신행의 역할과 역량 정립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정립을 위해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접근이 문화(심리)학이 될 수 있다. 원래 문화학이 발생한 의의는 개별 학문들로부터 나온 개별사건들을 다시각적 관점에서 네트워킹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조정자 역할을 담당하는 초과학적 프로그램으로 학문들 간, 학문과 실천 간을 연결하는 지평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교문화학의 한 범주로서 ‘믿음과 실천’의 연구목적은 ‘문화적 지향’의 인문철학으로서 불교학에서 자신의 학문영역과 이론적 태도의 한계를 넘어 ‘문화적 전체’ 속에서 ‘믿음과 실천’의 의미를 추구하고 동시에 사회적 실천을 위한 방향타의 구실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란 좁은 의미로 본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불교란 “석존을 개조로 하여 열반 혹은 깨달음을 구하는 것을 최고 구극의 가치 또는 목적으로 하고, 그 실현을 목표로 하여 세계 각 지역에서 전개되는 문화의 종합적 체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문화로써 존재하고 문화로써 표현되며, 문화로써 기능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1세기 ‘한국불교문화’라는 프리즘은 현대 신행생활의 기본방향으로 첫째, 불교권 내적인 문제는 자리행적 신행생활의 관점으로 개인수행 및 정신건강의 측면과 종교 의례문화적 신행 방법 등의 접근이다. 그리고 둘째, 불교권 외적인 문제는 이타행적 신행생활의 관점으로 사회적·역사적·철학적·교육적·예술적 신행 방법 등의 접근이다. 여기서 불교권 내적인 문제는 정신수양과 종교적 행위의 특수적 접근 방법의 신행생활의 성격을 지니며, 불교권 외적인 문제는 사회실천 행위의 보편적 접근 방법의 신행생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5. 맺음말

대승불교의 정체성 논쟁에 대해 역사학적, 문헌학적, 고고학적, 철학적, 해석학적, 종교체험과 신행적 접근 등을 통한 선행연구들이 있었다. 대승불교(경전)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전제조건의 논쟁을 주제별로 보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불설·비불설, 대승불교와 대승경전의 개념 정의와 범위 설정, 초기경전과 대승경전과의 관계, 대승불교(경전)가 지녀야 할 가치와 속성 및 기능, 존재론·인식론·실천론 등의 다각적 관점들이 있었다. 시기별로 보면 대승불교 정체성 주요 논쟁의 제1기에는 대승 불설·비불설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방향 제시, 제2기에는 대승불교의 비불교적 요소에 대한 관점 차이, 제3기에는 상좌부의 아가마와 니까야 친설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 글에서는 3기에 걸쳐 펼쳐진 이러한 논쟁에 대해 2장, 근대불교학의 역사적·문헌비평학적 접근에서는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우월적 가치, 아가마와 니까야의 친설 여부, 다신적 신앙과 기복설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3장, 현대불교학의 경전해석학적 접근에서는 불설론과 정법의 기준에 대한 논쟁, 대승경전의 역사적 필연성과 신화적/설화적 가공,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저자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4장의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을 위한 통합적 접근에서는 첫째,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화엄의 언어인식을 기저로 하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에 대한 원융적 시각을 제공하였다. 둘째, 심리언어학, 통합심리학, 과학철학을 보조적 활용하여 한국불교의 실용적 좌표 확인을 제안하였다. 셋째, 교학과 수행의 통합모델 제공을 위해 문화학과 문화심리학의 활용을 통해 불교권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 해결을 제안하였다.

결국, 이 논문은 경전해석학적 접근을 기반으로 하는 화엄원융의 언어인식적 접근을 통해 불교경전이 현대의 다원주의와 통합사회에서 가져야 하는 정체성과 역할을 재정립하자는 것이다. 즉 경전해석학적 관점을 전제로 하고, 무분별적 화엄원융의 언어관을 배경으로 하는 언어인식적 관점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의 심리언어학, 통합심리학, 과학철학, 문화심리학 등의 접근을 보조로 하는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신대승불교 운동의 방향 모색을 위한 통합적 접근을 제안하였다.

