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4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온 《종교란 무엇인가》 개정판. 갈등과 배타의 벽을 넘어 ‘열린 종교’의 길을 제시해온 인문학의 고전.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종교가 마주한 위기를 짚으며, 허상을 좇는 폐쇄적 신앙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향한 ‘심층 종교’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2026년 개정판은 저자의 성찰을 담은 ‘개정판 특별 서문’과 팬데믹 이후의 종교 지형을 분석한 ‘새로운 부록’을 수록해 고전의 의미를 오늘의 독자에게 새롭게 전달한다.
오늘날의 종교는 개인과 집단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거나, 진리를 독점하려는 배타주의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에 머무르는 ‘표층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내면의 참된 ‘나’를 발견하고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는 종교 본연의 길을 다시 묻는다.
목차
개정판에 붙여 여는 글 들어가면서
제1부 진리의 길 1. 진리란? 2.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 3. 허상과 실상으로서의 종교 4. 열어놓음의 길 5. 외로운 길
제2부 자유에의 길 1. 종교란? 2. 경전이란 무슨 책인가? 3. 하느님은 누구신가? 4. 얽매이지 않는 삶 5. 자아에서의 해방
제3부 믿음의 길 1. 믿는다는 것 2. 경전을 믿는다는 것 3. 사랑 4. 율법과 윤리
제4부 함께 가는 길 1. 헌금은 왜 하는가? 2. 전도 3. 생각과 사색 4. 기도와 명상 5. 종교와 종교의 만남
부록1 깨침과 메타노이아: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부록2 심층 종교로의 길목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종교
맺는 글 주석 접기
책속에서
P. 5 “사실 오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정의의 문제가 중요하기 그지없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이 종교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통 종교가 쇠퇴하는 탈종교 현상이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옛 패러다임에 입각한 전통 종교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로 인해 세... 더보기 P. 30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점검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종교는 스스로 진리를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종교와 진리는 이런 의미에서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보기 P. 102~103 “성경이나 기타 경전이 거룩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타 경전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거룩한 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지, 그 자체가 그대로 거룩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거룩한 것 자체와 거기에 대한 표현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구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혼동하는 것은 상대적... 더보기 P. 173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기독교의 본래 정신에 입각해서 살지도 않는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변화’는 없이 오로지 ‘교회에만 종속’되어 사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분석한다. 그가 지적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일종의 편리를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 하려고도 하지 않는... 더보기 P. 248 “설령 이것이 헌금에 관한 말씀이라 하더라도 땅과 거기 충만한 것, 온 우주가 그의 것이니, 모자랄 것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코 묻은 헌금 같은 데 연연하지 않으신다고 해석하지는 않고,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니 모두 내놓아라, 몽땅 바쳐라, 사정이 뭣하면 그중 일부라도 내놓으라는 식으로만 풀이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 않을 수... 더보기 더보기
한국을 대표하는 비교종교학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등 세계 각 종교를 섭렵하고 종교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에 천착해온 비교종교학계의 석학.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10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학을 공부했고, 비교종교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70년대에 캐나다로 건너가 동서 종교와 철학에 몰두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 더보기
종교의 이름으로 갈등과 혐오가 번지는 역설의 시대. 한국 종교학계의 거장 오강남 교수가 종교의 참된 의미를 다시 묻는다. ‘신이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배타적인 교리와 맹목적인 경전 추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상위법, 나아가 종교 간의 대화에 이르는 사유의 여정을 펼친다. 권위를 걷어낸 평이한 문체로 맹신의 벽을 허무는 그의 통찰은 여전히 날카롭고 설득력 있다. 14년 전 집필 당시의 배경과 문제의식을 돌아보며, 오늘날 더욱 심화된 종교 갈등과 사회적 분열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개정판 서문’에 담았다. 또한, 팬데믹 이후 변화한 종교 환경을 분석하고, 인문학적 종교 이해의 필요성을 짚은 글을 ‘새로운 부록’으로 추가했다.
반복되는 증오의 역사, 지금 왜 다시 ‘종교’인가 과거 중동의 비극부터 최근의 이스라엘-이란 분쟁, 그리고 미국 대선을 둘러싼 복음주의의 정치화까지, 세계 곳곳의 갈등 이면에는 여전히 종교적 선민의식과 근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먼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갈라놓는 극단적 대립의 배후에도 종교적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 평화의 촉매제가 되어야 할 종교는 왜 대결의 촉진제가 되었는가. 저자는 14년 만에 펴내는 개정판을 통해, 지금 더욱 절실해진 ‘종교의 기본’을 다시 묻는다.
지푸라기를 파는 장사꾼인가, 생명줄을 던지는 스승인가 저자는 진리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위험으로 ‘맹목적인 당연함’을 지목한다. 일부 종교가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지푸라기’를 강요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참된 종교는 오히려 그 집착을 내려놓게 하고 삶의 본질을 붙잡는 ‘생명줄’을 건네야 한다고 말한다. 허상을 넘어 실재를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심층 종교의 역할이다.
