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2인칭 몰입’ 되찾을 집중력의 비밀
2025-09-16
“우린 휴대폰 속에 사는 일상 로봇. 집으로 가는 길엔 돌기둥처럼 혼자서 우뚝 서 있지.”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노래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은 기술에 의존한 인간의 소외를 노래한다. 카페에 마주 앉은 연인도, 쉬는 시간의 아이들도, 붐비는 지하철의 사람들도 저마다 손 안의 화면에 갇혀 수천년 전부터 그 자리에 멈춰 선 스톤헨지처럼 고립되어 있다.
노래 속에 반복되는 autonomous(1. 자율적인 2. 인간의 제어없이 스스로 작동하는)라는 단어는 우리가 자유롭게 사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음을 조용히 읖조린다. “이 사람들 저 사람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머무는 이곳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라는 가사 또한,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면서도 방향을 잃은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그런데 이 소외는 사회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집중력의 붕괴와도 맞닿아 있다.
오늘 우리가 도둑맞은 집중력은 사실 2인칭을 잃은 결과다. 디지털 자극에 시선을 뺏긴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너’와의 유대와 공감을 놓쳤다. 진짜 집중력은 그 관계 속에 있다. 그래서 문해력의 위기는 ‘글’과 ‘말’을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읽지 못해서 비롯된 위기일지 모른다.
나의 집중력을 되찾게 해줄 ‘2인칭 감각’
데이트를 할 때, 강의를 들을 때, 회의를 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듣고 있을까? 에브리데이 로봇처럼 마주한 상대가 아닌 화면 속 알림에 더 많은 주의를 주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사람이 전하는 ‘정보’를 단순히 해독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너’라는 2인칭의 존재는 이해 대상에서 빠져 있다.
어휘력보다 다급한 것은 ‘2인칭 감각’이다. 상대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의 의도와 감정을 추적하며, 그의 시선 속에서 사고하는 능력. 이 감각이야말로 소외를 넘어 나의 집중력을 되찾게 해 주는 비결이다.
독해력을 높이려면 글쓴이를 2인칭으로 두고 대화하듯 읽어라. 청해력을 기르려면 나를 잊고 말을 하는 2인칭에게 몰입하라. 성적을 올리려면, 방금 배운 것을 2인칭에게 설명하라. 발표를 잘 하려면 구체적인 2인칭을 마음에 품고 스토리를 설계하고 눈 앞의 2인칭들과 눈을 맞추며 말하라.
이러한 2인칭 감각은 태어날 때부터 갖춰진 것이 아니라, 성장하며 배우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 타인에게 관심없는 ‘집단 독백’의 유아기를 거친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가 설명했듯 아이들의 대화는 서로에게 반응하지 않는 혼잣말의 나열이다.
발달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비고츠키가 강조했듯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아이는 타인의 관점을 배운다. 내 말에 네가 반응하고, 네 반응에 내가 다시 말하는 교환 속에 언어와 사고를 확장한다.
그러나 에브리데이 로봇과 같은 우리는 ‘나’의 이야기만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회의실 발언, 교실 속 질문, 댓글창의 논쟁은 정교한 문장으로 포장되지만 ‘너’와 함께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타인의 말에 응답하지 않는 자기 독백의 교환에 가깝다.
2인칭 몰입은 단순한 시선 교환이 아니며, 학습과 이해를 촉진하는 소통의 엔진이다. 타인을 관찰하는 것(3인칭)이나 자신의 경험에만 집중하는 것(1인칭)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독특한 정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상대의 시선과 몸짓이 나를 향한다는 직접적 경험이 시작되고, 내 행동과 상대의 반응이 시간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상호작용을 조율한다. 이어서 말과 행동이 서로 맞물리는 과정이 관계를 잇고, 서로의 감정이 공명하며 몰입하려는 동기가 상호작용을 지속한다.
2인칭 몰입의 과학
이렇게 2인칭 시점에 몰입해 상호작용에 참여하면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상대의 마음을 추론하는 네트워크, 즐거움을 느끼는 보상시스템, 그리고 상대의 표정, 시선을 해석하는 시각 피질 같은 여러 뇌 영역이 동시에 협력한다. 특히 눈을 맞추는 순간,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될 수 있는데 이는 집중하고 내용을 정리하며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반대로 상대방의 말에 반박할 말을 준비하며 내 생각에 빠져들면 상대방의 말소리와 표정은 두뇌에서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 타인과 대화할 때 우리의 뇌는 한정된 인지 자원을 외부 정보와 내적 사고에 배분하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내 집중력을 되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회의에서든, 강의실에서든, 혹은 연인과의 대화 속에서든 내 눈 앞의 ‘너’에게 시선을 주고 그 순간만큼은 나의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집중력은 그렇게 관계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