이 밖에도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바람직한 논쟁의 방향을 위한 조건과 과제는 더욱 많겠지만, 이 글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은 차후 과제로 남겨둔다. ■

 

이홍구 / 동국대 강의교수. 대구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졸업(석사·박사).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선임연구원, 동국대학교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의상 화엄관행의 연구〉(석사논문) 〈신라 의상의 엄정융회적 신행 연구〉(박사논문) 〈의상계의 엄정융회적(嚴淨融會的) 일승정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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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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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쪽150*224mm650gISBN : 979119638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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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법공스님이 부처님의 생애를 일화 중심으로 살피고 일반 불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도록 포교도서로 엮어냈다. 불교가 배우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종교라는 생각을 지워도 좋을 만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엮어져 있다.
목차
Ⅰ.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와 전래 ● 10
1. 삼국시대의 불교 ● 14
2. 고려시대의 불교 ● 17
3. 조선시대의 불교 ● 19

Ⅱ. 불교의 주요 경전과 계율 ● 22
1. 경전의 구분 ● 25
(1) 팔리5부 경전중 장부33경 (2) 팔리5부 경전중 중부152경
(3) 팔리5부 경전중 상응부56경 (4) 팔리5부경전중 중지부 2,198경
(5) 팔리 경전중 소부 5경
2. 초기경전과 법장의 세계 ● 29
(1) 아함경(阿含經) (2) 본생경(本生經) (3) 육방예경(六方禮經)
(4) 옥야경(玉耶經) (5) 육도집경(六度集經) (6)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7) 미란타왕문경(彌蘭陀王聞慶)
3. 주요 대승경전의 얼개와 개요 ● 39
(1)반야경(般若經)
1)반야바라밀다심경(盤若波羅密多心經)
2)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金剛盤若波羅密多心經)
(2)법화경(法華經) (3)화엄경(華嚴經) (4)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5)유마경(維摩經) (6) 수능엄경(首楞嚴經) (7)원각경(圓覺經) (8)열반경(涅槃經) (9)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 (10)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11)천수경(千手經)

Ⅲ. 불교의 계율(戒律) ● 56
1. 삼귀의와 5계 ● 59
2. 사미10계 ● 61
3. 근본 계율 네 가지 ● 62
4. 열 가지의 대승계 ● 64
5. 팔관재계(八關齋戒) ● 65
6. 부처님의 12연기설 ● 67

Ⅳ.불상(佛像)의 존칭과 이름 ● 72
1.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 75
2. 비로자나불(毘盧蔗那불) ● 76
3. 아미타불(阿彌陀佛) ● 77
4.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 78
5. 노사나불(盧舍那佛) ● 79
6. 미륵불(彌勒佛) ● 81
7. 연등불(燃燈佛) ● 81

Ⅴ. 보살의 이름과 형상 ● 84
1. 관세음보살 ● 87
(1) 성관세음보살 (2) 천수관세음보살 (3) 십일면관세음보살
(4) 준베관세음보살 (5) 불공경색 관세음보살 (6) 마두관세음보살
(7) 여의륜관세음보살
2. 미륵보살 ● 90
3. 대세지보살 ● 91
4.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 91
5. 지장보살 ● 93
6. 일광보살과 월광보살 ● 94
7. 허장공보살 ● 95

Ⅵ. 불교의 사물과 법구 ● 98
1. 범종 ● 101
2. 법고 ● 102
3. 목어 ● 102
4. 운판 ● 103
5. 기타의 법구 ● 104

Ⅶ. 염주의 종류와 상징 ● 106

Ⅷ. 스님을 대할 때의 예의 ● 112
1. 스님의 호칭 ● 114
2. 법사와 포교사 ● 117
3. 재가와 거사 ● 117
4. 비구와 비구니 ● 118
5. 사미와 사미니 ● 119