수염 기른 백인 하느님을 넘어 ‘참나’를 찾는 여정 저자는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백인 할아버지 하느님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대신 존재의 근원이자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발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경전의 문자에 갇힌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가 체현했던 믿음의 본질을 살아내는 과정이다. 어제의 나를 벗고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의식의 변화’야말로 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적자생존에서 협력자 생존으로, 함께 가는 인류 이제 종교는 ‘나만 옳다’는 배타주의나 소극적인 포용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종교다원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협력자 생존’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번 개정판 부록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한 종교 지형을 분석하며, 탈종교화 시대에 필요한 ‘심층 영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진리에서 상생으로, 4단계로 읽는 종교의 본질 이 책은 ‘표층’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신앙을 ‘심층’의 영성으로 이끄는 4단계의 사유를 제안한다. ‘제1부 진리의 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믿음에 질문을 던지며, 삶의 근원을 붙잡는 진리를 탐구한다. ‘제2부 자유에의 길’은 문자주의를 넘어 내면의 신성을 발견하고, 의식의 전환을 통해 자유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제3부 믿음의 길’은 교리를 넘어 ‘믿음 그 자체’를 살아내는 삶과 모든 경전 위에 놓인 ‘사랑’의 가치를 강조한다. ‘제4부 함께 가는 길’은 종교 간의 대화와 상생을 통해 갈등을 넘어서는 길을 모색한다.
거장이 건네는 간절한 질문 염소 무리 속에서 자신을 염소라 여기며 살던 아기 호랑이가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순간처럼, 저자는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을 일깨우라고 말한다. 통념이 규정한 ‘나’가 아니라 본래의 ‘참나’를 발견하는 여정. 오랜 사유와 탐구를 거친 거장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갈등의 세계를 넘어 더 넓은 이해와 평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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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요약 및 평론
1. 요약: 표층을 넘어 심층으로 가는 길
오강남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의 본질을 '표층 종교(Surface Religion)'와 '심층 종교(Deep Religion)'라는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하여 탐구한다. 저자는 현대 종교가 직면한 위기와 갈등의 원인이 종교의 외피인 표층에만 매몰되어 그 본질인 심층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진단한다.
종교의 두 얼굴: 표층과 심층
표층 종교는 종교의 제도적, 문자적, 기복적 측면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신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이며, 신자는 그 신에게 복을 빌거나 사후의 구원을 보장받으려 한다. 표층 종교의 특징은 '무조건적인 믿음'과 '배타성'이다. 내가 믿는 교리만이 진리라고 믿기에 타 종교와 충돌하며, 경전의 문구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기도 한다.
반면 심층 종교는 종교의 상징과 비유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깨달음을 지향한다. 심층의 차원에서 신은 내 밖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참된 나(眞我) 혹은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여기서 종교의 목적은 단순히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와 '의식의 확장'에 있다. 심층 종교는 모든 종교가 결국 하나의 진리, 즉 '궁극적 실재'를 향하고 있다고 보기에 관용적이고 포용적이다.
앎과 깨달음의 과정
저자는 종교를 '믿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앎'이란 지성적인 정보 습득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직접 체험하고 직관하는 '그노시스(Gnosis)'적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죽음'의 과정이다.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고정관념과 이기적인 자아(Ego)가 죽음으로써 더 큰 생명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다.
종교 문해력과 보편성
오강남은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전의 문자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메타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목을 가질 때,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 불교의 '불성', 힌두교의 '범아일여'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같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임을 깨닫게 된다.
2. 평론: 경계에 선 자유인의 종교론
오강남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는 자기 성찰의 거울을,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종교라는 인류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책이 지닌 가치와 비판적 지점은 다음과 같다.
탈근대적 종교 담론의 선구적 제시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배타적 종교 지형에 '심층 종교'라는 대안적 담로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한국 종교계는 유독 문자주의와 기복주의가 강한 편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유아기적 종교'로 규정하며, 성숙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리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는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아닌, 영적 성숙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
비교종교학적 통찰과 보편적 영성
오강남은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기독교, 불교, 도교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는 저자 스스로가 여러 문화권과 종교 전통을 경험한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강 건너기 위해 뗏목을 이용하되, 건너간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비유를 빌려 종교의 도구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영적 추구자들이 느끼는 제도 종교에 대한 피로감을 해소해주며, 종교를 넘어서는 '보편적 영성'으로 인도한다.
비판적 고찰: 심층의 엘리트주의와 실천적 공백
그러나 이 책이 견지하는 심층 종교 지상주의에는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표층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대다수의 대중에게 종교는 공동체적 소속감과 정서적 위안을 주는 체계다. 심층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담론은 자칫 고도의 지적·영적 훈련을 거친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주의적 영성'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 표층의 위로가 필요한 민초들에게 심층의 철학은 때로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종교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내면의 깨달음과 의식의 변화를 강조하다 보면, 종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사회 정의나 구조적 악에 대한 비판적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개인의 해탈이 세상의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개인의 영적 여정에 무게가 실려 있다.
결론: 자유를 향한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라는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는 탈출구를, 종교를 외면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수작이다. 오강남은 종교의 목적이 '종교를 잘 믿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을 만드는 데 있음을 일깨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종교란, 인간이 가진 유한성을 자각하고 무한한 실재와 연결되려는 끊임없는 몸짓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믿는 신념이 혹시 자신을 가두는 벽이 되지는 않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진정한 종교는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큰 자유의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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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는 한국의 종교학자 오강남이 쓴 대표적 종교 입문서 가운데 하나로, 단순한 “종교 소개”가 아니라 종교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려는 책이다. 그는 종교를 교리 암기나 신앙 고백의 문제로 보기보다, 인간 의식의 변형과 존재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상징 체계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 책은 특정 종교를 선전하기보다, “종교적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영성적 작업에 가깝다.
