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5

Kang-nam Oh - 추천사 《신앙과 신학 사이》 이영대 목사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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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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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 사이》 추천사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대 목사님으로부터 그가 출간할 책 원고를 보내고 추천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원고를 읽어보니 참신한 신앙과 신학에 관한 글 모음이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써 드렸는데, 오늘 그 책이 《신앙과 신학 사이》라는 제목으로 제게 왔습니다. 

이영대 목사님은 진보 성향의 호주연합교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96년 이후 호주에서 목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5년 6월 호주 유니테리언 교회 초청으로 시드니에 가서 몇 차례 강연을 했는데 그때 이영대 목사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습니다. 책에는 저의 호주 강연 일정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도 하여 저도 잊었던 일을 새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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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추천하는가?

어느 신학자에 의하면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질문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일반적 추세는 “묻지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과학을 비롯하여 기타 학문의 발달로 교인들의 지적 수준도 높아짐에 따라 생각하고 질문하는 일이 그만큼 일반화되었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영대 목사님의 이 책은 처음부터 “나는 왜 아직도 기도를 하는가” “나는 왜 아직도 교회를 다니는가”를 시작으로 “나는 왜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가” “나는 왜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가는가”하며 ‘왜’라는 물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책 전반부는 이처럼 신앙과 신앙 생활에 관한 기본 문제 수십 가지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나는 왜 󰡔예수는 없다󰡕를 권하는가”하며 제가 쓴 책도 문제 제기의 일부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신앙이든 학문이든 가장 좋지 못한 자세는 “당연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노벨상을 선정할 때도 연구 결과보다는 지금까지 당연시 여기던 세계관을 새로운 안목으로 볼 수 있게 질문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영대 목사님이 이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로운 안목으로 새롭게 질문하게 된 데는 그의 개인적 배경이 중요한 요인이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신학과 목회에 발을 들여놓기 전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여러 직장을 거치면서 폭넓은 경험을 한 것이 그를 폭넓은 안목을 가지고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목사님으로 아름답게 변신하게 한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이사야 1:18)고 하시며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를 영어 성경에 보면 “Let us reason together”라고 하여 우리의 이성(reason)을 사용하여 이유(reason)를 알아 보자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 주교회의 성경에 보면, “오너라, 우리가 시비를 가려보자”라고 번역하여 이 뜻을 좀 더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신 것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성을 활용하여 사물의 이유를 따져보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11세기 중세의 유명한 사상가 성 안셀무스도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물론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라 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목적이 결국 사리를 분별하는 앎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faith seeking understanding)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님도 “생각하는 백성이어야 산다”고 일갈하셨고, 미국 클레아몬트 신학대학 존 캅 교수도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는 책을 낸 일도 있습니다. 이제 이성을 무시하고 덮어놓고 믿으라고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성직자 존 던 (John Donne)이 쓴 싯구에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묻지마시라. 그것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하는 내용의 글이 있지만, 이영대 목사님의 글을 보면서 “누구를 위해 ‘왜’를 발하는가, 그것은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것이니”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말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이 책은 새 시대를 맞아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성찰해보고 싶은 기독교인이라면 읽고 크게 눈뜸을, 마음 문의 열림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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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s post

어제 호주에서 목회하시는 이영대 목사님 책을 추천하는 추천사를 올렸더니 관심을 갖는 페북 친구들이 상당수 있어서 놀랐습니다. 이왕 추천사 이야기가 나왔기에 페북에 명문의 글을 자주 올리는 대전의 김선주 목사님의 책에 대해 쓴 추천사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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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너머의 종교
김선주 목사님의 책 《대신 울어 주는 여자》를 읽고  
                       
저는 김선주 목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빠짐없이 읽으며 그 뛰어난 문장력과 예리한 통찰에 감격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얼마 전 이메일로 새로 나올 책의 원고를 보내 주시면서 제게 추천사를 부탁하셨습니다. 제 추천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혹은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 분이 지은 책에 추천사를 쓰는 영광을 거부할 수 없어 써보겠다고 했습니다.

현대판 근사록(近思錄)?

   저는 이번에 보내 주시는 글도 당연히 종교에 관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처음 한참 동안은 직접 종교 문제를 다룬 글이라기보다 그가 자라나면서 일상생활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뒤에 담긴 뜻을 파고드는 글들이었습니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들은 그 시대를 공유했던 세대들에게는 힘들었지만 정겨웠던 세월을 회상하게 해주고, 그 시대를 모르는 신세대에게는 이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나 신기함과 놀라움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처음 얼마 동안은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특별히 종교적인 글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현대판 근사록(近思錄)?
   그런데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종교 색채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놀라운 반전이라고 할까요? 물론 기성 교회에서 가르치고 주장하는 그런 종교 이야기는 아니지요. 
   저는 평소 재래 종교가 힘을 잃고 있는 탈종교화 시대에 앞으로의 종교가 할 일은 당연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 강조해 왔습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우리 주위에 그리고 우주에 ‘아하!’하고 놀라워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들을 대하며 감탄과 감동과 경외심을 가질 줄 아는 마음을 길러 주는 것, 나아가 나와 자연과 우주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에 눈뜨게 해주고, 궁극적으로 거기서 기쁨과 의미를 찾도록 해주는 것, 이것이 제가 바라는 새로운 종교인 셈입니다. 이른바 Aweism 혹은 ‘Ahaism’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보여주는 김 목사님의 종교관이 여러 면에서 저와 많이 닮았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종교
뒷부분 여러 글에도 나타나 있지만 특히 “생각 없는 생각의 문이 열리다”라는 글에 이런 생각이 짙게 배어있습니다. 어느 날 계룡산 계곡을 걷다가 물이 너무 맑아 잠시 손을 담갔는데 그 순간 온몸의 감각 기관이 열리면서 맑고 시원한 물이 그의 몸을 관류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을 잠깐 인용해 봅니다.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발을 담갔는데, 나와 물이 분리된 타자가 아니라 하나로 흐르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사라졌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의 생각을 비우니 물이 흘러 우주의 바다로 나아가는 게 느껴집니다.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고 영혼에 향기가 충만해졌습니다. 무한하고 무한하며 깊고도 오묘한 세계, 존재의 기쁨으로 충만한 우주에 몸을 던지고 중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상태로 떠 있었습니다. 마음은 더없이 기쁘고 세상은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출렁이는 초록빛이 보석처럼 신비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우주에서 발견되는 신비의 일부분이라도 보고 놀라워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종교성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놀라움을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런 놀라움을 아는 자신이야말로 “심오하게 종교적 (profoundly religious) 인간의 반열”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우리가 우주 전체와 하나라는 생각이 없이 전체와 분리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시각적 착각(optical delusion)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진정한 종교는 이런 시각적 착각을 없애는데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아인슈타인이 생각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를 뛰어 너머를 볼 줄 아는 혜안이 트인 사람들의 공통성이라 여겨집니다.

앞부분의 글도 결국 종교적인 글이었구나
이렇게 보면 앞부분 글들이 종교와 직접 관계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지나치는 일상사에서 발견되는 잡다한 일들을 눈여겨 보고 거기에서 특별한 의미, 심지어 ‘신비의 일부’를 찾아주는 글들은 특수한 의미에서 종교적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서 시종일관 암시하고 있는 종교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종교 너머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통속적 종교를 뛰어넘는 심층차원의 종교적 경험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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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심
그런 통찰을 하고 계신 분이 계신다는게 기쁨니다. 그 통찰에 동감계신 분이 계신다는게 기쁨니다. 공명의 순간을 경험하는 거 같아서요. 금년엔 서울에 오지 않으셨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