Ⅸ. 우리나라의 큰스님들 ● 120
1. 승랑법사와 담징스님 ● 123
2. 원광과 원측스님 ● 126
3. 자장율사와 대안스님 ● 128
4. 백제의 겸임스님과 신라의 혜초스님 ● 133
5. 원효와 의상스님 ● 136
6. 대각국사와 지눌스님 ● 140
7. 균여와 태고 보우스님 ● 143
8. 나옹화상과 무학스님 ● 146
9. 휴정스님과 사명당 ● 151
10. 일연스님과 진묵스님 ● 155

Ⅹ. 절마당에서 ● 160
1. 사찰의 문 ● 162
(1) 일주문 (2) 천왕문 (3) 해탈문 (3) 불이문
2. 조계종 8대 총림 ● 163
3. 우리나라 삼보사찰 ● 164
4. 우리나라 5대적멸보궁 ● 164
5. 사찰의 전각과 명칭 ● 165
(1) 대웅전 (2) 대웅보전 (3) 대원본전 (4) 대적광전 (5) 극락전
(6) 약사전 (7) 영산전 (8) 나한전 (9) 관음전 (10) 미륵전
(11) 명부전 (12) 조사당 (13) 장경각 (14) 가림각 (15) 천추각과 세월각 (16) 산신각 (17) 칠성각 (18) 독성각 (19) 삼성각
6. 불교의 4대 성지 ● 171
7. 불교의 5대 명절 ● 171

Ⅹ Ⅰ. 불교의 예절과 의례 ● 172
1. 도량에서의 행동 ● 175
(1) 법당을 출입할 때 (2) 부처님께 올리는 절 오체투지 (3) 합장
(4) 차수와 반배 (5) 고두배 (6) 촛불을 켤 대는 (7) 도량석과 의식
(8) 발우와 발우공양
(9) 공양물을 올리는 예법 1) 촛불을 끄는 일 2)향 3) 그 외의 공양물

Ⅹ Ⅱ. 불교의 각종의식과 의미 ● 186
1. 각종 의식의 종류 ● 188
(1) 천도재 (2) 수륙재(水陸齋) (3) 생전예수재 (4) 영산재 (5) 다비식
(6) 다례재 (7) 연등회(燃燈會)
2. 불교의 의식무용 ● 202
(1) 바라춤 (2) 나비춤 (3) 사물춤 (4) 기타 타주춤 (5) 영산재의 무용의식

Ⅹ Ⅲ. 불자 수계의식의 순서와 절차 ● 212
불교의 법회와 법회의식 ● 231
1. 법회의 종류 ● 232
(1) 정기법회 (2) 재일법회와 재법회 (3) 기타 재법회 (4) 특별법회

Ⅹ Ⅳ. 불교의 예배형식과 기도방법 ● 244
1. 불교의 예배형식 ● 245
2. 기도하는 방법 ● 249
(1) 기도의 대상과 목표 (2) 기도의 순서 (3) 서원 기도 장소
3. 목탁의 의미와 상징 ● 253
(1) 목탁의 탄생 설화 (2) 목탁의 사용방법 (3) 소리로 구분한 목탁의 종류
4. 불교예불 의식경문: 천수경(千手經) ● 257