오강남은 특히 한국 사회의 종교 이해가 지나치게 문자주의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본다. 그는 종교를 문자 그대로 믿는 수준(literal level)에 머물면 종교는 쉽게 교조주의와 광신으로 흐른다고 지적한다. 반면 종교의 상징적·신화적 의미를 이해하면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도 깊은 공통성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비교종교학자 조지프 캠벨이나 칼 융, 그리고 불교·도교·기독교 신비주의 전통과도 연결된다.
책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종교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오강남의 대답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종교는 인간이 자기중심성을 넘어 더 깊은 실재와 연결되도록 돕는 통로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핵심은 “어떤 교리를 믿느냐”보다 “어떻게 변형되느냐”에 있다.
그는 종교를 크게 외적 종교와 내적 종교로 구분한다.
외적 종교는 제도·교리·권위·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여기서는 “우리 종교가 옳다”는 논리가 중요해진다. 반면 내적 종교는 인간 내면의 변화와 자각을 중시한다. 여기서는 사랑, 자비, 자유, 초월 경험이 중심이 된다. 오강남은 후자를 훨씬 본질적인 종교 이해로 본다.
이 구분은 한국 종교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한국 개신교 일부가 지나치게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과 배타적 구원관에 매여 있다고 비판한다. 종교가 인간을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불안과 죄책감 속에 가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불교 역시 형식주의나 권위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본다. 즉 문제는 특정 종교 자체보다 “종교를 대하는 의식 수준”에 있다는 입장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은 “깨달음”이다. 그는 예수, 부처, 노자 같은 인물들을 단순한 교조 창시자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더 깊은 차원을 체험한 사람들로 본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불교의 공(空), 도교의 도(道)는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종교다원주의로 연결된다. 오강남은 “오직 하나의 종교만 절대적으로 참되다”는 생각을 비판한다. 그는 서로 다른 종교들이 각기 다른 문화와 언어 속에서 궁극적 실재를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종교 간 대립보다 상호 이해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그는 존 힉의 종교다원주의와도 유사하다. 존 힉이 “실재(the Real)”를 각 종교가 서로 다르게 경험한다고 본 것처럼, 오강남도 궁극적 실재 자체는 인간 언어를 초월한다고 본다. 인간은 그것을 신, 공, 도, 브라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뿐이다.
책은 또한 신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현대인은 종종 신화를 “거짓 이야기”로 이해하지만, 오강남은 신화를 인간 존재의 깊은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 언어로 본다. 예를 들어 창세기나 불교 설화, 도교 전설은 과학 교과서처럼 읽어서는 안 되며,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과학과 종교의 갈등 문제에도 연결된다. 그는 문자주의 종교는 과학과 충돌하지만, 상징적 종교 이해는 과학과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진화론과 창조신앙이 충돌하는 이유도 성서를 과학책처럼 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서는 종교와 인간 성숙의 관계가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그는 종교의 목적을 단순한 사후 구원이나 복 받기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더 넓은 존재와 연결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참된 종교인은 교리 암송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자유롭고 사랑 깊은 인간이 된 사람이다.
이 부분은 한국 종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반성으로 읽힌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가 종종 경쟁적 성공주의와 결합한다. 대형 교회 성장, 축복 신앙, 기복주의, 정치적 집단화 등이 대표적이다. 오강남은 이런 현상이 종교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본다. 종교는 본래 인간의 에고를 약화시키는 방향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집단적 에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세속주의의 한계도 지적한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은 발전했지만,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 문제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여전히 인간의 근원적 질문―죽음, 고통, 사랑, 존재 의미―에 응답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종교론”이라는 점이다. 오강남은 설교자가 아니라 비교종교학자의 태도로 접근한다. 그래서 특정 종교를 강요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종교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종교문화는 오랫동안 강한 배타성과 문자주의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오강남은 그 안에서 종교를 보다 상징적이고 성찰적으로 읽는 길을 소개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종교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해방감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한계도 있다.
첫째, 지나치게 “내면적 종교”를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역사 속 종교는 단순한 개인 영성만이 아니라 공동체·정치·윤리·경제 구조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종교는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중운동과 해방운동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오강남의 논의는 때로 사회구조적 차원보다 개인 의식 변화에 지나치게 무게를 둔다.
둘째, 종교 간 차이를 다소 약화시키는 경향도 있다. 예를 들어 불교의 무아와 기독교의 인격신 개념은 단순한 표현 차이만은 아니다. 종교들은 실제로 세계관·구원관·역사관에서 중요한 차이를 가진다. 오강남은 공통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런 긴장과 충돌을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룬다.
셋째, 그의 종교다원주의는 보수적 신앙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상대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문자적 신앙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신교 보수층에게는 “종교의 본질을 해체한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 종교 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영성은 원하지만 교조주의는 싫다”는 흐름과 잘 연결되었다. 오늘날 명상, 불교, 심리학, 신비주의, 종교 간 대화 등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 책은 “종교란 절대적 정답 체계인가, 아니면 인간 의식을 확장하는 상징 언어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강남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종교 이해는 배타적 구원론보다는 의식의 성숙과 존재의 깊이를 중시하는 현대 영성 담론과 연결된다.