Ⅹ Ⅴ. 불교용어로 살펴보는 불교 상식 ● 268
1. 삼법인(사법인) ● 270
(1) 제행무상 (2) 제법무아 (3) 일체개고 (4) 열반적정
2. 사성제 ● 272
3. 팔정도(八正道) ● 273
4. 사섭법(四攝法) ● 275
5. 바라밀(波羅蜜) ● 276
6. 팔상록(八相錄)이란 ● 280
7. 삼독과 삼계, 삼학이란 ● 282
8. 사대와 시방삼계, 삼업과 삼시업 ● 283
9. 오계와 육도 ● 285
10. 사생과 사유 ● 286
11. 육법공양 ● 287
12. 불교교단의 구성 ● 288
13. 오욕칠정(五慾七情) ● 289
14. 삼재(三災)의 원인과 방편 ● 289
15. 반야용선(般若龍船)과 악착보살 ● 291
16. 동안거와 하안거의 유래 ● 292
17. 부처님의 삼종가피 ● 294
(1) 몽중가피 (2) 현전가피 (3) 명훈가피
18. 4염주, 4염처와 7각지 ● 295
19. 달마대사(達磨大師)와 포대화상 ● 297
20. 아라한이란 ● 303
21. 오도송과 무문관(無門關) ● 305
22. 불교와 고대인도 아쇼카왕 ● 307
23. 욕계 6천 하늘 ● 310
(1) 서천왕천 (2) 도리천 (3) 야마천 (4) 도솔천 (5) 화락천 (6) 타화자재천
24. 색계 18천 하늘 ● 313
(1) 초선천하늘 (2) 삼선천하늘 (3) 사선천하늘
25. 육도윤회란 ● 316

부록 1.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진언 ● 318
2. 한국 불교사 연대표 ● 320
3. 전국불교대학주소록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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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법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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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충북 청주에서 출생
(사)장보고아카데미 원장 역임
동국대학교불교대학원 불교학과수료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문예학술저작권 및 음악저작권협회원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원이사
(사)한국정신문화복지재단이사
한국불교문학상운영위원회 운영이사

I수상I
제7회 대한민국창조환경봉사대상수상
제16회불교청소년지도자대상 수상
’15청소년선도유공 문체부장관상 표창
조계종청소년포교대상 우수상 수상
제11회청소년도서저작상 시집부문 수상
내일신문 제정 21회한국을 빛낸 인물상수상
한국청소년신문제정 2018한국호국... 더보기
최근작 : <불교공부 마음공부>,<뜰 앞의 배롱나무>,<길을 묻는 푸름 바람>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초청의 글]

한 권의 포교도서는 한 분의 부처님

법공스님이 부처님의 생애를 일화 중심으로 살피고 일반 불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도록 포교도서로 엮어냈습니다.
이 책을 읽다가보면 우리 곁에서 부처님이 함께 계신 것처럼 그 숨결과 자애로운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심을 느끼게 됩니다.
타 종교보다 우리 불교교단에서는 계층 포교자료 개발과 보급에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뜻있는 재가불자들이 교육과정 편제에 맞게 어린이 청소년들의 교육 교보재를 만들고 사비로 제작하여 보시하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뚜렷한 계층 포교용 대중 도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필요성을 감안하여 법공스님이 그동안 초발심 불자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부처님의 생애로 살펴본 불교이야기’를 펴냈습니다. ‘불교가 배우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종교라는 생각을 지워도 좋을 만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엮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 2권은 우리 초발심 수행자들이 절 마당에서 처음 들어섰을 때 맞게 되는 전각과 탑, 사물, 의식, 예절등 불자들이 꼭 알아야 할 상식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지도서로 만들었습니다.
한 권의 포교도서는 한 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것처럼 소중하고 신심으로 권하는 많은 원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불교를 처음 만나는 초발심 불자들은 소중한 인연의 가피를 누리시기 바라며, 부처님의 자비 은혜가 충만한 일상이 되시길 빕니다.

불기 2563(2019)년 정월 초하루
아산 보문사 회주
송운 현보 접기

불교 입문 2 - 불자의 수행과 신행생활 - 수행과 기도, 육바라밀의 실천

불교 입문 2 - 불자의 수행과 신행생활 - 수행과 기도

불자의수행과신행생활

수행과 기도
수행하는 사진. 우측 참조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이러한 행복과 해탈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면 행복과 해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폭류처럼 흐르는 마음을 잘 다스려 걸림이 없는 삶을 누리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근 만근이나 되는 업장을 소멸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어내어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데서 불자로서의
삶의 목적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서 요구되는 것이 수행과 기도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몸과 마음을 닦아 지혜를 얻어 윤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수행이라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윤회를 끊어 해탈에 이르는 것이 기도라 할 수 있지요. 전자가 자력적이라면 후자는 타력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절대자 및 신을 향하여 자기에게 부족한 점을 간구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에게 닥친 재앙을 없애고 복을 얻도록 부처님이나 신에게 비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기도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의 기도는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무작정 절대자에게 바란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도록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강합니다. 나아가 그런 다짐이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굳세고 튼튼해져 쉽게 좌절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는데 기도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과 기도에서 모두 요구되는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집중입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 집중 속에서 깊은 삼매에 들게 됩니다. 이 삼매의 경지에서 지혜를 얻는 것이 수행이라면 가피력을 얻는 것이 기도입니다. 삼매에 드는 과정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삼매에 들어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는 간경ㆍ사경ㆍ염불ㆍ진언ㆍ절ㆍ참회ㆍ정근을 통한 수행과 기도 및 수식관ㆍ부정관ㆍ자비관ㆍ간화선등의 여러 가지 참선법이 있습니다.

간경(看經)이나 사경(寫經)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을 보고 읽고 쓰거나 마음에 새기는 것을 말합니다.
염불(念佛)이란 불보살님의 이름이나 모습, 그 본래의 마음을 관하거나 부르면서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요, 진언이란 부처님의 말씀 중에 참말씀을 외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절하면서 귀의하는 것이 108배, 1080배, 3000배 등의 절입니다. 특히 염불할 때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쉬지않고 수행한다 하여, 이를 정근(精勤)이라 하지요. 이러한 정근을 통해서 산만한 마음을 안정시켜 마음이 맑아지게 됩니다. 비단 염불뿐만 아니라 간경ㆍ사경ㆍ진언ㆍ절 그리고 기타 수행법에도 이렇게 쉼없이 정진할 것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정진을 통해서 우리는 삼매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나 수행에 들어가기 앞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참회(懺悔)입니다. 참회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온갖 잘못된 편견과 행위, 독선에 가득찼던 자신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앞으로 이러한 잘못을 다시 는 짓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러한 참회로 말미암아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그래서 참회의 행위 자체만으로도 업장이 소멸된다고 해서 참회만을 별도로 떼어내어 기도 내지는 수행의 방법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참선은 대표적인 자력을 바탕으로 한 수행법입니다. 참선(參禪)이란 선에 들어간다는 뜻이며 선이란 정신 집중을 통해 고요히 사유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에 들어가는 참선의 방법으로 여러 가지 지관법(止觀法)이 있습니다. 지관법이란 마음의 동요를 그쳐(止) 사물의 참모습을 꿰뚫는 것(觀)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수식관(數息觀), 부정관(不淨觀), 자비관(慈悲觀) 등이 있습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들고 의심 해 들어가 마침내 그 화두를 타파하여 내 본래 모습이 부처님임을 깨닫는 수행법입니다

---

육바라밀의 실천
연꽃사진. 우측 참조

이러한 여러 가지 수행과 기도 외에도 행복과 해탈에 이르는 길로서 불교에서는 다양한 실천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8만4천 법문이 모두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 육바라밀(六波羅蜜)은 대승불교의 보살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6섯 가지 해탈에 이르는 길을 간명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반야(般若) 바라밀을 말합니다.


첫째 보시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베푸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을 베풀어 괴로움에 빠진 이웃의 마음에 평화를 주며, 물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재물을 베풀어 기쁘게 해주며, 진리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는 감로의 법문을 내립니다.이름하여 나의 지식, 나의 재산, 나의 사랑, 나의 말, 나의 모습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나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 평화를 주는 밑거름이 되지요. 자비의 실천은 이런데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둘째 지계란 계율을 지키며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은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로 행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스러운 말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며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도덕적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셋째 인욕이란 참고 감내하는 행위입니다.

어떠한 고난이 닥치거나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거기에 굴하거나 성내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인내하면서 극복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내지 않고 길게 용서하며 참아내는 행위는 내 마음은 물론 이 사회를 조화와 평화로운 상태로 이끌게 됩니다.