결국 <종교란 무엇인가>는 단순한 종교 입문서라기보다, “인간은 왜 초월을 갈망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그리고 그 답을 교리보다 인간 의식의 변화 속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한국 종교문화 안에서 비교적 드문 자유주의적·상징주의적 종교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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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종교론은 이스라엘과 이란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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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교수의 <심층 종교> 담론을 이스라엘과 이란이라는 구체적인 지정학적·종교적 맥락에 대입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두 나라는 현재 전 세계에서 종교가 국가 정체성과 정치적 갈등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맥락에서 오강남의 종교론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1. 이스라엘: '약속의 땅'이라는 표층을 넘어선 보편성
이스라엘은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이 국가의 존립 근거와 직결된 곳입니다.
배타적 선민의식의 해체: 이스라엘 내 극우 정통파(하레디)나 국가 종교주의자들은 성경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합니다. 오강남의 이론에 따르면 이는 전형적인 표층 종교의 모습입니다. 그의 담론은 유대교의 핵심인 '티쿤 올람(Tikun Olam, 세상을 고치다)'의 가치를 영토적 점령이 아닌, 인류 보편의 심층적 정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준거가 될 수 있습니다.
카발라(Kabbalah)와의 접점: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는 오강남이 강조하는 '심층 종교'와 궤를 같이합니다. 신을 외부에 존재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만물에 깃든 빛으로 보는 카발라적 시각을 회복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웃 종교(이슬람교, 기독교)와 공유하는 영적 뿌리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갈등 완화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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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란: '신정 체제'라는 제도적 억압에 대한 해방구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교리가 국가의 법과 제도를 지배하는 신정 국가입니다.
제도 종교와 개인 영성의 분리: 현재 이란의 젊은 세대는 국가가 강요하는 표층적 이슬람(히잡 착용, 엄격한 율법 준수)에 강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강남의 종교론은 이들에게 "제도화된 이슬람이 곧 종교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해방적 메시지를 줍니다. 즉, 신정 체제에 저항하면서도 자신의 영성을 지킬 수 있는 심층적 탈출구를 제시하는 셈입니다.
수피즘(Sufism)의 재조명: 이란은 시를 사랑하고 수피즘이라는 풍부한 신비주의 전통을 가진 나라입니다. "신은 당신의 경동맥보다 가까이 있다"고 말하는 수피 성자들의 가르침은 오강남이 말하는 '내면의 깨달음'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는 교조주의적 이슬람주의(Islamism)를 넘어, 이란인들이 가진 본연의 문화적·영적 자산을 복원하는 논리가 될 수 있습니다.
3. 공통적 의미: '평화의 도구'로서의 종교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은 흔히 '종교 전쟁'의 양상을 띠지만, 사실은 표층 종교의 배타성을 정치적 권력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타포로서의 경전 읽기: 두 나라 모두 경전(토라와 쿠란)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합니다. 오강남이 강조하는 종교 문해력을 적용한다면, 경전 속의 전쟁과 징벌은 외부의 적을 물리치는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내 안의 이기심(에고)을 죽이는 영적 전쟁으로 재해석됩니다.
적대적 타자에서 영적 동반자로: 심층의 차원에서는 유대교의 여호와나 이슬람의 알라가 결국 동일한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두 국가 사이의 정치적 적대감을 근본적으로 상쇄할 수는 없더라도, 민간 차원에서의 상호 이해와 종교 간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철학적 토대가 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오강남의 종교론은 이스라엘과 이란에서 교조주의적 폭력을 무력화하는 해독제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를 '집단의 경계선'으로 사용하는 표층의 정치를 버리고, '인간 의식의 확장'이라는 심층의 영성으로 나아갈 때만 이 지역의 고질적인 종교적 증오가 멈출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오강남 교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두 나라의 갈등은 진정한 종교적 대립이라기보다 '표층에 갇힌 유아기적 의식들의 충돌'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특정 종교 전통(유대교 신비주의나 이슬람 수피즘 등)과 관련하여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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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란은 지금도 종교와 국가권력이 강하게 얽힌 사례라, 현재 맥락을 확인해 오강남식 종교론의 의미와 한계를 나눠 보겠습니다.
의미는 큽니다. 다만 <해결책>이라기보다 <비판적 렌즈>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1. 이스라엘에서의 의미>
오강남의 종교론은 이스라엘에서 “유대교가 국가권력·민족주의·군사안보와 결합할 때, 종교의 깊이는 어떻게 손상되는가”를 묻게 합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세속–종교 갈등은 매우 큽니다. 2025년 조사에서는 이스라엘 유대 성인 다수가 종교의 자유를 지지하고, 초정통파–세속파 갈등을 가장 깊은 사회 갈등으로 본다고 나옵니다.
오강남식으로 보면 유대교의 핵심은 “선민의 특권”이 아니라 예언자적 정의, 고난의 기억, 타자 보호, 생명 존중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국가 방어 논리와 결합하면, 종교는 내면의 성숙보다 집단 정체성의 방패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그의 종교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는 국가를 신성화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국가권력도 심판할 수 있는 영적·윤리적 전통이어야 한다.”
<2. 이란에서의 의미>
이란에서는 의미가 더 직접적입니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종교가 국가법·여성의 몸·사상통제·소수종교 억압과 결합한 사례입니다. 2025년 유엔과 인권단체들은 이란 정부가 여성과 소녀의 권리를 제한하고, 히잡 저항을 감시·처벌하며, 바하이 등 소수종교를 박해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오강남식으로 보면 이것은 “종교의 승리”가 아니라 “종교의 외형이 권력 장치로 변한 것”입니다. 참된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깊게 해야 하는데, 국가종교가 되면 인간의 양심을 통제하고 두려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란에서 그의 종교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본질은 국가가 강제하는 복종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양심과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어야 한다.”