넷째 정진이란 끊임없는 불굴의 노력을 말합니다.

적당히 쉬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흐트러짐이 없이 마음과 몸을 다해서 움직이며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보면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나가는 것이며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일체의 망상을 접고 쉼없이 마음을 다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선정이란 정진을 통해 마음이 어느 한 대상에 집중되어 통일된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렇게 통일된 상태에서는 나도 잊어버리고 상대도 잊어버립니다. 그저 맑고 순순한 의식만이 살아 숨쉴 뿐입니다.
바로 이러한 순간에 사태를 아무런 가감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물의 실재를 정확히 응시하는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여섯 번째 반야(般若)라 합니다.

이러한 반야의 지혜로 관조하여 나와 너의 분별, ‘나’라는 의식조차도 떠나기 때문에 보시를 함에 있어서도 무차별적 보시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요 인욕행을 실천함에 있어서도 ‘나’라는 그림자조차 없기에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육바라밀의 근저에는 지혜 바라밀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수행의 목적이 지혜를 얻기 위한 과정이란 점에서 반야바라밀의 실천이야말로 대승불교 최상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면 정진의 힘으로 선정에 이르고, 선정의 경지에서 반야의 지혜를 얻어 일상생활 속에서 보시 및 인욕, 지계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하여 나는 물론 이 사회가 맑고 깨끗해져 불국토가 실현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걸림없는 자유로운 삶이요, 참 불자의 신행생활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도와 수행도 육바라밀의 실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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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법회와 재

불자들은 사찰에서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각종 법회나 재에 참여함으로써 부처님 말씀을 듣고 신행생활을 더욱 공고히 다지면서 수행과 기도 공덕을 쌓아나갑니다. 특히 재가 열리는 날에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불보살님이나 영가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그 가피력으로 소원을 빌며 공덕을 닦아왔습니다.

재란 불보살님이나 스님, 그리고 선망 부모 등에게 공양물을 베풀고 그분들의 은덕으로 바라던 바 소원을 성취하거나, 궁극적으로 업장소멸이나 정토왕생 내지는 불보살 친견을 간구하는 법회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보시 공덕의 특별한 가피력인 셈입니다. 특히 불법승 삼보 중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불공(佛供)이라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의 표시 로 올리는 모든 물질적 정신적인 행위를 일컫습니다. 예불도 부처님께 귀의하며 그 공덕을 찬탄하며 올리는 정신적 행위이므로 이 불공의 범주 내에 들어갑니다. 전통적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대표적인 공양물로 향ㆍ차ㆍ등ㆍ꽃ㆍ과일을 들지만 쌀이라든가 돈을 올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은 부처님에 대한 공양인 불공으로부터 공양물을 올리고 치루어지는 각종 행사, 즉 기도, 불교 기념일, 천도제사, 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매달 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관음재일ㆍ성도재일ㆍ약사재일이 그렇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출가재일, 성도재일, 열반재일과 조상님을 천도하는 우란분재ㆍ49재ㆍ천도재, 물이나 육지에서 외롭게 떠도는 혼령을 위로하는 수륙재, 후생에 복된 삶을 위하여 전생인 현재에 미리 닦아나가는 생전예수재 등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각종 재 의식에 즈음하여 공양을 올릴 때, 우리 불자들이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내 것이라는 자아의식과 집착을 버리고, 오로지 부처님을 향하여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일상 속에서 이웃에게 보시하는 행위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값진 공양의 실천이요 훌륭한 또 하나의 재의 형태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방생법회는 갇혀 있는 생명을 살리는 운동으로서 생명 해방운동이요, 생명살리기 운동이며 궁극적으로 환경보호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외래어종을 방생하여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시키거나 잘살고 있는 물고기를 잘못된 환경에 풀어주어 오히려 죽게 만드는 폐해를 낳기도 하는 형식적인 방생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