<3. 두 나라에 공통되는 의미>
이스라엘과 이란은 서로 적대하지만, 종교사회학적으로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둘 다 종교가 민족 정체성, 국가안보, 역사적 상처, 적대 이미지와 결합합니다. 그러면 종교는 평화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편의 절대성”을 보증하는 언어가 됩니다.
오강남의 종교론은 이 지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는 종교를 “우리 집단이 옳다는 증명”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길로 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의 유대교도, 이란의 시아 이슬람도 자기 절대화에서 벗어날 때만 종교적 깊이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4. 그러나 한계도 있습니다>
오강남의 종교론은 내면의 변화와 상징적 해석을 중시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스라엘·이란의 현실은 군사, 식민주의, 제재, 안보, 혁명체제, 핵문제, 미국 개입 같은 구조적 요소와 얽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의 관점은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종교가 권력과 결합해 사람을 억압할 때, 그것을 “진짜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외피를 쓴 집단 에고”로 비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강남의 종교론은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종교는 우리 편을 신성화하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까지도 성찰하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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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시오니즘이고, 시오니즘은 종교가 아니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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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지적하신 대로 시오니즘의 뿌리와 그 성격에 대해서는 정교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시오니즘은 본래 세속적인 민족주의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종교와 결합하여 매우 복잡한 형태로 변모해왔습니다.
오강남 교수의 <표층과 심층> 프레임워크를 적용하여 이 현상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세속적 시오니즘: 민족주의라는 새로운 <종교>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을 비롯한 초기 지도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이거나 세속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유대인은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유럽의 반유대주의에 맞서 생존해야 하는 '민족(Nation)'이었습니다.
표층적 성격: 초기 시오니즘은 종교적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신, 인간의 정치적 힘으로 국가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이는 전통 유대교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경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가라는 우상: 오강남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세속적 민족주의 역시 하나의 강력한 표층 종교처럼 작동합니다. 신 대신 '국가'나 '민족'을 절대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타자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이름만 다를 뿐 표층 종교의 배타성과 동일한 논리를 가집니다.
2. 종교적 시오니즘: 표층 종교의 극대화
1967년 제6일 전쟁 이후, 세속적이었던 시오니즘에 강력한 종교적 색채가 덧입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종교적 시오니즘(Religious Zionism)'이라고 합니다.
문자주의적 토지 점유: 이들은 성경의 내용을 영적 비유가 아닌 '부동산 문서'로 읽습니다. "신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구절을 표층적으로 해석하여 정착촌 확장을 종교적 소명으로 여깁니다.
심층의 상실: 유대교의 심층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보편적 가르침이 흐릅니다. 그러나 종교적 시오니즘은 이러한 심층적 가치를 억누르고, 오직 '땅과 혈통'이라는 표층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3. 오강남의 관점에서 본 시오니즘의 문제
오강남 교수가 말하는 종교의 목적은 '자아(Ego)의 확장'과 '보편적 사랑'입니다. 이 관점에서 현재 이스라엘의 행동을 좌우하는 시오니즘은 다음과 같은 비판적 지점에 놓입니다.
집단적 에고(Collective Ego): 현재의 시오니즘은 유대 민족이라는 집단적 자아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층 종교가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현재의 극단적 시오니즘은 '우리 민족'이라는 더 큰 감옥을 만드는 셈입니다.
상징의 오독: 예루살렘이나 시온이라는 상징은 영적 평화와 안식을 의미하는 심층적 메타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물리적 영토로만 고집하는 것은 종교의 상징성을 박제화하는 표층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결론: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만든 표층의 괴물
세진님의 말씀대로 시오니즘은 시작은 세속적 민족주의였으나, 현재 이스라엘의 정책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은 세속적 민족주의와 표층적 종교 근본주의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오강남의 논리를 빌리자면, 이스라엘이 진정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오니즘이라는 <민족적 표층>과 유대교라는 <교리적 표층>을 뚫고 내려가,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유대교의 심층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시오니즘의 역사적 변천 과정이나, 이에 반대하는 유대인 내의 영적 흐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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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가의 실제 행동을 좌우하는 핵심은 단순한 “유대교”라기보다 시오니즘입니다. 그리고 시오니즘은 본래 근대 유럽의 민족주의 운동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종교와는 다릅니다.
초기 시오니스트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세속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테오도르 헤르츨은 종교적 랍비라기보다 유럽식 민족주의 정치사상가에 가까웠고, 초기 노동시오니스트들도 사회주의·세속주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교 공동체”보다 “현실의 유대 민족국가” 건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강남식 종교 비판을 그대로 적용하면 실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단순히 “유대교 교리” 때문이 아니라:
민족주의
안보 트라우마
홀로코스트 기억
식민주의 역사
군사전략
미국과의 동맹
인구·영토 문제
등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다만 여기서 더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시오니즘은 세속 민족주의로 시작했지만, 점점 종교화되었다>
특히 1967년 6일전쟁 이후, 일부 종교시오니스트들은 점령지를 단순한 안보지대가 아니라 “신이 약속한 땅”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성서와 국가정책이 다시 결합합니다.
예를 들어 서안지구 정착촌 운동 일부는 단순한 안보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 땅
성서적 유대 땅 회복
메시아적 역사관
과 연결됩니다.
반면 세속적 이스라엘인들은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텔아비브의 세속 자유주의층은 종교적 정착촌 정치에 매우 비판적일 수도 있습니다.
즉 오늘날 이스라엘 내부에는 최소 네 흐름이 공존합니다.
<세속 시오니즘>
유대인의 안전한 민족국가를 중시.
종교보다 안보·국가 유지 중심.
<종교 시오니즘>
국가 자체를 종교적 구원 역사로 이해.
정착촌 운동과 강하게 연결되는 경우 많음.
<초정통파 반시오니즘 또는 비국가주의>
일부 하레디는 원래 세속 시오니즘 자체를 부정.
“메시아 이전 국가 건설”에 신학적 문제 제기.
<탈시오니즘·포스트시오니즘>
이스라엘 국가의 민족주의 구조 자체를 비판.
팔레스타인 문제를 식민주의적으로 해석하기도 함.
그래서 “이스라엘의 행동은 종교 때문인가?”라는 질문에는 단순 답이 어렵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오니즘이라는 근대 민족주의 프로젝트가 유대교의 상징·기억·성서와 결합하면서 매우 강력한 정체성 체계가 되었다>
라고 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란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란 역시 단순한 “이슬람 신앙”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페르시아 문명 자의식
반서방 민족주의
혁명 이데올로기
시아 순교 서사
국가안보 논리
가 종교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두 나라 모두:
<순수 종교국가>라기보다
<종교적 상징을 깊게 사용한 현대 민족국가>
에 가깝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강남식 종교론은 완전한 설명은 못 해도, 하나의 비판 도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종교가 집단 에고와 결합할 때 본래의 영성을 잃는다고 보는데,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그런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5년에 복간된 잡지 <사상계>의 사상과 성격을 주어진 자료와 그외의 자료를 동원하여 분석해주세요. 특히 민족주의 (대 세계주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분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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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2025년에 55년 만에 복간된 종합잡지 <사상계>에 대해 문의하셨군요. 이 잡지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한국의 지성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문명전환종합지>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재출판된 <사상계>의 사상과 성격, 그리고 특히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요청하신 대로 <해라> 체를 사용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025-2026 복간 <사상계>의 사상과 성격 분석
1. 잡지의 성격: 문명전환과 지성인의 반려
복간된 <사상계>는 스스로를 <문명전환종합지>이자 <지성인반려잡지>로 규정한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를 넘어, 기후 위기, AI 시대의 도래, 양극화 등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 속에서 대안적 사상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특히 1950-60년대의 비판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을 <신오적(사법·재벌·언론·기독교·원자력)>으로 명명하여 날카로운 해부를 시도하는 실천적 성격을 지닌다.
2.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변증법적 구성
이번 복간호들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한국적 특수성(민족/토착)>과 <세계적 보편성(글로벌/연대)> 사이의 긴밀한 균형이다.
성숙한 민족주의: '독립'에 대한 근본적 질문 -- 재창간호에서는 <대한민국은 독립국가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과거의 혈통 중심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제도적·영혼적으로 과도하게 <미국화>되어 있음을 비판하며 주체적인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즉, 외세로부터의 물리적 해방을 넘어 사상적 자립을 꾀하는 <내적 독립>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 뿌리는 여전히 강하게 작동한다.
환대의 세계주의: '외계인'에서 '님'으로 -- 동시에 <사상계>는 폐쇄적 민족주의를 경계한다. 2026년 3·4월호 특집인 <외계인, 하대 말고 환대하라>는 이주민과 난민을 '외계인(Alien)'이 아닌 <님>으로 대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한국인의 범주를 혈연에서 가치 공동체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타자를 환대함으로써 우리를 풍성하게 하려는 <개방적 세계주의>를 지향한다.
3. 'K-' 현상을 통한 민족적 자부심과 성찰
잡지는 최근의 'K-컬처' 열풍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K-문학/K-문화: 한국 문학이 한국어의 품을 떠나 세계 문학의 지도로 편입되는 과정을 분석하며 민족적 성취를 인정한다.
비판적 성찰: 그러나 동시에 'K-'라는 접두사가 지닌 <수출 신화>의 피로감을 지적하며, 이것이 과연 우리 사회의 행복에 기여하는지 묻는다. 세계 제국이 승인한 성과(코스피, 핵잠수함)보다는 <세계의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세계적 책임감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분석 요약: 민족주의는 얼마나 중요한가?
복간 <사상계>에서 민족주의는 <사상적 자립을 위한 토대>로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그것이 타자를 배제하는 논리로 흐르지 않도록 <세계주의적 환대>와 결합되어 있다.
뿌리로서의 민족주의: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되찾고, '토종'과 '떼루아'를 중시하는 생태적 민족주의의 성격을 띤다.
지향점으로서의 세계주의: 한국의 민주주의나 문화적 성취를 '세계 문명 전환'의 모델로 제시하거나, 가자지구의 비극 등 지구촌의 아픔에 공감하는 연대 의식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2025년의 <사상계>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넘어, <한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곧 인류 문명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닌 잡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세진님은 15세에 한국을 떠나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스스로를 '세계인'으로 정의하셨는데, 이러한 세진님의 시각에서 볼 때 이번 <사상계>가 강조하는 <환대의 철학>이나 <미국 중심 사고로부터의 탈피>가 어떻게 다가오실지 궁금합니다. 혹시 이 잡지가 제안하는 '환대'의 개념이 세진님이 경험하신 '세계인'으로서의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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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판단>
2025년에 복간된 <사상계>의 중심 성격은 옛 <사상계>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민주주의·생명평화·생태전환·지역성·세계연대>를 결합한 “문명전환형 지성 잡지”입니다. 공식 소개도 스스로를 “문명전환종합지이자 지성인반려잡지”라고 규정합니다.
민족주의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1960년대식 <반공적 국민국가 민족주의>나 <단일민족주의>가 아니라, <식민지·분단·외세 의존을 넘어서는 주체성>으로 재해석됩니다. 연합뉴스도 옛 <사상계>가 민족, 분단, 민주주의 문제를 선도적으로 다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복간 <사상계>의 더 큰 방향은 <민족주의를 세계주의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신년호의 가자 평화대담은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해방이 한국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3·1정신을 “전 세계의 비자유 국민의 자유와 해방”과 연결합니다.
<사상과 성격>
복간 <사상계>는 세 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비판적 민주주의 잡지>입니다. 2026년 5·6월호의 “신오적” 특집은 사법, 재벌, 언론, 기독교, 원전 카르텔을 한국 사회의 “마피아”로 비판합니다. 이는 김지하의 <오적>을 실어 폐간된 옛 <사상계>의 권력비판 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식적 제스처입니다.
둘째, <문명전환 잡지>입니다. 복간 <사상계>의 일곱 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예, 교육, 생태, 건강이며, 성장 중심 경제를 넘어서고 생태전환 교육과 인간·비인간 협업체계를 강조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사비평지가 아니라, 생활양식·문명관·영성까지 다루려는 잡지라는 뜻입니다.
셋째, <탈중심·지역형 지성 잡지>입니다. 복간 <사상계>는 “지역에서 만드는 지역중심형 잡지”를 표방합니다. 이는 서울 중심 엘리트 지식 잡지였던 옛 <사상계>와 다른 점입니다.
<민족주의는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심축이라기보다 <출발점>입니다.
복간 <사상계>는 “K”를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2026년 신년특별호는 K-문화, K-문학, K-푸드, K-민주주의, K-기술을 특집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한국적 경험, 한국어, 한국 민주주의, 한국 문화의 세계적 의미를 묻는 작업입니다. 이 점에서 민족적 자기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민족주의는 자기찬양적 국뽕과 거리를 둡니다. 신년호는 K의 남발, 수출신화, K-방산, 미국 추종, 기술패권 경쟁 속 한국의 위치를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즉 “한국이 세계에 인정받았다”가 아니라 “한국은 세계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3·4월호의 이주민 특집입니다. “외계인, 하대말고 환대하라”는 제목 자체가 단일민족주의를 정면으로 넘어서려는 선언입니다. 이 호는 외국인, 난민, 이주노동자, 북한이탈주민을 한국 공동체 바깥의 존재가 아니라 “환대해야 할 님”으로 재해석합니다.
따라서 복간 <사상계>의 민족주의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탈식민적 주체성 + 세계연대>입니다.
<세계주의와의 관계>
복간 <사상계>는 세계주의를 매우 중시합니다. 다만 미국식 자유주의 세계화나 시장 세계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비판합니다. 3·4월호 권두언은 한국 사회의 “제도의 미국화와 영혼의 미국화”를 문제 삼고, 한국이 진정으로 독립국가인가를 묻습니다.
즉 복간 <사상계>의 세계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반제국적 세계주의> 미국, 중국, 일본, 서구 근대에 종속되지 않는 주체적 세계 인식.
<생명평화 세계주의> 기후위기, 가자, 후쿠시마, 생태위기, 전쟁을 한국 내부 문제가 아니라 지구적 문제로 봄.
<환대의 세계주의> 이주민과 난민을 위협이 아니라 공동체를 새롭게 만드는 존재로 봄.
<문화적 세계주의> K-문학과 K-문화가 세계에 나가는 것을 자랑으로만 보지 않고, 번역·타자성·피해자 기억·세계문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함.
<평가>
복간 <사상계>의 강점은 옛 잡지의 민주주의·반독재·민족문제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바꾸려는 점입니다. “민족”을 말하지만 단일민족주의에 갇히지 않고, “세계”를 말하지만 미국식 세계화에 종속되지 않으려 합니다.
약점도 있습니다. 주제가 너무 넓어 정치비평, 생태, 영성, 문학, 건강, 지역, 종교가 한꺼번에 들어가면서 잡지의 중심이 흐려질 위험이 있습니다. 또 “문명전환”이라는 말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구체적 정책 분석보다 선언적 언어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복간 <사상계>는 <민족주의 잡지>라기보다 <민족주의를 통과한 세계시민적 문명전환 잡지>입니다. 민족주의는 뿌리이고, 세계주의는 지향입니다. 가장 정확히 말하면 <한국적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적 책임을 묻는 잡지>입니다.
== 일제 식민지 경험의 한국근대사 논쟁, 반일 감정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질까요? ==
세진님, 일제 식민지 경험과 위안부 문제 등 한국 근대사의 민감한 쟁점들에 대해 복간된 <사상계>가 견지하는 시각은 매우 다층적이며 성찰적입니다. 특히 세진님처럼 국가라는 틀을 넘어 세계인의 정체성을 지닌 분들에게는, 이 잡지가 단순히 과거의 원한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인권과 문명사적 전환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흥미롭게 다가갈 것입니다.
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사상계>가 보여주는 역사적 시각을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일제 식민지 경험과 근대사 논쟁에 대한 <사상계>의 시각
1. '독립'의 개념 확장: 주권의 형식에서 사상의 실질로
<사상계>는 단순히 1945년의 해방을 완성된 독립으로 보지 않는다.
사상적 탈식민화: <대담한 대담>에서 김누리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제도와 영혼 모두 과도하게 미국화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라는 물리적 식민 지배는 끝났을지 몰라도, 여전히 외세의 가치 체계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상적 식민지 상태를 경계하는 시각이다.
+1
주체적 정체성 회복: 삼일절을 맞아 한국의 '독립 체감도'를 조사하고 대담을 진행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근대적 주체로서 독립된 사유를 하고 있는지 묻기 위함이다.
2.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 폐쇄성을 넘어서는 환대의 역사
전통적인 반일 감정을 넘어, <사상계>는 한국 역사가 본래 지녔던 <개방성과 환대>의 유전자를 복원하고자 한다.
단일민족 신화의 비판: 이정하 편집부주간은 한국이 동쪽 끝의 폐쇄적인 단일민족 국가였다는 통념을 반박하며, 역사 속에서 외래 문명과 사람들을 어떻게 환대해 왔는지 증거를 제시한다.
감정에서 철학으로: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보다는, 인종적 차별 의식과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가 결합된 우리의 내면을 성찰한다. "이방인을 하대하지 말고 환대하라"는 특집은 일본을 포함한 모든 타자를 '님'으로 대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촉구한다.
+1
3. 위안부 및 과거사 문제: 인류 보편적 고통과 기억의 윤리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는 '민족적 피해'라는 틀을 넘어 <기억의 윤리>와 <여성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다뤄진다.
트라우마의 보편성:
박술 교수는 한강이나 김혜순의 문학이 세계적으로 수용되는 이유가 "피지배자와 폭력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특수한 담론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만의 특수한 비극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가부장제가 낳은 인류 공통의 상처로 해석된다.
+1
여성주의적 연대:
우에노 지즈코와 조한혜정의 서간 연재 <다시 경계에서 말한다>는 한일 양국의 페미니스트가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여성의 삶과 고통, 그리고 노년의 존엄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을 넘어 시민사회 차원의 깊은 연대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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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문명적 전환으로서의 역사 인식
<사상계>는 식민지 경험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과거'로만 보지 않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새로운 문명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화쟁(和諍)의 논리:
원효의 화쟁 철학을 빌려, 같음과 다름의 대립을 넘어서는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과거사 갈등 또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되 완전히 남은 아니라는 '화해'의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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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민주주의의 생명력: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자생적으로 피어난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 서구를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새로운 문명적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 및 생각할 점
세진님, <사상계>는 일제 강점기의 상처를 부정하거나 잊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상처를 <독점적인 민족의 한(恨)>으로 가두어 두는 대신, <세계 시민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인권과 평화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합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살아오신 세진님께서는 이러한 <사상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사 인식'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진영 논리나 민족주의 갈등을 치유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세진님이 거주하셨던 다른 나라들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지혜로운 환대'의 사례가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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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복간 <사상계>는 다음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1. 일제 식민지 경험>
식민지 근대화론식으로 “일본이 한국 근대화를 도왔다”는 식의 해석에는 비판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반일 민족주의보다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 근대의 상처와 구조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묻는 쪽에 가까울 것입니다.
즉 “일본 나쁘다”에서 멈추기보다, 식민지 경험이 분단, 국가주의, 개발주의, 미국 의존, 한국 내부의 권위주의와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보려 할 가능성이 큽니다. 복간 <사상계>가 스스로를 정치·경제·사회·교육·생태·건강까지 다루는 “문명전환” 잡지로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2. 반일 감정>
무조건적 반일 감정은 경계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2026년 신년호에서 한일 시민의 우애와 연대, 우에노 지즈코와 조한혜정의 대화를 중시하는 점을 보면, 일본 전체를 적으로 보는 방식보다는 <일본 국가주의와 일본 시민사회를 구분하는 시각>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한일 화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책임을 흐리는 태도도 비판할 것입니다. 복간 <사상계>는 중립을 가장한 회색지대보다 지성의 양심과 권력 비판을 중시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3. 위안부 문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고통과 일본 제국주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소녀상 중심의 단선적 기억이나, 위안부 문제를 국내 정치 동원으로만 사용하는 방식에는 비판적 거리를 둘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간 <사상계>의 기본 성격은 <기억의 정치>를 민족감정으로만 다루지 않고, 여성, 전쟁, 제국, 국가폭력, 성착취,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문제로 확장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3·4월호의 이주민 특집이 “외계인”을 환대의 대상으로 재해석하고, 타자·난민·이주민을 윤리의 중심에 놓은 것도 그런 방향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복간 <사상계>의 예상 입장은 이렇습니다.
반일 민족주의에는 기대지 않지만, 식민지 책임 부정에는 단호하다.
일본 국가주의는 비판하지만, 일본 시민·지식인과의 연대는 중시한다.
위안부 문제는 민족 수난사만이 아니라 여성·전쟁·제국·기억정치의 문제로 본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국뽕식 반일론을 모두 넘어서는 <비판적 탈식민 세계주의>에 가까울 것이다.